회심'회심'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돌아감을 의미하고 '부흥'은 집단적인 역사로 하나님께 돌아감을 뜻한다. 그러므로 회심과 부흥은 하나님의 역사이고 그것에 부응하게 되는 자아 개혁과 교회 개혁은 바로 그 역사에 감동된 사람들의 역사, 곧 나의 역할이 강조된 표현이고 정의이다.성경이 말하는 자아 개혁이 가능한 자는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에 따라 자신의 전적 무능력을 발견한 사람이다. 이런 발견은 통회와 회개로 이어진다. 자신에게 걸어왔던 모든 기대와 소망, 그의 존재 기반이 산산이 부서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이며 비로소 하나님께로 돌아갈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윤무적 삼위일체'의 하나님께로 돌아옴을 의미한다.회심한 사람은 예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교제와 누림이 뒤따른다.교회개혁은 개혁의 주체인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분의 방법을 따름에 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개혁이다. 우리 인간의 욕심이 표현되거나 우리의 경건을 이루기 위한 개혁이 되어서는 안된다. 비판을 위한 비판, 개혁을 위한 개혁이 되어서는 참 개혁이 될 수 없다. 교회개혁 운동은 '의식화 운동'이다. 잠자고 있는 교회의 의식을 깨우는 운동이다. 쉽지 않은 일이며 일신의 영광을 누릴 수 없는 운동이다.이는 요한 복음에 나오는 '거듭남'을 의미한다. 우리는 굳이 종교적으로 뿐 아니라 거듭날 필요가 있다. 매일의 일상이 단조롭고 큰 변화가 없이 우리들은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지나가고 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해도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일상인지라 어쩔수가 없이 그렇게 되버린다.그 사이에 어떠한 공간감을 주어서 나는 우리는 거듭나길 바란다. 일상과 낯설음의 사이. 내부와 외부를 잇는 사이 공간으로서의 마음과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내면의 표현과 다중적 상징들을 묘사하는 마음의 사이 공간을 말이다. 단편과 연결, 실제와 상상, 긍정과 부정, 희망과 절망 사이의 부분들을 그려내거나, 주변의 사소한 사물들과의 대화를 시도하였으면 한다. 또 육체가 사회적 인식의 틀 속에 존재하면서 세상과의 소통을 이룬다.
빌렘 플루서성급한 정보화시대의 신봉자들은, 이제 구텐베르크적 문화는 가고, 책 없는 세상이 도래했다고 선언한다. 선구적인 뉴미디어를 거부하고 문자형태를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비판한다. 미디어 철학자 빌렘 플루서는, "우리 주변에는 종이는 포장지로만 존재한다. 책벌레들, 즉 종이를 파먹는 좀같은 존재들은 이런 초록의 유토피아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극단적인 선언을 한다.어쩌면 미래에, 그것도 가까운 미래에 정말로 책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뉴미디어가 책을 대신하는 텔레마틱(텔레커뮤니케이션 + 인포마켓) 유토피아는 공중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지식의 바탕 위에서 형성된다. 설사 텔레마틱이 도래한다 해서 정말로 책이 사라진다 해도, 그때까지 문자는 지식을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매체이며, 그런 점에서 텔레마틱을 이끄는 것도 실상은 책이라는 지식의 전달체계이다.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대중문화공간은 영화관이고, 모든 연령층에게 가장 친숙한 대중매체는 텔레비전이다. 그리고 문화예술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정보 등 모든 것이 밀려드는 가장 활성화된 공간은 바로 컴퓨터이다. 영화, 텔레비전, 컴퓨터는 현대사회와 현대인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것이 된지 이미 오래고, 이러한 대중매체를 둘러싼 논쟁엔 끝이 없다. 미국식 휴머니즘과 오락성으로 무장한 헐리우드 영화는 ‘팍스 아메리카나’를 선전한다. 텔레비전은 사람들의 비판적 의식을 마비시키는 ‘바보상자’다. 컴퓨터는 젊은이들을 실제 삶으로부터 괴리시키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이제 식상할 정도이다. 그러나 현대의 미디어를 둘러싼 이러한 비판들은 소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역기능이 어떠하든 영화, 텔레비전, 컴퓨터는 현대인의 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또 우리가 그것을 자발적으로 포기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현대의 미디어가 대중들에게 끝없는 오락 거리를 제공하면서 기득권자들의 현상유지에 기여하고 있다는 주류 비판들과 완전히 대척점에 서있는 문화이론가들이 있다. 나치가 그 세력을 키워가던 1930년대에 이미 파시즘의 정치예술화에 저항할 매체로서 영화의 혁명성을 긍정한 발터 벤야민, 1960년대 전면적인 대중문화의 폭발을 직접 경험했던 캐나다의 문화비평가 마샬 맥루한, 컴퓨터가 제공하는 전례 없는 가상세계를 직접 체험하고 있는 빌렘 플루서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마르크스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무정부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미디어에 거는 그들의 믿음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사진이 전통회화를 위협하고, 영화가 연극을 빠르게 대체하던 1930년대에 벤야민은
아르누보 ( Art Nouveau )' 신 미술' 이라는 뜻으로 1890년대에 자연주의적이고 유기적인 형체를 구사했던 장식미술. 회화만이 아니라 건축과 디자인도 포함된다. '아르누보'는 영국·미국에서의 호칭이고 독일에서는 '유겐트 양식', 프랑스에서는 '기마르양식', 이탈리아에서는 '리버티 양식'으로 불린다. 아르누보는 유럽의 전통적 예술에 반발하여 예술을 수립하려는 당시 미술계의 풍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특히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 클림트나 토로프, 블레이크 등의 회화의 영향도 빠뜨릴 수 없다.아르누보의 작가들은 대개 전통으로부터의 이탈, 새 양식의 창조를 지향하여 자연주의·자발성·단순 및 기술적 완전을 이상으로 했다. 종래의 건축·공예가 그 전형을 그리스, 로마 또는 고딕에서 구한 데 대해서, 이들은 모든 역사적인 양식을 부정하고 자연형태에서 모티프를 빌어 새로운 표현을 얻고자 했다. 특히, 덩굴풀이나 담쟁이 등 식물의 형태를 연상하게 하는 유연하고 유동적인 선과, 파상·곡선·당초무늬 또는 화염무늬 형태 등 특이한 장식성을 자랑했고, 유기적이고 움직임이 있는 모티프를 즐겨 좌우상칭이나 직선적 구성을 고의로 피했다. 그리하여 디자인은 곡선·곡면의 집적에 의한 유동적인 미를 낳는 반면 견고한 구축성이라든가 기능에 기초를 둔 합리성이 소홀하여 기능을 무시한 형식주의적이고 탐미적인 장식으로 빠질 위험도 컸다. 아르누보가 비교적 단명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아르누보의 전성기는 1895년경부터 약 10년간이다. 그보다 이전인 1880년대에는 영국의 맥머드, 미국의 설리번, 에스파냐의 가우디 등이 그래픽디자인이나 건축에서의 곡선적인 형태를 다용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데, 특히 맥머드의 예는 분명 아르누보의 선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의 매킨토시, 벨기에의 반 디 벨데와 오르타, 프랑스의 기마르와 가이야르, 이탈리아의 다론코 등의 작가가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하게 되면서 아르누보는 널리 그리고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특히, 1896년에는 독일의 미술품상인 빙그가 반 디 벨데에게 의뢰해서 내부장식을 한 파리의 상점은 '아르누보관'으로 명명되어 독자적인 장식성으로 하여 대단한 인기를 얻고 유명해졌는데 이 신양식의 유행에 박차를 가하였다.18 세기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생산물의 질적가치가 떨어지는가하면 아름답거나 유용성이 결여된물건이 자꾸생겨나면서 대량생산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이 중세의 수공예품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고 산업기술의 발달로 예술가들이 고립되고 그로 인해 생겨난 사회와 예술의 격차를 줄이고자 아름다움과 유용성의 개념으로 미술공예운동이 일어났다.아르누보 양식의 복식아르누보는 직선을 피하고, 소용돌이 치거나 서로 교차하는 직선을 주로 사용하였다. 그 이유는 그러한 곡선을 통해 자연생물의 유동적 형태를 표현하고 사물의 본질이나 자연의 창조활동의 유기적 과정을 효과적으로 표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누보의 곡선은 구불구불하고 물결치는 듯하며, 음악적으로 율동하는 듯하고, 타오르는 듯하고 섬세하며, 환기시키는 듯한 힘을 지닌 상징적인 선으로 표현 되었는데, 여러 면에 걸쳐 나타났다. 아르누보 소재로는 꽃과 식물 그리고 여인이 대표적이며, 곤충이나 동물도 많이 이용되었다. 색채면에서는 부드러운 색채가 이용되었다.여성의 복식 :아르누보 양식의 복식은 아워글래스 스타일과 S-커브 스타일로 구분된다. 매끈하게 흘러내리는 곡선의 분위기로 바뀌게 되었다. 아워 글래스 실루엣은 아르누보 운동이 꽃피기 시작한 1890년대가 되면서 유행은 변화된 미의식에 부응하여 크게 부풀리려고 고심했던 버슬의 심한 곡선이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스커트의 형태로 바뀌면서 전체적으로 날씬한 씰루엣을 이루었다. 1890년대부터 스커트의 버슬이 갑자기 줄어들면서 장식도 없어지고 단순해지는 반면, 관심의 초점이 상체의 어깨와 소매로 옮겨지면서 어깨를 장식하고 소매를 여러형태로 부풀려 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심한곡선을 이룬 큰소매와 가는허리, 플레어로 퍼진 스커트 등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아워글래스 씰루엣이 창출되었다.S-커브 씰루엣은 보강된 콜쎗으로 그 형태가 강조되었으며, 더욱 심한 곡선형태의 S-커브 스타일로 발전하게 되었다. 1920년부터 더욱 굴곡지게 나타내기 위해 힙을 최대한 더 많이 밖으로 돌출시키고 앞 허리선은 아래로 뾰족한 곡선을 그리며 더욱 가늘게 강조시켰고, 버스트라인부터 허리 사이의 미드리프를 앞으로 더 굴곡지도록 만들어 주기 위해 손수건이나 부드러운 헝겊을 가슴속에 넣었다. S-커브 씰루엣은 스커트의 곡선이 길게 흘러내리며 물결치듯이 휘어지는 유연함과 운동감을 더하기 위해 스커트의 길이가 더욱 길어져 바닥에 끌렸으므로, 걸을 때는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거나 들고 다녔다. 그리고 들추어진 치마 밑으로 프릴을 화려하게 단 페티코트가 보여지기도 했는데, 이렇게 부자유스러우면서 화려한 레스로 장식된 의상을 입은 여인은 이 시대의 상징으로서 에드워디안 레이디 라고 불리웠다.1890년 이전에는 어둡고 컴컴한 색조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아르누보 영향기에 들어서면서부터 환하고 연한 파스텔 계통의 부드러운 색조가 유행했으며, 복잡한 이중적인 색채효과를 얻기 위해 비치는 얇은 옷감이나 레이스로 오버 드레스를 만들어 튜닉식으로 덧입기도 했다. 이 시기의 복식에 많이 사용된 레이스와 러플은 부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환상적인 색채효과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도 쓰였으며, 이것은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사용된 직물도 1890년 전에는 무겁고 두껍고 윤기있는 브로케이드가 많이 사용되었던 데 비해 이 시기에는 시퐁, 오건다, 조젯, 크레이프, 얇은 리넨, 레이스 등 주로 가볍고 부드러운 재료를 사용했다. 산업혁명 이후 여성 근로자가 많아지고 이 시대에 와서 여성의 사회참여가 활발해지자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노력이 시도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남성복에서 디자인을 본딴 테일러드 쑤트 차림이 의생활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테일러드 쑤트는 1880년대 에 영국의 디자이너 레드펀에 의해 고안되어 전유럽에 유행하게 되었다.남성의 복식 :현대형 남자복의 기본은 이미 제 2제정 시대에 확립되어 있었다. 여자복의 모드가 파리에 의해 지배되었던 것에 비해 남자복의 경우는 18세기 이래 영국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남자복식의 기본은 상의, 조끼, 바지가 한 벌이다. 상의는 길이가 힙 근처 까지 오고 앞트임은 2~3개의 단추로 여미게 했다. 모양은 앞여밈이 다소 둥글려진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변화가 없다. 조끼인 베스트는 예복으로 사용되고 질레는 현재의 형태와 거의 비슷했지만 작은 칼라가 달린 것이 차이점이다. 질레는 상의나 바지와 같은 색조의 천을 사용하여 전체적 통일미를 중시한 듯 하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짙은 색 울이 많이 사용되었다.
카피라이트와 피아노학원경영2. 카피라이트란 무엇인가~?저작권이란 시, 소설, 음악, 미술, 연극, 컴퓨터 프로그램 등과 같은 "저작물"에 대하여 창작자가 가지는 권리를 말한다. 예를 들면 소설가가 소설 작품을 창작한 경우에 그 소설가는 원고 그대로 출판 배포할 수 있는 복제권 배포권과 함께 그 소설을 영화나 번역물 등과 같이 다른 형태로 저작할 수 있는 2차적 저작물의 작성권, 연극 등으로 공연 할 수 있는 공연권, 방송물로 만들어 방송 할 수 있는 방송권 등 여러 가지의 권리를 가지게 된다.이러한 여러 가지의 총체를 저작권이라고 하며, 저작권은 토지와 같은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매매하거나 상속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수도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허락을 받지 않고 타인의 저작물을 사용한다면 저작권자는 그를 상대로 민사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그 침해자는 형사상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저작권자는 일반적으로 저작권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함으로써 경제적인 댓가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저작 권의 경제적 측면을 저작재산권이라 한다. 하지만 저작권은 저작자의 창의성이나 기술 및 노력을 보호하기 위해 주어지는 권리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이러한 창조성이 일정한 형태로 표현되기 전까지는 보호받을 수 없다. 원래 저작권은 저작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대상은 저작물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저작권의 보호는 창작자로서의 저작자가 아닌 유형물로서 표현한 저작물에 대한 보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형으로 나타난 저작물을 만들었다고 해서 모두 저작권법으로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그 저작물이 문학, 예술 또는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저작물이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그 저작물은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저작권법상에 예시되어 있는 저작물의 종류는 어문저작물, 음악저작물, 연극저작물, 미술저작물, 건축저작물, 사진저작물, 영상저작물, 도형저작물, 컴퓨터 프로그램저작물, 2차적저작물, 편집저작물로 구분되어 있으나 이는 하나의 예시이기 때문에 이외에도 다른 형태의 저 작들이 있을 수 있다.그러므로 저작권은 저작자의 창조된 원저작물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주어지는 것이며, 저작물 그 자체, 즉 표현의 형식 또는 방법이 보호된다는 뜻이지 저작자의 사상이 보호된다는 말은 아니다. 사상, 학설, 원칙 및 체계화된 방법 등에는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만약 저작권법에 위배되었을 때 그 벌칙 규정 대부분이 친고죄에 적용됨으로써, 저작권을 침해당한 사람이 고소를 해야만 수사가 진행되고, 기소를 할 수 있다. 또한 일단 고소를 했더라도 기소 전에 합의를 하면 검찰에서는 공소권 없음이라는 불기소 결정을 내려 수사가 종결된다. 따라서 일단 저작권 침해로 저작권자가 고소를 하더라도 최대한 신속하게 합의를 유도해 고소를 취소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소를 하기 전에 미리 저작권 침해의 소지가 생기지 않도록 사전 예방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발달사저작권의 등록 제도는 제3자에 대항할 수 있는 법적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주목적이며 등록하거나 저작권 공고를 표시해야만 저작권이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자는 저작권을 침해하는 자 또는 침해할 우려가 있는 자에 대하여 침해 정지, 예방 및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저작권 침해 행위는 법이 규정한 법칙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1980년대 이전의 산업 사회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은 저작권의 보호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미국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저작물로 규정하여 1977년 저작권을 보호하면서부터 1980년대에 들어와 많은 국가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저작권법에 포함하여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을 별도로 제정하여 1987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UN의 전문 기관인 세계 지적 재산권 기구(WIPO)와 세계 무역 기구(WTO) 등이 컴퓨터 프로그램의 저작권과 그 보호에 관한 국제 조약의 제정을 진행하고 있다.- 당위성저작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다. 저작권이 보호되지 않으면 불법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여러 면에서 저작권 보호를 살펴보자면, 사회정의의 실현으로 보호되어야한다. 인격적인 측면에서 보호되어야 하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호 되어야 한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저작권은 인정되어야 한다.
종족음악학성격종족음악학은 음악학의 한 갈래이지만, 자주 독립적인 영역으로 다루어진다. 음악학이 유럽의 대학교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그 연구 대상이 자연스럽게 서유럽의 예술음악에 한정된 반면, 종족음악학은 이 영역 밖의 음악에 관심을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또 종족음악학과 음악학은 연구방법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악보로 남겨진 음악이 상대적으로 적은 유럽 밖의 음악은 연구자들이 현장을 뛰어다니며 이것을 수집하지만, 서유럽의 예술음악에 대한 연구는 주로 기보된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종족음악학은 그 연구 대상이 다양한 문화권들에 속하기 때문에 그 각각의 사회적 배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즉, 음악 자체만을 떼어내 보기보다는 이것이 해당 사회에서 갖는 실제 기능과 작용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고려한다. 이러한 방법적인 특성과 연구 관심 때문에 종족음악학에서 다루어지는 음악들은 주로 실제 연주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서유럽 밖의 음악이 서유럽 음악과 다른 것을 "비교"를 통해 보여주었다. 초창기에는 이 방법적인 면이 학문 영역의 명칭으로 사용되어 "비교음악학"(도. Vergleichende Musikwissenschaft, 영. comparative musicology)이라고 불렸다(뒤의 "발달" 참조). 또 민중 또는 민족들의 음악을 연구한다는 의미에서 음악민속학(도. musikalische Volks- und V lkerkunde)이라는 용어도 있으나 덜 사용되었다.종족음악학은 음악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보다 음악을 둘러싸고 있는 종족?문화적인 관련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인류학 또는 종족학, 그리고 심리학은 항상 종족음악학의 중요한 파트너이다. 통합적인 접근은 종족음악학의 출발 때부터 하나의 중요한 특징으로 나타났다. 종족음악학은 그 연구대상이 되는 음악들이 아직 서양의 음악 작품처럼 독립된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연구의 실제에서 -예를 들어 서양의 음악 작품을 연구하는 경우와 비교했을 때- 주변의 다양한 문화적 접촉점들을 더 많이 고려한다. 학문들과 보다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역시 종족음악이 지니고 있는 음향적 규칙의 규명이다. 이를 토대로 종족음악학은 다양한 음악들의 문화종합적인(interkulturell) 비교와, 나아가 이들의 관련성에 나타난 상호 영향들을 밝히려고 한다. 그래서 종족음악학은 음악학과 구별되는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발달 내지 변화의 탐구라는 음악학의 근본 취지를 보다 넓은 관점에서 살릴 수 있다.음악학이 역사 속의 음악 작품을 중심으로 한 음악사를 연구하면서 성장한 것에 비하면 종족음악학은 물론 다른 방향의 음악 연구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종족음악학이 서양의 음악학 전통에서 자라왔으며, 그런데도 비서양 음악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은 결과적으로 서양식 학문 틀에 의한 비서양 음악의 연구라는 형태를 피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은 종족음악학이 해당 음악문화에 알맞은 가치관을 도외시하여서가 아니라 문화 현상을 학문적 입장에서 정리할 때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서양의 음악학도 그 틀이 서양의 것이라고 하기보다 학문의 것이라고 하는 것이 이해하기 편하다. 단지 서양의 학자들이 그러한 시도를 먼저 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산업화를 서양의 것이라고 하지만 문명을 발달시키려는 곳에서는 어디에나 산업화가 있을 수 있다. 자동차나 우주선의 원리가 서양의 것이 아니라 단지 서양 사람들이 먼저 알아내 실용화 한 것에 불과하다.이러한 종족음악학의 입장은 해당 지역의 음악문화가 서양 모델을 따라갈 때는, 해당 지역에서의 문화 마찰과 같은 학문적 마찰을 자주 겪게 된다. 종족음악학자들은 종족음악에서 긍정적 요소들을 보려고 하지만, 종족음악학은 외국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할 경우 해당국가 사람들이 학문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문화적 자존심에서 종족음악학을 거부하기도 한다. 이 경우 종족음악학은 서양음악을 연구하는 음악학에도, 해당 지역의 전통음악을 연구하는 음악학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변방의 영역이 되기 쉽다. 한국의 상황은 이 경우의 대표적 예이다. 조선 시대의 기보된 의식 음악은 일반적으로 역사음악학 관점에서 잘 연구될 수 있다. 그리고 구전되는 민속음악은 종족음악학의 관점에서 더 잘 연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민속음악도 역사음악학적 입장에서 예술 음악화 시킴으로써 한국의 전통음악은 더 이상 종족음악학의 대상이 아닌 것이 되게 한다. 따라서 한국의 종족음악학자들은 서양 음악학의 틀을 넘겨받아 전통음악을 연구하는 "국악학"의 주류에도, 서양 음악을 연구하는 음악학이나 서양 음악문화의 틀에 맞춘 현대 한국음악을 연구하는 음악학의 주류에도 들지 못한다. 하지만 한국 전통음악의 많은 부분은 그 성격을 보면 아직도 종족음악학의 관점에서 더 잘 연구될 수 있으며, 또 한국의 음악문화를 가꾸기 위해서는 한국과 서양 밖의 음악문화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우리에게 계속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