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necats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6
검색어 입력폼
  • 일본의 가부키-무로마치 모모야마시대의 무용문화를 중심으로
    가부키 :かぶく=============================무로마치 모모야마 시대무로마치 시대와 모모야마 시대의 역사일본의 중세는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시대, 무로마치 시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로 나눌 수 있다. 헤이안 시대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정이대장군 취임과 함께 가마쿠라 시대로 넘어가며 조큐의 난, 분에이의 전쟁을 거쳐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면서 무로마치 시대로 접어든다. 1336년 무로마치 막부가 성립되고 교토의 조정이 북조로, 요시노의 조정이 남조로 분리되어 있던 일본은 1392년 남북조 합일을 이루게 된다. 그후 무로마치 시대는 오닌의 난으로 하극상의 시대로 치닫게 되는데 이를 분리하여 센고쿠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1568년 오다 노부나가가 교토에 입경하고 그 후로 7년, 나가시노 전투가 있은 후에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평정하게 되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기 전까지를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라 한다.1. 일본 봉건제도의 시작, 가마쿠라 막부.1159년 헤이지의 난에 멸족의 화를 면하고 열세 살의 나이로 이즈에 유배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절치부심 복수의 칼을 갈던 중이었다. 정치적 식견이 뛰어났던 요리토모는 자신의 권력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전투는 동생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에게 맡기고 자신은 가마쿠라에 앉아 통치기구를 마련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와 함께 독특한 무사 조직을 통해 전국을 다스릴 장치를 마련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가마쿠라 막부이다. 막부란 말은 원래 전장에서 ‘대장의 막사’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요리토모 이후 무사 정치를 집행하는 정청이나 무사 정권을 가리키는 말로 고정되었다. 막부의 쇼군과 주종관계를 맺는 무사를 어가인(고케닌)이라 하는데, 고케닌들이 나라의 치안과 경찰 책임자인 수호에 임명되거나, 장원의 세금 징수인인 지두에 임명되었는데, 이것은 막부의 사적인 주종관계가 국가의 공적 지배 조직으로 기능하고, 막부가 지방도 통제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이 제도는 중세 유럽의 봉건제도와치 막부를 열게 된다. 무로마치 막부는 쇼군이 정점에 위치하여 권력을 행사하고, 그를 보좌하는 직책으로 관령을 두고, 관령 아래에 정소 ? 평정중 ? 문주소 ? 시소 등을 두었다. 다카우지는 남북조 전쟁 중에 지방 무사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수호에게 강력한 지배권을 부여했다. 또한 그는 일국 내 장원이나 공령에서 나오는 연공 중 절반을 군량미로 징수하여 이를 무사들에게 나누어주는 권한을 수호에게 주었는데 이를 반제령이라 한다. 이로써 수호의 세력은 더욱 강대해져 한 사람이 여러 국의 수호를 겸하고 지위를 세습하며 가신을 두기까지 했다. 이런 수호는 단순한 막부의 지방 행정관이 아니라 스스로 가신단과 영지를 갖는 봉건영주가 되어 사적인 주종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하며, 이를 특별히 수호다이묘(슈고다이묘)라 한다. 이렇게 강대해진 슈고다이묘는 자연히 막부의 권력과 충돌하게 되었고 결국 내란으로 번졌다.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내란을 진압하고, 종래 조정이 보유한 교토의 행정권과 각국에 대한 징세권을 빼앗아 무로마치 막부의 통치 체제를 확립하게 된다. 또 요시미쓰는 1401년 명 황제가 준 ‘일본 국왕’이란 칭호를 기꺼이 받아들여 명과 국교를 열고 무역을 시작한다. 요시미쓰의 이와 같은 적극적인 대외 개방정책은 해외 무역을 촉진시켰고, 그 결과 ‘킨가쿠 사’와 같은 찬란한 무로마치 문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시미쓰가 죽은 뒤 얼마 안 되어 강력한 다이묘들의 권력이 쇼군의 힘을 능가해 막부의 권력을 좌우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1467년(오닌 원년)에 일어난 ‘오닌의 난’이다. 오닌의 난을 계기로 일본은 전국시대로 돌입하게 되며 무로마치 막부 하에 더 이상의 정치적 안정은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 진다. 무로마치 막부는 붕괴의 길로 들어서 일개 국만을 지배하는 다이묘로 전락하였고, 수호 다이묘들도 전쟁 중에 지방 호족과 수호직을 대행시킨 수호대에게 실권을 빼앗기기 일쑤였다. 하극상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경제적인 멸망시켰다. 센고쿠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위에 언급된 노부나가와 그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가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시대의 특징인 실력 경쟁과 사회계급의 변화를 틈타서 출세한 전형적인 인물로서 순전히 개인의 충성심과 능력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을 했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가 죽자 발 빠르게 복수전을 전개하고 주도적으로 장례를 진행하여 다른 유력 부장들을 따돌리고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동국의 강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한때 히데요시와 대립하기도 했으나 아직 자신의 힘이 천하를 노리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히데요시 또한 이에야스가 동쪽을 지배하는 일에 관해서 너그럽게 보아 넘기는 상황이었으므로 둘 사이에 강화가 성립되고, 이에야스는 도요토미가 대등한 자격으로 대우하는 객장이 되었다. 이에야스와 강화가 성립되었으므로 히데요시는 홀가분히 지방을 정벌하게 될 수 있었고 그 결과 1587년에는 규슈를 평정하고, 1590년에는 광동의 호조 씨를 정복함으로써 통일은 이루어지고 1백여 년 동안 계속된 전국시대는 막을 내린다.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치러 간다는 구실로 여러 번 한반도를 침략하게 되지만 마지막 정유재란으로 사망하게 된다.무로마치 시대와 모모야마 시대의 문화1. 무로마치 시대의 문화.아시가카 다카우지가 정권을 잡고서 교토에 막부를 열고나서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막부가 멸망한 시가 (1573)까지의 시기를 무로마치시대라 한다. 이시기의 주목할 만한 사건은 바로 오닌의 난이었다. 11년이란 오랜 기간을 전란의 회오리에 몰아넣었던 모닌의 난은 교토를 초토화 시켰을 뿐 아니라 일본 전국을 전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 계기가 되었다. 문화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내란 전과 후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이시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미술활동 영역의 확대이다. 회화에 있어서는 셋슈나 셋손 등과 같이 교토에서 멀리 떨어진 각 지방에서 활동한 화가들이 눈에 띈다. 이러한 현상은 회화뿐만 아니라 공예나 건축 등에으로 드러나는 변화 속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선의 정신이 있다. 료안지의 석정은 가레산스이의 수법으로 선의 정신을 나타낸 것이다.② 수묵화도 선의 정신을 잘 나타낸다. 묵의 농담 속에 모든 색을 담고자 하는 화법은 중국의 선승들에 의해 발전해왔는데 승려 셋슈는 명나라에 건너가 수묵화의 화법을 배워 일본적인 수묵화를 완성했다.③ 차를 마시며 마음의 평정을 구하는 와비차의 형식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에 와사ㅓ이다.무라타쥬코는 주용히 차를 마시면서 한적함과 간소함의 미를 느끼는 와비차의 형식을 만들어 다도의 기초가 되었다.④ 히가시야마문화는 선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한적함과 간소함 속에 유현미를 추구하고있는데, 노나 수묵화, 다도, 화도, 쇼인즈쿠리로 된 건물과 산수를 표현한 정원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일본인의 생활문화로 이어진다. 일본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해외에 널리소개되고 있는 것도 대부분 히가시야마문화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⑤ 서민의 지위가 상승하면서 이들이 즐기는 문화도 발달하게 되는데, 제아미가 완성시키사루가쿠노는 상류사회뿐만 아니라 서민들에게도 널리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소박하고오락성이 강한 덴가쿠노도 농민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또한 본오도리, 넨부츠오도리,후류오도리 등 농촌이나 도시 서민들이 직접 참가하는 예능이 유행하였으며, 교겐과 렌가도 서민에게 애호를 받았다.2.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문화.노부나가와 히데요시가 통일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일본은 농업 생산력이 증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연공으로 받은 쌀을 팔아 생활필수품을 사야하는 유통 구조, 교통망 정비, 관소 폐지 등으로 상업이 활발했고, 이에 따른 금은의 수요 증대로 광업도 발달하게 된다. 이 시기의 문화를 아즈치·모모야마 문화라 일컫는다. 아즈치는 노부나가의 성이 있었던 곳이고, 모모야마는 도요토미가 만년에 거처하던 후시미의 뒷날 이름이다. 앞 시대의 히가시야마 문화의 특색이 불교적이고 현실 도피적이었음에 비해, 아즈치·모모야마 문화는 현실적이고 적극적이며 웅대하연기를 뜻하는 ‘기(伎)’로 고치게 되었다. 신생 가부키는 에도시대를 통하여 여러 가지 장르로부터 유용한 요소를 받아들여 서민들이 만든 연극으로 크게 발전하였고, 사람들의 생활이나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1. 가부키의 성립.일본역사를 시기적으로 구분하였을 때, 근세(1600년 이후부터 명치유신이 일어난 1876년까지) 초엽은 전란에 의해 비명횡사한 사람들이 많은 시기이다. 그들의 혼을 위령하는 불사(佛事)가 각처에서 일어나게 되는 게 이 무렵 이즈모노 오쿠니라는 여성 예능인이 등장한다. 오쿠니는 신사의 무녀 출신으로서 신사(神社) 중건을 위한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거리에서 춤을 추었다. 이 오쿠니의 춤이 인기를 얻게 되자 각처에서 여성들의 춤이 생겨나게 된다. 이를 가부키 춤이라고 하는데, 도시에 유곽 앞에 많은 유녀가 나와서 선정적인 춤을 추며 호객행위를 하게 되고, 이를 유녀 가부키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유녀 가부키가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자 막부는 풍속을 문란 시킨다는 이유로 다른 여성예능과 함께 이를 금지 시킨다. 여성들에 의한 가부키가 금지되자 이 대신에 생겨난 것이 와카슈 가부키이다. 와카슈란 젊은 남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직 성년식을 치르지 않아 머리를 올리지 않은 귀여운 미소년들로 하여금 춤과 곡예를 하게 함으로 해서 가부키의 인기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와카슈 가부키도 남색, 매춘을 겸하였기 때문에 유녀 가부키와 마찬가지 이유로 금지된다. 그리하여 성년 남성들에 의한, 선정적인 춤 대신에 연극적인 무대를 조건으로 다음 해부터 공연을 허가받게 된다. 이로 인해 오히려 춤으로 시작된 가부키가 연극으로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여성이 무대에 설 수 없음으로 인하여 온나가타)라는 남성으로서 여성연기를 사실적으로 하는 가부키의 독특한 연기술이 발달하게 되었다.1) 가부키와 노의 차이점.가부키는 노(能)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사실적인 경향을 보이나, 몸짓에 있어서는 절약적 이고 엄격하며 일정한 전제 규칙에 따라 연기된다. 가부키의.
    예체능| 2010.03.23| 15페이지| 2,500원| 조회(302)
    미리보기
  • Bauhaus에 기초한 우리나라 무용교육의 전망 - 창의성과 실용성에 바탕을 둔 무용교육
    Bauhaus에 기초한우리나라 무용교육의 전망===============================================================창의성과 실용성에 바탕을 둔 무용교육...바우하우스는 독일어로 ‘집을 짓다’는 뜻의 bauhaus를 도치시킨 말로 1919년 독일의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기존의 ‘바이마르 미술 공예 학교(Weimar School of Arts and Crafts)’와 ‘바이마르 미술 아카데미(weimar Academy of Fine Arts)’를 통합하여 정부의 후원을 받아 설립한 종합조형학교이다. 당시 독일에선 제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여 지금까지의 공예교육과 미술교육으로는 새로운 산업 사회에 있어서 산업과 미술의 바람직한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문화계와 사회의 분위기가 조장되고 있었다. 이에 발터 그로피우스는 ‘완전한, 완벽한 조형 예술가’ 육성을 목표로 삼고 모든 예술과 기술을 종합하는 장(場)으로써의 종합조형학교 즉, ‘국립 바이마르 바우하우스’를 세운 것이다.바우하우스는 교수진들 사이의 대립, 경제적 불황과 우파의 출현, 또는 정부의 압력 등으로 국립의 바이마르 바우하우스에서 시립의 뎃사우 바우하우스로 또 사립의 베를린 바우하우스로 이동하게 되었고 교장 또한 그로피우스에서 한네스 마이어, 그리고 미스 반 데어로에로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인 특성과 지역적 특성, 총 책임자의 변화에 따라 바우하우스의 성격 또한 바뀌게 되는데, 모든 창조적 노력을 하나의 전제로 놓고 각 실용미술 분야의 교육을 통합하고자 했던 기본적인 목표는 시기가 변화하면서도 끝까지 이어 내려오게 되었다. 바우하우스는 1933년 나치스의 탄압으로 인해 베를린의 바우하우스에서 완전히 폐쇄하게 된다. 그러나 바우하우스가 폐쇄된 이후에도 망명교사나 졸업생들의 노력으로 그 명맥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으며 그로인해 바우하우스에서 제작된 많은 제품이나 그 곳의 교육이념은 독일뿐 만 아니라 널리 미국으로까지 퍼져나가게 되었다.일상생활에 사용되는 물건들을 편리하게 설계하는 방법 역시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바우하우스 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근대 기술발달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가치를 인정하고 예술도 그에 발 맞춰 나가기 위해 -예술과 기술, 예술과 기계, 예술과 인간, 예술과 생활- 이 모든 것이 통일을 꾀할 수 있고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고자 내세웠던 바우하우스의 교수법과 교육이념’ 은 세계 곳곳에 널리 보급되어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예술교육과정에 포함될 만큼 현대 조형예술 분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외국의 교육 제도에 큰 영향을 미친 바우하우스의 교육 이념을 바탕으로 변화되어야 할 우리나라의 예술교육제도에 대하여 생각해보도록 하자.새천년 교육부가 제시한 제 7차 교육과정 개정의 기본방향을 보면 “21C 세계화, 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한국인 육성”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교육부가 제시한 이러한 교육 이념은 이상 일뿐 현실 교육제도와는 상반된다. 우리나라 입시위주의 교육제도 즉, ‘학벌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사람들은 특정과목은 중요시하고 예, 체능계의 과목은 불필요하다는 인습적인 관념을 갖고 있다. 이러한 획일적이고 비창조적인 교육여건으로 인해 아동, 청소년들은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올바른 성장을 하지 못하며 점차적으로 청소년의 사회적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성장의 제측면을 풍부하게 하고 바람직한 가치와 태도를 가지게 하는 전인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이를 보완하고자 아동의 정상적인 성장과 자아실현을 위해 ‘신체를 표현의 도구로 사용하는 무용교육’ 이야말로 다른 교과보다도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다.그러나 오늘날 학교교육의 바탕이 되어야하는 초등학교에서 행해지는 무용교육은 창의적인 움직임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신체적 훈련과 교사들의 지시, 모방훈련을 답습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교사들이 무용교육 본래의 정의와 목표, 중요성 등 기본적인 지식을 인지하지 못하고 학교에서 행해야 할 진정한 창의적 무용교육의 이념도 이해하지 못한 채 현실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교사들이 무용교육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대부분 갖추고 있지 못하며, 체육교과서에서의 무용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무용수업에 관한 이론적 지침서조차 부족한 현실이다.또한, 예술인을 양성하는 기관에서 조차 전문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예술 교육 기관은 거의 대부분 사립형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과도한 교육비에도 불구하고 그에 마땅한 전문적인 지식 습득은 어려운 상태이다.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 국가에서는 무비판, 무차별적인 외국 이론의 도입을 없애고 그들의 실용적이고 전문성을 띈 교육환경과 국가의 무한적인 지원 등을 받아들여 더욱 효과적인 전문인 양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앞에서 우리나라의 무용교육의 실태와 문제점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점개선을 위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표 참고!)① 아동의 ‘움직임’교육의 필요성 (모든 보통기관 내의 교육)- 건강하고 아름다운 신체 육성, 리듬감의 발달, 공간형성능력, 즉흥능력, 풍부한 표현력, 정서함양, 창의적인 인간 육성, 감상력의 발달.초등학교에서의 무용교육은 정상적인 성장과 자아실현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교육으로써 매우 중요하다. 무용은 풍부한 표현력을 갖춘 움직임을 경험하게 하고 이를 통해 정상적인 신체발육을 도모할 수 있다.[ex:일본의 사례를 보면, 이미 50여 년 전부터 조기무용교육에 눈뜨기 시작하여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으며 모방이 아닌 놀이를 통해 창조적 활동을 하고 매 년 ‘다오무용발표회’를 개최하는 등 무용교육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② 무용교육의 세분화 (특수목적기관 내의 교육)- 국가의 지원을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교육환경, 개인에 적합한 전공결정 및 전문화된 지식습득.대학입시 위주의 수업형태가 아닌 개인의 적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방식으로써 어릴 적부터 세분화된 교육으로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한다.[ex: 중등교육 - 실기 +이론(무용사, 무용음악, 무용개론)고등교육 - 중등교육의 심화과정 + 실기 + 이론(무용기능학, 무용미학, 해부학,무용비평학, 인간행동학, 움직임분석학)대학교육 - 실기(교육실기/사회활동), 이론의 심화과정 +∂]③ 새로운 무용예술 교과과정의 필요성이론적 교육과 실제적 교육을 통해 자신의 적성에 맞게 미학을 강조한 전문무용, 실용적인 면을 강조한 사회무용 안에서 진로를 결정한다.전문무용이란 무용수, 무용이론가, 안무가, 무용교육자를 배출하는 미와 visual적인 면을 추구하는 기존의 공연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성’에 지나치게 치중되어 직접적인 인간과의 소통과 일상생활 속의 예술은 불가능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우리는 실용성을 강조한 bauhaus이념에 기초하여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④ 무용계의 다양한 진로와 취업환경- 실용성과 예술성이 접목된 새로운 직업 창출 / 어릴 때부터의 전공 관련 지식습득을 통한 프로정신 및 차별화
    교육학| 2010.03.23| 4페이지| 1,500원| 조회(229)
    미리보기
  • 한국의 남도악과 이태리의 가곡
    한국의 남도악과이태리의 가곡< 목차 >- 남도악 -[1] 남도악이란 ? ----------------------- 1[2] 남도악 - 민요 ----------------------- 11. 남도민요란 ? ----------------------- 12. 남도민요의 특징 - 음계 ----------------------- 13. 남도민요의 특징 - 장단 ----------------------- 24. 남도민요의 창법 ----------------------- 35. 남도민요의 종류 ----------------------- 3[3] 남도악 - 창극 ----------------------- 41. 창극이란 ? ----------------------- 42. 창극의 역사 ----------------------- 43. 창극의 특징 ----------------------- 64. 창극과 판소리 ----------------------- 6- 이태리 가곡 -[1] 가곡 ----------------------- 81. 가곡의 정의 ----------------------- 82. 가곡의 분류 ----------------------- 83. 가곡의 역사적 배경 ----------------------- 8[2] 이탈리아 가곡 - 칸초네를 중심으로 ----------------------- 91. 칸초네 [canzone] ----------------------- 91) 칸초네[canzone]란 무엇인가 ----------------------- 92) 칸초네의 두 가지 변형 - 16세기 말 ----------------------- 93) 칸초네의 특징 ----------------------- 102. 나폴리민요 [canzone Napoletana] ----------------------- 111) 나폴리민요(나폴레타)란 무엇인가 ----------------------- 112) 대표적인 나폴리민요 ----------------------- 11[3] 대덕 // 쿵/덕더/덕더 // 쿵/쿵/덕 // 쿵/덕더/덕더 ]③ 중중모리3분박 4박자로 중모리장단과 같은 구조인 12박이다. 중모리장단과 같이 3분박을 기준으로 기(起)·경(景)·결(結)·해(解)의 구조로 12박을 4등분 할 수 있으며, 결 부분의 3번째 박에 악센트가 주어지는 특징이 있다.[ 덩 / - / 덕 // 쿵 / 덕 / 덕 // 쿵 / 쿵 / 덕 // 쿵 / - / 쿵 ]④ 자진모리'자주 몰아간다'는 뜻으로 진양장단·중모리·중중모리 다음으로 빠른 장단에 속한다. 악센트는 4박 중 3박의 셋째 박에 있다.※ 여러 장단의 구음을 들어 볼 수 있는 곳 ※☞ http://www.tgedu.net/student/cho_music/html/chap1/trj01.htm(4) 남도민요의 창법남도민요의 창법은 매우 극적이며, 굵은 목을 눌러 내는 특유의 발성법을 쓰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떠는 목의 요성과 꺾어 내는 전타음의 처리는 높은 기교를 요하기도 한다.(5) 남도민요의 종류남도민요는 전문적인 소리꾼에 의해 불리는 통속민요와 소박하고 향토적 특징을 지니며 일을 하면서 부르는 토속민요가 있다.① 전라도 민요 등http://blog.naver.com/korea0999?Redirect=Log&logNo=80029265015(몰래타령)http://blog.naver.com/greenk6701?Redirect=Log&logNo=130009941642(흥타령)http://blog.naver.com/kimcg3519?Redirect=Log&logNo=150010027680(남원산성,사철가)http://blog.daum.net/veritas777/6437663(농부가 동영상)② 경상도 민요 등http://blog.naver.com/korea0999?Redirect=Log&logNo=80029285663(옹헤야)※ 전라도 민요 中 ‘진도아리랑’에 대하여 ※진도아리랑은 전라남도 진도지방에서 여성들이 부르는 대표적인 민요로,〈정선아리랑〉·〈밀양아리 조선음악협회 등 각종 음악 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기생연주회가 사라지고 '명창대회'가 유행하게 된다. 음악분야의 번성과 가극의 출현으로, 당시의 창극 공연은 가극이라 불리게 되며 가극이라는 양식명을 내건 창극 대본이 나오고 유성이 창극 음반도 발매되기에 이른다. 한편, 이 시기에는 서양의 연극론이 우세하게 되어 창극이 연극으로서 공연되는 입지가 좁아지게 되었다.④ 1930년대 - 창극의 전형화1930년대에는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판소리 창자들 사이에 '전통'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높아지면서 조선음률협회를 조직하여 조선 음악을 부활시키기 위해 공연방식의 병패를 시정하는 '청신운동'을 펼친다. 그리고 이를 계승한 조선 성악 연구회는 전통 보존의 의식을 앞세우며 공연 활동을 펼쳤다. 조선성악연구회는 각색 및 연출자의 주도하에 정교한 무대효과를 고려하면서 한 편의 완성된 작품을 공연하였고 창과 대사의 표현 방법을 여러 방식으로 실험하면서 창극 연행의 전형화를 꾀했다.⑤ 해방기 및 1950년대 - 창극에서 국극으로해방기 및 1950년대에는 창극이 국극이라고 불렸으며, 일제 하에 조선음악협회를 주도했던 사람들이 대거 참여한 대한 국악원의 산하단체로 활동하였다. 해방기에는 국극사, 국극협회, 조선창극단, 김연수 창극단이 있었고, 1950년대에는 여성국극단이 번성했다. 여성국극은 전후의 피폐한 혼란 속에서 여성이 남장하는 데서 오는 매력과 자극적이면서도 쉬운 시대물의 개발 등을 기반으로 연극계를 석권했다. 그러나 여성국극단의 난립과 함께 레퍼토리의 빈곤이 가중되는 한편, 전통 연희에 숙련된 배우들의 절대 부족 현상이 되풀이 되고 영화 등 다른 대중오락물이 많아지면서 무대에서 멀어지게 된다.⑥ 1960~1990년대 - 여성국극의 명맥 유지와 국립창극단의 설립1960, 70년대에도 동방여성국극단, 신신여성국극단 등의 단체들이 지방을 중심으로 공연활동을 가졌고 1980년대 후반 이후 현재 까지 간헐적으로 여성 국극단의 공연이 이루어 지고 있다. 한편, 19규정한다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원래 넓은 뜻에서 본 가곡은 ‘시에 작곡된 노래’를 뜻하는데, 이 경우에도 오페라 ·오라토리오 ·미사곡 등에 포함되는 노래는 제외하고, 그 자체가 독립되어 있는 노래만을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가장 좁은 뜻으로는 ‘예술적인 의도로 특정한 개인에 의해 작곡된 독창곡’을 뜻하며, 근대에 와서는 일반적으로 피아노의 반주가 따른다.(2) 가곡의 분류① 가사의 표현 내용에 따라서 종교가곡 ·세속가곡 ·서정가곡 ·이야기 가곡(발라드) 등② 사회적 기능에 따라서 예술가곡, 대중가곡(포퓰러송), 민속가곡(민요), 칸초네는 대중가곡 (포퓰러송).③ 음악 형식에 따라서 슈베르트의 《들장미》처럼 가사의 각 절을 같은 선율로 노래하는 유절가곡, 슈베르트의 《마왕》과 같이 모든 절을 통해서 일관된 선율을 붙이는 통작가 곡,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나 슈만의 《여자의 사랑과 생애》와 같이 내용이 관련된 일련의 가곡을 가곡집의 형식으로 묶은 연작가곡.④ 가창 성부의 수에 따라서 단성가곡이나 다성가곡(파트송) 등으로 나뉨.☞ 위와 같은 구별은 때때로 서로 겹치게 되는데, 이를테면, 슈베르트의 《들장미》는 동시에 세속가곡 ·예술가곡 ·독창가곡 ·유절가곡이다.(3) 가곡의 역사적 배경교회의 성가는 일반적으로 가곡이라고 하지 않으므로, 유럽에 있어서의 예술적인 가곡의 시초는 12~13세기에 성하였던 남부 프랑스의 트루바두르, 북부 프랑스의 트루베르, 독일의 미네징거 등과 같은 음유시인의 노래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들의 가곡은 영웅이야기나 연애감정을 주요 테마로 하고 있다.15세기의 독일에는 마이스터징거라고 하는 상공계급의 가수가 나와서 자기가 만든 노래를 불러 연주와 작곡 솜씨를 겨루었다. 말하자면, 이들이 아마추어 음악가의 산물이었음에 비해, 14세기의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마쇼나 란디니와 같은 대작곡가 아래에서 마드리갈 ·발라타 ·카치아 등의 세속적인 다성가곡의 꽃을 피웠다.15~16세기에도 교회합창곡과 함께 라스스나 자느캥에 의해 세속적 다성가곡운 다성적 음악작품을 뜻했고, 중반기에 유행한 칸초네 빌라네스케('시골의 노래')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기악곡으로서의 칸초네는 당시 이탈리아에 칸초네 프란체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다성 샹송으로부터 형식을 취해왔고, 실제로 초기의 칸초네 중 상당수가 샹송을 기악곡으로 편곡한 것이었다. 이들 곡에는 다성적 짜임새로 된 부분과 화성적 짜임새로 된 부분이 번갈아 나왔으며 대개 시작 동기는 동일한 음높이를 가진 긴 음 1개와 짧은 음 2개로 구성되었다. 칸초네의 중심지는 계속 이탈리아였지만, 독일 등 다른 지역으로도 확대되었다.③ 나폴리민요로 알려져 있는 나폴리의 칸초네(칸초네 나폴레타나)는 독자적인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변천이 심한 나폴리의 역사와 항구에서 이루어지는 동서문화의 교류를 반영하여 나폴레타나에는 동양적인 곡조와 애수를 띤 것들이 많고, 가사도 이탈리아어가 아니라 나폴리어로 되어 있다. 또한 18세기에 생겨난 밸칸토창법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이탈리아 가곡과 칸초네, 용어의 차이점칸초네와 이탈리아 가곡은 같은 말이라고 보면 된다. 칸초네는 원래 14세기에서 18세기 무렵에 이탈리아에서 세속적인 시에 곡을 붙인 가곡중 하나의 형태이다. 원래는 가곡을 뜻하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이탈리아 가요와 가곡에 공통적으로 쓰이게 되었다.(이탈리아에선 가곡과 가요 둘 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어 널리 불린다.) 그 유명한 ‘돌아오라 소렌토’로 도 나폴리 가요제에서 입상해 히트된 노래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 아리아는 제외된다.☞ 이탈리아 가곡과 독일 가곡의 차이점- 가곡(Lied 리이트) : 예술 가곡이라고 말하며 예술성 높은 시에 예술성 높은 가락을 붙인 것이다.- 칸초네(Canzone) : 이탈리아의 포퓰러송의 뜻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사람들은 프랑스의샹송이나 미국의 포퓰러송도 칸쪼네라고 부르고 있다.독일가곡 (리트)이태리가곡 (칸초네)시와 음악이 결합된 예술가곡구전가곡유명한 작가, 시인의 글에 선율을 입힌 노래들(괴테나 뮐러 등)이 많음작사가가 불
    예체능| 2010.03.23| 20페이지| 3,000원| 조회(819)
    미리보기
  • 현대인의 질병, 아토피 - 아토피의 원인과 치료 및 예방
    현대인의 질병, 아토피=============================아토피의 원인과 치료 및 예방[1] 시작하는 글「우리 딸 들이는 ○○○○입니다. 가려움이 아주 심해요. 하루 종일 긁어 대는 통에 정말 환장하겠어요. 붉고 두꺼운 피부에 발진과 부스럼이 온 몸을 뒤덮고 진물과 각질이 버무려져 질질 흘러 넘쳐요. 가려워 마구마구 긁어 대니 온몸은 딱지와 상처투성이랍니다. 얼마나 가려울까? 정말 옆에서 보기에 너무나 안쓰러워요. 어디 그냥 보고 있을 수만 있나요? 냉큼 가서 긁어줘야 하지요. 쉴 틈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자꾸만 가려워하니 난 늘 붙어살아요. 여기를 긁어주면 저기가, 저기를 긁어주면 다시 여기가. 여기 저기, 저기 여기... 되뇌고 또 되뇌고... 뼛 속까지, 핏줄 속까지... 아이고, 정말... 너무너무 가려워합니다. 도대체 이를 어쩐다지요? 옛날 어른들 말씀에 이런 병은 걸어서 땅을 디딜 때쯤이면 싹 낫는다던데 어째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낫지 않는 걸까? 아주 유별나고도 당혹스러운 노릇입니다. ‘대관절 이게 무슨 신의 조화란 말이냐?’ 들이의 몸엔 이런 증상들이 있는데요. (이마는 두껍고 할머니처럼 주름이 / 뒷목은 두껍고 붉은 반점들 / 겨드랑이에 멍울이 / 허리, 몸통, 허벅지는 코끼리 피부 같기도 하고 시멘트 벽 같기도 한데다가 발진과 진물까지 / 사타구니는 주름지고 짓물러 쉬할 때마다 아퍼하고...등등) 게다가 묘한 냄새도 나는데 씻지 않은 강아지 냄새 같아요.」‘이게 무슨 신의 조화란 말이냐?’ 라며 딸아이의 고통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이와 같은 장문의 글을 쓴 부모의 마음. 도대체 딸아이가 어떤 병을 갖고 있어 이 부모의 마음을 찢고 있는 것일까? 들이가 겪고 있는 증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안에 그 해답이 있다. 바로 아.토.피.안. 아토피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다. 들이는 아토피로 인한 피부병의 하나인 아토피성 피부염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어린 아이가 이겨내기엔 큰 고통을 주는 아토 이해한다면 아토피의 조금은 특이한 어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사람의 몸은 외부의 변화나 자극에 저항할 수 있는 자체 면역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동일한 자극에 의해 사람마다(혹은 같은 사람일 경우에도) 각기 다른 (면역)반응을 보이게 된다.(같은 사람일 경우 반응 기작이 변함) 다시 말해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물질이 특정한 사람들에게는 천식, 가려움증, 배탈과 같은 증상을 일으키게 하는데 이런 반응을 알레르기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에서의 아주 흔한 물질(먼지, 꽃가루, 곰팡이, 동물의 털)로 인해 유난히 콧물을 흘리고 재채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물질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그러한 물질을 제거하면 증세는 저절로 사라진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위와 같이 반응을 일으키는 특정 물질이 없는데도 알레르기와 비슷한 증세가 일어나는 것이다. 늘 코가 막혀있거나 피부에 발진이 생기며 가렵고, 재채기가 끊이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알레르기 증세와 흡사함에도 불구하고 왜 일어나는지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이상한 알레르기라는 뜻에서 위와 같은 어원을 가진 ‘아토피’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고, 기존 알레르기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상한 증세들을 가리켜 아토피성 비염, 아토피성 피부염 등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어린 아이들에게 아토피성 피부염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면서 ‘아토피’라 하면 주로 아토피성 피부염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3] 그렇다면 이런 아토피는 어떤 원인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일까?1. 유전으로 인한 아토피아기가 아토피 소인을 가지고 태어날 확률은 부계에 아토피나 기타 알레르기 질환이 있을 때는 25%, 모계에 있을 때는 50%, 양쪽 모두에게 있을 때는 70-80%에 이른다. 그러나 이렇게 아토피 소인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모두 아토피 증세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엔 아토피 증상이 없다가 성인이 되어 아토피면 우리 모두 아토피를 겪을 수 있는 높은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활동하는 곳의 실내에서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① 현대적인, 그러나 밀폐된 주택 : 따뜻한 중앙난방이 공급되는 방, 벽과 바닥에 깔린 카펫, 두꺼운 커튼, 푹신한 쿠션과 고급 침구. 이렇게 아늑하고 편안한 가구들이 적당히 배치된 집은 누구나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곳은 아토피의 창궐을 부채질하고 있다. 위에 나열된 가구들은 최강의 알레르기 유발원으로 지목되는, 집먼지진드기에게 최적의 생존환경을 제공한다. 또한 밀폐된 공간은 수증기가 급속도로 응축되어 곰팡이의 번성에 필요한 습한 환경을 조성하게 되고, 애완동물(동물의 털)까지 있다면 따뜻한 중앙난방이 공급되는 아늑한 분위기의 집은 아토피를 유발하는 아주 강력한 알레르겐(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는 물질)이 될 수 있는 것이다.② 인조 합성 물질이 가득한 집 : 집먼지진드기, 애완동물, 곰팡이는 집안에서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으뜸가는 알레르기 유발원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전부는 아니다. 집안 구석구석 놓인 인조 합성 물질 역시 아토피나 아토피 유사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라는 구체적 증거가 제시된 것이다. 가정에서 쓰이는 화학제품, 합성 섬유 직물, 화장품, 살충제, 담배연기, 의사의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약품, 음식 조리에 이용하는 가스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일부는 피부를 통해 또 다른 일부는 호흡을 통해 폐로 들어가게 되는데 폐에 일부가 남거나 혈액에 흡수되어 온몸을 돌며 알레르기성 또는 아토피성 증상을 유발 시키는 것이다.③ 너무 깨끗한 환경 : 그 외에도 너무 깨끗한 환경에 의해 아토피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이는 ‘위생가설(면역계의 성장을 위해서는 세균을 포함한 외부 환경의 자극이 필요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면역체계에 문제가 생겨 알레르기와 같은 질환이 발생한다는 설)’을 기본으로 제기된 주장으로 미생물에 거의 노출되지 않는 청결한 일상생활 때문에 인체를 보호할 반응, 아토피성 비염, 아토피성 결막염 등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이들 모두는 알레르기 질환의 일부로 알레르기 반응, 즉 면역의 과민반응이 특정한 물질, 특정한 시기에 걸쳐서가 아닌 일상적, 만성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아토피성 피부염은 대표적 초기 증상이며 이것이 심해질 경우 아토피행진(천식-비염-결막염), 농가진, 물 사마귀, 안과질환, 약물 부작용에 대한 감수성 증가, 곰팡이류와 바이러스 등의 감염에 대한저항력 감소, 긁어서 생긴 상처가 없어지지 않는 등의 합병증까지도 유발할 수 있는 큰 질병이다. 그러면 이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피부염을 중심으로 아토피의 증상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도록 하자.아토피성 피부염은 ‘알레르기 고유의 반응이 나타나는 단계-감염증상이 나타나는 단계-약제의 부작용이 더해지는 단계’로 발전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피부건조, 가려움증(소양증), 만성적 피부 염증 및 부종, 피부에 좁쌀과 같은 것이 돋으며 가려움이 심해지는 모공성 구진, 피부가 건조해짐에 따라 각질층 표면이 쉽게 일어나 하얗게 보이게 되는 낙설, 인설, 각질, 코끼리 피부처럼 두꺼워 지고 거칠어지는 태선화, 색소침착과 불면증 등 많은 증상을 일으킨다. (앞에 소개되었던 ‘아토피안 들이’에 관한 이야기 참고)또한 어린 아이들의 경우 극심한 가려움과 피부 변성으로 인해 외부 접촉을 꺼리게 되고 학업 및 작업 능력도 현저히 떨어지며 성장발달 저하, 심한 우울증, 주변사람을 괴롭히며, 스트레스에 매우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5] 아토피의 치료는 가능한가? 그리고 예방할 수는 있는가?1. 양방치료법① 알레르겐 제거법 : 이 방법은 검사를 통해 아토피를 일으키는 알레르겐(알레르기 유발 요인)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생활에서 알레르겐을 제거해 나가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항원이 집먼지진드기일 경우 집을 깨끗이 청소하도록 하고 우유나 계란 등 음식이 항원일 경우 그 음식의 섭취를 중단한다. 이 방법은 다양한 알레르겐에 반응을 보이는 환자가 늘어남에 지압과 같이 경혈을 자극하여 각 내장 기관에 활력을 주는 방법 등이 있다. 이런 한방치료는 단시일 내에 증상을 없애주는 양방치료와는 달리 몸의 여러 기능들을 꾸준히 함양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장기간이 걸릴 수 있으나 그만큼 부작용과 재발의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3. 생활 속의 치료법 및 예방법① 세정과 보습세정은 피부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샤워 또는 목욕을 하는 것으로 모든 환자에게 필수적이며 일차적으로 피부에 묻은 먼지, 땀, 균, 진드기, 자극성 물질, 또 알레르기 유발 물질과 포도상구균을 제거함으로써 아토피의 악화요인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땀을 많이 흘렸을 경우 자주 씻는 것이 중요한데 과도한 세정을 할 경우 피부의 건조화를 촉진시켜 오히려 피부 상태를 악화시키게 된다. 먼저 미지근한 물로 3-5분 정도 샤워를 한다. 이때는 때를 밀거나 이태리타올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샤워 후 즉시 부드러운 수건으로 찍어 내듯 물기를 닦고 피부 전신에 보습제를 바른다. 보습제는 저자극성 또는 아토피용으로 구입하며 대량 구입하는 것보다는 조금씩 써보고 확인하는 과자정이 필요하다. 이런 방법은 아토피성 피부염인 사람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예방의 차원에서 쉽게 행할 수 있는 방법으로 비용과 시간적 면에서 경제적인 생활 속 치료법이라 할 수 있겠다.② 자연건강요법 : 풍욕과 냉온욕풍욕과 냉온욕은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고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자연건강요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먼저 풍욕은 인위적 체온조절을 통해 식물성신경계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담요를 덮고 벗음을 뒤풀이하여 모공의 수축, 확대를 꾀한다. 담요를 덮으면 체온이 올라가고 몸이 더워지고, 모공이 확대된다. 그리고 열린 모공으로 독소가 빠져나옴과 동시에 공기 중의 산소와 질소가 몸 안으로 들어간다. 또한 그런 과정에서 식물성 신경계가 자극을 받아 교감, 부교감신경의 작용이 활발해지고 그로 인해 신진대사와 혈액순환의 활발, 인체면역성 증진, 아토피성 피부병을 비롯한 피부 관련 질을까?
    의/약학| 2010.03.23| 8페이지| 2,000원| 조회(752)
    미리보기
  • 심리이론에 근거한 자기성격 고찰
    일상생활 속에서 나타나는나의 귀인 양식 살펴보기‘인간의 심리학적 이해’ 수업을 통해 인간과 관련된 수많은 범위의 내용에 대해 배우면서 많은 순간에 속으로 ‘아 맞아! 실제로 진짜 그래-’ 라고 외치던 기억이 많이 난다. 우리가 다룬 심리학적 이론들 중에서 실제 내 생활이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쉽게 찾아보고 또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이 있어서 수업 시간이 완전히 새로운 내용, 딱딱한 이론과 체계를 습득했다기보다는 우리가 평소에는 경험했지만 그런 행동이나 사고에 대해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부분을 수수께끼처럼 풀어가는 그런 흥미로운 시간이 될 수 있었다.이번 과제를 통해 나는 배우면서 특히 더 많은 공감을 느꼈고, 그 이론을 토대로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행동방식을 한번 돌아보게 했던 부분에 대해 다뤄보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부분에 있어서 ‘성공과실패의 귀인’ 에 대한 내용이다.‘귀인’이란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한 판단으로써, 성공과 실패를 설명하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공과 실패의 실제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상관없이 개인이 그 결과에 대해 어떠한 주관적 해석을 내리는가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데,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의 기분, 그리고 그 다음 행동에 대한 동기와 수행 능력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사건들을 설명하는 방식은 평생 동안 지속되는 습관적인 귀인 양식으로 고정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사람들의 사건을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이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가지고 있는 귀인 양식에 큰 영향을 받고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봤을 때, 과연 나는 어떠한 귀인 양식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는지 분석해 보기로 했다. 특히 생활의 많은 범주 속에서도 내 전공분야에서 일어나는 성공과 실패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귀인 양식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먼저 이와 관련하여 나에게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해 보고자 한다. 나는 꽤 어렸을 때에 지금의 전공인 무용을 시작하여 계속 해왔고, 여러 번 무용 대회를 나간 적이 있었다. 특히 기억나는 대회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나간 규모가 꽤 컸던 대회인데, 당시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나름대로는 오랜 시간 무척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하여 대회에 임하게 되었다. 당시 그 대회에 내가 부여했던 가치가 굉장히 컸던 만큼 정말 많은 심리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받으며 준비했었는데, 실망스럽게도 예선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이 경험은 내가 살면서 몇 번 느껴보지 않은 실패의 기억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내가 노력하고 힘썼던 만큼 실망감과 좌절감도 매우 컸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그 결과에 대해 분노감이나 불평, 억울함 등의 감정이 들만도 한데 별로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지금 느껴지는 감정과는 상관없이 꽤나 순종적으로 보이는 내 태도가 그 당시에 나 스스로도 참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에 와서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내가 그 대회에서 떨어진 것이, 어떤 운이나 심사위원의 잘못된 판단이었다기보다는 내 실력이 부족한 탓이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실패의 귀인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내적인 것, 즉 나에 의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 결과를 의외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귀인 양식은 대학에 와서 전공 성적에 대해 보이는 나의 태도에서도 계속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을 경우에는 ‘이번에 노력을 좀 덜하기는 했어’ 라는 죄책감이 들게 된다. 사실 우리가 배운 내용대로라면, 이러한 행동 패턴은 비교적 실패의 원인을 내부의 것, 그리고 실력(능력)과 같은 안정적인 것으로 보는 비관 주의적 귀인 양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런 귀인 양식을 바탕으로 다음번의 시행에서 보이는 태도의 양상은 책에서 설명된 것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나타난다. 나의 경우 이렇게 성적이 잘 못나왔을 때, 내 노력과 능력 부족이라는 점에서 다음번에는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일종의 동기부여를 하게 된다. 이론에 따른다면, 다음번에는 더 노력을 안 하게 되거나, 이 일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는 것이 더 맞는 말인데, 나의 경우에는 왜 이렇게 나타나는 것일까? 이것은 물론 사람마다의 성격과 행동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면도 있겠지만, 좀 더 다른 방향에서 그 이유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 전공분야에 있어서 실력, 능력이라는 것은 비교적 쉽게 변하지 않는 안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지능이나 기억력과 같은 일반적인 ‘능력’에 비해서는 그것이 나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론에서와 같은 비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내 전공 분야에서의 능력은 특히 노력으로 인해 결정되는 부분이 크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전공에서의 성공을 뜻하는 실력의 향상을 위해 내가 통제 할 수 있는 노력이라는 요소를 더 많이 사용해보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크게 드는 것이다. 이런 태도 때문에 다른 면에서는, 어떤 학기에 성적이 좋게 나올 경우 ‘이번 학기는 꽤 열심히 해서 실력이 늘긴 했나 보다’라는 생각에 다른 과목에서의 성공에서보다 훨씬 더 큰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게 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문/어학| 2010.03.23| 3페이지| 1,000원| 조회(247)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31일 일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1:57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