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차 교육과정 총론의 배경과 특성 》1. 교육과정 개정의 배경세계화 ? 정보화시대를 주도하는 ‘신교육 체제 수립’을 표방하면서 시작된 7차 교육과정개정의 주요한 배경은 ‘문명의 대전환’이라는 시대적 변화이다. 제7차 교육과정 개정의 배경으로 1차적으로 언명된 것은 사회적 변화이다. 이러한 관점 ‘21세기의 세계화 ? 정보화 ? 다양화 시대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자기주도적 능력을 가진 인간이 새롱누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거나, ‘다가오는 21세기는 정보화사회, 지식사회로 표현되는 새로운 문명의 시대’이기에 새로운 교육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제시된 바 있다.)제 7차교육과정은 1997-15호로 공포되었지만, 개정의 시작은 1995년 5월 31일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이하 교개위라 칭함)’의 5 ? 31 교육 개혁안의 발표가 그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1995년 교개위는 대통령에게 위와 같은 내용의 2차 보고서를 제시하였다. 교개위는 이 보고서에서 문민정부가 지향하는 ‘신한국 창조’는 바로 교육개혁에서 출발 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이들은 21세기를 ‘지식화 ? 정보화 ? 세계화 사회’로 전망하였고, 현재 우리 나라 교육이 지닌 문제점을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 교육, 현실과 유리된 교육, 입시 준비로 사장(死藏)되어 버린 창의성, ‘값싼 공교육’과 과중한 사교육비, 획일적 통제 위주의 교육행정, 도덕 교육의 실종,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 등으로 요약하였다.이러한 문제점들을 토대로 교개위는 그 해결책으로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일 활짝 열려진 열린교육 사회, 평생학습 사회 건설’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신교육 체제’인 것이다.교개위의 이러한 신교육체제를 담은 5 ? 31 교육개혁안은 기존의 교육활동에 대한 인식의 범주를 과감히 탈피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었다.이후 교개위는 1995년 12월 31일 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게 될 ‘교육과정특별위원회’를 구성.)교개위가 마련한 신교육체제의 기본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① 국가 수준의 공통성과 함께 지역, 학교, 개인 수준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과정② 자율성과 창의성을 신장하기 위한 학생 중심 교육과정③ 교육부, 교육청, 학교, 교원, 학부모, 학생이 함께 실현해 가는 교육과정④ 학교 교육 체제를 교육중심으로 개선하기 위한 교육과정⑤ 교육의 과정과 결과의 질적 수준을 유지, 관리하기 위한 교육과정)이러한 신교육체제의 특징은 실제로 제 7차 교육과정 개정안의 기본 골격인 ‘인성과 창의력 배양’이라는 개정의 기본 방향과 필수과목 축소 및 선택과목 확대, 수준별 교육과정 도입, 정보화 ? 세계화 교육 강화라는 개정의 기본방침 등으로 반영되어 교육과정 개정의 주요 내용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그 밖에도 제6차 교육과정의 문제점으로 되두되고 있던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와 학생의 선택권이 거의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과 지방 자치제도의 정착으로 인한 각 지역의 필요에 의한 교육과정 운영의 필요 등이 맞물려 교육과정 개정의 배경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96년 3월부터 교육과정 개정 작업을 추진하여 마침내 1997년 12 30일 교육부 고시 제 1997-15호로 제7차 교육과정을 공포하게 된 것이다.)2. 제7차 교육과정의 특성7차 교육과정의 가장 큰 특징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교 1학년까지 10년간은 '국민공통기본 교육과정'으로 정해 10개 과목을 가르치되, 학생별로 '수준별'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고교 2·3학년은 '선택중심 교육과정'으로 정해 학생들이 학업수준과 적성에 맞게 배울 과목을 선택해 심화학습하게 하는 것이다. 2000년 초등학교 1.2학년을 시작으로 2001년 초교 3 ? 4학년과 중학교 1학년, 2002년 초교 5 ? 6학년과 중2 ? 고1, 2003년 중3 ? 고2, 2004년 고3에 차례로 적용되고 있다.이 같은 제7차 교육과정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제7차 교육과정은 수준별 수업의 도입과 학생 선택권 확대, 재량 활동 시간 도입이 골자이다.초2 ? 3학년부터는 '선택중심교육과정'에 의해 79개 선택과목 중 원하는 과목만 듣도록 하고 있다.)대략적인 내용은 위와 같고 다음으로 7차 교육과정에 관해 내용 즉, 편제와 시간배당에 대해, 또한 그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1) 내용(편제와 시간 배당)제7차 교육과정의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은 ‘교과’와 ‘재량활동’, ‘특별활동’으로 편성되어 있다. ‘학교재량 시간’이 ‘재량활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지역과 학교의 특수성과 학생의 교육적 필요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표방하면서 재량활동의 확대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재량활동을 ‘교과재량 활동’과 ‘창의적 재량활동’으로 구분하도록되어 있는 이분법적 구조는 ‘기초능력을 토대로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육성하고자 하는 교육과정의 전체적 방향과 일관되지 않고 있다.)제7차 교육과정 편제의 주요 특징은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 고등학교 학생 선택중심 교육과정과 재량활동의 신설과 확대, 수준별 교육과정 도입을 들 수 있는데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각급 학교별 교육과정을 별도로 제시하였던 종전의 교육과정과는 달리 초 ?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하나의 연결된 과정으로 보고, 학교급별 개념이 아니라 학년제의 개념에 기초하여 일관성 있는 교육과정 체제를 갖추었다는 점이다. 즉, 초 ? 중등 학교 학제를 1학년부터 12학년으로 구성하여 1학년부터 10학년(초1 ~ 고1)까지는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으로, 11, 12학년(고2,3)은 고등학교 선택중심 교육과정으로 편성하였으며,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에는 ‘교과’, ‘재량활동’, ‘특별활동’으로 편성하여 ‘교과+특별활동’의 고정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운영의 자율과 재량권을 확대시키고자 시도되었다.둘째, 학교재량시간은 이미 제6차 교육과정에서도 시도된 바 있으며,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정착되어 신설(중학교) 및 확대되었다.)제7차 교육과정의 시간배당에서 나타나는 특징적 측면은 대부분 교과에 있어서 수업시수가 생활, 즐거운 생활, 영어의 수업시수가 감축되었다. 물론 이것은 모든 학생들이 공통으로 이수해야 할 최소필수 학습요소에 따라 학습분량을 감축하여 교사와 학생의 교수 ? 학습 부담을 경감시키려는 의도와도 관련되는 것이지만, 교육과정 해설서에는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재량활동의 확대에 따라 교과별 수업시간 수가 대부분 감축, 조정되었다(교육부)’라고 진술되어 있다. 즉 7차 교육과정은 ‘자율과 창의에 바탕을 둔 학생중심 교육과정’을 표방하면서 재량활동을 양적으로 증가시켰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교과교육의 상대적 감소와 창의적 활동을 교과교육과 분리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음이 주목될 필요가 있다.)2)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7차 교육과정에서의 편성 ? 운영지침은 ‘기본지침’과 ‘지역 및 학교에서의 편성 ? 운영’, ‘교육과정의 평가와 질관리’로 이루어져 있다. 7차 교육과정의 편성 ? 운영지침에는 수준별 교육과정의 운영에 관한 지침들이 많은 비중과 분량을 차지하면서 교육과정에 제시되어 있다. 특히 학교수준에서 매년 수준별 교육과정 운영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또 수준별 교육과정을 적용하는 교과들의 경우 학습결손 보충을 위해 특별보충 과정을 운영할 수 있음을 진술하고 있다.)제7차 교육과정의 운영지침은 크게 국가수준에서의 기본 지침과 지역 및 학교에서의 편성 ? 운영에 대한 지침, 교육과정 평가와 질 관리에 고나한 지침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6차 교육과정은 편성, 운영, 평가를 시 ? 도와 학교급별로 세부적으로 제시하였지만, 학교급별 지침의 경우에는 각 학교급에 공통으로 해당되는 내용과 그 학교급에만 해당되는 내용을 구분하지 않고 중복되게 진술하여 진술상의 비효율성을 시정하기 위해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각 학교급별 고유의 지침과 공통지침으로 구분하여 제시한 것이 특색이다.제7차 교육과정에서 국가는 일정한 수준의 교육과정의 틀만을 제시하고 실제 교육과정 편성 ? 운영 지침과 권한 및 책임은 시 ? 도로 대부분 이양되었으며, 새롭게 포함된 지역 교육청은 시 ? 도와 시 ? 도, 지역 교육청의 교육과정 편성 ? 운영 지침을 토대로 학교 교육과정을 수립 시행하여 계획된 교육과정을 실현시키는 단위로서의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지방 분권적인 교육과정 운영의 틀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교육과정 운영지침의 기본적이고 특징적인 내용들을 국가, 시 ? 도, 지역, 학교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국가 수준에서는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에서 수준별 교육과정과 재량활동에 관하여 기본적인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수준별 교육과정 유형에 따른 교과목≫교과목수준별 교육과정 유형기간비고국 어심화 ? 보충형단계별심화 ? 보충형심화 ? 보충형1-10학년10단계수 학1-10학년사 회3-10학년과 학3-10학년영 어단계별7-10학년4단계심화 ? 보충형3-6학년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각급학교 교육과정 운영에 있어서의 재량권을 확대하였는데, 각 학교급에 따라 교과 재량활동 창의적 재량활동의 최소 시간(단위)을 제시함으로써 재량활동시간 선정과 운영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재량활동 시간의 운영 ≫학교급재량활동 시간의 운영초등학교- 학교 실정에 맞게 융통성 있는 배정이 가능하나, 창의적 재량활 동에 중점을 둔다.중 학 교- 교과 재량활동 연간 수업 시간 수 : 102 시간 이상-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 연간 수업 시간 수 : 34시간 이상고등학교- 1학년 교과 재량활동 이수 단위 수 : 10 단위- 창의적 재량활동 연간 이수 단위 : 2 단위또한, 고등학교 선택 교육과정에서는 ‘교과군’의 설정과, 선택 과목 이수의 탄력적 운영을 들 수 있는데, ‘교과군’은 일반계 고등학교에 학생들이 이수가 비교적 쉬운 교과목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된 것으로 편중된 교과목 이수를 막기 위해 교과와 교과군을 편성하여 각 교과군당 최소 이수단위를 제시함으로서 특정 과목으로의 집중현상을 막을 수 있게 하였다.≪ 교과와 교과군의 편성 ≫교 과 군교 과 군비 고인문 ? 사회 교과군과학 ? 기술 교과군예 ? 체능 교
Ⅰ. 緖 論지금껏 고전문학이 발전하여 온 경로를 보면 시대적 상황이나 종교적 의식에 따라 어떠한 사상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실로 눈에 띄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떠한 큰 흐름으로서 우리 문학에 영향을 준 것이다. 이제 우리 문학 작품에 대해서 그 작품 개개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상적 배경이 있는지 혹은 영향 아래에서 어떠한 문학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들어온 외래사상의 주요한 흐름은 첫째, 기원 2세기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유교사상, 4세기로부터 5세기에 걸쳐 3국에 들어온 불교사상, 5세기에 고구려 영양왕 수나라로부터 들어온 도선사상, 그리고 여말 송으로부터 도입된 성리학과 근세후기 청으로부터 들어온 실학사상 등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그러므로 이러한 판단에 입각하여 고전작품에 나타나 있는 토테미즘, 샤머니즘과 같은 고유 신앙과, 불교, 유교 사상에 대해 살피고 임?병란 이후 새롭게 대두된 실학에 관련하여 논지를 전개해 나가겠다.그러나 본고에서는 그 전체의 사상적 흐름과 그와 관련된 작품을 열거하는 것만으로 주제를 한정하도록 하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작품에 대한 분석은 사상적인 측면에 관계한 부분만으로 집중할 것이고, 주제나 서사 구조 등에 대한 언급은 일체 피하도록 하겠다.Ⅱ. 고전문학의 사상적 변천1. 고유 신앙과 국문학문학이 아직은 원시적 종합 예술체에 융합되어 있을 무렵, 즉 원시문학 시대에는 외래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고유 신앙인 샤머니즘과 원시 종교인 토테미즘이 주로 당시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또 원시문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이러한 원시 문학은 문자가 정착되기 이전의 문학으로서, 문학이 문자상으로 정착된 후에는 벌써 외래문화의 영향아래 있게 되어 결국 원시문학은 민중에 의해 구전적인 방법으로 전승되어 온 것이다.)혈연적인 씨족사회와 채집경제의 단계에 있었던 원시인들은 상호교섭이 없는 폐쇄된 생활권내에서 고동체적인 생활을 영위하였다. 이와 같은 였기 때문에 태양숭배 사상에 바탕을 둔 기풍제의(祈豊祭儀)와 유사(類似)의 법칙에 기초를 둔 모방주술로서의 풍요주술이 행하여졌던 것이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과 같은 제의를 통해 풍요를 기원하는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선사시대의 문학(구비문학)에는 기풍사상이 근간을 이룬 듯하다.)이와 같이 태양을 숭배하는 사상은 신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신화의 제목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김수로왕신화, 동명왕신화, 혁거세왕신화, 김알지신화그리고 토테미즘과 관련된 것으로 단군 신화가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 혁거세왕 신화를 통해 태양숭배사상에 대한 실례를 살피고, 또 아울러 가락국의 건국신화에 보이는 영신가와, 단군신화를 살펴봄으로써 고유 신앙인 샤머니즘과 원시종교인 토테미즘이 나타난 실례를 확인해 보도록 하자.(1) 영신가의 배경설화후한 세조 광무제 건국 18년 신라 유리왕 즉위 19년 3월 계욕일에 마을의 북쪽 구지봉에서 무엇을 부르는 수상한 소리가 났다. 마을 사람 이삼백 명이 그곳에 모이니,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사람 소리가 들리거늘,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구간(九干)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여기 있노라” 글자 다시 붇기를, “이 곳이 어디냐?”대답하되, “구지입니다.” 또 말하되, “하늘이 내게 명하시기를 이곳에 와서 나라를 새롭게 하여 임금이 되라 하였으니, 너희들은 구지의 봉우리 흙을 파면서,거북아, 거북아 / 머리를 내어라만약 내어 놓지 않으면 / 구어서 먹어 버리리하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면 대왕을 맞이하게 될 것이니, 기뻐하고 용약하라. “ 하였다 이에 구간들이 그 말을 따라 다 같이 빌면서 춤과 노래를 불렀다. ~(중략)~ 10여일 후에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알 여섯이 사람으로 변하여 그 중의 한 사람이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휘(諱)를 수로(首露)라 하고, 나라를 대가락 혹은 가약국이라고 불렀다.)우리 시가의 가장 원초적인 시가로서 집단적 주술성이 보인다. 우리 고유 신앙인 샤머니즘을 잘 나타내는었다.천자인 환웅이 인세에 하강하고, 곰이 통과의례를 거쳐 여자의 몸을 얻는다. 환웅과 웅녀가 혼이하여 단군을 낳고, 단군은 고조선을 건국하여 다스린다. 후에 단군이 아사달의 산신이 된다.)는 이 신화는 우리 원시문학에서의 토테미즘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3) 혁거세왕신화전한 지절 원년 3월 초하룻날 육부의 조상들이 각기 자제를 거느리고 알천 언덕위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 밑 나정에 전광 같은 이기가 땅에 내려져 있고, 흰 말 한 마리가 꿇어 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어 그곳을 찾아가 조사해 보았더니 자줏빛 알 한 개가 있고 말은 사람을 보자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이들은 알을 깨고 동남(童男)을 얻으니 모양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삼국유사, 신라시조 혁거세왕)이 신화에서 태양숭배사상을 확인할 수 있다.2. 불교사상과 국문학원시문학은 한문화의 침윤과 아울러 중국을 거쳐서 들어온 인도의 불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 불교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어서 고구려나 백제는 고유문화를 극복하고 비교적 무난히 유입될 수 있었으나, 신라는 그렇지 않았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신라 사람들은 결코 불교를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순교자의 피를 강요하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며 샤머니즘의 사상적 기초를 몰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고유문화의 터전위에다가 불교문화를 정공하게 발전시켰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한 점이다. 또한 오늘날 남아 있는 통일 신라기의 문화 전반에서 우리는 불교적 사상 배경을 찾을 수 있다.)또한 고려에 들어서 불교는 고려인의 생활면에 깊이 침투되어 호화와 사치의 풍을 조장하고, 일락과 퇴폐에 쏠리게 하였으며, 결국은 이의 적폐로 인하여 국가를 멸망케 하였다.)이러한 불교적 사상의 존재는 비단 삼국시대, 고려조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우리민족의 의식에 남아 계속 이어진다. 특히 고려 후기, 조선 초에 들어 새로운 통치 이념으로서 유교적 사상이 표면에 부각될 시기에도 민중의 마음속에는 불교에 대한 사상적 근원이 갖추어져있었다. 이에 오늘까지 있는데 이것은 향가의 작자가 대부분 승려인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겠다.(2) 가사국문학의 여러 형태 중에서도 가사문학은 그것이 발생된 계기부터 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이러한 단정은 물론 고려 말기의 나옹화상이 지었다고 전하는 ‘서왕가’를 전제로 두고 하는 말이다. 신라의 사뇌가가 온통 불교 신앙의 정화로써 꽃피워졌고, 후대 고려의 시가 문학에 있어서도 그 사상적 기저를 이룬 것은 역시 불교사상이다.) 다음은 현전하는 불교가사 작품명이다.서왕가, 낙도가, 승원가, 수우가, 회심곡, 별회심곡, 특별회심곡, 속회심곡, 귀산곡, 태평곡, 청학동가, 참선곡, 마설가, 존설인과곡, 수선곡, 권선곡, 권왕가, 원숙가, 왕생가, 신년가, 해탈곡, 망월가, 가각각음, 법문곡, 석존일대가, 기념가, 귀일가, 성탄경축가, 몽환가, 몽환별곡, 일소가, 백발가, 인과문, 법화일승가, 왕생곡, 광대모연가, 장안걸식가, 송여승가, 승답사, 재송녀승가, 녀승재답사 관등가, 청춘과비과, 수도가, 염불가, 몽중회심곡, 진여자성가, 선심가, 권불가, 광제가, 회참곡, 토굴가, 발원문, 반회심곡, 육갑십왕원불가, 팔상가, 자적가, 월인천강지곡, 무상가, 사제가, 감사별곡, 인생탈춤) ,(3) 현대문학이차돈(異次頓)의 사(死), 원효대사(元曉大師), 등신불(等身佛), 만다라(曼茶羅)……3. 유교사상과 국문학조선왕조가 건국되자 유학은 조선사회의 지배이념으로 자리잡았다. 조선왕조는 유교이념에 입각한 새로운 통치체제를 확립하여 철저한 유교 사회로의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문학론에 있어서 성리학적 사상에 바탕을 둔 재도지문(載道之文)이라는 규범론이 수립되어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되었다.)유교도 마찬가지로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문화전승의 법칙으로 우리문화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유교가 가장 합리주의적인 성격을 갖춘 일종의 실천적인 정치사상이었기 때문에 이 땅에 유입되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유교는 결코 종교적인 개념으로서 파악할 수 있는 성질 도덕규범 정치사상과 그리고 인간심성의 탐구와 실용주의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실학을 제외한 모든 외래 사상이 한결 같이 도를 궁극의 진리로 추구한 것이다. 도는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을 일관하는 최고의 경지이며 사상철학이며 원리인 것이다.) 또한 여기서 성리학이란 중국의 송대에 발달한 것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문화일반을 지배하게 되었다. 따라서 문학도 이 성리학의 사상적 배경을 기초로 하여 내용 형태 양면에 있어서 과거의 문학적 유산을 극복 청산하면서 발전하기에 이른다. 그 구체적인 예로 시조형의 완성, 설복적인 한문 산문 문학의 발달 등을 들 수 있고 주세붕의 道學歌와 같은 전형적인 성리학의 어용문학이 창작된 점으로도 확인 가능하다고 하겠다.) 다음은 이러한 사상적 영향 아래 있는 시조 작품들을(작가) 열거해 보도록 하겠다.최충, 이조년, 최영, 원천석, 정몽주, 이존오, 길재, 맹사성, 황희, 이방원, 김종서, 유응부, 이재, 성삼문, 원호, 남이, 월산대군, 이현보, 서경덕, 송순, 주세붕, 황진이, 이황, 매창, 양사언, 이이, 정철, 한호, 조헌, 이순신, 임제, 홍랑, 신흠, 박인로, 김상헌, 윤선도, 김천택, 김수장, 이정보, 박효관, 안민영, 송이, 고응척)다음은 유교적 사상의 영향 아래 있는 가사문학의 예시이다.상춘곡, 면앙정가, 관서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태평사, 선상탄, 계녀가, 농가월령가)그렇다면 이러한 작품이 어떻게 유교적 사상을 담고 있는지 시조로서 한가지 예를들어보자.어버이 살아 생전 섬기기란 다하여라.지나간 후면 애닳다. 어이하리.평생에 고쳐 못할 것은 이뿐인가 하노라- 정 철 -위는 정철의 시조다. 유교사상은 효에 대한 내용과 그 밖에 인의예지신과 같은 덕목을 기본으로 하는데 이 시조도 효에 대한 사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4. 실학과 국문학조선조 후반기에 이르러 문단에는 애국적이며 계몽적인실학파문학이 하나의 사조적 경향을 이루며 발전하였다. 실학은 과거의 형이상학적이요, 관념적인 성리학의 다.)
Ⅰ. 緖 論1. 연구목적 및 방법예부터 우리 민족은 사색적이기 보다는 정서적 이었으며, 또한 산문보다는 운문을 좋아했다. 고문헌에 전하는 설화나 조선시대의 소설문학 등 산문문학이 있기는 하였지마는 향가 ? 속요 ? 시조 등 운문문학이 더 한민족의 취향에 맞았으리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운문편향은 아름다운 자연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면서 철학보다는 예술을, 긴 이야기 보다는 노래를 즐겨했던 우리 민족의 풍부한 예술성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운문형식의 대표적인 것이 가사문학이다.)고려문학을 지나 조선전기 국문 시가문학은 악장 ? 경기체가 ? 가사 ? 시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중 경기체가와 가사는 고려 후기에 생겨났으나 조선 전기에 이르러서 본격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또한 악장 ? 경기체가 ? 가사는 교술시로서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면서 서로 경쟁하기도 했고, 그러다가 조선 후기에 이르면 악장과 경기체가는 자취를 감추고 가사만 계속 번창하게 된다.) 그 시기 악장과 경기체가는 쇠퇴하고 가사만이 지금껏 남아 국문학적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조선초에서부터 지금까지 남아 전하는 국문학 장르로는 서정시로서의 시조와 교술시로서의 가사가 있는 것인데, 본고에서는 이 중 가사문학에 대해 살펴 볼 것이다. 이는 국문학사에 있어 가사가 가장 한국적인 장르임을 확인하고 국문학적 위상을 알고자 하는데 가장 큰 목적이 있다 하겠다.가사문학의 위상을 살펴보는 일은 무엇보다 가사의 형성과 그 발전과정 그리고 타 장르와 구별되는 가사문학 특성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될 수 있겠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우선 가사의 형성배경과 성립을 간파하고, 그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 명칭에 대한 이해를 선행할 것이다. 다음으로 가사의 발전 양상을 살핌에 있어서 그 성립에서부터 지금까지를 시기별로 구분하여 살펴볼 것이다. 또 그 시기의 구분 안에는 광범위한 작자층이 언급되어 그 특유의 문학적 성격을 알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가사문학의 성격을 살 「역대가」 등에서 우리는 가사체의 원형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장ㅍ녀 한시에 토만 달아 읽든지 시조체의 초중장을 연결하면 이 가사체가 형성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가사체가 고려 말엽에 발생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더욱 굳게 하여 주는 자료로는……「서왕가」라는 가사가 있어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다.)이 설을 제인한다면 「경기체가」에서 사음절, 「속요」에서 삼음절이 그 특징인데, 이것이 후대의 시조와 가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시조는 주로 「속요」, 가사는 주로 「경기체가」에서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횡적으로는 항상 한시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데 그 중에서도 가사는 더 많이 한시의 영향 밑에서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D 군 ]다만 문헌에 남아 있는 가사의 전통으로 볼 때에는 조선 초 세종대의 「용비어천가」와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이 실질적인 원류가 될 것이다.……다만 이 양가가 연장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중국의 賦나 우리의 歌辭와 같이 일관성인 서술이 되지 못하고 있는 점에서 가사에의 교량적 존재가 될 것이다.)시조는 단수형식을 계승한 것이며, 가사는 연장형식을 계승한 것이다.……연장가→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가사.)[ E 군 ]가사의 기원은 같은 사음보 연속체 교술율문인 교술민요이다. 구비문학인 교술민요가 기록문학으로 발전한 것이 가사이다.)가사문학의 발생은 멀리 신라가요에서부터 찾을 수 있을 듯 하며 적어도 그 출현시기는 고려가요의 속요와 경기체가가 분화 융성했을 때 민요와 무가 등의 복합적인 영향을 받아 이미 고려말엽 전반기에는 시조와는 별도로 발생되었을 것으로 본다.)위의 인용을 보면 가사의 발생에 대해 [A군]은 고려가요에서 [B군]은 시조에서, [C군]은 한시에서, [D군]은 악장에서, [E군]은 복합적인 요인으로 보려는 견해들이다. 결국 가사의 발생을 려말까지 소급시키려는 견해와 조선조 초에서 부터라는 두 가지 견해로 요약되는데, 필자는 이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모든 시가가 전대의 시형에 영 학자별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① 조윤제……歌辭가사(歌詞)는 음악 곡조에 대한 가사와도 혼돈될 염려가 있으니까 ‘가사(歌辭)’라는 문자를 쓰고자 한다.② 김사엽……歌辭이 시형을 호칭한 명칭으로서 ‘가사(歌辭)’라 함이 타당하니 이는 음악의 곡조에 대한 작품을 내용을 의미하는 가사(歌詞)란 의(義)와 호뇽될 우려가 있음을 피하고자 함이요.③ 이병기……歌詞가사(歌詞)와 가사(歌辭)는 이자동의(異字同義)로되 그 뜻하는 바는 어떤 소리[詞]의 노래[歌]를 말함이었다. 근조(近朝) 말엽에 이르러 십이가사(十二歌詞)라는 것이 불리게 되자 가사체의 문학은 하나의 뚜렷한 시가형으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④ 박노춘……歌詞필자는 또 ‘가사(歌詞)’와 ‘가사(歌辭)’도 구별하여 쓰고 있다.……절대적은 아니나 장르로서는 ‘가사(歌詞)’를, 그리고 단가[短歌(시조)] ? 가사(歌詞)의 집성서(集成書)인 가집명(歌集名)으로는 ‘가사(歌辭)’(例:松江歌辭)를 각각 쓴 예가 많으므로 ‘가사(歌詞), ’가사(歌辭)‘를 구별…….⑤ 김동욱……歌辭 ? 歌詞 혼용송강가사(松江歌辭)나 송강가사(松江歌詞)의 술어를 가지고 논란할 아무 근거도 없게 된다. 더구나 송강별곡의 어느 것은 십이가사(十二歌詞)에 축약되어 그대로 남아 있고 의유당일기에도 기생이 별곡을 창(唱)하는 대목이 나오므로 사(辭)와 사(詞)는 종이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⑥ 이혜순……歌詞 ? 歌辭 구별 사용가사문학이 그 성격상 음악과 유관한 시기까지는 가사(歌詞), 음악이 떨어져 나간 시기부터는 가사(歌辭)로 표기해야 한다. 가사(歌詞)와 가사(歌辭)가 구분되는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대개 1700년대를 경계선으로 잡을 수 있다.이렇게 학자들간에도 그 명칭에 대해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오늘날 가사(歌詞)와 가사(歌辭)의 명칭을 놓고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에 그 뜻을 같이 하고 싶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가사의 명칭을 구별하는 것은 그것이 가창을 전제로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나서 여기서는 박성의의 설에 따라 가사문학의 발달 과정을 5분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1) 형성기 : 고려말엽부터 정극인이 상춘곡을 지은 성종 때까지.조선시대 시가문학의 양대장르의 하나인 가사는 고려말 懶翁和尙의 에서 비롯되어 丁克仁의 에서 그 정제된 형식을 보인 이래 조선시대 사대부들에 의해 창작 향유되면서 크게 발전되었다. 가사의 발생적 형태를 경기체가나 시조 등에서 찾고자 했으나 이들을 계승했다는 데는 그 형성시기로 보아 거의 동시대이기 때문에 이를 수긍하기에는 문제가 되어서, 결국 고려 중엽 이규보의 , 이승휴의 , 오세문의 등에서 가사의 연원을 찾게 되었다. 가사가 고려말에 발생하였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자료로는 고려의 명승 나옹화상이 지었다는 와 , 그리고 가 있다. 이들 가사들은 그 원형을 그대로 지녔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고려말에 이미 가사체가 형성되었다는 증거로 충분하다. 또한 成宗때 정극인의 이 정제된 가사문학의 완성된 형체를 보여줌으로 우리의 시가문학사상 금자탑을 이루었다. 실로 은 가사체의 완전한 형식을 이루었고, 次期에 크게 발달한 가사의 선구작품이 되었으며, 내용과 형식이 치밀하게 구성된 가사이다.시간적으로 1세기를 앞서서 발생된 는 고려말 불교가사의 모습을 지녔고, 은 조선초 사대부가사의 모습을 지녔다는 점과 이들 작품의 창작을 계기로 가사문학의 발생과 발전될 미래를 예고하는 듯한 역사적 작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2) 발흥기 : 성종이후 중종조로부터 임란전까지이 시기는 가사가 문학사에 등장하여 본격적으로 창작되고 향유된 가사의 발흥기이다. 정제된 시형을 갖춘 에 이어서 서서히 발달한 가사문학은 松江 鄭澈에 이르러 가사의 최고봉에 달하는 등 가사의 誦詠時代를 맞아 많은 가사가 창작되었다. 이 시기의 중요한 작품으로는 송강작품을 비롯하여 조위의 , 조식의 , 송순의 , 이서의 , 백광홍의 , 양사언의 , 그리고 이황과 이이의 도덕교훈가사 등이 있다. 특히 이시기 송강 정철의 작품은 양이나 질로 보아서 서 나왔지마는 그 형식이 시가에서 분화되었던 만큼 처음에는 시가의 영역을 완전히 이탈하지는 못하다고 소설이 흥성한 영조시대를 넘어서면서 가사는 시대와는 다른 면모로 발전하였다고 했다.또 이시기에는 서민가사와 규방가사가 성행하였다. 서민가사는 17C말엽 실학사상과 서민의 각성을 배경으로 대두된 가사문학의 한 갈래이다. 또 규방가사도 18C 이후에 성행되었는데, 이는 양반비녀들의 시가장르로서 속박된 여성들의 고민과 정서를 호소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그리고 변화기에 주목되는 것은 최제우의 「용담유사」에 수록된 가사들인데, 종교적 교리를 담고 있는 교훈가사라고 하겠다. 최제우는 여기서 가사를 가창하기 보다는 ‘보고 읽기’를 명백히 하였다. 즉 최제우 당대 사람들은 가사를 노래로 생각한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으나, 그는 이를 과감하고도 확실하게 거부해 버렸던 사실은 韓國詩文學史의 전개에 크게 주목되는 變革이다. 최제우의 이러한 업적은 후대에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에 실린 개화가사에 그 전통이 계승되었다.5) 쇠퇴기 : 갑오경장이후갑오경장을 분수령으로 하여 국문학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가사에도 근대의 여명이 오게 되었다. 따라서 가사문학은 변화를 초래하였다. 1896년 에 창간된 ‘독립신문’을 비롯하여 경향시문과 대한매일신보를 거쳐 1920년대 전후의 잡가집에 이르기까지 약 30년은 가사문학이 개화가사와 잡가로 변모하면서 그대화의 큰 물결에 휩싸여 종적을 감추어 버린 시기다. 개화가사는 서구에서 유입된 기독교 찬송가와 일본에서 들어온 창가의 영향이 컸으며, 그 내용은 애국과 독립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따라서 개화가사는 그 문학성보다는 사회적 기능이 훨씬 강조되고 있다. 그로인해 개화가사는 애국사상과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교훈성으로 일관되어 있을 뿐 서정성이나 서사성 등이 주가 되어 있는 작품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시기의 가사문학 특징으로는 작품의 길이가 짧아진 점과 다른 시기에 비해서 작품수가 많고, 한 사람이 다량의 작품다.
Ⅰ. 緖 論1. 연구목적 및 방법앞서 국문학사의 여러 시대구분 관점을 살펴 본 데 이어 이제는 각각의 시대상의 문학적 특징과 그 내면을 살펴볼 때이다. 과연 국문학사의 출발은 어디서부터인가. 본고에서는 그 실마리, 즉 문학의 싹을 찾아봄으로써 이해해 보려 한다.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문학은 어느 순간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 비로소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런고로 필자는 문학사의 뿌리 중에서도 가장 윗대의 문학적 자취를 찾아 살피려 한다.그 첫 번째 장으로 여기서는 삼국시대 이전의 문학적 특성과 삼국시대의 문학적 특성을 알아보고 또 그 차이에 대해 논해 볼 것이다. 삼국이전의 문학적 특성을 살핌에 있어서는 이른바 원시종합예술의 시기로서 다룰 것인데 이 시기의 문학적 자취는 사실 문헌으로 기록된 바가 없다. 다만 몇몇 작품이 고대로부터 구구전승 되던 것을 한자로 기록한 흔적이 있으나 여기서는 그러한 작품을 원시종합예술시대의 문학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으려한다. 그래서 이시기의 문학은 그저 당시의 역사적 흐름과 자취를 살펴보고, 그것을 기초하여 문학적 특성에 대해 알아 볼 것이다. 특히, 구비문학이라 하는 것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작하여 지금껏 계속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이를 삼국시대 이전의 갈래에 넣어 살피고자 한다. 그리고 「구지가」는 삼국이전의 문학은 아니지만, 엄밀히 말해 고구려나 백제, 신라의 문학이 아닌 가락국의 건국신화로서 삼국이전의 문학적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점을 들어 여기에 제시해 보겠다.다음으로 삼국시대의 문학은 그 문헌적 빈곤함으로 많은 작품을 살펴서 그 특성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들어 한자가 전래되고 구구전승 되어오던 여러 이야기들이 우리 국문학사의 시초로서 자리매김한 사건은 문학사상 매우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삼국시대의 문학적 특성을 살피는 일에는 먼저 한자의 유입에 대해 다룬 후, 고구려 ? 백제 ? 신라 각각의 문학적 특성을 살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를 지으면서 부르는 농업노동요, 추상적 사고의 상징적 표현을 특징으로 삼는 신화 같은 것들이 신석기시대에 이르러서 형성되었을 성싶다.농업은 사냥을 할 때보다 더 여유가 있기 때문에, 노래를 주고받는 순서를 적절하게 정할 수 있고, 노래 사설도 더 길게 늘일 수 있었을 것이다. 농업노동요는 분명히 신석기시대에 생겨났으며, 갈이노래 ? 심기노래 ? 거두기노래 같은 노래의 종류나, 교환창 ? 선후창 같은 가창방식의 기본이 이미 그 때 마련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그러나 그 시대의 문학이 꼭 노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생활과 직접 관계되는 것만도 아니었다. 태양이니 알이니 하는 것들을 숭상하면서 그 상징물을 바위에다 새긴 시기에 이르러서 농사가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며,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등의 의문을 품고 추상적인 사고를 하게 되었다. 원시종합예술의 전영역이 이 단계의 변화를 반영할 수 있었겠으나 그 가운데 언어예술이 특히 긴요한 구실을 하지 않았던가 한다. 추상적인 개념은 언어를 매개로 해서야 잘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이 시기의 신화는 신화를 이룰 수 있는 요소는 나타났어도 아직 신화의 형성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신화는 언어예술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조형예술 ? 동작예술로도 나타내는 내용의 총체가 신화이다. 이야기로 할 수 있는 부분을 따로 떼어낸 것이야 후대의 일이 아닌가 한다.2) 원시종합예술)문학이란 인간이 객체인 자연, 인생 또는 인간관계에서 얻어지는 이미지를 언어를 매개로 해서 표현하는 예술이다. 원시 고대인들도 일종의 종합예술을 지녔다. 그것은 소박한 형태의 것이었다. 현대의 종합예술이 고도로 세련된 문예성을 지녔다고 하면 고대의 그것은 극히 소박하고 유아했으며 미분화되었다. 따라서 주객과 사물 ? 사상의 인식에 있어서도 합리성을 결하였으며 자연을 초자연으로 만든 만상을 공포와 외경의 대상으로 삼았다.)삼국이전의 문학은 그야말로 종합예술의 형태를 띠고 있고 삼국이전의 국가들을 살펴본다고 하더라도 다음의 삼국시대 문학과는 큰 차이를 가히 이것은 海歌와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이한데, 구지가와 해가의 공통점은 주술적 성격의 집단 무요라는 점과 원시종교의식과 관계가 깊은 점, 동물숭배사상의 반영, 제의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 공통점으로 파악 된다.3) 구비문학문자 이전 시대부터 구구전승되어 온 구비문학은 지금까지 한국문학사에서 도외시 되어왔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구비문학을 언어예술로서 어엿한 문학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구비문학분야에 속할 수 있는 것은 설화, 민요, 무가, 판소리, 민속극, 속담, 수수께끼 등이라고 여겨지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장르가 말로 된 문학으로 언어예술이라는 점이다. 이는 말로 존재하고 말로 전달되고 말로 전승되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구비문학이라 하는 것이 삼국이전에도 존재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자가 전래되지 않아 문자로 기록되지 못했을 뿐이지 뚜렷한 문학적 특성을 가진 구비문학이 문학이 아닌 것은 아니다.특히 삼국문학에서는 시가 외에 설화를 들리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설화, 전설, 동화 등 소위 서사문학을 의미하는 것이나, 문학을 대별하여 시가 ? 소설 ? 희곡이라 한다면, 설화는 그 중에서 소설의 선구가 되는 것이니, 소위 구비문학으로 그 특징이라고 할 것은 집단적이요, 유동적이요, 상호교착성이 있는 것이다.)2. 삼국문학1) 한자의 전래나라가 생겨나서 통치를 하자면 분명하게 새겨서 전해야 할 것도 있고, 계산을 할 일도 생겼을 것이다 말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정확성을 확보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전달을 하자면 생각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낼 필요가 있었다.)한자의 전래는 고조선 말엽에 해당하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 중국에서는 소위 전국시대가 진행 중이어서 화북지방의 일부 한족들이 전란을 피하여 동진해 온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燕의 유민 위만은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로 보인다. 이렇게 전래되기 시작한 漢字는 기원전 108년에서 기원후 313년에 걸치는 소찍부터 다른 분야를 압도 할 수 있는 비중을 가졌다.고구려는 가장먼저 불교를 받아들여 한동안 신라 불교를 지도하는 위치를 차지했기에 그 저술의 경지가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남은 자료는 없다.백제 불교도 고구려에 못지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독자적으로 경전을 번역 저술한 것은 백제 불교의 수준을 입증해 준다고 볼 수 있으나 역시 승려의 저술로는 남은 것이 없다.신라 불교는 고구려, 백제보다 더 많은 시련을 겪었으나 일단 공인된 후에는 세속오계와 같은 것이 귀족사회의 이념으로 자리 잡는가 하면 신라가 원래 부처의 나라고 신라왕이 부처라는 이른바 불국토사상이 형성되었다.)3) 삼국시대 문학에 따르는 문제점삼국시대 문학상의 문제 한 가지는 원사(原詞)의 파악이 곤란하다는 그 점이니, 이를테면 최초의 시가라 할 수 있는 고구려의「黃鳥歌」는 원래의 국어 가사 대신 한역시 형태로 원전을 가늠할 따름이다. 백제 노래 「井邑詞」의 경우도 그 원전이 우여곡절을 겪은 뒤 조선전기에 한글로 겨우 남겨진 것이다. 그나만 한역시라도 남아 있으면 차라리 요행이라 할 만하니, 이 시대 시가에 다루는 문제의 또 한 가지는, 대부분이 표제거나 혹 배경담까지는 남았으나 가사가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4) 삼국의 문학과 그 특징삼국의 문학적 특징을 살핌에 있어서는 작품의 세세한 내용적 고찰을 위주로 한다기 보다 그것이 어떠한 맥락 속에서 발생하고 관련된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각각의 문학작품에 대한 세부적 내용은 생략하고 시대적 ?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여 당시 삼국 각각의 문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⑴ 고구려의 문학과 그 특징먼저 설화를 살펴보면, 애당초 고구려는 백제와 더불어 패망국의 논리에 의해 전래된 설화가 겨우 몇 편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도 최초의 형태는 「동명왕」설화인 것으로 사료되고, 「호동(好童)」, 「산상왕(山上王)」, 「미천왕(미천왕)」 「온달(溫達)」, 「구토지설(龜兎之說)」이 있으며, 시가로는 「황조가(黃鳥歌)」, 「명주가(溟州歌)」, 「내원성가(來遠城」, 「김알지(金閼智)」, 「연오랑 세오녀(延烏郞細烏女)」, 「설씨녀(薛氏女)」, 「선덕왕 지기삼사(善德王 知幾三事)」, 「심화요탑(心火?塔)」, 「밀본최사(密本?邪)」,「사금갑(射琴匣)」, 「도화녀 비형랑(桃花女 鼻荊郞)」, 「김유신 탄생과 이름의 유래」, 「문희매몽(文姬買夢)」, 「김유신과 추남 환생(楸南還生)」, 「난승(難勝)노인의 술법 전수」가 있다. 다음으로 시가를 보면 「도솔가」, 「회소곡(會蘇曲)」, 「동경곡(東京曲)」, 「물계자가(勿稽子歌)」, 「우식곡(憂息曲」, 「치술령곡(?述嶺曲」, 「달도가(??歌)」, 「혜성가(彗星歌)」, 「실혜가(實兮歌)」, 「도해론가(悼奚論歌)」, 「내여공덕가(來如功德歌)」, 「비형사(鼻荊詞)」,「원사(怨詞)」, 「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 「양산가(陽山歌)」, 「몰가부가(沒柯斧歌)」,「무애가(無碍歌)」이다. 이처럼 신라는 통일의 주체로서 모든 문화유산이 가장 풍요로웠듯이 문학 분야에 있어서도 예외일 리 없었다. 또 특이하게도 고구려의 시가 문예나 백제의 그것은 거의 땅 이름을 제목으로 삼고 있는 공통점을 추려 볼 수가 있고, 신라의 경우만이 그러한 틀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음을 보게 되었다.)신라의 시가 중 는 문학사적 전환의 아주 중요한 국면을 알아 볼 수 있게 하는 참으로 소중한 자료다. 노래를 지은 연대가 확실하고, 짓게 된 동기가 납득할 수 있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노래로서의 성격을 따진다면 건국서사시와 관련된 것은 아니고, 민간의 굿노래나 일노래도 아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순수 서정시라고 보기는 어렵다. 도솔가는 나라를 편안하게 하자는 주술 또는 기원을 곁들이며서 국가적인 질서를 상징하는 서정시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 같다.신라의 궁중 예악은 안으로 통치체제를 재정비하고 밖으로는 국토를 크게 넓힌 시기에 이르자 문화수준을 자랑하고 나라의 위엄을 드높이기 위해 면목을 일신할 필요로 만들어졌다. 원래 자기 전통에 포함되지 않은 음악문화를 수용해서 일찍이 공자가 주창한 예악사상에 맞는 기풍과 수준을 갖춘 것으러했다.
- 차 례 -Ⅰ. 序論..1Ⅱ. 한자차용표기의 체계와 이해..............21. 漢字?漢文의 정착과 특성.21) 漢字?漢文의 정착...........22) 漢字의 特性.....3(1) 表意性...........4(2) 表記 音節音의 固定性...4(3) 形聲과 假借..52. 한자차용표기의 방법과 체계...............51) 한자의 표기방법...............52) 고유명사표기...........그 자료를 살피고 이해하여 그 개념을 정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알고, 이것을 본 서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하겠다.본 서에서는 차자표기법의 개념 이해부터 다양하게 발전된 차자표기의 여러 가지 방법들을 이해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예컨대 서기식 표기, 이두, 구결, 향찰에 관한 것이다. 그러기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먼저 차자표기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살펴보는 것이다. 訓民正音 이전의 國語史 資料는 이 表記法에 의하여 定着된 것이 그 主從을 이룬다. 外國人들에 의하여 記錄된 資料가 없지 않으나 그 量이나 正確性 및 統辭, 語彙, 音韻에 걸치는 國語의 전모습을 보여주는 점에서 이들은 借字表記資料의 중요성에 미치지 못한다. 借字表記資料는 현재는 難解한 資料로서 國語史硏究에 積極的으로 이용되지 못하고 있다. 폭넓고도 精密한 解釋에 의하여 國語史 記述의 적극적인 자료로 이용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形態인 것이다.)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차자표기자료 때문에 지금까지의 연구 또한 그 자료 내에서 이루어진 것들뿐이라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렇지만 비록 자료의 양은 적으나 우리 문자를 가지기 이전에 선현들의 언어, 문학, 생활상 등의 전반적인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는 면에서 그 가치는 대단하다 하겠다. 앞으로 차자표기자료를 살피면서 그 체계를 살펴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이 분야에서 열심히 학문적 기틀을 다진 많은 학자들의 연구자료를 세심히 살피고 고찰하는데 주의를 기울일 생각이다.Ⅱ. 한자차용표기의 체계와 이해1. 漢字?漢文의 정착과 특성1) 漢字?漢文의 정착한 언어 사회가 문자언어를 갖는다는 것은 문화적으로 발전된 언어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의 선인들이 비록 고유한 문자와 문어는 아니지만, 한자?한문을 일찍부터 애용하여 문어를 사용해 왔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의미에서 문화사적으로 큰 의미를 띠는 것이다. 이 한문은 언어로 정착되어 19세기말까지 사용되는 동안 한문화의 애용과 그 한문화 과정에 큰 구실을 하여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높은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다만, 表音에 불리하고, 글자의 수효가 많은 점이 표의문자의 단점이 된다.(2) 表記 音節音의 固定性문자로서 필수적으로 가지는 표음 기능의 측면에서 한자가 가지는 특성은 ‘고정 음절의 표음성’이다. 즉 개별 한자가 표시하는 음가는 중국어음에서 유래하는 자음의 경우 대개 單語節이며, 고유어를 표기한 경우는 多音節일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나 단위 한자의 표기음은 고정되어 있다. 어떤 부가기호나 글자의 결합에 의하여 변화음을 표기할 수 없는 것이 문자로서 한자의 특성이다. 따라서 한자음의 결합에 의하여 단어가 조성될 때 발생하는 음운변화를 한자표기로는 반영할 수 없다. ‘國’자의 국어 한자음은 [국]이지만, 이 글자와 다른 글자가 결합하여 이루는 단어들에서는 다양한 음운 변화가 일어난다. ‘國家’ ‘國利’ ‘國民’ ‘國語’ ‘國會’ ‘故國’의 실현음은 [국까/구까] [궁니] [궁민] [구거] [구쾨] [고국]으로 ‘國 ’이 단어마다 다르게 발음되지만 한자 표기로는 구분 할 수 없다. 현대국어 맞춤법에서 현실음을 무시하고 한자어 형태소 {국}을 모두 ‘국’으로 표시하는 방법을 채택하는 것이 바로 한자의 특성에서 연유하는 것이다.(3) 形聲과 假借한자는 기본적으로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의미의 단위마다 별개의 글자가 필요했고, 그 때문에 글자의 수효가 많아졌다. 그러나 다른 의미를 표기하기위하여 무작정 새로운 자형이 제작된 것은 아니었다. 전통적으로 한자의 제자 원리는 육서(상형?지사?회의?형성?가차?전주)로 분류하는데, 그 중 본래 단순 의미를 나타낸다는(즉 ‘文’)상형과 지사에 의하여 제작된 한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合成字(즉 ‘字’)이다. 한자의 절대 다수는 의미의 범주를 간접적으로 지시하는 形聲字(음+뜻 혹은 뜻+음)이다.이미 甲骨文字 시대부터 글자의 본래 의미가 아닌 同音異意를 나타내는 假借字(원래의 뜻과 상관없이 音만 빌어 씀)가 다수 나타난다. 가차법은 거의 모든 한자가 다양한 의미를 가지이게 되었다. 왕에 해당하는 尼師今?麻立干?居世干들의 어원을 찾아보면 尼師今은 /닛금/ 즉 /닛/(繼)과 /?/(尊上)의 복합어로 오늘의 /임금/이 여기에서 유래했을 것이다.麻立干은 /마루한/으로 알타이 어족에 공통되는 상제 또는 존귀의 뜻을 가진 /maru/ 에 /khan/(han)(干 - 王, 위대한 사람)이 합한 복합어요, 居西干은 /?한/ /khan(han)/이 결합된 복합어라 본다.)人名, 地名은 固有名詞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고유명사는 資料로서는 매우 제한을 받는 자료라 하겠다. 그러나 왕명을 포함한 인명이나 國名을 포함한 지명은 韓國語史에서는 매우 주요한 위치에 서게 된다. 그만큼 古代語史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고유명사의 차자표기는 성명이나 지명 등이 갖는 고유의 특징 때문에 즉, 다른 어휘보다 변화가 적고, 또한 현재 남아있는 문헌자료가 비교적 풍부하기 때문에 고대 국어의 차자표기의 형태를 살피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한자차용표기에는 앞서 얘기했듯이 음독표기와 훈독표기가 있다. 가령 신라에서 ‘水 ’자를 그 음과는 관계없이 ‘믈’이란 단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이 ‘믈’을 ‘水’의 새김이라고 한다. 그럼 지금부터 신라어의 고유명사 표기 중 음독과 훈독 표기가 병존하는 자료를 각각 대조해 보도록 하자.音讀字訓讀字中世國語박(성씨?후박나무 박)瓠(표주박 호)박(瓠)破珍(깨트릴 파 보배?돌 진)海(바다 해)바?(海)內(안 내)世(누리 세)누리弗矩(아닐 불 곱자 구)赫(밝을 혁)븕-,?巨老(클 거 늙을 로)鵝(거위 아)거유閼知(가로막을 알 알 지)小兒(작을 소 아이 아)아지洗(씻을 세)靴(신 화)신居柒(살 거 일곱 칠)萊, 荒(명아주 래, 거칠 황)거츨-密(빽빽할 밀)追(밀 추)밀-한(나라 한), 翰(날개 한)大(큰 대)한(大,多)那(어찌 나)川(내 천)내(川)儒理(선비 유 다스릴 리)世(누리 세)누리勿(말 물)水(물 수)믈麻立(삼 마 설 립)?(말뚝 궐)말(말뚝)柯半(자루 가 반 반)袴(가랑이있는 바지 고)?외吉(길할 길)永(길 王韻記.이승휴.AD.1295)에 보이고, 吏道는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AD.1395)에서 吏讀와 함께 쓰였다.) 「吏」는 아전?서리 등 하급관리로 문서를 다루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요, 혹은 「吏文」의 뜻으로 볼 수도 있다. 「道, 讀, 頭, 吐, 套」는 도, 두, 토, 투 등으로 읽히는데, 서로 비슷하여 통해 쓸 수 있을 만한 것으로서 일반 공문서에서 투어(套語)처럼 쓰인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명칭이 붙은 듯하다.)이두와 구결?향찰은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두문은 實用文의 일종이라는 점에서 향찰문이나 구결문과 다르다 또한 이두문은 향찰문과 더불어 새로이 문장을 작성하는 創作文임에 비해 구결문은 주어진 漢文을 飜譯하기 쉽고 암송하기 편하도록 漢文에 우리말 형태를 부가한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특히 구역인왕경의 구결문은 飜譯文의 성격이 강하다. 이에 따르면 吏讀文이면서 동시에 創作文의 성격을 띠는 文章이라 할 수 있다. 이두문에는 漢字語句가 향찰문에 비해서 자주 사용된다. 그러나 한자어구가 향찰문의 한자어구와 크게 구별되지는 않는다.)그럼 이두가 어떻게 쓰였는지 살펴보자. 다음 자료는 李喆洙(1999)가 국어학의 연구에서 밝힌 자료다.)文法要素虛辭字참고接續語辭?(두루 미)?者零妙寺言寂法師在?‘-며’音借 羅列形어미乃(이에 내)種種施賜人乃見聞隨喜爲賜人乃皆無上 提成內飛也‘-이나’선택형, 방임형어미而(말이을 이)植內是而死白?木十三 乎(어조사 호)施賜乎古鍾 ‘오, 올, 온’15세기 국어에서 삽입모음과 동명사어모의 결합형先語末語尾飛(날 비)皆無上 提成內飛也 15세기 선어말어미 ‘?’에 대응 됨賜(줄 사)見聞隨喜爲賜人乃 敎(가르칠 교)罪敎事爲聞敎令誓事之‘시,샤’, 존칭선어말어미, ‘이시-’ 사동접미사 ‘-이-’와 존칭선어말어미의 결합형繫辭是(이 시)出去因白妻是子 女子竝四(以丁女一小子三) ‘-이,인’,‘-인’의‘s'은 주제화첨사(主題化添辭)副詞了(마칠 료)了作之文作人壹利兮尺‘??, 다?(盡)’幷(어우를 병)一切檀越幷成在願旨者‘?’(함께, 같이) 15세기 국어의 ‘?’ ‘아오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