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인홀드 니버라인홀드 니버는 조나단 에드워즈 이래 가장 걸출한 미국 개신교 신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구스타프는 “복음은 개인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며, 기독교인은 종교적인 회심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회 개선을 위해서도 일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니버는 이에 영향을 받아 그의 기독교 사회 윤리 사상을 형성하게 되었다.니버 종교관을 살펴보면, 기독교라는 단어보다는 종교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데 기독교가 서구 사회를 이끌어 온 사실상의 유일한 종교이자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신념이 담겨 있는 듯하다. 니버에 의하면 진정한 종교는 그 종교가 처해 있는 당대 사회의 문제를 이해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니버는 삶을 긍정하는 데 치중하는 기독교와, 삶을 부정하는 데 치중하는 불교의 교류를 제안하는 종교다원주의적 사고를 보인다.니버는 끝내 금욕주의와 사회 집단의 비윤리성과의 관계를 해명하지 못한 채 양자 사이의 질적인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이원론으로 나아간다. 니버는 하나님을 전능자로 환원시키는 일원론과 하나님을 세계와 동일시하는 범신론을 모두 거부하고, 하나님과 세계를 엄격히 구분하는 이원론을 바람직한 종교의 신관이라고 말한다.니버의 인간론을 살펴보면, 그에게 있어 서구사상사에서의 인간에 관한 논의는 합리주의적 인간론과 자연주의적 인간론의 대립과 갈등의 역사로 파악된다. 그러나 니버는 합리주의든 낭만주의든 현대인의 인간 이해의 문제는 시간과 영원을 포함하는 전체적인 환경 안에서 인간을 보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니버는 영원의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기독교적 인간론을 현대인의 인간론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니버가 이해하는 영원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총의 세계가 아니라 비합리적인 정신의 자기초월 능력을 의미한다. 니버의 특별계시론은 보편구원론으로 나아가며, 아담의 타락 사건을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일종의 신화라고 말한다. 니버는 타락의 의미를 신족적으로 해석하여, 하는가 하는 물음은 인간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과 같은 것이다.니버의 역사관을 살펴보면, 니버는 역사는 “중간기”라고 말한다. 니버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실상의 영역”, 곧 “인간 행위”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의식 속에 있는” 것으로서, “하나의 이상적인 가능성이자 심판의 원리로서 역사의 실존 순간마다 관계하는 것”이다.그리스도는 인간 본성의 완전한 모범이다. 그리스도가 보여 주는 완전한 모범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난다. 니버는 완전한 모범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제2의 아담이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제2의 아담이라는 말은 아담과의 연속석도 있지만 불연속성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은 주고받는 사랑의 불완정성을 완성하고, 초월적 완전성을 대표함으로써 역사적 발전 가능성의 한계를 규정하며, 역사 안의 잘못된 덕과는 모순되는 완전성을 표현한다.복음의 역설적 긴장의 왜곡은 낙관적 완전주의와 죄의 현실을 강조한 비관주의로 나타나며, 진리와 관용, 정의의 원리와 구조의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니버에게 있어서 역사의 의미는 변증법적으로 파악되어야 했다. 역사의 종국은 그리스도의 재임에 이르러서 밝혀지는데, 재림이 문자적으로 해석되면 시간과 영원의 변증법적인 개념들이 왜곡된다. 재림은 역사의 최종적 완성을 시간의 과정 너머에 둠으로써 유토피아를 반대하며 역사적 과정을 부인하지 않고 완성한다는 점에서 내세성을 반대한다. 니버에게 영원은 역사 위에 있는 것인데 이는 영원이 분리된 실존 질서가 안이라 모든 실존의 궁극적인 원천이요 능력이기 때문이다.니버의 윤리학을 살펴보면, 니버에 의하면 정통주의 기독교 윤리학은 교의적이고 권의적인 도덕법전을 통하여 표현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유주의 기독교 윤리학은 정통주의가 견지한 시대착오적인 윤리학을 더 이상 신봉하지 않고, 기독교의 독특한 진리를 자연철학과 공리주의로 대표되는 현대성이라는 신조적인 편견에 맞추어 변형시켰다. 정통주의 기독교 윤리학은 초월적인 것을 경전적인 도덕법전과 성급하게전제가 도니다. 이 의미는 곧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명제에 집약되어 표현된다. 예수 윤리의 사랑절대주의는 모든 자연적인 동점심의 한계를 넘어서는 보편주의로 표현된다. 니버는 “역사의 예수가 초대교회의 삶 속에 신앙의 그리스도를 창조해 냈으며, 예수의 역사적 삶은 관계의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상징인 초월적 그리스도와 관계한다”고 말한다.윤리적 이상의 불가피성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영역은 개인 윤리의 영역보다는 정치와 경제 윤리의 영역이다. 윤리적 이상으로서의 사랑의 법과 유한성과 죄의 현실 간증 변증법적 관계를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면 정치 윤리는 실패하고 만다. 니버에게 있어 사랑은 보편성, 자기희생, 용서라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율법의 목적은 정의이다. 용서는 형사적 정의를 완성한다.니버의 사회구조론은, 집단 내의 개인들의 관계에서는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설득이 결코 쉬지는 않아도 가능할 수도 있지만, 집단간의 관계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집단간의 관계는 윤리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이며, 곧 권력의 비례에 의해 결정된다. 사회적 갈등 해소와 통합은 권력을 통해서만 이뤄지며, 한 집단 안에서 갈등 해소와 통합을 성취한 권력이 집단과 집단 사이에는 새로운 갈등을 생성하고 이들을 무질서 속으로 몰아넣는다. 국가의 집단적 이기주의는 어떤 국제적 공동체를 통해서도 통제되지 않는다.‘종교는 사회 갈들과 정의 실현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가?’에 대하여 니버는 종교의 특징들 곧 회개, 절대적 사랑 그리고 천년왕국의 전망을 분석하는 가운데 종교가 사회적 갈등의 해결과 정의의 실현에 기여하는 데에 중요한 한계가 있음을 제시한다.국가가 이기주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본능적으로 사회의 통합을 중시하는 국가의 성격상 국가 자신의 이기성에 대한 윤리적 비판을 허용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가 지닌 가장 중요한 도덕적 특징은 위선이다. 니버는 역사적 현실주의자들과 합리적 이상주의자들의 관점을 모두 비판하면서 ‘관용적 힘의 균형’을 갖춘 세계기구편한 조화 상태를 그대로 감수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니버는 “만일 권력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냉소주의에 빠지기보다는 정의의 표준에 상대적으로나마 헌신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면 정치의 권력적 요소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이 더 낫다”고 한다.니버의 정치관은, 어떤 정치제도도 자기신성화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근거 위에서 정치제도에 대한 비판을 단행했다. 니버는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통제와의 관계에 대해서 양자의 민주적 통일은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고 보았다. 첫째, 개인과 공동체의 긴밀한 상관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둘째, 인간의 욕구들은 끝도 없이 확장된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셋째, 개인의 자유는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구체적 상황도 초월한다는 사실이 인식되어야 한다.현대의 국가사회는 종교적, 인종적, 경제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로 구성되어 있다. 질서를 위해 외적인 견제뿐만 안이라 끊임없이 폭정적인 정부를 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내적인 도덕적 견제가 필요하다.니버의 경제관은, ‘미국적 생활방식’으로 알려진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유기업체제는 “더 많은 생산하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풍요의 혜택을 균등하게 누리게 된다”는 전제하에 기업활동을 전개한다. 청지기정신은 기독교 경제활동을 지도하는 중요한 윤리적 원리들 가운데 하나다. 청지기정신은 인간이 지닌 혜택과 권력을 하나님이 위탁하신 것으로 해석한다.자유방임적 시장경제를 비판했던 니버는 사회주의 경제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니버는 자유방임적 시장경제가 소유권을 자연법에 의하여 보장된 ‘불가침의 권리’로 보는 견개는 중요한 실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니버의 집단 윤리는 인종문제에 관한 이해에서도 철저하게 관철되고 있다. 모든 집단은 다른 집단의 독특한 문화를 깎아내리고 자기집단의 독특한 문화를 칭송함으로써 자기 집단의 종중감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니버는 순수한 인종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인종간의 차이도 역사와 사회적 환경의 제적 제재만을 동원해야 한다는 합리적 평화주의의 제안은 이에 저항하는 국가들이 군사력으로 위협을 가해오면 힘없이 무너지고 만다고 비판했다.니버의 교회윤리를 살펴보면, 니버는 교회 예배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역할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설교는 가능한 한 줄이고 예전이 더 중시되는 교회를 선호했다. 니버는 설교자의 목회기도가 “폭풍과도 같은 종교적 감정”의 표현에서 “하나님과 나누는 수다스러운 대화”로 전략 했을 뿐만 아니라 기도를 통하여 목사가 회중들에게 간접적으로 설교한다고 비판한다.니버는 교회가 당대의 중심적인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그 원일은 “예의 바름은 강조하지만 생활양식 그 자체를 변화시키지 못하는”데 있다고 진단했다. 니버는 당대의 생활양식을 지배한 동기를 이윤추구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니버는 현대 교회가 이윤추구하는 생활양식을 분석해 내는 일에 실패했다고 진단한다.니버는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고등교육을 받으면, 부유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특권과 부를 내어 놓을 것이요, 국가 안에서,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정의가 구현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교회 윤리나, 어떠한 강제 수단의 사용도 거부하는 순수한 평화주의는 인간의 집단, 계급, 국가, 인종이 지닌 이기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잘못된 정치적 태도임을 지적한다. 니버는 사회복음주의가 자유방임적 경제를 옹호하면서도 사회정치적 구조의 정의문제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지 않은 개신교의 개인주의적 입장을 바르게 비판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니버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에 무관심한 바르트학파의 초월주의를 비판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지역 교회나 정치 경제적 프로그램과 동일시하는 내재주의적 경향에 대하여 경고하였다.니버는 교 수많은 종파들로 분열되어 있는 미국 교회의 일치와 연합의 문제에 대해 교회의 일치와 연합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교회를 통일시키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되었다.
1장 칼빈과 어거스틴의 비교칼빈이 어거스틴에게 가장 많이 호소했던 것은 그가 어거스틴을 가장 순수하고 원시적 교회의 선생으로 보았고 개신교 운동이 역사적 기독교와 연속성을 갖는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칼빈은 우로는 16세기 로마 가톨릭 교회와 좌로는 급진적인 재세례파들과의 투쟁 속에서 어거스틴의 작품들과 어거스틴의 권위에 호소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성숙시켰다.비록 칼빈이 어거스틴의 모든 사상을 전적으로 수용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어거스틴을 충실히 따랐던 신학자임에는 틀림없다. 16세기 칼빈에 의해서 인용된 어거스틴은 4-5세기 로마제국 말기에 북아프리카의 교회를 위해서 사역을 담당했던 어거스틴이라기보다는 엄밀하게 말해서 16세기의 한 종교개혁자에 의해서 이해된 어거스틴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거스틴과 칼빈을 각각 4-5세기와 16세기에 활동했던 인물로 보면서 그 시대 속에서 각각 이해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어거스틴을 어거스틴되게 하고 칼빈을 칼빈되게 하는 것이다.2장 최근의 종교개혁 연구중세 말 신학 속에 잠재되어 있는 어거스틴의 사상을 탐색하면서 이것을 종교개혁 신학의 뿌리와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진행되었다. 대체로 칼빈의 은총론, 예정론, 교회론 등에서 어거스틴이 중요하게 취급되었다.3장 새롭게 조명하는 어거스틴과 북아프리카 교회 영성4세기의 북아프리카는 가톨릭 교회와 도나티스트 교회로 크게 나뉘어 발전하여 서로 다른 영성과 사회적 관심으로 인해 분열되어 있었다. 도나티스트들은 로마로 상징되는 세상에 대한 적대적인 아프리카의 전통을 생생하게 지키고 있었으며, 반면에 가톨릭 진영은 세속적인 권력과 연합하였다. 도나티스트들은 317년에서 321년 사이에 로마의 황제로부터 심한 박해를 경험했다. 그들은 그들의 심장부에 주의 법, 즉 성경을 지니고 있었던 선택된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연합을 창출하려고 했다, 도나티스트 주의자들은 이 선택받은 공동체의 이미지를 이스라엘의 자기 정체성으로부터 이끌어냈다. 도나티스트 주의자들과 가톨릭 주의자의 영성 중에서 가장 중요한만 한다.5장 어거스틴의 세례관어거스틴은 북아프리카적인 영성을 담아 내고 있는 로마의 신학자이다. 어거스틴은 터툴리안이나 키프리안과는 다른 시대를 살았다. 터툴리안과 키프리안은 교회가 로마의 박해를 받던 시대에 북아프리카에서 사역을 했으나 어거스틴은 그들과는 달리 기독교화된 로마 시대를 살고 있었다.터툴리안은 세례를 교회 일치의 중요한 요소로 보면서, 다른 한편으로 세례를 출애굽과 관련해서 해석해 내고 있다. 키프리안 역시 세례를 출애굽 시에 홍해 바다를 건넌 사건과 관련해서 이해하고 있다. 터툴리안이나 키프리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사건에서 이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통해 출애굽 한 점을 주목한다. 세례는 마치 히브리인들이 홍해에서 경험했던 바와 같이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어거스틴은 먼저 노아의 홍수를 세례와 연결시키면서 이중의 의미로 해석해 내고 있다. 홍수는 하나님의 사람들과 세상의 사람들을 삶과 죽음으로 나누는 분수령이 된다. 또한 어거스틴은 세례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압제로부터 탈출한 출애굽 사건 때 홍해를 건넌 유형으로도 해석하고 있다. 그는 홍해 도하를 세례에 비유하면서 동시에 출애굽을 인도한 모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출애굽 당시의 홍해의 물은 직접적으로 세례를 의미하며 이 세례로 인해서 신자들은 죄 사함을 받았다고 정리할 수 있다. 어거스틴은 터툴리안과 키프리안이 세례를 세상으로부터의 철회라고 해석한 것과는 차이점을 보여주었다. 어거스틴은 세례를 의미하는 바다가 죄의 철폐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서로 다른 시대적 상황이 이들의 세례에 대한 해석이 차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6장 어거스틴의 교회와 국가 : 다니엘서 2장 해석을 중심으로어거스틴은 교회와 국가에 대한 그의 사상을 한 권의 책에 체계적으로 요약하여 진술하려고 하지 않았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사상은 전 생애를 통해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도 않았다. 칼빈은 신학과 학문을 지혜롭게 통합할 수 있는 건강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점이 16세기를 살았던 칼빈과 인문주의의 관계 연구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이유가 될 것이다.8장 칼빈의 경건 사상칼빈의 경건은 그가 활동했던 16세기의 역사적, 신학적, 영적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철학적으로는 보편보다는 개체의 가치가 중시되고 있었고, 시민의식이 싹트고 있었다. 신학적으로는 중세말 부터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 어거스틴주의가 부흥하고 있었다.근대적 경건 운동은 하나님과의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를 중시하고, 하나님 절대 의존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강조하며, 경건의 토대로서 성경을 묵상할 것을 주장했다.칼빈에게 있어서 경건은 그의 신학 사상의 한 측면이라기 보다는 그의 전체 신학이 지향하고 있는 목적이요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다.칼빈의 경건 신학의 시종일관한 기초는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하나님과 그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 대한 지식이다. 칼빈은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다스리며 지키는 인간의 노동은 인간에게는 본질적인 사명이며 축복이었다고 해석하면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규모 있게 관리하면서 후손에게 넘겨주는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칼빈에 의하면 인간에게 맡기신 창조 세계를 남용하는 것은 인간 자신을 부패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무질서함과 비참함에 빠져있을 때, 이 세상을 본래의 아름다운 상태로 완전히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은 다름 아닌 바로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건이다.칼빈에 의하면 구원은 회복의 역사이다.칼빈의 경건의 신학은 그의 모든 신학이 지향하는 목표가 된다. 그는 경건을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예배를 정점으로 해서, 타자에 대한 사랑과 창조 세계에 대한 돌봄으로 풀어내고 있다. 칼빈은 경건을 개인의 영성에 배타적으로 사용하지도 않았으며, 사회적 개념으로 극단적으로 확대시키지도 않았다. 그는 양 극단적인 경건의 경향성 사이에서 건강한 균형을 이루 대대적으로, 또 합법적으로 복음주의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당시 제네바는 가톨릭을 후원하는 이탈리아의 사보이로부터 개신교를 주창하는 도시 국가로 이제 막 정치적인 독립을 획득했기 때문에 박해 받던 개신교도들은 난민이 되어 이 제네바로 모여들었다. 사회 복지 활동은 교회의 문제이기도 했고 동시에 국가의 의제이기도 했다. 칼빈과 시 당국은 가난한 자들을 살피는 것과 의무교육의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칼빈은 성만찬을 받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엎드려 숭배한 것이 아니라 앉아서 먹었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다. 따라서 성찬을 떡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떡을 떼면서 교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칼빈에 의하면 교회의 집회 때마다 반드시 시행되어야 하는 것이 4가지가 있다. 첫째 말씀을 가르치고 둘째 기도를 드리며, 셋째 성찬에 참여하며, 넷째 구제하는 것이다.칼빈은 교제함, 즉 코이노니아를 상호 교제, 자선, 또는 기타 형제간의 사귐으로 해석하고 있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 나타나는 교회의 모습, 즉 말씀과 기도와 성찬과 자선이 잘 행해지는 교회야말로 질서가 잘 세워져 있는 참된 교회이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향한 교회의 자선 사역은 결국은 하나님을 향하는 예배이며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이라는 칼빈의 목회 신학을 발견할 수 있다.12장 칼빈의 교회와 국가중세는 교회가 문명과 결합되어 있었다. 칼빈에 있어서 국가의 목적은 국가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칼빈의 관점에 있어서 위정자의 권위는 하나님에 의해서 인정된 것이며, 위정자는 자연히 하나님의 위임을 가지고 있다. 칼빈의 사상에 있어서 교회와 국가는 구별된다. 그러나 그 둘은 서로 대조적이지 않다. 칼빈의 교회는 세속 권위에 의해서 후원을 받으면서 심지어 국가보다 위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칼빈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설명할 때마다 이중의 정부라는 용어를 변함없이 사용해 왔다. 즉 영적인 정부와 정치적인 정부가 그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소멸되지 않는다. 현세의요와 성경 주석들에서 교회론에 관계된 그의 신학을 전개하되, 어거스틴과 도나투스주의자들과의 논쟁 속에서 자신의 교회론을 개진한 것을 정리해 보면 첫째, 칼빈은 16세기의 로마 가톨릭 주의자들과 동 시대의 급진적인 재세례파들 사이의 양 극단적인 교회론 사이에서, 어거스틴과 도나투스주의자들 사이에 벌어졌던 도나투스 논쟁을 인용하면서 칼빈 자신의 교회론을 정립해 갔다. 둘째, 칼빈은 그의 초기부터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어거스틴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칼빈은 전반기에는 종교개혁의 교회를 급진적인 재세례파와 차별시키기 위해서 도나투스 논쟁을 사용하고 있는 성격이 강하다. 그렇지만 1555년에 출판된 공관복음 주석과 1559년의 기독교강요 마지막 판, 그리고 1561년의 다니엘서 주석 등 보다 후반부에 저술된 작품들에서 칼빈은 도나투스파에 대한 국가의 처벌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인용하면서, 국가의 종교적 기능을 강화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넷째, 칼빈은 어거스틴과 도나투스 주의자와의 논쟁을 사용하면서 그의 교회론을 발전시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이 도나투스주의자들의 저서를 직접 인용하면서 그들을 비판하고 있지는 않다. 단지 정통교회가 아닌 다른 여러 그룹들과 함께 카테고리를 지어 도나투스주의자들을 언급하고 있다.16세기의 가톨릭교회는, 최고의 관료제도처럼 강력하게 조직되어 있었다. 칼빈은 한편으로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지지하고 있었던 전통적인 신학을 비판해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개혁의 교회 자체를 재세례파들의 그것과 구별시켜야만 하는 긴급한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칼빈은 지상의 교회는 완전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에게 있어서 지상에 존재하고 있는 교회는 성화라는 긴 여정을 이제 막 출발한 것이었다. 칼빈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영적이고 도덕적인 삶이란 겸손하고 경건함으로 살아가되 분리하지 않는 것이다.15장 어거스틴과 칼빈의 예배관로버트 웨버에 의하면 구약에서 말하는 예배는 시내산 사건에 그 기본 틀이 나타나
존 칼빈과 장로교 정치장로회주의 발생과 정치제도의 형성 과정에 대한 연구는 개혁주의 신학의 기초를 세운 존 칼빈의 신학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존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장로교 정치의 필요성과 성경적 기초에 입각한 직제에 대하여 언급하였다.첫째, 칼빈은 ‘기독교강요’초판에서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한다. 그는 보편교회란 ‘선택받은 자의 전체수’라고 정의하고, 이 보편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되어 한 머리를 가져 함께 자라며 함께 결합된 한 몸의 지체들과 같다는 점을 논한다. 칼빈에 있어서 교회의 근거는 하나님의 예정이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그의 자녀가 되도록 계획하신 자들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택함을 받으며 교회에 속하는 자가 된다는 명확하고도 충분한 증거를 갖게 되는 것이다. 칼빈은 교회론의 근거를 철저히 하나님의 선택에 둔다.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따라 세워진 기관이 바로 교회이다. 칼빈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교회를 강조하는 것은 교회는 불가분리적 관계를 가지고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둘째, 칼빈은 선택받은 자들의 공동체인 불가시적 교회에 대하여, 불가시적 교회는 영원부터 택한 자들이며, 영원까지 보호받을 자들이고 불가시적 교회는 참된 주님의 교회로서 양자의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 포함된다고 말한다.셋째, 칼빈은 ‘기독교강요’ 초판에서 교회의 표지에 대하여 말한다. 그리고 칼빈은 성경이 우리에게 교회의 표지들을 확실히 알려준다고 본다. 칼빈이 신앙고백, 말씀의 전파 그리고 성례전을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존중과 일치를 강조하기 위함이다.칼빈의 ‘기독교강요’ 최종판에 나타난 교회의 특성, 직제 그리고 치리회에 대해 살펴보면, 첫째, 칼빈은 최종판 제 4권 1장에서 초판에 언급하지 않았던 교회의 특성 가운데 모든 신자의 어머니로서의 가시적 교회에 대하여 논한다. 칼빈에 따르면 신자들은 ‘어머니로서의 교회’ 안에서만 영적 생명으로 서 이들의 입에 담아 주신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직분자들의 사역임을 밝힌다. 둘째, 칼빈은 교회의 사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 임명받았기에 여기에 따르는 구체적 임무가 있다고 한다.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교회 정치제도의 필요성과 법 제정의 목적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한다. 칼빈은 교회의 본질론에 입각하여 신약 성경의 직제론을 말한단. 그리고 ‘성직계급-신품성사’를 비판하는 글에서 만인제사장론을 주장하고, 말씀 사역과 성례전 집례라고 하는 사도적 직무를 신약 성경에서 감독, 장로, 목사가 전하는 복음 선포와 동일하다고 보며, 마지막으로 신약 성경의 집사직에 대하여 말한다.‘기독교강요’ 최종판에서 첫째, 칼빈은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다스리기 위해 쓰시는 교회의 직제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칼빈은 구원과 영생의 가르침을 사람에게 맡기시고 전달하기 위해 주꼐서 친히 직분자들을 세우셔야 한다는 필요성을 에베소서에 근거하여 설명한다. 칼빈의 교회론은 직분자들을 중심에 세워 섬기에 하는 교회론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직분이란 철저히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것이다.둘째, 칼빈은 성경에 근거하여 직분자를 임시직과 항존직으로 구분한다. 임시직으로는 선지자직, 사도직, 복음 전하는 직분이다.셋째, 칼빈은 1541년 ‘제네바교회 규정’에서 교회직제를 목사, 교사, 장로, 집사라는 네 직분으로 구분하였다.제네바의 종교개혁은 1536년 5월 21일 일요일 파렐의 권고에 따라 공식적으로 종교 개혁 신앙을 채택함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제네바에는 어떤 공식적인 신조나 신앙적인 훈련 체계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법적으로도 어떤 권리도 없었다. 사실살 제네바는 정치상의 혁명이 결과적으로는 종교 개혁을 낳은 것이다.제네바가 개신교를 수용한 것은 스위스 지역의 종교 개혁의 흐름 속에서는 이웃의 다른 도시들보다 더디게 반응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정치, 문화적 후진성을 들 수 있다. 특히 문화에서 후진적이었고 종교적 변화에 대해서도 매우 폐쇄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네에서 서로의 노역으로 사랑을 촉진시키는 일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한다.교회의 공식적인 ‘신앙고백서’는 개혁교회 신학의 기초를 제공하며 또한 원리가 된다.칼빈은 제네바 시의회에 제출한 규정서에서 개혁교회의 기초 정치 원리인 질서, 성찬의 순결, 언행의 일치 등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원리에서 빗나간 신자들을 엄중하게 채벌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책벌이 권징이며, 이 권징을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출교시킬 것을 강조한다.칼빈은 1541년에 1537년의 규정서보다 더 발전된 ‘제네바교회 규정서’를 시의회에 제출하여 승인을 받았다. 제네바 교회 헌법 규정의 근본적 원리는 성경에 근거한다. 1541년 규정서는 목사, 교사, 장로, 집사의 직무를 명확하게 구분하다. 특히 목사는 장로의 직무를 공유할 수 있으나 장로는 목사의 직무를 공유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집사직이 교회 내부의 봉사직이라기보다 제네바 시의 병들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직분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한다.1541년 제네바교회 규정서에 언급된 칼빈의 교회 정치사상은 ‘교회의 독립성’, ‘대표 선거권의 확립’, ‘신자들 가운데서 정당하게 선출된 대표에 의한 교회 정치’, ‘성찬 예식의 교회의 자진 검토’ 등에 있었고, 이 규정들은 계속해서 수정, 보완되었다.존 낙스와 장로교 정치대륙의 종교 개혁자 마틴 부셔가 장로교 제도의 기초를 놓았다면 존 칼빈은 장로교 제도의 이론을 체계화시켰고 그리고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에서 장로교 제도를 구체화시킨 인물이라 할 수 있다.‘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는 스코틀랜드 국회 회기 중에 4일 만에 존 낙스의 주도하에 6명의 존에 의해 작성되었고, 1560년 8월 17일에 의회가 인준하였다. 이 신앙고백서는 총 25개 조항으로 구성되었는데 첫 열 개 조항은 조대교회로부터 교회가 수용하고 있는 교리적 가르침이며 나머지 조항들은 당시 가장 논쟁점이 된 칭의, 성화, 믿음, 성경의 최종 권위, 그리스도의 직임, 세속 권력, 교회의 권위, 성례 문제를 다룬다.‘스 추구하는 목적을 이루도록 잘 정리된 지침서였다.웨스트민스터 종교 회의에 있어서 가장 권위 있는 작업은 신앙고백서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신앙고백서의 저작권이 잉글랜드 사람들의 것이라기보다는 스코틀랜드 대표단의 것이라는 의견 차이가 있었다. 결국 영국 의회로부터 승인된 신앙고백서는 스코틀랜드에서 공식적인 신앙고백서로 채택되었으며, 그 이후로 장로교회의 표준문서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잉클랜드에서는 전폭적인 지지를 얻지 못했다.웨스트민스터 종교 회의에서 마지막으로 작성된 문서는 ‘교회 정치 조례’이다. 이 문서가 작성된 배경에는 스코틀랜드 대표단의 영향력이 컸다고 말할 수 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대표들은 모두 두 나라에 하나의 통일된 국가교회가 있어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었다. 장로회 정치야 말로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안된 유일한 교회 정치 형태였다. 비록 장로회 교회 정치 지침서가 잉글랜드에서는 전적으로 수용되지 못하였지만,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는 수세기 동안 받아들여졌고 그리고 미국,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한국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1644년 3월 12일에 채택된 웨스트민스터 정치조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국가 위정자의 종교 회의 소집 권한에 대한 문제이고, 둘째, 장로정치의 치리 권한에 대한 문제이다. 웨스트민스터 정치조례 초판 제23장 3항에 따르면 국가의 위정자는 종교 회의를 소집하고 또한 대회와 협의회를 소집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한이 있다고 제시되었다. 그리고 장로교 정치의 ‘지교회와 노회의 관계’ 논쟁은 교회 정치원리가 성직자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직자회 자체에 있다는 것도 천명했다.웨스트민스터 교회 정치조례는 일상직의 직분자들을 목사, 교사 혹은 박사, 장로, 집사로 설명한다. 교회 안에서 목사는 일상직분자에 속하면서도 항존직이라고 말한다. 교사 혹은 박사는 목사처럼 말씀 사역과 성례전과 권징에 관한 권한을 갖고 있다. 장로의 직분에 대하여는 “말씀의 사역자 이외에 어떤 다른 직분자들이 말 1729년 대회에 타협안이 상정되었다.미국의 대각성 운동은 1930년대 중반에서 1740년대 초반에 일어났던 영적부흥운동이다. 이 운동을 주도한 자들은 장로교적인 칼빈주의자들이었다. 많은 움직임들이 있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대각성 운동은 조나단 에드워즈와 영국의 부흥 설교자 조지 휘필드에 의하여 일어났다. 대각성 운동이 신대륙에서 영적 부흥을 불러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 운동은 미국 장로교회를 분열 시키는 동기를 제공하였다. 신파와 구파의 차이는 첫째, 목회자의 자격에 대한 것이었고, 둘째, 신학적인 문제였다.미국은 독립전쟁이 끝난 후 새로운 정부가 조직되고 교회적으로는 장로교회가 늘어남에 따라 뉴욕 필라델피아 노회는 미국의 모든 장로교회를 포함하는 총회를 조직하였다.미국 장로교회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정치원리의 근본적인 특징은 첫째, 대표제도다. 둘째, 교회의 신조들과 정치 체계를 문서로 기록한 교회헌법이고, 셋째, 관계에서 찾아 볼 수 있다.미국 장로교회는 장로들, 치리 장로들과 말씀과 성례를 집례하는 목사들로 구성된 대의 기구들에 의해서 다스려진다. 단 교회의 통치기구들은 국가의 정부와 다르며, 실정법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미국 장로교회의 당회는 목사, 협동목사들 및 장로들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 장로교 안에서 노회는 당회 다음의 재판권을 가진 치리회이다. 대회는 노회 다음의 치리회이다. 미국 장로교회의 최고 통치 기구인 총회는 장로교회의 대회들, 노회들, 당회들 및 개교회들의 통일성을 나타낸다. 이 통치 기구들은 개별적이면서도 상호 유기적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통치기구들 가운데 하나의 결정과 행동은 전 교회의 결정과 행동이다. 미국 장로교회는 철저한 장로교주의의 정치 체제의 전통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는 것이다.한국 장로교회 독노회 설립과 교회사적 의의한국 장로교회 노회는 1907년 9월 17일 결성되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노회’ 혹은 ‘독노회’라는 교회 정치 구조의 결성은 한국교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 민족의 역사에다.
VI. 선교 역사 개관구스타브 바넥이 종교개혁 이후로 19세기까지의 개신교의 선교 역사를 학문적으로 성찰한 것이 선교 역사 연구에 한 출발점을 놓았다. 그는 주로 개혁가들의 신학 사상과 선교와의 상관성을 추적했고 일어난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서 개신교회의 선교를 연구했다. 그는 대위임령의 말씀을 선교의 핵심으로 보았는데 종족이 복음화 되어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20세기의 선교 역사 학자인 라토렛은 구속사를 역사의 주축으로 보면서 하나님께 특별히 부름 받은 영적으로 하나님께 특별히 부름받은 영적으로 각성되어 있고 선교의 사명에 깨어 있는 소수의 선각자들의 선교 운동, 즉 교회 병행 선교 기구들의 활동을 통하여 제도권적 교회가 도전을 받고 영적으로 각성하여 선교에 참여하게 된다는 그의 독특한 부흥사관의 관점으로 선교 역사를 조망하였다.선교역사를 살펴보는데 있어서 폴 피어슨이 사용하고 있는 연구방법과 필자의 관점에서 덧붙인 ‘9가지의 방법’으로 선교 역사를 살펴보려 한다. 첫 번째는 환경적 요소들이다. 이것은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에서의 하나님의 카이로스적 요소들을 살펴보고 그 의의를 성찰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신학적 요소들로서 당대의 신학 사상들이 선교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 상관성을 살피는 일이다. 세 번째는 영적 원동력으로서 교회의 어떤 영적 요소들이 선교에 영향을 미치었는지를 살피는데 라토렛의 부흥 사관에서 많은 통찰력을 얻는다. 네 번째는 선교매체로서 복음이 구체적으로 당대의 어떤 수단들을 통해서 전파되었는지 그 영향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본다. 다섯 번째는 선교구조로서 교회와 교회 병행 선교기구가 선교에 어떤 역할을 했으며 그 특성이 어떠했는지를 살핀다. 여섯 번째는 지리적인 확장으로서 복음의 지리적인 확산을 중심으로 살핀다. 일곱 번째는 종족과 종족 그룹과 사회계층의 복음화를 살핀다. 종족 그룹이란 같은 종족이지만 지리적인 간격이나 어떤 역사적 요인에 의해 조금씩 다른 문화와 언어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서 때론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한 구심력적인 역사가 구약의 카이로스의 특징이라면 신약의 카이로스는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그분의 재림을 바라보는 원심력적인 카이로스이다. 쿨만은 대표적인 카이로스의 사건들로서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직전의 세 가지 상황을 언급하는데 그것은 헬레니즘과 로마 문명이 세계적인 문명으로 등장한 것과 두 번째는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된 유대인들과 세 번째는 가치관의 혼란으로 인한 시대정신의 쇠약 등이다. 그는 이 세 가지 요소가 그리스도가 탄생하시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예비하신 바 된 카이로스의 손길이라고 본다.보이스는 또한 눈의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눈의 원어는 ‘νυν’이고 눈과 관련된 성경구절은 요 2:8, 행 7:4, 벧전 2:10 등이 있다. 눈의 의미는 실존적인 측면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됨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변화되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어 간다는 의미가 있다. 즉 이것은 신학적으로 중생 이후의 모든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하며 교회 공동체의 역사이다. 교회의 선교는 카이로스를 적극 활용하며 눈의 도구가 되어서 하나님의 테로스을 이루는 핵심적인 방편이 되는 것이다.2. 각 시대별 선교 역사1) AD 1세기부터 5세기까지. 이 시기는 초대 교회에서부터 교부 시대 그리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의 선교 역사를 의미한다. AD 5백년으로 이 시기의 끝을 잡은 것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서로마 AD 476년에 멸망한 것과 서로마가 대변한 서방 기독교의 흐름이 그대로 프랑크 왕국의 크로비스에 의해 그가 로마교회 출신인 한 공주를 아내로 맞이한 것을 기점으로 AD 496년에 계속되어진 역사의 전환기적 사건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이 시기에는 환경적으로 헬레니즘 문화와 로마제국의 등장과 시대 정신의 쇠약과 신비주의적 밀교의 등장, 국제주의적 상황과 디아스포라된 유대인들의 로마제국 산하의 모든 지역에 확산됨, 연속적인 핍박을 통한 교회의 정화와 제국의 정치적 불안정, 북방 흉노족들의 계속적인 침로마교회의 세력이 꺾어지고 개신교회가 선교의 새로운 주 세력으로 등장한 시기이다. 특히 개신교회의 2차 영적 각성 운동이 일어나서 대학의 캠퍼스 내에 자발적인 선교기구가 결성이 되고 선교 운동이 활성화되어진 시기이다. 이 시기는 자연신교가 구미의 지성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또한 교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보편 타당한 종교를 추구하는 운동은 신학적으로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신일신교를 주장하는 유니테리안 등의 이단들을 만들었다. 허버트, 토랜드, 버틀러 등이 그들이다. 크리스찬 울프와 라이마루스 등은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인문주의와 이신론, 개신교의 영향력은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운동을 일으켰다. 1776년의 미국이 독립전쟁, 1789년 프랑스 혁명 등은 인간의 자유와 자율을 강조한 것들이다. 18세기 초의 구미에서 일어난 복음주의적 각성 운동과 대각성 운동은 18세기 말에 미국의 두 번째 각성 운동을 일으켰고 이것은 교회로 하여금 구령의 열정을 갖게 하여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조직적인 선교 운동을 일으켰다. 이신론과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유니테리안 주의와 범신론적 보편주의를 추구하는 보편구원설이 대두되어 선교 무용론을 주장하였다.복음주의 각성운동은 개인적인 회심 체험과 구령 운동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운동은 대규모의 복음 전도 집회 및 국외에서의 조직적인 선교 운동을 가져왔다. 영국의 조지 윗필드와 웨슬레,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는 칼빈주의적 신학으로 부흥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후에 열광적인 복음운동으로 변질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이것은 경험 신학의 올무에 빠져 결국 자유주의의 온상이 되어 버리는 결과로 나타났다. 영적 대 각성 운동은 평신도들로 하여금 전도에 동참케 했고, 선교에 전적인 헌신자들이 늘어났다.7) AD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중엽까지. 이 시기의 끝을 20세기 중엽으로 잡은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삼분의 이 지역의 국가들이 식민지 상황에서 완전히 독립했다. 1948년 암스텔담에서 세계교회협의적 공헌도 있으나 타종교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메시지에 대하여 명확한 신학적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다소 모호한 입장을 나타냄으로 위험한 모습을 띠고 있으며 바르트 신학의 영향력이 침투해 들어오고 있었다.3) 1938년의 마드라스 국제선교협의회. 마드라스 IMC 대회는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의 도구라는 인식 속에서 “교회를 발견하자는” 논제를 제기하였고 보편적 교회의식의 중요성과 성육신의 원리가 강조되었다. 마드라스 대회는 타종교에 대한 선교학적 입장이 헨드릭 크레머의 성경적 실재주의로 기울어졌다. 특이할 만한 일은 IMC의 “사회와 산업조사부서”의 의장으로 있는 멀 데이비스가 이년 반 동안 극동지역 선교지를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로서 토착 교회 설립시에 경제적이고 사회적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4) 1947년의 휘비트 국제선교협의회. 휘비트 IMC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 혼란한 세상 속에서 교회의 위치와 역할의 중요성과 복음전도의 시급성을 논하였다. 호그는 휘트비 대회가 교회의 본질적 사명으로서 전도를 강조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휘비트에서 제기 되어진 ‘기대전도’개념이 혼돈의 세상 속에서 관련성 있는 복음을 증거하자는 취지로 주장되었으나 실상 신학적 내용이 당시 유명한 신약 학자인 도드의 실현된 종말론의 윤리신학의 영향이 내포되어 있었다.5) 1948년의 암스텔담에서의 선교교회협의회 등장과 복음주의 선교운동의 전환기. 세계교회협의회가 등장한 계기는 1938년 우트레히트에서의 “생활과 사역”과 “신앙과 질서” 회의를 통합하자고 결의하여 잠정적으로 “세계교회협의회”로 명명한 것이 기점이었다.1948년 암스텔담 WCC 이후에 WCC는 점차적으로 보편적인 교회의 연합을 최고의 대의 명분으로 교리적인 진술을 간과하기 시작하였으며 ‘성례’와 ‘예전’의식을 중심으로 한 연합이 WCC 교회연합의 근거로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하나님의 선교개념은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오직 유일한 것으로 보지 않고 상대적인 것으로 보며 하나님은 소위 호켄다을 온 세계에 전파하도록 하게 하는 부름”이라는 모토로서 로잔느 두 번째 복음화 대회를 개최하였다. 로잔느 2대회에서 특이할 만한 일은 170개국의 3,000여명의 대표자들 중 세계 2/3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절반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소위 성령의 제2의 운동이라고 불려지는 복음주의 진영의 카리스마틱 교회들이 상당한 비율로 참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로잔느 언약과 비교하여 그 특이점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서두부에 있어 21개의 확인들은 대개 로잔느 언약의 신학적 내용들을 재진술하고 있다. 다만 발전적인 부분으로 AD 이천년도의 기간까지 미전도종족들을 복음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표현하고 바로 그 일을 이루기 위한 세계 복음화가 시급하다고 진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본론의 첫 주제로 ‘총체적인 복음’이고, 두 번째 큰 주제로서 ‘전 교회’가 있다. 세 번째 큰 주제로는 ‘온 세계’이다. 결론 부분은 로잔느 2대회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복음을 증거한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데 이것은 종말론적인 사명이며 선교는 종말론적인 사역이라는 것이다.총체적 선교 개념은 복음주의 선교 진영을 둘로 나눠지게 하는 주요인이 되었다. 74년의 로잔느 대회에서의 전도적 명령의 우선권을 고수하는 복음주의 진영과 총체적인 선교개념을 주장하는 로잔느 2대회의 지도자들이 있다. 두 번째 선교학적 이슈로서 힘의 충돌의 신학이 있다. 세 번째 선교학적 이슈로서 영적 전쟁 개념이 나오는데 여기에 암시적으로 지역 악마 개념이 내포되어 있으며 이것은 실질적으로 분과 토론 시간에 ‘영적 추적’이라는 주제로 심도 깊게 논의되어졌다. 네 번째 선교학적 이슈로서 도시선교가 등장한다. 다섯 번째 선교학적 이슈로서 총체적인 전략 선교를 논하며 구체적인 선교 목표로서 미전도 족속을 복음화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3. 복음주의 선교 운동의 전망로잔느 대회는 2차에 걸쳐 열렸으며 많은 선교학적 논의가 있었다. 오늘날 복음주의 선교학은 바로 이 부분을 인식하여 성경의 권위와 복음의 규범성을 명백히 하고 어떠한 혼합주의도 배격치였다.
제 1 장 유전공학제1절 : 유전학의 발견결과와 이에 대한 평가인간의 몸은 약 60조개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세포 한 개의 직경은 0.02-0.03밀리미터다. 세포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세포는 핵과 세포질로 구성되어 있다. 핵 안에는 인이 중심에 들어 있고 인 주위를 염색체가 난마처럼 꼬여 실타래와 같은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인간에게는 46개의 염색체가 2개씩 짝을 이루어서 23개 쌍으로 핵 안에 들어 있다. 1889년 스위스의 화학자 요한 미셔는 이 염색체들의 성분이 디옥시리보핵산임을 발견한 후 머릿글자를 따서 DNA라 명명했다.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자기를 복제하는 능력과 단백질을 만드는 능력이 있는데 이 두 가지 기능은 DNA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DNA의 자기 복제만으로는 생명체를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자기 복제와 단백질을 만드는 기능을 통해 유전 정보의 전달이 완료된다.역사적 칼빈주의 전통은 일반학문의 이성적 연구를 통하여 세계의 일반적 진리를 발견해내는 작업과 그 업적을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시현으로 인정해 왔다. 유전학의 영역은 극미의 영역이다. 이 극미의 영역의 탐색은 현미경과 컴퓨터의 개발로 가능해졌으며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일반은총의 표현이다. 이런 장비를 통해 들여다 본 신체의 극미의 세계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질서정연한 모습, 유기전인 연관성 안에서 배열되어 작동되는 모습 인간의 설계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같은 관찰은 목적론적 신존재논증의 하나인 정서론의 타당성이 유전학 연구를 통하여 더 분명하게 증명되고 있음을 뜻한다. 또한 생물학 연구를 통해도 세포 밖에 있는 어떤 힘을 상정하지 않고는 세포의 발생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는 발생학의 연구결과 모든 원인이 하나님이라는 우주론적 신존재논증이 유전공학과 발생학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음을 의미한다.전통적으로 인간의 생명의 기원과 발생은 과학기술로 다 해명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일부 유전학자들은 생체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놀 움직인다는 것은 이미 그 안에 영혼이 들어와 있음을 뜻한다. 아담의 후손의 경우 명확한 입장은 곧 수정이 이루어질 때 영혼이 들어와 살아 있는 인격적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자궁 속의 태아를 다루는 성경본문들은 이사야, 호세아, 다윗의 시편 증이다.체세포핵치환배아도 수정란인가의 문제 역시 체세포의 핵과 수정란의 핵은 동일한 핵이며 어떤 방식이든지 동일한 성질을 갖는다. 복제 인간의 경우도 아직은 직접 경험해 보지는 못했으나 이 역시 그동안 언급된 방법을 통하므로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제2절 : 배아줄기세포추출의 문제점들배아줄기세포추출행위는 어떤 선한 목적이라도 한 인간의 생명을 희생시키면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보편적 도덕률이다. 또한 의료윤리의 원칙인 자율성의 원칙을 범하는 행동이다. 기독교윤리의 대강령인 황금률과 황금률의 세속적 버전인 칸트의 도덕률에 정면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생명공학자들은 개연론의 오류를 벗어나지 못한다.윤리적 문제 외에도 의학적으로도 문제점을 드러낸다. 난자채취과정의 부작용, 배아줄기 세포의 만능성으로 인한 약점, 배아줄기세포가 암세포로 전이되는 사례 등이다.제3절 : 성체줄기세포성체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에 비하여 우월하다는 점이 실질적인 임상효과를 통하여 증명되고 있다.제4절 : 생명윤리안전법의 문제점생명윤리안전법의 내용은 효율성과 경제적 이익 그리고 국가경쟁력 등을 중시하여 생명공학을 육성하고자 하는 법률이 되었으며, 배아를 보호할 수 없고 오히려 배아살해를 법적으로 확고하게 지원하는 반윤리적 악법이다.제5절 : 배아복제에 대한 교계의 반응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는 성명서를 통해 인간복제를 반대하였다. 배아복제는 치료목적이라 할지라도 전면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제 3 장 시험관 아기자녀의 출산은 결혼생활에 따라오는 가장 소중한 열매이자 선물이다. 결혼생활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혈연의 대를 잇는 것인데 이 일은 자녀의 출산을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의술이 발달하면서 출산 과정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자녀출산을 일어나리라는 것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셋째로, 유사 실험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들 가운데 동성애적인 정체성 문제를 보인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뇌의 구조. 뇌의 구조의 차이로 동성애자에 관해 증명하려고 하였으나 여기에도 문제점이 있다. 첫째로, 다른 실험실에서 재현되지 않았다. 둘째로, SCN(suprachiasmic nucleus)의 크기의 차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며 성적 행동을 결정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로 적은 표본, 특정 대상 등 연구방법론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간접적 유전자결정 가설. 1952년 초기 연구는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에 동성애비율이 100% 일치하는 것이란 보고인데 이것은 조작된 것이다. 1990년대 다시 한 번 연구가 실행되지만 이 역시 여러 가지 오류를 보이므로 유전자가 동성애를 유발하는 요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직접적 유전자결정 가설. 1993년 딘 해머의 연구팀은 동성애 유전자를 발견했다는 연구보고를 발표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동일한 연구의 실패, 표본 대상의 일반성 결여, 새로운 유전자가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 문제가 나타난다.제3절 : 정신의학적으로 동성애가 정상적인 성관습을 증명하는 연구결과들의 소개와 비평1974년 미국정신의학협회는 동성애운동가들의 위협 속에서 비정상적인 회의에서 동성애를 정신질환의 목록에서 빼자는 안건을 상정한 후 투표에 부쳐 통과시켰다. 그러나 그와 상관없이 대다수의 의사들은 여전히 정신질환의 신호로 간주했다.에벨린 후커는 정신 건강에 있어서 동성애와 이성애와 다를 바 없이 정상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지만 이는 표본 수집의 편향성과 부정확한 해석등의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제4절 : 동성애관련 성경구절들에 대한 해석하나님은 인류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이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주셨다. 또한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는 명령을 주심으로 결혼의 질서를 창설하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 인류사회 안에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리는 온갖때 그에 대한 은혜와 상급으로 부를 주시는데, 이 부가 곧 청부라고 정의한다.그러면 김동호가 말하는 하나님의 방식과 법대로 획득한 부란 무엇일까? 그것은 정당한 방법으로 벌어들인 돈이다. 그것은 도덕적으로 건전한 직업을 가진 자기 손으로 노동하여 벌어들인 돈 중에서 정직하게 세금을 내고 남은 돈을 가리킨다.김동호의 청부론은 부 또는 돈이란 그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방식과 법대로 돈을 벌면 청부라고 말하면서 왜 예수 믿는 자가 물질의 복을 받으면 우로 치우친 잘못된 기복주의적인 태도라고 말하는가? 이 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김동호는 돈을 “복”으로 보지 않고 “은사”로 봐야 한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를 전개한다. 그러나 성경은 돈이나 물질을 은사라고 부른 예가 없다. 더욱이 성경은 물질이나 돈이 복임을 여로 곳에서 밝히고 있다. 은사가 쓰지 않으면 소멸되는 것처럼 물질도 쓰지 않으면 소멸된다는 김동호의 판단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김동호는 부의 소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인간학적인 근거로서 에릭 프롬이 제안한 소유형의 인간과 존재형의 인간이론을 원용한다. 소유형 인간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소유에 두고 사는 사람이고, 존재형의 인간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인간답게 존재하는데 두고 사는 사람을 뜻한다.소유에 대한 능력이 없어서 가난하다는 김동호의 판단은 부분적으로 옳다. 그런데 부란 획득하는 과정이 정당하다고 해서 그 소유가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획득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정당성은 부의 정당성 담보의 반쪽에 지나지 않는다. 정당하게 획득한 부는 정당하게 사용되어야만 비로소 명실공히 청부가 된다.돈의 정당한 사용방법 첫째는 하나님의 몫, 수입의 십일조를 뜻한다. 둘째로, 나의 몫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전에 다른 몫을 먼저 뗄 것을 강조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몫과 다른 사람의 몫을 떼고 남는 것은 나의 것이며, 그 분량이 얼마가 되든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 몫을 가지고 자신과 가족을 풍족하고 자유롭게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자유를 향유하기에 충분한 대가가 지불되지 않는 일은 노력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가 있다.넷째, 다단계판매는 외부에 대하여 철저하게 닫혀져 있는 순환적인 자급적 기업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물품의 생산, 판매, 소비, 이윤분배가 모두 하나의 닫힌 조직체 안에서 순환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와 같이 닫힌 경제구조는 사회 전체의 유기적 연관성을 깨뜨린다.다단계판매는 사회의 경제구조가 비인간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데서 나타나는 특이한 경제구조다. 다단계판매라는 하나의 경제현상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현상을 배타시킨 우리 사회의 경제철학과 경제구조 그 자체에 대한 반성과 대안제시도 필요하다. 경제적 자유란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참된 인간다운 삶을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우선순위가 뚜렷하게 설정된 경제철학이 확립되어야 한다. 또한 생계유지와 적절한 문화생활에 필요한 임금이 열심히 일하는 국민들에게 균등하게 주어지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직업에 대한 뚜렷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하며 이를 위해 책임있는 노력이 이루어질 때 다단계판매의 문제는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제 8 장 핵무장 시대의 전쟁가장 최근에 등장했던 이라크전쟁은 전통적으로 기독교계 안에서 평화주의, 정당전쟁론, 대의전쟁론 혹은 성전론 등으로 나뉘어져 전개되어 온 전쟁의 윤리적 정당성에 관한 논쟁들을 모두 끌어 들여 대결하게 만드는 투견장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쟁점을 일으키는 wrjs들을 두루 갖춘 전쟁이었다. 이라크 전쟁의 발발원인은 어느 하나로 딱 단정해서 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 - 미국의 9·11테러, 이라크가 ABC와 같은 대량 살상무기 보유, 석유에 관련된 경제적 이권들 등 - 로 뒤엉켜 있다. 이와 같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소개는 이 전쟁의 윤리적 정당성에 대한 판단이 매우 복잡하게 전개될 수 밖에 없음을 시사한다.제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