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 우리가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기반을 닦아준 것은 그야말로 사회의 지식인들의 업적이었다. 깨어있는 사람은 보다 넓은 시야와 통찰력으로 사회를 이끌어 나간다. 그들은 고여있는 낡은 전통과 인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와 문물을 수용하는데 앞장섰고 많은 보수파들과의 대립도 방불치 않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 특히 우리와 인접해 있는 중국도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해왔으며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특히 변화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지식인들은 그 어느 것 보다도 문학을 이용해 몽매한 국민들을 깨우치고 더불어 문학도 함께 발전해 나가며 일석 이조의 효과를 보았으며 지금도 종종 우리는 문학을 통해 나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고, 한층 더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문학은 개인을, 더 나아가 국민을,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매개체로서 결코 없어선 안될 중요한 선조들의 업적이다.지금부터 논하고자 하는 중국 현대문학에서의 문학혁명과 혁명문학은 그야말로 신지식인과 신지식인의 문학논쟁이다. 내가 본 이들을 잠깐 정의내려 보자면 문학혁명이 당시의 잠들어 있던 고요한 지식인들을 깨운 계기가 되었다면 혁명문학은 근대 부르주아 사회 전체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가져야 함을 권고했다. 그들은 문학은 당시 사회를 반영하며 문학적으로 가치 있어야 한다는 맥락에서 그들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맥락속에서 주장하는 바가 달랐다. 이것은 결코 전통과 개혁 등의 대립이 아닌 관점과 가치관의 대립이었다.청의 멸망과 중화민국의 건국을 가져온 신해혁명은 이전까지 문학의 인식이었던 국민계몽과 정치개혁의 경로라는 것을 더 이상 수단으로서가 아닌 독자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흐름으로 전통을 고수하려는 보수적인 입장과 그것을 부정하는 새로운 문학파들의 대립이 나타나게 된다. 이를 ‘문학혁명’의 시작으로 볼 수 있는데 우선 문학혁명의 발발과 가르키는 내용을 정의 해 보자면 1915년 상해에서 진독수에 의해 창간된 ≪신청년≫ 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신청년≫은 중국사회의 변혁과 청년계몽이라는 목표를 내걸었으며 이것의 창간은 당시의 상황과 문학적 풍토에 비추어 봤을 때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다. 진독수는 이를 통해 과학과 민주주의를 도입, 정착시키고 백화문학을 고취시키고 서구문학의 수용을 위해 이를 통해서 벌이는 운동을 ‘신문화운동’이라 정의하고 북경대의 진보적인 지식인들과 함께 신문화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신청년≫을 통해 호적과 진독수가 발표한 와 은 문학혁명의 촉발과 전개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로서 ≪신청년≫은 5.4운동을 주도하며 이로 인해 활성화되고 이후에 여러 개의 문학사단이 생겨나는데 이들로 하여금 문학상의 변혁운동이 일어난 것을 현대문학사에서의 문학혁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점은 활동 영역이 너무 좁았다는 것이다. 문학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북경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 뿐이었고 또한 더 큰 문제점은 그들의 주장을 대표할만한 작품이 없다는 것이었다.≪신청년≫에 의한 문학혁명으로 인해 생겨난 문학사단 중에서 최초로 순수문학단체인 문학연구회는 모순, 주작인 등으로 결성되었으며 창작과 번역, 문학비평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고 문학을 심심풀이나 유희가 아닌 ‘인생을 위한 문학’을 구호로 삼아 인생에 의미있는 작용자로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생을 구호로 삼아 의미있는 작용자로서 사용한다? 물론 아주 광범위했던 ≪신청년≫의 주장에 비하면 추구하는 바가 구체화되긴 하였지만 실상 이러한 구호는 어디에 지향점을 두고 있는지 의미가 모호하다. 그들이 이러한 구호를 정해놓고 과연 뚜렷한 목적의식으로 문학을 창작했을지는 의문이다. 인생과 문학을 연관시킨다면 그 의미는 아주 광범위 한 것이 될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런 목표로 문학을 써놓고 과연 어떠한 변화를 기대했던 것일까?사람생각이 다 같을 수 없듯이 당시에 문학연구회와는 입장이 다른 사단인 창조사는 곽말약, 성방오, 욱달부 등 일본의 유학파로 결성되어 있으며 서구의 낭만주의 색채가 두드러졌다. 이들은 억압적, 보수적인 당시의 시대상황에 대해 맹렬한 비판을 가했으며 개인의 개성과 자유의 가치를 강조하였다. 이들은 문학과 예술은 형식과 정신의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하며 예술을 위한 예술, 문학을 위한 문학이란 구호를 내 걸었다. 이들은 예술을 예술로서 받아주기를 갈망하므로 인해 중국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강렬한 저항의식이 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창조사의 문학을 미를 추구하는 모습에서 왠지모를 거부감이 느껴졌다. 특히 ≪창조주의보≫를 통해 발표된 성방오의 에서 세 번째 사명인 “공리적 타산을 제거하고 오로지 문학의 완전함과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가 평생동안 몸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라는 주장을 보면 문학의 심미적 작용만을 너무 극대화 시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일제시대에 처해 있을 때 낭만주의 시인들, 예를들어 김영랑 시인같은 시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우 문체에서 나타나는 문학적인 미는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과연 이 시대에 일반 국민들은 삶을 연명해 나가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실정에 아름다움 즉 서정적인 감성만을 추구한다는 것이 시대적인 흐름과는 과연 어울리는 이야기 일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이것으로 일제 시대의 서정시파들은 조금은 창조사와 닮은 면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나의 이런 견해 때문에 중국 문학사를 공부하면서도 아직까지 노신이 현대문학사의 가장 대표적이며 훌륭한 작가라는 것을 인정하며 창조사와는 약간 대립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문학 사단들의 활동에도 보수주의적 움직임 또한 계속되었는데 이를 대표하는 잡지인 ≪학형≫은 북경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 지던 ≪신청년≫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남경의 동남대학에서 보수파 문인들에 의해 창간되었다. 후에는 사회적인 흐름이 변화됨에 따라 퇴조하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서 문학혁명에 대한 비판은 서구식 교육을 받지 못하고 폐쇄적으로 전통 문학만 접했던 보수적 문인들로부터 제기된 것만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으며 사회에 대한 진정한 근심과 연관된 것임을 알 수 있다.현대 문학사에서는 특징적으로 대부분 노신을 개인적으로 분리해서 분석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여느 작가들과는 달리 초기에 문학혁명을 주도해 나갈 때 어느 사단에도 끼지 않고 개인적으로 진행 해 나갔다는 것이 대단한 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현대 문학사를 저술해 놓은 책 대부분의 목차를 봐도 알 수 있는데 이로 인해 나는 노신은 좀 더 가깝고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 같다. 그는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중국의 모순된 현실을 어느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비판한 작가이다. 그는 창작 뿐만 아니라 현실에 직접 참여하여 자신이 쓴 글에서의 태도를 수행하며 훌륭한 작가라는 타이틀에서 나아가 진정으로 사회를 걱정하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까지도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그의 활동은 막을 열기 시작했다. 그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가장 큰 이유는 문학 작품으로 뼈와 살에 닿는 메시지를 전해 주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가 광인일기와 아큐정전을 통해 백화소설을 실천에 옮겼고 형식면에서도 서구 현대소설 창작기법을 도입했으며 중심적으로 다루는 주제 자체가 봉건주의 타파라는 것을 드러냈기 때문이다.문학혁명이 점점 무르익을 때 쯤 당시 4.12 정변으로 인해 상황은 다시 어지러워 졌고 그의 영향을 받아 1928년 1월 중국에는 두개의 프로 문학 단체가 성립되었는데 하나는 공산당원 문인들의 조직인 태양사였고, 다른 하나는 일본에서 프로문학은 배운 성방오, 이초리, 풍내초를 중심으로 한 제 3기 창조사였다. 그들은 여태까지 전개해 왔던 문학혁명가들의 앞에 서서 시대에 뒤처진 소자산계급이라 강력히 비난했다. 이중에는 가장 핵심의 인물이었던 노신이 가장 주류인 비판대상이 되었다. 이들은 약간은 비열하다 싶을 정도로 기성작가들에 대한 공격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확보하려고 했는데 이는 마치 현대의 유명한 사람의 기세에 빌붙어 비판하면서 함께 유명해 지려고 하는 정치가들과 다를바 없어 보인다. 이 두개의 문단은 프롤레타리아 혁명문학을 주장했는데 이들은 그들이 여태껏 벌여 온 계몽활동이 지나치게 안일하고 낭만적이였음을 반성하고 모호한 개념에서 벗어나 이념이나 목표등을 확실하게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혁명문학이었는데 이는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고 문학과 정치관계를 당시의 변화된 시대에 맞게 재정립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문학 활동을 펼쳐나갈 의도에서 시작 된 것이었다. 이는 4.12 정변 이 후 지식인들을 어필했고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기여하는 문학이라는 구체적인 위상도 얻게 되었다. 무엇인가 뚜렷한 목표와 이상이 있다는 점에서 앞서 말한 문학연구회와는 차이점을 내포하고 있지만 실상 창조사 같은 경우 혁명문학 자체 개념정립이나 이론적 체계화 보다는 시작이 그랬듯 계속해서 기성문인들의 비판만을 초점에 맞추고 전개해 나갔다. 또한 그들의 시작은 사회주의 이념을 통해 혁명 문학에 접근한 것이 아닌 문학을 연구하다가 혁명문학에 심취된 것이었으므로 사회주의 이념에 공감은 하나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 차원이었으며 현실상황인 중국 공산당의 입장이나 견해를 확실히 반영해 주지 못하였다. 그들은 소련의 경험을 그대로 중국에 적용시키려 했으며 실상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듯 하다. 노신도 이에 대한 많은 반박을 하였으며 이런 반박으로 창조사로 하여금 심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창조사 보다 조금 늦게 형성된 태양사는 이와는 조금 다른 관점을 보였는데 그들은 혁명문학론을 보다 논리적으로 제기했으며 혁명문학은 반드시 중국사회의 현실과 연관된 목표를 추구해야 함을 주장했다. 그들의 구성원들 대부분도 공산당원이였으며 창조사와의 시작부터가 달리 문학에 대한 연구로부터의 시작이 아닌 직접 몸으로 뛰며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혁명활동의 일환으로 혁명 문학을 제기 하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혁명은 개인적 신념의 소산이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으며 현실을 명확히 인식하여 문학을 통해 그것을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마을당신화(촌락신화)마을에서 섬기는 신의 내력에 관한 이야기 많이 전승되고 있지 않지만 단편적인 것이 여기저기 전승되어 오고 있다. 주인공은 그 마을의 신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전설처럼 되어가고 있다.신을 섬기는 마을사람들로서는 신화라고 할 수 있으나 다른 지방의 사람이 보면 전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지방에서는 지금도 ‘골맥이’라고 부르는 마을의 수호신을 섬기고 있어 문헌에 나타나는 신화보다는 오히려 신성(神性)이 잘 드러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화로서의 기능도 다하고 있다.오늘날 전승되고 있는 촌락신화는 대개 짧은 단편으로 되어 있으나, 서당굿이나 당굿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마을굿이나 별신굿의 구연과정을 보면 상당히 긴 것도 많다. 이들 굿의 내용에는 ‘박혁거세신화(朴赫居世神話)’나 ‘김수로왕신화(金首露王神話)’를 회고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촌락신화는 고대신화의 재현이라고 할 수도 있다.마을에서 단순하게 구전되며 동제(洞祭)와 관련된 신화가 있고, 무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당(堂)본풀이가 있다. 마을에서 구전되는 촌락신화는 이제 그 원형을 찾기 힘들 만큼 이야기가 희미해지고 있으나 ‘은산별신제’나 ‘해랑신’을 모시는 동제를 지내고 있는 마을의 경우는 아직도 신화의 원형을 잘 유지하여 가고 있다.당본풀이를 하는 마을 굿의 경우는 촌락신화가 생생하게 살아 있고 신화로서의 그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데, 제주도의 ‘토산여드렛당본풀이(토산당본풀이)’이나 ‘서귀포향당본풀이’ 등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뿐만 아니라 제주도에서는 생활과 종교와의 연관 속에서 신화가 전승되고 있다. 당굿은 부락수호신으로 섬기고 있는 신에게 제사지내는 것으로 그 신의 내력을 무가로 부른다. 그러므로 제주도의 당본풀이는 우리나라의 어떤 신화보다도 신성성이 잘 드러난 살아 있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2. 본(本)풀이의 정의(定義)「본(本)풀이」의 어의(語意)는 보는바와 같이 「본(本)을 푼다」의 명사형(名詞形)이다.그것은 「王皇帝國)따님애기.49. 바닷물에 들어가는 해녀(海女), 나오는 해녀(海女)50. 漁夫.51. 어채선-어작선-어부선(漁夫船)52. 기계선(機械船).53. 감동선(感動船)-발동선(發動船).54. 漁船.55. 낚조선(釣船)56. 한 곳으로. 같이.57. 서귀진내(西歸陣內). 옛 성(城)이 있었다하나 현지명(現地名)만58. 송씨부군(宋氏府君)-관청(官廳)할망-서귀진수호신(西歸陣守護神)-정방폭포(正房瀑布)밑 서(西)쪽의 굴(屈)속 신당명(神堂名)-관계개병축원당(관계개별축원당(官系個別祝願堂)).59. 지명(地名).60. 서귀리본향당(西歸里本鄕堂)있는 곳.61. 구(龜)=용신(龍神). 일체이명(一體二名).62. 동산명(名).63. 구(九)곳에.64. 삼(三)벌이줄이라고도 한다. 큰굿할 때 세우는 대(간(竿)) 당기는 줄. 신하강로(神下降路)이기도.65. 길이 바른 총(銃)(지리)을 가진 산수인(山狩人)의.66. 이 분들에게.67. 오가일동(吾家一同). 모두 다.68. 도성책(都姓冊).69. 서천민원(西天民願).70. 역대(歷代)의 작고(作故)한 당(堂)맨신방(神房)들. 신(神)의 세계(世界)에 명단(名單)이 오른다.--------------------------------------------------------------------2) 괴내깃또본(本)원본(2金午生氏 口誦(男巫.五三歲, 濟州市 三徒同 居住)김오생씨 구송(남무.오삼세, 제주시 삼도동 거주)一九七一年 八月 採錄일구칠일년 팔월 채록웃손당(堂)은 (2김백조, 샛손당은 (3새명조, 알손당은 (4소로소천국(天國)소천국(天國)이 (5질이 바른 마사총(銃)을 들어메어, 산(山)두메에 올라가서(6우 알 거느리고 (7자 알 거느련 (8오릴목을 보고나릿목을 보고, (9물장오리루, (10태역장오리루 (11불컨대로,(12한날기는 새솔왙으로 (13버리쳐, 한날기는 신산봉(山峰)으로 버리쳐(14학붉은오름으로 (15큰병두루 (16족은병드루 오야지네,(17웃소남당 (18알소남당으로 하야 거느려아전 손당(堂) 높은(19오름으로 오니 르방은 일굽살에 죽으라구 띄와분 아들 오면어찌 얼굴을 대(對).리오. 알손당 (57반저바남마리에 (58고부레간 것이 금(今)시상(常)이 매깁디다.일굽챗아들이 오고보니 아바님두 없고 어머님두 없으니큰성임(任)보고 말씀.되 「아바님과 어머님이 어디 갔읍니까?」물으니 큰성임(任)이 말을 .되 「나는 모르겠다.」「큰성임(任)이 되고 어머님과 아버지 간 듸를 몰랐이니 무정(無情)허구나. (59거머문(文)국성(星)으로 들어삽서. 둘찻성임(任)으랑 (60대정(大靜) 광정당(廣靜堂)으로 들어삽서. 싯찻성님으랑 (61정의(旌義)시선당(堂)으로 들어삽서.니차성임(任)은 (62성(城)안 내왓당(堂)으로 들어삽서. 다섯차 성님으란(63짐녕(寧)괴노기로 들어삽서. .서차는 (64개.리 멍둥이 고비금상 상오님으루 들어삽서.나는 저 (65토산(兎山) 세펜 일뢰한집으로들어사오리다.」 .여두구 아버임(任) 댕여난 자취난 돌아보자.굴미굴산(山) 올라가니 아바님 자취는 못내찾고 오(五)벽장군(將軍) .님야기 얼굴이 관옥(玉)이요 몸은 풍성(豊盛)이라 호(呼)년호첩(呼妾)을 정(定)해여 돌아오니 오(五)벽장군(將軍) .님아기가 말을 .되「큰부인임(任)이 있다.는듸 어디 갔읍니까?」「대국(大國)이 대부인임(大夫人任)도 (67그른 일 .는듸 소국(小國)이 소첩(小妾)은「행실(行實)이 고약.길래 대정(大靜) 마라(馬羅)섬으로 귀양정배(定配)를 마련했노라.」(68발난 부뜬때 나구 가오리다.」.고 말씀.니 「귀양정배(定配)풀려다가 (69.반일반 살기가 어찌.냐?」「걸랑 그리.옵소서」오백장군(五百將軍) .님야기가 대정(大靜) 마(馬)래섬들어가구 큰부인(夫人)님신데 들어가 말씀.되「거룬성임(任) 귀양정배(定配) 풀리레 오랐읍니다.」「서른동생(同生) 고맙도다.」입굽애기를 끄서가네 나아삽데다.「이 애기덜 일굽애기 (70일굽업개를 거느리구 중산촌(中山村)으루올라가라. 나는 일굽애기를 (71배구서라 나젠 .게입이 (72굽어지니 연해변(沿海邊)으루 돌아가면서 (73개보말 줏어먹으며가겠노라」오백장군(五百將軍) .님애긴머리 바지머리 벗어집내다.」「치매가 벗어지고, 바지가 벗어지고 이 내 몸이나 감추자」.(72어쩡어쩡 .브 흐르릉청 (73. 서천관에 올라간다.어서 들어가니 애기씨가 들어가 (74옷 침을 들러간.이 나라 마흐레청 (75짓거되이 혼(魂)이 나고 죽었구나.초헌(初獻) 이헌(二獻) 삼헌(三獻)을 올리라. 사장(砂場)밭디 (76객 새겨 묻치고.강씨(姜氏)애기씨 오씨(吳氏) (77마당이 씨집을 가자고예물(禮物)을 .치니, (78씨집 아니간 아지망 우이(79침노가 되었젠 .영 (80하염 주었구나애기씨가 신병(身病) 걸여 드러누언 (81비념 원정.는데.번 두번 연세번을 빌어보되 (82가금논조 없어져씨집가젠 .난 그 날 그 시(時) 돌아오니 시집 장개 갔구나(83수페머리에 (84의탁 그대로 (85연반물 치매에옥색(玉色)저구리에 의탁 침노 되었구나.(86설흔 애기 죽어가나 점(占)서 문복(問卜).다가(87「씨누이 혼령(魂靈) 들려서 이렇금 되었수다.」천(千)번 기도(祈禱) (88대양청, 원정(願情) 기도(祈禱) 제(祭)맞이, 밤도 (89양청, 낮도 양청,두 일뢰열나흘 신제(神祭)맞이 불리니애기씨가 .릿.릿 살아나며 말씀.되「누굴 위(爲).고 기도(祈禱) 원정(願情) .내까?」「애기씨를 살리기를 위(爲).자고 기도(祈禱) 원정(願情) .내다.」「나를 위(爲).고 기도(祈禱) 원정(願情).엽건 나 놓은 궤상(櫃箱) (90금동궤문(門)을 열고 보라. 우리 아바님 쳇 서울 가실 때(91나 낫이 진상(進上) 상납(上納).여 온 것이 있다.」(92가맹지나 (93물맹지, 새미녕, 고리비단(緋緞) 능나귀를 내여놓아마흔대자 상(上) (94방울로 노념.자.서른대자 중(中)방울로 노념.자.(95간장 본인(本人) 풀어놓자, 애기씨가 .릿.릿 살아난다.주(註)1. 남군(南郡) 표선면(表善面) 토산리(兎山里) 하당신(下堂神) 본(本)풀이하당신(下堂神)은 사신(蛇神)으로 여드렛또(팔일신(八日神))라 한다. 이 하당신(下堂神)이 제주도사신(濟州島蛇神)의 본산(本山)이기도 하나 사신(蛇神)의 본(本)풀이에는방은 전에 없이 진상이 수월하게 잘 넘어갔다. 이것이 바둑돌의 도움임을 알 리가 없었다.강씨형방·오씨형방·한씨형방은 진상을 끝내고 제주도로 돌아오게 되었다. 처음엔 바둑돌이 신기한 것 같아 소중히 간직했으나, 알고 보니 대단한 것 같지 않아 던져 두고 배를 띄우려 했다.이상하게도 바람이 막혀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배를 띄우려는 시간마다 바람이 막히므로 세 형방은 점을 치러 갔다."강씨형방 보자기를 풀어보십시오. 난데 없는 보물이 있을 듯 하옵니다. 선왕에 올려 굿을 하면 명주 바다에 실바람이 시르르르 불어올 듯하오리다."아닌게 아니라, 보자기를 풀어 보니 던져 버린 바둑돌이 그 속에 와 있었다. 선왕에 올려 굿을 했더니 명주 바다에 실바람이 서르르르 불어 오는 것이었다.강씨형방·오씨형방·한씨형방은 배를 띄워 제주 열운이로 들어왔다.포구에 배를 붙이자, 바둑돌은 꽃 같은 아가씨로 변신하여 그 말을 당신 맹호 부인에게 명함을 드렸다."이 마을에 토지관이 하나지 둘이 될 수 없다. 땅도 내 땅이요 물도 내 물이다. 자손도 내 자손이 되어지니 어서 나가거라."맹호부인은 도저히 그 마을에 머무를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그러면 어딜 가면 임자 없는 마을이 있겠습니까?""해 돋는 방위 토산으로 가고 봐라."아가씨는 열운이를 떠나서 곰배물로, 삼달리로, 하천리로 나아갔다.이때 하천이 개로륙서또가 탈산봉에 앉아 바둑을 두다가, 월궁의 선녀 같은 아가씨가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다.'남자의 기습으로 그냥 둘 수 있으랴. 어서 나아가자.'개로육서또는 산지꼴로 내달아 왕꼴로 하여, 서토산을 달려들어 은결 같은 아가씨 팔목을 덥썩 잡았다."얼굴은 양반이라도 행실은 괘씸하다. 더러운 놈 잡았던 팔목을 그냥 둘 수 없다."아가씨는 장도칼을 꺼내어서 팔목을 싹싹 깎아두고 남수화주(藍水禾紬) 전대로 휘휘칭칭 감아놓고 토산 메두기마루에 가보았다. 그만하면 앉을 만도하고 설 만도 하였다. 거기 좌정하기로 자리를 정해놓고 용왕국에 인사차 들어갔다.용왕께서 말을 하되"어찌하여 네 몸에선 날피 내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를 읽고1.시작하면서이번 레포트를 준비하면서 남녀간의 생물학적, 심리학적 등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남성과 여성이 가지고 있는 성역할은 문화에 의해 “달라져왔다” 라는 개념보다는 이렇기 때문에 “다르다” 또는 “다를 수밖에 없다” 라고 명쾌하게 정의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한결 속이 후련하다. 특히나 더 놀라웠던 사실은 남성과 여성의 뇌의 상이한 작용이었는데 내가 살아오면서 가졌었던 궁금증을 해결하는데 많은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고, 가령 예를 든다면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영어, 제2 외국어 선생님들은 왜 대부분이 여자선생님이었는지, 또 주변에 운전하는 여자들에게 왜 수많은 남자들의 질책이 쏟아지는지, 여자들은 왜 그렇게 말이 많은지 등에 대한 세세한 분석과 사귄 경험이 많은 주변 사람들에 말에 항상 붙어 다니는 “남자는 다 똑같아!” “처음엔 다 그래. 좀 더 지나봐. 너도 알게 될 거야” 등의 궁금증을 풀어준 것이 책을 읽으면서 한결 재미있었던 부분이었고 내가 지금까지 사귀었던 사람에게서 똑같은 상처를 받는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책에서 나타나는 여성들의 행동양식이 나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해답을 발견할 수 있었고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본능과 생각, 행동들로 인해 난 지금의 남자친구에 대해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는, 이해심 많은 여자친구의 모습을 가지게 될 것임을 확신했다. 또한 읽는 내내 이 책을 남자친구도 읽으면 나와의 원만한 연애생활을 지속해 나가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감도 갖게 되었다.책에서 종종 예문의 내용을 보면 “당연히 여자가 화낼 만 하다. 남자가 너무 무심해!” 라던가 “이럴 땐 이런 말을 해주면 여자가 더 좋아 할 텐데...” 라고 생각하면 필자가 바로 아래 설명을 덧붙여 나의 생각과 같은 이야기를 넣어주고 그것이 왜 그런가를 설명해주니 어느 정도 더 이해가 쉬웠던 것 같다. 여태껏 내가 가지고 살아왔던 “사람이라면 모두다 닥쳐온다 하더라도 알고 있는 지식을 총 동원해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내가 되어 보고자 한다.2. 동이 터 오는데...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은 전화나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나쁘게 말하면 수다이고 좋게 말한다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유대를 형성하는 과정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누군가와 많은 대화를 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이렇게 대화를 하는 것이야 말로 상대방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고, 또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 있을 때는 공감대를 형성하여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서로를 속속들이 알면서 이해해 줄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진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며 함께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끈끈한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다를 좋아한다는 것, 이것은 정서적인 이유 뿐 아니라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좌뇌와 우뇌의 특정 언어위치와 에스트로겐의 분비 덕분인 것이다. 대부분 이렇게 이루어지는 대화의 내용은 그날의 있었던 아주 사소한 이야기 까지도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고 맞장구 쳐주고, 일상에서의 남자친구 이야기, 학교 이야기 등을 말한다. 가끔 친구들과 할 말이 없어질 때까지 수다를 떨면 머릿속 이 텅 빈 것 같다고 느끼는데 그래야만 새로 다시 시작하고, 뭔가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나는 남자친구가 생기고 부터는 친구들과의 이런 수다들이 적어졌다. 왜냐하면 아침이나 저녁, 가장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상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만약 그 날 오전에 생각지도 못했던 재미있는 일이나 희귀한 일이 벌어지면 머릿속으로 ‘저녁에 전화할 때 말해줘야지’하고 생각한다. 저녁에 자기 전에 하는 짧은 전화통화가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보면 1시간이 2시간으로 늘어나고, 심할 때는 새벽 5시가 넘도록 하도고 동이 틀 때쯤이어야 조금 졸리니 한숨 자고 학교가야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는 한다. 내가 이렇게 신나게 이야기 하면 대화의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 나이기 때문에 나는이야기를 하는 중간에도 이 사람이 나의 이야기를어갈 수 없다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숙달되었다는 듯이 내가 “왜 그렇게 울적해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회사에서 오늘 일어났던 울적한 일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내가 계속해서 맞장구를 쳐주며 “잘 될 거에요. 잘했어요. 그 상황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하고 대답해 주니 갑자기 웃으면서 하는 말이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 할 거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매일 해줄 말이 없어서 고민하는데...”라고 어수룩하게 이야기를 했다. 나의 남자친구를 포함해 남성들이 말을 계속적으로 하는 것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남자의 두뇌가 선호하는 기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기능은 전적으로 좌뇌의 담당인데 비해 남자의 두뇌에는 위치가 특별히 지정되어있지 않다보니 말을 잘 못하는 것이다. 이런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다보니 구두를 비롯한 작문을 하는 것에서도 어려움을 느끼는가 보다. 왜냐하면 그에게 종종 메일을 받고 싶어 졸라대면 그는 “무슨 말을 써야할지 고민하게 되서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그에게 어떤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하기를 요구하고 메일 쓰기를 요구하는 것이 그에겐 정말 어려운 일임을 말이다.3.단지 위로받고 싶을 뿐이야!나는 이번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1년 동안 학교를 쉬고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이들 4명을 과외 지도 해주면서 등록금을 모으고 있었다. 장기적인 사회생활이 처음이고 또 과외 해 주는 아이들이 시험기간이면 이것저것 신경써줘야 할 부분들이 많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육체적으로도 지치곤 했는데 대부분 이런 이야기를 현재의 남자친구에게 전하며 힘들다고 이야기 하면 “그럼 과외 하는 몇 명을 그만둬. 너무 힘들다면 말이야” 라고 대답을 했다. 나는 단지 내가 힘들다는 것에 대해 위로받고 그 위로로 하여금 더 힘을 내고 싶었을 뿐인데 일을 관두라는 말에 울컥 화가 밀려서 나도 모르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책의 내용을 근거하여 알게 된 사실은 남자는 논리적이고 문제가 생기면 해문제점과 속마음을 털어 놓음으로써 위안을 얻고 또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활발하게 작동되는 언어기능을 사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나타나기 때문인 것이다.반면에 전화통화를 할 때 남자친구의 목소리에서 울적함이 베어 나오면 나는 그 즉시 “무슨 일 있었어요? 나한테 말 해봐요. 내가 도움 줄 수 있다면 도와줄게요. 라고 말한다. 내가 우울한 일이 생길 때 이야기를 하면 한 결 기분이 나아지는 이유 때문에 그 또한 나에게 속 시원히 이야기를 해버리면 속이 좀 편안해 지리라는 가정아래에 행해지는 행동이이다. 그럴 때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말을 하면 순간 내가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는 끝까지 물어봐서 그가 울적한 이유를 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가 이렇게 말해버린 이유는 우뇌를 사용하여 지금 당면한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에 언어기능이 있는 좌뇌의 사용을 억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번에 하나씩 밖에 할 수 없는 남자들은 문제를 이야기 하고 해결책을 들음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는 이러한 방식의 우뇌와 좌뇌를 동시에 쓰는 다중트랙의 행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남성들의 특성을 몰랐을 때의 나의 심문에 적응이 되었는지 요즘엔 도리어 그가 일이 생기면 나에게 먼저 말해 버린다. 그런 반응에 나는 그가 나에게 뭐든 것을 말해주고 날 의지하며 날 믿어주고 대화하려고 애쓰는 것 같아 고맙고 더 잘해줘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이제라도 그에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고 그 후에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면 그때 진정으로 도와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4.그에 비하면 난 멀티 플레이어전화를 할 때면 나는 누가 음악을 틀어놓던, 아님 내가 다른 일을 할 경우, 예를 들어 컴퓨터를 하고 있을 때에나 TV를 볼 경우 전화를 원활하게 받는 것이 어렵지 않고 또 받으면서 메일을 쓰고, 오락을 하고, 음악을 듣고, 혹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까지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가 전화를 받을 때에는 그가 지하철이나 시끄러운 버스 안에 있을 때는 가능한 화를 내면서 “바쁘면 바쁘다고 하지요! 전화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데 왜 계속 붙들고 있어요?” 하며 화를 낼 때도 있다.이러한 상황이 일어나는 이유는 책에 나온바와 같이 남자의 두뇌의 특성상 특화되고, 구획화 되어있는 뇌를 가짐으로서 한번에 한 가지씩 특화된 일에만 집중하도록 구조화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화를 받을 때도 다른 시끄러운 소음이 들리면 전화에 집중 할 수 없기 때문에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고, 전화를 받는 도중에도 나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오직 레포트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것이었다. 반면에 나는 책에 중간 중간 자주 등장하는 여성들만의 다중트랙을 사용하면서 일을 진행한다. 좌뇌와 우뇌의 연결이 원활하고 두뇌 속에 특정 언어위치가 있기 때문에 남자친구와 통화하면서 언니, 혹은 엄마의 물음에 대답할 수 있으며, 음악을 들으며 메일을 쓰고 또 무언가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다중트랙 기능에도 가끔 나는 이렇게 한번에 한가지씩 밖에 못하는 남자친구의 체계가 부러울 때 도 있다. 한번에 한가지 밖에 못할 때는 정말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뇌의 체계적인 상이함으로 인해 내가 이제부터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그가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다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그와 나를 위해 좋을 것이란 것과 그가 집중하기 좋은 시간 때에 되도록 대화를 유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령 책에서 나온 것처럼 “ 오늘 하루 일과에 대해서 당신과 대화하고 싶어요. 저녁 식사 후에 괜찮겠어요?”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자기 전에 오늘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자기 전에 통화해요”라고 말해줘야 겠다.5.중국어와 컴퓨터지금 현재의 나의 남자친구는 온라인 게임의 개발사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그에게 질문해서 알아낼 수 있었던 것 중 하나는 지금 그가 종사하고 있는 개발사 계통의 남성의 비율과 여성의 비율이 대략 7:3정도 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책에서 나온 바와 같이 남.
레포트를 쓰기에 앞서 시 속에는 항상 작자의 마음과 생각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나는 책과 인터넷의 자료를 이용하여 두보의 삶을 되돌아보고 삼리삼별이 쓰여지기까지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아보고자 했다.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전에 나는 문득 수업시간에 이미 교수님이 언급 하셨던 두보와 이백의 전혀 다른 삶을 떠올렸다. 그들의 이름에 붙는 꼬리표가 시선과 시성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나, 이들 시인들이 시를 대하는 태도, 또한 시에서 엿볼 수 있는 그들의 삶에서 역시나 문학은 환경과의 관계가 불가분하다는 관점을 내포하고 있었던 유협의 문심조룡이 떠올랐다. 특히 두보의 경우를 볼 때 힘들고, 고된 삶의 나날 속에서 더 뼈아픈 현실에 닥쳐있을 때에서야 비로서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출현하곤 했는데, 문학을, 특히 시를 예술의 하나로 본다면 이것은 필연적인 결과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기억이 있는 영화 “서편제“, 워낙 한국의 정서와, 예술에 대표되는 영화라 생각되어 줄거리는 생략하지만, 그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진정한 소리를 위하여 딸의 눈이 멀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 주인공은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극대화된, 폭발직전의 한을 예술로 승화시킴으로 인해 소리의 완벽을 구현하게 된다. 그런 설움과 한이 가장 복받칠 때에 진정한 예술의 형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져 보았다.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이백의 시 또한 그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는 데에서 오는 그 슬픔과 애절함이 그를 시선의 경지까지 오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두보가 이백을 사모함의 기원이 바로 이러한 애절한 그의 마음을 시라는 문학에 매우 탁월하게 표현해내는 그러한 천재적인 풍격에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그의 삶을 짧게 돌아보자면, 두보(712-770)는 자가 자미(子美) 공(鞏)지금의 하남 장안 근처에서 태어났다. 초당 때 유명한 시인 두심언이 조부이다. 개원 때 오월과 제, 조를 유람하였고 천보연간에 장안에서 이백, 고적을 시대가 인물을 만든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시대가 만나 천재적시인을 출현시키게 했다는 데에 나의 고정적인 관념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능력은 그가 죽고 한참이 흘러서야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는 것이다.사실 짧게 정리한 두보의 삶이지만 그야말로 두보는 누구보다도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다. 그 시대의 문학인들 대부분이 관직에 등용됨으로 인하여 경세제민을 실현하고자 하는 커다란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두보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그의 어긋난 운명은 항상 그를 어려움과 고난의 길로 이끌었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삶의 애환이 담겨있으며, 특히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의 이유로 전쟁과 부조리한 사회에서의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 백성의 삶 등이 나타나는 시들이 많다. 또한 그가 소문난 애주가였으며, 가족애가 남달랐다는 것이 내가 주목한 점이었는데 특히나 부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여 그가 처치할 수 없는 상항이 아니고서야 그는 항상 부인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조금만 떨어지게 되어도 처자의 신상을 염려하는 애정이 넘치는 시를 짓곤 했던 것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그렇다면 그가 썼던 삼리삼별이란, 우선 삼리를 설명하자면 석호리와 더불어 역적 안경서가 업성을 공략하다가 사사명의 배반으로 당나라의 군대가 참패를 당하고 낙양으로 후퇴한 후 장안의 관문인 동관의 성들을 구축하고 대비했다. 두보는 이런 사실을 목도하고, 이전에 가서한의 20만 대군이 안록산에게 패하고 황하에 익사한 군사만도 수만명에 달했으며 가서한 자신은 안록산에게 항복하고 피살을 당했던 사실을 회상하며 다시는 반란군에게 패하지 말기를 기원하는 동관리와 건원 2년(759년) 두보의 나이 48세때 조정에서 좌습유의 벼슬을 그만두고 화주 사공참군으로 부임하러 갈 때 낙양 근교의 신안에서 조정에서 무자비하게 징명하는 백성들의 고통을 목도하고 이런 광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신안리가 있는데 이를 삼리라 한다. 삼별이란 저녁에 결혼한 새색시가 그 다음날 아침에 징집되어 가는 남형선고를 받듯 처참하고 암담한 기분에 휩싸였을 꺼라 짐작한다. 전쟁에 나가는 사람들은 살아 돌아 오기 힘들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을테니 말이다. 두 번째 단락은 특히나 슬픔을 고조시키는데 이는 전송하는 가족, 특히 어머니의 설움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을 대비시키면서 변함없는 자연속에서 아들을 잃게 되는 어머니의 심정, 특히 하얀강물이 흘러가는 가운데 푸른 산에서 나오는 통곡소리라 색체적 대비와 아울러 자연적인것과 인위적인 것이 대비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또한 살찌고 야윈 사내아이의 상황을 서술하는 등의 대비적인 문구를 많이 사용하였다. 마지막 세 번째 단락은 이러한 가족들을 위로하는 단락으로 대화체의 문장을 써서 정확한 상황묘사와 설득력있는 생각을 나타내주므로 인해 조금이나마 슬픔을 덜어내주고자 하는 사람들의 정감어린 묘사를 보여준다. 전쟁의 처참함 속에 징발된 사람의 애통함을 시로 잘 나타내 준 것 같다. 또한 문답체의 형식이 특히나 흥미로웠는데 마치 소설을 보는 듯 자연스럽게 읽어내려갈 수 있어 좋았다.두 번째 시는 동관의 관리라는 뜻의 동관리이다. 이 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동관이라는 지역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 필요가 있는데 동관은 섬서성 화음현 동북쪽에 위치해 있다. 천보 15년(756)에 이곳을 지키던 가서한은 안녹산의 반군이 쳐들어오자 관을 지키지 않고 관을 나서서 적과 싸우다가 대패하였고, 그 결과 장안이 반군에 함락되었다. 이처럼 이곳은 장안을 지키는 데 요충이 되는 곳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곳을 지나다 병사들이 애써서 성을 쌓는 모습을 보고 관리에게 묻는다. 그는 짐작하여 관을 보수하는 것은 당연 오랑캐를 방비하려는 것이냐고 묻는다. 이에 그 관리는 우선 대답대신에 시인에게 직접 높은 방어막을 보여주며 이 정도의 높이라면 날아다니는 새도 넘을 수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그 역시도 옛날 장안이 함락의 성패를 결정지었던 이 동관이란 지역의 중요함을 이미 알고 있어 더 이상은 같은 실수를 번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것 같다. 이 역시도 마찬가지로 시인이 직접 한밤에 관리가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민간인을 마구잡이로 잡아가는 상황을 보고 쓴 시이다. 이 시에서 주가 되는 인물은 늙은 할머니이다. 군대 징발을 위해 자신의 남편인 할아범까지 강제로 동원하는 관리와 자식을 전쟁에서 잃은 노모 사이의 대화를 통해 전쟁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과 처참함을 표현하였다. 두보는 전쟁의 실상을 한 가족의 침상을 통해 우리 앞에 드러내 보이고 있다. 늙은 어머니의 한숨은 즉 전쟁에 끌려가서 자식 셋이 모두 비참하게 전사했고, 젖먹이 가난아이와 성한 치마조차 없는 며느리의 곤궁함인데 이를 통해 비참한 전쟁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궁핍한 삶과 가족의 생이별 그리고 늙은 할아범 대신 자신이 징용에 응하여 혹시 살아있을지 모를 자식을 만나고 싶은 희망을 보여준다. 이는 또한 비단 이 노모만의 한탄은 아닐 것이다. 그 시대 어머니들, 그리고 가족들이 한 번쯤은 겪었을 만한 참혹한 현실이었을 것이며 그러한 고초를 화자인 두보 또한 너무도 잘 이해하는 부분이었을 것이기에 이렇게 시로 담아내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어디를 가든 어머니에 대한 자식 사랑은 한결같고 진실 되며 공통적인 것 같다. 몇 일전 우연히 보게된 방송에서 전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설문조사 한 결과 바로 “어머니” 가 1위의 자리를 차지했는데 사실 이러한 결과에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어머니라는 존재가 개개인의 마음속에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이 시에서 오직 어머니의 존재만은 강조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몇 줄 안 되는 부분에서이긴 하지만 아들을 여의고 고통받았을 노모를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답답하고 마치 이 시가 어머니라는 존재를 부각하는 것처럼 느껴져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입장과는 다르게 두보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 이러한 사랑을 받지 못했을 꺼라 짐작한다. 하지만 그 역시도 이러한 노모의 감정에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네 번째로 삼리에 이며 남편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심정의 토로에서 이별의 슬픔과 전쟁에 대한 혐오를 느낄 수 있다. 비유법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신혼이란 것에 대한 의미를 명확하게 해주었고 결혼 하자마다 이별한다는 표현으로 침상이 따뜻할 새도 없다는 예를 들어 신부의 외로운 맘과 신랑의 너무나 이른 징벌을 함께 잘 표현해 준 것 같다. 그를 너무 사랑하기에 전쟁터라도 따라 가고 싶은 신부의 맘이 한편으로 가엾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외로움과 슬픔도 잠시 뒤로하고 신부가 신랑에게 격려하는 모습에서 마치 우리 나라의 속깊은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맘이 따뜻해진다. 또한 한편으로는 씩씩함이 묻어나오는 것 같아 신랑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신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다섯 번째 수로별은 늙은 나이에 출정하게 된 어느 노인의 자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손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 전사하였으니 이제 늙은 노인까지도 피할 길은 없다. 그 역시도 나가 싸워야 하는 형편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길을 나선 사람들도 그 노인의 허약하고 늙은 모습에 가슴 쓰려 한다. 이젠 너무나 늙어버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전쟁터에 나간다는 것은 아마 부인과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저승길에 가는 것과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서로간에 그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노부부는 자신보다는 상대를 걱정하면서 슬퍼한다. 인생에는 반드시 “회자정리”라는 이치가 있던가? 그것은 인생의 불가역의 이치라서 그게 늙은 때이건 젊은 때이건 가리지 않는다. 노인은 자신을 위로하고 부인을 위로하면서 자신이 처해질 난리에 대해 마음 아파하면서 한편으로는 스스로 떨쳐 일어나려는 의지를 보이기도 한다. 아마 이곳에 나오는 지팡이라는 소재는 그 노인의 연령을 추측할 수 있게 하며 다행히도 치아가 남아있다는 부분은 나머지 부분은 성하지 않으며, 허하다는 말을 대신한 것 같다. 이를 더 잘 아는 노인의 부인은 나라가 원망스럽고 마음이 찢기는 듯 아팠을 것이다. 이런 부인을 노인은 아 같다.
우선 부를 읽기에 앞서 나는 소동파의 짧지만 작은 정보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인터넷 백과사전에 있는 소동파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소동파는 메이산에서 출생하여 자 자첨(子瞻), 호 동파거사(東坡居士)로 이름 식(軾)이었다.그는 소순(蘇洵)의 아들이며 소철(蘇轍)의 형으로 대소(大蘇)라고도 불리었다. 송나라 제1의 시인이며, 문장에 있어서도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22세 때 진사에 급제하고, 과거시험의 위원장이었던 구양 수(歐陽修)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후원으로 문단에 등장하였다.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이 실시되자 ‘구법당(舊法黨)’에 속했던 그는 지방관으로 전출되었다. 천성이 자유인이었으므로 기질적으로도 신법을 싫어하였으며 “독서가 만 권에 달하여도 율(律)은 읽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일이 재앙을 불러 사상 초유의 필화사건을 일으켜 서울로 호송되어 어사대(御史臺)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며, 이 때 나이 44세였다. 심한 취조를 받은 뒤에 후베이성[湖北省]의 황주(黃州)로 유배되었으나, 50세가 되던 해 철종(哲宗)이 즉위함과 동시에 구법당이 득세하여 예부상서(禮部尙書) 등의 대관(大官)을 역임하였다.그렇지만 황태후(皇太后)의 죽음을 계기로 신법당이 다시 세력을 잡자 그는 중국 최남단의 하이난섬[海南島]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7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던 중, 휘종(徽宗)의 즉위와 함께 귀양살이가 풀렸으나 돌아오던 도중 장쑤성[江蘇省]의 상주(常州)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폭넓은 재능을 발휘하여 시문서화(詩文書畵) 등에 훌륭한 작품을 남겼으며 좌담(座談)을 잘하고 유머를 좋아하여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었으므로 많은 문인들이 모여들었다. 당시(唐詩)가 서정적인 데 대하여 그의 시는 철학적 요소가 짙었고 새로운 시경(詩境)을 개척하였다. 대표작인 《적벽부(赤壁賦)》는 불후의 명작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다.적벽부의 탄생배경을 이야기 하자면 소식이 중국 호북송 황주에 유배되어 있을 때, 1802년 가을과 겨울 두 차례 황주 성벽 적벽에서 놀다가 지은 작품으로 7월에 지은 것을 '전 적벽부', 10월에 지은 것을 '후 적벽부'라고 한다.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이 레포트의 주제인 “객은 왜 슬퍼하였으며, 화자는 어떻게 객을 위로 하였는가”에 대한 원문을 첨부하고 나름대로의 내 해석으로 본론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사실 인터넷이나 책 속에서 원문을 그대로 해석한 자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나에게 있어 깊게 와 닿지 못함을 깨달아 미흡하지만 다시 재해석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客有吹洞簫者, 倚歌而和之, 其聲鳴鳴然, 如怨如慕, 如泣如訴, 餘音??, 不絶如縷, 舞幽壑之潛蛟, 泣孤舟之?婦. 蘇子?然正襟危坐而問客曰, 何爲其然也. 客曰, 月明星稀, 烏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 西望夏口, 東望武昌. 山川相繆, 鬱乎蒼蒼, 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 方其破荊州, 下江陵, 順流而東也, ??千里, 旌旗蔽空. ?酒臨江, 橫?賦詩, 固一世之雄也, 而今安在哉. 況吾與子, 漁樵於江渚之上, 侶魚鰕而友?鹿 . 駕一葉之扁舟, 擧匏樽以相屬, 寄??於天地, 渺滄海之一粟.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挾飛仙以?遊, 抱明月而長終, 知不可乎驟得, 託遺響於悲風.蘇子曰, 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而又何羨乎.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寓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樂. 客喜而笑, 洗盞更酌, 肴核旣盡, 盃盤狼藉. 相與枕藉乎舟中, 不知東方之旣白.세상에 정말 자그만 존재로 살다가 태어나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가는 삶을 슬퍼하는 퉁소 부는 객과 소동파의 만남. 그는 구슬프고 처량하고 한 맺힌 피리 소리를 깊은 어둠 유유히 흘러가는 작은 배 안에서 새들과 강물, 나무들 그리고 객들에게 전한다. 적막하고 조용한 깊은 어둠에서 빛이라곤 은은히 흘러 들어오는 달빛과 별빛들, 그 속에서 흥건히 취한 조각배속의 객들은 가슴 저미는 그 피리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가슴 한 켠이 자꾸 애인다. 소동파가 입을 연다“그대는 왜 그리 구슬피 퉁소를 부는가?”“이 큰 세상에 하루살이 인생처럼 저는 너무 미천하고 작기 때문이지요. 이곳은 그 옛날 조조가 주유와의 싸움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그곳인데 그 장엄하고 패기 넘치던 장군도 한 낮 세상사에선 점점 잊혀 져 가고, 세상은 다시 아무 일 없었던 듯 이렇게 유유히 흘러갑니다. 이런 현실에 하물며 저 같은 미물이 세상을 떠난다 한들 그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서럽고도 처량하지요. 한스럽지요. 덧없지요. 이렇게 배 위에서 피리를 분들 세상사 속에선 단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 찰나와 같으니 저는 영원할 수 없는 저의 존재와 이 순간이 그저 슬픔으로만 다가옵니다.” 하며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안타까워한다.한참을 생각한 소동파. 배는 계속 강물을 따라 흐르고 함께 탄 객들은 모두 조용히 그의 대답을 기다린다. 항상 자연을 벗 삼은 소동파. 그의 입에선 과연 어떠한 주옥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올까? 그는 잠시 후 서서히 입을 연다. 그의 입가와 눈가에는 잔잔한 미소를 담고 있다.“그대도 저 달과 물을 아는가?” 저 물은 아무리 흐른다 한들 어느 한 끝이라도 닿을 수 없고, 다 할 수 없으며 저 달은 지고, 차고, 또 다시 지니 이러한 물과 달은 영원을 향한다네. 그렇지만 자네. 다르게 한번 생각해 보세. 물은 끊임없이 한 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계속 흘러가고, 또 다른 물을 만나 합쳐지고 그러하여 항상 변하네. 달 또한 차고 다시 지어 한시라도 같은 모습을 지니지 못하니 이 또한 계속 변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도 마찬가지일세. 우리는 계속 태어나고 죽고, 또 태어나고 죽음에 영원한 인간세계를 이어가지만 결국 인생은 끊임없이 변화해 하고 나 자신도 성장 해 가므로 변화의 연장선에 서있게 되는 걸세. 비록 우리는 이렇게 태어나고 죽지만 우리보다 더 오랜 기간을 살아가는 자연을 벗 삼고, 그것을 함께 누려 즐거우면 그걸로 만족할 만 하지 않겠나?“과연 그러하다. 자연과 사람. 어느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나올 수 있는 결론은 천지차이인 것을 퉁소 부는 객 또한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 말은 듣고 난 후 객은 미소를 보이며 술잔을 건낸다. 다시금 그의 피리소리는 애달픈 소리를 내지 않을 듯하다. 그가 술을 들어 미소를 보인 것은 이 한없는 인생살이에서의 자신의 존재와 자연의 존재를 깨닫고 순리에 따라 살아가려는 의지를 보여준 듯 느껴진다.소동파의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과 보통사람이 한번쯤 하고, 또 해볼 법한 삶이 영원할 수 없다는 제한 속에서 소동파는 명확하고 긍정적인 답변으로 인간의 시름을 허물어 준다. 동파는 이로 인해 이러한 “부(賦)”를 다시금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주었고 그 만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를 시간의 순서에 맞게 차례로 그려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특히 “산” “새” “달” “물”등을 출연시켜 장면의 정밀하고 세부적인 묘사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영화의 파노라마가 지나가는 듯 느껴지게 해준다.그는 자연 속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인간을 한낮 자연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져버리지 않는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따르는 듯하다. 살다가 어려움이 닥치면 광활한 자연에서 다시금 해답을 찾는 그의 모습이 점점 자연을 벗으로 삼는 자연친화적이며 가끔을 현세를 초월하여 모든 도를 터득한 신과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 또한 그는 시에 꼭 그 상황의 분위기를 그려내는데, 달과 바람, 물 등의 그의 시의 친근한 주인공과 함께 더불어 나타나는 이 소재들이 시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생동감 있는 장면의 묘사는 마치 맑은 바람이 내 머리를 스쳐 가는 것 같으며, “탁탁탁”하는 뱃바닥 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며, 애처로운 피리소리가 내 귓가에 울리는 듯 하다.소식의 노래에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시의 소재는 과연 달이 아닌가 싶다. 소식은 일찍이 시를 지을 때는 자연과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여 자신의 생각과 처지를 시에 표현하였는데 특히 “전 적벽부”에서 나타난 달은 우리에게 또 다른 달의 의미와 인간의 삶을 말해주는 듯 하는데, 이는 삶의 굴곡진 변화는 동일하나 서로 다른 인간의 유한한 삶과 달의 영원한 영속의 대비로 인생은 짧고, 우주는 영원하다는 인생관을 여실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와 그 외에 그의 다른 시들을 살펴 볼 때 그의 성품은 누구도 따라 올 수 없으며, 그의 성격 또한 매우 낙천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몇 마디 되지 않는 그 말들로 사람의 근본적인 시름을 극복하도록 하고 기쁘게 다시 술을 들이키는 그의 모습이 정말 호탕하기까지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