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학]두보의 삼리삼별
- 최초 등록일
- 2006.05.31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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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두보의 삼리삼별을 읽고 느낀 감상문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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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그의 삶을 짧게 돌아보자면, 두보(712-770)는 자가 자미(子美) 공(鞏)지금의 하남 장안 근처에서 태어났다. 초당 때 유명한 시인 두심언이 조부이다. 개원 때 오월과 제, 조를 유람하였고 천보연간에 장안에서 이백, 고적을 만났다. 과거에 낙방하였으나 안사의 난 이전에 “우위솔부주조참군“에 임명되었다. 숙종을 알현하러 영무로 가던 중에 체포되어 장안에 압송되었다가 봉상으로 탈출하여 숙종을 뵙고 좌습유에 발탁되었다. 성도에 초당을 짓고 은거하다가 검남의 절도사 엄무에 의탁하여 검교공부원 외랑에 임명되니 세칭 두공부라 불렸다. 엄무가 죽자 기주에서 삼협을 지나 호북과 호남을 유랑하며 가난과 병환으로 상강의 배 위에서 별세하였다. 그는 실로 끊임없는 유랑생활의 삶을 살았다. 어느 하나 오래 정착함이 없거니와 그 이유들 또한 처참하기 그지없다. 전쟁의 피난, 자연재해, 또한 개인적인 곤궁 등으로 인해 그의 삶은 마치 일생을 세상의 고된 여행을 하러 온 사람처럼 생각되었다. 그의 이러한 끝없는 방황들은 실로 그를 훌륭한 시인으로 만들어주는데 발돋음 했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에선가 그 시대가 인물을 만든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시대가 만나 천재적시인을 출현시키게 했다는 데에 나의 고정적인 관념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능력은 그가 죽고 한참이 흘러서야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는 것이다.
사실 짧게 정리한 두보의 삶이지만 그야말로 두보는 누구보다도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다. 그 시대의 문학인들 대부분이 관직에 등용됨으로 인하여 경세제민을 실현하고자 하는 커다란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두보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그의 어긋난 운명은 항상 그를 어려움과 고난의 길로 이끌었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삶의 애환이 담겨있으며, 특히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의 이유로 전쟁과 부조리한 사회에서의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 백성의 삶 등이 나타나는 시들이 많다. 또한 그가 소문난 애주가였으며, 가족애가 남달랐다는 것이 내가 주목한 점이었는데 특히나 부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여 그가 처치할 수 없는 상항이 아니고서야 그는 항상 부인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조금만 떨어지게 되어도 처자의 신상을 염려하는 애정이 넘치는 시를 짓곤 했던 것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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