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시집」1. 작가와 작품세계(1) 연보장용학은 1921년 함북 부령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삶은 우리 민족에 있어 가장 암울했던 시기를 고스란이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사춘기나 청년기를 지나면서 갖추어야 할 올바른 자아, 민족관, 세계관 형성에 걸림돌이 되었다. 그는 어려서 조국을 떠나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경성공립 중학교. 와세다 대학에서 수학했다. 1942년에 와세다 대학 상과에 입학한 후 2학년이던 1943년때 학병으로 출전했다가 해방이 되어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1946년부터 청진여자 중학교의 교사로 근무하던 중 소설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남한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모국어 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에 서툴렀던 그는 사전을 베껴써가며 국어를 익히기도 하였다. 당시 문단의 사정에 어두웠던 약점에도 불구하고 1949년 를 연합신문에 연재하였고, 1950년 5월에 이 문예지에 추천되었으며 1952년에는 를 발표하였다. 장용학이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55년 작 요한시집과 1956년 비인탄생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들은 관념소설의 극치로 평가되며 기존의 소설 양식을 파괴하여 소설의 성립여부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1960년대 이후로는 주로 신문사 논설 위원으로 활약하였다.(동아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 장용학의 주요 작품으로는 , , , 등이 있다.(2) 작품세계장용학의 작품은 작가의 관념에 의해 다시 창조된 우화나 전설의 세계로 형상화되어 있고, 일인칭 화자의 내적 독백 형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특이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에세이로 오해되기도 했다. 이러한 기법 속에 숨어 있는 그의 소설적 주제는 현대의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한 고발과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한 실존주의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요한 시집」이 발표되던 1950년대 중반은, ‘실존주의’의 광풍이라고 할 만큼 프랑스 실존주의문학과 독일 실존주의 철학이 지식계에서 대유행하던 시기였다. 바로「요한시집 혼입시켜 인간의 실존과 자유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의 비인간화 과정을 통해서 현대인의 비극성을 부각시킨「비인탄생(非人誕生)」(1956), 현대사회가 지닌 제도적 횡포를 다룬「현대의 야(野)」(1960) 등을 발표하여 확고한 문단적 지위를 쌓았다.2. 「요한 시집」 줄거리소설 처음에 자리한 서(序)는 우화의 도입으로 시작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빛이 자그마한 창을 통해 굴절해서, 마치 프리즘처럼 작게 퍼지는 굴 안에 사는 토끼는 빛이 들어오는 바깥세상을 동경한다. 그리고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굴을 비집고 나가자 처음으로 맞는 강렬한 태양광에 소경이 되어버리고 만다. 토끼는 마침내 그 굴 주위를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았고 토끼가 죽자 그 자리에서 자라난 버섯은 후예들에게 ‘자유의 버섯’이라 불리며 칭송받는다.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상, 중, 하 에서는 실제 주인공인 ‘나’와 ‘누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동호’라는 이름을 가진 의용군으로 6.25 때 미군을 습격하다 미국 포로로 잡혔던 사람이다. ‘나’는 회상에 잠기며 같은 포로수용소에 있었던 ‘누혜’의 어머니의 집을 찾는다. 전쟁으로 자유에 대한 회의가 계속해서 그를 괴롭히는 가운데 ‘나’가 직면한 ‘누혜’의 어머니의 모습은 피폐하기 그지없다. 그녀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가 물고 온 쥐를 먹고 연명하는 막바지의 인생에 질겁한 ‘나’는 그녀를 어머니라 부르며 붙잡지만 그녀는 곧 ‘누혜’를 가는 목소리로 부르짖고는 죽고 만다. 그녀가 부른 ‘누혜’는 괴뢰군으로서 한 때는 인민의 영웅으로 훈장까지 받았던 사람이었으나 포로수용소에 온 뒤에 어떠한 자유를 위한 사상적인 조류에 휘말리려 하지 않고 오로지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포로로 온, 같은 인민군들은 그가 변절했다고 생각하고 그를 구타하며 괴롭히는 가운데 마침내 그는 철조망에 목을 메달아 자살하고, 그의 시체는 참혹하게 버려진다. ‘나’는 그와 같이 어울렸다는 이유로 그의 눈알을 들고 한참을 서 있게 된다.경의 모순 속에서 동호는 고립된 개인이다. 환경의 모순을 인식하고도 투쟁할 수는 없다. 동호는 누혜와는 다르게 모순투성이 현실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다. 대문에 동호는 개별적 인물 중 타협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밤은 고요히 깊어 가는데 누혜의 비단 옷을 빌려 입은 나의 그림자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그 고목 가지 아래에서 설레고만 싶어하는 것이었다.)동호는 누혜의 죽음을 목격한 장본인이고 누혜의 유서 속에 담겨 있는 관념적이고 자유를 갈구하는 투쟁의 연속을 내면화하면서 부조리한 현실세계에 대한 탐색과 절망적 인식을 비로소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동호의 변화는〔상〕부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동호가 누혜의 어머니를 만나고 그녀의 죽음을 목격하는 스토리에 중심을 두기 보다는 동호의 관념과 과거에 대한 회상, 환상적 이미지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동호는 자신이 지나온 삶을 객관화하여 반추하기 시작하고 과거의 동호와 현재의 동호 사이에 나타나는 심한 낯설음과 괴리감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나는 나의 일부분을 살고 있는 셈이 된다. 나는 나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동호는 나인가? 나는 나인가? 아까 동호를 불렀는데도 내가 끝내 대답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따지고 보면 의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따라다녔을 뿐이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나의 앞장을 내가 서서 나의 길을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없다! 한번도 없었다.”지금까지의 동호는 한 번도 주체적인 선택을 해본 적이 없이 무엇엔가 이끌려 살아왔던 존재이다. 그는 아이스케이크를 사다가 ‘동무’에게 붙잡혀서 의용군이 되었고, 남으로 이동하다가 폭격을 맞은 후 포로가 되었고, 인민군 포로들의 명령으로 누혜의 눈알을 들고 서 있어야 했다. 그는 이러한 삶을 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동호는 누혜의 자살과 유서를 통해서 자신이 세계의 법칙과 논리 속에 자신을 귀속시키는 비 주체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라리 한시바삐 거기에서 전신을 꾀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누혜가 왜 자살에 이르게 되었는지의 정신적 흐름이나 그가 살아온 과정은 유서에 명확히 제시되어 있다. 누혜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간직한 시기는 단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름이 지어지기 전까지일 따름이다. 누혜가 보기에 모든 사물들에는 이름이 있고 그 이름들이 세계를 구성한다. 여기서부터 누혜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그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존재이다. 누혜는 학교에서 사회의 모습을 배우기 시작하는데 자신의 앞을 십초 가량 앞에 뛰어가던 아이는 지각이 아니고 그 아이보다 십초가 늦었다고 지각으로 인정되어 벌을 받게 되는 현실세계의 모순들을 직접 느끼게 된다. 사회의 모순들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누혜의 생각은 성장하면서 그 폭이 넓어진다. 그는 중학생이 되면서 모범생이라는 틀을 스스로 벗어 버리고 싶었고, 자신의 책상 앞에는 라는 글을 붙였다. 그는 그것이 더 깊은 타율의 바다에 빠져드는 길목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누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당에 가입하게 되고 그 곳에서도 누혜의 갈등은 계속 된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전쟁에 참가하고 누혜는 포로가 된다. 그때서야 비로소 누혜는 진정한 자유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곧 누혜는 그가 누리던 자유가 한 순간의 흥분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노예도 자유인이 아니라 자유의 노예였다. 그는 자유가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한 노예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유도 하나의 구속이며 강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누혜는 자살하게 된다. 누혜의 자살은 진정한 자기를 보기 위한 시도라 볼 수 있다. 누혜는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한 기대를 늘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누혜의 죽음은 앞서 제시된 토끼의 죽음과 관련이 깊다. 누혜와 토끼는 모두 자신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모험을 시도하고 또 거기에서부터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깨닫고 죽어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사생아로 태어난 누다. 작품에서는 구체적 사건보다는 그 사건 사이사이에 이들의 내면의식이 부각된다. 때문에 인물들은 뚜렷한 행동의 연속성은 보이지 않아서, 작품에 드러나는 구체적인 사건은 나(동호)와 누혜가 포로수용소에 오기까지의 일과 누혜를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일, 누혜의 자살, 누혜의 어머니를 찾아간 일 정도로 줄일 수 있다.이 작품의 갈등은 ‘자유’를 얻기 위한 전쟁에 가려진 실존하는 인간의 소외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중심문제는 ‘진정한 자유는 가능 한가’에 있다. 전쟁으로 자유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누혜의 내적갈등과 그를 회상하고 그의 어머니를 바라보는 동호의 내적갈등이 주로 드러난다. 하지만 누혜가 자유와 평등의 이념 대립에서 빚어진 비극적 현장에서 자살을 함으로써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비극적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오히려 죽음이 제시된다.다음에 제시된 부분은 수용소로 온 누혜가 자유를 찾았다고 생각하다. 이내 자유에 대해 다시 회의에 빠지는 부분이다.노예. 새로운 자유인을 나는 노예에서 보았다. 차라리 노예인 것이 자유로웠다. 차라리 노예인 것이 자유스러웠다. 부자유를 자유의사로 받아들이는 이 제3노에가 현대의 영웅이라는 인식에 도달했다.(중략) 그러나 그것도 한 때의 기만이었다. 흥분에 지나지 않았다.(중략)그 노예도 자유인이 아니라 자유의 노예였다.자유가 있는 한 인간은 노예여야 했다!)(3) 시점/서술방식이 작품은 동호의 저녁 몇 시간 동안의 외적 움직임뿐만 아니라 연상에 의한 그의 정신세계의 흐름과 회상 및 누혜의 유서가 결합되어 있어 복잡한 형태를 띤다. 이 모든 것은 동호에 의해 1인칭으로 서술된다. 1인칭 소설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듯한 느낌을 독자에게 주기 때문에 독자들은 작중 세계에 대해 친밀감을 갖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요한시집」으로부터는 친밀감을 느끼기는 어려우며 오히려 독자들은 시종일관 작중 세계로부터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1인칭 서술상황의 특징은 주인공으로서의 다.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 작가소개(1) 연보1942년 8월 20일 경기도 가평군에서 태어났다. 1963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65년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9년 난장이 연작으로 제1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돛대 없는 장선(葬船)」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등단한 것은 1960년대 중반의 일이지만, 문단의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5년 난장이 연작의 첫 작품인「칼날」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1976년 난장이 연작「뫼비우스의 띠」,「우주공간」,「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등을 발표하였으며, 1977년 역시 난장이 연작「육교 위에서」,「궤도회전」,「은강 노동가족의 생계비」,「잘못은 신에게도 있다」등을 발표하였다. 1978년「클라인씨의 병」,「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필로그」를 이전의 난장이 연작과 함께 묶어「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작품집을 출간하여, 문학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함께 이룬 문제작으로 주목받았다.그 밖의 작품으로는「오늘 쓰러진 네모」(1979),「긴 팽이모자」(1979),「503호 남자의 희망공장」(1979), 「시간여행」(1983),「하얀 저고리」(1990)를 비롯하여, 소설집으로「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 「시간여행」과 사진 산문집「침묵의 뿌리」(1986), 희곡 「문은 하나」(1966)가 있다. )(2) 작품세계조세희는 7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가 등단한 것은 65년의 일이지만, 문단의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 , , 등으로 이어지는 난장이 연작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그의 난장이 연작은 70년대 한국 사회의 모순을 정면으로 접근하고 있다. 여기에서 난장이는 정상인과 화해할 수 없는 대립적 존재를 상징한다. 이를 통해 그는 빈부와 노사의 대립을 화해 불가능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학생 지섭이나 가정주부 신애조차도 난장이 편에 가담함으로써 화해의 가능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한국의 70년대 산업 사회의 병리(病理)를 가장 예민하고 감동적으로 포착한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2. 작품 줄거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2편의 단편이 연작으로 되어있는 형태이다. 중간 중간에 윤호와 지섭, 신애 등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이것을 하나로 엮어 전체적인 줄거리로 만들기에는 어렵고, 결국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난장이 가족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그래서 소설 전체의 중심이 되는 난장이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편에 대해 쓰도록 하겠다.이 이야기에는 한 가족을 중심으로 그 집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 집의 아들딸인 영수, 영호, 영희 이 세 사람의 각각의 시점에서 본 현실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시점을 고려하지 않고 다시 정리하면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채권매매, 파이프 수리 등의 일을 하며 겨우 돈벌이를 하는 난쟁이 아버지와 인쇄소에 나가는 어머니, 커서 학자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우등생이지만 가난하기에 학업을 접어야 했던 큰형 영수, 동생 영호 그리고 온갖 궂은일은 다 했던 영희까지 이렇게 다섯 식구가 살고 있던 난쟁이 가족에게 철거 계고장이 날아든다. 재개발로 인해 자신들이 살던 집을 헐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파트 임대권이 나오기는 하지만 임대료를 낼 돈이 없던 가족들은 집값이 오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옆집 주인의 딸인 명희와 영수는 사랑하는 사이었으나 명희의 집이 어려워 명희는 골프 캐디, 다방 종업원 등의 일을 하다가 임신을 하고 결국엔 자살해버린다.어느 날 그들은 아주 높은 가격에 집을 팔게 되고 밀린 빚을 갚고 이사도 갈 수 있게 되어 성남으로 떠나려 하지만, 아버지는 서커스단이 되어야 하겠다는 환상과, 달나라 여행의 환상에 빠져 집을 나가고, 영희는 이미 입주권을 찾기 위해 그것을 사들인 젊은 사업가를 따라 나선다. 영희가 따라간 사업가는 영희의 아름다움과 젊음에 반해 집에 들이고 비서 겸 동거인으로 지내며 매일 밤 영희를 유린하고, 어느 날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 입주권을 갖고 도망친판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쇠공을 쏘아 올리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잘못된 줄 모르고 살아가는 이 책에서 말하는 ‘마비된 사람’들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플롯 상 영수의 행동에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난장이는 현실의 모습을 심각하게 부각하되,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직접 투쟁을 실천하지 않고 현실의 현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둔 인물의 모습이다. 따라서 난장이는 중도적 주인공의 모습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너희들은 내가 이 땅에서 끝까지 고생하다 바짝 마른 몰골로 죽기를 바라고 있지? 힘든 일에 눌려 허우적거리다 숨을 거두기를 바라고 있는 것 아니냐?”(중략)“로스 씨의 편지를 받기 전에 보여줄 것이 있다. 지섭에게 말해서 쇠공을 쏘아 올려 보여주마.”)-영수: 영수는 소설 속 환경에서 분명한 사회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그는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한 노동운동가로서 자신의 계급을 대표하는 성격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행동하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주체적인 개인의 삶을 살려고 한다. 그러한 행동과 이념은 통일된다. 따라서 그들은 전형적-적극적 인물로 볼 수 있다.“우리가 말을 할 줄 몰라서 그렇지, 이것은 일종의 싸움이다.형이 말했다. 형은 말을 근사하게 했다.“우리는 우리가 받아야 할 최소한도의 대우를 위해 싸워야 돼. 싸움은 언제나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부딪혀 일어나는 거야. 우리가 어느 쪽인지 생각해봐.”)-지섭: 난장이와 같이 지섭도 달에 가고 싶어 한다. 지섭에게도 이 세상은 끔찍한 곳이다. 하지만 난장이와는 다르게 현실인식과 노동운동가로서의 적극적인 행동을 같이 한다. 윤호에게 도도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난장이네 동네에 데려가기도 한다. 영수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지섭 또한 전형적-적극적 인물유형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그는 달에 세워질 천문대에서 일할 사람은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달은 황금색의 별세계였다. 그는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너무나 끔찍하다고 했다. (족을 만나게 해주겠다면서 윤호를 끌고 나갔다.(중략) 그 동네에선 아주 이상한 냄새가 났다. 윤호는 발밑에 쓰러져 있는 술 취한 사람들을 밟지 않기 위해 다섯 번이나 껑충껑충 뛰었다. )“그게 모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죄야. 너의 할아버지는 무서운 힘을 마음대로 휘둘렀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의 요구에 따라 일한 적이 이때까지 없었어. 너의 할아버지는 모든 법 조항을 무시했어. (중략) 너의 할아버지가 죽은 난장이 아저씨의 아들딸과 그 어린 동료들에게 주어야 할 것을 다 주지 않았어. )-신애: 신애는 소시민적 유형의 인물이다. 신애는 열심히 바르게 살아가지만 아주 힘들게 살아간다. 바르게 살아가는 자신이 왜 힘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의식은 내면에 지니고 있지만, 긍정적 방향도 아니고 부정적 방향도 아닌 중간적 성격을 지님으로써 부정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반영하는데 적절한 역할을 한다.공무원 월급표를 보면 뒷집 남자의 월급은 남편의 월급보다 사뭇 적다. 단출한 식구에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자기네는 조용한데, 많은 식구에 적은 월급을 받는 뒷집은 흥청댄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귀가 아프게 들어온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뒷집에만 온 것 같다. 뒷집에 가난은 없다. 그래서 신애는 생각한다. 저 집은 도대체 어느 편인가? 우리는 또 어느 편인가? 그리고 어느 편이 좋은 편이고, 어느 편이 나쁜 편인가? 도대체 이 세상에 좋은 편이 있기는 한가?)(2) 사건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이 소설에서 보이는 주요 갈등이다. 이러한 갈등을 나타내는 여러 사건이 있지만 그 중 갈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은 난장이 집의 철거 사건일 것이다. 난장이 일가가 천 년을 걸려서 지었다는, 그만큼 절대적인 가치를 가졌던 집이 위기에 오르면서 이야기의 본격적인 갈등은 시작된다. 가진 자든, 못 가진 자든 사람에게 '집'은 얼마나 큰 의미인가? 1970년대를 살았던 소외계층들이 입은 피해가 어디 집뿐이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집'이 다른 모든 것을 대표해 주고 있는 것이다.이는 자기를 버리고 떠난 사장 찾기를 포기하게 된다.“그래. 그 난장이의 큰아들이 저 안에 들어가 있었어.” “왜?”“사람을 죽이구.” 앉은뱅이는 아무 말 안했다.“난장이가 늘 자랑을 한 아들야.” (중략) “사람을 죽였는데 어떻게 나왔지?”“죽어 나왔어.” “그 아이가!”“저희 아버지 하고는 달랐지.” “아주 다르게 죽었군.”(중략)“그러니까 자네 주머니 속의 칼은 이제 버리는 게 좋아.”이 소설의 인물들은 부조리한 현실을 보여준다. 몇몇 인물들은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싸웠지만 끝내 좌절하며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 마지막에 수학 선생이 소극적인 전망을 제시할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비판적 리얼리즘 계열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서쪽 하늘이 환해지며 불꽃이 하늘로 치솟으면 내가 우주인과 함께 혹성으로 떠난 것으로 믿어달라. 긴 설명은 있을 수가 없다. 내가 아직 알 수 없는 것은 떠나는 순간에 무엇을 대하게 될까 하는 것뿐이다. 무엇일까? 공동묘지와 같은 침묵일까? 아닐까? 외치는 것은 언제나 죽은 사람들뿐인가? 시간이 다 되었다. 지구에 살든, 혹성에 살든,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자유이다.)(3) 시점『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뫼비우스의 띠」로 시작하여 「칼날」,「우주여행」,「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육교 위에서」,「궤도회전」,「기계도시」,「은강 노동가족의 생계비」,「잘못은 신에게도 있다」,「클라인 씨의 병」,「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필로그」로 끝을 맺는, 총 12편의 단편이 연결된 연작소설이다. 먼저 주목해 볼 만한 것은 이 연작형태이다. 12편의 단편은 소설의 시점이 한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편마다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찰자 시점과 등장인물들의 주인공시점으로 단편마다 다른 관점에서 그려져 있다. 소시민계층인 난장의 일가의 영수와 영호, 영희를 통한 시점, 자본계급층으로 볼 수 있는 은강 그룹 사장의 아들 경호를 통한 시점, 그리고 중간자? 중간계층 정도로 나타낼 수 있는 신애, 윤호의 관찰자적 시점으로 그려져 있다.이러한된다.
「모죽지랑가」-죽은 영웅의 노래「모죽지랑가」는 제목에 담긴 뜻 그대로 죽지랑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노래이다. 그를 따르던 낭도였던 득오가 지었다고 전한다. 일반 백성들에서부터 왕실에서까지 불려질 정도로 향유계층이 다양했던 향가는 다양한 계층의 신라인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특히「모죽지랑가」는 신라사회를 논할 때에 빼놓을 수 없는 화랑도와 향가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노래가 화랑도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랑집단 사이에서만 불렸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향유계층이 다양했던 만큼 그들 사이의 향가교류가 없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그런데 이 노래에는 특정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오늘날에도 갑남을녀의 사연을 주제로 한 노래는 많이 있지만, 특정 개인을 주인공으로 노래 지어 부르는 경우는 흔치않다. 지은이 득오가 그를 따르던 낭도였고 그의 덕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죽지랑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노래에 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특정 개인이 그 시대의 노래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죽지랑은 적어도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던 듯 하다. 노래와 함께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죽지랑은 김유신과 더불어 4대에 걸쳐 재상을 할 정도의 국가 중신이었다. 당대 신라 사회에서 죽지랑은 유명인사였다. 득오를 비롯한 화랑의 무리에게는 영웅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으레 그림자가 따르듯이, 찬란하기만 했던 화랑도의 위상은 통일신라사회에서 쇠퇴하기 시작했고 늙은 죽지랑은 힘이 없어 졌다. 그런 영웅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목소리에서는 연민과 애처로움이 묻어나는 듯하다. 하지만 화자가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웅인가 아니면 죽은 영웅인가.숨 막히는 도시의 무거운 하늘을 받치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 앞에서 사람들은 매캐한 공기를 마시며 살아있는 영웅 이순신을 본다. 영웅은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동상과 같은 존재다. 올려다보아야만 하는, 우리와는 다른 존재일 때에 영웅은 살아있는 것이다. 작가 김훈이 소설『칼의 노래』를 내었을 때, 사람들은 그 속에서 우리와 같은 인간 이순신을 보았다고 했다.『칼의 노래』는 영웅 이순신을 죽였다.「모죽지랑가」를 보는 오늘날 우리들은 그 안에서 영웅 죽지랑이 아닌, 인간 죽지랑의 모습을 본다.「모죽지랑가」에서 죽지랑의 모습은 영화로웠던 시절을 뒤로하고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모죽지랑가」는 영웅 죽지랑을 죽였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신라인들은 이 노래를 들으며 자신들의 어렸을 적 영웅을 기억 속에 묻고, 자신들과 같은 인간 죽지랑의 모습을 가슴 속에 느꼈을 것이다. 영웅은 죽었다. 그리고는「모죽지랑가」를 통해 득오의 가슴 속에서, 많은 신라인들의 가슴속에서, 자신들과 같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힘을 잃은 영웅의 모습은 화랑에게는 비장함으로, 민중에게는 연민으로 다가왔을 것이다.영웅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인간을 느낀다.「모죽지랑가」에서 죽지랑의 모습은 인간적인 모습이다. 이 노래의 화자가 그리는 것은 영광스러웠던 지난날의 영웅 죽지랑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죽어버린 영웅, 인간 죽지랑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화자가 이 노래를 통해 단순히 영웅 죽지랑의 모습을 그렸다면,「모죽지랑가」는 그저 그런 노래로 쉽게 잊혀져 갔을 것이다. 오늘날까지 전해졌을지도 의문이다.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노래는 불리지 않는다. 그들과는 다른 위대한 존재를 그들 삶에 굳이 끌어들일 이유는 없다. 오늘날 우리들도 왠지 나의 사연인 것 같은 노래들을 더 자주 부르고 오래 동안 기억하지 않는가. 불리지 않는 노래는 의미가 없다. 불리지 않는 노래는 박제된 채로 시간 속에 묻힐 뿐이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동상이 세워질 수 없다.본래 노래이건만 그 가락이 전하지 않는 반쪽짜리 노래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모죽지랑가」를 대할 때마다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가 무엇인가 하니, 그것은 특이하게도「I'll be missing you」라는 팝송이다. 우리 옛 노래 향가에 팝송이 겹쳐져 생각되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요상하다. 두 노래는 시대는 고사하고 그 전하는 가락이나 말도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다름을 넘어서 두 노래가 담고 있는 감정이 너무도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더욱 두 노래가 겹쳐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I'll be missing you」는 한 개그 코너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적이 있고 여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자주 삽입되는 노래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귀에도 익숙한 노래이다. 노래의 얽힌 사연부터「모죽지랑가」와 유사하다. 이 노래는 미국 서부 갱스터 래퍼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Notorious B. I. G’가 죽고 나서 그의 측근이던 ‘puff우리가 무대를 흔들던 때가바로 어제 같아요내가 노래를 붙이면 당신이 곡을 완성했어요우린 돈을 벌기 위해이 바닥에서 살아온 게 아니라는 걸사람들은 알아야 해요인생은 항상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저에게 당신의 의미는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요당신은 떠났지만 우린 여전히 한 팀이에요이제 당신 가족을 통해 당신의 꿈을 봅니다현실이 된 지금 제 심정을 숨기기 어려워요내가 받는 고통은 상상하기도 어렵지요사후의 세상에 살고 있는 당신의 숨소리를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할게요한 걸음 한 걸음 마다, 동작 하나하나 마다매일 매일, 난 항상 기도 드려요난 당신을 그리워 할 것이에요daddy’가 그를 그리며 부른 노래이다.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 사람 옛 노래 향가와 속요일년 전 쯤에 모 방송국에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가요 100곡을 선정한 일이 있었다.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연령에서 조사를 하여 선호하는 노래를 선정한 것인데, 그 노래 순위목록에서 일정한 규칙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장르도 트로트에서부터 댄스, 발라드, 랩까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한 곡 한 곡의 노래가 유행하여 불려지던 시대를 생각해보면 근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네의 역사가 됨을 볼 수가 있었다. ‘눈물 젖은 두만강’과 ‘울고 넘는 박달재’에서부터 ‘돌아와요 부산항’에, ‘아침이슬’을 거쳐 ‘난 알아요’와 잘못된 만남 그리고 아이돌 그룹의 노래들은 우리네의 고난과 역경 그리고 극복의 근현대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이 노래들을 보고 이러한 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가요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 민중에게 불려진 노래다. 그들이 힘들고 슬플 때에도, 그리고 기쁘고 행복할 때에도 그들 곁에 함께 불려지던 노래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안에는 그들의 생각이나 정서, 생활모습이 잘 녹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 가요를 보면 그 시대상과 그리고 거기에서 이어진 지금 우리의 모습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옛 사람 옛 노래 향가와 속요」에서는 신라 시대에 주로 불려지고 고려 시대에까지 그 명맥을 유지한 향가와, 그 뒤를 이어 고려 시대에 주로 불려지고 조선시대까지도 불려진 속요를 소개하고 있다. 향가와 고려가요는 둘 다 노래다. 향가는 왕실에서도 향유되었지만 주로 민중들에게 불려지던 노래이고, 속요는 고려궁정에서 불렸던 노래이지만 대부분 삼국 시대 이래로 각 지방에 전해오던 일부 민요와 고려 당대의 민요에 그 바탕을 둔다. 두 노래 모두 민중에 뿌리를 두고도 왕실까지 향유되었던 공통점이 있다. 이 둘은 오늘날의 가요와 같이 계급을 넘어서, 신라와 고려의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불려졌던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가요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녹아 있다. 따라서 향가와 속요에서는 옛 노래 뿐만 아니라 옛 사람들의 모습까지 녹아 있다. 책의 제목부터가 ‘옛 사람의 옛 노래’가 아닌 ‘옛 사람 옛 노래’인 것은 그러한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본다.먼저 향가에는 어떤 것이 있고 어떤 옛 사람이 나타났을까. 신라 사회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불교와 화랑도이다. 이를 증명하듯 현존하는 향가에서도 불교와 화랑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작품이 많다. 하지만 이들 작품이 불교와 화랑도의 내용에 침윤되었으되, 대다수의 작품이 딱딱한 교리에 기울기보다는 순수한 서정성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향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향가는 화랑과 불교의 이념서로서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향가가 서정성을 유지한 채 균형을 잃지 않았기에, 당대의 대표적인 사회모습이었던 불교와 화랑도를 잘 반영할 수 있지 않았을까.향가는 불교와 화랑도 외에도 다양한 내용을 포용하고 있다. 노랫말의 다양한 내용을 통해 볼 때에 향가는 매우 포용력이 있는 장르다. 신라시대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사람과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사회였다. 비록 소수의 작품만이 전해오고 있지만, 향가 속에는 다양한 신라인들의 모습과 사회상이 드러난다. 그런데 향가에 드러난 신라인의 모습을 보면 세월이 지나도 인간의 근본적인 관심사는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향가가 다루고 있는 문제들은 오늘날 우리가 가진 관심사와 닮은 점이 많다. 남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 삶과 죽음에 관한 것, 신앙에 관한 것, 정치와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코자하는 마음이 담긴 것에서부터 개인적으로 체험한 억울함이라든가 고뇌를 담은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작품도 있다.「헌화가」와「서동요」를 보면 오늘날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랑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신라인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이야기는 무한한 노래의 소재를 제공한다. 다른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는 법이다.「헌화가」에서는 우연한 기회, 우연한 장소에서 어느 귀부인을 만나게 되어 느낀 애정을 소박하게 노래한 신라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헌화가」에 드러나는 사랑은 시골 늙은 영감의 짝사랑이다. 여러모로 보아 수로부인은 이 늙은 영감이 사랑할 수 있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런 사랑을 수로부인은 알기나 했을까. 그러한 안타까움은 이 노래를 듣는 신라인들의 흥미를 더했을 것이다.「서동요」를 보면 “얼레리 꼴레리 누구누구는~누구하고~”라고 놀려대는 골목 어린아이들의 목소리와 리듬이 귓전에 맴도는 것만 같다. 필자도 코흘리개 시절 많이 흥얼거렸을 멜로디이고 누구나 어릴 적에 한번쯤 해봤음직한 놀이다. 그래서인지 서동요는 왠지 친숙하게 느껴진다. 본래 우리 것이지만 향가라는 오래된 우리네 기억 속에서 발견하는 이런 익숙함은 여간 반갑지 않다. 그 아이들은 내용을 알기는 하고 부른 것일까? 아마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 노래를 듣는 어른들의 반응이나 본능적인 느낌으로 미루어 보아, 자신들이 부르는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놀릴만한 내용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필자가 그런 놀림을 받았을 때를 회상해보아도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던 느낌이 남아있다.「제망매가」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신라인들의 깊은 사고가 드러난다. 인간이 생각을 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삶과 죽음의 경계는 풀리지 않는 것이었다. 문명이 발달했다고 하는 요즘에도 인간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한 점에서 삶과 죽음의 문제는 인간의 근본적인 고민거리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 세상 살다가 명이 다해서 죽게 되면 살아남은 자는 슬픔을 이기지 못한다. 그렇지만「제망매가」는 그 비통함을 가식 없이 노래했다. 더군다나 작자 월명사는 낭도승임에도 불구하고 평상인의 자유분방한 감성을 지니고자 한 열린 정서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제망매가」는 뛰어난 서정성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원왕생가」와「도천수대비가」에는 초월적인 존재와 세계에 대한 신라인의 신앙이 들어난다. 초월적인 존재 앞에 인간의 모습은 한없이 나약하다. 한없이 동경하고 바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 아닐까.「원왕생가」는 저승에서의 극락왕생을,「도천수대비가」는 사랑하는 자식의 눈이 밝기를 추구하지만 두 향가 모두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호소하면서 시적인 긴장과 정서가 고조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특히「도천수대비가」에 드러나는 눈 먼 아이 어미의 간절한 모성은 나약한 인간이 보일 수 있는 가장 강한 모습이 아닐까.이렇듯 한편으로는 내세를 지향하면서 부른 노래로부터 또 한편으로는 일상의 생활에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다양한 체험을 노래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향가는 여러 가지 삶의 모습과 정서와 사유, 고뇌와 번민을 아우르면서 오랜 세월동안 신라인들과 애환을 함께 했다.다음으로 속요에 드러나는 고려인의 모습과 고려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속요에는 대부분 고려의 당대의 민요와 삼국 이래로 각 지방에 전해오던 일부 민요까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속요의 기반은 넓고 그 연원도 매우 오래된 것이다. 뿌리를 민요에 두고 있기 때문에, 궁중에서 불려졌지만 속요에는 자연스럽게도 민간의 정서와 애환이 짙게 스며 있다. 이러한 정서 중에서도, 향가가 다양한 내용을 수렴하고 있는 반면에 속요는 주로 사랑과 기다림 그리고 이별 등 남여상열에 치우친 면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매우 다양한 형식과 표현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속요의 특징이다. 사랑과 이별에도 여러 모습이 있을 것이다. 속요에 그 다양한 옛 사람의 사랑이 나타난다.「만전춘별사」를 두고 흔히 문란하고 저속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어 죽을지언정 임과 함께 하고 싶다는 화자의 모습에서 그 사랑의 애처로움과 고결함을 읽을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어느 영화에서 봄직한 장면이다. 영화에서 이러한 장면을 만났다면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으로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왜「만전춘별사」에서 이러한 모습은 음란한 것으로 싸잡아 인식하는지 의문이 든다. 고전은 마냥 점잖은(?) 것이고 이 노래는 원래 문란한 내용의 노래라고 선입견을 가지고 접근하는 우리의 태도 때문은 아닐까. 물론 후반부에는 다소 야한 표현들이 나오긴 하지만 이 작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보면 고전문학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정읍사」를 보면 김동환의 서사시「국경의 밤」이 생각난다.「국경의 밤」에는 밀무역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 순이가 바깥에서 나는 조그마한 소리에도 마음 졸이며 남편의 무사 귀환을 비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렇듯「정읍사」에서도 소중한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화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시대를 초월해서 소중한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비슷한 것 같다.
백석, 눈을 맞고 선 굳고 정한 갈매나무1. 백석평북 정주에서 출생(1912년), 오산고보를 나와 일본에 유학한 후 조선일보 기자생활도 하고 함흥으로 내려가 영생여고보에서 교직생활도 하다가, 일제말기 만주로 건너가 생활을 위해 측량서기도 하고 세관업무에 종사도 했다는 백석 시인의 연보는 해방 후 귀국해서 신의주에 머물렀다는 것 외에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40년대 초까지는 작품 활동도 왕성하게 했지만, 해방 뒤에는 기껏 3편을 발표, 그것도 친구인 화가 허준이 소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북쪽에서도 별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활동을 거의 멈추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 뒤 북쪽에서 발표한 「공무여인숙」등 10여 편의 시와 동화 시 「집게네 네 형제」, 그리고 「동화문학의 발전을 위하여」등의 작품이 발굴되었다. 남한의 정보당국은 그를 월북 작가로 분류, 시집을 금서 속에 포함시켰다. 그 뒤 제 6공화국 아래서 약간의 융통성이 생기면서 그의 시집은 해금이 되어 햇빛을 보게 되었다.2.『사슴』시편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팔모알 상이 그 상 우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盞 이 뵈었다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울파주 밖에는 장꾼들을 따라와서 엄마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酒幕」전문이 시는 머리에 세 개의 그림을 그리게 한다. 먼저 호박잎에다 붕어곰을 싸오는 주막집 아들아이다. 그 아들아이는 이름이 범이고, 장(늘)고기를 잘 잡고, 앞ㄴ가 뻐드러졌고, 또 나와 동갑이다. 말하자면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은 생략된 관계대명사를 고리로 ‘아들아이’를 수식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잔’이 놓여 있는 ‘빨갛게 질(길)든은 팔모알 상’ 하나만으로 극히 인상적으로 그린 주막집 부엌의 모습이다. 빨갛게 길든 팔모알 상과 그 위에 놓여있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잔이라는 소품이 그 주막이 그리 막돼먹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효과도 가진다. 마지막으로 주막 밖 풍경이다. 주막 울파주(울바자) 밖에는 어미 말이 매여 있고 망아지가 그 젖을 빨고 있다. 장짐을 지고 장꾼을 따라온 말이다.앞니가 버드러진 주막집 아들아이, 해장국 끓는 냄새, 지짐 냄새가 자욱한 주막집 부엌,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장꾼들, 울파주 밖의 질척거리는 길과 말똥 냄새……. 서도의 장날 풍경을 언어로 그린 한 폭의 풍속화 같다. 이 시는 서도 사투리를 골간으로 하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직조하는 토속적 조선 정조를 기초를 하고 있다. 또한 이 시는 우리를 한 세대 이전의 삶의 모습, 인정과 풍속의 세계로 데려다 준다. 그러나 그 표현양식은 토속적이거나 재래적이 아니다. 우리말에 없는 관계대명사며 도치법 등 서구적 표현 방식을 과감히 채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명확한 이미지를 제공하고 집중을 중시한 점에 있어 그는 모더니스트요 이미지스트이기도 하다.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내려간 지 오래다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어가고 나는 동말랭이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부르며 울다가시악이 나서는 등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을 대님오리를 모두 던져버린다장날 아침에 앞 행길로 엄지 따라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커다란 소리로- 매지야 오나라- 매지야 오나라새하러 가는 아배의 지게에 지워 나는 山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맞구멍난 토끼굴을 아배와 내가 막어서면 언제나 토끼새끼는 내 다리아래로 달어났다나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오리 망아지 토끼」전문이 시 역시 백석 시인의 다른 시와 마찬가지로 서도 사투리에 대한 약간의 예비지식을 필요로 하는 시이다. ‘오리치’는 오리창애로 오리를 꾀어 잡는 틀, ‘아배’는 아버지, ‘동비탈’은 뚝 비탈. ‘동말랭이’는 뚝마루, ‘시악’은 고약한 심술, ‘엄지’는 어미말, ‘매지’는 망아지, ‘새하려’는 나무하러로 읽으면 된다. 세 연 중 첫 연은 오리가 주제요 논이 무대다. 오리(들오리)를 잡는 창애를 놓기 위해 아버지는 논으로 내려가서는 영 올라오지 않는데 오리는 날아가버리고, 화자는 뚝 위에서 아버지를 찾다가 심술이 나서 아버지의 신이며 버선이며 대님을 개울물로 던져 버린다. 두 번째 연은 논과 뚝 대신에 행길이 무대다. 장보러 가는 장꾼과 장짐을 실은 어미 말을 따라가는 망아지, 그리고 그것을 보고 망아지를 사내라고 생떼를 쓰는 화자, 망아지를 향해 건성으로 ‘매지야 오나라’ 하고 소리치는 아버지가 인상적이다. 셋째 연에서는 다시 장면이 바뀌어 이번에는 산이 된다. 나무하러 가는 아버지의 지게에 지워진 어린 화자, 맞구멍난 토끼굴을 막아서는 아버지와 화자의 숨결 등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시인의 유년시대의 기억을 토대로 한 것일 터이지만, 동화적 시각 없이는 불가능한 시이다. 색깔을 엷게 칠한 담채화와 같은 기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山뽕잎에 빗방울이 친다맷비둘기가 난다나무등걸에서 자벌기가 고개를 들었다 맷비둘기켠을 본다-「산비」전문이 시를 읽으면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하는 산비탈 밭이 떠오른다. 산과 들이 새파랗게 물든 초여름날 저녁 나절, 멀리 내려다보이는 마을에서 저녁 먹으라고 아이를 부르는 소리도 들리고, 산비에 묻어오는 싱싱하고 비릿한 풀냄새도 난다. 산뽕에 빗방울이 치고, 멧비둘기가 일어나 날고, 자벌레가 나무등걸에서 고개를 들어, 멧비둘기 편을 보고 하는, 아주 간단한 내용이면서도 이 시는 산골 마을의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재미, 이것이 백석 시를 읽는 또 하나의 재미로, 시를 읽으면서 낯선 서도의 한 세대 이전의 삶을 상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3.『사슴』이후 시편「성외(城外)」도 그 시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가 구성지고 애처롭다.어두워 오는 城門밖의 거리도야지를 몰고 가는 사람이 있다엿방 앞에 엿궤가 없다양철통을 쩔렁거리며 달구지는 거리 끝에서 江原道로 간다는 길로 든다술집 문창에 그느슥한 그림자는 머리를 얹혔다-「성외(城外)」전문성문 밖은 어두워 오고, 한 사람이 장에서 도야지를 사서 몰고 간다 …… 엿을 받으러 온 사람들도 다 돌아가 엿궤 하나가 없는 엿도가앞, 그곳 강원도로 가는 길로 달구지가 양철통을 찔렁거리며 밤길을 재촉한다 …… 그 양철통 속에는 양잿물이나 간수가 들어 있겠지 …… 그 성문 밖에 있는 술집, 며칠 전까지만 해도 머리를 땋아내렸던, 창문에 어리는 야윈(그느슥한) 그림자는 머리를 얹었다 …… 머리를 얻는다는 것은 기생이 몸을 허락함을 뜻하니 돈 많은 스폰서라도 얻었나 보다 …… 산문으로 풀면, ‘양철통을 쩔렁거리며’ 강원도로 가는 길로 든 달구지와 머리를 얹힌 ‘술집 문창에 그느슥한 그림자’를 선명하게 대비시켜 그려낸 개화기 이후의 우리 산읍의 풍속도가 된다.제 6공화국 아래서 그의 시집이 해금이 되어 빛을 보게 되었고, 이동순 시인이 엮은 『백석시전집』의 발간(1987)이 계기가 되어 김자야라는 익명의 여성이 나타나『내 사랑 백석』일는 에세이집을 내어(1995) 백석 시인과의 숨은 사랑이야기를 털어놓기에 이르렀다.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 할머니로 밝혀진 자야는, 그 자야라는 이름도 백석 시인이 수자리간 낭군을 그리는 여인의 심회를 읊은 이태백의 시 「자야오가(子夜吳歌)」에서 따서 주었다고 고백하면서, ‘당신은 학교의 일과가 끝나기가 무섭게 도망치듯 나의 하숙으로 바람같이 달려왔다. 우리는 새삼 그립고 반가운 마음에 두손을 담뿍 잡았다. 꽁꽁 언 손을 품속에 데워서 녹이여 할 양이면 난폭한 정열의 힘찬 포옹, 당신은 좀처럼 풀어줄 줄을 몰라했다’고 백석 시인이 잠시 내려가 있던 함흔에서의 로맨스를 털어놓았다.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눈과 흰 당나귀와 나타샤라는 순백의 이미지의 아름다운 시「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바로 그녀에게 바쳐진 것이다.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나타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나타샤와 나는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나와 나타샤와 당나귀」전문나타샤는 톨스토이 장편 「전쟁과 평화」의 여주인공 이름이지만 북국의 소녀의 보통명사라는 성격이 더 짙은 드, 흰 당나귀는 프랑스의 시인 프랑시스 잠이 좋아하던 터로서 백석, 윤동주 시인이 다 같이 좋아하던 이미지로,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잠‘과 도연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하고 백석 시인의 다른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도 나온다. 출출이는 뱁새, 마가리는 오막살이. 이 정도의 예비지식만 가지면 누구나 아름다운 사랑의 시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