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 소설의 심층에 자리잡은 페이소스1. 패배자들의 만가페이소스Pathos는 일반적으로 ‘비애’의 감정을 지칭하는 말로서 논리나 이성과는 반대되는 용어이다.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서 널리 쓰이는 페이소스는 주로 자본주의 체재 하에서 하층민, 즉 밑바닥 인생들이 겪는 회한 및 수많은 애상, 비련의 감정으로 표현된다. 박민규는 초창기부터 꾸준히 이러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피해자 내지 패배자들이 겪는 페이소스를 그려왔다. 이나 등의 장편으로 시작된 그의 작품세계는 와 을 거치며 독특한 문체와 기발한 형식 등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러한 형식적인 부분만으로 박민규 소설의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뭔가 부족하다. 그보다 더욱 깊이있게 평가되는 것이 바로 작품 전반에 깔린 페이소스이다.그의 소설은 영화로 보자면 주성치의 영화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주성치가 영화속에서 꾸준히 그려온 밑바닥 인생의 페이소스는 박민규가 그려온 자본주의사회의 패배자들이 부르는 만가(輓歌)와 매우 흡사하다. 주성치가 오랜 무명을 겪으며 페이소스를 갈고 닦았듯이 박민규는 다년간의 직장생활로 그의 작품의 밑바탕이 되는 페이소스를 획득했다.2. 현실인식과 체념직장인으로서 IMF의 한가운데를 통과한 그에게 대한민국의 수컷들이란 먹고살기 위해 치열하게 발버둥치지만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그래서 결국 멸종되어 사라져야만 하는 이다.그리고 - 과도기고 뭐고 간에 여하튼 지구가 멸망할지 모른다는 1999년이 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인류는 과도기만을 보내다가 멸종한 우주의 유일한 종이 될 것 같았다. 마치 회사 생활만 줄기차게 하다 돌연사로 최후를 마감하는 한 명의 인간처럼.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中)그의 데뷔작 과 에서는 이러한 작가의 사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아메리카의 영웅집단의 일원에서 대한민국의 소시민으로 전락하는 , 일류대 출신의 대기업 사원이 실업자로 추락하는 에서 그는 어느 누구도 이렇듯 쉽게 인생의 함정에 걸려 자본주의시스템의 패배자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추락한 인물들이 있는가하면, 처음부터 바닥에서 올라오지 못하고 발버둥치는 자들이 있다.의 주인공은 가난한 실업계 고등학생으로, 빈곤한 가정형편 때문에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뛰는 처지다. 그의 현실은 빈곤층이자 사회적 약자이며 앞으로의 미래도 그리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임금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그는 박민규 소설에서 예의 등장하는 전형적인 자본주의시스템의 최하층에 속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박봉의 무기력한 회사원이며, 지하철 푸쉬맨인 아들에게 등을 밀리며 지하철에 탑승해야 하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이 소설에서 기본적인 포커스는 두 인물이 드러내는 페이소스에 맞춰져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운명과 삶에 대해 분노나 폭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극히 무덤덤하게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인다. 거의 체념의 태도로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어떠한 불평도 하지 않는다. ‘좀 노는 편’이었던 주인공이 아버지의 일터를 보고 조용한 소년이 되어가는 것은 인생을 알아가는 성장이다.원래 좀 노는 편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 나는 조용한 소년이 되어버렸다. 뭐랄까, 그때는 몰랐지만 그 순간 마음속에 와 같은 게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랬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아니었으며, 누구를 원망할 성질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中)지하철이란 곧 삶을 상징한다. 정원이 넘치더라도 탑승할 수밖에 없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열차에 주인공은 아버지를 ‘밀어’넣어야 하고, 아버지는 아들로 대표되는 ‘가정’을 위해 ‘밀려’서 타야한다. 출퇴근시간의 신도림역. 작가는 누구나 그곳에서 인생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20세기초 새로 등장한 철도와 기차가 상징했던 것처럼 현대사회의 지하철 역시 자본주의사회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요소이다. 대량의 인간을 수송하기 위한 것. 무엇을 위해서? 자본주의를 위한 밑거름으로 인간을 사용하기 위해서이다.아버지의 급작스런 실종으로 주인공은 더욱 더 큰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 아버지는 그러한 고된 삶으로의 ‘밀림’에 벗어나기 위해 사라진 것일까? 비로소 지하철에 타고 흔들리며 삶의 흔들림과 ‘밀림’에 대해 자각해가는 주인공. 그리고 등장하는 박민규의 ‘산수론’은 에서의 ‘소속론’과 일맥상통하는 자본주의구조와 삶에 대한 박민규식 담론이다.나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결국 문제는 내가 삼미 슈퍼스타즈 소속이었던 데서 출발한 것이라고. 16살의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랬다. 소속이 문제였다.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中)이러한 담론을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로 표현해냄으로서 박민규식 페이소스의 성격이 완성된다. 비련과 애상을 재미와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것에 그의 강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의 결말부분 급작스런 ‘기린’의 등장에서도 볼 수 있다. 어머니의 급작스런 의식불명으로 떠안아야 할 짐이 두 배가 되어버린 아버지는 어느 날 실종된다. 그는 결국 치열한 자본주의의 열차에서 ‘밀려’탈락한 것일까? 결말에서 ‘기린’이 된 아버지는 그것이 ‘탈락’이 아닌 ‘해방’임을 상징한다. 매일 아침 신도림역에서 아들에게 밀려 지하철을 타던 그는 한가하고 유유자적하게 역사를 돌아다니는 기린이 된다. 누구도 그 체구 때문에 열차 안에 밀어넣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여기서 박민규의 페이소스를 표현하는 중요한 장치가 바로 형상화이다. 에서의 야구, 에서의 탁구, 에서의 카스테라, 에서의 너구리, 의 오리배, 에서의 기린 등등 그의 소설에서는 수많은 형상화의 기법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형상화의 기법은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웃음과 재미를 이끌어낸다. 여기에 박민규식 페이소스의 장점이 있다. 그의 형상화는 소설에 환상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두 가지의 의미 사이에서 독자들을 헷갈리게 한다. 그것은 과연 자유로운 해방인가 현실을 외면한 도피인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수단일 경우 가벼움과 무책임함으로 인해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그의 작품에 유독 논란의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러한 형상화로 인한 문제이다.하지만 그러한 가벼움과 말장난같은 문체, 희한한 행갈이가 과연 진정 ‘가벼움’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단지 무거운 문체와 현학적이고 어려운 묘사만이 진지한 주제를 표현할 수 있는가? 오히려 그러한 형식상의 가벼움은 자본주의시스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는 주제와 맞물려져 박민규식 페이소스를 완성시킨다.미국 프로레슬링 WWE의 스타 헐크호간에게 헤드락을 당하면서 시작되는 을 보자. 에 이어 그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팍스아메리카나의 밑바탕이 깔린 채 시작된다. 전작이 강대국과 약소국의 상대적인 비유였다면 이번에는 역시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강한 개인과 약한 개인의 비유까지 첨가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강대국과 약소국의 비유는 등장한다. 주인공이 의 헐크호간에게 헤드락을 당한 후 복수를 하는 것은 방글라데시, 필리핀, 중국, 나이지리아의 사람들, 그것도 주로 여자이다. 즉, 약소국과 약자다. 그렇게 몸을 키우고 운동을 하여 습격하는 것이 고작 그런 상대인 것이다. 결말에서야 비로소 헐크호간에게 헤드락을 거는가 하지만, 그것은 꿈이다. 강자의 약자에 대한 테러, 압박. 그것을 헤드락이라는 형태로 형상화한 박민규의 재주를 가볍다고 볼 수는 없다.그렇다면 약자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헤드락을 당해도 자신보다 약자에게 화풀이를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여기 박민규가 제시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다.3.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끔 전화로, 혹은 인터넷 메일로 사장은 자신의 안부를 전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47호에 LA의 가족이 동승했고, 뭐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생활이라고 자신의 근황을 얘기했다. 어때? 많이 변했지. 첨부한 사진에는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가족의 풍경이 담겨 있었다. 단란했다. 그리고 사장은, 두더지의 왕이라도 된 것처럼 아랫배가 나와 있었다. 좋군요. 그런 종류의 대답과 함께, 나는 늘 유원지의 안부를 전해주었다. ([아, 하세요 펠리컨]中)의 사장은 유원지를 주인공에게 맡기고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다. 좁은 현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방대한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박민규의 소설에서 취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처는 상황과 치열하게 싸우고 극복하는 것 보다는 이렇듯 일종의 도피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약자에게 있어 강자, 혹은 사회와 싸우는 일은 헐크호간과 평범한 일반인의 싸움처럼 상대가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약자가 강자에게 이길 확률은 거의 없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사회생활을 통해 일찌감치 습득했음이 틀림없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란 것을, 세상은 태어날 때부터 대부분 계급장을 달고 태어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계급장은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하며 더욱 견고해진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바로 위의 지층으로 올라가는 것조차 불가능해진다. 그의 작품에서는 대부분 그것이 굳어진 상태에서 시작된다.
- 김연수 잔인한 시대 속 생의 이면개론1930년대 간도의 항일유격근거지에서 일어난 민생단 사건을 바탕으로 한 김연수의 소설. 남만주철도회사의 측량기수로 북간도에 파견된 기사 김해연이 겪는 질곡의 인생사를 그리고 있다. 한일합방 당시 태어나 일본 고등공업학교를 다니고 만주에 파견된 김해연은 시인을 꿈꾸지만, 국가나 민족 따위는 잊고 희망없이 살아가던 인물이다. 그런데 민생단사건에 연루되면서 도처에 만연한 죽음을 목도하고 혁명과 이념, 국가를 생각하면서 세계의 이면에 눈떠간다. 혼란스러운 격변기를 살며 사랑, 신념, 사상 모든 것이 진실인지 허구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는 고통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상주하는 근원적인 문제이다.1930년대1930년대는 현대사에서도 잘 소개되지 않는 대목이다. 1930년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은 대륙에 대한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19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이들은 그 구실을 만들기 위해 봉천(奉天; 현 瀋陽) 외각의 류타오거우에서 스스로 만철(滿鐵) 선로를 폭파하고 이를 중국측 소행이라고 트집을 잡아 전쟁을 일으키고 32년 초까지 거의 만주 전역을 점령하고, 같은 해 3월 1일에는 일본의 괴뢰국가(傀儡國家)인 만주국의 성립을 선포하여 만주를 일본 침략전쟁의 병참기지로 만들었다.괴뢰국가 수립 이후 전방(동만, 즉 간도)과 후방(조선)의 항일연합투쟁을 두려워한 일제는 '간도(間島)에서의 조선인 자치'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민생단'을 창설해 중국 공산당으로 하여금 민족배타주의에 빠져 조선인을 탄압할 빌미를 제공했다. 때문에 항일 유격근거지 내에서 조선인이면 일단 민생단의 스파이라고 한 번쯤 혐의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그리하여 간도 전역에서 민생단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한 반민생단투쟁이 대대적으로 전개돼 최소 500여 명의 한국인 항일운동가들이 체포·살해되거나 도망가야 했으며, 많은 하부조직들이 마비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일제와 중국 공산당, 심지어 같은 조선인에게 공격을 받게 된 조선인들의 기막힌 사연과 그 잔인한 시간을 순진무구하고 평범한 청년 김해연이 온 몸으로 받아내는 것이 소설의 이야기이다.언제나 시대의 잔혹한 요구에 희생될 수밖에 없는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 김해연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아이기도 하다.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가 하나의 구세주처럼 다가오던 시절, 일제의 탄압에 몰려 이주한 간도의 조선 이민자들은 적색정권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 평범한 백성들이었다. 사회주의의 슬로건에 희망을 품었던 이들이 이른바 동지라는 같은 공산당에게 당하고 같은 독립군이라 생각한 조선인들에게도 당하면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구분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물음에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단지 이러한 슬픔을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 ‘연애’에 빠진 시대1. ‘연애’열풍의 배경셰익스피어의 작품에 16세기 영국이 열광했듯, ‘연애’와 ‘사랑’이라는 상품의 매혹성은 역사를 관통하여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1920년대 초반 3.1운동이라는 암울한 사건을 지나 식민지 조선에 몰아닥친 ‘연애’의 열풍은 1920년대 중반을 지나 사회주의 운동의 전파로 인해 사그라질 때까지 대중들의 가슴을 흔들어놓았다. 식민지 치하라는 암울한 역사적 현실과 희망과 낙관으로 가득한 ‘연애’열풍. 이 대립되는 성격의 두 개념은 3,4년 동안 이해할 수 없는 양립을 지속했다.3.1운동의 계기가 된 것은 일제강점기 1910년대 후반까지 자행된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통치이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제창, 고종황제의 독살설과 맞물려 폭발한 3.1운동의 결과 시작된 일제의 문화통치정책은 조선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대학도 설립허가를 내주는 등 표면적으로는 조선인에게 좀 더 유화적인 정책이었다. 3.1운동은 정치적인 각성과 정치에 대한 절망이라는 두 가지 분위기를 낳았다. 정치적인 각성으로 인해 폭발한 교육열과 독립운동이 지나간 후 명확해지기 시작한 시대의 윤곽은 서로 융합하여 개인주의적인 정신적 토양을 조선에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광수, 신채호가 설파한 데로 독립운동이라는 사회, 국가적 열망이 식어버린 후 시행된 일제의 문화통치는 사람들에게 체념과 타협을 받아들이게 했다. 이러한 상황은 촛불시위가 지나가고 우익독재화에 무관심, 무감각해지는 현재 한국사회와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다.이러한 정치적 열정의 패배감은 열정의 방향이 연애로 향했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최대의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누렸던 [사랑의 불꽃]에서도 짙게 깔린 애상의 정조, 당시 신문을 장식했던 온갖 정사(情死)등은 현실도피의 수단으로서의 연애열풍이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정신에 바탕을 둔 허무주의, 감상주의와 수많은 문학작품에서 등장한 전형적인 구도, 개인을 표현하는 내적수단으로서의 자살 등이 결합하여 사랑=비극이라는 공식이 1920년대의 연애열의 대표적인 정서였다.2. 신여성과 ‘연애’연애열풍은 근대사회구조로 변화하기 시작한 조선의 신과 구를 가르는 상징으로서의 의미도 존재한다. 신여성과 구여성을 구분하여 신여성을 연애의 대상으로서의 상징으로 보는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지식층들의 서구문물에 대한 환상은 일반대중에게까지 폭넓게 전파된다. 1920년대는 개조의 시대였다. 사회와 생활 전반의 모든 부분에서 개조의 열풍이 휘몰아쳤다. 그것은 서양에 대해 싹트고 있는 막을 수 없는 동경이었다. 서양문물에 대한 환상은 곧 신여성에게 대입되었고 연애라 하면 곧 신여성이라는 시선이 성립되었다. 구여성의 죽음은 세상의 이목을 모으지 못할 정도였다. 박종화의 [여명]에서는 자신의 치장을 위해 학비를 쓰는 소위 ‘신남성’인 주인공이 예찬을 받는 반면 그에게 파혼당하는 처녀의 죽음은 철저히 묻혀버리고 만다. ‘교육’이 구여성이 신여성으로 변화할 수 있는 대안이 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그 시대 고등교육은 여전히 소수자의 특권이었으며 단지 교육을 받음으로써 신여성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기존의 가정질서와 결혼제도, 사회적 가치관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중심에 연애와 신여성이 있었다. 서구문물의 유입과 그에 대한 동경,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은 신여성과의 신식사랑이라는 공식으로 표면화되었다. 남성들이 신여성에게 실상 바란 것은 그러한 신선한 상품과도 같은 연애였다. ‘미인’이라는 단어도 생겨났다. 미인은 연애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회적 사건의 코드와도 같은 단어였다. 어떤 여인이든 연애사건에 휘말리면 신문은 ‘미인’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그 단어는 당시 사회적 관심을 증폭시킨 계기였다.하지만 ‘연애’에 대한 열망이란 근원적으로는 ‘행복’이라는 개인적 욕구를 달성하기 위한 갈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행복’을 위한 ‘스위트홈’, 그것을 구성하기 위한 이상적 아내와 남편, 그를 찾기 위한 ‘연애’의 관계도는 현재까지도 내려오고 있는 개념이다. 신여성과 신남성이 주도했던 그것은 곧 전 계층에게로 퍼졌다. 1920년대 3대 연애사건 중 윤심덕만이 신여성이고 김정필은 구여성, 강명화는 기생이었다는 사실은 당시 조선에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소외받는 계층이었던 구여성도 이러한 연애열풍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3. ‘연애’에서 파생된 상품 -성과 육체김동환은 “오늘날 빵과 성욕을 거의 동등하게 큰 문제로 취급하는 터”라며 연애문제를 짚으며 진단했다. 연애열풍 초기 많은 문학작품에서는 사랑과 연애를 주로 정신적인 개념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일본어책으로 출판된 수많은 성지침서들이 판매되고 또한 열화와 같은 호응을 얻으면서 조선엔 이른바 ‘빨간 책’이 퍼지게 된다. 그와 함께 1920년대를 지나면서 성은 인간의 본능, 즉 식욕과도 같이 불가피한 것이라는 자연스런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정조관념을 폐기하거나 자유로운 여성의 성욕구에 대한 표출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과학적 권위와 통속적 견해가 야합된 성욕학은 남성에겐 자유분방함을 보장했지만 여성에겐 오히려 족쇄로 작용했다. 이른바 악명높은 ‘성교반응설’ 또는 ‘불순혈설’이라 불린 학설이 그것이다.
전시회 관람기비가 오는 4월 26일 일요일,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서울시립미술관에 도착했다. 입장권을 사기 위해 들어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이 무료관람일이었다. 넓고 하얀 미술관 실내가 몹시 쾌적하게 느껴졌다. 비가 오는 일요일이라 그런지 미술관은 매우 한산했고 느긋하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시선을 끄는 것은 일 층 전시관에 위치해 있는 였다. 는 일반적인 회화나 조각작품들의 전시만이 아닌 다양한 매체를 통한 현대미술의 맥락을 느낄 수 있는 전시회였다. 작품을 ‘본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체험’이라는 요소를 끌어들임으로써 미술과 일상의 결합이라는 주제를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처음엔 ‘오감도’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이상의 작품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란 생각을 했었다. 안내팜플렛을 보니 그 오감도가 아니라 16세기말부터 17세기 서양회화에서 많이 그려졌던 미술작품의 종류라고 한다. ‘오감도’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시각뿐이 아닌 청각과 촉각 등의 공감각적인 면을 느낄 수 있는 전시였다. 본 전시회의 작품은 두 가지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1. 감각의 환영(Sensory Illusions)첫 번째 파트는 감각의 환영(Sensory Illusions)이다. 우리가 작품을 보며 감상하는 동안 뇌가 행하는 수많은 공감각적 활동으로 인한 ‘환영’을 보는 작용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김환기의 는 수많은 흰 도형 안에 점을 찍은 작품이었는데 봄의 소리라기보다는 트랜지스터나 컴퓨터의 메모리판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다지 봄이 연상이 되는 그림은 아니었던 듯싶다. 한묵의 은 리트머스지를 보는 듯한 느낌? 길이가 각기 다른 직선의 쇠막대가 층층이 쌓인 모양의 그림이었다. 우재길의 역시 흰 직사각형들이 불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형태를 통해 리듬의 불규칙함과 자유스러움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왜 제목은 리듬78-5y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길이로 리듬을 표현한 것 같다. 홍종명의 나 이준의 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었다. 청각의 시각화랄까? 어두운 색체를 교차적으로 사용하여 약간의 혼란스러운 느낌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들이었다. 우리가 소음이나 굉음을 들을 때 느껴지는 기분이나 감각들을 이미지화시킨 듯한 느낌이었다. 차명희의 는 흰 종이에 목탄과 아크릴로 의미불명의 문자같은 선들이 새겨져 있는 작품이었는데 네 개의 그림이 조금씩 다 달랐던 것 같다. 소리, 즉 말들이 오고 가는 수많은 세상을 표현한 작품인 것 같았다. 그래서 혼돈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신영상의 이나 문봉선의 은 제목처럼 율(律), 즉 동양적인 리듬감과 운치를 주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여기까지가 시각의 공감각화라면 이우환의 와 안병석의 , 김호득의 은 ‘바람’이라는 현상의 특성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인데 그렇다면 바람이 주는 청각과 촉각의 느낌을 시각화한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바람에 휩쓸린 풀들이 연상되는 안병석의 이 마음에 들었다.최덕휴의 나 윤병락의 시리즈 등은 향기가 주는 달콤함을 캔버스에 표현한 듯 아름답고 다채로우며 사실주의적인 화법으로 그려졌다. 보기만해도 과일들이나 나무, 풀들이 주는 향기가 전해져오는 것만 같았다. 내가 느끼는 좋은 그림들은 보기만 해도 뭔가 그 안에서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림들이다. 특히 아름다운 풍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그림들은 봄의 향기가 따뜻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와 주는 느낌이 들어 따사로운 기분이 들었다.2. 다중감각: 교차와 혼합(Multiple Sense: Crossing and Blending)두 번째 파트는 다중감각: 교차와 혼합(Multiple Sense: Crossing and Blending)이다. 안내팜플렛에 나와있는 말로는 앞 섹션이 화학적인 공감각 경향, 즉 뇌속에서 형상되는 공감각의 연상화작용이라면 이 섹션의 작품들은 물리적 공감각 경향, 즉 직접 느낄 수 있는 공감각의 실제적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본다’는 수동적인 행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함으로써 미술작품과 관객의 직접적이고 신체적인 ‘소통’을 가능케하는 의의를 가진 작품들이다. 현대미술의 특징을 충실히 보여주는 섹션으로 ‘아이디어’가 주요한 원천이 되는 창작형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신미경의 는 처음 봤을 때 비누라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조형작품들이다. 도자기들을 봤을 땐 정말로 비누라는 것을 알 수가 없었었다. 보관이나 이동에 주의를 많이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걱정이 드는 작품이었다. 창작과정을 실제로 보고 싶기도 했다. 안성희의 은 어느 골목의 정경이 사진으로 걸려있고 그 앞에 얇은 발(?)같은 것을 쳐서 그것들이 흔들리는 그림자가 묘한 기분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다만 사진만 보더라도 그 골목의 향이 전해져오는 기분이 들었는데 왜 제목이 정원인지는 잘 모르겠다. 손원영의 는 색깔이 다른 직사각형의 의자들이 무질서하게 놓여있었다. 그것들이 각기 사람의 객체를 표현한 것일까? 어디에 앉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았다. 김형호의 작품은 무수한 거대한 쇠파이프같은 관들이 꽃의 수술처럼 앞으로 튀어나와있어 위압감을 주었다 꼭 트럼펫같은 관악기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최승준의 은 인터랙티브 설치로 벽에 신비한 느낌이 드는 영상을 쏘아서 그 앞으로 지나가면 그림자가 졌다. 그 앞에서 몸을 움직여보라는 안내글이 써져있었는데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몸을 움직여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기대완 달리 시시했다. 전가영의 은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이었다. 의자가 다섯 개 정도 놓여져 있고 어디에 앉느냐에 따라 그 앞의 라이트 패널에 불이 들어오며 다양한 소리가 난다. 각기 다른 조합도 있는 것 같아서 신기했다. 구경하던 중 커플 하나가 신나게 그 앞에서 번갈아가며 의자에 앉아 소리를 냈는데 그 중 하나가 고장나는 바람에 나는 직접 앉아보지 못했다. 그 밖에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설치된 마이크 앞에서 소리를 지르면 앞의 영상에 변화가 생기는 작품이라던가 테이블에 손을 대면 변화가 생기는 작품도 이 섹션의 ‘참여’라는 주제와 잘 걸맞는 작품들이었던 것 같다.
경대승의 집권과 정책목차1. 배경과 정권 장악2. 특징3. 정치적 성격4. 정권의 취약함과 도방5. 정권의 몰락○ 경대승 정권■ 배경과 정권 장악- 경대승은 청주출생으로 그의 아버지 경진은 무신란 이전부터 상당한 고위직의 무인이었다. 1170년 이의방, 이고, 채원 등이 일으킨 무신정변은 하급장교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사건이며 정변 이후 실질적인 무인정권의 최초 독재자는 이의방이었다. 무신정변에 직접적인 가담을 하지 않은 온건 무인세력의 하나인 경진은 이후 재상의 지위에 오르게 되는데 이는 당시 무인집권자들의 세력기반이 취약했음을 보여준다. 하급장교 출신의 이의방은 자신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고위직에 올라있거나 좋은 가문의 무인들을 회유했고 경진 또한 그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그의 아들 경대승 또한 일찍이 출세길에 오르게 되는데 경대승이 정권을 장악할 무렵 그는 이미 장군이라는 상당한 지위에 올라있었다.- 이의방을 제거한 정중부 정권은 이전과 다름없는 폐해를 답습하여 그 결과 지속적인 민란에 봉착하게 되었다. 또한 정중부정권이 온건노선으로써 기존체제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이는 자체권력을 위하여 행한 것이라 그에 반하는 점에서는 문신들과 마찰을 피할 수 없었으며 송유인이 한문준과 문극겸을 탄핵하는 사건으로 인해 무신들도 등을 돌리게 됨으로써 지지 계층을 잃은 정중부 정권은 몰락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경대승은 금군 지휘관은 허승, 김광립 등과 손을 잡고 정중부 부자와 송유인 등을 30명의 결사대로 습격하여 살해한 후 정권을 장악한다.- 무신정변 이후 무인정권 내에서의 하급무관 세력과 고위직 무관 세력이 대립하게 됨에 따라 여러 번의 정권 교체가 일어나게 된다. 이의방에서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권교체에는 그러한 배경이 숨어있는 것이다. 이의방, 이의민 정권이 하급무관 세력을 바탕으로 한 정권이라면 정중부, 경대승 정권은 고위직 무관을 주축으로 한 세력의 비호를 받은 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극심한 대립과 민심의 이반으로 어느 정도 하급 무관 세력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정중부 정권의 태도는 보수파 세력이 정중부를 떠나 경대승에게 힘을 실어주게 되는 이유가 된다.■ 특징- 경대승은 무신집권자들 중 유일하게 고려사 반역전에 실려있지 않은 인물이다. 고려사를 기록한 당시 고려사의 집필자는 당시 문인들의 시각을 참고로 했을 것이고 그것은 문인층의 경대승에 대한 시각이 호의적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경대승 정권은 역대 무인정권 중 유일하게 무신란을 부정하고 문신들에게 호의를 배푼 이질적인 정권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인들에게는 부정되었을것이며, 이로 인해 그는 힘든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 성격< 경진은 성품이 탐욕하여 남의 토지를 많이 빼앗았다. 그가 죽자 경대승은 전답을 모두 반납하고 하나도 취함이 없었다. 사람들이 그 청렴함에 탄복하였다.>, 고려사, 100 경대승전.- 경대승은 이러한 행동을 통해 자신의 청렴함을 내세우고자 하였다. 여기에는 그의 아버지를 포함한 모든 무인들의 토지탈점을 비난하려는 의도도 내포되어 있다고 보인다. 청렴한 행동으로 토지탈점을 더욱 불법적인 행동으로 부각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토지탈점을 행한 무인들은 무신란에 가담했던 무인들이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보아 경대승은 무신정변을 일으킨 무인들에 대한 불만감을 이런 식의 행동으로 표출했던 것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고려사절요, 12 명종 13년 7월.- 문신들이 경대승에게 왜 호의를 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복고란 무신란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무신정권에 대한 부정을 뜻하는 것이었다. 무인들이 불법적인 행동은 무신란으로 인한 정치적인 상황변화에 의해 가능했다. 이는 경대승이 무신란 이후의 변화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고려사, 100 경대승전.- 경대승이 쿠데타를 성공시킨 직후의 상황이다. 임금을 살해한 자라는 것은 이의민을 뜻하는 말로써 살해당한 임금은 폐위된 의종을 말한다. 무신란 이후 무신들이 명종을 옹립하자 동북면병마사 김보당은 의종의 복위를 내세워 궐기하게 되는데, 이의방은 그들의 명분을 제거하기 위해 이의민에게 의종의 시해를 지시한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무인들의 집약된 뜻이었으며 정중부 역시 이를 암묵적으로 묵인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임금을 시해한 자라는 것은 이의민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무인정권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좋은 가문 출신으로써 무신란이 아니더라도 출세를 보장받을 수 있었던 그는 무신란 이후의 급격한 변화와 무인들의 불법적인 행동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권의 취약함과 도방- 경대승의 세력은 역대 무인정권세력 중 가장 약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역시 그 스스로 반무신정권의 모습을 보여주어 참여하는 무신의 수가 적었던 탓이며 젊은 나이와 부족한 지지기반 그리고 무신정변의 수혜자라 할 수 있는 명종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려사 열전 경대승, 고려사절요 명종 9년 9월, 고려사 열전 이의민, 고려사 열전 이영진, 고려사절요 명종 21년 10월, 고려사 열전 경대승- 경대승의 최대 위협세력은 역시 무신정변을 주도한 급진파 무관세력이었다. 중방을 위시한 이들의 세력은 막강하였으며 이 시기에 신변에 큰 위협을 느낀 경대승은 도방을 창설하여 개인의 수호도구로 삼게 되는 것이다. 명종 또한 무신정변 자체를 부정하는 경대승을 꺼려하여 급진파 세력과 손을 잡고 그를 견제하였다. 아래의 기록은 경대승 사후 명종이 행한 조취로 그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려사 명종 13년 8월- 경대승의 집권기에도 무인정권의 최대 권력기구는 중방이었다. 경대승의 미약한 세력으로는 당시의 정세를 장악하기 어려웠으며 그가 관직에 나가지 않은 것 또한 청렴함이라기보다는 그 자신의 불안감으로 봐야 한다. 아래의 기록들은 경대승 세력과 도방에 대한 중방의 우세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