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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신자유주의와 한국이 나아가야할 길
    신자유주의와 한국의 길: 이중 운동과 독일 경제 모델을 중심으로1. 이중 운동폴라니에 의하면, 중상주의는 마을 장터 및 도시 간 무역의 배타주의를 분쇄해버리고 합일적인 ‘시장’을 지향했다. 그래서 16세기 이래로 시장은 수도 많아지고 중요성도 증대해갔으며, 중상주의 체제 하에서 시장은 국가의 핵심 관심사였다. 그러나 당시엔 시장이 인간의 존엄마저 종속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오히려 시장에 관한 규제와 통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엄격했기에 ‘시장 중심의 경제’와 같은 개념은 철저한 분석대상이 되지 못했다.달리 말하면, 통상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시장경제’란, 인류와 함께 걸어온 초역사적 개념이 아니다. 항상적으로 사회와 국가에 의해 통제 되었다. 이처럼 시장 중심의 경제 제체는 다양한 경제 체제 속에서 사실상 중요성이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19세기 산업혁명 이후에 갑작스럽게 핵심 경제 논리가 되었을까?경제의 영역은 언제나 사회의 영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합리적·이기적인 개인의 동기를 바탕으로 삼은 자기조정 시장의 실현은, 19세기 특유의 경제적 편견에 의한 유토피아적 망상에 불과하다. 자기조정 시장경제라는 유토피아가 이 세계에 매력적인 모습으로 만연한 이유는 19세기 산업혁명에 기인한다. 산업혁명은 인간을 상품화 시켰고, 배태성을 공유하는 사회와 경제 영역을 붕괴시켰으며, 사회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핵심 기제를 경제로 귀속시켜버렸다. 요컨대, ‘자기조정 시장’이 사회를 설명하는 방정식이 되어버린 것이다.사회와 경제의 배태성을 끊어내려는 시도에 대한 폴라니의 회의는 ‘이중적 운동’이라는 그의 핵심 논리의 근원이 된다. 배태성을 없애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저항에 맞닿을 수밖에 없다. 거대한 전환에서의 핵심은, 이런 자기조정 시장에 맞서는 ‘이중적 운동’에 있다. 폴라니는 이중적 운동의 의의를 자기조정 시장경제에 맞서는 ‘자생적인 사회의 발견’이라고 본다.자기조정적인 시장경제란 무엇인가? 이는 오로지 시장의 경제논리가 사회를 통제하고 조정하는 균의 맷돌’에 무비판적으로 노출된다면 허구상품 중심의 경제 체제가 몰고 올 결과는 어떤 사회도 단 한순간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사회와 경제 간의 배태성은 왜 무시되어서는 안될까? 종획 운동의 경우 산업혁명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전자는 종획 운동을 저지하는 법의 효력이 약하다 한들, 그 자체로 종획 운동의 확대로 몰고올 폐헤를 저지하며 민중들로 하여금 변화에의 적응을 가능케 했다. 후자는 그렇지 못했다. 그 어떤 것도 영국의 민중들을 구해내지 못했다. 만일 자기 파괴적인 경제 논리를 약화시키는 사회 보호 운동의 반작용이 없다면, 인간 사회는 파멸을 맞이할 것이다. 이런 맥락을 근거로 할 때, 19세기와 20세기의 역사는 이중적 운동의 결과다. 자기조정적 시장 경제가 악마의 얼굴을 하고 인간을 집어삼키는 한편, 다른 한편에서는 일련의 정책, 운동 등의 사회적 보호기재를 통해 노동, 토지, 화폐에 관한 시장 유토피아를 저지하기 위해 만든 강력한 제도 및 체제로서 통합되었다. 사회는 배태성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즉, 자기조정 시장경제에 내재한 사회적 위협에 맞선 자기 보호 운동의 자생적 발현. 이것이 19세기 및 20세기 역사에 있어 경제, 사회적 측면의 가장 포괄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이중적 운동은 두 가지 원리의 활동으로 설명가능하다. 첫째 원리는 경제적 자유주의로서, 자기조정 시장의 확립을 목적으로 사업에 종사하는 사회 계급(자본)의 지지에 의존하며, 대체로 자유방임과 자유무역이라는 방법론을 택한다. 다른 하나는 사회 보호의 원리로서 인간, 자연뿐만 아니라 생산 조직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시장의 해로운 운동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이들, 즉 주로 노동계급을 필두로 하는 계급적 지지기반에 의존하며, 정치적인 보호 입법, 경제 규제를 위한 연대 및 기타 경제 개입의 수단들을 방법으로 삼는다. 이 두 가지 원리의 충돌을 통해 19세기 사회사의 개략을 그릴 수 있다.경제적 자유주의는 시장 체제의 확대와의 과제가 되고, 이를 수행할 주체는 입법부보다 정부가 된다. 시장경제를 위해 이행하는 길엔 언제나 정부 개입을 필요로 했고, 국가는 시장경제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항상 그것을 감시해야만 했다. 여기서 통상적인 관념과 다른 역설적인 사실은, 자유방임 경제가 의도적인 국가 활동의 산물이었던 반면, 그에 반한 자유방임 제한 조치들은 완전히 자생적으로 시작된 것들이었다.이와 같이 자기조정 시장의 확산과 그것에 맞서 사회를 보호하려는 반대 운동이 충돌하는 이 이중적 운동이라는 현상에 대해 폴라니는 경험적으로 입증한다.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정책은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될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노동조합 활동가들,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 반동적 지주 계급 등에 의해 교살당하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폴라니는 19C 후반 시장 경제의 확장에 맞서서 나타났던 집단주의적 반동이란 전면적, 보편적인 것이었으며, 이것이야말로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유토피아적 원리에 사회적 재난이 본질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폴라니 사후에도 세계 체제는 연이어 이중 운동의 흐름을 따라 지속된다. 자유방임주의에서 케인즈주의로, 케인즈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는 어디로 흘러가는가?2. 한국의 길로 나아가며삶에 있어 자본이 자유와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 불가피하며, 젊은 지식인들이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현실에 타협하기 급급한 사회가 있을까? 놀랍게도 나는 지금 그 속에 있다. 좋은 삶, 그것도 모자라 ‘평범한 삶’ 조차 꿈꾸기에도 숨이 막히는 시대다. 언젠가부터 ‘평범’하다는 것은 닿기 어려운 이상향이 되었다. 행복한 삶을 꿈꾸는 것보다 오히려 가장 인간답지 못한 삶을 그리는 것이 익숙한 듯하다.산업화부터 신자유주의까지. 한국의 압축적인 민주화와 경제성장은 다양한 사회적 병폐를 낳았다. 시장 자본주의 하의 한국은 마치 미국의 축소판 같다.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미국의 51번 째 주라는 말이 나오한하는 ‘글래스 스티걸’법 부활, 부자들의 증세 등을 요구하는 운동이 늘어난 이유는 자기조정 시장경제의 확대를 제한하는 사회보호운동적인 성격이 반영되어 있다.또한, 최근의 독일 총선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승리로 끝났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선거에서 나타난 중요한 역사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란 이름으로 자기조정 시장경제를 꿈꾸는 정당은 독일 의회에서 모든 의석을 잃고 완전히 퇴출당했다. 그 뿐이랴.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세계 경제가 휘청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선망의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독일 모델의 강점은 무엇인가? 필자는 독일 특유의 노사협력과 산업구조 등 ‘사회적 시장경제’에 방점을 두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독일의 기업 내에는 노동자가 핵심이 되어 평의회가 존재하고, 노사공동결정제도를 이끈다. 노동자는 조합을 통해 처우개선만을 외치지 않는다. 스스로 기업을 이끄는 주체로서 경영에 참여한다. 전문경영인과 임원들의 입김이 강한 미국식 기업에 비해 독일 모델은 노동자의 참여와 노사공동결정의 제도적 보장을 우선하는 것이다. 이 덕분에 사람들의 현실과 삶에 가까운 영역에서 사회보장을 이끌 수 있다.독일 모델이 가장 강력한 대안적 경제체제로 주목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영미식 시장경제의 문제가 신용경제 금융에 의존하는 ‘모래성 번영’과 같다는 데 있다. 가시적인 부의 팽창이 큰 만큼 붕괴 또한 쉬우며, 연쇄적인 붕괴로 이어지게 되면 다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위험성이 크다.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헤게모니 시대에서도 실물경제의 이윤율 저하를 금융 부흥을 통해 대체했지만, 그들의 ‘벨 에포크’는 한 순간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미국 헤게모니 역시 그와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반면에 독일은 제조업과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튼실하게 닦았다. 그래서 어떤 경제적 국면에서도 안정적이다. 현재 유로존의 위기가 논의되는 와중에서도 독일 경제의 묵직함은 누구도 의심치 않는다.독일의 이중 운동은 어떤 양상이었을까? 사실 근대 초산계급의 폭발적 증가, 그리고 이들의 조직적 운동 등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사회보호운동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독일에서 어떤 요인이 모범적인 복지체제와 사회적 시장경제를 실현케 했는지 살펴보면, ‘사회의 자율성’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사회의 자율성이 언뜻 보기에 ‘자기조정 시장경제’와 비슷해보일지 모르나, 그 이면에는 서로의 시선이 반대를 향하고 있다, 사회의 자율성은 무엇인가? 독일의 사회보장체계는 후생복지나 부조의 방식과는 다르게 사회 저변에 깔린 삶의 모든 양식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보충성의 원리’에서 잘 드러난다. 다시 말하자면, 독일 사회에는 앞에서 설명했던 특유의 노사협력, 산업구조와 더불어 협동조합 같이 발전된 지역공동체 둥의 체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는 국가차원의 통제가 아니라 사회의 아래에서부터 공공선의 목표를 통해 실현될 수 있었다는 점을 시사해준다. 이것이 사회의 자율성이다.에서, 폴라니는 새로운 경제와 사회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국가에 의한 사회구성과 시장에 의한 사회구성 모두를 거부한다. 그는 모든 개인을 위한 진정한 ‘자유’를 중시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국가 및 경제의 영역이 아닌 사회적 영역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보충성의 원리’, 그리고 ‘사회국가’로서의 독일은 해석에 따라 폴라니적 사고를 현실에서 가장 구체화하여 실현된 산실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한국에서도 독일식 모델은 뜨거운 감자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경제 민주화와 복지를 외치지만, 이미 자본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한국의 현실에서 얼마나 실현될지는 미지수이다. ‘성장과 분배는 맞물려가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성장과 분배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려는 사회적 분위기와 정치문화가 개선되지 못한다면, 건전한 경제성장과 복지의 확립은 양립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선성장, 후복지’라는 암묵적 슬로건을 내세워 규제 철폐와 극단적인 효율성 추구 등 자본의 논리를 부르짖고 있다. 그리고 결국 세월호 사건이라는 크나큰 상처
    사회과학| 2017.10.21| 6페이지| 1,000원| 조회(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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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은 이유 서평 평가A+최고예요
    를 읽고남성표준의 인간형은 지금까지 여성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남성중심적 사고는 그 매커니즘 자체가 비가시적이다. 우리는 이를 확인하기 어려울 만큼 집합적인 무의식 속에 박혀있고,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계획되어, 이른바 만들어진 ‘기대’와 일치하게끔 구조화 되어있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불평등과 차별들은 명백한 권력관계이며, 젠더 평등의 출발점은 이러한 상직적인 구조를 분석하고 해체하는 것에 있다.캐롤 타브리스는 ‘여성은 남성보다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똑같지도 않다. 다만 평등해야 할 뿐이다.’고 말한다. 이는 1차적인 여권신장의 프레임에서 탈피한 접근이며, 체계적 분석을 위해 사용하는 기본적인 논지 전개의 틀은 남성 준거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작용하는 모든 힘과 기준이 남성중심의 시각에 기반하는 이유에서다. 책의 원제가 ‘The Mismeasure of Woman’인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선택되었다는 판단이다. 더불어 여러 학자들의 중심개념을 통해서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 않은 이유’, ‘여성과 남성이 똑같지 않은 이유’라는 문장에 새로운 의미부여를 시도하고자 한다.역사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살펴보면,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여성이 ‘스스로’ 대상화하는 관계라는 특징을 지닌다.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절대 다수의 세계에선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남성성에 의한 보호를 동반하고,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존재는 그 삶이 분열되어온 결과이다. 여성은 끊임없이 남성적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하며, 사회적으로 구성된 ‘여성적’ 이미지와 연결시켜야한다. 여성은 태어남과 동시에 자신의 주체성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남성 시각이라는 이상향의 관객으로 스스로를 관찰해야하는 것을 학습 받고 설득당해 온 것이다. 책에서 언급되는 여성의 신체, 심리, 지적 능력, 뇌, 감정, 욕망에 대한 모든 설명이 이와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이를 사회학적 이론으로 설명하기 위해, ‘판옵티콘’ 개념을 차용해 볼 것이다. 푸코에 의하면, 판옵티콘이 만들어내는 규율은 일상에 깊숙하게 스며들어 통제의 힘을 발휘하고, 삶 곳곳에 세밀하게 관여하는 권력이다. 이 권력 행사가 동원하는 새로운 힘은 바로 시선의 권력이고, 이 권력의 시선은 개인을 스스로 감시하도록 내면화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는 우리 세계의 문화에서 여성이 남성성에 의해 사회적 감시와 대상화를 경험하도록 하는 매커니즘과 유사하다. 판옵티콘의 보이지 않는 남성 감시자는 여성들의 내면에 계속해서 존재한다. 젠더 관점에서 이러한 내면 규율화 과정이 불균형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정당화 시키는지, 그리고 페미니즘의 흐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부르디외의 성정치학적 개념을 통해 더욱 자세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부르디외에 의하면, 사회는 다양하게 중첩된 투쟁 공간이 존재한다. 이 투쟁 공간은 ‘자본(계급, 경제, 사회적 자본)’을 점유하기 위해 이 공간을 이루는 세력들이 상이한 힘과 이해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투쟁 공간을 이루는 개체는 장의 유지를 위해 대립관계이면서도 상호유기적인 관계에 있다. 투쟁 공간의 규칙을 위배하면, 그 개체는 배제되기 때문에 지배적인 규칙과 정통성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투쟁 공간은 젠더적인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젠더 공간에서의 주된 담론은 남성성이며, 남성상위의 문화는 이 젠더 공간에서 지배적인 권력이 된다.여성과 남성이 똑같지 않은 이유페미니즘 제1의 물결을 살펴보면, 자유주의적 접근 방식이 남성 영역 내에서 남성 기준에 도달하는 대응이 문제적이다. 이는 젠더 공간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본을 획득하여 여성이 상위에 위치하는 방식인데, 고등 교육을 받고, 여권신장 운동을 추진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공간 내에서 자본의 일정부분을 확보하는 효과를 달성하지만, 젠더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 담론 자체를 전복시킬 수 없는 난점이 있다. 남성과 ‘같은’ 기준을 좇는 전략은 기존의 젠더 공간에서 형성된 아비투스와 남성적 시각에 의존하는 해결방식이라는 한계가 남는다. 여성이 내면화하고 있는 판옵티콘적 규율이 페미니즘의 물결 자체에도 뚜렷하게 갇혀있음을 보이는 것이다.여성과 남성이 다르지 않은 이유투쟁 공간에 위치한 세력은 역사적 궤적에 따라서 투쟁의 전략 또한 변화한다. 인류 역사가 기득권과 전복자의 대결이었던 만큼, 일반적으로 투쟁 공간 내의 상위 개체들은 기존의 지배담론을 수호하려 하고, 하위 개체들은 전복의 노선을 취한다. 젠더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로 자본을 획득한 여성들은 페미니즘의 제2물결의 흐름 속에서 ‘차이’를 중심으로 남성 담론에 정면으로 돌파하는 노선을 취한다. 이는 젠더 공간 내부에서 혁명적인 투쟁의 방식으로 전개된다. 여성이 본질적으로 우월하거나, 남성과 다르다는 노선을 취하면, 여성성에 관한 긍정적인 특성을 회복시키는 것이 가능하지만, 결국 남성과 여성성의 대립항으로 인해 이분법적인 사고가 과장되고, 여성과 남성을 고정적인 관념에 묶어버리게 된다. 투쟁 공간이 비슷한 규칙성을 갖고 반복되는 셈이다.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으려면결국 젠더 공간이 그대로 답습되지 않고 바람직한 공간으로 구성되려면 젠더 공간 내의 투쟁에 대해서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즉, 남성적 지배담론의 규칙성 내에서 젠더 투쟁이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젠더 공간의 규칙을 향해야 한다. 남성 지배담론이 지닌 가장 큰 힘은 아비투스에 있는데, 남성 질서는 개인의 삶의 궤적에 있어서도, 사회적 구조에 있어서도 여성들에게 정당화의 과정도 필요 없이 체화되게끔 만든다. 따라서 똑같은 기회나 똑같은 대우에 대해서만 평등의 초점을 맞추게 되면, 남성 준거의 틀에서 은밀히 모습을 감추고 있는 젠더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 그 자체가 아닌,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평등의 결과를 제거하는 것은, 시선의 권력을 포착하고 정상과 타자의 기준을 다시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학적 상상력은 지배적 남성성을 정당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이 구조 속에서 최소 수혜자에 대한 조정을 필요로 한다.
    사회과학| 2017.10.21| 3페이지| 1,000원| 조회(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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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한국 인구고령화와 해결책 레포트
    한국 인구 고령화 문제와 해결책- 사회이동 및 저출산 현상과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1. 저출산 현상 및 고령화 문제의 대두와 글의 논의 목적농업공동체로서 전통적으로 다산 다사의 형태였던 한국의 출산유형은, 산업 인프라의 구축과 경제발전과 맞물려 고도산업국으로 성장하면서 소산 소사의 형태로 바뀌었다. 즉, 신생아의 사망률은 급격히 감소했음에도 출산율 자체의 급격한 감소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빈곤국으로서 의식주의 해결이 원만하지 못했던 당시 정부에서 산아제한정책을 내세우고, 경제성장과 맞물려 고학력 여성의 급증과 페미니즘의 확산으로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향상됨으로써 이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저출산 문제는 유소년층의 감소를 야기하며, 산업발전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한 평균수명의 증가로 급증하고 있는 노년층의 증가와 맞물려 고령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수 에 없다.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은 매우 뛰어난 결과를 보이며 대한민국의 출산율을 감소시켰다. 오른쪽 그래프에서 보다시피 1970년 4.53이었던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2005년 1.08까지 떨어져 대체출산율을 한참 밑돌며 신생아 수 또한 절반 이상 감소했다. 산아제한 정책은 출산율을 줄이는 것에는 큰 효과를 발휘했지만, 1994년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체감해 산아제한정책을 철폐하고 다시 출산장려정책을 추진했을 때는 효과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계속해서 감소 추세를 보인다. 즉,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욱 발전적이고 근본적인 형태의 해결책이 필요한 것이다.출산율이 감소한 또 다른 원인으로는 결혼과 출산에 관련하여 남녀의 가치관 변화로 인한 혼인율 감소를 예로들 수 있다. 현재 20대의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남아있던 가부장적 권위의식은 결혼을 삶의 주기에서 필수항목과 같이 인식시켰다. 그러나 점차 여성이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고학력 여성으로부터 페미니즘 운동이 전개되면서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급속하게 향상되었고, 결국 결혼이나 출산이 생애주기에 있어 필수가 아닌 선택의 개 그렇지만, 이는 결국 언젠가는 풀어야 할 국가적 과제이며, 그 해결책을 도모하기 위해 저출산 현상의 근본적 원인과 현대 한국사회에서의 경향을 알아볼 것이다.2.1 초식남 현상대한민국 혼인율의 감소는 결국 출산율의 감소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즉,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혼인율 감소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출산에 대한 자유로운 환경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페미니즘이 일반적인 사회문화적 풍토로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기존 남성 가부장적 질서의 반발로 남녀 사이의 갈등은 증가하고 있다. 현재 많은 여성이 페미니즘 운동을 통해 쟁취한 경제적 자유를 이용해 사회에서 본인의 능력을 인정받길 원하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남성과의 정당한 경쟁을 통해 여성의 열세가 생물학적 측면을 원인으로 하지 않고 사회·문화적 측면을 원인으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여성권리의 신장에 따라 남성들은 기존의 파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해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으므로,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과 회의감을 느끼고 취미 생활을 개발하며 독신으로 사는 것을 지향하는 남성들이 서서히 증가하는 현실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의하면, 현재 미혼남자의 초식남 비율은 43.1%로 절반에 가까운 남성이 초식남 성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미혼남성이 결혼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주택 등 결혼자금’으로 68.0%를 차지한다. 즉, 결혼비용, 주택비용,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을 떠안게 된 남성이 결혼을 꺼리게 되고, 결국 40%가 넘는 남성이 초식남 성향을 지니게 된 것이다. 남성들의 이런 초식남 경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국가 주도적으로 결혼 비용이나 양육의 부담을 제도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2.2 여성의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와 양육비 문제남성의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가 과도한 비용으로 인한 것이었다면, 여성의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원인은 무엇일까?통계청에 의하면, 2012년 미혼여성 중 56.7%는 결혼에 대겨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져 현재는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는 과잉교육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하면, 시기별 자녀 양육비는 2003년 197,029,000원에서 2012년 308,964,000원으로 매우 큰 폭인 56.8%가 증가했다. 이 중 자녀의 대학 재학 시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대입을 준비하는 초, 중, 고등학교 시기가 그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2003년에는 해마다 각각 7,908,000원, 9,204,000원, 10,452,000원을 기록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12,660,000원, 13,740,000원, 15,732,000원으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해가 지날수록 자녀양육비는 상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또한, 아직 육아 복지가 정착하지 못한 한국사회에서는 여성이 임신할 경우나 출산을 하고 난 후에 직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일자리 부족 현상으로 인해 빈자리가 있으면 곧바로 새로운 인력을 대체할 수 있고, 육아 및 임신으로 인해 기혼여성의 노동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갖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여성의 임신 및 결혼에 대한 부정적 가치관이 생기며 저출산 현상을 가속하고 있다. 따라서, 출산 후 경제적, 사회적 고용 보장 등을 통해 실질적인 출산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3. 고령화 문제산업화의 완성에 따른 한국의 고도발전은 의식주 문제를 넘어서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을 야기하고 의료과학기술 발달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의료혜택을 누리는 노년층이 증가함에 따라, 70년 이후 약 40년의 세월 동안 20년가량의 평균수명이 증가해 인구구성비에서 노년층의 비중을 크게 높였다. 고령화 문제는 저출산 문제와 결합해 노동력 부족 문제를 야기하고 생산연령층의 조세 부담문제를 가중시키며, 나아가서는 노년층의 사회·경제적 배제 문제를 발생시킨다. 또한, 고령화 문제는 단순히 국가적 차원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 차원에서도 발생해 특정 지역의 노동력 부족 문제와 하락 되어 제품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성공한 반면 다양한 문제를 야기했다. 도시로 노동자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촌락의 노동력은 점진적으로 줄어들었으며, 단기간의 급격한 도시인구의 증가와 무분별한 도시 팽창으로 도시에는 주택문제와 빈민 문제가 만연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도시 재정비 사업의 결과 오히려 더 풍요로워진 도시로 사람들이 다시 이동하면서 이촌 향도 현상은 더욱 가속화됐다.3.2 구조적 이동에 따른 시도별 노령화 현상시도별 노령화 지수를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낙후된 경북, 충북, 충남, 강원, 호남(전북, 전남)은 각각 113.6%, 80.4%, 95.1%, 97.2%, 101.9%, 136.4%로 전국 평균인 66.8%보다 노령화 지수가 상당히 높아 인구 고령화가 많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또한, 수도권(서울, 경기), 광역시(부산, 울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경남 지역의 노령화 지수는 각각 63.5%, 46.8%, 79.0%, 39.6%, 60.8%, 51.5%, 46.1%, 47.3%, 74.2%로 수도권 지역 및 광역시 지역의 노령화 지수는 전국 평균인 66.8%보다 비슷하거나 낮지만, 남동임해공업지역을 포함하는 경남지방과 부산지방은 각각 74.2%, 79.0%로 전국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다.거점개발 대상지역들이 승수효과로 인해 3차 산업 또한 발전해 지속적 인구유입이 일어나기 때문에 대체로 낙후지역과 발전지역은 노령화 지수와 상관관계가 있지만, 경남과 부산은 아직도 2차 산업의 중심지로서 2차 산업의 쇠퇴와 3차 산업 및 지식기반산업의 발전은 이 지역의 인구유입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으며, 남동임해공업지역이 한창 성장하던 70년대 이주해온 노동자층이 시간이 지나면서 노화되면서 노령화 지수가 높아진 것으로 추정한다.다음은 이촌 향도와 관련된 산업발전에 따른 사회이동과 노령화 지수의 상관관계를 더욱 구체화하도록 한다. 노령화 지수가 가장 높은 전남(136.4%)과 가장 낮은 울산(39.6%)을 표본으로 시기별 히 감소했으며, 노년층의 인구비중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노령화 지수가 급격히 상승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울산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핵심 공업지역으로서 유소년층과 생산연령층의 인구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전남의 노령화 지수를 크게 밑돈다.낙후지역과 발전지역 사이의 지역 간 불균형은 생산연령층과 유소년층의 지속적 감소를 야기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낙후지역의 노동력부족 문제 및 생산력 감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는 생산연령층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일이며, 생산연령층의 감소는 곧 출산율 감소를 야기해 그 지역의 절대인구 감소를 야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역간 발전격차를 해소해 균형 있는 국토개발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한다.3.3 노인 문제의 대두현재 대한민국의 노령화 지수는 16.7%로 이미 ‘고령화 사회’단계에 접어들어, 약 600만 명이 노인인구로 남아있다. 이는 생산연령층의 과도한 복지비용 부담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지만, 전통적 효의 가치관 퇴색으로 인한 가난한 노년층의 자살 및 사회적 배제, 휼몸노인(독거노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조선 시대의 유교의 가치관이 아직 개인과 사회의 행동방식을 이끌 때는, ‘효(孝)’의 정신과 맞물려 부모에 대한 자식의 봉양은 너무도 당연시되었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에 맞춰 서구의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확산되고, 전통적 유교의 정신이 약화된 현세대의 자녀들은 부모의 지원은 당연시 받았지만, 미래의 부모 봉양에 대해선 책임에 대한 의무감이 낮다.우측의 그래프를 보면, 1998년부터 부모봉양에 대한 현대인의 가치관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1998년 당시 약 90%가 부모의 봉양을 자녀가 맡아야 한다고 답했지만, 2010년에는 그 비율이 40% 아래로 떨어졌으며, 대신 ‘가족과 정부·사회’의 비율이 50% 가까이 차지해 노년층에 대한 봉양은 더 이상 자녀의 책임이 아니라 다른 가족과 정부 및 사회의 역할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또한, 자녀와의 동거에 대한 노년층의 가치관도 상당 부분 변했는데, 2002년 자녀와.
    사회과학| 2017.10.21| 8페이지| 1,500원| 조회(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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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서평
    한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미국 출신의 변호사가 유럽을 횡단한 경험은 그의 아비투스에 경종을 울리게 했다. 삶에 있어 자본이 자유와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 불가피하며, 젊은 지식인들이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현실에 타협하기 급급한 사회가 있을까? 놀랍게도 나는 지금 그 속에 있다. 한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다. 좋은 삶, 그것도 모자라 ‘평범한 삶’ 조차 꿈꾸기에도 숨이 막히는 시대다. 언젠가부터 ‘평범’하다는 것은 닿기 어려운 이상향이 되었다. 행복한 삶을 꿈꾸는 것보다 오히려 가장 인간답지 못한 삶을 그리는 것이 익숙한 듯하다.산업화부터 신자유주의까지. 한국의 압축적인 민주화와 경제성장은 다양한 사회적 병폐를 낳았다. 시장 자본주의 한국은 마치 미국의 축소판과도 같다.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미국의 51번 째 주라는 말이 나오겠나. 책 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미국의 겉만 번지르르한 GDP, 계층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 위치하는 ‘파워 엘리트’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구조는 쌀쌀한 체감경제와 불평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한국과 너무나도 흡사하다.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금융’이라는 꿈을 꾸던 미국식 시장경제를 비웃었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세계 경제가 휘청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선망의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독일 모델의 강점은 무엇인가? 책에서는 독일 특유의 노사협력과 산업구조 등 사회적 시장경제에 방점을 두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독일의 기업 내에는 노동자가 핵심이 되어 평의회가 존재하고, 노사공동결정제도를 이끈다. 노동자는 조합을 통해 처우개선만을 외치지 않는다. 스스로 기업을 이끄는 주체로서 경영에 참여한다. 전문경영인과 임원들의 입김이 강한 미국식 기업에 비해 독일 모델은 노동자의 참여와 노사공동결정의 제도적 보장을 우선하는 것이다. 이 덕분에 사람들의 현실과 삶에 가까운 영역에서 사회보장을 이끌 수 있다.또한, 미국식 시장경제의 문제는 신용경제 금융에 의존하는 ‘모래성 번영’과 같다는 데 있다. 가시적인 부의 팽창이 큰 만큼 붕괴 또한 쉬우며, 연쇄적인 붕괴로 이어지게 되면 다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위험성이 크다.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헤게모니 시대에서도 실물경제의 이윤율 저하를 금융 부흥을 통해 대체했지만, 그들의 ‘벨 에포크 프랑스어로 ‘좋았던 시절, 시대’를 의미한다. 이 글에서의 맥락을 설명하자면, 실물경제의 이윤율이 정점을 찍었다가 수요 및 공급의 변동에 따라 이윤율이 하락하게 되어 경제구조가 금융경제로 옮겨감. 금융경제 초기에는 이윤율이 높아서 경제수준이 고도화 되는데, 이 시기를 ‘벨 에포크’라고 칭함, 그러나 실물경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금융경제의 이윤율이 저하하는 시점에서는 경제 전반이 무너짐. 신자유주의 하에서 금융이 주류 시장이 되었음에도 독일은 실물경제와 제조업에 기반한 경제구조를 고수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큰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는 한 순간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미국 헤게모니 역시 그와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반면에 독일은 제조업과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튼실히 닦았다. 때문에 어떤 경제적 국면에서도 안정적이다. 현재 유로존의 위기가 논의되는 와중에서도 독일 경제의 묵직함은 누구도 의심치 않는다.독일에서 어떤 요인이 모범적인 복지체제와 사회적 시장경제를 실현케 했는지 살펴보면, ‘사회의 자율성’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독일의 사회보장체계는 후생복지나 부조의 방식과는 다르게 사회 저변에 깔린 삶의 모든 양식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보충성의 원리 가톨릭의 보충성 원리에 의하면 사회적 과제는 무엇보다도 먼저 가족, 지역 공동체, 직업집단 조직체들에 의해서 책임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여의치 못할 경우, 최후적인 요청으로서 국가에 의해 ‘보충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Ritter, 1991: 79). 보충성의 원리가 사회정의와 정책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고, 이를 통해서 사회부조 대상자들의 자유와 자율권 까지도 보장됨.’에서 잘 드러난다. 다시 말하자면, 독일 사회에는 앞에서 설명했던 특유의 노사협력, 산업구조와 더불어 협동조합 같이 발전된 지역공동체 둥의 체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는 국가차원의 통제가 아니라 사회의 아래에서부터 공공선의 목표를 통해 실현될 수 있었다는 점을 시사해준다.한국에서도 독일식 모델은 뜨거운 감자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경제 민주화와 복지를 외치지만, 이미 자본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한국의 현실에서 얼마나 실현될지는 미지수이다. 또한, ‘성장과 분배는 맞물려가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성장과 분배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려는 사회적 분위기와 정치문화가 개선되지 못한다면, 건전한 경제성장과 복지의 확립은 양립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신자유주의는 ‘선성장 후복지’와 함께 규제 철폐와 극단적인 효율성 추구 등 자본의 논리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결국 세월호 사건이라는 크나큰 상처를 떠안겼다.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한국이 새롭게 변화하자는 국민적인 요구가 듫끌고 있다. 그러나 이미 영미식의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이 뿌리 깊게 박혀있는 역사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 가에 대한 논의는 그 요구에 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독일 모델의 모방 가능성에 있어 회의적인 학자가 많지만, 분명 독일 모델은 한국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에서도 독일 모델이 미국에서 가능함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도 가능하다. 다만 유의해야할 부분은 독일 모델의 성공이 제도 자체가 아니라 보충성의 원리, 사회 아래에서부터의 실천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한국도 독일 모델의 ‘모방’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독일 모델의 전제와 기반을 새로 쌓는 것이 시급하다.
    독후감/창작| 2017.06.04| 2페이지| 2,000원| 조회(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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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 서평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 서평우리의 근대 과정은 서구주의를 바탕으로 성립되었기 때문에 고유한 동아시아의 역사성과 문화성이 배제되었다. 서구문명의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은 동양은 비합리적이고 열등하며 도덕적으로 타락되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서양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성숙하고 정상적이라는 인식을 만들어왔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은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시키는 수단일 뿐 아니라 서양과 동양의 경계 지속적으로 확장시키고, 재생산시킨다. 아시아라는 경계를 서구열강의 시선에서 임의로 구획할 뿐만 아니라 근대화, 서구화라는 미명하래 동아시아 역사인식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동아시아는 몇 시인가?‘는 기존의 역사적 시각과 거리를 두면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세계사 간의 간격을 보여준다. 기존 서구중심주의와 서구 중심의 근대성 이론으로는 동아시아의 발자취를 면밀하게 분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는 우선적으로 근대화를 이룩한 서구사회로부터 충격으로 받으면서 현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방식은 굉장히 압축적인 시간에 이뤄졌으며, ‘서세동점’과 같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서구에 의한 비서구의 식민화 혹은 근대에 의한 전근대의 식민화로 설명할 수 있다. 근대중심주의는 근대성의 사회가 전근대를 재편하고 근대를 정상성으로 내면화하는 일련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이른바 서구사회와 근대라는 것은 그것이 비서구사회와 전근대를 정상성에서 이탈한 타자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근대성이 서구적 사고가 확장됨에 따라 발현된 것인지 비판해볼 필요가 있다.‘동아시아는 몇 시인가?’에선 를 제시하며 오늘날의 동아시아, 특히 한·중·일 3국이 여전히 유교적 특성에 영향을 받고, 유교적 근대의 영향력이 지속되어있음을 강조한다. 유교적 근대의 시기에 있어 중국은 명조와 청조를 지나며 지속적으로 서구적 근대가 수용되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한국이나 일본은 중화주의 하에서 유교적 근대의 주변적 위치에서 다시금 서구 및 근대중심사회의 주변적 . 다시 말하면, 서구중심주의나 근대중심주의의 논의와 다르게 동아시아에는 주자학을 중심으로 동아시아만의 근대 모델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국가들이 근대중심주의라는 직선도식에 놓여 뒤늦게 근대성으로 이행한 것이 아니라, 유럽과 다르게 동아시아는 유교문화를 이념으로 하는 다른 차원의 ‘근대’가 존재한 것이다. '즉, 동아시아 체제를 이루는 지역과 국가들은 서로 발전적인 측면에서 구조적인 유사성을 공유한다.더 나아가 주변국의 위치에 있는 한국과 일본의 국가에 대한 인식론을 설명할 때, 유교(주자학)이 수용됨에 있어 두 국가의 역사적인 자각을 비교하여 접근할 수 있다. 일본에서 유교적 근대, ‘주자학’으로 일컫는 대상은 항상 극복해야할 것으로 여겨졌다. 일본은 계속해서 중국과의 차이를 강조하며 ‘일본적 중화주의’를 추구한다. 반면, ‘소중화주의’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은 중국 보다 더 중국적인 것을 중화사상의 근거로 삼았다. 즉, 유교적 근대론의 주변적 존재인 한·일은 그 주변성에 있어서는 서로 대비되는 위치에 놓여있다. 이러한 대조적 모습은 서구적 근대를 수용하고, 현재까지의 역사와도 맞물려 있다.일본은 근대를 맞이하면서 서구의 문물을 수용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서구사회의 발전방향과 차이를 두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조선에서부터 현재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서구에서 기원한 정치사상이나 종교가 한반도 내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에선 19세기를 전후로 유교적 근대와 서구적 근대를 이중적으로 경험했다. 한·중·일이 유교적 근대의 중심국과 주변국으로 존재하고, 주변국 사이에서도 서구적 근대로 이행함에 따라 대조적인 양상을 띠면서 서로가 역사적 위치를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동아시아 내에서 역사인식을 두고 첨예한 갈등이 존재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이외에도 ‘동아시아는 몇시인가?’에서는 동아시아의 역사적 바탕을 설명함에 있어 한·중·일 간의 비교사적 분석을 통해, 기존의 역사관념으로 진단할 수 없도출해낸다. '동아시아 은 교역과 조선', '19세기 조선의 동문의식과 한문 근대' 등의 논문에선 동아시아를 구축하고 있는 공통적 특성들을 설명하며 문화적 일체감을 다룬다. 또한, 유교문화의 하위적 개념차원에서 '사대부적 정치문화'는 조선말의 당쟁과 세도정치, 그리고 이와 대비되어 일본에서의 개혁태동이 사대부적 정치문화와 어떻게 관련을 맺고있는지 고찰한다. 특히 이 지점에서 동아시아 근대성의 태동이 유럽 근대의 역사적 경험에 입각해 이뤄진 것으로 보지 않고, 그것을 반대로 억누르며 논지를 전개한 것에서 흥미롭다.조선은 사대부적 정치문화가 가장 활성화된 곳이었다. 조선의 쇠퇴는 '당쟁'을 비롯한 사대부적 정치문화가 야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도정치로 일컫는 독점적 정치가 위축되어 사대부적 정치문화를 대체하면서 이뤄졌다, 그리고 일본 내에서 이 사대부적 정치문화가 사무라이 계급으로 뒤늦게 확산된 후, 막번체제의 붕괴와 동시에 메이지유신으로 이행됨을 설명한다. 근대성에서 탈각된 ‘선비’적 문화가 오히려 덜 선비스러워진 조선과, 뒤늦게 선비적인 옷으로 탈바꿈한 일본 사이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기존의 개항 이후 개혁과 개방을 둘러싼 동아시아 외부 중심의 논의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내부의 유교적 근대성이 어떻게 동아시아의 변화상을 구축했는지 탁월하게 설명해주는 사례가 된다.우리는 현재 역사인식에 있어 서구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구는 근대, 비서구는 전근대로 일컫어지며 서로 유기적 관계로서 규정되고, 비서구와 전근대는 숙명적으로 서구가 지나온 길을 따라와야만 하는 시공간으로 전락한다. 따라서 비서구의 역사는 독자적인 성격을 갖지 못하고 서구와 근대성에 어떠한 관계를 맺는지 혹은 얼마나 근접하는지가 중심이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비서구사회에 대한 역사적 배제와 은폐는 근대와 전근대의 역사를 균질적으로 단정지으며 발생한다.역사는 계단이나 국경 따위처럼 단절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전근대나 근대와 같은 시공간은 어느 한순간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가 서로 상호작용하며 공존하며 개인 혹은 사회관계가 형성되고 변모해간다. 이러한 서구중심의 역사인식에 대해 비판점이 제기되어왔지만, 여전히 서구중심적 시각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캘리포니아 학파의 ‘새로운 세계사’ 논의는 서구중심의 역사인식에 대한 비판에 있어 의미가 크지만, 전근대와 근대 사이의 비대칭적 관계 이해에 대해선 미흡하다. 세계사 이해나 앞으로의 역사적 전망 역시 서구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근대성을 바탕으로 발전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시아의 부상에 관한 이야기를 담는 것에 그친다.동아시아사에 대한 분석을 진행함에 있어 기존의 역사인식을 탈피하기 위해선, 서구중심주의 뿐만 아니라 근대중심주의를 동시에 살펴보아야 한다. 동아시아를 하나의 동질적인 시공간으로 사고하지 않고, 서구 및 근대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사를 재구성하는 방법론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서구 및 근대중심주의에서 탈피하여 동아시아의 시각에서 동아시아의 역사상을 해석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세계사상의 자체를 새롭게 구축할 수도 있다.전근대는 근대를 향해 나아가야하는 숙명의 시간이 아니다. 전근대 그 자체에서 다양한 인격과 사회적 제도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일련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시공간으로서 인식될 수 있고, 근대에 종속되지 않은 채 근대를 향해 논할 수 있는 주체적 위치를 획득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일방향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시간을 넘나들며 근대와 전근대를 유기적으로 비교하고 연관 짓는 접근이 필요하다. 즉, 전근대와 근대가 단절적인 상태로 각각의 시공간에서만 동질적인 것이 아님을 드러내야 한다. 기존의 근대중심주의에 대한 면밀한 논의를 위해선, 우선적으로 전근대적 관점으로 근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그래서 동아시아의 역사상은 서구 및 근대중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동아시아가 단순히 서구에 이어 후발주자로 근대로 이행했다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역사적 경험자체가 서 지녔다는 점이다. ‘소농사회론’, ‘유교적 근대론’ 등이 보여주듯이 동아시아 사회의 전통적 특성이 서구사회 중심의 시각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공통성을 기저로 하는 담론으로 동아시아를 이해해야한다.대한민국에 있어 현재의 동아시아 정세는 '진퇴양난'이다. 최근 미중 정상회담과 미국과 북한의 군사적 견제 이후에 동아시아 정세가 거시적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가령,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의 논의를 극심히 우려할 정도로 작금의 역학적 관계 속에서 동아시아 내 한국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져만 갈 수도 있다. 사드배치를 중심축으로 하는 한중간의 외교적 관계도 계속해서 냉각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국제 관계가 다변화됨에 따라 한미동맹과 같이 기존에 당연시 되어왔던 밀월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확답하기 어렵다.혼란이 가중되는 이시기에, 우리는 막연하게 파괴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잦다. 동아시아 질서에 균열이 일어났을 때, 역사적인 흐름을 짚음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날엔 이러한 사유에 관해 매우 소극적이다, 현 시점으로부터 30~40년 전에도 세계는 미래를 어떻게 건설해내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잦았다. 가령 각자의 이데올로기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미래 사회상이 자본주의적이거나, 공산주의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굉장히 특이하게도 사회적 이슈나 묵시록적인 구조적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려하지 않는다. 가령 글로벌 캐피탈리즘이 유일한 것이라 단정 짓고, 파괴적인 전쟁이나 경제문제로 인해 현 체제가 극단적으로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대안을 구상하지 않는다. 급진적으로 변하는 세계정세에 대응해야한다는 신념보다도 가볍게 일컫는 체제의 종말, 국가 멸망을 초래하는 결과 등에 대해 더 쉽게 받아들이는 세상에 살고 있고,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현상이 현재의 한국에서 팽배하다는 점이다. 그렇가?
    독후감/창작| 2017.06.04| 4페이지| 1,000원| 조회(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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