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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묵의뿌리-레포트
    각자의 역사, 각자의 기록-조세희 ‘침묵의 뿌리’를 읽고말이 쌓여있어도 할 수 없는 시대가 있다. 그런 시대는 언제나 존재한다. 종이 위에다 농사를 짓는 작가가 글을 쓰지 못했던 1980년대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시대가 퍽 나아진 것은 없다. 글로써 열심히 농사를 지은 작가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변호인을 연기한 배우는 출연 섭외가 끊겼다. 겨우 무대를 결실로 내놓은 연극은 소리소문 없이 막을 내렸고, 우리들은 어디서 ‘말’을 찾아야 할 지 혼란스러웠다. 지금의 이야기다. 기나긴 투쟁의 역사에서 근현대의 과도기적 혼란은 역사책으로 배워야하는 것 인줄로만 알았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임은 알고 있었지만 하나쯤은 나아진 세상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지나온 흔적을 딛고 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면 되는 줄알았다. 그러나 나는 불과 지난 주말 역사에 큰 획을 남길 현장에 점처럼 서있었고, 21세기 광화문은 대낮처럼 뜨거웠다. 분노가 모여 뜨거웠고, 촛불의 열기가 뜨거웠고, 사람의 온기가 뜨거웠다. 시민의 소용돌이 속에서 해야할 ‘말’에 대해 고민했다. 아껴왔던 ‘말’에 대해 후회했다. 그리고 입을 틀어막았던 저들을 향해 역사의 큰 물결에 걸음을 보탰다.어린왕자를 만난 작가는 글농사에 실패한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10개인데 5개 밖에 쓰지 못한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한 현실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 것이다. 이어지는 독백도 어쩐지 낯설지 않다. 스위스와 미국,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대목에 이르면 부끄러워진다. 잘 사는 나라들은 가난과 고난, 고통과 불행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잘 분배하는 데에서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못 사는 나라들은 그것을 감추기 급했다. 1인당 국민소득가 세계 11위에 달하는 오늘날 대한민국은 잘 사는 나라일까 못 사는 나라일까. 각종 정책의 실패로 뿌리 깊은 곳부터 병들어가는 경제상황과 실리는 없었던 보여주기식 외교를 볼 때, 우리는 감추기 급급한 나라였던가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라였던가. 한강의 기적 이후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부패와 분노와 싸워야했는지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다시 1980년대로 돌아가, 조세희가 말하는 ‘사북사태’는 어떤 일인지 들여다 보았다. ‘사북사건’은 어김없이 잔인했던 80년의 4월에, 어용노조의 임금소폭 인상에 항의하여 광부들이 사북에서 일으킨 노동항쟁이다. 조세희는 이 사건을 1980년대의 시작으로 기억한다. 그에게 청산하지 못한 빚으로 남았던 이 사건은 그를 다시 사북으로 찾아가게 만든다. 노동항쟁으로써는 이례적으로, 광부들은 경찰서장을 집단 폭행하고 사북읍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열악한 생활환경, 누적된 육체적 피로, 나아질 기미가 없는 임금상황과 반복되는 일상.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처해있던 그 시대 노동환경으로 부터 사북의 노동자들이 힘든 탄광 일을 선택한 것은 반 강제적 선택이었다. 위험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노동에 비해 임금이 높으며 부가적 혜택이 주어진다는 이유로 탄광촌이 활성화 되었다. 그러나 어용노조는 이들의 기대를 저버린다. 이처럼, 불신에서 비롯된 노동운동이 폭력적 항거로 번져나간 데에는 그들의 열악했던 생활환경이 일차적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떤가. 국민소득은 증가한다는데 내 소득이 증가하는 것보다 물가 오르는 속도가 더 빠르다. 명목없는 세금이 변명을 달고서 불어나고, 정부는 태만한 채 나의 안전조차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입을 닫고 지켜본 이유는, 꾸역꾸역 나의 일상을 밀고나간 이유는, 그 모든 것이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에 흔히 있는 잡음이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을 때 항쟁은 도래했다. 불신에서 비롯된 민중궐기가 일파만파 퍼져나가는 요즘의 날들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사북사태가 80년을 열었던 항거였다면 요 근래의 토요일 저녁은 21세기를 여는 항거가 분명하다.조세희만이 광부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졌다. 고통에도 층위가 있어서, 더 참담한 고통은 다른 고통들의 뒤안에 위치해 있다. 타인의 고통이 비극적이고 아프고 슬플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그것들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을 호소하고 연대를 외치면서도 뒷걸음질을 치곤 한다.진정한 고통의 맨얼굴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든 탓이다. 세월호사건 이후 여러가지 의혹과 남은 문제들을 피하고 싶었던 나의 변명이다. 사건이 재조명될 때마다 도망치고 싶었다. 살아있는 나의 오늘이 누군가의 생을 담보로 이어져있다는 생각은 청산하지 못한 빚처럼 느껴졌다. ‘침묵의 뿌리’에서 청산하지 못한 빚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이다. 어느 누구도 그들의 고통을 책임지지 않는다. 열악한 환경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던져진 고통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탄광촌 사람들의 고통은 아이들의 삶에 고스란히 각인된다. 아이들의 글 모음집에서 보이는 ‘구멍난 양말’ ‘가난’ ‘배고픔’ ‘잡표신발’ 등이 그렇다. 아이들으 글에서 천진함과 순수함을 느끼다가도 때로 때 이른 굶주림으로 인한 속깊은 면모를 보게된다. 아이들에게로 가난이 되물림 될 것이라는 사실에 또 다시 슬퍼진다. 조세희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가난과 고통을 날 것 그대로 기록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진다. 기억은 강력하지만 무형의 것이어서 글자라는 유형의 것을 거치지 않고서는 수명이 짧다. 나 역시 그날의 일을 기록했다. 인터넷으로, 일기로, 지금 이 글로. 주목하지 않고 외면하면 고통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다른 형태로 되돌아 온다는 것을 알기에. 더 먼 훗날에 이 고통을 되물려주지 않기 위하여, 발 딛은 날을 기억한다. 조세희는 그의 시대를 기록했고, 오늘 나는 나의 시대를 기록한다. 각자의 시대는 달라도 아주 많이 닮아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세상이 닮아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독후감/창작| 2019.05.17| 3페이지| 1,000원| 조회(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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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거일-비명을찾아서-레포트 평가A+최고예요
    이름을 찾아서복거일- ‘비명을 찾아서’‘이름’은 사람을 규정한다. 우리는 일생 동안 수많은 이름을 안고 산다. 딸과 아들로, 학생으로, 직업으로, 누군가의 배우자로, 나아가 누군가의 부모에 이르기까지. 살아간다는 것은 불리우는 이름이 하나씩 늘어나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행동과 생각 역시 이름에 맞게 변한다. 시간이 무 자르듯 잘라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되어 어떤 일을 맡게 되면 일순간 책임감이 생기는 것처럼. 일제 강점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잃었다. 불리웠던 이름을 잃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는 것 만큼이나 비극적인 일이다. 이 소설은 나를 규정했던 수많은 이름들을 말살했던 창씨개명정책이 한 개인의 자아인식과 역사인식에 얼마나 큰 혼란을 주었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많은 이름들 중 어떤 이름을 선택하여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비명을 찾아서’에서는 ‘이름’이 히데요의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히데요’로 살아가던 나는큰아버지로부터 ‘박준규’라는 본명을 알게되고 시조 박혁거세를 관련 문헌을 찾아보면서 조선 ‘이름’의 뿌리를 찾는다. ‘나’는 ‘히데요’와 ‘박규진’이라는 두 이름에 내재된 이중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한다. ‘히데요’는 내지인으로 살아가던 ‘봄’의 정체성에 해당한다. 진짜 ‘나’를 알게 되는 순간 ‘나’의 자인식이 발현하는 것이다. 두 자아의 갈등은 여름에 이르러 극대화된다. 내지인과 조선인의 불평등적 신분관계는 히데요가 자신의 주체성을 찾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도끼에와의 사랑이 실패로 끝난 배경에는 그의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다. 히데요가 일본인 도끼에와 미국 실무자 앤더슨 사이에 쉽게 끼어들지 못한다. ‘조선인’이라는 신분 때문이다. 그에게 ‘조선인 박준규’는 사랑의 장애물이며, 유일한 결점으로 작용한다. 후에 도끼에가 그를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녀가 사랑한 것은 ‘박규진’가 아니라 ‘히데요’였다고 생각한다. ‘조선인 자아’로써의 열등감이다.천재를 괴롭게 하는 방법은 재능을 주고 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라 한다. 일제강점기 많은 지식인들이 히데요처럼 ‘이름’ 사이에서 갈등했을 것이다. 민족을 등지고 조선인으로써의 이름을 버리면 자신의 재능이 앞날을 보장해주던 그 때, 지식만 있고 내면이 단단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이름 바꾸기’의 유혹에 얼마나 많이 흔들렸을 것인가. 비단 일제 강점기의 이야기가 아니다. 양심을 버리고 소신을 버리면 돈과 명예가 보장된다는 유혹에 지금도 많은 지식인들이 ‘이름’을 버리고 있다. 청년시절 꿈꾸었던 ‘이름’을 버리고 되고싶었던 ‘이름’을 버리고 주체성을 버린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데 오늘날 사람들의 기대를 받는 자리는 오히려 사람을 치졸하게 만든다. 부를 좇는 ‘이름’만이 득세하는 세상이다. 사랑 앞에서 조선인으로써의 ‘이름’을 버리고 싶었던 히데요는 차라리 순수한 것인지도 모른다.히데요의 도끼에와의 마지막 만남을 기점으로 정체성 찾기에 박차를 가한다. 이별 이후의 시간은 조선의 실체 혹은 민족성 안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시’ 와 ‘조선어’는 정체성 찾기의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이 전까지 ‘조선’의 이름이 신화나 전설처럼 막연한 이야기였다면 이별 이후 ‘조선’은 히데요에게 실체로써 다가온다. 무심코 지나쳤던 시사잡지에서, 뉴스에서 역사의 중심에 서있는 ‘조선’을 발견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관심 가지는 만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발견한 순간 그에게 ‘조선’은 더이상 과거에 묻힌 역사가 아니다. 현재 진행형의 ‘실체’로 다가온다. 그 중심이 바로 상애 임시 정부다. 임시 정부는 ‘조선의 실체’를 상징하는 것으로써 히데요가 이중적 자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즉 여름의 시간은 자아 동일성 획득의 중간 단계로 볼 수 있다.가을의 서사는 제목처럼 ‘비명’을 찾는 과정 즉 묻혀진 역사의 실체 혹은 증거를 찾는 과정이다.봄, 여름의 서사에서는 히데요 자신의 자아 탐색에 대한 서술이 주를 이루었다면 가을의 서사에서는 혼란한 사회정세에 대한 서술이 대부분이다. 히데요가 두 정체성 사이에서 어떤 자아를 선택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게하며, 역사적 사실을 통해 그의 선택에 논리성을 부여하는 장치이다. 그 중 중요한 것은 대학도서관에서 입수한 조선관련 문헌을 읽어보는 일들이다. 히데요는 이 책들을 읽으면서 ‘조선인 이름’을 택했을 때 자신의 미래가 어두울 것임을 알게 된다.‘다른 것은 그가 바라보는 미래의 지평 위에 검은 구름이 드리웠다는 것이다’운명에 대한 예감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떨어질 그의 운명에 대한 징조다. 겨울에 이르러 수난을 겪는 동안 그의 자아 탐색과정은 완성 단계에 이른다. 나고 자라 배웠던 ‘일본’이라는 조국에서 벗어나 역사 속에서 스스로 찾아낸 ‘조선’을 조국으로 선택하는 과정이며 ‘박규진’으로써 자아를 확립하는 단계다. 그의 선택을 주목할 만한 이유는 그가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히데요’로써 살아가는 일은 무난하고 안일한 여생을 보장한다. 반면 ‘박규진’으로 살아갈 때 그의 안위는 보장받을 수 없다. 그러나 이름의 뿌리를 찾고 고민하는 적극적인 과정을 통해 ‘조선인’으로써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결과에 휘둘리지않고 소신을 선택한 것이다.오늘날 수많은 ‘히데요’는 ‘박규진’이 될 수 없는 것일까. 강한 자의 이름, 부와 권력을 보장하는 이름, 일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이름. 그 이름들에 휘둘리면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잊고 살았던 이름, 가슴 뛰게 하는 이름, 소신을 품은 이름. 그것들을 찾는 노력이 없다면 ‘비명’에 기록될 말은 없을 것이다. 죽은 뒤 어떤 이름으로 남겨질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싶다. 우리가 남기는 모든 발자국은 이정표가 될 것이므로. 이양연의 한시를 인용하며 말을 마친다.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덮인 들판을 걸어갈때는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어지러이 걷지 말라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나의 발자국은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뒷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리라.
    독후감/창작| 2019.05.17| 4페이지| 1,000원| 조회(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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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녀함양박씨전,열부론 독후감
    열녀함양박씨전과 열부론1.열녀함양박씨전박지원은 이 글을 통해 ‘수절 방식으로서의 자살’을 비판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글은 크게 세 부분으로나뉘어 지는데 도입부의 열녀에 대한 의견 개진, 엽전 굴린 과부의 일화 그리고 함양 박씨 이야기이다. 박지원은 도입부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는 열녀풍조가 미담에 대한 칭송만으로 전 계층에 확산되는 것을 경계한다. ‘개가한 여자의 자손은 정직에 서용하지 말라’는 경국대전의 내용은 이미 평민에게는 해당이 없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풍속’을 이루어 여인들이 스스로 ‘열녀’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박지원이 경계하는 것은 그 중에서도 ‘자살’에 있다.“심지어 촌구석의 어린 아낙이나 여염의 젊은 과부와 같은 경우는 친정 부모가 과부의 속을 헤아리지 못하고 개가하라며 핍박하는 일도 있지 않고 자손이 정직에 서용되지 못하는 수치를 당하는 것도 아니건만, 한갓 과부로 지내는 것만으로는 절개가 되기에 부족하다 생각하여, 왕왕 한낮의 촛불처럼 무의미한 여생을 스스로 끝내 버리고 남편을 따라 죽기를 빌어, 물에 빠져 죽거나 불에 뛰어들어 죽거나 독약을 먹고 죽거나 목매달아 죽기를 마치 낙토를 밟듯이 하니, 열녀는 열녀지만 어찌 지나치지 않은가!”‘열녀는 열녀지만’이라는 표현에서 박지원이 과부가 수절하는 풍속 자체에 대한 비판을 하고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죽어야할 마땅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흔해져 버린 ‘수절’에서 나아가 절개를 지키기 위해 ‘죽음’이라는 극단적 행태로 나아가고 있는 풍조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함양박씨의 이야기 전에 그와 관계 없는 엽전굴린 과부의 이야기를 넣은 까닭은 무엇일까? 열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박지원 자신의 열녀관을 드러낸 것이라 보았다.“아! 그 모진 절개와 맑은 행실이 이와 같은데도 당시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이름이 묻혀 후세에도 전해지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과부가 의를 지켜 개가하지 않는 것이 마침내 온 나라의 상법(常法)이 되었으므로, 한번 죽지 않으면 과부의 집안에서 남다른 절개를 보일 길이 없기 때문이다”엽전 굴린 과부를 두고 박지원은 ‘모진 절개와 맑은 행실’이라 한다. 다만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이미 그러한 일이 흔해진 까닭이라 한다. 이를 통해 ‘죽음’이 아니고서야 보통의 열녀 행실은 칭송거리조차 되지 않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는 뒷부분에 이어지는 박씨이야기와 이어진다. 마지막에 박씨의 일을 두고 “어찌 열녀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라는 평을 내린 것으로보아 수절을 지키고자 하는 행동들이 모두 열녀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종합해보면 도입부와 중간부분, 그리고 박씨 이야기를 종합해 보았을 때 박지원은 ‘열녀풍조’ 자체는 비판하지 않는다. 다만 ‘절개’를 경쟁적으로 증명하려고 죽음이라는 과도한 방법을 택하는 풍조의 확산을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열녀’는 죽는 것이 아니라 수절하며 여생을 견디어 내야한다는 게 박지원의 생각이며, 이 역시 어디까지나 여성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2.열부론정약용은 ‘열’과 ‘효’에 대한 세간의 왜곡된 인식을 비판하고 있다. ‘열’,’효’의 덕목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그를 행하는 기이한 방식이 미담처럼 전해지고 백성이 뜻을 헤아리지 않고 모방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열녀제도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은 박지원고 달리 열부론에서는 다산의 좀 더 날카로운 비판이 돋보인다. 이에 ‘천하의 악습’이라는 표현으로 그 허구성을 드러내었다. 또한 삼강오륜의 다른 덕목과 비교함으로써 유독 ‘열녀’만이 그 뜻의 진위를 따지지 않고 오직 ‘죽음’이라는 이유로 칭송받는 현실을 지적하고있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논리는 하나이다. ‘천하의 올바른 도리는 하나뿐이다’라는 것이다. 올바른 도리는 하나이므로 열녀 혹은 효자가 되고자 죽는 일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일은 천하의 흉한 일’ 이라는 것과 상충하지 않는 것이 없다. 다산은 이 부분을 지적한다.그는 잘못된 세간의 믿음에 일부 저서도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사건의 진위나 여러 견해를 제시하지 않고 자극적인 묘사만을 단편적으로 저술한 데에 비판을 가하고 있다. 나아가 이는 정약용의 견해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이치’이다. 이에 ‘사람의 눈을 속이는 것’이라 판단하여 ‘왕법에 비추어 반드시 용서없이 베’기를 바라는 것이다.정약용은 글이나 사회상황을 볼 때 근거를 찾고자 했던 듯하다. 이치에 어긋나는 일을 의심하고 사람을 미혹하는 글을 경계했던 것이다.그 정도가 약해지기는 했으나 ‘효’는 여전히 지켜야할 사람의 도리로 인식되고 있는 반면 ‘열’은 사라진 덕목이 되었다. ‘열’이 여성 일방의 수절을 의미하는 단어였기 때문에 남녀의 지위가 평등해지면서 점차 사라졌기 때문이다. 부부간 도리 역시 간통죄의 폐지로 말미암아 사회적 덕목 혹은 국가의 규제 대상이 아닌 개인이 통제하는 사적인 삶의 영역이 되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않은 법이다. ‘윤리’와 ‘덕목’ 역시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사회의 규칙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바꾸어 놓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풍습은 혼란만을 가중시킨다.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고 정성을 다하는 것은 아름다운 풍속의 하나이지 법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혹자는 효와 충 혹은 열의 사상이 저물어가는 오늘날이 각박하다고 말한다. 모두가 이기적이 되어가고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이기적인것과 개인주의적인 것은 다르다. 미풍양속의 이름으로 ‘효’라는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것은 사회의 이름으로 개인에게 행해지는 폭력에 불과하다. 조금 각박하더라도 개인의 선택과 개인의 결정을 존중해야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것을 강제로 시킬 수는 없다. 허례허식은 버리고 근본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부모에 대한 지극함, 부부간의 사랑을 중요히 어겨야 할 것이다.
    인문/어학| 2019.05.17| 3페이지| 1,000원| 조회(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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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암 박지원 글 읽기-주영렴수재기, 발승암기
    연암 박지원의 글 분석- 주영렴수재기/발승암기읽기자료 1. [ 주영렴수재기 - 晝永簾垂齋記 ] 1. 양군의 ‘게으름’은 어디서 오는가제목에서 부터 시간이 늘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낮은 길고 주렴이 드리운 가운데 재계하는 이를 기록한 글이다.이글은집바깥에서집구조를관찰하는것으로시작하여집안을찬찬히살피고그안에기거하는‘양 인수’라는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 그런데 그 행동이 무료하기 그지없다. ‘본성이 게으른’ 양인수는 들 어앉아 있기를 좋아하여 집 안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일어나서 하는 행동도 하나같이 시간이 오래걸리 는 일 뿐이다. ‘주렴을 걷고 이른가 늦은가’를 내다보는 그의 행동에서 하루가 그저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하 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손이 와서 문에 들어서도 사람이 없는 것 처럼 적막한 이 공간은 양인수가 시간을 얼 마나 느리게, 그리고 고요하게 보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여기까지만 보면 ‘양인수’는 그저 게으른 사람이다. 그러나 이 글의 배경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양 인수는 개경 사람이다. 또한 하릴없이 집에 들어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의 천성적 게으름 탓이라고 보기 에는 집의 모양새와 가재도구로 보아 경제적으로 가난한 것 같지도 않다. 더군다나 자다 일어난 그가 하는 행 동들을 보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고서야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거문고’를 타고 기보를 들여다보며 바둑 을 두고 혹은 글과 그림을 읽을 줄도 아는 것이다. 술을 궤짝 째 들이붓는 일도 없고 ‘한 잔 홀짝’하는 것을 보 아 늘상 술에 취해사는 게으른 이 같지도 않다. 말하자면 그는 ‘게으르다’는 수식어만 빼고 보았을 때 경제적 으로 어느정도 여유가 있으며 재주도 비상하고 교양이 있는 지식인인 것이다. 풍경만 놓고 보아 지식인의 어 느 휴일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재주 있는 ‘양인수’가 집에만 들어앉아 있게 된 이유는 ‘개성’ 과 관련이 있어보인다.개성은 조선건국 이전 고려의 수도로서 가장 번화했던 도시였다. 그러나 조선 건국초에 한양으로 수도가 옮 겨간 탓에 개성 거주자들은 방황했다고 한다. 개성에 남아있던 고려 귀족들은 조선 지배 계층에 편입을 거부 당했다. 그리고 상당수가 상인으로 전락하거나 초야에 묻히기를 선택했다. ‘양인수’ 역시 고려귀족이었거나 그 후예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의 ‘게으름’이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강요당한 타의적 ‘게으름’이었을 것이다. 그 재능과 학식이 쓰일 길이 없기에 벼슬길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상인의 길 로 나아가지도 못한 채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다. 연암이 쓴 ‘천성적’이라는 말은 아마 ‘양인수’의 태생적 신분이 야기한 불운한 게으름을 이야기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2. ‘양군’에 대한 연암의 시선언뜻 보면 연암이 게으른 양반 ‘양인수’에 대해 비판하는 듯도 보인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보았 듯 ‘양인수’가 연암이 개성에서 만난 사람이라는 점과 그의 ‘게으름’이 어디서 기인했는 가를 고려해볼 때 연암이 이 글을 통해 그를 비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글 전체에서 연암 자신의 판단이 들어난 부분이라고는 ‘ 본성이 게을러’ 라는 부분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그의 시선을 따라 행동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천천히 흘러가는 양인수 의 하루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연암의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꺼내어 들어도 벨 것이 없는 ‘검’을 하 릴없이 살펴보는 양인수를 지켜보는 데 이르러서는 연민의 감정도 느껴진다. 즉 연암은 이 글 안에 주목하지 않은 고려귀족의 이야기를 하면서 쓰일 데 없는 그 재능에 대한 안타까움을 숨겨 놓은 것이다.읽기자료 2. [ 발승암기 - 髮僧菴記 ] 1. 왜 ‘김홍연전’이 아니라 ‘발승암기’인가이 글의 제목인 ‘발승암’이 ‘김홍연’을 뜻한다는 것을 알 고 난 후 이 글이 인물에 관한 기록을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연암의 다른 글인 ‘광문자전’과 달리 ‘김홍연전’이 아니라 ‘발승암기’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는지 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광문자전’은그 신분이 높지 않지만 품성이 뛰어나고 덕행을 했던 ‘광문’을 기리고 칭 송하기 위한 염암의 글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발승암기’는 그 제목만 보아서는 인물에 대한 글이라는것 조차 알 수 없다. 터럭발, 중 승, 암자 암을 썻는데 즉 머리카락을 기른 중의 암자라는 뜻이다. 초반에 풍악산을 유 람한 부분을 읽을 때만해도 그 암자를 다녀온 기행문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끝까지 읽으면 ‘김홍연’ 이라는 인물을 다루고 있는 글임을 알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연암이 이 사람을 칭송하거나 기리고자 ‘발승암기’ 를 쓴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2. ‘김홍연’은 어떤 사람인가‘김홍연’은 사람의 발자취가 닿지 않은 곳곳마다 바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은 인물로 등장한다. 국내 명산 외지고 깊숙한 곳마다 그의 이름이 없는 곳이 없다. 급기야는 연암이 ‘홍연이 어떤 작자길래 이다지도 당돌한 가’하고 생각할만큼 이름 남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후에 ‘김의 행적을 아는 사람’과 연암의 문답에 보 면 그에 대한 정보가 드러나있다. 바로 ‘왈짜’라는 것이다. 또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젋은 시절 품행이 문 란하고 각종 재주가 뛰어나며 골동서화수집하기를 좋아하는 인물이다. 늙어서 명산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가 자신의 이름을 손수 돌에다 새긴 이유가 나와있다. 바로 ‘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람이 있는 줄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3. ‘발승암기’에 숨겨진 연암의 비판적 시선발승암기 곳곳에는 연암의 상반된 태도가 드러나 있다.[부정적 시선]-‘저 이름 써놓은 자가 도대체 누구기에 석공을 시켜 다람쥐와 원숭이와 목숨을 다투게 했단 말인가?’ -‘홍연이 어떤 작자길래 이다지도 당돌한가?’라고 욕을 했다-‘훗날에 서로 생각해보면 모두 오유선생이 될 터인데 이른바 발승암이란게 어디 있겠소?’-‘하물며 심산 궁곡 중에 헛된 명성을 남겨 바람에 삭고 비에 부스러져 백년이 못 가서 마멸되는 것에 있어서 리오[연민이 드러난 시선]-그의 말과 행동을 살펴보매 옛날의 기질이 아직도 남은 것이 있었으니-내가 그의 젊은 떄를 보지 못한 것이 애석하도다!-나는 그가 늙어서도 자신의 포부를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을 슬프게 여겨연암이 한 인물을 두고 태도의 변화를 일으켰다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또한 일관된 판단을 유지하지 않고 우왕좌왕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두가지 중 연암이 숨겨놓은 진정한 의사는 김홍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라 보았다. ‘주영렴수재기’의 양인수처럼 벼슬로 나아가 자신의 재주를 떨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상인으로 전 업하지도 못한 경우와 달리 ‘김홍연’의 집안은 상업으로 부유해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벼슬길에는 관심이 없었다’라는 설명이나 ‘무과에 급제했으나’라는 표현을 볼 때 그는 미천한 신분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양반만 응시할 수 있었던 ‘문과’와 달리 서얼층과 중인층도 두루 응시할 수 있었던 ‘무과’에 응시한 점, 개성출 신의 사람인 점, 부유한 점 등을 보아 그의 집안은 고려의 귀족 가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조선시대에는 상 업으로 부를 축척하여 중인층에 편입된 집안임을 알 수 있다. ‘김홍연’은 이 집안의 부를 골동서화 구입에 흥 청망청 쓰거나 기생을 찾는 등 젊은시절을 방탕하게 보내다가 말년이 되어 몸은 병들고 가산은 모두 탕진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말년에 집착한 것은 ‘이름’이었다. 이름남기기에 집착한 나머니 돌마다 정과 끌로 이름 을 새기고 급기야 연암에게 ‘그대의 글에 의탁하여 후세에 이름이 전해지기를 원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무 엇으로 그의 이름을 후세에 전할 것인가? 그의 행적으로 보아 부유했으며 돌마다 이름을 남기고자 했다는 기 이한 행적 외에 기릴만한 행동은 찾아볼 수 없다. 내적 수양이나 품성 도야를 통해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생 애를 내적으로 풍족하게 하기보다 후대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헛된 명예욕에 사로잡힌 그를 연암은 ‘비판적’ 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는 실학사상에 조예가 깊었던 연암의 현세주의적 가치관과도 관련이 있다 하겠다. 바 위에 수없이 새겨진 고금의 이름을 보며 ‘공동묘지의 무덤들 같다’라고 표현한 연암은 이름에 대한 집착을 허 례허식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다만 어느 정도의 연민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연암이 김홍연의 삶에 ‘개성’ 출신이라는 특수한 점과 사회진출에 제약에 있었다는 점 역시 고려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집착’을 비판하는 한편 그 러한 삶에 일조한 시대적 배경에도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글에 드러나있는 그의 이중적 태도는 논 리적 결함이 아니다. ‘김홍연’이라는 인물과 ‘조선사회’를 동시에 겨누는 양날의 검이라 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19.05.17| 4페이지| 1,000원| 조회(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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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1970 한국문학 비교 - 무진기행, 관촌수필 중심
    1960,1970 한국문학 비교,을 중심으로한국전쟁 발발 후 폐허가 된 현실 속에서 전후문학은 황폐한 땅과 암담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현실 속에서 실존적 자아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이어졌고, 분단문학으로 불리우는 독특한 문학적 양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혼란과 전쟁의 충격은 1950년대 중반이 지나서야 조금씩 극복되기 시작했다. 60년대는 이러한 전후문학과 산업화시대 문학으로 불리우는 70년대 문학의 중간지점에서 변모를 겪는 양상을 보인다. 이 에세이에서는 60년대 대표작 과 70년대 대표작을 통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공간에 대한 의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도시와 시골에 대한 인식을 중점적으로 살펴 볼 것이다.과 에는 각각 도시와 시골(고향) 이라는 상반되는 공간이 드러나있다. 은 서울에서 무진으로, 다시 무진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주인공의 회귀과정을 그리고있으며, 은 고향을 중심무대로 도시로부터 돌아온 자의 감회를 연작 소설 형태로 그리고있다. 도시와 시골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두 작품에서 다소 차이를 보인다.에서 무진은 낭만과 허무의 공간이라는 모순적 속성을 동시에 지니고있다. 도시에서 ‘나’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의 이미지의 표상으로써 ‘무진’을 상상한다. 그러나 그런 무진은 관념 속에서 존재할 뿐, 완전한 이상향으로 기능할 수 없다. 실제 ‘나’가 겪은 무진은 불합리와 혼돈이 산재한 전근대적 사회일 뿐이다. 혼돈과 모호를 상징하는 무진의 명물 ‘안개’가 그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이는 전후문학의 폐쇄적 분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60년대 문단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폐허가 된 현실에서 벗어나 이상적 공간에 집착했던 전후문학과 달리, 은 순진한 낭만적 기대에서 벗어나있다. 김승옥의 초기작품들은 낭만적 색채가 짙었다. 그러나 에 이르러 결국에는 서울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개인적 일탈을 용인하지 않는 일상성의 폭력에 주목하고 있다. 하인숙과의 사랑 혹은 평화로운 고향과 같은 낭만적 단어들은 더 이상 현실극복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결국 편지를 찢어버리고 서울(일상)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나’의 행동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으로 집약된다.이 도시와 고향 어디에서도 안정을 찾을 수 없었던 것과 달리, 은 고향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작가의 자연친화적 시선은 연작 중에서도 특히 ‘녹수청산’과 ‘일락서산’을 중심으로 두드러진다. 기억 속의 유년시절 고향은 유토피아적 성격을 띠고있으며, 공동체질서와 전통적 자연관에 대한 강한 긍정이 드러난다. 이는 70년대에 진행된 산업화와 무관하지 않다.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먼저 희생된 것은 농촌이었으며 근대로의 이행 속에서 공동체와 농촌소외 현상이 일어난다. 60년대 속 주인공이 고향에 돌아와 서울과 무진 두 공간 사이에서 방황했다면, 70년대 의 주인공은고향의 모습자체가 훼손되어버려 방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향수와 애착은 강해질 수 밖에 없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면서, 은 공동체적 유대가 파괴되는 현실과 왜곡되는 인간관계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작가인식에 따르면 ‘도시’는 삶의 뿌리를 빼앗긴 부랑자들의 일시적 도피처의 이미지를 풍긴다. 반면 시골의 이미지는 도시의 대립항으로써 자연적 삶과 통한다. ‘일락서산’의 왕소나무와 감나무는 각각 주인공에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존재로서, 소설 속 고향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나무를 어머니,혹은 할아버지의 분신으로여기는 ‘나’의 인식은 자연과의 교감과 공명에 기반을 둔 전통적 자연관에서 연유한다. 이러한 공동체의식은 전체를 아울러 지속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유년시절에 대한 의 그리움에는 간과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다. ‘나’가 양반가 자식으로 마을 지주대접을 받으며 풍족한 삶을 누렸다는 사실이다. 은근히 유교질서에 대한 그리움까지 내비치며 전통과 공동체에 대한 향수 뿐만 아니라 전근대적 질서에 대한 낭만까지 드러내고있다는 점이 이 소설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이처럼 과 은 고향과 농촌에 대해서 다소 다른 인식을 보여주고있다. 그러나 두 소설은 전쟁 후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를 인식하고, 그 부조리에 대해 자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도시공간이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변모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속에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하고 있다. 다만 그 문제의 제시방법과 탐구과정에서 차이가 있는데, 이는 60,70년대 문학의 시대적 차이와 연관지어 이해할 수 있다. 60년대 소설은 주로 소시민의 삶과 내면의식 추구에 주목했으며 70년대 소설은 그 외연을 넓혀 좀더 외적인 방향으로 확대해 나갔다. 이에 따라 60년대 은 주인공의 여로과정에 주목하여 ‘나’의 내면심리와 소극적인 행동을 통해 일상의 모순을 제시했다. 또한 70년대 은 연작소설의 형태로 여러명의 등장인물과 다양한 삶의 모습을 제시하므로써, 현실극복 방안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러각도에서 현실문제를 바라보고 논의대상을 확대함으로써, 60년대와는 또 다른 관점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인문/어학| 2019.05.17| 3페이지| 1,000원| 조회(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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