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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하일기
    열하일기1. 제작1901년, 1911년, 1932년에 걸쳐 26권 10책으로 제작되었다. 1901년 김택영이 『연암집』 원집에 이어 간행한 동 속집 권1·2(고활자본)에 들어 있고, 1911년 광문회(光文會)에서 A5판 286면의 활판본으로 간행하였다. 1932년 박영철이 간행한 신활자본 『연암집』 별집 권11∼15에도 전편이 수록되어 있다. 보유편도 있으며 1956년 자유중국의 대만대학에서 동 대학 소장본을 영인한 것도 있다.2. 개요1780년(정조 4) 저자가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연을 축하하기 위하여 사행하는 삼종형 박명원(朴明源)을 수행하여 청나라 고종의 피서지인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와 청조치하의 북중국과 남만주일대를 견문하고 그곳 문인·명사들과의 교유 및 문물제도를 접한 결과를 소상하게 기록한 연행일기이다. 음악, 과학, 역사, 티베트 불교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주로 북학을 주장하는 내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고, 당시에 정조로부터 이 책의 문체가 순정(醇正)하지 못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으나 많은 지식층에게 회자된 듯하다.3. 구성1) 「도강록」: 압록강으로부터 랴오양(遼陽)에 이르는 15일간의 기록으로 성제(城制)와 벽돌 사용 등의 이용후생에 대한 관심이 드러남2) 「성경잡지」: 십리하(十里河)에서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는 5일간에 겪은 일을 필담(筆談) 중심으로 서술3) 「일신수필」: 신광녕(新廣寧)으로부터 산하이관(山海關)에 이르는 병참지(兵站地)를 중심으로 서술4) 「관내정사」: 산하이관에서 연경(燕京)에 이르는 기록이며, 특히 백이·숙제에 대한 이야기와 「호질」이 실려 있는 것이 특색5) 「막북행정록」: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5일간의 기록6) 「태학유관록」: 열하의 태학(太學)에서 머무르며 중국학자들과 지전설(地轉說)에 관하여 토론한 내용7) 「구외이문」: 고북구(古北口) 밖에서 들은 60여 종의 이야기8) 「환연도중록」: 열하에서 연경으로 다시 돌아오는 6일간의 기록으로 교통제도에 대하여 서술9) 「금료소초」: 의술(醫명목」: 다른 본에서는 「산장잡기」 끝부분에 있는 것으로, 청나라 고종의 만수절(萬壽節)에 행하는 연극놀이의 대본과 종류를 기록19) 「찰십륜포」: 열하에서 본 반선에 대한 기록20) 「망양록」: 중국학자와의 음악에 대한 토론 내용21) 「심세편」: 조선의 오망(五妄), 중국의 삼난(三難)에 대한 것을 기록22) 「곡정필담」: 주로 천문에 대한 기록23) 「동란섭필」: 가악(歌樂)에 대한 잡록24) 「산장잡기」: 열하산장에서의 견문으로, 「일야구도하기」 등 수록25) 「환희기」: 중국 요술에서의 시문 비평26) 「피서록」: 열하산장에서의 시문 비평4. 특징1) 수록된 이야기-「관내정사」 中 「호질」: 주인공 중 한 사람인 북곽선생은 대학자로서 존경을 한 몸에 받지만 실은 타락하고 위선적인 양반이며, 다른 한 명인 동리자는 열녀로 추앙받지만, 실은 문란한 성생활로 서로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을 둔 과부이다. 이 두 사람이 어느 날 동리자의 집에서 밀회를 즐기다가 동리자의 아들들에게 발각되어 북곽선생이 줄행랑을 쳤는데, 퇴비를 만들려고 모아둔 똥무더기에 빠지고, 마침 지나가던 호랑이에게 혼쭐이 난다.작자 연암의 후반기에 이룩된 작품으로, 허생전과 더불어 대표적인 소설작품이다. 호질은 연암 스스로 자작이 아니라고 하였으나, 본편은 전혀 작자의 독창은 아니더라도 연암 자신이 가필할 때 그의 의사가 개입된 것으로 간주하여 연암의 소설작품으로 분류되고 있다.북곽선생으로 대표되는 유자(儒者)들의 위선을 비꼬면서 동시에 동리자로 대표되는 정절부인의 가식적 행위를 폭로하였다. 특히, 유자의 위선을 공격하면서 호랑이가 삼강오상(三綱五常)의 윤리를 절대당위로 조작한 북곽선생을 꾸짖은 것은 유가일반의 독선적 인간관을 풍자한 것이다. 동음어를 교묘하게 활용하고 민담과 전설을 삽입하면서 생략과 압축으로 완성된 이 글은 연암 스스로도 절세기문(絶世奇文)이라 평가하였다.-「옥갑야화」 中 「허생전」: 주인공인 허생은 10년 계획을 세우고 글공부에 몰두하지만 7년째 되는 어느 날 가난한 살림에 비범한 인품을 알게 되고, 허생에게 어영청 대장 이완을 소개시켜 북벌론에 관한 이야기를 주선하였는데, 허생이 이완에게 3가지 문제를 내었지만 이완은 3가지 모두 해결할 수 없다고 답하였다. 이에 허생은 이완을 크게 꾸짖으며 칼로 이완을 찔러 죽이려 하자 이완은 허생의 집을 도망쳐 나온다. 그 다음날 이완이 다시 허생의 집을 찾아갔으나 허생은 사라지고 없었다.풍자·비판·현실개혁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이 소설은, 집필 당시보다 약 1세기 앞선 17세기 조선 효종때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을 통해 박지원은 허생과 실존 인물인 이완과의 대화를 통해 허례허식에 물들어 있고 보수적인 양반을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빈부격차와 사회 발전의 책임이 당시의 지배계층인 사이에 실학이 성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실용적인 사고를 촉구했다. 충·효·열과 같은 인륜에 관한 것이 지배적이던 종래의 사회적 가치 체계를 이용후생이라는 물질적인 것으로 변질을 꾀한 연암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고 있다.-「산장잡기」 中 「일야구도하기」: 연암이 중국 여행 때 북경에서 장성(長城)을 넘어 열하로 가는 도중에 강물을 하룻밤 사이에 아홉 번 건넌 일이 있었다. 하필 당시 그의 마부인 창대(昌大)조차 부상을 당해 고삐도 잡지 못한 채 혼자 말안장에 앉아 캄캄한 밤중에 험악한 물결을 헤쳐나가야 했다. 이러한 생사의 고비를 넘은 체험으로부터 깨달은 생각을 담은 글이다.지금 나는 밤중에 물을 건너기 때문에 눈이 위험을 못 보는 반면 위험이 오로지 듣는 데로 쏠려서 귀가 바야흐로 벌벌 떨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게 된 것이다.(…)한번 떨어지면 물이다. 나는 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을 삼고 물로 몸을 삼고 물로 성정을 삼아, 마음이 한번 떨어지기로 아주 작정해버리니 나의 귓속에 물소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무릇 아홉 번 건너는 데 아무 두려움 없이 평소 자리 위에서 앉고 눕고 하듯 할 수 있었다.(…)나는 이제 도(道)를 알았노라. 명심(冥心, 마음 깊이 사색)하는 자는 귀와 눈에 얽매이지 주관·세계관은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천동지정(天動地靜, 하늘이 돌고 땅은 정지해 있다)의 우주관에 근거해 성수(星宿, 모든 별자리의 별)의 이론을 조작하여 중국 중심의 천하관을 만들어내고 중세적 사회질서를 합리화했다. 이때 연암이 지전설(지구가 돈다)을 소개했는데, 이는 중국 중심의 질서로 엮어진 당시 동아시아체제를 당위로 보지 않음을 의미한다.3) 티베트 불교-「열하일기」에는 티베트 불교의 한 분파인 황교와, 황교의 정신적 지주이자 티베트 불교 사회의 우두머리인 판첸 라마에 대한 서술이 다수 존재한다. 「황교문답」, 「반선시말」, 「찰십륜포」에서 주로 언급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행재잡록」, 「심세편」 등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연암은 청나라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자신의 국제 정세 인식과, 더 나아가 조선 후기지식인들의 세계 인식을 드러내는 데에 황교를 중요한 실마리로 삼고 있다. 황교에 대한 정치적 분석을 시도하기보다는 이단(異端)인 황교를 숭배하는 청나라 지배층과 이러한 풍조를 조장하는 황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강하게 드러낸다. 즉, 황교를 바탕으로 청나라를 오랑캐로 취급한 것이다.4) 현실주의적 중국관-당시 사대부는 자신들을 명의 후계로 자처하며 실학을 멸시하고 북벌론을 주장했는데, 「관내정사」에서 이를 비판했다.-연암은 당시 사대부 일반이 취한 방식과 달리, 중국이 현재적으로는 동아시아의 중심부이므로 똑바로 알아둘 필요가 있으며, 앞선 문명을 지녔기 때문에 일단은 겸허한 태도로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고 인식했다.5) 허구적 표현 방법 (꿈, 상상 등)-사실적인 내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더욱 풍부하게 묘사하기 위해 허구적인 세계를 가공하여 끌어들였다.6) 필담 사용-필담은 대화 내용을 위주로 기술했지만, 대화의 환경이나 대화 참석자에 대해서도 생동적으로 묘사하여 독자들에게 당시의 필담 과정을 실감나게 알려주고 있다. 연암이 이러한 방법을 차용한 이유는 언어의 차이, 풍속 습관, 환경의 차이, 인물의 경력이나 신분상의하는 등 고전 문장으로 글을 썼던 당시의 상투적인 글쓰기를 혁신한 창의적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8) 해학과 풍자-연암은 여행 도중에 목격한 우스운 사건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할 뿐 아니라, 수시로 일행들을 웃기는 자신의 익살스러운 언동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그려내며 해학과 풍자를 담아냈다. 이외에도 그는 자신의 사상을 피력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학과 풍자를 즐겨 구사했다. 진지한 사상적 논의를 펼 때마다 돌연 우스운 이야기를 덧붙임으로써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대목에 여유와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다.*참고 자료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열하일기” Hyperlink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7072"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7072위키백과 “열하일기” Hyperlink "https://ko.wikipedia.org/wiki/%EC%97%B4%ED%95%98%EC%9D%BC%EA%B8%B0" https://ko.wikipedia.org/wiki/열하일기위키백과 “호질” Hyperlink "https://ko.wikipedia.org/wiki/호질_(소설)" https://ko.wikipedia.org/wiki/호질_(소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호질” Hyperlink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3871"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3871위키백과 “허생전” Hyperlink "https://ko.wikipedia.org/wiki/%ED%97%88%EC%83%9D%EC%A0%84" https://ko.wikipedia.org/wiki/허생전김기동(2011). 한국소설발달사 中 - 국문소설·판소리. 한국문화사대계, 1133.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야구도하기” Hyperlink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
    인문/어학| 2018.12.01| 6페이지| 1,500원| 조회(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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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소리계 소설
    판소리계 소설1. 판소리판소리는 ‘판’과 ‘소리’가 합하여 이루어진 말이다. ‘판’은 ‘씨름판, 놀이판’에서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란 뜻과 함께 ‘씨름, 놀이’와 같이 특정한 행위가 일어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 성악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노래’와 ‘소리’를 구분하여 사용하는데, ‘노래’는 내용이 비교적 단순한 서정시를 성악으로 표현한 것이고, ‘소리’는 문학적인 면에서 그 내용이 복잡하고 긴 이야기를 성악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소리’는 판소리에 한해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 등의 일부만을 따로 떼어 부르는 ‘토막소리’나 목을 풀기 위하여 부르는 ‘단가’ 등도 모두 판소리라고 부르지만, 통상적으로 판소리는 일관된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고수의 반주에 맞추어 청중 앞에서 성악으로 공연하는 예술 활동으로 이해되고 있다.판소리가 구체적으로 언제 나타났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숙종~영조 무렵에는 이미 우리가 인식하는 판소리의 모습이 완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판소리의 가장 오래된 모습은 영조 때 유진한(柳振漢)이 쓴 「가사춘향가이백구(歌詞春香歌二百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로 보면 17세기 말에는 민중들을 중심으로 판소리가 연행되고 있었고, 18세기에 들어서는 중인이나 양반층이 그 향유층에 참여하면서 국민적인 예술로 성장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2. 특징-문체에 있어서 운문(언어의 배열에 일정한 규율 또는 운율이 있는 글)적 요소가 강하다-평등을 향한 서민의 욕구가 드러난다: 일반 소설과 달리 영웅, 미인담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 기생, 못난 사람, 평범한 사람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주제가 양면성을 지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문학의 특징이 나타난다: 표면적 주제는 중세적인 가치관을 나타내나 이면적 주제는 근대 사실주의에 가까움예) 흥부가: 표면적 주제(형제 간의 우애; 유교 사상의 고취), 이면적 주제(지주 계층과 소작인 계층 사이의 갈등; 평민 의식의 반영)-소설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사건에 있어서 결말보다는 과정을, 승패보다는 대결을 더 중요시함-조선 후기 사회의 생활상을 폭넓게 형상화하였다-해학과 풍자가 돋보인다-비속어 등 서민의 일상어와 양반들의 고사 성어, 속담 등이 공존하기도 하고 방언을 사용하는 등 언어 층위가 다양하다3. 종류현재도 창으로 불리고 있는 작품은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인데, 이들 작품은 소설본으로도 활발하게 전승되어 많은 이본이 남아 있다. 창을 잃은 작품에는 「변강쇠가」, 「배비장전」, 「옹고집전」, 「왈자타령」, 「장끼타령」, 「강릉매화타령」, 「가짜신선타령」이 있다. 이 중 「가짜신선타령」은 사설이나 소설로의 정착본이 발견되지 않아 그 전모를 알 수 없다.4. 대표작1) 춘향가작자미상으로서 조선시대 동리 신재효가 원래의 춘향가를 수정한 것이 지금에 이른다.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퇴기 월매의 딸 춘향이와 사랑하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이다. 봉건사회의 모순에서 인간성의 광복을 부르짖은 내용으로 국문학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며, 조선 말 서민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판소리 5마당 가운데서 규모도 크고, 음악적으로 가장 뛰어나다.5.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의 구분에 대한 논쟁참고) 판소리는 고소설전공자들에 의해 연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한때는 판소리를 소설로 보거나 희곡으로 보는 등의 의견 차이로 인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판소리는 문학의 범위를 벗어나는 종합예술이기에 지금은 문학의 한 부문인 소설이나 희곡이라는 용어를 대입시킬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판소리가 문학의 하위 개념으로 쓰일 때가 있음은 연구의 출발점(고소설전공자들)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경우, 2002)1) 판소리는 문학인가, 연극인가, 음악인가?① 문학판소리는 사설과 연창자, 고수, 청중과 무대로 구성된다. 이때 사설에 주목한다면 판소리는 문학이라 할 수 있으며, 판소리는 다음과 같은 문학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먼저, 판소리 사설의 기본 골격은 대부분 전승설화 등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판소리사의 전 과정을 통해 창자들은 전승적 이야기의 골격을 근간으로 하여 그 중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을 확장·부연하는 방식으로 사설을 발전시켜 나아갔다. 따라서 판소리는 이야기 전체의 흥미나 구성의 긴박성을 추구하기보다는 부분적인 흥미와 감동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도 판소리는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서사적 구성원리를 가지고 있다. 비장한 대목과 골계적(滑稽的)인 장면, 재담을 교체적으로 배치하여 청중들을 작중현실에 몰입시켰다가 해방하는 것과 같은 일련의 방식이 그것이다. 또한, 판소리 사설은 운문과 산문이 혼합된 서사문학인데다가 여러 계층의 청중들을 상대로 하여 누적적으로 발달한 까닭으로 문체와 수사(修辭)가 매우 다채롭다.② 연극판소리는 단지 듣기만 하는 예술이 아니라 보고 듣는 공연예술이기에 연극적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볼 수도 있다. 판소리에서 창자는 직접 등장인물의 언행을 제시함으로써 사건을 관중 앞에 재현한다. 창자는 성악을 효과적으로 운용하면서 가창을 행함은 물론, 아니리로 극적 전개를 보완하여 일인다역(一人多役)의 연극적 상황을 나타낸다. 또한, 창자의 가창을 보조하는 고수는 소도구인 북을 활용하여 그 효과음으로 극의 분위기나 상황을 극대화하며, 때로는 이러한 반주와 더불어 극의 전개에 능동적으로 가담하기도 한다. 개방된 상황에서 진행되는 판소리의 특성에 따라 청중 역시도 언제라도 극에 가담하며 역동적인 현장을 체감할 수 있다. 이러한 판소리의 구성 요소들은 상당히 연극적이라고 볼 수 있다.③ 음악판소리는 한 사람의 창자가 고수(鼓手) 한 사람의 북장단에 맞추어 긴 서사적인 이야기를 소리, 노래, 아니리, 말, 발림(몸짓)으로 구연함으로써 1인 음악극 형태를 갖는 우리나라 전통 성악의 한 갈래이다. 판소리는 자유스런 음가로 부르지 않고 정해진 여러가지 장단과 발성의 틀을 가지고 있다. ‘일고수 이명창’이라 해서 장단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장단은 사설을 보다 다채롭고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게 하는 데 뻬놓을 수 없는 요소로 생각해온 것이다. 현재 사용하는 판소리 장단은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엇중모리가 있는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장단이 기본이 된다.2) 판소리가 문학이라면 시가인가, 소설인가, 희곡인가?① 시가판소리와 시가는 표현 상에서 유사한 부분을 많이 지니고 있기 때문에 판소리를 시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판소리에서는 서술자의 목소리 속에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침투하기도 하고, 한 인물의 목소리 속에 다른 인물의 목소리가 침투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목소리가 한 데 집합해 있다. 18세기에 널리 불려지던 사설시조도 중에서도 특히 와 같이 대화의 구성을 띠고 있는 일부 사설시조들은 두 사람 이상의 대화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거나 작가의 외적 목소리와 함께 대화의 내용 속에 담긴 내적 목소리가 교차하는 등 여러 목소리의 복합임이 눈에 띈다. 또한, 판소리의 특징인 해학과 풍자 역시 당대에 고전시가에서도 발견된다. 의성어나 의태어의 사용을 늘리면서 대상을 우스꽝스럽고 과장되게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웃음을 유발하는 데 멈추지 않고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려는 의도까지 내비친다. 이외에도 성(性)을 사실적인 차원에서 자유분방하게 노출하거나, 인물의 외양이나 행위 등에 대해 사실에 기반하여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등에서 판소리와 시가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② 소설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소설 작품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7세기부터이며, 판소리의 경우는 19세기를 전후해서이다. 소설이 서사문학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던 무렵, 새롭게 등장한 판소리와 결합되어 판소리계 소설이 등장했다. 판소리에 유입된 소설 양식의 영향은 완문으로 기록되면서 일관성을 추구하게 된 점, 문장체 소설의 관습적 표현이 사용되게 된 점을 들 수 있다. 소설에 유입된 판소리의 영향은 문체적인 면이 가장 주목되는데, 운문 지향을 보이거나 말건넴의 어투를 보이는 점 등을 들 수 있다.③ 희곡판소리계 소설이 시조나 가사 등으로 가창되는 경우가 있고, 판소리와 같이 창과 아니리를 반복·중첩하는 강창극을 통해서도 극본이라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창극처럼 입체적인 대화극본으로까지 전개될 수 있다. 이처럼 판소리계 소설이 공연현장의 상황에 맞게 변모한다면 희곡으로 탈바꿈하는 특성을 보인다.[참고 자료]김재정(1999). [국어 특별강좌]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 고시월보, 23(11), 20-21.위키백과 “춘향가” Hyperlink "https://ko.wikipedia.org/wiki/%EC%B6%98%ED%96%A5%EA%B0%80" https://ko.wikipedia.org/wiki/춘향가한국민속대백과사전 “판소리” Hyperlink "http://folkency.nfm.go.kr/kr/topic/판소리/6364" http://folkency.nfm.go.kr/kr/topic/판소리/6364김현주. (2002). 고전시가와 예술사의 관련양상(3)-18~19세기를 중심으로: 18세기 고전시가, 판소리, 풍속화의 상동성. 한국시가연구, 129-164.김진영(2000). 판소리계 소설의 희곡적 전개. 공연문화연구, 311-331.최진형(2014). ‘판소리계 소설’ 개념 재론. 『인문과학』 제60집, 성균관대학교 인문학연구원, 399-400.
    인문/어학| 2018.11.23| 4페이지| 2,000원| 조회(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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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전기 시조와 가사
    조선 전기 시조와 가사1. 시조1) 평시조의 형식- 시조의 형식은 전체가 초·중·종장의 3장으로 되어 있는데, 각 장은 3~4자 정도로 된 네 개의 마디로 구성된다.- 따라서 대체로 시조의 한 장은 15자 안팎이며, 작품 한 편은 45자 안팎이다.- 다만, 종장의 첫째 마디는 반드시 3음절로, 종장의 둘째 마디는 대체로 5음절이 넘도록 표현해야 한다.- 두 개의 마디가 대응해야 뜻을 가진 말로 안정되므로 이를 ‘구’라 하고, 시조의 이런 특징을 드러내고자 시조의 형식을 3장6구라 한다.초장 3·4 ∨ 4·4중장 3·4 ∨ 4·4종장 3·5 ∨ 4·3동기(同氣)로 / 세 몸 되어 / 한 몸같이 / 지내다가두 아운 / 어디 가서 / 돌아올 줄 / 모르는고날마다 / 석양(夕陽) 문외(門外)에 / 한숨겨워 / 하노라. ㅡ박인로, 동기로 세 몸 되어① 3장 6구, 45자 내외② 초장 3.4.4.4, 중장 3.4.4.4, 종장 3.5.4.3: 시조는 이 글자 수를 기본으로 하여 한두 글자가 더해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이 중 종장의 첫 번째 부분 3글자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2) 고려 후기 발생기의 시조- 고려후기 14세기 시조는 성리학을 중요 이념으로 하는 유학자들이 전대의 문학 및 음악·예술의 형식을 극복하면서 창작되었다.① 탄로가(嘆老歌): 노년의 지혜를 노래② 이조년(李兆年, 1269~1343): 주위에서 흔히 보는 경물을 노래한 것과 소망하는 바를 이루지 못해 번민하는 심정을 토로-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이룩되는 과정이나 그 직후의 상황에서 시조가 긴요한 구실을 했다.① 하여가(何如歌)와 단심가(丹心歌): 조선의 건국을 앞두고 태종이 될 이방원(李芳遠, 1367~1422)이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하여가(何如歌)를 지어 부르자,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라는 시조로 응답했다는 일화가 후대 문헌에 전해짐- 정치적 격변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 당대의 정치에 관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둘러서 은근하게 나타내는 것이 한시에서는 가능하지 않았지만 새로 등장한 서정시인 시조에서는 가능했다.① 절의가(節義歌): 고려에 대한 절개를 노래② 회고가(懷古歌): 고려 멸망 후 지난날의 왕조를 추억하면서 옛 도읍지인 송도(松都)를 찾은 느낌을 읊음3) 조선 전기 시조- 조선왕조가 창건된 이후에도 시조는 개인의 서정을 노래하는 중요한 구실을 했다. 공적인 기능이 없는 시조에서는 왕조 창업에 대한 칭송보다는 고려유신들의 비탄적인 회고가들이 고려후기의 작품을 이었다.① 단종의 퇴위(退位)에 관련된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 등 사육신(死六臣)과 생육신(生六臣)의 절개를 읊은 절의가류가 주를 이룸- 15세기 시조 작품은 절의가류와 함께 조선왕조가 비교적 안정되고 모든 기구가 정제됨에 따라 사대부들의 여유 있는 생활이 시조의 주된 소재를 이루었고, 시조는 그들의 정신적 자세를 표현하는 그릇이 되었다.①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사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와 그 속에서 생활하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군주의 은혜에서 비롯되었다는 뜻을 담은 종장이 반복되는 연시조로서, 강호에서의 조화로운 삶을 노래하고 네 계절의 경물을 노래하는 사시가의 한 전형이 되었다.- 자연 속에서 자연미를 즐기며 감상하면서도 유교의 이념이나 인간의 도리를 중심으로 하는 사대부 정신을 노래하였던 것으로 소위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전통을 수립하게 된다.-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조선 왕조를 건국한 공신들보다 더욱 유학의 본질적 이념에 투철한 신흥세력이 등장하였다. 이들 신흥세력의 역량이 축적되며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가운데 많은 갈등을 유발하여 권력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시조는 마음이라는 추상적 실체를 구상화하여 스스로의 이성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심리적 갈등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거나, 자기 수양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인간으로서의 자성(自省)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조선조 사대부들은 유교적인 이념과 군주에 대한 충성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시조의 중요한 주제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16세기 후반으로 오면서 시조는 세 방향으로 전개된다.① 강호가도: 사화와 당쟁으로 인해 은거하는 선비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완상을 유교의 본질적인 이념, 도학(道學)을 추구하는 강호가도가 융성하게 된다. 이들은 자연과 자연 속에 담겨 있는 유교적인 이념들을 조화롭게 우아한 품격으로 노래하는 것으로 “강호시조”라 하여 시조의 중심축을 이루게 된다. 영남가단의 강호시조와는 달리 호남가단에서는 도리보다는 흥취를 담는 풍류(風流)를 자랑하였다. 영남가단: 이황(李滉, 1501~1570)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이이(李珥, 1536~1584)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 호남가단: 송순(宋純, 1493~1583), 정철(鄭澈, 1536~1593)② 유교 이념의 실천적인 면을 노래: 사대부의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으로서의 자세를 잊지 않고 있으며, 자기성찰 혹은 백성을 계몽하기 위하여 유교적 윤리관을 담아 교훈적인 시조를 창작하였다. 「훈민가」는 훈계하는 사람의 자세를 버리고 백성의 처지에서 노래하여 시조에서의 언어적인 면에서나 사회윤리적인 면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의 「오륜가」, 정철(鄭澈)의 「훈민가(訓民歌)」③ 기녀시조: 사대부의 풍류에 참여하는 기녀들은 사대부들의 문학세계에도 참여하여 시조 작자층의 확대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인간적인 애정을 참신한 발상으로 창작함으로써 서정시의 영역을 크게 넓혔다. 황진이(黃眞伊)2. 가사- 고려 말에 발생하고 조선 초기 사대부계층에 의해 확고한 문학 양식으로 자리잡아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지속적으로 전해 내려온 문학의 한 갈래이다. 4음 4보격을 기준 율격으로 할 뿐, 행(行)에 제한을 두지 않는 연속체 율문(律文)형식을 갖고 있다. 주요 작가층은 사대부계층이며, 장르 자체가 지닌 폭넓은 개방성 덕분에 양반가의 부녀자, 승려, 중·서민(中·庶民) 등 기술(記述) 능력을 갖춘 모든 계층이 참여했던 관습적 문학양식이다.내용 또한 까다로운 제한요건이 없어 다채롭게 전개되었다.- 명칭은 ‘가사(歌詞)·가사(歌辭)·가ᄉᆞ’ 등이 관습적으로 통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문학장르 명칭으로 ‘가사(歌辭)’라 부른다.1) 가사의 역사- 가사의 역사적 전개과정은 내용·형식·작가의식 등의 변모에 따라 대략 5기로 구분된다. 이때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부분은 제1기이며, 조선시대를 전기·후기 혹은 전기·중기·후기로 나누는 관점에 따라 제2기 역시 전기에 해당하거나 일정 부분 중첩된다.① 제1기- 고려 말엽부터 조선 성종 때까지로서, 가사가 발생하여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는 시기이다.- 가사의 기원문제는 경기체가에서의 발생설, 시조에서의 발생설, 악장체에서의 발생설, 한시현토체에서의 발생설, 교술민요에서의 발생설, 불교계 가요에서의 발생설 등 여러 의견이 있지만, 4음보 민요의 율격적 낯익음과 대구(對句)형식인 사부(辭賦)의 영향, 그리고 불교의식에 쓰이던 화청(和淸) 등에서부터 가사의 관습적이고 개방적인 형식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제1기 가사문학의 전개양상은 승려계층에 의해 발생된 가사가 몇몇 사대부 관료에 의해 수용되고, 차츰 그들의 기호에 맞는 형식으로 자리잡아 조선 초기에 정극인의 「상춘곡」과 같이 세련된 작품으로 나타났다고 정리할 수 있다.② 제2기- 성종시대 이후 임란(壬亂) 전까지, 가사가 본격적인 문학양식으로 성장한 시기로 사대부 가사의 절정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역사적으로 퇴계(退溪)·율곡(栗谷)과 같은 대학자들이 성리학 이론을 완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교의 세계관에 의해 사회가 안정되던 시기였던 만큼, 사대부의 이념을 바탕으로 강호자연을 관조하고 유유자적 자연미(自然美)를 완상(玩賞)한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었다.- 한편으로는 정치적 패배에 따른 울분을 토로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가사들도 나오는데, 뛰어난 형상성을 지닌 작품이 많다.- 이 시기 가사의 형식적 특징이 가사의 형식의 전형으로 인정되는데, 그것은 율동 실현이라는 범위 내에서 4음 4보격의 안정된 율격을 비교적 온전히 지키고 있으며, 결구(結句)를 시조의 종장 형식으로 마감하는 형식의 완결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가사의 형식의 특징은 가창(歌唱)과 음영(吟詠) 및 완독(玩讀)이라는 향유 방식을 동시에 갖는 사대부가사의 관습적 장르 수행에서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2) 사대부가사① 강호생활: 가사 장르가 문학적 세련성을 획득하며 구체적인 유형으로 자리잡을 때 형성된 유형으로, 자연과 합일을 표방하면서 강호지락(江湖之樂)을 읊은 작품들이 있다. 강호한정(江湖閑情)과 안빈낙도가 주된 주제이다.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 賞春曲」, 송순(宋純)의 「면앙정가 俛仰亭歌」, 정철(鄭澈)의 「성산별곡 星山別曲」② 연군과 유배: 사대부란 관료로서의 ‘대부(大夫)’와 독서인으로서의 ‘사(士)’가 복합된 명칭으로, 정치적인 진퇴를 숙명적으로 반복한 계층이다. 이러한 정치현실을 배경으로 사대부의 갈등을 읊은 가사에는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 연군가사와 정치적 패배로 인해 유배를 당해 유배지에서 겪는 고난의 생활상을 기술하면서 우국지정을 토로한 유배가사가 있다. 연군가사: 정철의 「사미인곡 思美人曲」·「속미인곡 續美人曲」유배가사: 조위(曹偉)의 「만분가 萬憤歌」③ 유교 이념과 교훈: 유교적 실천 윤리를 규범적으로 제시하거나 경세적(警世的) 교훈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특히 봉건 사회질서가 흔들리던 조선 중·후기에 지배질서의 유지나 이념 강화를 목적으로 많이 지어졌다. 이황(李滉)의 「도덕가 道德歌」·「금보가 琴譜歌」·「상저가 相杵歌」*참고문헌조동일 외. 한국문학강의(개정판): 한국문학의 큰 흐름을 잡는다. 길벗, 2015.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인문/어학| 2018.11.23| 5페이지| 1,500원| 조회(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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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학파 문학
    실학파 문학실학파 문학은 조선시대에 유학 이외의 실생활에 유익한 것을 목표로 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문학이다. 양반 사대부의 허례허식에 대한 맹렬한 비판에 의해 대두된 사조이므로 실학파 문학은 종래의 풍류 문학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 융성한 실학파 문학은 그것이 한문학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실리성, 현실성과 비판 의식을 특징으로 하며 근대로 순행하려 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다만 하층예술과 연결되지 못하고, 독자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국문문학의 성장에 참여하지 못했다. 때문에 문학의 형태나 표현이 근대문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한계를 지니기도 한다.1) 실학의 등장16세기 중엽 이후 조선은 양란으로 국토가 황폐하게 되었고, 국가를 재건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다. 조선 정부는 이런 시대 과제에 대처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개혁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부세 제도의 개혁이었다. 때문에 대동법(공물을 쌀로 통일)과 균역법(병역 면제 위해 바치던 베를 2필에서 1필로 줄임)을 시행하였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생활은 상대적으로 넉넉해졌고 상품경제가 발전하였다. 하지만 당시 학문 세계는 아직도 현실 생활과 동떨어진 이기론(理氣論)이나 사장학(詞章學)이 아니면 형식적인 예학(禮學)에 매몰되어 있었다.이러한 학풍에 대한 반성으로 17세기 중반부터 학문의 목적은 인간 생활의 필요에 이바지하는데 있다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실학의 선구이다. 실학 형성의 역사적 배경은 조선 내부에서 추진된 각종 개혁의 전개와 서양으로부터 자연과학의 전래였다. 개혁의 전개는 토지제도 및 군신관계와 같은 제도의 개혁과 상공업의 진흥 및 기술개발을 촉진했고, 자연과학의 전래는 천문학과 지리학의 발전을 자극하여 여기서 실학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실학이라는 학풍의 대두로 이제 학문의 대상은 제도개혁론, 상업진흥론 및 기술개발론, 천문학, 지리학 등으로 서서히 옮아가게 되었다.2) 특징-종래의 진부하고 형식적인 사대부의 정통문학을 지양했다.-한문장(漢文章)에서 중국의 전형을 탈피한 독자적인 한문체를 확립했다.-신선한 구상과 사실적인 수법을 통해 평이한 시와 산문을 창작했다.-한국의 속담·이언(항간에 떠도는 속된 말)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풍자와 해학으로 서민적인 정취를 드러냈다.3) 실학파의 분류-경세치용학파: 토지 제도 및 행정 기구, 기타 제도 상의 개혁에 치중한 사람들로 이익, 이용휴, 이가원, 정약용 등이 대표적-이용후생학파(북학파): 상공업의 유통 및 기술 혁신을 목표로 삼은 사람들로 실학 4대가로 불리는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홍대용, 박지원 등이 대표적-실사구시파: 경학, 금석학과 함께 예술적인 면에서도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태도를 취한 사람들로 김정희가 대표적이중 이용후생학파(북학파)는 물질문화의 향상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그들은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인의 생활양식을 보고 각성한 바가 많아, 문명을 이해하였고, 인간 본능의 긍정(肯定)과 감정의 충족을 요구하였다. 그들의 문학은 당시(唐詩)와 당송고문을 모범으로 삼아오던 사대부의 정통 문학의 낡은 색조와는 반대로, 신선한 구상과 평이한 사실적 수법으로 시와 산문을 창작했으며, 한국의 속담이언(俗談俚言)을 자유로이 표현하고 풍자와 해학으로 서민적 정취를 섭취하여 한국의 한문학상 새로운 한 유파를 형성하였다. 이런 자유분방한 문체는 정조를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을 불렀고, 이는 문체반정으로 이어지게 된다.4) 연암 박지원박지원은 조선후기의 이용후생파 실학자이자 한문단편 작가이다. 그는 홍대용‧박제가 등과 이용후생파를 주도하면서 당시에 팽배해 있던 북벌론 및 양반의식 등의 사회적 허위의식을 극복하고 백성들의 일상생활에 쓸모 있는 학문을 지향하려했다. 그리고 그들은 중국과 서양으로부터 선진적인 문화를 수용하여 조선의 문화를 부흥시키자는 북학론을 주장하였다.1780년의 연행 경험을 정리해 놓은 『열하일기』에는 같은 개혁‧개방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열하일기』에는 청나라의 문물제도와 사회경제 체제 등이 사행로(使行路)를 따라서 구체적으로 소개되었다. 중국의 성제(城制)와 벽돌 사용 등의 이용후생 관련 사항뿐만 아니라, 황성(皇城)의 문물‧제도 등도 소개되었다. 아울러 당시 세계정세를 거론하면서 각 종족과 종교에 대하여 소견을 밝혀두기도 하였다.① 연암소설의 특징-새로운 인간형 창조: 당대 현실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인물상을 정확히 포착·형상화예) 의 송욱·조탑타·장덕홍, 의 엄행수, 의 광문-인간성을 긍정함: 계층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인간으로서 지닌 모든 욕구를 긍정함예) : 가부장제 하에서 억압적으로 강요되는 정절을 비판하고 여성들의 인간적 욕구(정욕)를 부정하지 않음-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② 『연암집』 中 -줄거리: 옛날 강원도 정선에 한 양반이 있었다. 그는 신임 군수가 한 번씩 그를 방문하는 것이 관례일 정도로 인격이 높고 책을 즐겨 읽었으나, 경제 능력이 없어 관청의 쌀을 빌어 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방을 순찰하던 관찰사가 양반의 빚이 천 석이나 되는 것을 보고 감옥에 가두라고 명을 했다. 그러나 가난한 양반은 천 석을 갚을 길이 없고, 군수도 이를 알았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마을의 평민 부자가 그 소식을 듣고, 그 양반의 빚을 대신 갚아 주고 그 대신 양반의 직위를 사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안 고을 군수는 양반이 될 문서를 만들어 주었는데, 첫번째 문서에는 양반이 지켜야 할 온갖 형식적인 조건들이 있었으며 두번째 문서에는 허례적인 양반의 특혜들이 적혀 있었다. 부자가 이것을 보고 양반이란 알고 보니 허례와 구속뿐이고 또한 월권이 강도의 짓이 아니냐 하면서, 드디어 양반이 될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초기의 구전 중에서 비교적 소설적인 구조 위에서 씌어진 유일한 풍자소설이다. 본전은 당시 양반사류들이 그들의 본분을 망각하고, 세덕에 기대어 폐단만 일삼고 있음을 꾸짖고, 선비로서의 도리를 지킬 것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다. 연암은 이 작품을 통하여 양반은 하늘이 내린 벼슬이므로, 결코 매매나 양도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일차적 풍자의 대상은 무위도식하는 양반사족이었으며, 이차적으로는 본래의 지위를 고려하지 않고, 보다 나은 지위를 얻길 열망하던 상인 계급의 망상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③ 『열하일기』 中 -줄거리: 주인공 중 한 사람인 북곽선생은 대학자로서 존경을 한 몸에 받지만 실은 타락하고 위선적인 양반이며, 다른 한 명인 동리자는 열녀로 추앙받지만, 실은 문란한 성생활로 서로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을 둔 과부이다. 이 두 사람이 어느 날 동리자의 집에서 밀회를 즐기다가 동리자의 아들들에게 발각되어 북곽선생이 줄행랑을 쳤는데, 퇴비를 만들려고 모아둔 똥무더기에 빠지고, 마침 지나가던 호랑이에게 혼쭐이 난다.작자 연암의 후반기에 이룩된 작품으로, 허생전과 더불어 대표적인 소설작품이다. 호질은 연암 스스로 자작이 아니라고 하였으나, 본편은 전혀 작자의 독창은 아니더라도 연암 자신이 가필할 때 그의 의사가 개입된 것으로 간주하여 연암의 소설작품으로 분류되고 있다.북곽선생으로 대표되는 유자(儒者)들의 위선을 비꼬면서 동시에 동리자로 대표되는 정절부인의 가식적 행위를 폭로하였다. 특히, 유자의 위선을 공격하면서 호랑이가 삼강오상(三綱五常)의 윤리를 절대당위로 조작한 북곽선생을 꾸짖은 것은 유가일반의 독선적 인간관을 풍자한 것이다. 동음어를 교묘하게 활용하고 민담과 전설을 삽입하면서 생략과 압축으로 완성된 이 글은 연암 스스로도 절세기문(絶世奇文)이라 평가하였다.[참고 자료]위키백과 “실학파 문학” Hyperlink "https://ko.wikipedia.org/wiki/%EC%8B%A4%ED%95%99%ED%8C%8C_%EB%AC%B8%ED%95%99" Hyperlink "https://ko.wikipedia.org/wiki/" https://ko.wikipedia.org/wiki/실학파_문학zum 학습백과 “한문학의 변모와 실학파 문학” Hyperlink "http://study.zum.com/book/14169" http://study.zum.com/book/14169구글 아트 앤드 컬쳐 “실학의 형성과 전개, 천문과 지리” Hyperlink "https://artsandculture.google.com/exhibit/5ALSbIJfYlhXIg?hl=ko" https://artsandculture.google.com/exhibit/5ALSbIJfYlhXIg?hl=ko위키백과 “양반전” Hyperlink "https://ko.wikipedia.org/wiki/%EC%96%91%EB%B0%98%EC%A0%84" https://ko.wikipedia.org/wiki/양반전위키백과 “호질” Hyperlink "https://ko.wikipedia.org/wiki/%ED%98%B8%EC%A7%88_(%EC%86%8C%EC%84%A4)" https://ko.wikipedia.org/wiki/호질_(소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호질” Hyperlink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3871"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3871민병수(2011). 한국소설발달사上-한문소설. 『한국문화사대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조병오(2015). 『연암 박지원의 생애와 문학』, 2015년 6월 26일 퇴계학부산연구원 강연.
    인문/어학| 2018.11.23| 4페이지| 1,000원| 조회(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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