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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브릿지 프리칭 서평 평가C아쉬워요
    제 1부 해석학적 기초 : 왜 설교의 적용 패러다임이 필요한가?1장에서는 적용 패러다임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했다. 설교에서 적용은 주해만큼 중요한 것이며, 잘못된 적용은 ‘이단’의 연기가 피어오를 수 있는 점을 경고한 로빈슨의 말을 인용하며 현재 한국교회의 설교가 ‘궤도 이탈 적용’으로 인해 문제점이 있음을 말했다. 설교에서 주해와 적용은 균형을 이루며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본서는 설교신학 혹은 적용해석학이 설교자들에게 필요함을 말했다.그래서 1장에서는 적용 해석학의 필요성을 7가지로 제시하였는데 먼저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여 적용이 얼마나 필수적이며 본질적인 것인지를 언급한 후 해석학이 어떠한 흐름이었는지 간략히 설명하였다. 역사적으로 해석학의 흐름은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에 집중했던 것에서 텍스트와 독자의 지평의 융합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을 말하며 설교 역시 본문의 주해와 함께 설교자와 청중에게 본문의 의미가 갖는 실존적 적실성을 찾는 상황화가 포함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삶과 공동체, 사회와 문화의 변혁이 일어나는 것이 중요한 목적임을 말하며,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적용 패러다임이 필수적인 요소임을 말했다.적용패러다임을 세우지 않을 경우 적실성을 찾기가 어렵고, 잘못된 적용을 하게 되는 경우로 10가지 정도를 소개했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생기는 원인으로는 해석학과 적용 사이의 관계에 대해 혼동하기 때문임을 말하며, 다시 한 번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적용해석학 패러다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2장에서는 기존 다리놓기 모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모델이 어떻게 발전해야할지를 말하였다. 기존의 다리놓기 모델로는 존 스토트의 모델을 소개했다. 스토트는 어느 한쪽의 극단적인 방법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성육신 원리를 통해 적용한 것임을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의 한계는 이차원적이기에 다차원적인 요소들을 포함하는 패러다임이 필요함을 말했다. 다차원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패러다임은 텍스트와 해석자의 지것으로 본문의 의도, 구조, 명제, 목적들을 밝히는 작업을 해야한다는 것을 말했고, 두 번째는 신학과정으로 보편적 신학원칙에 대한 진술을 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신학은 본문에서부터 현실의 설교에까지 닿는 해석학적 아치이기에 중요하며 이러한 다리놓기는 두 다리놓기와 주요한 차이점 중의 하나임을 말했다. 세 번째는 설교의 과정으로 해석학적 렌즈가 본문에서 청중에게 집중하는 것이며 마지막 네 번째는 적용을 통해 삶의 변혁까지 도달할 수 있어야함을 말했다. 결과적으로 네 지평 융합 패러다임에 있어서 성령의 주권적 통제와 인도하심 아래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의존하는 것이 되어야 함을 말했다. 그렇기에 네 다리놓기는 성령과 설교자와 청중 간에 이루어지는 삼중적 대화의 상호작용임을 인식해야함을 강조했다.이러한 균형잡힌 적용 패러다임을 제대로 준비 및 활용하지 못할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왜곡된 적용 형태들을 6가지로 제시했고, 왜곡된 모습으로 되지 않도록 균형을 잘 이루어야함을 강조하였다.제 2-3부 성경적·역사적 모델성경 이후의 모든 설교는 성경에 있는 영감된 설교에 그 배경을 두고 있기 때문에 설교자들은 성경 안에 있는 설교의 적용원리를 살펴봐야 함을 말하며, 에스라, 모세, 그리고 소선지서에 나타난 적용지향적 설교 패러다임에 대해 설명하였다. 구약에서는 은혜언약에 기초한 적용, 신학에 기초한 적용, 다차원적 적실성 범주 등의 적용 패러다임이 있었고, 이러한 패러다임은 초대교회 때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성경에 있는 설교의 적용 패러다임의 원형을 우리가 회복해야함을 강조하였다.신약에서는 바울의 설교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바울의 적용모델은 한국교회 강단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말했다. 그리고 설교학적으로 볼 때 포스트모던 시대에 바울의 적용 패러다임이 필요한 이유로 세 가지 정도를 언급했고, 그 가운데서도 바울의 설교분석을 통해서 원리와 특징을 살펴보았다. 바울 설교특징은 구약을 의존하는 성경적, 기독교 교리에톰, 칼빈, 조나단 에드워즈, 존 브로더스의 설교 적용 패러다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먼저 크리소스톰의 설교 적용의 원리를 통해서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개인주의적, 경건주의적, 율법주의적 적용 패턴을 넘어 모든 영역에 이르기까지 성경과 다리놓기를 하는 변혁적 브릿지 빌더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칼빈에 대해서는 칼빈의 해석학적, 설교학적 논의는 최소화하고 적용적 특징에 집중하였다. 칼빈의 설교는 청중의 이해, 유익 실천에 목적을 두었다. 그래서 칼빈은 청중의 상황을 향한 목회적이며 실제적인 적실성을 잃지 않고 강해와 적용을 지속적으로 엮어가면서 청중의 삶과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적용 패러다임이 개혁주의 설교의 모델이 되어야 함을 말했다.세 번째 설교자로 조나단 에드워즈를 살폈다. 에드워즈는 신학자로써 탁월한 설교자로 브릿지 빌더였으며 그래서 본 책에서는 4가지 다리놓기 패러다임의 관점으로 에드워즈의 적용을 분석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에드워즈의 설교는 구속사적이면서도 동시에 목회적 적용이 살아있기에 구속사적 설교를 하면서도 목회적 적용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현대의 설교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았다.다음으로 살펴본 설교자는 존 브로더스이다. 설교와 적용이 본문의 지배를 받지 않는 시대 가운데서 본문 중심의 강해설교로 탁월하였던 존 브로더스는 말 그대로 본문이 이끄는 설교를 감당하였다. 필자는 브로더스의 설교 10편에 나타난 적용적 특징을 네 가지 다리로 나누어 분석하여 독자들에게 설명했다. 이후 현대 강해 설교학자들을 통해 브로더스의 적용 패러다임을 평가하고 발전적인 제언을 나누었고, 결론적으로는 현대의 설교자들 역시 브로더스와 그의 후예들이 세운 강해 설교전통이 보여준 본문이 이끄는 설교와 적용을 다시 회복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함을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본문이 이끄는 적용을 통해 청중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변화 됨을 추구하는 것, 개인과 가정을 넘어 청중에 민감한 공동체적 적용을 회복하는 것 등이 필요함을 강조했다.3 적용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현대적 의미와 적용을 분별해야함을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 적용에 기초한 저자 의도적 빅아이디어와 주해 아웃라인이 생성되어야 하고, 이러한 주해적 빅아이디어를 세 명의 설교자를 예시로 설명했다.두 번째 신학적 다리놓기 작업에서는 청중과 사회를 변혁시키는 성경적 설교의 트랜스퍼링을 위한 원리화 과정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트랜스퍼링의 기준을 분별하여 구체적인 원리화 다리놓기와 트랜스퍼링 방법론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 원리화 과정에는 합리적이고 적합한 기술을 가지고 본문과 현재 세계 사이에 놓인 간격에 다리를 놓기 위해 성경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 영역에 상당한 소양이 요구됨을 말했다. 이런 신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또한 저자는 7가지의 교리적 렌즈들을 소개했고, 이러한 교리적 렌즈와 구속사적 망원렌즈로 보편적인 원리들을 구성해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7개의 렌즈들을 통해서 총 5단계에 걸친 트랜스퍼링에 대해서 소개하였다.앞선 다리놓기 과정들이 잘 이루어졌다고 해도 적실성 다리놓기 과정이 견고히 확립되지 않으면 편향된 적용이 나타날 수 밖에 없으며, 한국교회에 편향된 적용의 경향이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므로 세 번째 다리놓기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적실성 범주들, 신학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적실성 범주의 모델이 어떠한 것들이 있는 지 소개했다. 그리고 설교자들은 다양한 적용점들을 찾아내어야 청중들이 천편일률적인 적용으로 인한 설교에 대한 기대와 몰입도가 떨어져서는 안됨을 말하였다. 그리고 적용을 하고자 할 때 마음의 변화를 목표로 지향해야 하기에 청중분석과 주해가 필요하며, 그에 따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함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청중분석은 현대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도 이루어졌던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현대의 설교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 효과적으로 선포하기 위해 청중주해가 필수적이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친 다음에는 설교말하였다. 역사적으로 탁월한 설교자들이었던 자들도 성령의 부어주심을 의지하여 설교를 했었다. 청중과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성령의 부어주심을 통해 일어나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는 설교준비과정부터 성령의 능력을 철저히 의지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설교 후에도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실 수 있도록 성령을 의지해야함을 설교자들은 강조할 수 있어야한다고 했다.설교 적용 방안본인은 매주 설교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포브릿지 프리칭을 읽고난 뒤에 설교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에서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설교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으로 청중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죄인들을 만나게 해주어 그리스도를 닮게 하고, 개인과 사회를 변혁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설교를 할 때마다 어떠한 목적을 가진 채 설교를 했었는지 뒤돌아보았고, 앞으로는 어떠한 마음으로 강단에 서야할지 다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이 책에서는 먼저 적용 패러다임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였는데, 본인은 이전까지 적용 패러다임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것은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설교 사역 분석 리포트’에서 말하는대로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느끼고 있는 부분을 본인도 역시 느끼고 있었다. 본인은 개혁주의 입장에서 신학을 계속해서 공부해왔기에 본문이 말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즉 주해적 과정에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설교를 할 때에도 그 부분이 집중되지만 적용부분에서는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꼈었다. 실제로 이번 설교실습을 진행하면서도 교수님의 피드백 가운데 구체적인 적용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왜 적용 패러다임이 필요한 것인지를 생각해봄으로써 이러한 패러다임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원하시는 말씀을 청중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설교자로 설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적용 패러다임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먼저 성경적 모델과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설교자들의 설교 패러다임을 보면서 그들
    독후감/창작| 2021.09.28| 5페이지| 2,000원| 조회(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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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의 기독교 교육 소논문
    논문 :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의 기독교 교육- 목 차 -Ⅰ. 서론 --------------------------------------------------------- 2Ⅱ. 본론 --------------------------------------------------------- 3A. 기독교 고등교육의 목표 ---------------------------------------31. 기독교 고등교육의 목적과 사명2. 신앙과 학문이 통합된 모델B. 기독교 교육이 필요한 현 시대 ----------------------------------51. 교육을 해야하는 세계2. 기독교 학문의 접근 방법3.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기독교 학문C. 개혁주의적 관점에서의 기독교 교육 ----------------------------- 91. 개혁주의적 관점2. 미래의 기독교 교육의 과제와 전망3. 샬롬을 위한 교육Ⅲ. 결론-------------------------------------------------------- 14Ⅳ. 참고문헌---------------------------------------------------- 15Ⅰ. 서론본인은 학부 때 존경하는 ooo 교수로부터 『철학원강』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을 때 소개받았던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책을 읽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이 시대에 필요한 기독교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월터스토프는 모더니즘 시대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시대를 살았던 기독교 철학자로써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앞으로 미래의 기독교 교육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 모색하기 위해 글을 썼던 자이다.그렇다면 이러한 포스트 모더니즘은 왜 생겨나게 된 것일까? 먼저 도덕성 퇴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도덕성의 퇴보와 관련해서 미국의 교육학자 리코나는 찰스 다윈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다윈주의는 인간의 근원을 물질로 귀결시키기 때문에 인격이나 도덕성에 가치를 두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인 생각하느냐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성숙 혹은 사회화를 위한 교육이다. 이것은 오크쇼트가 이 모델이 국가주의의 출현과 함께 표면화되어 드러났고, 가난한 자들을 “국가”의 번영에 더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만들어진 모델이다. 네 번째는 분과학문을 위한 교육이다. 이 교육의 목적은 분과학문들을 소개해주고 이론이 실천되는 방식과 실재와 접하게 하되 그것에 더해 기독교적 관점에서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 모델을 선호하는 자들은 태초의 문화명령에 호소함으로써 자신들의 선택을 옹호한다. 월터스토프는 이러한 각각의 모델들이 불충분하다고 보았고, 성경을 통해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비전으로 샬롬을 말하였다. 그리하여 학생들이 샬롬의 대리자이며 축하자, 청원자, 애도자가 되도록 가르쳐야함을 언급하였다.19세기의 미국대학은 거의 기독교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대부분의 학교들이 기독교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과 독일에서 생겨난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는 추락하게 되었고, 기독교는 방어적으로 반지성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기독교는 직면한 위협에 대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복음주의 대학들도 자연스레 위축되었으며, 대학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개인적 경건이었고, 전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 기독교적 관점으로 학문을 실천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고, 방어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고급문화의 업적들과 손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월터스토프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으로써 사회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야하고, 무너져가고 있는 사회 속에 고통당하는 자들과 자연만물까지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함을 강조하였다.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기독교 대학은 국제화가 되어야하고, 다양한 학문과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어야하며 이론에 그치지 않도록 실천과 연결되어야 함을 말하였다.2. 신앙과 학문이 통합된 모델앞선 글에서 말한 신앙과 학문의 통합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지게 된 이유로 심 것으로 예측된다. 마지막 세 번째는 교육의 다양화 현상이다. 현대사회는 기술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멀티미디어 영향 아래서 유지되는데 자크 엘룰은 기술에 대한 인간의 집착이 미래에는 더해 갈 것이고 아무도 이 기술지배의 문명을 벗어나거나 정지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즉, 앞으로의 사회특성은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과 도덕성의 상실이 나타나게 될 것인데 그 가운데 우리가 분명히 해야할 것은 바로 기독교 세계관의 확립이다. 기독교 교육을 올바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바른 신학의 확립이 전제되어야한다. 바른 신학이 확립되기 위해서는 ‘오직 성경으로’의 정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른 신학 안에 올바른 교육신학을 또한 세워야하고,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세상에 기독교 세계관이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이와 관련해 존 스토트는 ‘이중청취’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이중청취란 한 귀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고 다른 한 귀로는 하나님의 세계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존 스토트의 개념을 기독교육에 접목시켜 본다면 우리는 기독교 교육의 토대를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한 신학에 두고 기독교 교육을 실천적, 학문적으로 발전시킬 때는 이성적 판단과 함께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시도해야 한다. 이것을 잘 적용한다면 자신과 다른 신학적 노선에 있는 자들과의 화해와 이해를 통한 연합의 가능성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월터스토프는 이러한 모델들을 뛰어넘어 샬롬 모델에 대해서 말하였다. 유럽의 계몽주의 속에서 세속화가 계속해서 진행되어왔고, 근대사회 속에서 윤리적 측면이 약화되고 있고, 세계는 점점 자본주의 아래에서 귀속적인 것보다 계약에 의해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성이 추구됨에 따라 종교적으로도 다원주의가 생겨나고 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기독교적 존재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교육을 해야하는 것이 우리 세계의 현실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이데올로기들을 성경적으로 철저하게 검토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며, 학생들에게 대에 둘 다를 만족시켜야한다고 보고 있는 추세이다.기독교 학문에 대한 모델은 아브라함 카이퍼가 제시한 것으로 설명했다. 카이퍼는 논쟁적으로 자신의 모델을 제시했는데 그 당시 유럽사회의 상황을 이해한다면 카이퍼가 제시한 방법을 이해할 수 있다. 카이퍼는 기존의 유력한 모델에 대항하여 반론을 제시하고 자신의 대안적 모델을 두 단계로 설명하였다. 먼저 학문의 주체와 객체에 대해서 언급하고, 그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였다. 학문의 주체에 대해서는 누구라고 딱 지목할 수가 없다. 객체에 대해서도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체와 객체 사이에는 유기적인 관계가 있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카이퍼는 일상생활에서 학문의 영역으로 옮겨간 신념이 과학의 발전에 필연적인 역할을 한다고 하면서 로크의 모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카이퍼는 자신의 논거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저자는 불만족스러움을 표했다.카이퍼는 일반적인 학문에 대해 먼저 언급한 후 일반적인 학문의 모델 맥락 안에서 기독교 학문 모델을 제시하였다. 그는 학문영역이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다고 보았는데 그 이유는 인간과 우주에 죄와 타락이라는 장애가 있었으며 지금도 다원주의와 불일치의 특성들은 그 장애가 드러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기에 두 종류의 학문이 있다는 논제를 제시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은 항상 옳으며 비그리스도인은 항상 그르다는 것이 아님을 말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의식이 성령님에 의해서 생겨나기에 과학 안에서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사이에는 해결하기 힘든 불일치들이 나타날 것을 예상해야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른 분과학문에서도 통찰의 차이를 해소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가 있다고 해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특권적인 인식적 접근 수단을 통해 실재와 접촉할 수 있는 것임을 말하였다. 그리하여 월터스토프는 카이퍼의 저작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카이퍼에 의해 시작된 죄와 악의 영향력이 모든 영역의 경계들을 초월하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이성까지도 타락했다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구속범위 역시 총체적인 것임을 말했다. 넷째로는 죄와 악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에 상응하는 것으로 신앙에 대한 총체적이해를 강조하였다. 진정한 신앙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요소이다. 다섯째는 성경은 우리의 구원 뿐만 아니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포괄적인 안내자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혁주의 신학은 정치적 신학이라는 것이다.교황이 발표한 회칙에 대해서 월터스토프는 긍정적으로 바라보았고, 현재 개혁주의 신학에도 이성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까지의 신학이 너무 신앙만을 강조하다보니 이성이 배제된 것처럼 되었고, 그리하여 세상에서 올바른 비판적 분별을 감당하지 못한 것을 말하며 교황이 말한 것을 숙고하여 담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포스트 모더니즘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관주의는 각 개인의 주관적 생각과 느낌을 과도하게 존중하고 이런 생각과 느낌을 통해서 결정하는 개인의 선택을 절대화하기 때문에 문화와 역사를 초월하는 절대적 가치를 부인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높게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성경을 절대적 가치로 믿고 그 ㅈ가치를 통해 죄인을 변화시킴으로써 죄로 인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개혁주의적 신학 입장에서 보면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을 베제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성경의 인간론은 죄론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가 되었고, 죄를 통하여 사망과 심판이 오기 때문에 이를 면하기 위해서는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포스트 모더니즘은 죄 문제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죄성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잘못된 길을 걸어가며,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게 될 사람들을 향하여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방법들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매우 큰 해를 끼치는 주장인
    독후감/창작| 2021.05.13| 15페이지| 3,000원| 조회(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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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원론(강웅산) 장별 정리
    제1장 구원서정의 문제1. “구원”이란 단어- 구원 :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루신 구원 /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받게 되는 구원- 그리스도가 완성한 구원이 오늘 나의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 전자의 구원은 객관적 차원, 그리스도의 사역, 구원의 완성, 구속사, 기독론 / 후자의 구원은 주관적 차원의 구원, 성령의 사역, 구원의 적용, 구원의 서정, 구원론2. 구원서정의 개념- 전통적 구원서정 : 구원은총의 순서 or 구원의 순서적 단계를 의미! ex) 중생, 믿음, 칭의, 성화 등- 구원서정 :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구원을 성령께서 개개인에게 적용하시는 사역을 일컫는 것으로 정의한다. 완성된 구원과 적용된 구원이 대비되는 특징- 복음서 : 기독론적 접근이 중심 / 복음서 이후의 책 : 구원론적 목적이 중심- 적용되는 구원의 단어 : 죄 씻음, 회개, 믿음, 하나님께로 나다, 칭의, 거룩해 짐, 하나님의 자녀가 됨, 끝까지 견디어 이김, 영생, 영광에 들어감, 연합, 함께 세워짐 -> 하나의 구원- 구원서정의 작업은 실천적인 작업- 로마카톨릭, 루터란, 알미니안, 개혁주의 등 전통들의 차이는 구원을 설명하는 방식, 실천하는 삶의 차이이다.- 로마카톨릭 : 구원서정은 세례를 통해 / 교회가 은혜의 분배자 /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 세례를 통해 은혜가 주입 / 이 은혜가 구원의 시작 / 은혜가 인간의 힘에 맡겨져 활용되고 극대화된다는 점- 루터란 : 칭의의 믿음을 너무 강조 / 성화는 게을리하는 결과- 알미니안 : 자유의지에 의한 결정->구원의 최종적 근거 / 하나님과 인간이 협력해야 하는 것- 개혁신학 : 하나로 통일되지 않는다는 점· 아브라함 카이퍼 : 주권적 결정에 근거 / 칭의를 구원서정 중 가장 앞세우는· 혹시마 : 전적 타락교리를 중요시· 존 머레이 : 부르심을 중생보다 앞에3. 구원서정 논의의 문제점- 설교자체가 적용의 작업 = 구원서정의 작업1) 성경의 지나친 확대해석- 성경은 다양한 구절과 단어들을 통해 구원의 의미를 풍성하게 드러냄.2) 증거사역이 성령의 증거사역에 의존적인 관계임을 말하는 논리적 순서이기도 하다.-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은 구속사의 일,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역은 모두 구원서정의 일, 성령이 구원서정의 일을 하심으로 사도(교회)가 구원서정의 일을 하는 것.- 예수님은 13b에서 ‘진리의 영’이 오셔서 하실 일을 긍정과 부정의 방법으로 설명하셨다.- 성령이 오셔서 말하는 사역을 하시되, 성령이 임의로 자신의 말을 하시는 사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긍정은 무한한 긍정이 아니라. ‘오직 들은 것’만으로 한정되는 긍정이다.- 14절에서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는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모든 일이 성령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근원적으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세워진 언약이다.- 14절까지의 설명방식은 성령의 사역이 그리스도의 사역을지지하는 관계. 15절은 성령의 사역을 그리스도의 것으로 강조하는 방식2. 바울의 증거- 사도행전 1:8 요한의 도움을 받아 표현한다면, 성령이 오시어 ‘증인’의 일을 할 때, 제자들도 ‘증인’이 된다는 논리이다- 갈라디아서4:6 바울은 자신의 초기 서신에서 성령을 ‘아들의 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고린도전서 15:45 반복되는 대비가 보여주는 첫 아담에서 마지막 아담으로의 진행은 불연속성이 지배하는 이분법적 대비가 아니라 역사적 진행이며 종말론적 진행이다. 마지막 아담을 “살려주는 영”으로 규명하는 것이다.- 바울은 성령을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사역의 관점에서 성령의 사역을 제한적 또는 종속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바울에게서 그리스도를 성령과 동일시하는 가장 명시적인 구절이 고린도후서 3:17이다.- 바울은 이 본문 속에서 모세와 그리스도의 대비, 즉 옛 언약과 새 언약의 대비를 통해 그리스도와 성령이 한 사역에 종사하되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부를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일이 그리스도의 일 즉 새 언약을 이루는 일이기는 사람들은 이미 예정된 사람들로서 중생되었기에 예수를 영접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18세기 경부터 존재해 온 이들은 특정 침례파나 화란계 개혁주의 계열 가운데 소수가 잔존하고 있다.=> 칼빈이 강조하는 것은 말씀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회개와 믿음)과 창세 전에 영원 가운데 정하신 뜻(선택과 유기)이 상호모순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죄인을 맞아 주심을 기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촉구이다.3. 신약적 표현- 신약에서 “부르다” 동사는 몇 가지의 의미로 쓰인다. 그 중에 “부르다”의 결과가 유효하게 구원 또는 영생을 낳는 경우가 우리가 관심을 갖는 부분이다.a. 고전 1:9은 유효한 부르심이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나누는 교제임을 강조b. 갈 5:8과 13절은 부르심의 유효함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데 있는 것으로 확인c. 엡4:1은 부르심의 유효함을 성도가 추구해야 할 삶의 질과 연결d. 딤전 6:12은 부르심이 인내하며 싸워 이겨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함.e. 히9:15은 부르심의 근거가 영원한 언약에 있음을 제시f. 벧전5:10은 부르심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누릴 영광을 바라보게한다.- 신약에서 유효한 부르심은 다양한 의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적부패, 하나님의 단동적 사역,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 성도의 삶, 견인의 동력, 영원한 언약, 하늘나라의 영광 등의 관점에서 재해석 되고 있다.4. 신학적 의미 : 예정의 실현-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유효한 부르심에 대한 우선적인 특징은 삼위일체적 관점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부르심이 유효한 것은 영원 전에 우리를 택하신 예정에 그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WCF에서 “하나님이 생명으로 예정하신 모두를 그리고 그들만을” 유효하게 부르셨다고 적고 있다. 그 유효한 방식은 우리의 마음을 밝히시고, 신적이고 영적인 일들에 대해 이해케 하시며, 의지를 새롭게 하여 선한 일을 도모하여, 유효하게 예수 그람의 전 영역에 걸쳐 그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중생도 전 영역에 걸쳐, 즉 생각과 마음과 이성을 포함하는 총체적 범위에서 되어져야만 하는 것이다.6. 중생의 실천적 중요성- 중생은 이전에는 하지 못하던 일들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능력을 가져온다.- 중생은 죄와 세상에 대해 변화를 가져왔다.- 중생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도 관계의 변화를 가져온다.7. 그리스도와의 연합과의 관계-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사건이 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의 중생의 근거가 되는 사건이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관점이 주는 유익은 중생이 마치 다른 구원서정들과 분리되어 있는 별개의 것처럼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7장 믿음- 믿음은 사람이 하는 동작이다. 믿음의 구원은 분명히 사람의 반응을 포함한다. 중생의 단동적 구원과는 다르다. 동시에 성경은 믿음이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고 한다.1. 믿음에 대한 오해- 기독교는 오랜 세월동안 “믿음”을 통일된 정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사용해왔다는 것이다.- 감성적 느낌의 유무의 여부가 믿음을 결정짓지 않는다.- 믿음은 나의 염원의 정도와 상관이 없다.- 믿음에 대한 오해는 기독교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문제이다. 기독교의 진리는 믿음을 구원과 직결시키고 있다.2. 믿음의 정의- 믿음을 정적, 추상적, 감상적,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닌 동작의 개념으로 정의하되 그 동작이 모두 그리스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의 공통된 특징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다.- wcf는 성경이 참됨을 믿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믿음에는 지식의 요소가 있다. 믿음의 대상인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성경에 계시되어 있으므로 성경관과 연관이 있다. 믿음의 지식의 요소가 역사적 믿음을 포함하는 관계이다.- 계시는 구원지식이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지식의 요소를 담당하는 이성의 기능이 있다. 그러나 구원은총이 없어도 계시가 전하는 내용을 이해할 수 는 있다.- 정리하면, 구원여부와 상관없이 계시를 접수하는 기관이 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17:30). 아들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가 드러난 이 시점에(히1:1-2) 강조되는 것이 회개이다.- 종말론적 삶으로 회개가 촉구되는 것은 그 자체가 언약의 삶을 실천하는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히 구원서정의 관점에서 회개나 성화는 각각 구원서정의 다른 국면들이다.- 성화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가 죄로부터 하나님을 향해 구분되어있고 계속해서 구분되어야하는 거룩에 초점이 있다면 회개는 성화의 삶을 사는 우리가 매 순간 죄로부터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는 동작자체에 초점이 있다.4. 회개와 회심의 관계- 회심을 성령께서 가져다 주시는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본다면 회심은 구원서정에 속한다.- 회심을 개종에 따른 종교적 현상으로 본다면 회심은 구원에 대한 다른 표현일 뿐이다.- 성경에서 많은 경우에 회심과 회개는 사전적 의미 이상으로 구체적 정황을 통해 구분이 가능하다.-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신약은 회심을 세례로 확인하였다.- 조직신학적으로도 그렇고 지금 우리가 갖는 관심은 회개와 회심을 어떻게 구분하느냐의 문제이다. 좁은 의미로 보면, 회심은 단회적 사건이다.- 참된 회심은 언제나 본질에 있어 동일하다는 것이다.5. 나가는 말- 회개는 구원받기 위해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의 실천은 구원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9장 칭의- 칭의란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에 있던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죄인이 의인이 되는 문제는 복음의 핵심내용.- 칭의는 복음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종교개혁의 핵심사안이었고, 지금도 중요한 문제이다.1. 죄와 심판의 현실- 칭의 자체가 죄인들에게 반가운 복음인 이유는 타락의 결과로 다가 올 심판이 허구가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칭의란 그리스도께서 심판을 받으심으로 다가올 심판에 대해 우리는 이미 의롭다고 선언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미래의 심판에 대한 현재적 선언이 칭의이다.2. 법정적 의미- 개혁주의 구원론에서 칭의가 법정적이라고 하.
    독후감/창작| 2021.05.13| 28페이지| 3,000원| 조회(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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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령은사론(리차드개핀) 요약
    성령은사론 요약(리차드 개핀)제 1 장 약속과 부탁- 교회의 논쟁은 고통도 주고 희망도 준다. 논쟁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시키지만,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살펴보아도 논쟁이 비정상적인 형상임을 알 수 있다.- 논쟁은 교회로 타협하게 하고, 공신력을 잃게하고, 그리하여 세상에서 제 구실을 잘 감당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교회의 논쟁은 세상의 논쟁과 다르게 건설적으로 해결될 희망이 있다.- 성령의 은사 문제야말로 교회에서 최대의 논쟁, 최대의 분쟁요소가 되어 온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신자의 실제생활과 직결된 문제, 즉 신자의 체험과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말씀과 더불어 자유롭게 역사하신다는 실제적 사실에 내포된 약속과 아울러 성령이 아직도 교회 안에서 강하게 역사하신다는 확신에 찬 기대감 이것이 마땅히 시종일관 성령은사론에 관한 우리의 결심을 지배해야한다.- 우리는 체험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생각과 체험을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 사로잡혀 복종하는 위치에 두어야한다.제 2 장 성령선물- 신약성경은 성령을 어떤 관점에서 어떤 주제로 가르치고 있는가? 이것은 여러 각도에서 고찰할 수 있으나, 여기서는 성령은사론과 직결된 접근방법을 채택하였다.- ‘성령’이란 단어의 분포도가 신약 후반부에 쏠려 있음을 얼른 볼 수 있다. 약 80퍼센트가 사도행전과 서신서와 계시록에 나오고, 나머지 십여 퍼센트만이 복음서에 나온다.- 그러나 ‘성령’이란 단어의 분포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신약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중점이 다르다는 점이다. 성령의 현재적 사역을 놓고 볼 때 전반부의 중점은 예수님 자신과 그의 활동에 있다. 그러나 후반부의 중점은 교회와 신자들에게 있다.- 신약 전·후반부의 중점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성령의 현재적 사역에 있어서 역점의 결정적 전환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오순절 사건이다.- 오순절 사건은 약칭 성령세례, 성령강림 혹은 성령선물 등으로 불려진다.- 신약이 성령사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성령선물은 교회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선물이다.- 그리스도는 고난과 죽음과 승귀를 통하여 살펴주는 영이 되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선물(성령세례, 성령강림)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정경적 성취이다. 그것은 승귀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에 오신 것을 의미한다.2. 오순절과 교회(교회론적 차원)- 오순절을 교회와 연결시켜 다룰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자기 자신을 위한 사역이 아니라 항상 교회의 유익을 위한 메시아 공역이기 때문이다.- 오순절은 바로 하나님의 새 언약민이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창설을 의미한다. 오순절 성령은 하나님께서 영으로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몸,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었다. 따라서 성령세례 받은 그 몸 속으로 연합되어 들어가 거기에 참여하는 자들은 누구나 성령선물을 누린다.- 교회전체가 성령선물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 선물이 개인별로 나타나는 현상은 다양하다. 바울은 이 성령선물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받게 될 완전한 기업의 “다운 페이먼트”, “보증”과 “첫 열매”라고 하였다.3. 오순절과 개개신자(경험적 차원)- 오순절 사건은 “구원의 서정”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구속역사”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오순절 성령세례는 오늘날도 계속 적용되는 사건의 일부가 아니라. 단회적으로 성취된 구속역사의 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구원의 서정과 구속역사가 긴밀하여 연결되어 있지만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 둘을 혼동하면 그리스도의 사역의 절대충분성과 완전성을 위태롭게 한다.- 오순절 성령세례는 구속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이고 독특한 사건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다시 반복될 수 없다. 그것은 개개 신자의 경험의 표본이 될 수 없다.- 누가의 행전기록 목적 중의 하나는 복음의 사도적 전파기록이었다. 그는 사도들과 그들과 관련된 자들의 사역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새 언약 교회의 최초 단회적 설립을 기록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사도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서 구원의 모든 다른 축복들의 직접적인 근거요 기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전에는 이 연합을 누릴 수 없었따. 구약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미래의 사역에 근거하여 중생·칭의·성화를 받았다.- 신약성경은 성령이 개개 신자들에게 역사하시는 것을 다룰 때에 더 광범위하게 기독론적·교회론적 차원을 강조하고 나서 그 결과로서 개인에 대한 성령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첫째,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는 성령이 되셨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의 결과로 나타나 역사하신다. 둘째, 신약시대의 성령은 보편적인 성령이다.4. 요한복음 20:22에 관하여- 요한복음 20장과 사도행전 2장의 기록이 서로다른 것을 기록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한다. 동일한 사건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가지 사건, 서로 관련시켜 해석해야할 두 사건의 기록인 것이다.- 누가가 요한복음 20:22의 사건을 언급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은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 사건과 오순절 사건의 관계는 천국도래의 특징인 “단계”원리 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요한복음 20:22은 “첫열매의 첫열매”인 것이다.제 3 장 성령은사 개요- 성령은사론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구절들은 로마서 12:3-8; 고린도전서 12-14장; 에베소서 4:7-13이다.1. 성령선물과 성령은사- “보편수여”의 원리에 의해서 주어지는 성령, 즉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체험하는 성령사역은 “상이분재”의 원리에 의하여 주어지는 성령, 즉 교회 안에서 서로 다르게 분배되는 성령의 역사들과 구분되어야한다.- “보편수여”의 원리는 한 성령으로 모두 세례받고 한 성령을 모두 마시게 된다는 것이다“상이분배”의 원리는 모두가 사도가 아니며 오두가 예언자들이 아닌 것이다.- 성령선물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경험에 필수적인 것이다. 그것은 종말 생명의 실제적 시식이며, 미래의 부활추수를 기대하는 “첫열매”이며, 최후에 얻을 기업의 “예약금”이다. 이와 반면에 성령은사는 여러 사역에 관한 구체적인 역사들로서 ”것이다.5. 성령세례와 은사- 성령세례는 회심이후에 별도로 겪는 경험인데 그 은사가 바로 이런 성령세례를 증명해 준다는 견해는 신약성경에서 세워질 수 없는 견해일 뿐 아니라 성령세례에 관한 신약의 교훈에 배치되는 견해이다.- 각각의 은사는 그 자체의 특성과 기능이 무엇인가를 바로 파악한 다음 그 위치를 결정해야한다. 그런데 각각의 은사의 목적과 기능이란 결국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6. 은사와 직무- 성령선물과 직무가 서로 알력을 일으키거나 서로 대치된다는 견해는 신약의 교훈과는 거리가 멀다.- 신약성경은 성령선물과 직무간의 조화를 보여준다. 목회서신에 보면 카리스마가 “직무”의미로 사용되어 있다.7. 은사목록(롬12:6-8; 고전12:8-10, 28; 엡4:11)- 표제에 기록된 본문들에 열거된 은사목록은 모든 은사를 다 열거한 완전한 목록이 아니고 대표적인 은사만을 선택해서 열거한 목록이다.- 이 많은 은사들은 칼로 두부 베듯 딱 갈라놓을 수 없다.- 은사들간에 겹치는 면이 있음과 어떤 경우에는 한 사람이 하나 이상의 은사를 행사함을 암시해준다.- 두 가지 기본범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말씀은사와 행위은사이다. 이 두 범주는 물론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며 교회생활에 있어서 상호보완적이다.8. 내가 무슨 은사를 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은사문제에 있어서 추상적·기계적 접근방법은 피해야한다. 이런 태도는 혼란을 초래한다.- 신약전체는 그보다 훨씬 더 기능적 내지 상황적 접근방법을 제시해준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우리가 배우기에 가장 힘든 교훈은 영적 은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힘과 재질,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연약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바로 그것이라는 교훈이다.제 4 장 예언과 방언1. 고린도전서 14장 그 개요- 고린도의 상황은 신약성경에서 전형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14장 전체에 예언과 방언이 의도적으로 대조되어 있다. 두드러진 대조를 통해서 볼 때 예언은 주요요소 방언 영감된 것, 그래서 권위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예언자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이에 합당하게 받고 반응해야한다.- 신비에 관한 예언계시는 “밝히 말함”과 “미리 말합”을 포함하고 있다. 이 두 가지의 광범위한 기능이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예언이라고 생각할 만한 근거가 없다.- 비예언적 선포는 기존 본문에 근거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문화된 말씀의 적절한 해석인 것이다.- 예언적 선포는 성령으로부터 나왔으므로 권위가 잇는 성령의 역사로 나타난 말씀인 것이다.3. 방언- 고린도전서 14장을 통해 바울은 말하기를 방언하는 사람의 마음은 그가 말하는 방언에 관계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마음 외에 어떤 다른 측면을 사용하여 방언을 하게 하신다는 견해에 의하면 방언은 성령의 말씀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의지적 발성이면서도 인간의 지성과 개념으로 파악되지 않는 발성이라는 것이다. 이 견해의 강조점은 더 진정한 의미의 인간성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바울의 방언관은 방언자의 말이 성령의 말씀이라는 면에서 방언의 기원이 완전영감에 있음을 보여준다. 성령께서 방언자의 언어능력을 완전히 장악하여 그의 음성을 사용하시고 있을 뿐이고, 실제의 말씀은 그의 말이 아니라 성령의 말씀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감은 성경저자들의 영감을 “초월하는” 영감이다.- 방언자가 발설하는 것을 해석(통역)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성령에 의해 “방언을 말하는 자는... 비밀을 말한다”(14:2)는 사실에서도 방언의 영감성과 계시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본질적인 것, 즉 방언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밝혀주는 것이다.- 계시성은 방언의 핵심이며 방언은사와 계시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예언과 방언의 기능이 같다는 것은 비단 둘 다 교회에 유익을 준다는 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둘 다 영감된 계시라는 점에 있다.- 사도행전의 방언 언어현상과 바울서신의 방언 언어현상이 동일한 현상이었다는 점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방언이 곧 예언이었다. 이 점은 .
    독후감/창작| 2021.05.13| 10페이지| 3,000원| 조회(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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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나단 에드워즈의 칭의론 요약
    조나단 에드워즈의 칭의론 요약서론A. 배경- 조나단 에드워즈가 태어나 활동하던 시기는 이미 개혁파 정통주의가 견고히 자리매김을 한 이후였다.- 이 설교는 당시 노쓰햄튼 지역과 몇 년 후에 뉴잉글랜드 전역으로 확산된 영적 각성의 불을 당긴 촉매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에드워즈가 프린스턴 대학 이사회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에드워즈가 조직 신학을 역사적 방법으로 저술하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컸었는지 느낄 수 있다.- 에드워즈의 칭의론은 단적으로 구속사적 관점에서 구원서정을 논의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보여준 사례인 것이다.B. 논지- 에드워즈의 칭의론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방법론적인 데에 있다. 한 마디로 에드워즈는 칭의론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관점에서 논했다는 점이 우리가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이 글의 논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에드워즈의 이해가 어떻게 작용하여 구원서정 논의를 구속사의 관점에서 개진하였는지 밝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에드워즈는 언약신학적 시각을 통해 칭의 논의에 기독론적, 종말론적 역동성을 더하는 효과를 이루었다.C. 방법- 앞서 말한 논지를 증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에드워즈의 칭의론을 그의 신학 저서와 설교를 배경으로 비평적으로 읽고 분석할 것이다.제1장 그리스도와의 연합- 이 장의 목표는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갖는 신학적 의미가 어디까지이고 특히 칭의론 논의에 있어서 그 연합 개념이 어떻게 기틀로 작용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A. 삼위일체적 배경-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칼빈주의적 확신은 하나님 중심관점에서 인간 구속의 모든 과정을 조망하고자 하는 에드워즈의 의도에 잘 드러난다.- 각 위의 사역은 삼위일체 하나님 전체와 연관될 뿐 아니라 동시에 삼위는 각 위의 경륜적 특성에 근거하여 다른 위의 사역에 관여하신다.- 구원에 관해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각 위 모두에게 의존하는데 이는 바로 존재론적-경륜적 삼위일체에 특성 때문이다.- 성자께서 인간 구원을 위해 경륜적 의미에서 복종하신 것은 결코 성자의 존재론적 종속을 의한다는 점이다. 은혜-행위의 관점에서 볼 때 두 언약에는 연속성이 있다. 반면 영생으로의 길로서 첫 번째 언약은 폐지되었다는 점에서 분명한 불연속성이 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개념이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성질을 결정짓는 것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 에드워즈의 의도이다.- 행위언약 자체가 은혜적인 성질이 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차원에 맞추시어 언약을 맺으신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은혜의 조치라는 말이다.- 두 언약 모두 본질적으로 은혜에 바탕을 둔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언약의 내용, 즉 조건 뿐이다.- 행위언약의 토대는 아담의 행위인 반면, 은혜언약의 토대는 그리스도의 행위이다. 연속성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행위가 아담의 행위를 대체한다. 이런 점에서 두 언약 모두 행위라는 요소에 바탕을 둔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이 행위는 그리스도의 행위이다.- 아담과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표하는 방식에서 전적으로 대비가 되는 만큼,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역시 서로 반립적이라고 여긴다.- 에드워즈는 시내산 언약에서 나타나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연합을 가리키는 그림자로 해석한다.D. 칭의의 완성과 적용- 그리스도는 순종과 고난을 통해 의를 이루셨고 부활을 통해 칭의되셨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칭의는 우리에게 유익으로 적용된다.- 에드워즈는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나타난 양성의 연합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본다.- 그리스도가 중보자가 되시는 일은 하나님과 사람 양쪽 모두를 향한 일이기에 한 인격 안에 두 본성을 갖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양성의 연합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 한 분 안에 완전한 인성과 완전한 신성이 연합하여 있는 것이다.- 양성의 연합으로 인해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순종으로 율법을 갚으실 수 있으셨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오류가 존재론적 또는 형이상학적 접근이다.- 삶과 죽음이 우리를 위한 의를 이루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성취하셨기 때문으로 보았다.- 그리스도께서 부정적 의를 얻으심의 결과로 우리의 죄 사함이 가능한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즉 칭의의 반이 완성된 것이다. 나머지 반은 긍정적 의를 통해서 완성된다.- 칭의의 이중적 효과, 즉 사함과 용납은 그리스도의 의의 이중적 의미, 즉 대속과 사심과 정확히 상응한다고 보았다.- 그리스도의 의는 도덕적 아름다움이다. 에드워즈의 적합성 용어를 따라, 그리스도의 의는 도덕적 적합성에 해당된다.- 그리스도의 의가 칭의의 유일한 근거라는 말은 도덕적 적합성을 가리키는 직설적 표현이다. 칭의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도덕적 자격을 찾으셨는데,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의가 계약규정을 강조하는 자연적 적합성이 아니라 도덕적 적합성을 충족시켰다는 것이다.- 에드워즈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성부의 명령에 대한 순종의 행위”로 본다.- 그리스도의 피는 부정적 의를 이룰뿐만 아니라 긍정적 의를 이룬다. 즉 그것은 속죄가 될 뿐만 아니라 공로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C. 전가의 본질-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유익들이 우리의 것이 되려면 반드시 먼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중보자는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오실 뿐 아니라 동일시 되어야만 한다. 특별히 언약적 관점에서 이러한 동일시는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때 전가의 성질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연합을 지적하며 성자의 존재론적 중요성과 삼위 안에서의 교통을 조명한다. 전가가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연합에 대한 에드워즈의 이해는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연합을 설명하기 위한 중요한 기틀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본성상 우리와 같아지심은 바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주하신다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연합 그리고 그리스도와 인간의 연합 모두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스도와 연합시키는 동작이라는 의미이고,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오직 이 연합에 의해 칭의가 이루어진다.-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는 유일한 은혜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우리의 칭의를 이루는 유일한 은혜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은 칭의의 하나의 조건이 아니라 유일한 조건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칭의에 대한 믿음의 관계를 설명하는 또 다른 방식은 믿음을 “도구”로 보는 것이다. 도구의 관점에서 얘기한다면, 믿음은 칭의를 포함한 그 어떤 것보다 그리스도를 받는 도구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자연적 적합성이 언약사상에 있어서 믿음이 가리키는 실제와 믿음 그 자체의 관계를 잘 드러낸다고 보았다.- 자연적 적합성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언약적 존재론을 적절하게 대변한다는 것은 동시에 은혜의 자유로움을 잘 담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칭의가 믿음으로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그렇게 설계하셨기 때문임을 에드워즈는 거듭 강조한다.- “믿음으로”의 자연적 적합성은 믿음이 칭의에 있어서 필수불가결적 요소임을 분명히 한다.- “믿음으로”는 신자의 측면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모든 의미를 요약한다.- 에드워즈가 말하는 “믿음으로”에는 인간의 능동적, 적극적 의미가 부각되고 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종종 은유적으로 표현되는데, 칭의의 믿음을 가리켜 “껴안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 중 한 예이다.- 인간의 참여는 하나님의 참여와 상응한다. 언약의 상호 조건성은 양쪽 당사자 모두의 능동적 참여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으로”에서 우리는 “전적으로 수동적이고 전적으로 능동적이다”는 것이 에드워즈의 논리이다.B. 칭의의 믿음-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오직 믿음으로”는 “누구 안에서 이 유익을 누리는지 그 존재와의 관계”를 강조한다.- “오직 믿음으로”가 강조하는 것 중에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은 바로 “우리의 무가치함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칭의를 위해 인간은 결코 자기 의를 의지해서는 안되며 오직 그리스도를 신뢰해야한다는 그의 깊해와 성향을 포괄한다.- 칭의의 믿음을 관여하는 주체에 따라 머리와 마음을 포함하는 전인적인 동작으로 보는 반면, 다른 한편 그는 대상을 수납하는 경험이라는 관점에서 믿음을 일반적인 감각과 새로운 감각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믿음은 복음이 그리스도의 중보와 관련하여 특별히 그것이 우리와 연관되어 계시하는 것에 대한 감각과 실제적 믿음을 갖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칭의의 믿음이란 “그리스도가 구주라는 실재와 탁월하심에 대한 감각과 확신이 마음을 전적으로 그분께 기울며 연합하게 하는 것”이다.- 칭의의 믿음을 마음의 새로운 감각이라고 할 때, 이것을 초자연적 은혜를 영혼에 더하거나 주입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오히려 사람의 마음에 새롭게 창조된 현실로서 에드워즈는 “원리”라고 불렀다.- 칭의에 담긴 중요한 의미 중 하나가 죄 사함이라는 점에서, 에드워즈는 칭의의 믿음과 함께 회개를 중요하게 다룬다.- 에드워즈는 가장 단순하게 회개를 “적극적 회심”, “마음의 돌이킴 또는 전환”이라고 정의한다. 회개는 “두 기준, 즉 죄와 하나님께 대하여 이는 마음의 움직임 또는 운동”이다.- 에드워즈가 정의하는 복음적 회개란 죄와 하나님께 대한 의미를 전제하기에 각각 다른 의미와 경험을 포함한다.- 죄에서 돌이키는 동작으로 그리스도를 껴안는 것 이것이 바로 회개이다. 에드워즈는 그리스도와 죄를 기준할 때 일종의 상대성이 있음을 언급한다.- 죄와 떨어지는 회개와 그리스도를 붙잡는 믿음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며 동일한 것으로 각기 반대의 관점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회개와 믿음을 불가분의 관계로 본 것은 결코 복음의 교리를 손상시키거나 그리스도의 공로를 삭감할까 하는 염려와는 달리 개혁주의 전통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에드워즈가 율법의 행위를 거부하는 것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의 불연속성에 근거한다.- 에드워즈는 칭의설교에서 행위에 의한 칭의를 배격하는 것이 도덕법을 포함하는 것임을입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에드워즈는 사도바울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하였다.
    독후감/창작| 2021.05.13| 11페이지| 3,000원| 조회(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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