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문를 읽고이 책을 읽고 나니 트렌드뿐 아니라 사회 현상이나 변화 이면에 숨겨진 흐름까지 깊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 한 권만 읽으면 내년의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실은 현재 트렌드를 선정하고 심도 있게 분석해서 내년까지 이어질 추세를 알아보는 것이다. 김난도 교수를 필두로 한 트렌드 연구소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과 연령대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자료조사와 설문 덕분에 풍부한 내용을 만나볼 수 있었다.올해의 에는 전작들과 달리 전반적인 경기 예측이 있었다. 소비 트렌드가 주제인 책이지만 전반적인 경기 흐름과 밀접한 분야이기에 새로운 변화가 달갑기만 하다. 그렇다면 내년은 경기가 풀릴까 아니면 시기상조일까? 아쉽게도 침체 혹은 경기 둔화로 2023년 하반기에는 저점을 찍을 것이라고 한다. 2021년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통이 컸을 때만 해도 코로나가 주춤해지면 경기가 풀릴 걸로 생각하고 모두들 희망을 품었다. 2022년에는 제법 일상생활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유동성 잔치로 인해 가진 자만 오른 자산 가격으로 더욱 부자가 되는 현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023년에는 경기마저 침체된다고 하니 마음이 착잡해질 뿐이다.경기 예측과 현재의 실물 경제를 반영해 소비 트렌드들도 불황과 맞닿은 주제가 많이 등장한다. 먼저 갖가지 방법으로 알뜰하고 현명하게 소비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체리 슈머’가 있다. 불황기의 기업 대책으로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소비자들을 공략할 방법을 알려주는 ‘뉴디맨드’ 전략이 그렇다. 평균은 사라지고 양극단만 늘어난다는 ‘평균실종’도 불황과 맞닿은 트렌드이다.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를 겪고도 2023년에 장밋빛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지만 그래도 에서는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암울한 미래를 앞둔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그래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사실이 위안을 준다.의 책은 작년에 예측한 소비 트렌드가 한 해 동안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 진단하는 부분과 2023년의 소비 트렌드 예측 부된다. 그로인해 나노 시장이란 개념도 생겨났다. 1명의 소비자는 더 이상 1명이 아닌 그보다 훨씬 미세하게 쪼개져서 0.1명 단위의 시장으로 나뉜다. 맥락이나 상황에 따라서 더욱 미세하게 타기팅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네이버 검색 기능에도 변화가 생겼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는데 책을 통해 확인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같은 검색어를 입력해도 누구에게나 화면이 비춰지는 게 아니라 AI를 도입해 의도와 상황에 맞춰 알맞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캠핑’이라고 검색했을 때 가본 사람과 가보지 않은 사람의 결과를 각각 다르게 표시하는 것이다. 특정 장소를 검색했을 때 맛집이나 명소, 카페 등도 함께 제안하는 기능인 ‘로컬 스마트블록’도 도입되었다.나노사회는 경제 트렌드로 생각했을 때 시사하는 바가 크고, 앞으로의 과제도 많다. 나쁘게 생각하면 단순하게 타기팅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취향이나 선호하는 서비스나 상품이 패턴을 읽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고 맥락에 따라 변화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빅데이터나 AI 기술과 결합하면, 나노시장에서 선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변하고 복잡해지는 소비 시장이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섬세해지는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면 도태될 것이다. 나노 사회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잡아야 할 기회는 또 있다. 바로 과거 공동체에서 대신하던 영역에 공백이 생기므로 기업에서 그 틈을 파고들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개인주의화가 진행되면서 이웃이나 가까운 친척에게 부탁할 법한 일들도 이제는 홀로 떠안아야 한다. 고독이나 고립감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서비스는 앞으로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년 이상의 1인 가정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가 점차 다양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무거운 짐 옮기기, 집안의 가구 배치 바꾸기 등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믿고 맡길 만한 업체도 다. ‘평균 실종’은 양극화, N극화, 단극화 현상을 모두 일컫는다.경기 침체를 비롯한 위기를 지날 때마다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인해 이미 자산을 지닌 부자들은 자산 가치가 올라가 더욱 부유해지는 반면, 노동을 통해 돈을 벌어들이는 일반 서민들은 사정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중산층이 주로 이용하는 대형마트는 매출이 감소했지만 백화점은 매출이 상승했다. 일반인의 소비 패턴도 극과 극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밀키트로 외식비를 절약하려고 애쓰는 반면, 10만 원에 가까운 호텔 빙수나 한우 오마카세에는 거침없이 돈을 쓰기도 한다. 소비 시장에서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중간층이 점점 줄어들고 저가이거나 아주 고가일 때만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기업에서도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의 마케팅 포지션을 잡을 때 애매하게 대중을 아우르려고 하기보다 저가 전략으로 공략할 것인지 고급스러움과 고기능을 내세워 고가 전략을 택할 것인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평균 실종 흐름에서는 양극화 외에도 ‘N극화’라는 개념이 있다. 모두가 비슷한 취향의 영화를 보고 시청률 높은 드라마 이야기를 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개인 마다 각기 다른 취향의 플랫폼과 컨텐츠를 즐기는 시대가 됐다. 취향이 대중의 흐름에서 벗어나 개성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단적으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에는 자신의 취향이 얼마나 대중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가 있는데 이용자는 스스로가 대중 취향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오히려 좋아한다고 한다. 최근에는 건설계에서도 N극화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아파트를 선택할 때 소비자가 가장 고려하는 요소는 다름 아닌 실내 구조라고 한다. 최근에는 가벽을 세우거나 벽을 틀 수 있게 되어 실내 구조를 변경할 수 있는 브랜드의 아파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 같은 평수의 입주민은 모두가 같은 구조에서 살던 시대는 이제 끝난 것이다. 한 문화를 똑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건강하고 바람직한 태도이듯이 소만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 이다. 무수히 많은 연결이 이루어지는 네트워크 세상에서는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일부에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마는 것이다. 이른바 ‘허브’로 일컬어지는 곳에 집중되기 때문이다.‘평균 실종’의 트렌드는, 중산층이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극과 극만 남는 씁쓸한 세태를 반영한 단어이다. 물론 기업들의 생태 환경도 예전과 비교하면 점점 악화되는 추세에 놓인 것이다. 기업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반인들도 보통만 해서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 끝나버린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기에 '평균 실종' 트렌드는 연구와 전략이 수반된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는 등 아주 특별함으로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은 점도 있는데 N극화 현상이 두드러짐에 따라 대중의 취향이나 유행에 맞추지 않아도 나만의 개성에 따른 맞춤 상품이나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산업화 이후 대량생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역으로 소비자들은 규격화되고 틀에 박힌 상품을 자신의 취향과 상관없이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술의 진화와 마케팅의 진보에 힘입어 개개인의 취향에 꼭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시리즈를 읽으면 현재 트렌드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생경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기술적인 부분들이 있다. 현재 진행형의 흐름이란 것을 믿을 수가 없고, 마치 공상소설에서 본 것들이 재연되는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날 무렵 어느새 일상생활에 서 자주 활용되고 스스로도 익숙해진 것들이 많아 깜짝 놀라곤 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무인점포의 활성화나 다양한 매체에서 활약하는 가상인간, AI 기술 같은 메타버스 등이 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놀랄 일이 많을지 기대된다. 최근 각종 산업은 각각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과학계의 여러 학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는 자리에서도 서로 다른 분야의 눈부신 발전에 어리둥절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전문가들조차도 이럴 정도제품 자체 모니터링을 하며, 냉장고는 내부 온도가 잘 유지되는지 체크하고 사용자에게 알려준다. 제품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정보를 클라우드 서버로 보내 인공 지능 기술로 분석하는 것이다. 가전제품을 사용하다 이상이 생기면 설명서를 봐도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을 때도 많고, AS 기사를 부르기도 애매한 경우가 참 많았다. 제품 스스로 진단하고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 사용자에게 알려준다면 정말 편리할 것 같다.또한 자동 환기 창이란 것도 새롭게 선을 보였다. 창문에 붙은 센서가 초미세먼지, 황사, 온도 및 실내의 온습도와 이산화탄소 농도를 파악해서 자동 환기를 하는 것이다. 대기오염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한편, 코로나 감염 방지를 위해 환기를 자주 해야 하는 요즘, 대체 창문을 열어야 하는지, 닫아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참 많다. 그런데 창문 스스로 실내외의 오염도를 파악해 환기 여부를 결정한다면 실생활에 유용할 것이다. 다수가 모이는 상업 공간, 오피스 등에서 쓰인다면 모두가 좀 더 건강한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을 테다. 아쉽게도 이들 모두가 상용화된 기술은 아니라 지금 당장 실생활에서는 접할 수 없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지금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기술들이 어느새 활용될 날이 머잖아 올지도 모른다.선제적 대응기술이라고 하면 최첨단 산업 분야에서만 유효한 개념일 듯하지만 다른 부분에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 기업이 아닌 복지 분야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뉴스를 보다 보면 세 모녀 혹은 독거노인이 아무런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사건이 심심찮게 보도된다. 가스나 수도, 전기 사용량을 복지 관련 부서에서도 미리 파악하고 복지가 필요한 가정에 혜택을 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까운 생명을 잃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지혜를 발휘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다.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전 세계는 산업사회를 넘어 더 높은 차원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확실한 실체도 없는 데다가 시간차를 두고 조금씩 변한다.
독후감- 독창성에 관한 상식을 깨는 신선한 역설독창성이나 창의성을 향한 요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일찍이 학생들은 창의적인 인재가 돼야 한다는 압력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데 이 같은 목소리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 시대적으로 크게 필요한 자질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배양하기 어렵다는 뜻이 아닐까. 특히 최근에는 메타버스나 AI의 개념이 두드러지면서 기계나 컴퓨터에게 인간이 일자리를 빼앗기는 시대가 온다는 두려움까지 커졌다. 암기나 지식 흡수가 아닌 특별한 방법으로 특수한 능력을 키워야만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데. 문제는 창의력, 독창성을 강조하면서도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의 교육을 답습할 뿐 새로운 제안이나 노하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에 와 같은 책은 학생을 비롯해 기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젊은이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잘 알려지지 않는 진짜 독창적인 인재가 되는 법을 배울 수 있기에.이 책의 저자 애덤 그렌트의 프로필을 읽었을 때 ‘천재’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하버드 심리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와튼 조직 심리학 교수로 재직 중인 학자. 서른한 살의 나이로 최연소 종신교수에 임용된 대단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심리학 방면에서 뛰어난 연구 활동을 펼치면서 그 결과를 대중들도 알기 쉽게 책으로 펴냈고, 도 그 중 하나이다. 세상에 연구 업적이 뛰어난 학자는 그리 적지 않지만 이를 쉬운 말로 잘 풀어내는 학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애덤 그렌트는 그 두 가지를 훌륭히 해낸다.는 심리학자의 시각에서 ‘독창성’에 관한 다양한 연구와 실험 결과, 풍부한 사례를 잘 버무려 내놓은 종합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독창성이란 한마디로 정의하기도 어렵고 성질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저자는 독창성이 잘 발휘된 여러 사례를 종합하고 인간의 속성을 알아보는 연구를 검토하며 안개에 가려진 듯한 정체를 또렷이 밝혀냈다. 그가 풀어내는 여러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여태 내가 생각했던 ‘독창성’의 정의에 정반대되거나 생각지도 한다. 독창성의 정의는 내가 생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창의성에 대한 것이다. 참신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만 가지고는 독창성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주도적으로 자신이 지닌 비전을 실현시켜야 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리라고 여겼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실현시키는 능력이라는 걸 알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자신은 여태 특별한 아이디어가 없기 때문에 창의성, 독창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진정한 독창성의 정의를 접한 지금은 내게 부족한 게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알게 됐다. 아이디어에 집착하기보다도 비전을 갖고 실현시키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겠다.처음 독창성을 잘 실현한 예로 저자는 온라인 사업에 뛰어든 자신의 학생들을 든다. 안경의 온라인 판매를 기획하고 기업을 일으켜 성공한 이들은 세간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소매업, 패션, 전자상거래 기술 등 모두 문외한이었지만 이들은 지나치게 비싼 안경 값에 의문을 품고 자신들의 손으로 업계 판도를 뒤바꿨다. 모두가 안경을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며 회의적이었지만 기존 업계의 구조를 파악하고 홈페이지, 서비스 등 끊임없는 개선을 통해 성공을 일궈냈다. 처음에 스승인 저자조차 이들이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투자 요청을 거절했다고 하니,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실패를 점친 이유 중 하나는 이 네 명의 학생들이 전혀 위험을 감수하지 않은 점이다. 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취업 자리까지도 마련한 채, 모든 것을 올인하지 않고 안전하게 사업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기업가들은 모름지기 큰 리스크를 안고도 과감하게 내질러야만 성공한다는 우리의 편견을 깨는 사실이 있었다. 사실 성공한 기업가들은 대개 위험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마치 투자하는 사람들이 위험을 분산하는 포트폴리오를 짜듯이 말이다. 삼국지의 전투 기술인 배수의 진처럼 일부러 안전한 길을 버리고 목숨 걸어 싸워야 승리를할 수 있다. 유일한 생계 수단이자 사업이 무너지면 끝장이라는 공포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어디에선가 성공하려면 일단 기본으로 학교를 그만둬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대표적인 예는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성공궤도에 올린 빌 게이츠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니 내 생각과 달리 빌 게이츠는 일단 대학을 그만두고 컴퓨터 사업에 매진한 게 아니었다. 먼저 소프트웨어 사업을 시작해본 후에 1년 후에 휴학을 했고, 일이 잘 풀린 후에 대학을 나온 것이었다. 성공한 CEO나 기업가의 이미지가 이번 기회에 크게 바뀌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크게 내지르는 경우 오히려 실패가 많고, 성공한 사람들은 위기관리에 능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한편으로 날 때부터 성공한 사업가의 자질을 지니고 있을 것 같은 인물들도 사실은 두려움을 느끼고 회의를 품는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보통 사람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만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은 그럼에도 용기를 내서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태 내 모든 걸 걸고 무언가에 몰입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으리라는 막연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러나 무작정 여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에 뛰어들기보다 남는 시간에 작은 시도를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방식이라면 새로운 시도가 설사 수포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큰 타격을 받지도 않을 테고, 먼 훗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후회에 시달리지도 않을 테다.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그런데 창의력을 발휘해 여태 없었던 개념을 만들어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잘 하려면 브레인스토밍도 해야 할 것 같고, 타고난 머리도 필요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연구에 의하면 뛰어난 창의력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잘 내는 사람들은 사실 두뇌가 뛰어나다든가 자질 면에서 특출 난 부분은 없다. 보통 사람과 차이가 있다면 단 하나. 바로 훨씬 많은 아이디어를 낸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은 한두 개 정도 떠올릴 때에 더 피카소는 유화만 1,800점을 그리고, 드로잉은 1만 2천 점 이상을 남겼다. 아인슈타인은 논문을 248편이나 발표했다. 뛰어난 경지에 이른 인물들이지만 내놓는 족족 다 성공한 건 아니다. 이 중에서 극히 일부만 수작으로 손꼽힐 뿐이다. 나도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아주 뛰어난 결과물 한두 개에 집착하는 것보다 일단 작업 양을 늘리려고 하다 보면 뛰어나고 독창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한편, 어렵사리 내놓은 아이디어지만 스스로 검토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아이디어를 내놓기까지의 과정이나 노력을 본인이 잘 알고 있는데다가 자아도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간의 평가는 냉정하기만 하기에 아이디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수정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책에서는 세그웨이라는 1인용 이동수단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스티브 잡스마저 한눈에 반해 성공을 확신한 세그웨이는 실제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발명품 자체가 뛰어난 성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세그웨이의 발명가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심취해 대중에게 잘 어필할 수 있을지 세심하게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확신을 지나치게 낙관한 긍정오류의 예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긍정오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독단적으로 판단하기보다 동료집단의 평가를 받는 것이 좋다. 경영자 집단에서는 부정오류에 휩싸일 가능성이 많지만 나와 같은 입장의 동료집단은 객관성을 잃을 일도 없고, 회의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납득할 만한 판단을 내려줄 수 있다.또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만들려면 자신의 전문 분야에 정통해야 할 뿐 아니라 폭넓은 경험도 있어야 한다. 책을 통틀어 인상적인 연구 결과 중 하나로 바로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에 관한 것을 꼽고 싶다. 노벨상 수상자와 비수상자의 차이점을 조사했는데 과학 지식에서는 차이가 전혀 없었다. 다만 노벨상 수상자는 예술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음악이나 미술, 공예 글쓰기 등에 매진한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전문분야에 몰입해서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해 연구해야 뛰어난 성과를 올릴 것이다..평소 나는 무엇이든지 미루는 버릇이 있어서 과제나 시험공부, 프로젝트 완수 등 여러 방면에서 꽤 애를 먹었다. 뭔가를 할라치면 하기 싫은 마음, 될 수 있는 데까지 미루고 싶은 게으른 마음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서를 읽었을 때도 자주 접한 내용이지만, 성공하는 사람의 좋은 습관 중 하나는 무슨 일이든 미루지 않고 바로 해치우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에서는 정반대의 주장을 펼친다. ‘서두르면 바보’라는 것. 창의적인 업무를 할 때 미루기가 유용하다고까지 한다. 그런데 여기서의 미루기란 나의 고질적인 버릇을 그대로 의미하는 게 아니다. 머릿속에 작업에 관한 생각을 넣어주고 찬찬히 생각하는 일로, 아이디어가 숙성할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다른 일을 하거나 심지어 빈둥거리지만 그동안 머릿속으로는 과제에 대해 생각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이른바 전략적인 꾸물거림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약점이 게으름이기 때문에 부지런함과 빨리 완성하는 것은 성공 열쇠라고 굳게 믿었는데 신속함보다도 결과의 완성도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기업을 일으키거나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데도 전략적인 기다림이 성공을 안겨준다. 흔히 선발주자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더 많은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선발주자의 실패율은 46%로 절반에 가까운 반면, 후발주자의 실패율은 겨우 8%에 지나지 않았다. 의외로 선발주자가 되면 유리한 점보다 불리한 점이 많다. 시장 상황이나 고객 반응 등 아직 무르익지 않을 때 온갖 시행착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후발주자는 선발주자의 온갖 실수를 보고 기술을 개선하고 더 나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 이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음에도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남보다 앞서야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있어도 오로지 경쟁자를 이기겠다는 욕심만으로 서두르다가는 실패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독후감- 자기기만의 어두운 그늘, 잘못된 신념의 폐해를 깨닫다의 책 설명을 처음 접했을 땐 의문이 들었다. 몇 세기 전의 과학자로부터 감동이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격찬에 가까운 책 리뷰를 보며, 나는 반신반의하며 책을 펼쳤다. 전반부에는 평범한 과학자의 위인전기로만 읽혔지만 후반부에서 충격적인 반전을 접하며 나는 점점 책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과연 책 리뷰처럼 충격적이며 반전이 있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책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누군가에게 란 책을 설명한다면 한마디로 정리하기 쉽지 않을 듯하다. 이미 출간된 그 어떤 책과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복잡하면서도 독특하기 때문이다. 생물학, 분류학, 진화론을 다룬다는 점에서 과학서라고 할 수 있고, 19세기 분류학자의 생애를 조명하기에 전기처럼 읽히기도 한다. 저자 본인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의 고민까지 다룬 자기고백적 성격도 띠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폭로의 형태도 찾아볼 수 있다. 얼핏 여러 요소가 복잡하게 섞여 있어 책이 몹시 산만하거나 어지러울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아마도 저자의 오랜 시간 과학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이력이나 과학자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뒤적인 필사적인 노력 덕분이 아닐까 싶다. 여러 장르가 섞인 가운데 저자가 담고 있는 메시지도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 모든 요소는 잘 어우러진 채 반전과 충격적인 결말을 향해 착착 스토리가 흘러간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저자의 박력과 독특한 매력에 나는 푹 빠졌다.이 책의 주인공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고 하는 19세기의 어류학자이자 분류학자이다. 영미권에서는 널리 알려진 인물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처음 들어본 인물이다. 책의 저자 룰루 밀러는 우연히 불굴의 의지가 빛나는 이 과학자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 비결이 궁금해졌고, 생애를 뒤쫓기 시작했다. 그는 평생 어류학자로 일하면서 미국은 물론 지구 반대편 중국이나 한국까지 가서 물고기 표본을 수집했다. 당시 새로 발견된 어류 종의 5분의 1가량을 데두 뒤섞인 채 엉망이 돼 버렸다. 평생의 업적이 다 망가졌다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어류학자는 결코 절망하지 않고 결연히 물고기와 이름을 되찾았다. 그리고 다시는 이름을 잃지 않도록 물고기 피부에 단단히 이름표를 꿰맸다.분류학자라는 직업은 생물 체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을 일컫는다. 자신의 직업처럼 그는 세상의 혼돈 속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인생의 시련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아마도 혼돈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다. 일평생 가꿔 온 업적이나 성취를 앗아가는 일.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잔인한 혼돈은 나도 감당하기 어렵고 시련을 겪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앞으로 나아갈 자신도 없다. 저자 자신도 자신의 반쪽을 잃고, 방황하던 중 굳건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에 매료된 것이다. 나 역시 그 과학자의 생애와 굳은 의지의 비결이 무척 궁금해졌다.이 분류학자는 연구 업적 상의 시련뿐 아니라 사랑하는 동료, 심지어는 아내와 아이를 잃는 크나큰 상처 속에서도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 이어갈 뿐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그토록 강한 심지, 결연한 의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빨리 책장을 넘겨 확인하고픈 마음뿐이었다.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처음 분류학자의 길로 이끌어준 스승과는 다르게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믿었다. 그의 스승은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이 천지만물을 창조했으며, 분류라는 것은 신의 체계를 밝혀내는 것일 뿐이라고 여겼다. 신의 형태를 닮은 인간이 가장 우월하고 그다음은 유인원, 등등 점점 밑으로 내려갈수록 열등해진다는 믿음이었다. 스승과 달리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내 평가도 같이 올라갔다.책이 중반을 향해 달려갈 무렵, 그 어떤 혼돈도 질서로 다스릴 수 있는 그의 비결이 밝혀졌는데 그것은 다른 아닌 ‘자기기만’이었다. 요즘에는 ‘자기 긍정’이란 말로 좋게 포장되기도 한다. 자기기만이란 실제 자기 모습을 더 좋게 평가하는 상태로 자기객관화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요즘에르겠지만 객관적인 평가 없이 무조건 좋게 평가하는 게 능사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책에서도 단기적으로 자기 긍정은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장기적으로는 스스로를 속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고 소개한다. 실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오히려 타인을 향한 공격성이 증가할 뿐 자존감이나 성취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근거는 결코 없다고 한다.결국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스스로를 기만함으로써 모든 혼돈과 시련을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만 굳건히 고집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방해가 되는 것은 제거했다. 심지어 그 방법이 살인일지라도.스탠퍼드 설립자 부인의 사망 사건을 전후로 책은 갑자기 미스터리물로 흘러갔다. 스탠퍼드 학장으로 생물학 연구를 이어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못마땅해하며, 학장의 위치에서 내치려고 했던 그때 갑자기 숨을 거둔 스탠퍼드 부인. 부인의 사망 원인이 된 독이 그가 물고기 표본을 채취하려 자주 쓰는 독성 물질인 게 밝혀졌을 때 정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도 희생할 수 있다는 걸까. 처음에는 그의 굳건함이 부러웠고 또 배우고 싶었지만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잔인하고 독한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교육자의 위치에서 태연하게 살인을 실행하고, 주도면밀하게 사건을 덮는 치밀함, 또 삶을 마칠 때까지 스탠퍼드 설립자의 ‘자연사’를 주장했다니 치가 떨렸다.그러나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진화론에서 잘못 파생된 학문, 우생학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생학의 이미지 때문에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상당 부분 오해했다. 마치 악의 근원이라도 되는 양. 특히 ‘적자생존’이 혐오스러웠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고 약한 자는 모두 도태된다는 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마치 경쟁을 부추기고 강자만을 긍정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몹시 불편했다. 그러나 실제로 알고 보니 ‘적자생존’이란 말 자체도 다윈이 만든 것도 아니고 내한 요소라고 찰스 다윈은 봤다. 수시로 변하는 환경에서 어떤 종이 살아남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에. 무엇보다 다양성이 강한 힘을 발휘했다. 찰스 다윈은 대중의 예상과 다르게 자연의 다양성을 칭송하고 싶었던 것이다.그러나 우생학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우열을 가릴 수 있으며, 우월한 쪽에 더 가치를 둔다. 심지어는 열등한 개체는 자손을 낳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잔인하게 제거하기까지 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우생학을 받아들여 미국에서 퍼져나가도록 활약한 일등공신이다. 스승보다 한걸음 나아가 진화론을 받아들인 그였으나 자신의 신념에만 사로잡혀 자신의 입맛에 재단해 필요한 부분만 흡수해 잘못 발전시켰다. 생물종에는 우열이 있으며, 열등한 쪽으로 퇴화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대표적이다. 인간 역시 신체장애자 혹은 정신장애자 등을 열등하다고 간주하고 자손을 보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의 노력 덕에 우생학은 미국에서 정식 학문으로 받아들여지고, 부적합자를 향한 ‘강제불임법’까지 통과된다. 여기서의 부적합자란 아주 모호하고도 포괄적인 의미여서 범죄자, 정신장애자, 가난한 사람,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 등을 뜻했다. 실제로는 유색인종, 흑인 이민자까지 타깃이 됐다고 하니 얼마나 편파적이고 잔인한 법인가! 미국 우생학의 지대한 역할로 세계에 뻗어나간 이론은 독일까지 전해졌고, 히틀러란 희대의 악당이 탄생했다. 세계는 유대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을 대학살한 히틀러를 비난하지만 그 밑바탕은 우생학자들이 깔아준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히틀러는 가스실로 끌고 가 직접 살인을 저질렀다면, 우생학자들은 강제 불임 수술 등으로 수많은 생명을 태어나지 못하게 막았다. 방법이 다를 뿐 나는 이 역시 살인과 마찬가지이며 무척이나 잔인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생학의 잔상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아보려는 노력도 전무하고, 폐해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전혀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저자는 우생학법이 한창이던 시절에 수용소에전에 저해가 된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잔인한 짓을 저질렀다. 노부인은 수용소에서 만난 벗과 함께 한 아파트에서 지내며 누구보다도 충실한 삶을 살아갔다. 사회에서는 열등한 존재로만 취급되던 사람이 실제 인생에서는 누군가에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친구이자 다정한 이웃, 따스한 부인이었던 것이다.대체 어떤 잣대로 사람을 함부로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사회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해가 되는 존재에게 자손을 낳지 못하게 하는 상황에 분노가 치밀었다. 뛰어난 사람만 필요하고 그렇지 않은 존재는 제거돼야 한다는 잔인한 이론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환경학 책에서 하등 쓸모없는 잡초가 많아서 제거했더니 그 풀을 먹이로 하는 동물들이 모두 사라지고 흙마저 유실되어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대다수의 눈에는 쓸데없어 보이는 잡초라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절대 필요 없는 생물이 아닌 것이다. 책 속에 나오는 저자의 말이 뇌리에 박힌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능력치나 사고관까지 비슷한 사람들로만 모인 사회가 있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모두가 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하나 소중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반면에 하나의 사회를 멋대로 재단하고 입맛에 맞게 만들어간다는 발상이 얼마나 위험한가.그러나 지금까지도 우생학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활동하던 시기에서 몇 세기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민족간 생물학적 차이가 거의 없음이 과학적으로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흑인이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의식을 지닌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환경이나 경제적 여건에서 비롯된 차이를 선천적인 것으로 여기고 차별하거나 조롱하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프다. 이슬람주의자들은 공격적이라거나 흑인이나 더운 나라의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차별적인 인식들. 반면, 출신 국가와 상관없이 백인이라면 무조건 우월저도.
독후감- ‘진화론’ 다시 읽기, 친화력은 인류 최고의 자산이다나는 그간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오해 아닌 오해를 하고 있었다. 생명의 비밀을 밝힌 위대한 연구가 아닌 우생학이나 인종 간 차별을 이끌어낸 비열한 학문으로 치부한 것이다. 그 근거는 바로 ‘적자생존’이다. 그러나 알고 보니 ‘적자생존’이란 찰스 다윈이 만들어낸 말도 아니거니와 그가 주장하는 진화론의 핵심이론이 아니었다. 오히려 진화론을 받아들인 후대들이 개념을 잘못 받아들이고 확대한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를 읽고 나서 다윈의 진화론을 향한 오해나 편견이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적자생존이란 말은 언뜻 듣기에 생명력이나 신체적으로 강한 개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 적자생존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고 약한 자는 도태된다는 말과는 거리가 멀고, 살아남아서 후손을 남길 수 있는 능력만을 뜻한다. 더군다나 이 책에서는 ‘다정함’이 살아남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다정함이란 대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며, 어떻게 해서 경쟁이 치열한 생태계에서 살아남게 해주는지 나는 무척 궁금해졌다.의 저자 중 한 명인 브라이언 헤어는 인류학자이자 영장류 학자이다. 침팬지나 보노보를 비롯한 영장류를 연구했으며, 우리와 친밀한 가축인 개의 인지능력을 새로운 시각에서 연구함으로써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에는 동물학자의 시점에서만 생물의 생존 조건에 대한 연구한 결과만 실려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보다 더 깊고 다양한 주제들이 있었다. 생물 연구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본성 탐구 더 나아가 사회의 속성, 차별의 근본 원인과 해결법까지 제시하는 놀라운 책이었다. 다양한 동물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실제 우리 삶, 사회 문제와 이어져 그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배우고 나의 편견을 깰 수 있었기에 책과의 만남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다시 ‘적자생존’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는 우리의 편견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최악의 생존에 진화에 대해 얼핏 배웠고 다양한 인간 종이 존재한 사실도 알았지만 나는 모두가 현생 인류의 조상 격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인간 호모 사피엔스와 동시대를 살았으며 심지어 지능도 더 뛰어나고 기술력도 높은 사람 종이 있었다는 사실은 결코 알지 못했다. 현재는 모두 알다시피 우리 사람 종을 제외하면 모두 멸종했다. 반면 폭발적인 인구 증가는 물론 문화도 번성한 우리들. 그 비결은 바로 초강력 인지 능력에서 비롯되었다.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 덕분이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뇌 크기도 크고, 언어 능력도 있었을 걸로 추정되지만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떨어졌다. 반면 호모 사피엔스는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었고 덕분에 수백 명 이상의 큰 단위로 뭉쳐 집단생활을 하며 세를 점점 늘렸다.다정함이란 속성을 좀 더 단순하게만 봤던 내 생각과 달리 타인과의 교류는 더 많은 발전을 이뤄낸다. 먼저 자제력이 생긴다. 본성대로만 움직이던 개체가 타인의 마음을 읽고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방향으로 애쓰는 것이다. 또한 사회 연결망이 확장되면 기술력이 향상되고 뛰어난 언어 능력을 통해 기술력과 지식을 축적할 수 있다. 반면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없고 간단한 의사소통만 할 수 있었던 다른 사람 종은 더 이상의 발전은 하지 못한 채, 가혹한 환경에 도태되거나 호포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지고 만 것이다.인류의 성공 비결을 ‘친화력’으로 꼽음으로써 그간의 미스터리가 풀렸다. 나는 여태 이족 보행이나 두뇌의 크기 정도로만 생각했으나 이 덕분에 지식의 공백이 메워졌다.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려는 욕구 덕분에 인류가 번성할 수 있었다는 이 이론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사람인의 인(人)자가 서로 기대는 형상으로 되어 있듯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말의 본뜻이 바로 여기에 담겨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애초에 인류가 성공한 비결이 친화력에 있듯이 앞으로도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세로토닌 분비의 증가 등을 들 수 있다.‘자기 가축화’ 이론에서 빠질 수 없는 동물은 바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개다. 지금도 애완동물로 가장 각광을 받는 개는 우리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함께 한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역사가 아주 길다. 개에 관해서도 나는 여러 가지 사실을 잘못 알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길들여진 존재가 아니란 점이다. 애초에 인간 거주지에는 쓰레기나 인간의 똥처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이 많아 겁이 없고 친화적인 늑대 일부가 가까이에 머물기 시작한 게 가축화의 시작이다. 또한 가축화로 인해 스스로 치열한 생존 경쟁에 뛰어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야생 동물보다 더 멍청해졌을 거란 생각도 나의 착각이었다. 세로토닌 분비의 증가로 뇌의 크기는 작아졌지만 지능이 뛰어난 유인원보다 탁월한 능력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침팬지도 실패한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 개는 그 어떤 훈련도 필요 없이 백 퍼센트의 성공률을 자랑한다. 먹이를 숨기고 손짓으로 알려줬을 때 침팬지는 신호를 읽지 못하고 멋대로 골랐다. 그러나 개는 손짓, 때로는 고갯짓만으로도 사람의 의도를 바로 캐치해서 먹이가 든 곳을 백 퍼센트 찾아낸 것이다. 너무나도 단순한 실험이라 나는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갖춘 동물이라면 성공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훈련을 하고 가르쳐도 침팬지는 실패했고 개는 훈련하지 않아도 바로 성공이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다른 개체의 의도를 읽는 것은 지능과 별개로 특수한 능력이다. 사실 우리 인간도 지각 능력도 발달하기 전에 타인의 시선을 좇고 마음을 읽는 능력부터 발달한다. 개도 그렇지만 아기도 양육자에 의존해 살아가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능력이기 때문이다.친화력 즉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상황에 맞는 반응을 보이는 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토록 인류의 동반자로 함께해오며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는 개. 개는 그 어떤 가축보다도 사람을 잘 따르며 사람의내고 있다. 과연 친화력이 최고의 생존 비결인 것이다. 뛰어난 지능이나 공격성, 신체적인 조건이 아닌 친화력이라는 자연선택 덕분에 오래토록 살아남게 되었으니 말이다. 인류와 가까운 유인원만 보더라도 먹이가 풍부한 덕에 서로 먹이를 나눠 먹고 높은 친화력을 보이는 보노보가 공격성이 높은 침팬지보다 더 많은 수의 자손을 남긴다. 반면 침팬지는 성체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이 싸움으로 알려져 있다.책을 읽으면서 친화력이라는 특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물학, 동물학의 관점에서 보면 타인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것, 서로 배려하는 것이 최고의 생존 비결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사회는 경쟁에만 매달리며 서로에게 무관심하거나 차갑게 대하고 심지어는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도 어느 관점에서 보면 동물과 마찬가지이며 사회에 동떨어져서는 살 수 없고 혼자서도 살 수 없다. 그런데도 이런 것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저 혼자만 잘 살고자 무한 이기주의를 펼치는 사람이 너무 많기만 하다. 이대로라면 인류에게는 과연 미래가 존재할 수 있을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보노보의 교훈을 기억하며, 협력과 공존을 바탕으로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하지 않을까.‘친화력’이 인류가 소중히 여겨야 할 최고의 가치란 확신이 들었을 무렵, 충격적인 반전을 접하게 됐다. 바로 이 친화력 때문에 다른 집단이나 개체를 차별하고 잔인하게 공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친화력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같은 집단에서는 화합을 추구하지만 타인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공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를 살뜰히 보살피던 어미가 아기에게 해가 되는 개체를 매섭게 공격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내 집단의 협력을 도모하는 옥시토신은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그들이 겪는 고통이나 공포를 잘 지각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라는 틀 안에서는 똘똘 뭉치지만 원 밖의 사람 국민 대다수가 모두 사이코패스일 리는 없는데 어찌 잔인하게 돌변할 수 있었을까? 통치자와 정치 선전에 세뇌되어 타 집단에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되면 그들은 나와 같은 인간으로 느끼지 않는 것이었다. 비인간화가 이루어지면 도덕적으로 거리낌도 없어지고 서슴없이 학대할 수 있게 된다.이와 더불어 악을 저지르는 이유를 벤듀라 비인간화 실험이 명확히 밝혔다. 유명한 밀그램의 동조 실험과 비슷한데 실험자가 특정 인물의 학습 능력 개선을 위해 처벌을 내리는 임무를 맡는 것이다. 이때 감독관 역할을 한 사람이 대상을 비인간화하면 실험 참가자는 더 가혹한 벌을 내렸다. 대상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기에 처벌을 내리기가 쉬웠던 것이다. 그러나 나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고통을 주는 벌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도덕성에 문제가 있거나 윤리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 사이코패스가 아님에도 간단히 ‘비인간화’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이 책에서는 인종 차별이나 타 집단에 대한 차별을 유인원화로 봤다. 단순한 편견 때문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란 뜻이다. 다양한 연령, 계층의 백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이민족이나 흑인을 진화가 덜 됐거나 유인원에 가까운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적잖이 있었다. 예를 들면, 피부가 더 두껍거나 호전적이고, 고통에 덜 민감하며, 본능적이고, 지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이렇게 유인원화로 사람들의 심리에 도덕적 배제가 발생하고, 상대방을 기본 인권을 지켜줄 필요가 없는 존재로 인식한다.인종 차별이나 이민족,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명확히 알게 됐다. 이는 사회나 윤리, 교육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내 집단에서 친화성이 금방 형성되는 만큼 우리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타 집단을 향한 공격성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대상이나 다른 집단에 대한 비인간화가 금방 이루어지기에 사회적 갈등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차별의 원 싶다.
독후감-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 전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메시지이어령 선생이 시한부 삶을 살게 됐다고 했다. 평소에 그의 메시지, 말과 글에 집중할 걸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뜩 차려졌다. 그가 마치 영원히 살 사람처럼 가만히 있으면 언제든 시대를 초월한 예언의 메시지와 인생의 통찰이 마구 쏟아질 걸로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표는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됐고 한국 최고의 지성에게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암 선고를 받고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고백한 후에 이어령 선생은 김지수 기자와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했다. 라는 제목의 기사였고 대중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덕분에 마지막이었던 인터뷰가 몇 차례 연장됐는데 이 책은 바로 라스트 인터뷰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이어령 선생의 육신은 곧 있으면 소멸하고 그 속에 담긴 지식과 사상마저 남기지 않는 한 사라질 예정이다. “난 죽을 거라네. 그것도 오래지 않아. 그러지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쏟아놓을 참이야.” 그의 말처럼 죽음을 앞두고 지혜와 삶의 진실을 갈구하는 대중을 상대로 모든 것을 쏟아놓았다. 어찌 보면 유언과도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메시이자 당부와 같은 말로 가득한 책이다. 책 속에서도 언급하지만 죽음을 앞둔 스승과 만남으로 삶의 지혜를 배운다는 점에서 이 떠오른다. 은 이 책과 비슷하지만 워낙 이어령 선생의 에너지와 열정이 뜨거운 탓에 전혀 다른 책처럼 느껴진다.이 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손꼽히는 이어령 선생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한 가지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기 힘든데 각종 분야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했기 때문이다. 기존 문학계를 비판하며 주목을 받았고, 언어기호학자, 언론인, 비평가, 소설가, 시인이면서 서울 올림픽의 개회, 폐회식을 기획했다. 한곳에 안주하지 않고 늘 창조적인 작업에 몰두하며, 인문학적 소양과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항상 시대를 앞서 예언하고 새로운 개념을 주창했다.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되기도 전인 2000년대에 이미 ‘디지로그’라는 개념눈으로 거침없이 새로운 영역을 향해 탐험하고 기꺼이 경험과 지혜를 나누어주던 지식인이 세상을 등진다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다행인 것은 이 책을 포함하여 그가 남긴 저작과 말이 적잖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더 이상 새로운 가르침을 얻을 수는 없지만 그의 궤적을 따라가며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이어령 선생과 똑같이 될 순 없지만 그의 지혜의 정수들을 받아 내 것으로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이 책은 애초에 ‘라스트 인터뷰’를 테마로 쓰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죽음’이 핵심 테마가 된다. 인터뷰도 죽음을 앞둔 이어령 선생의 심경을 묻거나 ‘죽음’이란 무엇인지 묻는 것으로 시작된다. 죽음이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피해갈 수 없는 숙명.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을 접하면서 이 시대의 지성이라 불리는 이어령 선생은 과연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두려움을 극복해서 대중들에게 지혜를 나눠줄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역시 인간인지라 죽음의 공포와 맞서 이겨낼 자신은 없다고 했다. 최초로 죽음학을 연구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말을 인용해 죽음을 앞둔 심경을 표현했다. 타인의 죽음이 철창 안에 갇힌 호랑이라면, 자신의 죽음은 호랑이가 철창에서 뛰쳐나와 덤벼드는 격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직접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했다. 90년 가까운 인생을 산 노인. 게다가 누구보다 뛰어난 학식을 자랑하는 지성이자 하나님을 믿는 종교인이라도 죽음은 두려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왠지 씁쓸했다.그러나 이어령 선생은 시한부를 선고받고 죽음을 애써 부정하며 무의미하게 삶을 연장하는 데 애쓰기보다 초연하게 맞이하며 삶의 마지막 자락까지 스스로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에 시간을 쓰기로 했다. 그 일이란 생전에도 해오던 글쓰기와 말하기였다. 암 말기 선고를 받고 회생 불가 상태에 놓여도 삶의 마지막까지 살려고 발버둥치는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선택이었다. 인간은 암을 이길 수 없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죽음이란 생이 끝나는 것으로 그 공포감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죽음이란 어둠의 골짜기나 절망과 거리가 멀다. 이어령 선생이 매일 밤 죽음과 팔씨름을 하며 깨달았다는 ‘죽음’의 실체. 그것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얘야 밥 먹어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제 그만 놀고 생명으로 오라는 부름인 것이다. 즉 내가 태어난 곳이나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 귀환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죽음을 표현할 때 ‘돌아가신다’라고 하는 것처럼 태어난 자리로 돌아가는 게 죽음이라는 것. 지금도 완전히 이해가 된 것은 아니지만 죽음이 시간으로 표현하면 가장 환한 대낮이나 절정이란 건 기가 막힌 설명이다. 무릇 생명체는 모두 죽음이 있듯 자연의 이치를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모두들 죽으면 끝장이라고 하지만 한 인생, 한 생명체의 완성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이어령 선생은 뒤늦게 종교를 믿게 됐지만 기독교에서의 부활이나 환생은 믿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늘 ‘메멘토 모리’를 강조했다. 죽음을 잊지 말고 살라는 것. 현대에서는 죽음은 불길하며 입에 올리기조차 싫은 것이 돼버렸다. 예전에는 마을 곳곳에 묘지도 있고, 가족들이 직접 돌아가신 분의 염을 하고 장례를 치렀지만 지금은 모두 업체에 맡길 뿐이다. 마치 죽음을 멀리해야 하며 가까이 해서는 안 될 것으로 취급하며 삶에서 죽음을 지우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삶에 죽음이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이어령 선생의 조언이 와 닿는다. 과거에는 죽음이 일상 속에 있었기 때문에 생생히 살 수 있었지만 죽음의 흔적을 지워버린 지금은 오히려 생명의 감각도 희미해졌다는 말이. 실제로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죽음을 결코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내가 진정 뭘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도 모르면서 남들이 정해준 목표를 좇아 바쁘게 돌아다닌다. 시간을 허투루 쓰고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손에 넣으려고 인생을 낭비한다. 우리는 바로 ‘내일’이란 시간도 보장할 수 없는 원이 주어진 듯이 살아지는 대로 사는 삶은 천지 차이일 테다. 나도 ‘메멘토 모리’를 기억하며 인생이란 귀한 선물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 잘 생각하며 힘껏 살아야겠다 다짐한다.이 책은 앞서 말했듯 인터뷰 기사의 확장판으로, 이어령 선생과 저자 김지수의 대화로 이어진다. 대화체를 고스란히 옮겼기에 텍스트는 쉽게 읽히는데 선생의 한평생의 지혜가 녹아 있는 만큼 금방 소화되지가 않는다. 문장 몇 개로 책 수십 권이나 수십 년 인생의 경험을 표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런데 그 어려운 이치나 이론을 이어령 선생은 명쾌한 비유로 설명했다. 어려운 것을 어렵게 설명할 수 있어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그의 공력은 대체 얼마나 높은가 감탄하게 됐다.그 중에서도 인간의 몸과 마음, 영혼을 컵에 비유한 부분은 놀라웠다. 컵을 몸에 비유한다면 마인드는 속을 채우는 액체라고 할 수 있다. 담긴 액체에 따라 술잔도 되고, 찻잔도 되는 것처럼 어떤 마인드를 품느냐에 따라 사람은 수시로 변한다. 컵에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빈 공간은 곧 영혼으로 이 뚫린 바깥 면에는 끝도 없이 우주까지 이어진다. 이 컵이 깨진다는 건 곧 육체의 소멸을 의미하는데 당연히 컵에 담긴 마인드인 액체도 쏟아지고 만다. 그런데 원래 존재했던 빈공간은 컵이 깨져 흙으로 돌아갔다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영혼의 존재를 설명하는 비유이다. 나는 영혼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컵의 비유를 알고 의문이 풀렸다. 게다가 죽음 이후에도 영혼으로서 어디에선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게 됐다.한편으로 윤리와 철학, 사회를 결합한 이론을 성경의 ‘아흔아홉 마리의 양’에 비유한 부분도 인상 깊었다. 책 속에서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하며 개인과 집단,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명쾌하게 풀어낸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같은 베스트셀러에서도 다루는 부분이다. 이어령 선생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 예수처럼 개인은 결코 집단에서 소홀히 할 대상이고, 감염 진원지임에도 코로나의 확산세가 주춤했다. 모두를 위해서라면 일부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어령 선생의 설명을 들으니 내 생각이 안일했음을 알게 됐다. “내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 그런 대응을 받았다면, 과연 그게 옳다고 말할 수 있는지.” “한 명의 죽음은 모두의 죽음을 예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르침에 뜨끔해졌다. 더불어 모두에게 이롭게 몇 명을 희생시키는 사회보다도 그 누구에게도 피해나 억울함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배려하는 사회가 훨씬 더 건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회와 국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이루어졌다는 걸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다. 한 사람을 소중히 해야 비로소 타인이 있는 것이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책을 읽으면서 이어령 선생의 높은 지식과 통찰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특정 분야에 치우친 지식이 아니라 문학과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과 천문학, 진화생물학 등 다양한 과학 지식까지도 두루 깊이 파고든 듯했다. 게다가 IT 쪽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번뜩이는 예언을 내놓았을 정도이다. 때문에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어령 선생의 조언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집이 늘 북적인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그처럼 여러 학문을 통섭하고 세상에 필요한 지혜와 통찰을 내놓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책 속에서 몇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인문학이었다. 이어령 선생은 인문학을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실생활에 유용한 도구로 여겼다. 스스로가 올림픽 개회, 폐회식을 도맡아 성공시킬 수 있던 것, 세상 흐름을 읽고 앞서 나타날 변화의 맥을 짚는 것 모두 인문학의 힘이라고 했다. 정책 입안자들도 현재 실정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인문학적 맥락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문학 소양을 갖게 되면 평소 우리가 소홀히 하던 것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고, 사물이나 사건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다. 현재 국가적으로도 교육계는 물론 학생들도 밥벌이에 불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