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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교과별 목표 분류 및 평가문항 개발
    교과별 목표 분류 및 평가문항 개발
    2018_2학기_교육평가_기말 과제교과별 목표 분류 및 평가 문항 개발1. 교육과정 제시2009 개정교육과정[10한사05-01]흥선 대원군의 통치 체제 재정비 노력과 통상 수교 거부 정책, 강화도 조약 체결의 대내외적 배경, 개항 이후 추진된 개화 정책의 내용을 파악한다.[10한사05-02]개화 정책을 둘러싼 갈등과 근대 국가 수립을 위한 노력을 살펴보고, 근대 문물 수용에 따른 사회 변화를 탐구한다.[10한사05-03]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선 의병 운동, 애국 계몽 운동, 경제적 구국 운동의 내용을 파악한다.[10한사05-04]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역사적 연원을 통해 증명하고, 일제에 의해 이루어진 독도 불법 편입 과정의 문제점과 간도 협약의 부당성을 이해한다.[10한사06-01]1910년대 일제의 식민 지배 정책과 국내외에서 전개된 민족 운동을 살펴보고, 3?1 운동과 이를 계기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파악한다.[10한사06-02]3?1 운동 이후 일제 식민 지배 정책의 변화를 살펴보고, 1920년대 국내외에서 전개된 민족 운동의 흐름과 특징을 탐구한다.[10한사06-03]1930년대 이후 일제가 추진한 징병, 징용, 일본군‘위안부’ 강제 동원 등의 전시 수탈과 우리말 사용 금지와 같은 민족 말살 정책을 파악하고, 1930∼1940년대 국내외 민족 운동의 흐름과 건국 준비 활동을 이해한다.[10한사07-01]8?15 광복 이후 전개된 대한민국의 수립 과정을 파악하고, 6?25 전쟁의 발발 배경 및 전개 과정과 전후 복구 노력을 살펴본다.[10한사07-02]4?19 혁명으로부터 오늘날까지 이룩한 자유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을 이해한다.[10한사07-03]경제 성장의 성과 및 과제를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문화의 변화 내용을 설명한다.[10한사07-04]북한 사회의 변화와 오늘날의 실상을 살펴보고, 평화 통일을 위해 남북한 사이에서 전개된 화해와 협력의 노력을 탐구한다.[10한사07-05]동북아시아의 역사 갈등, 과거사 문제 과 광주 학생 항일 운동민족 유일당 운동과 신간회민족 문화 수호 운동의 전개사회, 문화의 변화사회적 차별 철폐 운동- 학생은 일제강점기 사회, 경제적 변화에 따른 사회상의 변화를 알 수 있다.사회 구조와 생활 모습의 변화대중문화의 유행과 문예활동무장독립 전쟁의 전개와 건국 준비 활동독립 전쟁의 승리와 고난(1920년대)- 학생은 일제강점시기부터 광복 때까지 진행된 무장 독립전쟁의 과정과 특징을 설명할 수 있다.- 학생은 광복을 앞두고 진행된 건국 준비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국외 이주 동포의 활동한중 연합군의 항일 투쟁(1930년대)민족통일 전선의 형성과 좌우 통합 임시 정부의 성립광복을 향한 노력과 건국 준비 활동대한민국의 발전과현대 세계의 변화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6.25전쟁제2차 세계 대전의 종결과 냉전체제의 형성- 학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정을 이해하고 그 의의를 설명할 수 있다.- 학생은 6.25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말할 수 있다.광복과 미소군정통일 정부 수립 운동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활동6.25 전쟁과 그 영향전후 남과 북의 정치, 경제자유 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냉전의 해체와 국제 질서의 재편- 학생은 4.19혁명부터 오늘 날까지 한국의 자유 민주주의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이해할 수 있다.이승만 독재와 4.19혁명5.16 군사정변과 자유 민주주의의 시련유신 체제와 부마민주항쟁5.18민주화운동6월 민주 항쟁민주화의 진행과 평화적 정권 교체고도성장과 사회, 문화의 변화한강의 기적, 그 빛과 그림자- 학생은 산업화에 따른 경제성장 및 문제점, 사회, 문화의 변화와 남겨진 과제를 파악할 수 있다.신자유주의와 한국 경제산업화에 따른 변화와 그 문제점현대 사회의 과제북한의 변화와 평화 통일을 위한 노력북한의 변화와 오늘날의 실상- 학생은 북한의 변화를 파악해 오늘 날 북한의 실상을 지적할 수 있다.- 학생은 남북한 사이에 전개된 화해와 협력의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남북 화해와 협력세계와 대한민국동북아시아의 역사와 영토 갈등- 학생은 동북아시아에서 판단3. 이원분류표▶ 평가상황 : 총괄평가행동내용지식이해분석해석비판판단문항수비율(%)일제의 강점과 수탈417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14나라 안에서 전개된 민족운동14사회, 문화의 변화28무장독립 전쟁의 전개와 건국 준비 활동521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6.25전쟁28자유 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521고도성장과 사회, 문화의 변화28북한의 변화와 평화 통일을 위한 노력14세계와 대한민국00문항 수*************비율(%)8100959584. 출제계획표일련번호내용영역행동영역문항수배점예상소요시간정답률출제위원대영역소영역낮음보통높음1일제 강점과 민족 운동의 전개일제의 강점과 수탈이해, 분석, 해석22일제 강점과 민족 운동의 전개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이해, 분석, 해석23일제 강점과 민족 운동의 전개나라 안에서 전개된 민족운동이해, 분석, 해석15일제 강점과 민족 운동의 전개사회, 문화의 변화이해, 분석, 해석26일제 강점과 민족 운동의 전개무장독립 전쟁의 전개와 건국 준비 활동이해, 분석, 해석57대한민국의 발전과현대 세계의 변화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6.25전쟁이해, 판단28대한민국의 발전과현대 세계의 변화자유 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이해, 분석, 해석39대한민국의 발전과현대 세계의 변화고도성장과 사회, 문화의 변화이해, 분석, 해석210대한민국의 발전과현대 세계의 변화북한의 변화와 평화 통일을 위한 노력이해, 분석, 해석, 판단111대한민국의 발전과현대 세계의 변화세계와 대한민국이해, 분석, 해석, 판단[이하 생략]1. 다음 상황이 나타난 배경으로 옳은 것을 모두 고른 것은?[4.5점]부산 지회에서 해소론을 제창한 자가 있다. 그 이유로 지상에 보도된 바는 이 단체가 “소부르주아적 정치 운동의 집단으로서 하등의 적극적 투쟁이 없었을 뿐아니라 전 민족적 총역량을 집중한 민족당이란 미명 하에 도리어 노농(老農) 대중의 투재 의욕을 말살시키는 폐해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그 후에 얼마 안 되어서 한남 이원에서도 대체 동일한 취의(趣意)에 의한 동 해소론이 과정③ 대성 학교에서 사용된 교과서④ 서전서숙과 관련된 신문 기사⑤ 제2차 조선 교육령에 대한 논문7. (가) 군사 조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5점]어제 오전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산하 부대인 (가) 의 창설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한국이 일본에 병탄된 지 이미 30년이 되었다. 비록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가) 이/가 창설된 것은 중대하고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기념식에는 국무위원 과한국 독립당 중앙 집행 위원 등 2백여 명이 참석하였다.① 자유시 참변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②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쳤다.③ 조선 의용대 일부가 합류하여 병력이 충원되었다.④ 영릉가 전투와 흥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에 승리하였다.⑤ 동북 항일 연군으로 개편되어 항일 유격전을 전개하였다.8. 다음과 같은 법령이 제정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4점]11조 태형은 감옥 또는 즉결 관서에서 비밀리에 행한다.13조 본령은 조선인에 한하여 적용한다.시행규칙 12조 집행자 중 수형자가 비명을 지를 우려가 있을 때는 물로 적신 천으로 입을 막는다.- 조선 총독부 관보1905 1910 1919 1931 ㉠㉡㉢㉣㉤① ㉠ ② ㉡ ③ ㉢④ ㉣ ⑤ ㉤9. 다음 기사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4점]1919년 x월 x일금일 오후에 모이기로 한 민족대표 33인은 태화관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했다. 한편 오후 2시에 태화관과 300미터 떨어진 탑골공원에서는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민족대표들이 보이지 않아 한동안 당황하였으나 경신학교 출신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하략)① 통감부의 방해와 탄압으로 실패하였다.② 일제가 통치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③ 중국의 5.4운동에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다.④ 천도교의 방정환이 중심이 되어 확산되었다.⑤ 순종의 인산일에 학생들의 주도로 전개되었다.10. 다음 지도에 표시된 (가)정부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4.5점]① 기관지로 독립신문을 간행하였다.탄압2. 전개 : 광주 시민과 학생의 시위 → 계엄군의 폭력적 진압과 시민의 희생 → 시민군과 계엄군의 충돌 → 계엄군의 무력 진압① 3ㆍ15 선거의 무효를 주장하였다.② 한ㆍ일 수교 움직임에 반대하였다.③ 4ㆍ13 호헌 조치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었다.④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 세력에 의해 진압되었다.⑤ 양원제와 내각제를 핵심으로 하는 개헌이 이루어졌다.18. 다음 선언이 발표되었던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4.5점]오늘 우리는 전 세계 이목이 주시하는 가운데 40년 독재 정치를 청산하고 희망찬 민주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거보를 전 국민과 함께 내딛는다. 국가의 미래요 소망인 꽃다운 젊은이를 야만적인 고문으로 죽여 놓고 그것도 모자라 뻔뻔스럽게 국민을 속이려 했던 현 정권에게 국민의 분노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국민적 여망인 개헌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4·13 폭거를 철회시키기 위한 민주 장정을 시작한다.① 발췌 개헌이 끼친 영향을 살펴본다.② 유신 헌법 철폐의 필요성을 알아본다.③ 한ㆍ일 국교정상화의 문제점을 조사한다.④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게 된 사건을 찾아본다.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게 된 원인을 파악한다.19. 다음 운동이 전개된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4점]경제적 위기 속에서 우리 국민은 ‘제2의 국채 보상 운동’ 이라 불리는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에는 1월부터 4개월 동안 350여만 명이 참여하여 200톤이 넘는 금을 모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① 남면북양 정책이 시행되었다.② 2차 석유 파동으로 경제 위기를 겪었다.③ 국제 통화 기금(IMF)의 금융 지원을 받았다.④ 전쟁으로 인해 국가 기반 시설이 파괴되었다.⑤ 미국의 무상 원조가 중단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20. (가)~(라) 시기의 경제 상황에 대한 옳은 설명을 에서 고른 것은?[5.5점]ㄱ. (가)- 베트남 특수로 경제가 발전하였다.ㄴ. (나) - 소비재 산업이 경제의 중심을 이루었다.ㄷ. (다) - 3저 호황으로었다.
    교육학| 2022.11.10| 13페이지| 3,000원| 조회(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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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지구환경공생 최종보고서 - 자연환경에 노출된 문화재를 어떻게 하면 보존할 수 있을까?
    지구환경공생 최종보고서 - 자연환경에 노출된 문화재를 어떻게 하면 보존할 수 있을까?
    자연환경에 노출된 문화재를 어떻게 하면 보존할 수 있을까?- 국내 문화재를 통해 바라본 보존방향 모색- 목차 -Ⅰ. 서론Ⅱ. 본론1. 문화재의 정의2. 문화재 훼손의 원인3. 문화재 소재를 통해 본 훼손상태 : 현황보고4. 문화재 보존방향 모색1) 경주남산2) 경천사지 10층 석탑과 원각사지 10층 석탑5. 자연에 노출된 문화재 보존의 한계 및 대안모색Ⅲ. 결론Ⅰ. 서론현재 세계에는 각 국가의 역사가 깃든 문화재들이 존재한다. 이 문화재들은 박물관에 보존되거나, 개인 갤러리 등 다양한 공간에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인공 환경 외에도 자연환경에 그대로 문화재들이 노출되는 경우도 존재한다.동양의 문화재와 서양의 문화재의 차이를 보면 서양은 자연을 지배하려는 모습을 보이지만 동양의 경우 자연과 어울리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직선과 다듬어진 벽돌이 서양 문화재의 특징이라면 굴곡과 자연석의 어울림은 동양 문화재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중 자연에 그대로 노출이 되어 마치 자연과 인공의 조화처럼 보이는 문화재들이 존재한다. 자연 암반에 조각된 마애불, 자연석을 그대로 건축물의 초석으로 사용하는 그랭이 기법 등이 자연환경과 인공 환경의 조화를 보여준다. 하지만 문화재들이 형성 된지 약 100년 이상이 흘러간 지금, 자연환경과 인공 환경의 조화를 이루던 문화재들이 자연환경으로 인해 훼손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많은 문화유산들 중 자연에 노출된 채 존재하는 문화재의 보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자연에 노출된 문화재들 중에서 훼손이 심각한 석재 문화재를 중심으로 이번 팀 프로젝트를 통해 자연환경에 노출된 문화재들 중 자연재해, 풍화작용으로 인해 손상되고 있는 문화재를 문헌자료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문화재의 구성 재료를 바탕으로 손상정도와 그 원인을 알아보고, 그 중 일부 문화제를 직접 답사를 통해 어떻게 문화재가 보존되고 있는지 알아 볼 것이다.Ⅱ. 본론1. 문화재의 정의문화재는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경의 입장에서는 인공 환경과의 공존의 고리를 파괴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에 노출된 문화재 훼손이 자연환경과 인공 환경의 공존이 깨졌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공존’의 기본 틀이었던 인공 환경의 ‘예술성’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재 훼손은 인공 환경과 자연환경의 조화가 깨진 상태로 볼 수 있다.자연환경이 문화재를 훼손시키는 주요 원인은 크게 다섯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첫 번째로 풍화침식이다. 커다란 암벽에 부처의 모습이 새겨진 마애불의 경우 산 속 절벽에 그대로 노출이 되어 바람, 비, 눈 등으로 인한 풍화침식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마애불이 침식이 되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거나, 마애불을 설명하는 음각된 글씨도 알아볼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두 번째로 습기이다. 목조 건축의 경우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습도에 의한 뒤틀림이 생길 수 있다. 마른 나무가 습기를 만나 뒤틀리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습기를 머금으면 나무의 부피가 늘어났다가 역으로 건조해지면 부피가 줄어드는 작용이 반복되면서 나무가 본래 틀을 벗어나 틀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습기는 벽화의 보존에도 영향을 끼친다. 고구려 고분 벽화의 경우 회를 사용해서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데 습기로 인해 회가 떨어지거나, 안료가 회에서 분리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벽화의 선명도가 떨어지는 훼손이 습기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세 번째로 환경오염으로 인한 훼손이다. 현대사회에 이르면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대기오염의 정도가 심해지게 되었다. 대기 중으로 중금속의 성분이 섞여 들어가고, 비가 내리면서 산성비가 내리게 되는데 이로 인한 피해가 존재한다. 석재 탑들 중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일부의 탑이 부식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즉 산성비로 인해 탑의 재료인 대리석이 부식되어 석재 표면에 조각된 문양, 조각품이 훼손되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네 번째로 병해충에 의한 훼손이다. 목조 건축의 경우 이름 그대로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무에 서식하는 병해충의 피해가 존재한다. 과적으로 건물을 무너뜨리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따라서 목재 문화재의 경우 습기 제거 및 방역을 통한 문화재 보존이 필요하다.마지막으로 석재문화재는 주로 탑, 부도, 석불, 비석 등으로 그 축조연대가 오래되었으며 대부분 옥외에 위치하고 있어 그 석재물의 표면상태는 석재물이 위치해있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석재물의 훼손은 지표 또는 지표근처에서 풍화에 의해 일어나며 풍화의 요인은 우리나라 자연환경을 고려할 때 주로 빗물, 대기오염, 지하습기, 염의 정출, 기온변화, 생물 서식, 인위적 파손 등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 분표하는 석재 유물들은 소수의 국보와 보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풍화를 받기 쉬운 조건들에 노출되어 있으며 제대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 이들은 야외에 방치되어 있음으로 암석구성의 성분의 용해에 의한 변색, 물의 침투에 의한 표면과 전단면의 차별 풍화, 표면의 박리현상, 절리면 또는 표면석에 서식하는 식물에 따라 다양한 풍화특성을 보인다. 풍화의 경우 근본적으로 물(산성비)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외에도 온도변화와 물, 암석 반응에 따라 풍화잔류물을 남기고 이 잔류물이 결정화되면서 부피가 팽창하게 된다. 즉 간단하게 말해 물이 어는 현상 등으로 인한 물리적그림 3 물리화학적 및 생물학적 풍화가 진행된 석조불상, 경주 남산 및 화학적 풍화가 진행된다는 것이다.또한 습기가 존재하게 되면서 조류, 선태류, 지의류 또는 고등식물의 서식처를 제공하게 되고 이들의 성장에 따라 기계적 풍화작용이 가속화 된다. 대부분의 석재문화재는 상당히 풍화되어 있어 원암의 조직과 조성을 보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석재 문화재의 경우 그 훼손의 과정이 1차, 2차로 나눠진다. 1차의 경우 물, 햇빛, 바람과 같은 자연풍화 현상이며 2차의 경우 습기로 인한 생물훼손을 의미한다. 1차의 경우 자연에 문화재가 노출된 순간부터 진행이 되어져 왔지만 생물훼손의 경우 장기간에 걸쳐 표면 환경을 변화시키고 보존처리를 하지 않을 시 생물의 점유면적이 넓체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또한 상선암 요사 뒤쪽에 방치되어있는 상선암 선각 보살상의 경우 발 부분이 훼손이 심하고 현재 이 보살상에서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은 단지 특정부분의 장식뿐이며, 전체적인 모습을 알아보기가 힘들다.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의 경우 마애불 옆에 존재하는 명문이 표면 풍화침식도가 심해 일부 글씨의 명문 중 2행의 글씨 판독이 어렵다. 위의 사례들을 통해 현재 자연에 그대로 노출된 남산 대부분의 문화재가 자연 풍화로 인해 그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장기적인 측면에서 자연풍화로 인한 마모현상은 심화될 것으로 추측된다. 남산에 존재하는 마애불 외에도 자연 암벽에 조각된 석조물들의 경우 불상연구에서 중요시 여기는 수인, 자세, 법의의 특징, 명문 등이 석조표면마모로 인해 훼손되고 있다. 이는 앞으로의 불상연구에 있어 치명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석조표면의 풍화작용은 짧게는 수 십년, 길게는 수 백년 동안 진행되어온 결과라고 이야기하지만 어떠한 보존 방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후대의 후손들은 노천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남산의 석조물을 물론 자연에 노출된 석조 문화재의 형태를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경주 남산의 사례를 통해 자연에 노출된 석조물의 문화재 관리 책이 필요하다.그림 8 하남시 춘궁동 오층석탑의 디지털 베이스 구축이에 따라 경주시에서는 경주 남산연구소를 운영해 풍화, 마멸, 무너짐 등의 자연적 훼손을 당하고 있는 문화재를 보존 복원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유적지 정비작업에 선행한 학술 발굴 조사 실시를 통한 유적의 성격을 구명하고 훼손, 오염된 현황조사를 통한 기초자료를 수집해 과학적 보존처리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석조 표면에 발생한 이끼류의 경우 표면 세척 작업을 통해 제거하고, 암석 표면에 생긴 박리현상, 균열현상은 관련 조사를 통해 보완제를 입히는 등의 보존 작업을 진행한다. 또한 문화재청 소속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주 남산 문화재를 정밀실측을 해 경주 남산에 소재한 불상 93구에 대한 3D 스캔작업을 진층 석탑의 경우 그 석재가 대리석으로 산성에 매우 약한 소재로 볼 수 있다. 특히 대리석의 경우 화강암보다 강도가 무르기 때문에 다양한 조각을 석재에 새길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어 두 석탑에는 과거 원과 송나라에서 유행했던 종교 및 당시 사람들의 모습 등이 세세히 조각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산성비로 인해 대리석이 부식되기 시작하면서 표면에 조각된 조각들의 형태가 망가지기 시작했고 이를 보존하기 위한 방법의 모색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경천사지 10층 석탑의 경우에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원각사지 10층석탑의 경우 외관에 유리관을 씌우는 것으로 보존방법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자연환경에 있던 문화재를 인공 환경으로 이동시키거나 자연환경과의 접촉을 막은 것이다.여기서 살펴보아야 할 것은 같은 석재, 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음에도 두 문화재의 보존방법이 다른 이유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 문의해본 결과 경천사지 10층 석탑의 경우 해체작업을 통해 실내로 옮기는 것이 지붕을 만들거나 유리관을 씌우는 것 보다 더 안전하게 보존이 가능하고 훼손이 심해지지 때문에 해체 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로비로 옮겨졌다. 이에 반해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경우 경천사지 10층 석탑처럼 해체 후 박물관 등 실내로 옮길 수는 있지만 석탑의 지리적 위치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유리관을 씌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현재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위치는 파고다 공원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탑골 공원’으로 불린다. 즉 탑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 지역의 이름으로 인해 석탑이 사라질 시 그 지역의 랜드 마크가 소실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경우 그 위치에 두고 더 이상의 풍화를 막기 위해 유리관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존방향을 선택했다고 한다.이 두 석탑의 보존방향을 통해 단순히 같은 재료, 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해도 문화재의 역사, 지리적 측면 역시 고려해 보존방향을 모색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즉 이 사례를 통해 석조 외에있다.
    생활/환경| 2022.11.10| 10페이지| 3,000원| 조회(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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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平等寺木製釋迦仏像_日本語
    平等寺木彫釈迦如来立像について大乗仏教の時代に入り、様々な仏が礼拝され、仏像も様々につくられてきた。仏像の種類には 釈迦仏,毘盧遮那仏,薬師仏など多様な種類が存在する。そのうち、釈迦仏は大乗仏教の影響を受けた中国や韓国、日本で最も多く作られた仏像である。釈迦仏が表れた釈迦牟尼はよくシャカモニと呼ばれ、釈迦族出身の聖者を意味する。最初の釈迦仏は彼が涅槃に入って数世紀後、完全に神格化するが、この時最初に釈迦仏を形象化して礼拝をした。釈迦仏は仏教の創始者であり教祖として最も崇められており、時代や地域を問わず釈迦仏像が最も多く作られた。 釈迦牟尼仏の形象は誕生仏、半跏思惟像または太子思惟像、苦行釋迦像、降魔成道像、最初の說法像、涅槃相などが表現されている。このような釈迦牟尼仏を祀った殿閣は大雄殿、大雄宝殿、左右の狭視には文殊菩薩と普賢菩薩が位置する。平等寺にある木製釈迦如来立像は鎌倉時代の建保元年(1213)に良円等が製作した。これはかかとの裏側に墨書名が残っていて確認できる。仏像の材質は木彫であり、その中にヒノキで作られた。全体的に金漆が施されていたとみられるが、現在は顔と服のシワの一部に金漆の跡が残っている。平等寺の木造の釈迦如来立像は同じ時代にあった他の釈迦如来仏像と違う様式を現れる。螺髪がサラの形であるのとは違い,頭の螺髪の形が紐で違う。また、首には三つの線(三線)があり、その下に両方の肩にかけた服が中央の体全体にU形の曲線の形で表現されている。このような平等寺木彫釈迦如来立像の様式は1193年東京にある大円寺像に続く清凉寺式の釈迦如来の様式で見ることができる。仏像の目は水晶できた玉眼になっているが目の形が横に細長くて玉眼の姿が正面で見ると見るのが困難である。服の袖の部分の裾は直線の形になっている。かかとの裏側に位置した墨書銘の隣には既存に光背をはめた穴が残っており、台座は蓮の花が3重に覆っている。ただ、仏像の後部にある台座の蓮の花は消えつつある。仏像の横顔を見た時は平面的であり、前方に15度ほど傾いている。〈参考文献〉猪川和子 著 「西国の清涼寺式釈迦如像」 『美術研究』 第 324号 東京文化財研究所 1983年土浦市立博物館 編 『中世の霞ケ浦と律宗 : よみがえる仏教文化の聖地 : 第18回特別展図 録』 土浦市立博物館 1997年明珍恒男 著 『佛像彫刻』 スズカケ出版部 1936年金煥大 『 寺の文化財の道しるべ』 韓国学術情報 2008年文明大 『韓国の仏教美術も形式 』 韓国言論資料刊行会 1997年2019.05.28.美術史(日本)龍谷ミュージアム報告書PAGE * MERGEFORMAT2
    인문/어학| 2022.11.10| 2페이지| 5,000원| 조회(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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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2부 9장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 - 국민교육헌장과 역사교육- 목차 -Ⅰ. 서론Ⅱ. 본론1. 국민교육헌장의 배경2. 국민교육헌장의 내용3. 국민교육헌장의 비판점Ⅲ. 결론Ⅰ. 서론필자의 나이 대에 있는 친구들은 국민교육헌장의 내용을 암기하지도, 존재했다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부모님과 이야기해보면 그 때는 맞으면서 외웠다, 엄청 힘들게 외웠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거 같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신다. 이런 점을 보았을 때 당시 국민교육헌장의 모습이 어땠는지,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국민교육헌장은 말 그대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헌장이념을 보급하기 위한 교육의 방향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보급의 방법은 일반적인 대중매체가 아닌 학교교육에 중심을 두었다는 특이한 점이 있다. 사실 교육헌장이라는 성격상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가 중심이 된 것은 맞는다고 볼 수 있지만 ‘국민’이라는 이 단어와는 학교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당시 박정희의 담화를 보면 제도교육기관인 학교는 정부가 정한 교육이념이나 방향을 실천에 옮기기에 용이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나와 국민이 될 학생들을 국가의 이념에 맞추어 기른다는 것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발표에서는 박정희 정부시기의 국민교육헌장의 배경과 내용, 그리고 그 내용과 실행의 측면을 어떤 측면에서 비판할 것인지를 이야기하려한다.Ⅱ. 본론1. 국민교육헌장의 배경국민교육헌장이 만들어진 배경은 우선 박정희시기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이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내부적으로 제 3공화국 전반기인 1963년부터 1967년까지는 박정희가 미국의 안보정책에 협조한 대가로 미국의 지원을 획득했고, 1966년 이후 수출과 성장은 상승곡선을 타고 있었다. 당시 경제개발정책의 성과의 영향으로 박정희는 1967년 제 6대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고, 그는 소위 지도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구조개혁이 필요키고, 나아가서는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정신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 포함된 것이다.박정희는 1969년 2월 18일에 당시 문교부 장관이었던 권오병에게 민족 주체성 확립에 토대를 둔 교육헌장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문교부는 6월 20일부터 학계 중진 40여 명으로 이루어진 준비회를 만들고 국민교육헌장 제정에 관한 요강을 검토했다. 그리고 이인기, 박종홍, 유형진으로 구성된 기초위원 3인이 초안을 기초했다. 그리고 초안을 검토하기 위해 교육계, 문화계, 언론계, 종교계, 경제계, 정계 등 44명의 다양한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국민교육헌장 심의회 구성원 명단을 7월 23일에 발표했다. 이후 7월 26일부터 1차수정안이 검차되어 9월 23일까지 6차례 수정회의가 열려 5차 수정안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또한 성격상 국민의 총의를 대표하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결정해 국회 문교공보위원회와 본회의에서 각각 만장일치로 동의를 받았다. 그 결과 1968년 12월 5일에 모든 국민이 지표로 삼아야 할 정신을 담았다는 국민교육헌장을 발표했다.국민교육헌장의 등장과정에서 만장일치가 있었다는 것에 있어서 저자는 경제 성장만을 추구한 나머지 배금주의를 조장해 국민정신을 혼란에 빠지게 했다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당시 만장일치의 부분에 있어서 아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언론과 일부 학자들은 반문을 진행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반문은 그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닌 헌장이 만들어질 때의 절차에 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야당과 언론들이 헌장의 등장과정에서 경제성장에 매몰되어 반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 다르게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강조하는 정신은 국민교육헌장을 만들기로 결정하기 그 이전의 흐름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와 6.25가 연달아 터지면서 국가는 국민적 통합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나의 민족 안에 두 개의 국가와 국민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정권 이전 1950년대에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스스로 국가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반공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국민교육헌장의 큰 내용은 국가주의 정신이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 ‘반공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 ‘근면한 국민’ 등 393자에 담긴 단어들은 국가주의 이념을 내포한 주요 단어들이다. 즉 국민교육헌장은 박정희 정부가 개인보다 사회와 국가를 우선시하고, 자신을 희생하여 공익이나 국가 발전에 힘쓰는 것이 바람직한 국민정신임을 학교교육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강조한 것이다.그리고 국민교육헌장에서 국민정신의 통합을 위해 만든 것은 ‘한국적 전통’이다. 과거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빛났던 역사와 문화재, 인물을 내세워 국난 극복의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곧 박정희 정부가 국민을 ‘한국적 전통’으로 묶어 나라를 이끌어가 권력을 유지하는데 사용하려는 것이었다.2) 학교 현장에서의 국민교육헌장국민교육헌장의 반포 이후 정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그 이념의 보급과 확산에 힘썼다. 국민교육헌장이 등장하면서 문교부는 국민교육헌장 이념의 구현을 위한 일반적 방안을 마련하면, 정부의 다른 부서나 각종 기관 및 단체가 이를 받아서 적절한 세부방안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 예로는 국민교육헌장 낭독을 국민의례 절차에 포함시키고, 그 내용을 암기하도록 해 국민의 마음속에 헌장이념을 체화시키고자 했고, 그 의미를 강조하며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 것 등이 있었다.실제 학교 교육현장에서 야 하는 지를 담고 있다.더불어 국민교육헌장의 ‘한국적 전통’은 진행된 인물, 일화 등을 소개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특히 이런 방법은 초등학교에서 활발했고, 지역별로 유명한 인물을 내세우기도 했다. 국내 인물로는 이순신, 김구, 안창호 등 외적의 침략을 물리치거나 민족운동을 한 사람들과 그들의 활동이나 삶이 강조되었다. 더불어 대통령을 민족의 상징에 넣고, 5.16쿠데타, 제 3공화국 수립을 민족적 의거에 포함시키고, 이승복, 최규식, 이인호 등을 빛을 남긴 조상으로 가르치는 등 정부의 정책이나 이념을 직접적으로 홍보했다. 또한 외국의 사례들은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의 한스 브링커 등의 내용을 넣어 우리도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한스 브링커같은 소년이 되어야겠다는 인식을 심어주려 했다.3. 국민교육헌장의 비판점1) 국가주의 교육국민교육헌장의 배경은 국가의 경제성장을 목적으로 한 국민의 정신자세의 필요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제성장을 위해 한 인간은 국가를 위해 일을 하고, 심지어는 목숨도 받쳐야 하는 것이다. 결국 ‘민족중흥’, ‘반공’, ‘애국애족’이라는 민족주의적으로 보이는 이 요소들은 권위주의적 국가체제에 대한 동원과 순응을 우선시 하는 박정희 정부의 폭력적인 선택이었다. 이런 부분은 국민교육헌장의 내용뿐만 아니라 현장에서의 교육실행 방법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박정희 정부는 경우에 따라 정부의 중요시책을 국민교육헌장의 이념과 연결했는데, 대표적으로 이후 새마을 운동이 되는 1971년 ‘온 마을 교육지침’이 이후 새마을 교육으로 연결되어 국민교육헌장의 이념을 구현하는 형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1972년 10월 유신 이후에는 유신교육이 행해지면서 국민교육헌장의 이념을 구현하는 것으로 선전되었다. 국민교육헌장의 이념은 곧 유신의 이념이라는 것이다. 즉 국민교육헌장을 통해 학교교육은 당시 집권층들이 정부의 정책을 학교가 받아들여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무비판적 상황으로 당시 군부독재시대의 국민의 모습을 가르치는 공간이 되어버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2) 는 당시 자주 일컬어지던 말에 들어맞는 인물들이었다. 이런 인물들은 사실 하나 하나 살펴보면 실제로 존재했던 사건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맥락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이승복의 경우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해 무장공비들에게 살해당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 그 말을 했는지의 여부는 사실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박정희 정권이 국민교육헌장을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기반 중 하나인 ‘반공’을 강조하기 위해 인물을 이용했다는 것과, 이승복 외에도 국가의 입맛에 맞는 여러 명의 인물들을 데려와 교육을 했다는 것은 교육이 정치에 도구로써 전략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Ⅲ. 결론국민교육헌장은 박정희 독재시기에 학교교육을 도구화 해 국가의 정치이념을 학생과 국민에게 강압적으로 주입시키려는 시도였다. 특히 당시 일제강점기, 6.25 등의 역사적 사건으로 형성된 정서 중 하나인 ‘민족’이라는 개념과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반공’, ‘경제성장’을 결합해 교묘히 국가주의적인 교육을 진행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교육헌장의 등장 이전과 이후를 보면 사람들은 그 절차적 문제에 대한 항의를 하지 그 내용에 대한 반문은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헌장 속 내포된 그 부당한 내용이 대중들에게 실체를 들어 낸 것은 1978년 송기숙 등 전남대학교 교수 11명이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한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을 통해서였다. 그 발표에서는 국민교육헌장이 독재체제를 합리화하고 비민주적인 교육정책의 모순을 담고 있다며 비판을 했다. 이 사건이후 국민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국가정치에 교육을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국민교육헌장은 1994년에 폐지되었다. 그리고 초중고의 교과서에서도 그 내용이 사라지며 학교교육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필자는 국민교육헌장의 배경, 내용, 비판점을 살펴보면서 과연 당시 국민교육헌장은 얼마나 효과를 거두었는지 궁금해졌다. 국민교육헌장 교육은 국어, 사회, 반공도덕, 국사 등의 다양한 과목에서 다뤄졌고, 교사는 국민교육헌한다.
    인문/어학| 2022.11.10| 7페이지| 3,000원| 조회(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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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교육철학사 서평
    교육철학사 서평
    학교, 사회, 그리고 권력나에게 푸코라고 하면 먼저 그 이름만으로 소름이 돋는다. 푸코가 쓴 『감시와 처벌』을 이해해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완독을 하는데 만 한 달이 넘게 걸렸기 때문이다. 더불어 푸코의 판옵티콘과 벤담의 판옵티콘이 다르다는 것을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됨으로써 ‘푸코’는 중요하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저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코, 감옥에 가다’라는 책을 고른 이유는 내 일상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푸코의 시각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푸코’라는 이름을 들으면 소름이 돋는 건 아마 그의 독특하고 날카로운 시각들이 신선하고 조금은 무섭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번에 책 속 중요 키워드를 뽑아보기로 했다. 초판 머리말에서 저자가 이야기 했듯이 푸코의 사상은 크게 인식론적 연구에 집중하던 1기, 언어학을 연구하는 2기, 훈육과 규율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하는 3기로 나눌 수 있고, 이 모든 내용이 책 속에 담겨있다. 따라서 전체 내용을 꼼꼼히 읽다가는 문장에 내 자신이 걸려 넘어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키워드를 학교, 사회, 권력을 뽑아서 이를 중심으로 읽으려 노력했다.우선 나는 광식이의 학교모습, 광태의 과거 모습을 통해 ‘학교’라는 곳의 실체를 파악해보려 했다. 사실 나는 처음 책을 읽으면서 푸코의 『감시와 처벌』의 충격적인 첫 장면과 달리, 광식이의 모습은 영락없는 고등학교 때의 내 모습이라 생각했다. ‘절대 튀지 말자, 조용히 묻어가자’라는 생각과 학교 방침, 교칙 등에 묶어있는 학생의 모습은 내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것을 책을 통해 다시 살펴보았더니 우리의 내면에서 스스로 단속하는 무언가가 존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잘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주는 ‘시험’이라는 시스템은 사람들을 서열화, 등급화 해 규율 속 권력에 학생을 단속하는 규범화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리고 학교에서 정해준 시간표를 따라 하루에 8시간 이상 학교에 지내면서 눈치 채지 못했던 규율의 존재성은 마치 한 사람을 어떤 틀에 가둬놓은 것 같았다. 내 학생시절의 모습이 광식이의 학교모습에서도 비슷하게 보이는 이유는 『감시와 처벌』 속 푸코가 이야기하는 권력 때문이다. 푸코는 책을 통해 ‘권력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행사되는 것이며, 전략이자 전투이다.’, ‘권력과 지식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 창출되는 것이다.’ ‘권력은 순종적인 신체를 생산한다.’ 이 세 가지를 주장한다. 학교라는 곳은 학생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푸코의 시각에서 학교는 학생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시험을 통해 점수를 내 사람들을 서열화 시키는 공간이다. 또한 학생들은 권력의 포획물이 되어 권력의 시스템 속에 포함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이런 시스템을 보면 이제껏 만났던 선생님들 중 『감시와 처벌』을 읽으셨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강력한 상벌제도와 판옵티콘적 전략을 통해 반항적인 아이들을 유순하고 착한 아이들로 만들었던 모습은 푸코가 말한 감시의 내면화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시스템 밖을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학생들의 사소한 행동이나 개인적인 언행에도 미시적인 처벌을 가함으로써 학생 스스로를 감시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내면적 감시를 통해 학교가 원하는 바람직하고 모범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단순히 학생을 가르치는 곳인 줄로만 알았던 학교는 푸코의 시각으로 하나씩 살펴보게 되면 학생을 하나의 ‘사람’이 아닌 ‘권력의 순종적인 신체’로 판단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작은 사회라고 불리는 학교에서도 권력이 원하는 감시의 내면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사회는 얼마나 더 많은 권력의 흔적이 남아있는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푸코의 판옵티콘을 한 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앞서 나는 벤담의 판옵티콘과 푸코의 판옵티콘을 구별하지 못했다고 이야기 했다. 책에서도 등장하는 제레미 벤담은 ‘최대다수 최대행복’을 이야기하는 공리주의의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판옵티콘이라고 불리는 중앙 감시탑이 주변의 범죄자를 감시하는 효율적인 감시망을 구상했다. 벤담의 판옵티콘이 감옥의 체제를 새롭에 구상했다면 푸코의 판옵티콘은 사회 전체적으로 확장을 시킨 개념이다. 권력의 감시 대상이 누구나 될 수 있고, 소수가 다수를 감시 하는 양상을 띤다는 것이다. 책에서도 광식이는 코엑스의 CCTV를 이야기 하면서‘좀 더 큰 감옥에 재수감되었을 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런 양상은 『1984』의 빅브라더의 존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 계속해서 우리를 보고 있다는 사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없고 때로는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광식이가 지하로 잡혀 들어갔을 때 그들의 루틴에 따르지 않고 몰래 빠져나온 것을 감시자가 CCTV로 확인한 것처럼 말이다.학교뿐만 아니라 사회까지, 인간은 항상 권력에 굴복해야하는 존재인가. 푸코가 하는 말을 보면서 나는 권력과 규범화 등 인간은 계속 해서 감시당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다수가 소수를 역으로 감시할 수는 없는 것인가라는 의문 역시 들었다. 그러던 중 문득 하나의 사건이 떠올랐다. 제작년에 있었던 ‘촛불시위’였다. 2016년 10월 29일, 광화문 광장에는 촛불을 들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일명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라고 불리는 사건이 JTBC를 통해 밝혀지면서 국민들은 ‘비선실세’의 존재에 대해 반발한 것이다. 그리고 2017년까지 총 23차의 평화적 시위를 통해 대통령 탄핵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1학년이었던 나에게 지하철 경복궁역에서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 그들을 막기 위해 경복궁역 출구를 봉쇄하는 경찰들의 모습 등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촛불, 핸드폰 라이트 등이 광화문 광장을 메우고, 뉴스가 전하지 못하는 모습들은 페이스북, 유튜브 등으로 생중계되었다. 또한 언론은 매일 관련된 기사를 통해 권력의 내면 속에 있었던 추악한 모습을 폭로하고 대중은 이에 분노하며 무능했던 지도자를 권력 밖으로 쫓아냈다. 이런 촛불시위의 일련의 과정은 푸코가 이야기한 권력의 구조와 감시의 내면화에서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제 작년 촛불시위의 시작과 그 흐름은 판옵티콘의 구조가 사회 곳곳에 적용되며, 권력은 은밀하게 감춰져 있고, 규율권력에 의해 순종적 신체를 형성한다는 ‘감시사회’의 흐름과 맞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을 토마스 매틴슨은 ‘시놉티콘’이라고 부르는데, 일방적인 감시체제가 아닌 권력이 도구로 이용했던 전자 판옵티콘을 다수의 대중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티슨은 시놉티콘을 “일반적으로는 현대의 대중매체, 특별하게는 텔레비전을 이용해 대중의 의식을 방향 짓거나 통제하고 규율하는 상황”으로 정의한다. 물론 매티슨의 시놉티콘에서는 시놉티콘의 어떤 논리가 권력효과로 이어지는지의 체제가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이야기를 조합해 구조를 만들면 시청자는 방송, 여론, 시민운동 등을 감시매개로 삼아 정치인, 기업인, 특정조직, 셀러브리티 등을 감시해 권력을 견제하고, 범죄를 예방한다는 모습이 된다.권력이 감시도구로 이용한 것을 역으로 대중이 권력을 감시하기 위해 이용한다.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이라면 매티슨이 제시한 시놉티콘을 보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언론은 권력의 내부 비리를 폭로하고, 시민단체는 권력의 정보공개 및 권리를 주장하며, 디지털매체는 익명성을 통해 권력의 폐단을 알리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푸코는 시놉티콘의 존재성을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
    독후감/창작| 2022.11.10| 3페이지| 2,500원| 조회(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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