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박민규

목차

없음

본문내용

무엇이든 집어넣을 수 있는 냉장고가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넣게 될까? 세상에, 냉장고의 전생이라니, 냉장고의 인격이라니. 내 주위에 어떤 사물이 ‘인격(人格)’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의자가 가장 그럴듯했다. 조금 더 생각해본다면 옷걸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시끄럽기로는 세탁기 역시 냉장고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냉장고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냉장의 세계는 ‘어둡고 은밀하고 서늘’했으나, 아늑하고 신비로운 구석이 있었다. 마치 어린 탐정이 친구들을 이끌고 들어간 오래된 성의 지하실 같은 곳 말이다. 19세기 온전한 모습의 냉장고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기나긴 투쟁의 역사를 거쳐 왔으며, 그렇게 탄생한 냉장고는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어놓는다. 이러한 사명감과 긍지 때문인지 냉장의 세계는 숭고하게까지 비춰진다. 그리고 냉장고는 이런 냉장고를 하찮은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획득하게 된다.
다시 냉장고의 용도로 돌아가 보자. 냉장고의 목적은 귀한 것들을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한 데 있다. 그렇게 본다면 냉장고에 들어가는 것들은 아주 소중하거나 부패하기 쉬운 것들이어야 한다. 부패를 막고자 고군분투했던 과거와 비교한다면 냉장의 시대란 얼마나 황홀한지.

참고자료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