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시대의 폭력, 정치, 삶에 대한 치열한 사유를 담은 책. 조르조 아감벤의『호모 사케르』3부작의 첫번째 권인『호모 사케르 1: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하이데거와 벤야민, 슈미트 사이의 엇갈림을 매개하고 그들 사이의 공백을 메우면서 포스트모던 이후 우리 시대의...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법은 보호의 장치라는 인식이 강했다. 법은 권력을 제한하고 개인을 지키는 최소한의 울타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법이 폭력적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호모 사케르는 이 믿음을 근본에서부터 흔든다. 이 책에서 법은 보호와 배제의 경계가 아니라, 배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로 등장한다. 읽는 내내 법의 바깥이 아니라 법의 한가운데에서 벌어지는 폭력이라는 개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감벤이 제시하는 핵심 개념은 살아 있으나 죽여도 되는 존재다.
1789년 천부인권이 선언된 후로 어언 200년, 그 사이 신성한 생명과 인권은 자명한 보편원리이자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동시에, 나치의 ‘절멸작전’부터 오늘날 도처에 만연한 난민 사태와 이미 익숙해져버린 테러 사건들 사이에서 ‘인권’에의 옹호는 언제나 무력했고 무력하다. 이에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란 개념을 도입하여 근대 사회에서 주권의 구조는 항상 신성하되 죽일 수 있는 생명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인간의 존엄이라는 개념을 재검토하고 이를 통해 예외 상태가 규칙이 되어버린 현대의 문제를 직시한다.
1. 주권과 생명
아감벤은 근대(성)의 가장 큰 특징은 생명 자체가 정치화된다는 점이라는 푸코의 생명정치론을 계승하면서도, 주권의 계보를 검토함으로써 단순한 생명(삶)을 의미하는 ‘조에’의 ‘비오스’(폴리스에서의 삶/정치적 삶)화란 근대에 특유하다기보다 “벌거벗은 생명을 정치 영역에 포섭하는 것이야말로 주권 권력 본래의 핵심”(42)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