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윤동주의 죽음과 유고에 얽힌 미스터리!유고 추적과 소녀의 기록을 통해 윤동주의 삶과 문학, 그리고 죽음을 새롭게 살펴보는 소설 『동주』.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가 구효서가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더해 윤동주의 죽음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다. 민족저항시인 윤동주가...
북극의 이누이트족 언어에는 형태와 질감에 따라 눈을 구분하는 단어가 수백 개나 된다고 한다. 반면 우리는 눈과 밀접하게 연관된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말에서 눈을 의미하는 단어는 싸락눈, 함박눈 등 그 수가 제한적이다. 대신 사계절이라는 기후적 특성으로 인해 색을 표현하는 색채어는 매우 발달했다. 노란 빛을 표현하는 말만 해도 노랗다, 샛노랗다, 노릇노릇하다, 누르스름하다, 노르스름하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인간은 생각한 것을 바탕으로 언어를 창조하고, 또 창조한 언어를 통해 또 다른 생각을 한다. 이렇게 언어는 인간의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에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 집단뿐만 아니라 시대와 사회의 모습까지도 읽어낼 수 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제로 점령한 후 가장 먼저 언어와 정신을 말살하고자 소위 말하는 '민족말살정책' 을 펼친 것도 이 때문이다. 언어가 곧 민족적 결합의 근간임을 간파한 것이다.
하루 종일 말을 하다 집에 온다. 말하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친다. 어떤 날은 재미있고, 어떤 날은 피곤하기만 하고, 어떤 날은 말을 하기 싫다. 그러다 어떤 날은 내가 말을 하는 건지, 말이 그냥 내 입을 빌려서 나오는지 모르게 술술 나올 때가 있다. 머릿속에서 생각해서, 한번 걸러 나온 말이 아니라 그냥 허공에 말을 쏟아내는 기분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 모를 때도 가끔 있다. 자의식의 과잉이다. 내가 너희보단 잘났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쉽게 해도 될 말을 어려운 단어만 쏙쏙 선택해서 제대로 된 문장이 아니라 단어들의 나열만 한다. 그리곤 곧 허망해진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지......? 우습다. 그렇게 이 땅에서 내 나라 말, 내 나라 언어를 쓰고, 그것을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이 말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다만 영어권 화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영어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소심한 안도는 몇 번 한 적 있다. 이따금 관광으로 일본을 가면서 그 매력적인 톤에 끌려 일본어를 배우겠다고 설칠 때에도 이 주 정도면 히라가나, 가나카타를 외우다 널브러진다. 아,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