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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중국어 판단 동사 是의 발생과 발전
    중국어 판단 동사 是의 발생과 발전
    계사의 概念계사란 判斷文에서 명사 술어를 주어에 연결하는 단어이다. 漢語에 대해 말하자면, 진정한 계사는 ‘是’자 하나뿐이다. 하지만, 是자가 모두 계사인 것은 아니다. ① 주어가 없는 문장은 계사가 아니다. 是我忘了,请你原谅。② 술어가 명사 성질이 아닐 경우 술어 앞에 있는 是자 역시 계사가 아니다. 他实在是很爱你。계사는 논리학에서 온 개념이다. 계사의 임무는 주어와 술어를 연계하는 것이며,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 [계사(繫辭)] 네이버 고려대 중한사전1. 계사(繫辭). 연사(連辭). 코퓰러(copula). [명제(命題)의 주사(主辭)와 빈사(賓辭)를 연결하여 긍정이나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雪是白的’ 중의 ‘是’, ‘鲸鱼不是鱼’ 중의 ‘不是’ 같은 것]2.명사 언어 계사. 지정사. 연결 동사. [‘是’를 이렇게 부르는 학자도 있음]계사의 발생과 발전상고한어 판단구의 구성상고한어에서는 계사의 도움 없이도 판단구를 구성할 수 있다. 판단구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是故里長者,里之仁人也。(<墨子, 尚同上>)따라서 이장이라는 자는 마을의 어진 시람이다. 然則今之鮑函車匠皆君子也。(同上,<非儒下>) 그렇다면 오늘날 가죽을 만드는 장인, 갑옷을 만드는 장인, 수레를 만드는 장인, 배를 만드는 장인은 모두 장인이다. 百里奚,虞人也。 (<孟子· 萬章上>) 백리해는 우나라 사람이다. 南冥者,天池也。 齊諧者,志怪者也。 (<莊子·逍遥游>) 남쪽 바다는 천지이다. 제해는 기이한 일을 기록하는 자이다. 此予宅也。 (同上,<則陽>)이건 내 집이다.彼後王者,天下之君也。 (<荀子 . 非相>)그다음 왕은 천하의 군주이다.禮者,治辨之極也,强國之本也,威行之首也,功名之總也。 (同 上,<議兵>)예는 국가를 다스리고 명분을 변별하는 원리요, 나라를 강성하게 하는 근본이요, 권위를 행하는 방법이요, 공명을 세우는 강령이다.
    인문/어학| 2023.05.29| 14페이지| 3,000원| 조회(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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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신 창작과 근대성
    노신 창작의 근대성112102027박 장 욱근대성이란 무엇인가?역사적으로 ‘근대’는 르네상스 이래로 현대의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현대시대"의 역사를 가리킨다. ‘근대성'이란 용어는 유럽의 문화와 철학과는 뗄 수 없는 인류의 문명, 개념, 시대를 동시에 지칭한다. 이 개념은, 경계가 모호하다 할지라도, 어쨌거나 현대시대의 유럽을 가리키며, 르네상스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지역의 문명과 역사를 가리킨다.근대성은 우선 유럽에서 16세기에 프로테스탄트의 발흥, 실험과학의 도래, 대발견 등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이 개념은 계몽주의 세기에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이 개념으로부터 나온 합리주의, 실증주의, 낙관주의(진보에 대한 믿음)등은 철학적 도식 위에서 보면, 가장 의미 있는 특성들이다. 유럽에서 근대성의 개념이 뿌리를 내렸다는 것은 물론 유럽에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명의 현상이란 범위에서, 근대성은 실천적인 것만큼 이론적인 측면에서 4가지 커다란 혁명에 관련이 있다.첫째로, '근대' 인간이 자신의 자치(자율)를 획득했다는 것, 그리고 세계에 대한 기술적 지배의 의지를 가진 것, 두 가지가 중요하다. 이러한 합리주의적 기획은 이 두 가지 방식을 데카르트(Descartes)의 철학에 뿌리박고 있다.둘째로 근대의 인간은 세계의 불가사의한 것을 제거하고, 또한 그 세계를 마법으로부터 풀려고 한다. 실증주의가 그 표본이다. 그리고 인간은 과거에 신들이 가지고 있던 성질들, 즉 전지전능한 권능을 차지하려고 애쓴다. 이러한 주제에 관해서는 베버(Max Weber) 와 뒤르켕(Emile Durkeim)이 다루고 있다.세 번째로, 근대성의 특징은 제도의 분화만큼이나 개인과 집단이 여러 존재차원의 분해에 있다. 사람들이 이러한 것을 전통 공동체에서 여러 차원의 배열과 반대로 사회의 ‘세속화’라 부른다.결국, 근대성은 계몽주의에 의해 발전된 서구 인문주의의 이상에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진보를 믿고 또한 18세기 철학자들에 의해 거의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지는 낙관주의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시사하고, 그리고 매우 다양한 사조에 속하는 철학자들에 의해 활발한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말하자면 프랑크푸르트학파[Max Horkheimer, Walter Benjamin, Herbert Marcuse, Jurgen Habermas]등이 있다.중국의 근대성아편전쟁과 청일전쟁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겪은 중국 지식인들은 ‘세계의 중심이었던 중국이 왜 이런 치욕을 당해야만 할까’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생각에 중국은, 기술이 부족하고, 전통문화(사농공상의 사상, 유교, 민간신앙, 풍수지리) 등 구습에 얽매여 발전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봉건시대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현대화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된다.초기의 지식인들은 ‘中體西用’의 입장을 취했다. 서구의 과학기술이 발달하기는 했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중국의 것이 훨씬 우월하다는 확신을 가졌기에 서구의 과학기술만 받아들이고 중국의 國粹인 유교 등 전통사상을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청일전쟁을 겪은 후 중체서용의 허구성을 뼈저리게 깨달은 중국의 지식인들은 정치체제의 개혁에 눈을 돌린다. 서구의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면 중국의 근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 다소 단순한 믿음이었다. 하지만 정치체제의 변화만으로 바뀌는 것은 없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중국의 인민들의 사상은 여전히 봉건시대의 그것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노신의 사상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다. 노신은 신학문을 배워 쓰러져가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스무 살인 1900년에 일본에 유학길을 오른다. 당시 우매한 중국 한의술 때문에 부친을 잃었다고 생각한 노신은 서양의학을 공부하여 의학구국을 생각했다. 그러나 세균학 시간에 우연히 본 러일전쟁 시사영화에서 한 중국인이 러시아를 위한 스파이 혐의로 일본군에 의해 총살되는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는 중국 군중을 본 뒤, 그는 민중의 육체적 질병을 고치는 일보다 민족적 자각을 시키는 일, 즉 정신적 질병을 고치는 것이 급선무라 여기고 의학을 중단하고 문학으로 전향했다.노신 작품의 근대성노신이 , , 를 비롯한 숱한 작품에서 화두로 삼았던 것은 중국인민의 각성, 즉 중국국민성의 근대화였다. 특히 은 '아Q'라는 중국의 전형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신해혁명을 전후하여 봉건사회의 몰락과정에서 보여 준 중국인의 나약성 · 비겁함 · 비굴함 등 중국인의 약점을 고발하여 민족의 각성을 촉구했다. 주인공의 '정신승리법'은 중국인들의 정신적 자학을 뜻하는 말로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반봉건·반제의 기치(旗幟) 아래 전개된 5·4운동의 기수가 되고, 중국혁명의 서막인 문학혁명을 주도하며 중국민중의 길고 긴 잠을 깨운 그는 문학으로 중국인의 우매성을 해부했다. 그는 아Q라는 인물을 통해 중화주의라는 자기만족에 빠져 자신들의 처지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세상의 흐름에 무지한 중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더 나아가 이념이나 역사의 전개 과정을 고민하지 않은 채 부화뇌동하다 서구 열강의 노리개가 되고 결국 내분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중국의 모습을 개탄한다.
    인문/어학| 2011.08.16| 3페이지| 3,000원| 조회(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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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맹자와 순자의 교육사상 비교
    맹자와 순자의 교육사상 비교112102027박 장 욱1. 孟子와 荀子의 生涯(1) 孟子이름은 맹가(孟軻)이다. 자는 자여(子輿) 또는 자거(子車)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지금의 산둥성[山東省] 쩌우청시[鄒城市]에 있었던 추(鄒)에서 출생하였다. 공자의 유교사상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생에게서 배웠다. 어릴 때 현모(賢母)의 손에서 자라났으며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유명한 고사이다.제후가 유능한 인재들을 찾는 전국시대에 배출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으로서 맹자도 BC 320년경부터 약 15년 동안 각국을 유세하고 돌아다녔으나, 자기의 주장이 채택되지 않자 고향에 은거하였다. 제후가 찾는 것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나 외교적 책모(策謀)였으나, 맹자가 내세우는 것은 도덕정치인 왕도(王道)였으며, 따라서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생각되었다. 만년에는 제자교육에 전념하였고, 저술도 하였다.《孟子》 7편은 맹자의 말을 모은 후세의 편찬물이지만, 내용은 맹자의 사상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주자학(朱子學) 이후로 《맹자》는 《논어》 《대학》 《중용》과 더불어 '사서(四書)'의 하나로서 유교의 주요한 경전이 되었다. 맹자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이며, 또 전국시대의 양상을 전하는 흥미있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문장은 변론조이며, 예부터 명문으로 여겨진다.(2) 荀子순자(荀子: 기원전 298?~238?)는 고대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03~221) 말기의 유가 사상가이자 학자이다. 이름은 황(況), 손황(孫況)이라고도 불렀다. 경칭으로 순경(荀卿) 또는 손경자(孫卿子)로도 불린다. 50세 때 처음으로 제나라에서 삼도좨주라는 벼슬을 했으나, 모함을 받고 물러나 초나라로 가서 여생을 보냈다.공자의 사상 중 예(禮)를 강조하여 발전시켰는데,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반대하여, 악한 본성을 예(禮)를 통해 변화시켜 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였다. 그의 성악설은 자신의 저서 《荀子》의 〈성악(性惡)〉편에 나타난 화성기위(化性起僞: 본성을 변화시켜 인위를 일으킨다)라는 명제로 대표된다. 즉, 사람의 본성은 악하여, 날 때부터 이익을 구하고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면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예의를 배우고 정신을 수련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순자는 한나라에서는 정통적인 유가의 인물로 여겨졌으나, 송나라 시대 성리학의 학풍 속에서 성악설이 비난받으면서부터 그 이래로 오랫동안 유가의 이단자로 간주되어 왔다.2. 天人觀공자와 달리 맹자는 天에 대한 형이상학적 이론을 전개했고, 이 점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맹자의 天은 인격신이 아니라 천지의 理法으로서의 天이다. 성리학에서의 理는 맹자의 이런 생각을 잇고 있다. “만장: 요가 천하를 순에게 내준 일이 있습니까? 맹자: 아니다, 천자는 천하를 다른 사람에게 내줄 수 없다. 만장: 그렇다면 순이 천하를 차지한 것은 누가 내준 것입니까? 맹자: 하늘이 내준 것이다.”(만장상 5)서구 형이상학 전통에서의 영혼과 마찬가지로, 맹자에게서도 인간을 하늘에 이어주는 것은 性이다. 心은 性과 情(이성과 감정)으로 구성되며, 성은 인간이 하늘과 통할 수 있는 근거이다. 인간이 성을 추구하면, 즉 마음을 다하면[盡心] 하늘은 응한다. “군자가 功業을 창시하여 전통을 수립하면 이어나갈 수는 있지만, 성공하느냐의 여부는 하늘에 달려 있다. 그대가 그런 경우에 어찌 하는가? 열심히 선한 행동을 할 뿐이다.”(양혜왕하 14) “자신의 마음을 다한 사람은 자신의 본성을 안다. 자신의 본성을 알면 하늘의 뜻을 알 것이다. 자신의 양심을 지니고 본성을 함양하면, 하늘을 섬기게 된다.”(진심상 1)이에 비해 순자는 天을 人과 구분하고자 했다.(‘天人之分’) 이것은 ‘天地不仁’과 모종의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늘은 만물을 생성하기는 하지만 만물을 분별하지는 못하며, 땅은 사람들을 그 위에 살게 하지는 하지만 사람들을 다스리지는 못한다.”(禮論) 나아가 하늘=자연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으며, “요임금 때문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걸왕 때문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天論) 때문에 순자는 “하늘과 땅은 군자를 낳았고, 군자는 하늘과 땅을 다스린다”(王制)고 말한다. 나아가 하늘을 잘 알고서 그것을 이용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이 점에서 순자는 근대적 자연관을 일찍이 확보했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유가의 기본 입장에서 벗어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겠다.3. 人間觀맹자는 동물과는 구별되는 인의예지의 도덕성을 인간 고유의 본성으로 보아 인간이 도덕적 존재임을 천명하였다. 맹자는 인간이 갖추고 있는 하늘의 목적을 지닌 법칙성으로 생각하고 이를 인간의 본성이라 하여 인간의 성(性)은 선(善)이라고 하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맹자는 殷·周 이후의 전통적인 유산인 인간의 지각을 초월한 우주의 참된 實在者에 대한 숭경의 정조(情操)로 공자가 발견했던 인간의 실천적 계기를 종교적으로 기초를 닦았던 것이다.맹자는 인간의 성은 선이라고 하는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의 마음에는 인(仁)·의(義)·예(禮)·지(智) 등 4덕(四德)의 4단(事端:싹)이 구비되어 있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인(仁)은 '측은(惻隱)의 마음' 혹은 '남의 어려운 처지를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마음'이며, 의(義)는 불의불선(不義不善)을 부끄럽게 알고 증오하는 '수오(羞惡)의 마음', 예(禮)는 사람에게 양보하는 '사양의 마음', 그리고 지(智)는 선악시비를 판단하는 '시비(是非)의 마음'으로 설명되고 있다.이에 비하여 순자는 인간의 본성을 동물의 본능과 확연히 구별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일신을 존속시키려는 욕구를 본능적으로 가지고 잇는데, 이러한 본능만을 쫓아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면 자연히 서로 다투고 포악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보았다.순자의 말을 통하여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순자는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니, 그것이 선하다는 것은 인위적 노력에 의한 것이다. 이제 인간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는데, 그것을 따르기 때문에 싸움이 생기고 사양함이 없어졌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남을 질투하고 미워함이 있어, 그 본성을 따르는 까닭에 남을 해치는 일이 생기고 충성과 신의가 없어지는 것이다. 나면서부터 아름다운 소리와 색을 좋아하는 이목의 욕망이 있어, 그 본성을 따름으로 무절제함이 생기고 예의와 문리가 없게 된다. ……이렇게 보아 인간의 본성은 악함이 분명하다. 그 선은 위(僞)의 결과다.” 라고 하여 인간을 악하다고 보았다.이러한 순자의 생각은 서양의 토마스 홉스와 같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순자는 맹자의 성선설로는 평화로운 사회질서를 만들어 갈 수 없다고 보았다. 개인이나 집단들이 자신의 욕구를 무절제하게 추구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합의 장치인 ‘禮’를 통하여 이러한 혼란을 질서로 바꾸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순자의 성악설은 ‘禮’의 권위를 부여하는 역할에서 그 참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4. 禮觀순자의 禮는 유가 외에도 묵가, 법가, 도가의 사상들이 섞여 있다. 이 때문에 순학을 잡가로 분류하여 비하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순자의 사상은 여러 학파들이 비판적으로 종합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순자는 예를 사회생활을 하는 표준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인간은 예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고, 일에 예가 없으면 이루어짐이 없고, 국가도 예가 없으면 평안이 없다.”라고 하여 개인의 생존원리를 넘어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생각하였다. 맹자와 비교해보면 맹자가 義라고 하는 도덕의식을 강조하였다면, 순자는 禮라고 하는 도덕규범을 강조한 것이다. 공자의 인은 이 두 측면을 다 포함하는 개념이었으나 자하와 증자로 학파가 나눠지고 마침내 맹자와 순자에 와서 서로 분리되게 되었다.물론 순자 역시 도덕론자였다. 다만 순자는 도덕의식이 사회규범이나 사회관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인식한 것이다. 이러한 논지가 바로 그의 예 관념이며, 순자는 이러한 예를 도덕행위의 최고 표준으로 삼은 셈이다. 이는 그가 살았던 시대가 전국시대 말기로 진시황이 등장하기 바로 이전이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의 예는 법가의 법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법가는 인간의 교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반면 순자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법치를 부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예로 통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왕도정치만을 주창한 맹자보다 융통성이 있으면서 법의 적용이 언제나 선하지는 않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현실과 가장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인문/어학| 2011.08.16| 5페이지| 3,000원| 조회(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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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공학] 공부잘하는 학생의 특징
    Ⅰ. 들어가며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예를 찾아보려고 하다가 주위에 마땅한 사례를 찾기도 힘들고, 나 자신의 사례를 자세하게 분석하는 것이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라는 생각에 나의 경우를 연구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조금은 건방지고 자기 자랑 같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내 자신이 엘리트코스를 밟은 인재라고 생각하고, 공부라고 하면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할 자신이 있다고 자부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우등상을 꾸준하게 타왔고 중학교 때에도 전체에서 10위권 안에는 반드시 들었으며 고등학교는 전국에서 알아준다는 공주사대부고를 졸업하고 마침내 고려대를 입학하였으니 그 정도의 자부심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나를 보고 그렇게 공부를 잘하면 왜 서울대 법대를 가거나 좋은 직장을 잡지 못하고 공주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느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이 부럽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시험을 보더라고, 누구와 경쟁하더라도 다른 것은 몰라도 공부하고 하면 자신이 있다. 나의 이러한 자신감은 지금까지의 나의 공부방식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공부를 잘했던 나의 학창시절의 학습 상의 특징에 대해 돌이켜 보고 분석해보고자 한다.Ⅱ. 공부 잘 하는 학생의 특징1. 수업에 집중한다.내가 과외를 하거나 학원에서 강사로 학생을 가르칠 때 항상 하는 말이 이것이다. 이것이야 말고 내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책상에 앉아있던 양에 비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비결 아닌 비결이다. 난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결석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도 다른 짓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에 집중하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많은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는 것을 볼수 있다. 선생님이 잘 가르치지 못한다며 차라리 다른 과목을 공부하거나 독학을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의 교수 능력과 상관없이 모든 수업에 집중했다. 방과 후에 나와 함께 놀던 친구들이 시험을 보면 나를 시기했었다. 왜 같이 놀았는데 나만 시험 점수가 높으냐고. 하지만 나는 그들과 분명히 달랐다. 수업을 들은 것이다.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혼자 공부하지 않고 학교를 다닌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바로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 더 학습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2. 암기하기보단 이해하려 한다.나의 학습의 특징 중 하나는 암기하기 보단 이해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수업이 있다면 그 수업 시간 내에 반드시 그것을 알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질문을 많이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정말 조용한 학생이었고 교실에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다. 나는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그 즉석에서 나만의 논리를 만들어서라도 이해의 틀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머리 속에 짜임새 있게 넣는 것이다. 그 논리가 틀리다면 나중에 틀린 부분만 수정하면 된다. 이 과정 역시 수업시간 내에 이루어졌다. 현재 내가 듣고 있는 교육학 수업에도 이 과정은 적용되고 있다. 교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내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나의 발목을 잡은 과목은 바로 수학이었다. 중학교 과정에서는 함수가 나의 최대의 고비였다. 잘나가던 수학성적이 함수부분부터 미나 양으로 떨어졌다. 아무리 들어도 못 알아듣는 말투성이였다. 몇 달째의 방황 끝에 나를 구원해준 것은 나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며칠동안 나를 붙잡고 연필로 직접 그래프를 그려주시며 나를 가르치셨고 나는 드디어 함수의 벽을 넘을 수 있었다.이후 고등학교 수학과 물리에서도 나의 처절한 투쟁은 계속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수학 성적이 가, 양을 오갔고, 물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몇 달에 걸쳐 문제집을 두 권씩 떼어가며 한 결과 수학과 과학은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 되었다. 무슨 과목이든지간에 모르는 것이 생기면 몇 시간이든지간에 반드시 이해하고야 마는 집념과 끈기 역시 필요한 것 같다.3. 이미지로 기억한다.나만의 학습법 또는 기억법은 이미지로 기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험문제 중에 어떤 구문이 나오면, 나는 그 구문이 어떤 책의 왼쪽 페이지 아래에서 두세 번째 줄에 쓰여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또는 그 말을 했을 당시의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선생님이 당시에 했던 말들을 떠올린다. ‘어느 비 오는 날 무슨 말씀을 하시면서 이 말을 함께 하셨지.’ 어떠한 사실과 관련된 이미지를 연관시켜 기억함으로써 좀 더 효과적으로 기억할 수 있었고, 그래서 시험 볼 때마다 눈앞에 이미지가 선하게 떠오르곤 했다. 시험성적 향상에도 도움이 되었다. 나는 요즘에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항상 무작정 외우지 말고, 책을 통째로 눈으로 외우라고 당부한다. 그렇지만 이 방법이 그 학생들에게 효과가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 방법은 모두에게 잘 통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 자신만의 훈련을 통해서 익힌 방법이라고 생각한다.4.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한다.중학교 시절,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서 놀 때 그 친구는 학교에 남아 늦게까지 공부하고 새벽 일찍 나와서 공부하곤 했다. 시험 때는 코피가 터질 정도로 했다. 하지만 성적은 나보다 훨씬 뒤떨어졌다. 물론 기본 배경지식이 차이가 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 차이가 집중력의 차이에서 연유했다고 생각한다. 그 친구는 책상에 앉아있긴 했지만 온 정신을 집중하여 책을 파고 든 시간은 부족했던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에도 절대 12시를 넘어서까지 공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보통의 친구들에 비해 공부양이 부족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위권을 유지 했다는 사실은 11시까지의 자습시간에 누구보다도 집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졸업 후에 고등학교 때 동창들의 말을 들어보면, 내가 항상 자습시간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자리를 잡으면 주위도 안돌아보고 3~4시간을 꼼짝 않고 공부했었고, 그런 나를 보고 독한 놈이라고 생각했었단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집중력은 최근에는 발휘한 적이 없다. 그만큼 그 당시가 치열했었나보다. 내년 임용고사를 공부할 때 다시 이 저력이 나타나주기를 바랄뿐이다.5. 단어의 개념을 이해한다.단어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수단은 한자, 그리고 영어이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언어, 특히 학문언어는 한자어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최근에는 한글만 쓰기 운동을 벌이고 있기는 하지만 한글의 뜻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한자가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학교 때부터 배우기 시작하던 한자가 나에겐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많은 학생들이 한자가 싫다며 포기하거나 소홀히 했지만, 재밌게 한자를 배워갔고, 점점 한자가 나의 이해력과 암기력을 높이는 수단이 되었다. 무작정 한글로 뜻도 모른 채 외우는 것보단 한자로 뜻을 이해하면 그 효율성은 배가 된다. 나는 한글로 용어가 나와도 항상 그것의 한자를 알아내어 이해했다.예를 들어 중학교 농업시간에 젖소의 젖이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를 비유기라고 배웠다. 보통 학생들은 비유기라는 한글 자체를 외웠지만, 나는 살찔 비(肥), 젖 유(乳), 기간 기(期)라는 한자로 이해했다. 그래서 시험시간에 자신 있게 비유기를 쓸 수 있었다. 재밌는 것은 그 때 옆 친구가 나에게 답을 물어보았고, 나는 답을 직접 말하기는 맘에 걸려서 젖이 살찌는 시기라고 힌트를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내 말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고 한다.영어도 역시 단어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외래어의 경우에 영어가 많은데 한글로 자리 잡은 외래어도 한글 보다는 영어 단어로 외워 두는 게 도움이 많이 된다. 영어는 어느 정도의 단어의 뜻만 알아도 접두사 접미사에 의한 파생어가 많기 때문에 언뜻 보면 어려워 보이는 단어도 잘 보면 그 뜻을 유추할 수가 있다.지금까지 시험을 볼 때 나는 한자와 영어를 사용한 유추법으로 문제를 해결한 적이 아주 많다. 이것이 실전에 강한 나의 비결이다. 모르는 문항이나 난생 처음으로 보는 용어들이 나와도 나는 지금까지 배운 단어들에서 그 뜻을 대충이나마 생각해 낼 수 있다. 설령 뜻은 모르더라고 그 단어가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라도 유추해 낼 수 있다.
    교육학| 2005.08.11| 5페이지| 3,000원| 조회(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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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크로드] 실크로드 이야기를 읽고 평가A좋아요
    들어가며실크로드는 이전부터 전 세계인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중국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저 멀리 유럽을 잇는 이 길을 통해서 수많은 문물들이 오고 갔다. 비단, 차, 그리고 종이와 화약, 그리고 포도주와 보석과 향료 등 인류의 발달에 결정적 역할을 한 문물들이 모두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로 그리고 유럽으로 전해지고 다시 전해져 왔다. 그러나 실크로드는 막연한 동경의 대상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이 책,「실크로드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실크로드는 그렇게 곱기만 한 상상 속의 길이 아니라 대낮의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밤새워 걸어야 하는 길, 갑자기 불어오는 모래 폭풍에 휩싸여 장사짐을 잃어버리고 으레 장사꾼과 행인을 노리는 강도떼들에게 목숨까지 바치는 길, 정략결혼으로 인해 고국과 가족의 품을 떠나 낯선 이국으로 불안한 걸음을 옮기는 길, 요충지를 지키거나 원군으로 파견되는 군대를 따라다니며 몸을 파는 고단한 삶을 꾸려나가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최근 둔황(敦煌)의 석굴에서 수많은 고고학 자료가 발굴 되면서 서서히 그 역사적 실체가 드러나게 됨으로써 우리는 그 시절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이 다루는 약 2백50년의 기간은 실크로드가 가장 번영을 누렸던 때다. 중국사로 보면 양귀비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당나라 현종 때부터 안록산의 난을 거쳐 당(唐)이 망하고 송(宋)이 성립할 때까지의 시기다. 이야기가 끝나는 시점을 10세기 말로 잡은 것은 그때를 전후해서 동서 교역의 주요 교통로가 '땅길' 인 실크로드에서 '바닷길' 로 바뀌었기 때문이다.저자저자인 수잔 휫필드(Susan Whitfield)는 영국 도서관에서 일하는 둔황학자이다. 지은이는 중국 감숙성(甘肅省) 둔황석굴에서 나온 수 만 점의 고문서를 비롯해 실크로드 주변 고대도시와 불교유적에서 발견된 필사본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또한 각기 직업이 다른 10명의 에피소드에는 그 이야기에 잘 녹아 들어가 있는 그 시대의 유물의 스케치 그림이 배열되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른 고고학자들과 저자와의 큰 차이는 실크로드의 역사를 단순한 사실 나열이나 역사적 나열보다는 그 시대를 살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물 한명 한명을 중심으로 아주 세심하게 역사를 복원했다는 데 있다. 이는 자칫 지루하고 재미없어질 수 있는 역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며 그 작업은 아주 훌륭한 결과물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이 책에서 자기의 연구 분야로 인해 얻어진 실크로드 전반에 대한 깊은 지식을 거시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여러 사본에서 발견된 이야기 조각에서 건져 올린 에피소드를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세밀하다 못해, 아주 시시콜콜이 묘사하며 실크로드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교묘히 그려내고 있다.이 책의 특징이 책을 읽으면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하다. 따라서 엄밀한 역사적 사료에 의거한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고 있기는 하지만, 문체나 글의 흐름은 적당히 건조하면서도 또 적당히 비장하고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어 읽기에 어려움이 없다.또 상인 이야기, 기생 이야기, 병사 이야기 등 단편집처럼 구성되어 있어 손가는 대로 읽어도 내용 이해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점이 또한 이 책의 매력이다. 어떤 부분은 아라비안나이트를 읽는 기분이고 어떤 부분은 중국의 한 야사(野史)의 한 장면을 읽는 듯하다. 민족에 따라 그리고 신분에 따라 다양한 생활상과 의식주를 눈앞에 보이듯 자세하게 묘사 하고 있으며 역사적 사건에 얽힌 그들의 운명도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다. 정말로 주인공들의 모습이나 장안이나 오아시스의 모습들, 전쟁의 참혹함과 비장함이 눈앞에 펼쳐질듯이 생동감 있다. 이는 이전의 역사서에서는 보기 힘든 다양한 방면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성과이다.이 책의 다른 특징은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지역에 다른 계층으로 살았던 10 명의 사람들을 각각 주인공으로 삼아 그들의 삶을 전체 실크로드 역사와 접목시키며 서술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은 완전히 분리 된 것도 아니다. 조금씩 연관되어 꼬리를 물고 다른 사람과 연결된다.사마르칸드와 당나라 수도 장안을 오가며 장사하는 낭만적인 상인 나나이반다크, 고선지 장군의 무용담을 후배 병사들에게 이야기해주는 티베트 병사 세그 라톤, 중국에 팔 조랑말 떼를 몰고 다니는 목부(牧夫)였으나 티베트와의 전쟁에 징집됐다가 전사한 위구르인 쿰투그, 중국 우타이산으로 순례여행을 떠나 천신만고 끝에 장안에 도착하는 카슈미르의 승려 춧다, 기생이 되어 군대를 따라 전전하다가 장안에서 생활하던 중 황차오의 난에 휘말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고향 쿠차로 돌아간 금발의 기생 라리슈카, 어린 나이에 불가에 귀의하여 승방 주지로 생을 마감하는 둔황의 비구니 먀오푸, 독실한 불교신자이며 묵묵히 인생의 고통을 감내하는 둔황의 과부 아룽, 정략결혼의 제물이 되어 이역만리 투르크 궁정으로 시집간 중국의 공주, 역법에 조예가 깊고 불심이 돈독해 뭇사람들로부터 칭송을 얻은 둔황의 관리 자이펑다, 둔황석굴을 장식하는 데 평생을 바친 화가 둥바오더 등이 그들이다.중국의 아이러니한때 인류역사 문물의 교류 통로였던 실크로드는 10세기 말 해상 무역의 등장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져 간다. 한때 여러 민족의 각축장이었던 실크로드는 수세기가 지난 지금은 중국의 영토에 대부분 편입되어 당시의 다양한 민족은 거의 사라지고 거의 대부분이 한족으로 바뀌었다. 과거의 찬란했던 역사도 이젠 모래 바람에 깎인 삭막하고 건조한 유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장안(長安), 가욕관(嘉浴關), 둔황, 투루판, 쿠차 등 실크로드가 지나던 대부분이 중국의 영토인 감숙성과 신장(新疆)지역에 있었고 그 유적도 이 지역에 아주 많이 분포되어 있었지만 정작 중국은 이 지역의 발굴과 연구에 소홀했던 것 같다. 오히려 실크로드의 발굴과 연구에 가장 많이 관심을 보이고 힘쓴 사람들은 서양의 고고학자들이었다. 중국인들은 그들의 도굴을 방치했으며 소중한 역사적 유물을 헐값에 팔아넘기기도 했다. 당시의 문명이 가장 발달하였고 유럽의 역사를 바꿀 만큼 문화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발달하였던 곳이 중국이며 역사를 가장 많이 기록했던 것이 바로 중국의 왕조였음을 볼 때 얼마나 아이러니인가.중화(中華)의 허상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알게 된 것은 세계의 중심이라며 자신을 중화(中華)라고 부르던 중국왕조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허약하고 무기력 했는가 이다. 예전에 읽었던 에서도 읽은 적이 있지만 중국은 한시도 북방의 유목민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유목민족에 의해 왕조가 망하기도 하고 그들을 피해 먼 곳으로 수도를 옮기기도 했으며 그들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기도 했다. 그들을 달래기 위해 막대한 양의 재물과 식량을 공물로 바치기도 했으며 그들과 정략결혼으로 안정을 구걸하기도 했다. 이 책에도 정략결혼으로 이국땅에 가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매일매일을 괴로워하는 공주의 이야기가 나온다. 당의 멸망을 앞당긴 안록산의 난 역시 또 다른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고용한 위구르 출신의 장수가 일으킨 것이다. 또 중국은 실크로드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팽창 정책을 폈지만 사실은 본래의 영토와 자신의 왕조유지에도 힘이 벅찼다.
    독후감/창작| 2005.05.22| 4페이지| 3,000원| 조회(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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