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1. 민족문학론의 개념2. 1960년대 민족문학론1)시대의 전반적인 문학적 상황2)순수 .참여 논쟁- 김우종, 김수영, 이어령3)현실참여론 대 정치주의4)제 2기 논쟁-김붕구, 임중빈, 임헌영5)제 3기의 논쟁-김수영과 이어령3. 1970년대 민족문학론1)시대의 전반적인 문학적 상황2)리얼리즘 논쟁- 김현, 구중서, 임헌영, 최일운, 김병걸3) 후반기 자율성논쟁 -김동리, 구중서, 임헌영4. 1980년대 민족문학론1) 시대 전반적인 문학적 상황2) 민중적 민족문학론의 등장3)노동해방문학론4)민족해방문학론5)민족문학주체논쟁 의의5. 민족문학론과 리얼리즘론의 상관성1. 민족문학론의 개념민족문학론에서 민족문학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먼저 민족주의는 자기의 의식을 조직된 활동이 행위로 바꾸도록 하는 하나의 이념이자 관념의 힘이다. 또 어느 특정한 역사단계에서 지적, 사회적 요인의 성장의 산물이다. 민족을 구성하고 형성하는 것은 핏줄의 외침이 아니라 이념의 힘이다. 결국 민족을 형성하는 필수적인 요소는 공동의지 이다. 민족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사회의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며 변동하는 것이고 고정되어 있지 않다.식민지시대의 민족주의 문학은 계급주의 문학의 대타의식에서 출발한 문학이었다. 민족문학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기도 했었다. 해방공간(1945-1948)에서의 민족문학론은 좌익측 작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임화는 민족문학의 인민성 을 강조하였고 우익측의 민족문학론은 김동리의 경향문학에 반대하는 순수문학으로서의 본격문학 이 있었다. 백낙청은 정치 경제, 문화 각 부분의 실생활에서 민족 이라는 단위로 묶여져 있는 인간들의 전부 또는 그 대다수의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위한 문학이라고 밝혔고 구중서는 인간과 민족과 인류의 진실된 자기완성을 성취해 가는 길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문학이라 정의 내렸다.이처럼 한국문학사에서 민족문학의 개념은 시대상황과 논자들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여왔다. 민족문학론은 노동계급의 이익 을 위한 계급 문학적 성격과 반제 반봉건의 전 민족에된 60년대 문학상황을 비판하고 순수문학이라는 통념을 비판했다. 이형기는 순수문학은 정치와의 절연이나 현실외면의 문학이 아닌 정치주의를 반대하는 문학이라는 주장을 한다. 문학의 기능을 축소시키는 문학한계론이 중심이 되어 참여론과 대조를 보인다. 김우종은 시대상황이 문학 외적으로 반공이데올로기, 매카시즘이 횡행하던 시절임을 상기시키면서 문학논쟁의 기본조건에 대해 숙고한다.1960년대 순수 참여논의는 합종연횡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서정주와 홍사중의 격돌도 있었는데 서정주는 사회참여와 순수라는 두 개념은 한국현대문학사에서 사회주의사상이라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전제하고 KAPF가 써낸 모든 문학작품이나 비평은 쓰레기 가치 이상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홍사중은 서정주를 반박, 순수문학이란 모든 역겨운 객관적 현실의 관념을 부정하는 비합리주의적 사고방식에 입각하여 일체의 법칙을 적대시하여 자아의 내면에만 들어가 생활의 기틀을 찾으려는 사고라고 하였다. 또 작가란 아울러 살고 있는 현실을 보다 밝게 만들기 위한 힘찬 행진에 한 몫 끼어야 한다{) 홍사중, 작가와 현실 『우리문학의 논쟁사』 어문각 1985.고 하여 현실참여론의 당위를 밝혔다.1963년~1964년에 걸친 순수 참여 논의는 문학의 현실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키고 원론적 의미를 확인한 논쟁이었다.4)제 2기 논쟁-김붕구, 임중빈, 임헌영1960년대 순수 참여 논쟁의 제 2기 논쟁은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언사로 일관되었다. 또 순수와 참여에 대한 다양한 의견의 분화였다고 할 수 있다. 김붕구는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취하는 듯했고 임중빈은 김붕구를 공박, 참여론의 주체를 민중 으로 파악하고 있다. 선우휘는 김붕구를 지원, 문학은 문학 이외의 다른 무엇에 써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해 문학의 현실적 무용론을 주장한다. 김현은 혼란된 문화의 근본을 밝히는 고고학적 노력과, 19세기 서구 리얼리즘 논의를 부정적으로 지칭해 참여문학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논쟁2기는 임중빈, 임헌영을 제외하고는 문학의 현실참여에 대체화하고 세련시켜 리얼리즘을 작가가 현실을 대하는 태도 또는 세계관으로 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2)리얼리즘 논쟁- 김현, 구중서, 임헌영, 최일운, 김병걸이 논쟁은 70년 4월 사상계의 4.19와 한국문학 좌담에서 시작되어 한국적 리얼리즘 가능성을 타진한 초보적인 논쟁형태의 전기논쟁과 1978년 9월12일 김동리의 강연에서 촉발되어 사회주의 리얼리즘 공방으로 치달아 문학의 사회성과 자율성, 리얼리즘문제 비평의 자세 등 여러 논점들 부각시킨 후기논쟁의 두 흐름으로 진행되었다.이 논쟁은 분명한 내적 필연성과 객관적 필연성을 갖고 있다. 현실 모순과 그로부터 표출된 변혁적 현실운동에 대응하려는 내적 욕구에서 일어난 현상{) 임규찬, 「70년대 이후 사실주의」으로 1970년대 전기논쟁은 김현과 구중서가 대립하면서 시작되었다. 좌담에는 김윤식, 임중빈 등 네 사람이 참여하였다. 김현이 염상섭, 현진건을 리얼리스트로 평가하자 구중서가 이들의 문학을 리얼리즘이 아닌 자연주의 문학으로 평가하면서 견해가 엇갈리기 시작한다. 김현은 여기서 리얼리즘 발생의 기능성을 사회계층의 형성여부와 관련하여 사고하고 있다. 구중서는 1930년대 문학을 리얼리즘이 아닌 자연주의문학의 규정하고 있다. 또 리얼리즘이 실천적 전략에 따라 교조적 도식성에 빠질 것을 우려하면서 리얼리즘을 열린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현은 리얼리즘을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현실의 모순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투시력과 상상력이 중요한 것이라고 작가들이 가져야 한다고 충고하였다. 그러면서 리얼리즘에 대해 지나치게 안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1970년대 초반의 리얼리즘론은 산만하거나 지나치게 비약적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70년대 문학공간에 본격적으로 진입시켰다는 의의가 있다. 임헌영은 김현이 리얼리즘을 도식주의로 파악한 데 대해서 반론을 펼친다. 또 리얼리즘을 진리의 객관적 인식, 여기서 규정된 사회미를 형상화시켜 예술미로 승화해야 되는 어떤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임헌영은 리얼리즘에 대한 김현의 자연주의적 인식에 대한 예리을 주장했다.3) 후반기 자율성논쟁 -김동리, 구중서, 임헌영1978년 9월 작가 김동리의 한 문학강연에 의해서 발단된 후반기의 문학논쟁은 흔히 문학의 자율성 논쟁이나 문학관 논쟁으로 불린다. 이 논쟁은 문학논쟁의 범주를 벗어나,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문제로까지 확산된 논쟁이었다. 이 논쟁은 앞 시기의 리얼리즘 논쟁보다 포괄적인 문학논쟁이었고 일간신문의 지면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논쟁이라 선언적이고 정략적인 측면이 강했다. 따라서 이 논쟁은 문학행위에 있어서 원칙의 문제에 대한 각 논자들의 입장확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논쟁의 최초 원인 제공자는 김동리였다. 정치적 사회적 소용들이 와중에 김동리의 문제의 강연 한국적 문학사상의 특질과 그 배경-한국문학의 나갈 길 이 1978년 9월 12일 태창출판부 주최로 열리고 이날 행한 강연요지가 다음날인 9월 13일자 조선일보에 실렸다. 김동리의 강연요지를 보면 신소설에서 현대소설까지, 그리고 세계명작인 단테, 괴테 등의 작품을 거론한 뒤 지론인 인생의 영원성과 보평성 을 주장하고 한국문단의 공리성과 사회성을 비판하였다. 김동리의 주장의 가장 큰 한계는 구체적인 논거가 없이 선동적으로 구사되고 있다는 것이다.구중서, 임헌영 두 사람이 현실고발이 사회주의인가 하면서 김동리를 반박했다. 결국 이 논쟁도 원천적으로는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김동리는 곧바로 『문학엔 임무가 있을 수 없다.-임헌영 구중서씨의 반론에 대하여』{) 『조선일보』1978, 9, 27를 발표하여 주로 이헌영을 공박한다. 물질이 아니라 인간의 편에 선다는 염무웅의 주장에 대해 김동리는 『이럴 수도 저러 수도 있는 것이 아니다- 염무웅 씨의 글에 대한 반론』{)『조선일보』 1978, 10, 14을 발표한다. 순수문학 우위론을 주장하는 김동리의 주장을 끝으로 김동리 대 구중서, 임헌영, 염무웅이 벌인 문학관논쟁은 일단락된다. 이어 제 3장인 백철의 『무기화된 문학은 문학이 아니다- 김동리 씨와 젊은 비평폭이 큰 논쟁이었다.2) 민중적 민족문학론의 등장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의 남한의 제사회운동에 하나의 분수령으로 작용하여 본격적인 민중운동을 도약하는 기틀을 제공하였다. 이는 사회의 부분적이고 현상적인 모순에 대한 즉자적 비판의 수준에서 사회의 총체적 변혁의 전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 3세계 종속이론이 지양되고 계급구성 및 계급관계 논의가 도입되면서 사회구성체 논쟁이 본격화된다.이 사회구성체 논쟁은 당시 우리 사회 변혁운동의 주동력을 밝히려는 데 그 최종적 목표가 있었는데, 크게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론과 식민지 반봉건주의론으로 나뉘었다. 이때 전자는 우리 사회의 기본모순을 계급모순에 후자는 민족모순에 두고 변혁운동의 전략전술을 달리했다.{) 박현채, 조희연 『한국사회구성체』 논쟁1-41980년대 후반 내내 가장 뜨겁고 강렬한 문학적 자장을 형성했던 논쟁은 1990년대 초 현실사회주의가 패퇴하면서 그 물적 기반을 잃고 뒤이어 정남여, 권성우가 벌인 일종의 창작방법 논쟁이 김영현 논쟁 . 실천문학이 자리를 깔아 준 리얼리즘 논쟁에 자리를 물려주면서 민족문학 위기론과 맞물린 반성론 논란을 일으키는 거를 제공하였다. 논쟁의 주요한 당사자였던 조정환도 이 논쟁 투쟁과제를 중심에 설정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주체적 조건{) 조정환, 『노동해방문학의 논리』1990을 간과하고 있으므로 이것을 민족문학 주체논쟁으로 보는 것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논쟁의 불씨를 준비했던 채광석은 전국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났던 동인지운동을 조직의 틀로 수렴하고자 했다. 또 그가 촉구한 민중적 민족문학이냐 소시민문학이냐 라는 양자택일의 결단은 뚜렷한 과학적 근거를 가진 이념 형태라기 보다는 자연발생적이고 심정적인, 도덕적, 윤리적, 결단촉구 수준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김명인의 지식인 문학의 위기와 새로운 민족문학의 구상은 발표당시 문단에 큰 충격과 논란을 주었고 보다 과학에 근접한 것이었다. 소시민적 지식인 문인들의 존재론적 결단을 거의 협박조로 강변한다거나 민중적다.
{-차례-Ⅰ.한국의 공동체 의식1.1 가족주의 공동체의식1.2 지역적 공동체의식1.3 민족 공동체의식1.3.1 2002월드컵속 민족 공동체의식1.3.2 놀이문화의 공동체의식Ⅱ. 공동체의식의 뿌리- 전통사회Ⅲ. 동양철학에서의 공동체의식3.1유가윤리 속 공동체의식3.2 대동사회3.3 반공동체의식의 극복3.4 순자와 묵가Ⅳ. 공동체의식한국의 공동체 의식과 동양의 유가윤리Ⅰ.한국의 공동체 의식우리는 남에게 가족을 얘기할 때 나의 아버지께서.... 나의 언니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 언니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것은 우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나만의 개인적인, 소유적 관점이 아닌 모두 함께 공존하는 공동체적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구체적인 삶에 있어서 인간은 어떤 모습인가? 생명이 어디에서 왔던, 혹은 어떻게 구성되었던 관계없이 동서양 모두 전통적인 인간의 모습은 정신과 육체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것은 정신적 영역에 있어서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물들은 흉내도 낼 수 없는 독특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공동체 속에서의 질서와 조화일 것이다. 그리고 질서와 조화의 배후에는 일정한 윤리적 규범들이 자리잡고 인간적 삶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 전통적인 설명방식이다.한국사회의 저변에 깔려있는 공동체적 삶과 의식은 현대에서 개인주의적인 서양문화가 유입된 이후에도 무시하지 못할 커다란 기본적인 정서와 정신이다. 서양은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정신이 강해 타인과의 끈끈한 정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전통적으로 가족주의적 공동체 의식과 민족에 대한 강한 공동체의식이 있어 자신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남을 이해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가 널리 퍼져있다.1.1 가족주의 공동체의식현재 사회에서도 이런 공동체 의식이 깃든 문화현상을 많이 볼 수 있다. 먼저 혈연의 공동체인 가족주의적 공동체의식을 보자. 명절 때마다 온 나라가 귀성 전쟁을 치르는 우리 나라의 드러난다. 2002년 월드컵당시를 기억하면 우리의 공동체 의식이 어떤 것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다. '2002년 6월'은 우리에게 실로 충격, 그 자체로 다가왔다. 연인원 2500만여 명, 한국 인구의 절반이 넘는 인파들이 전국의 길거리로 나와 '대~한민국', '오~필승 코리아'를 소리 높여 외치는 전대미문의 일대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 역사상 세대·지역·이념·성별 등 모든 갈등을 뛰어넘어 오직 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신명, 열정이 표출된 한판 축제였다. 그것은 아무도 예측 못한 거대한 붉은 해일과도 같았다.역사가들은 '2002년 6월 월드컵'을 3·1운동, 4·19의거, 5·17 민주화 운동, 6·10항쟁 등 우리 역사의 분수령을 이어갈 '쾌거'로 기록할 것이 확실하다. 주체할 수 없는 숭고한 열정과 감동이 우리를 '하나'로 묶었던 2002년 월드컵 체험은 분명 우리 민족에게 또 다른 새로운 '공동체 건설'의 모티브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우리 국민들의 열광적 환호는 단지 축구를 향한 열정만이 아니다. 세계 일류와 맞설 수 있다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경쟁력과 당당한 자신감의 발로인 것이다. 애초 길거리 응원은 정치. 경제. 사회적 스트레스, IMF 이후 억압된 욕망과 좌절, 욕구를 해소하는 자발적 '카니발'로 시작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서로 남이 아니다' 라는 표현에 농축된 강렬한 집단주의의 긍정적 표현으로 발전했다.불의에 저항하는 4 .19의거, 6 . 10 항쟁 등으로 이어지는 길거리 투쟁의 훌륭한 유산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뉴욕타임스가 "한 세대 전 군부 독재와 맞서 50만 명이 사위를 벌였던 시청 앞 광장에서 붉은 셔츠 차림의 젊은이 100만 명이 국민적 메시지를 갖고 새로운 슬로건을 외쳤다." 고 전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황익주 서울대(인류학과) 교수는 "평소 소외되고 단절된 생활을 하던 현대인이 모처럼 월드컵을 계기로 다른 사람과 어울리며 일체감을 느끼는 등 공동체 의식이 확산되는 분위기가 만 세계 최강국’으로 상징되는 IT 문화이다. 또 집단놀이문화가 새로운 21세기형 상호소통 이웃문화와 결합되어 나타난 현상이 한국인이 주도하는 ‘싸이월드’이다. 사이버 공간에 자신의 방을 차리고 방명록을 열어 놓으면 불특정 다수의 익명들이 자유롭게 드나든다. 만나보지도 않은 타인의 사진을 자신의 방으로 가져가기도 하고 남의 일기에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까지 덧붙이기도 한다. 얼굴도 모르는 타인과 스타크래프트 전략을 짜고, 레이싱 경기도 하고 포커판까지 벌인다. 그래서 수만~수십만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곳이 바로 한국의 사이버 공간이다.21세기 지구 어디에도 이런 무조건적인 개방구역은 찾아 볼 수 없다. 개인의 사생활이 철저하게 보장되고 습성화된 일본인이나 서구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이버 광장(廣場)의 놀이문화가 한국에 존재하고 있다.이런 개방성과 집단성은 바로 신명의 놀이정신이다. 한국이 21세기 IT 강국으로 떠오르고 게임천국이 된 이유 또한 바로 이런 한국인의 독특한 민족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유전자 속엔 오래 전부터 이런 집단놀이정신과 문화가 있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하는 노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젊어서 공부하던지 일해야지 놀다 보면 남는 게 뭐가 있느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웃 간에 정이 없고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공동체의식이 결여된 문명은 고독하고 활력이 없다. 21세기 지구문화에서 만연하고 있는 증세가 고독과 무기력증이다. 그리고 ‘혼자 놀겠다’는 것이 보통이다. ‘더불어 함께 놀자’는 권유형(노세노세) 어법으로 시작하는 노래 속에는 분명 젊음의 활력과 민족의 집단의식이 싱싱하게 묻어 나온다. 이런 젊은 놀이정신이야말로 한국인 특유의 유전자적 기질(氣質)이며, 건강한 현실 극복의지임에 틀림이 없다. {) (이윤택·국립극단 예술감독)Ⅱ. 공동체의식의 뿌리- 전통사회한국인의 강한 공동체의식의 배후에는 오랜 농경사회의 역사를 통하여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서는 민족이 한 덩어리가 되어 국가를 보전할 필요가 있었다.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고 고유한 문화를 창달해 가며 당당하게 살 수 있기 위해서는 부락 또는 지역의 범위를 넘어서서 더욱 크게 단결하고 협동해야 했던 것이다. 여기서 민족과 국가를 자아와 동일시하는 더욱 큰 공동체 의식이 자연히 생기게 되었다.우리 조상들의 강한 공동체 의식은 그들의 생활양식 가운데 여러 가지 형태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그것이 가장 잘 나타난 대표적인 예로서 우리는 결혼에 관한 조상들의 관습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결혼을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합 즉, 二性之合 으로 보지 않고 성이 다른 두 가문의 결합 즉, 二姓之合 으로 보았다.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 아니라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었던 까닭에,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일은 당연히 양가의 어른 즉 가부장의 소관사였으며, 신랑이 될 총각과 신부가 될 처녀의 의사는 도외시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결혼의 가장 큰 의의는 가문과 가문의 결합에 있었으므로, 며느릿감 또는 사윗감으로 적합한가 아닌가를 평가하는 첫째의 기준은 그 처녀 또는 총각의 가문의 귀천이었으며, 그들 개인의 개성이나 능력 또는 외모 등은 그 다음이었다. 옛날 우리 조상들에게 족보가 지극히 중요했던 까닭도 스스로 명백하다.일종의 장편 수기라고 볼 수 있는 한중록의 후반부는 저자 홍씨의 자기 친정 집안에 대한 애착과 친정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오라버니들을 위한 변명으로 가득 차있다. 그의 글 가운데는 사리를 따라서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도 무조건 서로 감싸고 무조건 소로 도와주는 것이 척리의 본색이요 척리의 도리라고 굳게 믿은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음을 증명하기에 족한 구절이 여러 곳에 보인다. 아마 그것은 저자 혜경궁 홍씨 개인만의 심정이 아니라 당시 양반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던 심정이었을 것이다.가족주의적 공동체 의식을 반영한 구절은 홍길동전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홍길동이 집을 뛰쳐나가서 신출귀몰한 도술로써 관외침이 있을 때마다 강한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발휘하였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당했을 때는 유림은 물론이요 승려와 농민들까지도 하나로 뭉쳐서 국난에 대처하였다.20세기 초엽에 일본이 침략의 야욕을 가지고 접근해 왔을 때, 정치를 담당한 사람들의 불찰로 결국 그들의 식민지가 되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국민은 강한 민족의식으로 일본에 대항하였다. 각지에 의병들이 봉기해쏙 승산이 없다는 것이 밝혀진 뒤에도 항일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1919년의 3.1운동도 그 항일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나 ㄴ민족운동이었으며, 그 뒤에도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탄압을 못 견디고 지조를 꺾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니,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의 흐름 전체를 바라볼 때, 한국인의 민족의식 내지 애국심은 특기할 만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대만은 한국보다 10여 년 앞서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한국과 대만은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나., 일본을 대하는 한국인과 대만인을 대하는 태도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대만인은 우리처럼 항일운동을 하지 않고, 그대로 순응하였다. 그들은 일본이에게 예쁘게 보였으며, 일제시대에 우리보다는 대우를 받았다. 일제시대에 일본에 있던 제국대학의 본과 학생으로 입학하기 위해서는 구제 고등학교를 다녀야 했거니와, 그 특권이 부여된 고등학교를 조선 땅에는 세우지 않고 대만에는 세워준 것은 대만을 조선보다 우대한 좋은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한국인이 대만인보다 강한 민족의식을 가진 것은, 우리는 우리 민족문화에 대하여 강한 긍지와 애착을 가졌으나, 대만인에게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해방을 맞았을 때, 우리는 일본어 사용을 수치로 생각하고 우리말 되찾기에 열중했으나, 대만인들은 별다른 갈등을 느끼지 않고 일본어를 계속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민족문화를 대하는 태도가 서로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족에 대한 강한 공동체 의식 배후에는 민족문화에 대한
{{『하나코는 없다』-여성의 소외, 존재하지 않는 인간-현대 사회는 서로를 소외시키면서 결국 자신까지 소외시키고 점점 더 익명성에 빠져드는 인간관계를 우리도 모르게 지속시키고 있다. 그것은 한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고 본질적으로 사람을 대하고 인정해주는 사회가 아닌 인내심과 배려가 없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의 문제점을 그들 과 장진자 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 이다.줄거리그는 출장으로 이탈리아로 왔다가 베네치아를 혼자 여행하면서 대학동창 모임에 늘 함께했던 하나코라는 여자친구를 문득 떠올린다. 그들은 장진자라는 본명을 나두고 그녀를 하나코라고 암호로 정해놨는데 코가 유난히 예뻐지어진 별명이다. 누가 처음에 데리고 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나코는 그들에게 언제나 스스럼 없고 친절하며 항상 무엇이든지 수용해주는 친구이자 연정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녀는 모임에 나올 때 항상 그녀의 친구 한명과 함께 나오곤 하는데 그들은 하나코나 그녀의 친구에 대해 자세하게 생각해보거나 따지고 들지 않았다. 그들이 하나코에게 가끔씩 연락하는 것은 일종의 그들의 심심풀이나 이야기 상대자를 찾고자 하는 것이고, 하나코는 그들에게 특별한 존재감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그들의 이야기나 모임을 얕보거나 무시하지 않고 매사에 진지하게 진실되게 그들을 대했다. 그러다 그녀와 그들의 만남이 끝나는 계기가 있었는데 7명이서 중고 자동차를 구입한 기념으로 해변을 찾아 나섰다 낙동강까지 가게되었다. 거기서 그들은 이런저런 각자의 의견에 심리적으로 갈등을 하다 누군가 방을 빌렸고 숙박 집에서 악을 쓰며 노래를 하게 되는데 노래라면 질색을 하는 하나코에게 노래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결국 서로를 말리지 못하고 광분하다 하나코와 그녀의 여자친구는 어둠 속으로 뛰쳐나가게 된다. 그 후로는 한번도 그녀를 보지 못했는데 그들은 그녀를 얘기하고 싶은 심리와 얘기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함께 섞여 하나코라는 별명까지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하나코를 이제는 그가 찾게 되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하나코가 아니라 그녀의 친구와 함께 성공을 한 이탈리아의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다.소설 고찰해보기소설의 마지막, 이탈리아에서 당당하게 성공적인 삶을 살고있는 장진자를 보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가 알고있는 그녀는 인테리어디자이너 장진자가 아니라 무존재감의 하나코이기 때문에 그는 마지막대목에서도 그녀의 오똑한 코가 더 부각되어 보인다고 했다..그들 속에서 그녀의 위치남자들의 모임에서 그녀와 그녀의 친구는 존재감 없는 그들로부터 부정되고 소외되어있다.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는 소외되고 있다. 정확하게 언제 어떤 모임이 계기가 되었는지 그녀를 그들에게 소개한 것이 P였는지 Y였던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지금은 그들에게서 멀어진 그 시절에 알고 지내던 어떤 누구였던지, 하면서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면서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가 회상하는 대목을 보면 알 수 있다. 처음부터 그들속에 장진자는 없었던 것이다.또 그녀가 어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는 것 외에 어떤 사람이고 집안은 어떻고 그녀의 전공 따위에 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알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는 점에서 더욱 이런 것은 부각된다. 그녀의 객관적이고 표면적인 정보조차도 모르는 그들에게 그녀의 마음이나 생각과 같은 것은 전혀 필요치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더욱이 그들은 이런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궁금증을 자극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녀의 위치는 한낱 말상대가 되어주는 그러면서도 새로움과 특별함을 지닌 똑똑한 꼭두각시 인형과 같이 여긴게 아닐까 한다.3년씩이나 그들과 함께 하면서 그녀가 자신에 관계된 일로 그들 모임에서 주의를 끈 적이 없었고 늘 동일한 표정과 늘 같은 분위기, 같은 상황이었다고 그 는 그녀를 회상하지만 여기서도 그 에 그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그 뿐만 아니라 그들도 그랬겠지만 늘 그녀는 그 자리에 일관적인 태도로 그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만 판단하고 느꼈기 때문이다. 입장을 바꿔 하나코의 심정이나 사상은 깊이 들여다보고 그런 것을 끌어낼 만한 그녀를 위한 것은 결코 단 한번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매번 그녀를 똑같은 하나코로 특징 없이 기억하고있는 것이다. 그들은 남자친구들이었고 하나코는 여자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속에서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매번 보였던 것이다. 최소한의 인내심이나 배려도 없었다. 어두운 정류장에서 그녀를 나두고 돌아가는 것이나 돈에 관해서도 인색한 것은 그런 것을 잘 보여준다.또 그가 하나코와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있었는데 한번은 어디서 읽은 시구를 베껴서 멋을 부려 보자 그녀는 그 편지의 대답에 시 제목을 알아맞히는 수수께끼 놀이를 하자는 거지요? 라는 농담 어린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진지한 만남을 가지고 실제로 신중하게 그 편지를 쓴 것이었는데 답장에 저런 말이 온다면 얼마나 절망적이고 허탈했을까.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과 화가 함께 치밀었을 지도 모른다. 이것이 보통 예상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자존심이 상할 일이 없었다고 했다. 또 일이 덧나도 별 두려움도 없었다고 했다. 즉, 그녀를 대할 때 있어 기대나 진심은 부재한 채 겉으로만 의사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사람사이의 의사소통이라고 할 수 없다고 본다. 낙동강 숙박집 사건에서는 그들의 일방성이 극에 달한다. 하나코가 노래라면 치를 떠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끝까지 강요로 노래를 부르게 하기 위해 미쳐간다. 악을 지르고 소리를 지르는 하나코와 그녀의 친구의 저항하지만 그들은 그녀들의 마음을 읽을려고 조차하지 않는다. 아예 예전부터 배제되어있던 그녀들의 존재가 극에 달하면서 그들이 원하면 해야한다는 식의 일방적 남성중심사고가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떠나간 그녀들에 대해 그들은 아무런 책임 의식이나 미안함 같은 것은 느끼지 않았다..하나코는 원래 없었다.그런 하나코는 목소리가 예전과 같아도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고 그는 생각하는데 역시 하나코는 그들이 쉽게 여겼던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그가 그녀를 얕보고 순종적인 여성으로만 생각했던 만큼 잡지에 실린 그녀의 성공적인 모습은 확실한 충격이었고, 그녀의 코가 더 유난히 오똑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나코는 없고 성공한 장진자의 모습만 있는 것이다..여성의 소외작가는 남성에 의해 평면적 인물로 소외되어온 여성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동시에 의지가 강하고 스스로 성공하고 자립적인 장진자의 모습을 그렸다. 이것은 존재감 없는 여성들을 남성과 동등한 위치로 끌어올리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녀는 그들이 알고있는 하나코가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장진자는 현대여성들의 본보기가 될 가치있는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그들 에게 넓은 이해심과 여유를 보여주면서 항상 그들의 모든 면을 인정, 진실된 태도를 지니는 동시에 자신의 자아실현을 통해 성공적인 삶을 사는 바로 그것이다. 남성들의 일방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태도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여성의 모습을 한 차원 높게 그리고 여성에만 국한되어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부재, 소외 현상을 반성하게 한다. 여기서 남성과 여성은 서로대립 갈등을 나타내고, 저항을 일으키기 보다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남성과의 합의점을 찾고, 지향해야함을 모색한다..존재하지 않는 인간비단, 여성을 소외시키는 것을 떠나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익명성, 타인의 익명성에 익숙해져 있다. 서로의 본질을 드러내고 이해하기 보다는 허상만 있을 뿐이다. 남을 소외시키고 존재감을 잊으려고 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의 소외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소설에서도 하나코는 없고 장진자는 있지만 그들은 끝까지 그 나 J 혹은 P 로 남게 되는 것이다. 주위에서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지한 만남이나 진심에 대한 관심을 버려 둔 채 피상적 태도로 방관하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너무 쉽게 쉽게 생각하는 현대인들은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또 스스로도 실상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다. 나 또한 소설 속에서 그들이 그녀에게 하나코라는 별명을 지었던 것처럼 얘기하고 싶은 심리와 얘기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섞여 별명을 지은 적이 매우 많다. 별명은 특별하게 지어진 이름을 뜻하는 것일텐데 소외시키기 위해서 익명을 대신한 부재의 표현으로 짓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교육행정-교육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봉사적 수단과 활동과정-사회 속에서 인간이 주체가 되어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교육행정을 막연한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중요한 본질을 잊거나 간과시 하고 제도나 방법적인 것에만 치우칠 수도 있다. 그래서 교육행정에 대한 여러 요소들과 성격들을 통해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교육행정의 개념을 파악하고 정의를 지어보겠다.교육행정은 여러 가지 견해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를 꼽는다면 먼저, 교육행정이 교육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인적·물적 조건을 정비·확립하는 수단적·봉사적 활동이라고 보는 견해인 조건정비론이 있다. 두번째로 행정가의 일반적 기능이 무엇이며, 행정은 어떠한 순환적 경로를 밟아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초점을 둔 행정과정론이 있다. 여기서 행정과정이란 계획수립에서부터 실천·평가에 이르는 행정의 전체경로를 말함과 동시에 이 경로 속에서 이뤄지는 행정작용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세 번째로 교육행정을 하나의 과정으로 보는 입장으로 대표적 학자 Getzels는 행정이 이뤄지는 배경을 사회체제라고 본 사회과정론이있다. 네 번째 견해로 협동행위론은 행정을 합리성을 토대로 한 집단적 협동행위로 보는 견해로서 주로 행정행위에 초점을 두며, 그 가운데서 의사결정의 과정에 역점을 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분류체계론은 교육행정을 일반행정의 한 부분으로 생각해서 '교육에 관한 행정'이라고 보는 입장으로 법학적 개념에 의하여 지지된다는 점에서 법규해석적 정의 또는 교육행정영역 구분론 이라고도 한다.이렇게 교육행정을 여러 가지 견해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는데 이 견해 모두 수용 가능한 개념이 넓은 의미의 교육행정이라고 생각된다. 여러 견해 중 한가지 견해만을 통해 교육행정을 정의하기는 무리가 따른다. 분류체계론의 경우 교육행정을 일반행정의 한 부분으로 여겼는데 다른 행정과는 달리 특수한 목표와 성격이 따르는 교육이라는 점을 간과시 하고 일반적인 행정과 같은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뚜렷한 교육을 통한 목표와 그 배경인 사회적 체제, 계획부터 행위까지 과정, 집단적 협동, 그리고 행정이라는 기본적인 성격까지 모두 함께 아울러서 나타나는 것이 교육행정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요컨대 내가 생각하는 교육행정의 개념은 조직적이고 공공적인 활동으로서 사회 속에서 교육에 관한 목표를 정하고 인적·물적 조건을 정비·확립하여 목표 달성 과정에서 집단적 협동행위를 통해 지도 감독하는 행정 전체의 경로로 지원적, 봉사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포괄적으로 생각한다면 교육행정은 교육계획·교육정책·교육제도 등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을 생각할 수도 있다.교육행정의 환경을 보면 일반적인 자연적 환경과 사회환경을 모두 말할 수 있겠으나 사회환경이 좀더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사회환경은 교육행정제도와 교육행정문화를 포함하며 제도와 문화가치의 상호작용에 의해 교육행정풍토를 형성해낸다. 이것은 교육행정가가 교육행정을 수행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그리고 교육행정 업무는 교육활동의 부분에 따라 규정되고, 교육조직의 수준 또는 범위에 따라 규정된다. 여러 부문과 수준의 테두리 안에서 교육목표, 교육과정, 학생, 커리큘럼 등 여러 영역에 업무를 포함하고 있다.그렇다면 교육행정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교육을 효과적으로 수행, 활동하도록 지원 봉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수-학습간의 효율의 극대화를 봉사, 지원하는 수단적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개념에 따라 교육행정의 성격 또한 달라진 수 있다. 정책 실현을 위한 국가 권력의 관점에서는 감독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고, 조건 정비를 위한 관점에서 보면 수단적이고 조작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또, 목적의 달성을 위한 목표관리의 관점에서는 조작적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또 교육행정의 성격은 일반적 성격과 독자적 성격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일반적 성격은 국가의 정치 체제 여하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봉사적 성격 정치적 성격 민주적 성격이 있다. 다음으로 독자적 성격은 교육행정이 교육을 위한 행정이라는 것을 인정한 특수성이다. 이는 사회에 대한 중요성, 공개성과 공공성, 기능의 복잡성, 관계의 친밀성, 직원의 전문성, 평가의 곤란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회에 대한 중요성과 공개성, 공공성은 제공하고자 하는 서비스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고, 기능의 복잡성과 관계의 친밀성은 서비스를 수행하기 위해 하는 활동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직원의 전문성은 일하는 사람들의 특성, 평가의 곤란성은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다.교육행정은 다른 행정과는 매우 특수하므로 성격 또한 여러 가지로 세분화, 구체화하여 알아보아야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그렇다면 교육경영은 어떠할까. 교육경영과 교육행정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다른가를 알아보면 좀더 교육행정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경영과 교육행정은 아주 다른 양상을 띤다. 교육경영은 일단, 불확실한 성격과 비구조화, 비기획화의 특징을 지니고 있고 끝의 경영관리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교육행정은 고도의 확실성을 지니고, 구조화된 점, 기획화를 달성하기 위한 경영관리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교육경영은 원래 경영의 특성상 주관적이고 융통성이 있는데 반해 교육행정은 객관적이고 강제성을 띠고 있다. 교육경영의 목표는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있고 정치적인 권력이 약하므로 경쟁성과 능률성 봉사성이 높은데 비해 법적인 제약은 낮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교육행정의 경우 목표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있고 정치권력을 강하게 받고 강제성이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이윤이 목적이 아니므로 서로의 경쟁보다는 독점적인 면이 강하고 볍적인 제약이 높다.
나의 도덕적 신념과 행동의 형성에 영향을 준 모델과 이유21년 동안의 도덕적 생각과 행동에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긍정적, 부정적으로 수많은 계기와 나의 모델들이 있었다. 지금도 완벽하거나 훌륭하지 못한 도덕적 신념과 행동들을 반성하게 되면서 예전에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과 지금의 모델까지, 크게 보아 나의 인생 선생님을 얘기해보겠다.처음으로 얘기할 나의 모델은 고1시절 나의 가슴을 크게 놀라게 했던 책 한 권이다. 책 한 권이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고, 생각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는데 그 책의 제목은『오체불만족』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체불만족의 작가인 오토다케 히로타다가 나의 모델이다. 장애인은 항상 불행하고, 우울하며 힘들 것이라는 나의 편견을 모조리 없애고, 오히려 보통의 사람들보다 뛰어나고 몸과 마음이 깨어있는 그를 보면서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심각한 장애를 안고 있었으나 용기와 의지로 장애를 극복하고, 여러 방면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애와 행복사이에는 아무련 관련이 없다는 그의 생각을 읽으므로 인해 조금은 부정적인 나의 가치관이나 마음도 변화하였다. 특히 늘 행복하다며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고 긍정적인 시각과 부지런한 행동에서 크게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오토다케 히로타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불행에도 마치 커다란 시련처럼 나약하게 굴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이 책과 함께 이시기에 나의 긍정적인 사고와 행동에 모델이 되었던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사실 매일 같이 붙어 다니고 친했던 친구가 아니라 같은 반일 뿐 그 이상 친분관계가 있는 사이는 아니다. 이 친구가 나의 모델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슨 일 이 있어도 웃고 있는 얼굴과 흐르는 미소 때문이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거나 화나는 일이 있어도 성을 내는 것 보다 먼저 웃어 보이는 여유, 그 미소가 그 친구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입만 웃고 있는 가식적인 미소와는 달리 그 친구는 그것이 습관이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마음속에서도 얼굴과 같이 편안하고 즐거움을 늘 안고 있는 듯 했다. 똑같은 상황이 주어져도 나와는 다른 그 친구를 보면서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한참 고민하고 방황하던, 그리고 매사에 부정적인 시각을 품고 있었던 나는 이 책과 그 친구를 보면서 나를 변화시키도록 노력했고, 그 친구라면 이 상황에 어떻게 했을꺼라는 상상을 하면서 까지 그 친구를 매번 떠올렸다.또 다른 나의 모델은 나에게 남을 먼저 생각하고 친절함과 배려를 깨닫게 한 대학 선배이다. 이 대학 선배도 학창시절 그 친구와 같이 아주 절친하거나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알고 보면 같은 대학에 다니는 선배인 것 밖에는 연결고리가 없는 사이이다. 그 선배를 알게 된 것은 친구를 통해서이다. 처음 그 선배를 보았을 때는 소위 말하는 범생스러운 옷차림과 튀지 않는 외모, 수수한 말투 난 그녀를 남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함이 전부인 매력빵점으로 첫인상을 평가했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경솔한 평가에 일침을 가하듯 그 선배는 매우 친절하고 온화한 미소로 진심으로 나에게 상냥하게 대해주었다. 그 후 친구와 그 선배가 만나고 인사할 때, 대화 할 때도 남을 먼저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결정적으로 그녀를 나의 도덕적 모델로 삼게 된 계기는 자신이 희생하면서 남을 먼저 위해주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던 것이다. 내 욕심만 채우기 급급하고 이기적인 사회에서 그런 사람을 본 것은 매우 커다란 충격이었다. 친구가 얘기하기를 그 선배는 바보같이 보일 정도로 착하다고 했는데 그 말에 나도 동의할 수 있었다. 남을 배려하고 친절함이 몸에 배여있는 그 선배를 보면서 나 또한 그러해야겠다고 다짐했다.마지막으로 도덕적이고도 가장 궁극적으로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고 귀감이 된 분은 나의 아버지이다. 난 다시 태어나도 우리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고 싶고 진심으로 존경하고 항상 아버지께 감사 드린다. 21년 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가깝고도 함께 해왔기 때문에 더욱 아버지의 모습이 나의 생각,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에 긍정적이고 낙관주의이시며 항상 겸손하시고 남을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을 보여주셨다. 나는 나의 아버지께서 다른 사람들과 싸우거나 말다툼하는 것, 불만을 얘기하거나 부정적인 모습을 본적이 거의 없다.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기보다는 남도 나와 같다는 생각을 먼저 하고 타인을 이해해야한다고 늘 강조하셨다. 내가 윤리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거나 어긋날 때마다 조언을 하시고 바른 인격을 형성하도록 도와주셨다. 아버지께서는 사회에 나가서나 가정에서나 항상 일관되게 도덕적으로 행동하셨다. 또 부모님을 공경하고 윗사람을 존경하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고, 자기 자신의 본분에 맞는 생활과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주셨다. 그러면서도 늘 겸손하신 아버지를 보면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고 아버지처럼 인성이 바르고 곧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