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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문학] 중국의 4대기서 평가A좋아요
    *중국의 4대 기서(奇書)란?흔히 중국의 4대 기서를 가르켜 '삼국지연의',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를 말한다. - 저자: 나관중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뛰어난 상상력으로 수많은 픽션을 가미하여 쓴 역사소설로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등에서 애독되고 있는 베스트셀러이다.중국 송나라 때 반역집단의 활약을 그린 장편역사서로 등장 인물만 108명에 이르고 또한, 그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개성들이 잘 표현 되어있다.- 저자: 오승은당의 고승 현장이 신통력을 지닌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악귀들을 물리치며 인도로 경전(經典)을 얻기 위해 떠난다는 이야기.- 저자: ?"수호지"에 등장하는 인물인 무송 (武松)을 비롯한 몇 명을 차용하여 부호 서문경(西門慶)과 반금련(潘金蓮)의 가정 사이에 벌어지는 음탕한 사건을 배합한 소설. 명나라의 정치 부패와 부호 계층의 타락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1. 삼국지삼국지는 크게 삼국지연의와 정사(삼국지)로 나뉩니다. 이 둘은 전부 중국의 후한 말기와 삼국시대를 서술한 책들인데 연의는 당나라 때 나관중이 지은 소설책이고, 정사는 진수가 쓴 역사책입니다.삼국지(三國志)중국의 위(魏)·촉(蜀)·오(吳) 3국의 정사(正史). 진(晉)나라의 학자 진수(陳壽:233∼297)가 편찬한 것으로,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린다. 위서(魏書) 30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 합계 65권으로 되어 있으나 표(表)나 지(志)는 포함되지 않았다. 위나라를 정통 왕조로 보고 위서에만 를 세우고, 촉서와 오서는 의 체제를 취했으므로 후세의 사가(史家)들로부터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촉한(蜀漢)에서 벼슬을 하다가 촉한이 멸망한 뒤 위나라의 조(祚)를 이은 진나라로 가서 저작랑(著作郞)이 되었으므로 자연 위나라의 역사를 중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때문에 후에 촉한을 정통으로 한 사서(史書)도 나타났다. 그러나 찬술한 내용은 매우권을 편찬하였다. 또한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는 부여(扶餘)·고구려·동옥저(東沃沮)·읍루(婁)·예(濊)·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왜인(倭人) 등의 전(傳)이 있어, 동방 민족에 관한 최고의 기록으로 동방의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 유일한 사료가 된다. 《삼국지》에 관하여는 후세에 많은 참고서가 만들어졌으며, 그 중에서도 청나라 전대소(錢大昭)가 엮은 《삼국지변의(三國志辨疑)》 3권과 양장거(梁章鉅)의 《삼국지방증(三國志旁證)》 30권 및 항세준(杭世駿)의 《삼국지보주(三國志補注)》 등이 저명하다.최근의 것으로 1957년 베이징[北京]의 고적출판사(古籍出版社)에서 발간된 노필(盧弼)의 《삼국지집해(三國志集解)》 65권, 보권(補卷) 2권이《삼국지》의 해설서로는 가장 상세하고 완벽한 것이라 할 수 있다.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중국 원(元)나라 때의 소설가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장편 역사소설. 중국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로, 원명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라 하며, 또한 삼국의 정사(正史)를 알기 쉬운 말로 이야기한 책이라는 뜻에서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라고도 부른다. 진수(陳壽)의 《삼국지》에 서술된 위(魏)·촉(蜀)·오(吳) 3국의 역사에서 취재한 것으로, 3국이 정립(鼎立)하여 싸우는 이야기는 그 전투의 규모가 웅장하고, 인간의 온갖 지혜와 힘을 총동원하여 치열한 공방전이 되풀이되는 만큼, 옛날부터 중국인들 사이에 흥미 있는 이야기로 전하여 오다가 9세기(당나라 말기)경에는 이미 연극으로 꾸며진 흔적이 있고, 송대(宋代:11∼13세기)에는 직업적인 배우까지 나왔다. 이것이 책으로 엮어진 것은 원나라 지치연간(至治年間:1321∼23)에 그림을 붙여 간행한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3권)이며, 이것은 현존하는 최고본(最古本)이다.이 책은 일종의 강담용(講談用) 대본 같은 것이어서 문장이 조잡하고 유치하였다. 그러나 원나라 때에는 이 평화(平話)를 바탕으로 하여 많은 희곡이 만들어졌으며, 나관중은 이 평화를 철저하게 개작가 되고, 공명이 6차에 걸친 북정(北征)에서 병사(病死)하는 의 1절이 절정을 이루게 된다. 소설의 주요인물은 유비 등 3인과 공명이지만, 조조의 성격도 잘 묘사되어 있다. 가장 생기가 넘치는 것은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이며, 특히 장비의 순진하고 솔직한 성격은 중국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는다. 무용(武勇)과 지모(智謀)로 이어지는 전투의 기술(記述)이 태반을 차지하고 있으나, 이야기의 전개가 적당한 템포로 진행되고,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 가는 수법이 매우 뛰어나 중국의 많은 역사소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다. 한국에서도 예부터 대중적인 읽을거리로 널리 읽혀져 왔으며, 특히 그 속에 담긴 유비 현덕을 중심으로 한 한실(漢室)에 대한 충성이라든가, 공명의 지략, 유비·관우·장비의 결의 등은 유교적 이념을 국시(國是)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크게 환영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관우의 장한 의기와 절개는 민간신앙으로까지 발전하여 관제교(關帝敎)가 생겨나고, 관제묘(關帝廟)가 곳곳에 세워지기까지 하였다. 신문학(新文學) 이전에는 한문으로 된 원본이 수입되어 읽혔으나 그 후 수많은 국역본이 나와 널리 대중의 인기를 차지하게 되었다. 김동성(金東成) 역(5권, 을유문화사), 최영해(崔暎海) 역(3권, 정음사), 박종화(朴鍾和) 역(月灘三國志 3권, 어문각), 김광주(金光洲) 역(三中堂) 등의 국역본이 있다.2. 수호전(水滸傳)중국 명대(明代)의 장편무협 소설. 원말 명초(元末明初)의 시내암(施耐庵)이 쓰고, 나관중(羅貫中)이 손질한 것으로 4대 기서(奇書) 중의 하나이다. 수령인 송강(宋江)을 중심으로 108명의 유협(遊俠)들이 양산(梁山:山東省 壽張縣 남동) 산록 호숫가에 산채를 만들어 양산박(梁山泊)이라 일컬었으며, 조정의 부패를 통탄하고 관료의 비행에 반항하여 민중의 갈채를 받는 이야기이다.창조된 인물들의 이미지와 묘사된 성격이 매우 다채로우며, 《서유기(西遊記)》가 신마(神魔)를, 《유림외사(儒林外史)》가 지식계층을, 《홍루몽(紅樓夢)》이 명문의 자녀를 묘사한 것사와 공통된 성격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수호지》의 탁월한 인물묘사의 기교와 표현예술은 중국소설 중에서도 굴지의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호지》의 줄거리는, 송(宋)·원(元) 무렵에 많은 민중·예능인·문인 등의 손으로 창조되었던 것을 시내암이 편집한 것인데, 송대의 《선화유사(宣和遺事)》에는 수호의 36명의 영웅 이야기가 있고, 《계신잡지(癸辛雜識)》에 의하면 송말의 공성여(聖與)가 36명의 화찬(畵讚)을 만들었다 하며, 《곡해총목제요(曲海總目提要)》에 의하면 송나라의 화가 이숭(李嵩)이 화상을 그렸다 한다. 또 《취옹담록(醉翁談錄)》이나 원나라의 잡극(雜劇)에도 수호의 인물들이 나오며,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 고유(高儒)의 《백천서지(百川書誌)》에는 시내암이 쓰고 나관중이 편찬한 《충의(忠義) 수호지》 100권이 기록되어 있다. 그 일부를 삭제하고 편수한 것이 곽훈(郭勳)의 100회본이며, 이것이 조본(祖本)이 되어 여러 종류의 《수호지》가 출판되었는데, 그 중에서 천계 숭정(天啓崇禎) 연간의 양정견(楊定見)의 120회본 《충의수호지전(全)》을 명말 청초(明末淸初)에 김성탄(金聖嘆)이 다시 손질한 《제5재자서(第五才子書) 수호지》 70회본이 유행하게 되었다. 《수호지》가 후일의 문학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명(明)·청(淸)의 희곡 중에는 《수호지》에서 취재한 것이 많고, 《금병매(金甁梅)》는 부분적으로 확대하여 창조를 더했으며, 《설악전전(說岳全傳)》 안의 일부 인물은 수호의 영웅들의 후계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진침(陳)은 《수호후전(後傳)》을 썼으며, 유만춘(兪萬春)은 《결(結)수호지》라고도 하는 《탕구지(蕩寇志)》를 지었다.3. 서유기《西游記》는 신화장편소설(神話長篇小說)로서,많은 사람들의 창작과 문인들의 창작이 결합된 작품이다. 당나라 때의 유명한 승려 현장이 천축국에 불경을 구하러 가는 17년 동안의 일을 그의 제자들이 현장의 구술을 토대로 《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라는 이름의 책으로 엮었다. 그후, 현장의 제자 혜립(慧立) 등이 《 그 공적으로 부처가 된다는 내용이다.이 이야기는 7세기에 당나라의 현장법사가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북인도에서 대승(大乘)불전을 구하고 돌아온 고난의 사실(史實)에 입각한다. 이미 당나라 말에 이를 전설화한 설화가 발생하였으나, 송나라 때에 허구를 가하고 신괴의 요소를 넣는 동시에 상당한 로멘티시즘과 환상적 분위기를 담고, 문무 양도에 신통력을 가진 백의의 수재 후행자(行者), 즉 삼장법사의 종자로 둔 《대당삼장법사취경기》라고도 하는 《대당삼장취경시화(大唐三藏取經詩話)》(3권, 전17장, 현재는 제1장이 없음)가 나왔으며, 이것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책이다.원나라 때에는 이 작품에서 취재하여 극화한 레퍼터리가 있는데, 이 무렵에 이미 《서유기》(서유기 平話)라는 것이 완성된 것 같으며, 그 단편(斷片)이 명나라 때의 《영락대전(永樂大典)》과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에 실려 있다. 그러나 그 원전은 서로 별개의 것이었다고 하며, 내용은 상당히 복잡하다. 오승은은 이러한 작품들을 집대성하고 확충 재생산하여, 오늘날 볼 수 있는 일대 걸작을 만들어 낸 것으로 추측된다.현행본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1 손오공의 내력(1~7회), 2 현장법사가 불전을 구하러 가는 일(8~12회), 3 81난(難)을 만나는 과정(13~100회). 특히 1과 2는 변화가 많고 파란만장하여 구름을 타고 안개를 몰며, 모래를 날리고 바위를 던지는 허허실실의 신마(神魔)의 싸움, 거기에 환상과 공포가 겹쳐 독자를 사로잡는다. 이 작품은 현실세계의 추악함과 통치계급의 타락상을 천계에 반영시킨 해학·풍자의 문학이며, 천제의 자리를 윤번제로 하자는 주장 등, 통쾌한 유머도 섞여 있다. 특히 72반(般) 변화의 술을 자유자재로 부리고, 근두운(斗雲)을 타서 10만 8000리를 단숨에 나는 손오공으로 하여금 약자를 돕고 강한 자를 무찌르며, 악을 몰아내고 선이 이기도록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갈채를 받게 하였다. 물론 이 시대의 작품이므로 윤회의 인과응보 사상이나 불로장생의
    인문/어학| 2002.06.02| 6페이지| 1,000원| 조회(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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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상문] 수호지 평가A+최고예요
    『수호지』는 원나라 말기에 시내암(施耐庵 : 강소성(江蘇省) 흥화현(興化縣) 사람으로 원말(元末)의 장사성(張士誠 : 1321∼67)이 일으킨 난에도 참가했다.)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설에는『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쓴 나관중(羅貫中)과의 합작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요즈음에 와서는 시내암이 쓴 것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수호지』도『삼국지』와 같이 여러 판본이 있지만 전해져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판본은 16세기 초에 나온『천도외신서각본(天都外臣序刻本)』인 100회본이다. 그 외에 70회본, 120회본, 164회본이 있는데 그 중 120회본은 1600년경에 나온 것으로 100회본의 후반부를 더 늘인 것이다. 100회본을 보면 70회본까지는 관료들에 의해 억압받고 소외되어 울분을 간직한 백여덟명의 호걸들이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양산박(梁山泊)에 모여들기까지의 경로를 다루고 있다. 나머지 30회본은 송강(宋江)이 산채의 형제들을 이끌고 조정에 귀순해 대요국(大遼國)을 정벌한 후, 다시 방랍(方臘)의 난을 평정시켜 공을 세우나 간신배들의 모함에 의해 독살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져 있다. 여기서 전호(田虎), 왕경(王慶)의 난을 평정한 얘기를 덧붙여 그 횟수를 늘인 것이 120회본이다. 그러나 순수 문학적 견지에서 본다면 다른 어떤 판본보다 70회본까지 『수호지』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70회와 100회본을 두고 볼 때 뒷부분 30회분의 얘기는 아무래도 억지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수호지(水滸誌)』의 시대는 송(宋)의 휘종(徽宗) 연간이다. 정확히 말하면 북 송(北宋) 말에서 남송(南宋) 초에 걸치는 시기라 볼 수 있다. 사실 상 휘종 황제는 북송 최후의 황제였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시대는 매우 혼란하여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결국에는 북송이 멸망하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휘종 시대에는 신법 덕분에 재정이 풍요로워져 정부에 상당한 잉여금이 있었다. 휘종은 이 자금을 이용하여 마음껏 유흥에 탐닉했다.강제로 민가의 목석(木石)을 징발하였으며, 게다가 운반비용은 인민의 부담이었으므로 강남 민중들은 몹시 고통을 받았다. 따라서 가난한 백성들은 자식을 팔아 그 비용에 충당했을 정도였다.휘종은 여전히 예술생활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이 무렵 도교에 빠지게 되었다. 휘종은 스스로 '교주도군황제(敎主道君皇帝)'라 이름하고 천하에 도교의 선경(仙經)을 구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그리하여 임영소(林靈素) 등에게 도교를 강론케 하고, 천도회(千道會)라는 대재(大齋 : 도교의 의식)를 설치했는데 그 때마다 비용은 수만 금이 필요했다고 한다. 또 휘종은 미행(微行)으로 거리를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여 개봉의 유흥가에도 출입하였다고 하는데 개봉의 명기 이사사(李師師)가 그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휘종시대를 통해 문화는 난숙한 경지에 달하여 일견 화려해 보였다. 하지만 그 내실은 유흥에 탐닉하여 정치에 어두운 황제와 이를 기화로 하여 전권을 휘두르는 간신들에 의해 정치는 부패해져 있었다. 그리하여 휘종의 치세 20년 사이에 송조는 이윽고 손을 댈 수조차 없는 중병에 빠져들었다. 또 이러한 시기에 곳곳에서는 반란이 발생하게 되었다. 『수호지』는 바로 이러한 혼란한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다.『수호지(水滸誌)』의 내용은 백여덟명의 두령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양산박(梁山泊)에 몰려드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송강을 위시하여 108명의 두령들이 모여들게 되는데 그들은 각기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양산박의 첫째 두령인 송강(宋江)은 일개 현의 압사(押司)였으나 그 덕과 의기가 대단하여 그 인품이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런 그는 그의 아내였던 염파석을 죽이고 이리저리 쫓기다가 결국은 양산박에 들게 된다. 노준의(盧俊義), 진명(秦明) 등과 같이 양산박의 두령들이 그들의 충의와 품성을 흠모하여 일부러 일을 꾸며 데려온 경우도 있고 불륜을 참지 못해 형수인 반금련을 죽인 무송(武松)이나 관리의 생신강, 재물 등을 털고 관군에게 쫓기어 양산박에 들어 온 오용(吳用), 공손승(公孫勝),창봉술에 능한 교도청에게 고전을 하나 공손승이 그의 술법을 깨우치고 그를 투항시킨다. 또한 신의(神醫) 안도전(安道全)과 돌팔매의 명수인 몰우전(沒羽箭) 장청(張淸)은 적의 여장부인 경영(瓊英)과 전생의 인연으로 꾸며 그녀와 결혼하고 그녀마저도 송강군에 합류시킨다. 삼군의 숨쉴틈 없는 공격으로 전호의 반란도 무너지게 되고 송강군은 또 한 번 승전보를 울린다. 한숨을 돌리던 송강군은 또다시 회서땅에서 왕경(王慶)이 난을 일으키자 곧 천자의 칙지를 받들어 회서로 떠난다. 그리하여 송강군은 왕경을 사로잡고 그가 차지했던 여덟군 여든 여섯 고을을 되찾는다. 승전의 소식이 전해지자 천자는 108명의 호걸들을 도성으로 불러 위로하고, 입운룡(入雲龍) 공손승(公孫勝)은 스승 나진인에게로 돌아가기로 한다.그러나 송강군은 도성에서 간신배들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게 되고 그러던 중 강남에서 난을 일으킨 방랍(方臘)을 평정키 위하여 장강(長江)을 건넌다. 송강과 노준의는 각기 군사를 나누어 방랍군을 섬멸하러 나서지만 많은 형제들을 잃게된다. 많은 형제들의 희생 끝에 방랍군은 평정되었지만 송강은 백여덟이었던 형제들이 서른 여섯만 남게되자 슬픔에 겨워 정성껏 제사를 올려주고 죽은 형제의 명복을 빈다. 육화사에 머물던 노지심(魯智深)은 그의 스승 지진장로(智眞長老)가 예언했던 것처럼 깨달음을 얻어 원적(圓寂)하고, 한 팔을 잃은 행자(行者) 무송(武松)은 육화사에 남게된다. 또한 연청은 앞날이 순탄치 못할 것을 예견하고 떠나며, 수군두령 이준(李俊) 또한 동위(童威)·동맹(童猛)과 함께 떠나게 되니 송강과 노준의를 비롯한 스물일곱의 두령만 천자의 교지를 받들어 제각각 관직을 받고 임지로 떠난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태반이 병으로 인해 죽거나 간신배들의 농간으로 관직에서 물러난다. 게다가 얼마 후 조정의 간신배들은 노준의와 송강이 모반한다하여 천자께 간언하나 천자가 이를 들으려 하지 않자 몰래 노준의는 음식에 수은을 타먹여 죽게하고, 송강에겐 따로 독약이 든 어사주를 내린다. 이에 송강은 수 있을 것 같았다.북송 말기에 탐관오리가 많고 간신배가 득실거렸다 하더라도 영웅·호걸들은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고, 호걸은 호걸을 알아본다.'는 말처럼 서로의 충의에 감복한 108명의 두령들은 둘도 없는 절해의 요새인 양산박에 산채를 차리고 체계를 구축하는데 그것은 가히 일개 국가를 방불케 한다. 수군, 마군, 보군의 삼군을 두고 각기 108명의 두령들마다 맡은 바를 배분하여 조직을 체계화한다. 그러나 이것이 국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형제애와 충의로 똘똘 뭉친 한 덩어리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규율도 엄격하여 그에 따라 상벌이 가해졌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맘에 안 드는 점이 있었다면 그들이 필요한 사람을 양산박에 끌어들이는 방법이었다. 물론 소양이나 김대견 등을 데려올 때는 그들의 가족까지 온전하게 데려왔지만, 노준의나 주동(朱同), 진명 등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였다. 진명의 경우엔 그를 산채에 가담시키기 위해 그가 조정을 배신한 것처럼 꾸며 그의 가족을 모두 죽게 하였고, 노준의의 경우엔 거짓 점괘를 내어 그가 모반한다는 시를 벽에 적게 하여 그를 옭아매었다. 순탄한 벼슬살이를 하고 있고 잘 살고 있는 사람을 그저 자신들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한 것은 못마땅했다. 후에 그들은 하늘에서 정해진 인물들로서 어차피 양산박에 모일 수밖에 없었다는 정당성을 부여하긴 하지만 너무 심한 처사였던 것 같다.호보의(呼保義) 송강(宋江)은 닭모가지 비틀 힘조차 없는 유약한 사람이지만 그의 덕과 인품은 널리 칭송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형제사이의 의리를 중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약간은 이중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충의라는 명분아래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약간은 사리(私利)에 치우친 행위도 행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를 신처럼 따르는 흑선풍(黑旋風) 이규(李逵)는 살인마의 혼이 씌인 것처럼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너무 잔인하다. 하지만 송강 앞에서는 말 를 대의명분으로 삼으면서 관군퇴치를 부르짖던 송강이 대사령을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얼른 양산박을 해체하고 조정에 투항한 것은 약간의 껄끄러움이 느껴진다. 물론 송강 등이 천자에 대항한 것이 아니라 부패한 관리에 대항한 것이니까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관군을 마구 죽이고 싸우다가 나중엔 대사령이 내렸다고 조정을 위해 나선다는 것은 조금 억지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송 조정의 안정과 번영을 추구하면서 아무리 대의명분이 도를 행한다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들도 나름대로 조정의 입장에서 보면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보면 그들이 다른 반란군처럼 왕이라 칭하지 않았을 뿐이지 전호나 왕경의 무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조정에 보여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사령이 내린 것은 그들의 대의명분을 인정해 주고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일아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사실 그들은 전호나 왕경의 무리에 비하여 하늘과 땅 차이의 인품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사령이 내리는 동안에도 간신배들의 농간이 있었지만 제주태수 장숙야처럼 청렴한 이도 있었다. 그는 대사령을 가지고 온 관리들에게 양산박으로 들어가서 그들이 지켜야 할 처신에 대해 충고를 하지만 그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아 일을 번번히 그르친다. 그러나 송강 등이 장숙야의 노고를 치하하여 황금 등을 주지만 그는 그것을 받지 않는다. 또 조정의 부패한 관리들 사이에도 숙태위와 같은 관리도 있었다. 그는 송강 등이 조정에 투항한 이후 물심양면으로 그들을 도와주었다.『수호지』에는 약간은 신비적이고 신화적인 부분이 몇 군데 등장하는데 송강이 운성현에 계신 아버지를 모셔오고자 하여 길을 떠났다가 관군에 쫓기어 환도촌에 들고 그 곳에서 구천현녀를 만나 천서(天書) 3권을 받는 장면은 신화적인 느낌을 준다. 또한 그들이 죽은 전(前) 두령인 조개에게 제사를 올리고 그들의 형제애를 맹세할 때 108명 두령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그러하다. 그
    독후감/창작| 2002.06.02| 7페이지| 1,000원| 조회(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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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