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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결혼은 미친짓이다 평가A좋아요
    *작가소개(이만교)소설가 이만교는 1967년 충주에서 출생하여, 배재대학교를 졸업했고, 현재 인하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1992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 시부분에 당선, 1998년 『문학동네』단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두 개의 단편 「투레질」, 「그 친구」를 발표했으며, 2000년 장편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오늘의 작가상 을 수상했다.저서로는 장편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민음사, 2000), 『머꼬네 집에 놀러 올래?』(문학동네, 2001)가 있다.*작가 이만교의 결혼과 가족 이야기과연 ‘결혼은 미친 짓’인가?미친 것은 도덕이다!“앞에 단어들이 빠졌어요.”‘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결혼’ 앞에 수식 문구가 빠졌단 얘기다.“현실을 간과하고 개인 사정은 볼 것도 없이 무조건 ‘도덕’이란 이름 속에 가두는우리 나라의 결혼 제도가 문제라는 거죠.”그는 우리 나라 결혼 제도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2001년 현재 우리 나라 사람들의 욕망은 극대화되어 있어요. 욕망은 개성과 자유가넘치는 서구 문화에 익숙해져서 이기적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는데, 현실은 욕망을 따라오지 못해요. 특히 IMF 이후로는 더더욱 닫혀 있어요. 빠른 산업화로 가족이 해체되고 있는 마당에 역으로 무조건 가족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건 억지죠.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결혼하면 다른 인간 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당연히 여겨요. 어쩌다 다른이성과 식사를 하다 친척이라도 보게 되면 당장에 ‘바람 피우는 것 아냐?’ 하는 의심을 받게 되잖아요. 그래서야 인간적으로 정상적인 대인 관계를 형성시킬 수가 있겠어요? ‘결혼한 사람이 어떻게…’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도덕적으로 모범인 듯하지만그것은 인간적인 감성을 모두 차단해 버리는 잔인한 행위입니다. 물론 저희 세대는많이 변화하고 있지만.”다양한 인간 관계를 맺다가 실제로 바람을 피우게 된다면?“바람을 피운다는 말보다는 다른 사람이 좋아진다는 말이겠죠. 저는, 서로 사귀다가성격이 맞지 않는 등의 이유로 헤어지는 것은 미혼이나 기혼뒤, 후회하는 친구를 한심스럽게 여긴다. 맞선을 본 날, 택시비보다 여관비가 쌀 것이라며 그녀와 여관으로 향하고 섹스를 즐긴다. 사랑은 없다고 얘기하며 그녀가 다섯마리의 청거북이에 자신을 포함시키는 것조차 거부한다.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남자인 것처럼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과 현실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인간의 이중적인 면을 보여준다.-그녀 : 연애는 마음이 내키는 사람과 하고, 결혼은 조건이 좋은 남자와 한다. 일에 있어서도 결혼에 있어서도 그녀는 언제나 당당하다. 그녀 또한 보통 여자와는 다르게 아무 거리낌도 없이 처음 만난 상대와 섹스를 즐긴다. 결혼을 한 뒤에도 바람 피우는 것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며 그를 만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손수 요리를 만들줄 아는 의외의 여성다운 면도 지니고 있다.- 규진 : 그의 친구로 결혼을 하루 앞둔 날에도 옛여자를 만난다. 그리고 결혼식 전날 결혼식에 들어가니 들어가지 않느니를 두고 술을 마시며 고민하지만 정작 결혼식당일 날은 행복한 얼굴로 나타난다.*소재파악-옥탑방 : 옥탑방은 이야기 속에서 가장 불온한 공간이다. 조건에 맞춰 의사와 결혼한 그 녀는 그의 독립을 부추기고 돈까지 대준다. 이야기의 전반부가 두 남녀의 연애 가 중심이라면 옥탑방의 후반부는 그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캐릭터의 반응이 중 심이다. 전반부에서 쌓여온 연애감정은 이 옥탑방에서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커 져간다. 주말부부처럼 신혼살림을 차릴땐 서로 쿨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 은 소유욕으로 발전한다. 마침내 감정이 폭발하는 곳이 바로 옥탑방이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는 계속 그와 사랑을 하고 외도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은 이 공간에서 사랑을 깨닫는다. 암묵적이지 만 공공연하게 한국사회에서 행해지는 '일부다처제'의 모습을 연희는 옥탑방이 라는 공간을 통해 '일처다부제'로 전복한다.-거북이 : 그가 조카의 생일 날 조카에게 선물한 것이다. 모두 다섯 마리로 거북이들은 그녀의 남자들에 해당한다녀는 서로의 전화를 기다리면서 서로를생각하게 된다. 의외로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은 항상 그다. 그는 그녀의 전화가 오지 않은지 몇주가 되었는지 몇 달이 되었는지를 생각하며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지만 자신이 먼저 연락을 하지는 않는다. 이는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어하는그의 심리상태가 아닐까 한다.*줄거리그와 그녀는 서로의 친구의 소개로 맞선을 보게 된다. 맞선을 본 날 그녀는 전에 선을 봤던 사람과 봤던 영화를 또 보고, 그들은 식상한 대화를 지속한다. 저녁식사를 하러가서 그녀는 술을 못한다고 하면서 한잔을 가볍게 마신다. 그리고 그 둘은 처음 만난 날, 택시비보다 여관비가 쌀 것이라며 여관으로 가 거침없는 섹스를 즐긴다. 그리고 나서 가끔씩 만나 데이트를 할 때에도 항상 섹스는 빠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 그녀는 조건이 더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하지만 결혼을 한 뒤에도 그들의 만남은 지속된다. 그들은 마치 주말부부처럼 함께 밥을 먹고, 잠자리를 같이 한다. 사랑은 없을 것만 같았던 그들이었지만 함께 살아가면서 사랑이 싹트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은 서로에 대한 소유욕으로 발전해 집착을 낳게 되고 종종 싸우는 일도 생겨나게 된다. 그는 그녀에게 더 이상 자신에게 찾아오지 말 것을 이야기 하지만 그녀는 격주로 그의 집을 찾는다. 그러던 중 하루는 심하게 다투고 그들은 헤어지게 된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이렇다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주위만 맴돌게 된다.부정적인 측면1. 진부한 작자의 표현력이 작품의 작자는 전지적인 시점에서 존재하고 있다. 비단 이 작품에만 국한되는 측면이 아니라, 대부분의 대중 소설이 그러하다. 전지적 작자의 위치가 그러한 만큼, 책임과 사념의 부여가 당연하고 엄청난 것은 인지상정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작자 자신의 진일보되는 과정에 놓여있기에, 이런 상황의 극복은 작자의 재량과 사소한 관심 등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우리 인간은 서로가 다르다. 그중에서도 같은 성격과 배경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한 타인과 주체적인 자이들은 여자주인공이 결혼하기 전까지 매우 드물게 만난다. 결혼하고 나서야 지속적인 만남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자 주인공은 그전에 이미 남자 주인공과 동일한 형태의 사념과 행위를 벌인다. 불과 3~4번을 만나고 말이다. 이는 작자의 불성실한 창작행위와 진보되지 않은 지지부진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나아가서 작품의 질적 수준을 격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수준의 가치 기준이 문학의 성격상 거론되는 것이 문제가 있지만 수훈하고자한 탈(00 작가상)을 쓰는 작품이라는 명예를 우리는 불허한다. 작자의 의도상의 문제를 주관적인 이해로 몰고 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작자의 의도가 어찌되었던 간에 독자는 무조건적인 수용과 이해를 피해야 한다.2. 어긋난 세계의 인식과 인물의 특출한 성격이 빗은 거리감 GAP다음으로 작중 서술자로서 주류를 담당하는 남자 주인공의 언술 형태가 빗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작중 세계, 혹은 지금의 현실에 살고 있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결혼 적령기의 사람들이 살아온 세계의 남자 주인공은 그가 겪어온 과거와 현실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를 해오고 있다. 그는 그가 겪어온 시대상과 그 시대와 함께해온 인간들의 삶과 의식마저 부정적이고 회의저인 지정을 일삼고 있다. 이러한 남자 주인공의 설정에서 독자는 일부분에서 인정을 하지만 망설임을 수반한다. 이는 편파적이고 극단적인 행태인 것이다. 물론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작중 인물을 설정함으로써 작품 속에서 현실의 리얼한 반영과 독자의 의식을 꿰뚫는 시선으로서 반성과 교훈을 줄려는 작자의 의도일 수도 있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어떻게 할 것이라는 미래관이 부재한다. 즉, 이 작품은 단순한 현실의 반영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그러한 반영의 방향이 극단적이고 편파적인 수준에 머물러서 독자와의 벽 을 만든다. 또한 위에서 언급하였지만 작중 서술자로서의 위치에 있는 남자 주인공의 언술방식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이, 그의 사고방식은 매우 평범하지 않다. 어느 누가 평범한 일상속의 대화체에서 철학적인 화것이다. 주체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그 밖의 개별적인 것들의 이해가 성립될 때, 좀더 행복이라는 추상적 욕망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4. 주체 상실이 책의 부제에서 '텔레비전', '채널' 등의 단어들을 볼 수 있다. 이는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즉, 텔레비전의 채널이 바뀌듯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을 보이고 있다. 한 가지의 부제와 연관지어 읽어나가고 있으면 또 다른 채널로 바뀌어 새로운 부제가 등장하는 것이다.여기에서 독자는 의아함을 갖게 된다. 우선, 이야기의 처음 부분에서 가족들의 행동에 대한 하나 하나의 세세한 표현들이다. 이는 지나치리만큼 말을 길게 이어나감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지루함을 갖게 한다. 평범한 일상생활의 모습과 인물들의 사소한 행동 묘사는 진부함을 느끼게 하고 굳이 이런 세세한 표현이 필요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또한 삶의 모습을 한편의 연극이나 드라마와 같은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중간마다 계속해서 '#'이 등장한다. 씬이 바뀌면서 장면이 전환되어 마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을 준다. 이것은 이야기 자체를! 하나의 소설이라기보다는 드라마의 대본으로 축소해서 보게끔 만든다. 즉, 그들의 활동 모두가 하나의 짜여진 드라마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결혼이나 직장 생활은 정해진 대본처럼 상투화되어 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맡겨진 배역에 충실하고 지시한 대로 따르기만 하는 수동적 인물들이다. 이 소설은 그러한 연기자들을 탄생시킨 것이다.여기서 주체는 상실된다. 그들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대로 역할을 하는 '탤런트'가 되는 것이다. 텔레비전과 현실을 혼동하게끔 만드는 이야기 구조로 인해 그것이 다만 극중 이야기였다는 것을 은연중 드러낸다. 서로 어긋나는 삶의 공식들 속에서는 텔레비전처럼 채널을 돌리면 된다. 이것이 하기 싫어지면 저것을 하는 식이다. 삶의 모습을 채널 돌리듯 단순하게 바꾸는 모습은 자아를 상
    인문/어학| 2007.06.18| 7페이지| 1,000원| 조회(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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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장정일<아담이 눈뜰때>를 읽고
    문학과 문화장정일를 읽고“...끊임없이 새로운 노래를 찾아 유행에 발맞추려는 자는 새것과 속도의 탐욕에 걸린 자이며, 진정한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자이다...”학 번 :학 과 :학 년 :성 명 :‘아담’혹은, ‘이브’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들은 최초의 인간이다. 최초의 인간을 지향하는 자중 인물들의 혹은, 작가 장정일의 이상적인 인간인 것이다. 이러한 이상향의 추구는 당시 시대적 배경에서 보여 지고 있는 사회제도나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비롯된다. 그들이 지배받고 있는, 억압당하고 있는 제도나 예도 등에서의 탈피와 도피를 간접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주인공과 은선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이들은 그러한 억압과 제도에 비판하여 마치 자유를 추구하듯이 성관계를 갖는다. 또한 주인공이 지방대학에 들어간 은선을 자신의 ‘이브’로 생각하고 그녀를 구속하려하자 은선은 거부한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속박을 당하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가짜 낙원에서 잘못 눈을 뜬 아담처럼, 내 이브는 창녀였으며, 내 방은 항상 어둡고 습기가 차 있다. 어쩌다 책이 썩는 냄새를 없애려고 창문을 열면, 네온의 십자가 아래서 세상은 내방보다 더 큰 어둠과 부패로 썩어가고 있다. 나는 내가 눈 뜬 가짜 낙원이 너무 무서워서 소리 내어 울었다...”) 작중 주인공에게 있어서 그녀는 ‘낙원’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녀의 거부로 인해 그는 낙원이란 실재하지 않는 허구임을 깨닫고 그가 추구했던 이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무의식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것임을 인지한다.(“...문장을 쓰는 일에서 나는 내가 그토록 원했던 창조의 아픔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 고통은 가짜 낙원을 단호히 내 뿌리치고 잃었던 낙원, 실재, 진리를 되찾는 데 쓰이는 아픔이다...”)제목에서 그대로 표현하고 있듯이 본 작품은 어쩌면 주인공, 즉 아담이 눈뜨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장정일은 당 시대의 사회제도가 자유의지를 지닌 자아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그리고 있으며 또한 당시대의 현실을 이러한 지배와 억압으로 인해 수준의 차이를 판가름하고 지배, 억압, 통제와 규제들을 통한 획일적이고 권위적인 통제가 즐비 하는 곳으로 그리고 있다. 첫머리에 쓰여 있는 작가의 말 중에 ‘세기말적인 상상력’과 ‘세기말적인 징후’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러한 단어들은 아담이라는 세기 초의 이미지와는 대립적이다. 하지만 장정일은 이러한 대립적인 이미지들의 형상화로 인해 역설적으로 세기말적인 징후들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의 결정체를 이끌 수 있는 수단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장정일이 수단으로서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이끈 것은 턴테이블과 타자기 그리고 뭉크의 ‘사춘기’라는 유화의 사진이다.(“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턴테이블은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도구이다. 또한, 본 작품에서 등장하고 있는 음악가와 음악들은 상당히 비관적이고 비트가 강한 음악(짐모리슨, 비틀즈 등)이며 본 작품의 주제와 상통하는 사회비판적인 색체가 있는 음악가들과 그들의 음악이다. 턴테이블은 이러한 음악가들과 음악들을 작중 자아와 이어주는 매체로서 작용하고 있다. 자아가 음악을 청취한다는 행위는 현실과 분리된 혹은, 상이하고 대립한 또 다른 공간과의 접근을 의미한다. 장정일은 앞에서 언급한 성행위뿐만 아니라 음악이라는 턴테이블이라는 매개를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현실과의 분리되는, 현실과 동떨어진 자아를 그리고 있고 그것은 장정일 자신이 바라고 있는 이상일지도 모른다. 또한, 타자기의 역할은 본 작품의 처음부분에서 작중 주인공이 언급했듯이 이야기를 문자화시킬 수 있는 매개이다. 실제로 겪었던 경험들을 문서화시킨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끝을 예고한다. 이야기는 단순한 작중인물들의 삶이 아니라 당시대의 현실을 암시한다. 즉, 장정일은 사회비판의 목소리로 부정적은 측면들을 비판하고 지적하는 것으로 처음과 중간을 장식하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독자에게 나름대로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겸손과 인내는 문장을 쓰고자 하는 나뿐 아니라, 가속도의 낙원에 살면서 좀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마지막으로, 뭉크의 사진은 작중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화집 속에 없어져버린 사진은 자아의 당시대에서의 존재감, 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작중 주인공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들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끊임없이 새로운 노래를 찾아 유행에 발맞추려는 자는 새것과 속도의 탐욕에 걸린 자이며, 진정한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자이다...”)
    독후감/창작| 2007.06.18| 4페이지| 1,000원| 조회(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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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REPORT본보고서의 주된 주제는 ‘탈구조주의비평이론’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탈구조주의’라는 용어 자체에서 내포하고 있듯이 구조주의 비평이론을 간과하고서 탈구조주의를 논할 수 없듯이 구조주의 비평이론의 피상적이나마 선행적 검토 통해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탈구조주의가 구조주의의 꼬리표와 같이 기생적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혹은 비단 구조주의뿐만 아니라 모든 비평이론들을 초월하는, 그 한계를 넘어선 비평이론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서의 발표시에 본인의 미흡했던 학습으로 논의되지 못했던 탈구조주의 이론이 학계에 모습을 드러내었던 어쩌면 근원적인 연유라 할 수 있는 형이상학이론에 대해서부터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 탈구조주의 비평이론에 대해(발표시에 미흡했던 부분들을 위주로) 접근을 시도했다.(당연히 교수님의 승낙이 선행되어 본인은 깊은 경외심을 표하고자한다. 한학기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형이상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존재 자체를 탐구하는 것이며 그에게 본질적으로 귀속되는 것에 대해 해명하는 것이다. 형이상학은 요컨대 ‘존재의 의미’를 규명하는 학이다. 세계에 대한 이해는 물론 모든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그의 형이상학에서 전적으로 새롭게 특징적으로 성취된다. 현대적인 의미의 모든 개별과학들은 각기 그 영역에 걸맞은 특별하고 구체적인 존재자의 의미를 탐구한다. 식물세계와 동물세계의 존재자를 탐구할 때 식물학과 동물학이 성립되며 인간 존재자를 그 특별한 질적 구별에 따라 탐구할 때 의학, 윤리학, 미학, 종교학 등의 학문이 성립된다. 그러나 존재는 이러한 개별과학의 탐구대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의미만을 지니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개별적인 존재자에 구체적으로 관계하면서도 또한 이들의 근거로 앞서 전제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보편적인 의미를 지닌다. 우리들은 개별적인 존재자에 대해 의학이나 물리학과 같은 개별과학을 통해 탐구하면서, 동시에 모든 개별과학의 근거가 되는 보의 근거라는 의미는 실제적으로 전혀 통용될 수 없겠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적인 존재근거의 탐구를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현상적인 세계와 무관한 영역에 있는 근거를 설정함으로써 현상의 세계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라기보다, 우리가 현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존재자들의 내적 근거를 밝힘으로써 현상의 세계를 실제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근거에 대한 이러한 물음은 당연히 모든 존재자들의 궁극적인 근거에 대한 물음으로 진행하고 여기서 제일의 근거 내지 근거들의 근거에 대한 물음이 ‘제일철학(erste Philosophie)’이나 ‘신론(Theologik)’으로 전개되지만, 중요한 것은 근거에 대한 이 모든 물음이 현상의 세계와 무관한 물음으로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요컨대 형이상학은 존재에 대한 탐구부터 시작한다. 즉, 형이상학은 존재의 속성에 대한 탐구이며 형이상학은 존재의 보편적 특성에 대한 탐구이다. 보편적 특성을 범주로 부를 수 있다면, 형이상학은 존재와 그 범주에 대한 탐구이다. 총체적으로 말해서 형이상학은 존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하는 형이상학의 과제는,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탐구하고, 존재자의 본질과 그에게 속하는 규정들을 탐구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제일철학’으로 부른다. 이는 ‘신학’이나 ‘지혜’로 불리어지기도 한다. ‘제일철학’을 특히 ‘지혜’라 부르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존재자에 대해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서서 그 ‘최초의 원인’을 알고 그 원리를 알 때 ‘지혜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혜가 곧 실천적 행위의 지혜나 외적 목적과 사용을 위한 지혜는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순수한 이론으로서 형이상학 자체를 위해, 그리고 그 자체 때문에 존재자의 본질을 구하는 ‘자유의 학’이며 모든 것을 그 자체로 탐구하는 ‘보편학’이다. 보편학인 형이상학에서는 모든 사실로부터 사료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것, 즉 존재자의 원리가 ‘신적 존재’로 고찰된다. 신적 존재는 모든 존재자의학의 과제는, ‘존재자 그 자체에 부과될 수 있는, 따라서 최고의 보편적인 규정들인, 서술어를 개념적으로 정초된 연역을 통해 상술하는 것이다.’ 이 규정은 존재자에 대한 사유의 반성적 관계를 통해 발전된 것인 만큼 존재자의 외부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존재자 자체의 ‘원리’와 ‘형식’이며, 동시에 ‘존재와 사유의 형식규정’이다. (추후에 형이상학의 발전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벌써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존재자의 존재자를 규명함으로써 최고의 존재 혹은 ‘보편적인 존재를 모색’하려고 했던 것이 그 보편적 ‘규정’의 정립에 몰두하게 되면서 ‘존재의 원리와 형식적 규정’에 대한 파악에 이른 것이다.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탐구한 형이상학은 ‘존재의 학’에서 존재의 제일원리를 탐구하는 ‘원리의 학’ 내지 ‘인식의 원리에 관한 학’이 된다. 전통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적 해체의 길은 여기서 시작된다.)하이데거의 전통형이상학에 대한 비판과 형이상학적 물음의 전환아리스토텔레스가 설정한 형이상학적 물음의 근간은 탐구하려는 데 있고 은 곧 으로 전개된다. 그에게 있어서 존재물음은 곧 본질물음으로 제기되며 본질은 여기서 實體의 의미로 물어진다. 존재자의 본질에 대한 물음은 존재자의 다양한 존재방식을 규정하고 통일시키는 ousia에 대한 물음이며 이것은 동시에 본질의 최종근거와 원리에 대한 물음이다. 이러한 물음의 전통은 칸트와 헤겔을 거치면서 더욱 주관화되어 존재자의 본질규정은 곧 이 규정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사유의 규정능력과 그 형식에 대한 물음을 야기하여, 결국 絶對知에 의해 파악되고 사유되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데까지 이른다. 존재 자를 존재 자로 탐구하려는 형이상학적 전통은 존재자의 본질을 실체의 의미에서 규명함에서 출발했다면 그 근대적 완성은 이제 라는 관념론적 입장에서 그 완성을 경험한다. 이러한 전통에 대해 반기를 드는 하이데거는 존재에 대한 물음이 결코 본질에 대한 물음이 될 수 없으며 본질도 실체의적으로 종합된 헤겔의 개념도 아니고, 관찰과 그에 대한 서술로 이루어지는 후설(Husserl) 현상학의 내용도 아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의 의미와 그에 대한 경험은 이런 의미에서 전혀 이론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행위와 수행’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의 의미’라는 문제로 전통 형이상학의 존재에 대한 해명의 시도를 넘어서려 한다. 그것은 전통 형이상학에서 존재에 대한 일관된 해명으로 받아들여졌던 ‘실체로서의 존재’와 ‘주체로서의 존재’ 이해이다. 하이데거가 상정하는 새로운 형이상학의 과제는 요컨대 이들 이라는 문제에 그 중심점이 있다. 그의 초기 대작인 「존재와 시간 Sein und Zeit, 1927」은 인간존재 뿐 아니라 사물존재를 형이상학적으로 고찰함에 있어 전통적인 범주, 이를테면 실체와 주체 등은 이에 걸맞지 않음을 증명해 보이려 한다. 그는 이들 존재에 대한 보다 더 근원적인(ursprunglich) 규정을 발전시키려 하는 것이다.‘존재와 시간’에서의 하이데거는 사물의 본질을 규정하는 데카르트적 실체(res extensa)와 대결한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res extensa는 ‘지속적인 머묾 standiger Verbleib’의 의미를 지니며, 이는 ‘지속적으로 눈앞에 있음, 지속적인 사물적 존재성 (standige Vorhandenheit)’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지속적으로 눈앞에 있음’은 ‘사물이 눈앞에 있음 Dingvorhandenheit’ 내지 ‘實在’를 뜻한다. 하이데거의 눈에 비친 데카르트적 실체(res extensa)는 전통적인 존재의미 가운데 하나로서 ‘현존’의 의미를 지닌 ‘物的 存在(Dinglichsein)’, ‘눈앞의 존재 (Vorhandensein)’에 불과한 것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현존과 눈앞의 존재를 사실상 구분한다. 이러한 존재의 의미는 사물존재 뿐 아니라 인간존재에게도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하이데거의 입장이다. 철학은 데카르트에서 헤겔의 정신에 이르기까지 ‘자명한 듯 보이는 실체존재론의 지배 아래적 존재’가 아니며 자기관계의 운동 가운데 있는 존재이다. 전통에서도 ‘범주’를 인간 외적인 존재 자들에 사용했다면 하이데거의 인간존재에 대한 규정은 당연히 ‘실존’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서는 ‘왜 도대체 존재자이며 오히려 무는 아닌가.’라는 물음이 근본주제를 이룬다. 형이상학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사유는 ‘표상적 사유’에서부터 ‘회상적 사유’로의 전이가 이루어질 때 가능하며, 이는 ‘존재의 진리’에 대한 사유로부터 ‘불안과 무’에 대한 사유로의 전이이다. 존재 자로서의 존재 자를 표상하는 ‘표상적 사유나 인식’은 존재 자를 위한 최초의 원인과 근거를 탐구하기에 부적절하다. 존재 자에 대한 물음에서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나아가고 다시금 무를 추구할 때 진정한 존재의 진리가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 형이상학에 대한 하이데거의 핵심 생각이다. 어떤 사유가 형이상학의 근거를 경험하기로 결심하는 한, 즉 이 사유가 오직 존재 자로서의 존재자만을 표상 하는 대신에 존재 자신의 진리를 사유하려고 하는 한, 이 사유는 형이상학을 이미 내던지고 있다. 형이상학은 존재의 진리에 대한 사유에 의하여 극복되어 있다. 형이상학의 극복이 곧 형이상학의 배제를 뜻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이성적 존재인 한에 있어서 형이상학에 대한 물음은 칸트의 경우에 있어서와 같이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형이상학은 무엇으로 마련되어야 하는가. 존재의 진리에 대한 물음을 전개함에 있어서 형이상학의 극복이 논의된다면 이것은 ‘존재 자신의 회상’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회상은 철학의 뿌리의 근거를 사유하지 않는 종래의 경향을 넘어서 일어나게 된다. 『존재와 시간』(1927) 속에서 시도된 사유는 이같이 이해된 형이상학의 극복을 준비하기 위하여 출발하였다.형이상학에 있어서는 니체에 이르기까지의 그 역사를 통하여 존재의 진리가 은폐되어 있다. 존재의 진리가 감추어져 있을 뿐 형이상학은 이 존재를 드러내 보이려는 노력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존재망각의 역사’는 바로 이것 있다.
    인문/어학| 2007.06.18| 5페이지| 1,000원| 조회(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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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The Division of Labor in Society 평가A좋아요
    )고전사회학이론들어가는 말뒤르켐은 본고에서 사회의 발전으로는 기계적 연대에 대한 유기적 연대의 지배가 증대는 역사적인 흐름이라고 피력한다. 다시 말해서, 처음에는 기계적 연대만이 존재하거나 그에 가까운 상태에 있다가 기계적 연대가 점차 사회의 발전에 따라 그 기반을 상실하게 되고, 유기적 연대가 점차 우세해지는 것이 역사적 법칙이다. 또한 원시미개사회의 기반으로 존재했던 도덕적 가치는 유기적 연대로 넘어오면서 분업이 그 기능을 대신한다. 여기서 사회적 연대의 형태가 변동할 때, 사회구조도 변화하고 그 변화의 방향은 유기적 연대으로의 방향이며, 유기적 연대가 중요한 사회원리가 되는 복잡사회에서는 법, 제도등과 같은 2차적 관계가 개인들 간의 관계를 규제하고 통제하는 원리로 작용하게 된다. 즉, 개인들 간의 갈등의 해결을 위한 중개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제시하기도 하였다.서론(앞으로 논의 될 과제)분업의 일반적 성격 - “유기체(사회)의 기능이 분화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보다 발달되어 있다.”(pp 390)▷ 분업은 자연의 법칙이면서 동시에 인간 행동의 도덕적 규율이지만, 그러한 도덕성과는 구분지여야 한다.“사회는 사회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모든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에 동조하여 그 운동에 순응”(pp 391)▷ 분업의 부분적인 위험성과 평가 기준도덕론자들의 주장은 협소하고 주관적인 것일 뿐이며, 분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분업과 도덕성과의 구분으로 귀결될 것이다.“분업의 원리가 더욱더 완전하게 적용된다면 기술은 진보할 것이고 기술자는 퇴보할 것이 다.”(pp 393)“그들은 부분적인 필요를 제시할 뿐이며… 한정적이고 명확히 절실한 요구를 어느 정도 채워줄 수 있을 뿐이다.”(pp 393)“분업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성공…분업의 원인이 다른 도덕적 규범의 결정요인이 되 기도 함이 밝혀진다면, 분업이 도덕적 관행 속에 분류되어져야 함을 결론지을 수 있 다.”▷ 논의 할 과제 - 과학적인 고찰)① 분업의 기능(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분업의 역할)② 않는다면, 분업은 도덕적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고 존재의 이유를 발견하기도 어렵다.”▷ 분업의 목적은 사회적 유대, 즉 사회의 존속(유지)에 있으며, 그러한 유대는 사회적 형태(조건)들의 유사성뿐만 아니라 상이성에 기인한다.ex) 친구사이의 우정과 부부사이의 사랑.서로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위해, “소규모 친목집단이 형성되고, 그 집단에서는 각 자가 자신에게 알맞은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서로 서비스를 교환하게 된다. 이러한 친 구관계를 특정 짓는 것은 그 기능의 분담, 즉 분업이다.”“분업의 목적은 친우들 사이에 유대를 일으키고 그것을 유지하는데 있다.”(pp 402)- 부부들 간의 (성적)상이성만이 (성적)분업의 결과(유대)를 가져오지만, 그들의 (기능 적)유사성은 (성적)분업의 전제가 된다.“상호간의 보완을 가져오는 상이성만이 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남자와 여자는 서 로 분리되어 있지만(성적 분업) 사실은 동일한 우주의 상이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며, 서로 결합함으로써 그것을 재구성하는 것이다.”(pp 402) 그러나,“해부학적 유사성은 기능적 유사성을 수반한다.”(pp 403)“분업의 가장 중요한 효과는… 연대를 제공하는 데 있는 것이다.”(pp 405)“분업의 경제적 효용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분업은 경제적 이익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며, 그 자체로써 사회적?도덕적 질서의 확립에 기여한다. 분업을 통하여 개인들은 서로 유 대되는 것이다.”(상동)▷ 교환관계(피상적 이미지)와 유대관계(내면적/영속적 이미지)분업에 의한 사회는 교환관계의 기능이 아닌, 유대관계이다. 다시 말해, 유사성으로 인한 융합이 아닌 상이성으로 인한 상호보완적인 결합이다.“교환관계자로서의 분업은 두 존재가 서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상호의존하게 되며 그 상호 의존을 외형적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이것은 내면적이고 깊은 심층의 상태를 피상적으 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한 상태는 영속적인 것이기 때문에 교환관계가 지니고 있 지 않은 연속성으로 기능하는 이미지의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 에 대해서 손실이나 고통을 주는 형태.“법은, 법이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며 모든 개인들은 그 직책이 무엇이건 간에 사 회의 기능수행자들이라는 의미에서는 공법이다.”(pp 411)② 배상적 규제(형벌 규정이 있는 법규를 제외한 법규) : 손실된 사물을‘원상대로 회복시 키는’형태.“법은 언제나 생존하고 활동하는 개인들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모두 사법이다.”(〃)제 2장 동류성에 의한 기계적 연대“동일한사회의 모든 성원들에게 공통된 의식(기계적 연대)의 상태로부터 유래하는 사회적 연대가 있다. 그 연대를 억압적 법률이 구체적으로 대표하고 있다.”▷ 억압적 법률에 위반하는, 즉 사회적 연대에의 관계를 파기하면 범죄이며, 행위자는 형법적 반응을 받는다.“범죄의 유일한 공통성은 … 각 사회의 성원들에 의해서 보편적으로 부정되는 행동”(pp 416)“범죄는 특정한 사회체계에서의 모든 건강한 의식인 감정에 충격을 준다.”(상동)“범죄란 기본적으로 강력하고 확정적인 공동의식의 상태에 반대되는 행동”(pp 440)▷ 범죄는 단순한 집합의식의 위배가 아닌 적대적인 대립에 있다.“범죄와 특정 집합감정 간의 적대관계… 그 적대관계는 범죄를 구성하는 조건이며 범죄의 파생적 결과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한 행동이 범죄적이기 때문에 집합의식에 충 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공동의식에 충격을 주기 때문에 범죄적”(pp 422)▷ 이러한 범죄에 의해 처벌은 자기 방어를 위한 보복의 수단으로서의 특성을 갖는다. 이는 (개인적 성격의)사적보복과는 달리 (사회적 성격의)억압적 법률을 의미하며 “특정한 행위 규범을 어긴 성원들에 대해서 일정한 기구를 통하여 사회가 행사하는 정도가 다양한 감정적인 반응”(pp433)이다.처벌은 자기 보존의 본능이라는 보복적 수단이라는 특성을 갖으며, 개인들의 보복인 사적 보복으로부터 기원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사회가 처벌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개인들로부터의 위임이다. 사회는 개인들의 대표자일 뿐이다. 사회는 아마 개인들보다 집합감정은 다른 집합감정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성격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일정한 평균적 강도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감정은 어중간하고 피상 적인 감정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깊이 뿌리박힌 감정과 경향이어야 하는 것이다. 형법의 진화가 매우 느린 속도를 갖는다는 것이 그 좋은 증거이다.”(pp 419)즉, “동일사회의 평균적인 시민들에게 공통된 신념과 감정의 총체는 그 자체의 삶을 갖 는 확정적인 체계를 이룬다.”그러한 집합의식은 “그 기초가 되는 특정 기관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성격상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확산되어져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독특한 실 체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집합의식은 개인이 처하고 있는 특정한 조건과는 관계가 없으며, 특수한 조건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집합의식은 개별적인 의식 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긴 하지만 개별적인 의식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그것은 개 별적인 의식과 마찬가지로 그 독자적인 속성과 존재의 조건 및 발달양식을 가지고 있는 사회의 심리적 유형이다.”(pp 421)▷ 형법에 상응하는 사회적 연대의 유형들은 “결국 하나이며 유일하고 동일한 유기적 기관이기 때문에” 서로 관련된다. 즉, 연대적이다. 또한 억압적 법률이 표현하고자하는 것도 이러한 연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의 두 가지 종류 역시 연대의 유지를 위한다.① 개별적 개인의 퍼스낼리티를 표상하는 유형(개인적 유형) : 개인들의 결합은 그들의 원활한 기능을 위해 전체를 유지하게 한다.→ (개인의)행동이 행위자와 집합 유형간의 심각한 불일치를 초래하는 범죄.“그들이 집합적 유형의 전제조건, 즉 그들의 결합을 통해서 형성되는 사회에 참여하기 때 문에 그들은 서로간의 친화력을 갖는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정신생활의 중 요한 부분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에 대해서와 마찬가지 로 국가를 원하고 국가의 영속과 번영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들 특정지우는 각 개인의 개별적인 상태”(pp 440)② 집합 의식을 표상태의 표상-를 들어 집합적 의식이 범죄의 전제를 이룬다고 피력한다.)“(강력한 의식을 약화시키는 것은 반대상태의 표상은) “서로 반대되는 감정으로 필요할 뿐 아니라 유용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을 일으키는 원인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어서 그들은 그 원인의 유지에 기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분노가 파괴적인 감정 일 뿐이므로 무용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지만, …그것은 잠재적이고 폐기할 수 있는 힘 의 여분이며 우리의 개인적인 감정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것을 강화함으로써 도움을 주 는 힘이다.”(pp 435)“범죄가 침해하는 감정은 특정한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집합적인 감정이며, 그것은 특히 공동의식 가운데에서도 강력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대를 용인할 수 없 다.… 피해를 입은 질서를 회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며, 우리는 보다 강렬한 만족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범죄에 대항하는 힘은 완곡하게 반응하기에는 너무 강하 다. 뿐만 아니라 완곡한 반응은 스스로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으며, 집합감정이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그 같은 강력한 반응으로 인한 것이며, 그로인해 같은 정도의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다.”(pp 436)“집합감정들은 서로가 언제나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스스로 강화해야 한 다. 그 유일한 방법은 공통된 행동이다. 공격받은 것은 공동의식이므로, 저항하는 것도 공동의식이며, 따라서 그 저항은 집합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pp 438)“집단이 추장 개인에게 현신되었을 때에는(집합적 의식이 확정/조직되었을 때에는), 그 가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형법적 반응의 기관이 된다. 그리고 그 조직은 모든 유 기적 발달의 일반적 법칙(사회적 조직)에 따라 인도된다. 따라서 집합 감정의 성격이 처 벌의, 범죄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pp 439)3. 분업에 의한 유기적 연대▷ 억압적 규제는 사회적/집합적 연대에 상응한다. 그에 반해 배상적 규제는 사회성원으로서의 개인적 연대에 상응한다. 또한 전자는 개인과 사회의 직9)
    인문/어학| 2007.06.18| 9페이지| 1,000원| 조회(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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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감상] 영화'도그마'를 보고
    영화 ‘도 그 마’를 보고본 영화는 처음에 긴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결코 종교에 관한 영화가 아니며, 논쟁을 결코 원하지 않고, 그저 웃기려고 만든 영화라고 하는 식의 자막이다. 본 영화의 줄거리와 장면들을 결합해서 소개하고 본 영화의 감상 평을 덧붙이고자 한다.어떤 노인이 어느 해변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가 소년 셋에게 폭행 당한다. 하늘로부터 쫓겨난 타락천사들이기에 죽지도 못하고 세상을 방황하고 있는 두 천사에게 날아든 익명의 편지를 받아든 것으로 본 영화의 장면은 시작한다. 편지는 어떤 성당의 축성식에 관한 신문기사를 찢어낸 조각이다. 그들은 축성식에 참석하여 그 성당문을 들어서면 그들은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 성당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계획한다. 이들이 천국으로 되돌아가면 우주적 질서가 균열이 생기기 때문에 이를 막을 수 있는 예수의 마지막 후손인 여자 산부인과 의사와 도중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떨어진 한 벌거벗은 사도, 뮤즈라는 여자 그리고 예언자라고 하는 평범한 두 청년, 이렇게 다섯 사람은 두 천사의 천국행을 막으려 한다. 하지만 천사들은 이미 세상을 파괴하기로 결심한 상태다. 한 천사는 성당 앞에 모인 축성식 참석자들을 모두 학살하고 스스로의 날개를 잘라버린다. 다른 한 천사는 처음에는 과격한 파괴를 반대했었지만 신으로부터 여전히 방황의 해답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절망하여 이제 더욱 완전한 파멸을 원하게 된다. 그리하여 날개를 자른 천사가 마지막 순간에 주저하게 되자 그를 칼로 찌르고 성당 문을 들어서려 한다. 이때 예수의 마지막 후손은 신을 발견해서 신은 성당 문으로 등장한다. 그렇게 해서 결국 두 천사의 천국행을 막는다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이야기이다. 본 영화의 주제는 결국 신을 구함으로써 세상이 구원되고 세상이 구원됨으로써 인간은 다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로 결말을 짓는다.도그마란 교의, 교조, 교리로 해석되고 있는데, 본래 카톨릭 교회에 있어서 신앙상의 진리에 관한 불변의 정리로서, 초자연적인 계시에 근거하여 정해지며 명확히 한정적인 말로 표현되었던 것, 도그마에는 이성의 비판이 허용되지 않으며 신자는 무조건적으로 믿어야만 한다. 여기에서 일반적으로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으로 신봉되고 주장되는 명제나, 구체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고정적으로 주장되는 명제를 도그마라고 한다. 본 영화를 보면서 철학적 언명(그것이 종합적 명제이냐 분석적 명제이냐에 상관없이)에는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공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그러나 이 것은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공리를 알고자 하는 노력은 포기되어야 한다'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고뇌에 찬 연구 끝에 발견해낸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항상 미래의 연구에 대해 '취약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취약성을 갖지 않는 공리야말로 광신도의 교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편, 세상을 규정하는 명백한 공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이론이 환원주의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즉, 어떠한 이론도 이 삼라만상을 예외 없이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본인이 내려야할 결론은 extreme이 아닌 modification이였다. modification이란 단어는 ‘수정’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지만, 그보다 ‘제한’이라는 권장할 만한 뜻도 포함하고 있다. 극단이 아니라 제한. 우리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하나의 지적 전통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현 상에 대한 환원적이고 본질적인 설명을 지향하기보다는 제한적이고 복합적인 설명을 추구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떠한 메카니즘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문/어학| 2004.01.25| 2페이지| 1,000원| 조회(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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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2일 토요일
AI 챗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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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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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