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란 제목 그대로 자본주의의 탄생 과정과 그 발전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중세 봉건제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 농노들은 장원에 속해 있으며, 그 장원을 보유하고 있는 자는 영주이다. 농노들은 각각 부역의 의무를 지고 있으며, 추가 봉사 라는 명목 하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영주와 관련한 일들을 우선 처리 해야했다. 이러한 일들을 받는 대가로 영주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장원 내의 농노들을 보호하였다. 그리고 중세에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교회이다. 교회의 영향은 지금과는 달리 거의 절대적이었다. 교회에서 결혼을 금지하는 이유가 신에게 몸과 마음을 바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성직자의 자식들에 대한 상속으로 교회 토지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교회는 십일조를 거두었는데, 이는 이윤의 1/10이 아닌 수입 전체의 1/10이였기 때문에 부담은 훨씬 컸고, 게다가 수확한 곡물에서 경작 비용을 공제한 후에 십일조를 바친 농민은 지옥에 떨어지리라는 저주 도 하였다. 이러한 교회의 횡포와 영주에 대한 부역으로 농노들은 점점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였고, 그에 반해 교회와 영주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당시에는 시장 등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인 재물은 사용되지 않고 계속 축적되기만 하였다. 그러던 중 십자군 원정이라는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초기 십자군 원정은 종교적 목적에서 시작되었지만, 회가 거듭할수록 종교적인 목적보다는 여러 계층사람들의 세속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이 더욱 강해졌다. 십자군 원정은 동방의 대도시를 점령, 파괴, 약탈을 함으로써 아랍권 도시의 쇠퇴를 초래한 반면, 서유럽은 금, 은 등의 재보를 획득함으로써 커다란 부를 집적하였다, 게다가 원정 비용 및 동방 무역발전에 따른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 귀금속의 수요 증대가 화폐유통의 촉진과 화폐 경제 발달을 가져왔고, 동방의 여러 가지 생소한 상품과 신비스런 물건들은 그것에 대한 소유욕을 야기 시켰고 곧 수요의 증대에 연결되었다.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동방과의 무역량이 늘어났고 그 늘어나는 수요량을 재래의 시장만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규모의 정기시장이 설립되었고 정기시장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서 정기시가 열리는 곳에 사람이 많이 모여 살게 되었다. 또한 거래량이 늘어남에 따라 화폐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영주들은 곧 지대를 화폐로 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화폐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상공업이 발달하였고, 중세도시는 상공업의 중심지로서 발달하였다. 공업부문에서는 가내 수공업에서 장인이라는 새로운 집단이 생겼다. 예전엔 자기가 만든 물건을 팔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팔 수 있었고 그들은 많은 이익을 취하기 위해 일했다. 장인들은 그들이 단결하면 그들에게 이로울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결국 길드 라는 이름으로 단결했다. 길드 는 길드회원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는 엄격히 대하였고, 장인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장인과 친인척 관계가 아닌 사람들은 장인으로 되기도 힘들어졌다. 한편 왕들은 화폐를 주고 고용한 상비군들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봉건영주와의 관계보다는 시의 발달로 인한 세금에 더 관심을 보이게 된다. 이는 봉건영주와 투쟁하는 시민들의 이해관계와 일치해서 왕과 시민은 단결해서 봉건제후들을 견제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국왕중심의 국가가 탄생했고 안정되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왕 또한 시민들의 이익에 배치되었다. 시민들에게 유익하리라고 생각해 제정되었던 법률은 나중에 오히려 발전하는 상공업에 걸림돌이 되었다. 시민들은 이러한 규제들을 없애 싶어했지만 국왕이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시민들은 그들의 실력을 이용해서 국왕에게서 권력을 뺏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시민들은 성공했고 국왕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한편 산업의 발달로 인해 생산은 증가했지만 많은 실업자들이 발생했다. 인클로저 운동 등으로 농민들은 농지에서 추방되었고 그들은 생계를 위해 공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기계의 도입으로 그들은 일자리가 부족해졌고 더욱 열악한 조건에서 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한편 나라에서는 나라를 진정으로 부강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일었다. 초기에는 황금을 많이 가진 나라가 부유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한 방법은 약탈이 있었지만 주 방법은 수출보다 수입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사람들의 생각은 한 나라의 부가 황금의 축적량보다는 일정기간 동안의 생산력 즉 저량의 개념에서 유량의 개념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효율적인 생산을 할 수 있는 방법이 고안되었고 곧 그것은 대량 생산을 야기 시켰다. 증기 기관이 발명됨에 따라 대량 생산은 더욱 일반화되었고 자본을 가진 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더욱 부유해질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생산된 제품의 양과 질을 보면 확실히 진보한 시대였다고 볼 수도 있다. 자본가들은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담합을 했다. 서로간의 지나친 경쟁은 지나친 가격하락으로 인한 출혈을 야기 시킨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담합으로 인해 자본가들은 더욱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고 급기야 많은 자본들을 국내에서 다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식민지로 눈길을 돌렸고 거기서 원자재를 공급받고 또한 수요량을 충족시켰다. 이 과정은 물론 순조롭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저항하는 원주민들에게 비인간적인 잔혹한 방법이 행해졌다. 이러한 식민지쟁탈을 하다보니 열강들끼리 경쟁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를 피하기 위해 이번엔 국제적인 담합을 했다. 그로 인해 자본가들은 더욱더 많은 자본을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익은 부익부 빈익빈에 따라 소수의 자본가들만 누렸을 뿐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빈곤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살았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되는 과정에서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었고 결국 그들은 그들의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일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일자리는 적었기에 임금은 싸질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더욱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자본주의는 대공황에 이르기까지 내지는 그 후에도 계속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근로자들의 조건을 개선시켜 주기 위해 임금을 올리면 결국 자본가들의 이윤은 줄어들고 반대로 임금을 계속적으로 적게 지급하면 소비자이기도 한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감소해 결국 이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이와 비슷하다. 지금은 소비 심리가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지 않았고, 이로 인해 자본가들은 이윤이 줄고, 그만큼 가계에 돌아가는 몫이 적어져서 더더욱 소비를 줄이게 되는 악순환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처음 발생하는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어떻게 제시되어 놨는지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라도 우리는 역사를 떼어놓고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온고지신 이란 말이 있듯이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안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앞으로의 자본주의 발전 방향을 알기 위해, 미래에 대한 대비책으로서 한번쯤 읽어 볼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REPORT- 坐禪의 姿勢에 관하여 -과 목: 좌선법의 이해와 연습학 과:학 번:성 명:제 출 일: 년 월 일담당교수: 교수님▣ 坐禪 전의 주의사항좌선을 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일단 외적인 방해요소부터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선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좌선수행에 있어서 몸과 호흡과 마음을 보다 성공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준비자세라 할 수 있다. 그러한 환경적 조건은 다음의 4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장소좌선을 하는 장소는 우선 조용해야 한다. 그리고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아야 한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서늘해야 한다.● 식사신진대사에 부담이 있으면 정신을 집중하기가 어렵고 내장의 혈류량 증가로 인해 졸음이 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식사 직후는 피해야 하고 복통, 설사, 변비 등이 있을 때도 삼가는 것이 좋다. 또한 좌선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소변을 마쳐두는 것이 좋으며 배가 너무 고픈상태에서 하는 것도 집중에 방해가 된다.● 수면수면이 부족하면 좌선중에 졸음이 오기 쉽고 집중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가 부족하여 선정에 깊이 빠져들기가 어렵다. 따라서 신체의 리듬을 깨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수면을 취해 주어야 한다.● 복장복장은 되도록 편한 의복을 입는 것이 좋다. 혁대는 느슨하게 하고 안경, 시계, 양말등 근육을 긴장시키고 기의 흐름을 막는 것들은 모두 벗어 놓는 것이 좋다.▣ 坐禪의 자세● 조신(調身)이는 좌선시의 몸의 자세를 말한다. 좌선은 원칙적으로 결가부좌를 기본으로 한다. 다만 신체적 조건등 부득이한 경우에는 반가부좌를 해도 좋다. 또 부녀자는 보통의 정좌도 가능하다. 결가부좌의 좌법은 우선 방석등을 이용해 앉기 편한 자세를 취한 뒤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다음 오른 다리를 들어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 다시 왼쪽 다리를 들어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려 놓고 두무릎이 땅바닥에 닿도록 하면 된다. 반가부좌는 결가부좌 중 어느 한쪽 다리만을 올려 놓는 것이다. 이 때 주의할 것은 양쪽 무릎이 정확하게 바닥에 같은 무게로 닿아야 하며 몸의 중심역시 다리와 몸이 이루는 삼각형의 중심에 위치해야 하는 것이다.이와 같이 양무릎과 엉덩이가 같은 힘을 받도록 앉기 위해서는 엉덩이를 충분히 뒤로 빼고 배꼽은 충분히 앞으로 내밀어야 한다. 그렇게 하고 머리를 바로 세워 쭉 뻗어주면 자연히 코와 배꼽이 일직선상에 놓이는 이상적인 자세가 된다.다음은 오른손을 왼쪽다리위에 놓고 왼쪽 손을 오른쪽 손바닥 위에 얹은 뒤, 양쪽 엄지손가락 끝을 서로 가볍게 맞대고 아랫배(丹田)쪽으로 끌어당겨 엄지손가락 연결부가 배꼽 바로 밑에 있게 한다. 이러한 손의 자세를 法界定印이라 한다.귀와 어깨는 일직선상에 있게 한다. 양팔굽은 몸에서 약간 떨어뜨린다. 가슴에 힘을 넣지 않고 양 어깨는 낮춘다. 허리는 쭉 펴고 턱을 끌어 당긴다. 입은 꼭 다물며 이빨을 가볍게 맞대고 혓바닥은 위턱에 가볍게 붙인다.눈은 항상 뜨고 있어야 한다. 눈을 감고 할 수도 있으나 졸음이 오기 쉽기 때문에 뜨고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눈은 활짝 뜨지 말고 눈꺼풀을 반쯤 내린 뒤 시선은 전방 1∼2M앞에 떨어뜨린다.● 조식(調息)호흡에는 다음의 네가지가 있다.풍(風):이것은 코로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 소리가 나는 것. 비록 미미하더라도 그것은 마음이 산란하다는 증거이다.천(喘):이것은 들락날락하는 숨소리는 없으나 고르지 못하다.기(氣):이것은 소리도 없고 숨도 고르나 호흡에 대한 의식이 아직도 남아 있을 때를 말한다.식(息):숨이 고르며 소리도 없고 자기 자신의 호흡에 대한 의식이 없고 숨을 쉬고 있는 지 않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다.선을 할 때의 호흡은 이 식(息)의 상태가 아니면 안된다. 즉, 최대한 가늘고 길게, 그리고 깊게 천천히 호흡을 하면서 그 호흡 자체에 대해서는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자세가 갖추어지면 우선 정신을 되도록 몸의 아래쪽(丹田)에 집중시킨다. 다음은 전신에서 힘을 빼고 온몸의 피부로 호흡을 한다고 생각한다. 숨을 코로 들이쉬고 코로 내쉬는데 마음을 쓰게 되면 도저히 식(息)의 상태로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의식을 배꼽 근처로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신의 힘을 빼고 무게중심을 몸의 최하부에 놓는다. 배꼽 밑 다전에서 힘을 빼고 내 몸의 존재를 잊어 버리도록 천천히 호흡을 하면 자연히 기력이 온몸에 충만하게 되는 법이다.● 조심(調心)조신법과 조식법이 우리의 몸 외측으로부터 심신의 컨디션을 조정하고 활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면 조심법은 그 효과를 받아들이기 위한 우리의 내측, 즉 마음의 자세를 성실히 하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심법은 독립된 것이 아니고 調身·調息·調心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비로소 올바른 좌선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앉음새가 정돈되고 숨이 고르게 된 다음에는 제복(臍腹)을 관방(寬放)하라고 했다. 제복은 배꼽을 말하나 역시 기해단전, 즉 배꼽아래 3CM를 가리킨다. 이를 너그럽게 가지고 모든 생각을 버리는 것이 좌선의 요령이라고 했다. 제복의 관방이란 반드시 육체적인 의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몸이나 마음의 긴장을 풀어서 머리속에 아무것도 없는 평온한 상태에서 시비·선악 등의 잡념을 뿌리뽑아 사량(思量)하지 않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에서는 그것이 잘 되지 않으므로 잡념이 일거나 하면 이를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잡념을 쫑으려 하고 그것에 구애되다 보면 더욱 목적에서 어긋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정신을 집중함으로서 삼매에 빠져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1.유럽人의 아메리카 발견신세계(New World)의 주민들은 文明을 창조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바다를 건너 舊世界(Old World)의 문명을 收入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精神에는 유럽인과 마찬가지로 오랜 문화와 경험이 스페인적이었고, 캐나다는 프랑스적, 그리고 뉴 잉글랜드와 버지니아에서는 本質的으로 영국적이었다. 초기의 앵글로 색슨계의 移民 속의 기타 民族이 섞여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독일인, 스위스인, 스코틀랜드인, 아일랜드인 등이 10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어, 법률, 사상은 英國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한 아메리카인은 다음과 같이 記錄하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우리의 女王이 아니었던가? 셰익스피어(Shakespeare)는 우리의 詩人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드레이크(Drake)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擊沈시킴으로써 우리의 조국을 滅亡으로부터 구출한 우리의 英雄이 아니었던가?」 가정생활과 사화생활은 영국의 風習에 지배되고 있었다. 식민지의 가구는 영국에서 수입한 것이 아니면 그 模造品이었다. 건축은 죠지 왕조 樣式을 본따고 있었다. 최초의 대학가는 본국의 캠브리지에서 빌었다. 버크(Edmund Buke)는 블랙스톤(Sir William Blackstone, 1723-1780 : 영국 법학자 - 역자 주)의 저서 <영법 비판>이 아메리카에서도 영국에서만큼 팔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하였다. 植民地 주민의 권리는 국왕의 특허장과 영국의 傳統的인 자유로 보장되고 있었다. 大憲章(Magan Carta)은 영국인에게처럼 아메리카인에게 소중한 追憶이 되었다. 1765년에는 대다수가 아메리카인이 대전쟁에 勝利하여 캐나다를 征服한 영국의 애국적인 국민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祖國에 대한 反逆이나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프랭클린은 다음과 같이 말한 일이 있었다. 「런던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支援을 아끼지 않는 조국, 많은 인연과 紐帶, 혈연, 이해관계, 愛情 등이 얽혀 있고 식민지 相互間에 우의보다도 더 큰 親密感을 가지고 있는 조국에 반항하기 위하여 식민지가 하나로 뭉친다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프랭클린은 글자 그대로 영국을 사랑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아메리카인도 그와 같은 感情을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