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례 -Ⅰ. 머리말Ⅱ. 의미로서의 지식관으로 본 일의 교육적 가치1. 지식에 대한 가치 정립(1) 지식의 정의(2) 지식관(3) 현대에 요구되는 지식관2. 의미로서의 지식관으로 본 일의 교육적 가치(1) 일의 교육적 가치에 대한 시대별 철학(2) 현대의 일 교육의 필요성 : 의미로서의 지식관으로 본 일의 교육적 가치Ⅲ. 일 교육의 실패 파악 및 일 교육 운영 방안1. 일 교육의 실태 파악(1) 외국의 일교육 사례-발도르프 학교(2) 우리나라의 일교육2. 학교에서의 일 교육의 운영 방안Ⅳ. 맺음말Ⅰ. 머리말교육 실습에 나가 있는 동안 지도 교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레포트 주제를 일의 교육적 가치에 대해 탐구하고 그것을 학교 교육과정에 적용하는 방향을 생각해 보는 것으로 정하게 되었다. 나의 실습 학년은 2학년이었는데 수업을 마치고 하교지도를 한 후 담임선생님과 당번인 몇 아이들과 함께 청소를 하는 것이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담임선생이 청소지도를 열심히 지도하시는 모습을 많이 관찰할 수 있었는데 하루는 방과 후 협의 시간 중 우리나라 학생들은 다른 나라 학생들과 비교하면 너무 일을 못한다고 말씀을 하셨다. 지식을 채우는 교육에만 급급했지 자기 방도 청소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고 교육 정책적으로도 그런 쪽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지식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비단 청소에 국한 되는 것만이 아닌 생활에 필요한 그 무엇은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문도 함께였다.교육철학 시간에 배웠듯이 인간생활의 모든 것은 가치 판단에 의해 시작되고 교육 역시도 교육관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가르쳐야할 교육 내용이 지식이라는 용어로 대표된다면 그 지식에 대한 가치판단이 개입된 지식관이 존재해야 지식의 범주를 설정하고 가르치는 행위가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일이라는 것을 지식이라고 생각하고 가르쳐야할지는 지식관을 통해 가치판단을 해야하고 지식관은 지식에 대한 개념 설정과 의에 치중함으로써, 교과간의 통합이나 전체적 구조 파악이 부족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교과의 논리적 일관성을 중시한 나머지, 학생들의 흥미, 필요, 능력 등의 심리적인 측면이나 교육방법적인 측면은 소홀히 다루는 경향이 있다.교과중심교육에서는 교과의 단편적인 지식들을 잡다하게 많이 가르침으로써 지식의 체계성이나 생명력이 없는 무기력하고 죽은 지식을 가르치는 전형적인 주입식 교육이 되기 쉽다. 그러나 다른 한편, 비록 무기력한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많은 문제를 가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 지식의 더미는 살아 있는 지식을 위한 학습의 기본 재료로써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단지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교육적으로 의미 있게, 학습자 요소를 반영하여 효과적으로 가르치는가 하는 것이다.학문중심 교육과정에서는 인류의 문화 유산인 학문을 가르치되, 교과중심 교육과정에서처럼 주입식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의 본래의 특성에 맞게, 즉 그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하는 일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브루너는 종래의 ‘지식의 더미’가 아니라, ‘지식의 구조’를 가르칠 것을 제안한다. 브루너는 ‘지식의 구조’를 ‘학문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일반적 아이디어,’ ‘기본 개념,’ ‘일반적 원리,’ ‘핵심 아이디어’ 등과 동의어로 쓰고 있다. 따라서 지식의 구조를 가르친다는 말은, 단편적인 지식의 더미가 아닌, 체계적으로 조직된 지식의 기본 개념 및 원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그것은 학문의 결과인 ‘중간언어(middle language)’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자들이 하는 일, 즉 그 학문의 사고방식과 탐구방식을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2) 객관주의 지식관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지식관들주입식교육이 되기 쉬운 객관주의 지식관에 의한 교육을 극복하기위해 인간의 경험이나 감정에 의한 지식을 중시하는 다른 교육 지식관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폴라니는 앎의 성격을 ‘인격적 지식’이라는 말로 결론짓고 있다. 인이 변하면서 다르게 여겨질 것이다.그렇다면 지식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의 관심과 관련하여 발전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거 같다. 인간이 발견해 온 모든 지식의 체계는 절대적 진리에 대한 지식 체계가 아니라 보다 가치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이룩한 지식의 체계라고 볼 수 있을 거 같다. 정리하면 인간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지식으로 만들어가지 았았나 생각한다.하지만 그렇다고 객관주의 지식관을 완전히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인간의 삶에서 의미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인간은 그것을 절대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측면이 있지 않나 싶다. 그것이 시대에 따라 약간씩 변화하기는 하지만 오랜 역사를 거쳐 생명력있게 전해져 내려오는 지식들을 인간에 의한 상대적이지만 객관주의적 입장의 지식에 해당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실제 지식의 전수 방법에 있어서도 객관주의 지식관의 한 형태인 지식전수는 전형적인 주입식 교육이 되기 쉽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에 있어 의미 있게 다가오는 살아 있는 지식을 위한 학습의 기본 재료로써 필요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종합해 보면 지식은 인간의 삶의 의미로서 구성되고 인간에게 의미있게 여겨지는 것을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는 정보 매체를 기반으로 지식의 흐름이 빠르고 유동적이다. 이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지식을 재구성해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 의미 있는 지식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기본이 되는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즉 인간의 역사를 통해 객관화 되어 있는 지식의 교육과 더불어 그 지식을 자신의 경험에 녹여 새롭게 의미 있는 지식을 탄생시킬 수 있는 지식교육관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의미로서의 지식관이라고 표현해 보겠다.2. 의미로서의 지식관으로 본 일의 교육적 가치의미로서의 지식관으로 지식을 바라보면 전해져 내려오는 지식의 전수와 더불어 인간의 삶과 연관지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지식을 셈이다. 이러한 경향이 뚜렷해지는 동안 감각적 사실주의(sense realism)와 자연주의 세력들은 교육과정에서의 노작의 새로운 역할을 탐색하고 있었다. 루소로부터 페스탈로찌, 프뢰벨은 이러한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아동의 자연적 본성(nature)에 근거한 노작에 교육적 가치를 부여하였다.-루소-루소의 초기 경향은 실용적인 교육과정의 직업적 경향을 더욱 강화하였다. 그는 인간이 생계를 유지하는데 가장 본질적인 것은 육체노동이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저서 『에밀』에서 수공 교육에 대해 "아동이 하루의 언어적 수업으로부터 얻는 것보다 한시간의 수작업으로 얻는 것이 나을 것이다"라고 까지 주장하였다. 더욱이 루소는 "책으로 아동을 고립시키는 대신 작업장에 그들을 동참시킨다면, 그들의 손이 그들의 정신 계발에 기여하고, 아동이 모든 작업을 체험하면서 예지자가 되어 간다"고 하였다. 아울러 루소는 수공 교육과정의 의의를 개인적 성취는 물론이고 사회적 성취에도 두어 직업적 지식을 배우는 것보다 직업을 경멸하는 편견을 극복하는 것을 배우도록 권유한 것은 상당한 의의를 지닌다.그가 추구한 교육 이념은 농부처럼 일하고 철학자처럼 사고하는 인간을 만들고자 했으며, 특정한 직업을 위한 훈련이 아닌 노작의 일반적 훈련이었다. 루소가 교육과정에 수공 노동을 포함할 것을 주장한 것은 그것이 아동의 본성에 가장 적합하다는 자연주의적 이유 때문이었다. 즉 아동은 자연에 일치해서 교육은 아동의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루소의 견해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완고한 인문주의적 교육의 틀에 노작을 교육과정에 반영시키려는 노력은 혁신적이고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페스탈로찌-루소의 노작에 대한 교육 사상은 페스탈로찌에 의해 실천에 옮겨졌다. 그는 노작을 통하여 아동의 과학적 인식을 촉구하고 인간관계를 바르게 파악하여 심성의 고상화를 추구함으로써 아동의 전인적 발달을 꾀하고자 했다. 그의 관심은 가난한 사람의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최상의 교육은 직업교육이라고 생각하서 폭 넓은 직업적 소양을 갖게 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현대의 비인간적 직업 교육체제에 대하여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이러한 노작교육론이 제국주의 독일의 적극적, 진취적인 유용한 국민의 형성을 노린 공민교육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비판을 받긴 하지만 일에 대한 교육적 가치를 둔 측면에서는 혁신적인 것이었다.-파커-노작에 대한 교육이 미국에 뿌리를 내리는데 최초의 공헌자는 진보주의 교육의 아버지라고 인정받은 파커였다. 그는 교과 중심 학습은 크게 강조를 두지 않았고,"교육의 전 목적은 노작을 위하고, 조직적으로 노작하고, 노작을 사랑하고, 정신과 심정을 노작과 연결하도록 아동을 훈련토록 하는 것이다“고 믿고 있었다. 또한 그는 퀸시에서 교육의 과정을 실천하면서 형식적이고 획일적인 교육을 비판하면서, 수공 훈련, 예술, 음악, 과학, 체육 등의 활동적이고 창조적 자기표현을 강조한 교과 영역을 중요시하였다. 파커의 교육 사상은 아동 중심 교육 사상을 지녔던 페스탈로치, 프뢰벨의 영향을 받은 탓으로 아동의 개성과 요구를 존중하는데 기초를 두었으며, 이러한 교육사상은 20세기 교육철학에 큰 공헌이 인정되는 죤 듀이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5) 20세기20세기에 있어서 노작에 대한 교육적 가치에 대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듀이이다. 그는 루소와 프뢰벨의 전통을 이어 받았으며 찰스 퍼스와 모리스에 의해 학문적인 가르침을 받았다. 교육과 사회화를 동일시 한 그는 교육을 사회의 준비 과정이 아니라 사회의 과정이라고 하였다. 그의 업적과 사상적 견해에 기초해서 일반적으로 그를 실용주의자, 도구주의자, 실험주의자라고 부른다.-듀이-듀이는 '노작은 직업 교육을 주로 하는 훈련과는 신중히 구별하여야 한다. 그 차이의 근거는 노작의 목적이 활동 자체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즉 노작의 목적은 각종 관념과 그 관념이 행동으로 구현된 것과의 사이에 부단한 상호작용이 일어나서, 성장이란 사실을 초래하는 데 있는 것이지 외부적인 실용을 운운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하여 활동 과정으다.
독서감상문 1 : 헌법의 풍경Ⅰ. 들어가며도서관 검색대에서 과제로 주어진 5권의 책을 검색했다. 제목부터 재미있어 보이는 다른 책들은 모두 대출중이고 헌법의 풍경만 대출이 가능했다. 내심 점찍어둔 책들을 못보고 지루해 보이는 법 서적을 읽어야 하나 조금 갈등했지만 이것도 인연이려니 하고 책을 들고 집에 돌아왔다. 늦은 밤 잠 자리에서 책을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읽을수록 재미가 있어서 늦은 시간이 부담스러웠지만 다 읽게 되었다.솔직하고 담담한 문체로 딱딱하게만 보였던 법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글을 읽으면서 그의 글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법 이외에 다른 분야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공부했던 저자이기에 여러 고민들을 하고 이런 글들을 쓸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책을 읽으며 흥미 있었던 부분 중 하나는 저자가 실제 체험한 법률계의 이야기였다.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세계와 동료들에 대해 사실과 비판을 지면으로 털어놓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법을 잘 모르는 우리도 형식적 진실이 아닌 찾아서 만드는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여 우리를 둘러싼 법 환경을 잠시나마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이 글에서는 헌법의 풍경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을 스케치해서 적어 보고자 한다.Ⅱ. 헌법의 풍경 스케치1. 헌법의 풍경 줄거리서장 법학과의 불화에서는 저자가 불법이 자행되던 시대에 자신을 지키는 방편으로 법학을 선택하여 법과 인연을 맺게 된 이유부터 시작하여 법학 교수가 된 사연들이 적혀 있다. 그리고 시민의 삶과 분리된 법에 대해 느끼며 법학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적고 있다.1장 정답은 없다 에서는 유죄와 무죄, 음란과 예술사이라는 법의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가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올바른 절차에 기초해 구성원들 간의 토론과 타협을 이끌어 내는 데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2장 국가란 이름의 괴물에서는 국가가 절대적 선이라는 우리의 고정관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해주는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과연 국가라는 괴물이 현대에는 사라지고 없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해주고 있다.3장 법률가의 탄생은 저자의 법조계에 대한 경험담이 생생히 녹아 있었다. 법률가들이 특권을 내면화하게 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실제 사례를 들어 보여주며 법률가가 국가나 정치의 수족이 되어 법치국가에서 멀어지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4장 똥개 법률가의 시대에서는 전관예우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대한 비판과 함께 앞으로 청지기 정신을 지닌 똥개 법률가들의 많이 나올 것이라는 희망적 사례를 보여주었다.5장 대한민국은 검찰 공화국에서는 우리나라의 검찰의 권한이 얼마나 막강한지에 대해 보여주고 그것을 비판하고 있다.6장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헌법 정신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일례로 들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헌법의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기본권들이 어떻게 수호되어야 하며 어떤때 제한지 가능한지에 대해 이야기 한 후 우리사회에서 공산당 할 자유까지 존중되어질 때 진정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헌법정신이 발휘되고 있음을 이야기 한다.7장 말하지 않을 권리, 그 위대한 방패에서는 국민이라면 꼭 알고 있어야할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임의수사와 강제수사의 범위역시 알려주어 법률상식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8장 잃어버린 헌법,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서는 우리 사회의 의식개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작이 될 수 있는 차별 금지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차별과 함께 살아온 미국의 사례에 대해 살펴보고 모든 국민이 법 앞에서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날이 오려면 돈이 되지 않더라도 차별에 대해 소송하고 싸워야 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2. 헌법의 풍경 스케치1) 실체적 진실에 대하여헌법의 풍경의 1장은 정답은 없다 이다. 세상은 참 다양하고도 다양하기 때문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일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법에 관해서는 정답은 정해져 있다고 은연중에 생각해왔던 것 같다. tv를 보면 몇 항 몇 조에 의해 어찌어찌되어 판결을 내립니다. 땅.땅.땅. 이게 나의 뇌리 속에 담겨져 있는 고정 불변된 법의 모습이었다. 법의 제정에서 집행까지 다 나와는 먼일일 뿐이며 나에게 법이 직접적으로 행해질 일도 별로 없겠지 하고 수동적으로만 생각해왔다. 법이 우리의 합의에 의해서 나와야 하며 고정된 법이라도 법률가의 직관에 의해 자의적으로 행해질 수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하지만 저자는 근본적인 법의 모습을 음란물에 대한 예를 들어 선명하게 이해시켜주었다. 젖꼭지와 털사이의 심각하고도 우스운 논쟁을 보며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을 찾을 수 없는 영역에서 자신의 주장만을 진리라 흔들림 없이 내세우는 사람들의 모습과 나의 모습을 반추해 보았다. 옷로비 사건의 증인들의 이야기 들이나 영화 오수정에서의 등장인물 각자의 시선들은 나와 친구 또는 가족 사이에서 빈번히 벌어지는 일들이었다.이와 더불어 우리의 법조문들이 절대 진리로서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도출된 그 무엇이 법이 되어야 한다는 교과서적으로 배웠던 진리를 곱씹어 보게 되었다. 법이라는 것이 민주주의의 토양 속에서 자라나야하며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절차에 의해서 만들어져 나간다는 저자의 말에 동감할 수 밖에 없었다.형식적 진실과 대비되는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 대화와 적법한 절차를 통해 찾아 나가는 실체적 진실의 소중함에 대해 느낀 점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첫번째 소중한 수확이다.2) 국가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하여왜 국가를 사랑해야 하나? 이런 질문을 학창 시절에 받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나라를 사랑하자는 단원이었던 것 같고 이 질문에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우리를 보호해 주니까, 나라가 있으므로 내가 존재하니까 등의 대답을 내놓았었다. 그런 대답들은 정답으로 취급받았고 국가와 국기와 애국가는 소중한 그 무엇이라 교육받아왔다. 누군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물어본다면 이런 류의 대답을 무의식중에 하지 않을까 싶다.얼마 전에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보았다. 보는 내내 화가 날 수 에 없는 상황이 펼쳐졌고 내가 왜 이런 나라에 살아야 하는지 부끄럽기만 했다. 만약 국가는 절대적 선이라는 교육을 받지 않고 국가를 법에 의해 통제하는 일이 중요함을 교육받았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유태인을 학살하던 악마 같은 독일군들도 개개인을 살펴보면 국가에 충성했을 뿐이지 성실하고 이웃에게 인정받는 한 인간이었다는 이야기들도 국가의 무서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독재 권력에 의해 폐해를 뿌리 깊게 겪은 우리나라이지만 나라의 권력에 대한 무서움과 그에 대한 견제를 교육에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한 우리의 실상과 독재 권력을 막아야 하는 의무를 지닌 법률가 집단이 국가 권력을 누리는 쪽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고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국가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국가를 사랑하지 않을 자유가 누려질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래본다.3) ‘인정한다 그러나’ vs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이말 한마디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담고 싶은 한마디이다. 기독교인들이 마광수의 책에 대해 구입 거부 운동을 벌이다가도 권력이 마광수를 붙잡아 가려고 할 때에는 마광수와 어깨를 결고 함께 싸워야 한다 라는 저자의 설명은 마음에 깊숙이 다가왔다. 미국이 마약 소지사건에까지 종교의 자유해석을 해주는 사례를 보고 우리나라에서는 인정한다 그러나 에 의한 기본권 제한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나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다.홍세화의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읽으면서 프랑스인의 똘레랑스에 관해 많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생각에 동의하거나 동화되지 않더라도 그 생각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문화의 출발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일 것이다.공산당을 인정하는 것까지 가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만 생각해 보아도 나의 생각에도 불구하고 남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다른 누군가를 위한 관용이 아니라 결국은 내 자신을 위한 관용일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우리 생활에서 헌법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 것 같다.4) 새겨두어야 할 법률상식 진술거부권형사와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미란다 원칙이라고 해서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말하는 구절이 한 번씩은 나온다. 그렇게 고지 받지만 그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온갖 회유와 협박에 용의자는 이 것 저 것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사건 용의자가 불리한 진술에 대해 말을 하지 말았으면 하기 보다는 진실을 빨리 말해서 사건이 해결되길 마음속으로 바라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서든 진실을 밝혀내면 그것이 정의라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독서감상문 2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Ⅰ. 들어가며신문에서 공지영 작가의 인기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글이 솔직하며 읽기 쉽다고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요지였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처음 읽은 공지영의 책은 수도원 기행이었다. 기행문을 재밌어하는 편이고 인기 있는 작가의 글이 구경하고 싶어서 도서관에 간 김에 빌려보았다. 아무래도 기행문이기에 특별히 더 읽기 쉬운지는 모르겠었으나 너무도 솔직히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작가의 그렇겠지만 특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속 유정의 모습 속에 그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모습이 많이 투영되어 있는 것 같은 장면들이 많았다.글이 너무 쉽다, 자신이 체험한 이야기 밖에 쓰지 못한다 등 작가에 대한 여러 비판을 먼저 접했기에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책을 대하게 되었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 보지 못했던 사회의 일면을 보게 해준 이 소설을 읽게 된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술 면접 대비로 사형제도에 대해 생각해 보았었지만 점수를 잘 받기 위한 논리성을 마련하는 데만 그쳤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어떤 울림을 마음에 전해주었고 진지하게 사형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만들었다. 문학이라는 것이 가지는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오랜만에 소설을 단숨에 또 멈춰서 읽으며 여러 삶과 죽음,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던 것 같다. 중간 중간의 명언들 역시도 그냥 스쳐지나갈 수 없게 해주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함께 한 시간동안 들었던 공감과 생각들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Ⅱ.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후에1.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줄거리이 소설은 유정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현재의 이야기와 윤수의 블루노트에 쓰여진 이야기가 씨실 날실처럼 교차하여 전개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안 일이지만 윤수의 블루노트는 윤수가 죽고 난 다음에 유정에게 건네진 것이었다. 유정의 시각 속의 윤수의 모습은 블루노트의 윤수의 과거들이 하나씩 이야기되면서 공감되어졌다.주인공인 문유정은 전직 가수이자 이사장 집안을 배경으로 대학교수를 하고 있다. 15살 때 사촌 오빠의 성폭행과 그것을 묵인해버린 어머니에 대한 상처에 깊이 매몰되어 세 번의 자살기도를 하게 되고 마지막 자살 소동 이후 수녀인 모니카 고모의 제안으로 입원치료 대신 고모를 도와 구치소에 가기로 한다. 유정은 모니카 고모와 함께 종교위원으로 구치소에 들어가 강간과 세 명의 여자를 죽인 이유로 수감된 사형수 윤수를 만나게 된다.모니카 고모를 대하는 윤수의 모습은 냉소적이었지만 점차 마음을 열어가게 된다. 윤수의 죽은 동생 은수가 좋아하는 애국가를 부른 가수인 유정은 윤수에게도 특별한 사람으로 다가오게 되고 유정 역시도 윤수의 죄와 대비되는 그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둘은 서로의 진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상처를 극복하고 세상에 난 이후 처음으로 행복한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된다. 윤수와 유정은 서로의 만남을 통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아가고 참회하게 된다. 윤수가 공범이 저지른 죄를 덮어 썼다는 사실도 알게 되지만 유정과 모니카 고모의 노력에도 윤수의 사형은 집행된다. 그리고 유정은 윤수의 블루노트를 건네 받는다.윤수가 죽은 지 7년후 모니카 고모는 돌아가시게 되고 고모의 임종을 유정이 지켜보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난다.2. 삶과 죽음“...그냥 사랑했으면 됐는데...... 이제 그 온기가 사라져버렸다. 온기가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라면, 인간의 영혼에서 온기가 사라지는 순간 또한 죽음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도 한때, 그것도 모르고 살면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이미 죽음이었는지도 모르고.”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죽음의 다른 측면을 모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생물학적 죽음만이 죽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정신이 온기를 잃어버리는 순간의 죽음이 정말로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인 것 같다. 지구상의 수많은 동물들 중 유일하게 자살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동물이 인간이니까.“신비롭게도 사람이 삶을 배우는 데 일생이 걸린다. 더더욱 신비롭게도 사람이 죽음을 배우는데 또 일생이 걸린다.” 세네카의 명언은 신비로운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 신비로움이 삶과 죽음을 아리송하게 만들기도 하고 해답을 제시해 주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삶과 죽음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거나 이율배반적인 것이 아닌 하나의 통합된 명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가있는 사람들이 삶에 대해 더욱 생각하게 되고 그 의미를 찾게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책의 마지막에서 작가는 신기하게 사형수들과 만나고 오는 날이며 잠이 잘 온다고 했다. 죄가 없는 사람들과 만났을 때는 시리고 추운 마음이 들어도 사형수들을 만나고 오면 마음이 따뜻하고 천국에 다녀온 기분이라고...... 죽음과 맞닥드려 자신의 죄를 되돌아보고 참회한 사람이 얻어낸 새로운 삶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만큼 가치있고 깊이 있는 삶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맴돌았다.모든 사람들은 사소한 것부터 큰일까지 죄를 짓고 살고 있으며 그것이 법의 인정 범위 안에 드느냐 안드는냐의 차이만 있을 뿐인 것 같다. 법을 어기지는 않았지만 법률의 테두리 망에서 위선을 일삼고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죄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기도 하다. 그 누가 더 큰 죄인인지는 논란이 있겠지만 삶과 죽음의 측면에서 생각해보자면 그 누가 더 나은 삶은 살고 있는지는 명백할 수도 있는 일이다.죽음 앞에서 가장 삶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은 진리인 것 같다.3. 행복의 의미사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영화 및 책 제목을 보고 별로 보거나 읽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었다. 진부한 느낌이었고 사형수와 자살기도를 한 여자라는 설정도 그다지 신선해보이지 안았다. 독후감 책 목록에 있지 않았다면 읽어보지 않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난 후 궁금증에 영화까지 다운받아 보았고 책 제목도 적절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책 속에서 분명 행복한 시간을 갖는 장면을 보았을 뿐 더러 그 행복의 의미가 나에게도 전달되어 왔음으로 더 이상 진부하게만 보이지 않게 된 것 같다.‘너는 왜 사니?’라는 철학적이고 황당한 질문을 어쩌다가 받게 되면 나는 왜 살고 있을까 고민을 공부, 직업, 꿈과 연관시켜 이리저리 생각해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은 내가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것이고 나의 행복을 위해 살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럼 또 행복은 무엇인지에 대한 추가 질문이 들어온다. 정말 대답하기 힘들다. 아마도 행복을 느끼기 위한 요소들이 엄청 얽히고 섥혀있기 때문에 딱 집어서 이야기하기 힘든 것 같다.조금 더 분석적으로 생각해보면 행복은 스스로에 의한 행복과 다른 사람과 연관된 행복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다른 사람과 연관된 행복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행복다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위로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들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없는 듯하다. 마치 자연에서 주어진 평등처럼. 만약 있다면 마음속으로 그런 마음을 숨기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관계에 의해서 얻는 행복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그런 관계를 맺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얻기가 힘든 것 같다.이 소설의 주인공 유정과 윤수도 그런 행복을 느끼지 못했기에 만나기 이전까지 살아있는 것이 아닌 죽어 있는 삶을 살게 된 것 같다. 진짜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유정의 말은 그들의 행복한 시간을 갖기 위한 그녀의 노력을 보여주었다. 누구나 슬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다른 이에게 줄 수는 없지만 모두가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관계를 통해 알게 되고 들어줄 누군가를 발견하는 것은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보다듬어지는 행복을 느끼게 해줄 것이고 그것 자체만으로도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사실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4. 사형제도나는 사형제도에 대해 찬성해 본적은 없다. 목숨에 대한 존엄성을 깊이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사람이 죄를 저지르면 그것에 대한 응당한 처분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사형이 과연 가장 큰 형벌인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다. 죽는 것 보다 살아 있는 상황이 더 괴로운 경우도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소설을 읽으며 내가 삶에 대해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을 것 같다. 이건 사는게 아니야. 라고 되뇌는 것도 삶이라는 것을. 마치, 더워 죽겠고 배고파 죽겠다는 것이 삶이듯이,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삶이듯이, 그것도 산 자에게만 허용되는 것, 그러므로 삶의 일부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제 국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바꾸어서 말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유정의 말을 들으며 삶의 가치는 인간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것임을 생각해보았다.
[차례]I. 머리말II. 허련의 가계와 생애1. 가계와 성정2. 생애1) 초기(출생∼32세)2) 중기(32세∼49세)3) 후기(49세∼86세)III. 허련 회화의 형성 배경1. 윤두서의 영향2. 초의선사의 영향IV. 김정희와 허련1. 김정희의 서화관2. 김정희의 영향3. 자연과의 일체 추구하는 남종화V.허련의 회화활동과 의미1. 19세기 서울의 서화시장과 서화애호 풍조의 확산2. 허련 회화활동의 의미VI. 허련의 작품경향1. 산수화2. 인물화3. 사군자와 모란4. 기타(지두화 등)VII. 맺음말Ⅰ. 머리말소치 허련은 19세기 조선의 서화에서 장승업과 함께 가장 주요한 화가로 평가된다. 허련은 군주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김정희의 문하에서 가장 인정을 받은 화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중인에서 궁궐문인화가들까지 허련의 문하에 있었기 때문에 19세기 서화와 문화계의 상황을 잘 알려주는 대표적인 작가가 허련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희가 중국의 남종 문인화를 모범으로 한 것에 비해 허련은 김정희를 중심으로 하는 서울의 회화 제작경향을 지방으로 특히 호남일대를 중심으로 파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따라서 허련의 일생과 회화활동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가난한 시골출신 화가가 그림솜씨만으로 입신하고 화명을 떨치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19세기 조선 문화계의 변화하던 실상과 서화제작과정 등의 단면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이 보고서에서는 허련의 가계와 생애에 대해 살펴보고 회화의 형성 배경과 김정희와의 관계, 허련의 작품경향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겠다.II. 허련의 가계와 생애1. 가계와 성정허련의 본관은 양천이다. 양천 허씨 가문은 우의정, 좌의정, 대학자, 서화가 등을 배출하는 명문가로서의 전통을 지켜왔다. 허련은 1808년 오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선대의 화려한 명성과는 달리 허련의 선조는 조선시대 주요 유배지의 하나로 꼽히는 전라남도 진도로 이주하였다. 진도로 이주한 양천 허씨들은 가세가 몰락하여 평민과 다름없는 처지 있다. 그러나 이는 허련이 김정희의 예술세계에 오직 종속적인 위치에 불과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허련의 작품과 서화에 대한 인식에 김정희가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지만 허련은 작품의 경향이나 지향등에서 나름의 독자적인 경향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남종화에만 깊이 침잠한 김정희와는 달리 허련은 참신한 시도를 했음을 자료를 통해 알 수 있으며 전시대 화풍의 여러 경향을 반영하는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련의 생애는 김정희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용이하다. 김정희는 궁벽한 도서출신의 평범한 지방화가로 일생을 마칠뻔했던 허련을 중앙화단으로 끌어 올려 허련의 회화와 일생에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것이 그의 일생에 있어 첫 번째 중요한 전환이다. 김정희의 권유에 의해 서울에 올라온 후 허련은 당대 최고학자이자 서화가인 김정희의 지도와 후원에 의해 작품세계를 높이 평가받고 여러 명사들과 교유를 하는 등 이름을 날린다. 일생의 스승이자 가장 중요한 후원자 김정희가 돌아갈 때까지가 그의 일생에서 두 번째 전환이자 고비가 된다. 김정희의 사망을 전후하여 허련의 예술을 이해하고 후원해준 이들이 점차 돌아가게 되자 허련의 주유는 더욱 빈번해졌고 기간도 길어졌다. 작품경향 역시 이전에 비하여 타성적 또는 반복적 경향은 더욱 심화되었다.1) 초기(출생∼32세)초기는 진도에서 태어난 허련이 윤두서의 후손 윤종민이 소장하고 있는 ‘공재화첩’ 등을 보며 그림에 일종의 개안을 한 시기이다. 초의선사를 통해 김정희를 소개받기 전까지의 시기로 표현 할 수도 있다. 이 시기는 허련의 그림에 대한 입장이나 지향점 등이 확립되지 않은 일종의 모색기로서 그림에 대한 열정과 배움에의 갈망을 갖고 노력하는 청년기 허련의 모습이 잘 나타난다.이 때의 그림으로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는 그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의 화풍을 언급하기 힘들다. 다만 ‘오륜행실도’를 통해 그림을 익힌 후 ‘공재화첩’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 것으로 볼 때, 당시 그의 회화에 대한 했지만, 참신한 시도를 만년까지도 계속하였음을 신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선면산수도’(59세), ‘노매도팔곡병’(80세), ‘노치묵존’(80세) 등은 그의 기량이 노경에 접어들어서도 결코 타성적인 작품을 번복하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주는 예인 것이다. 그리고 회화사적 입장에서의 평가는 그의 역작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의 범작들이 오히려 당시 회화인식의 한 단면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실례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그의 수묵으로 그린 반복적 경향의 많은 작품들이야말로 사대부적 취향으로 남종화를 선호한 당시 사회의 요구에 부응한 결과이기 때문이다.III. 허련 회화의 형성 배경1. 윤두서의 영향조선 중기 시가문학의 대가 고산 윤선도의 증손 윤두서는 폭넓은 교유관계와 다양한 관심을 가진 남인계 실학자이다. 본관은 해남 자는 효언 호는 공재로서 조선 후기 삼재의 하나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윤선도는 25세 진사시에 급제한 뒤 첫 대과에 실패한 후 집안이 남인계열인데다가 당쟁이 심화된 상황, 연이은 상등으로 관로를 포기하고 시서화와 교유 등으로 생애를 보냈다.허련이 28세 때에 윤두서의 고택 녹우당에 가서 윤두서의 후손에게 빌려 본 공재화첩은 공재 윤두서의 화첩과 윤덕희 등의 그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윤두서 일가의 화첩을 본 허련은 수일간 침식을 잊을 정도로 감탄하고 두륜산방으로 빌려온다. 이것을 몇 달에 걸쳐 모사한 이후 허련의 그림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은 분명하지만, 이때의 그림으로 아직 알려진 것은 없다. 그림에 대한 체계적 지식은 물론 좋은 그림을 볼 기회조차 없었던 허련에게 윤두서 일가의 그림은 회화에 일종의 개안과도 같은 충격을 주었다.한묵청연의 기명도와 운림묵록의 병잔도를 보면 두작품은 모두 배경묘사를 배제하고 대상을 확대하여 묘사한 공통점이 있다. 기명도에서 볼 수 있었던 사물간의 긴장감은 병잔도에서는 더욱 고조되었다. 특히 병잔도에서 병렬이 뚜렷한 병과 찻잔을 정면에 부각시켜 그림을 보는 이와 정면으로 대응하게 한 것은 마치 17세기 네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의 한 구절을 빌어 '세한도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저서로는 , , 등이 전한다.김정희는 학문 전반에서 일관되게 실증을 위주로 하는 고증학적 태도를 취했다. 김정희는 청의 명사들과 접촉하고 귀국한 후에도 그들과 계속 유대를 가져 그의 학문세계를 심화시켰다. 김정희는 서법은 전수할 수 있지만 진정한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정신과 글씨가 합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정신과 글씨의 합일에서 나아가 옛 서법들을 완전히 익혀 자기화한 뒤 그 서법의 틀을 극복하여 신성한 경지에 이른다는 생각을 피력하였다. 정신과 글씨가 합일 되어야 비로소 글씨가 살아 있는 것으로 평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은 그의 화론에도 잘 나타난다. 화론에 있어서도 근원을 실증적으로 탐구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서론에서와 같이 옛날 작품을 많이 보는 데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김정희가 근본적으로 관심을 둔 것은 화가의 인격과 화의, 예술적 감흥이었다.김정희는 당시 예술계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감식안으로 후대의 문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서화에 있어서 그의 영향을 이른바 ‘완당바람’, 그가 살았던 시대를 ‘완당시대’라 부를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보였다. 특히 회화에 있어서는 ‘문기’를 중요시하여 조선 말이게 남종문인화가 성행하게 된 조류를 나게 하여싸. 김정희가 도달해야 할 남종화의 이상으로 생각했던 것은 동기창이 제시한 원사대가의 회화 그중에서도 황공망의 양식이었다. 김정희가 황공망의 글씨와 그림을 극찬한 내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황공망의 그림에서 보이는 갈필의 소산하고 간담한 의기의 경지를 이상으로 보았다. 김정희의 충실한 제자 허련도 이를 일생의 지향점으로 삼게 되었다.2. 김정희의 영향허련은 1839년 봄에 두룽 가는 초의 편에 김정희에게 그림을 보냈고, 김정희는 허련의 그림을 본 후 초의에게 빨리 올라오라는 전갈을 한다. 그해 가을 김정희의 집에서 김정희와 허련은 만나게 된다. 당시 초의에게 보낸 김정희의 편지를 보점차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를 오직 허련의 그림 솜씨에서 비롯된 것만으로는 다소 의문이 생긴다. 김정희의 극찬은 물색과 풍토가 다른 유배지 제주에서 고생하던 그에게 위안이 되어중 허련에 대한 정실적 평가로 여겨지는 측면도 있다.허련에게 준 김정희의 영향은 그림 실기지도나 회화관 등에 그치지 않는다. 당대의 명사과 김정희 문하의 여향문인화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교유를 허련은 김정희를 통해 가지게 되었다. 왕족, 대학자, 여향문인들을 망라하는 교유는 그의 세계관을 호남의 궁벽한 섬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게 하였고, 회화세계도 풍부히 하고 또 확장시켰다. 그의 나이 4세에 헌종에게 입시하여 그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서화를 품평한 후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된 것 역시 김정희의 극찬에서 비롯된 것임은 물론이다.김정희의 안목과 지도는 허련의 그림 솜씨를 빠르게 진전시켜 황공망의 호 대치에 겭어 소치라는 호를 그에게 지어줄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타고난 그림솜씨에 적절한 교육은 그의 그림 솜씨를 일취월장 시켰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 몰락한 명문의 후손으로서 갖는 관념적 사대부 취향은 김정희가 추구한 남종화의 세계와 갈등 없이 연결되었다.그러나 김정희의 그림이 한작인데 반하여 허련의 작품은 일일이 조사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만다. 허련은 직업적 화가였기 때문에 수요에 따라 다작을 할 수밖에 없었음은 당연하다. 트기 중년 이후 뚜렷한 목적 없이 주유를 할 때에 객잔에서 묵으며 그려 달라는 대로 그려주는 등 유랑화가와도 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김정희가 강조한 ‘문기’ 등을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허련은 일생동안 남종화의 지고한 세계를 추구했지만 생계와 수요, 몰락한 명문의 후손으로 갖는 사대부 취향에 따른 특유의 작품 세계를 남겼다.3. 자연과의 일체 추구하는 남종화소치가 일생 동안 그린 그림의 화풍이다. 남종화는 북종화와 대척점에 서는 화풍을 일컫는다. 정치의 중심지인 북경과 경제의 중심지인 상해로 나뉘이었다.
3/30 놀이과학 플러버 만들기 (2조)플라스틱 같기도 하고,고무(rubger)같기도해 플러버로 불리는 것이 있다.쫙쫙 늘어나 얇은 막처럼 보이기도 하고, 동그랗게 만들면 통통 튀는얌체공이 된다.이제 영화속에서 탄생한 플러버를 직접 만들어 보자.. 준비물P.V.A풀(글구-1:문방구나 과학사 300정도),붕사(약국), 종이컵 2개, 나무젓가락 1개, 식용색소, 실험방법 1. 물 100ml 에 붕사를 두 찻숟가락 정도 넣어 잘 녹인다. 녹인 용액에 윈 하는 색깔의 색소를 조금 넣는다.(붕사는 약국에서 구입)2. PVA 풀 약40g을 다른 컵에 담는다,(반드시 PVA 풀사용 : 문방구에 없으면,화공 약품상에서 구 입)3. 풀을 젓가락으로 저으면서 만들어 놓은 붕사 용액을 조금씩 섞는다.4. 젤리처럼 굳어진 것을 꺼내어 동그랗게 빚는다. (플러버를 공처럼 만들 때 반죽을 오랫동안 주물러야 한다. 그래야 부서지지 않고 잘 튄다.) (플러버를 반죽할때는 압축하는 듯한 느낌으로 힘껏 눌러야 한다, 손으로 비빌경우에는 플러버 입자들 사이에 공기가 들어가서 부서짐으로 주의한다.) (플러버를 만들 때 비닐 장갑을 끼고 하는 것이 좋다, 특히 입, 눈에 들어 가지 않도록 한다.)5. 처음에는 물컹한 풀덩이가 손에 엉겨 붙어 불쾌한 느낌을 가질 수 있지만 인내심을 갖고 계속 빚으면 오히려 손이 깨끗해지며 동글동글 하고, 말랑말랑 한 아주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6. 공 모양으로 플러버를 바닥에 덛져 본다. 원리 붕사는 테트라붕산나트륨 이라는 물질로 물에 녹으면 Ph9정도의 염기성 용액이 된다.PVA(폴리비닐알코올)는 비닐 알코올이 반복되는 구조를 갖고 있는 고분자 로 그 구조에 수산기(-OH)가 있어서 다른 고분자에 비해 물에 잘 녹는다. 고분자의 수산기(-OH)사이를 붕산이온이끼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