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어록 (higg 1995).. 동물, 식물 등 자연물 속에는 엉터리라든가 완고함은 존재하지 않는다._ 호레이쇼 그리노/ 1805~1852/ 설리반의'기능으로부터의 형태' 중에서만민이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예술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_ 윌리엄 모리스/ 1834~1896우리가 좋은 형태의, 혹은 아름다운 누드의 건축을 만들고자 오직 정신을 집중하고 당분간 일체 장식을 구사하지 않기로 한다면,아마도 현대의 미에 공헌하게 될 것이다. 근대의 문명이란 강자가 취사선택하는 생활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단으로서이로 인해 인류 전체는 미적 생활을 빼앗기고 있다. 그것 때문에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고 하고 자연이 주는 귀중한 선물을파괴하며, 순박한 인간을 노예화하고 이 세상을 야수의 세계로 유인하려고 한다._ 윌리엄모리스/ 논문 '미술에 대한 희망과 불안' 중에서우리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은 그 자체보다도 만드는 사람의 사랑과 사상이 더 문제인 것이다. 그의 활동은 항상 불완전을 면치못하지만 그의 사상과사랑은 진실하고 깊은 것이다._ 존 러스킨/ 1819~1900/ 건축에 관해 행한 연설 가운데서, 1857좋은 부속장식이란 항상 지식 속에 뿌리박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러므로 고귀한 어떤 물건을 여러분들이 만들어내려고 한다면 높은 지식을 먼저 갖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_ 존 러스킨/ 맨체스터의 강연에서, 1859어떻게 사는가,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들의 호나경을 정돈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단순히 미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인 판단의문제인 것이다._ 헤르만 무테지우스/ 1861~1927/ 독일공작연맹, 1914.예술은 모든 방식의 반대 명제이다.예술은 인간 환경을 변혁하고 새로운 이상에 일치시키려고 하는 인간의 영원히 자발적인 자유로운 행위이다._ 앙리 반 데 벨데/ 1863~1957/ 주간지 '현대예술' 중에서정직한 실수에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단순한 스타일리스트의 살얼음같은 완전성에 희망이란 없다._ 메킨토시/ 1868~1928개인적인 것은 단순한 감상에 불과하다. 보편적인 것이야말로 예술 본래의 목적이다._ 피에트 몬드리안/ 1827~1944/ 논문'신조형주의-균형적 조형의 근본원리' 중에서, 1920.단순한 디자인의 힘. 그것이 정보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열쇠이다._ 라디슬라브 스투나르/ 1879~1976기술은 예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은 기술이 필요하다._ 월터 그로피우스/ 1883~1969/ '바우하우스의 이념과 조직' 중에서, 1923.자연의 유기적인 조형은 모든 인공적 조형의 영원한 전형이다._ 월터 그로피우스/ '건축' 중에서, 1956.모방자들은 총성 일발에 산산히 흩어진다._ 오장팡/ 1886~1966/ 르 꼬르뷔지에와의 공저 '근대회화' 중에서디자이너란 과학 지식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전달자이며, 중매자이며, 해설자이자 또 영감의 고무자다._ 윌 버틴/ 1908~1972과거의 결정, 풍습, 습관, 이 모든 것은 마음의 자유로운 활동을 교란시키고, 제한하고, 변덕스럽게 간섭하는 압도적인 사건들을 통하여우리와 자리를 함께 나누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방해들에 전혀 주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곤란한 문제의 뿌리를 조금만고쳐도, 그것은 모든 것을 변화시켜서 마음의 창을 열고 상상력이 자유롭게 흘러다니도록 해줄 수 있다._ 르 꼬르뷔지에/ 1887~1965/ '모듈러' 1장 전문 중에서.과거의 도구는 항상 인간의 손안에 있었으나 현재의 도구는 우리들 손 밖에 있음으로 해서, 인간은 손아귀에 넣을 수 없는 숨을죽이고 있는 것이다._ 르 꼬르뷔지에디자이너는 형태의 취급을 단지 '산뜻하게 한다'는 표현만으로 적절하다.경우에 따라, 시대의 기호에 따라 또는 일반의 용도에 따라 풍부하고, 섬세하고, 우아하고, 힘찬 방식으로._ 그레고르 파울슨타이포그라피는 하나의 전달수단이다. 그것은 가장 효과적인 형태로서의 명확한 전달이지 않으면 안 된다._ 모홀리나기/ 1895~1946/ '바이마르의 국립 바우하우스' 1919.디자인이란...... 기술적, 사회적, 경제적 요구, 생물학적 필요와의 상관관계에 있어서 형, 양감, 색, 공간 등 재료의 심리적,물질적 힘과의 통합이다._ 모홀리나기/ '비젼 인 모션' 중에서아트디렉터는 대중의 의식을 쫓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선도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소소하고 사소한 비판에 연연해 하기보다는 시대의 사조를 앞서 인식하는 지혜를 지녀야 한다._ 메헤메드 페미 아가/ 1896~1978.우리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을 찾길 원하는데 나를 선생님이라고 생각지 말고, 나도 초보자라고 생각하라. 나는 우리가설교하거나 가르칠 수 없으며,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선생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것보다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를 한줌의소금과 같이 생각하라. 내가 지도하는 방법은 사람들을 자극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내가 많이 비평할 수록 너희는 자기 자신을형성해야 한다. 낡은 관습과 버릇을 털어버리면 개혁의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을 찾아야 하며,많이 실패할 수록 더 많이 배울 것이다._ 알렉세이 브로도비치/ 1898/ 영 앤 루비컴의 디자인 실험실에서 첫 강의 때 한 말. 1964. 9.창조과정은 손재간이나 지식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머리, 가슴, 손이 동시에 역할을 하는 하나의 통일된 과정이다._ 허버트 바이어/ 1900~1985예술가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자연적으로 반영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본다.예술가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볼수 없는 것을 볼수 있게 해주는 거울이다.디자이너가 곧 예술가라는 말을 반복하지 않더라도 이 둘 모두가 인간의 욕구,그것의 확장된 개념으로서 환경의 욕구에 부응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_ 허버트 바이어/ 예술가로서의 디자이너를 강조한 글.디자이너의 역할이 증대되기 위해서 디자이너 스스로 부단히 직관적인 실험자세를 가져야 한다._ 레스터 비일/ 1903~1969우리들은 혼란된 시각환경 속에서 시각적 이미지라고 불리는 통일된 실제를 만들고 있다._ 기오르기 케페스/ 1906/ '시각언어' 중에서.나는 주로 수학적 사고에 바탕을 둔 예술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_ 막스 빌.오늘날 그래픽 디자이너는 한 주요한 세상의 지배자이다.가치있는 문화가 무엇인지를 이해시켜야 할 사명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_ 프랑코 그리니야니.세계에는 장식적 분자가 없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인생은 그 때문에 황량해질 것이라고 염려할 필요가 없다.오히려 진정한 미가 세계에 충만하게 될 것이다._ 아돌프 로스.디자인은 모험이기 때문에 나는 좋아한다. 또한 디자인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란 뿐이다._ 딕 엘페즈.네가 가진 시각적 요소를 손에 쥐고 그것을 보아라. 그러면 그것이 바로 디자인을 시작하는 것이다._ 윌리엄 골든/ 1911~1959나 스스로 틀을 만들고 또 바꾼다._ 죠반리 핀토리.좋은 디자인이란 그 시대에서 뛰쳐나와야 한다._ 엘빈 러스티그/ 1915~1955메시지는 이에 대한 관심이 잠재의식으로 남을 수 있도록 신속하게, 생생하게 전달되어야 한다.이성적 사고의 훈련이 디자인의 표현을 좌우한다._ 에이브럼 게임즈.디자인의 세계는 실로 커뮤니케이션의 세계다._ 허브 루발린/ 1918~1981일반 대중이 갖고 싶어하는 것으로가 아니라 디자이너 자신이 주고 싶어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_ 헨리 울프/ 1925.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나 자신에 대해서 쓰라고 한다면 나는 오직 Just Work라는 두 단어로 나 자신을 표현한다._ 한스 힐만/ 1925'좋은 작품은 첫째, 전하고 싶은 것을 명확히 전하고 있는가. 둘째, 그래픽 어휘를 독특하게 구사하는. '이 두가지의 적절한조화이다.성공과 과잉의 경계는 종이 한장 차이이다. 이 두 메시지가 균형을 이뤄 정보를 정확하게 전하는 것은 다지안의생사에 관한 것이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환경의 한 부분을 책임진다는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디자인의 표현 문제가무엇이든 간에 그 형식적 구조는 추상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주체에 적합하다는 점에서도 성공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이점은 어떠한 다른 창조적인 작업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_ 말론 글레이져/ 1929/ 좋은 작품에 관한 견해.우리는 모방의 역할에 대해서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개인의 역할 보다는 전체로서의 사회에 관심을 가지는다른 문화권에서는 모방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중국 예술품의 경우 모방을 잘했을 때는 오리지널과 똑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전 5권을 읽고수많은 삼국지의 표본중 나의 손에 들어오게 된 두꺼운 또 강렬한 빨간색의 다섯권의 삼국지. 익숙치 않은 한문들, 세로로 된 낡은 책이었다값을 보니 1,400 놀랄수밖에 없었다 처음 접한 것은 고1 겨울방학때였다벌써 세번째 읽는 것인데 이제야 겨우 눈에 들어오는거 같아 글을 남겨본다지금으로부터 1700여년전 방대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이란 대국이 있기까지..때는 후한시대, 황하의 유비 이야기로 책은 시작되고 있었다효성지극한 유비의 모습, 가난하지만 옥골선풍의 자태를 지닌 어딘지 사람을끄는 매력이 있는 유비는 어머니에 대한 효심으로 길을 떠났던 중 장비와관우, 그리고 그의 첫째 부인이 될 홍부용을 만나게된다위인 뒤에 항상 그렇듯 훌륭한 어머니가 계시다 바로 유비의 어머니..어머니가 없었던들 유비,관우,장비의 그 유명한 도원결의가 있었겠는가당시 세상은 남아의 힘이 권력으로 난무하던 시절, 어수선한 세상에서 가장하찮은 것이 사람목숨이요 법이란 곧 '의'를 맹세한 패거리의 우두머리로 인해정해지는 것이었다 이런 때에 의병을 모집해 나라의 큰 도적인 황건적을 토벌하게된것이 삼형제의 첫 전쟁이었다 몇번의 전투끝에 삼형제는 절실히 느끼는 것이 있었다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적을 무찌른다는 한 목적이었으나 정작 전장에서는 실세와 명예가 중요하다는 그것이었다 아무리 학문과 무예가 출중한들 그에 맞는 관직이 말할 기회를 주고 빽그라운드가 있어야 더 높은 곳으로의 보장을 해주고 있었다 유비처럼 훌륭한 왕족의 핏줄이라도 누가 알아주어 현재까지 그 세가 이어지지 않는 뒷방 왕족은 더욱 내세울 무엇이 안되는 것이었다공손찬 밑으로의 합세로 시작하여 삼형제는 인맥을 넓히며 이름을 알려나가기 시작했다그러는 중에 유비는 조조를 만나게 되었다 훗날의 피의 칼부림을 예견해주듯 둘은 서로에게 범상치않은 영웅의 기운을 느끼게된다그때만해도 황건적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었으므로 둘은 한편이었다황건적이 토벌된 뒤 세상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세력다툼으로 더욱 시끄러워진다비옥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기를 반복한다또다른 세계인 궁궐에서는 어린 천자를 위해서란 명분으로 섭정이 이루어지고제일 먼저 권력을 낚궈챈 동탁이 천자를 갈아치우고 무자비한 살상으로 왕처럼 군림하나영웅호걸에겐 미인이야기가 뒤따르는 법. 충신의 딸인 초선의 미인계로 결국비참하게 죽고만다 그러나 스스로 영웅임을 자처하는 호걸들이 각지에서 기회를노리고 있는데 평화가 그리 오래가지는 않는다왕권은 항시 위협받는 법이니까천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수십만의 오합지졸보다 단 한명의 호걸과 충실한 신하가필요한법, 천하호걸인 여포에게는 용맹은 있으나 지혜가 부족했고 누구보다 많은군사를 가지고 있는 원소는 담력이 부족했다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자의 후손으로존망있는 가문의 손견은 충신의 간언을 듣지 않음으로 서른일곱의 짧은 인생을 마감했고자신의 야망을 위해선 '의'도 버리고 목숨을 아낌없이 뺏는 조조조차 충신의 말에귀를 기울이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군자의 덕과 용모를 갖춘 유비는 어떻게보면 참으로 우유부단함이 있다문무를 겸비한 관우가 이를 보좌해주고 장비의 겁없는 용맹이 이를 뒷받쳐주니유비는 황제로서의 야망을 더욱 견고히했다 하겠다삼국지는 또한 주군들의 싸움 뿐만이 아니라 전략을 짜는 군사들의 지혜싸움이 치열했다용감무쌍한 영웅호걸들을 앞세워 온갖 꾀를 내어 주군의 야망을 두뇌와 입으로써 이뤄준다싸움의 승패는 또한 군사와 군사 개인의 명예이기도 하였던 것이다관우, 장비의 투정에도 뜻을 꺽지않은 유비는 그 유명한 '삼고초려'끝에'와룡선생'이라 불리는 제갈공명이라는 당대 최고의 두뇌를 얻을수 있었고이것으로 천세가 유비에게로 흐른다는 강한 메세지와 함께 유비의 처세술을 감탄케한다동탁이 죽고 권력을 차지한 조조는 서서히 야심을 드러내 동탁과 같은 정세를 펴고이에 분한 각지의 제후들의 움직임에 합류한 삼형제는 조조에게 패하여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아무리 적군일지언정 진정한 의인은 대접해 주는 법. 조조는 이때 관우의 호걸됨과유비에 대한 충의를 흠모해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여포에게서 빼앗은 적토마를 선물하고잦은 주연으로 관우의 마음을 유혹해본다그러나 오히려 마음을 다치고 만다 어디를 비교해 보아도 유비보다 꿀릴것이 없는조조였지만 관운장같은 목숨을 바치는 충신이 없다는 것을 한탄하고 적토마를 타고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위엄을 더욱 갖추게 도와준 셈이었다이로서 유비의 덕과 관우와 적토마, 성질급한 용맹의 장비, 제갈공명의 두뇌..이름만 들어도 든든한 뭉침으로 유비는 천하통일의 대망을 이룰 조건을 모두갖추고 뜻을 펴나갔다크게 세분된 대륙, 천자를 끼고있는 조조와 강동의 손권, 그리고 하북의 원소원소의 대국은 형제간의 골육상쟁과 조조로 인해 멸망을 맞게된다자신의 묵을 땅이 없는 유비도 여러차례 어려움을 겪게 되나 제갈공명의 꾀와두 아우의 용맹으로 드디어 넓고 비옥한 땅 한중을 차지하게 된다유비가 조조에게 어려움에 처했을때 강동의 사신으로 도움을 청하러 갔던 제갈공명의기지는 실로 감복할만한 것이었다 강동의 오나라와 손잡고 조조를 치고 또 견제하고 이렇듯삼국으로 분열된 대륙을 빼앗기 위한 싸움은 계속되고 어느덧 전장에서의 생에도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각기 제 나라의 부강을 꾀하며 국력을 키우고안정적인 부강한 나라들로 급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삼국은 각자 독립된 나라임을천명하고 스스로 천자임을 자칭하여 국가를 세우게 된다위국의 조조, 한중의 유비, 오의 손권...당대를 주름잡던 영웅 조조와 유비는 이때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삼국의 끊임없는 싸움이 계속되고 모두 강한 나라인지라 쉽사리 승패는 나지않았다
생활 속의 예술 Art in Life류 병 학독립큐레이터2004년 부산비엔날레를 위한 국제미술학세미나 발제자 이성훈님의 발제문 '틈의 문화적 위치(Cultural Location of Chasms)' 읽어보았습니다. 국제미술학세미나 요강에는, 발표자가 세미나 주제 '틈'의 2004 부산비엔날레 전시 주제로서의 해석 또는 비판을 하고 2004 부산비엔날레의 전시기획을 제안하도록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선 제가 나름대로 읽어본 발제자의 발제문을 논의해본 다음, 제가 생각하는 전시기획을 제안하도록 하겠습니다.발제자는 발제문 서두에서 '재현'에 주목했습니다. 발제문 서두의 문장을 먼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실은 재현이라고 하는 의미작용을 통해 성취된다. 비엔날레는 현실을 재현하고 구성해내는 하나의 유효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적나라한 현실이라고 하는 게 없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누군가에 의해, 무언가에 의해 재현된 현실이기 때문이다."최근 국제적인 관심사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입니다. 우리는 그 전쟁을 TV를 통해 보고 있습니다. 라이브(LIVE)라고 하지만, 사실 TV에서 방영되는 이라크와 미국 사이의 전쟁은 '재현'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CNN의 편파보도'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TV를 통해 경험하는 현실(전쟁)은 (이성훈님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누군가에 의해, 무언가에 의해 재현된 현실입니다. 따라서 그 재현된 현실에는 이미 의미, 지식, 해석이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 재현은 방송통제, 즉 방송할 수 있는 것과 방송할 수 없는 것이란 선택과 제한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재현의 정치학으로 부릅니다.발제자는 그 '재현의 정치학'을 비엔날레에 적용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했습니다. "재현으로서의 문화인 비엔날레는 단순히 현실의 수동적 반응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이미 능동적인 구성이다. 오늘날의 일상생활에서 미술을 포함한 시각이미지는 재현영역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성을 누리고 있다. 시각적 술관과 화랑뿐만 아니라 비엔날레 역시 작품선택과 전시기획에 의해 자신들이 전시하는 대상들에다 특정한 문화적, 사회경제적 가치들을 부여하는 권력기관이다. 이러한 미술기관들은 위대한 작품의 전시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기관들은 특정 작품들을 전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그것들에게 위대함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발제자의 '판단'은 그 미술기관이 명성을 얻었다는 것을 전제할 때만 가능하다고 저는 봅니다. 만약 어느 비엔날레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면, 어느 작품들이 그 비엔날레에 전시되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위대함의 지위를 부여받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점은 미술관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발제자는 발제문 중간쯤에서 부산비엔날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하셨습니다. "부산비엔날레가 여느 비엔날레와 마찬가지로 고급미술이라고 하는 찬란한 스펙터클(예술작품의 사적 생산)을 무지몽매한 일반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성스러운 전당으로 계속 남아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발제자의 진술을 따른다면, 지금까지 부산비엔날레는 전시된 작품에 위대함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대한 작품의 전시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임을 반증하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부산비엔날레가 여느 비엔날레와 마찬가지로 고급미술이라고 하는 찬란한 스펙터클을 무지몽매한 일반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국제전이라면, 그것은 부산비엔날레가 여느 비엔날레를 '재현'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 까닭에 여타의 비엔날레와 ('차별'이 아닌) '차이'를 지닌 부산 비엔날레의 '독자성' '정체성' 등이 논의되는 것이겠지요. 두말할 것도 없이 발제자의 발제문인 '틈의 문화적 위치' 역시 바로 부산 비엔날레의 독자성 획득을 위해 쓰여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부산비엔날레 학술위원회는 많은 논의를 거친 끝에 이번 국제미술학술세미나의 주제를 '틈'으로 확정했다고 합니다. 좀 길지만 그 '틈'에 관한 발제자의 진술을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미나의 주제로 제안된 '틈'은 단순히 객관적 묘사어가 아니라나의 중심이기도 한,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반주변에 속해 있는 지역으로서, 반주변이 안고 있는 일반적 조건의 지역적 발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그 진술은 구체적인 사례가 아니라 전반적인 윤곽만을 묘사했기 때문에, 그 진술이 부산의 '틈' 혹은 '상처'를 전달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그러면 이번엔 발제자께서 구체적인 사례들로 나열한 것으로 읽히는 부분을 (길지만 모두)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외세의 침략 루트였던 곳, 그 외세에 대한 저항이라고 하는 너무나 소중한 의미를 저장하고 있는 곳, 우리의 일상이 소비하고 버린 쓰레기들, 우리의 삶이 너무 팍팍하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가치의 흔적들, 혹은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었으나 부지불식간에, 혹은 실수로 잃어버린 것들, 소비사회의 풍요로움을 잠깐 맛보았을 때 우리가 풍요로운 삶의 가상에 현혹되어 내다버린 아까운 것들, 세계화의 깃발과 이 깃발을 미친 듯이 흔들어대는 신자유주의의 광풍 때문에 나자빠진 우리의 이웃들이 거기에서 주워가 요긴하게 쓸 수도 있는 것들, 세계화 덕분에 확대된 새로운 이웃이라 할 외국인이 혹시 남겨놓았을지도 모르는 그들 삶의 편린들, 우리를 지금의 우리로 있게 만든 어느 때의 선거전을 떠올리게 하며 이제는 우리의 업보가 되어버린 환하게 웃는 어느 정치인의 포스터 사진 조각, 이렇게 우리의 실존의 현 모습을 문득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드는 것들, 다시 보았을 때 미소 짓게 하거나 고통을 다시 불러내거나 회고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자잘한 것들, 자본주의의 물신을 대표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도시공간의 틈에 끼워져 있을 것이다. 도시공간의 틈들 속에는 과자 봉지, 신문 쪼가리, 머리카락들, 녹슨 동전, 외로운 운동화 한 짝, 유리 조각, 코카콜라 병, 피자 포장박스 조각, 담배꽁초들, 개털, 혹은 죽어 썩어가는 쥐새끼, 누군가의 빛바랜 주민등록증, 깨어진 플라스틱 바가지 등도 있을 것이고, 현철이나 G.O.D 공연의 잔재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발제자께서 바로 문화민주주의의 실천이 될 것이다."발제자께서 제안하신 '문화민주주의'의 도시설치작업은 일종의 '공공미술(Public Art)'입니다. 미술계에서 가장 말많은 공공미술의 문제점에 대해서 이곳에서 제가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우선 공공미술품이 일회성이 아닌 반영구적으로 설치되어야 한다는 발제자의 말씀에 저는 동의합니다. 대부분의 공공미술작품은 시민의 세금으로 제작되고 설치된다는 점에서, 부산의 곳곳에 설치될 공공미술품은 무엇보다 부산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공공미술은 일종의 '시민세금 돌려주기'로 부산시민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게 될 공공재산이 되는 셈입니다.이미 발제자께서 말씀하셨다시피 공공미술은 무엇보다 지역주민의 참여로 추진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문제는 그 추진과정에 적잖은 시간이 투자된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단기간에 지역주민 참여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만약 단기간에 그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면, 그 사업은 형식적인 사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공공미술에서 주목해야만 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작품설치 후 '관리'입니다. 따라서 작품설치 이전에 관리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단편적이나마 발제자의 발제문에 대한 저의 생각을 피력해보았습니다. 저는 그 발제문에서 무엇보다 "부산비엔날레는 허구적인 무정치성의 무릉도원에 안주하는 이른바 순수예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진술에 동의합니다. 순수예술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발제자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모더니즘이 간직했던 평가적, 엘리트주의적, 보편주의적 태도를 지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저는 그런 모더니즘의 "형식 속에서 억압되었거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욕망, 관심, 그리고 이해관계"들 중에서 생활세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발제의 제목을 '생활 속의 예술(Art in Life)'로 명명했던 것입니다.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19세기말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예술은 삶으로부터 분리되지 않하지만 생활공간의 변화로 인해 미술작품도 '개량'되었다는 점입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닥에서 생활하던 우리는 자리를 의자로 옮겨갔습니다. 서구식 응접실에는 소파가 배치되고, 그 소파가 등지고 있는 벽면은 무엇인가로 '장식'되어야 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집안에 비치된 서예에서 수묵화 그리고 산수화 또한 병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그림들은 대부분은 세로로 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형태의 그림은 개량된 집안 구조와 어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언하자면 벽면에 배치한 가로의 긴 소파나 장식장으로 인해 나머지 빈 벽면 또한 가로의 공간으로 남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1970년대 이후 붐을 일으킨 그림들은 한결같이 가로로 긴 그림들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가로로 긴 그림이 세로로 긴 그림보다 비싸게 판매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은 화선지에 그려진 '한국화'라도 서구식 유리액자에 끼워지게 되었습니다.이 단편적인 사례는 두 가지 점을 알려줍니다. 하나는 미술이 일상세계와 호흡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술이 구체적인 건축공간과 관련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림이나 조각은 어떤 특정 공간 안에 배치되거나 설치됩니다. 물론 여러분들은 그 공간을 중성적인 공간, 즉 미술관이나 화랑의 백색 입방체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백색 전시장은 일상공간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대부분의 미술작품은 백색 전시장에서 전시된 후 일상공간으로 자리바꿈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장구한 우리 미술과 마찬가지로 현대 미술작품도 구체적인 생활공간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서점에 가면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적잖은 책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미술'은 관념의 집적이 아니라 삶으로부터 개념화된 것입니다. 따라서 각종 미술은 성향으로 간주되기보다 '사는 방식으로' 문화를 이루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발제자께서 미술을 문화적 차원에서 보자고 제안한 것에 제가 동의했던 것입니다. 삶과.
뤼팽과 813의 비밀뤼팽과 813의 비밀누구나 한번쯤은 '괴도뤼팽'에 대해서 들은바가 있을것이다. 변장술에 능하고 절대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신사 중에 신사. 그가 다른 신사들과 조금 다른 점은 도둑이라는 점이다.사건의 발단은 부자 '케스르바하'의 죽음이다. 이 사건의 용의자를 찾기 위해 형사 '르노망'은 타고난 추리력으로 차근차근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고, 의문의 사나이 '세르닌 공작'은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손발처럼 부린다. 전혀 다른 이 두명의 인물. 그리고 귀도뤼팽. 그러나 정말 놀라운 것은 나중에 이 세 사람이 동일인물, 즉 아르센 뤼팽인것으로 밝혀지게 되면서 부터이다. 작가의 이런 놀라운 구성력으로 이야기는 한층 그 재미를 더해간다. 아무도 이 세 사람이 동일인물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전혀 상반대는 성격의 인물들. 이것 역시 작가 '모리스 르블랑'의 의도적인 구성이라 할수 있겠다. 한편 그 세 사람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진 후 괴도뤼팽은 감옥에 잡혀가게 되고 사건은 점점 더 꼬여가기만 했다. 그러다가 괴도뤼팽은 케스르바하를 죽인 자를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APO ON'이라는 글자와 '8.1.3'이라는 숫자를 대공의 서류를 통해 알아내게 된다. 물론 괴도뤼팽은 계속 감옥에 갖쳐 있었다. 모든 자료와 용의자의 근황 등을 살핀 자들이 따로 있었기에가능했던 것이었다. 또한 경찰이기도 했던 괴도뤼팽의 수하들은 감옥안에서 괴도뤼팽과 자연스럽게 접촉하였고 사건은 조금씩 그 빛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찾아온 뜻밖의 손님, 독일의 황제가 APO ON과 813의 비밀을 밝혀내면 괴도뤼팽을 풀어주겠노라고 제의했다. 귀도뤼팽은 독일의 황제와 함께 좋은 열쇠가 되는 대공의 밀서를 찾아나선다. 하지만 괴도뤼팽이 APO ON과 813을 이용해서 거의 다 찾은 무렵은 수상한 침입자, 즉 케스르바하를 죽인 살인마에게서 밀서를 선수쳐진 다음이었다. 이런 쫓기고 쫓기는 아슬아슬한 순간들이야말로 괴도뤼팽과 813의 수수께끼를 더욱 재밌게 하는 원동력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밝혀진 APO ON의 비밀. 괴도뤼팽은 그것이 APOLON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뜻밖에도 그것은 나폴레옹으로 밝혀지게 된다. 이렇게 착각과 착각속에서 탄생하는 또 다른 진리는 더욱 나를 이 소설에 빠지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좀더 지나고 굳은 의지와 끈기로 괴도뤼팽은 드디어 케스르바하를 죽인 살인범을 찾아내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다름이 아닌 바로 죽은 케스르바하의 아내이자 미망인, '드로레스 부인'이었다. 여기에서는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이 정말 딱 맞아떨어지는 듯 하다. 이렇게 뜻밖의 용의자를 찾아낸 괴도뤼팽은 자신의 딸, '쥐느비에브'를 남겨둔채 유유히 저편으로 모습을 감춘다.이 소설에서 정말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괴도뤼팽이 사건을 풀어나간다는 컨셉이었다. 신사도둑 괴도뤼팽이 보석이나 돈을 훔치는것이 아니라 사건을 풀어나가다니... 처음에는 독일 황제의 제의에 따라서 괴도뤼팽이 졸지에 탐정노릇을 하게 된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독일황제를 만나기 전에도 그는 어쩌면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해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처음에 케스르바하가 죽었던 당시 캐스르바하의 집에서 등장했던 인물이 바로 괴도뤼팽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때 괴도뤼팽은 케스르바하의 돈을 훔치려고 들어왔던 것이 아니라 용의자가 케스르바하를 죽일 때 남겼을만한 단서를 찾기 위해 들어왔던 것이 아니었을까?
웹디자인 동여상 디자인.>> 웹사이트의 수가 증가하고, 다양한 회원확보의 경쟁구도에서 보다 차별적인 접속효율을확보하기 위해 웹디자인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디자인의 미적 개념이 웹사이트에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인프라가 급속도로 구축되고, 전송속도와 정보의 공급양이 절대적으로 증가하면서 웹사이트의 수량은 이미 예측했던 속도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전세계에 확대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디자인방식과 미학적 패러다임으로 웹사이트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변화되는 첨단 패러다임에 전혀 반응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불러오게 된다.>> 현재의 웹사이트 대부분은 정적인 이미지의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정부분획일적인 기능과 구성으로 일관되어 있다. 부분적인 플래쉬기능과 동영상기능을 통해 차별적인 화면을 구성해 보지만, 사이트별로 기존 용량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이러한 영상의 특화는 한계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웹사이트의 특성과 그 사이트가 특별하게 공급하는 전문 콘텐츠의 성격을 웹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응용해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수용자도 매번 방문하는 사이트에서 변화되거나 진화되는, 그리고 참여함으로써 발전되어 간다는 사이트의 성장환경을 인식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 사이트를 지속적으로 방문하지 않게 된다.>> 웹사이트의 수가 급증하고, 기존 미디어의 정보유통체계를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특정한 정보를 공급하는 웹사이트의 동종상품 경쟁구도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결국 웹사이트 정보공급을 기반으로 하는 웹비즈니스의 성공여부는 웹디자인 달려있다 할 것이다. 웹디자인 자체에서 이미 변화되는 정보의 트랜드를 인식시켜야 하고, 수용자의 참여효율을 극대화시켜야 하며, 지속적인 방문을 유도해내기 위한 참여이벤트를 확대해야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기능과 필요성에 적합한 웹디자인 컨셉은 '웹툰', '웹애니메이션', '웹게임'이라는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웹사이트 시작화면에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사이트에 는 5분정도의 웹툰이나 웹애니메이션을 자연스럽게 감상하면서 사이트의 성격과 공급되는 정보의 질적 수위를 수용자가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오프닝 엔터테인먼트 기능이 완료되고, 본격적인 사이트 화면이 열리면, 수용자가 직접 게임에 참여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나갈 수 있는 정보찾기 게임형식의 사이트 구성화면이 열리게 되고, 사이트에 방문한 수용자는 온라인 게임형식의 채팅창과 자신의 아바타(avatar, 분신)를 통해 사이트에 참여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웹사이트를 방문하는 수용자수와 정기적인 회원의 양적수치가 사이트의 가치를 평가하는 시대에, 웹운영자들은 새로운 디자인 패러다임을 적용해야 한다. 바로 한번 방문한 수용자를 끊임없이 방문하도록 유혹하고 확인시키는 여러 가지 장치를 웹사이트 디자인에 구축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웹사이트는 그냥 들르는 정거장의 개념에서 수용자의 사이버커뮤너티로 진화되어야 한다.기업이 원하는 웹디자인한국의 디자이너들은 이제 스스로 그들의 '활동무대'를 개척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모험정신을 발휘하는 디자인 리더들에게는 지금의 임금과 작업 환경보다 훨씬 더 좋은 새로운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디자이너들이 창업할 수 있는 분야는 디자인 전문 용역회사 뿐만 아니라, 제조, 서비스 분야 등 무한히 많다. 디자이너들은 지금까지 젖어있던 '조연' 역할을 떨치고 스스로가 '주연'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직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규모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역할이 과연 '창조'적인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정보화시대에서도 디자이너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기에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일반인들과 다르다. 정보를 사용하기만 하는 일반인들과 비교 할 때 디자이너들은 정보를 만들어내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21세기는 바로 '창조자의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말하지 않는가. 디자인 리더십이란 기업내에서든 컨설턴트로서든 간에 독립적인 사고방식과 뚜렷한 디자인 철학을 가진 창조자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리더십을 갖춘 디자이너야말경험을 쌓은 디자이너들이 모험정신을 발휘해서 독립하여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 디자인계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많은 디자인 리더들이 탄생해서 규모가 작은 기업일지라도 무엇인가 전문적이고 새로운 디자인 사업분야를 맡거나 창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대기업내 디자인팀들의 활약만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뒷받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매년 수많은 디자인 전공 졸업생들이 배출되는데 이를 소화시킬 만큼 디자인 회사도 충분치 않다.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너무 많은 전문인원들이 한정된 범위의 프로젝트를 나눠서 진행하게 될 경우, 디자이너 개개인의 창조적인 도전의 폭이 좁아지게 되므로 쉽게 타성에 젖을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관된 디자인 방향추구(CIPD:Corporate Identity through Product Design)에도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특히 디자인과 같은 분야는 꼭 디자이너가 많아야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장할 수 없다. 때에 따라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디자인의 결과는 지나친 타협 때문에 오히려 실패할 확률도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년 전 필자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만 해도 미국의 대기업들은 사내에 대규모의 디자인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점차 사내 디자인팀의 규모를 줄이면서 독립된 디자인 전문회사와의 협력을 통해 효율적으로 업무를 추진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내 디자인실의 규모를 축소시킨 이유는 비용절감으로 인한 효율성만이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신제품 개발에 비중을 두고 있는 기업의 디자인팀은 사내 디자이너들과 외부 디자인 컨설턴트들의 기능을 각각 다르게 활용하여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기업이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서는 외부의 색다른 감각과 견해를 필요로 하며, 디자이너들의 자기계발과 발전을 위해서도 한 회사에서 평생을 근무하는 것은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한 기업내에서의 인 분야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는 한국의 경우 현재 많은 디자이너들이 대기업 디자인실에 편중되어 있고, 대학 졸업생들도 여전히 대기업을 지망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국제적인 디자인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현재의 결과에 만족하지 않는 도전성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더군다나 국가 경쟁력을 해외 수출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해외 기업 정보에 민감해야 하며 디자이너들의 국제적 견문을 넓히기 위한 투자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다. 디자이너들의 결과물은 디자인들이 어떻게 마무리하는가의 기교적인 면보다도 어느 정도의 정보를 갖추고 그 작업을 시작했는가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어떤 능력있는 디자이너가 주어진 프로젝트를 열심히 진행하여 그로서는 최선의 디자인 안을 내놓았다고 하자. 그러나 그의 디자인은 다른 경쟁사가 이미 개발해 놓은 방식보다 구식이었고, 그러한 우를 범한 이유는 단지 그 디자이너가 경쟁사의 제품을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면, 개발 기간에 쏟아부은 정성과 비용들은 헛된 것일 수도 있다.한국이 디지털 강국이 되기 위해서 결국 세계적인 경쟁 속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발판이자 그 키워드는 좋은 개발 인력(Human Resource) 이다. 제조업은 공장이라도 남겠지만 닷컴기업에서 개발인력을 제외 한다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사람은 IT 비즈니스의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웹 디자이너는 이 안에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일류 웹 디자이너 없이 일류 웹 사이트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프로그래밍적으로 완벽하다 해도 A급 웹사이트가 될 수 없다. 요즘 시계를 보면 시간이 부정확한 시계는 없다. 다만 디자인에 의해 부가가치가 결정될 뿐이다.마찬가지로 웹 프로그램이 모듈화되고 표준화 되면서, ASP가 일반화 되면서, 개발환경이 좋아 질수록 기능적인 면에서의 차이는 점점 줄어간다. 종국에는 아이디어와 컨텐츠, 웹 디자인으로서 가치가 결정 되게 되어있다. 웹 개발조, 사용의 편의성, 기능에 관한 문제들, 네비게이션 등의 문제를 프로그래머와 함께 기획하고 그 결과물로서 시각적인 그래픽을 모니터 위에 표현해 내야 한다. 종이 위에 컬러를 지정하고 그림과 폰트 등을 레이아웃을 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와는 다른 작업임에 틀림이 없다.사실 디자이너가 반드시 디자인과를 나와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개인의 소질과 타고난 능력, 그리고 대학이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학원을 나왔다고 해서 좋은 디자이너가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현재 한국의 디자인 학원의 교육만으로는 제대로 교육 받은 디자이너가 되는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학원에서는 단순히 툴 사용법을 가르칠 뿐 ‘디자인’을 가르치지 않는다. 툴만 사용할 줄 아는 걸로 웹 디자이너가 된다면 워드를 잘 다룬다고 소설을 잘 쓸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야기다.웹의 초창기인 95년부터 98년 정도 까지만 해도 툴로서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HTML ,flash 정도만 사용하면 ‘홈페이지’를 만드는데 별문제가 없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웹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였고 웹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기술적인 부분이 커졌다.이런 니드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전문화된 교육을 받은 웹 디자이너의 육성이 시급하다.이는 빠른 시일 내에 4년 제 대학에서 웹 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가 육성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당장 2001년부터 신입생을 뽑는다고 가정해도 2004년부터 겨우 졸업을 하는데 아직도 교육부나 디자인계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국내 상황을 살펴보자. 현재 (2000년 9월 기준) 중소기업청에 지정 받은 법적 벤처기업의 수는 7000개이고 연말까지 1만개가 넘을 예정이다. 벤처기업지정을 받지 못한 인터넷 관련기업들이 훨씬 많은 것을 감안하면 닷컴기업만 5만개 정도 있고, 기존의 오프라인 기업 안의 IT 관련 부서까지 합친다면 줄잡아 최소 10만개 이상의 기업에서 웹 사이트를 제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기업들 한 곳에 한 명의 웹 디자이너가 배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