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희*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3
검색어 입력폼
  • [청년기]`아름다운 전태일`을 통해 본 청년문화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의 청년문화1. 전태일 분신사건이란?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의 평화시장 앞에서는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평화시장 피복 공장의 재단사이자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던 22살의 전태일이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온 몸에 휘발유를 붓고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평화시장 앞을 달리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외마디 말을 남기고 쓰러진 뒤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둔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2. 갈등요소는 무엇이었는가?우선 무엇이 22살이라는 한창 꿈이 많을 나이의 청년 전태일을 죽음으로 몰고 갔으며, 그가 고뇌하고 갈등했던 요소들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태일은 1948년 8월 26일 대구의 한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나 1954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1960년 남대문초등학교 4학년으로 편입하였으나, 같은 해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학교를 중퇴하고 이때부터 동생과 함께 동대문시장에서 행상을 하며 생계를 이었다. 1965년 평화시장의 피복점 보조(시다)로 취업해 하루 14시간씩 힘겨운 노동을 하고 일당으로 당시 차 한 잔 값인 50원을 받았다. 이듬해 직장을 옮겨 미싱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어린 소녀들이 일당 70원을 받으며 점심도 굶은 채 고된 노역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이때부터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이 무렵 함께 일하던 여공이 직업병으로 인해 폐렴 3기 진단을 받고 강제 해고되는 등 사업주의 노동착취와 비인간적인 행위가 계속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뒤, 자신도 여공들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해고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좁은 다락방에 갇혀 먼지 구덩이 속에서 일하다 핏덩이를 토하며 쓰러지는 여공, 하루 15시간을 일하고도 커피 한잔 값이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굶고 있는 어린 시다들. 그는 어린 동심들을 돕기 위해 재단사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다. 피곤해하는 시다들을 일찍 보내고 밤늦게까지 남아 그들의 몫까지 마저럼 되었고, 밥을 굶고 있는 어린 시다들에게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동대문에서 창동까지 그 먼 길을 뛰어다녔던 것이다. 때로는 통행금지 시간에 걸려 파출소에서 잠을 자고 다시 새벽에 출근하는 여정을 몇 년 동안 이어가면서 그는 그 어린 동심을 지키기 위해 자기가 치러야 할 희생의 크기를 이미 가늠해 보았을 것이다.3. 왜 갈등하게 되는가?1968년 우연히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인 노동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근로기준법 해설책을 구입해 법의 내용을 이해한 뒤, 이때부터 평화시장 재단사들을 중심으로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모임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6월 드디어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인 ‘바보회’를 창립하고 회원들과 평화시장 여공들에게 근로기준법의 내용을 알려주면서 근로조건의 부당성을 역설하는 한편, 설문을 통해 평화시장 내 노동실태를 조사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실패로 끝나고 평화시장에서도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전태일은 한동안 공사판을 전전하며 막노동을 하게 된다. 아마도 전태일의 갈등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전태일은 권위에 항거(좁은 의미에서는 근로기준법에의 항거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넓은 의미에서 보면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모순에의 항거라고 할 수 있다)하고자 했다. 하지만 일개 노동자 개인으로서 그의 힘은 다수를 상대하기에는 미약했던 것이고, 뜻을 관철시키기에는 무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즉, 권위에의 항거는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던 셈이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사회 전체와 전태일이라는 노동자 개인의 대결구도에서의 결과는 애시 당초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4. 어떻게 갈등을 해소하려 하는가?1970년 9월 평화시장의 노동환경 개선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결심을 하고 다시 평화시장으로 돌아온 그는 재단사로 일하면서 이전의 ‘바보회’를 발전시켜 ‘삼동친목회’를 조직한다. 그 뒤 노동실태 설문지를 돌려 126장의 설문지를 받아 내고, 90명의 서명을 받아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한다. 이 내용면서 삼동회 회원들은 본격적으로 평화시장 근로개선 작업에 나서 다음 달 8일 2명의 동료와 함께 평화시장(주) 사무실을 찾아가 사업주 대표들과 임금?노동시간·노동환경 개선, 노동조합 결성 지원 등을 협의하였다. 이즈음 정부의 태도도 바뀌어 회유를 통해 일을 무마하려는 쪽으로 돌아섰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이후에도 몇 번에 걸쳐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약속을 하였으나, 번번이 지켜지지 않는다. 이에 따라 전태일과 삼동회 회원들은 사건 당일인 11월 13일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기로 결의하고 플래카드를 준비해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삼동회 회원들은 주위를 향해 소리 높여 그들의 요구를 외쳤으나 플래카드는 경찰에게 빼앗기고, 시위 역시 경찰의 방해로 인해 결국 무위로 끝나갈 즈음 전태일은 온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분신자살하였다. 전태일은 1970년 무렵 모든 가능성이 제로인 상황에서 자신의 노력이 결코 성공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적인 상황 판단 또한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자신과 벌인 처절한 고투 끝에 결단한 죽음을 향해 한 치도 피하지 않고 전진하여 끝내 죽음으로 이 모든 불가능의 벽(권위)에 부딪쳐버리고 말았다. 분신자살은 바로 권위에의 항거에 있어서 그 만의 극단적인 갈등해소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5. 전태일 분신사건의 의미와 청년문화대체로 많은 이들은 자신의 중요한 일부를 무언가를 위해 희생하여 책임져야 하는 일에 두려움을 느낀다. 오늘날에 있어서 좋은 체제란 결국 구성원 개인에게 작은 희생과 작은 책임감으로도 커다란 만족감을 나누어주는 시스템을 말하며, 사회 변화의 궁극적인 지향은 이것을 구축하는 것에 맞추어진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은 좋은 세상을 원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구원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신은 그에게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게 하는 고귀한 심성을 주었지만, 그 나머지는 전적으로 그의 몫이었다. 그는 의(儀)에 목말라했으며, 정이 많아 그것으로 괴로운 영혼이었다. 그가 는 스무 살 무렵에까지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조금도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 처참한 물질적 환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안락한 삶보다는 고난의 가시밭길만을 헤매도록 이끌어 간 고귀한 내면의 불빛 즉, 힘없는 것들에 대한 사랑, 희망, 우정이 꺼질 줄 모르고 타올라 그것으로 힘들어하고 두려워했던 것이다.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1948년에 태어나 1970년 11월 13일 제 몸을 불사르기까지 그가 지상에서 보낸 시간은 22년 3개월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고, 한국전쟁 이후 남한의 대중운동은 그로부터 출발하여 오늘에 이른다.「동아일보」1971년 신년호는 6.25가 1950년대를 상징하듯, 4.19가 60년대를 상징하듯, 전태일의 죽음은 1970년대의 한국의 문제를 상징하는 가장 뜻 깊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에서 전태일의 삶과 죽음은 하나의 ‘계기’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태일의 죽음을 낮추어보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대체로 그의 죽음은 1960~70년대 고도성장 속에서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사건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수많은 양심적 인사들은 자신의 정치의식이 일깨워지는데 던져진 중요한 계기로 전태일을 꼽는 것에 주저하지 않지만, 그의 삶과 죽음이 지금 사회운동의 여러 기로에서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서에도 찾기 어렵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노동자 조직이 전무한 시기에 죽음으로밖에 말할 수 없었던 무력한 개인이었던 것이다.전태일이 오늘날 우리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청년으로서의 문화를 누리고 즐긴다는 것은 애시 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인가? 아니면 위에서 언급했던 문제들과 비슷한 부류의 문제들이 1960~70년대 시대적 상황 하에서의 청년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일까? 구태여 전태일에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이 당시의 청년들에 있어서의 문화는 ‘권위에 대한 항거?저항’이라는 일련의 공감대 형성으로 점철될 수 있을 것이년문화를 형성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청년문화와 비교해 볼 때 이 당시의 청년문화는 너무도 초라한 것일지도 모른다(물론 이는 문화자체가 가지는 내재적 의미와 가치에 대한 비교가 아니라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기에 어렵고 힘겨운 일이라는 측면에서의 초라함을 의미한다). 그만큼 오늘날 우리의 청년문화는 이 당시의 청년문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다 개인적이고 어쩌면 사치스럽다고 할 만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자와 후자의 청년문화 중에서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시대가 바뀌면서 문화와 사상 또한 바뀌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만 1960~70년대에 형성된 청년문화의 가치가 작고 보잘 것 없었던 것으로 폄하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적잖이 따분하고 고단한 그래서 귀찮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이 당시의 청년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당시 청년문화 속에서의 청년들의 투쟁과 희생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다분히 개인적인 측면에서의 청년문화란 것이 존재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루하루를 삶과의 투쟁의 과정 속에서 살아야만 했을 이 당시 청년들의 문화는 그들이 누리고 싶지 않아도 누려야만 했던 불가피한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들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처사였는지도 모른다.마지막으로 청년 전태일이 당시 권위의 최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올리면서 글을 마칠까한다.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제품(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각하께선 저들의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혁명 후 오늘날까지 저들은 각하께서 이루신 모든 실제를 높이 존경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경할 겁니다. 삼선개헌에 관하여 저들이 알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께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 숙여 은미합니다. 끝까지 인내와 현명하신 용기는 또 한번 밝아오는 대한민국의 무거운 십자가를 국민들은 존경과 신뢰로 각
    인문/어학| 2006.04.28| 5페이지| 1,000원| 조회(446)
    미리보기
  • [음악]음악의 새로운 fusion-popera
    음악의 새로운 fusion-팝페라첫째 마당 ... 서론한 학기 동안 ‘음악 감상’이란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그동안 음악을 접하는 데 있어 참 경직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남는 두 가지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문화생활이라는 것은 소위 말하는 ‘있는 사람들’이나 향유할 수 있는 일종의 긍정적 사치이며, 그들이 이야기하는 ‘연주회나 공연’ 역시 물질적 여유를 바탕으로 한 ‘정신적 여유’의 발로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음악회를 다녀와서 써야하는 보고서 덕분에 값이 싸면서도 괜찮을 듯한 음악회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게 되었고 그 결과, 오페라나 대규모의 공연이 아닌 이상에는 무료공연이나 영화 한편 가격으로도 볼 수 있는 저렴하고도 좋은 공연이 생각보다 매우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듯이 문화생활은 있는 사람들이나 향유할 수 있는 사치가 아니라 관심만 갖는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고 그것으로부터 정신적 여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두 번째로, 나는 음악을 삶의 일부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무언가’로서 한 사람의 삶 혹은 인류의 역사와는 무관하게 존재해 온 것이라 여겨왔다. 물론, 인간의 삶과 음악이 무관하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삶이나 역사는 그 나름대로 흘러가는데 그 주체들의 선택과 기호에 따라 음악이라는 것이 삶이나 역사의 조류에 간혹 합류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국사나 세계사 같은 역사를 배우면서 항상 ‘예술면’이란 소주제로 인류 역사와 음악과의 연계를 하나의 부분으로 분류하여 설명하는 교육의 영향이 컸던 듯 하다. 언제나 예술면은 ‘분류’되어 있는 것처럼 음악역시 실제 인간의 일상적 삶과는 분류되어 있는 것이라 여겨왔던 것이다.그러나 수업을 진행하시면서 음악을 대하시는 교수님의 태도와 내용을 보면서 음악이란 것을 어렵게만 혹은 이해하고 분석해야 할 지적탐색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던 나의 태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고전적이고 난해한 클래식, popera는 어떤 특징들을 갖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1. Cross-over⑴ Cross-over의 개념과 의미Cross-over는 그 명확한 개념을 규정하기가 어렵다. 사전적 의미로는 어떠한 곡이 동시에 몇 종류의 차트에 등장해서 클래식과 재즈, 그리고,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시장영역으로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각각의 영역을 넘어서 서로 조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이 잡다하게 교류하는 모든 음악적 형태를 Cross-over라고 일컫는데, 이처럼 Cross-over란 그 뜻이 어떻게 생겨서 변해 왔던 간에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 만났을 때 이루어지는 행위나 상태를 나타내는 큰 의미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한편, Cross-over음악은 클래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 반면에, 상업적인 이유로 정통 음악의 예술성을 떨어뜨리고, 인기를 얻으려 한다는 식의 비난역시 면하지 못하고 있다. 나 역시 서론에서 밝힌 바처럼 이러한 ‘규정화’ 되어 있는 인식에 익숙하여 지금껏 모범적 모델로 간주되어왔던 고전음악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내가 생각했던 ‘문화생활은 있는 사람들이나 누릴 수 있는 사치’라는 비판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고전음악을 알 수 있으려면 그만한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과 그러한 음악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미 고백한 것처럼 그것은 핑계나 변명에 가까운 이야기인 듯싶다. 음악이라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 가장 의미를 갖게 되는 때는 그 의미가 어떠한 것이고, 누가 작곡하고, 또 연주했는지의 여부에 달린 것이 아닌 ‘우리가 함께 느낄 수 있는 정서와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⑵ 종류이번에는 크로스 오버를 이루고 있는 큰 장르를 살펴보겠다.Cross-over는 통상 두 개념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하나라의 경우에도 퓨전 형태의 음악을 찾아보기가 어렵지는 않다. 예를 들어 모던 락에 전통 악기인 태평소 소리를 삽입하여 큰 인기를 누렸던 서태지의 나, 민요를 대중음악에 퓨전시켜 현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김용우 씨의 음악작품 등이 있다. 서양의 경우 좀 더 많은 예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전자 바이올린이라는 생소한 악기로 클래식과 록을 '테크노 어쿠스틱 퓨전' 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개척하여 전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은 바네사 매이나 재즈 연주에 최초로 일렉트릭 록 리듬을 도입하여 재즈록 퓨전의 기폭제 역할을 한 마일스 데이비스 등이 퓨전 음악의 선두 주자들이다.셋째 마당... 본론 2 팝페라이번에는 크로스 오버의 한 장르에 속하는 팝페라에 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팝페라 역시 위의 크로스 오버나 퓨전과 마찬가지로 개념과 의미, 여러 예들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다.1. 팝페라(Popera)의 개념과 의미기반을 점차 잃어가던 클래식 음악은 최근에 들어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시대의 흐름을 담아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퓨전이다. 21세기 문화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코드가 퓨전이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고, 실제로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음식에서 패션, 디자인, 그리고 산업 자체, 문화 자체가 퓨전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퓨전의 대두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구분지어 놓았던 경계들을 허물며 더욱 다양한 문화를 창출해 낸다. 음악에 있어 퓨전은 8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크로스오버 움직임이 대표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크로스오버 음악은 그동안 시도되었던 많은 실험들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이미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크로스오버 음악 중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팝페라(Popera)이다. 팝(POP)과 오페라(Opera)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이 합성어는 '대중화된 오페라' 혹은 '팝음악 스타일화 된 오페라', '팝과 오페라를 넘나드는 음악 스타일' 등을 뜻한다. ‘팝페라‘라는 용어는 되고 그만큼 장르에 구분 없이 음악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도 있게 된다. 아마도 같은 아리아를 불러도 팝페라 가수의 노래가 훨씬 가볍고 부담 없이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팝페라 가수가 부르는 노래는 오페라 가수가 마이크 없이 온 몸을 울려 노래할 때와 같은 짜릿함이나 묵직한 감동은 찾기 어렵지만, 부드럽고 달콤해서 뿌리치기 힘든 유혹처럼 다가온다.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의 아리아를 부른 사라 브라이트만의 '라 루나'는 마치 간절한 속삭임과도 같이 들린다.2. 팝페라를 대표하는 음악인들⑴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① 안드레아 보첼리에 관하여...안드레아 보첼리는 투스카니 지방의 포도농장에서 1958년에 태어났다. 지역의 전통과 그의 아들에게 절대 패배를 모르고 오히려 그것을 이겨내도록 교육시킨 부모님의 영향은 그에게 잊혀지지 않는 인상을 남겼다. 안드레아는 음악에 대한 열정 없는 인생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Del Monaco, Gogli와 특히 그의 우상 Franco Corelli같은 위대한 테너들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찼었던 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오페라 음악에 고조된 안드레아의 평생의 꿈과 야망은 위대한 테너가 되는 것이고, 그러한 위대한 오페라는 귀와 가슴으로 배워진다. 농촌이라는 것 때문에 음악교육을 받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안 그의 부모들은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고 이후 플루트와 색소폰을 배우게 하였다. 보첼리는 유독 오페라 아리아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잘하던 아이였다. 그는 시각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고 열두 살 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머리를 부딪쳐 뇌에 상처를 입은 며칠 후부터 시력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 사고를 사람들이 너무 감상적으로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단순한 사고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보첼리는 피사 대학에 진학하여 법률을 전공하였고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노래를 하기 서 더블 플래티넘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보첼리는 나폴리 전통음악과 유명한 아리아를 혼합한 "Viaggio Itariano", "Romanza"등 새로운 음반을 계속 만들어 내었고 그 때마다 클래식 챠트 상위권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위대한 테너의 탄생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주빈메타가 지휘한 안드레아 보첼리의 베르디 음반에 대해 음악 칼럼니스트인 이재준 씨는 “마이클 볼튼으로 착각할 만큼 클래식 적으로 들리지 않는 면이 있긴 하지만 테너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고음의 구사와 잘 다듬어진 음성과 성량조절이 선입견을 사라지게 한다. 그 중 ‘청아한 아이다’의 마지막 고음인 b플랫 음정을 포르테에서 피아니시모로 낮추는 테크닉은 충격적”이라고 기술했다.)② 안드레아 보첼리의 음악그의 음악은 위에서 언급한 음악 칼럼리스트인 이재준 씨의 말대로 충격적인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목소리에서 우러나오는 편안함이 이를 부담스럽지 않게 한다. 그의 목소리는 단지 강렬함과 연약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감성과 감수성을 나타내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이번 "Cieli Di Toscana (투스카니의 하늘)"에서는 다소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그 앨범 가운데 “Il Diavolo e l'Angelo“은 대개의 클래식보다 빠른 비트의 음악으로 댄스 음악을 연상시키는 색다른 음악으로 듣고 있노라면 어깨가 들썩거리는 음악이다."Sogno"Cieli Di Toscana"Romanza"⑵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올해 44살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는 아름다운 목소리와 외모를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가수이다. 엄청난 스타가 된 사라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아마도 수업시간에 'cats'를 통해 배웠던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또 다른 작품인 "오페라의 유령"에 출연하면서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사라가 이 오페라의 크리스틴 역을 맡으며 일약 스타대열에 올라섰고 이 오페라가 사라를 위해 앤드류 로이드
    예체능| 2006.04.28| 9페이지| 1,500원| 조회(648)
    미리보기
  • [미국문학]크룩서블과 매카시즘
    아서 밀러의 크룩서블은 1692년 마녀 처형사건을 배경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53년 미국에서 메카시즘에 의해 사상의 다양성 보다는 획일성을 추구하던 때에 쓰여져 그의미가 더욱 강렬하다.작가 밀러는 마녀처형과 메카시즘에서 어떠한 유사성을 발견했으며 그것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1. 역사적 배경인 된 1692년의 마녀재판과 메카시즘1) 1692년의 마녀 재판미국 매사추세스 주 세일럼의 목사 파리스의 노예인 티츠바가 지껄이는 신들린 소리를 듣고 있던 젊은 여성들이 땅에 엎드려 괴상한 행동을 취한 데서 발단되었다. 파리스가 불러모은 인근의 목사들이 이를 마녀의 소행으로 단정했고, 결국 식민지 총독이 임명한 위원회가 수백명을 체포, 그 중 유죄판결을 받은 19명이 희생되고, 150명이 투옥되었다 석방되었다.2) McCarthyism의 유래 및 정의미국 위스콘신주(州)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J.R.매카시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매카시의 낭설에서 발단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냉전이 심각해지던 당시 미국은 경제 침체기에 있었고, 동독과 중국의 공산화와 소련의 원자탄 실험 성공 등 공산세력의 급격한 팽창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매카시의 주장은 미국 국민으로부터 맹렬적 지지를 받았다.매카시 선풍은 1938년 하원에 설치된 '비(非)미활동위원회'를 중심으로 펼쳐졌는데, 반대파 정치인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공격하는 것은 물론,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과 트루먼 대통령의 ‘페어딜’ 등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진보주의 정책까지 공산주의와 연계시켜 심판대에 올렸다.매카시 여파는 또 예술계와 언론계에까지 미치면서 더욱 확산됐다. 할리우드 영화계와 방송계의 작가·감독·연예인 가운데 수십명이 공산주의자라는 멍에를 쓰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일자리를 잃거나 해외로 추방됐다.2. 역사성과 보편성밀러는 1950년대 메카시즘의 여파 아래 공산주의자로 몰려 고발된 적이 있었다.매카시즘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었던 뼈아픈 경험은 밀러로 하여금 어떻게 한 사회가 그 사회가 내세우는 이데올로기를 유지?강화하기 위하여 무고한 주민들을 희생시키는 지에 관심을 갖게 하였고, 결국 이를 반영한 극을 쓰게 했다. 밀러는 17세기 말 청교도 사회의 ‘신정체제’와 1950년대 ‘자본주의체제’간의 유사성에 주목하여 1692년 청교도 사회를 1952년 미국의 매카시즘과 연결시켰다.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17세기 말과 1950년대 의 유사성을 연결시켰다고 하여 그 두 시대이 갖는 특수성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밀러는 극의 모든 등장 인물들의 이름을 세일럼 마녀 사냥 당시의 이름으로 쓰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역사적 사실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바가 없다고 밝힌 점이다. 즉, 세일럼 사건이 글의 소제이긴 하지만 현재의 어떠한 인물이 풍자되었다는 의미이다.게다가 등장인물들은 마녀를 지목함에 있어서 자신들과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을 대는 것은 마녀 사냥이 사회적인 대의를 앞세워 개인적인 원한을 푸는 탈출구가 됨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인 안정이라는 것이 여러 배타적인 개인들의 파멸이라는 점에 비추어보면 누구를 위한 사회적 안정인가 하는 의문이 들고 결국은 그것이 지배하는 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하다는 것을 필역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 작품은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하였지만 현대에 사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사회적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있으며, 또한 사회적 이익 앞에 개인이 희생되어도 좋은가를 묻고 있다.3. 든든한 이데올로기 지킴이-법정프록터를 비극으로 몰아넣는 데는 세일럼 지배계층의 사법 통제 이외에도 프록터 부인 엘리자베스에게 해를 가하기 위해 거짓과 마술 연기로 청교도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악용한 애비게일도 한 몫을 했다.그러나 밀러의 관심은 체포와 문책, 자백이라는 외견상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는 재판의 정규 절차에 의존하지만 실은 불의에 가득찬 청교도 법정의 고발에 더 기울어져 있다.마녀임을 확인하는 증거로 나이 어린 소녀들의 집단적 광기를 채택하면서 그들이 마녀가 아님을 증명해주는 증거는 묵살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악마의 영혼이 왜 애비게일의 일당들에게만 보이는 지에 대해 전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독후감/창작| 2006.04.28| 2페이지| 1,000원| 조회(634)
    미리보기
  • [역사학]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1. 개구리(글쓴이) 뒤늦게 우물에서 탈출시도하다.우리에게 익숙한 역사란 무엇일까? 아니, 우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굳이 그 범위를 일반화하지 않더라도 내 개인의 의식 속에 정형화되어 있는 역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시절을 거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배워 온 국사 교과서와 세계사 교과서들의 내용과 가장 밀접한 연관성이 있을 듯싶다. 전쟁과 혁명, 큰 사건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온 교과서 안의 역사는 연대별, 혹은 시간의 흐름을 기본 축으로 한 직선적인 구성에 의존되어 왔다. 또한 그러한 사건 중심의 역사 기록은 그 사건이 일어났던 시대의 지배세력과 권력을 쥐고 있던 인물들 중심으로 쓰여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역사도 그 영향밖에 있을 수 없음을 시사한다. 때문에 그러한 역사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역사라 칭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은 소위 ‘위로부터의 역사’라는 말로서 대체되어 사용되고 있다.입시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후 날 충격에 빠지게 했던 수많은 책들이 가진 패러다임이 이제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역사계의 ‘딴지일보’ 정도로 생각했던 역사관들이 이제야 새로운 역사관 정리되는 느낌이다.그렇다면 이러한 ‘위로부터의 역사’는 어떠한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을까? 또, 이러한 문제점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극복되어지고 있을까? 일단 조한욱의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라는 책의 내용을 통해 그 문제점과 새로운 극복방식을 간단하게 집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2. 우물 탈출을 위한 디딤돌정치사‘위로부터의 역사’는 이 책에서 ‘정치사’의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다. 말 그대로 정치에 의한 역사라는 의미인데 19세기에 랑케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주장하며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방법을 통해 그가 연구하려고 했던 대상은 국가였고, 따라서 국가 간의 외교나 정치를 주도하는 권력자들의 업적과 행적이 그 당시 역사의 축을 이루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사회사그러나 과연 역사는 그러한 몇몇 지배세력들에 의해 결정되고 변화하는가. 이러한 의문은 많은 역사가들이 소수 지배층이 아닌 절대 다수를 위한 민중이 중심이 되는 역사를 기술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의 역사연구를 시도하게 하였다. 이것을 소위 ‘사회학’이라고 하는데 그 출발부터가 보여주듯이 그동안 소외되어왔던 민중들의 삶을 역사의 중심으로 놓고 보려는 ‘밑으로부터의 역사’이다.사회사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과 아날학파라는 축을 양쪽에 두고 성장하였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에서는 민중들의 삶을 노동자와 그 노동자를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고 안위를 유지하는 유산계급으로 구분하고, 이러한 계급의 차에서 비롯하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 방법들을 제시한 역사관이다. 즉, 역사를 억압받는 자들이 억압하는 자들과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계속적인 투쟁의 연속으로 생성된 산물로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게 지배층의 입장을 대변하고 그러한 입장에 민중들의 삶이 끼어들 수 없었던 정치사에 비한다면 분명 민중을 ‘억압받는 자’들로 규명하고 이들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려 하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오히려 철저하게 억압받는 자, 즉 민중들의 입장에 서서 기술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반면에 사회사의 또 다른 축이었던 아날학파는 역사를 장기적인 시점에서 바라본다. 역사의 시간을 장기지속시간, 중기지속시간, 단기지속시간으로 구분하고 이들 간의 관계를 역사발전에 비추어 해석한 것이 이들의 시선이다. 장기지속은 지리와 같은 자연적인 요건을 이야기하고, 중기지속은 장기지속에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정치·경제 등과 같은 사회로 귀결되는 요소들로 정의한다. 즉, 중기지속에 속하는 정치·경제 등의 사회문제는 곧 역사를 하나의 과정이라고 볼 때 지속되지 않고 단기적으로 사라지는 사건들에 불과하다고 해석하면서 기후나 풍토 같은 장기적이고 변하지 않는 구조들이 진정으로 역사에 있어서 연구해야할 대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기존의 사건 중심적이고, 그 사건의 지배층이 누구냐에 역사의 흐름이 결정되었던 정치사의 오점을 꾸준하게 변함없이 역사의 주역이 되어오던 민중들의 일상생활에 그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의 변화를 시도하게 한다.그러나 이러한 사회사에도 정치사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맹점들을 극복했다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은 민중을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으로 양분화하여 그 계급으로 설명되는 특징들로만 민중들의 삶을 바라보려 하였다. 개개의 살아있는 역사와 그들이 주도해나가는 새로운 역사의 흐름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계급간의 투쟁으로서만 역사를 규정함으로서 개인의 정체성을 집단으로 구속시킨 것이다. 또한 아날학파는 민중을 물질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정신세계나 의식구조, 그 의식구조를 통해 끊임없이 규명해나가야 할 정체성의 앎에는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 장기지속에 해당되는 사료들에만 집착하므로 고대와 중세의 역사연구가 그들 역사연구의 대부분이라는 비판에도 맞서게 된다. 결국 사회사는 민중을 역사의 연구 범위에 편입시켰다는 새롭고 발전적인 입장을 가지지만 많은 점을 해결해야할 숙제로 남겨두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사의 비판과 역사학 내부의 필연적인 요구에 따라 신문화사가 등장하게 된다.신문화사신문화사란 이런 경향들의 공통분모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조류의 역사서술은 이 책에서 ‘두껍게 읽기’, ‘다르게 읽기’, ‘작은 것을 통해 읽기’, ‘깨드리기’의 네 가지 방식을 통해 설명되고 있다.신문화사 - 두껍게 읽기우선 ‘두껍게 읽기’는 자연과학과 대비되는 인문과학에서의 글 읽기에 전제가 되는 방법으로서 클리포드 기어츠의 “두꺼운 묘사”라는 개념에 힘입은 것이며, 역사학의 탐구대상이 지닌 “두꺼운 의미의 층위를 뚫고 들어가기 위해 상징에 대한 해석”을 강조하는 방법론이다. 작가는 두껍게 읽기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윙크와 눈 깜박거림의 차이를 ‘더 많이 변할수록 더 똑같은 것이다’라는 역설적인 속담을 사용한다. 윙크와 눈 깜박거림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눈 깜박거림은 외형적 모습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윙크는 외형적으로 눈을 감았다 뜨는 모습 이상의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두껍게 읽기란 이처럼 의미의 두꺼운 계층을 양파껍질 벗기듯이 하나씩 탐구해 가는 방법이다. 두껍게 읽기는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이라는 책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1730년대 파리의 한 인쇄소에서 생긴 고양이를 학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단순한 에피소드로 치부할 수도 있는 이런 사건을 두고 로버트 단턴은 프랑스 혁명 이전의 노동자들의 욕구와 정신세계의 관련성으로 재해석한다. 고양이의 상징적 의미와 당시의 관행이었던 동물학대라는 이해를 전제로 그 당시 노동자들의 의식 세계를 두껍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신문화사 - 다르게 읽기‘다르게 읽기’는 “역사학이 전통적으로 유지해왔던 역사를 보는 관점과는 다른 맥락에서 역사를 파악하려는 시도”로서 역사를 바라보는 주체의 시각의 변화와도 큰 연관성이 있다. 예를 들어, 서구 중심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예전의 역사 연구와 비교하여 동양의 시각에서 서구를 바라보고 여성의 입장에서 남성을 바라보며, 노예제를 노예의 입장에서 다루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설탕과 대구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요소를 이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설탕의 역사를 다루며, 설탕으로 인해 노예무역이 발생했고 대구는 이런 노예의 식량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들어, 대구와 설탕의 관점에 서서 인간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신문화사 - 작은 것을 통해 읽기이러한 시점은 자연스럽게 ‘작은 것을 통해 읽기’로 안내된다. 이제까지 역사의 주인이었던 승리자와 지배자의 입장에 벗어나 패배자와 피지배자와 다수의 민중의 눈으로 역사를 재조명하려는 시도이다. 말 그대로 아주 작고 사소한 사료로부터 광범위한 역사적 사실들을 도출하는 서술방법을 말한다.물론 이런 방법에 대해 ‘제비 한두 마리가 봄을 만들지는 못 한다.’는 비판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수탈과 핍박의 대상이었던 그들이 과연 역사에 남을 만한 자료를 남길 수 있었을까? 그들은 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적었고 그들의 기록 역시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어쩌다가 남은 희귀한 자료로 그들의 생활상을 연구할 수 있는 ‘미시사’라는 새로운 역사 연구의 영역이 발생한다. ‘미시사’는 단지 역사의 그늘에 가려진 이름 없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생활상을 알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역사를 통해 그로 대변되는 대다수 민중의 삶과 생각의 방식을 이전의 방식과는 다른 시각에서 찾고자 하는 시도이다. 앞에서 예로든 고양이 학살사건 또한 대표성의 결여가 아니냐는 비판에 위와 같이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신문화사 - 깨뜨리기결국 기존의 역사관을 깨뜨려야 한다. ‘두껍게 읽기’와 ‘다르게 읽기’ 그리고 ‘작은 것을 통해 읽기’는 궁극적으로 기존의 역사학이 유지해 왔던 역사의 이해와 서술방식을 해체하는 것으로, 이것은 단지 파괴만을 위한 깨뜨림이 아니라 기존의 역사서술로 인해 정형화된 틀을 새로운 방식으로 성찰하여 더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만들자는 것이다. 전통적인 역사학을 깨뜨리는 구체적인 연구로서 포르노그라피의 역사를 통해 정치의 단면을 엿보는 예를 생각할 수 있겠다. 예술로는 정당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영역을 당당히 정당한 역사 연구의 대상으로 격상시켰다는 점에서 ‘깨뜨리기’의 극명한 예시가 된다.신문화사 - 역사학적 의의또한 이 글에서는 역사학에서의 새로운 역사 연구 방법이 우리에게 던져줄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첫째로, 역사를 더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에서는 사회사의 주요개념이었던 계급만이 억압의 기제로 적용하지 않았다. 인종이나 연령, 직업, 성별 등에 따른 다양한 차별이 존재했다. 문화사는 이러한 다양한 측면에서 역사를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사회사가 ‘밑으로부터의 역사’였다면, 문화사는 ‘밑으로부터의 역사’에 다양성이란 양념을 쳤다.
    독후감/창작| 2006.04.28| 5페이지| 1,500원| 조회(434)
    미리보기
  • [미국문학]seize the day 평가A좋아요
    쏠 벨로우는 그가 유태계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고는 작품을 이해하기 어려울만큼 유태계의 특성을 작품에 반영한 작가이다.특히, '오늘을 잡아라'에서는 더욱 그러한 유태적인 특징과 정신이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을 분석하기에 앞 서 미국문단에서의 유태계 문학의 발전 배경과 그 특징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1) 유태계 문예 부흥과 그들 작품의 정서적 특징'유태계 문예 부흥' 제 2차 세계대전 이후로 흑인 작가들에 못지 않게 유태계 작가들이 크게 활동한 시기이다. 흑인의 활발한 활동을 '할렘 문예 부흥'이라고 부르듯이, 유태계 작가의 활동은 '유태계 문예 부흥'이라고 부른다. 미국 문단의 주변을 맴돌던 유태계 작가들은 제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후로 활동을 폭을 넓혀오다 1940년대 말부터 미국 문단의 중심부에 들어서게 된다. 이 때의 활발한 문학활동에 힘입어 '유태계 미국 문학'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를 낳게 되고 1950년대를 '유태계 십 년'이라고 일컫는다. 유태계 작가들이 이렇게 미국 문단에서 각광을 받은 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 곳곳에서 흩어져 살던 유태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오기 시작하여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미국 사회에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고 문학에 눈을 돌릴 여유를 얻은 것이다. 둘째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때 서구를 휩쓴 친유대주의이다. 전쟁에서 그들이 겪은 고통과 시련에 많은 미국인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작품에서 드러나는 유태인들의 민족적 아픔에 미국인들도 쉽게 동화되고 교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러한 특징 때문인지, 유태계 작가들의 작품에는 유럽인, 미국인 작가의 작품에서 보다 풍부한 감정표현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슬픔과 눈물을 표현하는 것에 자유롭고 나아가 그런 슬픔과 눈물을 통해 타인과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을 '구원적 고통'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이러한 영향은 그들의 언어에서도 반영되어 유태계의 특성을 논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말이 있는데, 이는 '멘쉬리카이트(menschlikeit)', '쉴레미엘(schlemiel)' 그리고 '쉴리마젤(schlimazel) '이다. 맨쉬리카이트는 이디시어로 마음이 따뜻한 인간, 윤리적으로 책임을 지는 인간이란 뜻이고, 쉴레미엘은 어리석은 사람이나 바보를, 쉴리마젤은 재수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는 바로 이 단어들을 바탕으로 '오늘을 잡아라'를 살펴볼 것이다.(2) '오늘을 잡아라'이 작품은 사업과 결혼생활에 실패하여 아버지와 함께 호텔에서 투숙하고 있는 주인공 토미 윌헬름의 이야기이다. 그는 사업의 실패로 아내에게 주어야 할 생활비와 호텔 투숙비조차 내지 못하고 남아 있는 돈을 모두 투자한 주식마저 폭락하여 빈털터리 신세가 된다. 토미는 의사였다가 은퇴한 돈 많은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버지는 매번 그의 부탁을 거절한다. 절망에 빠진 그는 어느 유태인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고 그는 그곳에서 마음껏 울음을 터뜨린다. 스토리 라인을 좇다보면 토미 윌헬름은 영락없는 사회의 실패자이자 낙오자이다. 가정, 일,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어느 면에서나 실패한 이유를 두고 그의 무능력을 탓하지 않을 수 없으나, 작품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를 제시한다. 1950년대 전쟁 뒤의 미국인들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경제적 풍요에 매료되어 물질적이 성공이외의 다른 정신적 가치는 도외시하는'American Dream'에 빠지게 되는데, 작품 속 세계 역시 이 시대의 그러한 풍토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아버지 애들러와 펄스, 아내 마가릿 등의 등장인물들은 그러한 가치관을 그대로 따르고, 토미만이 유일하게 그에 대해 비판의식을 갖고 깊은 회의를 느낀다.아버지마저 그런 아들을 수치스러워 하는 사회에서 토미는 쉴레미엘이자 쉴리마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혹자는 토미를 두고 없는 자 혹은 패배자의 변명이나 넋두리 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토미의 실패는 물질과 경제적 가치가 최우선인인 사회에서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인과물로 해석해야 옳을 것이다. 남들이 포기한 것을 버리지 않으면서 남들이 하나만을 바라보며 얻으려는 것을 동시에 성취하기는 그것만으로 그 둘을 직선적인 가치로 평가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토미를 멘쉬리카이트로 평가하고자 한다. 토미는 자신의 고통과 좌절로 괴로워하면서도 점차 다른 사람들에게 애정을 갖고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며 멘쉬리카이트의 자질을 갖추어 나간다. 이는 작품의 마지막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완성되는데, 이는 자기자신에 대한 연민의 눈물이자 자신과 타인을 향한 이해의 눈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의 척도에 따라 쉴레미엘이자 쉴리마젤로 평가되지만, 진정한 의미의 멘쉬리카이트로서 '구원적 고통'을 겪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6.04.28| 2페이지| 1,000원| 조회(689)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9
9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1
  • A좋아요
    5
  • B괜찮아요
    2
  • C아쉬워요
    1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7일 금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0:44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