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5
검색어 입력폼
  • [국어학]단어의 규졍 요약
    단어의 규정 요약품사의 개념설정에 있어서 단어를 그 문법적 성질에 입각, 그 공통점에 의하여 몇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한 것을 품사로 보는 것이 문법기술 상 편리하다.전술한 바와 같이 품사가 단어의 문법적 성질에 의한 분류설정이 전제가 되었다고 하면, 과거의 문법연구 발달상으로 單語觀은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 될 수 있다.(1) 조사나 어미를 모두 단어로 보는 견해(1930년대 이전의 文法書의 경향)(2) 어미는 단어로 볼 수 없으나. 조사는 단어로 보는 견해(3) 조사나 어미는 한 개의 接辭的 형태소로서 단어로 인정하지 않는 관점단어의 정립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초점은 조사의 처리와 그 독립품사의 여부 문제이다. 제(2)유형의 학자들도 단어의 규정을 文의 구성요소의 관점에서 출발하면서도 조사의 分離的 특성과 그것의 國語的인 특유성을 인정하여 독립품사, 곧 단어로 인정하려고 하는 데 문제점이 있다.1. 전통문법의 견해崔鉉培 교수는 조사는 체언의 구성부분이 아니라고 말하고, 마치 영어의 관사·전치사 등과 비교하면서 토의 분립성, 곧 독립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 반면 어미는 용언의 구성부분이므로 분립성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李熙昇 박사는 조사나 어미는 다 문법적 기능을 가진 말이나, 어미를 분리시키면 어간만으로는 독립할 수 없지마는(먹-는다), 조사는 분리해도 체언 자체의 독립성에 하등 관계가 없는 것이(꽃-이) 그 근본적 차이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으로 어미는 단어가 될 수 없지마는 조사는 단어가 될 수 있는 근거를 삼고 있다.金亨奎 박사는 語素의 配合 관계에서 단어의 구성을 다음과 같이 보이고 있다.(1) 單一自立語素---------------------나무, 글 (단일어)(2) 自立語素 + 自立語素---------------꽃 + 나무(합성어)(3) 依存語素 + 依存語素---------------풋 + 나물(파생어)(4) 依存語素 + 依存語素---------------높+다, 먹+다, 먹+겠+읍+니+다.(5) 依存語素 ------------------------이, 가, 을, 의金亨奎 박사는 어미는 용언이라는 한 단어의 構成素로 보았으나, 吐는 체언과 독립해서 그 分離性에 입각하여 낱말로 다루고 독립품사로 인정하고 있다. 조사의 단어인정과 품사설정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1) 조사의 格語尾設을 부인하고, 그 이유를 조사는 그 분리성으로 용언어미와 근본적으로 다른 데 있다. 곧, 체언이나 용언어간은 다 意味素이나, 전자는 자립형식이고 후자는 의존형식이르로 용언어간은 어미와 결합되어야 한 단어를 이루지마는, 체언은 단독으로 한 단어를 이룰 수 있다.(2) 조사가 의존어소이기는 하나, 문법적 職能을 가진 형식적 의미요소인 문법소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분리적인 자립성이 강하다. 이것을 영어의 전치사에 비교하고, 그리고 Underwood의 post-position(後置詞 吐)의 인정을 예증하고 있다.(3) ‘꽃-이’를 하나의 단어로 보고, 체언의 격변화나, 橋本進吉의 文節觀(文節=單語)이나, 松下大三郞의 체언의 곡용설 등을 모두 부인하고, 附着語의 성격상 語順 이상의 格機能의 가치를 가진 토를 독립품사로 인정하는 것이 온건하고 타당한 견해라고 주장하고 있다.2. 조사를 독립품사로 인정하지 않는 견해반면, 鄭烈模 씨는 「신편 고등국어 문법」에서 조사와 어미는 한 굴곡접미사로서 단어로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조사는 곡용어미로, 어미는 활용어미로 다룬 것이다. 李崇寧 박사도 그와 같은 관점에서 조사와 지정사는 품사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金敏洙 교수는 단어를 다음과 같이 두 가지 類型으로 나누기도 하였다. A형 : 語體(body) + 토(case ending)=단어(체언)B형 : 語幹(stem) + 어미 =단어(용언)이에 의하면, 조사는 독립성이 없고 체언의 변화(添用=曲用)로 보고 있으니, 단어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품사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張河一氏는 조사를 단어로 인정하지 않고 格語尾로 처리하는 입장이다.이와 같이 조사의 독립품사 설정 여부는 국어문법의 전통적 체계의 2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3. 단어규정에 대한 提論단어는 언어구조 분석상 형태론의 연구대상도 되고, 통사론의 연구대상도 되는 두 연구 분야에 다 걸쳐 있는 언어단위이다. 따라서 단어의 본성을 들어낼 수 있는 규정은 이 양면성에서 구명해 보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1) 形態分析上조사가 形態分析上으로 자립성이 없다는 것은 분립성이 없는 것과 等價的인 것이다. ‘꽃-이’에서 ‘꽃’이라는 체언이 자립적이고 분립적이므로 ‘이’가 자동적으로 분리되는 결과가 되는 것이지, ‘이’가 자체에 분립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그리고 조사가 어미처럼 문법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은 문법적인 동질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데, 다만 용언어간 형태소는 의존적인 것이나 체언형태소는 자립적인 것에 그 형태상 차이점이 있다. 용언어간은 의존적이므로 의존적인 어미가 결합하고, 체언은 자립적이므로 거기에 붙는 토도 자립적(분립적)이라고 하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조사의 分立性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영어의 전치사의 독립품사를 예를 들어 그것을 예증하고 있다. 그러나 영어의 전치사는 본래가 실사에서 전성된 것이므로, 그것이 비록 완전한 자립성이 없다 하더라도 英語言衆들은 전통적으로 단어로 인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문법상으로도 명사나 동사의 屈折的 變化標識은 아닌 것이다. 영어의 명사와 동사의 屈折語尾(-s, - s, -ed, -ing)는 별도의 체계로 語形變化表가 있다. 그러므로, 영어의 屈折語尾와 전치사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국어의 格토가 영어의 전치사적 기능과 비슷하다고 해서 독립품사로 인정하려는 견해는 그 형태가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타당도를 잃고 있다 할 것이다.국어의 吐 가운데 두루토(보조사)는 格토와는 달리 문법적 기능보다는 語彙的 加意性이 제1차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는 실사에서 전용된 것도 있다(부터
    인문/어학| 2006.04.23| 4페이지| 1,000원| 조회(710)
    미리보기
  • [한국인의 정서와 사상]원효
    원 효Ⅰ. 서 론지은이는 머리글에서 이 책을 구성하며 스스로 세운 원칙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첫째, 불교는 원효의 시대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사유체계를 갖는 세계종교였다.둘째, 역사주의의 관점에서 원효를 살핀다.셋째, 거사(居士) 모습의 원효를 그리자.책을 끝까지 읽은 지금이지만 여전히 지은이의 의도를 모르는 나 이다. 책을 정리하고 나름대로 요약하는 기회를 빌어 원효를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이 글의 구성은 편의상 원저 원효-영원한 새벽, 1999년, 남동신, 새누리의 그것을 따라가며 요약 정리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한다.Ⅱ. 본 론제 1부 배경.원효가 태어났고 살아갔던 시대의 신라는 불교가 공인(법흥왕 14년, 527)된지 100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이다. 불교가 공인 된지 100 여년 밖에 되지 않았고 그나마 지배층의 이해에 의해 전략적으로 수입된 불교 한국역사, 1992년,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비평사. 현실사회의 차별성은 전생에서 불교적 공덕을 쌓은 정도의 차이에 기인하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논리를 그 안에 갖추고 있었다. 불교의 이 같은 논리는 비록 지배층과 피지배층 또 지배층 내의 여러 세력집단 사이에 혈연적인 면에서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현실세계의 사회적 신분의 차이는 이미 전생부터 예정된 것, 즉 필연적인 것임을 주장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논리가 삼국의 지배계급에 주목되어, 불교를 새로운 지배질서 수립의 유용한 지배이념으로 적용하였던 것이다. (63쪽)가 원효의 시대에 와서 그렇게 크게 부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면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 하기로 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우선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당시 신라 사회의 모습을 살피기로 하자.중고기의 신라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골품제와 삼국전쟁의 수행이라는 두 가지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어느 고대사회에도 신분제도는 있었지만 신라의 골품제는 그 전례를 찾아 보기가 힘 걸쳐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삼국전쟁의 수행과 통일의 과정에 대해 자기희생을 감수한 지배층의 자세를 지은이는 크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할 수 있었던 것은 신라가 강해서가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가 쇠약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신라는 자력으로 삼국을 통일한 것이 아니었다. 전쟁의 수행과정에서 나타난 화랑의 활약을 물론 빼놓을 수는 없지만서도 말이다.제 2부 생애.원효(617-686)는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압량군 불지촌(현 경산군 압량면 신월동)에서 태어났다. 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가 원효를 잉태할 때 유성이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으며, 그를 낳을 때는 오색의 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한다. 원효의 아명은 서당(誓幢)이라 하였다. 에서는 원효가 일찍이 나이 십세 무렵에 출가하여 스승을 따라 학업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 일정한 스승은 따로 없었다(學不從師). 원효의 행적 가운데서 각별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역시 두 차례에 걸쳐 입당(入唐) 유학을 시도했던 그가 문득 스스로 크게 깨닫고 발길을 돌린 일이 될 것이다.원효는 34세때 당에 유학하기 위해 의상(義湘)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요동까지 갔다가 그곳 순라군에게 잡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되돌아 왔다. 45세에 다시 역시 의상과 함께 이번에는 해로(海路)로 해서 당(唐)으로 가기 위해 백제 땅이었던 당주계(唐州界)로 향하였다. 항구에 당도했을 때 이미 어둠이 깔리고 갑자기 거친 비바람을 만나 한 동굴에서 자게 되었다. 아침에 깨어났을 때 그곳은 동굴이 아닌 옛 무덤 속임을 알았지만 비가 그치지 않아 하룻밤을 더 자게 되었다. 그날 밤 원효는 동티(귀신의 장난)를 만나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이는 곧 그에게 큰 깨달음의 한 계기가 되었다.그는 지난 밤 잠자리는 동굴이라 여겨 편안했는데 오늘밤 잠자리는 귀신의 집이므로 이처럼 편안치가 못함을 확인하였다. 이어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동굴과 무덤이 뿐이다. 마음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것이 있으랴. 나는 당나라에 가지 않겠다!" 하고 다시 신라로 되돌아와 이후 저술과 대중교화에 몰두하였다.또 스스로 소성거사라 칭한 것은 실계하였기 때문에 속죄의 한 방법으로서였다기보다는 오히려 대중교화의 방편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대중교화의 선구자인 혜공이 등에 삼태기를 지고 가항(街巷)에서 대취가무(大醉歌舞)한 것이나, 대안(大安)이 특이한 옷차림으로 장판에서 동발(銅鉢)을 치면서 "大安, 大安"을 외친 경우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는 대중교화의 행각을 마친 뒤에는 다시 소성거사 아닌 원효화상으로 돌아가 혈사(穴寺)에서 생애를 마쳤던 것이다.원효는 또한 정토신앙의 근본취지를 살리고자 하였다. 그는 예토(穢土)와 정토(淨土)는 본래 한 마음이다. 라고 하여 정토를 마음의 문제로 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종고기에 성행하였던 미륵신앙을 제치고 아미타정토신앙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그래서 600년 뒤의 불교사가인 일연은 가난하고 못배운 서민들조차도 부처의 이름을 알고 염불을 외게 되었으니 이는 다 원효의 덕분이라고 추앙하였던 것이다.원효의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바로 요석공주와의 관계이다. 그는 중국유학을 단념하고 경주로 돌아와 떠돌다가 하루는 이런 노래를 지어 불렀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준다면 내 하늘을 떠 받들 기둥을 베어 오련만. 태종이 마침 이 일을 듣고 요석공주와의 만남을 꾸며 그로 하여금 설총을 낳게 한다. 그러나 이를 겉에 드러난 액면대로 파계나 타락으로 볼 수 있을까? 그 파계의 소생이 한국 유교의 문묘에 배향된 십팔유현중에서도 첫 번째로 모시고 있는 설총이라니 재미있는 일이다.제 3부 사상.그의 대표적인 사상은 "뭇 경전의 부분적인 면을 통합하여 온갖 물줄기를 한 맛의 진리바다로 돌아가게 하고, 불교의 지극히 공변된 뜻을 열어 모든 사상가들의 서로 다른 쟁론(諍論)들을 화회(和會)시킨다"(涅槃經宗要)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화쟁사상(和諍교를 생활화하는 불교대중화운동으로 전개된다. 당시 신라사회는 원광과 자장의 교화에 큰 영향을 입었으나 불교 수용면에서 왕실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층과 일반 서민층 사이에는 괴리가 있었다. 이러한 때에 혜공(惠空), 대안등이 대중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가 대중들에게까지 불교를 일상 생활화시킴으로써 유익한 의지처가 되게 하였다. 원효 역시 이들의 뒤를 이어 당시의 승려들이 대개 성내의 대사원에서 귀족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에 반하여, 지방의 촌락, 가항(街港) 등을 두루 돌아다니며 무애(無碍)박을 두드리고《화엄경》의 "모든 것에 걸림없는 사람이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났도다" 라는 구절로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가무와 잡담 중에 불법을 널리 알려 일반 서민들의 교화에 힘을 기울였다. 이는 眞과 俗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眞 가운데 俗이 있으며 俗 가운데 眞이 구현되는 불교의 진수를 몸소 실천한 위대한 실천행동가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에서 그는 "萬法이 일불승(一佛乘)에 총습(總濕)되어야 하는 것은 마치 大海중에 일체 중류(衆流)가 돌아가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곧 상호대립적인 사상과 교외를 모두 융회하여 일불승(一佛乘)에로 귀결시키려 함이다. 또 그의 에서도 동일한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뭇 경전의 부분적인 면을 통합하여 온갖 물줄기를 한 맛의 진리 바다로 돌아가게 하고, 지극히 공평한 뜻을 열어 모든 사상가들의 서로 다른 쟁론들을 이회(利會)시킨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원효의 대표적인 저서이자 가장 독창적 저술인 에 이르면 그의 이같은 사상적 면모는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는 불교 교의와 인간의 온갖 다양한 주장들을 없음(空)과 있음(有), 나(人)와 세계(法) 등 열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묶고 화쟁의 논리에 입각하여 그것을 하나 하나 회통(會通)시키고 있다. 여기서 원효는 어느 주장을 일방적으로 묵살하지 않는다. 열린 자세로 수용하면서 하나하나 그들을 논리적으로 교통정리 한 뒤에, 자신의 견해를 명료하게 밝혀나가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원효의 는 중심 논법이라고 하는 편이 더 옳겠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원효의 화쟁은 반드시 회통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쟁회통(和諍會通), 즉 화쟁에서 그치지 않고 회통에 이르고 있음이다. 따라서 화쟁보다는 화쟁회통의 준말인 和會가 더욱 정확히 그의 중심논법인 셈이다.원효에게 있어서 화쟁이란 말은 논쟁을 화해시킨다는 정도의 상식적인 용어가 아니다. 여기서의 '諍'이란 '다툼'의 뜻이 아니라 '자기주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쟁(異諍)은 곧 각자의 주장이나 견해 또는 각기 다른 학설을 말함이다. 원효는 인간은 각기 다른 대립적인 이설들을 유통(琉通)·회통(會通)시켜 하나의 큰 진리를 찾게 하고자 한 것이다.和會의 방법에 있어서, 원효는 모든 異諍에 대해 옳고 그른 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자신의 주관이나 선입견을 개입시키지는 않는다. 오직 최고의 진리, 즉 佛說의 眞義에 맞추어 하나의 뜻으로 조화를 이루게 한다. 그래서 화쟁이 성립되는 것이다.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和會를 그대로 원효의 중심사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그보다는 그러한 화쟁회통의 논법을 통하여 밝혀진 心性의 세계를 그의 중심사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원효`즉就中十門論者 如來在世己賴圓音 衆生等..........通融聊爲序述 名曰十門和諍論)즉가 여러 저술들을 통해서 밝혀낸 심성의 세계는 바로 佛心이며 동시에 우리들의 一心이다. 일심이란 다름아닌 모든 가능성을 감싸고 있는 중생심(衆生心) 그것이다. 중생심 그대로가 곧 진리를 머금고 있는 일심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뜻에 契合하는 일심사상, 그것이 곧 원효의 중심사상인 것이다.원효는 이 일심사상을 화쟁의 논리를 통해 더욱더 심화시켜 간다. 모든 강물들이 바다에 이르러 한 맛이 되듯이 그는 온갖 다양한 주장들을 화회시켜 佛心이며 衆生心이니 一心으로 회통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실천의 방법이 무애(無碍)의 행위였다.더러움과 깨끗함이 없고 眞과 俗이 둘이 아닌 경지의 삶, 그것은 곧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간 자의 무애한 삶의 모습이다. 어떤 사상이나 관습에것이다.
    인문/어학| 2006.04.23| 6페이지| 1,000원| 조회(523)
    미리보기
  • [문학사]마흐푸즈의 쉰다섯 개의 거울을 읽고
    『쉰다섯 개의 거울』(나집 마흐프즈)『쉰다섯 개의 거울』은 일기 같기도 하고 회고록 같기도 하며 자서전 분위기도 나고 고백체 등의 성격도 엿보인다. 55개의 단편소설이 모여 각자가 독립된 이야기인 듯 보이나 한명의 화자가 유기적으로 조직하여 완성되어 있다. 아랍인들의 이름이라서 이 이름이 저 이름 같고, 저 이름이 그 이름 같아서 연습장에 써 내려가면서 읽어야지 헷갈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화자의 주위 사람이나 관련된 사람들이 한 편의 이야기에만 나오다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각 장은 집약된 언어로 나타내어지고 비교적 빠른 전개로 작품을 읽는데서 오는 지루함을 없애주었다. 화자는 각 인물이 떠오를 때 마다 그 인물을 장소와 함께 언급한다. 55명의 등장인물들은 매우 다양하다. 화자의 어린 시절에 압바시야의 동무들로 시작해서 학창 시절 친구들, 대학 시절의 교수님과 그에 따른 모임으로 알게 된 각 분야의 사회 인사들 등이 등장한다. 각 장은 그 등장인물들의 평전을 쓴 것만 같았다. 매우 흥미롭고 화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이들을 통해 이집트 사회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쉰다섯 편의 단편을 모아 그 단편들이 공통적인 구조적 질서를 유지하는 독특한 서사문학을 형성한 점은 매우 흥미롭고 독특했다. 마치 천일야화와 비슷한 구성이란 생각이 들었다.이 작품은 단편들의 모음이어서인지 작품의 전체적인 줄거리나, 주인공의 성격들이 아주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점이 이집트 사회의 여러 단면들이 세밀하게 묘사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의 전체적 화자에 대해서 각 작품들을 통해 그의 모든 생애는 아니지만 성장배경, 사회적 상황 등을 짐작해낼 수 있다. 우선, 그는 구카이로 후세인 구역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에 쿨탑에서 공부하다 압바시야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수두르 압드 알 바끼, 사이드 샤이르, 이드 만수르, 리다 하이마, 칼릴 쟈키 등을 만났고, 대학에 진학해서는 철학을 전공하였으며 공무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작품에서는 1919년 반영혁명에서부터 1967년 6월까지 전개되어있다.작품에서 인상 깊었던 몇 부분만 되짚어 나가보도록 하겠다. 우선, 우리나라와 비슷한 실정으로 여겨진 ‘공무원’에 대해 다룬 ‘솨라라 안 나할’편은 더 공감이 갔던 부분이다. 하위직 공무원으로 출발해서 고위 공직자가 된 인물로, 세상의 변화에 잘 적응하여 살아간 것으로 묘사된다. 화자는 그로 인해 승진의 피해자 중 한명이어서 초반에는 그를 의심의 눈으로 쳐다보지만 그의 성실함 등의 능력을 평가함에 있어서는 공정한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되었던 간에 이 부분으로 이집트 공무원 사회도 그다지 투명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에 따르는 화자가 바라보는 사회적 부조리에 관한 시선도 느낄 수 있었다.이 부분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작품 전개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집트 사회의 관습이나 규범, 윤리관, 여성관 등을 알 수 있었다. 각 인물들의 대비를 통해서 각자의 상징하는 바를 부각시키기도 하고(리다 하마나 vs 주하미르 카밀), 사회의 어두운 면인 마약, 암시장, 매음 등을 하는 이들의 심리나 자기 합리화 등을 엿보기도 하였으며, 여성에 대한 보수적인 사고를 알 수 있었고(수아드 와흐비), 화자의 사랑을 들을 수 있었고, 현대 이집트의 정치적 흐름을 설명해주는 역할도 하였다고 본다. 왕정 폐지를 가져 온 1952년 낫세르 혁명, 6월 전쟁의 패전 등을 이야기 하며, 모든 사건에는 양면이 존재하듯 국가적으로 너무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르는 이익을 얻을 수 있기에 그 상황을 반겨하는 이들을 묘사함으로써 좀 더 사실적인 접근을 취했다고 생각되어진다. 화자는 평등에 대한 인간의 투쟁과 과학적 진보에 대한 믿음이 커다란 줄기를 이룬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개인의 도덕성은 사회적 도덕성과 개인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또한 인생을 읽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넌지시 던져주고 있다. 마치 이집트를 가보지도 못하고, 기초 소식도 알 수 없는 내게 은근히 이집트의 여러 면모를 소개해주는 느낌이었다.
    독후감/창작| 2006.04.23| 2페이지| 1,000원| 조회(510)
    미리보기
  • [국문학사]김소월 그의 삶과 시작품 세계와의 관계
    1. 김소월은 누구인가?- 본명은 김정식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 시인이다. 개화기 이후 많은 시인들이 이 땅을 스쳐갔지만 소월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인구에 회자된 시인은 드물 것이라 본다.평론가 조연현은 자신의 저서에서 “그 왕성한 창작적 의욕과 그 작품의 전통적 가치를 고려해 볼 때, 1920년대에 있어서 천재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지적하였다. 7·5조의 정형률을 많이 써서 한국의 전통적인 한(恨)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평가받으며, 짙은 향토성을 전통적인 서정으로 노래한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계속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2. 김소월 연보연도나이19029월 7일. 새벽에 평북 정주군 곽산면 남단리 외가에서 공주 김씨 김성도와 모친 장경숙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남. 김씨 문중의 종손. 태어난지 백일 후에 평북 정주군에서 성장. 본가 마을은 공주 김씨 가문 12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산자수명한 고장이었음. 조부가 대지주였고 광산업도 하여 집안이 부유했으며 유교적 가풍이 있었음.19042세정주와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인 목도군들에게 폭행을 당한 부친이 정신이상 증세를 일으킴19053세숙모 계영희로부터 고대소설 및 전설민담을 전해 듣고 문학적 감수성을 키워감. 많은 소설을 구술할 정도로 기억력이 비상함.19075세조부가 독서당을 개설하고 훈장을 초빙하여 한문공부를 시켰음.19086세여동생 인서 태어남.19097세공주 김씨 문중에서 세운 남산소학교에 입학, 머리가 총명하여 신동이라 불렸으며 이승훈, 김시참 선생의 강연을 듣고 민족 의식에 눈뜸. 부친의 정신병이 악화되어 집안에 그늘이 생김. 동네 친구인 오순을 만나 이성에 눈뜸.191311세동네에 퍼진 장질부사로 4개월간 앓고 휴학함191513세남산소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4월 오산중학에 입학. 교장 이승훈, 교사 조만식의 영향으로 민족의식을 키움, 스승 안서를 만나 본격적인 문학수업 받고 시작에 손댐. 학업 성적이 우수하여 ‘만점’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음.191614세할아버지의 지시로 홍단실과 결혼함. 오순과의 이별로 심리적 갈등을 겪음. 비사교적이고 내향적인 성격으로 친구가 별로 없었음.191917세3˙1운동의 여파로 오산학교가 폐교되어 졸업예정자로 수료장 받음. 3.1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민족애를 키움, 귀향하여 서구시에 탐닉하고 잠시 평양여행을 다녀옴192018세안서의 지도로 창작에 매진하고『창조』에 「낭인의 봄」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192220세배재고보 5학년에 편입하여 우등생으로 1년 다님.192321세배재고보 졸업후 일본 유학길에 오름. 동경상대에 진학했으나 10월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했음. 이후 4개월간 서울에 머물면서 안서, 나도향과 교류함.192422세안서가 주선한 동아일보 지국개설을 약속받고 귀향해서 조부의 광산일을 도우며 소일함. 영변여행 중 채람이를 만나 「팔베개 노래」의 소재 얻음. 처가인 구성군 서산면 평지동으로 이사.192523세처가인 구성에서 동아일보지국 개설. 사업이 부진하자 실의에 빠져 술을 가까이 함. 시집『진달래꽃』을 간행192624세마음 속의 연인이던 오순의 죽음으로 충격받음. 시작에서 거의 손을 떼고 방탕한 생활을 함.192725세나도향의 요절로 충격을 받고 자살 충동을 느낌. 술로 지새는 날이 많아짐. 신문지국 경영을 포기하고 고리대금업에 손댐.193230세독립운동가 배찬경의 망명자금을 대주고 일경의 감시를 받음. 만주행을 꿈꿨으나 실패함.193432세고향 곽산에 가서 성묘함. 12월 23일, 장에서 아편을 사가지고 와 음독함. 다음날 아침 8시경 싸늘한 시체로 발견. 평북 구성군 서산면 평지동 왕릉산으로 이장.193512월 28일, 김억, 이광수, 김동인의 주선으로 서울 백합원에서 추모회 열림. 김억이 『신동아』2월호에 「김소월씨행장」발표1939『소월시집』이 박문서관에서 간행됨.1956『소월시집』이 정음사에서 간행됨.3. 그의 삶과 시작품 세계와의 관계3.1. 유년시절의 자연환경.- 소월의 고향인 평북 정주는 지정학적으로 한국 근세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지방이었다. 산자수명한 이 지방은 일찍 개화에 눈을 떠서 기독교가 전파되고 신학문이 수용되는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곳이었다. 일찍이 우리 민족의 선각자인 안창호, 조만식 등이 이곳 주변에서 태어났으며 이승훈은 바로 정주 출신이 지도자였다. 또한 정주는 신문학의 두 거두인 춘원과 김 억을 배출한 곳이기도 했다.소월이 나고 성장한 평북 정주군 곽산면 남단리는 8대 명산의 하나인 능한산을 등에 진 남향마을이었다. 이 마을 동쪽 끝에는 옥녀봉이 우뚝 솟아있고 서남쪽으로 기름진 전답이 퍼져있다. 옥녀봉에 오르면 황해바다와 임경업 장군의 전설이 얽혀 있는 신미도의 삼각산이 바라보인다. 사람마다 모두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이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그 영향은 더욱 크다. 특히 소월처럼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더욱 그러하다.결국 이러한 환경은 소월이 민족시인으로서 주옥같은 민요조 서정시를 남길 수 있게 만든 커다란 요인이라 볼 수 있다. 안서는 소월의 시를 민요조 서정시로 규정한다. 우리의 정서를 우리의 가락에 실어 향토색 짙게 했다. 특히 율격을 살펴볼 수 있는데 소월의 율격은 7.5조 3음보가 기본을 이룬다. 그리고 때로는 2음보 율격이 보이기도 한다.물고흔 자주구름하늘은 개여오네밤중에 몰래온눈솔숲에 꽃피었네아침볕 빛나는데알알이 뛰노는눈밤새에 지난일은다잊고 바라보네움직거리는 자주구름-「자주구름」3.2. 부친의 정신질환- 김소월의 아버지 김성도는 일찍이 김씨 가문의 장손으로서 태어나 기대를 모았으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정신질환자가 됨으로써 오히려 가문에 어두운 그림자를 비치게 하였다. 불의의 사고란 처가 나들이를 하다가 일어난 일로 일본인 목도꾼들을 만나 시비가 붙어 그들에게 몰매를 맞은 일이다. 또한 이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목도꾼 십장이 다시 찾아와 부역에 협조하지 않는다 하여 폭행을 가했고 그 후부터 김성도는 정신질환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늘 혼자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때로는 폭음과 폭행을 일삼는 김성도로 집안은 평화스럽지 못했다. 김성도는 장남으로 가문을 대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문의 큰 짐이 되었고 소월에게도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주었다. 명랑하고 총명했던 유년기의 소월이 나이를 먹을수록 우울하고 고독해하는 내향적 성격으로 변모했던 큰 원인이라 볼 수 있다. 생부는 있었지만 정신적으로 고아일 수밖에 없었고 그런 암울한 환경에서 소월의 한의 문학이 나올 수 있었다.상반된 모순 감정의 표출을 기본으로 하는 한의 문학. 한의 문학에는 체념과 미련이 있다. 또 그 속에는 미움과 사랑이 있다. 체념하면서도 미련을 남기고, 미워하면서도 사랑을 남기는 그 감정의 시초는 한인 것이다.나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영변에 약산진달래꽃아름따다 가실길에 뿌리오리다가시는 걸음걸음놓은 그 꽃을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나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진달래꽃3.3. 숙모 계희영.- 고향에서 공주 김씨 가문 120가구가 함께 살았기에 여러 이들을 보고 자랐지만 그 중 소월의 성격형성, 특히 문학적 감수성에 영향을 준 사람은 소월의 첫째 숙모 계희영이었다. 성실하지 못한 남편을 둔 계희영은 마음 붙일 곳이 없어 소월에게 애정을 쏟았다. 그녀의 친정은 부유했고 또 신학문에도 일찍 눈을 뜬 집안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언문을 익혀 많은 고대 소설을 접할 수 있었다. 계희영은 이런 이야기들을 김소월에게 많이 들려주었는데 이 것들은 결국 소월의 문학적 감수성에 큰 자양분으로 활용되었다. 동화 한 권 구해보기 힘든 시대였기에 숙모의 이야기는 소월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충족시켜주고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시켜 주었다. 더구나 상상력이 풍부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감수성이 예민한 소월은 숙모의 이야기가 큰 자극으로 받아들였다. 소월의 대표작 「접동새」나 「물마름」은 모두 어린 시절 숙모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한 것이다.소월시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전통적 분위기 특히 지방색이나 민요가락, 전설의 시화 등은 숙모로부터 받은 유년기의 문학 체험에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접동접동아우래비 접동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진두강 앞마을에와서 웁니다.옛날 우리나라먼 뒤쪽의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누나라고 불러보랴오오 불설워시새음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아홉이나 남아되는 오랩 동생을죽어서도 못잊어 차마 못잊어야삼경 남다 자는 밤이 깊으면이산 저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접동새」3.4. 사랑하던 이와의 이별과 강제 결혼.- 소월이 이성과의 교제를 가져 본 것은 동네처녀인 오순이었다. 소월과 같은 반이었던 오순은 소월과 친하게 되어 옥녀봉 냉천터에서 자주 만나곤 했다. 옥녀봉에서 오순과의 만남은 「풀따기」라는 시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또한 오순이는 노래를 잘 불러 그를 소재로 「님의 노래」를 쓰기도 하였다. 오순이는 의붓어미 슬하에서 자라던 소녀였는데 5명의 동생을 밑에 두어 집안이 매우 곤궁한 처지였다. 「접동새」가 숙모에게서 들은 전설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지만 오순의 처지가 「접동새」의 주인공과 흡사하여 직접적인 시상을 받았다고 한다. 소월이 남산학교를 졸업할 무렵 가산이 기울고 아버지의 광증이 심해져 오순과의 만남도 더욱 잦아졌다. 그러다 1916년 14세 되던 해 소월은 할아버지의 강제에 의해 결혼을 하게 된다. 부인과의 결혼생활은 비교적 원만했지만 마음속에 둔 연인이 있었기에 그에 못지 않은 내적 갈등도 겪어야 했다.
    인문/어학| 2006.04.23| 6페이지| 1,000원| 조회(808)
    미리보기
  • [경영]ceo 서두칠
    한국기업의 모범적인 최고경영자상 조사1. CEO 서두칠1) 학력과 약력1957년 진주고등학교 졸업1964년 경상대학교 농과대학 축산학과 졸업1973년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경영학)1974년 농협중앙회 과장1976년 대우중공업주식회사 과장1984년 대우중공업주식회사 이사부장1988년 대우전자주식회사 이사1992년 대우전자주식회사 상무1993년 대우전자부품주식회사 대표이사1997년 대우전자주식회사 부사장1998년 한국전기초자주식회사 대표이사2001년 경상대학교 명예 경영학 박사2002년 (현)아주대학교 공학부 겸임교수2002년 (현)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2002년 (현)한국 CEO 포럼 운영위원/부회장2002년 (현)동원시스템즈 대표이사2003년 (현)서울 응용과학대학원 대학 겸임교수2) 수상내역2000년 6월 12일 한국경제신문사 - 제9회 다산경영상 수상2000년 6월 20일 대신경제연구소 - 상장법인 최우수 기업상 수상2000년 11월 30일 제37회 무역의 날 - 5억불 수출의 탑 수상2000년 12월 19일 한경 비즈니스, 타워스페린 - 올해의 CEO 선정2001년 1월 2일 구미 상공회의소 - 구미상공대상 수상2001년 1월 20일 경상북도 - 제4회 산업 평화대상 수상2001년 4월 3일 한국중견기업인연합회, 한국산업개발연구원-올해의 훌륭한 기업가 대상2001년 4월 11일 신산업경여대상 위원회 - 생산부문 대상 수상2003년 11월 6일 도산아카데미 연구원 - 도산경영상 수상2004년 12월 20일 미국시사주간지 TIME/CNN - 영향력 있는 글로벌 경영자 25인에 선정“스피드하게 급변하는 정보화 시대에, 사장의 잦은 ‘알리바이’는 경쟁력 저하의 주요한 요인이 된다. 경영책임자의 現場不在와 常時 在는 느림보 경영이냐, 스피드 경영이냐의 문제를 떠나서 조직을 생명력 있게 유지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솔선수범이란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지시사항이 아니라 스스로의 실천덕목이다.”2. 한국전기초자1) 한국전기초자의 위기한국전기초자(HEG 2) 경영권 이전1974년부터 1997년까지 24년을 버티어 오던 한국전기초자는 국내외의 상황과 경영의 문제로 인한 77일 간의 극렬한 노사분규 끝에 경영권이 한국유리그룹에서 대우그룹으로 넘어갔다. 당시의 대우그룹 회장이던 김우중 회장은 당시 대우전자 부사장이던 서두칠 사장을 한국전기초자의 사장으로 내정하였다.IMF 초기의 어수선한 상황에서 77일간의 노사분규를 겪은 한국전기초자는 대우그룹 차원에서도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였다. 김우중 회장은 당시 대우전자의 배순훈 회장과 이 일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두 사람은 한국전기초자를 서두칠 대우전자 부사장에게 맡기기로 결정하였다. 1993년 서두칠 대우전자 상무에게 만성적자와 노사분규로 골머리를 앓던 대우전자부품의 경영을 맡긴 적이 있었다. 당시 대우전자부품에 근무하던 사람들은 회사를 정상화하기 힘든 이유로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제품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대우전자에서 매년 10%의 부품값 인하를 요청한다. 둘째, 차입금이 너무 많아 이자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셋째, 노조가 너무 강성이다. 넷째, 공장이 네 군대로 나누어져 있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그러나 서두칠 신임사장이 부임한 후 내린 대책은 다른 사람이 납득하기 힘든 것이었다. 대우전자가 깎아 달리니 깎아 주어야 한다. 대신 생산량을 늘려 대우전자에 대한 비중을 줄이면 된다. 대출이자에 대한 부분은 동일 설비로 많은 제품을 생산하여 상대적인 이자 부담을 줄이면 된다. 노조가 강성이라는 문제는 관리자의 힘으로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립해 나가면 해결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장이 네 군대로 나누어져 있다면 하나로 합치면 된다. 누가 들어도 궤변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대책이었다. 그러나 그가 4년간 근무하고 대우전자부품을 떠나게 되었을 때 1,000억 원이던 매출액은 2,300억 원이 되었고, 인원은 정리해고에 의한 것이 아닌 자연감소에 의하여 1,800명에서 1,000명 수준으로 되었다. 즉, 인원은 반으로 줄었는데 매출은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들에게 요구하니 아니 따를 수 없었다.한국유리그룹으로 있을 당시의 경영진은 단기차입금과 어음의 결재일을 회사의 경영권이 대우그룹으로 넘어가고 난 후로 맞추어 두었다. 서두칠 사장은 밀려드는 어음 결제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서두칠 사장이 전에 사장으로 있었던 대우전자부품 자금부에 근무하고 있던 최영호 부장을 급히 한국전기초자 서울 사무소로 불러들였따. 기존 한국전기초자의 자금 담당자로는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한 서 사장은 최영호 부장을 불려들였고, 최영호 부장은 김종배 대리를 불러들였다. 두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구미 본사와 핫라인을 가동하면서 부도 일보 직전이었던 회사의 자금 문제를 해결하였다.3. 서두칠 부임 이후의 성과1) 주가관련지표 및 주요 재무비율서두칠 사장은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의 사장으로 선임되었다. 당시의 주가는 3,000원 대였고 주당 순이익은 9,115원 적자였다. 그러던 것이 1998년부터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하여 그가 부임한지 3년이 채 못되어 주가는 50,000원 대가 되었다. 주가 관련 지표를 표에 나타내었다. 주가관련지표 (단위 : 원, 배, %)구 분97.1298.1299.1200.06주 가최고23,50015,90070,00049,700최저3,8204,00010,80029,500주 당순이익-9,1154,6509,22419,018매출액36,23873,73070,81483,358순자산1123,10530,23639,747CASH FLOW-1,93614,76519,86839,747PER(H/L)-3.4/0.97.6/1.22.6/1.6보통주 배당률-주3.015.0-위의 표를 보면 주가관련지표 중 주당 순이익과 매출액에서 주당 순이익이 적자에서 급격히 상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동일한 기간동안 한국전기초자의 주요 재무비율을 표로 나타내면 와 같이 된다. 이 기간동안 한국전기초자의 부채비율은 1,114%에서 49.6%로 낮아졌다. 순이익 증가율도 1997년 당시 적자에서 2000년 6월에는 54.3%의 급격한 순이익 증가율.7(감가상각비)470.9664.3859.3N.A.동일한 기간동안의 현금흐름표를 에 나타내었다. 1997년의 현금의 증가가 25억 원이었던 것이 1999년 12월에는 395억 원으로 급격히 늘었다. 현금흐름표 (단위 : 억원)구분1996.121997.121998.121999.12영업활동현금흐름308.5-80.11,331.32,075.3(현금유출없는비용가산)710.3647.5895.91,045.1(현금유입없는수익차감)3.35.45.527.5(영업활동자산부채변동)-464.1-124.3135.5313.0투자활동현금흐름-899.1-811.2114.9-692.1재무활동현금흐름590.9916.8-1,385.2-988.6현금의 증가0.425.461.0394.54. 서두칠의 한국식 카리스마적 리더십서두칠 사장의 한국식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IMF 초기 넘어져 가는 회사를 3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구하였고, 국내에 몇 안되는 ‘CEO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전문 경영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그의 리더십을 원칙에 의한 것이라 한다. 그는 그 나름대로 경영 일선에 있으면서 지켜왔던 원칙이 있었다. 그 원칙은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한국 기업에 필요한 추가적인 리더십을 혼합한 형태이다. 이것을 한국식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라 하겠다. 그의 리더십을 전통적인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행위구분과 비교하면 과 같이 된다. 전통적 VS. 한국식 카리스마적 리더(한국전기초자의 예)의 행위 구분행위요소전통적 카리스마적 리더한국식 카리스마적 리더현상에 대한 태도현 상태에 근본적으로 불만족하며 변화시키려고 노력함.위기에 닥쳤을 때 혁신적인 방법으로 문제해결을 시도미래의 목표현 상태를 크게 뛰어넘는 이상적비전을 제시남들이 생각하기에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이상적인 목표를 설정, 대화를 통한 협조를 요청존경스러움관점과 비전을 공유하게 됨으로써 하급자들이 존경하고 동일시 또는 모방하려 함.추종자들이 보지 못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하나씩 이루어 가는 과정을 통하여 존경을 받음전문성기존의 질서를 뒤엎을 수 있시 출근을 강행했다. 망가질 데로 망가져 더 이상 망가질 수 없는 회사에 대하여 극약처방을 내린 것이다. 서 사장의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은 성공을 거두고 퇴출 1호의 기업에서 세계적인 모범 회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2) 미래의 목표현 상태를 크게 뛰어넘는 이상적 비전을 제시서 사장과 직원들은 아래의 7가지 혁신활동을 실시하였다.① 기계, 설비라인의 구조조정 - 현장은 그 제품의 문외한이 보더라도 한눈에 물류의 흐름을 알 수 있도록 배치돼야 한다.② 제품의 구조조정 -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중소형 텔레비전 유리만 생산하던 구조에서 탈피, 대형 유리나 컴퓨터 브라운관 유리로 바꿔 나간다. 부가가치를 높이고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조치다.③ 금융의 구조조정 - 단기차입금을 장기차입금으로 대체하고 고금리자금은 우선적으로 상환해 금융부담을 줄여 경영수지를 개선했다.④ 노사관계의 구조조정 - 기본적인 노사관계의 방향은 쟁취, 갈등 관계가 아니다. 직원은 회사의 발전방향과 같이 회사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주체며 회사는 열린 경영으로 모든 정보를 공유토록 한다.⑤ 인력에 대한 대책 - 97년 한국전기초자 파업의 직접적인 동기는 용해로의 불이 꺼지면서 고용에 불안을 느낀 사원들이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일자리의 보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대개의 구조조정 작업에서는 인원감원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지만 한국전기초자는 의도적인 인원 감축 없이 자연 감소 인원을 충원하지 않은 정도의 인원만을 줄여나갔다. 구조조정 초기에 그러한 내용을 노조와 직원들에게 약속을 하였고 그것을 실천하였다.⑥ 기술에 대한 대책 - 외국기술에 의존하면 로열티에 대한 부담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기술 축적에도 한계가 있다. 한국전기초자는 98년에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적극적으로 기술개발을 하게 되었다.⑦ 사고방식의 변혁 - 서 사장이 취임하기 전까지의 직원들의 부정적인 사고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로 바꾸어 나갔다.3) 존경스러움관심과 비전을 공유케 됨으로써 하.
    경영/경제| 2005.11.04| 10페이지| 1,000원| 조회(653)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5
5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3
  • C아쉬워요
    1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2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5:38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