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젓가락 문화Ⅰ. 일본의 젓가락 기원 Ⅱ. 일본인에게 있어서의 젓가락 Ⅲ. 젓가락의 모양 Ⅳ. 젓가락의 종류 Ⅴ. 젓가락 예절 Ⅵ. 젓가락 사용에 대한 터부시 행동Ⅰ. 일본의 젓가락 기원젓가락의 유래 고대 일본 - 대나무를 반으로 굽힌 젓가락 607년에 오노노 이모코(小野妹子)- 수나라에서 한 쌍으로 된 젓가락을 수용 쇼토쿠 태자(聖德太子)- 조정의 의식을 치를 때에 처음으로 채용 나라시대- 서민들 사이에서도 보편적 사용명칭의 유래 하시는 음식물과 입 사이에 음식물을 건네주기 때문에 사이(間)를 의미 음식물과 입 사이에서 다리처럼 역할을 한다는 의미의 하시(橋) 양쪽 끝이 가늘다는 데서 끝(端)을 의미하는 하시 일본에서 젓가락 발달 이유 육식을 금하는 불교가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 일본 풍토에 맞는 신선한 생선과 야채와 같은 재료로 젓가락으로 먹기 편한 요리를 발달시켰기 때문Ⅱ. 일본인에게 있어서의 젓가락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 교양 평가 도구 그 외에도 젓가락은 만능의 식사도구로, 혹은 놀이기구로, 점을 치는 도구 등으로 널리 사용되며 일본의 문화와는 불가분의 관계 형성Ⅲ. 젓가락의 모양젓가락의 활동 범위가 작다 젓가락길이 짧아짐 해산물을 많이 먹기 섭취 음식물을 집는 부분 가늘어짐 젓가락 받침대(箸置)를 사용* 한 ․ 중 ․ 일 젓가락 비교 중국 사람들은 식구가 둘러앉아 식사하기 때문에 음식과의 거리가 멀고 반찬에 기름기가 많으며 집기가 어려워서 젓가락이 길고 굵다. 한국의 젓가락은 지리적 위치만큼이나 중간적이다. 25㎝ 안팎에 끝은 납작하다. 두 나라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금속을 재료로 쓴다는 것.대나무, 상아금속나무재질뭉뚝뭉뚝뾰족끝모양길다중간짧다길이중국한국일본Ⅳ. 젓가락의 종류나오바시(直著) 음식을 직접 집어먹을 때 사용 도리바시(取り箸) 접시에 담긴 요리를 개인 접시에 덜어올 때 사용 와리바시(割箸) 가운데가 살짝 붙어 있는 나무젓가락을 식사 전 두 쪽으로 쪼개 사용한 뒤 버리는 일회용 젓가락 후토바시(太著) 특별한 날 사용Ⅴ. 젓가락 예절젓가락을 잡을 때에는 왼손을 사용이 기본 밥공기를 들 때에는 일단 젓가락을 내려 놓고 왼손으로 밥공기를 들고나서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집는다. 젓가락은 가로로 놓는 것이 예의 손님 초대 할 때 – 하얀색종이로 감춘 나무젓가락으로 접대 제사 지낼 때 – 흰색 젓가락 사용Ⅵ. 젓가락 사용시 터부시 행동하시 와타시 니기리바시(握り箸) 요세바시(寄せ箸) 사시바시(刺し箸) 와타시바시(渡し箸) 마와시바시(回し箸)나미다바시(淚箸) 사구리바시(さぐり箸) 모기바시(もぎ箸) 네부리바시(ねぶり箸) 마요이바시(迷い箸)正しい箸の持ち方 (伝統的で機能的な持ち方) 機能的な箸の持ち方をすることは、美しい食事をすることにつながります。 1.箸の片方(固定箸)を親指の根元にはさむ。 2.薬指を軽く曲げ、第一関節の上にして親指と薬指で支える。 (薬指が固定箸の重心になる) 3.もう一方の箸(作用箸)は親指の腹ではさみ、中指の第一関節で支える。(作用箸の重心には親指の腹がくる) 4.作用箸の支えをしっかりさせるために、小指を薬指に添わせる。{nameOfApplication=Show}
일본의 술 문화Ⅰ. 술의 유래에 관한 전설 Ⅱ. 술의 상징적 의미 Ⅲ. 일본에서의 술 종류 Ⅳ. 일본의 술집 Ⅴ. 일본에서의 술안주 Ⅵ. 일본의 음주문화Ⅰ. 술의 유래에 관한 전설ⅰ. 새에 관한 전설 ⅱ. 미잔오존의 전설 ⅲ. 수수거리의 전설Ⅱ. 술의 상징적 의미술은 신과 인간이 융합하려는, 서로 이질적인 것을 하나되게 하는데 큰 역할 '마츠리'는 신에 대한 제사이다. 이때는 종교적인 의식과 함께 으레 떠들고 노는 유희적 요소가 동시에 존재한다. 제사가 끝난 다음 참가들이 신에게 바쳤던 술과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을 일본에서는 直会(なおらい)라고 한다. 그 이후 '부레이코'라 하여 신분의 상하귀천 구분없이, 예의도 무시하고 마시며 즐겼다. 다시 말하자면, 술을 통해 기존 질서를 모두 무너뜨리고 그 순간 만큼은 평등하게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처음부터 술을 마신 후에 제사를 올리는 일도 있다. 이 때 마시는 술을 淸酒(きよめざけ)라 하는데, 이는 더럽고 부정한 것을 제거하는 술이라는 의미로 일종의 목욕재계와 같은 의미이다.Ⅲ. 일본에서의 술 종류ⅰ. 청주 淸酒, 일본술(日本酒), おさけ 地酒 –지방 고유의 술 발달 야요이시대 나라시대 무로마치시대쌀 누룩을 이용한 술 생산造酒司 설치 쌀 술 생산 시작오늘날 청주 제조의 원형니이가타현의 지자케가 제일 유명하대요!등급 : 혼조조 → 준마이 → 긴조핫까이산 혼죠조하루시카 초가라구치 (준마이)핫까이산 준마이 긴죠ⅱ. 맥주 1724년 네덜란드의 상선사절단 진상으로 처음 마심 가와모토가 자택에서 처음 맥주 생산 문명개화로 100여개의 맥주회사 설립 → 맥주에 과세(군비증강목적) → 중소회사 도태 → 지금의 맥주업계 체제100㎖부터 3000㎖까지 다양한 용량일본 맥주의 특징 아주 차갑게 해서 맥주를 마신다 → 무덥고 습한 날씨 영향 옥수수 전분의 사용으로 고소한 맛 발포주의 인기 -맥주에 분류되지 않도록 원재료를 조절해서 만든 맥주 -주세를 줄여 가격 저렴ⅲ. 위스키 일본에서는 양주에 반드시 얼음과 물 또는 기타 음료수를 섞어 마신다* 우롱차와리 만드는 방법 1. 뜨거운 우롱차를 먼저 글라스에 붓고, 2. 본격소주(위스키 등) 1/3을 넣고 가볍게 저어 완성. 3. 차가운 것을 좋아 하신다면, 얼음 2~3개와 차가운 우롱차를 넣고 가볍게 젓는다ⅳ. 와인 1990년대 중반 일본에는 포도주 붐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와인을 수입하는 나라 ⅴ. 소주 일본인들은 얼음을 넣어서, 혹은 칵테일로 해서 마신다. 근래에는 젊은층 사이에 상당히 인기ⅵ. 주류 소비 동향Ⅳ. 일본의 술집ⅰ. 이자카야 居酒屋 일본의 가장 대중적인 술집오콘다테(메뉴판)ⅱ. 스낙쿠スナック 조용한 중·장년층 전문의 선술집 형 보통 가라오케와 술집을 믹싱한 업소 ⅲ 그라브 クラブ 우리나라의 룸사롱과 단란주점을 합쳐놓은 것 에 해당Ⅴ. 일본에서의 술안주츠키다시 맥주 젓가락 (젓가락이 놓인 위치 기억!)あげだしさしみもつなべⅥ. 일본의 음주문화ⅰ. 술잔돌리기 일본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면 자작을 하는 것이 보통이고, 권하더라도 각자의 잔에 술을 따르는 것이 예의이다. ⅱ. 찬술(ひや )과 데운술(あつかん) 보통 여름에는 히야로, 추운 겨울에는 아츠깡으로 마신다. 히야는 보통 컵으로 마시지만, 아스깡일 경우에는 도쿠리병에 넣고 데워서 '오조코'라는 정종잔으로 마신다.독구리(どつくり) 와 잔ⅲ. 술과 밥 일본은 술을 다 마신 후에 밥을 먹는다 ⅳ. 술과 여자 우리와는 달리 일반적인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술을 따라주는 것이 일상적인 일 ⅴ. 술잔 주고받기 일본 젊은이들은 대개 한 손 첨잔이 예의ⅵ. 술 마시기 상대방의 정면을 향하고 술을 마신다 술을 억지로 권하지 않는다 원샷을 하지 않는다 ⅶ. 부레이코 無禮講 연령이나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서로 입장 바꾸는 시간{nameOfApplication=Show}
일본의 젓가락 문화03012091 미술사학과 이민경2005년 1년간 일본에서 사용하는 나무젓가락은 대략 262억매로서 한 사람당 연간 205매를 사용하며, 연간 나무젓가락에 사용되는 목재는 2층 목조건축물 1만호를 짓는데 드는 소비량과 같다고 한다. 나무젓가락의 97%가 중국에서 수입된다. (254억매)Ⅰ. 일본의 젓가락 기원○ 젓가락의 유래고대 일본에는 대나무를 반으로 굽힌 젓가락이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607년에 오노노 이모코(小野妹子)가 수나라에서 한 쌍으로 된 젓가락을 가지고 왔다고 알려진다. 쇼토쿠 태자(聖德太子)가 조정의 의식을 치를 때에 처음으로 채용했다고 전해지며 이 후 귀족들 사이에서 숟가락과 함께 사용되었고, 나라시대에 들어와서 서민들 사이에서도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한다.○ 명칭의 유래일본에서는 젓가락(箸)을 ‘하시(はし)’라 하는데, 하시는 음식물과 입 사이에 음식물을 건네주기 때문에 사이(間)를 의미하는 하시, 음식물과 입 사이에서 다리처럼 역할을 한다는 의미의 하시(橋), 양쪽 끝이 가늘다는데서 끝(端)을 의미하는 하시 등에 기원한다는 설이 있으나 정설은 없다.○ 일본에서 젓가락이 발달하게 된 이유는 육식을 금하는 불교가 민중 속으로 철저하게 파고들어 일본 풍토에 맞는 신선한 생선과 야채와 같은 재료를 젓가락으로 먹기 편한 요리로 발달시켰기 때문이다.Ⅱ. 일본인에게 있어서의 젓가락○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일본에서는 ‘사람의 일생은 하시로 시작하여 하시로 끝난다’ 고 전해지는 말처럼 인생의 마디마디는 하시와 관련된 의식이 있다. 생후 100일이 되는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기원하는 ‘구이하지메食い始め’를 시작으로 ‘엔무스비하시?結び箸’ ‘메오또하시夫婦箸’ ‘쵸우쥬하시 長?箸’ 등을 거치게 되고, 불교에서는 임종을 맞이했을 때 와리바리 끝에 천이나 탈지면을 말아 ‘맛키노미즈末期の水’를 묻혀서 베개밑에 하시를 넣고 일생을 마친다.○ 교양의 평가 도구일본사람들은 어떤 사람의 영리함과 교양을 평가하는 도구로서 젓가락 사용술을 그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젓가락을 마음대로 사용하면 아무 도구나 막힘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젓가락 사용 방법과 젓가락 예절을 가르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한다.그 외에도 젓가락은 만능의 식사도구로, 혹은 놀이기구로, 점을 치는 도구 등으로 널리 사용되며 일본의 문화와는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Ⅲ. 젓가락의 모양일본 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 밥그릇, 반찬, 국그릇을 모두 자기 앞에 놓인 상태에서 먹기 때문에 젓가락의 활동 범위가 작다. 그러므로 젓가락도 짧게 만들었다. 또한 가시가 있고 껍데기가 있는 해산물을 많이 먹기 때문에 여기에 적응하기 위하여 음식물을 집는 부분도 가늘게 되었다.또한 일본에서는 젓가락 받침대(箸置)를 사용한다. 하시오키는 자연의 모습을 담은 무, 땅콩, 작은 새 등의 모양으로 된 것이 많다.젓가락 보관시에도 별도의 젓가락 통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으며 먼지가 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깨끗한 천으로 싸서 서랍에 넣기도 한다.* 한 ? 중 ? 일 젓가락 비교일본한국중국길이짧다중간길다끝모양뾰족뭉뚝뭉뚝재질나무금속대나무, 상아중국 사람들은 식구가 둘러앉아 식사하기 때문에 음식과의 거리가 멀고 반찬에 기름기가 많으며 집기가 어려워서 젓가락이 길고 굵다. 한국의 젓가락은 지리적 위치만큼이나 중간적이다. 25㎝ 안팎에 끝은 뾰족하지도 뭉툭하지도 않아 차라리 납작하다. 두 나라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금속을 재료로 쓴다는 것. 중국, 일본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젓가락 못지않게 숟가락을 중시하였는데 이는 국물 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식성에서 생겨난 것이다.Ⅳ. 젓가락의 종류○ 나오바시(直著)음식을 직접 집어먹을 때 사용하는 젓가락○ 도리바시(取り箸)일본인은 여러 명이 함께 식사를 할 때 큰 접시에 담긴 반찬이나 요리를 자기가 먹던 젓가락으로 집어먹는 것을 아주 큰 실례로 생각하여 반드시 “도리바시”라는 젓가락을 같이 내온다. 이 젓가락은 큰 접시에 담긴 요리를 개인 접시에 덜어올 때 사용하는 것으로, 뷔페나 샐러드바에서 사용하는 집게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도리바시가 없으면 자기 젓가락을 사용하는데, 자기가 먹던 쪽이 아니라 그 반대쪽을 사용해서 요리를 개인 접시에 덜어 먹으면 된다.○ 와리바시(割箸)가운데가 살짝 붙어 있는 나무젓가락을 식사 전 두 쪽으로 쪼개 사용한 뒤 버리는 일회용 젓가락이다. 자른다는 뜻의 '와리(割)'라는 이름도 그래서 붙었다. 처음엔 편리해서 썼지만 일본인들의 위생관념과 맞아떨어져 필수품이 됐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일회용 나무젓가락으로 전해졌다.와리바시를 부러뜨리는 행위는 자기만의 것에 해당하는 젓가락을 부러뜨림으로써 자신의 영혼이 거기에 남아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젓가락의 대부분을 버드나무로 만들어 썼는데, 그 버드나무는 신의 의대(依代)였기 때문이다.○ 후토바시(太著) 또는 다와라바시(俵著) 하라미바시(はらみ箸)특별한 날에는 신령스럽게 여겨지는 버드나무, 삼나무, 회나무, 대나무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한다. 그 중에서 특히 버드나무를 많이 사용하였다. 이는 예로부터 버드나무는 잡기를 쫓고, 부정을 물리치는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며 버드나무의 일본식 발음인 ‘야나기’라는 말이 집안에 기쁨이 가득하다는 뜻의 ‘屋內喜’와 발음이 같은 것에서 비롯되었다.길이는 평상시 것보다 길고 양쪽 끝을 모두 뾰족하게 깎아놓아 가운데는 통통하기 살이 찐 것처럼 보이는 젓가락이다. 한쪽은 신이 사용하고 다른 한 쪽은 사람이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이를 사용함으로써 신의 영혼과 자신의 영혼이 젓가락을 통해 전달된다고 믿었기 때문으로 해석한다.Ⅴ. 젓가락 예절요즘에는 엄격한 순서를 밟지 않지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젓가락을 잡을 때에는 반드시 왼손을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종이에 싸여 있는 젓가락은 일단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빼낸 후 젓가락 받침 위에 걸쳐 놓는다. 받침이 없는 경우에는 젓가락을 쌌던 종이를 접어서 받침대로 이용한다. 받침이 있는 경우 종이껍질은 소반의 왼쪽 옆에 놓아둔다.○ 젓가락을 내려 놓을 때는 옆으로 가지런히 하여 젓가락 받침에 걸쳐 놓는다.○ 밥공기를 들 때에는 일단 젓가락을 내려 놓고 왼손으로 밥공기를 들고나서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집는다.
1. 도화원기1) 도연명 「도화원기」2) 중국에서의 도원도① 사사표 (부분)② 석도 3)우리나라의 도원도① 안견 ② 안중식 2. 어부사1) 굴원 「어부사」2) 어부도오진 이재관 3) 탁족도이경윤 4) 어초문답도이명욱 3. 추성부1) 구양수 「추성부」김홍도 1. 도화원기도원도는 동진의 도연명(陶淵明)이 「도화원기(桃花源記)」짓고부터 유명해진 고사산수화의 한 화제이다. ‘도원’은 중국에서 일찍부터 시인과 화가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도원도도 당, 송, 원, 명, 청에 걸쳐 많이 그려졌다. 당대의 오도자吳道子, 남송의 유송년劉松年, 원대의 전선錢選 ? 조맹부趙孟?, 명대의 심주沈周 ? 문징명文徵明, 청대의 석도石濤 등이 많이 그렸다. 그러나 청대 이전으로 올라가는 중국의 현존하는 도원도는 현재 알려져 있지 않다. ‘도원’이 한국에 언제 처음으로 알려졌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조선시대의 화가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가 가장 유명하다. 이후 이징李澄, 이하곤李夏坤, 강세황姜世晃, 이인문李寅文, 허련許鍊, 근대의 안중식安中植 등이 도원도를 그렸다.를 유형별로 분류해 보자면, 도연명의 「도화원기」의 문학적 내용을 충실하게 묘사해 간 ‘서술적 양식’과 도원의 입구인 동굴과 이상향의 평화로운 농촌풍경 등을 부분적으로 선택하여 그린 ‘선택적 형식’, 도원의 입구인 동굴의 이미지를 압축하여 표현한 ‘상징적 형식’의 작품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공사로 바쁘거나 세속의 세상사에 혐오를 느끼던 사인들에겐 도원이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는 이상향으로 여겨졌기 때문인지 각 시대의 예술인들은 저마다의 심미 이상 속에서 끊임없이 변천되고 재창조하며 도원을 그렸다.1) 도연명 「도화원기」)진나라 태원연간(376~396년)에 무릉 땅 사람 하나가 고기잡이로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강물을 따라 고기를 잡다가 길을 잃어, 얼마나 멀리 왔는지 알 수가 없는 중에 홀연히 복숭아 꽃나무 숲을 만났다. 냇물 양편 기슭은 수백 보나 되는데 다른 잡목은 없고 향기로운 풀만이, 명나라가 망한 뒤로는 과거를 포기하고 글씨와 그림에만 전념하였다.사사표는 예찬 ? 오진 ? 동기창 등의 화법을 배웠으며 산수화를 특히 잘 그렸다 한다. 사사표의 그림은 용필을 많이 하지 않아 먹을 아끼기를 금처럼 했고, 기운이 황량한 것이 일품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손일, 왕지서, 홍인과 함께 해양(海陽) 4대가라는 말을 들었다.그림 사사표, (부분),두루마리종이에 담채, 32.6*312.3cm, 넬슨갤러리선택굴원양식이면서 동시에 상징적 양식으로 그려진 이 「도원도」는 다른 화가들이 그린 도원도와는 달리 맑고 깨끗하고 단순한 점이 돋보인다. 또 인물이 보이지 않는 점도 그렇다. 화법에서도 먹물과 물감을 극도로 아껴 그려서 드맑게 그린 수채화 같은 느낌을 준다. ) 구름으로 묘사된 도원의 풍경은 몽환적이다. 바위 옆으로 인물 없이 보이는 배 한척이 환상적이면서 쓸쓸한 정감을 자아낸다. 이곳이 도원이라는 것을 옅은 색의 복숭아꽃으로만 확인시켜주며, 강렬함이 없는 여린 필선으로 바위와 산을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외로이 떠 있는 배 한척과 복숭아꽃은 다른 설명 없이도 도원을 보여주는 상징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엷은 연두빛을 띠고 있어서 맑고 담백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이다.② 석도 석도의 그림은 중국 회화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그림세계를 이룬 화가들 중의 하나이다. 그의 그림은 화구(畵具)는 물론 화면까지도 완전히 천생자연(天生自然)이라고 할 수 있다.그림 석도, , 1705, 두루마리 종이에 담채, 25 * 157.8cm,프리어갤러리이 는 75세 되는 해 도원시의 시의(詩意)에 맞춰 그린 것으로 석도의 만년작이다. 석도의 는 어떤 설명 없이 곧장 그 전설적인 계곡 안으로 들어가도록 표현된 선택적 양식을 취하고 있다. 그림에는 외딴 곳에서 밭가는 한 농부와 노를 가진 어부, 그리고 몇몇 주민이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거대한 산과 그것을 지나게 되는 장면은 전체 그림의 중간 부분에 가까운 지점이다. 그림에서 동굴은 볼 수 없으며 오직 어부의 배만을 부재했던 듯하다.그림 안견, , 1447, 두루마리 비단에 담채, 38.7* 106.5cm작품의 특징을 살펴보며 도연명의 와의 관련성을 알아보자.동양회화에서 횡권에 그림을 그리는 경우 그 그림의 내용이 우측에서 시작하여 좌측에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나 는 그 반대로 좌하단에서 시작하여 우측으로 펼쳐진다. 이것은 낙관도서가 우측 하단부에 위치하게 된 것을 설명해준다.이야기의 구체적 전개방향은 다음과 같다.두 갈래의 좁은 산길들이 좌하단의 코너 부근에서 갈라져서 두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나는 나지막한 야산을 끼고 돌아 사라지며 또 하나의 길은 기암절벽의 암산을 돌아 도원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좌하단의 코너 부분은 안평대군과 박팽년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에 이르러 어디로 갈지 몰라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산관야복 차림의 사람을 만나 도원이 있는 곳을 알게 되었던 바로 그 장소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이 작품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자연스러운 현실세계와 환상적인 도원의 세계가 그 모습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평상세계의 장면은 좌단부의 주산인 야산으로 표시되고 있는 반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도원은 기괴한 암산으로 점유되어 있어서 꿈속의 풍경을 잘 나타내고 있다. 평상세계의 산들은 부드럽고 원만하며 산등성이엔 바늘을 세워놓은 듯한 침형세수(針形細樹)들이 늘어서 있다. 원거리로 물러서면서 차차 산의 높이가 점증되고 있는가 하면, 꼬불거리는 길가를 따라 서 있는 복숭아나무며 먼 산의 밑을 감싸는 안개, 그리고 얕고 조용한 냇물 등 현실세계의 이런 모든 것들이 향수에 젖은 봄의 분위기를 물씬 자아낸다.좌하단부의 두 번째 길을 따라서 도원으로의 여로는 출발되는데, 이 길은 암산들의 허리를 끼고 돌아서 마귀의 끊어진 팔목을 연상시키는 산의 터널을 통해 사라졌다가 세 갈래의 폭포 옆의 산 틈바구니에 다시 나타난다. 이 세 갈래의 폭포 옆에 나타나는 좁은 산길은 바로 도원으로 연결되는 산속의 작은 구멍을 나타내며, 도연명의 「도화원기와 배를 작게 묘사된 어부의 표현, 거대한 기암절벽의 산곡이 묘사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이 그림은 그의 일생 중에서 말년인 1913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인생의 역정 속에 남은 수많은 회한을 잊고 무릉도원으로 가고자 하는 자신의 바램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한다. 강어귀의 나룻배 안에서 노를 젓는 인물은 아마도 안중식의 자화상일 것이다.)이번 과제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중국과 한국의 도원도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2. 어부사1) 굴원 「어부사」이상과 현실의 엄청난 사이에 고뇌하는 사람에게 세속에 오염되지 않고도 세속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 하겠다.굴원이 죄없이 쫓겨나, 상강(湘江)의 물가를 거닐며 시를 읋조리고 있었다. 시름 때문에 안색은 파리했으며, 몸은 마른 나무처럼 수척했다. 한 어부가 다가와 굴원에게 말했다.“그대는 초나라의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니신가? 어찌하여 이곳에 오게 되셨소?”굴원이 대답했다.“세상이 온통 이욕(利欲)에 눈이 어두워 흐려 있는데 나 혼자 맑았기에, 뭇사람이 다 취해있는데 나 혼자 깨어 있었기에, 이렇게 쫓겨나게 되었다오”어부가 말했다“성인은 세상의 물에 구애받지 않고,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대로, 시세에 따라 자유로이 옮아 거기니! 세상 사람 모두가 흐려 있거든, 결백한 지조 따위 안으로 감추고, 어째서 그들 따라 함께 출렁이지 못하는가. 뭇사람 모두가 이욕에 마음 취해 있거든, 안취했어도 취한척, 어째서 지게미씹고 밑 술 들이마시지 못하는가. 깊은 생각 높은 지조 어이 내세워 그 몸을 그 지경으로 만든단 말인가!”굴월이 말했다.“나는 들었소.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갓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사람은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어찌 이토록 깨끗한 몸에다 그 더럽고 욕된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이오. 차라리 상수에 몸을 던져 고기의 뱃속에다 장사지낼망정, 희고 맑은 이내 몸이 어찌 세속의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소!”어부는 빙그레 웃고 뱃전을 두드려 장단 맞춰 노래하며 무렵부터 등장하였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를 중심으로 다소 그려졌다. )그림 전 이경윤, , 고려대학교박물관이경윤 그림 전 이경윤, , 16세기 말엽, 지본담채, 27.8*19.1cm, 국립중앙박물관의 畵本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그림이 청대에 간행된 『개자원화보』의 인물옥우人物屋宇 조에 수록되어 있다. 어부 모습을 한 사람이 삿갓을 쓰고 바위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꼰 채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그와 관련된 “강호만지일어옹 江湖滿地一漁翁”이라는 설명문이 붙어 있다. 이경윤의 의 주인공도 이 화본의 인물처럼 두 다리를 꼰 채 오른쪽 발바닥을 위로 제치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탁족의 자세는 거의 정형화되어 그림에 나타나고 있다.)이경윤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작품은 여러 점 남아 있는데 한 점도 그 자신의 관서가 쓰여 있거나 도인이 찍혀 있지 않아 진작으로 단정 지을 만한 것이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으로 전칭되고 있는 그림은 예외없이 절파계 화풍으로 그려져 있어 절파계 화풍에 전념했던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위의 두 에서 역시 소경산수인물화로 그려져 있으며 흑백대조가 뚜렷한 표면처리, 나무의 묘사방법, 윤곽선보다 묵법위주의 표현이 절파화풍의 영향이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는 갈색과 청색을 섞어 사용한 담채임에도 많은 색이 사용된 듯 한 느낌이 든다.4) 어초문답도어초문답도는 어부와 초부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고기를 잡고 나무를 베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인물로서의 어초가 아니라 세속을 떠나 생활하는 인물을 어초로서 상징하여 표현한 것이다. 이들은 자연을 벗하여 유유자적한 삶을 보낸다는 공통점으로 문학작품이나 회화를 통하여 세속을 떠난 인물로서 함께 묘사되곤 하였던 것 같다.어초문답도의 초부는 굴원의 「어부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은둔자로서 표현되는 어부라는 점과 묻고 답하는 설정으로 이번 과제에서 간략하게 다루어 보려 한다.이명욱 이명욱의 는 현재 남아있는 그.
일본의 술문화Ⅰ. 술의 유래에 관한 전설ⅰ. 새에 관한 전설일본의 천지천황(天智天皇)때 국부토군에 사는 죽유(竹臾)라는 사람이 대나무를 많이 가꾸고 있었는데. 어느 날 대를 벤 그루터기에서 이상한 향기가 나서 자세히 살펴보니 새들이 쌀을 물어다가 그곳에 넣으니 그것이 발효되어 술이 되었다한다. 그래서 주(酒)자는 삼수변에 유(酉; 일본에의 훈독으로 새라는 뜻)자를 쓴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유자는 술항아리를 뜻하는 상형문자로 풀이되고 있다.ⅱ. 미잔오존의 전설일본의 『대화사시(大和事時)』에 의하면 신화시대의 인물인 미잔오존(未盞嗚尊)이 신라 국으로 가서 술 빚는 방법을 배워 왔다고 한다.ⅲ. 수수거리의 전설고사기의 중권 「응신천황조應神天皇朝」편을 살펴보면 수수거리(백제인)란 기술자가 일본에 가서 술을 빚어 응신천황(應神天皇)에게 바쳤더니 왕이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 노래를 불렀다고 전한다.Ⅱ. 술의 상징적 의미인간은 술을 신과 교류를 하는 매개체로 특별한 날 도취음료로 사용하였다. 요즘처럼 일상적으로 술을 마시는 습관이 생겨난 것은 메이지 시대 이후이다.)‘마츠리’는 신에 대한 제사이다. 이때는 종교적인 의식과 함께 으레 떠들고 노는 유희적 요소가 동시에 존재한다. 제사가 끝난 다음 참가들이 신에게 바쳤던 술과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을 일본에서는 直?(なおらい)라고 한다. 그 이후 ‘부레이코’라 하여 신분의 상하귀천 구분없이 예의도 무시하고 마시며 즐겼다. 다시 말하자면, 술을 통해 기존 질서를 모두 무너뜨리고 그 순간 만큼은 평등하게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처음부터 술을 마신 후에 제사를 올리는 일도 있다. 이 때 마시는 술을 淸酒(きよめざけ)라 하는데, 이는 더럽고 부정한 것을 제거하는 술이라는 의미로 일종의 목욕재계와 같은 의미이다.이와 같이 술은 신과 인간이 융합하려는, 서로 이질적인 것을 하나 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Ⅲ. 일본에서의 술 종류ⅰ. 청주○ 주식인 쌀을 양조해서 만드는 청주는 일본의 전통적인 술로등급이 있어 일반주, 보통주와 고급주로 나뉜다. 고급주는 전체 유통량의 25%에 불과하며 혼조조 本釀造’ ‘준마이 純米 ‘긴조 吟釀 의 순으로 등급이 높아진다. 레이슈(冷酒)로는 혼조조 이상의 고급품이 적합한 반면 따끈하게 데워 아츠캉으로 마실 때는 보통주가 오히려 제 맛이 난다.○ 일본술에는 각 지방마다 그 지방 고유의 술이 있는데 이를 地酒(じざけ)라 부르고 있다. 그 종류는 다양하며 각각의 특색을 갖고 있다. 일본에는 각 가정에서 제조하는 소량의 술들을 브랜드화해서 주점마다 대표하는 술이 있을 정도로 개인이 독점하는 술이 많은데, 미묘한 맛의 차이와 전성을 느낄 수 있다.ⅱ. 맥주○ 니혼슈, 와인, 위스키 등 맥주 이외의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도 처음에는 맥주 한 잔으로 술자리를 시작할 정도로 일본인은 맥주를 즐겨 마신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맥주를 마시지 않는 이들은 불과 26%에 지나지 않으며 이런 맥주와 발포주로부터 나오는 세금은 주세의 약 72%를 차지할 정도로 일본의 맥주 시장은 아주 크다.○ 일본사람들이 맥주를 처음 마시게 된 것은 1724년 네덜란드의 상선사절단이 에도에 들어올 때 진상한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그 후 에도시대에 네덜란드 의술을 공부한 가와모토가 자택에서 맥주를 만들었고 이것이 일본 최초의 맥주라고 전해진다. 메이지 시대 문명개화의 영향을 받아 맥주는 일본의 상류층에 인기를 끌면서 한 때는 일본 내에 100여 개의 맥주 회사가 설립되었지만 1900년에 북청대변이 일어나면서 군비증강을 목적으로 맥주에 과세가 부과되기 시작하자 자금력이 약한 중소회사들은 도태되었고 지금의 일본 맥주업계의 체제가 만들어졌다. 그 후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으로 맥주 제조의 관문이 넓어지면서 지방산 맥주가 양조되어 향토 맥주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본의 맥주는 100㎖부터 3000㎖까지 다양한 용량으로 나온다. 일본에서의 생맥주는 더욱 철저한 위생관리를 필요로 하고 또한 그렇게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값이 더 비싸다.※ 일본 맥주의 특징① 아. 일본의 편의점에 가보면 발포주가 맥주 종류보다 훨씬 많다. 2004년 조사에 의하면 일본 국민 중 발포주를 선호하는 사람(35%)이 맥주를 선호하는 사람(23%)보다 많았다.ⅲ. 위스키○ 일본에서 위스키가 일반에 보급된 것은 1960년대 전후부터이다.○ 일본에서는 양주에 반드시 얼음과 물 또는 기타 음료수를 섞어 마신다. 물론 음료수나 물은 마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서 선택한다. 물을 넣으면 미즈와리(水割), 우롱차를 넣으면 우롱차와리, 콜라를 넣으면 콜라와리가 된다. 가장 보편적인 것이 미즈와리이다.○ 국산위스키와 수입위스키의 가격은 마시는 곳의 타입에 따라 매우 다르다. 보통 국산위스키 한 잔은 500-700엔 정도이며, 수입위스키는 600-800엔 정도이다.ⅳ. 와인1990년대 중반 일본에는 하다못해 포장마차에서도 이자카야에서도 와인을 마셨을 정도로 포도주 붐이 일어났었다. 현재도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와인을 수입하는 나라로 조그만 백화점 매장에 소믈리에가 있을 정도이다.ⅴ. 소주소주는 고구마, 밀, 수수 등의 재료로 만들어지는 술로서 보드카와 비슷하다. 일본인들은 얼음을 넣어서, 혹은 칵테일로 해서 마신다. 한때는 찾는 사람이 적었으나 근래에는 젊은층 사이에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다. 시중의 호평을 얻고 있는 제품일수록 사람들이 싫어하는 강한 향미를 피하여 부드럽고 순하다. 거의 모든 일본식 술집에서 판매하고 있다.ⅵ. 주류 소비 동향일본의 주류 과세 수량을 기준으로 한 경향을 보면 청주, 맥주, 위스키류가 줄어든 반면, 소주와 발포주를 중심으로 한 잡주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일본의 전통주인 청주가 퇴조하고 소주가 약진하는 이유는 소주의 경우 칵테일 등 마시는 방법을 다양하게 달리할 수 있어 특히 젊은 층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반면, 청주의 경우 같은 알콜 도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며 장기불황에 따른 소비자의 저가품 선호, 이튿날의 숙취 등 건강에 나쁜 이미지 등으로 소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는 곳이기도 하다. 문 앞에 빨간등(아카초칭赤提燈)을 내걸어서 눈에 잘 띈다.○ 아무리 규모가 작은 술집이라 하더라도 병맥주, 생맥주, 청주, 소주, 화인 등 다양한 술의 종류와 30여 가지 이상의 일본 음식들을 만날 수 있다. 이자카야 음식은 작은 접시에 한두 점 올려져 나오는 게 보통이며 음식들의 값은 장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나 대략 한 품목당 대략 300엔부터 500~600엔 사이로 비슷하며 세일 기간 (술집에 따라 기간을 정하여 30%~60% 세일을 함)을 이용하면 매우 유리하다.ⅱ. 스낙쿠 スナック○ 중소형 도시 및 동경의 한적한 곳에서 발견되는 조용한 중·장년층 전문의 선술집형으로 보통 가라오케와 술집을 믹싱한 업소이다. 스나쿠는 간이식당을 의미하는 영어 스낵 바(snack bar) 에서 따온 말인 듯 하다. 그러나 일본의 스나쿠는 음식을 주로 먹는 식당이라기보다는 간이 술집이 더 어울린다. 우리나라의 룸싸롱과 비교할 때 시스템은 동일하지만 주로 생활사의 이야기나 인생이야기 등으로 위로 받을 수 있는, 말하자면 술+여자+대화를 할 수 있는 장소로써의 특징이 강하다.○ 그리 넓지 않은 넓이에 대개는 카운터가 있고 그 안에는 '마마'나 '마스타'라 불리는 주인이 있어 술과 간단한 안주 서비스를 하게 되어 있다. 비교적 중하위층이 애용하고 있으며 독신자들이 주요 단골손님으로 분포하고 있다.ⅲ 그라브 クラブ○ 일본의 그라브는 우리나라의 룸사롱과 단란주점을 합쳐놓은 듯 하다. 단란주점처럼 오픈된 공간에서 술을 마시며 무대 혹은 자리에서 노래도 할 수 있으며 미녀와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 일본의 그라브이다.○ 우리나라의 단란주점이 지하에 많은 것에 비해 일본의 스낙쿠와 클럽들은 대부분이 건물의 2층 이상에 자리하고 있다. 또 환락가에는 7~8층짜리 한 건물 전체가 술집으로 채워진 곳들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접대하는 여성들이 테이블이나 특정 손님에 고정되지 않고 10분~20분 단위로 순환을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술을 마시는 남자들도 준다. 그릇도 조그마한 데다가 양도 적어 한 입에 먹어버릴 정도, 이것은 주문한 요리가 나올 때까지 술을 즐기는 손님의 입을 심심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죽순두부, 달걀두부 해삼, 생선, 미역 등이 있다. 술을 주문했을 때에만 나오는데 계산할 때 기본요금(300~500엔 정도)이 약간 가산된다.ⅱ. 오뎅おでん'오뎅'은 곤약, 생선묵, 묵, 유부 따위를 여러 개씩 꼬챙이에 꿰어, 끓는 장국에 넣어 익힌 일본식 술안주를 가리킨다. 이것은 주로 일식집이나 선술집의 술안주로 쓰이는데 요즘은 길거리에서 파는 간식으로도 제법 인기가 있다.ⅲ. 지리ちり도미, 대구, 아귀?안강, 복어 등의 흰살생선白身の魚에 두부나 떫은맛이 적은 채소 ? 다시마 등으로 국물 맛을 낸 뜨거운 물에 익혀, 자즙(ポン酢), 간장 등으로 만든 양념에 찍어 먹는 냄비요리이다.ⅳ. 사시미 さしみ일본에서는 일찍부터 어패류 먹는 방법이 풍미나 촉감이 각기 다른 요리로 발달하였다. 조리법도 다양하여, 비스듬히 포를 뜬 것, 흰살생선을 써는 곤부시메쓰쿠리(소금을 뿌리고 다시마에 싸서 써는 조리법), 생선을 썰어 얼음물에 씻어 지방을 뺀 것 등 다양하다.ⅴ. 장어요리 うなぎ바다장어에 다레를 묻혀가면서 숯불에 서서히 익힌 것으로 고급 술 안주이다.ⅵ. 일본식 전골요리 もつなべ모츠나베는 우리의 전골요리와 비슷하나 얼큰함이 없는 일본식의 고소함이 특징이다.Ⅵ. 일본의 음주문화ⅰ. 술잔돌리기○ 일본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면 자작自酌을 하는 것이 보통이고, 권하더라도 각자의 잔에 술을 따르는 것이 예의이다. 초면일 경우 한국식에 따라 친근감의 표시로 자기가 마신 잔을 상대에게 권하면 대부분의 사람으로부터 슬그머니 거절당하고 말 것이다. '술은 주고받아야 하고 잔은 돌려야 제 맛‘이라는 우리와는 달리 술잔 돌리는 것을 대단히 비위생적이라는 것이 일본인들의 사고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술잔을 주고 받는 수작(酬酌)의 풍습이 드물게 발견된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는 발견되지 않지만 시골에 가면 얼마든지 목격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