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1989). 위대한 학문과 짧은 생애. 서울: 아카데미서적.위대한 학문과 짧은 생애◆ 내용 및 줄거리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여러 가지 특징과 미덕 중 ‘노력’이란 분야에서 온몸을 내던져 학문에 몰두한 나비박사 석주명은 1908년 11월 13일 평안남도 평양의 대동문 근처 이문리에서 아버지 석승서와 어머니 김의식 사이에 3남 1녀 중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석주명이 태어난 1908년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긴 지 3년 뒤, 경술국치로 나라를 완전히 잃기 2년 전인 어수선한 때였다. 석주명은 여섯 살 되던 해에 서당에 들어가 한문을 배우고 열 살이 되어야만 입학할 수 있는 보통학교에 나이를 속이고 입학했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의 숭실 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숭실고보를 중도 하차한 뒤 송도 고등 보통학교로 전학한 석주명은 처음에는 학업에 소홀했다. 그러나 낙제 수준의 성적표를 받은 후의 석주명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세상에 사내가 오죽 못났으면 낙제를 했겠느냐고 수없이 자책을 한 그날 밤 이후 낙제생에서 일약 우등생으로 탈바꿈한 석주명은 1926년 송도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손꼽히는 농업 전문학교인 가고시마 고등 농림학교에 유일한 조선인 학생으로 유학길을 떠나게 된다.처음 가고시마에 도착할 때만 해도 낙농가로서 조국의 농촌을 살찌울 생각이었던 석주명은 학교생활을 하면서 나비 연구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나비만을 전문으로 파고드는 나비 학자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의 학문 방향이 전문적인 나비 연구로 결정된 것은,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은사 오카지마 교수와의 의논 끝에 이루어진 결과이다. 오카지마 교수는 석주명에게 진정한 학자의 명예는 그 사람이 남긴 학문의 업적뿐 이라며 십 년만 죽어라고 하면 틀림없이 조선 나비에 관한 한 세계적인 학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설득했다. 결국 석주명은 십 년 동안 한눈팔지 않고 조선 나비를 연구하기로 결심한다.석주명은 언제나 명랑하고 소탈했으나 강직한 성격 탓으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절대 굽히지 않았다. 또한 돈도 생기지 않는 학문이 어려운 시대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믿으며 훌륭한 업적을 남기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다. 그는 엄청난 채집량에 의존하는 이른바 ‘석주명식 분류학 연구’를 했는데, 가능한 한 많이 채집하고 측정하여 분류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마저 아까워할 만큼의 지독한 학구열을 발휘했으며, 주어진 시간을 빈틈없이 활용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가장 고지식하긴 하지만 가장 과학적인 통계를 이용한 그의 연구방법은 그를 국제적인 나비 연구의 권위자로 만들었다. “나는 단 한 줄의 논문을 쓰기 위해 3만 마리의 나비를 만졌다.”는 말은 그가 들인 노력과 시간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석주명은 남다른 집념과 연구 방법으로 일본 학자들에게 30년이나 선수를 빼앗겼던 나비 학문 분야를 오히려 일본 본토보다 먼저 자세히 구명하였다.석주명을 세계적인 나비 학자로 만든 힘은 ‘실증적인 연구 자세’를 뒷받침해 준 ‘연구 자료의 풍족함’에서 비롯되었으며, 75만 마리에 달하는 연구 자료는 그의 쉼 없는 채집 여행 덕분에 얻어진 대가였다. 그는 연구실에서 문헌과 소수의 표본으로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하는 경솔한 태도를 배척하고 평생을 산과 들에서 보냈다. 채집 여행에서 돌아오면 밤낮없이 파묻혀 그것들을 조사하고, 그 일이 끝나면 또 채집 여행을 떠났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나비뿐이었고, 남이 자기를 어떤 눈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학자로서의 석주명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으나 평범한 가정생활의 행복은 누리지 못했다. 한 번의 사별과 한 번의 이혼을 겪은 그는 가정에는 무심한 남편이자 가장이었다. 그의 머릿속은 오통 ‘일’로만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인간적인 불행은 고집이 세고 오로지 학문 탐구밖에는 모르고 자신의 학문에 절대가치를 부여하고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던 데에서 기인했다고 보여 진다. 당시대의 한 획을 그었던 석주명은 6 ·25가 발발했던 1950년 42세의 나이로 술에 취한 청년들에 의한 피격으로 사망하였다.◆ 분석 및 논의나비박사 석주명의 삶은 저자의 표현처럼 학문에 있어서의 ‘노력’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 인간이 한 분야에 투자할 수 있는 열정의 한계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석주명은 안일하게 살아가는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가히 일침을 가한다. 한 분야에 획을 긋는 존재가 되기 위해 걸어가야 할 삶이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쯤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더 많이 보다 더 깊이 학문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 중 ‘끈기’와 ‘노력’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없다.소위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의 삶은 누가 봐도 부럽고 매력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결론짓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노력하는 이의 삶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갑남을녀에게 있어 누군가의 ‘존경’을 받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면, 아니 적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면 ‘노력’을 배제한 체 해답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Gladwell, M. (2009). 아웃라이어. (노정태 역). 경기 : 김영사. (원전은 2008에 출판)아웃라이어◆ 내용 및 줄거리본 책은 과학자들이 아웃라이어라고 부르는, 보통사람의 범위를 뛰어넘는 이들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말콤 글래드웰은 우리 주변에 사는 기술 좋고 재능이 뛰어나며 추진력 있는 특별한 사람들을 검토하면서 '우리가 성공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전부 틀렸다'고 말한다.유명인사의 자서전은 늘 똑같은 이야기로 전개된다. 초라한 환경에서 태어나 치열한 노력과 재능 계발을 통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고 영웅으로 거듭났다는 얘기가 마치 어떤 법칙에 따르듯 그려진다. 이것은 우리가 성공을 얼마나 개인적인 입장에서 판단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는다. 숨겨진 이점과 특별한 기회, 그리고 문화적 유산의 혜택이라는 요소들이 그들로 하여금 다른 이들과 달리 열심히 배우고 일하고 세상을 바라보도록 해준다.미래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기회를 얻어낸 사람이 성공을 거둔다.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낳는 기회로 이어지고, 그것은 또 다른 기회로 이어져 결국 그 그들은 천재적 아웃라이어로 거듭나게 된다. 처음부터 아웃라이어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이 남보다 다를 뿐이다. 사람들은 흔히 열정, 재능, 그리고 노력을 성공의 기본적인 요소라고 부른다. 하지만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중의 하나는 가장 적합한 시기에 태어나는 것이다. 아웃라이어들이 특정분야에서 능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 기회, 결정적인 장점을 조합해 높은 위치에 도달한다.실력 차이는 그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느냐에 달려있다. 사실 연구자들은 진정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매직넘버'에 수긍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1만 시간이다. 신경과학자인 다니엘 레비티은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 수준의 전문가, 마스터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연습은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습 외에 성공한 이들의 역사를 구분 짓는 진정한 요소는 그들이 지닌 탁월한 재능이 아니라 그들이 누린 특별한 기회이다. 모든 아웃라이어는 평범하지 않은 기회를 누렸다. 빌게이츠, 비틀즈, 유명한 하키선수 들은 평범하지 않은 행운을 통해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다른 이들보다 더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태어난 시기가 얼마나 적절했는가도 아웃라이어들이 어떻게 성공했는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혼자서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의 성공은 특정한 장소와 환경의 산물이다. 아웃라이어에게는 매장되는 것도 오히려 황금 같은 기회로 이어지곤 한다. 아웃라이어들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겠다는 희망 없이 앞날이 뚜렷하지 않은 분야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분야에서 붐이 일어났고, 그들은 이미 1만 시간의 훈련을 치른 다음이었다. 역경 속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그것이 기회가 되어 준 셈이다.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의지, 스스로를 책임지려는 자세, 그리고 교육받고자 하는 열의가 중요하다.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기회가 늘 우리 자신이나 부모에게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로부터 온다.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의 특별한 기회에서 오는 것이다. 성공은 환경과 기회의 강력한 조합으로부터 예측 가능한 형태로 떠오른다.문화적 유산의 힘은 강력하며 뿌리 깊게 박혀 있어 오래도록 지속된다. 또한 문화적 유산은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것은 물론 그것을 탄생시킨 경제적, 사회적 배경이 소멸된 이후에도 살아남는다. 나아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결정함으로써 우리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한다. 우리는 각각 고유한 인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우리가 성장해온 공동체의 문화적 환경을 통해 영향을 받은 것이 있으며, 그 차이는 놀라울 만큼 두드러진다. 개인은 그가 속한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비행기 조종을 잘하는 것, 수학을 잘하는 것 등은 그가 속한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가장 똑똑한 사람이 성공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성공이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결정과 노력의 산물로만 이뤄진 것도 아니다. 성공은 주어지는 것이다. IQ가 높다고 무조건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특별한 재능을 타고났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재능은 성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재능을 완전히 꽃피우기 위해서는, 기회와 노력과 행운이 모두 필요하다.개인은 결국 '사회'라는 문화적 테두리 안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다. 각 문화요소가 오래 전부터 이어온 생활방식에서 기인했으며 산업화와 문명화를 거처 그 형태가 변모했거나 첨삭되기는 했으나, 결국은 그대로 존속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문화적 유산의 힘은 강력하며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모두 가지고 있다.◆ 분석 및 논의아웃라이어는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을 뜻한다. 말콤 글래드웰은 '특별한 기회'와 '역사문화적 유산'의 두 측면에서 상위 1%의 성공비결을 분석하고 있다. 아웃라이어들의 특징은 1만 시간 이상의 연습을 기본으로 적절한 시기와 가정환경, 문화적 배경, 우연한 기회, 새로운 도전 등을 예로 들어 설명되어 진다.기존에 성공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이 책을 읽으면서 사실 많이 무너졌다. 천재성, 꾸준한 노력 이 두 가지가 성공에 있어서 가장 큰 요인들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말콤 글래드웰은 특별한 기회와 문화적 환경을 성공의 요인으로 호소력 짙은 문장으로 풀어나간다. 물론 노력이나 탁월한 능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게 해준 것 자체만으로도 이 책은 신선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념과도 같은 법칙을 깼다고 해야 할까.하지만 나는 이 책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논의를 하고 싶은데, '성공'이라고 하는 개념에 대한 정의에 관하여 이야기 하고 싶다. 저자는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을 이분법적인 사고로 분리시킨다. 예를 들어 머리가 좋은 사람이 목축을 한다거나 상위 1%에 들지 못하면 실패한 삶으로 간주하는 식이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성공이 무엇인가에 관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의 이분법적인 사고는 책을 읽는 내내 눈엣가시처럼 느껴졌다.
Hironaka. H. (1992). 학문의 즐거움. (방승양 역). 경기: 김영사.학문의 즐거움◆ 내용 및 줄거리사람이 고생해서 배우고,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 이유는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배우는 과정에서 지혜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 만들어진다. 무엇을 생각하든지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가 뜻있고 가치가 있다. 공부를 하면 지혜가 만들어지고 이 지혜가 만들어지는 한 공부한 것을 잊어버린다 하더라도 그 가치는 여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많이 배우고 많이 잊어버리고, 다시 많이 배워야한다.인생에는 깊이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 사고력을 키우는 것은 공부를 하는 목적 중의 하나이다. ‘지혜의 깊이’는 공부를 통해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지혜에는 보이지 않는 힘, ‘결단력’이 있다. 결단할 수 있는 힘, 어느 순간에 비약할 수 있는 힘은 인생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공부하는 가운데서 키워진다.배움에 있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1백 40억 개나 되는 뇌세포 중에서 보통 10퍼센트, 많아야 20퍼센트밖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잠자고 있는 세포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또 그것이 보통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의 방법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부단히 무엇인가를 배우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그 배우고 노력한 것이 인생을 만들어간다.창조만큼 사람에게 확실한 만족감을 주는 것은 없다. 창조에는 배우는 것 이상의 고통이 따르지만 그만큼 기쁨도 커진다. 하지만 배우는 단계에서 창조의 단계로 비약하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하다. 그 계기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그것을 잡느냐 놓치느냐는 그 사람이 창조라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고민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좋은 것을 창조하려는 사람은 어느 정도 체념할 줄도 알아야 한다. 체념한다고 해서 모두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목표를 확실히 잡으면서 포기하는 것이다. 사람은 성공을 경험함으로써 자칫하면 소박한 마음을 잃어버리기 쉬운데 소박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창조의 기반이다. 실패를 통하여 터득한 노하우를 통해, 보다 좋은 창조에 도전해야 한다.학문을 하는 데 있어 또 한 가지 대단히 중요한 것이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 목표는 그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되어 일을 하게하고 발전, 진보시킨다. 그러나 쉽게 없어지는 목표가 아닌, 대학에 들어가고, 실제 사회에 나가서도 퇴색하지 않을 목표가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 자기 자신의 목표를 가져야 한다. 목표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목표를 향하여 밀고 나가는 에너지가 보다 중요하다.우리는 잠자고 있는 거대한 뇌세포에 숨어 있는 자기 재능이나 자질을 스스로 알아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미지의 자기를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창조도 사실은 자기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발견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행동이다. 창조하는 기쁨의 하나는 새로운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학자는 자기 학문만을 연구하면 안 된다. 자기 학문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학문이나 경제 정세나 사회 현상 등과 관련시키는 다양성에 입각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가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인간은 각자 개성을 가지며 다양한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학구적인 시야로 학문을 전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의 ‘학문의 발견’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분석 및 논의히로나카 헤이스케(이하 히로나카)의 삶에 있어서 학문은 책 제목처럼 ‘즐거움’이 있다. 여타 학문가들의 삶도 즐김 또한 한 몫하고 있겠으나 히로나카는 왠지 여유가 묻어난 즐거움이 느껴진다. 지식과 지혜는 어감부터가 다르다. 지식이 전문서적의 느낌이라면 지혜는 수필 같은 느낌이다. 삶에서 우러나오는 현명함이라 해야할까. 둘 중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누구나 ‘지혜’를 얻고 싶어 할 것이다. 배우는 과정이 ‘지혜’를 얻기 위함이라는 말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히로나카는 지혜 외에도 ‘노력’, ‘창조’, ‘욕망’, ‘체념’, ‘목표’ 등이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단순히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이러한 개념들 외에도 중요한 것들이 수없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노력하고 창조하고 욕망을 갖고 적절히 체념하고 올바른 목표를 갖는 것은 약간의 과장을 보태어 숨 쉬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들 외에도 그가 따로 강조한 것은 아니나 배움에 있어서 스승의 개념을 따로 설정하지 않고 주변의 어느 누구라도 배울 점이 있다고 여기고 함부로 대하지 않은 그의 모습을 통해 ‘겸손’의 자세를 볼 수 있었다. 물론 훌륭한 학자에게서 수학하는 것은 따로 언급할 여지가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식의 정도로 누군가를 가늠하지 않고 배울 수 있는 점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가짐은 본받아야 할 점이다.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있어 ‘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혜’를 쌓을 수 있기에 두려워하지 말고 많이 배우고 많이 잊고 또 많이 배우라는 히로나카의 이야기는 독자를 ‘안심’할 수 있게 해 준다. 반대로 자기 학문만을 연구하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고 다양해지는 세상을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 융통성 있는 학문이 필요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것저것 손대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다는 한 우물이라도 제대로 파는 것이 낫지만 어느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다른 분야와 접목해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1. 신흠(申欽)에 대하여1566(명종 21)∼1628(인조 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숙(敬叔), 호는 현헌(玄軒)·상촌(象村)·현옹(玄翁)·방옹(放翁). 증판서 세경(世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참찬 영(瑛)이고, 아버지는 개성도사 승서(承緖)이다. 어머니는 은진 송씨(恩津宋氏)로 기수(麒壽)의 딸이다.송인수와 이제민(李濟民)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1585년(선조 18) 진사시와 생원시에 차례로 합격하고 1586년 승사랑(承仕郎)으로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러나 1583년에 외숙인 송응개(宋應漑)가 이이(李珥)를 비판하는 탄핵문을 보고 “이이는 사림(士林)의 중망을 받는 인물이니 심하게 비난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하였다.이 일로 당시 정권을 장악한 동인으로부터 이이의 당여(黨與 : 정치적인 견해를 같이하는 집단 또는 사람)라는 배척을 받아 겨우 종9품직인 성균관학유에 제수되었다. 그 뒤 곧 경원훈도(慶源訓導)로 나갔으며 광주훈도(廣州訓導)를 거쳐 사재감참봉이 되었다.1589년 춘추관 관원에 뽑히면서 예문관봉교·사헌부감찰·병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의 발발과 함께 동인의 배척으로 양재도찰방(良才道察訪)에 좌천되었으나 전란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삼도순변사(三道巡邊使) 신립(申砬)을 따라 조령전투에 참가하였다. 이어 도체찰사(都體察使) 정철(鄭澈)의 종사관으로 활약했으며, 그 공로로 지평(持平)에 승진되었다.1593년 이조좌랑에 체직, 당시 폭주하는 대명외교문서 제작의 필요와 함께 지제교(知製敎)·승문원교감을 겸대하였다. 1594년 이조정랑으로서 역적 송유진(宋儒眞)의 옥사를 다스리고 그 공로로 가자되면서 사복시첨정으로 승진했으며, 곧 집의(執義)에 초수(超授 : 뛰어넘어 제수됨)되었다. 같은 해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청하는 주청사 윤근수(尹根壽)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그 공로로 군기시정에 제수되었다.1595년 함경도어사와 의정부사인을 거쳐 장악원정(掌樂院正)·성균관사예(成均館詞)의 폐비 및 이와 관련된 김제남(金悌男)에의 가죄(加罪 : 죄를 더함)와 함께 다시 논죄된 뒤 춘천에 유배되었으며 1621년에 사면되었다.1623년(인조 즉위년) 3월 인조의 즉위와 함께 이조판서 겸 예문관·홍문관의 대제학에 중용되었다. 같은 해 7월에 우의정에 발탁되었으며,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좌의정으로서 세자를 수행하고 전주에 피난했으며, 같은 해 9월 영의정에 올랐다가 죽었다.일찍이 부모를 여의었으나 학문에 전념, 벼슬하기 전부터 이미 문명을 떨쳤다. 벼슬에 나가서는 서인인 이이와 정철을 옹호하여 동인의 배척을 받았으나, 장중하고 간결한 성품과 뛰어난 문장으로 선조의 신망을 받으면서 항상 문한직(文翰職)을 겸대하고 대명외교문서의 제작, 시문의 정리, 각종 의례문서의 제작에 참여하는 등 문운의 진흥에 크게 기여하였다.또한, 사림의 신망을 받음은 물론, 이정구(李廷龜)·장유(張維)·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 한문학의 정종(正宗 : 바른 종통) 또는 월상계택(月象谿澤 : 月沙 이정구, 象村 신흠, 谿谷 장유, 澤堂 이식을 일컬음)으로 칭송되었다. 묘는 경기도 광주군에 있다. 1651년(효종 2) 인조묘정에 배향되었고, 강원도 춘천의 도포서원(道浦書院)에 제향되었다.저서 및 편서로 ≪상촌집≫·≪야언 野言≫ 등과 〈현헌선생화도시 玄軒先生和陶詩〉·〈낙민루기 樂民樓記〉·〈고려태사장절신공충렬비문 高麗太師壯節申公忠烈碑文〉·〈황화집령 皇華集令〉 등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2. 신흠 시조의 특징신흠의 시조는 전체적으로 맑고 고운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질은 이미지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시조 언어가 잘 다음어지고 단정한 멋을 가지고 있는 데서 오는 자연스런 느낌이다.신흠의 시조가 가지고 있는 언어 형식상의 특질을 살펴보면, 그의 시조에서 이와 관련하여 하나의 중요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풍아(風雅) 취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풍아는 좁게는 악부시를, 넓게는 시경시까지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풍아는 중세인들이 전통적으로 노래로 인색해 있다. 신흠의 시조들은 내침을 당한 여인의 정서와는 전혀 달리, 멀리 떠나간 님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고독한 여인의 정서라든가, 님을 떠나보내는 여인의 정서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여인의 정서는 그 그리움과 함께 자연과 인간 사이의 격리감, 시간의 추이감, 인생의 무상감과 같은 짙은 감상적 정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짧고 무상한 인생이 왜 이렇게도 많은 생리사별과 슬픔, 불행으로 가득 차 있는가라는, 인생에 대한 애상, 비애가 동시에 스며있기도 한다고 한다.신흠의 시조 중 한식 시조는 적절한 시기에 적당함을 드러내 보이는 자연과 그렇지 못하는 인간사, 자연처럼 모두가 기쁨에 차야 할 이날에 그렇지 못하는 나 사이의 격리감, 그리고 지난번도 그러했듯이 이 봄도 스치듯 지나가 버리고 말 것이라는 무상감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석류꽃 시조는 석류화에 대한 응시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것은 덧없음을 잠시라도 붙들어 두고자 하는 의욕이다. 그러나 시간은 추이해 갈 것이고 석류화도 나도 결국은 그 시간의 흐름 앞에서 쇠락을 면치 못하리라는 안타까움이 돌아오지 않는 님에의 원망과 섞여 애잔하게 그려져 있다.신흠은 이런 시조들을 통해 유배지에서의 외로움과 기다림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또한 그는 자신의 시조를 창작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노래의 전범으로 여겨져 왔던 중국의 풍아와 우리의 시조를 두고 어떤 반성적 사고를 수행했다. 그것은 신흠의 시조가 전통적인 시조의 본성에서 벗어나 독특한 자신의 세계를 개척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3. 작품분석신흠의 시조에는 악부시와 함께 노래의 전범으로 간주되던 시경시에 대한 일정한 취향도 보이는데 이러한 모습은 다음 시조들에서 볼 수 있다.반되 불이 되다 반되지 웨 불일소냐돌히 별이 되다 돌이지 웨 별일소냐불인가 별인가 ?니 그를 몰라 ?노라《진본 청구영언 140》이 시조는 소인들이 날뛰는 세상을 비꼬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조는 소박한 형식에 다소 우회적이면서도 직솔한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이 다. 이러한 사실의 연장에서 또 다음 시조를 보겠다.곳지고 속닙나니 時節도 變?거다.풀소게 푸른버레 나뷔되야 ?라?다뉘라셔 造化를 자바 千變萬化 ??고.《진본 청구영언 141》이 시조는 앞의 시조와 동일한 주제를 시경의 이른바 “비홍체”의 형식으로 바꾸어 본 것이다. 이전 시조가 직접적 서술체로 쓰여진 반면, 이 시조는 자연 경물에 의탁하여 세태를 빗대고, 다시 그 경물에 촉발되어 자신의 감흥을 일으키면서 시상을 갈무리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 시조에서 초장과 중장은 비유에 해당하고, 종장은 흥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흔히 이 시조는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읊은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시조는 나비의 화려함 뒤에는 추한 벌레의 모습이 숨겨져 있듯이, 인간의 화려한 겉모습에 가리워져 있는 추악한 이면을 예리하게 꼬집고 있다. 신흠의 시에 “하개를 퍼덕인다”는 싯구가 있다. 신흠의 방식으로 말하면, 난세를 당하여 군자들은 버려지고 소인들은 기회를 만난 듯 날뛰는 세태를 풍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조의 의미는 다음 글을 읽어보면 더욱 자명해진다.옛사람이 말하기를, ‘빗물이 갑자기 쏟아지면 벌레와 뱀이 변화하여 물고기와 자라가 되니,시간의 추이에 따라 기가 생물의 성질을 변화 시키는 것이다‘고 하였다. 지금의 인간사를관찰해 보면 생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세도 또한 그러한 것임을 알겠다. 자신의 화복에관계된 일이 갑자기 일어나기라도 하면 사대부들이 너나 없이 신조를 바꾸어 물결에 휩쓸려요동치면서 권세의 가도를 달리는 사람에게 기웃거리니, 사람의 사람된 것이 어찌 옷차림에있는 것이겠는가?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시조는 바로 앞의 시조와 같이 세태에 대한 풍자시라 할 수 있다.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신흠의 시조는 주로 언어와 형식을 둘러싸고 풍아의 취향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의 시조 전체를 이렇게 설명할 수 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그것들을 중심에 설정하고 그의 시조가 창조되어 나오고 있다에서 세상에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100여 년의 시간대-17세기라고도 할 수 있다-내에는 하나의 미를 전혀 다른 미로 끌고 나가는 예술적 취향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신흠의 강호시조에는 전통적으로 강호를 형상화하는 데 사용되었던 언어들과는 다른 것들이 도입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어부가를 비롯한 이황, 이이의 강호시조에서 보아 왔던 친숙한 언어들과는 다른 것들이다. 흰 갈매기, 하얀 가을 구름, 물에 어린 달빛과 같은 익숙한 단어들을 포함하여 “어약연비 운영천광”이니, “사시가흥”이니 하는 단어들이 보이지 않는다. 설혹 “달”과 “눈”과 같은 어휘가 강호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도학자적 감성과는 매우 다른 형태로 결합하여 새로운 풍경을 창조해 내고 있다.山村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무쳐셰라柴扉? 여지마라 날??리 뉘이시라밤즁만 一片明月이 긔벗인가 ?노라功名긔 무엇고 헌신? 버스니로다田園에 도라오니 ?鹿이 벗이로다百年을 이리 지냄도 亦君恩은 이로다草木이다 埋沒?제 松竹만 프르럿다風霜이 섯거친제 네무스일 혼자프른두어사 내性이어니 무러무슴 ?리《진본 청구영언 116, 117, 118》첫 번째 시조의 ‘시린 눈빛’과 ‘투명한 달빛’은 세 번째 시조의 ‘풍상을 견디는 의연한 겨울 송죽’과 결합하여 하나의 풍경을 만들고, 이런 풍경들이 “공명이 긔 무엇고 헌신? 버스니로다”와 같은 다소 격정적인 언어들과 어울려 그 풍경의 내용을 심화시키고 있다.신흠의 강호시조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은 전에 보이지 않던 강인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형상이다. 그리고 이런 강인한 인간을 형상화해 내기 위해 새루운 언어들이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시조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이 세 수의 시조는 모두 강한 대립 위에 기초하고 있다. 강한 대립은 첫째 시조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 시조는 흔히 자연 자체에의 순수한 감흥을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이 시조는 그러한 감흥보다는 오히려 세계와의 강한 대립과 긴장이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난다.
도산십이곡 분석이황은 도산십이곡발에서 우리나라의 시가문학에 대해 비판을 했다. 과 같은 것은 음탕하고 교만에 차서 군자가 숭상할 바가 못 되고, 이별李鼈의 는 에 비해 나으나 완세불공玩世不恭의 뜻이 있고, 온유돈후 溫柔敦厚한 뜻이 부족하여 한계가 있다. 이런 까닭에 자신은 음률을 잘 모르지만 굳이 과 같은 작품을 지으려 했다고 한다.또한 심성을 길러 주기엔 한시가 적절하겠으나 가영이불가가可詠而不可歌라는 점에 비추어 시는 노래로 부를 때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말로 시조를 지어야 하겠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이를 아이들로 하여금 익혀 부르게 하여 나쁜 마음을 씻어 버리고 서로 마음이 통하게 하고자 한다는 이황 자신의 문학관을 밝히고 있다.은 12곡의 연시조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경관의 사물에 접하여 일어나는 감흥을 읊은 전육곡前六曲은 언지言志이고, 학문과 수덕의 자세를 노래한 후육곡後六曲은 言學이다. 인간 속세를 떠나 자연에 흠뻑 취해 사는 자연귀의생활과 후진양성을 위한 강학과 사색에 침잠하는 학문 생활을 솔직 담백하게 표현해 놓았다.*이별 李鼈; 이제현 후손으로 박팽년의 회손이다. 그의 형 원이 점필재 문하로 김종직의 신원운동을 벌이다 귀양가자 황해도 평산 옥계산에 은거하며 생을 마쳤다. 그는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질타하는 풍자적 목소리를 담은 를 지었다. 이를 라 한다.*완세불공玩世不恭;이별의 는 6수로 된 시조이며 1,2행에서 자연과의 관계를 노래하고, 3행에서 세상에 대한 선언적인 태도를 보인다. 즉 세인世人을 소인배로 배척하고 세상을 풍자하여 냉소적인 자세를 취한다. 즉 세상을 희롱하여 공경하는 뜻이 없다.*온유돈후 溫柔敦厚;는 화자와 청자의 융화적 태도를 표명하여 [시경]의 통사구조를 지녔고, 2행의 첫구에서 양보적 자세의 전제를 두어 긍정하면서 세상에는 부드럽고 덕성있는 자세로 사무사思無邪를 보임으로 형식과 내용면에서 [시경]의 시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즉 세상에 대한 긍정적 인시긍로 온유하고 인 버린 사람으로 규정하여 지극한 자연애 사상을 보여 주고 있다.前2曲: 연하煙霞에 집을 삼고 풍월風月로 벗을 사마태평성대太平聖代 에 병病으로 늘거나뇌이 듕에 ?라? 일은 허므리나 업고쟈위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여 살며 태평성대에 병으로 늙어 가는 자신의 모습, 이는 마치 한 폭의 동양화 속의 신선과 같은 모습으로 연상된다. 여기서 병은 작자의 노환으로 풀이할 수도 있겠으나, 앞 시조의 천석고황의 상태로 미루어 보아 자연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병으로 해석을 하면, 이 작품의 내용과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前3曲: 순풍淳風 이 죽다?니 진실眞實로 거즛마리인성人性이 어지다 ?니 진실眞實로 올? 말이천하天下에 허다영재許多英材를 소겨 말??가.*순풍;예로부터 내려온 순박한 풍속, 윤리도덕, 성선설.*어지다;어질다*허다영재;허다한 영재( 많은 슬기로운 사람).위에서는 노장자의 무위자연에 반대하고 맹자의 성선설을 지지하는 성리학적 입장이 나타나 있다. 또한 세상의 많은 후학들에게 유교의 중요성을 알리고, 순박하고 후덕한 풍습을 배우도록 강조하고 있다.前4曲: 유란幽蘭이 재곡在谷?니 자연自然 이 듣디 됴희백운白雲이 재산在山?니 자연自然이 보디 됴해이 듕에 피미일인彼美一人을 더옥 닛디 몯?얘*유란; 그윽한 향기를 뿜어내는 난초.*듣디;듣기, 맡기(향기를 맡나는 문향에서 유래함).*보디;보기가 좋구나.*피미일인;아름다운 한 사람, 여기서는 임금을 가리킴.*몯?얘 : 못하여라.위에서는 자연에 몰입해 있으면서도 완전히 자연에 귀의하지 못하고, 나라에 대한 걱정과 임금님을 생각하는 연군의 정이 떠나지 않음을 노래한 것이다. 여기에서 자연에 몰입하면서도 완전한 자연귀의를 이루지 못하는 유학자적인 충의사상을 엿볼 수 있다. 이 시에서 미인이란 자태가 아름다운 여인의 뜻이 아니고 군주란 뜻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난초와 흰 구름은 인간의 영욕성쇠, 즉 속세와는 무관한 것들로 탈속한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는 비유들이다.前5曲: 산전山前에 유대有臺?고 대하臺下에 유수有水 l 로다時佳興이 사?과 ?가지라??며 어약연비魚躍鳶飛 운영천광雲影天光이아 어늬 그지 이슬고*어약연비운영천광;물고기는 뛰고 솔개는 난 것과 흘러가는 구름의 그림자와 찬란한 태양, 즉 대자연의 조화를 이룸.*그지;끝이.초장에서는 꽃피는 봄, 달뜨는 저녁의 경치를, 그리고 종장에서는 물속의 고기떼와 하늘의 소리개, 구름이 흐르고 해가 비치는 대자연의 모습을 그렸다. 한없이 아름답고 끝없이 흥겨운 대자연의 조화를 표현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자연의 웅대함에 도취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이와 같은 언지의 배열에는 질서가 있다. 곧 처음에는 겸손하게 강호에 묻히는 데서 비롯하여 허물이나 없으면 하는 작은 소망으로 출발하지만, 유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나타내어 유학자로서의 탄탄한 자기 입장을 밝히는 것이 그의 뜻이다. 그러나 이렇게 강호에만 묻혀 자기의 안일만을 일삼고 세속과 절연하여 묻혀 버리는 것이 아니라 군왕에 대한 충성은 그래도 버릴 수 없음을 2수로 나타내어 연군지정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이야 있지만 그것에 이끌려 바깥으로 다시 뛰어 나간다면 앞의 자기 뜻과 모순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이러한 고차원적으로 끌러올려 더 높은 경지인 깨달음의 세계라 할 수 있는 어약연비의 세계로 비상하는 높은 차원으로 자신을 승화시키는 것으로 그의 뜻을 표현하였다.後1曲: 천운대天雲臺 도라드러 완락재玩樂齋 소쇄瀟灑 ?듸만권생애萬卷生涯로 樂事 ㅣ 무궁無窮?얘라이 듕에 왕래풍류往來風流를 닐어 므슴?고천운대 : 도산서원에 있는 누대의 이릉.완락재 : 도산서원에 있는 서재의 이름.소쇄 : 강 이름 소, 씻을 쇄, 산뜻하고 깨끗하다.만권생애 : 독서와 연구의 한 생애.왕래풍류 : 오락가락하는 즐거움.천운대를 돌아 들어간 곳에 있는 완락재는 깨끗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으니, 거기에서 많은 책에 묻혀 사는 즐거움이 무궁할 수 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이따금 바깥을 거니는 재미를 말로 어떻게 표현하겠느냐는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일생을 학문의 연구에만 전념한 석학碩學인 작자가 엇뎔고녀던 길 : 행하던 길, 학문수양에 힘쓰던 길.위에서는 였 성현과의 교감은 오직 서적탐독을 통해서만이 가능하고, 그 길은 학문에의 정진으로 찾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 후4곡에서는 젋었을 때 뜻을 세우고 힘쓰던 학문수양의 길을 저버리고 벼슬길에 올랐던 자신을 탓하면서 이제라도 학문수양에 전념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하고 있다. 옛 성현들의 인륜지도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우리도 그 길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대구법과 연쇄법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後4曲: 당시當時에 녀? 길홀 몃 ?? ?려 두고어듸 가 ?니다가 이졔? 도라온고이졔나 도라오나니 년 듸 ?? 마로리듸 ?? 마로리 : 다른 일에 마음 두지 않으리라(벼슬길 - 학문의 길로)퇴계가 23세 때 등과하여 치사귀향致仕歸鄕한 것은 69세때였다. 여기에서는 젊을 때 뜻을 두었다가 수양의 정도正道 를 버리고 벼슬자리를 기웃거리며 지낸 자신을 후회하면서, 이제 깨달음을 가졌으니 늦지 않게 학문수양에 힘쓰리라는 것을 다짐하고 있다.後5曲: 청산淸山? 엇뎨?야 만고萬古애 프르르며유수流水? 엇뎨?야 주야晝夜애 긋디 아니?고우리도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호리라위에서는 변함없는 의지와 학문 수행으로 덕을 닦으려는 결의가 나타나 있다. '만고상청萬古常靑하겠다'는 의지와 결의를 보인 내용으로, 청산을 만고에 푸르러 영원하며, 유수같이 언제나 푸르러 학문수양을 그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만고상청이란 끊임없는 학문수양으로 영원한 진리의 세계에 사는 것이요, 옛 성현과 같이 후세에 이름을 영원히 남기는 것이다.後6曲: 우부愚夫도 알며 ?거니 긔 아니 쉬운가성인聖人도 못다 ?시니 긔 아니 어려운가쉽거나 어렵거나 중에 늙? 주름 몰래라.위에서는 학문에 뜻을 둔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도 쉽게 알고 행하려고 하지만, 그 실천의 과정에서는 성인이라도 못 다 이룬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길이 쉽든 어렵든 간에 실천에 몰입하고 있는 중에는 세월이 흘러 늙어가는 것조차 모를 정도라고 하면서 영원한 학문수양 가운데 학문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크게 강조한 것이 '언학'이라 할 수 있다. 선비들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강호의 삶이고, 강호의 삶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곧 학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을 굳이 '언지'와'언학'으로 나눈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재야의 강호생활을 좋아서 할 수도 있고, 또는 어쩔 수 없어서 한다고 할지라도 강호에서 학문을 하지 않으면 그 삶의 의미는 반감되는 것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에서 언학의 비중은 언지보다도 더 큰 것이다.-작품의 이해와 내면화은 유교지향의 자연시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율곡의 와 쌍벽을 이루는 연시조로서, 자연귀의의 삶을 노해하는 가운데 유교적 보편 가치를 지향하고 있어 관념적 성향이 짙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자연물自然物,유란幽蘭,백운白雲,백구白駒 등은 유교적 인격을 상징함으로써 개성적, 창조적인 심상이 아니라 이념적 가치를 표상하는 매개물로 쓰였기 때문이다. 언지言志는 지은이가 자연과 더불어 사는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표현하고 있다. 먼저 1 에서는강호에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2 에서는 태평을 누리는 가운데 허물이나 없고자 하는 소망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3 에서는 성리학性理學으로 천하 영재를 교육하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4 와 5에는 천석고황으로 강호에 살고 있지만 임금을 잊지 못하는 화자의 마음이 암시되어 있다. 이처럼 자연 속세서도 임금을 생각하고 학문연구의 의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요컨데 화자가 자연과 더불어 사는 뜻이 도의 완성을 지향하는 데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언학言學은 한 마디로 학문의 즐거움과 의지를 표백한 것이다. 먼저 1에서는 학문의 즐거움을 말한 뒤, 2에서는 학문의 길이 옛 성현들을 본받는 데 있음을 노래하였다. 그리고 3과 4에서는 잠시 학문의 길에서 벗어나 벼슬길을 좇았던 일을 후회하면서,오로지 학문에 몰두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5는 '청산'과 '유수'의 영원성을 본받아 학문과 지리의 세계에 연한히 살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