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는 역사학자 케이스 젠킨스에 의해 쓰여진 역사 입문서이자 논쟁서이다. 독서라고 해봐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문학서만이 전부였고, 역사서를 처음 접했던 나에겐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용어를 이해해나가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딱히, 어려운 문체나 전문적인 용어가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야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케이스 젠킨스는 지금 현시대를 포스트모던의 시대라 정의하고 이를 기초로 보편적으로 역사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것들을 반론하며 이 책을 진행시키고 있다. 또한 젠킨스가 책을 통해 주장하려는 중요하고 종합적인 이야기는 책 제목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더 이상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이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케이스 젠킨스는 이러한 자신의 논점을 위해 이 책을 세 개의 장으로 구성하여 독자로 하여금 끈임없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각장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살펴보고 그에 따른 나의 감상과 생각을 더하여 진행시키도록 하겠다.2. 역사란 무엇인가(1) 과거와 역사는 구분되어야 한다.역사란 세계를 해석하는 여러 담론 가운데 하나이다. 담론으로서의 역사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낼 수 없으며, 자신이 설명하는 그 대상 즉, 과거와는 다른 범주에 속한다. 따라서 과거와 역사는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며 시간상으로나 거리상으로나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의 일에 대해서는 ‘과거’(the past), 역사를 지칭할 때는 ‘역사서술’(historiography)이라고 하여 항상 그 차이를 새겨둬야 한다.그렇다면, 과거와 역사를 구분하는 것이 왜 중요한 일인가?첫째, 과거는 일어난 일일 뿐이다. 과거는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역사는 역사가의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과거에 대한 일종의 구성물인 것이다.둘째, 역사 읽기란 그것을 서술한 역사가를 읽는 것이다. 그 역사가의 역사 읽기가 선행된 후에 우리는 그가 서술한 역사 읽기를 할 수 있다. 이며 그것은 이야기 주체인 역사가의 관점이 표명된 것이다. 역사는 직접적인 기억과는 달리 누군가의 눈과 목소리에 의존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회고를 통해 어떤 면에서는 과거 사람들보다 과거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다. 역사가는 과거를 현대 용어로 번역하고 이전에는 적용되지 못한 지식을 이용함으로써 이미 잊혀져 버린 과거를 복원해 내고 동시에 이전에는 결코 이어 붙일 수 없던 사물들을 함께 결합시키기도 한다.역사는 시각을 바꾸어 사물을 보는 관점을 달리하게 되면 새로운 읽기가 나타난다. 그런데 역사가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무시하고 고집스레 객관성을 진실을 찾으려는 헛수고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진실 추구는 이데올로기적 또는 방법론적 입장에 따라 나뉘어 진다.방법론적 입장을 취하는 역사가들은 진실과 지식, 정당성이 꼼꼼한 방법론적 규칙들과 절차들에서 연유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는 마냥 내버려둔다. 하지만 불행히도 제대로 선별된 방법을 통해 진실에 다다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오히려 선택을 위한 어떠한 합의된 기준도 없이 그저 방법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방법들 간의 차이는 배제할 수 없다고 해도 모든 역사가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기본 개념들은 이미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설명이 시?공간의 제약을 받으므로 기본 개념들도 보편적인 심장부가 아니라 특수한, 지엽적인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이데올로기적 역사는 원래부터 과거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외부(자)에 의해 과거에 부여된 것이다. 따라서 역사가는 특정한 입장 특히, 보다 강력한 지배집단의 이해를 전달해 줄 것을 요망받고 있다. 이러한 역사는 권력관계에 다양하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그러한 갈등 속에서 역사는 날조된다. 결국 모든 사람이 다같이 동의할 수 있는 역사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3) 실천론적 측면실천적 측면은 역사를 만들어내는 주체인 역사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들은 현실. 상대주의적 관점을 통해,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재평가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4) 역사의 정의역사란 대개 역사가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라는 물음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나를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에까지 가아가야 한다.3. 역사담론의 기본 문제들(1) 진실 - 진실은 역사담론 안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는가?역사가에 의해 창조된 역사를 다 습득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과거의 진실을 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진실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진실이 없다면 사물을 확정해서 최종적으로 판정을 내리는 확신주의자의 개념이 힘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객관성이 없다면 동일한 현상에 관한 상충되는 설명을 구별해야하는 귀찮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진실과 객관성의 필요는 확실성에 대한 바람에 의해 추구되었다. 그러나 진실은 단지 언어론적 기호, 즉 하나의 개념에 불과하다. 말과 세계 곧 말과 대상은 여전히 분리된 채로 남아 있다.우리에게는 이상해 보이는 개념들이 다른나라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현상은 바로 개념정의의 자의성 때문이다. 개념정의의 자의성속에 말과 세계가 어긋나고 모든 의미나 진실은 주어진 상황에서 창작된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고 진실은 발견되는 것이라는 것에 오랫동안 젖어 있었던 관행은 권력의 힘을 부추기는 꼴이 되었다. 따라서 진실은 그것을 참인 것으로 만다는 권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의존한다. 이러한 진실은 실제로 권력을 통해 담론 속에 자리매김된 유용한 허구이며, 결국 권력은 적절한 통제를 수행하기 위해 진실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2) 사실과 해석역사가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자체가 아니라 한 설명 안에서 사실들이 차지하는 각각의 비중, 위치, 결합, 의미작용의 문제이다. 이것은 곧 해석의 차원이고, 이는 역사가가 과거의 사건을 의미유형으로 바꾸어 놓을 때 문제가 된다.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말할 방법은 전혀 없다.신의 사고틀을 가지고 과거의 모든 사건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기본전제가 깔려 있지 않은 과거 해석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한 과거 해석은 결국 현재에서 구성될 뿐이라고 한다면, 역사가가 그들 자신의 용어로 누군가의 과거에 접근할 때 자신이 당면한 현재를 폐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는 독자들이 보다 잘 읽을 수 있도록 해석자가 돕고자 하나, 그 해석자의 해석서는 독자의 길목을 차단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사항을 수업이나 시험 상황에 적용할 때 또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어떠한 과거의 사실이나 인물에 감정이입을 시도하지만 결국 우리가 감정이입하고 있는 것은 실제로 수업을 실시하고 있는 교수의 마음이다.반면 정작 감정이입이 중요한 현안이 되는 것은 학교수업의 압력과 학계의 압력, 이데올로기적 압력에서 오는 이유들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세 가지 압력은 좀처럼 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 듯 하다. 학교수업을 상상력을 요구하지만 학계와 이데올로기는 지식을 강조한다. 그런데 아무리 과거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해도 이 시도는 불가피하게 일정한 상상력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역사가는 과거의 사람들를 정확하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인가? 그동안한 인간본성의 불변론으로 그 대답을 대신하였다. 우리는 오히려 지정 필요한 것은 실제로 역사가가 과거로 가져가는 기본 전제가 무엇인지를 설정하는 일이다. 엄격히 말한다면 역사가의 마음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사람들의 마음보다는 오히려 역사가의 마음속으로 들어 가려고 애쓰는 것이 건설적이다. 결국 ‘모든 역사는 역사가의 마음의 역사’ 인 것이다.(5) 1?2차 자료와 증거1차 자료(과거의 흔적)과 2차 텍스트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으나 이 차이는 2차 텍스트를 1차 자료로 이용하는 2차 수준에서는 사라진다. 역사가들은 1차 자료에 의존하면 진실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으며 역사가 사이의 불일치는 이러한 원자료로부터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시도의 바탕에는 원래의 사람들이 진정한 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생각을 지만 지배적 담론은 그들이 특정한 역사적 문화라고 간주하는 일정한 유형의 역사적 문화를 전달하는 데만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역사의 수준에서 학계의 특정 유형의 담론 안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 그 안에서는 이 담론을 내재화하고 써 내려가는 능력이 중요하다.(7)역사 : 과학인가 예술인가?역사는 과학인가 예술인가 라는 논쟁은 ‘역사의 본질’을 둘러싼 논쟁가운데 하나이다. 19C이후 역사의 본질에 대해 과학과 예술의 범주에서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인접한 담론의 이론가들은 예술과 과학이 세계를 해석하는 아주 다른 방식이라는 역사가의 입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결국 과학이냐 예술이냐를 둘러싼 논쟁은 이제 구석진 자리로 밀려났다. 그러나 방법이라는 말로 달리 표현되는 이데올로기적 압력을 통해 논쟁은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8) 결론역사는 진실이라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질문과 대답한 역사담론의 기본 문제에 대해서는 젠킨스의 대답은 대체로 회의주의 쪽에 가깝다. 그러면서 역사의 순수성이란 지배적 담론이 자기 이해를 표명해온 방식이라는 사실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분명히 알아 차려야 한다. 반성을 통한 적극적 회의주의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4. 포스트모던 세계의 역사연구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계는 포스트 모던의 세계이며 이 조건이 역사에 대한 우리의 견해에 큰 영향을 미친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고정되거나 견고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보며 포스트모더니즘을 중심들의 죽음을 입증하고 메타 이야기들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특징짓는다. 이는 여러 중심의 특권을 설정해 놓은 모든 낡은 조직틀을 더 이상 정당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할 수 없으며 이 조직틀을 보편적인 이해보다는 오히려 지극히 특정한 이해들을 표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잠정적인 허구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서열적?규정적 가치요소가 아주 철저하게 의식적으로 붕괴되는 상황의 일반적 표현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결코 하나의 통일된 운동이난다.
제 목: 행정서비스 전달에 있어 정보시스템의 활용방안과 목 :학 과 :학 번 :이 름 :제 출 일 :담당교수 :Ⅰ. 서 론Ⅱ. 전자정부1. 전자정부의 개념2. 전자정부의 목표와 비전Ⅲ. 정보기술을 활용한 대민 행정서비스1. 정보기술을 활용한 대민 행정서비스 방향2. 우리 정부의 인터넷 활용 현황Ⅳ. 보편적 행정서비스의 구현1. 정보화와 보편적 서비스2. 보편적 행정서비스의 사례Ⅴ. 미래행정의 방향과 과제1. 행정혁신에서 정보기술의 활용을 위한 정책제안Ⅵ. 결 론Ⅰ. 서 론급격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세계는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정보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공공부문 역시 새로운 행정환경의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모색하고 있는바 세계적인 정부개혁의 추세가 이러한 사실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이러한 정보화사회에서의 행정의 새로운 이념형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 바로 전자정부(Electronic Government)이다.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을 행정에 적극 활용하여 국민의 행정편의를 제공함은 물론 행정업무의 효율성을 도모하며 또한 정보의 전자적 공개와 발달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다양한 국민의 행정참여가 가능해 짐에 따라 행정의 민주성이 제고될 수 있으며 나아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고 직접민주주의에 유사한 전자민주주의가 가능해진다.현재 우리 나라에서 전자정부의 실현에 대해 많이 논의되고 있다. 특히 초고속 정보통신망 시대의 도래로 인해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관료주의적인 행정에서 벗어나고 고객 지향적이고 생산적인 행정을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가 예측되고 있다.그렇다면, 지금부터 전자정부와 그로 인한 행정서비스의 변화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Ⅱ. 전자정부1. 전자정부의 개념1993년 미국에서 전자정부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미국의 전자정부 구현 노력은 클 린턴 정부의 출범과 함께 시작된 정보고속도로 사업과 행정성과 사업에서 그 비전과 전략 이 구체화 되었다. 클린턴 정부 출범 직후부터 앨 고어괄해 각 부처별 주관기관이 전자정부 구현을 위한 행정정보 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이외에도 한국전산원이 정보화 전문기술 지원 및 감리를 담당하고, 정부전산정보관리소에 서 행정정보공동이용센터의 구축 및 공통행정업무의 전산화와 전산교육을 담당한다. 정보 통신부 또한 사무관을 1명 배정해 전자정부 구현, 즉 행정정보화 사업에 대해 행정자치부 와 논의토록 하고 있다.실제로 1978년 행정전산화를 필두로 한 행정정보화 사업은 지난 1987년 행정전산망 사 업. 1994년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으로 진행됐고, 1995년에 정보화사업의 구상을 시작 김 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자정부'의 개념을 도입하게 됐다.그러나 국내의 전자정부 사업의 미국 등 해외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지방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한 분산된 정보화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반면, 국 내에서는 중앙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통치체계의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고, 대부분의 프로 젝트가 정부 부처별로 진행되는 상황이다.2. 전자정부의 목표와 비전전자정부 종합실천계획에서 제시하고 있는 전자정부의 비전은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국민 위주의 질 높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21세기 지식정보사회형 전자정부를 실현함으로써 「세계 10대 지식정보 강국을 구현」하는데 있으며, 이러한 비전달성을 위해 전자정부의 추 진목표를 다음 세 가지로 잡고 있다.첫째, 정부의 고객인 국민을 위해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디서나 한 번에 서비스가 제공되 는 정부를 구현하는 것이다. 집 안팎에서 24시간 처리가 가능한 전자민원서비스 그리고 구 비서류의 제출 없이도 한번만 신청하면 되는 간편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것이다.둘째, 지식정보화사회에 걸맞게 행정의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는 정부를 구현하는 것이다. 즉, 정부내 공문서나 자료가 전자적으로 생산?전달되는, 종이 없는 행정을 구현하 고, 전자화된 행정정보가 각 행정기관간에 물 흐르듯 유통되는 신속?정확한 행정을 실현하 는 것이다.셋째, 행정정보가 풍부한 정보 네트도시계획확인원, 재산세완납증명 등 통합 DB 및 자료 공유에 의해 확 인할 수 있는 첨부서류를 폐지하여야 한다.(6) 종합처리 창구의 개설은행 창구처럼 단일화된 종합민원창구에서 모든 민원을 일괄 처리하는 민원서비스 (Single Window Service) 제도가 시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원접수창구 또는 담 당자가 접수에서부터 제공까지 일괄적으로 책임을 지고 처리하는 민원책임처리를 준비하 여야 한다.(7) 통합된 주민복지서비스 제공주민자치센터(Community Center)의 읍면동에서 민원을 통합처리하고, 단체장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서무행정 중심의 읍면동에서 주민복지 증진과 행정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으로 전환된 주민자치센터의 단일창구에 의한 통합민원처리 제 도가 시행되어야하며, 홈페이지 및 PC통신 등에 의한 단체장과의 면담 및 주민의견을 제 시할 수 있는 서비스도 준비되어야 한다.(8) 연동 일괄처리의 시행주소변경 자동일괄처리 등 1회 처리에 의해 기관간, 업무간 실시간 변동정보의 공유로 정확한 행정처리를 이룩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주민등록 변경사항 발생지에서 변동내역 을 한 번 입력하면, 관련된 전산대장에 실시간 연동처리됨으로써, 변동정보의 이중처리로 인한 행정인력 낭비 제거와 항시 정확한 자료에 의해 신속, 정확한 행정을 구현하여야 한 다.(9) 종이 없는 행정의 구현수기대장을 완전히 전산화하여 전산대장에 의한 종이 없는 행정을 구현하여야 한다. 주 민대장, 인감대장 등 문서대장과 전산대장의 이중관리 체계를 단일, 전산대장으로 전환하 여 종이 없는 행정을 구현함으로써, 이중 입력 등의 중복사무를 제거하여 사무행정을 간 편화하고, 문서관리에 필요한 공간을 주민 또는 공무원의 편의시설로 전환시킨다.(10) 정보의 디지털화 실현디지털화된 전자문서를 기반으로 실시간으로 수평적 정보유통처리를 구현한다. 즉 법, 제도 규정, 각 업무처리 결과가 즉시 디지털화된 전자정보로 변환되어 전산대장 및 공동 DB에 저장되고, 업무간, 통신을 국가의 기반산업으 로 인정하고, 공공부문에서 독점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해 왔기 때문에 이 영역에서의 보편 적 서비스는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그러나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경쟁의 도입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통신망과 서비스가 출 현하게 되면서 보편적 서비스의 제공이 벽에 부딪히고 있다. 현재 저속 통신서비스는 산간 벽지를 포함한 전국에서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지만, 고속의 통신서비스는 대도 시에서만 고속접속포트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대도시 이외의 지역에서는 시외접속을 통 해서만 이용할 수 있다. 이렇게 시외접속을 통하게 되면 시외전화요금이 부과되어 대도시 지역보다 훨씬 더 비싼 통신요금을 부담해야 한다.이와 같이 통신망에 접근하는 것은 정보화의 가장 기초적인 문제로 지역산업과 지역정보 화의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며, 향후 다양한 정보서비스가 원격으로 제공될 경우 심각 한 지역격차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2) 정보통신 제품의 개발정보통신 제품의 개발에서 보편적 서비스는 보편적 설계와 보조기기의 개발이라는 두 가 지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제품이 보편적으로 설계되어 동일한 제품 을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단기적으로는 특수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보 조기기를 별도로 개발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보편적 설계란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나 특성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정보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기기, 서비스, 환경을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보편적 설계는 제품의 초기 단계에서 장애인 등 보다 많은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사후단계에서 조정하는 것보 다 비용을 절감하고 장애인들을 사회에 통합하는 환경을 제공해 사회 전반적으로 사회보장 비용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3) 경제적 부담정보사회에서 정보를 이용하려면, 우선 컴퓨터가 있어야 하고, 컴퓨터와 통신의 사용법을 알아야 하며 통신망에 접근해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용발생 단 부처나 지역별로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보편적 행정서비스의 중요성이 더 욱 커질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2. 보편적 서비스의 사례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전자적인 행정서비스를 모든 국민에게 언제 어디서나 제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의 전제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첫째는 정부의 업무처리가 혁신되어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행정혁신을 이루어야 한다. 둘 째는 정부의 전자적인 행정서비스를 수혜자인 모든 국민이 네트워크를 통해서 정부에 접속 하여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여기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 두 번째의 국민의 접근성이다. 따라서 전자적인 행정서 비스가 제공될 때에는 국민들이 기술에 쉽게 접근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기술 접근 의 형평성과 기술 사용의 편리성이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어제 어디서나 행정서비스를 받 을 수 있도록 보편적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행정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보편적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보완하고자 키오스크와 전화를 이용한 행정서비스가 일반화되고 있다.(1) 키오스크키오스크는 한때 ‘24시간 봉사하는 시청’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국민이 자기가 편리한 때에 아무 때나 행정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서비스 전달에 새로 운 차원을 제공하였다. 키오스크는 주로 이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의 제공과 간단한 정 보처리를 주요 기능으로 하고 있다.키오스크는 주로 터치 스크린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루기 쉬운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화 면에 나타난 메뉴를 살펴보면서, 정부부서나 행정서비스의 목록, 중요 지역 시설 및 관광 지 지도, 각종 행사일정, 도서관 신착도서 목록, 조세정보 및 구인 직장에 관한 정보들을 입수할 수 있다. 이러한 키오스크는 키보드보다 훨씬 더 사용하기 쉬운 터치 스크린에 의 존하고 있고, 자판보다 음성이나 화상으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컴퓨터와 이용자 간의 상호작용을 단순화한 데 그 장점이 있다.키오스크의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면제
목 차1. 들어가는 말2. 학생운동2.1 일제의 교육 정책2.2 시기별 항일 학생운동의 전개2.2.1 1910년대의 운동2.2.2 1920년대의 운동2.2.3 1930년대 이후 학생운동2.3 좌파(사회주의)와 우파(민족주의)의 학생운동 인식2.3.1 민족주의 세력의 학생운동 인식2.3.2 사회주의 세력의 학생운동 인식2.4 학생운동의 의의와 영향2.5 사례조사2.5.1. 3.1운동2.5,2 광주학생운동 이후 충청남북도 지방의 학생독립만세운동3. 청년운동3.1 청년운동의 발생배경3.2 청년운동의 시기별 특징3.2.1 1920년대 초3.2.2 1920년대 중반 이후3.2.3 1920년대 말~1930년대 후반3.2.4 1941년~1946년3.3 청년운동의 성격3.4 청년운동의 의의와 영향3.5 사례설명3.5.1고려공산청년회3.5.2 여성청년단체4. 맺는 말5. 참고 문헌1. 들어가는 말청년 학생운동을 한 가지 운동이라고 단언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다. 먼저 청년이 연령에 의한 구분이라면 학생은 직업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특성을 살펴보면, 젊다는 것과 감정적이라는 것, 이타적 경향을 가졌다는 것, 타율에 의한 것이 아닌 자율이 우선되었다는 것 등이다. 즉 이러한 면을 살펴 볼 때 이들은 연대 과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학생운동 유경험자는 이후 청년 운동을 주도 하게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우리가 흔히 학생독립운동이라고 하면, 1929년 11월 3일에 일어났던 광주 학생독립운동을 생각하게 되고, 또 그로부터 시작된 운동인 것처럼 알고 있는 경향이 없지 않으나, 그것은 최근세에 일어났던 운동중의 하나였던 것을 이름이요, 실상은 시대를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신교육이 실시된 이후부터 자주정신의 자각과 함께 안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던 것임을 헤아리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신교육이라는 것은 일본의 제국주의에 의해 나라가 곤경에 처하게 되자 발생 된 국권회복운동의 하나인 계몽운동(1905~1910)을 주장했던 사람들에 의해 민중이 실력을 위원장으로 하고 15인의 일본인을 위원으로 하는 '조선대학창설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여기에는 총독부 경무국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동 위원회는 1923년 11월 27일 제1회 모임에서 교명을 '조선제국대학'으로 할 것과 학부는 법문학부와 의학부를 둘 것을 결정하였다. 1924년 1월 9일에 총독부내에 예과개설사무소를 설치하고 1월 10일자 관보에 신입생 모집 광고를 냈다. 신입생 선발은 체격 검사와 학과 시험에 의하도록 되어 있었다. 학과 시험의 경우 일본어가 공통으로 부과되고 문과의 경우에는 일본 역사도 부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인 지원자들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일제는 1911년 조선교육령을 비롯한 각종 식민지 교육에 대한 법령을 제정하여 우리민족을 식민지 지배에 순응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통제에도 주력하였다. 그 결과 학교교육에서 조선의 역사와 지리는 완전히 사라졌고 각 학교에 일본인 교사를 배치하여 자유로운 교육활동을 통제하고 일본어교육을 강화했다. 이러한 목적과 의도 하에서 시작된 경성제국대학의 설립 과정상에서도 그들의 식민주의적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일제는 이미 1920년 12월에 "임시교육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교육령의 개정과 식민지 대학의 설립을 준비하였다. 1921년 1월 7일 동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당시 학무국장이 "새로 대학 및 그 예비교육의 길을 열 것"을 안으로 제출하였다. 당시에는 대학의 명칭이 조선대학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동년 5월 정도에는 이미 동아 일보 등에서 식민지 대학의 설립을 기정사실로 보도하였다.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에 세워진 식민지 대학으로써 경성제국대학은 성격상 식민주의적 특성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경성제국대학은 종합대학으로서의 정상적인 학부 구성을 하지 않은 채 법문학부와 의학부만으로 출발하였다. 즉 근대화 과정에 필수적인 이공학부는 1938년에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1941년에 개설하는 등 고등 교육 기관으로서의 명실상부한 면모를 갖추지 못한 형식적인 종합 공고한 단결로 공산주의를 연구하고 나아가서는 이의 실행에 의하여 현제도를 타파하고 빈부의 계급이 없는 만인평등의 공산제도를 실현시키자"는 것을 역설하였다. 광주에서 반일적인 성격의 동맹휴학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성진회가 조직된 이후인 1927년 무렵부터였다.??광주학생운동을 앞두고 전국 지도부는 비록 와해되었지만 광주지역은 사회주의 잔여세력의 지원 아래 '독서회 중앙본부'에 의한 학생운동의 통일적 지도와 광주청년동맹에 의한 청년운동의 대중적 단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광주지역은 각 학교마다 독서회가 조직되어 민족의식을 키우고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더욱이 독서회중앙부가 결성되어 이를 통일적으로 지도하였다. 몇 년에 걸쳐 축적된 이러한 조직적인 역량이 결국은 광주학생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시킬 수 있는 바탕이 되었던 것이었다.??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광주고보의 조선인 학생들과 광주중학의 일본인 학생들의 우발적인 충돌사건이 일어났다. 통학열차가 나주역에 도착하였을 때, 광주중학교의 일본인 학생들이 광주여고보의 여학생의 머리를 잡고 놀리자, 박준채등 조선인 학생들과 일본학생들 사이에 패싸움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계속되었고 이렇게 고조된 긴장관계는 11월 3일 재충돌로 이어졌다. 11월 3일의 충돌사건을 전해들은 독서회 중앙부 책임비서인 장재성은 장석천, 나승규, 국채진등과 협의하여 투쟁방침을 결정)하였다.1. 우리의 투쟁대상은 광주중학생이 아니라 일본제국주의이니 투쟁방향을 일제로 돌릴 것2. 광주중학생에 대한 적개심과 투쟁을 일제에 대한 증오와 독립투쟁으로 바꿀 것3. 광주중학생과 대치중인 광주고보생을 해산시키지 말고 광주고보로 집합시켜 적개심에 불타는 학생들을 식민지 강압정책 반대시위운동으로 돌릴 것4. 장재성이 시위운동을 직접 지도할 것5. 우리는 앞으로 다른 동지들과 연락하여 다음 투쟁을 준비하고 계획할 것??이렇게 해서 학생들간의 충돌은 이제 일본인 학생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닌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반일운동그 주력을 집중하기 위해 학생부를 설치하고 김복진을 그 책임비서에 선정하고 이현상, 노양배, 박봉연, 김필수 등과 함께 학생단체 중 가장 좌익적 색채가 진한 조과연에 회원을 입회시키고 지도하여 각 학교의 학생회를 자치회로 할 것과 각 학생을 권유하여 야체이카원으로 하고 소속 학교에 '독서회'를 조직하는 등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진행시켜 나갔다.이러한 고려공청의 운동방침은 1927년부터 이후의 동맹휴교에서 제시된 격문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일정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이렇게 사회주의 세력은 학생운동에 조직적으로 개입하였다. 1928년 4월, 조공과 고려공청으로부터 제3인터내셔날에 보고된 「민족해방에 관한 논강」에서 "조선 무산계급의 해방은 조선민족의 해방을 선결문제로 하며, 그를 위해 조선의 전투적 프롤레타리아트인 노동자, 농민, 학생은 당연 민족해방운동에 가담하고......"라는 운동방침을 제시하면서, 그 제17항에서는 "......차별교육제도 철폐, 조선인 학교에서의 일본어 사용철폐, 모든 조선인 학교내 조선어 사용주장, 조선역사 금지 철폐, 노예교육의 철폐, 노동자와 농민, 학생의 물질적 보조"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1930년대에도 동일한 기조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국제공산청년동맹집행위원회는 조선공산청년단체들에 대한 임무에서 "조선공산청년제단체는 동화교육반대, 학생회조직의 자유, 학술적 관습 반대 등의 학생청년의 혁명적 투쟁을 지도할 것이었다. 조선민족해방운동선상에도 학생청년을 전적으로 인입하는 것이 공청원제군의 임무인 바, 학생의 투쟁을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층의 투쟁과 연결시킬 것"을 지시하였다. 고려공청은 학생청년이 반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음에 주목하여 학생부를 설치하고 학생청년을 반일운동의 주요 세력으로 위치짓고 있었던 것이었다. 태평양노동조합의 조선어판 기관지인『태평양노동자』는 3·1운동 이후 끊임없이 전개해온 학생들의 투쟁을 "각교 당국 대 학생의 국한된 범위를 벗어나서 현대의 교육제도와 지배의 권력에직을 갖춘 ‘청년운동’의 추진체라기 보다는 당시의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의 하나로 파악된다.)그러나 일반적으로 청년운동의 등장은 1910년대로 보고있다. 특히 3?1운동은 독자적인 이념과 조직을 갖춘 청년운동이 민족해방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서구의 경우 일반적으로 청년운동의 주체가 노동청년으로 규정된 데에 비해 식민지 조선에서는 애초에 청년이 사회?경제적 구성에 따른 특정한 계급적 범주나 연령에 의해 규정되지 않고 근대적사고를 가진 사람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곧 봉건성을 부정하고 근대사회를 지향하는 이념적, 정치적 지향성이라는 측면에서 청년이 규정된 것이다. 청년운동의 초기에 이러한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은 주로 학생?지식인층이었다. 청년운동의 발전과정에서 계급적 범주나 연령이 청년의 범주를 규정하는 데 적용되기 시작되기 전까지는 일정 기간 이러한 양상이 지속되었다.이와 관련해 이 시기 청년운동은 주로 지식인층이 주도하는 가운데 부르주아 민족주의적 성격과 사회주의적 성격이 혼재하는 양상을 띠고 있었다. 전자의 보기로는 이른바 ‘유지층’의 주도 아래 문화계몽운동을 지향한 초기 청년단체의 활동을 들 수 있다. 특히 청년운동이 처음 출현했을 때는 부르주아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화계몽적인 성격을 띤 초기 청년단체는 반일독립과 근대사회로의 이행이라는 기치아래 광범위한 청년층을 조직하고 계몽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근대사회로의 자주적인 이행이 실패한 이후 이행의 새로운 담당자층이 등장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이전의 계몽운동 노선을 부분적으로 계승하면서도 기성세대에 대해 비판적이고 배타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반봉건적이었다. 아울러 일제의 식민지 지배 아래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던 이들 청년층은 3?1운동의 실패 이후 민족운동의 대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청년운동에 투신하게 된 것이다.이러한 청년층의 동향은 사회주의 청년운동이 태동하게 되는 내적 배경이기도 하였다. 여기에 청년층은 1920년대 초반
■토마토란?남아메리카 서부 고원지대 원산이다. 잎은 부정형의 복엽이고 꽃이삭은 8마디 전후에 달리며 그 다음 3마디 간격으로 착생한다. 한 꽃이삭에 황색 5판화에 꽃이 몇 개씩 달린다. 과실은 수 g인 것에서부터 200g을 초과하는 것까지 있으며 품종에 따라서 다르다. 과육(果肉)의 색깔은 보통 적색이지만 황색인 품종도 있다. 얇은 과피(果皮)는 무색인 것과 황색인 것이 있는데 외관상으로 각각 복숭아 색과 적색으로 구별된다.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 얼굴이 파랗게 된다 는 유럽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토마토는 건강 식품이다. 토마토에는 비타민 A, B1, B2, C 등이 골고루 들어 있고, 특히 비타민 C는 100g당 20∼40mg 들어 있어 두 개 정도만 먹으면 하루 필요한 비타민C를 모두 취할 수 있다. 서양에선 토마토가 샐러드나 요리재료로 이용되지만 한국에서는 식 후 과일로 먹는 경우가 많다. 다른 과일과 마찬가지도 토마토도 설탕을 쳐서 먹지 않는 것이 비타민B의 손실을 줄이는 방법이다.토마토 색 가운데 황적색은 카로틴, 적색은 리코펜에 의한 것으로, 리코펜은 20∼30 의 맑은 날씨가 계속될 때 색이 짙어지고, 카로틴은 저온 다습한 곳에서 색이 짙어진다. 따라서 적색 토마토보다 황색 토마토가 비타민 A 효과가 훨씬 크다.토마토는 저온에 약하므로 서리를 맞으면 말라죽는다. 한편 여름의 고온을 맞으면 결실이 나빠지고 병해 등이 많이 발생한다. 재배조건이 좋으면 종자를 심은 후부터 약 60일이면 개화하기 시작하며 그 후 약 40일이면 첫 번째 과실을 수확할 수 있다. 2∼3월에 온상에 파종하고 육묘하여 5월초에 본 밭에 옮겨 심는 조숙재배(早熟栽培)가 흔하다. 저온인 시기에는 하우스나 유리온실 등의 시설을 이용하는 촉성재배·반촉성 재배를 많이 한다. 또한 여름의 고온기에는 해발고도 400∼800m의 냉랭한 지역에서 노지재배(억지재배)도 하고 있어서 주년출하(周年出荷)가 기대되고 있다. 재배방법에는 외대가꾸기로서 줄기를 지주(支柱)에 묶은 다음 곁가지를 모 비가 적어 건조한 편이며, 주야간의 온도차는 있으나 고온은 아니며, 일조량은 풍부하다. 원산지에서는 우기(雨期)가 끝나고 건기(乾期)가 되면 수분을 흡수키 위해 뿌리를 깊게 뻗으면서 자라게 된다. 또한 토양도 화산재 토양으로 표층의 부식질이 풍부하며 배수도 잘된다. 이러한 원산지의 환경 조건을 생각하며 재배할 때에는 이런 조건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우리 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으나, 지봉유설(之峰類設)에 남만시(南蠻 )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저작 연대인 1614년 이전으로 생각된다. 토마토가 일본에서 도입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일본에 토마토가 전래된 것은 1709년이라 하므로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것은 아니며, 중국에 유입된 연대가 17세기초로 추정되므로 중국에 유입된 직후 우리 나라 사신에 의해 전래 됐을 것으로 생각된다.■토마토의 품종토마토는 이용 방법에 따라 생식용과 가공용으로 나누고, 과실의 대소에 따라 방울형(20g), 중간형(50∼80g), 대과형(200∼300g이상)으로 구분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방울형, 일반형으로 나눈다.1. 방울형 토마토1 꼬꼬, 빼빼, 미니캐롤, 산체리엑스트라, 케롤7, 체루시미니, 미니카프리, 옐로우케롤2 금방울 토마토, 꿀 토마토, 다다기 토마토, 루비 토마토, 뽀뽀 토마토, 아라리 토마토, 홍초롱 토마토2. 일반 토마토서광 토마토, 영광 토마토, 광수 토마토, 강육 토마토, 광명 토마토, 풍영 토마토, 선명 토 마토, 알찬 토마토, 세계 토마토■토마토의 생태적 특징토마토는 가지과 작물에 속하는 초본성 식물로서 발아하여 생육을 하면서 밑에서 위로 차례로 개화착과하여 성숙하는 작물로 적당한 환경 조건이 갖추어지면 장기 재배가 가능하고 따라서 초장이 4∼5m이상 되는 경우도 있다.1. 잎과 줄기1 부정형의 우상복엽으로 길이는 15∼45cm, 작은 잎은 5∼9매로 보통 7∼9매의 작은 잎 이 엽병의 기부로부터 적당한 간격으로 위를 향하여 대립착생한 3매와 선단부에 1매, 그 리고 짧고 작은 엽병이 붙어 있다의 발육 생리1. 종자와 채종토마토 종자는 종피와 배유, 배로 이루어진 유배유종자로 가지종자와 비슷하다. 종피밑에 배유조직이 있고 배는 나선형처럼 말린 배배유안에 있다.채종은 잘 성숙한 과실을 쪼개여 과즙과 함께 채취하여 그대로 2∼3일 정도 놓아두면 발 {효하여 종자와 과육이 분리되는데 이때 가끔 뒤집이 놓는다. 과육이 분리된 후 종자를 천 에 싸서 비벼 물로 씻은 후 꺼내어 통풍이 잘되는 음지에서 건조한다. 보통 종자 채종량은 과실 100개당 약 40g, 과실 1kg당 종자무게는 27g이다. 토마토 종자는 휴면이 거의 없으므로 채종직 후 파종하여도 발아에는 관계없다.2. 종자 발아 및 신장{토마토는 암흑하에서 수분이 있으면 25 에서 36시간이면 발근이 시작되고 발근후 2∼3 일이 지나면 3∼5cm 정도 신장한다. 유근 윗부분에 측근이 발생하기 시작하고 다시 배축 이 신장함에 따라 자엽의 선단이 종피내부에 출현하는데 이시기는 발근 개시후 약 2∼4일 경과 후이고 이때 생장점에서는 이미 2개의 본엽이 분화하는 시기이다. 자엽 및 어린 생 장점이 나오면서 엽록소를 포함한 조직이 발달하여 자엽에서는 광합성이 시작되고 뿌리에 서는 무기양분의 흡수가 시작된다.3. 발육파종 후 10일이 경과되면 자엽은 완전히 전개되고 제 1본엽이 출현한다. 파종 후 20일 경에는 본엽 2매째가 반정도 전개되며 25일경에는 제 1회방이 본엽 8∼9매째 분화된다.4. 착화습성 및 화야분화1 제 8절엽과 제 9절엽사이에서 제 1화방이 착생하고 이후부터의 각 화방은 3절엽 간격 으로 제 2, 3화방순으로 착생함2 자엽 전개후 10일 동안 야간온도를 10 정도로 유지하면 제 1화방은 6∼8절정도에 출 현하며 야간온도를 20∼25 로 조절하면 10∼12절에서 출현 함{5. 화아발육과 과실비대수분 후 40∼50일정도에 착색 되며 개화 후 40∼60일정도에 성숙이 완료된다. 자실수가 3∼ 4개 정도로 적은 과실에서는 과경이 작과 과고가 납작하여 과실비대가 나쁘며 자실수가 5∼6개 정도의 과실에서는좋으며 이것은 심장병이나 간 엽등의 열성병(熱性病)에도 좋다.위산과소증에는 매일 식후마다 생토마토 1개씩 먹으면 된다. 토마토 주스를 1컵씩 복용해 도 좋다.풍습성(風濕性) 피부병에는 토마토 뿌리, 줄기, 잎을 삶은 물을 조금씩 마시고, 이 물로 수 시로 몸을 씻고 이물을 지금씩 마시면 효력이 있다. 이 처방은 신경통에도 좋다.토마토에는 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위산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좋지만, 위산과다증이나 위장이 냉한 사람이 먹으면 좋지 않음.2. 영양학적 가치토마토에는 리코펜, 플라보노이다, 글루타민산, ß- 카로틴, 비타민 C와 E 등 암과 각종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는 많은 물질들이 함유되어 있다.미국 하버드대학 에드워드 조바누치 박사의 보고에 의하면 토마토를 원료로 한 식품을 최 소한 1주일에 10회 이상 섭취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전립선암에 걸릴 확률이 45% 로 감소한다고 한다.리코펜과 ß- 카로틴은 각종 암을 예방하는 작용을 하며, 글루타민산은 피로를 신속하게 회복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비타민 C는 햇볕에 노출될 경우 침착(沈着)되는 기미나 죽은 깨의 원인인 멜라닌 색소의 형성을 억제시켜 주며, 비타민 E는 체내 호르몬 생성을 촉진시 켜 준다.한편 토마토에 함유되어 있는 구연산은 식용중추를 자극하여 식욕을 증진시키며 니코틴의 해독과 함께 숙취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또한 토마토에는 식이 섬유가 풍부하여 식생활 변화에 따라 육류 등의 지질을 많이 섭취 하게 되는 현대인의 건강 유지에도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토마토의 효능1. 토마토의 항암효과토마토를 많이 먹을수록 암 발병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되었다. 미 극 국립암연구소지(Journal of the National Cancer Institute)에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 르면, 가공 여부에 관계없이 토마토를 다량 소방한 사람들의 경우 여러 종류의 암 발병률 이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이번 연구에서는 토마토 섭취와 암 발병 여부를 다룬(cervical cancer) 경우에도 토마토 섭취로 인해 암 발병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미국 일리노이대학(Univ. of Illinois)에서 추진하고 있는 기능성 건강식품 프로그램 (Functional Foods for Health Program)에 참여하고 있는 클레어 헤슬러(Clare Hasler) 박사는 지오바누치 박사의 이번 연구 결과가 지금까지 토마토와 암 발병 사이의 관계를 밝힌 연 구 가운데서 가장 포괄적인 결정판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각종 연구 사례의 분석 평가 외에도 지오바누치 박사는 생야채 상태를 포함해 케첩, 스 파게티 소스, 분쇄 형태의 토마토, 수프 상태의 토마토 등 각종 형태의 토마토가 나타내는 암 억제 효과를 비교하는 연구도 따로 수행했는데, 그 결과 모든 형태의 토마토가 암 발 생 억제효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토마토를 가지고 요리 를 하거나 이를 가공하더라도 토마토의 암 발병 효과가 유지된다는 것이다.그러나 여러 단계의 가공 과정을 거칠 경우에는 지방(fats)과 당성분(suger)등이 첨가될 수 있는데 지방이나 당은 과량 섭취할 경우 건강에 별 다른 이득을 가져오지 않기 때문에 가공 식품이 무조건 좋다고만 볼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이번 연구에서 다룬 연구 사례들의 대부분은 암 환자와 건강한 사람들의 식생활 습관 차 이를 비교 분석하는 연구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 결과들을 살펴보면 암 환자와 건강 한 사람들의 식생활 습관 차이는 토마토의 섭취량과 혈중 라이코핀 함량 차이에서 특히 두드러졌다고 한다. 그러나 토마토가 어떤 기작을 통해 암 발병 위험을 감소시키는지는 아직 불분명히다는 것이 지오바누치 박사의 설명이다. 단지 토마토에는 항암 작용을 가지 는 일부 식물성 화학 성분(phytochemicals)이 풍부하기 때문에 이 물질들로 인해 각종 암 발병 위험이 줄어든다고 짐작할 뿐이다.토마토에 함유되어 있는 식물성 화학 물질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카로티노이드 (carotenoi진다.
서론머리는 24개월이면 다 자란데 갓 젖을 뗀 갓난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이런 이야기를 할만큼 지금 우리 사회는 똑똑한 아이 만들기 열풍이 불고 있다. 0세 교육이니, 3세 교육론이 나오고 아이들에게 취학 전부터 한글쓰기는 물론 외국어까지 익히게 하는 풍토가 이젠 아예 자리를 잡았고 이 때문에 나타난 것이 바로 조기교육 열풍이다. 길을 가다보면 자그마한 체구에 버거워 보이는 큰 가방을 매고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중에는 아직 학교를 다니지 않는 유치원생들도 많이 눈에 띈다. 어렸을 때 많은 학원을 다니고, 여러 가지 공부를 하는 것이 과연 조기교육이라 할 수 있을까? 조기교육 그 자체에 대한 반론은 아니다. 그러나 한참 뛰어 놀아야 하고 그 놀이 속에서 체험을 통한 학습과정을 밟아야 할 아이들에게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등을 떠미는 부모들의 극성이 올바른 조기교육 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녀를 우수한 아이로 키우는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학습에 대한 욕구를 떨어뜨리게 하는 경우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아이의 학습능력을 억지로 향상시키려는 방법보다는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우리 아이에게 가장 효과적인 학습방법이 될지를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자녀를, 특히 유아를 교육한다는 것은 세심한 관심과 관찰이 필요하다. 단순히 우수한 학원이나 선생님에게 아이를 맡김으로써 부모로서의 교육역할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은 생각이라고 볼 수 없다. 실제로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미리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끝낸 아이들의 경우 초등 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오랫동안 맡은 교사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엄마들의 희망이나 기대와는 동떨어진 결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즉 처음에는 '저요, 저요' 하고 힘차게 손을 들고, 답도 척척 맞힌 어린이가 시간이 지나면 실력이 뒤쳐진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학교의 학습 과정과 엄마와 함께 배우는 경우와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학교의 공부는 일정한 체계에 따라 다른 과목과의 안배를 고려해서 일정한 시는 규칙의 인지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한정된 언어자료를 가지고도 어린이들이 듣지도 배우지도 않는 무수한 문장을 이해하고 만들 수 있다는 사실등으로 미루어서 인간의 선천적 능력의 존재를 짐작케하는 것으로 공감이 간다.Diller는 단순히 모방으로 언어를 습득한다면 언어습득에 있어서 외부적인 자극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역할만을 하게 되므로 언어자극과 언어습득 사이에는 정확한 대응관계만이 성립되어 어린이가 이전에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문장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는 분명한 설명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chomsky의 말을 빌리자면 표면적인 언어행동은 내면적인 언어능력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은 언어의 특성이 후천적인 언어습득이 아니라 선척적으로 타고난 언어능력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chomsky는 어린이가 외국어를 배우는 신속성, 용이성, 규칙성 등이 사춘기를 지나면 줄어든다 고 하였다.smith와 wilson에 의하면 인간의 지적능력은 사춘기를 지나서도 점점 발달하지만 어떤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점차 줄어 간다고 LAD의 존재에 대해 지지하고 있다. Brown도 언어 규칙은 복잡하고 추상적인 것임에도 단시일내에 모국어 습득을 가능케 하는 생득적 지식이 담겨져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Lenneberg나 Penfield는 어린이들의 발달과정에 있는 두뇌는 언어 습득에 가장 적절한 감수성과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며, Stern은 어린이가 제2의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은 모국어의 습득과정과 같다고 봄으로 4~8세를 외국어 학습의 적정시기로 보고, Penfield나 Robert역시 4~8세 사이의 어린이가 외국어 학습을 하는데 적령기라고 하였다.그렇다면 LAD를 어린이들이 가장 왕성하게 가지는 시기는 언제인가? 많은 언어학자들에 의하면 1세 반에서 6세 사이의 취학전이고 12세나 13세 경에 없어져 버린다고 한다. Lenneberg는 유아는 태어날 때부터 벌써 60%의 선천적 지식을 가지고 태어) 석사학위논문 조기 영어교육의 제문제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전공 류포열1990년 6월 16일http://www.kid27.com/edu-program/language/englosh/01-02.htm2 임신 5개월에 140억개의 뇌세포가 완성되면 그대로 출생하여 평생토록 유지된다. 뇌에 염증이 생기거나 외부로부터 상처를 입어서 뇌세포의 일부가 훼손되어도 재생되지 않기 때문에 그 부족분을 보충하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갓 태어난 아기의 뇌세포는 태어난 순간부터 외부자극에 반응을 하면서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급속하게 성장해 간다. 따라서 아기 때의 자극이 많아야 뇌세포의 수상돌기가 쑥쑥 자라서 신경섬유가 뻗어 나오게 된다. 우수한 두뇌와 그렇지 못한 두뇌의 차이는 바로 자극의 질의 차이이다. 신경회로의 형성 여러 뇌세포에서 뻗어 나온 신경섬유들끼리 언결됨으로써 각각의 신경세포가 활성화되고 활성화된 신경세포 사이에 전기에너지가 흐르게 된다. 이때 외부 자극의 양의 질의 좋고 나쁨이 두뇌의 질적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자극이 반복되면 연결된 선들이 굵고, 확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적 가치가 있는 우수한 자극을 주어 신경회로를 만들고 반복학습을 통해 신경회로를 강화시켜야 한다. {) http://c_world.hihome.com/n-edu.htm3)사회 심리학적 측면Oliva는 어린이들은 자아의식이나 저항감이 없이 외국어를 분석하거나 모국어와 비교하지 않으므로 그 표현양식이 모국어의 그것과 다른 것에 대하여 별로 개의치 않으며, 따라서 외국어를 말할 때 성인처럼 실수를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사실 중학생만 되어도 자신을 표현하기를 주저하고 실수에 대한 불안함이나, 불완전한 문장을 말하거나 틀리게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커서 언어학습에 어려움이 많다. 실제로 학교에서 영어를 지도해 보면 저학년일수록 발표력이 왕성하고 고학년으로 올라 갈수록 발표력이 떨어진다. 실제로 교육부 지정 영어 시범학교에서의 (Lambert & Tucker 1972, Swain 1978). 어린이들은 몰입학습에서 경험한 것과 동일한 종류의 상황에서 언어의 사용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에 실험한 연구에 따르면 초기의 몰입학습 프로그램의 실험 결과를 통하여 조기외국어 교육이 반드시 나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1962년과 1966년 두차례 있었던 UNESCO주관의 국제회의는 조기 언어교육과 그 효과성에 대한 연구를 진작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 회의에서는 조기 외국어 교육에 관한 여러 가지의 고무적인 관찰기록과 경험적 보고들이 발표되었는데 학교상황에서 조기에 외국어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기존의 교육체제 내에서도 실제적으로 가능하며 어린 아동들이 외국어 교육을 일찍 시작하는 것이 늦게 시작하는 것보다도 반드시 더 낫다는 점은 증명하지 못하였다.어린이와 어른의 LAD에 대한 객관적 연구가 부족한 상태에서 어린이가 어른보다 더 낫다는 주장을 하는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D. Ausubel은 주장한다. 그는 이 점에 있어 E. L.Thorndike가 주장한 어린이는 새로 배우는 언어의 자연스런 발음을 습득하는데 있어 어른보다 어느 정도 나을 뿐, 배우는 시간이 같다면 그 새 언어의 발음 이외의 다른 면에 있어서는 어린이가 어른보다 훨씬 진보가 늦다는 주장을 지지한다.스위스의 심리학자 Jean Piaget에 의하면 인지의 발달에는 몇 개의 단계가 있다고 한다. 첫째, 감각운동 단계로서 생후 2년까지의 어린이는 자기의 바로 주변에 있는 실물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 외부세계의 여러 현상을 표상화시켜 인지적 표상화가 마음속에 이루어져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전조작적 사고단계로서 2~4세의 어린이가 어떤 대상물의 실체와 그것의 내면 즉 상징과 구별을 하는 상징적 사고의 단계와 4~7세의 어린이가 사물에 자기 고유의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적으로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아직 모르는 직관적 사고단계로 나뉜다. 상징적 사고의 단계에서 언어 시작이 같이 중학교 때부터 외국어 교육을 실시해도 상관없으며 대뇌 유연성이 굳어진 후에도 외국어를 훌륭하게 배운 예가 많다고 주장한다. Seliger도 반구편중현상과 결정적 시기는 별개라고 하는 연구들을 소개하고 있어 대뇌 생리에 관한 한 어린이의 능력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서유헌 교수는 언어기능을 담당하는 측두엽은 만 6세 후부터 집중적으로 발달하며 그 이전에는 뇌발달이 이뤄지지 않아 언어학습을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다. 고 소개했다.Asher는 성인의 외국어 습득에 관한 연구에서 성인도 소아와 같은 언어습득 방법으로 외국어를 배울 수 있으며 일정한 조건이 주어질 경우 오히려 소아보다 외국어를 학습 할 수 있는 능력이 높다고 한다. 이 실험결과에 의하면 생물학적 연령은 언어습득에 도움이 안되므로 결정적 시기론은 인정을 받을 수가 없게 된다.언어습득의 선천성 문제에 대해서도 Catford는 성인이 어린이들보다 언어습득에 있어서 불리한 것은 천부적 능력이 상실되어서가 아니라 주로 외국어 학습상 제반 여건이 불리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Brown도 언어습득의 선천성과 관련하여 성인이 언어습득에 있어서 불리한 것은 천부적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지적·정의적인 면의 간섭현상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한다.이와 같은 반대론을 실험을 통해서 주장하는 얘들을 살펴보면, Diller는 1922년 미국 클리브랜드에서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친 결과 소개하였든 바, 이에 참가한 학자들은 외국어 교육의 최적기가 중학교 1학년 때라고 의견을 모았는데, 이는 중학생이 초등학생보다 지적 성숙도가 높고 추리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Ekstrasd의 연구를 Stern이 소개한 바에 의하면 스웨덴이 여러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 네 개 학급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나이가 많을수록 영어의 이해력과 발음에 있어 실수가 적었다고 한다. 또 양인석에 의하면 Ervin-Tripp은 제네바에 사는 4세부터 9세까지의 영어 사용 어린이들이 불어를 제2언어로서 배우는 과정을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