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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원규 교수의 한국사회와 교회공동체 독서보고서
    교회와 사회 기말 보고서『한국 사회문제와 교회 공동체 』지도교수:제 출 일:제 출 자:Ⅰ. 시작하면서기독교가 한국에 전해 진지 100년이 넘었다. 그리고 아직도 전국에는 많은 수의 교회와 교인들이 매주 예배를 드리고, 각종 사회문제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 것은 어찌 보면 일부 깨어 있는 기독교인에 불과하며,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은 단지 기독교인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회 전반적인 의식에 기독교는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기복적인 요소로 혹세무민하는 종교집단을 양산하는 종교라는 느낌을 갖는 것은 비단 본인뿐만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CBS와 YMCA의 인사권문제에 있어서 교계의 정치적인 권위를 가지신 분의 문제가 불거져서 사회 전반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더욱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남의 눈이 무서워서 우리 자신의 비리와 부조리에 대해서 쉬쉬하던 지난 시간들의 과오를 분명하게 씻기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의 모습들과 그 안에서 윤리 종교로서의 모습과 문화 종교로서의 모습을 지향하기 위한 작은 작업들은 지속되어야하고, 새로운 운동과 활동들은 더욱 장려되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한국 사회와 그 사회 안의 교회공동체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제물은 이원규 교수의 『한국사회 문제와 교회공동체』(대한기독교서회, 서울, 2002)를 요약 정리한 것이다.Ⅱ. 몸 되는 말1. 사회 문제와 교회의 사회적 책임문제의 제기: 한국 사회는 살만한 사회인가? 양적인 측면에서 한국사회는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이 사실이다. 그 경제적인 발전의 덕택에 한국인은 과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문화 및 여가생활의 수준도 크게 높아졌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할까? 모든 사회에 문제가 있듯이 우리 사회에도 많은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특별한 것은 으로 “부부, 부모, 자녀, 형제 등 혈연에 의해 맺어지며, 생활을 함께 하는 공동체 혹은 그 성원”이라고 정의 한다.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하나이며, 인간 사회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오래된 기본적인 제도의 하나이다. 가족은 초초로 자아와 인격이 형성될 수 있는 사회화(socialization)의 장이며, 근본적인 하나의 사회 단위이다.가족의 기능적 변화: 가족은 성의 통제기능(sexual regulation function), 재생산 기능(reproductive function), 사회화 기능(socialization function), 애정의 기능(affectional function), 지위 규정의 기능(status definition function), 보호의 기능(protective function), 경제적 기능(economic function)과 같은 여러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사회변동의 결과로 가족의 기능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가족의 구조적 변화: 급격한 사회변동은 가족의 구조에도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한국의 경우 가족의 형태와 규모에서 변화를 보인다. 1975년과 2000년을 비교할 때 가구원 수는 현저하게 줄었다. 이러한 현상은 자녀수의 감소, 핵가족의 증가, 독신자 혹은 무 자녀 가족의 증가라고 하는 가족구조의 변화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1970년과 2000년을 비교해 볼 때 1세대 가족은 두배 반 정도 늘어났고, 3세대 가족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2세대 가족은 다소 늘어났다. 또한 노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특이한 경향이라 하겠다. 이러한 가족의 구조적 변화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이혼율의 증가이다. 이 결과는 우리 사회에서도 다른 선진국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것과 같은 가족해체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가족 구조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가족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이다.가족문제의 성격: 가족문제는 크게 네 가지로 나타난다. 1) 가족의 경제적 부양의 문제이다 특유의 하위문화인 노년문화가 점차 형성, 발전되고 있다는 측면을 강조한다. 매지 쿤은 고령화에 대한 소위 ‘통전적(holistic)’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삶의 다중적이고 다양한 성장에 기초한 전체적인 삶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며 이 이론은 하나의 선물로서 삶의 의미를 강조한다. 통전적 이론은 노인 문제에 대한 가장 희망적이고 적극적인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한국 노인의 실태와 문제: 흔희 65세 이상의 노인이 전체 인구의 7%를 넘는 사회를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 14%를 넘는 사회를 고령사회(aged society)라고 부른다. 한국사회는 이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2022년경에는 한국 사회도 노인인구가 14%를 넘어서는 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평균수명에서 볼 때 여자가 7.6년이나 길다. 이것은 하나의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고 볼 수 있는데, 여자는 말년에 남편과 사별하고 10년 정도를 혼자 살아가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 파급되는 사회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인에 대한 부양에서는 사회적인 것,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측면도 고려가 되어야 한다. 자녀와 별거하는 노인의 다수가 자의로 그것을 결정한다. 이것은 노인들의 독립지향적인 의식 변화를 나타내는데 자녀들과 함께 살면서 겪는 갈등이나 불만이 예전보다 커졌음을 의미할 수 있다. 노부모와 성인 자녀 사이의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성인자녀 편에서 느끼는 갈등의 수준이 훨씬 높다. 이러한 갈등이 노인들의 별거를 재촉하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사회변화와 노인 문제: 급변하는 사회적 상황으로 노인 문제가 발생한다. 심리적인 문제로 노인들은 점차 주변적인 존재로 밀려나게 됨에 따라 별거를 택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노인들의 역할 사실로 인한 심리적인 좌절함은 특히 퇴직한 후에 심화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노인들을 위한 문화, 레저시설은 거의 없고, 그들의 취미나 오락 활동을원으로서 그의 생명과 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인간은 모두 예비 장애인이란 의미에서 장애인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함께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장애인의 개념과 유형: 세계보건기구는 장애의 개념을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불완전하여 일상의 개인적 및 사회적 생활에서 필요한 것을 스스로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 상태”로 정의한다. 장애는 다음과 같은 유형이 있다. 첫째 기능장애이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신체조직 기능의 일부 또는 전부를 상실한 상태이다. 둘째 능력 장애이다. 인간에게 정상적으로 간주되는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능력이 하락 도는 결여된 상태를 말한다. 셋째는 사회적 불리이다. 선천적 또는 노령, 질병, 사고 등으로 인해 그 신체적, 정신적 상태가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손상되어 그 결과 독립생활, 교육, 취직 등이 정해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장애인의 정의는 매우 상대적이다. 신체적, 정신적 손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여 사회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다면 장애인도 정상인과 하등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장애인 실태 및 장애의 원인: 재가 장애인의 대부분은 예방 가능한 각종 질환 및 사고 등 후천적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후천적 원인에 의해 장애가 발생한 경우가 많은 것은 심장장애(95.8%), 신장장애(93.6%), 시각장애(92.2%), 뇌병변장애(91.6%)등이다. 출생 시 원에 의한 장애 발생 비율이 높은 것은 정신지체(36.0%), 언어장애(24.8%)등이었다. 장애의 원인은 장애 유형별로 다를 수 있다. 정서장애의 원인으로는 가정적 요인, 문화적 요인, 학교 요인 등을 들 수 있다.장애인의 특성과 문제: 장애인은 그 기능이나 능력에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소위 정상인들은 이 점에 대한 전 이해를 갖고 장애인을 대해야 한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언어발달이 다소 지연되지만, 사회 정서적 발달은 일반인들의 태도나 반응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청각장애인들의 발달에 가장 영향을 원적 기능은 왜곡되어 왔다. 수급관계의 불균형이 심해지고 이러한 불균형에 의해 다른 상품보다도 자본의 순환에 따른 수계 계층과 피해계층의 격차가 심화되기 쉬워 이 과정에서 피해계층의 주택 문제가 대두된다. 교통문제도 심각한 도시 문제 중의 하나다. 주차장 부족, 대중교통 수단의 문제, 보행환경 문제 등도 도시의 또 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도시 문제 가운데 공해 문제도 심각하다. 공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건강 혹은 자연환경의 파괴에 의한 육체적, 정신적 손실이 초래된다. 그 피해가 일반민중 및 지역사회에 지속적으로 미치고 있다. 도시인은 상호간에 문화적 이질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공동체성의 상실은 곧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생활로 이어지게 되고, 이에 따라 인간관계는 타산적이고 피상적이며 도구적인 관계가 되어버린다. 도시의 크기와 범죄율은 대체로 정비례한다. 강력범죄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황금만능주의 가치관이 확산되고 한탕주의가 도시에서 특히 만연하고 있다. 도시에서 가족해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외형적인 경제적 성장과 물질적 풍요, 그리고 생활의 편리함의 이면에는 여러 가지 심각한 사회문제들이 도시사회에 산적해 있다.도시문제에 대한 교회의 책임: 교회가 할일은 도시인에게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마련해 주는 일이다. 교회는 도시인에게 존재의 가치를 일깨워 줄 뿐 만아니라 ‘우리 감정(we-feeling)’을 느끼면서 상실했던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교회가 해야 할 또 다른 과제는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해서 사회에 확산시키는 일이다. 건강한 가족 가치관을 심어 주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교인들로 하여금 과소비, 사치풍조를 억제함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한을 심어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사회의 도덕성 확립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탈행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교도하는 일도 도시사회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또한 도시 빈민지역에서 사는 소외계층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한다.맺는말: 한국 교회
    독후감/창작| 2008.02.15| 23페이지| 무료| 조회(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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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구원관으로 바라 본 일본 선교연구 평가A+최고예요
    기독교 구원관으로 바라본일본 선교에 관한 연구Ⅰ.들어가는 말Ⅱ.일본인 이해1.일본인의 종교 이해2.일본인의 의식이해Ⅲ.신도에 대한 신학적 평가1.신관2.인간관3.내세관4.구원관5.경전6.그 밖의 특색들Ⅳ.일본의 기독교변천과 현황1.근세 봉건사회의 기독교2.근대국가 형성기의 기독교3.근대 사회의 기독교4.전시하(戰時下)의 기독교5.전후(戰後)의 기독교6.오늘날 기독교 현황Ⅴ.일본선교의 토착화와 실제적 전략1.선교적 전략에 대한 전제2.일본 선교의 문제점3.실제적 전략Ⅵ.나가는 말과 목: 아시아교회사세미나지도교수:제 출 자:제 출 일: 2003년 12월 19일신/학/대/학/원/Ⅰ.들어가는 말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가깝고도 먼나라 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지마는, 과거 35년간의 식민지 시대를 경험한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일본을 선뜻 이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일본인들 또한, 구미지역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고, 그쪽 사람들에 대하여는 호의를 가지고 있으나 한국에 대하여는 과거 자기 나라의 지배를 받은 나라라고 하는 우월의식과, 또 한국인이 갖고 있는 반일감정에 부딪히고 싶지 않아 접촉을 꺼리는 일이 많다. 그러나 요즈음은 일본에서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한일관계의 중요성이 강조 되어지고 있고, 인천공항을 꽉 메운 일본인 관광객들을 보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선교적인 차원에서도 좋은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일본에는 신도나 불교가 재래종교로서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천황제 또한 기독교의 전래를 방해하는 커다란 요소이다. 민족의식이 강하고 타민족이나 문화에 배타성을 가진 일본인들은, 타문화를 자기식으로 수용, 변질화시켜 자기들 특유의 문화로서 공존케 한다. 2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기독교 또한 일본정신이나 사상과 혼합되어진 일본 기독교 특유의 양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기독교인구는 매우 희박한 실정이다.일본종교의 두 가지 주요 흐름은 6세기에 일본으로 전래된 불교와 국민들 로 궁정의 귀족들을 만족시켜 줌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었다.가마쿠라 시대에는 일대 정치적 불안과 사회적 혼란이 있은 시기였는데 이때는 무사와 농부들에게 구제의 희망을 안겨주는 수많은 신흥불교 종파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불교는 종교로서 번성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예술과 학문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막부의 철권정치가 상대적인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면서 세속화가 된 에도 시대에는 불교의 정신적인 활기는 크게 쇠퇴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승려들과 사원의 사회적 정치적 권력도 쇠퇴하고 불교의 문화적인 영향력도 전반적으로 희미해졌다.동아시아의 대승불교 계통에 속하는 일본의 불교는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완성보다는 만인을 위한 극락왕생(極樂往生)을 설교하여 동남아 아 지역의 불교와는 판이한 편이다. 오늘날 일본에는 초기에 일본에 전래되고 발전했던 불교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100여개 이상의 불교종파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 중에는 죠오도(淨土), 죠오도신슈우(淨土眞宗), 니치렌(日連), 신곤(眞言), 텐다이(天台), 젠(禪) 등이 있다.제 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여러 가지 새로운 종교운동이 활기를 띠었는데, 그 중에는 신도에 바탕을 둔 종파, 불교의 어떤 종파에 바탕을 둔 것, 또 어떤 것은 복합적인 종교성향을 띤 종파도 있었다. 이들 신흥종교 운동 중의 상당수는 각자의 종교집단 내에서 다양한 사회, 문화적 활동을 벌였으며, 또 일부는 실질적인 정치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일본 불교를 좀 더 살펴보면 이본의 불교 수용방법은 ‘있는 그대로의 대륙 불교’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하여 거부하며 일본적인 것에 맞도록 이용하려는 수단으로서의 수용이었다. 이것은 외래의 불교를 일본에 맞도록 소화 섭취하는 것과는 다른 것으로 대륙불교의 외양만을 배우고 형편이 좋은 것만을 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증거는 일본의 현재 불교가 법화경을 기본 경전으로 하면서도 많은 종파가 갈라져 나왔고 샤머니즘과 현세 이익을 가미한 신흥종교가 계속 증가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이처럼 불교는 외래 심을 드러내지 않고 숨길 수 있는 능력을 훌륭한 인격중의 하나로 보며, 감정의 직접적 표현, 특히 얼굴로 표현하는 것을 천박한 것으로 생각한다.다테마에는 현실적인 결과를 말하지 않고 그 理想像을 말하는 것으로, 일본역사상 1천여 년 전부터 천황정치 무사정치 등의 체제에서 상전에 절대복종하는 아랫사람(또는 일반서민)들이 체득한 지혜라고 볼 수 있다. "오늘은 격식 없이 마시자"라 할지라도 부하가 이것을 믿고 혼네를 이야기 해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것으로 인식된다. 또한 혼네로 상사와 논쟁하든지 예의 없이 굴면 그것을 이유로 출세코스로부터 밀려나는 것도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다.5) 예절의 중시일본사회는 매우 수직적인 사회로 예절과 매너가 철저하게 중시된다. 일본인이 중시하는 예절은 겸손 자제 인내 관용 등이다. 일본인들은 이와 같은 예의범절을 일본특유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외국인들이 일본인들처럼 행동해주기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행동하면 거부감을 나타낸다.인사할 때 악수를 하는 것은 보편화되고 있지만, 허리를 굽히는 일본전통의 인사법이 더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인사를 할 때 비굴하다고 느껴질 만큼 허리를 굽히며(30도 이상) 오랫동안 굽힌 허리를 펴지 않는다. 특히 작별인사의 경우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이러한 인사를 반복한다.6) 이민족에 대한 배타성일본인은 자신과 타인, 자신의 집단과 타인의 집단, 일본과 외국 등으로 모든 대상을 '우리와 남'으로 구분하여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이 중 '우리'의 부분에 대해서는 신뢰하며 안도감을 느끼나, '남'의 부분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느끼거나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민족에 대하여 대부분의 일본인은 친근감을 느끼지 않지만 이를 표현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겉으로는 대단히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 또한 자신의 생각을 좀처럼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특성에서 이다.7)죄의식일본선교에 있어서 최종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죄의식의 문제라고 본다. 예라 종교도 자유로이 되어지는 일본의 종교를 이사야 벤다산은 “일본교”라고 불렀다. 일본교의 중심은 “신”보다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 중심인 신도에는 인간을 초월하는 신, 종말적 세계관, 교의는 없다. “신학”대신에 “인간학”이 있을 뿐이다.)일본의 기독교에까지도 일본교적 기독교로 변형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들은 이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하며 인간에게 무엇인가 요구되는 것은 꺼려한다. 그러므로 신도에서는 신은 인간을 위한 부속물에 지나지 않고 인간 중심의 사상과 논리만리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3.내세관신도에서는 내세보다는 현세에서의 인간의 위치에 관심이 있다. 신도 저술가들은 이것을 리얼리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이것이 내세에 관한 막연한 추상적인 관념들을 탐닉하기보다는 현재의 실제적이고 물질적인 세계를 사실적인 것으로 강조하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미래의 축복보다는 현세에서의 인간의 행복인 것이다. 신도는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신앙이 아니고 공동체적인 전통이기 때문에 개인은 공동체 속에 잠기게 되고 개인적인 탁월성보다는 공동체의 조화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은 자연을 포함한 좀더 넓은 세계의 일부분으로 본다.) 그러므로 신도주의자들에게 내세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4.구원관신도는 일본인들이 본질적으로 선한 민족일 뿐만 아니라 신들의 직계 자손이기 때문에 구세주가 필요치 않다고 가르친다.)또 그들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해서 가미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무슨 더러움이나 불순물을 얻었든지 간에 그 모든 것은 단순한 의식에 의해서 쉽게 정화될 수 있다. 밝음, 순수함, 성실함은 인간의 이상적인 특성이며 본질적으로 선한 그의 본성은 율법적인 윤리 법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의 행동은 공동체의 안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신도에는 개인의 “구원”의 사상은 없지만 좀 더 큰 공동체에서 조화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은 신도에서 개이 지하로 숨어 들어가게 된다. 이들을 '가꾸레따기리시단(隱九吉利支丹)'이라고 한다.2.근대국가 형성기의 기독교18, 19세기의 서구열강은 아시아의 나라들에게 식민지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그리고 1859년에 그들은 일본과 통상조약을 맺게 된다. 그들의 정치적 압박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은 1869년에 도쿠가와막부체제의 막을 내리고, 메이지 천황하의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했다. 1889년의 제국헌법은 서구풍의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이면서, 신성불가침의 존재로서의 천황의 권위에 무조건의 복종을 요구했다.1873년에 기독교 금령은 폐지되었지만, 정부는 기독교 무시의 정책을 취하고, 헌법은 「안녕과 질서를 저해하지 않고, 또한 국민으로서의 의무에 반하지 않는 한에 있어서」 신교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했다. 기독교는 하나의 사고, 아니면 일본사회의 질서를 혼란시키는 외교(外敎)로서 인식되어져 있었다.3.근대 사회의 기독교20세기가 되자 일본은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으며 천황제를 중심으로 서구 열강과 같이 식민지를 얻기 위해 조선, 중국을 침략해갔다. 그러한 상황 아래에서 기독교는 일본어의 학습, 성서의 번역, 중국 기독교 문서의 간행, 학교와 과외를 통한 서양학의 교육, 의료 사업 등을 행하였다. 1873년 이후에는 직접적으로 전도하여 입신하는 일본인의 수도 조금씩 늘어났다. 그러나 기독교는 일본의 전통적인 사고와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고, 기독교의 강렬한 유일신 신앙은 다신교 풍토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많은 사람들이 천황에 대한 종교적 충성심과 합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독교를 거부했다. 기독교 지도자들 가운데에는 기독교가 일본문화의 성취라고 말하며 또한 유교와의 대비 속에서 기독교를 설명해가면서 기독교의 토착화를 시도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천황의 교육칙어에 반대의사를 표명한 우찌무라 간죠(內村鑑三)의 행위는 세간의 비난을 받게 되기도 한다.4.전시하(戰時下)의 기독교1930년대는 급격한 사회적 변혁기였다. 만성적인 국내불안과 1929년의 세계공황은 일본사회생활의 심각한 영
    인문/어학| 2008.02.16| 16페이지| 무료| 조회(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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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신의 예술신학과 전인교육
    2002년 2학기 간문화 해석학 기말 보고서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전인적 기독교교육을 위한 이신(李信)의 예술신학 -과 목: 간문화 해석학지도교수:제 출 자:제 출 일: 2002년 12월 18일서 론본 론1. 전인교육의 필요성2. 교회 내에서의 전인교육3. 전인교육을 위한 상상력4. 이신(李信)의 예술신학과 상상력5. 전인적 기독교교육의 대안으로서 예술신학결 론신/학/대/학/원서 론우리나라에게 복음의 씨앗이 전파된 지 100년의 시간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 속에 양적이고 질적인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낸 한국교회가 오늘날 그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위기는 갑자기 찾아온 질병과 같은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 내부에 있는 교육철학의 부재와 선교와 전도중심의 교회학교 운영이 낳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 우리나라 교회의 커리큘럼의 구조는 일반 교육의 구조와 거의 다르지 않다. 학년별로 나누어 공부를 하고 공부가 끝나면 특별활동을 한다. 공과공부라는 것도 대부분이 교실에서만 할 수 있고 문자위주로 하는 공부를 늘 답습하고 있다. 또한 사회 전반적인 교육철학의 부재에 대해서 교회교육은 그 잘못된 습성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다. 입시위주의 교육 현실에 장단을 함께 맞추지 못하면 올바른 교회교육을 하지 못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학교에서의 모범생이 교회에서 모범생으로 여겨지고, 학원을 위해서 교회를 나오지 않아도 당당하다.우리나라의 교회교육 현실을 보면서 과연 우리의 기독교교육 철학은 무엇일까? 대안은 무엇일까? 앞으로 한국교회의 교회학교는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철학을 갖고 아이들을 만나야 할 것인가? 필자는 한 학기 간문화해석학이란 수업을 들으면서 조직신학적인 관심보다는 한국교회의 비인간적인 교육 풍토를 어떻게 하면 전인적이고 인간적인 교육 풍토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단지 교리만을 가르치고 기존의 언어지향적이고 청각지향적인 설교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사회를 살아갈 미래인이 인간답게 살수 학교는 학생들을 모두 견공을 기르듯 가르치고 기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교육의 전부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인교육을 알기 전에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교육의 진정한 본질은 인류가 살아오면서 지나온 각 시대가 요구하는 인류사회의 목표를 실현하는 기능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을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교육이란 첫째로 앞세대가 누리던 체제를 후대의 세대에게 물려주는 체제수호의 기능, 둘째로 앞세대의 체제보다 다음 세대를 하나하나의 인격으로 키워주는 인격도야의 기능, 셋째로 인류의 정신문화를 더욱 발전시키고자하는 정신문화 번식의 기능, 넷째로 앞세대와 뒷세대가 협동하여 주어진 취약점이나 병폐를 극복하고 ‘새 질서’를 창출하려는 체제혁신의 기능들 모두 포괄하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네 가지 기능은 서로 모순되는 점이 있다. 첫 번째와 네 번째가 모순되고, 두 번째와 세 번째가 모순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필요한 것이 바로 교육이다. 진정한 교육은 서로 모순하는 이 네 가지 기능이 자기 몫을 주장하며 협동함으로서만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이러한 진정한 교육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의미를 따져 볼 때 학교붕괴로까지 이어지는 교육의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방법은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고 모든 것을 전인적인 교육을 위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전인교육이란 말 그대로 온전한 인간됨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온전한 인간됨의 교육이란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인간으로 형성되도록 돕는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즉 전인교육은 우선 인간을 일깨워주는 교육 가운데에서도 특정의 지식?기능?주의에 쏠리지 않는 폭 넓은 교육을 지칭한다.) 어떤 한 기능이 주는 효능을 추구하기 위해 하는 교육이 아니라, 인간됨을 그대로 발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전인교육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전인교육의 필요성은 계속해서 강조되는 것이거니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 당위성을 논하고 따지는 것은 이미 다른 연. 사회적인 영향이 종교전반에 힘을 발휘한 현상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여하한 이유에서든 기독교회가 양적인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그리고 그 양적인 성장에 알맞은 질적인 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물론 기독교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는 경이로운 일이며 매우 환영해야 할 일중에 하나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양적인 성장이 이면에 기존의 기독교회가 잃어버리고 만 것이 있다. 그것은 교인은 많아 졌지만 그런 교인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성숙한 신앙인 내지는 기독교인으로 이끄는 것에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것 같다는 말이다. 즉 선교 100년이 넘은 한국의 기독교는 나름의 한국적 기독교 문화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동시에 이러한 현실에서 특별히 미래를 살아가야할 아직 연소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회교육에 교육적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존의 성장 제일주의적인 사고방식에서 기인하는 양적인 선교의 방향에 고정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앞서서 지적한 교육의 네 가지 기능 중에는 앞선 세대의 체제를 유지하는 기능도 있거니와 동시에 앞선 세대에서 볼 수 없는 창조적인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은 앞선 세대의 성공적인 결과를 답습하고 양적인 성장을 이루는 것을 성공한 교육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기독교교육의 대안적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중에 하나라고 하겠다. 이후 제기하는 대안적 기독교교육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송순재교수의 소논문을 참조하여 진술할 것이다.대안교육이 무엇인가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 흐름을 따르는 운동의 폭은 매우 다양하며 각 지역과 나라에 따라 전개되는 논의의 방향과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예를 들어 ‘대안적’이라는 말에 대하여 전제를 둔다면 “보다 진보적이고, 현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는 말로 연결시켜주는 전인적 경험이 되도록 지원하는 것은 기독교교육에 있어서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 )그렇다. 신앙이라는 것은 단지 한곳에만 치우쳐 발달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이란 머리로만 하는 연구과제가 아니며 그렇다고 실천만을 강조하고 비학습적이라고 하기엔 비합리적인 부분이 많다. 때문에 신앙과 교육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그 둘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서는 전인적인 발달이라는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던 감성적인 부분을 재발견해야 할 과제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한 대안으로 상상력을 들어보자.상상력이란 ... 예술적 창조성, 환상, 과학적 발견, 발명, 독창성과 같은 인간의 능력으로 보는 것이 주도적 이해일 것이다. ... 그러나 상상력은 이성과 ...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최근 신경생리학의 연구결과는 ... 상상의 작용이 뇌의 전부위에 걸쳐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즉 상상력은 이성의 한 작용이다. ... )상상력은 (1)신앙형성에 있어서 개인의 전인적 참여와 (2)신인 관계의 연합성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며, 신앙교육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그리고 결정적인 인간의 정신 활동이다. )보통 상상력이라 하면 감정의 차원에서 나오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때문에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만 상상력을 강조하려는 흐름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상상력은 위의 논거가 말하듯이 한쪽에 치우진 감성적인 활동이 아니라, 우리 두뇌의 전부분에서 일어나는 지적인 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지각하고 상상하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전 두뇌적인 활동으로 인해 지각되는 초월적인 존재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신앙교육은 이러한 전 두뇌적인 활동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인적인 신앙교육을 위한 상상력의 사용과 상상력의 자극은 단순한 감성의 도야가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상상력을 통한 기독교교육이 있던 이미지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며 동시에 앞서 진술한 전인적인 기독교교육의 대안으로서 시각적 예술신학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이신(李信)은 오늘 우리의 시대의 죄를 자신의 의식이 둔화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인간의 실상에서 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의 둔화란 다른 말로 하면 상상력의 부재 내지는 그것의 부패로서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앗아가는 무서운 독소 인 것이다. 이신(李信)은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인간을 인간이 갖고 있는 상상력의 기능에서 찾는 다. 하나님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는 것처럼 상상의 세계 안에서 인간에게도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신(李信)은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 형상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이메지네이션 속에서 상상력을 통해 절대 자유한 경지를 찾아내고 그것을 예술작품 속에서 가시화시켜내려는 노력을 하는데 이신(李信)은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물론 이미지들이 인간 욕망을 자극하고 유혹하며 때로 거짓된 환상을 날조하는 상황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신(李信)은 더더욱 이미지의 부패를 치유하기 위해 종교인, 신학자들의 상상력이 필요한 시기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관심하고 추종했던 슐리얼리즘은 합리성 의식이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모체로 하여 생성되었던 것이다. 이미지와 상상을 인간의 원초적인 인식기능으로 이해하고 그 바탕을 했던 이신(李信)은 한국 신학계에 예술 신학 장르를 개척한 사상가로 기록되어야 한다. 서구 기독교의 이미지 증오역사는 이분법적 사고에 기초된 것으로 극복되고 고쳐져야 할 사안일 수밖에 없다. 이미지는 기만적이거나 현실을 마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지식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제한적으로 수용되는 상상력은 인간의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로만 구속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며 인간의 온몸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 신이다.
    예체능| 2008.02.16| 9페이지| 무료| 조회(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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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리와 장정 - 감리교 교리에 관하여
    2004년 봄학기 교리와 장정 중간페이퍼감리교의 교리에 대하여들어가는 말3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감리교회의 교리를 늘 갱신하는 것은 2000년이 넘은 교회의 법을 갱신하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제대로 된 교리문답서가 없다고 말하기 보다는 기존에 있는 짧은 것이라고 되살리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웨슬리가 제정한 24개의 교리라던가 웨슬리 사후 각 감리교회가 제정한 교리문답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유용한 작업이라고 여겨진다.몸되는 말1. 초기 감리교인들의 규칙에 관하여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을 따르는 사람들은 새로운 교리를 세우고 그에 근거하여 모든 규칙이나 규례를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영국 국교회의 교리를 따르면서 세부적이고 가장 간단한 지침들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감리교 연합신도회 규칙이다. 이 규칙들은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협소한 범위에 제한되어 있다. 세 가지의 큰 지침이 있고, 그에 합당하는 세부지침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악을 떠나 선을 행하며 예법을 지키라는 기본 구조를 갖고 있으며 그 기본 구조 안에 실제 당시의 상황에서 지키지 않으면 안 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규범을 세운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자리에서 바탕이 되어 지켜져야 할 규칙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의 교리라고 부르기 보다는 모임의 성격을 규정하는 회칙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2. 24개 교리에 관하여웨슬리는 영국국교회의 사제로서 기독교의 교리적 핵심을 영국국교회에서 배웠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24개 교리는 영국국교회의 39개 교리를 취사선택하여 제정한다. 이러한 교리의 제정은 국교회와 전혀 다른 교파를 형성하기 위한 수정이 아니다. 루터나 칼뱅과 같은 종교개혁가들의 사상이 기존의 가톨릭 교리에서 반발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운 것이라고 한다면 웨슬리는 영국국교회와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영국교회의 교리가 불필요한 것들을 취하고 있어서 비만적인 상황에 있었다고 한다면 웨슬리의 24개 교리는 군살을 뺀 교리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자질구레하며 불필요한 것들은 삭제, 변경하는 것으로 그 작업의 효율을 높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첫 번째 24개 교리는 가장 먼저 전능하신 유일신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교회가 고백하는 기본적인 교리이다. 두 번째로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참 인간되심과 참 하나님되심에 대하여 말한다. 이러한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고백도 모든 교회에서 기본으로 삼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구약과 신약의 수용이라던가 성령, 원죄, 교회, 성례, 세례, 주의 만찬, 십자가의 구원 등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교회(가톨릭을 포함하여)가 전부 인정하는 매우 핵심적인 사항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들은 감리교의 전통과 감리교의 교리적 성향이 기존의 기독교회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즉 감리교회는 전혀 색다른 기독교회의 이단적인 운동이 아니라, 참 그리스도의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자들의 참된 모임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감리교인들은 전지전능하시고,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믿는다. 그는 유일하시며 일체(一體) 안에 삼위를 가지신 분으로 이 세상을 운영하시는 가장 큰 주인이 되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믿는다. 성자는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온전한 인간이 되심을 믿는다. 또한 그렇게 온전한 신인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원죄와 자범죄에 대한 희생의 제물이 되셨고, 부활을 약속하신 분이 되셨다. 이 성자께서는 말씀과 동일하시다. 이러한 것을 증거하고 있는 성경은 교회로부터 권위를 받았으나 인간의 임의대로 권위를 부여한 것이 아니다. 성경이라는 것은 교회는 전통에 의해서 권위를 인정받은 것이나 이러한 교회의 전통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으로 믿는다. 이 성경의 구약과 신약의 목록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과 동일하며, 그 내용에 있어서 신약과 구약은 별개의 다른 책이 아니라, 통일성을 갖고 있다. 그 통일성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증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일체에 함께하시는 성령을 감리교인들은 믿고 있다. 원죄는 아담 이후 인간에게 유전되고 있는 인간본서의 부패함을 말한다. 이는 인간의 자범죄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며 원죄라는 것은 형법상의 위법행위가 아니라 그러한 위법행위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교리와 법도를 따르는 성도들이 모여 있는 유형 무형의 장소이다. 이러한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성례와 말씀의 선포는 교회의 본질적인 것이며, 이러한 성례와 말씀의 선포로 인하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고 수용한다. 이것이 바로 참된 그리스도교회의 핵심적인 교리가 된다.그 외에 자유의지, 칭의, 선행, 의무이상의 선행, 칭의의 은혜를 얻은 후의 범죄, 교회의 예법과 의식, 그리스도의 재물, 그리스도인의 맹세에 관한 교리들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교회교리로서 이해할 수 있다. 신학적인 방침은 핵심에 있어서 전혀 다르지 않지만, 기존의 교회가 간과하고 있던 문제, 혹은 기존의 교회가 악용하고 있었던 옳지 않은 부분에 대한 개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앞서 말했던 것들이다. 이 부분에서는 웨슬리의 독특한 신학적 사고틀을 알 수 있다. 감리교회가 기존의 가톨릭교회와 또한 영국국교회 및 다른 개신교회와의 개별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즉 감리교의 정체성을 밝혀주는 교리적 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감리교인들은 정통기독교인으로서 또한 감리교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유의지에 관하여 칭의에 관하여 선행에 관하여 또한 교회의 예법에 관하여 고유한 교리를 갖는다. 자유의지는 우리와 함께 일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하기 위한 원동력이 된다. 이것은 남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증거가 바로 자유의지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의지와 자신의 능력으로 의롭게 될 수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칭의의 바탕 안에 있어야한다. 이것이 바로 칭의이다. 우리가 의롭다 여김을 얻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해 믿는 것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선행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거나 구원을 얻는 수단이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은혜의 열매로 맺혀지는 것이다. 때문에 선행은 우리의 죄를 없앨 수 없다. 선행라는 것은 결과이며 구원을 향해 가는 여정에 있어서 매우 유용한 길잡이가 된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선행은 인간의 일에 있어서 그 일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다만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맺는 결과로서의 선행은 그 자체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지, 물질적으로 더 많은 선행과 더 적은 선행은 본질적으로 그릇된 생각에 나오는 판단의 기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후에라도 은혜를 배반하고 죄에 빠질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죄에 빠진 후에라도 다시금 하나님께 돌아갈 여지가 있고, 우리의 삶을 개정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선행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라면 칭의 후에 죄를 지을 수 없으며, 죄를 지었다고 한다면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갈 방도가 없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갈 방도가 생긴다. 때문에 선행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고, 그 선행이 많고 적음으로 우리의 구원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가톨릭은 연옥을 인정하지만, 다른 개신교의 전통과 마찬가지로 감리교회는 연옥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성경에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아무런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은 회중의 언어로서 성례가 이루어진다는 개신교의 개혁정신을 감리교회는 수용한다. 때문에 회중이 알아듣지 못할 방언으로 성례를 행하는 것은 초대교회의 규례를 어기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감리교인들)은 재물을 너그럽게 베풀어야 하며, 그것을 자랑할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감리교인들)은 헛되고 경솔하게 맹세하는 것을 금한다. 다만 선지자들의 가르침과 정의와 진리와 확신가운데 믿음과 사랑으로 맹세하는 것은 금하지 않는다.
    인문/어학| 2008.02.16| 3페이지| 무료| 조회(2,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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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원의 조건(감리교교리)
    감리교신학 중간 레포트구원의 조건시작하면서감리교인으로서 또한 감리교신학대학의 학생으로서, 감리교신앙을 가르치는 교사와 목회자로서 감리교신학이 말하는 구원에 관하여 성경을 근거로 매주 설교하면서도 때로는 매우 어정쩡한 표현을 사용할 때가 있다. 감리교의 역사가 400년에 가깝게 흘러오면서 특히 감리교신학대학이 100년 이상의 자취를 걸어오면서 이루어낸 상아탑과 현장의 차이를 오롯이 연결하지 못한 스스로의 게으름을 자책한다. 처음 기독교를 접했을 때, 구원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기보다는 여타의 요인들로 인해 신앙생활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소홀했던 자신을 또한 반성한다. 하지만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며 동시에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임을 확인할 때, 영적인 구원에 대해서 나름의 결론을 짓는 것이 매우 절실한 신앙적이며, 신학적인 현실임을 자각한다. 이러한 자각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은 신앙의 양심에 거스르는 태도임을 자인하면서 감리교신학과 웨슬리가 이해하고 있던 인간의 구원문제에 대해서 본 대학의 두 교수님(송성진, 김홍기 교수)의 견해를 숙지하고 그 두 의견을 통해 내 자신이 내릴 수 있는 결론에 대해서 겸손히 써 보고자 한다.믿음과 사랑/선행(善行)의 관계첫 번째 김홍기 교수의 글을 살펴보면서 그가 주장하는 웨슬리의 구원과 성화 그리고 믿음과 선행의 관계에 대해 기술하려 한다. 이 부분의 내용은 김홍기 교수의 글 “존 웨슬리 구원론에 있어서 믿음과 사랑/선행(善行)의 관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미리 밝히며, 단락의 내용은 필자가 이해한 김홍기 교수의 주장임을 미리 밝혀둔다.김홍기 교수에 의하면 웨슬리는 성화를 추구하기 위해서 율법폐기론적인 의견들과 논쟁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율법폐기론적인 이해를 철저히 배제하였다. 그(웨슬리)는 또한 그리스도 이외의 어떠한 은총의 수단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을 주장한다. 웨슬리는 정숙주의는 율법폐기론에 이르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는 사랑 안에서 성장하는 한 편, 또한 거룩함 안에서선행의 실천도 할 수 없다. 그 은총은 예정의 은총이 아니라 선재적 은총(Prevenient Grace)인 것이다.웨슬리는 믿음과 함께 선행의 실천을 통해 본성마저도 변화하는 능동적이고 주관적, 본성적인 의로움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성도들도 본받아서 의롭다하심을 수동적으로 전가 받음뿐만 아니라, 의로운 사람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웨슬리는 인간의 자유는 도덕적 책임의식(moral accountability)을 유지하고 운명적 율법폐기론을 피하기 위해 필연적이라고 느꼈다.선행에 의한 구원은 인간 선행의 공로로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구원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시작되었는데, 십자가의 공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결과로써 선행과 사랑의 실천을 통해 구원의 완성 곧 성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웨슬리는 구원의 출발(initial salvation)은 믿음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지만, 구원의 완성(final salvation)은 믿음과 사랑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회개는 종교의 현관이요, 믿음은 종교의 문이며, 성결과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성화는 종교 그 자체이다. 웨슬리의 행동주의 신학은 루터의 신앙제일주의와 정숙주의를 비판하면서 형성되었다. 웨슬리는 야고보서 2장의 주석에서 말하기를 로마서의 의인화는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는 것, 곧 객관적으로, 수동적으로, 법정적으로 전가되는 의인화(義認化: imputation)를 말하고, 야고보서의 의인화는 실제로, 본성적으로, 주관적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의인화(義人化: impartaion)를 말한다고 본다. 선행은 믿음을 주지 못하나, 믿음은 선행을 낳고, 선행으로 완성된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구원의 출발은 의롭다하심과 거듭남의 조건인 믿음 만이지만, 구원의 완성인 성화와 완전성화의 조건에는 사랑과 선행이 필요(必要)하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선행은 의롭다하심의 출발을 일으키지 못함을 강조하는 한 편, 다른 한 편으로 의롭다하심의 완성과 구원의 완성에서는 필요함을 역설한다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구원과 성화를 위한 두 개의 채널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웨슬리는 회개와 믿음에 근거한 선행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회개와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아 죄에서 성결을 힘쓰는 것이 소극적이고, 낮은 성화의 방법이라면, 회개와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아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려고 애쓰는 것은 적극적이고 높은 성화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성화의 조건은 회개, 믿음, 경건의 선행을 통한 성결추구, 자비의 선행을 통한 사랑추구라고 할 수 있다.웨슬리의 속회의 목적은 성화훈련이라는 질적 성숙을 도모하는 목회적이고 신앙적인 동기에 있었다. 자신의 영적 상태들을 간증형식으로 고백하고 나눔으로써 서로 권면하고 돌보며, 격려하고, 위로하는 영적 책임의식을 가졌다는 것이다.웨슬리의 성화는 하나님의 성령이 먼저 역사 하지만 거기에 인간이 자유의지로 응답함으로써(신인협조로 인하여) 성화가 이루어진다. 김홍기 교수에 의하면 성화는 믿음과 사랑으로 이루어진다고 웨슬리는 생각했다는 것이다. 선행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의지는 선재적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의 선재적 은총으로 믿는 성도나 안 믿는 자연인들 속에소 부분적인 자유의지의 회복이 이루어졌다고 해석한다. 선재적 은총은 구원의 여명으로써 구원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을 뜻한다. 그는 ‘우리 없이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 없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다’라는 어거스틴의 말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이 먼저 일하시니 우리도 일할 수 있고, 하나님이 먼저 일하시니 우리도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위에 서술한 김홍기 교수의 글의 특징과 그 의도를 보았을 때, 긍정적으로 평가를 한다면 주제적인 전제를 두고 해석한 면이 강하다는 점이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논리적이기 보다는 의도적인 글의 전개를 선호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그는 선행은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동시에 구원과 성화를 이루기 위해서 두 개의 채널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리한 것이다. 때문에 필자의 의중에 있는 어떠한 신학적인 견해도 배제되어 있음을 전제한다. 다만 이 단락의 말미에 송성진 교수의 글을 정리하면서 이해한 내용을 나름대로 서술한 부분을 첨가할 것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송성진 교수는 웨슬리의 구원사상에 있어서 칭의의 조건과 성화의 조건은 대칭적이라고 본다. 이것은 선행은 성화됨의 조건이며, 선행은 칭의 됨의 조건이 아니라, 칭의 사실의 현존을 증거하는 조건이라는 말이다.웨슬리가 말하는 성화의 실존적 의미는 사랑의 생명이다. 성화는 우선적으로 사랑의 존재인 것이다. 사랑의 존재는 불가불 사랑의 행위 내지는 선행을 통하여 사랑의 존재성을 표현한다. 때문에 사랑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내리시는 사랑의 은총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믿음을 통하여 수용될 때 우리의 존재는 사랑의 존재로 변하게 된다. 즉 성화되는 것이다. 성화는 하나님의 사랑에의 참여와 닮음이다. 성화는 사랑의 존재로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랑의 행위는 사랑의 존재됨에서 나오고, 사랑의 존재됨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사랑의 은총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사랑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믿음에 의하여 성화되는 것이며, 인간의 선행으로 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웨슬리의 사상은 그러므로 선행성화가 아니라, 성화선행인 것이다. 즉 은총으로 말미암아 믿음에 의항 성화되었고, 이제 선행할 수 있으며,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총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성화되기 때문이다. 성화의 존재는 행위의 공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믿음에 의한 성화는 선행을 낳게 된다. 즉 성화의 열매로서 선행은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웨슬리는 성화에 대하여 선행이 어떤 의미에서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칭의에 대해서도 선행이 어떤 의미에서 필요하다고 말한다. 웨슬리에 의하면 선행은 성화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칭의에 대해서도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칭의와 성화에 대해 공히 대칭적으로 요청되는 선행의 필요성은 칭의와 성화에 대해서 공히 대칭적으로 요청되는 믿음의 필요성용에 의하여 우리의 실존에 구원론적 효과가 나타남을 말한다. 웨슬리는 ‘은총을 통한(through grace)’, ‘믿음에 의한(by faith)’ 구원을 말하고 있다. 구원의 근원은 은총이며, 구원 은총에 대한 수용은 믿음인 것이다.이와 같은 믿음은 세 가지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이다. 두 번째는 확신, 신뢰, 의존, 굳게 잇대어짐이다. 세 번째는 받아 모심인데, 그리스도를 받아 모심이다. 즉 믿음이란 알고, 신뢰하고, 받아 모시는 것이다. ‘성서적 구원의 길’은 믿음에 내포되어 있는 ‘하나님의 증거’ 내지는 ‘초자연적인 빛’을 언급함으로써 믿음의 은사적 측면을 지시하고 있다. 믿음은 곧 하나님의 은사이다. 동시에 믿음은 우리의 책임이다. 믿음의 현존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함이 마땅한 동시에, 또 믿음의 부재 즉 불신앙에 대해서는 불신자 자신이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오직 은총으로 말미암은, 오직 믿음을 통한 칭의와 성화이면, 선행성화가 아닌, 성화선행이 옳다. 은총은 치의와 성화의 유일한 원인이 되고, 믿음은 그러한 은총을 받아 누리는 유일한 직접적 조건이 된다. 오직 은총에 의하여 오직 믿음을 통하여 칭의되고 성화된다는 것이 웨슬리 구원론의 핵심이다. 은총으로 말미암아 믿음에 의하여 성화된 존재는 필히 선행을 낳는다. 선행은 성화의 열매로서 성화를 증거한다.웨슬리의 구원론에 있어서 선행과 믿음의 관계를 구명하는데 있어서 ‘구원의 원인’과 ‘구원의 길’ 사이의 구별은 필수적이다. 구원의 직접적 조건은 오직 믿음이며, 선행은 구원의 간접적 조건이 된다. 선행은 믿음보다 아래의 질서에 속한다. 웨슬리의 구원론은 은총을 구원의 유일한 원인으로 이해하며, 그 은총에 대한 인식, 신뢰, 수용으로서의 믿음을 구원 얻음의 유일한 직접적 조건으로 이해한다.웨슬리의 사상은 믿음을 통하여 받들어 모신 성화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성화되는 것이다. 선행은 성화의 효과로서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오직 은총으로 말미암아 오직 믿음을 통하여 이루이다.
    인문/어학| 2008.02.16| 8페이지| 무료| 조회(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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