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의 「에밀」을 읽고...영어교육과 3학년20024425 이단비루소의 「에밀」은 평소 귀에 많이 익은 책이었다. 교육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필수적으로 한번쯤은 읽어봐야 한다고 할 정도로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야 기회가 되어 읽어보았다. 그러나 처음 기대와는 달리 단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고 말았다. 두꺼운 책에 너무 작은 글씨에 순서도 없고,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짤막짤막한 내용들이 이해하기도 전에 이미 다른 주제로 넘어가 있었고,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은 내용들로 혼란스러워졌다. 자연주의와 루소에 대한 발표준비도 할 겸, 독후감도 쓸 겸해서 고른 책이 너무 난해해서 인내심이 많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일단 한번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책을 열었다. 책을 읽고 난 지금도 여전히 내용을 이해하기가 힘들 정도로 심오한 책이지만 에밀이라는 한 인간의 성장과정을 통해서 저자의 교육관과 또 어떤 것이 진정 인간을 위하고 인간에게 이로운 교육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위대한 인물은 자기가 태어난 고향이나 집안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왜냐하면 영웅의 치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이 들어맞는 인물이 바로 자연주의 사상의 대표자인 장 자크 루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 수업시간에도 살펴봤듯이 고전 「에밀」을 통해 인간의 심성과 교육사상을 설파했던 루소는 제네바에서 시계 직공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도 없이 어린시절을 매우 불우하게 보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의 결과인지는 몰라도 루소는 잘생긴 외모답게 창녀들과 어울려 지낼 정도로 매우 문란한 성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이 무렵 그는 자신의 방황을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해서였는지 섹스 예찬론자였다는 후문도 있다. 그리고 루소는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다. 소위 정규의 교육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변칙적인 생활을 해 온 것이다. 루소는 자기의 생모가 자기를 낳은 열흘 만에 사망하여서, 루소는 6살까지는 숙은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에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교육에 대해서 어떤 대책을 제시하지는 못할지라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우리 시대의 문학과 학문은 건설적인 것 보다는 파괴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우리는 루소와 같이 그것이 다소 이상적일지라도 지금과는 다른 뭔가 다른 태도를 찾아서 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정확히 말해서 성인들은) 어린이를 전혀 알지 못한다. 어린이에 대한 생각이 잘못 되었기 때문에 나아가면 갈수록 점점 정도를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사들조차도 어린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어른들이 알아야 할 것에 대해서만 열중하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어린이 속에서 어른을 찾고 어른이 되기 전의 어린이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이라는 고유한 객체를 단지 어른이 되기 전 과정으로, 어른에 한참 못 미치는 모자라는 단계로만 인식할 뿐이다. 루소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에밀이라는 어린아이의 교육을 논하고 있다. 루소는 교육은 출생과 동시에 시작된다고 하면서 우리가 참으로 배울 것은 인간과 그 환경이고 진정한 교육은 타에서 배운 것보다 스스로 실행해 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루소는 어린아이의 신체의 단련과 부모와의 관계를 논하였다. 루소는 글의 내용의 흐름에서 '에밀'이라는 이름의 인물을 등장시켜서 그의 성장을 따라 글을 전개시키고 있다. 실제적으로 에밀의 자세한 성장의 흐름은 묘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만, 에밀의 성장을 단계적으로 구분하여 그 각각의 단계마다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루소의 생각이나 주장을 엿볼 수가 있다. 「에밀」은 작품 전체가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이의 탄생부터 청년기까지의 기간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교육하고 있다.제1부에서는, 교육에 관한 일반적 총론을 말하고, 교육의 목표를 설정하고 있으며 출생부이나 허리띠나 보자기 같은 것으로써 잡아매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또한 사지를 자유로이 하여 모들이 자식이 태어났어도 자신들이 직접 돌보는 것보다는 유모들에게 자식을 맡겼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루소는 갓난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의 부모와의 관계를 교사의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하였다. 그래서 좋은 교사는 어떠한 자격이 필요한 것에 대해서 많은 논의를 했지만 첫 번째로 제시한 것이 그 자격을 돈으로써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직접 즉, 부모 자신이 그것을 담당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루소는 모든 유아의 교육은 아이를 "혼자 있게"해 줌으로써 자연의 섭리에 따라 양육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1부에서 여러 차례 반복해서 강조하는 말은, '어린아이의 감각을 통한 경험들이 그이 사고(思考)의 원료가 되고, 그러므로 그런 경험들은 순서에 맞추어 아이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그 다음 제2부에서는 5세부터 12세까지의, 즉, 아동기의 교육을 논하고 있다. "인간도 동물도 아닌 아동이다"라는 전형적인 아동시대로서, 여기에 그의 소극교육, 감각교육, 사물의 교육, 육체의 훈련, 초기의 지적교육이 가장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아동 특유의 견해, 느낌, 생각함이 있다는 것도 가장 명확하게 되어있다. 그는 이 기간 동안에 아이의 오관의 기능을 충분히 계발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감각의 계발을 상세히 논함으로써 그의 의 중요성이 아주 명백해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것이 사람이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처음으로 배우고 가벼운 고통을 무서워하지 않고 참으며 큰 고통을 참으로 배워 나가는 시기로 설정을 하였고, 어린아이의 성장의 중심이 되는 시기로서 아이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자 아이의 자유로운 성장배경을 제시하였다. 아이의 성장을 위하여 아이가 뛰어다니려고 할 때에 이를 제지하여서는 안 되며, 아이가 가만히 있으려고 할 때 이를 권장하여서도 안 된다고 하였고, 아이들이 뛰고 싶어 할 때는 뛰게 하고 소리 지르게 하고 싶으면 지르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즉 아이의 자유로운 성장배경을 제시하고 있다. 이루는 최대 체력의 증진기로서 일생 중 가장 귀중한 시기이자 짧은 시기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근로, 면학, 교훈을 얻는 시기이다. 이 체력증진의 기간에 그에 맞는 방향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장래에 소용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아이에게 교훈을 주고자 할 때에는 순전한 이론적 지식은 이 시기에는 적당치 않다고 서술하고 있다. 오히려 이 시기에는 모든 실험을 연역에 의해서 연결시키면서 자연의 모든 법칙을 연구함에 있어서 가장 평범하고 명백한 현상부터 아이의 사물교육의 근간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또한 노동은 사회에 사는 인간의 필수적인 의무임을 강조를 하면서 근로의 가치성과 자기 자신의 실정에 맞는 노동의 선택을 중시하고 있다.이렇듯 1, 2, 3편에서는 아직 이성을 형성하지 못한 '아이'라는 표현으로 그의 교육론을 표명하고 있는데 특히 '자연'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루소가 말하고 싶어 하는 [자연]이라는 말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라기보다, 더 넓은 광범위한 조물주가 창조한 그대로의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은 상태로서의 굳이 말하자면 '본성'이라고 해야 할까? 청소년기 이후도 마찬가지겠지만 유아기 때의 교육법은 있는 그대로를 가르치는 즉, [소극적인 교육]이라고 했다. 이 책의 서두를 보면 "신이 만물을 창조할 때에는 모든 것이 선하지만, 인간의 손에 건네지면 모두가 타락한다."라고 시작하고 있다. 그의 소위 [소극적 교육]이란 것은 아동기 교육 때에 특히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만족하고 있을 때 인간은 대단히 강하다. 그러나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려고 안간힘을 쓸 때, 약한 존재가 된다."라는 표현으로 그의 소극적 교육론을 약간은 짐작할 수 있다.그러나 이런 그의 [소극적 교육론]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찬성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에밀」이 쓰여 진 시대에는 지금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필력에 동조했겠지만 시대가 변한 지금의 시점에서 내가 본 소극적 교육론은 그렇지가 경험에서 보더라도 이는 매우 위험한 도전이며, 잘못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밋밋한 인간을 만들어 낼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소극적 교육의 역효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또, 루소는 "지혜라는 것은 모두 비굴한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지혜를 갖춤으로써 인간은 보다 더 사색하게 되고 발전하게 된다는 생각이 이미 깊이 깔려있는 나로서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고 너무 극단적인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마도 현대사회에 적합한 우수성을 인정받는 아이는 어쩌면 다방면의 지혜를 고루 갖춘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일 것이라는 비관 섞인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에밀에 대한 루소의 교육법 중 '시간을 소비하는 교육법'에 따른다면, 아이의 내면에 있는 '자연'을 다치지 않게 보호하면서 아이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유의하여 관찰하고 그런 아이의 관심을 재능으로 연결하여 발전시켜 주는 방법을 통해서 아이들은 좀더 행복한 소년기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아이들은 루소의 표현을 빌리자면 학교라는 또 책이라는 속박 속에서 당연한 의무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앞으로 성장해서 소년기의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 지을 추억꺼리도 없이 말이다.그리고 제4부는 15세부터 20세까지로서 종교적, 도덕적 감성의 성숙의 시기이며 감정에 따라 이성을 완성하는 시기이다. 우정과 동정 등의 인간적 감정이 생기며, 성의 의식이 깊어지고 종교에 의하여 영혼의 교육이 완성되는 시기이다. 루소는 이시기에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신체적인 변화의 예를 들어 제 2의 탄생이라 일컬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인간의 진정한 삶이 시작되며 이 후는 인간의 욕정도 모르는 것이 없고 보통 교육이 끝나는 이 시기야말로 정말 교육이 시작되어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를 하였다. 그리고 청년이 인간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얻기 전에는 세상을 보지 않는 것이 좋음을 말하면서 마음의 집중과 인간 자아의 힘을 강요하는 대상을 주의해서 멀리해야할 것을 제시하였다. 종교에 의한 영혼의
《 월리의 이야기를 읽고...》학 과: 영어교육과학 번: 20024425이 름: 이단비제출일: 09. 25'월리의 이야기' 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나는 그저 유치원 아이들의 모습을 가볍게 묘사한 정도가 아닐까 하고 쉽게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월리와 친구들이 펼쳐가는 여러 가지의 에피소드를 하나씩 접할 때마다 이렇게 작은 아이들의 머리 속에서 어떻게 저런 생각이 나올 수가 있는 것인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한동안 전혀 가져보지 못했던 아이들만의 눈높이로 잠시나마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 책은 한 유치원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사고, 생활, 그리고 상호작용을 담고 있다. 책의 서문에 보면 교사는 무대감독, 그리고 아이들은 유치원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는 전문 작가이자 배우에 비유하고 있는데 이 유치원에서의 주된 활동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만들어 보도록 하고 그 이야기를 토대로 아이들 스스로 동극을 꾸미고 토론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동화를 읽어주고 동극을 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따라서 아이들이 그들의 생각을 자신들의 언어로 표현하고 이것을 동극으로 만들어보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어린 아이들만의 순수한 시각을 느껴볼 수가 있다.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세계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월리와 친구들의 독특한 대화내용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기 시작하면서 도저히 이 아이들의 사고의 방향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이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월리는 귀엽고 때로는 엉뚱한 흑인 남자 아이이다. 또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단지 산만하고 과민 반응이며 비협동적인 전형적인 '문제아'로 여겨진다. 하지만 월리는 다른 아이들은 그다지 흥미를 못 느끼는 이야기꾸미기 영역에서 기발한 생각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꾸며냈고 그것을 바탕으로 동극을 하고 친구들과 거기에 대해 나름대로 토론을 하면서 재미를 느끼게 된다.앞부분에 나오는 흥미로운 에피소드 중 '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정말 어린이다운 생각들임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여기서 아이들은 「잭과 콩나무」의 동극을 하면서 거인과 잭의 카펫크기를 재려하는데 카펫을 한번에 잴만한 큰 자가 없자 사람이 한 줄로 눕는 방법을 생각해 낸다. 물론 똑같은 신장이 아닌 친구들을 임의로 3명, 4명 눕히고는 그걸로 카펫의 길이를 정하지만 다음 날 사람이 바뀌자 길이가 모자라는 것을 보고는 고민한다. 키 큰 친구가 오기 전까지는 더 이상 카펫의 길이를 잴 수 없다는 의견에서부터 전체 길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도 단지 아이들의 위치를 바꿔보는 방법 등 다들 나름대로 의견들을 내 보는데 결국 교사가 줄자를 가지고 와서 카펫의 길이는 156인치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아이들은 한참을 고민했던 '156인치'라는 카펫의 길이를 알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던 키 큰 친구가 나타나자 이제 카펫의 길이를 실제로 잴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여기서 아이들이 말하는 '실제'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아이들의 생각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머릿속엔 어른들이 길이를 잴 때 으레 생각하는 길이의 단위, 자는 실제가 아니고 카펫의 길이측정은 실제인 것인가? 아이들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그 나름의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선생님과 선생님의 이름인 팰리부인을 연관시켜 생각하지 못하는 점에서도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은 유치원 안에서의 선생님만을 생각할 뿐이지 유치원 밖에서의 다른 모습의 선생님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그 다음 또 한번 아이들의 대화에서 감탄했던 부분은 아이들이 굴뚝에 대한 얘기를 하는 대목이었다. 앤디가 어느 날 친구 집엘 갔는데 집에 다른 아이가 있다며 그 아이가 못 들어오게 했다는 대화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월리는 '그럴 땐 굴뚝으로 들어갔어야지'라며 의견을 내어 놓는다. 이 말에 아이들은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각자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는데 정말 이 대화를 보고 있으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는지 너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총을 차고 굴뚝으로 들어간다던지, 만약 굴뚝 아래에 끓는 물이 있으면 살짝 뛰어 넘으면 된다는 말이나, 특히 월리가 말한 '우리 모두 제프리의 집으로 가서 전부 굴뚝으로 내려가는 거야. 그리고 제프리한테 앤디를 들여보내달라고 얘기하자.' 라는 부분은 아마 어린 아이가 아니면 도저히 이런 생각은 못해낼 것이다. 물론 어른들이 보기엔 엉뚱하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의 이런 기발한 생각의 방향은 정말 어디로 확장이 될지 종잡을 수가 없다.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이 시기 아이들에게 중요하게 인식되는 개념 중 '공평함'에 대한 것이 나온다. 티코라는 새에 관한 일화를 대강 살펴보면, 날개가 없는 티코라는 새가 있었는데 어느 날 티코가 황금색의 날개를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듣고 친구들이 티코를 미워해서 떠나게 되었고, 이에 속상해 하던 티코가 노력 끝에 검은 날개로 돌아가자 친구들이 다시 티코를 그들의 무리에 끼워준다는 내용이다. 나는 처음에 이 글을 읽고 나서 여기 나오는 교사의 의견처럼 멋진 날개를 갖게 돼 당당해진 티코의 모습을 상상하며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뒤 이어 나오는 아이들의 의견은 역시 너무나 달랐다. 아이들은 티코가 친구들과 다른 황금날개를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한 티코를 비난했으며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티코의 황금색 날개를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친구들을 질투 나게 하는 행위는 나쁘다고 규정하는 것 같았다. 이와 비슷한 예로 일본의 전래동화 '파란 씨앗'의 경우에서도 아이들은 내 생각과는 정반대의 논리를 펴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우가 자신의 파란 씨앗을 한 소년의 장난감 비행기와 바꾸었는데 그 파란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더니 장난감처럼 예쁜 파란 집을 만들고, 또 쑥쑥 크더니 동물친구들까지 만들어서 소년이 친구들과 거기서 재미있게 놀았다. 그런데 어느 날 여우가 찾아와서는 집을 가로채고 소년을 내 쫓아 버리고 혼자 독차지 하다가 그 집이 폭발했다는 내용이다. 나를 포함한 보통의 사람들은 이 글을 읽으면 '뭐 저런 여우가 다 있나.'하고 여우가 욕심 부린 죄 값을 받는다고 생각할 테지만 여기서 아이들은 여우가 집을 되돌려 받는 것이 옳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결론이 나올 수 있었을까? 아이들은 여우가 씨앗을 소년과 바꾸긴 했지만 여우는 그 파란 씨앗이 그렇게 멋진 집으로 변할지를 몰랐고 결국은 그것이 원래 여우의 것이었으므로 여우의 행동을 타당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소년이나 소년의 친구들은 다들 집이 있으니까 굳이 여우의 집에서 살 필요가 없다며 그 집이 여우의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왜 아이들은 여우가 과욕을 부려서 벌을 받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앞의 티코 새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아이들은 사태의 옳고 그름을 파악하는 데 있어 어른과는 상당한 판단 기준상의 차이를 보인다. 결국 아이들의 세계와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옳고 그름에 관한 정의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 때문이었다.그러나 그 뒤에 월리가 새롭게 지어낸 티코이야기에서는 똑같이 황금색 날개를 가졌으나 영웅시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의 티코는 세속적인 친구들의 자비를 바라는 티코가 아닌 거인의 머리를 잘라버린 영웅적인 티코였으므로 그 혁혁한 공로의 대가로서 황금색 날개는 당연한 것이라 여겨졌다. 어린 나이의 아이들에 불과하지만 영웅심리는 어느 정도 어른세계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그다음 또 이 시기 아이들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는 것 중 요정, 신, 마법 등에 관한 믿음이 있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의 생각의 밑바탕을 이루는 개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과 존재에 대해 강한 믿음을 보이고 있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아마 우리나라의 아이들과는 조금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 문화나 종교에 있어 서양처럼 독실한 기독교가 아니기 때문에 내 경험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별로 어린 시절에 요정이나 마법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많았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아이들은 신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 대화 곳곳에서 신이나 요정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고 많이 의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친구들이나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논리적으로 잘 설명되지 않거나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 한 일로써 쉽게 설명되고,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문제는 신이 해결해 준다고 믿고 있다. 쉽게 말해 아이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신이나 요정들의 마법의 능력만 있으면 모든 현상과 문제가 설명되어 질 수 있고, 이렇게 적당한 상상이 아이들이 겪게 되는 불안감을 최소화시키면서 큰 어려움 없이 이 시기를 지나가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의 아이들은 비록 어른들이 말하는 것을 모두 믿지는 않지만 대신 어떤 의견이든 적합하게 마법이 그것을 뒷받침한다면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을 찾아 볼 수 있다.
『 18세기 교육 - 자연주의 』(주제: 루소 교육사상의 현 우리교육에의 적용 가능성)영어교육과 이**, 우**, 오**목차Ⅰ. 서론Ⅱ. 본론1. 자연주의(Naturalism) 교육1) 개념2) 자연주의의 역사3) 자연주의의 유형4) 자연주의의 교육원리5) 비판6) 영향2. 루소(Jean Jacques Rousseau)1) 생애와 저서2) 교육 사상3) 교육 내용4) 교육방법5) 아동관6) 교육관7) 현대적 의의 및 비판Ⅲ. 결론★참고자료★참고문헌Ⅰ. 서론역사적으로 자연주의 교육사상의 생성과정을 살펴보면 17, 18세기에 걸쳐 생성된 것으로 이상주의와 인문주의에 대립되는 것으로 실학주의에 기반을 두어 성립된 것이다. 중세의 교육은 종교적, 봉건적인 권세나 특권에 의해 아동의 요구나 흥미 그리고 활동, 의욕 등을 억압하였으나 르네상스를 계기로 이러한 초자연적인 교육을 일소하고 아동들 속에 내재하는 자연성을 신뢰하고 조장하며 계발하는 것이 교육의 임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자연주의 교육사 상이 싹트게 되었다.Ⅱ. 본론1. 자연주의(Naturalism) 교육1) 개념자연을 유일ㆍ절대의 근본 원리 또는 실체라고 여기며, 모든 가치 기준을 자연에 두려고 하는 철학사조이다. 자연주의는 대체적으로 이상주의와 인문주의에 대립되는 것으로서 이는 실학주의를 모체로 하여 성립된 것이다. 자연주의 교육이란 자연에 일치하는 교육을 의미한다. 자연에 일치한다는 것은 자연에 따라서 교육하는 것이며 또 한 자연에 의해서 교육하는 것이다. 자연에 의한다고 하는 것은 인위적인 것에 반대하는 자연적인 것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자연주의는 18세기 계몽주의 사조가 탄생시킨 교육사상으로서 Rousseau가 그 대표자이며 후에 범애주의 교육에 영향을 미쳤다.2) 자연주의의 역사① 자연주의의 기원은 철학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의 자연철학에 있음.- 탈레스 : 우주의 근원은 물(水)- 레우키포스 : 우주의 실체는 원자- 데모크리투스 : 우주는 물질적 원자와 그 원자가 운동하는 공간으로 자연의 원리는 자연에 귀의하는 인간의 자연성을 밑받침하는 자연일치의 교육을 말한다. 이것은 교육의 기초, 교육방법, 교육의 이상으로 작용한다.여기에서 자연에 일치하는 교육이란?① 교육의 목적은 실체 또는 우주의 근본원리인 자연과 그 자연에 의해 부여된 인간 본성 에 기초해야 한다. 따라서 자연본성의 자연스러운 발현을 가로막는 어떠한 교육목적도 배제되어야 한다.② 교육과정에 자연법칙의 발견, 형성, 적용을 포함한다. Comenius, Ratke, Bacon은 교 육자는 자연을 관찰하며 자연을 배우고 자연의 방법을 연구하여 그것을 기초로 하여 자 신의 교육방법을 체계지운다고 했다.③ 인위적인 것, 인공적인 것에 반대한다. 아동의 자발성을 억압하고 아동을 인형처럼 다 루며 온실적 발달을 기하는 것을 반대하며 아동의 자연스러운 교육을 강조한다.④ 교육의 과정은 자연의 질서에 따라 점진적이고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원리에 비추어 볼 때 아동에게 교과를 무조건 가르치기보다는 그들의 발달단계와 수준 에 맞게 가르쳐야 한다. 즉, 아동의 관심ㆍ흥미ㆍ욕구ㆍ능력을 고려해서 교육해야 한 다. ( 이러한 원리는 이후에 아동중심교육관의 원형이 되었다).⑤ 자연은 감각기관을 통해서만 바르게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감각적 경험은 실재에 대 한 지식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학습은 아동의 직접적인 감각적 경험을 통해 이루어져 야하지, 강의ㆍ설교ㆍ교재 등 언어적ㆍ인위적 수단과 방법에 의해 이루어져서는 안 된 다.⑥ 지식을 지식 그 자체로 가르치지 말고 실제 생활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가르쳐 야 한다. 즉, 실용적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⑦ 귀족주의, 냉철한 지성주의, 권위주의, 이성주의, 주지주의도 반대한다. 자연주의는 인 간의 정서, 감정을 사랑하는 주정주의이다.⑧ 자유주의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결혼의 자유를 찬양한다.(2) 자연주의의 교육목적선천적인 덕성과 선을 보존하며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사회를 기초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동의 선천적인 선이 자발애와 저서 (1712~1776)18세기 프랑스의 철학가, 사상가, 작가인 루소는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가난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열흘 만에 어머니와 사별하고 10세 때 아버지마저 고향인 제네바를 떠나게 되어 루소는 어린시절을 속박과 천대 속에서 자랐으며, 16세 때 드디어 제네바를 떠나 여러 곳을 방랑생활로 떠돌아다니던 중에 한 신부의 소개로 바랑부인의 집에 기식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다시 방랑생활을 하다가 21세의 청년이 되어 다시 바랑부인을 만나게 되었다. 1742년 그녀의 곁을 떠날 때까지 약 10년 동안, 루소는 많은 지식을 독학하였다. 1750년 38세 때에 디종 아카데미에서 모집한 현상논문에 응모, 그의 "학문예술론"이 당선되어 처음으로 그의 명성이 높아졌다. 1754년에 디종 아카데미에서 모집한 현상논문에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응모했으나 논술이 너무 과격하여 낙선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 루소의 사상은 더욱 체계화되었다. 1761년에 "新엘로이스"에서 그는 스스로의 꿈, 사상 그리고 자기애에 간직하고 싶은 여성의 초상과 사랑했던 풍경 등 모든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1762년의 "사회계약론"은 오늘날 민주정치의 선구가 되어 프랑스혁명 및 미국독립의 성전이 되었다. 나폴레옹이 "만약 루소가 없었더라면 프랑스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한 말은 이것을 충분히 뒷받침 해주고 있다. 루소의 정치사상을 담은 사회계약론과 같은 해에 발간된 "에밀"(Emile)은 그의 교육사상을 집성한 것으로서 인간교육의 근본적 혁신을 제창한 교육의 성전이었다. 에밀은 교육학사상 불구의 명작이며 그의 교육사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 책의 제 4장에서 기성종교를 비난하고 자연종교를 주장하였기 때문에, 파리 고등법원은 에밀의 소각과 루소의 체포를 명령하였다. 루소는 박해를 피해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독일과 영국에도 간 바 있었다. 1764-1770년 사이의 방랑생활 속에서 그는 "고백록"이라는 자서전을 썼으나,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 이 책생들에게 직접적인 간섭을 하지 않고 학생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즉 덕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악으로부터 보호하는 것, 진리를 인위적으로 주입하여 가르치지 말고 진리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을 제공하는 것 등이다. 따라서 교사의 역할은 아동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에 있다. 루소의 소극 교육론은 단순한 방임적인 교육형태가 아니라, 지시 일변도의 교육을 배척하고 명령, 교훈 등의 직접적 간섭을 배제함으로써 아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립 능력을 함양시키는 것을 의미한다.(3) 발달 단계론루소의 교육은 식물의 성장을 모델로 한 것이다. 마치 식물이 하늘이 준 소질을 생명의 리듬과 법칙에 따라 연속적으로 키워가듯이 인간 교육도 인간 안에 깃든 인간적인 여러 소질의 씨앗들이 몇 단계를 거치면서 피어나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루소는 어린이를 발견한 최초의 사람이라고도 평가받는데, 그것은 어린이의 세계, 즉 그들의 발달 단계에 알맞은 존재의 양식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키우지 못하면 그 단계의 교육을 망치거나 건너뛰기 때문에 개인으로서도 성숙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루소의 주장이다. 따라서 인간 교육은 하늘이 준(자연적인) 절대 불변의 법칙, 즉 그 발달 단계에 맞게 전개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루소는 아동이 6살 때까지는 신체를 건강하게 키워야 하고, 12살 때까지는 시각이나 청각 등의 감각을 발달시켜야 하며, 12살에서 15살 때까지는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의 학문과 기술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16살에서 20살까지는 행복이나 완전성 등 가치의 이상을 추구하는 도덕적 성장의 단계로, 이 시기에 역사에 대한 전망이 열리고, 윤리나 종교의 세계가 비로소 열리게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루소는 신체, 지성, 정서의 발달을 단계별로 진술하면서, 이 세 가지 능력의 발달에 순서가 있어야 할 것, 또 성인이 되어서는 조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을 논하였다.3) 교육 내용는 일이 여자의 천직이며, 순종과 겸양의 미덕을 기르고 가사를 알뜰히 정리하는 것을 여성 교육의 이상으로 삼았다.4) 교육방법루소의 자연적 인간주의의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그의 교육방법도 자연적인 방법에 의존하고 있음은 당연한 귀결이다.①아동 본위의 주관적 자연주의에 입각하고 있다.즉, 아동 본위라 함은 교육의 기초를 아동 주관적 목적 개념을 주축으로 교육해야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피교육자인 아동은 자기 자신이 바람직하게 성장하려는 목적 가치를 내재하고 있으며, 성장의 충동을 가지고 선을 실현하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성장의 충동을 신뢰하고 그를 바탕으로 하여 교수할 것이지 목사의 주관적 가치관이나 사회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②자연전개의 이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성인들의 명령이나 지시에 순종해서는 안되며, 아동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인위적인 제한을 피하고 사물에 대한 제한을 체험시키는 것이 가장 유효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부정한 행위에 따른 보상은 자연의 결과가 나쁘게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극적인 간섭과 주입을 피하고 최소한의 조력을 뜻한다. 예를 들면 창문을 찢었을 때 아동이 추위를 통감하도록 하는 것과 학습 환경의 정비, 통행 길에 장해물을 제거하는 등 소극적인 조력이 오히려 아동의 적극적 행동을 기른다는 사상인 것이다.③ 실학적 단련주의 교육을 자연적 자유발전에 맡긴다는 것은 실사물을 통한 경교육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동들의 자율학습은 실재장소에서 실존 사물을 대상으로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단련적 경교육이 이루어짐은 당연한 것이다.(독서로부터 해방시키는 교육)④ 형식적 도치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도덕 교육과 직업 교육을 경시하고 지적 교육을 배척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지적 교육으로서는 로빈슨 크루소 이외의 책은 필요 없다는 주장으로서 그의 사상을 충분히 알 수가 있다. 이로써 그의 교육 방법은 아동본위 자연적 자유주의 형식주의를 취하고 있음이 명료하다.5) 아동관루소에 의하면 유아는 결코 허약한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