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부간 세원배분의 문제점과주요 쟁점 및 개선방안2014. 5.< 목 차 >>Ⅰ. 서론Ⅱ. 지방재정의 현황 및 문제점1. 지방재정의 환경 변화① 세입② 세출2. 지방재정의 문제점Ⅲ. 중앙-지방 간 재원배분 구조 분석1. 중앙-지방 정부 간 사무배분 체계2. 중앙-지방 정부 간 재원배분 체계① 우리나라의 지방세 체계② 중앙-지방 간 세원배분 현황Ⅳ. 중앙-지방 간 합리적인 재정관계 구축 방안1. 지방자치단체 자주재원 확충 방안① 재산세 위주의 지방세제 개편② 세원공동이용방식의 활성화(지방소비세 및 지방소득세 확대)③ 법정외세제의 도입④ 지방세 비과세감면의 축소2. 국고보조사업의 합리적인 기준 설정① 국고보조율의 기준 마련과 확립② 국고보조사업의 정비 및 관리체계 구축③ 차등보조율 기준의 합리적 산정Ⅴ. 결론Ⅰ. 서론지난 2006년 100조원 시대를 열었던 지방재정은 2013년 7년 만에 145조 4,000억 원 수준으로 성장하였으며, 국가의 총재정지출액에서 지방재정이 차지하는 비율도 2006년 40.5%에서 2013년 46.8%(교육재정 포함)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등 지방재정의 중요성과 위상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그러나 지난 해 세수감소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중앙이나 지방 모두 앞으로의 경제 전망은 밝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세 불가, 공약 실천”이라는 상충적인 정책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여, 중앙이나 지방 모두 단순한 세출 삭감이나 경비축소 보다는 보다 합리적인 재정운용 방식과 보다 효과적인 세원 배분 관계 구축이라는 시대적인 소명에 마주해 있다. 더욱이 현재 지방재정은 앞서 언급한 세수 감소 이외에도 무상보육기초연금 등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사회복지사업 국고보조금 매칭사업의 증가로 지방자치단체의 비재량적 지출의무를 유발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지방재정의 중앙의존도가 높아져 ‘지방자치단체의 중앙정부 일선기관화’ 경향 및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적 예산편성과 결정권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여 ‘자치 없는 지방자치’ 경향이 가속되고 있다.박근혜 정부가 140대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지방재정의 확충과 지방재정 건전성 강화’를 채택하고 지방재정의 당면현안 해결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지방재정의 어려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재정자립도 추이연 도2008년2009년2010년2011년2012년2013년2014년자립도(%)53.953.652.251.952.351.144.8, 지방자치단체의 채무는 다소 줄어들고 있으나 지방공기업 등 공공기관의 부채는 계속 늘어나 지방부채가 100조원을 넘어선 상황이다.여기에서는 지방재정의 현황과 문제점을 바탕으로 현재 중앙과 지방간의 사무 및 세원 배분 체계를 파악한 후, 앞으로의 중앙과 지방간 합리적인 재정관계 구축 방안에 대해 제안해 보고자 한다.Ⅱ. 지방재정의 현황 및 문제점1. 지방재정의 환경 변화① 세입지방자치단체의 세입 여건은 지방세수 신장률은 낮으나 비과세감면율은 계속 증가되고 있어 세입기반 확충과 질적 성장이 절실한 상황이다.2013년 기준으로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살펴보면
부동산 경기가지방재정에 미치는 영향과 해결방안< 목 차 >>Ⅰ. 서론Ⅱ. 부동산 관련 지방세에 대한 이론적 고찰1. 지방세의 의의와 체계 및 부동산 관련 지방세2. 부동산 관련 지방세 일본과의 비교Ⅲ. 부동산 관련 지방세의 현황1. 부동산거래세의 비중2. 부동산 거래세제의 개편 및 세수현황Ⅳ. 부동산 관련 지방세 감소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1. 부동산관련 지방세 감소의 문제점2. 지방세 감소의 개선방안Ⅴ.결론Ⅰ. 서론최근 부동산대책과 관련된 조세정책에 대한 논의가 자주 제기되고 있다. 통상 정부에서는 부동산시장의 과열기에는 보유세제와 양도세를 강화하는 정책을, 반면에 부동산경기 침체기에는 당해 세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반복적으로 단행하여 왔다. 과거 정부에서는 투기수요를억제하는 차원에서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하여 보유세를 강화하고 단계적으로 과표현실화를 추진하였다. 또한 다가구주택 소유자에 대한 중과세, 단기양도에 대한 세율인상 등 양도세 강화정책을 추진하였다. 동시에, 과표현실화에 따른 세부담의 급증을 완화하고 지방세 세수구조의 개선을 위한 차원에서 보유세 강화정책에 대응하여 거래세완화 정책이 함께 진행되었다. 그 결과 3차에 걸쳐 취득세 및 등록세 인하가 단행되었다. 그런데 보유세 강화, 거래세 완화정책은 거래과세의 비중이 보유과세 보다 월등히 높은 상황에서 전 국민을 과세대상으로 하는 보유과세의 비중을 높여 거래과세 인하에 따른 세수를 보전하는 것으로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다만, 지난 정부 당시에는 부동산 경기 호황으로 인한 부동산 가격상승으로 국민의 보유세 부담에 대한 반발이 적었고, 거래세 인하에 따른 세수감소효과가 과표현실화 및 거래량증가로 일정부분 상쇄되어 지방자치단체의 세수확보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 정책추진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그런데 2008년에 접어들어 세계금융시장의 불안이 실물부분으로 전이되면서 우리나라도 산업전반에 걸쳐 불황이 심화되었고, 부동산경기가 급속히 침체되어 부동산 거래량의 감소와 가격의 하락을 가져왔다. 이와 같이 부동산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정부에서 추진하고자 하였던 보유세 강화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치게 되었다. 특히 부동산거래의 위축은 취득세 및 등록세의 세수의존도가 높은 지방자치단체에게는 재정운영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이 리포트는 부동산경기침체인 현시점에서 부동산 관련 지방세수의 감소 현황을 알아보고 이에 따른 지방세수의 감소 문제에 대해, 향후 바람직한 지방재정 정책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작성하였다.Ⅱ. 부동산 관련 지방세에 대한 이론적 고찰1. 지방세의 의의와 체계 및 부동산 관련 지방세(1) 지방세의 의의지방세란 지방자치단체가 지방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대한 반대급부로서 그 필요한 경비를 조달할 목적으로 지역의 주민들로부터 강제적으로 부과, 징수하는 조세이다. 이러한 지방세는 지방자치단체의 주된 세입항목이며, 지방자치제도의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첫째, 지방세의 과세 주체는 지방자치단체이다. 이 점에서 과세 주체가 국가인 국세와 구별된다.둘째, 지방세는 지방자치단체의 지방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대한 반대급부로서 징수하는 것이지만 일반 보상적 원리의 성격을 강하게 갖는다. 이러한 점에서 개별적인 공공시설을 이용 대가인 사용료, 서비스 이용의 대가인 수수료, 사업 실시에 따라 부과되는 부담금이나 분담금과도 구별된다.셋째, 지방세는 강제적으로 부과 징수된다. 지방세는 과세권에 의해 강제적으로 부과 징수된다는 점에서 교환의 원리에 의해 지방수입이 되는 경영수익사업이나 재산수입과는 구분된다.(2) 지방세의 근거1) 법적 근거우리나라는 헌법 제38조에서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납세의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동법 제59조에서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라고 규정하여 조세법률주의를 명확히 하고 있다.이에 따라 지방자치법 제21조는 “주민은 법령이 정하는 바에 의해 그 소속 지방자치단체의 비용을 분담하는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동법 제135조에서 “지방자치단체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지방세를 부과 징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세를 부과할 수 있는 직접적인 법적 근거이다.2) 이론적 근거조세 부과의 일반적 근거에 대해 두 가지로, 그 중 하나는 정부가 공급한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서 정부가 조세를 징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이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으로서 국가의 존립과 질서 유지 및 발전을 위해 조세를 당연히 부담해야한다는 것이다. 조세 부담의 근거나 공평 과세를 논의할 때, 전자를 ‘이익설’이라 부르고, 후자를 ‘의무설’ 또는 ‘능력설’이라고 부른다.3) 지방세의 원칙지방세에서는 국세와 다른 성격과 목적 또는 정책이 있기 때문에 조세 원칙 중에서 특히 강조되어야 할 원칙 또는 지방세 고유의 원칙 등이 있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지방세의 원칙’이라 부르며, 국내외 여러 학자들이 각각 지방세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방화 또는 지방자치화 시대에 지방세가 꼭 갖추어야 할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보편성의 원칙, 안정성의 원칙, 지역성의 원칙, 부담 분임의 원칙, 응익과세의 원칙, 간소성의 원칙이 있다.(3) 지방세 체계
『 지식인을 위한 변명 』사르트르는 20세기의 사상을 이끈 철학과 문학의 거장으로 1980년 4월 죽는 날까지 그 누구보다도 큰 영향력과 명성을 누렸다. 그것은 거의 맹목성에 가까운 그의 철저한 참여 정신에 기인하는데 그의 강연을 묶어서 출간된 또한 지식인의 현실참여를 강조한 책이다. 이 책은 지식인이 처해 있는 특수한 상황과 모순을 분석하고, 모순의 극복을 통해, 지식인의 참다운 기능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밝혀 주고 있다.사르트르는 이 책에서 사람들을 3단층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상층에는 지배자 하층에는 피지배자 중간에 지식인들이 어정쩡하게 위치한다고 보았다. 이런 도식은 마르크스의 계급 분류와 같으며 한마디로 프티 브르주아와 상통하는 것이다. 즉 돈이 많지도, 아주 없지도 않은 중간 위치,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못 가진 자와 이해를 같이 하고, 자기가 가진 약간을 보존하기 위해 가진 자와 이해를 같이 하는 프티 부르주아인 것이다.선진 사회에서 프티부르주아는 그의 신분적 필연성에 의해, 한편으로는 사회주의자이며 또 한편으로는 배금주의자이다. 그는 상층 부르주아지의 호화스러운 생활에 현혹되는가 하면 동시에 민중의 고통과도 아픔을 같이한다. 그는 부르주아인 동시에 민중인 것이다. 이처럼 프티 부르주아는 모순된 두 세계 사이에 이해가 상충하는 갈등을 느끼며, 사생아와 같이 그 어느 편에서도 거부당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사르트르는 이처럼 양극의 계급에 각기 한 발씩을 딛고 있는 중간 계급의 이중성을 지식인의 속성으로 보았다.지배 계급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식인이란 일종의 필요악(必要惡)이다. 지식인을 단순히 지배 수단을 연구하는 단순한 기능인으로밖에 여기지 않으며, 지식인에게 문화보전과 전수의 관리인으로서의 역할 밖에 위임하지 않는 것이다. 피지배 계급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식인이란 지배 계급의 앞잡이로 전락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식인은 어떠한 사회 계급에 의해서도 그의 진정한 기능을 위임받은 것이 없다. 이러한 지식인이 사회의 모순에 대해 비판할라치면 그는 자기와 무관한 일에 참견하려 드는 자 가 된다.지식인에 대한 이러한 비난은 정당한 것인가? 자신의 권한 바깥에까지 관여하려고 함으로 해서 지식인의 진정한 기능의 원초적인 형태가 싹트지 않겠는가?이상주의적이고 관념적이기만 한 지식인에게 효율성을 부여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르트르는 탈(脫)계급의 이론을 제시했다. 즉 지식인은 자신의 출신 계급인 프티 부르주아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프티 부르주아지란 상층 및 하층 계급과 각기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불안정한 계급이므로 이것을 탈피한다는 것은 당연히 어느 한 계급과 밀착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예컨대 경제적으로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돈을 전혀 갖지 못한 사람이 되고, 정치적으로는 지배자의 편에 서거나 아니면 피지배자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지식인의 탈계급은 상향 탈계급과 하향 탈계급의 두 방향이 있을 수 있는데, 사르트르는 루소, 볼테르, 디드로 등 18세기의 문필가들을 상향 탈계급의 전형으로 보았다.그들은 귀족의 총애를 받으며 글을 썼고 귀족들하고만 상대를 했으며, 자신들을 보편 계급으로 자처하고 자신의 글이 인간의 보편성, 즉 인류 전체에 봉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 왕정이었던 당시의 특수한 정치 상황 속에서 상승 계급인 부르주아지의 지식인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사르트르는 생각한다. 즉 루소, 볼테르 등은 인류 전체에 봉사한다는 표면적인 주장 밑에 실은 암암리에 자기 계급에 봉사하는 글을 썼고 이것이 부르주아 계급의 헤게모니 쟁취를 준비했다는 것이다.문제는 현대의 지식인이다. 프랑스 대혁명이래 귀족 계급은 서서히 소멸해버렸고 부르주아지는 명실공히 지배 계급이 되었으나 그들은 자신을 보편 계급으로 자처함으로써 계급의 특수성을 원초적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사회를 부르주아, 프티 부르주아, 노동계급 등 3단층으로 구분하는 마르크스의 계급 인식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제 사회의 최상층은, 경제적으로는 가진 자, 정치적으로는 지배자인 소수 엘리트로 구성되어 있고, 최하층은 노동 계급이며 그 사이에 낀 중간층이 프티 부르주아이다.그런데 지식인은 주로 프티 부르주아지 출신이므로 지식인은 여전히 대립적 사회 계급의 한중간에 위치해 있다. 이들의 전문 기술은 어디엔가 쓰이는 실용성을 갖고 있다. 이 실용적인 지식으로 누구에게 봉사하느냐에 따라서 상향 탈계급과 하향 탈계급은 결정된다. 전문 지식인이 지배 계급에 봉사할 때, 다시 말해 상향 탈계급을 이룰 때, 사르트르는 이것을 명료하게 사이비 지식인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사르트르에 의하면 지식인은 중간에 위치한 자신의 계급을 벗어나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사람이다.그러면 지식인이 자기 계급을 이탈하여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그 하층 계급은 과연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민중이라고 말하는 이 계급을 사르트르는 '혜택받지 못한 계급', 또는 '노동 계급'이라고 불렀다. 민중은 사르트르의 지식인론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르트르에게 있어서는 실용 지식의 전문가 집단 중에서 일부가 지식인인데 그 기준이 바로 민중인 것이다. 실용 지식의 전문가란 구체적으로 학자 엔지니어 의사 법률가 판-검사 교수 작가 등이고, 출신 계급은 부르주아지이다. 실용 지식의 전문가가 곧 부르주아 계급인 것은 역사적인 연유가 있다.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무역을 위한 상선을 제조하기 위해 엔지니어가 필요하게 되었고, 복식부기의 필요성은 회계사와 수학자를 요구하게 되었으며 부동산의 감정과 매매 계약은 법률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산업혁명의 담당자이며 상업 계급인 부르주아는 자기 가문의 기업 이익을 위해 그들의 아들을 수학자로, 엔지니어로 혹은 법률가로 만들었다. 이들 전문가들은 부르주아의 아들이며, 자신 또한 부르주아였다. 그들은 전문 지식으로 자신들의 출신 계급인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를 수립하는 데에도 기여를 했다. 문필가 볼테르(Voltaire), 디드로(Diderot), 루소(Rousseau), 법률가인 몽테스키외( Montesquieu), 수학자 달랑베르(d'Alembert), 총괄 징세 청부인 엘베시우스(Helv tius)등이 바로 그들이다.현대에 화서도 비록 장학금 제도는 있으나 가난한 사람이 고등 교육을 받을 기회는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으므로 노동 계급에서 전문가가 나오기는 매우 힘들다. 여기에서 사르트르의 하향 탈계급의 이론이 나오는 것이다. 노동 계급은 자신들을 대변해줄 전문 지식인을 배출할 수 없으므로 부르주아 출신의 지식인이 자기 계급에서 벗어나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문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다 지식인은 아니다. 민중을 의식하기 이전의 전문가는 그저 기술자일 뿐이고 민중을 의식하고 난 다음에야 그는 지식인이 된다. 따라서 기술자가 지식인으로 되는 절대적인 기준은 민중이다. 지식인은 자기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민중의 관점을 채택해야 하고, 방법적으로는 민중의 객관적 지성을 섭취하는 한편 민중적 사고에 의해 형성된 원칙을 자기방법에 접목해야 하며, 노동 계급의 객관 정신을 표출해야 하고, 민중의 활동에 무조건적 구체적으로 제휴해야만 한다. 지식인의 유일한 임무는 중개자 없이 직접 노동자에게 접근하는 일이라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19세기]The Lyrical Ballads와 Romanticism의시작Romanticism의 모태는 바로 French Revolution이다. 영국 역시 산업자본주의와 자유방임주의 정책(laissez-Faire)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는 나날이 심해졌고, 특히 여성과 아동들의 학대는 극에 달한 지라, 혁명에 대한 열망은 프랑스 못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의 혁명은 끝내 오지 않았다. 대신에 로베스 삐에로의 공포정치, Napoleon의 반동 전쟁 등, 프랑스 혁명의 일탈 등이 영국의 지식인들을 좌절로 몰아갔을 뿐이었다.The Lyrical Ballads는 정신적 혁명을 기획한다. 비록 물리적 혁명은 요원하지만, 인간의 내면적 혁명은 가능하다는 전제로, 그 『담시집』은 18세기가 지향하는 모든 이데올로기에 대해 의도적이고도 근본적인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우선 The Lyrical Ballads의 제목이 그러하다. 18세기에 가장 낮은 서열에 머물렀던 Lyric의 계급상승과, Augustan Age의 고전 문학 모방 위주의 풍토에 맞서, 토속 문화의 상징인 Ballads의 상징적 부활을 기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802년 The Second Edition에 붙인 Wordsworth의 서문은, 더 나아가, 18세기식 관념들을 하나하나 불러들여 부정하고, 그에 따른 새로운 대안을 세시하고 있다. 먼저 이 책의 목적으로 제시한, "experiments to determine how far the language of conversation in the middle and lower classes of society is adapted to the purpose of poetic pleasure"의 명제는 18세기 poetic diction의 decorum에 대한 거부이자, 하층 민중의 궁극적 승리를 선언한다. Wordsworth는 과거 reason, judgement, wit에 의한 시를 거부하고, 시를 "spontaneous overflow of powerf인식능력을 3개의 단계로 나누고 있다. 그것이 바로 Fancy, Primary & Secondary Imagination이다. 먼저 Primary Imagination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인식능력이다. 인간의 무한한 창조력을 믿는 Coleridge는, 가능적 수준에서, 인간이 지닌 신과 같은 인식능력이 그 실행과정에서 사회 또는 현상과의 타협을 통해, 약화되고 유한성을 부여받게 된다고 생각했으며, 그것이 바로 Primary I.인 것이다. 그는 이를 "the prime agent of all human conception"이자, "a repetition in the mite mind of the eternal act of creation in the infinite I AM"이라는 명제로 설명한다. Secondary I.는 그 기능에 있어 전자와 같지만, 차원을 달리하는 인식능력을 지칭한다. 이는 특히 Poetic I.라 다시 불리어, 시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통찰력. 혜안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즉 Secondary I.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신의 상상력과 동일한 의미이며, 기존의 관념체계를 완전히 해체하고 새로운 관념을 재창조할 수 있는 힘이라는 점에서, 기존 관념과의 타협을 전제로 한 Primary I.와 구별된다--"It dissolves, diffuses, dissipates, in order to recreate." 이는 기존의 모든 것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혁명의 힘이자, 그 폐허 속에서 전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한다는 점에서 창조의 힘이다.Imagination은, 어떤 기능에서건, 개인의 능력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것의 인식을 지향하고 있는 반면, Fancy란 기존의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하위의 인식능력에 속한다. 이는 기억과 연상(memory & association)을 통해 작용하며, 현상과 경험(phenomena & experience)에 종속된다. 우리는 이를 통해 이미 만들어진 것 중에서 선택(choi혁명 이후로 가속화된 산업과 과학의 발전은 Victoria 시대에 이르러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영국은 세계 자본주의를 이끄는 선진 자본주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고, 국민들은 물질적 풍요를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시대를 희망과 안정의 시기로 부른다면,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뒷골목은 더욱 더 어둡기만 하였고, 그 속에서 노동자들의 추위와 굶주림은 과거 어느 때보다 심했기 때문이다.자본과 임노동의 격차 이외에도, 시대가 낳은 대립의 양상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과학의 발전은, 특히 Darwin 이후, 유물론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하였고, 종교와의 충돌은 거세졌다. 자유방임주의의 지속으로 부자들은 전혀 빈자들에 대한 배려 없이 부를 축적해가는 동안, 지식인들은 그들의 속물근성을 질타하였다. 과학과 풍요가 다가올 20세기를 장미빛으로 채색하리라는 낙관주의는, 그 비극적인 종말을 걱정하는 비관주의자들의 비웃음을 사야 하였다.이러한 현상들은, Arnold가 지적하고 있듯이, 정신적 아노미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양 진영의 대립은 사람들에게서 수세기 동안 누려 온 굳건한 신념을 박탈해 버리고, 그 대신에 세기말적 폐허주의, 허무주의(fin de siecle)를 심어주었던 것이다Tennyson과 Browning의 시는 당시의 이러한 분위기즐 대변하고 있는데, 전자가 세기말적 허무주의, 죽음에 대한 동경을 Keats식의 애조로 그리고 있는 반면, 후자의 목소리는 기득권층의 속물주의를 향한 분노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이들의 예언은 정확했다. 19세기는 끝내 세계대전이라는 총체적 비극, 죽음으로 막을 내렸고, 그 파국의 원인은 산업자본주의와 자본가들의 탐욕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이들의 불안은 20세기 허무주의자들(nihilists)에 의해 결국 사실로 확인될 것이다.[Vic] Robert Browning's Dramatic MonologueBrowning은 Victoria 시대의 지배층이 드러내는 속물근성(snobber] 20세기의 시작20세기는 불안과 회의주의(Skepticism)의 부정적 가치에서 탄생하였다. 물론 Matthew Arnold, Thomas Hardy 등의 빅토리아 작가들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20세기의 시작을 결정한 것은 무엇보다도 세계를 뒤흔든 양차 세계대전이었으리라. 전쟁의 공포와 비인간화의 과정은 인간에게 긍정적 비전을 부여하려는 낭만주의적 관념을 뿌리째 흔들어 놓아, 19세기 인본주의의 시대는 막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인간은 더 이상 고귀한 존재도, 세계의 중심도 될 수 없었다. 이제 사람들은, 빅토리아적 자연이나 유전뿐 아니라,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 전쟁, 환경 등, Hobbes의 Libiethan들이 언제든지, 개인이든 종족이든, 우리 인간에게 가장 처참한 종말을 기획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문학의 모습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Hemingway, Fitzgerald, Eliot, Faulkner 등이 제도와 운명에 의한 인간 일반의 비극을 보여주는가 하면, Conrad 등은 인간의 근원적이고 추악한 본성을 추적하였으며, Faulkner, Woolfe 등도 절대적 진리가 사라진 세계에서의 인간심리와 관계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20세기의 사상적, 문학의 이런 흐름에 영향을 미친 사건이나 사상을 간단히 정리해보자.1. 세계대전: 세계전쟁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나약하고, 또 악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최악의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궁극적 인본주의로서의 낭만주의적 환상이 얼마나 부질없는 망상인지를 실제로 목격하였고, 그 와중에서 스스로 거의 동물 수준까지 타락하고 멸망해갔다.2. Einstein의 상대주의 세계관: Darwin의 진화론 이후, Einstein의 이론은 수천년을 지켜온 서구 지성사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실제로 진리와 허구를 구분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진리의 인지는 개인적인 문제로 환원되어, 절대적 진리의 공식으로 가능했던 공유의식은 붕괴되고, 결국 인간관계와, 의사소통의 단절이라는 비극재의 통일'이라는 명제는 Yeats의 생애에 걸린 숙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19세기 후반, 낭만주의 시풍에서 시작하여, 상징주의와 리얼리즘의 시를 거쳐 다시 신비주의로 회귀할 때까지, 많은 실험과 방황을 하였지만, 그 이유는 바로 이 변증법적 통일에의 열망을 향한 긴 노정이었던 것이다. 그는 인간의 세계를 idealism자 realism, art와 life, love와 age, 삶과 죽음 등의 이분법으로 파악하고, 이러한 모순들이 하나로 통일될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하고 또 표현하려 하였다.그는 이를 위해 'tower,''dancing''winding stair,''spinning tops' 등 많은 상징들을 만들어내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상징은 아무래도 'gyres'이다. gyres란 마치 소용돌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두 개의 원추 모양을 나타내는데, 이 모습은 Yeats에게 역사와 인격의 발전단계를 의미하며, 또 두 이질성의 통합을 향해 나가는 과정이자 투쟁을 의미한다. 인생(또는 역사)이란 마치 나선형의 계단을 오르는 과정이다. 이는 순환과 반복의 여로이자, 상승의 길이기도 한다. 인간은 자신의 위치가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대립과 모순에 의해 평가되고 존재를 확인 받는다. 그리고 그 대립을 통한 자신의 확인이 바로 변증법적 존재의 통일을 의미한다는 것이다.[20세기] Wallace Stevens와 "The Supreme Fiction"절대적 진리가 붕괴된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허구일 뿐이다. 이는 Stevens를 비롯한 근대 지성인들의 공동된 의식이다. 세계의 의미는 세계가 어떤 의미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즉 진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의 욕구가 존재한다. Stevens는 바로 그 '의미부여' 과정에 관심을 갖고 독자들에게 접근한다. '상상력'이야 말로, 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며, 동시에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햄릿의 복수지연「햄릿」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이 애독되고 있는 작품인 동시에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햄릿」에 관해서는 다양한 부분에서 연구되어져 왔으며 많은 논란을 가져왔었다.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햄릿의 복수지연에 관한 문제이다. 과연 햄릿은 복수를 했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햄릿이 폴로니우스를 살해하고 어쩔 수 없이 국왕의 명령에 의해 영국으로 떠나면서 하는 독백에서도 잘 나타나있다.How all occasions do inform against me,And spur my dull revenge! What is a man,If his chief good and market of his timeBe but to sleep and feed? a beast, no more:Sure he that made us with such large discourse,Looking before and after, gave us notThat capability and god-like reasonTo fust in us unused. Now whether it be bestial oblivion, or some craven scrupleOf thinking too precisely on th' event―A thought which quartered hath but one part wisdom,And ever three parts coward―I do not knowWhy yet I live to say "this thing's to do"Sith I have cause, and will, and strength, and means,독백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복수의 명분, 수단, 힘, 의지를 소지하고 있으면서도 복수를 실행하지 않는 까닭을 모르겠다며 자기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햄릿 스스로가 복수를 지연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자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 햄릿이 복수를 지연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이 작품을 읽으면서 만약 햄릿이란 인물이 레어티즈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면 상당히 어색했을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레어티즈였다면 왕이 기도하는 장면에서 아마 단숨에 달려가 왕을 찔러 죽였을 텐데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여하튼 아마도 햄릿의 경우처럼 자기의 의지가 아닌 우연한 기회에 복수하게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작품의 내용을 봐도 알 수 있듯이 햄릿은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인물이 아닌 대체로 심사숙고하면서 상당히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휘장 뒤에 숨은 폴로니우스를 머뭇거림 없이 단칼에 없애버리고 오필리아의 무덤 속으로 뛰어들 만큼 감상적이고 충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점은 그의 나약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이런 햄릿의 성격은 극중 이야기 전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햄릿이 1막 4장에서 호레이쇼, 마셀러스와 더불어 Ghost를 기다리며 제 아무리 고상한 사람이라도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단 하나의 결함(the stamp of one defect, particular fault) 때문에 불명예를 면치 못한다고 의미심장하게 말하고 있듯이 우리들이 흔히 얘기하는 복수 지연이라는 문제 또한 햄릿의 특이한 성격적 결함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우선 복수를 지연하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몇몇 부분을 살펴보기로 하자. 햄릿은 1막 5장에서 Ghost를 만나 어렴풋한 예지로 알고 있던 선왕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자초지종을 듣고 분개하며 복수할 것을 맹세한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햄릿의 말은 그가 양광(antic disposition)을 취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데 왜 그는 양광을 취하는 것일까? 본문 어디를 보아도 그가 그런 행동을 취하는 이유에 대해 직접적인 설명은 찾을 수 없다. 단지 추측이 가능할 뿐인데 어쨌든 햄릿은 복수에 유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양광을 취했을 거란 가정을 해본다. 일단 사람들이 자기를 미쳤다고 생각하면 그의 복수심은 그의 양광에 가려질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동정을 살피기도 쉽고,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리라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여하튼 그의 이러한 행동은 결과적으로 복수 지연으로 이어지는데, 복수를 계획하리라 기대했던 햄릿은 복수는커녕 계속 미친 척만 하고 있고, 도리어 Ghost가 선령인지 악령인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는 햄릿의 추진력이 결여된 심사숙고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즈음 한 햄릿의 유명한 독백인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은 그의 이런 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햄릿은 Ghost의 말이 진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극중 극「The mousetrap」을 준비한다. 극의 공연 도중 왕은 연극을 중단시키고 밖으로 나간다. 그 후 햄릿은 우연히 왕이 기도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Ghost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한다. 더불어 또 다시 복수할 기회를 맞는데, 그는 바로 뛰어들어 한칼이면 복수할 수 있음에도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의 말을 빌자면 기도할 때 죽이면 악당이 천당으로 간다는 것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완벽한 복수를 원하는 것이다. 이는 또 한번 그의 심사숙고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다시 그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복수를 지연하게 된다.그 후 이렇다할 복수의 기회를 갖지 못하다가 폴로니우스를 죽였다는 이유로 햄릿은 영국으로 보내지게 되는데 영국으로 떠나기 전 햄릿은 복수지연의 이유를 Now whether it be bestial oblivion, or some craven scruple Of thinking too precisely on th' event 지금 그것은 짐승 같은 망각인지, 아니면 결과를 너무 꼼꼼하게 생각하는 비겁한 망설임인지 라는 독백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는 그의 불완전한 이성, 말하자면 심사숙고한 비겁함이 그의 복수를 지연시키는 이유임을 자기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후 햄릿은 자기를 죽이려는 왕의 계략을 완전히 알아차리게 된다. 그후에 뜻밖에 복수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어 대부분의 주요인물들을 모두 죽이고 자기도 죽는 비극으로 끝을 맺게 된다. 이렇듯 그의 복수 행적을 살펴볼 때 그의 심사숙고한 성격은 복수지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이렇게 단정지어 결론 내리기 이전에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는 왜 심사숙고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 상황과 관련하여 설명할 필요가 있다.복수극에서 다루고 있는 복수는 영국 사람들의 정의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것으로 복수와 정의의 문제는 당대 연극 무대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는 아들로서 하나의 의무이며, 피에는 피로써 보복해야 하는 것이 아들의 도리이자 세상에 정의를 실현시키는 것으로 대의 명분을 위한 죽음은 명예로운 것이었다. 이는 당시 영국의 기사도 정신과 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복수는 단순하지 않고 고민의 여지를 많이 남긴다. 사회 속에 깊게 자리잡은 기독교 교리는 지성으로 무장된 철학과 용서와 화해를 가르쳤으므로, 정의실현을 인간 자신이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신의 뜻과 섭리에 맡겨 두고 울분을 참으면서 기다려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대두되었던 것이다. 정의를 강조한 기사도 정신이 그를 복수하게끔 종용하고 있다면 한편으로는 기독교적 교리가 그의 행동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의 충돌은 왕을 죽일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맞는 3막 3장에서 잘 나타나있다. 왕이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햄릿은 왕을 없앨 수 없다. 여기에서는 연옥에서 겪는 고통을 토로한 Ghost가 연상된다. 생전에 지은 죄가 한창 만발한 채로 살해된 것에 대해 Ghost가 심각한 공포를 표명하고 있는 점은 기독교적인 생각으로 지금은 하찮은 것으로 넘길 수 있지만 그 당시로는 당연한 것이었다. 사려깊고 기독교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었던 햄릿이 간과할 수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햄릿의 우유부단함은 단순히 그의 성격적인 특성에서 벗어나 중세에서 근세로 바뀌는 과도기에서 겪는 과도기적 가치관의 혼란에서도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