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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존과 개발-독후감]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행복이라는 이름의 진정한 개발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를 읽고{【 생태철학 】{【 생태철학 】{【 생태철학 】어릴 적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냥 모든 것이 옛날의 상태로 돌아가 버렸으면 하는.... 물론 어떤 철학적인 고민을 배경으로 했던 생각은 아니었다. 단순히 지겨운 공부와 싸워야 하는 나의 빡빡한 일상 생활에 지쳐 현실을 도피 차원에서 해보는 달콤한 상상이었다고나 할까. 어릴 때 대체 무슨 공부를 어떻게 했길래 이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만 나온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다. 현대문명에 찌들어버린 일상에서 탈출해서 영화에서나 보는 여유 있는 옛날로의 여행. 지금처럼 환경 오염도 없고, 빡빡한 일상에 쫓겨 바쁘게 살아야 할 이유도 없는.. 하지만 편해진 환경에 적응한 나인터라, 옛날로 돌아가더라도 정말 절실하게 필요한 의술(醫術)과 교통수단은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다. 이것이 바로 욕심인 것일까. 오래된 미래를 읽으면서 나는 많은 생각에 젖고, 딜레마에 빠졌다. 그리고 찾아낸 결론은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의 궁극적인 목적은 편리함이 아닌 행복이라는 데 있다는 것이다.오래된 미래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티베트의 히말라야 고지대 라다크 마을에서 16년 간 머물며 라다크 사람들의 오랜 전통 문화가 해체되고 개발이란 이름으로 변모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한 책이다. 지은이는 라다크의 전통 언어를 배움으로써 그들의 담론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진정한 라다크 문화의 체험이 가능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들의 언어로써 느껴지는, 해석되어지는 문화는 그들의 언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헬레나가 소개하는 라다크 마을은 오랜 세월 동안 거의 방해받지 않고 자족적인 생존을 영위해왔다. 엄혹한 기후와 거친 환경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며,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살고 있다. 그들은 곡식이 자라는 넉 달 동안은 하루종일 노래 부르고 웃으면서 농사를 짓는다. 라다크 사람들에게는 화 잘 내는 사람 이 가장 모욕적인 말이라고 하니 그들의 웃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혹한이 불어닥치는 나머지 여덟 달 동안은 흥겨운 축제로 보내거나 한가롭게 명상을 하며 보낸다. 또한 분쟁(거의 없지만)이 일어나면 자발적 중재자인 제 3자에 의해 해결이 원만하며, 그들은 자신들의 환경에 대한 자연스러운 책임감을 갖고 있다. 라다크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지만 아무도 자신이 가난하다고 또는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가족과 같은 끈끈한 유대감으로 묶여진 공동체 속에서 자연과 일치된 삶을 살며, 평화롭고 충만한 생의 기쁨을 얻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환경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자연에 대한 인간의 시선은 고대로부터 많이 변화되어왔다. 고대에는 자연과 신이 동일시 되어, 인간은 자연을 신성한 존재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중세에 접어들어 신의 뜻으로 자연을 이용하라는 시선과 함께 기계론적 자연관이 대두하면서 자연은 인간에게 있어 하나의 극복할 대상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였다. 무분별한 자연의 개발로 인해 우리의 자연은 앓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는 뒤늦게 깨달은 점이 있어, 생태론적이고 환경친화적인 관점으로 자연을 바라보려 노력하고 있다. 또다시 자연을 동반자적인 관계, 더 나아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있는 것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벌써부터 그 진리를 깨우치고, 자연을 신성시하며, 자연의 이용에 앞서 책임감을 가지고 의식을 행한다. 물론 의식 따위의 샤머니즘적 행위가 자연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자연을 바라보며, 환경과 동떨어진 그들의 생활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될 수 있는 그들의 터전을 가꾸어 온 것이다. 이러한 그들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그들의 생활에는 진심만이 존재하였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그 외의 방법을 몰랐다고 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자신들처럼 행복한 줄 알았으며, 자신들처럼 살아간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활방식(문화)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하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라다크에 전통문화의 천적인 개발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개발과 전통은 벗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보지만, 라다크에서의 개발은 전통문화의 흔적을 떨쳐버리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해석되어졌다. 라다크의 개발은 기존의 자연과 문화의 조화로운 생활과는 동떨어진 서구식의 보편적 교육을 받고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을 하는 것을 더욱 발전된 것이라 보는 눈을 키웠다. 개발로 인해 환경 파손과 사회적 분열이 생겨났고, 인플레이션과 실업이 등장하였다. 이는 오랜 세월 유지되어온 생태적 균형과 사회적 조화가 산업주의의 압력 밑에서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들은 물질적인 혜택으로 인해 더욱 편리한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수 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문화와 전통은 불편한 것으로, 초라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들은 눈 앞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욕심 때문에 마음만은 부자였던 풍요로움과 행복을 잃어버렸다. 행복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개념을 무엇을 더 많이 누리고 있는가 등의 남에게 보여지는 절대적 기준의 잣대로 측정하려는 잘못된 인식이 그들의 행복을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지만, 라다크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남들보다 늦게 물질문명을 접했지만, 그 허황된 욕심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은 것이다. 그들은 서구식 산업문화의 압력 아래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터를 재창조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성과를 가져왔다. 이런 라다크의 경우를 보면서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정말 행복한 곳인지, 내가 바라는 곳인가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세계화로 인해 문화적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으며, 이는 사회적·생태적으로 건전한 생활방식을 발전시켜온 온갖 다양한 토착적 지혜와 기술이 무시되고, 산업문화라는 근원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생활방식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는 책의 내용을 보며, 어쩌면 우리는 서구식 산업문화만이 좋은 것이고, 발전된 것이며, 우리의 갈 길은 발전이므로 도착점은 더더욱 발전된 모습의 서구식 문화라는 선입견 속에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후감/창작| 2004.12.02| 3페이지| 2,000원| 조회(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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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선통신] 시대에 따른 통신의 발전과 방향
    < 시대에 따른 통신의 발전과 방향 >1. 근대이전의 통신수단통신이란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을 일컫는다. 옛날에는 북소리와 횃불 등 청각과 시각 신호를 보내는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또 문자로 작성된 편지를 사람 또는 말(馬)을 이용해 전달하는 방법도 있었으나, 이러한 통신방법은 시간적, 공간적인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 결과, 전기현상을 이용한 통신방법이 등장하게 되었으니 이를 종래의 통신과 구분하여 전기통신이라 하였다.1) 솟대{솟대,수호와 경계의 뜻으로 마을 앞에 세우는 긴 장대이다. 장대의 끄트리에 하늘에 닿을 듯한 모양의 새를 나무로 깍아 앉혀 놓았다.솟대는 삼한시대의 소도에 그 유래를 두고 있다. 솟대는 지역별로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 지는데 전라도에서는 소주. 소줏대, 함흥지방에서는 솔대, 황해도 평안도 지방에서는 솟대, 강원도에서는 솔대, 경상도의 해안지방에서는 '별신대라고 한다.이 밖에도 '표줏대, 거릿대, 갯대, 수살이대,수살이, 수살목, 액맥이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편 돌로 만든 솟대는 '솟대,짐대, 짐대할머니, 당산'이라 부른다. 이 솟대라는 이름은 '솟다'에 '나무'를 더하여 '솟을 나무'라는 뜻으로 풀이되어 진다. 솟대는 삼한시대의 제사인 '소도'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우리나라 서낭신과 관련이 깊은 몽고의 악박(Obo)에서 온것이라는 새 숭배기원설로 나누어 진다. 이 중에서 소도기원설이 우세하다. 솟대는 소도에 세우는 것으로 읍촌의 수호와 제단으로서의 역할, 경계선의 상징과 과거를 급제한 사람, 효자 등을 기념하기 위해서도 세워졌다. 또한 보름날엔 마을 사람들이 솟대를 넓은 마당에 세워두고 농악을 벌이기도 했는데, 풍년이 든다는 믿음에서 이다. 한편 별신굿에서 신을 상징하는 신간을 굿당에 세우는데 이 또한 솟대라고 한다. 이 때에 마을의 제관이 이 솟대를 잡으면 무녀가 축원을 하는데, 이때 신이 내리며 신간 즉 솟대가 흔들린다. 이 신간을 앞세우고 무당이 무악을 연주하며 및 야간, 공격방향 등 명령체계가 구분되어 있으며, 각 문양은 자연만물을 상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신호연의 특징이라 하겠다.군사무기인 이 신호연은 일종의 통신위성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투신호를 위한 암호전달에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전투중의 사전상황을 알려 지휘관 또는 병사들에게 전투준비를 갖추라는 예지신호이자작전명령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후퇴라는 명령의 신호가 없었다는 것이다.{이러한 우리의 방패연은 숱한외세의 침략을 같이 이겨내 온, 하늘에 떠 있는 자랑스런 민족의 정신임을 느낄수 있다.{{{{윗까치당가리연 삼봉산눈쟁이연 귀바리눈쟁이연 긴고리눈쟁이연 치마고리눈쟁이연4) 봉수대l 봉수란?봉수란 높은 산정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횃불 낮에는연기를 올려 변방의 위급상황을 릴레이식으로 중앙에 올리는 통신수단으로 전기현상을 이용하지 않았을 뿐 오늘날의 전기통신 방식과 유사하여 전기통신의 뿌리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통신문화 유산이다.고대 통신방식중 가장 과학적이며 체계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봉수제도이다. 이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꽃에 정보의 내용을 변화시켜 원거리까지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써, 산악국가였던 우리나라는 남해안에서 함경도 종성까지 전국을 연결하는 완벽한 봉화통신망이 존재하였다. 전달 방식은 사전의 약정에 의해서 연기 또는 불빛을 인근의 봉수대에 차례로 전달하여 서울에 이르게 하였던 것으로, 높은 산의 정상에 설치했던 봉수대 자리는 현재의 마이크로 웨이브 중계소의 위치와 대부분 일치하고 있다.2 우리나라의 봉수의 역사봉화의 최초기원은 BC300년경 아리스토텔레스 또는 알렉산더대왕 시대를 전후해 구라파에서 널리 사용 되었다.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백제(온조왕), 가락국(수로왕)때 봉수관련기록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수록되어 있어 삼국시대 초엽부터 봉수가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제도화된 것은 고려 의종 3년 1149년에 서북병마사 조진약의 상주로 임금의 허락을 받아 봉수식을 거행했다고 전문화유산으로역사적 가치가 높다.5) 파발제도조선 중기 이후에 두었던 중앙과 지방 간의통신망. 파발에는 말을 이용하여 통신 내용을 보다 빨리 전달하는 기발(騎撥)과 사람이 걸어서 전달하는 보발(步撥)이 있었다. 그 파발망은 서울에서 황해도∼ 평안도 지방에 이르는 서발, 서울에서 강원도∼ 함경도 지방에 이르는 북발, 서울에서 충청도∼경상도 지방에 이르는 남발 등 크게 세 노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가운데서 중국과의 연결로인 서발의 대로(큰길)만이 기발이었고 나머지는 보발이었다. 그리고 기발의 경우 25 리마다, 보발의 경우 30 리마다 참(站 : 머무는 곳)을 두어 파발이 교대하게 하였다.1 기발조선 시대의 파발 제도의 하나. 말을 타고 급한 공문을 전하여 보내던 제도를 말한다. 서울의 경영참에서부터 의주의 소관참 사이에 38참(站 : 1참은 25리)을 두어 매참마다 발장 1명, 군정 5명, 말 5필을 배치하였다. 참은 말을 대기시켜 교대하는 곳이다. 기발망은 주로 북쪽 변경과의 긴밀한 통신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2 보발조선 시대에 정부의 급한 공문을 전하기 위해 두었던 파발 제도의 한 가지. 1597년( 선조 30년)에 봉수제를 없앤 대신에 설치하였다. 사람이 걸어서 공문을 전달하는 것으로 30 리마다 참(站)을 두고 교대로 달리게 하였는데, 서울에서부터 시작하여 의주까지의 서발, 경원 아오지참까지의 북발, 부산 초량참까지의 남발 등 3개 노선이 있었다.3 파발(擺撥)의 역사조선시대 변서(邊書:변방으로 가는 공문서)의 신속한 전달을 위하여 설치한 통신수단으로 횃불과 연기로써 구체적인적의 상황을 전달하는 봉수는 구름과 안개가 짙게 낀 경우 단절되는 등 실제에 있어서 한계가 있었다. 임진왜란중 봉수제의 기능을 보안하기 위해 선조 30년 1579년 집의 한준겸의 건의에 따라 파발을 설치하였고, 인조때 서발·북발·남발의 3대로를 근간의 한 파발제가 완성되었다.「만기요람」에 의한면 파발제의 조직은 지역에 따라 직발과 간발이 있고, 전달수단에 따라 기발과 보발로 나는 전자석 앞에 진동편을 두어 음파진동에 따라 전류를 변화시켜 음성을 전달 하는 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송화기와 수화기가 동일하다. 이것은 그해 4월3일 보스턴과 뉴욕사이에 실용화 되었다. 이듬해에는 보스턴에서 교환방식의 전화가 사용되었는데 이때의 전화는 수화기를 걸어 놓고 핸들을 돌리는 형태였다. 78년 T.A. 에디슨이 송화기를 개량함으로써 현대식 전화기의 기본원리가 정립되었다. 96년에는 다이얼전화기가 발명되어 거는 시대에서 돌리는 시대를 맞게 되었다. 1958년 미국의 벨연구소에서 개발된 전자교환기로 인하여 MFC(복합주파수)전화기가 등장, 누르는 방식의 전자식 전화기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 전화기는 가입자가 버튼을 누르면 2가지 음(가청주파수)이 섞여 삐삐소리를 내며 전화국에 전달되어 교환기를 작동시키는 방식의 것이다. 따라서 재다이얼, 3인통화, 통화중 대기, 부재중 자동응답, 전화번호 기억, 정보 안내, 착신 전화 전환 등의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이후 전화기의 발전이 거듭되어 다기능 첨단전화기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코드리스폰이라 불리는 무선전화기, 이동식 전화기인 차량전화기, 휴대용전화기, 전화기능은 물론이고 그림, 글씨, 사진 등을 송.수신할 수 있는 팩시밀리, 음성정보와 비음성정보를 동시에 송.수신할 수 있는 화상전화기(Video Phone), 음성으로 전화를 거는 방시그이 음성인식전화기, 간이 교환대의 기능을 제공하는 키폰(Key phone) 등이 그것이다.2 역사통신은 인류의 발생과 함께 시작되었다.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고 생활해 나가기 위해서는 개인 대 개인, 사회 대 사회 사이에 서로 의사를 통하여야 할 필요가 절대적인 요건이 된다. 만일 그 상대가 근접해 있을 때에는 몸짓이나 언어로 의사가 통하지만 양자의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말이나 몸짓으로 통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타인을 통하거나 빛·연기·소리 등을 통하여 의사를 전하였다. 문자가 발명됨에 따라 통신은 발전되어 석반(石盤)·금속판·목판·동물의 가죽에 문자를 조각하여 그 내용을 전하게세계를 제패하고 있던 영국으로서는 본국과 도처의 식민지를 결합하기 위해 불가결하였다. 무선통신 발명 초기에 여러 나라는 항해상 특히 국방상 중요한 무선국의 설치·운영은 마땅히 국가 관리하에 두어야 한다고 보고 국가가 이를 관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한편 무선통신은 특정국가에 의하여 전관(專管)될 수 없는 본질성을 가지고 있다. 전파의 공간적 전파성과 취급법의 공통성이 그것이다. 따라서 각국은 공통된 기술 기준과 취급법을 협의·약정하고 그것을 준수함으로써 비로소 무선통신의 실효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1903년과 1906년에 거듭된 국제회의를 거쳐 세계무선전신조약을 체결하였다. 한국에서의 무선통신은 10년에 항로표지와 세관감시를 겸한 광제호(光濟號)와 월미도 등대에 무선국을 설치·운용한 것이 시초이다.같은 해에 목포와 소청도 등대에도 무선국을 설치하였다. 해안국으로서는 서울무선국(현재의 서울중앙무선국과 인천무선국)이 23년에, 목포·청진·제주 무선국이 24년에 각각 설치되어 해안업무와 고정업무를 병행하게 되었다.3 통신의 기능과 장래통신이라는 관점에서 국가는 다수의사의 지역적 집약(集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의 운영은 국민의 의사를 통합하고 이것에 근거하여 필요한 국사(國事)를 행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신경계통과 인간의 행위의 관계와도 같은 것으로, 국민의 의사와 의사가 소통되는 관계는 완전한 통신기능이 발휘됨으로써 비로소 원활을 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비상사태나 전쟁시 통신기관이 파괴되어 기능이 정지되었을 경우에는 상하좌우의 의사 소통이 단절되어, 유언비어가 유포되고 불안한 민심이 비등하는 한편, 행정장은 중앙정부와의 통로를 잃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그 지역은 정치적 마비상태를 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경제생활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생산은 시황(市況)과 결부되어 행하여지고 매매는 수요와 공급의 형평에 입각하여 행해진다. 그러므로 원료의 구입이나 생산품의 수송도 시장의 경기동향을 파악하였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게 되며, 있다.
    사회과학| 2004.11.17| 11페이지| 2,000원| 조회(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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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학의 교육사상1. 실학사상'실학'은 "실사구시"의 약칭. 실학은 '실사구시'를 학문연구의 방법으로 견지하고 '실용지학'을 학문연구의 대상과 내용으로 하며, '경세치용'을 학문으로 하는 학문이다.2. 실학사상의 발생 배경직접적인 원인으로서 현실에 대한 자각과 반성을 들 수 있다. 조선은 왜란과 호란을 겪은 뒤, 국토가 극도로 황폐해지고 사회, 경제적으로 파탄에 이르렀지만 집권층은 성리학을 최고의 이념으로 내세워 기성 질서를 유지하려 하였으며, 도덕적 명분과 정쟁에만 몰두하여 부국강병과 민생문제를 등한시하였다. 이에 일부의 선각적인 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공리 공담의 성리학을 비판함과 동시에,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서 부국강병과 민생안정을 달성해야 한다고 하는 실학 운동을 전개하게 된 것이다.또한 고증학과 서구 문물의 전래에 따른 자극으로 인해 좀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학문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 발생 배경으로 보여진다. 고증학이 전래됨에 따라 확실한 증거에 의해 이론을 전개하고 그에 따라 결론을 내리는 경험적이고 실증적이며 합리적인 연구방법이 고취되었다. 게다가 서양의 문물이 들어옴에 따라 새로운 세계에 눈을 돌리고, 사회의 가치 창조에 기여할 수 있는 학문을 축적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그 외의 원인으로는 조선왕조가 직면하고 있었던 통치질서의 와해현상을 들 수 있다. 즉, 16세기부터 변질되기 시작한 조선사회는 두 차례를 재편하고, 민생을 안정시킬 수 있는 개혁의 방안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그리하여 대두한 실학사상은 전통적 사회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이루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학사상이 목적인 새로운 사회로의 희망은 절대로 유교적인 이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유교본래의 민본사회로의 복귀를 의미한 것이다. 즉 실학은 조선후기의 사회?경제적 변동에 따른 여러 가지 사회적 모순에 직면하여, 그 해결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개혁 사상이었다. 그러므로 그 사상이나 개혁의 논리는 종래의 성리학과 같을 수 없었다.3. 실학의 특징1 ‘실사구시’의 학문이다. - 실사구시(뀀?), 경세치용(vN?, 이용후생(?웜); 실사구시는 사실을 중심으로 하여 진리를 탐구하려는 학문태도를 말한다. 현실적으로 많은 일을 추진하고 성취시키면서 동시에 그 추진과 성취에는 반드시 정의로운 가치가 공존하여야 하는 것이 실사구시의 본질이다. 김정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이익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경세치용은 민생의 안정과 사회발전 등 현실적 문제의 해결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빈농층을 대변하고 토지와 제도개혁, 그리고 문화 주체성을 강조하는 데 역점을 둔다.박지원은 이용이 있은 후에 후생이 가능하고 후생이 있은 연후에 정덕(?)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들은 정덕한 다음에 이용과 후생이 가능하다는 종래의 논리를 비판하고 생산의 증대와 민생의 풍요를 최대의 목표로 삼았다.2 민본(?적 민주([)사상; 실학파의 민본적 민주 사상은 유교의 중민 사상이라는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제기한 평등 사상은 객관적으로 상공업 자본가의 이익을 미약하게나마 반영했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의의를 갖는 다고 할 수 있다.3 민족주의(;[u)적 성격; 실학파는 v?u에 반대하고 자주정신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조선이 진보적인 학자들이 발전한 서양 과학 문화를 받아들인 결과이고, 사대주의가 조선 봉건 사회에, 초래한 심각한 위기에 대한 반성이며,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였다. 종래의 주자학은 동양사회의 사상계를 지배한 일종의 동양 중세적 세계주의였다. 주자학적 화이사상 아래에서는 우리 나라의 역사나 문화도 중국의 그것의 일부분으로밖에 인식되지 않았으나, 실학자들은 화이사상에서 탈피하여 우리의 역사와 지리, 언어, 정치, 경제, 군사 등에 대한 연구에 열중하여 이를 체계화하였다.4 개혁정신; 경제 개혁의 측면에서 보인 실학파는 전제 개혁을 매우 중시하여 그것을 부국강병의 중심 고리로 보았고, 정치 개혁의 측면에서 보면, 실학파는 주로 고대 사회의 왕도?인정에 대항 미화와 패도?폭정에 대한 반대를 통하여 정치 개혁의 목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5 근대지향적 성격; 실학자들은 오히려 근대 지향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동양 고대를 이상사회로 추구하였으나 그들의 주장이나 이론은 중세적 계급의 해소, 금속화폐의 유통, 상공업의 발달, 외국무역의 개발, 토지제도의 개혁 등 근대 지향성이 강하여 개항 이후까지 강한 영향을 주었다.6 기 일원론적 사상; 실학파의 철학사상은 대충 살펴보면, 그 철학의 기본 경향은 리 일원론이 아니라, 기 일원론, 즉 유물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수광은 세계의 기원을 물직적인 기, 즉 태극으로 보았고, 아울러 그것이 세계만물을 창조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일원론적인 사상이다.4. 실학자들의 교육사상1 유 형 원; 그의 사상의 첫째 특징은 개혁정신으로 나타난다. 그는 불합리한 경제 문제를 비롯한 사회제도의 개혁을 역사적 문헌에서 고증하여 정밀한 실증적 태도로써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농민에게 최저 경작지를 확보해주고, 병농일치로서의 군대제도의 개혁, 부역의 조정, 국민균등의 조세제도를 확립시키려고 노력했으며, 농업 발전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상공업을 장려하였다.둘째 특징은 선비의 사명에 대한 자각과 더불어 교육의 기회균등을 주장했다. 그는 사(?는 농공상과 함RP 사회적 사명의 한 직업자임을 강조하소거는 신분에 따른 인간차별의 부당성을 지적했고 모은 인간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학제안을 제시하였다.먼저, 과거제도 대신 양사선현의 교육기능을 학교의 본질적 사명으로 한다. 그리고는 국학 교육기관을 서울, 지방의 2원제로 편성하여 중앙 독점을 방지하고 지방에서도 인재등용이 가능하도록 유의하였다. 또한 태학 - 영학, 중학 - 읍학, 사학 - 경상, 방상 등 4단계의 발달단계에 의한 근대적 학제안을 제안하고서는 사서의 구별없이 입학을 허용하여 전문적인 교육을 시키도록 했다.2 이익; 성호 이익은 반계를 계승하여 조선에 대한 실용, 실증의 실학을 주장하였다.- 교육방법 -* 일신전공 - 날마다 새로워서 공을 온전히 할 것.* 취진공부 - 박력을 가지고 나아갈 것.* 구신호기 - 새롭고 기이한 것을 좋아할 것.* 불실기시 - 때를 읽지 말 것.* 서독질의 - 글로 써서 질문할 것.* 경완서적 - 서적을 사랑하고 공경할 것.* 진리를 간략히 포착할 것 - 분분한 이론에 미혹하여 번다한 변설에 시간이 낭비되어 실천에 겨를을 잃는 것을 반대- 교과목 -* 사물잠(균)을 중시.* 효경, 논어, 맹자, 주역, 시경, 서경, 예기, 주례, 춘추, 주설, 제사, 정주문자 등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 가정교육을 중시함* 도시교육의 폐해를 지적* 사도의 존어을 주창* 유문(?의 금고(iI)를 꾸짖었다.* 과거제도의 폐해를 절규* 인재양성의 편벽을 분개* 여자교육관 ; 여자는 아침 저녁 공양과 제사준비, 손님맞이와 베짜기의 기술과 근검효경의 덕과 남녀유별의 예절이면 족하고 독서나 책을 집어드는 것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3 정약용; 정약용은 주로 사회개혁과 경제 개혁 그리고 국방 개혁에 관한 사상으로 표현되었다.첫째, 정약용이 사회개혁 사상은 그의 사회, 역사관 위에서 형성되었다. 그는 고대 사회를 이상화함으로써 군주제를 반대하고 민주 정치를 부르짖었다. 그는 이상적인 고대 사회가 이후 왕도(??와 예치(?)의 사회를 거쳐 패도(凋)와 법제(믓)의 사회로 변했다고 파악하였다. 이렇게 이상적인 정치가 무너지자 원래 백성을 위해 만들어졌던 국가와 법이 통치자가 백성을 수탈하는 도구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고대 사회를 모범으로 들어 봉건적 전제 통치를 부정하는 방편으로 삼았다. 그의 민주, 민권적 정치개혁 사상은 '원목( )'(통치론)과 '탕론(씜)(역성혁명론)두편에 집중적으로 표현되었다.
    교육학| 2004.11.03| 5페이지| 2,000원| 조회(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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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감상문
    인생은 아름다워!! 전부터 한 친구가 권해준 영화였다. 제목만 듣고 별 재미없을 것 같아서 영화를 봤냐고 자꾸만 되묻는 친구에게 시간이 없어서 못 봤다는 핑계를 대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내가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어리석게도 느껴진다. 영화를 본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알지 못했던 것이 안타까울 정도다.이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귀도와 도라의 코믹하고, 약간은 과장된 듯한 만남으로 웃음을 선사해 주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에게는 그들의 사랑이 진실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쉽지만은 않았던 그들의 사랑은 결국 결실을 맺게 되고, 그들의 아들, 조수아와 함께 어느 가정 못지 않은 행복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이 지속되기는 힘들었다. 귀도와 조수아가 유태인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결국, 유태인 부자는 나치에 의해 조수아의 생일날 유태인 수용소로 끌려간다. 이 때, 유태인이 아닌 도라 역시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자발적으로 따라 나선다. 수용소에 도착한 귀도는 진실을 이야기하면 어린 아들이 절망과 공포에 휩싸이게 될 것을 짐작하고, 아들에게 그들의 상황을 하나의 게임이라고 일러준다. 1000점을 따야 여기서 나갈 수 있다고 하여, 앞으로 닥칠 어려운 상황을 점수를 채워가면서 느끼는 쾌감과 앞날에 대한 희망으로 바꿔준 것이다. 아들의 생명과 희망을 위해 비극적 상황을 희극으로 그려낸 귀도에게서 뜨거운 부성애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수용소에서 떨어진 도라에게 자신과 조수아의 생존을 알리기 위해 애쓰는 귀도를 보면서 진정한 사랑이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대를 생각하는데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든 나날이 계속 되던 어느 날 밤, 독일군들이 군수물자를 태우며 소란을 피운다. 독일군이 패한 것이다. 날이 밝으면 세 식구는 다시 만나서 예전처럼 단란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귀도는 조수아의 안전을 위해 마지막 게임이라며 밖에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까지 녹이 슨 작은 캐비넷 속에 숨어있으라고 한다. 그리고는 여장을 해서 도라가 있는 여자 수용소로 간다. 이리저리 도라를 찾아다니던 귀도는 결국 독일군에게 잡히게 되고 단 몇발의 총성과 함께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주인공의 죽음. 행복할 날들을 코앞에 두고 가족의 곁을 떠난 귀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귀도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무정하게 날은 밝아 왔다. 밤새 한숨도 자지 않은 조수아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캐비넷에서 나온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도 갖고 싶어했던 진짜 탱크를 보게 된다. 귀도가 말했던 1000점을 가장 빨리 채우는 1등에게 돌아가는 탱크! 바로 미군의 탱크였다. 이렇게 끝까지 조수아에게 했던 귀도의 말들은 틀린 것 없이 맞아 떨어졌다. 그리고 도라와도 재회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성인 조수아의 목소리가 아버지의 희생을 회상하면서 이영화는 끝이 난다.
    독후감/창작| 2004.11.03| 2페이지| 2,000원| 조회(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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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지리
    社會地理學1. 사회지리학의 학문적 특성사회 지리학이란 공간분석 지리학 이후(1960~)의 사회적 문제에 의해 급하게 대두된 지리학의 한 분야이다. 사회지리학은 적실성(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관되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을 가지며, 사회지리학에서의 사회는 social group(사회집단)으로 지역적 특성을 만드는 사회 매개체를 뜻한다. 어떠한 사회 집단이 어떻게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지역적 특성이 나타나기 때문에 사회지리학에서 개인은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예를 들어 부자들의 구매행태에 따라 특징적 소비 지역이 형성될 수 있는데, 이는 사회지리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 지리는 소외집단 등 의미를 가진 것들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불평등과 불균등 상태가 주관심사이다. 사회지리학의 일반적 개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 집단이 일정한 사회 공간적 구조 속에서 만들어 낸 공간적 현상들의 유형과 그 전개과정을 이해하는 학문이다(Jones and Elyes, 1997). 여기서 사회집단(사회계층)은 공간구조(공간계층)를 만들고 공간구조 역시 사회집단을 만드는 상호작용을 한다. 두 번째, 사회지리학은 사회 집단이 그들의 공간을 사용함으로써 만들어내는 패턴과 이러한 패턴이 만들어지고 변화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이다. 셋째, 도시 내의 자원의 분포와 자원에의 접근에 따른 사회적 패턴과 과정의 이해로 이 주체는 사회집단이다.사회지리학의 정의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Watson은 전체 환경과 연관된 사회적 현상에 따른 지표의 서로 다른 지역의 동질화라고 정의하였다. Pahl은 공간적 단위(지역)에서 사회적으로 정의된 인구(사회집단)를 이해하는 과정과 패턴에 관한 연구라고 정의하였다. Buttimer은 사회적 환경에서 공간적 패턴과 기능적 관계에 관한 연구라 하였으며 Schaefer는 인간 집단 및 사회가 수행하는 존재기본기능의 공간적 조직 형태와 공간 형성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하였다. Elyes는 자원의 불균등 분포로부터 야기), 둘째, 경제적 욕구의 충족과 부의 축적(경제 사회학적 기능), 셋째, 의사주장 및 관철(정치적 기능), 넷째, 취락 형태, 토지이용 및 그 질서에 관한 활동(정주사회학적 기능), 다섯째, 사람, 물자, 정보의 이동, 이주 및 기능의 입지 변동에 관련된 활동(이동 사회학적 기능), 여섯째, 문화 경관 및 지역지리적 관련성에 관한 활동(문화적 기능)이다. 이러한 Bobek의 6가지 기능을 수정한 Partzsch의 존재 기본 기능 역시, spatial inequality에 초점을 맞춘다. 존재기본기능이란 인간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기능들로서 거주, 노동, 서비스, 교육, 휴양(여가), 공동생활, 교통 및 통신을 들 수 있다. 이런 기능으로 생활양식을 구분하는데, 하나하나 살펴보면, 첫째 거주는 사회 계층 질서와 공간계층 구조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사회의 지위와 거주지의 지위는 거의 일치한다고 본다. 즉 지역이 사회경제적 지위에 의해 분화됨을 의미하며, 이주를 통해서 분화(segregation)가 일어난다. 둘째, 노동의 개념은 거주지역과 노동 지역 간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인간 집단을 구분하는 것이다. 산업 혁명 이전은 직·주 미분리가 대부분이었지만, 산업 혁명 이후 교통 수단이 발달하면서 직·주 분리가 생겨났다. 산업 혁명 초기에는 직·주 분리였어도 daily traffic이 가능했었지만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거주지가 교외로 확장되면서 통근이 불가능해졌고, 이로서 2nd home의 개념이 생겨났다. 이로써,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소속감이 줄어들고 공간의 인지 정도가 미약해짐으로써 공간의식의 분열이 생겨났으며, daily traffic이 파괴되면서 나타나는 공간의식 분열은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셋째, 서비스는 개인의 계층 지위, 생애 주기와 상당히 연관된 개념으로 크리스탈러의 이론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는 사람들이 상위 중심지 지향적이고 소비생활에 있어서 일괄처리방식을 선호하는 최근 동향으로 인해 상위 중심지 지향을 할 수 없는 한계 집영역으로, 이를 통해 공간적으로 사람의 행위가 어떻게 입지, 분포하는 지를 알 수 있으며, 주거지를 중심으로 행동의 빈도와 방향을 통해 공간을 정의한다. 세 번째, 영역 공간(territorial space)은 자신이 속해 있거나 영유하고 있다고 느끼는 공간으로 자신이 이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뜻한다. 이러한 영역 공간은 장소에 대한 소속감과 영유감을 가지게 하며, 장소에 대한 이용과 접근이 가능하여 배타적 특성을 가진다. 또한 침입에 대하여 방어와 보호를 하는 기능을 한다. 영역 공간은 개인적 영역과 그룹 영역으로 나뉘는데, 개인적 영역(personal space)은 다시 5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Body space로 신체의 연장이라고 느끼는 공간, 둘째, intimate distance로 체취를 느끼면서 터치가 가능한 거리, 셋째, Personal distance로 비공식적 대화가 이루어지고 의도적 접촉이 가능한 거리이다. 넷째, socio-consultative distance로 공식적 대화나 사회적 관계가 이루어지는 거리이며, 마지막으로 Public distance로 아주 공식적, 사회적 관계만이 이루어지는 거리이다. 그룹 영역(Group territory)는 개인적 영역에 비해서 영속성을 가지며 사생활이 보장되는 home territory와 모든 개인이 이용 가능한 공공 지역인 Public territory로 구분할 수 있다.2. 사회지리학의 학문적 동향사회지리학의 접근 방법은 크게 형태론적 방법, 생태론적 방법, 행태론적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Built environment-Urban Morphology of the physical structure of cities로 건축(건조)환경이나 도시의 형태를 보고 외관상의 패턴을 연구하는 형태론적 방법이다. 이 접근 방법은 다시 4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주택 형태나 빌딩 구획, 도로 구조 등을 보고 토지 구획의 기본적인 형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토지 구획의 형태는 역사적 지역이다.사회 지리의 접근 방법으로 두 번째, 생태론적 방법으로 사회 경제적 환경을 연구( socio-economic environment)하는 방법이다. 이는 침입(invasion)과 경쟁(competition), 천이(succession)의 과정을 인간 사회에 적용시킨 것이다. 사회 경제적 환경을 연구하는 방법은 또 다시 사회지역 분석과 요인생태학으로 나뉜다. 첫째, 사회지역 분석은 지역을 사회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의 산물이라 하는 Writhian theory를 기본 연구 모델로 하였다. 이 방법으로 Shevky, Williams, Bell은 LA와 San Francisco를 미국 사회의 사회 분화를 연구하였다. 이들은 사회가 변화하는 것을 세 가지 초점에 맞추었는데 1 사회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관계의 집약도나 범위에 있어서 변화가 생긴다고 하였다. 따라서 기능에 기초한 직업의 재배치가 사회적 지위(경제적 지위)를 형성한다고 본 것이다. 관계의 집약도나 범위의 주요 변수는 직업, 학력, 지대 등이 있다. 2 기능의 분화로 생산활동 구조 변화와 관계를 가지는데, 이는 여성들의 활동이 중요해짐에 따라 가족 패턴이 다양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이런 현상을 도시화에 따른 가족적 지위의 변화와 관련시켰다. 기능의 분화의 주요 변수는 출생률, 여성취업률 등을 들 수 있다. 3 사회 조직이 복잡해지는 데에 관심을 두었다. 인구구성의 변화는 성별·연령별 분포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는 공간 내 인구를 재분포 시켜 의존적·격리 집단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Segregation을 유도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ethnic 지위와 관련된다고 한다. 사회 조직의 복잡성을 알 수 있는 주요 변수는 상대적인 고립 내에서의 인종적, 민족적 집단을 들 수 있다. 사회 지역 분석은 도시화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 familism이 아니며, 둘은 별 연관성이 없다고 하여 도시화라는 부분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Wirthian Theory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이 아님끌어들인 것으로 공간상의 분포가 불평등하다고 전제한다. 이런 불평등 상태에서 공동선에 대한 기여와 욕구(기본 생존과 정신적인 면), 욕구에 부응한 고른 혜택을 통해 영토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한다. D.Smith는 영토적 사회 지표를 통해 공간을 연구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방법은 다섯 단계로 나눠진다. 1 불균형한 분포 자체를 다양한 사회 지표를 가지고 그 지역의 상황을 제시하여 기술하는 것이다.(description) 2 공간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그 지역의 상태가 왜 그럴까 하는 원인 설명에 해당한다.(explanation) 3 사회 정의를 평가할 수 있는 여러 준거를 통해 정의가 실현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단계이다.(evaluation) 이때 가장 중요한 준거로 평등, 능률성, 효율(효과)성, 공정성, 미덕, 만족감을 들 수 있다. 4 사회 정의의 실현 여부에 따른 보완의 단계이다.(implementation) 5 보완에 따른 처방의 단계이다.(prescription)지금까지 공간적 불평등을 알아내기 위한 방법 사회 지표분석, 생태요인 분석, 사회지역 분석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런 공간적 불평등 문제가 제기 되는 상황에 지리학 분야에서 사회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적실성을 가진 사회 지리학이 등장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 지리학은 공간분석 지리학 이후의 사회적 문제에 의해 급하게 대두된 지리학의 한 분야이다. 사회지리학은 크게 자유주의적 입장의 복지지리학과 급진주의적 입장의 마르스크 지리학으로 나뉜다. 복지지리학(The Geography of Welfare)는 사회 문제는 체제의 역기능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를 인정하고 제도적 보완을 통해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입장으로 점진론 또는 자유주의라고도 한다. 복지지리학은 기술, 설명, 평가 처방, 보완의 접근 방법을 사용한다. 복지지리학에서 복지 경제와 복지 정책의 개념이 파생되었다. 마르크스지리학(Marxist Geography)은 사회 문제는 사회구다.
    사회과학| 2004.11.03| 8페이지| 2,000원| 조회(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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