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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림의 갈대 독후감
    시는 음악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시는―사람의 언어로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언어를 뛰어넘는다. <갈대>를 읽으면서 느낀 부분 또한 일면 풀어쓸 수 있는 말로 환원되기 어려운 직관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시가 시를 읽는 사람에게는 또다른 체험처럼, 선배의 경험담처럼, 반면교사하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모두 다르게 다가간다. 여기에 바로 시의 창조성이 있다. 사실과 이를 다루는 언어의 빈틈 사이로 직관이라는 요소가 끼어듦으로써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적 상상력이라 함은 시라는 동일 텍스트를 읽는 독자들이 자기의 경험과 관념에 입각해 각자의 의미를 유도할 수 있는 직관적 여지(餘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독후감/창작| 2003.05.22| 2페이지| 1,000원| 조회(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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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식민주의 논의 평가A좋아요
    자, 이제 이것을 탈식민주의, 연극과 연계시켜 보자. 뮤지컬이나 연극은 자본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즉, 인간이 하는 작업이기에 기본적으로 배우들의 생활이 되어야하고 연극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무대장치가 필요 없고 분장이 필요 없는 형식의 모노드라마가 아닌 바에야 자본이 있어야 할 것이다. 주지하자. 현재적 시점에서 공연예술이 생존하기 위해서 그리고 문학이 생존하기 위해서 아니 예술과 문화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기반은 자본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다. 탈식민주의는 바로 이러한 기반에서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 등장한 제국주의가 미친 현재적 영향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리고 이러한 기반 위에서 새로운 담론을 형성시키고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알려내는 것이다. 즉, 현재적 제반 조건이 탈식민주의가 태동할 수 있는 근거이기 때문에 이 자체를 부정하기는 힘들다. 이 전체를 부정한다면 탈식민주의 자체의 모태가 사라지는 것이기에. 문제가 이러하다면 현재적 조건의 인정 하에서 탈식민주의의 역할은 무엇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단지 하나의 상대주의성에 대한 강조와 지배적인 질서에 대한 대항적 담론으로 그 실천적 역할을 마무리 할 것인가? 아니면 이 담론이 파급적으로 퍼져나가 해체시킨 후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인문/어학| 2003.05.22| 7페이지| 1,000원| 조회(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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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 통사론] 아햏햏 분석
    1.머리말 컴퓨터 통신이 처음 생겼을 때에는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그대로 통신에 반영되었었다. 그러나 인터넷과 통신이 발달하고 우리가 온라인상의 대화에 익숙해지면서 여러 통신용어와 이모티콘이 퍼지고, 실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쉽고 시간이 절약된다는 이유로 생겨난 ‘방가’, ‘안냐세여’ 등의 용어는 이미 모든 네티즌에게 익숙한 은어 아닌 은어가 되었다. 이러한 통신문화는 온라인상에서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 왔으며, ‘아햏햏 언어’라는 독자적인 언어세계를 창조해 내기에 이르렀다. 디지털 카메라 동호회(DC인사이드)의 이미지 게시판에 네티즌들이 한줄답변을 달면서 파생된 아햏햏 언어는 이제 따로 ‘아햏햏 사이트’를 만드는 등 한국의 네티즌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아햏햏 언어가 무엇인지 소개하고 그것이 기존 문법 체계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인문/어학| 2003.05.22| 5페이지| 1,000원| 조회(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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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의 양심 - 윌리엄 윌버포스 평가A좋아요
    18세기 말, 세계 최고의 해군력과 상선들을 갖고 있던 영국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잡아 북미대륙으로 실어 나르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열악한 항해 환경과 비인간적인 처우로 도중에 25%가 넘는 흑인들이 사망할 정도로 살인적인 노예 수송이 경제적 이익이라는 이유 하나로 묵과되고 있었다. 당시 150여 년 동안 약 200만에 다다르는 노예를 수송했는데, 이것이 국가 수입원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다. 당연히 이 노예 제도 지지파들은 막강한 상인, 재벌, 넬슨 제독 같은 식민지 기득권 세력, 대부분의 왕족, 귀족으로 구성되어 그 어떠한 반대의 소리도 '매국'으로 몰아붙여 잠재워버렸다그러나 퀘이커 교도들은 일찍이 1724년에 노예 무역을 정죄하였으며, 1761년부터는 펜실베이니아의 형제들과 제휴하여 노예 무역에 관여하는 모든 교우들과의 관계를 끊었다. 알렉산더 포프, 존 로크, 비국교도 신학자인 리처드 백스터 등은 노예 무역을 반대하는 글을 썼다. 노예 무역에 관해서 조지 윗필드와 논쟁을 벌였던 존 웨슬리는 the execrable sum of al villainy(저주받아 마땅한 온갖 극악무도한 일의 총합)이라는 소책자를 썼는데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분명한 것은, 진정한 싸움이 의회의 몫으로 남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노예 무역을 폐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적절한 대변자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노예 무역 폐지를 주장하는 정치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고위직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버려야 했고, 더욱이 높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할 만큼 무게 있는 사람이어야만 했다. 또한 의회의 동정심과 혐오감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웅변가여야 했다. 그리고 해가 거듭 바뀌어도 변치 않고 대의를 추구할 수 있는 확고한 신념과, 복잡한 문제를 잘 다룰 수 있는 지성과, 편견을 물리 칠 수 없는 환경에서도 그 편견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매력을 겸비한 사람이어야 했다. 사실, 하원 안에 다방면으로 준비를 갖춘 사람이 있었다. 1780년 10월, 스물 한 살의 나 선거인단을 가진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명망 있는 지역기반과 자신의 인기에 힘입어 선거에서 당당히 승리하여 정치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윌버포스는 정치에 성공적으로 입문한 뒤 곧 런던 사교계에서 젊고 부유하고 매력적인 의회 의원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얻게 되고 교분을 맺게 되었다. 특히 그의 목소리로 인해 하원의 나이팅게일이라고 불렸다. 피트는 하원에서 했던 경제개혁에 관한 처녀 연설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피트는 6월에 자기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미국 독립전쟁을 공박하는 탁월한 연설을 했으며, 12월에도 같은 주제로 또 한번의 훌륭한 연설을 했다. 6개월 뒤, 피트는 하원에 들어간 지 18개월만에 약관 23세의 나이로 셀번 경의 행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윌버포스와 피트가 절친한 친구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 당시 영국 정부는 폭스와 노스의 연립정부였으나 폭스가 제기한 동인도 회사와 인도에 있는 그 회사에 대한 정부의 임명권을 엄청나게 강화하는 인도 법안(India Bill)으로 인해 엄청난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다. 피트와 윌버포스는 사력을 다해 그 법안에 대한 반대 투쟁을 벌였다. 폭스의 정치에 대해 영국 황태자의 도덕적 타락만큼이나 혐오하던 왕은 그를 제거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 법안은 하원에서 통과되었으나 상원에서는 왕의 직권에 의해 폐기되고 말았다. 다음날인 12월 18일에 왕은 연정을 해산하였고, 스물 네 살인 피트가 그를 적대시하는 하원에서 수상이 되었고 1784년 1월부터 3월까지 피트의 동의 안은 하원에서 번번이 패배했다. 그러나 왕은 여전히 피트를 수상직에 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언제 의회가 해산될 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을 무기한 지속할 수는 없었다. 윌버포스는 요크셔 주의 두 개 의석 중 하나를 차지한다는 매우 대담한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84년 3월 25일 위빌의 주도하에 총선을 요구하기 위한 요크셔 자유민 총회가 요크 성의 잔디밭에서 열렸다. 이때 피츠 윌리엄 경이 이끄는 휘그 당의 부호들은 젊은 수상대당의 유력한 지도자들 바로 다음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친구 아이작 밀너와 여행을 하며 토론을 할 기회가 주어졌고, 성경적인 기독교에 지적 동의를 하게 되었다. 그 이후 런던으로 돌아와 짧은 시간을 방황을 하나 결국 회심하게 되고, 친한 친구이자 수상이었던 정치 동역자 피트와 존 뉴턴 목사와의 면담을 통해서 '교회의 유익과 국가의 유익'을 위해 변화된 새로운 삶과 사고로 살아가는 신앙인인 동시에 정치인으로서 공적인 생활을 계속 유지할 것을 권유받는다. 윌버포스는 공적 생활에 참여하는 문제에 관하여, "내가 하나님과 나 자신과 이웃에 대한 나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세상에 순응하려면 공적인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런 판단은 윌버포스에게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 그리고 개인의 성결과 세계를 위한 헌신 사이에서 성숙한 균형을 갖게 하였다.윌버포스는 영적인 회심 이후에 공적인 생활에서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하는 중대한 문제에 직면했다. 그는 기독교적인 길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이전의 습관들을 모두 버렸다.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의 누이와 스미스 성을 가진 사촌들은 곧 그의 신앙을 따랐다. 피트가 총애하는 누이 해리엇과 결혼한 에드워드 엘리엇이 혼전에 성적인 모험을 시도했다가 1786년 9월 해산하는 과정에서 해리엇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엘리엇과 피트는 '끔직한 동요 상태'에 빠졌다. 그 이후 수개월 동안 엘리엇이 주로 의지했던 것은 바로 윌버포스와의 우정이었다. 그는 점차 윌버포스와 신앙을 공유하게 되었으며, 두 사람은 자주 서로에게 각자의 마음을 열어 보였다. 엘리엇도 의원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일상적인 정치의 압력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잘 알고 있었다. 존 손턴의 막내아들 헨리 손턴도 곧 뒤를 따랐다. 그는 의원이 되기 위해 뇌물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윌버포스의 뒤를 이어 헐의 의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하고 이듬해 그는 촌 그랜빌, 윌버포스는 캐스턴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참나무 밑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피트가 말했다. "윌버포스, 자네 노예 무역이라는 주제에 대한 동의 안을 한번 제출해 보지 않겠나?" 한편 그는 여전히 아침 시간에 조국 영국의 도덕적 중생에 대한 필요성에 관하여 깊이 몰두했다. 10월 28일, 그는 점점 깊어져 가는 자신의 헌신을 일기에 이렇게 요약해 놓았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앞에 두 가지 커다란 목표를 두셨다. 하나는 노예 무역을 근절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습을 개혁하는 것이다." 윌버포스는 이 두 운동을 동시에 수행하기로 결심하고 1787년에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노예 무역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20년간 끊임없이 수고를 해야만 했다. 그 기간 동안, 윌버포스는 영국에서 가장 미움받는 사람인 동시에 가장 사랑 받는 사람이기도 하였다. 하원에서는 매번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위대한 해군 제독 로드니 경은 자신이 서인도 제도로 가는 도중에는 노예가 정식 병영생활을 하는 군인보다 두 배나 넓은 공간을 차지하여 생활한다고 발표했다. 제독들은 한술 더 떠 아프리카인의 삶에서는 그들의 고국이 처한 야만상태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실려갈 때가 가장 행복한 때라고 말했다.토론이 있던 날 윌버포스는 즉석에서 세 시간 반이나 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 원고는 아직도 옥스퍼드 대학의 보들리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 윌버포스는 대다수의 청중들이 내심으로는 노예 무역의 비인간성에 동의하지만 필수적인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것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러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저는 아무도 비난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이 끔찍한 노예 무역이 의회의 권위 아래서 시행되도록 방치했다는 점에 대해서 영국의 전 의회와 더불어 저 자신을 참으로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우리 모두는 유죄를 인정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우리 자신들만 무죄를 주장해서는 안됩니다."1790년 총선 후 새로운 의회가 소집되었다. 그리고 노예 무역 폐라팔가 해전에서의 승리와 넬슨 제독의 죽음, 아우스터리츠에서의 나폴레옹의 승리와 그의 영국 침공 계획 포기, 윌버포스의 가장 절친한 친구 피트의 발병이 있었다. 피트는 결국 1806년 1월에 죽었다. 피트의 뒤를 이어 그의 사촌 그랜빌 경이 수상이 되었다. 노예무역을 반대하는 거대한 전투를 한창 진행하면서도 윌버포스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하셨다'고 믿는 두 번째 '커다란 목표'를 결코 잊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영국의 관습, 즉 도덕을 개혁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여러 면에서 노예무역을 폐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18세기 후반의 사회는 노예무역과 아동노동, 대중의 빈곤과 상류층의 타락 위에 세워졌다.윌버포스가 담당해야 할 몫은 상류층에 대한 각성과 온갖 잘못된 관습, 가혹한 사형제도의 개선 등 셀 수 없이 많았다. 노예제도 폐지라는 큰 명제를 실천해 나가는 과정에서 윌버포스는 타락한 영국 사회 곳곳을 개혁해 나갔다. 과다한 노동시간을 제한시키고, 어린이 노동 보호법을 통과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가난의 근본적인 원인을 타개하기 위해서 무조건적인 구제보다는 직업 교육을 시키고 취직까지 알선하는 시스템을 정부가 더욱 구체적으로 실행하게 했고,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활성화시켜 문맹퇴치에도 앞장섰다. 또한 영국의 야만적인 형벌 시스템을 대폭 개조했고, 가난한 자들도 합리적인 재판과정을 거칠 수 있게 하였으며, 형벌 제도에 있어서 벌보다는 갱생에 초점을 두게 했다. 동시에 상류사회 남자들의 결투 제도 폐지에도 앞장섰고, 호화판 파티만 일삼던 귀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서 이들이 여가 시간을 사회봉사에 쏟도록 했다. 영국 사회를 개혁하려는 이러한 윌버포스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동한 많은 사람들은 그를 '영국의 양심'이라 불렀고, 그의 영향으로 영국의 젊은 국회의원 3분의1이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되었다.윌버포스가 놀라울 정도로 꾸준하게 지속적인 운동을 펼칠 수 있었던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결코 그가 혼자서 일하지 않았다는 것-
    사회과학| 2002.12.05| 6페이지| 1,000원| 조회(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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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리, 영화] 포레스트 검프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는 1994년 개봉되어 미국에서 '검프 신드롬'을 일으킨 만큼 크게 성공한 작품이다. 미국이 아닌 국가에서는 '전형적인 미국의 영웅주의'영화라는 비판도 많았으나, 지능이 모자라지만 순수한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만인의 애정을 받아 내었던 것(그리고 현재까지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평균의 인간들은 세상과 대면하여 승리하고자 하고 본능을 억눌러 세속의 질서에 영합하고자 애쓴다. 포레스트 검프는 평균이하의 지능(IQ 75)을 가지고 있는 저능아이다. 그는 그저 본능대로 행동하는 순수한 백지상태의 인간인 것이다.한 개인의 정신 상태는 그의 행동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릴 적의 검프는 저능아인 데다가 다리병신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검프는 자신의 모자람에 대해 절망적으로 비관한 적이 없었다. 분명 남보다 사고체계가 미숙하고 지능이 낮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그는 어떤 상황이든 그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여 베트남 전에서는 죽음을 무릅쓰고 전우들을 구해 큰 공을 세우는 용감한 군인으로 훈장을 받고, 탁구 선수가 되어 냉전을 완화시키는 등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케네디, 닉슨 등 대통령과 엘비스 프레슬리, 존 레논 등 온갖 유명인사들을 만나게 되며, 전우와 함께 한 새우잡이로 큰 성공을 거두어 백만장자가 된다. 그는 사실 심리라고 부를 만한 복잡한 감정상태를 갖고 있지 않다. 저능아인 그에게는 본능과 사고의 거리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무작정 한 것 뿐인 그가 백만장자가 되어 '신(新)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그의 행동이 정말 '우연히' 역사적인 사건들 속에서 큰 역할을 해 내었기 때문이다. 검프의 의도되지 않은 모든 행동들이, 결과적으로 그가 속한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기 때문에, 그는 '저능아' 임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의 기준은, 시대와 사회 그리고 문화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띨 수 있다. 세계 대전 이후의 미국 현대사를 몇 가지 정치 사건과 관련하여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에서, 검프는 '시대를 타고 난 풍운아'의 이미지로, 개인의 사고와 행동이 시대가 원하는 것에 부합했을 때에 얻게 되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 시대는 어쩌면 창의적이고 똑똑한 사람보다는 수동적인 외골수가 더 살기 쉬웠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별다른 갈등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던 사회였기에 - 물론 보통의, 혹은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극심한 혼란과 갈등, 변화의 시대였겠지만 - 그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심리적 고통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사회적으로 어떠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던 간에, 그는 자기 자신을 사회적인 잣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이루어낸 업적들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로 추앙 받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자신의 지능과 행동 패턴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자신 스스로 왜곡됨 없이 인식하고 있었기에, 검프는 늘 한결같다. 그러한 그의 모습에 보통 사람들은 병적으로 열광하고 그를 신적인 존재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그는 '건강해' 보였다. 그런데 이러한 검프의 모습으로 보아서는, 그는 진정으로 개인 스스로 '건강한' 인물이다.초등학교 첫 등교길 스쿨버스에서 만난 제니(Jenny)를 그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생각하며, 오로지 그녀만을 사랑하게 된다. 그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의 불편한 다리를 흉보며 놀리던 아이들 앞에서 뛰어 달아나라는 그녀의 말에 용기를 얻어 그는 모든 보조기구를 벗어 버리고 자유롭게 달리 수 있었고, 그녀가 달리라는 말 대문에 미식축구 선수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그는 어느 비오는 날 그녀가 남자친구와 차 안에서 사랑을 주고 받으며 아프다는 비명을 지르자 그녀를 보호해 주기 위해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펀치를 먹여주었고, 유명한 가수가 되기 위해 어느 술집 바에서 알몸으로 노래하는 그녀를 어떤 손님이 치근대자 지켜주었다. 군대에 간 그는 오로지 그녀 생각 뿐이었고, 제대를 하고도, 새우를 잡으면서도, 3년 2개월 14일 16시간을 달리면서도 그는 항상 그녀와 함께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그를 사랑해 달라고 강요를 전혀 하지도 않았고, 그녀의 허물을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존재 가치에 만족을 누렸고 사랑할 대상을 향해 아낌없는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어머니 외에 '사랑할 대상'은 제니 한사람 뿐이었다. 자신을 놀리지 않고 잘 대해 준 유일한 친구이자, 이성애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는 제인이 자신의 곁에 있지 않는다 해서 병적으로 불안, 초조해 하거나 분노나 배신감등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언제나 그녀를 잊지 않고 있으며, 그녀와 함께 하는 날을 소망하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신의 삶을 몽땅 포기하거나 망가뜨리지 않는다. 그는 그녀를 기다리면서도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어 내었고, 집의 잔디를 관리했으며, 좋은 이웃과 친구도 만들었다. 그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줄 아는 겸허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죽음은 그에게 있어 그녀와의 사랑의 종말이 아니었다. 제니가 죽은 후에도 그는 항상 가까이에서 그녀의 필요를 들어주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의 제니에 대한 사랑방식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아주 순수하고도 진실된 그만의 사랑방식이었던 것이다. 제니는 '저능아'라는 검프의 자기 인식 속에서 억압되었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끌어내 주었고, 편모 슬하라는 조건에서 거세되었던 '성(Sexuality)'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기도 하였다."엄마가 그러는데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래요. 속에 송로가 든 것을 입에 넣게 될지 리퀴르가 든 것이 걸릴 지 어찌 알겠어요?"그의 이야기와 생각은 언제나 어머니의 인용문으로 시작된다. 그의 행동과 사고 방향은 '항상 모든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그의 엄마가 머릿 속에 넣어 준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라는 순수한 백지 위에 엄마는 삶의 지침을 써 넣어 준다. 그것이 곧 그의 좌우명이 되고, 그는 고지식하게 그 좌우명을 따라 무작정 달린다. 엄마는 그의 유일한 이데올로기의 원천이다. 그의 엄마가 심어준 낙관적 세계관은 외골수적 기질을 타고난 검프로부터 좌절이나 절망, 분노 따위의 부정적 심리 상태를 제거하여, '본성에 따르는 것이 곧 예(禮)에 어긋나지 않는' 경지의 행동패턴을 형성하게 하였다. 이 영화를 두고 '그리스도의 삶의 패러디'라고 하는 분석은, 검프 자신이 의도한 적 없으나 늘 선(善)에 부합하는 행동을 보이는 그의 삶이 마치 성자의 그것과 같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성품은 엄마의 희생을 불사한(아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교장선생에게 몸을 맡기기까지 한다) 모성애에서 비롯된다.영화 속에서 선명하게 부각되는 엄마의 이미지에 비해 검프의 아버지는 존재 자체가 부정된다. 이 부성적 존재의 부재는 권위적이고 마초적인 '남성성'(입학허가를 빌미로 학부모와의 정사를 요구하는 교장 선생, 어린 딸에게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행사해 온 제니의 아버지 등)으로부터 그가 자유로울 수 있도록 기여한 한편 검프의 인생을 미완성의 상태에 있게 한다. 검프가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직접적으로 의문을 가지지는 않지만, 영화의 결말에서 검프 자신이 아버지가 되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이로 인해 그의 인격은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이다. 제니가 낳아 기른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은 검프의 첫 질문은 "그 아이는 똑똑해?" 이었고, 반에서 1,2 등 한다는 말을 듣고 그는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이것으로 검프의 유일한 콤플렉스였던 '저능아'라는 열등감을 뿌리 뽑게 되며, 검프 자신은 심리적으로 충만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인문/어학| 2002.12.05| 4페이지| 1,000원| 조회(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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