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대사회의 교육고대 사회의 교육은 가족과 사회 집단의 생활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문화가 발전하고 사회 조직이 확대됨에 따라 의식적인 훈련이 필요하게 되었다.*성년식(成年式) - 육체적인 고통과 시련이 대부분이다.1) 도덕적 가치 - 인내, 인고, 기아를 참을 줄 알게 되며 집행자에게 복종함으로써 복종과 존경심을 배워 나갔다.2) 종교적 가치 - 그들의 숭배대상인 토템을 통해 부족의 역사와 전통, 정치, 사회질서, 신앙 등을 배워 나갔다.3) 실제적인 의미의 가치 - 불을 일으키는 기술, 식사를 마련하는 요령, 집을 짓는 기술 등 실제적 가치를 가진 여러 일을 일정한 규정에 따라서 배워 나갔다. 그 규정은 곧 그들의 종교였으므로 거 학습이 그들의 교육내용이었다.2. 삼국시대의 교육1) 고구려 - 한자를 사용하고 유교를 장려하였다. 고구려가 건국되기 이전, 고조선 후기부터 사용되던 문자가 있었다.ㄱ. 태학고급관리의 양성을 목적으로 귀족의 자제들을 교육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관 학이며 동시에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이라는 교육사적인 의의를 갖는다.ㄴ. 경당태학경당특징관학으로서 중앙에 위치하였으며, 귀족의 자제에게 유학을 교육하여 관리로 양성하였다.사학으로서 지방에 위치하였으며, 평민의 자제에게 유학과 무예 등을 교육하였다.지방의 촌락에 이르기까지 설치된 사립학교로서 평민의 자제를 교육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미혼 자제들을 대상으로 문무를 겸비한 교육을 실시했다는 점이 특징이다.2) 백제백제의 교육기관에 대해서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 백제가 일찍부터 도입한 박사(博士)제도를 통해 백제의 교육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백제의 중앙관제에는 내법좌평(內法佐平)이 있어서, 의례를 관장하였다. 백제에 교육과 풍화를 관장하는 기관이 중앙관제에 있었으므로, 거기에 교육기관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3) 신라- 통일 이전의 교육 - 화랑도- 통일 이후의 교육 - 국학- 독서삼품과ㄱ. 화랑도신채호, 최남선의 말에 의하면 화랑우리 민족의 고유한 신앙과 결부되어 있었다. 화랑도는 민간 사회의 자발적인 기관으로 조직된 사적인 단체였다.화랑도의 교육 내용은 지적인 면보다는 정의적이고 활동적인 면에 치중된다. 화랑도의 교육 방법은 대체로 집단적이며 실제적인 경험 사태를 통한 것이었다. 유취군유(類聚群遊)로써 그 사이에 서로 도의를 연마하고, 사회의 생활 규범을 서로 익히게 하였다.ㄴ. 국학국학은 31대 신문왕 2년(682)에 설립되었다. 국학은 유교 사상에 입각한 관리의 양성과 유교 사상의 보급을 목적으로 하였다.국학의 입학 자격은 15~30세의 귀족 자제들로서 12관등인 대사로부터 무위자(無位者)까지였다.국학의 교육 내용은 유교적 윤리관을 확립하는 데 필요한 유학의 경전들이 주가 되었다. 유학 의 박사와 조교들은 학생들을 세 과로 나누어 가르쳤는데, 논어와 효경을 필수로 하였다.ㄷ. 독서삼품과 - 일종의 과거제도.3. 고려시대의 교육고려의 학교 교육의 발달 시기를 단계로 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관학의 설립과 쇠퇴 및 사학의 발달기이다(태조-숙종, 930-1105)둘째, 관학의 부흥기이다(예종-충렬왕, 1106-1303)셋째, 성리학의 도입과 관학의 부흥기이다(충렬왕-공양왕, 1304-1392)1) 국자감 - 고려 최고 교육기관2) 향교 - 지방 교육 기관으로 유학의 전파와 지방민의 교화에 목적이 있었다.3) 동서학당 - 지방의 향교와 비슷한 수준의 교육기관. 고려 말기에 오부학당으로 확충되었다.4) 사학 십이도 - 고려시대의 사학 교육기관 12개교를 총칭하는 것. 국가의 공교육 기관과 같은 위치에 있었으며, 향교나 학당에 비하여 교육 수준이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5) 서당 - 향촌 부락에 설치된 민간의 자생적인 사설 교육기관4. 조선시대의 교육1) 교육 체제의 확립(태조-연산군, 1392-1506) - 조선의 왕권 확립과 조선 사회의 지배 체제와 교육 체제가 확립되는 시기2) 교육 사상의 발전과 사학의 발달(중종-경종, 1506-1724) - 성리학의 연구가 활발하여 훌륭한 유학 크게 발전3) 실학 교육사상의 성립기(영조-고종, 1725-1876) - 조선 건국 이후 사회적 변동에 대한 자각과 반성이 일어나는 시기4) 근대 교육의 형성기(고종 13년-순종 4년, 1876-1910) - 조선의 근대 교육의 도입기*학교제도1) 성균관① 성균관의 의미성균관은 성(成)과 균(均), 그리고 관(館)의 뜻이 합쳐진 것이다. 성은 인재를 이룬다는 의미이며 균은 풍속을 고른다는 의미, 관은 기관(公館)이라는 의미이다. 성균관의 다른 명칭으로는 국학(國學), 태학(太學), 반궁(泮宮), 현관(賢館)이라고 하였다.② 성균관의 교육성균관의 교육 목적 - 유교의 보급- 통치 체제에 필요한 고급 관리의 양성?대규모의 문묘(文廟) 설치?유학 이념에 입각하여 인재를 양성해서 관리로 등용?제술에는 사서의(四書疑), 오경의(五經義), 시(詩), 부(賦), 송(頌), 책(策) 등이 있었다.2) 사학① 사학의 의미사학은 조선시대의 국도인 한양에 설립한 국립 유학 교육 기관인 동학(東學)?서학(西學)?남학(南學)?중학(中學)의 총칭이다. 사학은 조선 초기에는 사부학당(동부학당?서부학당?남부학당?중부학당)이라고 불리었으며, 약칭하여 학당(學堂)이라고도 했다.② 사학의 교육?사학의 교육 목적 - 소학지도(小學之道)의 공(功)을 성취이는 성균관이 대학지도(大學之道)를 목표로 하는 데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사학 유생들의 교재 - 소학(小學)을 비롯하여 효경, 사서(논어, 맹자, 중용, 대학), 오경(역경, 서경, 시경, 예기, 춘추), 문공가례집(文公家禮集), 제사(諸史) 등과 초사 (楚辭), 문선(文選), 역대제가시(歷代諸家詩) 등도 공부하였다.?교육 목표 - 성균관에 입학하는 것, 생원?진사시에 합격하는 것3) 향교① 향교의 의미향교는 국가에서 지방의 각 행정 단위인 주(州), 부(府), 목(牧), 군(郡), 현(縣)에 성균관을 축소하여 설치한 유학 교육 기관이다. 향교가 국가의 교육기관으로 활발하게 발전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이다.② 향교의 제도적 성격?향교는 중등 교육 기관에 속한다.?향교의 교육 내용은 유학이 중심이 되었다.?향교는 공교육 기관으로 국가에서 설립하고 운영하였다.?향교는 기능면에서 보면, 좁은 의미의 교육 기관만이 아니고 교육과 교화의 양면성을 지닌 기관이었다.③ 향교의 교육?숭유주의(崇儒主義)에 입각한 인재 양성과 민풍순화에 중점을 둠 → 유학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함?향교의 교과 - 소학(小學), 사서(四書), 오경(五經), 성리대전(性理大典), 삼강행실(三綱行實), 이륜행실(二倫行實), 효경(孝經),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등의 경서와 통감(通鑑), 송원절요(宋元節要) 등의 제사, 중국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등의 선학의 제설(諸說), 향약(鄕約), 가례(家禮) 등4) 서원① 서원의 의미조선시대의 서원은 각 지방에 민간 중심으로 선현 선사 및 선열 의사에 대한 사묘(祠廟)를 설치하여 제향(祭享)을 행하고, 유학 교육을 통하여 유사를 양성하던 사립 교육 기관이다. 따라서 서원은 사묘를 중심으로 하는 제향기능과 강학소를 중심으로 한 교학기능을 통합적으로 지닌 기관이다.② 서원의 교육?서원의 교육 목적 - 국가에 필요한 선비 양성?서원의 교과 내용 - 유학 교육 중심. 소학(小學)과 가례(家禮)를 입문으로 삼고, 사서오경(四書五經)을 기본으로 하였다. 독서의 순서는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서경, 주역, 춘추로 정하였다.?유교의 경전에 대한 교과 교육과 동시에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하여 의식화 교육을 하였다.?향약을 보급하여 향풍진작에 힘썼다.5) 서당① 서당의 기원, 의미서당은 글방, 서재, 서방, 책방이라고 불리었던 민간의 교육기관이다. 서당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특히 발달한 초등교육 기관으로, 그 연원은 멀리 삼국시대로 소급된다. 서당은 고구려의 사설 교육 기관인 경당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경당의 학통은 고려 때에도 계속 발전되었다.서당은 조선시대를 통하여 크게 보급되었으며, 일본 통치기를 지나 8?15 광복 후에도 전국 각 지방에 잔존하여 전래의 교육0년대에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의 한문 교육 기관으로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서당 교육은 한국의 고대에서 현대까지 그 교육적 자생력을 가진 민족의 교육기관이다.② 서당의 제도적 성격첫째, 학교 제도의 단계상으로 보면, 초등 교육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둘째, 교육 내용면에서 보면 서당은 순수한 유학 교육 기관이었다.셋째, 서당은 운영상에서 대부분 개인이나 촌락의 주민들에 의하여 설립된 교육기관이다.넷째, 기능면에서 지역(촌락)의 교화의 중심이었다.다섯째, 서당은 향사(享祠)를 하지 않았다.③ 서당의 교육?교육내용 - 강독, 제술, 습자?전반적으로 개별 교수법에 의존?교육 일정은 일반적으로 학년이나 학기가 없고, 일과표도 없이 개인 진도에 따라 수업이 진행되었다.?일정한 방학은 없었지만 농번기에는 수업을 하지 않았다.?계절에 따라 교과 내용을 달리하는 경우가 일반적?징계, 표창제도④ 서당의 운영체계ⅰ) 훈장자영서당(訓長自營書堂)여러 형태의 서당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고 판단되는데, 지방 유지나 유학자가 훈장이 되어 자기 생계의 수단으로 직업적으로 경영하거나, 아니면 교학일체의 취미로 운영하는 서당이다.ⅱ) 유지독영서당(有志獨營書堂)그 마을에서 경제 형편이 여유가 있는 사람이 자기 자제를 교육시키기 위하여 훈장을 초빙하고, 서당 운영의 모든 경비를 부담하여 친척의 자제나 이웃집 자제들도 무료로 공부시키는 서당이다.ⅲ) 유지조합서당(有志組合書堂)그 마을의 유지 몇 사람이 서당조합(계)을 만들어 훈장을 초빙하여 자기들의 자제들을 공부시키는 서당이다.ⅳ) 동리공동서당(洞里共同書堂)마을 전체가 경비를 공동으로 부담하여 훈장을 초빙하고 그들의 자제를 공부시키는 서당이다.ⅴ) 동족조합서당(同族組合書堂)같은 종친끼리 조합(계)을 구성하여 경비를 공동으로 부담시키면서 자기들 가문의 자제들을 교육시키는 서당이다.ⅵ) 관립서당(官立書堂)지방관청의 소재지에 지방 행정관의 관권으로 설립하고 운영하던 서당이다.6) 잡과 교육① 역과 교육 - 외국과는 교육
Ⅲ. 분단하의 교육제도1. 미군정기(美軍政期)해방 후 3년 간의 미군정기는 일제의 영향으로 왜곡되었던 민족 근대교육이 또 다시 미국이라는 외세에 의해 자립의 싹이 꺾이고 말았던 시기이다. 특히 이 때에 들어온 미국식 교육체제가 오늘날 우리 학교교육을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미군정기는 우리 교육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미군정 당국은 1945년 10월 교육원조추진심의회를 설치하고, 이어 본국으로부터 교육조사단을 내한토록 하였다. 교육조사단의 권고에 따라 교육연구소를 설립하였고 조선교육위원회, 조선교육심의회 등의 자문기구를 통하여 친일인사들을 교육주도세력으로 양성해 내었다. 이 두 기구를 통하여 학제와 교육과정 그리고 교육이념이 결정되어 현재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교육에 대한 미국의 교육원조물 적 원 조기 술 원 조전쟁으로 피폐된 우리의 학교 시설 재건 및 교육용품의 제공 등 긴급 구호적인 성격미국 교육사절단의 한국파견 및 우리나라 교육자들의 미국 파견 연수 및 미국유학주선을 통한 직간접적으로 미국식 교육철학과 교육체제를 이식하는 통로▲ 교육사절단의 영향1952년부터 1961년까지 열 차례에 걸쳐 내한하였고 이에 의해 교육행정 연수원이 설립되었고, 사범대학 및 사범학교 등 교사양성기관에 대한 인적?물적 지원이 이루어졌으며, 중앙교육연구소의 설립은 한국교육의 성격형성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교육과정면에서도 제1차 교육과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제3차 교육사절단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교육과정지침」에서 한국교육의 방향으로 ‘진보주의 교육철학에 입각한 경험중심 교육과정’을 제시하였는데, 여기서 주장한 생활중심, 아동중심 교육과정 이론은 제 1차 교육과정의 기본원칙에 상당히 반영되었다.▲ 미군정기 교육에 대한 평가긍정적인 면부정적인 면물적 원조가 당시의 부족한 교육재정 속에서 교육시설과 설비의 재건에 기여한 공헌과 그 이후의 미국교육 사절단의 기술적인 지원은 특히 교육방법적인 측면에서 많은 기여를 했으며 새로운 학문의 도입과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일제 식민지기간 중 파괴된 우리 민족의 교육 전통을 되살리는 데에는 오히려 장애가 되었으며, 이후로 국적없는 외래문화지향적 교육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었고, 학자와 고급전문가의 양성을 거의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2. 국민 교육제도의 형성해방 후 3년간의 미군정(美軍政)을 거쳐 정부를 수립한 대한민국은 학교중심의 국민교육제도를 확립하였다. 학교는 법적요건을 갖추고 정부의 인가를 받은 교육기관을 말하며, 국가의 인가를 받지 않고는 누구도 자유롭게 학교를 설치?운영할 수 없다. 해방후의 교육제도는, 이들 학교를 중심으로 삼아 발전하였다. 이들 학교교육은 철저한 공공의 사업이지 개인이나 민간단체의 사사로운 활동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는 국민교육을 위한 핵심기구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 태어나는 사람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양성하는 것이 국민교육제도의 목적이다. 학교가 아닌 교육기관도 예외없이 공공권력기구의 지도와 감독을 받도록 규정하였다. 철저한 국가관리의 교육제도를, 다시 말해 가부장적 교육제도를 채택하여 오랫동안 견지해 온 것이다.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교 기타의 교육시설을 설치?경영하며, 모든 교육기관을 지도?감독한다.-교육법 제 6조-▲ 학교의 분류정 규 학 교비 정 규 학 교학력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학교학력을 인정하지 않는 학교기간학제(基幹學制)방계학제(傍系學制)초?중?고교?대학(교)?대학원공민학교?기술학교?각종학교▲ 새로운 교육방식의 학교들기간학제에 포함되는 것이지만 1970년대에 등장한 방송통신고등학교?방송통신대학?산업체부설특설학교와 80년대에 설립된 개방제대학은 종래 학교 및 대학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이들은 종래의 학교들과 같이 학력을 인정받는 기간학제의 학교들이지만 교육대상의 성격 때문에 학교를 운영하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1) 방송통신고등학교와 방송통신대학 : 교수매체를 교실수업이 아닌 방송과 통신을 이용함으로써, 매일 학교에 출석할 필요가 없이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방송강의를 청취하고 우편으로 오고 가는 첨삭지도를 받으면서 과정을 이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방송과 통신을 이용하는 교육을 원격교육이라고 하는데, 초기에는 통신교육이라 부르며 우편을 주로 활용하였으나 시대가 변해 TV와 라디오가 대중화 되면서 이러한 매체를 활동하고 있어 원격교육은 교수방법이 대단히 발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육의 대상집단 역시도 크게 확대되었다.2) 산업체부설특별학교 : 가정의 경제 형편 때문에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한 근로자들이 근무를 하면서 학교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수업시간을 근무시간에 맞추어 조절한 것이 특징이며, 설립취지가 근로청소년들을 위한 복지에 있기 때문에 학교운영비의 대부분을 산업체가 부담하고 정부가 지원함으로써 학생들이 거의 무상으로 교육을 받는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제2절 최근의 학습모형과 매체의 활용1. 인지적 도제의 방법■ 인지적 도제 교수법의 정의· 초보자인 학습자가 전문가인 교사로부터 학습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관찰하고 모방함으로써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 기존 교수설계에서 경시되었던 현실과 유사한 상황에서 학습, 실제적 과제 수행 경험, 교사와 학생의 밀접한 상호작용, 토론을 통한 역동적인 학습을 중시.· 인지적 도제법은 비고스키(Vygotsky)의 ‘근접 발달 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의 아이디어에 기초.■ 전통적 도제· 전문가는 도제에게 일을 하는 방법을 보여 주고, 도제는 일이 수행되는 것을 지켜보고 난 뒤 점점 더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어 결국 독립적으로 일을 완수.■ 인지적 도제 방법의 특징■도제 방법의 장점을 살려 현실과 괴리되지 않은 실제상황에서 전문가의 과제 수행 과정을 관찰하고, 실제로 과제를 수행해 보는 가운데 자신의 지식 상태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지적 도제 방법은 과제 관련 지식 습득과 함께 사고력, 문제해결력과 같은 고차적 인지기능의 신장을 도모할 수 있는 방법 - 내적으로 수행되는 정보처리 작업의 외면화를 요구.■독립적으로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주요 목표.■인지적인 지식과 기능의 습득을 목표.■인지적 도제의 모델에서 학습이란 특정 사회집단의 전문가들이 지닌 지식과 사고과정을 학습하는 것.1) 도제교육의 방법■모델링(Modeling)· 전문가인 교수자가 시범을 보이면, 학습자는 전문가의 사고와 행동을 관찰· 학생들이 일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과정을 관찰하거나 개념적 모델을 세울 수 있도록 전문가가 수행하는 일을 포함■코칭(Coaching)· 학습자가 관찰한 시범의 내용에 조언해 주고, 잘못 관찰한 내용에 대해서는 피드백을 해 주는 것.■비계(scaffolding)설정· 교사와 학습자가 공동으로 과제를 수행하면서, 학습자의 학습에 도움을 주는 디딤돌 역할을 하는 것. 비계설정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제공하고, 학습자가 과제수행에 익숙해짐에 따라 점차 감소시키다가, 필요가 없는 경우 제공하지 않음.■명확한(articulation) 표현· 학습자가 학습한 지식, 기능, 태도를 명확하게 표현해 보도록 하는 과정을 말한다. 스스로 표현해 봄으로써 지식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명확화의 장점ㄱ. 내재적인 지식을 분명히 해 준다.ㄴ. 지식을 다른 과제에 보다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준다.ㄷ. 동일한 방법을 다양한 맥락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준다.ㄹ. 동료 학습자들의 명료화 과정을 통해 대안적인 관점에 대한 통찰을 촉진할 수 있다.■반성적(reflection) 사고· 반성적 사고는 학생들이 그들 자신의 문제해결 과정과 전문가, 다른 학생들, 궁극적으로 전문가의 내적 인지모델과 비교할 수 있게 해주는 것■탐색(exploration)· 학습한 지식과 기능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나 가설 등을 탐색하도록 하는 것. )2) 학습활동의 계열화첫째, 전체적인 것에서 지엽적인 것으로둘째, 복잡성 증가시키기셋째, 다양성 증가시키기3) 매체의 활용 방향(1) 실제 상황의 특성을 반영한 학습· 교육용 컴퓨터 게임이나 시뮬레이션, 역할놀이.(2) 다양한 시각에서의 학습· 하나의 주제를 제세하고 모둠별로 자료를 찾아 정리하여 발표하게 하는 것.(3) 반성적 사고의 기회 제공· 특정 영역의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시범을 담고 있는 다양한 자료(CD-ROM, 비디오테이프, 소리, 동영상 등)를 학생들에게 제시해 줌으로써, 학생들에게 반성적 사고의 기회를 제공.(4) 안내적 교수 방법· 잘 짜여진 코스웨어.(5) 협동 학습· 온라인 협동학습.2. 문제중심학습(Problem-Based Learning : PBL)(1) 정의⇒ 학습자가 스스로 문제 및 과제를 선정하여 그것에 대한 해결안 및 자신의 견해나 입장을 전개하는 것을 기보적인 학습목표로 삼고 이를 달성해 나갈 수 있도록 수업을 조직하여 운영해 나가는 방식* 문제 중심학습의 단계문제의 설정 → 자기 주도적 학습 → 문제의 재검토 → 요약 → 성찰과 반성(2) 교사의 역할⇒ 학습의 촉진자, 동료 학습자구성주의적 학습 환경에서 요구되는 교사의 역할과 유사(3) 특징1) 비구조적 문제구조적 문제비구조적 문제문제의 정의가 쉽게 규명된다문제가 정의되어야만 하며 가능하면 재정의되어야 한다문제해결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제공된다문제해결에 필요한 부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문제해결에 초점을 둔다문제의 본질에 초점을 둔다단 하나의 정답만이 확인될 수 있다여러 개의 서로 다른 해결안이 가능하다문제해결에 대한 동기가 낮다(비인지적)문제해결에 관한 동기가 높다(인지적)2) 실제성 : 실제 생활과 관련된 문제 제시⇒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맥락의 문제가 주어지면 주제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가설을 설정하고, 자료를 찾고 경험하고, 해결안을 개발하고 문제해결 과정의 효과성에 대하여 평가함.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결과를 실제 상황의 문제 해결에 반영⇒ 실생활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게 함3) 자기 주도적 학습 : 집단 내에서의 상호작용과 더불어 자기 주도적인 학습전개 (책임 분담, 문제해결 과정과 전략)⇒ 문제에 적합한 문제해결 전략을 선택하고 적용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자기 확신을 얻음4) 협동학습 : 관리는 복잡해 질 수 있으나 서로의 의견 조율을 통해 바람직한 해결안 도출⇒ 다양한 견지에서 문제 이해⇒ 서로의 차이점이 발생했을 때 각자의 관점에서 정당화 하고 협력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쉽게 오개념을 찾아내고 바람직한 해결안을 도출※문제중심학습의 예6학년 수학시간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주어졌다고 하자.초등학교 하나가 우리 학교 옆에 곧 세워질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유치원을 포함하여 600명 정도의 아이들을 수용할 것이다. 그 학교건립에 필요한 돈은 약 1억 정도가 예상된다. 이중에서 7.5%는 아이들 놀이터 건축에 소요될 예정이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건축 설계사에게 주어진 예산안에서 어떤 놀이기구가 들어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또한 그 놀이터는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하여 6학년 아이들까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함도 강조 되어야 한다.
Ⅰ. 소설과 동양적 예정론이른바 「고대소설」로 부르는 조선왕조시대의 「소설」은 흔히 「동양적 예정론」을 깔고 구조화되어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고대소설」의 대부분의 주인공과 부차적 인물들은 소설의 본격적인 줄거리를 이루는?현세 생활?이전에 천상 혹은 수중, 기타의 이계(異界)에서 생활하던 인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이계 생활은 인물들의 현세 생활을 여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있고, 나아가 주인공들의 현세에서의 운명적인 행동과 선택은 모두 전생의 이계생활과 음양으로 긴밀히 맺어져 있음을 보이고 있다.그리고 인간 운명에 대한 「예정」의 주체는 전통적으로 이계(천상)에서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절대적 존재로 관념된 「옥황상제」로 명시되어 있거나, 그 대행자와 같은 존재로 암시되고 있는데, 이는 시공(時空) 내지 인간에 관한, 오랜 동양적 사고의 소산으로 보인다.그 전형적인 사례를 「숙향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Ⅱ. 숙향전의 예정론적 전개숙향은 출생의 시초부터 그의 전신이 「천상 선녀」임이 암시되고 있다.관상 보는 왕구의 말로, 숙향은 「월궁항아의 정맥」으로 옥황상제께 득죄한 결과로 현세에 탄강하게 되었고, 앞으로 겪게 될 시련과 장치가 예시되고 있는바, 이는 결코 단순히 관상가의 짐작으로 한 「말」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소설 전편을 통해 전개된 숙향의 인생 편력의 자취는 거의 완벽에 가까우리만큼 이에 적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아버지 김잔이 관상의 말을 믿지 아니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독자 역시 일개 관상의 말에 그다지 신을 두지 아니하였을 법도 하다. 그러나, 소설을 읽어 가면서 그것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거듭 확인하게 되어 있는 것이 「숙향전」의 구성이다.숙향이 어린 나이에 난리를 만나 부모를 잃어버리고 방황할 때 그 동안 숙향을 도와준 잔나비와 여러 새들은 후토부인이 보내준 것이었고, 숙향이 전생에서 월궁 소아였고, 인간에 내려온 지금은 여기서 70년을 보내고 다시 월궁으로 돌아가기로 예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숙향은 후토부인의 은혜에 감사하여 후생에 그의 시녀 됨을 원했으나, 그것도 숙향의 임의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이 시사되고 있다. 적선인 숙향은 임의로 죽을 수도 없다. 상제로부터 예정된 다섯 번의 「죽을 액」을 치러야 속죄할 수 있다. 후토부인의 배려로 숙향은 사슴을 타고 장승상 댁에 가는데, 사슴뿔에 매단 나뭇가지의 열매를 먹는 순간 숙향은 천상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현세의 아이로 되돌아온다. 숙향이 장승상 댁에 10년을 살면서 승상 부부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으나, 사향이라는 간교한 비복의 모함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그 집을 쫓겨나니, 자신을 무고함을 천지신명께 호소하고 물에 띄어들어 죽으려 하였다. 그러나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 용녀의 도움으로 항아의 시녀인 두 여동에게 넘겨져 목숨을 건진다.용녀는 일찍이 숙향의 아버지 김전이 구해준 거북으로 실은 동해용왕의 제삼녀요, 표진용왕의 부인으로서 전날의 김전의 은혜를 갚고자 숙향을 구했던 터이다. 두 동녀는 숙향이 전세에서 부리던 시녀였다. 그들이 권하는 차를 마시니 전세의 일이 환하게 알려졌다.숙향이 전생 득죄는 「월명단」을 도적하여 태을에게 준 것으로 밝혀졌다. 이미 치른 세 번의?죽을 액?외에 앞으로 치러야 할 두 번의 「죽을 액」의 내용도 이미 예정되어 있다. 숙향에게 있어 다섯 번의 「죽을 액」은 절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피한다고 피해지지 않는다. 장승상 댁에서의 누명을 벗은 것을 여동으로부터 들어서 안 숙향은 장차 자기를 기다릴 남은 액을 면하고자 장승상 댁으로 되돌아가 의지하려고 하니 「이미 하늘이 정하신 바이니 도로 가시더라도 면치 못합니다」라고 여동이 말린다. 숙향이 동녀가 주는 과실을 먹으니 천상의 일은 아득해지고 인간에서 고생한 일만 생생하게 생각나는 것이었다.숙향이 동쪽 땅을 향해 가다가 갈수풀에서 불을 만나 죽게 되었는데 난데없는 노옹이 나타나 그를 구해 준다. 그 노옹은 남천문 밖에 거하는 화덕진군이었다. 다음으로 길에서 광우리 끼고 가는 할미를 만나, 함께 산다. 그런데 아상하게도 그 할미는 숙향이 반야산에서 부모를 잃은 일이며, 장승상 댁에서 나오게 된 시정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떤 날 숙향은 수를 놓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청초를 따라 천상에 들어가 우연히 월궁항아를 만나니 「반갑다 소아여 인간 고생이 엇더하더뇨 나를 좃차 드러가 요다를 구경하고 가라」는 권에 이끌려 요지연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상제가 젊은 선관에게 「태을이 어대 갓더뇨 반갑다 인간 자미 엇더하더냐」하는 정면을 보게된다.항아는 상제께 소아가 죽을 액을 이미 네 번 지냈으니 죄를 사해 주고 수한(壽限)을 70으로 점지해 주기를 청하였다. 상제는 칠성에게 명하여 2자 1녀를 점지하고, 남두성으로 하여금 아들은 정승, 딸은 왕후로 점지하게 하였다. 그리고 상제는 소아에게 반도 둘과 계화 한 가지를 주고 태을 선관에게 전하게 하였다. 선관이 두 손으로 그것을 받으며 소아를 눈주어 보니 소아가 부끄러워 몸을 돌이키는 순간 손에 낀 옥치환의 진주가 떨어졌다. 몸을 굽혀 주우려 하니 태을이 집어서 손에 지워주는 것이었다. 비록 꿈으로 형상화되었으나, 태을 선관(선리)과 월궁 소아의(숙향)의 인연은 꽤나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그 모두가 진적으로 상제의 결정에 매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숙향은 할미의 권고로 꿈에서 본 요지연의 광경을 수로 놓았다. 도젹이 그것을 할미로부터 오백금에 사가지고, 수놓은 그림에 제목을 쓸 명필을 찾고 있었다. 이때 낙양 동촌 리워공의 아들이 천하의 명필이라는 소식을 듣고 도젹이 그리로 찾아갔다.태을진군의 후생인 리워공의 아들은 이미 태어나기 전에 숙향과의 결연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은 아기의 얼굴이 꿈에 본 선관과 같았으므로 「仙」이라 이름을 하고, 자를「太乙」이라 하였다.숙향의 「요지연도」에 제목을 쓸 명필을 구하던 도젹이 마침내 리선을 찾아왔다. 리선이 수의 그림을 보니 자기가 꿈에서 본 선경이 역력하였으므로 그 그림을 600금에 사고, 수놓은 임자를 찾아 할미의 집을 수소문해 왔다. 사흘 만에 리선이 요지에서 얻은 진주와 족자를 가지고 마고할미에게 돌아왔다. 마침내 두 사람은 혼약을 맺는다.숙모의 도움으로 결혼을 하나 뒤늦게 아들의 결혼을 알게 된 리선의 부친 리상서는 대로하여 낙양의 원에게 기별하여 숙향을 잡아다가 처 죽이라고 한다. 리선의 고모의 주선으로 리상서의 노여움은 풀리고 숙향은 목숨을 건진다. 낙양의 원인즉 실은 숙향의 부친 김전으로 미처 딸을 알아보지 못한 채 그 뒤 건양태수로 옮겨가고 신관이 도임하여 숙향을 놓아 보낸다. 숙향이 할미에게로 돌아오니 할미는 자기의 정체를 밝히고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린다. 할미로 행세하던 마고서녀는 청삽살을 숙향에게 남겨주고 떠나 버리는데, 그의 시한이 다 된 까닭이다.어떤 날 밤 도적에게 쫓기게 된 숙향이 할미의 무덤에 가 죽으려 하다가, 마침 낭자의 울음소리를 들은 리상서 부처의 부름을 받아 숙향이 리상서 앞에 나가게 되었는데, 이로써 이들의 첫 상면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윽고 경사로 올라간 라선은 한재가 들어 인심이 흉흉한 형초 지방 진무의 임을 자원하여 형주지사로 내려가 치척을 올려 태평을 이룬다. 이에 숙향이 리선이 있는 형주 땅으로 내려가게 되는데, 도중 청삽살이 인연이 다하여 흑운 가운데 사라졌다.마고할미 죽은 후 외로운 숙향을 지키고 도와온 청삽살이도 역시 시한이 다하여 가버렸던 것이다. 숙향은 형주로 가는 도중 지난날 연고 있던 포진을 지나며 장승상 댁을 찾아가 장승상 부처와의 반가운 해후를 이루고 전날을 은혜를 감사한다. 장사 땅에서는 왕년에 자기를 도와준 일을 생각하여 사슴과 잔나비 등 짐승에게 밥 대접을 한다. 이렇게 가는 곳마다 지난날의 은혜 입은 것을 갚되 부모를 만나지 못함을 가장 비창해 하더니 게양에 이르러 마고할미의 유언(게양태수 김전이 숙향을 부친이라고 한)을 좇아 이곳 태수를 만나니 김전은 이미 양양태수로 옳겨가 만날 수 없었다. 한편 김전은 형주지사를 보고 돌아오던 길에서 어떤 노옹으로부터 숙향의 지난 자취를 전해 듣고 또 책망을 듣는다.
― 상징과 은유 ―Ⅰ. 서 언조선왕조 소설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국한 양계의 일익을 대표하는 소설의 전개과정에서 임제의 소설은 특색 있는 한 시기를 획하며, 「수성지」는 형이상학적 세계를 가시적으로 형상화한 높은 수준의 상징소설이다.백호 임제에 관해서는 야사나 구전으로 단편적인 것만이 전하고 있으며, 「백호문집」등에 그의 행장이 편린이나마 엿보일 정도다. 현재 전하고 있는 작품으로는 창화시, 부, 기행문, 기타 약간 편과 약간 수의 시조, 「백호문집」에 수록된 소설 「수성지」가 있으며, 이 외 소설로는 「원생몽유록」, 「화사」가 있으나, 이 두 작품에 대해서는 작자의 시비가 지금도 매듭지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Ⅱ. 수성지의 해석1. 문제의 제기수성지의 제작 동기를 말하면서 인용되는 「택당속집」권 1의 주기는 ― 북평사로부터 서평사로 옮길 적에 일부러 어사의 전도를 범필하여 탄핵 당하였다. 수성지를 지어 스스로 평생 동안 기이하고 큰 일이 매우 많았음을 보이었다 ― 로 되어 있어서 전계한 견해의 논거가 되어 있다.그러나 이 작품을 「불만스런 현실을 저주한 것」내지는「현실을 저주하는 작가 자신의 심정을 비유한 작품」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는 듯하다. 수성지라는 작품 그것을 놓고 볼 때 결코 이것은 현실의 불만이나 저주를 위주로 한 작품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 작품은 그와 같은 요소가 지양되는 세계를 보이려고 한 것이다.2. 형이상학적 상징수성지에서 주인공이라고 할 천군은 「마음을 중용에 있게 하고 허로써 오관을 다스리니, 이를 일러 천군이라 한다. 온 사람의 마음에 중심에 있는 자아를 인격화한 것으로, 「천군은 태연하나 모든 물체게 영을 따른다. 형이상학적인 존재가 구상화된 것이다.천군은 일개 작자의 심경을 대표하는 개별적 인물이라기보다는 인간 일반의 본래적인 형이상학적 내면세계를 인격화한 인물인 것이다. 따라서 천군을 둘러싼 주위의 인물과 사물도 단순한 형이상학적인 의미 이상의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것이다.「주인옹」도 단순한 인물로서의 「주인옹」일 뿐만 아니라, 여기서는 이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뒤에 나오는 「무극옹」도 그런 인물형인데, 「주인옹」과 다른 점은 「성리학적 지성」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주인옹」은상소문에서 「형태가 없는 곳에서 보고, 소리가 없는 곳에서 듣는다면 모두가 전도함을 면할 수 있다.」라고 한 말 그대로 형이상학적 발언을 하고 있다.천군의 울울한 욕구불만의 상태가 내형하여 외계와 담을 쌓고 굳은 외각을 두른 것이 바로 수성이다. 이 소설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가시적인 형상의 세계로 재현해 놓은 상당히 수준 높은 작품이다. 여기에 보이는 인물들은 내면적 가치의 어느 것 하나를 분담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이것을 단순히 외면적 세계의 내면적 실현으로만 다루어서도 안 된다. 거꾸로 이것은 인간 본래적인 내면세계를 외면적 형상으로 투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 고전소설에서 극히 희소하다고 할 수 있는 형이상학적 소설이라는 점에서 수성지는 재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이 소설은 상징적 수법이라는 점에서도 상당히 짜임새 있는 작품이다. 위에서 논급한 이외의 인물들도 그 나름의 뚜렷한 근거 위에서 설정된 상징적 존재들이다.도흥 ― 벼루도흥은 벼루이자 동시에 심혈의 미창함이 깊음을 상징하는 존재이고,모영 ― 붓모영은 같은 소설에서 나오는 관성자와 한가지로, 붓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한유의 「모영전」에서 그 형상을 힘입은 바 크다 하겠다. 도흥?모영은 천군이 「한묵의 마당과 문사의 성에서 놀」때 「낮과 밤으로 가까이 친했던」자들로 주인옹으로부터 「끊임없이 폐부간을 넘나들면서」「어지럽혀 떨어지지 않은」무리라고 지탄을 받은 바 있는 「문묵의 세계」를 상징하는 존재들이다.의마 ― 분치하는 마음의마는 「털도 없고 말갈기도 없으며 움직이지도 않으며 형태도 없는」바로 「천지에 참여」하여, 「마음을 주재」하는 자아 바로 그것이다. 자아에 대한 이러한 파악은 다분히 관념적,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수성이라고 하는 것도 관념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의마」가 「털도 없으며, 말갈기도 없는」관념적인 「말」이었음과 대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