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연주의(naturalism)의 의미→ 19세기 자연 과학의 발달로부터 영향을 받아 싹이 터 자라나게 된 문예사조이다. 1850년 대의 사실주의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묘사하고 제시하는데 치중하였는데, 자연주의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상을 자연 과학자 또는 박물학자와 같은 눈으로 분석?관 찰하고 검토하고자 했다. 즉, 과학적 연구와 실험적 추리에 의해 사화의 추악상과 암흑면 을 주로 폭로하려 한다. 이 사조는 기계론적 결정론?적자 생존?자연 도태?생존 경쟁 등의 사상을 지닌 다윈의 진화론과, 텐느의 환경 결정론이 바탕 사상을 이룬다. 이 사상 들의 요점은 인간이란 유전적 요인이나 환경적 요인에 의해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주의 작가들이 즐겨 다루었던 인간상은 유전적으로 열등한 유전인자를 안고 태어나고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들인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결정되어버린 이들의 운명에 의하여 결국 인간성이 파괴되고 결국 파멸해 가는 인간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2. 자연주의의 발전→ 이 사조의 창시자는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졸라(1840~1902)이다. 졸라는 젊어서는 낭 만주의적 경향이 강한 작가였는데 플로베르, 공쿠르형제 등의 관찰을 원리로 한 사실풍 의 작품에 영향을 받고, 1864년경부터는 확실히 리얼리즘 문학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는 특히 공쿠르의《제르미니 라세르퇴》라는 박복한 가정부의 일생을 그린 소설에 감명 을 받고 이 작품을 '불결한 문학'이라고 비난하는 측에 대해 강력히 항변하고 변호하였 다. 1860년대 프랑스 사조에 지도적 역할을 한 것은 H.A.텐의 실증주의였는데 졸라는 이 사상가의 말을 빌려 자신의 문학이론을 뒷받침하려 하였다. "악덕과 미덕은 다 같이 황 산이나 설탕처럼 화합물이다"라는 말은 텐 자신의 저서《영국문학사》서문에 쓴 유명한 말인데 졸라는 이 말을 자기 작품《테레즈 라캥》(1867)의 제2판 서문 속에 인용하였다. 졸라는 거기에 덧불여 "두 등장인물의 살아 있는 몸뚱이에 해부의가 시체를 해부하듯 분 석하였다"라고 자신의 창작태도를 밝히고 있다. 그의 선배 공쿠르는 "소설은 연구다"라고 말하여 사실주의 작가로서의 태도를 나타내었는데 졸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설은 과 학이다"라고 단언하였다. 과학을 존중하던 당시의 풍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과학이 라는 이유로 졸라가 이용한 것은, 당시 유명했던 클로드 베르나르의《실험의학서설》 사상이었다. 의학은 엄밀한 실험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설파한 이 책의 문장을 그대로 문학이론으로 전용한 느낌이 있는 것이 졸라의 《실험소설론》(1880)이다. 그러므 로 유럽의 자연주의의 기본정신은 인간의 생태를 자연현상으로 보려는 사고방식인 것이 다. 따라서 작가의 태도도 자연과학자와 같아야 하는 것이 이상인 것이다. 자연현상으로 본 인간은 당연히 본능이나 생리의 필연성에 강력하게 지배된 것으로 그려진다. 외부로 부터 그려지기 때문에 내면적으로는 빈약하고 단순할 수밖에 없다. 졸라는 자신의 실험 을 위하여 과학적 방법을 쓸 필요를 느끼고 당시 주목의 대상이었던 유전학설에 착안하 였다. 그는 또 그의 작품에서 유전의 법칙을 인용하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숙명적인 유전 에 의하여 발작적으로 살의를 일으키는 대목을 그렸다.(자연주의의 시초) 자연주의 작가 는 플로베르나 공쿠르의 사실적 방법을 배운 탓으로 자료연구에도 열심이었다. 졸라는 《선술집》을 쓰기 위하여 몇 년간이나 파리의 변두리 노동자촌을 조사하였다. 그는 발자 크의 《인간희극》에 대항하여 《루공마카르 총서》라는 20권에 달하는 종합소설을 썼 다. 루공, 마카르 두 집안 인간의 복잡한 운명을 삽입하여 제2제정기의 프랑스 사회를 묘 사한 것인데 자연주의 문학의 절정을 이룬 작품이다. 졸라뿐만 아니라 자연주의 문학은 대 체로 세기말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전체적으로 어둡고 염세적이다. 발자크는 자본주의 사회 의 상승기를 그렸고, 졸라는 그 절정기에서 하강기를 그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졸라 쪽에 현대성이 한층 강하게 나타나는 면도 지나칠 수 없다. 철도나 해운의 발달, 농민의 도시집중, 도시노동자 생활의 비참상, 탄광쟁의, 패전 기타 19세기라기보다 현세기의 생동적인 세태가 잘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졸라를 중심으로 하여 각각 경향은 달랐고 뒤에는 스승으로부터 흩어졌지만 모파상, 위스망 등이 자연주의에 공명하여 그 산하에 모였던, 당시의 젊은 작가들을 졸라의 집 주소를 따서 '그루페 드 메당(메당파)'이라고 불렀던 일이 있다.3.자연주의 문학의 특색⑴과학적이다.→ 과학적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것을 뜻한다. 작가는 자신을 작품 위에 나타내지 않고 인과법칙에 따른다. 즉 작가의 의견을 말하거나 작가가 어떤 해결을 내려서는 안 되 는 것이다. 또한 심리학자와 같은 태도로 인간 심리를 그리고 생리학자와 같은 태도 로 생리 현상을 그려야 한다. 졸라의 작품에서처럼 병적인 현상을 그린 것 도 많다.⑵세밀하고 정확하다.→ 과학적이라는 것과 관련해서 세밀한 관찰과 정확한 묘사도 자연주의 문학의 특색이 다. 자연주의 작품은 거의 모두가 정확을 기하기 위해 모델이 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닐 것이다. 플로베르는 식물학에 관한 글 6행을 쓰기 위해 3권의 전문 서적을 읽었 고 식물학자를 방문하여 가르침을 받았고 그 밖의 전문 학자에 3통의 편지로 문의했 으며 또 앵무새에 관한 글을 정확하게 쓰기 위해 박제된 앵무새를 사서 연구했다고 한다. G. Hauptmann은 「직조공」을 쓸 때 직조공의 생활 실태를 조사했다고 한다.⑶暗面(암면)을 묘사한다.→ 자연주의 이전의 문학에서는 성욕을 추한 것으로 보고 중요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 간을 다른 동물과 똑같이 보는 물질적, 기계적, 유물론으로서의 자연주의 문학은 사람 을 짐승으로 보기 때문에 성욕묘사가 중요시되었다. 자연주의 작가는 성욕묘사 외에 도 탐욕, 패륜, 부덕 같은 근대의 물질적 생활의 여러 방면에서 인생의 암면을 폭로했 다.
1. 혈의 누① 줄거리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고대소설의 구각에서 탈피하여 근대소설로서 문학사적인 새로운 계기를 보인 작품이다.이 작품은 김관일과 그의 부인 최씨, 딸 옥련, 그리고 미국 유학생 구완서 등의 인물을 등장시켜 그들의 삶의 곡절을 그리고 있다.그 첫째 무대가 되는 곳은 평양. 청일 전쟁이 막 끝난 모란봉 산비탈의 즐비한 시체 사이에서 탈진한 최씨 부인은 피난길에서 헤어진 남편 김관일과 어린 딸자식 옥련이를 찾으며 허둥대다가 일본 헌병에게 끌려간다. 한편 남편 김관일은 그 북새통에 부인과 딸을 잃고는 일단 평양성 안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그의 나이는 그때 스물 아홉이었다. 그는 인물이 아주 출중하고 살림 또한 넉넉해서 돈도 썩 잘 쓰는 사람이다. 하룻밤을 집에서 기다려도 가족들이 돌아오지 않자 그는 집을 나와 해외로 떠나 버린다. 한편 김관일의 부인 최씨는 남편이 집을 떠난 다음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는 남편과 딸을 다시 만날 길이 없음을 알게 되자 대동강에 투신하여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뱃사공에 의해 구조되고, 딸의 일이 걱정되어 집을 찾아온 친정 아버지를 만나서 김관일이 외국 유학을 떠난 사실을 알게 된다.이러한 최씨 부인의 이야기에 이어 딸 옥련이 등장한다. 그녀는 전쟁의 북새통에 부모를 잃고 왼쪽 다리에 유탄을 맞아 부상당하게 되고 일본 군의관이 치료하여 완쾌된다. 옥련을 치료해 준 군의관은 정상 소좌인데 그는 옥련의 신세를 가엾이 여겨 그녀를 일본 대판에 있는 자기집으로 보낸다. 옥련이는 거기서 일본 교육을 받고 성장한다. 그러나 정상 소좌의 전사 통보를 받고 난 뒤로부터 그의 부인은 옥련을 냉대하기 시작한다. 이에 옥련은 한때 죽기를 결심하다가 마음을 고쳐 먹고 그 집을 떠난다. 정처 없는 여행 길에서 옥련은 구완서를 만난다.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길에 잠깐 대판에 들른 사람으로, 차 안에서 서로의 가정 이야기며 지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뜻이 맞는다. 구완서는 옥련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서도 옥련은 착실하게 공부하기사가 신문에 실린 것을 본 아버지와 만난 뒤 구완서와 약혼한다. 평양의 어머니는 죽은 줄만 알았던 딸로부터 편지를 받고 기뻐한다. 한국·일본 및 미국을 무대로 옥련 일가의 기구한 운명의 전변(轉變)에 얽힌 개화기의 시대상을 묘사한 작품으로, 자주독립·신교육사상·자유결혼관 등을 다루었다. 구성이나 이야기의 전개방법이 미숙하고 고대소설의 문체를 탈피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나, 묘사의 사실성 및 내용의 반봉건적인 면에서 근대소설 영역에 접근했다고 평가된다.2. 귀의성①줄거리한말(韓末), 춘천에 살던 천민 강동지는 허영에 빠져 딸 길순이를 춘천 군수인 김승지의 소실로 보낸다.김승지의 본부인은 이를 시기하여 관계 기관에 청원하여 김승지를 파면시키고 서울로 불러올린다. 강동지는 딸을 데리고 상경하지만 김승지의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쫓겨나고, 길순은 김승지의 주선으로 집을 얻어 숨어 살 게 된다. 그러나 김승지의 본부인은 비복들로 하여금 온갖 모해를 가하게 한다. 본부인에의 과잉 충성으로 속량(贖良)의 길을 꾀하는 계집종 점순이는 소름이 끼칠 흉행을 서슴지 않는다. 점순은 정부인 최가를 꼬드겨 길순을 죽이고 만다.한편 아무것도 모르는 강동지 내외가 서울로 딸을 찾아 왔으나 이미 길순은 죽고 없었다. 딸이 본처와 점순의 음모에 의해 죽은 것을 알게 된 강동지는 점순과 최가를 죽이고 본처도 죽여 버렸다. 일에 얼마간 관련된 침모마저 죽이려 하였으나 그녀가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있었으므로 그녀를 용서하고, 김승지와 관계가 있음을 알고는 김승지에권하여 같이 살게 한다.②주제처첩간의 가정 비극과 귀족사회의 부도덕성 폭로③ 개화기 소설 관점에서 작품 바라보기혈의 누 에 이어 발표된 은 신소설의 초기 작품 중의 하나이며, 와 더불어 수작(秀作)으로 평가되고 있다.주제나 사건의 참신성은 다소 부족한 면이 있으나, 작품의 저변에 흐르는 현실 의식, 저항 의식은 높이 살 수 있다. 즉, 갑오경장 이후 몰락해 가는 양반 계급의 가정적 갈등을 매개로 하여, 이에 대한 피지배 계급의 항거 등은 것."이라고 역설하나 의병에게 붙들려 간다.② 주제탐관오리 비판과 문명개화 및 친일적 의지의 표명③ 개화기 소설 관점에서 작품 바라보기이 작품은 1908년에 출판되었으며, 표지에 '신소설 은세계'라 하고 상권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다. 하권은 출간되었는지 알 수 없으므로 현재는 미완성 상태의 소설로 알려져 있다.이 작품은 1908년 11월 중순부터 당시 신극 극장으로 설립된 원각사에서 연극으로 공연되었다.작품 제목인 '은세계'는 '은처럼 하얀 세상'이라는 뜻으로 눈덮인 세상을 이야기한다. 푸른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그 눈이 쌓여 갔다는 사실이 매우 개성 있는 문장으로 잘 표현되어 있으며 당시로서는 드물게 보이는 구체적인 묘사 문장으로서 가치를 지닌다.의 전반부는 판소리 '최병두 타령'의 정착으로 보이며, 후반부는 옥남과 옥순에 관한 이야기로 영웅 소설의 전통을 잇는 이인직의 창작적 첨가로 되어 있다.이 작품은 이인직의 작품 중에서 주제 의식이 가장 강하게 표출된 것으로 평가받는데, 작품의 구성적 특성은 봉건 지배층의 정치적인 부패에 따른 백성에 대한 가렴주구, 이에 항거하는 민중의 반항 의식, 고루한 봉건 체제를 혁신하기 위한 개화 사상 등을 다루고 있다. 1908년 원각사에서 이인직 자신에 의해 창극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한편, 이 작품은 전반부인 '최병두 타령'에 , , 등의 민요적 가요가 많이 삽입되어 있다는 특이점과 함께 에서 보였던 언문 일치, 사건의 역전적 배치, 사실적 묘사 등이 특징으로 나타난다.그러나 이 작품은 등장 인물에서 나타나는 민족적 주체 의식의 부족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즉, 현실 고발, 민중저항, 신학문 고취 등이 나타나 있으나, 봉건 지배층에 항거하던 최병도의 민중적 의지는 후반에서 옥남의 의식이 의병과 대립하는 가운데 고종의 강제 폐위(1907) 등을 옹호함으로서 친일적 성향을 보이는 한편 주체적이고 민중적인 의식이 소멸하게 된다.4..빈상설①줄거리주인공 서정길은 뚜쟁이인 화순댁의 소개로 가정소설로 계급타파의식, 신결혼관, 해외유학 모티브, 부패 관료에 대한 비판의식 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5. 자유종① 줄거리이매경이라는 가정부인의 생일에 초대받은 신설헌 등 몇몇 부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여권문제, 자녀교육과 자주독립, 계급 및 지방색 타파와 미신타파, 한문폐지 등에 관하여 밤새도록 토론을 한 후 제각기 자기의 꿈을 이야기한다는 줄거리이다. 이 작품은 당시 지식 여성들의 입을 통하여 개화와 계몽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를 시사했으며, 토론이 성행한 개화기적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다.② 주제애국 계몽기의 현실 직시와 국권 회복의 방향 제시③ 개화기 관점으로 작품 이해하기은 애국 계몽기 운동기의 사회 현실 의식을 매우 직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형식면에 있어서는 근대 소설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당시의 토론체 소설과 서로 이어지면서 몽유록과의 연관성도 보여 준다. 소설의 완결성보다는 그 내용면과 사상면에서 주목되는데 첫째 등장 인물이 모두 여성이며 여권론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선구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광범위한 대중적 힘을 모으기 위해 여권 의식과 국권 회복 운동을 결합시키려 한 작자의 의도는 양반층 부인의 대화라는 한계 속에서 제약된다.둘째, 중세의 봉건적, 사상적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의 결합으로서의 국민을 지향하는 사상이 잘 드러나 있으면서도 유교 개혁을 통한 '공자교'를 구상하고 있다. 이처럼, 국권회복의 주체를 국민에 두면서도 국민혁명론으로 발전하지 않고, 공자 사상에 의거해서 국민 계몽을 이루려 했다는 점에서 이해조의 공상의 한계가 엿보인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당시의 시대 정신인 반봉건,반외세 사상을 강하게 깔고 정치 소설의 성향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신소설들과 구분된다.6. 추월색①줄거리이시종의 외딸 정임과 옆집에 사는 김승지의 외아들 영창은 어릴 때부터 다정한 사이로 장차 결혼할 것을 약속한 사이다. 그런데 영창이 열 살 되던 해 김승지가 초산 군수가 되어 이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뜻밖에도 민란이 일어나 난민 여학교를 다니게 된다. 정애는 학교 다니는 길에 관림법학교에 다니는 김상현과 알게 되는데, 가난한 정애와는 달리 상현은 판서집 가문의 자제로, 상현의 어머니는 이웃에 사는 정봉자를 며느리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상현이 결국 정애와 결혼하게 되자, 봉자는 질투를 느낀 나머지 상현의 누이동생인 영자와 짜고 정애에게 정부가 있는 듯이 중상모략하여, 마침내 정애를 시집에서 쫓아낸다. 상현은 실의에 빠져 구라파로 여행을 떠나게 되고, 춘식은 누이동생의 행방을 찾아 헤맨다.그러나 나중에 귀국한 상현은 우연히 정애를 만나 재결합하게 되고, 봉자와 영자도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새사람이 된다.② 주제반상제도 비판과 평등사상 고취③ 개화기 관점에서 작품 바라보기이 소설은 행복했던 선인들이 악인의 모해에 의해 고난을 겪다가 우연한 계기로 다시 행복을 되찾게 된다는 행복 - 고난 - 행복의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는 전형적인 통속소설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힘써 주장하는 신교육은 남녀 주인공의 개인적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남자의 경우는 새로운 문명사회에서 행세하기 위해 신지식이 꼭 필요하며, 여자의 경우는 학식있고 명망있는 좋은 남편을 구하기 위해 반드시 신교육을 받아야 한다. 요컨대 그들의 신교육에 대한 열의는 그들 자신의 신분상승 욕구에 연결되어 있으며, 그 욕망의 최종 지향점은 식민지 초기의 민족 현실과 완전히 차단된 자리에서 극히 폐쇄적인 개인적 행복을 구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소설에서 주장된 평등주의도 실상 헛된 구호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전 시대의 반상의 구별 대신 새로운 특권계급을 등장시켜 놓은 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상현은 총독부에 의해 법관으로 발탁되어 식민지 통치 질서에 봉사하는 일에 종사하기까지 한다. 이것은 조선총독부를 좋은 정부로 인식하고 있는 작가 의식의 문제와 더불어, 이 작품의 순응주의적 성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8. 금수회의록① 줄거리나'는 악에 빠진 인간의 모습을 한탄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속.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항상 어둡다고들 하지만 이 영화는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정말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길목에서 사랑을 보여준 영화이다. 일부 사람들은 너무 뻔한 이야기, 그저 하나마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할 지도 모른다. 하긴 홍종두와 그가 찾아간 피해자의 딸인 뇌성마비 장애자 한공주의 사랑이야기는 처음부터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게 진부한 스토리이긴 하지만 많은 감동과 반성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현대와 같이 살기 힘들고 모두가 외롭다 말하고 떠나고 싶다고 하는 이 세상에 먼 곳도 아닌 내가 살고 있는 여기 이 자리에 그런 사랑도 존재할 수 있음에 난 큰 감동을 받았다. 어쩌면 공주에게는 이 세상의 정과 사람이 고팠는지도 모른다. 뇌성마비 장애자로 사회에서 격리되고 (그녀는 허름한 시만 아파트에서 옆집의 도움(도움이라고 할 수도 없지....20만원을 받고 돌봐주는 거니까...)을 받으며 외출이라곤 하지 않은 채로 살아간다.) 또한 친오빠에게서 버림받고 있는 그녀에겐 정말 조그마한 인간미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온 사람이 홍종두다. 사실 홍종두의 처음의도는 순수하지 못했다. 그녀를 강간하려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공주마마’라 부르며 인간적으로 다가간다. 여태껏 공주에게 다가온 사람들은 모두 모종의 목적이 있어서였으나(오빠는 그녀를 이용해 아파트를 분양 받아 살고 있고 옆집 사람들은 돈 때문에 그녀를 돌봐주고 있는 것이다.)종두는 대가 없이 그냥 한 인간으로 다가온 사람이다. 종두와 공주 모두 소외된, 격리된 너무나 아픈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면서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존재가 된다. 그들의 상처는 아물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도 극 중 ‘공주’라는 인물과 다를 바가 없다. 그녀는 몸이 정상이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는 실상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외로움을 느끼고 세상이 힘겹고......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감동을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식당에서 쫓겨나고 그래서 종두의 형이 운영하는 카센터에서 짜장면을 시켜먹고 제대로 된 데이트 한번 못하는 둘을 보며 나도 모르게 연민과 동정심이 들었고 동시에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반성했다. 그들이 왜 불쌍한가? 장애자라서? 사회에서 무시당하며 살고 있어서? 그런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감독은 말해주려 한 듯 하다. 지금 우리에게 아니 작게는 나 자신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세상의 정과 순수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둘의 사랑을 보며 이 세상은 아직은 따뜻하다고 아직은 아름답다고 믿고 싶었다. 이상적이고 진정한 사랑은 이런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서로의 쉼터가 되어주며 세상에 단 한 사람 연인만큼은 한없이 곱게 보여지는 것. 사실 이런 이상적인 사랑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기란 쉽지 않지만 어쩌면 부족한 이들이기에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나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신경을 쓰고 그리고 T.V에서도 가장 많이 소개를 해 주는 장면이 현실과 환상의 씬 이다. 이 영화에서는 현실과 환상이 존재한다. 뇌성마비 장애자로 살아가는 공주(현실)의 유일한 환상은 정상인(비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 환상을 보여주기 위해 환상의 장면을 몇 씬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공주가 정상인이 된 환상에서 지하철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였다.) 여러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공을 들인, 가장 아름다운 장면, 인도여인과 소년, 그리고 코끼리가 나와 종두와 공주가 춤을 추는 씬은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스킬 자수 속의 코끼리와 인도여자가 걸어나와 방 안에서 춤추는 환상조차 초라하게 느껴지고, 오히려 감정을 흐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도로에서 종두가 공주를 안고 춤추는 씬과 이 씬은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것으로 (그 수많은 환상세계의 장면에도 불구하고)끝을 맺어 지루하고 김빠지게 하고, 여주인공 방안에서 하얀 것들이 날아다니는 환상의 장면을 보여주기나 한 것은 많이 모자라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소리와 설경구의 연기는 정말 뛰어났다. 그들은 진정한 배우의 색깔을 찾은 것 같았다. 결국 이 영화에서 감독은 그림 속에나 존재하는 그런 신기루가 아니라, 사랑이 만든 현실의 이름다운 마로 그 “오아시스”를 말하고자 한 듯하다. (사막 속의 한 줄기 희망처럼 공주와 종두에게는 서로의 존재가 오아시스이다.)
- 편집과 구성과 형식Ⅰ. 제작 동기와 목적역사학에 있어 있어서 도덕적, 정치적 이유로 역사를 기록하고 이용하는 유가적 전통은 악장 용가의 편찬자들이 끌어내어 올 수 있는 단 하나의 절대적 전통이었다. 용가 편찬을 위한 준비작업의 첫 단계는 왕조 선조들의 흥기와 관련되는 성지를 조사하는 일과 시조의 사적을 모으고 확인하는 일이었는데 이러한 방식으로 편찬자들은 사료 속에 보존된 공적들과 민중들 사이에 널리 구전되던 설화들을 모을 수 있었다. 반면 용가를 완성시킨 사람들은 당대에 으뜸가는 언어학자들이었다. 용가에 나오는 한글 시는 새로운 문자를 시가에 시험해 본 최초의 용례이며 훈민정음 제자의 원리를 충실히 쫓은 것이므로 새로운 국자인 훈민정음이 없이는 지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¹ 결국 용가는 왕권에 대한 감계이자 사왕의 교육을 위한 책으로 용가의 편찬자들은 혁명을 정당화시키고 당대와 후대 사람들에게 무엇을 추종해야 하고 무엇을 조심해야하는가를 마음속에 심어주고자 했다. 따라서 용가는 사왕을 위한 관리이자 거울로서 대망을 품은 사왕과 그를 지도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깊이 생각해야 할 하나의 참고서이다. 또한 교화에 필요한 정치적 방략과 정통 교의를 집대성한 하나의 백과사전이다.Ⅱ. 용가의 독특한 기법각 장의 편리한 구분, 한 눈에 들어오는 각 시구의 표제, 고전에서의 전고 인용, 어려운 용어에 대한 풍부한 주석, 상호참조의 사용 등이 이 악장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구성에 있어서 독특한 기법을 크게 다섯가지로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정제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용가의 편찬자들은 기억하기가 쉽고 전통유산의 전달과 보존이 확실히 보증되는 정제된 형식에 의존하였던 것이다. 유가적 이상을 표현하고 보존하여 후대에 전달하는 데에는 정제된 일정한 형식이야 말로 가장 적합한 전달매체였던 것이다. 둘째, 반복과 상호참조라는 기법이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용가의 중요한 문학적 기법의 하나로서 작품 전체에 통일성과 일관성을 크게 부여하고 있다. 즉, 주제를 보다 균형감 있게 하고 보강하기 위함이고 어떤 주제나 화소가 지닌 함축의미와 기능을 보다 잘 조명하여 각 부분에 일관성과 상호관련성을 부여하기 위함인 것이다. 셋째, 상용문구를 사용하였다. 상용문구는 원전 그대로의 인용에서부터 유추에 의한 변용에 이르기까지 넒은 범위에 걸쳐 있으며 높은 빈도수와 고도의 복잡성과 경제성이 그 특징을 이룬다. 이러한 관용적인 어법은 기품있고 장엄한 어조를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이러한 문구는 독자들에게 그것이 전고가 있는 문구임을 알려주기도 하고 또한 그 전고에 나오는 사건을 요약해 주기도 하면서 이성계의 행동에 기품과 장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두 개 혹은 네 개의 한자로 이루어진 상용문구어들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때로는 한 행의 일부분이나 전부를 차지하기도 하며 느리고도 장중한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시각적으로도 세련된 반응을 불러오고 있다. 실제로 용가 속에서도 고전으로부터 인용된 전고들로 가득 찬 상용문구들이 시적인 경제성과 편리성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상용문구들은 어떤 인물을 요약해서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쓰여진다. 지도자에 대한 도덕적 복속심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이성계 같은 경우는 이러한 인물 칭호를 여러 개 갖고 있다. 도덕적인 특성이나 때로는 신체적인 특성을 묘사하는 이런 상투적 문구에 의해 생성된 뉘앙스는 보다 높은 차원의 관습을 쉽사리 이해하게 만들어준다. 이처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¹ 용가가 완성되자 왕은 첫 4장과 마지막 장을 음악으로 작곡하였다. 세종은 시와 음악이 가진 교육적인 효과를 강조하고자 했다.럼 상용문구는 어떤 스토리가 가진 함축적 의미를 전달하고 고양시킬 목적으로 그것이 주는 정서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소개된 것이다. 넷째, 어떤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 또 다른 기교는 용가가 가진 독특한 종지법이다. 종결어미 “...니”(또 87장에 딱 한 번 보이는 “...며”)는 행이나 연의 종결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러한 종결어미는 행이나 연이 계속됨을 암시하는데 이는 독자로 하여금 계속 읽어나가게 만들고 또 주제를 발전시켜나가기 위함이다. 이러한 수사적 원리는 지속적 긴장감과 기대감의 분위기를 유발하고, 독자로 하여금 다음 장을 읽게끔 몰고 가 궁극적으로는 편찬자가 노렸던 목표에 도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수사적인 의문법의 하나인 종결어미 “...리”는 주어진 상황에 대한 작자의 추측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 종결어미는 독자로 하여금 어떤 주장이나 이미 암시된 해답을 수용하도록 유도한다. 즉 편찬자들은 장군 이성계의 위대한 사적의 한 작은 부분만을 읊었을 뿐, 그의 모든 업적은 다 열거하기도 힘들며 그것을 속속들이 다 설명하기는 더욱 힘들다는 것이다.² 다섯째, 구성에 있어 더욱 충격적으로 사용된 기교는 대응법이다. 이 책을 편찬한 목적은 위업을 찬미함과 동시에 사왕들을 가르칠 본보기를 제시하는 일이었다. 구체적 예증 즉 한 묶음의 모범사례로써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주제의 표현상 유추적 방식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일차적으로 사용된 방법이 대응법으로 비교와 대조를 위해 중국과 한국의 중요한 사건들과 인물들이 선택되었다. 연과 구문을 대응시키는 통사적 대응, 함축적인 대응, 동일의미의 대응, 선사와 차사의 상호관계, 주체와 지명과 객체 속에도 하나의 대응관계가 존재한다. 문맥상 미묘한 변화를 주어가며 중요한 구문을 부분적으로 반복하는 이러한 기교의 효과는 대응구조를 더욱 강화할 뿐 아니라 통일성과 조화감에 대한 세련된 센스를 느끼게 만든다. 또한 대응구조 속에서 나오는 대조는 문법적인 리듬을 만들 뿐만 아니라 간결한 시체를 가진 시로 만드는데 기여한다.
이 영화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영화이다. 이 영화는 연애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인 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영화의 원작자인 제인 오스틴과 이안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목표는 청춘남녀의 달콤한 연애담이 아니다.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평등한 재산상속 제도, 귀족중심의 부의 편중과 사회 질서, 신분상승을 꾀하는 여성들의 정략적인 결혼풍습 등 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런 많은 문제들 중에서도 결국 이안 감독은 이 영화에서 연애의 상처를 통해 성숙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 듯 하다. 분별력(sense)과 감수성(sensibility)이 조화되어 성숙한 인간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말이다.앨리너는 sense(분별력, 이해력, 판단력)는 풍부하지만 sensibility가 부족하다. 그녀는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내 비추지 않고 영화 대사에서 언급되었듯이 항상 생각하고 참고 양보한다. 이안 감독은 그녀를 연애의 첫 번째 유형으로 설정하였다. 앨리너는 에드워드 페라스와 사랑에 빠지지만 두 사람 앞에는 장애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앨리너는 무일푼이고 에드워드는 철없던 시절에 결혼 약속을 해 버린 약혼녀가 있다. sensibility 보다 sense가 풍부한 그녀는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매사를 처리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그녀는 에드워드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못한 채 헤어지고 에드워드의 약혼녀 옆에서 냉가슴을 앓으면서도 결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에드워드의 약혼녀를 도와주겠다고 한다.엘리너의 동생 매리앤은 언니와는 반대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매리앤은 sense는 부족하지만 sensibility는 풍부한 활발한 여자이다. 이안 감독이 내세운 연애의 두 번째 유형이 바로 매리앤이다. 감성이 풍부하고 직선적인 매리앤에게는 두 남자가 다가온다. 조용하고 진지한 성격의 브랜든 대령과 정렬적이고 로맨틱한 청년 윌러비..... 매리앤은 그녀가 항상 Love is fire 이라고 말해듯 그림자 같은 브랜든에게는 냉담하고 대담하게 접근하는 윌러비와 사랑에 빠진다.이 작품은 앨리너와 매리앤 두 인물을 설정해 놓고 연애의 두가지 유형, 그리고 이성과 감성의 사이를 적절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성과 감정사이를 넘나들며 살아가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감수성(sensibility)보다는 분별력(sense)을 우위에 두고 있지만 사실 사랑에 빠질 때는 sense보다는 sensibility가 더 우위에 있다. 주변에 이성을 좋아하고도 지극히 sense만 내세우다가 영화의 앨리너처럼 놓쳐버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물론 결말에서는 에드워드와의 해피앤딩이지만) 지극히 sensibility를 내세우며 한 번에 propose하는 사람도 있다. 어찌되었든 사랑은 가슴이 시키는 것이므로 사랑이라는 것 자체는 sense보다 sensibility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그러면 지극히 이성적인 앨리너가 행복한가 지극히 감성적인 매리앤이 행복한가.... 이 영화에서는 sense와 sensibility의 결합으로 행복한 결말을 유도해 내고 있다. sense의 앨리너와 sensibility의 애드워드의 결합, 그리고 sense의 Brandon과 sensibility의 매리앤이 합을 이루어 행복한 결혼을 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났다. 앨리너는 약혼녀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고백하는 에드워드 앞에서 결국 sense를 잃어버리고 격렬하게 울음을 터트린다. 그녀는 sensibility를 얻게 된 것이다. 또한 매리앤은 윌러비의 배신으로 실연한 다음 브랜든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sense를 갖추게 된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란 없다. 그래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행복한 사랑으로 결론을 맺은 이 영화가 잔잔하지만 따뜻한 감동이 흐르는 지도 모르겠다.나와 나의 친구의 경우도 결국은 sense와 sensibility 중 하나만의 존재로 사랑에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앨리너였다면 나의 친구는 매리앤이였다. 나와 친구는 각각 사랑에 빠졌지만 나는 5년 동안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결국은 짝사랑으로 끝났고, 나의 친구는 당당하게 고백하고 적극적이고 직선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갔지만 비참하게 거절당했다. 결국 지극히 이성적이고 계산적이였던 나도 지극히 자신의 감성만 따랐던 친구도 사랑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가장 쉬운, 그러나 가장 어려운 연애에서조차 sense와 sensibility 이 둘의 적절한 조화와 결합을 생각해야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결말은 잘 이끌어낸 것이고 지극히 감동적이고 지극히 이상적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sense와 sensibility의 결합을 그들의 연애관에서만 봐야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할 때 물질적인 면과 진정한 사랑의 감정의 결합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안 감독은 sense와 sensibility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