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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 미국의 사상적지초
    1.경험론초경험적 존재나 선천적인 능력보다감각과 내성(內省)을 통하여 얻는 구체적인 사실을 중시하여, 전자도 후자에 의해 설명된다는 사고방식이며, 지식의 근원을 이성에서 찾는 이성론·합리론과 대립된다.철학이론으로서 경험론은 이미 고대철학의 역사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경험론은 그 역사적 형태에 따라 고대적·근대적 및 현대적인 것으로 구별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sophist), 원자론자, 소크라테스파(派)의 일부(퀴닉파·키레네파 등), 에피쿠로스학파 등이 이 경향에 속하며,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이성주의·초월주의의 경향과 대립된다.그러나 이 경향이 유력해진 것은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경험적 사실이 중시되고, 또 인식론이 철학의 중심 과제가 된 근대 이후의 일이다. 특히 영국은 경험론의 전통에 있어 대륙의 이성론이나 독일의 관념론 등과는 대조적인 성격을 띤다. 이 경향은 중세에 이미 F.베이컨, W.오컴 등에서 뚜렷하였으며, 특히 후자의 비판적 견해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영국 경험론의 진정한 기원은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고, 연역적 추리에 대하여 개별적 경험에 근거를 두는 귀납법을 제창한 베이컨이다.이 경향은 T.홉스를 거쳐 J.로크에 이르러 R.데카르트의 생득관념설(生得觀念說:nativism)을 비판하여 모든 인식의 경험에 의해 설명됨으로써 명확화하였다. 로크는 “마음이란 백지 또는 암실이며, 모든 지식은 감각과 반성을 통하여 외적으로 주어지는 문자이며 빛”이라고 하였다. 로크의 경향은 G.버클리와 D.흄으로 계승되어 영국 경험론의 트리오를 이루었다. 그들은 추상개념, 경험의 배후에 있는 실체개념, 인과율(因果律) 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보였으며, 특히 흄은 추상관념을비판하여 관념의 기원을 감각인상에서 찾음으로써 위의 경향을 극한으로까지 밀고 가서 I.칸트로 하여금 이성론의 독단이라는 잠에서 깨어나게 하였으나, 상대주의·회의주의적인 결과도 나타냈다.19세기에 들어서는 J.S.밀 등도 영국의 고전경험론의 흐름을 따랐다. 경험론이라는 큰 조류로 변모·발전하였다. 또 영국 경험론은 이와 같은 프랑스의 계몽사상이나 유물론과 합류, 봉건제에서 깨어나지 못하였던 독일을 일깨웠는데, 그것은 단순한 충격에 그치지 않고 독일 관념론 형성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은 철학사상(哲學史上) 유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근대 경험론으로서의 영국 경험론은 이 동안 프랑스 유물론이나 독일 관념론의 형태로 소멸된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19세기 전반에는 영국의 부르주아 라디칼리즘의 철학적 지주가 되었다.19세기 후반 이후에는, 한편으로 유럽 대륙에서 이른바 ‘과학의 철학’의 여러 조류에서 핵심적인 이론이 되었고, 20세기에 들어서자 논리실증주의의 형태로 나타났다. 한편 미국 대륙에 건너가서는 프래그머티즘이라는 형태로 이론적인 자체 강화를 이루어 오늘에 이른다. 이렇게 경험론의 전통은 헤겔 철학을 정점으로 하는 독일 관념론의 붕괴 이후, 그 반동으로서의 유물론이나 실증주의의 움직임과 결부되어, 19세기~20세기에 서양에 확산되었다.논리실증주의·프래그머티즘·분석철학 등은 대표적인 현대 경험론이다. 예를 들면, 논리실증주의는 한편으로 사실적(事實的) 여건을 모든 경험과학 이론의 구성과 환원의 기초로 생각하고, 또 한편으로는 전통적으로 선천적 인식으로 간주되어온 논리학·수학 등의 필연성까지도 감각적 기호(記號)에 관한 약정(約定)에 뒤따르게 하고 있다. 프래그머티즘은 위의 이원론(二元論)에는 비판적이며, 일원적 연속성과 행동심리학에 의한 인식의 동적인 파악을 강조하지만, 한층 철저한 경험론의 입장에서는 공통된 경향을 보인다.2.합리주의합리론 ·이성론 ·이성주의라고도 한다. 실천의 기준으로서 이성적인 원리만을 구하는 생활태도를 가리킬 경우도 있다. 형이상학적으로는, 이성이나 논리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어 이 세상에는 존재이유(存在理由)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는 설로, 그리스 고전철학(古典哲學)의 관상적(觀想的) 합리주의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신학적으로는, 신앙의 진리를 은총(恩寵)의 빛에 비추어 표적 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 인식론적 견지에서는, 경험론과 대립하여 모든 인식은 생득적(生得的)이고 명증적(明證的)인원리에서 유래한다고 하는 입장으로, R.데카르트, B.스피노자가 그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일반적 경향으로서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G.W.F.라이프니츠, C.볼프등 이른바 대륙의 합리론에서 전형적인 것을 볼 수 있듯이 감각적 경험론을 혼란된 것이라 경시(輕視)하고 수학적 인식을 원형으로 하는 것과 같은 논증적(論證的) 지식을 중시한다3.존로크의 사회계약설흔히 로크(John Locke, 1632~1704년)를 평할 때면 "계몽철학 및 경험론철학의 원조"라고 설명한다. 이는 로크가 살았던 17c가 정치·사상적으로 혼동과 변혁의 시기였던 만큼 새로운 사상에 대한 필요를 요했으며, 그에 따른 부응으로 로크를 비롯한 경험론철학이 생겨난 데서 이른 것이다. 경험론자들에 의한 절대성의 거부는 윤리적으로 최고선에 대한 존재의 거부로 나타났으며, 정치적으로는 절대군주제 대신 타협과 협상의 정치 즉, 자유민주주의제도의 정착을 가능케 하는 배경으로 나타났다.이런 흐름 속에서 어떻게 하면 조국이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고 평화로운 사회로 거듭날 수 있을지 고심한 로크는 민권정치를 대안으로 제시함으로써 근대 자유주의의 이론적 논거를 확립하는 철학자로 대두되었다.여기에서는 이런 시민의 의식적인 행위의 산물인 민권정치가 어떤 상태에서, 어떤 조건으로 인하여,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교재의 흐름을 중심으로 덧붙여가면서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로크의 사회 계약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계약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한다. 사회 계약이라 함은 자기 보전의 욕구와 재화의 부족에서 오는 갈등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조건을 내세운 지배·복종간의 관계를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회계약에 관해서 로크는 『정부에 관한 두 논고』란 저서에 자신의 주장을 펼쳤는데 제 1권은 필머의 『가부장 주의』의 논지를 비판하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제 2권 계약설의 주된 내용은 『정부의 관한 두 논고』중에서도 제 2권에 나와 있는데,1)자연상태와 사회계약로크에 따르면 선과 악의 구분이 없는 태초의 자연상태에서는 만인들이 평등했으며 삶의 방식에 있어서도 자유로웠다. 그러나 이 "자연상태"라 불리 우는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서 갈등을 일으켰으며, 그것을 중재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불편함" 때문에 사람들은 정치공동체를 결성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았다.이 정치공동체는 시민의 권리 중 일부를 정부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졌는데 이는 시민과 정부 사이에 계약이 성립되었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 계약을 통해 사람들은 분쟁의 불편들을 갖고 있는 "자연상태"에서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고 향유하는 "시민 사회"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일단 위탁이 이루어지면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의 입법부가 만들어지고 이 입법부가 법에 따라 행정기구를 만들면서 정부 설립에 필요한 기초 작업이 완성된다. 이와 같은 방법은 입법가가 동시에 진행자가 될 때 그 입법가는 절대적인 지배자로 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입법권과 집행권을 분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데서 기인하는 데, 이런 로크의 주장은 흔히 "2권 분립"이라고 불리 운다.로크는 이와 같은 정부의 기원을 통해서 정치 권력의 본질과 존재 가치를 규명 할 수 있다고 보았다.2)절대권력이상에서 알아 본 "권리위탁"이라는 개념은 이양이나 양도와는 달리 제한적이기 때문에정부의 권력이 절대적일 수 없다고 보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당시 홉스와같은많은 절대권력 옹호자들은 사람들이 자연상태에서 자의적으로 행동하여 만들어놓은 전쟁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권력을 단념해서 하나의 절대권력을 만들어 야지만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조건적인 권리위탁은 시민들의 내란이나 혼동을 야기하기 때문에 정부가 제 역할을 다 하게끔 할 수 없다는 것이다.그러나 로크는 "여우가 무서워 사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격"이라며 절대권력이 자의적인 한고 봄으로써 절대권력 정부를 정상적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민의 생명이나 자유를 앗아가는 절대권력은 그 특성 때문에 내란시대의 각종 종파들에게 동물로 비유 당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로크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3)자연권과 자연법자연상태를 보는 사회 계약론자의 입장들은 인간성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맥락을 같이 하는데 로크는 이에 대해 구태여 증명하려 하지 않았으며, 자연법 사상으로써 설명했다.앞서 말한 "시민과 정부의 계약"이라는 행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 일정한 조건이란 다름 아닌 자연법이다. "인간이 스스로의 이성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신의 법칙인 자연법" 은 개인의 생명과 자유, 사유재산의 보존을 전제로 하는 자연권으로써 사람들에 의해서 누려진다. 이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에게 부여된 자유를 누릴 수는 있지만 그에 따른 의무로써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되며, 자신의 자유를 악용해서 자연법을 위반하는 자를 처벌할 수 있는 권리도 각자에게 부여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자연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정부는 공공선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임무를 띄는 것이다. 그러나 로크는 자연법에 있어서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를 타인을 침해하지 않을 정도로 규정하면서 시민간의 분쟁해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시민의 복지로까지 적용범위를 넓히기도 했는데 정부의 역할을 정당한 민주적 절차에 준하도록 규정하면서 큰 정부를 지향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4)저항권하지만 모든 정부가 민주적 일 수는 없기 때문에 로크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입법부의행정부 감시, 입법부에 대한 시민의 혁명을 꼽았다. 행정부가 월권하거나 부패한 경우에입법부는 이에 대해 능력을 행사 할 수 있으나 입법부의 횡포로부터는 시민 자신이 일어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민은 이러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성을 인지해야하며최후의 심판은 하나님에게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앞서 로크가 사람의 본성에 대해 뚜렷한 언급을
    인문/어학| 2003.11.28| 5페이지| 1,000원| 조회(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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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안] 신문활용교육 평가B괜찮아요
    1.서론1. 신문 활용 교육(NIE)의 목적과 개념신문 활용 교육(NIE : Newspaper In Education)이란 소박하게 말해 '신문을 가르치고 신문으로 가르치자'는 교육적 시도이다. 즉 '신문을 친숙하게 하고 학습에 활용하여 교육적 효과를 높이는 프로그램'이 바로 NIE이다. 이는 '살아 있는 교과서'인 신문을 활용하여 열린 교육, 21세기에 걸맞은 정보화 교육을 하자는 뜻으로 이해하면 무난하다.이미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NIE를 시도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대체로 신문 매체의 올바른 이해와 교육적 활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바, 미국의 「팬터그래프」지는 NIE의 목적을 크게 4가지로 정리하고 있다.1) 민주 사회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가늠할 수 있는 민주 시민의 양성2) 신문 읽기 능력을 키워 줌으로써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 능력 강화3) 과목이나 주제 중심으로 작문·역사·수학·시사·소비문제·생태학 등 여러 분야의 내용들을 효과적이며 흥미있게 가르쳐 주는 교수 도구의 제공4) 현대 생활에 필요한 정보나 오락 기능등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의 개인적 성장 도모한편 영국 신문 협회가 밝힌 NIE의 교육적 목적은 이보다 좀더 자세하다. 하지만 신문과 교육의 교차점에서 NIE의 목적을 찾고 있다는 점은 마찬가지이다.1) 다양하고 현실적이며 비용이 적게 드는 보조적인 교육 자료의 제공2) 역사적 기록과 정보에 대한 일상적인 접촉3) 적극적인 독서를 통한 실용적인 단어와 문장력의 증대4) 학생들의 개인적·사회적 교육의 추진5) 다양한 미디어 중 하나인 신문에 대한 이해를 촉진6) 신문의 제작 과정에 대한 이해7) 실질적인 청중을 대상으로 목적 있는 글쓰기 기회 제공역사적으로 볼 때 신문은 오래 전부터 교육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동서양의 많은 교사들이 신문의 교육적 활용 가능성을 간파하여 효과적인 교수·학습 도구이자 대상으로서 신문을 나름대로 활용해 왔다."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이미 18세기 후반에 신문의 교육적 기능을 인식해 학교 교육에 신문을 활용할 것을 주장했고, 노르웨이에서는 20세기 초 신문을 이용한 진보적인 교수 방법에 대해 논한 신문 기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또한 신문 협회의 도움이 있기 전부터 수십 년 동안 교사들이 개인적으로 신문을 교육에 이요해 왔다. 이와 같이 정식으로 체계적인 NIE제도를 갖고 있지 않지만 많은 나라에서 신문을 교육에 활용한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 교사 개인의 차원에서 진행되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차원에까지 심화·확대되지는 못하였다. 더욱이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안타깝게도 입시 위주의 교육 때문에 신문이 겨우 교과 학습의 보조 자료 정도로만 제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사설을 논술 공부에 활용하거나 학습 관련 자료를 스크랩하여 참고하는 식의 지극히 단순하고 한정된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심지어 문민 정부 이전에는 교사가 학교에서 신문을 보는 것 자체를 일종의 금기처럼 꺼리던 분위기조차 있었다. 여기에 이념적 시각에서 특정 신문을 배척하는 학교도 적지 않았는데, 이러한 경우는 일부 비민주적인 학교에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 교사가 개인적으로 신문 활용 교육을 한다는 것은 퍽 어려운 일이었다.'신문 활용 교육', 즉 NIE는 교사와 신문사가 서로 긴밀하게 연계하여 체계적이며 전문적으로 하는 교육이라는 점에서 앞의 경우와 구별된다. 이는 시대 변화에 걸맞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신문 매체의 특성과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교육계의 필요와 영상 매체의 등장 등으로 신문과 같은 활자 매체가 점차 외면하는 현실에서 미래의 독자들을 확보하지만 신문사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결과이다.따라서 NIE는 예전의 신문 활용 학습과 구별하여 '신문을 학교 수업의 자료로 이용하기 위해 신문사와 학교의 교사가 협력하는 신문의 교육적 활용 프로그램'으로 정의한다. 국제 신문 발행인 연합 기구인 FIEJ가 NIE를 "학교에 유용한 보조 교재와 교수 방법을 제공하는 수단이며, 동시에 미래의 신문 독자를 키우는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공통적"이라고 정의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실제로 선진국의 NIE는 학교와 신문사와 협력 속에서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진행되며, 신문을 살아 숨쉬는 학습 자료이자 학생들의 학습 활동을 도와 줄 실제적인 교수 도구로서 활용한다. 예를 들어 어떤 교사가 NIE를 시도하고 싶어 NIE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신문사에 연락했다고 하자. 신문사는 즉시 NIE에 필요한 신문과 지도안을 비롯, 도움이 될 각종 자료들을 교사에게 제공한다. 신문은 며칠이든 한 학기든 자유롭게 기간을 정해 교실에서 구독할 수 있으며, 후원자나 광고주가 있으면 싼 값이나 무료로 제공받을 수도 있다.* 대개의 경우 신문사는 NIE 전문 코디네이터나 매지저를 고용하고 있다. 이들은 학교를 방문하여 NIE활동을 진행하는 교사를 돕거나 직접 가르친다. 또한 신문사에 NIE 전용 자료실을 만들고 NIE 소식지를 발간하거나 워크숍·연수회·NIE 축제를 개최하는 등 NIE 활동을 심화·확대하는 각종 활동을 전개한다. 이 모든 활동은 NIE 고정면이나 특집판의 형식으로 신문 제작에 대폭 반영하여 상승 효과를 낳는다.한편 신문 역시 매체의 한 형태이므로, 신문 활용 교육을 매체 교육으 한 특수한 분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서 신문 활용 교육이 아니라 매체 활용 교육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적합하다는 주장까지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신문 활용 교육의 특성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NIE와 매체 교육은 등장 배경은 물론 근본 특성을 달리하는 전연 별개의 분야라고 강조한다. 즉 NIE는 교육계와 신문게의 필요와 이해가 합치됨으로써 강력한 연계성을 갖고 학교 교육의 보조 수단으로 각 교과에서 다양하게 진행되는데 반해, 매체 교육은 매스 미디어 시대에 학생들이 각종 매체를 이해함으로써 사회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며 올바른 비판적 수용자가 되도록 특정 교과로 전개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의견이다. 또한 매체 교육에서 다루는 매체의 범위 역시 신문에 한정되지 않으며, 비중 또한 활자 매체인 신문보다는 영상 매체인 방송에 더 실리는 경향을 보인다.신문 활용 교육의 개념은 신문을 대하는 각 주체들의 생각과 각 나라의 상황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명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여기서는 일단 신문 활용 교육을 예전의 교사 개인 차원에서 소박하게 전개되는 신문 활용과는 달리 신문사와 체계적인 연계를 갖고 진행되는 전문적인 시도로 보고자 한다. 또한 신문 활용 교육은 그 등장 배경과 전개 과정의 차이점 때문에, 정규적인 교과로서 미디어의 올바른 이해와 비판적 수용자의 양성을 중시하는 TV중심의 일반적인 매체 교육과는 구별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러한 구별을 신문 활용 교육이 신문사와 연계된다는 점에서 자칫 상업적인 결탁으로 전략될 가능성을 외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정보화 시대에 필수적인 미디어 리터러시의 습득과 강화라는 측면에서 NIE가 매체 교육과 연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무시하는 것도 분명 아니다. 다만 신문 활용 교육이 좀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추구되어야 하며, 기존의 TV중심의 매체 교육에 무조건 연관시키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어느 경우든 NIE가 새로운 교육 상품으로 무조건 수입되는 것은 우리 모두 매우 경계해야 할 일이다. 단순히 외국 이론의 소개나 적용의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수용되고 시도되어서는 곤란하며, 어디까지나 우리 교육 현장의 필요에 따라서 NIE가 주체적이고 창조적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하기 쉽게 NIE라고 부르는 것을 넘어서서 궁극적으로는 우리 나름의 독자적인 신문 활용 교육의 내용과 전개 모형을 고안·정립해야 한다. 교육이 자국의 문화와 전통에 바탕을 두는 고도의 지적·정서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평범한 상식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덧붙여 주의할 것은 NIE를 만능의 해결 수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교육은 언제나 교육자와 학생 사이의 인격적인 만남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공동체적인 선을 지향하는 바람직한 민주적 시민의 양성, 남을 위할 수 있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인가 스스로 깨닫고 행동하는 인간의 육성 등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바람직한 교육 목표를 중심으로 신문 활용 교육의 의미와 가치가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교육 현장에서 NIE를 시도한 자생적인 성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어 여간 반갑지 않다.결국 신문 활용 교육의 개념은 앞으로 좀더 폭넓고 깊이 있게 검토하면서 계속 추구해야 할 진행형의 과제이다. 최근 신문 활용 교육이 인터넷의 전자 신문으로 확대되는 현실만 보아도 신문 활용 교육의 개념을 섣불리 한정하기보다는 울곧고 자유로운 교육 개혁의 현실적인 방법론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열린 시각이 중요하다2..신문활용수업의 필요성신문활용 교육(newspaper in education)에 대하여 국제 신문 발행인 협회(FIEJ)는 '학교에 유용한 보조 교재와 교수 방법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1994년 5월 한국 신문편집인 협회에서 신문을 교육교재로 활용하는 NIE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구체적 실천 방안을 촉구했다.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교사의 연구 단체인 경기도 교육 개선 연구회에 NIE분과를 신설하고 시범 수업 및 자료 제작 워크숍을 여는 등 신문을 교육에 도입하려는 연구가 상당히 높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NIE의 필요성을 열거해보면
    교육학| 2003.11.28| 6페이지| 1,000원| 조회(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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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 병상록 평가D별로예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은 황제로서의 정무에 종사하거나 전쟁에 참가했을 때 잠깐의 틈을 내어 직접 집필한 글이다. 모두 12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장은 가족을 비롯하여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1장은 아우렐리우스 자신의 개인적인 기록에 가깝다1장을 제외한 나머지 장들은 철학적, 윤리적인 단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각 장에 따라 차이가 나는 특징은 없다. 요컨대 체계적으로 12장을 나눈 것이 아니라 편의상 나누어 놓은 것에 가깝다. 때문에 을 반드시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을 필요는 없으며,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좋다.'나는 죽은 몸이다, 오늘로서 나의 일생은 끝났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남은 생애를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라'. (제7장의 56)'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갖고 있는 듯이 생각하지 말라. 오히려 당신이 갖고 있는 것 중에서 제일 좋은 것들을 골라내고, 이것마저도 갖고 있지 못했다면 얼마나 갈망했을까를 생각해 보라. 너무 기쁜 나머지 습관적으로 가진 것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가진 것을 잃어도 괴로워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 (제7장의 27)위의 인용문에서도 볼 수 있지만, 에는 운명에 대한 순응 또는 체념의 정서가 가득하다.그러한 정서는 어느 정도까지는 아우렐리우스 황제 자신이 처한 개인적인 상황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쇠락하는 제국의 황제로서 끊임없이 이민족과의 전쟁에 나서야 했고, 가정적으로는 아내가 정숙하지 못하다는 구설수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의 기본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역시 스토아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아우렐리우스는 후기 스토아 학파에 속하는 철학자로 평가받기도 하며, 역시 스토아학파의 정신에 충실한 철학 원전으로 대접받는다.특히 자연에 순응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스토아학파에서 말하는 자연이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산, 강, 바다 등과 같은 자연이 아니라, 보편적인 우주적 질서를 뜻한다. 좁은 의미로는 각 사물의 본성을 뜻하기도 하는데, 따라서 자연에 순응한다는 것은 각각의 본성에 따르고 그것을 최대한도로 발휘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경우에는 다른 것들과 인간을 구별 지어주는 것, 바로 이성을 따르고 발휘하는 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다.또한 스토아학파에서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내면뿐이며,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철저하게 필연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내면 바깥의 사물이나 일에 의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 그러니까 부동심(不動心) 또는 평정의 상태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이다. 이러한 스토아학파의 입장은 다분히 현실 도피적이고 소극적인 분위기를 지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안심입명(安心立命)의 철학인 셈이다. 물이 반쯤 차있는 컵이 있다고 해보자.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라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컵 속의 물의 양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우리가 그것을 바꿀 수는 없다. 반쯤 차 있는 저 물마저도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상과 같은 스토아학파의 정신을 고려하면서 읽을 때, 의 각 구절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인생은
    인문/어학| 2003.11.28| 2페이지| 1,000원| 조회(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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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교육] 열린교육의 개념과 심리 사회적환경
    목차1.서론1.열린교육개념학자들의 주장2.본론1. 열린교육의 개념1) 열린교육의 이념2) 열린교육의목표3) 열린교육의 방법4) 열린교육에서 교사들간의 관계5) 열린학습에서의 교육공간2.열린교육에서 심리·사회적 환경1)사회심리적 환경2) 심리·사회적 환경조성으로서의 분위기3.결론1. 열린교육에서의 교사2.열린교사로의변화1) 진단자로서의 교사2) 안내자로서의 교사3) 상담자로서의 교사4) 촉매자로서의 교사5) 연구가로서의 교사6) 아동과 함께하는 교사7) 학습 자료나 교수 자료의 개발 및 제작에 몰두하는 교사8) 칭찬이 많은 교사9) 재치를 지니고 있는 교사10) 모범적인 행동을 보여 주는 교사12) 메모를 자주하는 교사*참고문헌1.서론1.열린교육개념학자들의 주장열린교육은 “변화와 새로운 이상에 열려있고, 교육과정, 학교 일과, 공간의 사용이 개방된 교육이자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간에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 할 수 있는, 그리고 학급 의 주요한 의사결정에 학생들이 참가할 수 있는 교육방식이다”(Stephens, 1974, p. 27). 열린학급의 특징은, “문이 열려있고, 학생들은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으며, 관심 있는 물 건을 가지고 올 수도 있고 나갈 수도 있다. 공간은 유동적이며, 열과 줄을 맞추어 책상이 배열되어 있지 않다. 열린공간은 많은 학습자료로 채워져 있다. 학생들은 그 공간을 오가 며 여러 가지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미리 규정되거나 구속력을 갖는 시간규정이 없다. 교육과정은 학생의 흥미에 입각해서 교사와 학생이 공동으로 구성한다”(Barth, 1972, pp. 55 - 56).무언가 열린교육이 열린교육 되게 하는 기준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던 여러 학자들의 정의 도 그렇게 명확한 것은 못된다. 가령, 열린교육의 조건을 2가지로 제시한 정진곤(1996)의 열린교육은 첫째, 획일적인 교육이 아니라 교육받고 있는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 흥미, 적 성 등을 파악하여 이를 최대한 실현시켜 주는 교육이어야 하고, 둘째 무조건적인 암기위 주나 주입식 교육이 아닌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능력을 신장시켜 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나, 성용구(1995)의 열린교육은 ① 아동의 개성을 존중한다. ②아동의 자율성을 최대로 인정한다. ③창의성을 신장시켜 준다. ④획일성이 아닌 다양성 있는 교육을 제공한다. ⑤개방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⑥운영 에 융통성이 있다. 그리고 ⑦통합적 방법으로 접근한다 등의 주장도 열린교육의 정의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필요조건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이점은 외국 학자들의 주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핸더슨(Handerson, 1973)의 열린 교육의 5가지 전제들, 가령 열린교육은 ①교수?학습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지향한다. ②학 습자의 활동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 ③교과의 통합을 지향한다. ④이적인 학습집단의 구성과, ⑤학습자 주도적 행동을 존중한다(Spodek & Walberg, pp. 61 - 62)는 주장도 그렇게 열린교육을 잘 규정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오히려 열린교육에 대한 조작적 정의를 시도한 모이어(Moyer)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는 선행연구의 개괄을 통하여 열린교육의 근본 원리를 개별성과 융통성으로 규 정하고 있다. 여기서 개별성이라 함은 개개 학습자가 학습의 주체이고, 학습은 학습자의 활동 중심으로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교수-학습 면에서 발견되는 개별화의 원리는, 소위‘프로크러스티스의 침대(Procrustean bed)'에서 보는 것처럼 학습자를 일률적인 교육내 용, 방법, 그리고 학습속도에 맞추기보다는 역으로 학습자의 흥미, 수준, 관심에 이러한 것들을 맞추자는 것이다. 융통성이라 함은 시간, 공간, 활동, 교육방법, 그리고 교육과정의 구성에 있어서 정형화된 틀을 지양하고 학습자의 적성, 관심, 능력, 그리고 필요에 따라 이를 가변적으로 운용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열린교육은 융통성과 개별성이 존중되는 학습방법이라는 것이다.2.본론1. 열린교육의 개념1) 열린교육의 이념열린학습은 아동을 존중하는 교육이다.2) 열린교육의목표열린교육은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아동,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는 정직한 아동,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최대한 계발하려는 적극적인 아동을 기른다.3) 열린교육의 방법*1단계: 개별화학습아동의 학업능력에 따라 수준별 학습자료를 제공하고 개별화학습과 소집단지도를 병행한다.*2단계: 선택과제 제공학생들이 관심과 흥미에 따라 과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과제 제공*3단계: 경험중심학습학생들이 결과로서의 지식만 받아들이게 하지 않고, 실험, 실습, 조사, 탐구, 조작 등 지식의 획득 과정을 직접 경험하는 학습을 한다.*4단계: 단위수업시간의 확대 및 재조정개별화학습과 자율적 선택학습이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 단위 수업시간을 40분, 80분, 오전시간, 하루종일 등으로 재조정*5단계: 교육과정의 재조정아동의 관심과 흥미에 맞게 교육과정의 순서를 조정하고 교과간의 연계 및 통합, 주제학습 등을 시도4) 열린교육에서 교사들간의 관계열린교육자들은 수업계획, 교수학습자료 개발, 수업활동을 서로 협력하여 진행하는 팀티칭을 하고, 학부모 등의 보조교사를 적극 활용한다.5) 열린학습에서의 교육공간교실 사이의 벽을 튼 열린 공간은 열린학습을 용이하게 하지만 열린 공간이 없다고 해 서 열린학2.열린교육에서 심리·사회적 환경1)사회?심리적 환경->1.신뢰하는 분위기2. 수용하는 분위기3. 자율을 보장4. 수평적인 관계를 맺는 분위기5. 개방적으로 대하는 분위기6. 자극을 주는 분위기2) 심리·사회적 환경조성으로서의 분위기1.개인차를 인정하고 조종하는 능력 계발이 요구된다.2.타인에 대한 민감성의 표현으로서의 개방성 제공과 감정은 노출되어 존중받아야 한다.3.교사의 사상과 감정은 아동과 공유한다.4.열린교육의 교사들은 교사 자신과 아동들에게 정직하다.5.아동을 상호 비교하는 성적표가 없다.6.열린교실의 교사의 일차적인 책임은 아동의 학습을 촉진시키는 데 있다.(경남교육청, 열 린 교육 연수자료, 1996)3.결론1. 열린교육에서의 교사열린교육을 실시하는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필요·충분 조건으로 등장되는데 그 무엇보다도 선행되는 조건은 교사의 자세나 역할이라 하겠다.2.열린교사로의변화1) 진단자로서의 교사가) 모든 사람의 능력에는 각각 지닌 개성에 따라 교과별로 개인차를 지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각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항상 진단한다.나) 아동들이 원하고 있는 교육 내용은 무엇이며 교육 방법은 무엇인지 미리 진단한다.다) 어느 아동이 어느 단계에서 막혀 진전하지 못하는지 파악한다.라) 아동들의 교우 관계, 가정 생활, 건강 상태 등을 미리 파악한다.2) 안내자로서의 교사가) 교사가 아동들에게 학습 주제를 스스로 선택하도록 허용해 주기 위해선, 먼저 학습 방법, 학습 순서, 학습 내용, 지켜야 할 사항들이 잘 안내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나) 아동들이 활용해야 할 학습자료 등을 미리 준비해 주고 활용 방법을 안내한다.다) 주간학습 안내나 학습 활동 프로그램 제재 등을 안내하여 개성화 학습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안내한다.3) 상담자로서의 교사가) 아동들과 항상 Rapport가 형성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자주하며, 많이 들어주는 자세가 제 1의 전제 요소가 된다.나) 아동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항상 진단하고 조심스럽게 상담활동을 한다.다) 학습활동에서 아동들이 궁금해 하거나 막혀서 답답해 하고 있을 때,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해결 방법을 함께 의논해 주는데 이는 학습 시간은 물론이고 쉬는 시간 등 모든 시간을 대화의 장으로 열어 놓는다.4) 촉매자로서의 교사가) 학습 의욕이나 학습 동기를 불러 일으킬 수 있도록 자극과 반응의 연구를 끊임없이 하는데, 이는 칭찬과 질책, 상·벌의 관계를 잘 조정함으로써 보다 더 효과를 기할 수 있다.
    교육학| 2003.11.28| 5페이지| 1,000원| 조회(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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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무게열] 르네상스와 낭만주의 비교
    르네상스와 낭만주의 비교1.르네상스중세와 근세 사이(14∼16세기)에 서유럽 문명사에 나타난 역사 시기와 그 시대에 일어난문화운동이다르네상스는 학문 또는 예술의 재생·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프랑스어의renaissance, 이탈리아어의 rina, scenza, rinascimento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고대의 그리스·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이들을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해내려는 운동으로, 그 범위는 사상·문학·미술·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다. 5세기 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그때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야만시대,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로 파악하고 고대의 부흥을 통하여 이 야만시대를 극복하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이 운동은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인데, 이 운동은 곧 프랑스·독일·영국 등 북유럽 지역에 전파되어 각각 특색 있는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근대 유럽문화 태동의 기반이 되었다. 이때의 르네상스 외에도 문화부흥 현상이 보인 기타의 시대에 대해서도 이 용어를 사용하는데, 카롤링거 왕조의 르네상스, 오토 왕조의 르네상스, 12세기의 르네상스, 상업의 르네상스, 로마법의 르네상스 등이 이에 속한다. 르네상스라는 개념 형성은 이미 그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르네상스 사상의 기본요소는 F.페트라르카가 이미 설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고대를 문화의 절정기로 보는 반면, 중세를 인간의 창조성이 철저히 무시된 ‘암흑시대’라고 봄으로써 문명의 재흥(再興)과 사회의 개선은 고전학문의 부흥을 통하여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인문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던 크나큰 확신이기도 했는데, 이들은 단순한 라틴 학문의 부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지적(知的) ·창조적 힘을 재흥시키려는 신념에 차 있었다.당시 L.브루니는 자기 시대의 학문의 부활에 대하여 기술하였고, 16세기의 미술가G.바자리는 저서 《이탈리아의 가장 뛰어난 화가 ·조각가 ·이다. 15세기 이탈리아의 현실이 과거에 투영된 결과, 고대문화의부흥은 단지 학문상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보다 넓은 사회적 의미를 지니기에 이르렀던 것이다.인문주의자들은 고대의 역사와 학문을 배우고 여기에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정치와 도덕의 원리를 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대인의 생각과 생활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사본(寫本)을 비교하고 정확한 텍스트를 확정해야 하기 때문에 언어문헌학의 발달을 보게 되었다. 인문주의자들에게는 이 방법이 단순히 연구의 보조수단이라기보다 참다운 전체적인 인간성을 추구하여 자기를 자각하려는 본질적인 것이기도 하였다.중세 교황의 세속적 지배권의 근거로 알려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진장(寄進狀)’을 후세(後世)의 위작(僞作)이라고 밝혀낸 L.발라는 이러한 언어문헌학의 대표적 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미술에도 고전주의적 이상주의가 확립된 시기로서 회화의 마사초, F.안젤리코, 그리고 《비너스의 탄생》으로 유명한 S.보티첼리가 있고, 조각에서는 도나텔로가 뛰어났으며, 건축분야에서는 F.브루넬레스키 등이 배출되어 르네상스 미술의 황금시대를 구축하였다.4. 변질15세기의 인문주의자들은 현실경정(現實更正)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여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활동도 중시하였다. 그러나 15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분위기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지식인들 간에 현실도피의 경향이 현저히 나타났다. 이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고대문화 부활의 기반을 이루고 있던 코무네 체제가 쇠퇴하고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주장하고 있던 군주국현상(君主國現象)이 발달하였다. 피렌체의 경우 명목상 코무네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1434년 이후 메디치가(家)의 지배하에 놓임으로써 시민적 인문주의는 크게 쇠퇴하였다.당시 이탈리아의 정치판도는 비교적 단순하였는데, 북에는 스포르차가의 지배를 받는 밀라노와 귀족지배의 공화국 베네치아가 있었고, 중부에는 피렌체와 교회국가, 남에는 아라곤가의 나폴리 등 강국 간에 일종의 세력 균형이 성립은 그들 각자의 분야에 따라 이탈리아와 자기 분야와의 관계 탐구에 쏠리게 되었다. J.러스킨과 같은 비평가와 더불어 르네상스라는 용어가 보편화하기 시작하였고, 휴머니즘이라는 말도 고전 스타일의 범주를 넘어선 지적 운동을 가리켜 사용하게 되었다.이러한 경향은 1855년 J.미슐레가 그의 《프랑스사》의 제7권을 ‘르네상스’라고이름붙였을 때 그 절정에 달한 감이 있다. 사실 이 책에서 미슐레는 르네상스에 대한근대적 사상을 거의 모두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그 시대를 중세와 정반대되는시대로 묘사하고, 그 시대의 정신을 ‘세계의 발견과 인간의 발견’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르네상스관(觀)은 프랑스 중심적인 데에 문제가 있으며, 아마 이러한 경향은 당시 민족주의가 팽배했던 시대적 배경이 가져온 불가피한 결과인지도모른다.보다 보수적이며 초연한 입장에 서려고 노력했던 스위스 문명사가 부르크하르트는미슐레와 같은 민족주의 성향이나 중세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부르크하르트의 르네상스관은 이탈리아적인 것으로서 중세적인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단순히 근대의 시작이라고만 볼 수도 없는 하나의 구분된 시대, 즉 14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일어났던 ‘그 자신의 어머니를 가진’ 문화 시기로 보았던 것이다. 그는 주로 새로운 문명의 정신적인 특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새로이 배태된 정신과 이탈리아인의 사회 ·정치적인 경험을 밀접하게 관련시켜 보려고 하였다.즉, 14세기의 시작과 함께 생성된 이탈리아의 정치적 경험은 새로운 정신의 발달을가져오게 하는 조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교황과 황제 간에 진행되었던 오랜 갈등이 이 무렵 막바지에 이르렀고, 이러한 장기간의 투쟁은 양편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탈리아는 새로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당시 유럽의 어느 곳에서나 봉건주의는 중앙집권적 군주국으로 바뀌어가고 있었고이탈리아도 예외는 아니어서,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정치적 변화를 겪게 되었다. 공화국이든 군주국이든 간에 이들 국가들의 하고 또 계몽적인 음악입문서도 만들게 하였다.2)르네상스미술오늘날 통념적인 르네상스 미술의 시기는 피렌체대성당의 돔(dome)을 착공한 1420년을 상한(上限)으로 하고, 하한(下限)은 마니에리스모(manierismo)로 옮겨가는 1525∼30년경으로 잡고 있다.19세기 이후, 15∼16세기에 유럽의 문화현상을 널리 파악하는 개념이 된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말은 ‘재생’을 뜻하는데, 이 말의 어원은 역사적으로 보면 이탈리아에서 미술용어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미 14세기의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 및 역사가 빌라니 등이 잃어버린 고대의 문예 및 예술을 새시대에 재현한다는 뜻으로 이탈리아어(語)의 ‘재생 ·부활’을 의미하는 리나시타(rinscita)라는 어휘를 사용하였다.다시 15세기 이탈리아의 미술가 기베르티와 알베르티, 필라레테 등의 저술에도 그러한 사관(史觀)이 계승되어 있었으나, 특히 16세기의 미술가 바사리는 그의 저서 《이탈리아 미술가 열전(美術家列傳)》(1550년 초판)에서 고대미술이 야만족의 침입과 중세의 우상파괴운동으로 멸망하고, 그 후 거친 고트인(人)에 의하여 ‘독일양식’, 즉 고딕이나 딱딱한 비잔틴양식이 풍미한 뒤, 13세기 후반 이후 화가 치마부에·조토 및 조각가 피사노와 디 캄비오 등이 나와 토스카나 지방에서 뛰어난 고대미술의 전통을 부활시킨 사실을 리나시타라는 말로써 파악하였다.이 말이 19세기 초엽, 프랑스 학자의 주목을 받아 르네상스라고 프랑스어로 번역되었고, 이어서 영어·독일어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이탈리아어로는 리나시멘토(rinascimento)가 되었다. 따라서 르네상스란 본질적으로 이탈리아어이며, 더욱이 그 개념이 형성된 단서는 그 시기의 이탈리아 미술가들의 역사적 자각과 의욕을 보여준 미술현상과 깊은 관계가 있다.1. 고대의 재생과 이탈리아이탈리아인은 고대의 가장 정통적인 계승자라는 자각 아래 타국민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대에 대한 동경과 향수에 빠져서 조상의 위업을 회상하는 민족적 자부루어놓았다.5. 말기의 두 경향과 북유럽르네상스의 전성기는 오래 계속되지 않았고, 당시의 국제정세에 의해 이탈리아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겹쳐 이미 16세기 중엽부터 고전적이고 조화있는 양식이 무너지면서 동적인 바로크 양식의 싹(프로토 바로크)이 나타났다. 한편, 마니에리스모라 불리는 주지주의적(主知主義的) 주관주의 양식이 나타나 16세기 중엽에는 건축 ·조각 ·회화의 주류가 되었다. 특히 피렌체파의 화가 폰토르모와 브론치노, 바사리, 조각가인 첼리니, 안마나티, 장 볼로냐 등을 대표적인 마니에리스트로 들 수 있으나, 페라라파(派)의 도소 도시, 에밀리아파의 파르미자니노, 베네치아파의 틴토레토 등도 만년에는 마니에리스모로 옮겨갔다. 또 베네치아파의 최후를 장식한 파올로 베로네제는 바로크적 경향으로 끝나, 결국 이탈리아에서의 르네상스 미술은 16세기 중엽 이 두 경향이 교차하면서 실질적으로 끝났다.한편, 알프스 이북의 여러 국가에서도 15세기 말 이후 뒤러 등의 북방(北方)미술가의이탈리아 방문, 1527년의 카를 5세 군대의 ‘로마 약탈’ 등으로 인한 이탈리아 미술가의 도피 등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이 북방 여러 나라에도 전파되어 16세기 중엽부터 르네상스적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르네상스는 본래부터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역사적 현상으로, 고대미술이나 학예(學藝)를 갖지 않은 북방 여러 나라의 그러한 현상을 르네상스 본래의 개념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무리이며, 동시대적 파악은 가능할지 모르나 특별히 북방 르네상스라는 개념으로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3)르네상스문학르네상스 문학은 중세를 통하여 동(東)로마 제국(1461년 투르크에게 멸망됨)과 접촉을 가졌던 이탈리아에서 우선 일어나, 전 유럽에 파급되었다. 중세는 그리스·로마 문학에 대하여 그다지 무지(無知)하였던 것은 아니고, 특히 13세기에는 고대를 알고자 하는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교를 통하여 본 고대였고, 인간의 육체나 감각을 멸시해온 중세는 고대의 예술미(藝術美)를 .
    인문/어학| 2003.06.30| 23페이지| 1,000원| 조회(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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