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1합리적 교육과정 개발 :타일러..PAGE:2▶1. 배경과 내용▶ 2. 타일러(R. Tyler)의 합리적 교육과정 개발 모형 절차(1) 교육목표설정(2) 학습경험선정(3) 학습경험조직(4) 학습경험 평가▶ 3. 타일러(R. Tyler)의 합리적 교육과정 개발 모형에 대한 평가장점과 단점결과목 차..PAGE:3자신의 교육과정 이론전통적인 교과중심 교육과정의 주요 논리+행동주의 심리학의 최신의 연구 성과+Tyler‘종합적 교육과정 모형’=1. 배경과 내용..PAGE:42. 타일러(R. Tyler)의합리적 교육과정 개발 모형 절차★ 교육과정을 개발하는데 다루어야 할 기본적 문제1. 학교에서 어떠한 교육목적을달성하도록 노력해야 하는가?2.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교육적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가?3. 이 교육적 경험을어떻게 효과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가?4. 이 교육목적이 달성되고 있는지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PAGE:5학습경험선정학습경험조직교육목표설정학습경험평가Tyler의 교육과정 모형☞‘목표 모형’혹은 ‘목표-수단 접근법’..PAGE:6『목표설정의 원리』-학습자-사회의 요구-교과전문가의 제안학습자 연구, 사회요구 조사, 교과전문가 제언으로부터 잠정적 목표를 구성중요하고 일관성 있는 명세적인 목표설정(1)교육목표설정1. 학교에서 어떠한 교육목적을달성하도록 노력해야 하는가?교육목표 : 교육과정의 순환적 과정에서무엇보다 먼저 결정되어야 할 요소..PAGE:7(2) 학습경험의 선정※ 학습경험 선정 원칙1. 기회의 원칙 -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내포2. 만족의 원칙 -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3. 학습 가능성의 원칙 -학생의 능력범위 안에 있는 것4. 다경험의 원칙 - 유용한 학습경험은 여러 가지5. 다성과의 원칙 - 하나의 학습경험이 여러 가지 학습성과를 가져온다는 것..PAGE:8『조직의 요소 』*조직의 구조: 교육과정을 편성 조직하는 기본적인 틀최고수준 구조 : 전체적 테두리를 결정교과구조 광역구조중핵구조 활동구조중간수준 구조계열구조 비 계열구조최저수준 구조(3) 학습경험의 조직..PAGE:9* 학습경험 조직 원리 *① 계속성반복적으로 기회를 주는 것② 계열성다른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조직③ 통합성교육과정의 요소를 수평적으로 연관..PAGE:10① 교육목표의 평가타당성을 평가하는 것이 중요② 학습계획의 평가충분히 학습될 수 있는 것인지를 검토③ 소규모 예비시행일종의 형성평가④ 프로그램의 시행평가교사훈련과정을 새 프로그램에 알맞도록 수정⑤ 프로그램의 결과평가모든 부수효과도 함께 평가⑥ 질적 관리를 위한 평가퇴화현상을 예방하기 위해 계속적인 감시 내지는 점검(4) 학습경험의 평가..PAGE:113. 타일러(R. Tyler)의 합리적 교육과정 개발 모형에 대한 평가 -1) 성과논리적, 합리적인 일련의 절차 제시: 교육과정 개발자나 수업 계획자가따라하기 쉬움교육과정의 과학화 및 종합화에 기여교육목표 중심 교육과정, 경험중심(생활중심) 교육과정이라는 특색:어떤 교과나 수업수준에서도 적용활용할 수 있는 유용성을 지님학생의 행동과 학습경험 강조: 평가에 광범위한 지침 제공, 경험적이고 실증적으로 교육성과를 연구하는 경향 촉발..PAGE:12교육목표가 다른 모든 교육과정의 결정에 선행한다는 논리: 현실적이지않음학습자사회교과’로부터 도출되는 필요에 의한 교육목표 수립:개인적사회적필요를 충족시키는 것만이 교육의 목적이 될 수 있는가?
서평 :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 제목 자체가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동시에 낯설지 않은 묘한 이질감을 주었다. 나는 학교를 다닐 때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의무감에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반적인 학생 중 하나였다. 후에, 책을 다 읽고서 제목이 내용 전체를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세부적인 내용이 거의다 일본의 교육상황을 비교하는 국한적인 내용이었지만, 일본과 우리나라의 교육실정이 거의 흡사하다는 점과 현시대 교육의 문제점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현재 사범대학의 학생으로서 미래교사를 꿈꾸는 나에게는 교직관의 밑거름이 될 만한 좋은 독서였다.수업시간에 책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을 때 사토 마나부 교수는 교육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며 교육에 대한 연구를 하시는 분이라고 들었다. 그만큼 다른 누구보다도 실제 현장에서의 교육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토 마나부 교수는 이지메, 학급붕괴, 부등교, 소년범죄 등이 매우 심각하하지만, 우리들에게 알려져 있는 아이들의 문제는 현장에 가보지 않고 그저 뜨거운 소재거리인 학교문제를 다루려는 매스컴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역설한다. 실제로는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시에 아이들에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위기는 아이들의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부로부터의 도주’라고 말하고 있다.일단 작가는 더 이상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공부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은 동아시아의 공통된 현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홍콩 등의 나라들은 짧은 시간에 근대화를 이룬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 나라들은 짧은 시간 내에 급속한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대량의 지식을 획일적,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개인 간의 경쟁을 조직하여 확실하게 습득시키는 교육을 해 왔다. 그리고 학생들은 이런 교육체제 속에서 부모보다 높은 교육력을 획득하여 부모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신뢰도 높고, 학습의욕과 노력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이제 사회가 산업주의 사회에서 포스트 산업주의 사회로 전환되면서 더 이상 대량 시스템식 교육은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포스트 산업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전문성으로 무장한 노동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학교 교육이 더 이상 많은 것을 보장할 수 없는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것이 계층격차를 확대재생산 시키는 문제점을 야기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고학력 부모의 자녀들은 고학력 아이들로 채워져 나가고 저학력 부모들의 자녀들은 저학력으로 채워져 가며 시대가 지나도 계층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학교 교육에 '이걸 배우면 뭐하나, 어디다 써 먹나'하는 배우는 일에 대한 니힐리즘(허무주의)과 시니즘(냉소주의)이 생겨난다고 말하고 있다. 작가는 , 라는 니힐리즘, 나아가서는 , , , 라는 식의 시니즘은 대체 왜 생겨나며 왜 이렇게 많은 아이들 속에 깊이 침투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나는 작가의 이런 현상 분석에 많은 공감을 느꼈다. 또, 부모님 세대에서부터 우리 세대에 이르러 더욱 더 회의가 심화되는지, 조금은 해답을 얻은 것도 같다. 하지만, 이런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까라는 현실적인 해답은 이 책에서는 얻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주로 지금의 교육문제의 본질은 학생들이 배움에 가지는 냉소주의가 가장 큰 문제라는 점, 그것은 사회 전반의 변화에서 오는 동아시아 교육의 문제라는 점을 전체에서 지적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들의 '배움'을 위하여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까에 대한 짧은 생각이 드러나 있었지만, 분량이 너무 적어 아쉬웠다. 이에 대한 내용은 사토 마나부의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를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또한 책에서는 사회 이동의 유동성에 힘입은 압축된 근대화와 그로인해 발생한 과격한 입시경쟁이 두드러지는 동아시아 형 교육근대화를 지적하고 있다. 교수는 중앙집권적인 관료주의적 통제, 강렬한 내셔널리즘, 공공성의 미숙 등을 특징으로 하는 동아시아 형 교육을 이야기 하면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내걸고 대량생산을 실현하는 대공장 시스템의 학교교육을 추구해 온 동아시아 형 교육의 종언과 함께 ‘공부’를 ‘배움’으로 전환하는 21세기 학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책을 한 장 한 장 읽어 나가며 많이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 놀라운 부분도 많았다. 가장 공감되는 부분은 고등학교의 선택중심 교육과정을 꼬집는 부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날 무렵(인문계 고등학교의 경우) 인문·사회 계열과 자연계열로 나뉘어 교육을 받는다. 물론 학생의 적성에 맞는 교육과정을 통해 잠재력을 이끌어 내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현장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학을 잘하면 자연계열을, 수학을 싫어하면 인문·사회 계열을 선택하는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인문·사회 계열을 졸업해 경영, 회계학과에 입학을 하면 미분적분을 고등학생들의 틈에서 배우는 현상이 발생한다. 또, 자연계열을 졸업한 학생의 경우에는 기초적인 사회적 지식이 부족한 것을 볼 수 있다. (필자의 주변인의 경우) 물론 자연계열에서도 인문·사회 계열의 과목을 배우기는 하나 수많은 과목 중 한 두개의 과목만을 배운다. 또한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타계열의 수업시간은 자율학습시간을 주거나 혹은 수업을 한다 해도 수학능력시험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다른 교과의 공부를 몰래하는 것이 대부분이다.또 초·중등학교 단계에서의 높은 지식이 시민적 교양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내용에서도 많은 공감을 얻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대한민국 학생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이라는 단 하나의 커라단 도마 위에서 평가를 받는다.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새로운 지식을 내면화하는 것에서 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것에서 공부의 목적을 찾는다. 따라서 문제 푸는 기술, 시험에 나오는 내용, 심지어는 찍는 기술마저 배운다. 이런 수년간 이러한 교육을 받고 자란 나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수학능력시험 결과에 비례한 시민적 교양을 함양 할 수 있을지 나조차 의문이 든다.
학교,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 지향점- 「학교 문화」서평 -오늘날 우리가 사회 속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생 중 상당한 기간을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보내게 된다. 학교는 학생과 교사의 생활공간이며, 학생과 교사의 다양한 삶과 문화가 나타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학교 문화 및 제도를 비교하고, 학교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천하의 영재를 모아 교육하였다는 맹자의 말에서 비롯된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수단이며 인성과 적성을 찾아가는 방법이다. 책을 읽으면서 전반적인 학교문화에 대한 기술과정을 접하고 책에 소개된 외국, 국내의 유명한 학교들과 비교하여 좀 더 나은 방향의 우리의 일반적인 학교 문화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일반적인 교육과정 중에 가장 고등의 학교생활인 고등학교 교육의 학교 풍토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생각함으로써 학교 문화의 변화 방향에 대하여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우선, ‘문화’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그 의미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되고, 공유되며,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따라서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화의 속성을 세 가지로 보았는데 인간의 편리를 가져다주기 위하여 창조되는 것이며, 사회적 기능으로 법을 지켜야 하는 원리와 의무 등이 될 수도 있고, 정신과 의식의 세계로써 다른 사람과 더불어 의사소통을 하면서 살아가는 데 요청되는 가치라고 하였다. 이러한 문화들이 학교 안에 접목되면서 비로소 ‘학교문화’라는 말이 파생되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학교(學校)라는 한자 자체로 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런 가치관이 통용되는 이곳에서 이런 패러다임이 이루어지며 비 교육적 분위기라는 교육풍토/학교풍토란 용어로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그러나 개인적으로 이원화된 이론적으로 생각해볼 때 여기서 말하는 학교문화를 다른 면으로 접근해보면, 예를 들어 강남과 강북의 교육열기와 그들만의 학교문화를 들어 설명하는 것도 쉬울 것 같다.사회경제적 배경으로 보나 경제적으로 보나 대한민국에서 월등히 앞서나가고 있는 서울 강남은 ‘조기유학’이나 '조기영어교육‘등을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 배우고 학교에서 이를 바탕으로 공부하고, 한쪽 강북에서는 그런 격차가 생길 때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학교에서 배우는 공교육만으로 때우는걸 보면 ’학교문화‘에서 파생된 교육풍토등 사회적 분위기 등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 역시 알 수 있다.또한 위 책에서는 발도르프 학교, 한국의 초등학교, 성 캐서린 학교 등의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며 학교에 대한 비판과 제시 책을 내놓고 있는데 여기서 말한 그 예들을 간략히 설명해보자면 발도르프 학교는 어린이들의 영혼이나 가치관을 길러준다면 그 밖의 모든 것도 그 이후에 뒤따른다고 믿고 있는 이론이며 반대로 지적인 발달을 중시하지 않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론이기도 하다. 또한 캐서린 학교의 경우는 교육에서 엘리트 양성을 위한 교육시스템의 대표적 사례이다. 교수님이 말한 이튼스쿨과 비슷한 전통이 깊은 학교이며 2학년까지로 구분되고 상, 중, 하급의 3개로 된 학교이다. 한국의 학교의 경우는 이 두 입장을 포함하는 통합적 교육을 추구해 왔다고 본다. 인간의 가치와 자연의 풍요로움을 깨닫게 해주는 심성교육과 지성교육의 조화를 추구하여 건전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인지적 교육을 중시한다. 그러나 인지적 측면의 학업성취라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사회에는 기술적 요소가 강조되는 부분도 있고, 인화/감성적 요소가 강조되는 부분도 있으며, 희생적 요소가 강조되는 부분도 있다. 따라서 모든 학생들이 인지적 성취기준의 잣대로 측정되는 기존의 교육체제는 변화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그에 대한 사회적 대우와 사학부모들이 학교를 둘러싼 지역사회에서 계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경쟁하는 것이기 때문에 리더십의 역량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외적인 요소가 더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이 책에서는 학교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첫째로 자연, 우주,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을 양성해야 한다. 자연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을 양성해야 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둘째로 향상시킬 수 있는 인성을 길러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와 비슷하거나 동등하지 않으면 배타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나 아닌 타인을 존중과 존경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질 수 있는 정서와 포용력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조직이나 집단의 지도자가 된 경우에는 더욱 더 중시된다.셋째로 자기 또는 자아에 대한 인식을 확고하게 형성시키는 것이다. 즉, 학교교육의 과정을 통해 자아개념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아를 형성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직업과 생활을 위해 나갈 수 있는 동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내가 생각하는 한국 교육과 한국 학교에서 문화의 문제점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학습자의 흥미와 개개의 가치 계발을 생각하지 않고, 한 가지에 지나치게 맹목적적으로 몰입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명문대에 진학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인한 과욕의 학부모들 학생들의 무한 경쟁심으로 다양한 대답과 생각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서울대 법대에 가야겠어.” “나는 연세대 경영학과에 가야겠어.” 이런 촌극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그리고 사실 대학입시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부터 입시에 내몰리고 있는 것 역시 자성해야 할 문제다. 대학이 문제가 아닌 외고, 과고 등 특수목적고에 보내고 가기 위한 학문적 탐구는커녕 한 가치 목표만 한 가지 가치관만을 태동하고 발휘하게 하는 게 우리 한국교육의 현실이고 목적인 것이다.어떻게 학습자 개개의 성향과 흥미, 가치관, 타고난 능력 등을 고려하것이라면 생각해 볼일이지만 학생들은 이미 그런 것들을 뛰어넘어 명문대 오직 명문대만을 위해 그냥 가면 좋은 곳 갈수 있으니까 이런 그릇된 마음을 품고 가기 때문에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나 생각된다.그리고 오늘날 학교 교육은 개성신장교육면에서도 학생들 개개에게 자기의 소질과 특성을 찾아내서 최대한 신장 시켜주어야 하는 교육이 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특별활동을 통해 봉사정신, 공동체 의식, 자기표현 등의 생활 경험을 쌓아 풍요로운 인간성을 길러 주어야 하는데 아직도 형식적인 운영에서 그치고 있다.학력 평가면 에서도 아직도 우리의 평가 방법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치는 무시된 채 학생들의 자기 매김만을 일삼고 있는 상대 평가를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체육교육의 부실 운영과 외국어 교육의 허상, 국제 이해교육이나 인간 존중교 , 환경 교육 등이 겉을 맴돌고 있다.또한 이러한 학교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교사, 학교장, 정책입안자, 교육개혁가, 학부모들은 여러 가지 입체적인 부분에서 그 부분들을 관리하고 수정해야하며 다음과 같은 문제를 수정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알아야 한다.학부모의 자녀에 대한 욕심을 자제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육의 실상에서 그 경쟁을 펼치는 이유 역시 학생 본인의 학구열이라기보다는 학부모의 교육열이 너무 과해서 라고 볼 수도 있다. 과거에는 자식농사가 가장 중요한 농사로 일컬어졌지만, 부모의 꿈을 자식에게 무조건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포용력을 기르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을 통해 상대방의 노력과 능력, 학식에 대해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인성을 형성시켜야 한다. 서로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고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서로 협력할 줄 아는 심성을 가진 사람을 양성해야 하는 것이다. 지위와 능력에 맞는 처우보다 과업에 맞는 처우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수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세계화가 강조되면서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고 보는 시각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즉, 학교는 사회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학부모와의 관계형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수 있어야 한다.지금까지의 내용을 토대로 좀 더 구체적으로 학교문화의 변화 방향을 이야기 하자면, 입시위주의 교육을 탈피하기 위해 성적이라는 가치관 하나만을 보지 말고, 학생들의 특기와 적성을 살려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가치관을 다양하게 형성시켜주는 것이다. 구체적인 대안으로 조기 교육 제도 같은 것을 들 수 있겠다. 조기 전문학교 제도라는 것은 획일적인 교육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를 대학교처럼 만드는 것이다. 현재의 고등학교는 크게는 인문계, 실업계로 나뉘고 좀 더 작게는 인문계는 문과, 이과, 실업계는 전기과, 기계과 등으로 나뉜다. 대학교의 과처럼 세세하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좀 더 광범위하게 대학교의 학부제 비슷하게 운영을 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공통으로 배워야 할 기본 과목을 배우고, 2학년 때부터는 반을 분류하고 기본교과는 계속 배우면서 자신의 진로에 알맞은 전문 교육을 받게 한다. 이때도 자신이 선택한 반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이 생길 수 있고, 배워보니 자신의 생각과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는 2학년 1학기가 끝난 후와 2학년 2학기가 끝난 후 딱 2번씩 바꿀 기회를 주어 학생의 특기와 적성에 맞는 반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때 앞에 배우지 못한 부분들은 방학을 통하여 배울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반별로 차후에 대학에서의 교과과정을 미리 경험할 기회를 제공해주어 진로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대학을 진학해서도 고등학교 때 배운 전공 지식을 살려서 이용할 수 있도록 교과 과정을 개편하고, 대학을 진학 할 때는 과에 필요한 전공을 배운 학생들에게는 가산점을 주어서 미리 그 분야를 배워 온 학생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준다.이 제도가 정착되어 학생들이 조기에 진로를 결정할 수 있게 되면 그 진로를 이루기 위해 대학을 진학할 수도 있고, 굳이 대학을 진학하지 않이다.
어느 덧 대학교 4학년 생활도 저물어 간다. 5월, 내가 그동안 배우고 고민했던 것들을 현장에 계신 선배 선생님들로부터 배우고 또 직접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교생 실습에 나가게 되었다. 이렇게 선생님으로서 첫 걸음을 내딛게 되다니 감개무량하다.입시에 지쳐있었던 열아홉의 OOO은 진로를 결정하는 데까지 현실적인 고민들이 참 많이 했었다. 하지만 종래에는 오랫동안 그려왔던 ‘선생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결정에는 나를 긍정하고, 삶을 긍정하게 해 주셨던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OOO 선생님의 영향이 참으로 컸다. 이때부터 내가 교단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실제적인 고민들을 많이 했었고, 그 고민은 스무 살 때부터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아직도 나는 참된 교사, 바람직한 교사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훗날 교단에 서게 될 때에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교사이길 바란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슴으로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은 바로 학생에게 미치는 교사의 영향력이다.고등학생 때,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의 지도아래 문예특기생 준비를 할 수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담임선생님께서 국어선생님이셔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입학하자마자 다녀온 3월 수련회 글짓기를 보고, 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부장선생님이시기도 했던 O선생님께서는, 여러 업무에도 불구하고 짬짬이 내가 써온 수필과 소설들을 읽고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셨다. 하늘이 청명하니 푸르렀던 2003년 가을, 그 무렵 쓴 수필을 읽고서 ‘이제 프로 냄새가 좀 나는 걸?' 하며 웃으셨던 선생님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펜을 놓은 지 오래되었지만, 그때 그 먹먹한 감동은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때와 같은 느낌으로 내 가슴에 남아있다.선생님은 학생의 잠재된 가능성을 오롯이 이끌어 낼 수 있는 존재다. 나는 그렇게 굳게 믿는다. 한 명의 학생에게 온전히 집중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그 개개의 학생 상황에 맞추어 나름의 방법으로 접근하려 노력하는 열정적인 교사―O선생님은 그런 분이셨다. 20년이 넘는 오랜 교직 생활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초심을 기억하려 하셨고,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내 눈을 바라보며 두 손을 맞잡아 기뻐해주셨다. 졸업 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서 내게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선생님을 보며 막연하게 느껴지는 이상들이 단지 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나 역시도 이러한 초심을 기억하는 교사이고 싶다.사람을 그 자체의 모습만으로 보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마음으로 소통하는 일 또한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교사는 그렇게 아이들을 선입견 없이 아이들 자체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감정에 휩싸여 왜곡되는 일 없이 자체로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하기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아직 영글지 않은 어린 꽃송이들에게 있어서 그러한 일은 얼마나 어렵겠느냐마는 바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이 교사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2년 6개월 동안 ‘갑을고시원’에 체류했던 이야기이다. 작품 속 화자는 의 뉴스를 접하고 불현 듯, 그 때의 추억을 심층에서부터 둥실둥실 떠올리게 된다. 작가가 실제 고시원에서 기숙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치 신경숙의 「외딴방」처럼, 실제 자신의 경험에 허구의 살을 덧붙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신경숙에게 글쓰기는 곧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었듯, 화자 역시도 그렇게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져간다.1991년 봄이 오기 전, ‘나’의 아버지의 사업이 막대한 규모의 사기성 부도를 당하게 되면서 집은 사라지고 가족은 흩어진다. 친구네 집을 전전하던 어느 날, 아침식사에서 ‘나’만 계란프라이가 빠져있었다. 이는 친구 어머니의 의도된 행위였고, 이 사건이 발단이 되어 그는 월 9만 원짜리 고시원을 찾아 들어가게 된다. 방(房)이라고 하기보다는, 관(棺)이라고 불러야 할 사이즈의 작은 공간에서, 마치 세포가 된 것처럼 화자는 천천히 그 곳의 생활에 침잠해간다.고시원 안의 수많은 밀실들은 벽으로 나누어져있으면서 동시에 벽으로 이어져 있다. 화장실에 쓰여 있던‘결국 사람은 밀실에서 살아간다. 이하동문이다.’라는 글귀처럼, 고시원의 모든 주민들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 안에서 살고 있고, 갑을고시원의 각 방은 얇은 벽이 세포막의 역할을 하면서 세포로서 기능한 셈이다. 소설 속 ‘나’는 바로 옆방의 김검사와 1센티 벽을 사이에 두고 있을 뿐, 거의 같이 사는 것과 진배없이 서로가 내는 소리를 다 들으면서도 그들은 별다른 소통 없이 일상을 영위해간다. 그의 말대로 정녕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에 혼자인 것일까. 단락마다 계절 ‘봄’을 환기시키는데, 봄이 한층 더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나’의 상황은 더욱더 대비되어 그 처절한 생의 몸짓에 비극이 더해졌다.박민규는 에서 행갈이를 자주 사용하며, 심지어는 문장의 완결이 다음 문단의 첫 문장으로 넘어가기도 하는데 이러한 장치들이 전반적으로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나’의 감정에 맞추어 숨을 고르기도 해, 바로 옆에서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도 준다. 이는 전체적인 어조와 이어지는데, 화자는 고백조의 어투를 사용함으로써 쳐있고 숨 막힐 정도로 인간이 외로울 수 있음을 사무칠 정도로 느끼게 해 주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매우 유머러스하다. ‘제목을 알 수 없는 그 쟁쟁쟁은 그 정도의 명곡이었던 것이다.’ 라든가 김검사의 세수하는 모습을 묘사하다가 ‘아마 나라면 / 말을 말자.’ 하는 대목 등등 여러 부분은 표현은 절묘하면서도 참을 수 없는 웃음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렇지만 이는 더더욱 읽는 나에게 묘한 기분을 선사해주었다. 화자는 비극적인 상황을 이야기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나는 외려 낄낄대는 꼴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여기서 더더군다나 이 ‘유머러스함’은 중요한 장치가 된다. 만약 그가 자기 독백적인 어조로 있는 그대로를 계속해서 암담하게 그려냈다면 이는 매우 어두운 소설이 되었겠지만, 여기서는 해학적인 요소를 가지고 종래에는 ‘희망’까지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나’의 시각에서 드러나는 이 희망과 유머는 현재의 화자가 이미 그 고시원에서 빠져나와 경제적으로 더 안정된 삶을 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갑을고시원은 화자에게 과거이면서 동시에 현재이다. 밀실에서의 ‘가구와 같은 삶’은 고시원을 빠져나와 아파트에서 제몫의 계란 후라이를 먹으며 결혼을 하고 직장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지속된다. 고시원은 그 공간이 너무 작고 환경이 좋지 않았기에, 인간 둘레에 쳐있는 밀실의 벽을 실제적으로 느끼게 했을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밀실은 어디에나 있다. 인간이 사는 어느 장소든지 모두 밀실이라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