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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권 평가A+최고예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제1장선사시대1.구석기시대 : 마술과 자연주의우리는 오래된 것을 존중하는 태도의 사회학적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그것은 종족 내지 가족간의 연대의식에서 나왔을 수도 있고, 자신의 특권에 세습적인 권위를 부여하려는 일부 특권층의 노력에 기인했는지도 모른다.예술을 현실지배 및 현실통어의 한 수단으로 보느냐 아니면 자연에 순응하는 하나의 방도로 보느냐에 따라 한편에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여 재현하는 자연주의적 작품이 예술 활동의 최초의 형태였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삶을 양식화하고 이상화하는 엄격한 형식의 작품이야말로 가장 먼저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이들 예술사가 및 고고학자들이 전제주의 내지 보수주의로 기울고 있는가, 아니면 자유주의?진보주의적 경향을 띠는가에 따라 기하학적인 모양을 중심으로 한 장식예술과 자연주의적?모방적인 표현형식 중 어느 한쪽을 더 오래된 것으로 받들게 되는 것이다.선사시대의 자연주의선사시대의 자연주의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얼핏 보아 그보다 더 원시적으로 보이는 기하학적 양식에 앞서 나왔다는 사실이 아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자연주의 예술이 근대예술사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발전단계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사시대의 자연주의는, 엄격한 기하학적?형식주의적 양식을 신봉하는 연구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것과 달리, 순전히 본능적이고 발전의 가능성이 없으며 몰 역사적인 현상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우리가 여기서 문제 삼는 자연주의적 예술은 처음에는 선을 중심으로 하여 대상을 비교적 딱딱하고 어색하게밖에 그릴 줄 모르는 모사에서 출발하여 드디어는 자유분방하고 재기 넘치며 거의 인상주의적이라 할 만한 수법에까지 이르는 예술이다. 그리하여 후기로 올수록 시각적 인상을 재현함에 있어 점점 더 회화적이고 순간적?즉흥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생활의 방편으로서의 예술우리가 아는 바로는 이 예술의 작가들은 비생산적?기생적 경제단계에서 식량을 생산하기대로의 전환은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옛것이 새것으로 서서히 바뀌어 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그리고 이 두 영역의 과도기적 형태들 사이에도 기생적인 수렵생활과 자연주의, 또는 생산적인 농경생활과 기하학주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과 똑같은 상관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예술양식의 경제적?사회적 조건에 관해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연주의는 개인주의적?무정부적 생활양식과 일종의 무전통성 및 고정된 관습의 결여 그리고 현세적 세계관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 이에 반해 기하학주의는 통일적 조직을 만들려는 경향과 영속적인 질서 그리고 대체로 현세의 피안을 지향하는 세계관과 일치한다는 정도다.3. 마술사 또는 성직자로서의 예술가, 전문직업 또는 가내수공예로서의 예술구석기시대의 동물 그림 작자들은 모든 정황에 비추어볼 때 ‘직업적인’사냥꾼들이었음에 틀림없다. 만약 우리가 추측하듯이 이 동물 그림들이 실제로 마술을 위해 활용되었다면 이러한 작품을 만들어낼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분명 마술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로 인식되고 마술사로서 존경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화가 겸 마술사’인 이들이야 말로 전문화 및 직업분화를 이룬 최초의 본보기인 셈이다.예술활동의 분화신석기시대에 들어와 종교적 예술과 세속적 예술이 분리되면서 아마도 예술활동의 담당자 역시 분화되었을 것이다. 예술 활동의 일부가 가내수공업 내지 가내적업으로 편입되었다는 것, 다시 말해 예술 활동이 다른 노동과 융합되었다는 사실은 분업 및 직업의 분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하나의 퇴보를 뜻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기능의 분화가 남녀의 구별에 따른 것일 뿐이지 직업과 직업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농민예술과 민중예술농경업과 목축업에서는 오랜 기간의 한가한 철이 생기게 마련이다. 신석기시대의 예술이 ‘농민예술’의 성격을 띠는 것은 단지 그 비개성적?정체적 형식이 농민들의 인습적이고 보수적인 정신에 상응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예술이 그러한 농한기의 산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날로 알려져 있고 또 세계사에서 최초의 예언자 혹은 최초의 개인주의자 식으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그는 또한 예술을 의식적으로 개혁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즉 그는 예술의 목표로서 자연주의를 내세워 의고풍 예술양식에 맞서는 새로운 업적을 이룩한 최초의 인간이었던 것이다.양식의 이원성수공업이나 상업을 영위하는 중산층은 귀족이나 농민과 더불어 이미 고제국시대에도 존재한 듯하며 이 계층은 중제국시대에 이르러 그 세력이 뚜렷이 증대했다.따라서 이집트에는 결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예술, 즉 귀족예술이 따로 있고 그와 어깨를 겨룰 만한 ‘민중예술’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5.메소포타미아메소포타미아 예술에 관한 진정한 문제점은 경제적으로는 상업과 수공업, 화폐와 신용제도가 압도적인 비중을 점유하고 있던 이 나라의 예술이 농업 및 자연경제에 더 깊이 뿌리박고 있던 이집트 예술보다 더 엄격한 규율에 매여 있고 변화나 신선함이 적다는 사실이다.양식상의 대립그런데 또 다른 해석에 의하면 원래 끄리띠 예술은 예컨대 이집트 예술 등에 비하여 자연주의적 경향이 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도 한다. 이설에 따르면 끄리띠 예술이 좀 더 자연스럽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양식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소재 선택의 대담성 문제, 즉 엄숙한 상징적인 인물 등을 그리지 않고 세속적인 사소한 소재나 생기발랄한 모티프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제3장고대그리스와 로마1.영웅시대와 호메로스 시대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은 그리스어로 씌어진 문학작품으로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거시지만 그리스 문학 전체를 통해 최초의 작품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최초의 문학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구조를 지녔고 내용 또한 풍부한 모순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애당초 호메로스에 관한 전설 자체도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개화되고 회의주의적이며 때로는 경박하기까지 한 세계관을 지닌 서사시를 쓴 사람의 이미지와는 서로 합치될 수 없는 요인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영웅시대와 사회윤리영웅시대가성과 등장인물의 심리적 신빙성에 국한되고 있는 데 반하여, 조형예술에서는 자연주의적 현상과 양식화적 요소가 서로 한층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4. 그리스의 계몽사조기원전 5세기가 끝나가면서 예술에서의 자연주의적?개인주의적 요소, 주관적?감정적 요소들이 점점 그 범위와 비중을 더해갔다. 전형보다는 개성이, 모티프의 집중보다는 확산이, 절제보다는 풍성함이 갈수록 더 우세하게 되었다.소피스트들의 교양이상철학의 영역에서 이 발전에 대응하는 것은 소피스트 철학이 불러일으킨 정신혁명으로서, 이는 귀족문화의 전제 위에 세워진 그리스인의 세계상을 기원전 5세기 후반에 이르러 근본부터 변혁시켰다.계몽사조기의 예술양식기원전 5세기 후반의 예술은 소피스트 철학을 낳은 것과 동일한 여러 가지 경험의 영향에 휩쓸리고 있었다. 더구나 그 휴머니즘적 경향으로 인하여 각계에 많은 자극을 준 소피스트 철학 같은 커다란 사상적 운동이 시인이나 예술가들의 세계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 리가 없었다.에우리삐데스소피스트 철학의 사고방식의 가장 포괄적이고 중요한 예술적인 표현은 그리스 계몽사조가 낳은 유일한 위대한 시인 에우리삐데스의 작품이다.에우리삐데스와 소피스트 철학에우리삐데스는 시인으로서 그 선배들에 비하여 완연히 근대적인 느낌을 주는 인물 이었을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소피스트 운동이 낳은 인간형에 속했다 그는 문사이자 철학자이고, 민주주의자요 민중의 벗이었으며, 정치가 겸 사회개혁론자였는데, 또한 동시에 소피스트들이 그랬듯이 어떤 계급에도 속하지 않고 사회적으로는 뿌리 뽑힌 존재였다.플라톤과 당대 예술고대 그리스?로마에서는 근대적인 의미의 ‘천재’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을 뿐더러 당시의 시인이나 예술가에게서 천재적인 면모라는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예술에는 비합리적인 요소나 영감 같은 것보다도 합리적이고 장인적인 요소가 우세했다.시민적 취미예술이 신흥 사회계층에 까지 널리 퍼져간 결과 생활과 직접 연결된 작품의 가치가 인정받게 되고, 이제까지 경쟁자가 없던 상류사회의 전통적 교양에세기에 걸친 일련의 소모적인 전쟁들은 군대를 계속 보충해 나가기 위해 지주계급의 협력을 필요로 했다. 그 결과 지주계급의 정치적 세력이 강해지고 동방에서도 일종의 봉건제도가 발생하게 되었다.우상파괴운동은 실제로 예술배척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술 일반을 박해한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종류의 예술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예술양식에 미친 영향우상파괴운동의 영향으로 예술 활동이 중단되었다기보다 단지 그 방향이 새로이 조정되었을 뿐이다. 더욱이 이러한 방향조정의 결과, 이미 지극히 형식주의적인 것이 되고 너무나 신선미가 없이 반복을 거듭하고 있던 예술품 제작에 오히려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준 느낌마저 있다.4. 민족대이동기에서 카롤링어 왕조의 문예부흥기까지민족대이동 시대 미술의 기하학 양식민족대이동 시대의 미술은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에 비해 오히려 낙후한 것으로서 양식사적으로는 아직 철기시대 단계에 있다. 비잔틴 예술과 민족대 이동기 서구의 예술, 이 두 개처럼 대립적인 예술관이 이만큼 근접한 지역에서 동시에 실천에 옮겨지고 있던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즉 비잔틴에서는 엄격한 제약 아래 있기는 했지만 기술적으로는 모든 점에서 완벽의 경지에 달한 인물화가 번성하고 있었던 반면, 게르만족 및 켈트족이 점령하고 있던 서방에서는 장식적인 것에 철저히 얽매인 추상적인 기하학양식이 진행되고 있었다.아일랜드 미니어처와 문학게르만인의 대부분은 자유로운 신분의 자작농이었으나, 더러는 자기의 소유지를 농노에게 경작시키는 지주들도 있었다. 민족대이동 시대에는 공동경작이라는 것은 이미 생각 할 수 없었다. 제반 사회관계가 아직 분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문화 전체가 아직 농업경제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만 성립되는 이야기인 것이다.게르만의 농민예술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 양식이 아일랜드의 수도사들 손으로 만들어진 미니어처 예술에 의해 계승된 데 그치지 않고 그 장식적 형식원리가 인체묘사에까지 확장됨으로써 새로운 차원에 도달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들 미니어처에서 볼다.
    인문/어학| 2008.06.01| 18페이지| 1,500원| 조회(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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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권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제4권자연주의와 인상주의제1장1. 1830년의 세대19세기의 토대19세기 혹은 '19세기'라는 말로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시대는 1830년 경에 시작한다. 19세기의 토대와 윤곽이 형성된 것은 겨우 7월 왕정 기간중이다. 스땅달과 발자끄의 소설은 우리 자신의 생활, 즉 우리 자신의 인생문제, 과거의 세대들은 알지 못했던 도덕적 어려움과 갈등을 다룬 최초의 책들이다.작가와 독자층18세기까지는 작가란 단지 자기 독자층의 대변인에 불과했다. 하인과 관리들이 그들의 물질적 재산을 관리하듯이 작가들은 독자의 정신적 재산을 관리했다. 그들은 당대에 통용되던 일반적 도덕원리와 취미표준을 받아들이고 이를 확인했을 뿐 그런 것들은 새로 만들어 내거나 개혁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분명히 규정되고 한정된 독자층을 위해서 작품을 썼으며, 구태여 새로운 독자를 얻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현실의 독자와 이상적 독자 사이에는 아무런 긴장도 생기지 않았다.자본의 지배르네쌍스 이래 점차 드러나는 근대 자본주의의 근본적 경향은 이제 어떤 전통에 의해서도 완화되지 않는 그 뚜렷하고 비타협적인 명료성 속에 나타난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비인격화의 경향, 즉 경제기업의 전 메커니즘에서 개인의 환경에 대해서 고려하는 모든 직접적·인간적 영향을 배제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업은 자체의 이해와 목적을 추구하고 자체의 논리법칙에 따라가는 하나의 자율적 유기체가 되며, 자기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을 노예로 삼는 폭군이 된다. 사업에의 완전한 몰두, 경쟁 속에서 회사를 번영시키고 확장시키기 위한 기업가의 자기희생, 그의 절대적이며 무자비한 성공에의 노력은 무시무시한 편집광적 성격을 띠게 된다.사회주의 이론의 대두'자유주의적' 지배정당은 그래서 혁명적인 반대세력들에게 완전히 포위되며, '시민군주'라고 하던 루이 필리쁘는 국민의 압도적인 다수와 완전히 대립하게 된다. 급진주의적 경향들은 민주적인 연맹과 정당 및 파벌의 결성으로, 파업과 단식투쟁과 암살모의로, 요컨대 항구적인 혁명이란변, 독일적인 애매한 관념론은 그에게 생소할뿐더러 증오의 대상 이기조차 하다. 도덕이라든가 지적 고결성의 본질은 그에게 있어서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보려는" 노력을, 즉 미신과 자기기만의 유혹에 반대하고 저항하려는 노력을 가리킨다.스땅달의 낭만적 경향왜냐하면 그는 심정적으로는 낭만주의자인 것이다. 그는 "엘베씨우스처럼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루쏘처럼 느낀다." 그의 소설 주인공들은 환멸에 빠진 이상주의자요 정열적인 저돌성의 소유자들이며 생활에 때 묻지 않은 순결한 인간들이다. 그들은 저 유명한 선배 쌩-프뢰처럼 고독을 좋아하며 세상에서 고고하게 떨어져 아무런 방해 없이 꿈에 잠기고 추억에 젖어들기를 좋아한다.고전주의 및 낭만주의의 심리학과 현대적 심리학프랑스 고전주의는 인간 성격의 통일적 개념에 근거를 두고 본래부터 타고난 불변의 실체로부터 다양한 정신적 속성들을 전개한다.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인간상이 독자에 대해 갖는 설득력은 여러 특징들의 논리적 일관성에 기인한다. 반면에, 고전적 방법과는 정반대인데도 그와 똑같이 분석적이라고 지적되곤 하는 스땅달의 심리적 수법은 개성의 논리적 통일성이 아니라 인물들의 개별적인 태도 표명에 근거를 두며, 그림의 윤곽이 아니라 그 음영과 색가를 강조한다.발자끄의 사회학발자끄는 뛰어난 문학적 초상화가로 지칭되어왔으며, 그의 예술의 위대한 효과는 그의 인물묘사력에 기인한다고 생각되어왔다. 실제로 사람들은 발자끄에 대해서, 특히 그의 소설의 인간 정글에 대해서 말할 때, 그가 그의 소설 속에서 펼쳐 보인 인물들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그가 원초적으로 관심을 둔 것은 심리학적 국면이 아니다. 그의 작품세계의 원천을 해명하고자 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의 사회학에 눈을 돌리고 그의 정신적 우주의 물질적 전제를 알 것을 요구받는다.발자크프랑스의 소설가. 프랑스의 정원으로 일컬어지는 아름다운 루아르강(江) 유역의 도시 투르에서 출생. 원래의 성은 Balssa이지만, 아버지 때부터 귀족처럼 드 발자크라 참칭하였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반동의 승리는 전례없는 지적 단순화와 취미의 황폐화를 가져왔다.새로운 지배계급의 생활태도와 취미앙씨앵 레짐의 와해는 이제 그 마지막 단계에 이르고, 옛날 상류사회의 최후의 대표자들은 사라지며, 그로 말미암아 프랑스 문화는 구사회가 최초의 충격을 받았을 때보다 더한층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된다. 예술에 있어, 무엇보다도 건축과 실내장식에 있어 악취미가 이때처럼 유행의 주도권을 잡은 적은 없었다. 번들거리고 싶을 만큼 재산은 있지만 요란하지 않게 빛을 낼만한 관록은 아직 없는 신흥부자들은 비싸고 화려한 것이라면 무작정 환영했다.자연주의의 개념자연주의란 실상 새로운 관습을 지닌 낭만주의이다. 진실감에 대한 자연주의의 가정이 새롭기는 하나, 이러한 가정이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언제나 자의적이게 마련이다.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후자의 과학주의, 즉 현실의 예술적 묘사에 정밀과학의 원칙을 적용한 데에 있다. 19세기 후반에 자연주의적 예술이 지배적 위치에 서게 된것은 관념론과 전통주의의 정신에 대한 과학적 세계관 및 합리주의적·기술중심적 사고방식의 승리에 다른 한 징후일 따름이다.꾸르베와 자연주의 미술자연주의는 프롤레타리아 예술가의 운동에서 시작한다. 그 첫 대가는 꾸르베인데, 그는 서민대중 출신이며 부르즈와적 범절에 대한 존중심이 전혀 없는 예술가다.왕년의 보헤미안 그룹이 흩어지고 그 멤버들은 낭만주의 기분을 내려는 부르즈와지의 총애물이 되어버린 후 이제 꾸르베의 주위에 새로운 써클, 말하자면 제2의 보헤미안파가 형성된다.새로운 예술의 사회적 성격새로운 예술의 사회적 성격은 화가들 자신이 좀더 긴밀히 뭉치고 예술가촌을 만들고 생활양식 면에서 서로 더욱 가까워지려는 경향에서도 드러난다. '풍뗀느블로파'는 이미 새로운 시대의 집단적 정신을 나타내준다. 그리고 그 뒤의 모든 예술가 단체나 집단적 거주지역들, 19세기의 여러 공동적 개혁운동이나 아방가르드 집단들은 모두 이러한 연맹과 협동의 경향을 표현하는 것이다. 낭만주의와 함이고 여러모로 가장 의미심장한 예술적 창작은 오페레타이다. 그것도 물론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의 두 장르, 즉 오페라 부파와 보드빌르의 연속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서, 18세기의 명랑·경쾌하고 비낭만적인 정신을 이 답답하고 재미없는 시대에 얼마간 넘겨준다. 그것은 당대 유일한 장난스럽고 가볍고 쾌활한 형태이다.그랜드 오페라써커스와 버라이어티 쇼와 르뷔가 본격적인 연극을 밀어내리라는 공꾸르 형제의 예언은 옳았다. 그 회화적 성격과 화려하고 전시적인 면에서 이 세 가지 쇼 형식과 동렬에 서는 영화를 여기에 덧붙인다면 공꾸르 형제의 예언은 완벽해지는 셈이다. 오페레타는 르뷔와 버라이어티 쇼에 가장 가깝게 접근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쇼 적 요소가 연극적 요소를 압도한 최초의 형식은 아니었다. 진정한 전환은 7월 왕정 기간 중 '그랜드 오페라'의 출현과 더불어 일어났다.리하르트 바그너의 예술당대의 모든 중요한 대표자들 중에서 리하르트 바그너는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양식에 가장 가까이 접근해 있다. 그것은 다만 그가 자기 작품을 살아있는 예술전통과 연결시키고자 해서만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성공이라는 데에 민감했기 때문이다. 올바르게 지적된 것처럼 개인적 체험과 개인적 발견에서 출발하여 자기 나름의 어떤 매너리즘으로 끝나는 보통 예술가들의 전형적 코스와 반대로, 그는 당대의 지배적 인습들을 아무런 내적인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가 점차 자기의 길을 찾아 독창성에 이른다.3. 영국과 러시아의 사회소설이상주의자와 공리주의자산업주의의 경제적 원리를 대변한 공리주의자들은 아담 스미스의 제자들로서, 그들은 저절로 움직이도록 방임해두는 경제가 자유주의의 정신에 일치될 뿐만 아니라 일반대중의 이익에도 가장 잘 합치된다는 이론을 주창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이상주의자들에게 가장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정말 변호되기 힘든 이 이론의 결함들이라기보다 오히려 이기적 본능을 인간행위의 궁극적 원리라고 설명하는 숙명론과, 인간의 이기주의자라는 사실에서 경제와 사회생활의 여러 이다. 온 나라가 너무나 격동에 휘말려 있고 독서층의 정치의식과 사회의식이 너무나 고도로 발달되어 있어서 '예술을 위한 예술' 같은 원칙이 대두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서구파와 슬라브파서구 지향적 지식인의 합리주의에 자극되어 슬라브주의라는 형태로 일어나는 지적 반작용은 유럽에서 이보다 반세기 앞서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낭만주의적 역사주의와 전통주의에 대응 하는 것이다. 서구파가 볼떼르와 백과전서파 및 독일 관념철학의 제자인 동시에 뒤이어 한편으로 쌩씨몽, 푸리에, 꽁트 등 사회주의자와 다른 한편으로 포이어바흐, 뷔흐너, 포크트 등 유물론자의 제자이듯이, 슬라브파는 간접적으로 그리고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버크, 보날, 메스트로, 아담 뮐러 등의 정신적 상속인들이다.러시아 소설의 행동주의러시아 소설은 서구 소설보다 훨씬 더 엄밀한 의미에서의 경향문학이다. 서구문학에서보다 사회문제가 훨씬 더 오랫동안 더 절대적으로 그 우위를 지켜나간다. 러시아 소설에서는 애초부터 같은 시기의 프랑스나 영국 작가의 작품에서보다 당대의 정치·사회적 문제와의 연관성이 훨씬 긴밀하다. 제정러시아의 압제 하에서는 지적 에너지가 문학을 통해서 밖에 작용할 수 없었으며 검열제도는 문학작품을 사회비판이 가능한 유일한 배출구로 만들었다.자기소외의 심리학도스또예프스끼는 현대 심리학의 가장 중요한 원칙, 즉 과장되고 지나치게 과시적인 형태로 표현되는 모든 정신적 태도의 분열적인 성격과 그러한 모든 감정들의 양면성이라는 원칙을 발견한다. 사랑과 미움뿐 아니라 긍지와 겸손, 자부와 자기비하, 잔인성과 마조히즘, 숭고한 것에 대한 갈망과 '쓰레기에 대한 향수'가 도스또예프스끼의 인물들 속에 얽혀 있다.도스또예프스끼의 신비주의와 리얼리즘도스또예프스끼의 심리적 통찰이 갖는 깊이와 섬세함은 그가 현대 지성인의 문제성을 체험하는 강도에서 온다. 이에 반해 그의 도덕철학의 순진성은 그의 반합리주의적 탈선행위와 이성배반, 그리고 낭만주의와 추상적 이상주의의 유혹을 물리칠 능력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다. 그.
    인문/어학| 2008.06.01| 19페이지| 2,000원| 조회(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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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권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제1장로꼬꼬와 새로운 예술의 태동1. 궁정예술의 해체르네상스 말기 이래 거의 중단 없이 지속되어온 궁정예술의 발전이 18세기에 와서 정체상태에 이르고 그것이 전체적으로는 오늘날 우리 자신의 예술관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부르즈와적 주관주의로 대체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경향의 몇몇 특징들은 이미 로꼬꼬에서도 나타났으며, 18세기 전반기에 벌써 궁정적 전통과의 결별이 실질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은 그다지알려져 있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비록 그뢰즈와 샤르댕에 와서야 비로소 부르즈와적 세계에 제대로 들어서게 되기는 하지만, 부셰와 라르질리에르만 해도 벌써 여기에 매우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기념비적인 것, 장엄하고 권위적인 것, 격정적인 것을 지향하는 특징은 이미 로꼬꼬 초기에 사라지고 우아하고 친근한 것을 지향하는 경향이 자리 잡는다.‘위대한 세기’의 종말프랑스 대혁명에서 그 정치적 절정에 이르고 낭만주의에서 그 예술적 목적지에 이르는 시민예술의 발전은 필리쁘 섭정시대에 절대적 권위의 원리로서의 왕권이 붕괴되고, 예술과 문화의 중심으로서의 궁정이 와해되며, 절대주의의 권력추구와 권력에 대한 자의식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었던 예술양식으로서의 바로끄 고전주의가 해체되면서 시작한다.섭정시대루이 14세는 만년에는 국가와 궁정이 맹뜨농 부이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베르사유궁의 침울할 만큼 장중하고 고집스럽게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귀족들은 이제 안락한 느낌을 갖지 못하였다. 왕이 죽었을 때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며, 특히 오를레랑 공 필리쁘의 섭정을 통해 전제주의로부터 벗어나기를 기대한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였다.귀족과 부르즈와지필리쁘의 계획 중에서 루이 14세에게 억눌려 있던 귀족계급의 옛 정치적 권리와 공적인 기능들을 다시 회복시키려는 시도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 속했다. 그는 전통적인 봉건귀족 출신의 인사들로 이른바 꽁세유를 구성하여 시민계급 출신의 장관들을 대체할 작정이었다. 섭정시대는 겉으로 보기에는 사회적 경계선이국민의 대표’는 아니었다. 의회의 임무는 봉건질서가 무너진 폐허 위에 자본주의를 건설하고, 절대주의와 교권체제에 동조하는 기생충적인 계층을 눌러 경제적으로 생산적인 부류의 지배권을 확립하는 데 있었다.영국의 사회질서18세기의 영국 사회질서는 흔히 공화정 말기의 로마의 상태와 비교되어 왔다. 그러나 원로원계급, 기사계급 및 평민으로 이루어진 로마의 사회구성이 영국에서 의회귀족, 부유층, 빈민이라는 범주로 어느 정도 되풀이 된 사실은 그 자체로서는 크게 주목할 만한 현상은 아닐 것이다. 실상 세 개의 집단에 의한 이러한 계급적 구성은 상당한 정도로 발전했으면서도 계급간의 평준화가 이룩되지 못한 사회의 하나의 일반적인 특징인 것이다.부르즈와적 독자층영국에서의 문화적 평준화 과정은 새로운 정규적 독자층의 형성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바, 이 독자층이란 정기적으로 책을 읽고 사며 그럼으로써 일정 수의 작가들이 개인적 은덕에 힘입지 않고 생계를 꾸려나가도록 보장해준 비교적 광범한 계층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독자층의 성립은 무엇보다도 부유한 시민계급의 등장과 결부된 것으로서, 이들은 귀족계급의 문화적인 특권을 깨부수고 문학에 대해 활기차고 점증하는 관심을 표명했다.새로운 잡지들1709년에 창간된 스틸의 태틀러, 2년 후에 그것을 대신하여 발간된 애디슨의 스펙테이터 및 그 뒤를 이은 도덕 주간지들은 처음으로 학자와 다소 교양 있는 일반 독자, 문예취향의 귀족과 냉철하고 사무적인 부르즈와지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문학, 그러니까 궁정적 이지도 않고 제대로 대중적이지도 않으며, 그 엄격한 합리주의와 도덕적 견고성 및 훌륭한 인격이라는 이상에 의하여 귀족적?기사적 세계관과 부르즈와적?퓨리턴적 세계관의 중간에 위치하는 문학의 전제들을 창조한다.정치에 봉사하는 문학문인들 앞에 단 하나의 응집된 권력체가 있지 않고 두 개의 상이한 정당이 있다는 사정은 그들을 어느 정도 독립적이게 만드는데, 왜냐하면 이제 그들은 다소간 자기들 취향에 따라서 고용주를 선택할 수 있 것으로 외부에서 내부로 주의를 돌리려는 한 수단이다. 주체와 객체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이제부터는 모든 문학적 노력의 주요한 목표가 되었다. 심리적 거리의 단축을 위한 이러한 노력과 더불어 작가, 주인공, 독자 사이의 관계는 전면적으로 변화한다.낭만주의에서의 취미변화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이제 작품이란 개인들 자신이 관련된 직접적인 체험이 묘사되는 데서 그 가치가 주어지는 영혼의 표현이다.음악양식의 변화영국의 전기 낭만주의 및 루쏘의 작품과 함께 일어난 문학에서의 양식 변화, 즉 객관적?규범적 형식 대신에 주관적이고 자유로운 형식이 등장하게 된 변화는 아마 음악분야에서 가장 극명하게 표현되었을 터인데, 이때에 와서야 처음으로 음악은 역사적으로 한 시대를 대표하고 주도하는 예술이 된 것이다.공개연주회18세기까지 모든 음악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결국 실용음악 이였다. 그것들은 왕후나 교회 또는 시의회의 위촉을 받아 작곡되었고, 궁정의 연회를 흥겹게 한다든지 예배의식에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든지 또는 공적인 행사를 빛나게 한다든지 하는 목적에서 연주되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인 순수한 연주음악은 18세기 이후에야 비로소 생겨나게 되었다. 공개연주회에 모인 청중은 궁정에서의 음악연주를 듣던 사람들과는 본질적인 면에서 몇 가지 차이가 났다. 우선 연주회의 청중들은 일반적으로 음악 그 자체를 평가하는 데 훈련이 덜 돼있었다.제2장계몽시대의 예술1. 시민극의 형성연극과 계급투쟁시민극은 성립 당초부터 영웅적?귀족적인 도덕 체계의 절대적 가치에 대한 거부이자 그 평가절하를 의미했으며 그 자체로서 부르즈와 도덕 및 귀족에 대한 시민계급의 동등권을 주장하기 위한 하나의 선전이었다. 시민극의 전 역사는 그것이 부르즈와적 계급의식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새로운 연극은 그 도전적이고 자기 주장적인 성격으로 인하여 처음부터 종래의 연극형식에 없던 문제성을 지니고 있었다. 종래의 연극은 비록 ‘경향적’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논제를 직접 제다. 낭만주의 운동은 한편으로는 계몽주의와 함께 시작된 시민계급 해방의 연장 내지 그 상승으로서 평민층의 과다한 감정과 정열을 표현함으로써 상류층의 까다롭고 자제된 주지주의에 대립되는 운동이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상류층 스스로가 계몽주의의 ‘파괴적’인 합리주의와 개혁주의에 반대한 운동이기도 하였다.독일 시민계급계몽주의는 근대 시민계급에 있어 기본적인 정치적 단련의 과정으로서, 이 과정이 없었다면 지난 2세기 동안의 유럽 정신사에서 했던 시민계급의 역할은 상상 할 수 없을 것이다. 독일의 불행은 이 나라가 제때에 이 과정을 거치지 못했고 그 후에 가서도 이 때 놓쳐버린 과정을 다시 밟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다.소국분립주의15세기와 16세기의 시민정신은 베스트팔렌 평화조약 이후에는 독일의 예술과 문화로부터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왜냐하면 독일인들은 프랑스인의 궁정적?귀족적 양식을 학생이자 제자로서 따라 배웠을 뿐만 아니라, 직접 예술가와 예술품을 수입하거나 프랑스의 모범을 노예처럼 모방함으로써 그것을 고스란히 답습하였기 때문이었다. 200여 개나 되는 소국가들은 하나같이 프랑스 국왕과 베르사유 궁정을 모방하고자 하였다.지식인층의 소외시민계급의 무력과 정부 및 일체의 정치적 활동으로부터의 제외는 소극적 태도를 낳게 하였는데, 이러한 소극적 태도는 모든 문화생활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체념에는 변경 불가능해 보이는 사회적 조건들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뿐만 아니라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이 나타나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독일의 중간층 지식인들은 사회적 현실과의 일체의 접촉을 상실하고 점점 더 세상물정에 어둡고 괴팍하며 고지식하게 되었다.독일 이상주의합리주의적 대중철학에 대한 젊은 세대의 비판은 분명히 정당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당시의 상황에서 볼 때 합리주의의 미흡성에 그대로 안주하기보다 이를 무시하는 것이 더 큰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절대주의와 결탁한 교회에 대한 투쟁에서 계몽주의는 역사 속에 존재하는 비합리적 요소 및 교회하게 꾸미려는 욕구가 다시 일기 시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세기의 예술관 전체에 하나의 전환이 이루어짐으로써 더 자유롭고 더 감각주의적인 바로크적 경향들이 득세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프랑스 예술과 문학에는 고전주의적 경향과 바로크적 경향의 기이한 병렬과 혼합이 이루어지고, 이 결과 그 자체가 하나의 모순이라고 할 수 있는 양식인 바로크 고전주의가 생겨난 것이다.로꼬꼬 고전주의18세기 중엽부터 7월 혁명까지의 기간에 걸친 고전주의는 하나의 통일된 운동이 아니라 중단 없이 진행되기는 하지만 명백히 구분 지을 수 있는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이루어지는 발전과정이다. 그 첫 번째 단계는 대체로 1750~80년에 계속되는데, 이 단계는 그 혼합된 양식의 성격으로 인해 흔히 로꼬꼬 고전주의라고 불린다.고고학적 고전주의고고학적 고전주의라고도 불리는 이 새 운동은 이와 비슷한 지금까지의 예술경향들 보다 더 직접적으로 그리스?로마 예술의 고전체험에 의존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고대에 대한 학문적 흥미가 먼저 생겨서 그것이 새로운 예술사조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취미의 변화가 있었고, 또 이러한 취미의 변화는 그것대로 삶의 가치들의 변화를 바탕으로 일어났던 것이다.혁명적 고전주의이 세기의 4분의 3에 해당되는 시기는 여전히 여러 양식의 모순과 대립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고전주의는 아직도 전투적 입장을 취하면서 서로 경합을 벌이고 있는 두 양식 중에서 약세의 위치에 있었다. 1780년경까지의 고전주의는 대체로 궁정적 예술과 이론적 논쟁을 벌이는 데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혁명 전야의 프랑스 화단에는 크게 보아 다음의 네 가지 예술경향이 있었는데, 그것은 첫째 프라고나르가 대표하는 감각주의적?색채주의적 로꼬꼬의 전통, 둘째 그뢰즈가 대표하는 쎈티멘털리즘 셋째 샤르댕의 부르즈와적 자연주의 넷째 비앵의 고전주의이다.대혁명의 예술강령로마인의 의상과 로마인의 애국주의가 지배적 유행이 되고 보편타당한 상징이 되었는데, 이러한 상징은 그 밖의 어떠한 상징도 모나였다.
    인문/어학| 2008.06.01| 14페이지| 2,000원| 조회(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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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권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제 1장르네쌍스1. 르네쌍스의 개념중세와 근대를 서로 분리시키는 방법이 흔히 얼마나 자의적이고, 르네쌍스라는 개념이 얼마나 유동적인가 하는 것은 뻬뜨라르까와 보까치오, 젠띨레 다 파브리아노와 삐자넬로, 장푸께와 얀 반 에이크등의 인물을 과연 어느 시대의 범주에 집어넣을 것인가 하는 어려움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난다.아무튼 중세와 근대의 실질적인 전환이 18세기에 이루어지고 근대라는 시대가 계몽주의, 진보의 이념 그리고 산업화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생각을 가볍게 일축해버리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부르크하르트는 르네쌍스를 묘사할 때 자연주의 정신을 특히 강조하면서 체험을 통한 현실세계로의 전환과 인간과 세계의 발견을 재탄생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로 들고 있다.자유주의적 르네쌍스관르네쌍스에 의한 자연의 발견이란 19세기의 자유주의가 지어낸 것이다. 자유주의가 자연적이며 자연을 사랑하는 르네쌍스상을 중세와 대비시킨 것은 무엇보다도 낭만주의에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였다.관능주의적 르네쌍스 개념부르크하르트는 또한 르네쌍스의 개인주의를 관능주의와 관련시키고 있는데, 그에게는 르네쌍스의 인격자율의 이념이 중세적인 금욕주의에 대한 반발을 뜻하는 것이었고 르네쌍스의 자연예찬은 생의 기쁨과 ‘육욕의 해방’을 알리는 복음과 같은 것이었다.국민적?민족적 특징들중세 말기와 르네쌍스는 순전히 역사적 경계선에 의해서보다도 오히려 지리적?국민적 경계선에 의하여 갈라지는 듯하다. 예를 들면, 삐자넬로와 반 에이크 형제같이 중세 말기와 르네쌍스 중 어느쪽에 속하는지가 문제 되는 경우에는 대체로 남쪽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현상은 르네쌍스에, 유럽 북쪽지역에서 일어난 현상은 중세에 속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형식원리로서의 통일성고딕 예술의 기본 형식은 연속과 누적의 형식이다. 하나의 고딕 예술작품이 비교적 독자성을 지닌 여러 개의 부분으로 형성되었든 아니면 여러 부분으로 다시 분해될 수 있는 것이든, 표현이 회화적이든 조각적이든 또는 서사적이든 희곡 역할을 상실한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경제적 번영이 정점에 다다른 피렌체가 또 다시 전면에 나타난다. 이때부터 피렌체는 결코 전형적이라고 할 수 없는 독자적인 발전을 하고 있던 베네치아를 빼고는 진보적인 예술활동의 유일한 중심지가 되었다. 피렌체의 이러한 예술활동은 대체로 서구의 중세 후기적 궁정양식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독자적으로 전개되었다.꾸아뜨로첸또의 시민적 자연주의와 양식의 혼합그러나 꾸아뜨로첸또 초기에는 궁정화의 경향이 아직도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다. 이 세기 최초의 세대에 속하는 거장들, 특히 마자치오와 도나텔로는 지나치게 세련된 궁정풍의 취미는 물론이요 뜨레첸또 회화의 장식적이고 무절제한 형식보다도 공간형식이 집중되어 있고 인물묘사가 조상처럼 품위가 있는 지오또의 엄격한 예술양식에 오히려 더 가깝다.자연주의의 변모꾸아뜨로첸또 예술의 기본 경향을 이룬 자연주의는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여러 차례 방향을 바꾸었다. 웅장함과 반고딕적인 단순함, 무엇보다도 공간관계의 명확성과 비율을 존중하는 마자치오의 자연주의와 고쫄리의 예술에 나타나는 풍부한 내용의 풍속화, 그리고 싼드로 보티첼리의 심리학적인 감수성은 바로 단순한 상태에서 금융귀족으로 성장해간 시민계급 발전사의 각기 다른 세 단계를 반영하고 있다.꾸아뜨로첸또 후기의 미술어떤 사람들은 꾸아뜨로첸또 후기의 예술을 ‘제2세대’의 문학, 즉 버릇없이 자란 아들과 부유한 상속인들이 지배한 세대의 문화로 규정하면서, 이 세대의 문화는 15세기 전반의 문화와는 너무 현저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의도적인 고딕으로의 복귀, 즉 일종의 반르네상스라고 간주하기도 한다.길드의 예술활동이탈리아에서는 길드의 예술활동은 다른 유럽 국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신들의 예배당이나 길드 회관의 건축과 장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치도시인들이 함께 쓰는 교회 건물의 설립 같은 사업에까지 확대되고 있었다.메디치가의 예술보호도시공화국의 돈 있고 명망있는 시민들은 일상생활 태도에서는 남의 이목을 고려하여 어느정도 자제력을 발휘했으나, 적어한 소책자에서는 아직도 미술은 수공업과 전혀 구별되고 있지 않다.스승들의 모방 대신에 자연의 연구를 내세워 이론적으로 처음 정리한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인데, 물론 그것은 실제로는 이미 오래 전에 이루어진바 전통에 대한 자연주의와 합리주의의 승리를 표현한 데 지나지 않았다.르네상스의 천재 개념과 독창성에의 의지르네상스의 예술관에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은 천재 개념의 발견이다. 예술작품은 자주적 인격의 소산이고 자주적 인격은 전통, 이론, 규범은 물론 작품까지도 넘어서서 그 위에 군림하는 것이며 작품은 그 법칙을 이러한 인격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이념, 바꾸어 말하면 이러한 자주적?창조적 인격의 소유자는 작품보다 더 풍부하고 심원하며 어떠한 객관적 형상으로도 완전히 표현될 수 없다는 이념이 그것이다. 정신의 독창성과 자발성 그 자체에 가치를 두지 않았고 거장을 모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요 표절도 허용될 수 있는 일로 간주했으며 정신적 경쟁이라는 생각에 겨우 접하기는 했을망정 결코 그것이 지배적이지 않았던 중세에는, 천재라는 개념은 완전히 생소한 것이었다.스케치에 대한 평가천재 개념의 발달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보를 내디딘 것은 업적 그 자체보다는 업적을 내는 능력이, 작품보다는 예술가 자신이, 작품의 완전한 성공 여부보다는 작품에 나타난 의도와 사상이 더 중요시되면서이다.예술의 자율성천재 개념이 예술가의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형식으로 표현된 생각이라면, 반대로 작품의 입장에서 객관적 형식으로 표현하면 곧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개념이 된다. 정신적인 형성물의 자율성이란 정신의 자발성과 맞먹는 개념인 것이다. 그러나 르네상스에서 예술의 자율성이란 단지 교회와 교회가 대표하는 형이상학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할 뿐 절대적?보편적인 자율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예술의 과학화꾸아뜨로첸또의 학자나 연구자들이 누리던 명성은 19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회복되었다. 이 두 세기에는 모든 노력이 새로운 수단 및 새로운 과학적 방법과 기술적 발명을 통해 경제 팽창과 성장을 촉진시키는 움을 겪고 있다.매너리즘과 고전주의고전주의 예술의 긴장 없는 균형의 공식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았다. 동시에 사람들은 그럴수록 거기에 집착했고, 심지어는 순탄한 관계에서 그랬을 것보다도 훨씬 더 안타???게 결사적으로 그 공식들에 매달렸다.매너리즘의 발견고전주의에 대한 매너리즘의 관계처럼 우리 자신의 전통에 대한 관계에서 깊은 문제성을 안고 있는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매너리즘이라는 예술양식이 지니고 있는 창조적 본질을 이해하게 되었고, 매너리즘이 고전주의 예술을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세심하게 모방한 것은 실제로는 그들이 느끼던 고전주의 모델로부터의 내면적 괴리에 대한 과잉보상이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자연주의와 정신주의매너리즘에 흐르는 두 개의 대립적 흐름은 항상 별개의 예술가에게 구현된 별개의 양식경향으로서 나란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서로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뒤섞여 있다.매너리즘과 바로끄매너리즘을 이와같이 일반적으로 묘사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통일된 개념으로 묶기에는 힘든 매우 상이한 특징들을 내포하고 있다. 매너리즘과 바로끄적인 경향은 이미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후기 작품에서 뒤섞여 있었다. 바로크의 격정적인 표현주의적 예술의지와 매너리즘의 주지주의적?초현실주의적 예술관이 서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매너리즘과 고딕궁정적 매너리즘, 특히 후기의 궁정적 매너리즘은 통일적이며 전 유럽적인 하나의 예술운동, 즉 고딕 이후 최초로 나타난 범유럽적 예술양식이다.2. 정치적 현실주의 시대근대 자본주의의 시작칼 5세가 지배권을 확립하기 시작할 즈음에는 터키의 위협과 신항로의 발견, 그리고 대서양에 인접해 있는 여러 유럽 국가들이 유력한 경제실력자로 등장함으로써 세계무역의 중심지는 지중해에서 서쪽으로 옮아갔다. 세계무역의 판도에 종래의 이탈리아 소국가들을 대신해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영토와 부유한 재력을 가진 통일국가들이 등장하자, 초기 자본주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바야흐로 대규모의 근대 자본주의가 막을 올리게 된다.종교개혁종교개너리즘은 최초로 예술과 관련된 인식론적 문제, 즉 예술과 자연의 일치라는 문제를 제기했다.미술 아카데미 이념의 전개미학이론을 지배하는 규칙성과 무규칙성, 구속과 자유, 신적 객관성과 인간적 주관성 사이의 대립관계는 미술 아카데미즘에 관한 사고방식의 변천 속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아카데미의 본래 목적과 의도는 자유주의적인 것이었다.아마추어 비평의 문제300여 년 동안 아카데미즘은 공식적인 미술정책, 공적인 미술장려 및 미술교육, 장학금과 상금을 주는 기본 원칙, 전람회 개최에 관한 문제와 부분적으로는 미술비평까지도 완전히 지배했다.피렌체에서의 매너리즘주로 1520~30년의 10년 동안에 걸쳤던 피렌체 매너리즘의 비교적 ???은 제1기는 르네상스의 아카데미즘에 대한 반동이었는바, 이 경향은 16세기 중엽에 절정을 이룬 제2기에 와서야 브론찌노와 바자리를 중심으로 고조?강화되었다.매너리즘의 공간묘사이러한 대립성은 공간을 취급할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뽄또르모, 로쏘, 베까푸미 등은 때로는 개개의 인물군을 화면의 깊은 곳으로 떠밀어 넣었다가 때로는 화면의 깊은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오게 함으로써 공간적 효과를 과장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공간의 시각적인 통일성과 구조적인 동질성을 폐기함은 물론 화면구도를 평면적 패턴에 맞추고는 깊이를 존중하는 성향과 평면을 지향하는 경향을 연결시킴으로써 공간을 전혀 무시하기도 한다.3. 기사도의 두 번째 패배영웅적인 생활에 대한 새로운 열광과 기사소설의 새로운 유행을 가져온 기사적 낭만주의의 부흥은 15세기 말경 이탈리아와 프랑드르에서 처음 나타나서 16세기에 프랑스와 에스파냐에서 정점에 도달한 현상인바, 이러한 현상은 본질적으로 이때부터 시작되는 권위주의적 국가형태의 우세, 시민적 민주주의의 퇴화 및 유럽 문화의 점진적인 궁정화를 말해주는 하나의 징후이다.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영국 왕실은 튜더왕조에 이르러 전제군주제로 발전하였다. 대귀족계급은 장미전쟁 종반에 이르러 완전히 몰락하다시피 했지만, 젠트리와 소지주 자유농.
    인문/어학| 2008.06.01| 12페이지| 1,500원| 조회(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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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RD(인간자원개발)프로그램 가상구성
    Ⅰ. 서론1. 인간자원개발의 정의인간 자원 개발(Human Resource Development)의 개념 정의에 앞서 ‘개발’의 의미를 살펴보면 ‘개발’은 “보다 효용 있고 쓸고 있으며 가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인간 자원 개발’이란 사람을 보다 더 가치 있고 쓸모 있게 만드는 활동이라 개념 지을 수 있다. 개개인의 잠재능력과 자질을 개발하여 기업이나 사회·국가 전체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교육, 훈련활동과 양성된 인적자원의 활용을 최대화·극대화시키기 위한 관리체제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이와 관련하여 나들러(Leonard Nadler)는 조직적 학습이어야 하고, 제한된 기간에 실시되어야 하며, 학습자와 조직의 직무와 관련되어야 하며, 직무성과 향상 가능성을 증대시켜야 하며 마지막으로 개인 및 조직의 성장 가능성을 증대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이를 종합하면 ”HRD란 직무성과의 향상 가능성 및 조직과 개인의 성장 가능성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제한된 시간 내에 실시하는 조직적인 학습활동으로 ID(individual development)과 OD(Organization Development)와 CD(Career Development)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2. 인간자원개발의 영역)1) 개인개발 (Individual Development)(1) 개인개발의 개념"당신의 브랜드 파워를 인식하자"이제 더 이상 당신이 다니고 있는 기업이 당신을 말해 주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인이 다니는 회사의 이미지가 개인의 모든 이미지를 결정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회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퍼스널 브랜딩이란 나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총체적인 개인의 정체성 확립이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해 놓고 미래에 되고 싶은 자신과 현실 속의 자신 속에서 자신의 철학, 그에 따른 행동양식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울러 내재된 잠재 능력을 현실화하기 위해 한 개인의 통일 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연구 분석하여 의도적으로 변화시키는 일련의 변직무현장에서 사용하는 것을 훈련 전이(transfer)라고 한다. 이러한 훈련 전이의 발생은 훈련 자체의 요소뿐만 아니라 조직문화, 조직풍토, 보상체계와 같은 훈련 외적 요소에 의해서도 많은 부분이 결정되기에 조직개발과 결합된 개인개발을 통해야만 HRD의 효과를 조직에 파급시킬 수 있다.ⅱ)조직개발은 장기적으로 계획된 변화 과정조직개발은 정해진 기간 없이 지속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는 조직개선 노력이기에 단기적인 처방으로 조직문화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새로운 조직운영시스템, 의사소통시스템, 직위체계, 훈련개발 모형 등을 도입할 때, 과연 이것이 조직 문화에 적합한 것인가를 고려해야 하며 새로운 변화에 적합한 조직문화가 선행 되어야 한다.ⅲ)조직개발은 체계적 과정다른 HRD영역이 모두 그러하듯 조직개발 역시 체계성을 가진 논리적 단계들의 연결로 구성되어야 한다.ⅳ)조직개발은 다양한 행동과학의 이론과 학제간의 지식에 기초하여 형성조직 내의 문제를 검토하고 해석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지식, 즉 사회과학 제 분야의 지식이 필요하다. 또 이것을 적절히 활용하게 되는 응용행동과학의 발전에 힘을 입고 변화하여 가는 환경이 전통적이고도 관료적인 구조를 탈퇴하고 보다 융통성 있고 적응성이 있는 조직구조와 과정이 요구된다.3)경력개발(Carrier Development)(1)경력개발의 정의경력개발(CD)은 한 개인이 인생의 단계를 거치면서 일과 관련되어 겪게 되는 경험으로 개인차원에서는 자아실현, 조직차원에서는 성과향상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말한다.(2)경력개발의 특징ⅰ)경력개발은 조직과 개인의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다.개인들은 경력계획(career planning)을 주체적으로 세울 수 있고 조직은 개인들의 경력계획을 인정하고 여기에 더불어 경력관리(career management)의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경력개발의 주체 가운데 하나는 개인이고 다른 하나는 조직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경력개발은 개인과개개인의 업무처리능력이 중시되고 이러한 업무처리능력은 유연성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자원개발은 그 필요성이 증가되고 있다. 또한 새로운 시대에 맞이하여 이에 맞는 리더를 만들어 냄으로서 기업과 국가에 많은 공헌을 할 것이다.이외에도 많은 요인들이 인간자원개발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하나하나를 모두 나열하는 것보다는 특정 조직을 정해 인간자원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에 대해 조사해보고 보다 효율적인 인간자원개발 프로그램에 대하여 논해보고자 한다.Ⅱ. 기관 소개 및 분석1)기관선정 이유자원에는 물적 자원, 재정적 자원, 인적 자원 등으로 구분된다. 예전에는 물적 자원과 재정적 자원이 상당히 중요하게 평가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적 자원의 중요성이 상당히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사람의 노동력을 자원으로 보고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물적 자원과 재정적 자원이 풍부한 대기업에서는 인적자원에 대한 개발과 지원,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지만 중소기업에서는 물적, 재정적 자원의 문제로 인하여 이러한 인적자원의 개발, 지원, 관리가 생각만큼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우리가 조사하게 된 동남정밀주식회사는 기아자동차와 현대파워테크를 주요고객으로 하고 있는 기업으로 1990년 유망중소기업으로 선정되었고, 1995년에 제 2공장을 설립하였으며, 2003년에는 합작투자회사 (주) 코넥을 설립하였다. 또한 중국에도 진출해 북경동남압주유한 공사를 설립했을 정도로 생각보다는 작은 회사는 아니다. 그리고 조원 중 한명이 수업을 듣기 전에 2달가량 직접 일을 했다. 그 당시에는 수업을 듣지 못해 인간자원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을 하고 있지 못했으나 수업을 들으면서 예전에 일했던 곳이 인간자원개발 쪽으로 많이 신경을 써야 한다고 느꼈다. 동남정밀주식회사는 생산 활동과 제품개발에는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의 인간자원을 개발하고 지원, 관리하는 것이 잘 되고 있지A :네.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Q :인력개발 프로그램과 같은 것은 산업복지의 일환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한 것들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A :그러한 프로그램이 시행되면 근무를 함에 있어서도 좋겠지만 현대자동차에 납품을 하는 입장이니 현대자동차에서 요구하는 수량을 맞추다보면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Q :현대자동차에서는 인력개발 프로그램같은 것들이 진행되지 않나요?A :현대자동차에서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그러한 프로그램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Q :동남정밀도 어떻게 보면 현대자동차의 일원인데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도록 해주지는 않나요?A :그렇게 해준다면 좋겠지만 어디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겠습니까? 1차 협력업체 라고 해도 사실상은 자기 아래의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있는데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다고 봐야겠지요. 우리 쪽 에서 그러한 요구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사장급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분들이 의지가 있어서 지속적으로 요구를 하면 이뤄질 수도 있겠지요.3)SWOT분석대상구분(주) 동남정밀SWOT분석내부인적 / 물적 측면에서STRENGTHS(강점)직원들 스스로가 HRD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기회만 된다면 HRD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하는 요구가 있음.직원, 생산직근로자, 방위산업체요원, 아르바이트, 외국인 노동자의 여러 그룹으로 이루어졌으나 서로의 유대관계가 좋음.WEAKNESS(약점)일일 달성수량이 책정되어 있기에 프로그램을 실시할 만한 시간적 여력이 없음.12시간의 근무시간으로 인해 프로그램을 실시하더라도 효율적인 프로그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시적 환경과 유관집단의 미시적 환경 측면에서OPPORTUNITY(기회)현대자동차가 세계자동차 시장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이와 관련하여 현대자동차 직원뿐만 아니라 협력업체의 직원들에게도 HRD 프로그램 참여의 기회를 넓힐 수 있음.THREATS(위협)현대자동차 회장인 정몽구 회장의 대규모멘토와 멘티의 역할을 하도록 한다.2. 멘토링을 통해 업무관련의 조언뿐만 아니라 회사 내 대인관계 기술에 대한 조언도 하도록 한다.3. 멘토의 역할을 수행하는 직원에게 회사에서 소정의 보상을 하도록 한다.기대효과1. 기존 직원의 리더십을 증대시킬 수 있다.2. 신입사원이 회사에 빠르게 적응 할 수 있도록 한다.프로그램평가방법1. 신입사원의 회사 적응도 파악2. 평가설문프로그램생산성 향상을 위한 버즈 그룹의 브레인스토밍대상(주)동남정밀의 전 직원목적1. 생산성 향상을 위한 각 부서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한다.2. 각 부서별 직무수행의 장애요소에 대해 파악한다.방법1. 각 부서별로 아이디어 회의를 진행한다. 아이디어 진행시에는자유자재로 이야기하며, 서로 비판하지 않으며, 많은 양의아이디어가 나오도록 하여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기존의 것과 조화시키도록 한다.2. 하위 부서에서 의견이 모아지면 상위 그룹에서 다시 같은 방법으로 아이디어 회의를 진행하여 최종적으로 CEO도 동참하여 의견을 수렴하도록 한다.기대효과1. 관리자가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생산직에서부터의 아이디어 회의로 실제에 유용한 직무환경을 이룰 수 있다.2. 생산성 향상에 대한 각자의 아이디어를 말하면서 서로의 샐각을 알 수 있으며, 애사심을 고취시킬 수 있다.프로그램평가방법1. 아이디어의 시행 후 생산성의 추이확인2. 평가설문3)조직개발 프로그램프로그램웃음 치료 프로그램대상(주)동남정밀의 전 직원목적1. 웃음을 통해 즐거운 생산 환경을 조성한다.2. 웃음을 통해 조직구성원의 건강한 마음을 만들도록 한다.방법1. 작업현장으로 가기 직전에 서로의 어제 하루 중에서 즐거워 있던 일을 소개하게 하고 웃게 한다.2. 식사시간 이후에 작업현장에 가기 전에도 다 같이 웃는 시간을 마련한다.3. 억지로 웃는 웃음도 엔돌핀이 생성된다고 말하며 웃는 것이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한다.기대효과1. 웃음을 통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게 되어 생산현장의 분위기 역시 좋아진다.2. 웃음을 통해 배려하는 마음을 있다.
    인문/어학| 2008.01.01| 20페이지| 3,500원| 조회(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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