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s of Letter 및 Complimentary Close(영국식과 미국식)2009.03.13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는 바로 영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미 영어는 우리의 일상 속을 파고 들었다. 특히 점점 세계가 단일화되고 국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지금 외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 중에서도 외국 기업과 무역을 하고 경영을 하기 위해서 영어는 필수적이다. 최근에는 전자상거래도 활성화됨에 따라 Speaking 뿐 아니라 Writing 능력 또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또한 국제 거래에 있어서 각종 계약서류나 신용장, 보험증명서 등 중요한 서류들이 영문으로 작성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실무영문서식에 대한 이해도 및 활용능력은 매우 중요하다.이러한 중요성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레터를 작성함에 있어 영어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영국식과 미국식 서식의 특징, 공통점과 차이점, 특히 Forms of Letter와 Complimentary Close에 대해 알아보겠다.먼저 Forms of Letter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각 서신의 형식에는, 각 행의 좌단을 한 단계씩 들어가서 시작하는 “Indented Form”과 좌단을 수직으로 하는 “Block Form”이 있으며, 이 두 가지를 절충한 “Modified Block Form/Semi-Block Form”이 있다. 일반적으로 영국식에는 “Indented Form”을, 미국식에는 “Block Form”을 사용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다음으로 날짜에 대해 알아보자. 영국식은 “13th March, 2009”과 같이 일, 월, 년의 순으로 하며 날짜는 서수로 작성하지만 미국식은 “March 13, 2009”과 같이 월, 일, 년의 순으로 하며 날짜는 기수로 작성한다.영문 서식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Inside Address”이다. 이 것은 한국서신에는 없는 형식으로 서신지 내부에 다시 한 번 수취인의 성명과 주소를 쓰는 것이다. 이 것은 영문서신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단, 주소가 긴 경우에는 적당히 생략할 수 있다. 이 것 역시 “Indented Form”과 “Block Form”으로 구분되지만, 최근에는 “Indented Form”은 자주 사용되지 않는다.마지막으로 “Salutation”은 본문에 앞서 인사를 하는 것으로, 주로 비즈니스 서식에서는 영국식인 “Dear sirs”와 미국식인 “Gentlemen”이 사용된다. 본문을 끝낸 뒤 마지막으로 경의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Complimentary Close”가 있으며 아래와 같이 다양한 표현들을 사용할 수 있다.영국식미국식Faithfully yours,Yours faithfully,Yours very faithfully,Very faithfully yours,Yours truly,Truly yours,Yours very truly,Very truly yours,영미공통Formal, BusinesslikeYours respectively,Less formalSincerely,Yours sincerely,Sincerely yours,Yours very sincerely,InformalBest regards,Warmest regards,위와 같이 “Complimentary Close”에는 다양한 표현이 있으며, 상황에 따라 적절한 표현을 선택하되, 항상 첫 글자는 대문자로 하고 마지막에는 comma를 찍는다. 일반적인 서신이나, 잘 알고 있는 사이인 경우에는 Best regards를 가장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다.앞서 설명한 “Date”, “Inside Address”, “Salutation” 및 “Complimentary Close”는 영문서식의 필수 구성요소이다.
CSR 실패사례와 원인분석2009.03.10이번 윤리경영 강의를 통해 막연하게만 접해오던 CSR이라는 부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고 좀 더 구체적으로 CSR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이번 강의를 통해 알게된 엔론사의 사례와 SK의 분식회계 외에도 윤리경영을 소홀히 하여 어려움을 겪고, 반대로 윤리경영을 생활화하여 어려운 경영환경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성공한 사례도 많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 중에서도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는 미국 최대의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맥도날드의 사례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맥도날드의 소비자 피해사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맥도날드는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한다. 동일한 이슈로, 그것도 같은 지역인 영국에서 성공과 실패 사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서 얻은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같은 현상에 대해 같은 지역의 같은 기업이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대해 어떤 Mind-set을 가지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천양지차의 결과를 가져 오고 기업의 존립에 영향을 줄 정도로 중차대한 문제라는 것이다.동시에 인터넷의 출현으로 고객의 목소리가 거의 실시간에 가까운 엄청난 속도로 확산 될 수 있는 개인 미디어에 대한 이해 부족의 결과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실제 Google에서 라는 단어 검색에 종전에는 Anti-McDonald 사례가 최상위 부분의 검색결과에 위치하였으나 지금 현재 검색 결과 거의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McDonald의 new channel 미디어 대응이 엄청나게 개선 되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그렇다면 우선 맥도날드의 실패 사례에 대하 알아보도록 하겠다.McDonald VS Anti-Mcdonald세계적인 기업이던 맥도날드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그 것은 바로 유럽 지역에서 날이 지날수록 거세지고 있는 反맥도날드 정서 때문이었다. 90년대초 영국의 Helen Steel과 Dave Morris (‘Mc Libel 2’라는 애칭으로 불림)는 런던의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 What’s wrong with Mcdonald’s - Everything they don’t want you to know >라는 맥도날드를 비난하는 내용을 글을 길거리에서 뿌렸다.이를 알게된 맥도날드는 이 두명의 사람을 시범 케이스로하여 단단히 혼을 내주겠다는 의도로 USD 1천만불을 들여 이 둘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가난한 그 들은 소송에 대항할 돈도 없었고 결국 재판에서 맥도날드사에 7만불의 손해 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받으며 패소하였다.하지만 그들은 한 푼도 내지 않았고, 그 이후로 ‘Mc Libel 2’라는 이름으로 313일간에 걸친 영국 최장의 재판을 계속했으며, 결국 맥도날드 입장에서는 심각한 사회적인 저항을 불러 일으키는 대재앙을 스스로 초래한 결과가 되었다.그 결과 맥도날드는, 2005년 2월 최종 재판에서 , , 등의 사유로 패소하였다. 이 것은 모든 이해관계자들과의 원활한 소통과 관계의 질 계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CSR의 기본적인 원칙을 무시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장기적 관점에서 제품의 원료와 기업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옹호하지 않는 세력을 단순히 제거(?)하려고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재앙을 가져온 결과라 할 수 있다.하지만 맥도날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기업이 비우호 소비자를 과감히 포용하는데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던 것이다. 사실 그 동안 유럽은 反맥도날드 정서가 팽배한 지역이었다. 일부 시민단체는 매년 10월 16일을「Anti McDonald Day」로 정해 맥도날드 제품을 안먹는 운동을 벌일 정도였다고 한다. 맥도날드는 자사에 비우호적인 시장분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음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자 한 것이다.그들이 새운 새로운 전략들은 아래와 같다.1. 우선 현지정부가 규제하기 전에 먼저 포장지에 영양분 함량표를 그림으로 자세히 표시함으로써 소비자에게 제품에 대한 정보를 공개했다. 이것은 자신들이 소비자를 기만하고 우롱하는 기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여진다.2. 모든 조리과정에서 트랜스 지방을 사용하지 않기로 선언했다. 맥도날드의 여러 가지 전향적인 변화에 소비자들은 크게 환호했다. 심지어 가장 보수적이던 영국 보건부 장관인 루이스 설리반까지 맥도널드를 칭찬하기에 이른 것이다.3. 40%에 달하던 직영점을 15%로 감축하면서 모든 식품재료에 대해 현지구매 방침을 마련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맥도날드가 현지에서 재료를 구매하자 농민들의 시위가 마법처럼 사라졌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자국 외식산업의 몰락을 우려하는 농민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맥도날드의 전략이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패스트푸드 산업의 침체라는 직격탄을 맞은 맥도날드는 경쟁의 마인드가 아닌 혁신의 마인드를 가짐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고 훨씬 더 탄탄한 사업구조를 갖추게 된 것이다.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CSR이란 한 순간의 이득을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이면서도 모든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순환유동층 연소 기술 개요순환유동층 (Circulating Fluidized Bed) 기존의 기포 유동층에 비하여 높은 유속에서 조업되는 반응기로 고속의 기체와 작은 고체 입자간의 긴밀한 접촉을 통하여 비교적 여러가지 화학적, 물리적 작업을 수행하는 유동층 기술의 한 분야 순환유동층 연소로의 장점 저급, 저열량의 연료를 포함한 다양한 연료의 연소 우수한 고체 혼합특성에서 오는 높은 연소 효율 우수한 기체-고체 접촉을 통한 높은 탈황효과 낮은 연소온도와 단계 연소방식을 통한 낮은 NOx 배출 격렬한 혼합에 의한 전체적인 연소로내 온도 균일성 장기적인 조업능력의 우수성상용 순환유동층 연소로의 연료 주입구석탄 주입구는 1-6 개로 되어 있음 연소로 하부의 단면적이 8 m2 이상 증가시 석탄 주입구 증가배출가스 특성배출가스 특성SO2 발생량은 탈황제를 사용하는 K, S, U 연소로에서는 100 ppm 이하로 배출되며 Ke 연소로에서는 120 ppm 이하로 배출 NOx 발생량은 대부분 150 ppm 이하로 배출 (thermal NOx 의 생성이 적음)온도 분포연소로 하부의 온도는 대략 850 oC 전후에서 운전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석탄의 종류 및 운전의 용이성에 따라 운전 온도가 변함 (S : 800 oC, O : 890 oC, Ke : 870 oC) 석탄 중 작은 입자가 비산되는 경우 loop-seal 및 싸이클론의 온도가 연소로 하부보다 높은 경향을 보임 (H, Ke)CFB 연소로의 문제점마모의 발생 보일러 하부 분산판 수관벽 2차 공기 노즐 연소로 상부 Cyclone 및 Loopseal 국내 상용 보일러 Economizer (tube) Cyclone (wall, roof) Bed burnerCFB 연소로의 문제점Clinker 의 발생 회재 성분의 열적 변화 유동 매질 및 석탄에서의 K2O, Na2O3 의 함량 Dead zone 의 발생 Clinker 의 특성 인자 B/A ratio : 0.4-0.7 에서 용융 가능성 최대 Si/Al ratio : silicate 를 형성하는 정도대처방안마모 방지 대책 (마모에 대한 영향을 고려 설계) 300 mm refractory and Y hook in combustor Thermal spraying of Ni based alloy Sandwich wall structure 국내 사용자들의 대처 방안 연소실내 wall 부착물 및 돌출부 제거 정기적인 tube thick 특정으로 마모부 육성 및 부분교체 Protector 설치 (Erosion screen 설치) 로내 온도관리 : 온도차이 100 oC 이하 유지 Tube 의 수명예측 및 조직 변화상태 진단대처 방안Clinker 발생 방지 대책 회재 분석을 통한 위험인자 파악 Local hot spot 의 파악 및 제거 Limestone 의 영향 파악 국내 사용자들의 대처방안 유동물질의 미립자 함유량 축소 및 석탄의 미분탄 제거 Loopseal clinker : 석탄주입구 변경, 공기유량 증대 Startup : 모래는 입도가 작은 것을 사용, 석탄 투입 주의 정상 운전: 연소로의 온도를 낮게 유지 (과잉공기량 증가) 석탄의 입도분포를 작게 유지{nameOfApplication=Show}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한국현대사산책 : 1950년대 편 1,2권』을 읽고들어가며…1. 강. 준. 만 !!독서간담회의 발제자로 선정된 필자는 2종류의 책 중에서 한 권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일연의 ‘삼국유사’와 강준만의 ‘한국현대사산책’. 강.준.만. 실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때는 대학교 신입생으로 입학했던 1998년이었다. ‘인물과 사상’이라는 그의 책을 리포트 작성을 위하여 참고하다가 나는 그의 통쾌하고 시원한 기존세력에 대한 비판에 몹시도 열광을 하였던 것이다. 그는 입바른 소리를 하였고, 거침없고 진솔한 표현으로 기득권 세력을 씹어 주었다. 그래서 나는 강준만 교수와 말과 사회적 활동을 유심히 지켜보는 관심자가 되었고, 연작으로 꾸준하게 출간된 ‘인물과 사상’의 애독자 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내가 성장을 하고,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글에서 지루함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통쾌했고 시원했던 그의 비판성 높은 글 솜씨 였지만 지치지도 않고 꾸준하고도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그의 호전적 의식은 내 안에서 또 다른 거부감이 자리잡게 하였다. “또 조선일보 나쁘다는 이야기군…그래. 알아. 알아. 그 이야기는 이제 1번만 더 하면 100번째야…”나는 그의 동어반복에 지루함을 느끼게 되었고, 언제부터인가 강준만은 나의 관심 밖으로 물러났다. 그 강준만을 나는 오늘 다시 만났다. 나의 20대를 강준만과 함께 열었는데, 20대를 닫으려는 찰나에 그와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일연의 ‘삼국유사’또한 좋은 책이지만 나는 왕년의 단골집에 설레임을 갖고 다시 찾는 기분으로 강준만의 ‘한국현대사산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2권의 분량이기는 하지만 말이다.2. 강준만은 누구인가?역사라는 것은 누가 어떤 관점에서 보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천양지차다. 따라서 동 책의 저자인 강준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파악 없이 이 책에 대한 본격적인 담론에 들어가는 것은 성급하다. 따라서 간단하게나마 강준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설명하고옹호하였으나, 김대중 정권 중반을 넘어가면서 김대중 정권에 대한 비판의 칼을 ‘인물과 사상’을 통하여 휘두르게 된다. 그 이후에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또한 대통령 당선 훨씬 이전부터 그의 적극적인 옹호에 의하여 힘입은바 크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가 정부부처에서 장관이라도 한 자리 하기 위해서 그런 글들을 써 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어떤 인물의 정치색이나 이념을 판단하여 左右나 중도로 분류할 수 있다면 강준만 교수는 다분히 左쪽으로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極左는 아니며, 따라서 우리는 그의 이런 성향을 기본 전제로 하여 동 저서를 탐독하면 유익할 것이다.3. 왜 50년대인가?6.25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1) 공포감과 순응주의의 내면화 : 전쟁에서 체험한 ‘폭력’이 지금도 사회 곳곳에 잠재해 있으며, 한국인들은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폭력’에 대한 공포는 안전의 욕구를 부추긴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안전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도무지 안심을 할 수 없다. 언제 ‘폭력’이 나와 내 가족을 덮칠지 모르기 때문이다.2) 6.25 심성의 지배를 받는 사회 : 한국인은 아직도 6.25전쟁 시절을 살듯이 ‘죽느냐 사느냐’식의 처절한 삶을 살고 있다. 개화기에서부터 개발독재 체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배층이 한국인으로 하여금 모든 公的 체제 자체에 불신을 갖게끔 만든 것은 물론이고 생존을 위해 私的인 연고와 정실에 의존해야 했던 시절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Ex:각종 줄 만들기 전쟁, 대학입시)3) 1950년대의 두 얼굴 : 대량학살이 있었던 악마의 전쟁인 동시에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발생한 평준화 의식과 상승이동의 기회균등화가 사회 발전에 기여한 면이 있음.4) 진정한 화해를 위하여 : 남북화해. 그리고 그 이전에 이루어야 할 남한 내부의 화해를 위해서도 사람들 사이에 깊이 패인 골의 깊이를 속속들이 아는 것은 중요. (Ex:북한의 미국 증오의 이유, 뿌리깊은 반공주의의 이유)本論I. 6.25 전쟁 직전갑차량 전무, 15일 동안 국방 작전 수행을 위한 보급품만이 있었다.2) 군기 해이6월 24일 육본 정보국이 북의 대규모 병력이 38선에 집결했다는 보고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군 수뇌부는 바로 그 날 비상경계를 해제 군 수뇌부의 오판. 주말이라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병력이 외출.II. 6.25 전쟁 개전1. 이승만 27일 새벽 2시 대전행 특별열차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감2. 정부 수뇌부는 서울을 떠나 피난해 놓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28일 새벽 2시 30분경 한강다리를 폭파3. 서울시민 144만 6천여 명 가운데 인민군에게 점령되기 전에 서울을 빠져 나간 사람은 40만 명이었다. 그 가운데 8할이 월남동포였고 나머지 2할인 8만 명이 정부고관, 우익정객, 군인과 경찰의 가족, 자유주의자들로 추정.III. 6.25 전쟁 와중1. 골육상쟁 : 우파는 좌파의 발끝까지 뿌리뽑으려 했고, 좌파 역시 우파의 씨를 말리려 함. 상대방이야말로 바로 분단과 살육, 전쟁의 이 모든 비극을 초래한 병균이자 원흉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는 인간을 학살하고 집단을 파괴하는 극단주의 행동을 정당화시켜주는 가공할 논리로 연결.2. 노근리 학살 : 1950년 7월 26일 피난민들은 미군의 지시에 따라 경부선 열차의 철로로 승차했다.그 때 미군의 무전연락을 받은 미군 전투기 2대가 나타나 주민들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하였으며 지상의 미군들도 사격. 3박 4일간 미군의 ‘인간사냥’으로 300여명이 죽음.3. 왜 미군은 ‘인간사냥’을 했는가? : 미군은 한국인을 작전에 방해만 되는 귀찮은 존재로만 생각하고 한국인의 목숨을 하찮게 보는 인종 차별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한국민의 비참한 생활상과 들 끊는 거지와 도둑은 그들의 이런 생각을 오히려 당연시 하게 만들었다.4. 상류층의 도덕적 해이 : 정부 고위층과 사회 상류층은 가장 먼저 서울에서 도피하였으며, 전쟁에도 아랑곳없이 갖은 부로 환란을 즐기고 있었음. 반면 이승만 대통령이 가장 먼저 서울을 떠나서 도피하였음에도 그의 서울 사수의 거짓 연간 군사 예산은 50년 150억 달러에서 53년에는 500억 달러로 팽창(미국의 재무장, 서독, 일본의 재무장) / 일본의 경제 발전의 주요한 계기(경제성장률 13%)6. 한국에 대한 영향 :이승만이 예상했던 대로 위기의 이승만 정권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전쟁을 통해 아직 꼴을 갖추지 못했던 국가는 이제 미군의 주둔과 미국의 경제지원으로 군사적, 경제적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고, 전쟁 이전에 이미 마련되었던 반공주의를 더욱 확고한 국가 이념으로 정립할 수 있었다. 전쟁 과정에서 그리고 전쟁 이후에 북한의 김일성은 자신의 정적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게 됨으로써 ‘김일성 유일체제’의 기반을 닦았다.V. 1954년1. 자유당 독재 체제의 구축2. 서구 문물과 외래 사조가 도입되면서 문화적 정체성에 혼란 : 소설 ‘자유부인’ 필화사건.3. 1954년 10월 사사오입 개헌 : 초대 대통령 연임 규정 삽입 (국민의 78.8% 반대)VI. 이 승 만 대통령이승만 때리기 : 1950년대를 이야기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50년대 6.25전쟁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시절이고 50년대를 지배한 이승만 체제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문제는 6.25전쟁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하지만 강준만 교수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다수의 지면을 할애하여 이승만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하기야 한 객체를 선택한 이후에 집중적으로 때리는 것은 강준만 교수의 전투적 글쓰기 방법론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조선일보도 역시 그러했지 않은가? 저서 전체를 통하여 강준만 교수는 이승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이승만은 매카시와 너무나 비슷한 형태를 보인다. ‘매카시즘’이란 “논리적인 이론이나 사실의 근거 없이 정적을 비난하거나 공산주의로 몰아 탄압하는 일”을 의미한다. 1950년 상원의원 재선에 자신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매카시는 국무성 공무원 중 200명 이상의 공산당원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순전히 자기자신의 영웅주의를 위해였을 때 그러한 매도를 당할 만큼의 사람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강준만씨도 1950년대의 묘사에 이해를 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승만을 Targeting으로 선정하였다고 생각한다.VII. 전쟁을 경험하지 않기를…1. 약자의 비극: 6.25 전쟁은 대량 학살의 악순환이었다. 국군은 공비를 토벌한다고 마을에 와서 주민들을 색출해서 북한에 조금이라도 연관된 사람들을 몰살하고, 북한군이 마을을 점령하면 다시 국군에 협력한 사람들이 몰살을 당하고 보복을 당한다. 그 뒤에도 그런 보복의 악 순환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된다. 이 와중에 언제나 죽어나는 것은 순진한 중산층과 일반 국민들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에게는 그 놈이 그 놈인 것이다.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먹을 것을 주면 그 놈이 좋은 것이지 어느 놈이 나라의 권력을 잡건 그들과는 먼 이야기일 따름이었다. 전쟁은 이처럼 권력과 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몰살시킨다. 약자의 비극이 전쟁인 것이다.2. 오판하지 않는 지혜로운 리더가 필요하다: 리더가 판단을 잘못하고, 어리석은 결정을 하면 민족 공동체 전체가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 버린다. 김일성, 이승만을 리더로 세웠던 우리 민족이 경험했던 교훈이다. 자신의 영달이 아니라 정말로 국민을 사랑하고, 정의를 위하여 일을 하는 상황판단의 혜안이 있는 지혜로운 리더가 우리에게는 절실하다. 그는 전쟁을 일으킬 수도, 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3. 국민 개개인의 도덕성의 중요성: 동 저서에 따르면 6.25 전쟁 직전의 남한에는 부패가 상류층부터 하류까지 만연하고, 군 기강의 해이는 말 못할 지경이라고 하였다. 이런 썩은 국민성을 가진 나라를 어느 나라가 우습게 보고 침략을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국민 개개인의 도덕성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마치며…이미 지나간 옛날 이야기인 50년대 전쟁 이야기를 왜 우리는 구체적으로 알아야 하고, 그 당시의 상황을 상상하려고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강준만 교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50년대를 겪지 못한 한국인들은 50년대를 이해하기 위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