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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드스타트 서평
    < 유아 교육과정 >< 헤드스타트 > 를 읽고- 21세기 유아 교육의 전망♦ 과목명: 유아교육과정♦ 교수명:♦ 학과명: 유아교육과♦ 학번:♦ 성명:< 목 차 >Ⅰ. 서 론 – 헤드스타트 연구는 왜 필요한가?Ⅱ. 본 론1. 역사적 배경2. 헤드스타트 프로그램의 정의3. 실시요인4. 주요대상5. 구성요소6. 헤드 스타트의 목적7, 헤드스타트의 사업내용8. 보육교사의 역할 및 자질9. 한국 유아보상교육의 모델 방향 및 국가 정책의 나아갈 방향Ⅲ. 결 론※ 참고문헌 ※Ⅰ. 서 론헤드 스타트는 미국의 저소득층 자녀(유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말한다. 즉, 헤드스타트는 지적, 언어적, 정서적, 사회적으로 뒤떨어진 빈곤 계층의 유아에게 언어적 기회와 다양한 경험과 적절한 행동모델을 제공하여 중류계층 아동의 지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서양의 헤드 스타트를 살펴보면서 우리 나라에는 어떻게 적용되어 왔는지, 또 미래에는 유아교육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키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Ⅱ. 본 론1. 역사적 배경미국은 많은 돈을 투자하고 또, 그 효과로 인해 거둬들이는 이익 또한 많다. 미국은 횡단적 연구와 종단적 연구를 통해, 빈곤층의 자녀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빈곤하게 살아가면서 일으키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조사하였다. 작게는 단기적으로 몇 년 크게는 그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연구를 하였는데, 예를 들자면 빈곤층 아이가 문제를 일으켜 교도소에 가게 되었을 경우, 교도소는 국가의 돈으로 운영되고 있고, 그 빈곤층 아이에게 소요되는 비용과 빈곤층 아이들이 교육을 받아 제대로 된 올바를 사회인이 되었을 때 드는 비용을 연구한 결과 후자쪽이 비용이 덜 들고 국가적 차원에서 이득이라는 연구가 나왔다고 한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방안과 교육 방법(프로그램)등이 제시되었는데, 미국 정부는 1964년 불우 아동에게 가난이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방지하고 교육의 기회균등을 주기 위하여 경제 기회법을 제정하였고, 이 경제 기회법은 경제 기획국을 만들었으며, 이르러 학교생활이 시작되면서 해결되기보다 더 일찍 교육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훨씬 쉽게 경감되며 보상받을 수 있다.③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난 어린이가 혜택 받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 다시 가난하게 사는 즉, 빈곤의 세대세습을 붕괴시키기 위해서는 어린이들에게 교육적 사회적 경험의 기회를 초기에 제공해줌으로써 가능하다.4. 주요대상주요대상은 학생부부, 실업 상태에서 직업훈련을 받거나, 다시 직장에 나가게 된 저소득층 자녀다.5. 구성요소헤드 스타트 프로그램의 구성요소는 교육을 포함한 6가지 주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① 교육, ② 부모참여, ③건강진단, ④ 사회봉사, ⑤ 영양, ⑥ 교사진과 부모들을 위한 진로지도이다. 프로그램은 단기 또는 장기로 분류되고 지역마다 다를 수 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종일제지만 3-4시간 정도 운영되는 것도 있다.6. 헤드 스타트의 목적① 유아의 건강 및 신체적 능력을 증진한다.② 유아의 자신감, 자발성, 호기심, 자율성을 북돋아줌으로써 사회적, 정서적 발달을 도모한다.③ 유아의 사고나 언어 능력에 대해 유의하여 지적 과정과 기술을 고취한다.④ 유아로 하여금 현재나 장래의 학습에 대한 노력과 전체적 발달에 대해 자신감을 갖도록 하여 성공에 대한 기대감을 조성한다.⑤ 가족이나 다른 사람과 적극적인 관계를 갖는 능력을 기르고 동시에 유아 자신과 그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책임지려는 가족의 능력을 강화한다.⑥ 유아와 가족들이 사회에 대해 책임 있는 태도를 갖도록 하고, 그들의 사회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건설적인 기회를 갖도록 한다.⑦ 유아와 그의 가족에게 자기 가치 및 인간 존엄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7. 헤드스타트의 사업내용① 아동의 사회적 발달, 정서 발달, 인지 발달에 도움이 되는 교육경험과 활동 제공② 예방의학 서비스와 치과 진료 서비스 제공③ 신중하게 계획되고 점검된 정기 건강제도에 자동적으로 아동 가입④ 직원으로서, 봉사자로서 부모를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⑤ 동작, 생각, 태도 등 거의 모두를 본뜨고, 닮아 가려 한다. 그러므로 교사의 이 모든 행동은 아동에게 있어서 언어행동의 판단기준이 될 뿐 아니라 아동의 가치, 태도형성에까지 깊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⑤ 의사결정자로서의 역할 - 교사는 매일 매일의 학습활동을 계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해야 하며, 또 활동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갑작스런 아동의 요구에 따라 즉석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유아교사는 교수자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교육기관의 운영이나 정책수립에 있어서도 의사결정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2) 자질① 신체적 건강② 자신의 직업에 대한 애정, 열정, 사명감을 바탕으로 하는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③ 영유아의 여러가지 행동에 대해 인내심과 이해심을 가져야 한다.④ 인간에 대한 기본적 애정을 바탕으로 맑고 맑은 품성과 성격을 갖춰야 한다.⑤ 아동에게 발생되는 모든 상황에 대한 통찰력과 판단력 및 주의력이 있어야 한다.9. 한국 유아보상교육의 모델 방향 및 국가 정책의 나아갈 방향① 유아보상교육은 시기가 중요하므로 될 수 있으면 일찍 실시해야 한다.② 집중의 원리, 학습경험의 직접 제시 원리, 개인차 원리, 장애아 통합의 원리를 반영한다.③ 지능뿐 아니라 사회적, 정서적, 신체적, 언어의 내적 연관의 원리를 적용한다.(전인적인 유아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발달에 보다 유연성을 가진다.)④ 부모를 보조교사로, 집에서 학습돕는자로, 프로그램 보조로, 부모교육등으로 참여시킨다.⑤ 보상교육 프로그램은 광범위한 범위의 이정표들과 각 유아의 행동, 사회화, 교육, 진행과정들이 다르다는 것을 포함한 전형적 발달을 인식해야 한다.⑥ 연령에 적합한 교육과정 개발이 필요하며 취학전 유아를 위한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⑦ 지역과 가정의 필요에 따라 반일제, 종일제 프로그램은 융통성 있게 제공한다.⑧ 포괄적 서비스를 제공한다.⑨ 발달환경 유지가 중요하다.Ⅲ.결론 - 비평하기유아는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는 존재이다. 이것만으로도 유아교육의 중요성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지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이로 인해 유치원 교육과정이 초등학교 교육과정과 유사해 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유아들은 놀이를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생각하며 그들의 흥미와 발달단계에 맞추는 전인적 교육을 받아야 한다. 변화의 속도나 양만이 아니라 그 질마저도 크게 바뀌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 민족이 인성 바르고 창의성 있는 민족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의 교육의 근본인 ‘유아교육’을 재건설 하는 일에 헌신하려는 각오를 가져야 할 것이다. 유아교육의 방향은 누구의 이익추구를 위해서라든지 악으로 발전되어서는 절대 안 되며, 유아를 위한 인권운동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또한 질 높은 교사는 질 높은 프로그램에 필수적이다. 헤드스타트의 실패요인도 교사의 질이 낮고, 교사의 낮은 봉급으로 인한 이직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질 높은 교사를 위해서는 교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직원연수 프로그램 등의 강화가 필요하다. 또한 교사 한명 한명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가장 유아다운 유아교사가 가장 유능한 유아교사다. 가장 유아답다는 것은 유아들의 발달과 심리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유아들의 발달과 심리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유아교사는 유아들의 발달과 심리에 젖어있게 된다. 유아들의 발달과 심리에 젖어있는 유아교사는 유아들의 세계에 초대 받게 된다. 유아들과 대등한 관계에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교사가 되는 것이다. 이는 유아들의 벗이면서도 동시에 선생님이다. 유아들의 세계에 초대 받은 유아교사는 유아들과 하나가 된다. 즉, 유아들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유아교사가 가장 유능한 유아교사다. > 이것은 필자가 유아교육 전공자가 되면서 마음속에 품은 글귀이다. 처음에는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 학생들에 대해 알아야 하고, 자기가 가르치는 과목에 대해서 정확하고 폭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이렇게만 생각해왔다.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교사 자신을 아는 것, 교사로서의 자아 정체성과 소명의식을 가지 확실하게 심어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며, 도덕적인 모범으로 부족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도 갖게 된다. 하지만 교사는 무엇을 완성하여 마침표를 찍은 사람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교사도 여전히 탐구 중이고 보다 나은 진실을 향해 진행 중일 뿐이다. 따라서 교사는 스스로 진리에 대한 탐구와 방향을 잃지 않고 또한 진리로의 용기를 잃지 않을 때, 가장 솔직하고 분명하게 학생들이 진리를 향하게 도울 수 있고 정당한 의문을 품을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는 것 같다.필자에게 주어진 교사는 소명이다. 교사라는 직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초청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학교 공부가 하나님의 영역과 별개의 것이 아니며, 학생으로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알게 하고 싶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땅 한국에서 한 문화를 다음 세대에게 보여주는 사람으로서, 복음을 가지고 다음세대에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배우고 알아가고 사랑하고 섬기고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가르쳐 주는 일이 기독교인이 동시에 유아전공자로서 해야 할 소명의식이라 여겨진다. 오늘도 역시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서 눈을 떼지 않게, 독특한 인격체인 아이들 하나하나를 넘치게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해본다. 하나님 안에서 유아들과 하나인 교사가 되고 싶다.유아교육을 처음 접했을 때 처음엔 쉽고 매우 재미있는 분야로 생각하고 가볍게 대하였다. 그러나 차츰차츰 유아교육에 대해 공부하면서 유아교육이라는 것이 어렵고 복잡하고 난해한 분야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유아교육은 유아기가 아니고서는 절대로 발달시킬 수 없는 여러 가지 발달적 특질이 있는데 이러한 특질을 잘 조장시키는데 그 사명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아교육은 중요하다.우리나라의 유아교육은 아직도 많이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어른들의 이해관계에 우리의 아이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이제는 그 동안의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지 않는 보육정책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사.
    독후감/창작| 2008.01.28| 8페이지| 1,500원| 조회(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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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의 가정을 통해 본 기독교교육
    - 목 차 -I. 서론 -----------------------------------------------p.1II. 본론 -----------------------------------------------p.11. 한나의 이야기 --------------------------------------------p.11) 한나의 이야기2) 한나의 서원 기도와 엘리 대제사장의 축도3) 한나의 기도의 세부적 고찰과 그 의미2. 엘리 가정과의 비교를 통한 교육적 측면에서의 한나 가정의 성공과 실패 -p.61) 한나 가정에서의 교육2) 엘리 가정에서의 교육3) 결과로 살펴본 두 가정의 차이점과 그 의미3. 시사점 및 적용 -------------------------------------------p.91) 시사점2) 적용-기독교 가정의 어머니교육III. 결론 ---------------------------------------------p.11“기도의 어머니 한나”I. 서론“한나의 가정을 선택한 이유”많은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요소를 가정을 통해 이루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지는 가정에 대한 정의를 하려고 노력하고, 어디에선가 그 해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가정이 참으로 행복하고 바람직한 가정인가를 성경에 등장하는 가정을 통해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가 깊은 일이다.우리는 사무엘서에 나오는 ‘한나의 기도’를 통해 바람직한 가정과 가정교육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한나의 기도’에 나오는 가정을 통해 살펴보는 데는 두 가지 특징적인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엘리의 가정이라는 비교 및 대조의 대상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같은 시대 그리고 같은 성경 구절에 등장하는 제사장 엘리의 가정을 통해 상대적으로 한나의 기도와 아들을 바치는 한나의 자세 및 교육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쉽게 부각시킬 수 있다.두 번째는, 바로 가정을 단순히 인간적인 ‘행복’의 도구로 생각하고 그 것을 이루기 위해 참가정의 의미이가 없는 그녀를 괴롭혔기 때문에 불임이 한나에게는 더욱 부담이 되었다.그러나 한나는 자신의 이름에 합당하게 적수인 브닌나의 조소와 비난 속에서도 자제할 줄 알았다. 한나가 스스로를 ‘비탄에 잠긴 여성’이라고 일컬은 것은 당연하다. 남이 잘 되는 것을 조롱하는 ‘질투심’이란 악령이 브닌나를 지배한 반면 한나는 그렇지 않았다. 가장 측근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고통을 당했던 한나는 여자답지 못하거나 보복적인 어떠한 행위도 범하지 않았다. 남편이 한나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려고 했을 때 그것은 그녀의 적수에게 또 다른 모욕과 비난을 유발시켰다. 엘가나가 한나를 사랑했으며 그녀에게 이중의 지위를 부여했다는 사실은 브닌나의 마음에 모욕의 불길을 더 가중시켰을 뿐이다.? 그녀의 기원한나는 아이가 없다고 해서 기도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임신을 하지 못했던 그녀는 여전히 하나님을 믿었으며 그녀의 고통은 기도를 통해 위안을 얻었다. 그녀는 창조주께서 그녀의 모성을 일으키시며 그녀를 대신하여 자연의 섭리에 관여하실 것을 간구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아들을 주신다면 그녀는 하나님의 유일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도록 자신의 아들을 하나님께 바칠 것을 맹세했다. 그녀는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고 그 계약을 지켰다. 그녀는 특별한 자신의 비애를 하나님께 호소했으며 브닌나의 기쁨을 시기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그녀 자신의 고통의 화근을 제거해 주도록 기원했다. 그녀는 자신을 기도에 바쳤으며, 그로인해 그녀의 비애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사라져 버렸다.그녀의 기도는 무엇보다도 특별한 성격의 기원이었다. 그녀의 기도는 내적인 것이었으며 속으로 중얼거리며 기도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마치 술 취한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 말로 이루다 표현할 수 없는 내적 영혼의 간구를 드렸다. 그것은 사사시대에 있어서는 특별한 경험이었다.한나의 경건심은 거의 불모나 다름없는 들에 만개한 꽃과도 같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소망을 들어주셔서 그녀가 열망했던 아이를 보내주셨다리가 한나가 기도하는 오랜 시간 동안 한나에게 계속적인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엘리는 오랜 시간동안 한나의 상태를 지켜보았지만 한나의 상태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영적 무능력이 드러나고 있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한나의 외형적인 모습만을 보고 그녀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알 수 있다. 1:14절에‘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라고 표현되어있는데 이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체로 묵상 기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따라서 소리 없이 울면서 입술만 움직이는 한나의 모습은 엘리 제사장이 오해할 수도 있었다.)그리고 술취함은 이스라엘에 있었던 다양한 종교적 축제들과 관련되어 있었다. 엘리는 눈이 어두워 그녀의 신앙심을 인식하지 못했고 따라서 그의 비난은 잘못된 것 이였다.한나는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 하나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마음이 슬픈’ 이라는 표현은 유동성이 없고 견고하게 굳은 상태를 표현한다. 여기서 엘리의 말대로 술을 마셔서 몸과 마음이 풀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으로 돌처럼 굳어져 있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즉, 한나는 자신이 사방이 막힌 담 안에 감금되어 진 것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한나의 이러한 고백 후 엘리의 축복 기도가 시작된다. (삼상 1:17) ‘평안히 가라’는 의미는 한나에 대한 대제사장 엘리의 오해는 풀렸고, 그는 오히려 한나에게 대제사장의 권위로 축복을 말을 전함을 알 수 있다. 브닌나의 질투심으로 마음이 격동되고 번민되어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던 한나의 마음이 엘리 제사장의 축도로 안정과 평화를 되찾았다. 엘리는 그녀에게 이스라엘 하나님의 축복을 빌었으며, 궁극적으로 한나의 아들 사무엘은 그분의 백성을 인도하게 될 예정이였다. )3) 한나의 기도의 세부적 고찰과 그 의미한나의 노래(삼2:1-10)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도다.용사의 활은 꺾이고넘어진 자는 후 하나님께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계속하여 하나님 앞에 머무는 헌신자의 삶을 살게 하겠다고 하였다. 한나는 ‘젖 떼기까지’ 사무엘을 양육하겠다고 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이가 만 2세가 될 때까지 젖을 먹이며, 때로는 3세까지 먹인다. 그러므로 사무엘을 2, 3세 때에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뜻이다. 사무엘이 젖을 떼자 한나는 사무엘을 데리고 성전에 올라갔다. 사무엘의 헌신을 위하여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올라가서 번제를 드렸다. 한나는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사무엘상 1:28)고 고백하였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사무엘은 2, 3세의 어린 나이에 하나님 앞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성전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성별교육(聖別敎育)을 받았다. )2) 엘리 가정에서의 교육(1) 자기 아들들은 여호와 하나님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엘리 제사장(2)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 교육되어 있지 않은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엘리의 아들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은, 엘리 제사장이 자기 아들들을 여호와 하나님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29절을 보면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기느냐”라는 말씀이 나온다.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교육되어 있지 않은 그들은 아버지의 말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엘리 제사장 역시 듣지 않은 아들들에 대해서 단호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묵인했다. 적당히 얼버무리며 슬쩍 넘긴 것이다. 아들들은 죄를 가볍게 여겼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공동체는 고삐 풀린 망아지들이 뛰어노는 것처럼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비틀거리는 공동체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제사장인 엘리는 여호와의 종인데도 우선순위가 잘못되었고, 두 아들 역시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백성들만큼의 도덕적 수준도 갖추지 못하였다. 아비의 말조차 듣지 않는 불량아였다. 그러기에 역전의 명수이신 하나은 재물을 탐낸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엘리 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죽이며, 사무엘로 하여금 영적 사역을 계승하도록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겼고, 엘리제사장의 두 아들도 죽었으며, 엘리는 언약궤가 빼앗겼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뒤로 넘어져 죽었다(사무엘상 4:18).엘리 제사장의 가정의 범죄는 한 가정의 죄악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 고통을 주었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언약궤를 이방인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까지 하였다. 엘리 가정의 영적 타락은 그의 가정을 비극으로 이끌었다. 제사장인 그가 신앙이나 실천에 있어서 정통적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신앙적 표준 위에 바로 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실패의 나락에 빠지고 말았다.)3. 시사점 및 적용1) 시사점성서에 나타난 어머니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사랑이다. 이사야 49장 15절에는 하나님이 젖먹이는 어머니로 묘사되어 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태어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품이 어머니로 표현된 것은 어머니의 자녀에 대한 생각과 사랑이 하나님의 성품과 비교대상이 될 만큼 깊고도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또 마태복음 7장 9~11절에는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이라는 말씀이 있다. 따라서 이를 통해 어머니는 자녀에게 사랑을 베푸는 자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을 자녀에게 젖을 주고 보살피며, 도움과 위로, 안정과 기쁨을 주는 자로 구체화된다.또한 어머니는 자녀를 가르쳐야 한다. 잠언 1장 8절에는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니 말라”는 구절을 통해 자녀교육의 책임은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에게도 있음을 분명하게 명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요성
    교육학| 2008.01.28| 15페이지| 2,500원| 조회(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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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 과연 옳은 것인가, 아니면 틀린 것인가!* 서론* 본론 Ⅰ. 동성애가 정당화 되어 가고 있는 현실Ⅱ. 동성애의 정의Ⅲ. 동성애가 생기는 원인Ⅳ.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 근거Ⅴ. 동성애에 대한 선교적, 목회적 접근* 결론< 서 론 >기독교 윤리란 기독교적 행위와 그 행위의 표준이 되는 원칙으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방법대로 사는 것이다. 즉, 성경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는 것이다. 인생의 궁극적 의미와 가치, 그리고 삶의 방식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지만, 세상은, 나아가 교회까지도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에서 해답을 찾기를 거부하고 있다.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지, 다른 기독교인이야 어떻게 신앙생활하든지 관심이 없고, 오직 관심의 초점은 나와 나를 둘러싼 현실뿐이라는 무관심과 이기주의로 지금 한국 기독교회는 무너지고 있다. 교회까지도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욕망과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오늘날 현대 문명은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다수 보다는 소수에, 정통보다는 비정통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포스트모더니즘(어떠한 정형화된 틀에서의 일탈을 추구하고 나아가 상대성과 다양성, 해체 후의 혼합을 인정)의 시대를 맞이하였고 성의 대한 담론 역시 영향을 받고 있다. 다양성과 상대성을 인정하는 시대적 조류가 동성간의 문제에도 과도하게 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 내에 동성애 동아리들이 생겨나고 동성애자들이 인터넷상의 모임들이 점점 공개화 되고 있으며, 동성애를 이성애와 동일한 정상적인 하나의 성격 성향으로 인정을 받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논쟁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이와 같이 전에 없이 활발해진 국내의 동성애자들과 그 단체들의 움직임, 그리고 지성인들이 동성애에 대한 인식의 변화 앞에서 한국 교회는 이들을 향한 대비책이 미비하다.이에 기독교인의 입장으로서 신앙적인 관점에서 동성애를 비판하려고 한다. 우선 동성애가 정당화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알아보고, 동성애에 대한 정의 및 그 원인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기독교 윤리적 차원에서 동성 것이다.(3) 무매력설이성에게 인기 없는 사람이 동성애에 빠져들기 쉽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레즈비언 가운데 여성적인 매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 주로 남성 역할을 한다는 사실 등에서 입증되고 있다.(4) 성적 격리설주위에 동성밖에 없는 상태의 생활을 계속하던 중, 동성이 좋아져 동성애에 빠져든다는 것이다.(5) 호르몬 비조화설호모에게는 남성 호르몬이, 레즈비언에게는 여성 호르몬이 부족해 동성연애자가 된다는 것이다.(6) 가정 환경설남자아이를 여자아이처럼 키운다거나 여자아이를 남자처럼 키워, 실제 성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7) 심병설성장과정에서 부자 관계, 부녀 관계 등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해 생긴 심리적인 병이라는 것이다.(8) 도피설남성이 직장이나 가정에서 남자 구실을 제대로 못해 내고, 여성은 여자로서, 아내로서의 엄마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 동성애자가 된다는 설명이다.(9) 자연충돌설동성애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사회가 그것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자가 적은 것이지, 만약 사회가 이를 전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동성애자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10) 유혹설나이 많은 동성애자들이 아이들이나 10대 소년들을 유혹해 동성애에 빠져들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에이즈에 감염된 우리나라 청소년 고백에서도 종종 드러나고 있으며, 동성연애에 빠져든 사람들의 고백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다.동성애 원인론에 관한 생물학적 이론이나 사회 심리학적인 연구들은 어떤 사람이 왜 동성애자인가를 한 두 요인으로만 설명하기 어렵고, 또 한 사람에 대한 설명을 다른 동성애자에게 일반화시킬 수 없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개인적 영향력으로 인한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인간이 외부적이나 내적 영향력에 수동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가이슬러(Norman L.Geisler)의 말은 동성애의 원인에 대한 기독교적이 입장을 잘 설명한다. 『 동성애가 설령 유전적인 성향에서 기인하더라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호하는 자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범죄를 성적인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본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은 멸망의 원인을 '불친철‘로 보는 견해로 자기 지붕 밑에 오는 사람들을 보호해 주려고 했던 가나안 족의 관습에 토대를 두고 있다.동성애 옹호론자들은 롯의 다음과 같은 말이 이 점을 입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들은 내 집에서 들어 왔은 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말라“(창19:8). 그래서 롯은 성난 군중을 만족시키고 자기 집에 온 손님들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두 딸을 내놓았다. 더군다나 이들은 롯의 요구 속에 동성애가 내포되어 있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알다‘(yadha)라는 히브리어는 ‘친숙해지다‘는 것을 뜻할 뿐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주장을 한 대표적인 학자인 베일리는 ) 소돔 사람들이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라고 한 외침 속에서 '알다'라는 의미를 'know'로 규정하고, “우리가 그들을 자세히 알도록“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말한다. 따라서 소돔 사람들이 난폭했던 이유를 롯이 이방에서 온 거주자의 권리를 벗어나서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아직 자격증도 조사받지 않은 두 낯선 사람들을 자신의 마을로 받아들인데 대한 분노”라고 이해한다. 이럴 경우 소돔의 죄는 고대의 환대의 관습을 무시하여 방문객에 대한 홀대로만 보여질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창세기 19:1-11의 소돔과 고모라의 범죄는 ‘동성애‘를 가리키는 분명한 구절임이 확실하다. 우리는 히브리어 ‘알다‘(yadha)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살펴야 할 것이다. 이는‘알다‘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며, 구별하다(distinguish)로, 그리고 남녀 쌍방의 성적인 관계를 뜻하기도 하며, 특별히 남색이나 강간과 같은 성적 도착을 묘사하기도 한다. 이는 전후 문맥을 볼 때‘남색‘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보다 설득력 있어 보이는 것이다.소돔과 고모라 사건을 다루고 있는 창 19:1-11은, 동성애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불친절의름답게 표현하고 있는 성경 구절들이 동성애를 지지한다고 한다. 사무엘상 18 - 20장에서는 다윗과 요나단을 ‘사랑했고‘(18:3), 요나단은 다윗 앞에서 옷을 벗었으며(18:4), 이들 둘은 서로 키스했으며(20:40), 성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얼싸안고 지나치게 울었다“(20:40)는 사실들을 지적하면서 이 구절들은 다윗과 요나단이 동성연애자였음을 보여 준다고 하고 있다.그러나 성경을 잘 살펴보면 그들이 그렇지 않았다는 강력한 증거만이 있다. 다윗이 밧세바에게 사랑을 느꼈다는 사실(삼하11장)은, 그이 성적 지향이 이성과의 사랑이었지 동성과의 사랑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다윗이 수많은 여자들을 아내로 거느렸다는 데서 판단해 볼 때, 그는 이성에 대한 욕망이 너무 강했다고 할 수 있다.요나단에 대한 다윗의 사랑은, 성적인 사랑이었기보다는 우정이었다. 요나단은 다윗 앞에서 입고 있던 옷을 전부 벗은 것이 아니라, 갑옷과 예복만 벗었을 뿐이다(삼상 18:4). 여기서 요나단은 다윗에게 그의 언약의 증표로 입고 있던 겉옷을 다윗에게 주었으며, 이렇게 자신의 군복을 주는 것은 고대에 혈맹관계를 맺을 때 있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키스는 당시의 남자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사법이었다. 또한 다윗과 요나단의 포옹은 그들의 감정이 격함을 말하는 것이지, 이들이 성교를 하며 오르가즘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이처럼 구약에 나타난 관점에서 본다면 결론은 명확하다. 동성애는 왜곡된 것이며(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반대하여), 비도덕적이며(하나님의 명령에 반대하여), 그리고 사형에 해당된다.( 일시적 사망, 사회적 사망, 영원한 사망))(2) 신약성서1) 바울의 동성애 금지 (롬 1 : 26 - 27, 고전 6 : 9 - 10, 딤전 1: 9 - 10)동성애에 반대하는 신약성경 구절들 대부분은 사도 바울에게 기원을 두고 있으나, 사도 바울은 단지 개인적인 견해만을 밝혔을 뿐이라고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주장한다.그러나 바울의 가르침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권창조주인 하나님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성적 결합을 근거로 질서를 부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인 인간이 그 질서를 인정하지 않거나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인간의 교만한 태도는 윤리적인 왜곡과 혼란을 초래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거부하고 인간 스스로 질서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타락한 인간의 죄악인 것이다.또한 동성애 문제는 성의 목적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다. 본래 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질서 안에서 적어도 두 가지의 큰 목적을 가진다.첫 번째로, 성은 결혼이라는 전제 속에서 ‘출산’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출산이 하나님께서 주신 성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말하는 데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겠지만, 출산이 전혀 배제된 결혼과 성관계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성을 주신 목적에 위배되는 것이다.) 또한 출산과 관계없는 성은 땅에 충만 하라는 인류의 보존 의무에도 위배되고 마는 것이다. 사회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성간의 성관계를 통한 재생산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출산과 관계없는 동성애는 성을 허락한 하나님의 의도를 범하는 분명한 죄인 것이다.두 번째로, 성은 결혼한 부부로 하여금 완전한 결합을 추구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정상적인 부부의 결합 행위는 남편과 아내의 상호간의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성경은 성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으로,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이성간의 정상적인 결혼 안에서 성이 귀하게 여겨져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둘이 한 몸을 이룬다는 하나됨의 표현은 육체 뿐 아니라 영혼이 하나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관계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향해 가진 사랑과 교회가 그리스도를 향해 가진 사랑의 완전함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경이로운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의 비밀인 것이다. 남편과 아내라는 말은 당연히 생물학적인 남자와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반드시 결혼은 남성과 여성것이다.
    사회과학| 2008.01.28| 10페이지| 2,500원| 조회(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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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눈으로 자녀를 바라보라-서평
    < REPORT >하나님의 눈으로 자녀를 바라보라.♦ 과목명: 부모교육♦ 교수명:♦ 학과: 유아교육과♦ 학번:♦ 성명:♦ 제출일: 2007. 10. 05♦ 목 차 ♦♣ 서론 – 하나님의 눈은 어떤 눈일까?♣ 본론어린이에 대한 도전2. 수렁에 빠진 아이들3. 해답은 없는가?4. 성경 속의 아이들5. 낙태, 조직적인 유아 살해6. 성경 시대의 가족 규모와 구성7. 성경에 나타난 부모의 책임8. 성경시대의 자녀교육9. 성경에 나타난 성장의 단계10. 성경 가족 안에서 아이들이 맡은 역할11. 예수님의 탄생과 소년 시절12. 예수님과 어린이13. 어린이와 세례, 그리고 구원♣ 결론 – 비평하기하나님의 눈은 어떤 눈일까? 하나님의 눈은 밝은 눈이고, 하나님의 눈은 참는 눈이고, 하나님의 눈은 기다리는 눈이고, 하나님의 눈은 바라는 눈이다. 우리의 고통과 고난을 모두 아시며 우리가 지은 죄들을 하루 빨리 회개하고 참회하도록 참고 기다리고 바라는, 지금 이 순간 순간에도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눈이시다.1. 어린이에 대한 도전제자들은 예수님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것은, 사람들을 가르치신다든가 병을 고치시는 등 다른 중요한 사역들에 비해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는 예수님은 너무 바쁘고 피곤하셔서 어른들 상대하기도 귀찮을 지경이라고 지레 짐작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이들을 무시하거나 싫어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아이들을 사랑하셨으며 함께 있기를 즐기셨고, 어린이들 가운데서 사역 하셨으며, 심지어 어린이들을 소재로 어른들에게 영적인 진리를 가르치셨다. 어린아이처럼 겸손 하라고, 주님을 영접하듯 어린아이를 보살피라 하셨다. 우리는 어린아이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에서 6가지를 중심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① 성경에 수없이 등장하는 어린이들에 대한 이야기 – ‘ 아이 ’ 와 관련된 단어가 2700번 이상이 나오고 어린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말씀으로 가득 차 있다.② 신체적 정서적으로 절실한 어린이의 필요 – 유년기의 필요성을 사랑 것을 부끄러움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낳으려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방법은 단 한가지, 바로 아버지께 간구 하는 것뿐이었다.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성경 속의 아이들에게 참 많은 관심과 사랑을 베푸셨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계획하셨고, 또 그 태 속에서 아이를 조성하시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도우신다. 또한 부모라는 이름 가진 자에게 맡기셔서 이 험한 세상 속에서 홀로 설 수 있는 때까지 도와주신다. 항상 삶 속에서 아이들을 사랑하셨고 돌보셨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태어나기 전부터 그 마지막까지 주님의 도우심을 알고, 그와 함께 주님이 맡기신 보석으로 알고 아이들을 대하고 길러야 할 것이다.5. 낙태, 조직적인 유아 살해성경은 단호하게 낙태를 반대한다. 그것을 보여주는 여섯 가지 사실을 알아보자.첫째, 하나님이 모태에서 태아를 조성하신다. 그러므로 모태에서 이미 인격체로 존재한다.둘째, 하나님께서는 모태에 있을 때부터 소명을 주신다.셋째, 하나님은 태아를 이미 태어난 아이들과 똑같이 여기셨다.넷째, 하나님은 임신을 통하여 죄를 유전시키신다.다섯, 하나님은 태아의 삶을 위해 어른들의 생활을 다그치신다.여섯째,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가 되셨다.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성육신 하셨고 모태에 있을 때 이미 한 인간이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태중에서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모든 이들의 삶을 계획하시고 준비하셨다. 따라서 분명 태아의 조성부터 하나님께서 하신 사역인데 그것을 우리가 마음대로 지우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거역이다.유아 살해에 관한 내용 역시 하나님께서는 단호히 정죄하셨다. 이처럼 낙태와 유아살해는 인간의 생명을 철저히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에 둘 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무서운 죄이다.6. 성경 시대의 가족 규모와 구성성경 시대의 가족은 거의 대가족이었다. 성경 시대의 사람들은 자녀가 많은 것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생각했다. 또 이상적인 자녀 수는 일곱 한다.9. 성경에 나타난 성장의 단계성경에 쓰인 용어들이 앞에서 열거한 단어와 일대일로 정확하게 대응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약 성경 곳곳에서 아이들의 성장 단계를 묘사하는 생생한 단어들을 찾아볼 수 있다.10. 성경 가족 안에서 아이들이 맡은 역할아이들이 해야 할 일에 관하여 성경은 주님을 믿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두 가지 원칙을 가장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함이 삶에 있어 장수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닌 백성으로 끊어지지 않는다 말씀하셨다. 한 사회의 타락을 드러내는 가장 우울한 조짐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불순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순종은 자녀들이 바르게 처신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지켜주며, 지금이든 나중이든 육체적 정신적 손해를 입지 않게 막아주는 동시에, 자신에게 명예가 돌아오게 해주므로 당연히 옳은 일이다.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계명과 같은 맥락으로 젊은이들에게는 아버지, 어머니의 훈계를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가 있다. 자녀가 자랄 동안 부모가 돌봐주는 것처럼, 아이들도 성장한 후에는 연로해진 부모를 보살펴야 한다. 또한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또는 부모를 도와 일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자식 노릇도 쉬운 일은 아니다. 어른들처럼 무슨 일이든 내키는 대로 할 수 없고, 심기 불편한 부모의 꾸지람 쏟아지는 '대상'이 된다는 것 말고도, 아이들은 여러 문제에 부닥친다.편애, 집안 싸움,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 형제 사이의 갈등, 질병, 결혼의 울타리 밖에서 태어난 아이들, 고아 등 참 많은 삶의 문제들이 있다. 우리 크리스천은 이런 아이들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다.11. 예수님의 탄생과 소년 시절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동정녀 탄생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예수님의 경우는 남성이 개입되지 않았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수태했다. 예수님은 남녀의 결합을 통하지 않고 세상에 태어난 유일한 사람이다.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처녀의 몸을 통해 태어날 것이라는 이실 것이라고 장담하는 부류가 있다. 셋째, 갓난아이는 죽자마자 곧 성숙해져서 주님을 믿고 구원받을 기회를 갖게 된다고 설명하는 부류다. 넷째, 일부에서는 하나님이 선택하여 데려가시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죽자마자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다섯째, 어린아이는 ‘세례를 소망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는 설이 있다. 여섯째, 갓난아기는 의지적으로 그리스도를 부정한 일이 없기 때문에 어려서 죽은 아이들은 다 거듭났다고 보는 견해이다. 일곱 번째, 모든 어린아이들이 하늘나라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들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관점이다. 여덟 번째, 갓난아이라도 세례를 받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생긴다는 가설이다.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나이는 사람마다 가지각색이겠지만, 대략 ‘의식적이고 의지적으로 죄를 지을 수 있는 나이’, 그리고 기본적인 복음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을 나이쯤이 될 것이다.아이들이 주님을 영접하도록 초청할 때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반응을 보이는 경우에는 양육이 뒤따라야 한다. 또 크리스천 가정이라 할지라도 아이들이 회심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어야 한다. 아이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해 사랑과 섬세함으로 노력하며,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양육하는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깊고 자애로운 사랑을 나누고 있는 셈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이들은 모두가 소중한 보물이기 때문이다.아이는 하나님의 축복이고 선물이예요!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자녀를 양육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지 않고, 자녀를 하나님의 소유로 생각해서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뤄지도록 헌신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올바른 자녀 양육을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믿는 것처럼 부모들도 자녀들을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독특하고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기에, 부모들은 그런 사실을 믿고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도 안내해야 하는 것 말씀이시다. 어린아이들이 부모 없이는 못살기 때문에 부모를 따르고 의지하듯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그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넷째, 어린 아이를 영접하고, 작은 자와 하나가 되라는 말씀이시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러 오신 분이셨다. 예수님을 가까이하는 큰 사람이라면 이 땅 위에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을 더욱 사랑해야 할 것이다.다섯째, 삶을 돌이키라는 말씀이시다.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는 것이며, 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처럼 작아지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지배가 아닌 섬김으로, 소유가 아닌 존재로, 세상적 가치가 아닌 영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으로 변할 때 천국이 있다.여섯째, 배우고 자라라는 말씀이시다. 어른은 자라질 않고 또 배우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자꾸 자라고 자꾸 배우려 하고 자꾸 먹으려 든다. 우리도 영적으로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여 자꾸 성장 발전해야 한다.하나님은 직접 경험해 보는 사람만이 알 수 있어요!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주일날 빠지지 않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거나 매일 아침 빠지지 않고 가정 예배 혹은 성경 묵상 시간을 갖는 것은 신앙에 이르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는 있어도, 이것이 믿음의 실체는 아니라는 것이다.믿음이란 예배나 말씀 묵상, 기도를 통해 표현되고 힘을 공급받기는 하지만, 그 실체는 일상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과 대화하고 그 분의 인도를 받아 그 분이 이끄는 목표를 향해 경주하는데 있음을 알고 있다.필자의 부모님도 그것을 항상 걱정하셨던 것 같다. 필자와 필자의 오빠가 부모님이 제시하는 기독교의 종교적인 틀을 잘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믿음의 실체와 생명이 잘 확인되지 않기에 때로 마음이 아프고 초조해하시기도 하였다. 오히려 부모님들이 강조하고 제시하는 기독교의 종교적 양식이 우리들에게 하나의 ‘잔소리’처럼 형식화된 딱딱한 껍질을 형성해서 믿음의 실체로 나아가는 것
    독후감/창작| 2008.01.11| 11페이지| 1,500원| 조회(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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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권리협약요약과 시급한해결책
    아동복지 - < 유아교육과 >- UN아동권리 협약(Convention on Rights of the Child) -제 1조 아동의 범위는 특별히 따로 법으로 정하지 않는 한 18세 미만까지로 한다.제 2조 모든 아동은 인종이나 성별, 사회적 신분 등에 따른 어떤 종류의 차별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제 3조 당사국 정부는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제 4조 당사국 정부는 아동의 권리실현을 위해 적절한 행정적, 입법적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제 5조 당사국 정부는 아동의 보호자가 적절한 감독과 지도를 행할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존중한다.제 6조 모든 아동은 생명을 존중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제 7조 모든 아동은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와 부모로부터 양육 받을 권리를 지닌다.제 8조 당사국 정부는 아동의 신분 보장을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법률로써 보장해야 한다.제 9조 모든 아동은 부모와 함께 살 권리를 지니며, 부모와 떨어져 살 경우 부모를 만날 권리를 가진다.제 10조 모든 아동은 부모를 만날 권리가 있다.제 11조 당사국 정부는 아동의 불법해외이송을 막기 위해 협정체결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제 12조 당사국 정부는 모든 아동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에 대해 의견을 말할 권리를 보장한다.제 13조 모든 아동은 표현의 자유를 지니며 모든 종류의 정보와 사상을 접하고, 전달한 권리를 가진다.제 14조 모든 아동을 사상과 양심,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제 15조 모든 아동은 평화로운 결사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제 16조 모든 아동은 사생활과 명예에 있어 위법적인 간섭과 공격을 받지 않을 권리를 지닌다.제 17조 대중 매체는 아동에게 유해한 정보를 지양하고 이익이 되는 정보만을 제공해야 한다.제 18조 부모는 아동 양육에 공동책임을 져야 하며, 당사국 정부는 부모가 지원해 주어야 한다.제 19조 모든 아동은 폭력과 학대, 유기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제 20조 당사국 정부는 가족이 없는 아동에게 양부모나 보호시설 등을 제공해서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제 21조 당사국은 입양을 결정함에 있어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제 22조 당사국 정부는 난민아동이 특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제 23조 당사국은 장애아동이 인격을 존중 받고 자립할 수 있도록 특별한 보호와 교육을 제공한다.제 24조 당사국 정부는 최상의 건강 수준을 누릴 수 있도록 아동에게 적절한 보건서비스를 제공한다.제 25조 당사국 정부는 보호나 치료의 목적으로 아동의 양육 상태를 정기적으로 심사하여야 한다.제 26조 모든 아동은 사회보험을 포함,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제 27조 모든 아동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발달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제 28조 당사국 정부는 모든 아동이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제 29조 교육은 아동의 인격 및 재능, 정신적, 신체적 능력을 최대한 개발하는 방향으로 행해져야 한다.제 30조 소수민족의 아동은 그들 자신의 문화와 종교를 누리고, 고유의 언어를 사용할 권리를 가진다.제 31조 모든 아동은 적절한 휴식과 여가 생활을 즐기며, 문화 예술 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제 32조 모든 아동은 경제적으로 착취당해서는 안되며, 노동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제 33조 당사국 정부는 마약 등의 약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여야 한다.제 34조 당사국 정부는 모든 형태의 성착취와 성폭력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제 35조 당사국 정부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모든 형태의 약취유인이나 매매, 거래를 방지한다.제 36조 당사국 정부는 아동복지에 해가 되는 모든 형태의 착취로부터 아동을 보호하여야 한다.제 37조 모든 아동은 고문이나, 잔혹행위, 위법적인 체포나 구금, 사형 등의 형벌로부터 보호받는다.제 38조 15세 미만의 아동은 군대와 징집되어서는 안되며, 분쟁지역의 아동은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제 39조 아동은 고문, 학대, 폭력 등을 받았을 때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제 40조 아동은 아동의 권리를 존중하는 사법제도 안에서 법적 도움과 공정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제 41조 : 나라의 법이 아동권리협약보다 어린이 권리를 보호하는데 더 좋다면 나라의 법을 따른다.제 42조 : 부모와 청소년들은 이 권리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제 43조 ~ 54조 : 각 나라 정부와 국제기구가 어린이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일들을 설명한다.- 아이들은 모두 동일한 인격체로 소중한 존재이며,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미숙하기 때문에 부모의 보호에서 사랑받으며 자라야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오늘날 아동 학대는 세계적으로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가정에서 학대를 받거나 방임을 당하는 아이들은 자라면서 정상적인 교육이나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지 않아 비행청소년이 되거나, 또는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과 적절한 상호작용을 할 수 없는 미숙한 어른이 되어 사회에도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학대 행위란, '아동에게 가해진 행위로 인하여 아동의 건강 혹은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모든 신체적, 정신적 상해, 성적 행위 및 방임'을 포함한다. 단기간의 급속한 경제 성장과 물질문명의 발달로 계층간의 대립 심화, 성과 도덕의 문란, 가족구조의 붕괴 등 사회와 가족의 문제들이 복잡해지면서 아동의 건강한 양육 환경이 파괴되는 현상을 가져왔다. 이로 인해 가족의 기능과 가족간의 유대감이 약해지고 있으며, 부모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대상으로 아동을 가장 쉽게 선택하고 있다. 이는 자녀에 대한 체벌이 아동 훈육에서 정당화 되는 분위기(일명 체벌은 ‘사랑의 매’라는 것)를 형성해 온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자녀의 양육방식을 부모의 권리로 보아, 자녀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것에 크게 잘못된 인식이 없다는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아동학대가 은폐되기 쉬운 상황이다. 아직까지도 아동학대를 가정 내 문제로 인식하는 편견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대책이 미약하므로 예방과 치료를 위한 제도적, 전문적 서비스 개입이 법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는 것이다. 법적인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은 미흡한 격리보호와 불명확한 절차를 가지고 있어 어려움을 겪으며 아동학대시 행위자에게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뿐이다. 미국은 격리보호에서 벗어나 예방적인 차원으로 가족보존 및 가족통합의 방향으로 전환하였고 학대행위자에게 형사처벌뿐 아니라 부모교육, 정신질환, 약물중독, 치료프로그램, 가족보존서비스 등에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사회과학| 2008.01.11| 3페이지| 1,000원| 조회(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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