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계화가 되면서 국가간 상호의존도가 심화되었는가에 대해서 알아보고, 일방적 의존도는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살펴보자.브라질의 경우,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았을 때 멕시코나 이집트와 같이 높은 상호의존도가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림1참고) 첫 번째 그래프에서 1995년에 상호의존도의 증가 이후 낮아진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상호의존도가 유지되다가 2001년도에 다시 증가를 보이며 그 이후 낮아진 상태로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초기에 비해 소폭의 수치가 증가 되어서 상호의존도가 심화되었음을 볼 수 있다.두 번째 그래프에서 브라질과 한국의 일방적 의존도를 보면 초기에는 한국의 브라질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가 높았으나 2001년도 이후 브라질의 한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음을 볼 수 있다.중국의 경우, 첫 번째 그래프에서 보이듯이 1994년부터 꾸준히 증가하는 형태를 보이다가 1998년도와 2001년도에 낮아졌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후기 2003년도에는 초기에 비해 두 배가 넘는 수치의 증가를 볼 수 있으며, 이는 상호의존도가 심화되었음을 나타낸다. 또한, 중국은 7개국을 통틀어 우리나라와의 상호의존도 수치가 가장 높다.특정시점 - 우리나라 1997년 말에 닥친 IMF경제위기의 시점에서 살펴보면 경제위기의 영향 때문에 1998년을 기준으로 이전까지는 꾸준히 증가하던 수치가 낮아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두 번째 그래프에서 중국과 한국간의 일방적 의존도를 보면 초기부터 후반까지 한국의 중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가 항상 높았음을 볼 수 있으며, 또한 중국의 의존도는 비교적 변화가 완만함에 비해 우리나라의 의존도는 급속히 증가되고 있으며, 전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더 커지는 일방적 의존도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 후기로 갈수록 더 일방적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중국의 저렴한 임금을 이용해 생산된 제품이 국내에 유입되는 양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결과적으로 양국 간 상호의존도의 수치증가와 더불어 일방적 의존도의 증가로 보아 한국과 중국과의 상호의존도 관계의 심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이집트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상호의존성 관계가 가장 취약한 나라이다. 1998년도 비교적 높은 수치 증가를 볼 수 있지만 2002년도까지 계속 하락한다. 2003년에는 더 높아지긴 했으나 초기보다 낮은 상태로 상호의존성이 심화됐다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2003년의 증가 추세로 보아 현재2006년에는 더 높은 수치를 예상할 수도 있을 것 같다.특정시점 - IMF경제위기의 시점에서 살펴보았을 때 1998년의 1997년 두 배에 가까운 수치 증가는 특별한 관계를 지닌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집트와의 무역량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작고, 따라서 상호의존도 관계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낮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을 것 같다.두 번째 그래프에서 한국은 이집트에 대한 의존도가 지속적으로 낮은 반면, 이집트는 변동이 크지만 우리나라에 비해 일방적 의존도가 높다. 결과적으로 1994-2003년의 기간동안에 첫 번째 그래프에서 두 나라간 상호의존도가 낮아졌음을 볼 수 있고, 두 번째 그래프에서는 초기에 비해 후기에 한국의 이집트에 대한 의존도도 낮아졌고, 이집트의 한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도 낮아졌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집트와의 상호의존도는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미국의 경우, 2003년도의 상호의존도 수치가 1994년도 보다 조금 낮은 상태로 3년간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첫 번째 그래프만을 가지고서는 이국 간 상호의존도 관계가 낮아졌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998년의 특정시점에서 상호의존도 수치가 많이 낮아진 것을 확인 할 수 있는데, 수치상 한국의 미국으로의 수출량이 이전에 비해 감소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IMF 경제위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두 번째 그래프를 보면 한국은 미국보다 항상 일방적 의존도가 높고 변동이 큰데 반해 미국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한국의 일방적 의존도 수치가 2003년에 초기에 비해 떨어졌음을 볼 수 있고, 미국 또한 작은 수치지만 일방적 의존도 수치가 떨어졌음을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과 미국의 상호의존도 관계는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일본의 경우, [그림1]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 다음으로 높은 상호의존도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이다. 1998년도와 2001년도의 수치 감소를 제외하면 비교적 꾸준히 증가하는 수치 변화를 볼 수 있는데, 2003년도에는 1994년도에 비해 약1. 5배의 상호의존도 심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때문에 첫 번째 그래프에 의해 양국 간 상호의존도는 증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두 번째 그래프에서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는 큰 변동 없이 일정하게 낮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게 나타나며, 변동이 있다. 자세히 보면, 일방적 의존도 수치가 우리나라는 초기에 비해 2003년에는 소폭 떨어졌지만, 일본은 1994년도에 비해 2003년에는 약간 증가한 상태이다.결과적으로 한국의 일본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가 떨어졌다 하더라도 소폭이고, 상호의존도의 심화가 꽤 큰 수치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 수치도 증가했기 때문에 이것으로 보아 양국간 상호의존도 관계가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멕시코의 경우, 큰 하락이나 큰 증가 없이 비교적 완만한 형태의 그래프를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그래프에서 1994년도에 비해 후기인 2003년에는 상호의존도 수치가 증가 했고 이것으로 보아 양국간의 상호의존도가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두 번째 그래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항상 한나라가 더 우위에 있는 형태를 보였다. 그러나 멕시코는 연도별로 일방적 의존도의 변동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1994년 멕시코와 한국은 동일하게 시작하지만 1998년도 까지 멕시코의 한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가 높게 유지되다가 1998년을 기점으로 한국의 멕시코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가 높아짐을 볼 수 있다. 1998년은 우리나라가 IMF경제위기에 처했을 시기로 수치상 우리나라의 수출액이 크게 감소한 것을 볼 수 있다. 동시에 멕시코가 1998년 이후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액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아 경제 위기로 인해 우리 산업이 경쟁력을 빼앗긴 부분에 멕시코가 우위를 점하여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2003년도에 들어 일방적 의존도가 비슷해져서 앞으로는 멕시코가 우리나라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가 또다시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결과적으로 상호의존도 수치의 증가와 양국 모두의 일방적 의존도의 수치 증가로 보아 상호의존도가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태국의 경우, 상호의존도 수치가 큰 폭의 증가나 감소 없이 비교적 꾸준하고 안정되어있다. 1998년도와 1999년도의 감소를 제외하고는 모두 증가 추세에 있으며, 1994년에 비해 후기 2003년에는 상호의존도 수치가 증가되었음을 볼 수 있다.두 번째 그래프에서 태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가 더 높고 변동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거의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태국의 한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는 초기에 비해 후기에 증가했고, 한국 또한 미세하지만 증가했음을 볼 수 있다.따라서, 상호의존도 관계가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2. 특정시점 - ‘1997년 말 IMF 경제위기’때의 상호의존도에 대해 살펴보자.1998년 우리나라의 국내 총 생산량 수치가 현저히 낮은 것은 경제위기로 겪게 된 어려움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타국에 대한 수치 또한 대부분의 경우 많이 감소했음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기업의 상품 경쟁력이 약해져서 수출능력이 저하되고, 경제위기로 인해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게 된 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런 연유에서 7개의 그래프에서 대부분 1998년도에는 상호의존도 수치가 낮아진 것 같다. 1998년 이후 수출량 수치가 증가한 것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 때문에 인 듯 하다. 경제위기의 영향을 받았는가에 대해서는 상호의존도가 높느냐, 낮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무역량이 다른 나라보다 낮은 이집트의 경우에는 상호의존도도 낮게 되고 그것이 과연 경제위기의 영향을 미칠 만큼이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된다. 1998년도 특정 시점에 있어서 상호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와 우리나라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 높은 나라, 우리나라가 일방적 의존도 높은 나라에 대해서 알아보면, [그림1]에서 볼 수 있듯이 상호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중국이며, 우리나라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아래 [그림2]에서 볼 수 있듯이 태국이며, 우리나라가 일방적 의존도 높은 나라는 [그림3]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이다. 또한 반대로 상호의존도와 우리나라의 타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가 낮은 나라는 이집트이며, 우리나라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가 낮은 나라는 브라질이다. 1번에서 1998년에 대부분 변화가 있음을 보고 나름의 해석을 해보았지만, 경제위기와 관련지어 명쾌한 해석을 하기에는 나의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본다.
1.의의간통죄는 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하거나 그와 상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범죄이다. 본죄의 보호법익에 대해서는 (i) 건전한 성적 풍속으로서의 성도덕(또는 성생활에 관한 선량한 풍속)이라는 견해(다수설), (ii) 성풍속이 아니라 민법이 채택한 일부일처제도로서의 혼인이라는 견해, (iii) 혼인제도에서 유래되는 부부간의 성적 성실의무라는 견해가 있다.본죄는 배우자 있는 자의 간통행위를 처벌하는 신분범이며, 여기의 배우자는 법률상의 배우자를 말한다. 그러나 상간자는 배우자가 있을 필요가 없다.만일 상간자에게도 배우자가 있으면 이른바 이중간통(Doppelehebruch)이 된다.본죄가 성립하기 위해서 행위자는 자기 또는 상대방에게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있어야 한다.인간의 감정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개인 감정의 문제가 법이 간섭할 성질의 것인가?간통죄의 존속으로 가정이 지켜질수 있는가? 간통죄 폐지의 세계화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도 폐지해야 하는가? 에 대한 문제성을 검토해 보고 해결방안을 찾아보자.2.연혁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고조선시대부터 간통죄를 처벌하였고, 특히 여성에 대하여 처벌이 엄격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까지 지속되었다.고려시대에는 당의 영향을 받아 간통죄에서도 당율이 근거를 이루고 있지만, 고려 독자의 율도 또한 발전시켰다. 다만 일반인의 간통에 대해서는 일정한 처벌례를 찾을 수 없다.조선시대에는 대명율이 일반법으로서 적용되었는데, 중국의 법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것은 조선 고유의 법전에서 이를 규정하고 있었다. 대명률은 간통행위에 대해 미혼·기혼을 묻지 않고 남녀를 같게 처벌하였으나 유부녀의 간통은 일반간통보다 일등을 가중하여 처벌하였다. 또한 신분사회적인 특징으로 신분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간통을 일반간통보다 엄격히 처벌하였으며 근친상호간에 대해서도 일반간통보다 엄격히 처벌하였다. 조선 고유의 법전에는 실체규정보다는 절차규정이 많은데, 부녀와 僧尼의 간통에 대한 대명률상의 보호규정을 적용하지 않은 것은 그 예이다.조선시대에는 실제로는 여자의 간통만 처벌하였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법문상으로는 남녀평등처벌을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08년에 형법대전을 개정하면서 일본형법의 예에 따라 유부녀의 간통만 처벌하였다.그 후 일제 식민지기에는 조선형사령에 의해 일본형법이 의용 됨으로써 간통죄는 유부녀의 간통행위만 처벌하는 불평등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형법제정과정에서 애당초 법전편찬위원회에서는 간통죄를 처벌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정부안에서 쌍벌주의로 하기로 하였고, 다시 국회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불벌로 하기로 하였으나 결국 국회 본회의에서 한표 차이로 쌍벌주의가 채택되었다.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간통죄를 폐지했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만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미국의 몇개 주, 그리고 중동의 이슬람 국가만이 간통죄를 고수하고 있다. 반면 덴마크는 지난 30년, 일본은 47년, 독일은 69년, 프랑스는 75년에 간통죄를 폐지했다. 미국은 대다수의 주가 간통죄를 폐지했고 법전에서도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3.요건, 성질간통죄의 존치론1) 간통은 엄연한 법적 위반 행위이다.2) 간통죄 폐지의 세계화 추세는 우리나라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다.간통죄의 폐지론1) 부부간의 정조문제에 국가가 형법으로서 개입하는 것은 지나치다.2) 법의 실효성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3) 법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난 악용 사례가 많다.4.효력간통죄의 존치론간통죄를 존치하자는 주장에 앞서 간통죄의 법적 제재가 자유로운 애정생활을 억압하는 부당한 제도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간통죄는 앞에서 정의했듯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관계를 가졌을 때에 적용되는 범죄이다. 그렇다면 혼인이란 무엇인가? 혼인은 당사자의 성적·심리적·경제적인 결합을 뜻하는 행위로써, 법적으로 승인을 받고 규제를 받는다. 그러므로, 결혼 생활은 개인의 애정생활의 결과이기보다 법적 계약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따라서 간통죄는 국민의 애정생활/사생활을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간에 맺어진 법적/사회적 계약의 무단파기를 단속하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맺은 계약을 무단으로 파기하면 법적으로 제약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듯이, 결혼을 한 사람이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성행위를 가졌을 때 간통죄로 제재 받는 것도 당연하다는 것이다.세상이 빠르게 변하니만큼 우리의 생각도 좀더 개방적이고 진보적이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에 대해서 만큼은 여전히 유교적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성에 대하여 보수적인 관점들을 유지하고 있고 선진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오래된 전통과 가치관을 저버린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며, 성에 대한 다른 문제들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유독 간통죄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된다.그러므로, 간통죄는 세계 추세와는 무관하게 우리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꼭 필요한 제도이다.간통죄의 폐지론간통죄를 폐지하자는 사람들이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는 부부란 남녀의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혼인생활의 유지와 순결의무도 부부상호간에 자발적으로 지켜야 할 일이지 징역형이라는 위협을 통해 지켜져야할 성격의 것이 아닌것이다. 국가가 부부관계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개인의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다분히 있다.간통은 널리 행해지면서도 극히 일부만 처벌되는 암장범죄여서 처벌의 실효성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또 법의 취지가 결혼이라는 제도의 보호를 위해서라면 가정이 파탄나는 여러가지 이유 중 굳이 간통만 형벌로 다스리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 게다가 현행 간통죄 규정은 이혼을 전제로 한다. 이혼소송 소장을 첨부해야만 고소장 접수가 가능하다. 가정의 해체를 마음먹지 않으면 법에 호소할 수 없는 것이다. 여성 보호라는 차원에서 봐도 그 실효성은 의문이다. 간통한 배우자를 고소하겠다는 생각은 일반적으로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훨씬 강하게 드러난다. 더구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어려우므로 이혼을 피하기 위해 여성은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참고 살아가는 일이 많다. 그러므로 간통죄로 발목을 잡힐 확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것이다. 실제로 여성을 위해 존치하자는 것은 명분에 지나치지 않는다.
문화 유적지 답사 : 화순 운주사유난히도 날씨가 좋은 휴일의 오후에 들어 나는 분주했던 채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오월의 햇볕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뜨거웠다. 먼 거리를 좀처럼 나설 기회도 없었고 용기가 없었던 터라 큰 맘 먹고 발걸음을 옮기던 참이었다. 선배에게 묻고 버스 기사 아저씨께 확인까지 한 후에야 마음을 놓고 바깥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의 흐른 후쯤 나는 운주사에 조금 가까워져 있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터널을 지나서 광주를 빠져나가는 기분이란 몹시 낯설고 미묘했다. 운주사로 가는 도중 내내 반쯤 열어 젖혀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상쾌하고 깨끗하다는 생각이 들어, 바깥 풍경도 즐기고 시원하게 스치는 바람도 만끽했다. 묵혀있던 나른함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느낌이랄까.운주사가 조금 특이하고 신비로운 절이라는 것 이외의 별다른 정보가 없이 막무가내로 떠난 내 인생 처음의 답사다운 답사로 인해 왠지 모를 설렘을 안고 고대 하던 운주사 입구에 닿았다. 조금 더 걸어 들어 가다보니 9층 석탑이 장엄한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눈부신 태양 볕 아래 의젓하게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조화를 잘 이뤄내고 있었다. 운주사의 첫 대면은 그렇게 이루어 졌다. 왠지 다른 절과는 눈에 띄게 다른 모습이라고 느낀 것은 탑이나 석불의 위치가 제멋대로였기 때문이 아닐까?잠깐 서서 주위를 쭉 훑어보니 곳곳에 많은 탑과 벽 쪽에는 갖가지 모양을 가진 석불들이 세워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무슨 이름도 모를 석불들을 줄지어 놓은 것일까?종무소를 지나기 전까지 9층 석탑, 그 뒤로 두개의 7층 석탑들과 불상, 연등에 그려져 있던 석조불감 등이 있었다. 멀리 보기엔 같은 모습의 7층 석탑을 두개나 세워 놓은 것 같아 의아한 눈길을 보냈으나, 가까이서 다시 보니 생김생김이 다른 것이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그리고 내 시선을 장악한 것은 광배를 갖춘 불상이었다. 솔직하게 내 생각을 털어놓자면, “불상이구나 ! 좀 특이하긴 한데.. 광배가 무슨 뜻이지?” 였다. 아무리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없었기에 그곳을 관광하던 어떤 이를 붙잡고 조심스레 묻자니, 광배란 것이 일종의 후광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둥글게 표현되었다기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과연 사다리꼴의 판석 주변에 동글동글한 손오공 구름 모양을 연상시키는 것들이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었다.그곳을 지나쳐서 연등 속에서 보았던 석조불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뒤에 내심 반가움에 사진을 찍어대고 뒤를 돌아 다른 석탑을 향해 걸으려던 중에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됐으니, 석조불감 속에는 또 다른 부처님이 있었던 것이다. 돌로 만든 특이한 형태의 불감 안에 두 부처님이 등을 대고 있는 모습이란, 의미심장한 뜻이 있는 것이 아닌지.. 석조불감 또한 세계에서 하나뿐이라고 하니 운주사의 신비로움은 어디까진가 ..원형다층석탑을 지나 드디어 종무소를 앞에 두고 다시 눈길을 끄는 곳이 있었으니 한마디로 돌 뭉치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돌 뭉치가 부처님 얼굴같이 보이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오랜 세월에 몸을 맡기다 이내 생을 다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미완성된 작품인지 궁금증이 사방팔방으로 퍼졌다. 얼핏 보면 무섭게도 생겨 얼른 자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이제 막 종무소를 지나 대웅전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던 중 하얀 꽃 뭉치를 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작은 꽃 여러 개가 모여 큰 꽃을 이루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그 꽃에 관심이 많았나, 꽃 주위에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웅전과 마주보고 있는 지장전을 사진 속에 담고 곧장 더 오르기 시작했더니, 팻말이 나와 따라가 보았다.4층 석탑이 가장 먼저 보였는데 9층 석탑이나 7층 석탑에 비해서 훨씬 길었던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듯 했다. 더 먼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의 매듭을 지어내 본다. 그 주변에 명당탑이 있었는데, 그 모양이 원형다층석탑과 같이 원형으로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내려오는 길에 다시 보니 원형다층석탑은 더 정교한 반면에 명당탑은 훨씬 허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형다층석탑은 명당탑에 비해 단아하면서도 완성된 미를 보이는 반면에 명당탑은 소박하면서 미완성된 미를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두 석탑 모두 내가 예전에 봤었던 것과는 왠지 다른 느낌이었는데, 더 거칠고 아름다움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랄까.다듬어지지 않은 길을 올라서니 마애여래좌상이 있었다. 흘러간 시간 때문이었을까. 표지판 속 사진에 있는 것과는 달리 코만 덜렁 남아있어서 한참을 긴가 민가 바라보고 난 후에서야 그 형체를 더듬어 생각할 수 있었다. 표지판 사진이라도 담아볼까 하여 서성거리던 중에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던 절을 신봉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자하니, 월출산에는 부처님의 모습이 그대로 선명히 남아있다고 한다.공사바위를 향해 올라가려 하니 길이 험한 것 같아 포기하고 돌아서려 하다 결국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를 잘한 것이 공사바위에 오르니 운주사가 한눈에 들어다 보였다. 그리고 다시 내려오는 길에 항아리를 포개놓은 듯한 특이한 모습의 원구형 석탑을 보게 되었다.석불군‘마’를 보게 되었는데 작은 석불부터 시작해서 희한하게 생겨 머리만 있는 것도 보였고 큰 석불도 보였는데 그 머리 부분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시멘트로 때워 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그 길로 내려와서 종각에 들렀다. 종각에서 내 사진을 담아내고 나서 지친 다리를 쉴 겸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와불님 뵈러 가는 길의 길목에 섰다. 날이 더워서 이미 땀이 나기 시작했는데 길기만 한 돌계단을 올려다보니 나서기도 전에 숨이 턱에 차는 것만 같아서 망설였지만, 오랜만에 상쾌한 공기도 마실 기회라 생각하고 올랐다. 조금 가다보니 마당바위가 보였다. 이름에서 유추하듯이 약간 비스듬한 상태로 마당처럼 넓었는데, 그 바위위에다 세운 7층 석탑이 신기했다. 조금 내려가 보니 석불군 ‘바’가 보였는데 여러 석불이 생김생김이 다 달라서 사진으로 담아내고서 다시 와불을 보기 위해서 올라갔다. 마당부처라 써져있는 꽤 큰 석불이 있었는데 안내문도 없고 해서 궁금증을 해결치 못했다. “와불을 모시는 석불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내려와서 안내도를 보니 ‘시위불’이란 것이 있었다. 시위불 이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본적이 없는 걸로 미루어보아 마당부처를 시위불 이라 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만 해볼 뿐이다.이제 와불을 보기 위해 걸음을 빨리 했다. 고대하던 와불을 보았는데, 안내문을 보고서 내가 한말은 “어디가 머리야?” 였다. 세계에서 단 하나뿐이라고 하니 그 독특함과 독창성은 알아줄만 하다. 정말 말 그대로 거대했다. 안내문에서 도선국사가 하루 낮 하루 밤 사이에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며 천불천탑을 조성하던 중 마지막 때에 이르러 닭소리가 나는 바람에 날이 샌 줄 알고 천상의 석공들이 모두 하늘로 가버려 와불만 누운 상태로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와불의 크기나 와불이 바닥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와불은 원래부터 누워있는 상태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왠지 누운 부처가 많이 불편해 보이는 것은 서있어야 할 것이 누워있어야 했기 때문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 주위를 맴돌다 보니, 누운 모습이 불편해 보이는 것은 머리 쪽이 낮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함께 와불을 보기 위해 올라왔던 아저씨 중 한분은 파업을 한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와불 중 하나는 입상이고 다른 하나는 좌상이었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완성된 와불을 볼 수 있었다면 그것 또한 특이한 형태가 아니었을까? 입상의 부처와 좌상의 부처가 붙어있는 모습이 머릿속을 맴돈다.
인간복제 축복인가 재앙인가1)인간복제란 무엇인가?추상적인 의미에서의 인간복제는 어떤 인간과 모든 면, 즉 유전형질뿐 아니라 외모, 성격, 감정, 취미, 능력, 기억 등이 똑같은 인간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나라 설화에 나오는 옹고집이나 자신의 털을 이용해서 분신을 여럿 만드는 서유기의 손오공이 이에 해당한다. 자기 자신과 똑같은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정체성 위기(identitical crisis)-내가 과연 누구인지 혼란스런 상황-를 일으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복제라는 말에 대해 우선 심정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에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인간복제는 생물학적인 인간복제, 즉 한 개체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또다른 개체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개체라고 함은 한 개인, 혹은 배아가 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인간개체복제인간개체복제(human individual cloning)는 한 인간과 유전적으로 동일한 다른 인간을 만드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크게 수정란분할과 체세포핵이식의 두 가지 기술이 있다. 수정란분할법은 수정란이 4-8개의 세포로 분열한 상태에서 각각의 할구(세포)들을 여러 물리, 화학, 생물학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분리해 내는 기술이다. 이렇게 갈라진 세포들은 다시 완전한 개체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각각을 자궁에 착상시킨다면 인공적인 일란성다태아(쌍둥이)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체세포핵이식법은 복제양 돌리를 만드는 데 사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성체의 체세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즉 성체의 체세포핵을 분리해 내어 여러 가지 처리를 거쳐 재프로그래밍 시킨 후 수핵세포질(사람, 혹은 다른 동물의 난자)과 수정시켜 새로 분화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이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킨다면 핵을 떼어낸 성체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새로운 아기가 탄생하게 된다.-인간배아복제인간배아복제는 인간개체복제와 기술적으로는 동일하나 그 목적이 개체를 얻으려는 배아단계로 들어간다. 이때부터 8주째까지는 각종 기관이 형성되는데 이 시기를 배아기(embryonic period)라고 부르며 이후로는 이미 형성된 기관과 신체부위가 자라는 태아기(fetal period)로 넘어간다. 이 배아의 형성과정은 임상의학과 기초 생물학의 발전에 매우 커다란 의미가 있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여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배아기간세포는 알츠하이머, 당뇨병 등 여러 질환을 치료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장기복제한 개의 세포를 이용하여 그 세포가 원래 속해있던 전체 장기를 복제하려는 것은 아직은 꿈에 불과하지만 세포의 역분화 과정이 완전히 이해된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근육이나 연골, 피부와 같은 조직을 체외에서 배양하여 이를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 이식하려는 연구는 현재 진행 중이다. 최근에 성공한 사람 귀 모양의 연골 세포를 쥐에게서 배양한 실험 등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연구에서는 수정란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심각한 윤리적인 문제는 제기되지 않고 있다.2)인간복제의 이점과 문제점*인간복제의 이점첫째, 난자가 없는 여성이나 정자가 없는 남성들도 자신들과 생물학적 혈연관계가 있는 자손을 생산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둘째, 인간복제는 유전병이 자손에게 이어지는 것을 막는 합리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다.셋째, 상당한 시차를 두고 쌍둥이를 만드는 인간 복제는 이식용 장기나 조직을 제공 할 수 있다. 인간복제는 일치하는 장기나 조직을 가진 제공자를 찾아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이식 거부 반응이 일어날 위험을 아예 없애거나 현저하게 줄여줄 것이다.넷째, 인간 복제는 죽은 아이처럼 특별한 의미를 가진 누군가를 복제하도록 할 수 있다.다섯째, 인간 복제는 사회적으로 위대한 재능, 천재성, 인격 등 귀감이 될 만한 품성을 지닌 개인을 복제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여섯째, 인간 복제 및 인간 복제 연구는 사회적으로 인간의 발생과정과 같은 과학지식상의 중요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인간복제에 수반되는 문제점1. 종교, 윤리적 우주의 섭리인 다르마(Dharma)를 파괴하는 행위로 생태계 파괴를 비롯한 엄청난 후유증을 낳을 것이라 생각한다. 윤리적으로는 인간복제가 인간의 존엄성을 대단히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 그 생명과 인격은 절대적으로 고유하며 전 우주에서 유일한 것이라는 사실에 기반을 둔다고 한다면 인간복제의 가능성은 이를 근본에서부터 뒤흔드는 것이다. 물론 복제인간이 원래의 개인과 똑같지 않다는 반론도 가능하지만 지금까지 신성한 것으로 여겨왔던 인간의 생명을 인간이 조작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아울러 인간복제 연구 및 시술 과정에서 수많은 수정란이나 배아가 희생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것 또한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반한다는 주장도 있다.2. 법률적 문제현행 법률상의 가장 큰 문제는 혈연과 가족 공동체에 기반을 둔 법리가 모두 혼란에 빠진다는 것이다. 우선 복제된 인간의 법률적 지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아버지의 복제인간은 내게 형제인가 작은아버지인가, 혹은 아무 것도 아닌가? 이는 혼인과 가족제도에 기반을 둔 현행 법률로는 해결될 수 없는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산 상속과 보험 등 친족제도와 관련된 모든 법률에까지 미친다. 또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자유와 평등권은 인간 종의 단일성과 균질성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복제된 인간이 등장한다면 이 또한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아울러 모자보건법과 형법상의 낙태죄 등 임신 및 출산과 관련된 법규들도 적용이 어려워질 것이다.3. 사회적 문제인간복제가 가능해 진다면 현재 인류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결혼과 가족 제도가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이다. 친족관계가 혼란에 빠질 것은 물론이고 반드시 결혼을 하거나 남녀가 결합하지 않아도 아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게 될 것이며 독신자나 동성애자 커플들도 부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복제기술을 통해 부모가 되려는 이들은 가급적 우수한 유전형질을 가진 아기를 낳으려 할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3)영화와 이야기로 보는 인간복제*The Judges (판사들) : 악인들이 복제된 인간들을 통해 우주 정복을 무모하게 도모하려하지만, 정의로운 사명감과 지혜로 정예화되고 무장된 '판사들'에 의해 무력화된다는 미래 공상과학 영화.*마루타 : 일제침략시 만주에 주둔하던 731부대에 의해 자행된 인간의 생체실험의 비극성을 고발한 영화. 일본 군인들은 2차 대전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만주에서 비밀리에 위장부대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만주인 중국인 한국인 러시아인 등을 붙잡아 생화학, 의학, 세균전 등의 실험용으로 희생하였으며, 이때 실험용으로 제공된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실험용 인간통나무라는 뜻으로 마루타라고 불리워졌다.*D.N.A. : 100년전 영국의 작가 H.G. 웰스의 원작소설 '닥터 모로의 섬'을 각색한 영화(존 프랑켄하이머 감독)로서 어느 한 과학자가 인간의 유전자를 동물에 주입하여 더욱 우수한 생명체를 창조하여다가 결국 자신이 만든 '동물인간'의 파괴적인 본능에 의해 그 꿈이 무너지고 만다는 영화이다. 영화속에 모로 박사는 수차례의 실험 끝에 외모와 지능이 인간과 동물의 중간 단계까지 발달한 동물인간(Beast Man)을 만든다. 그들은 모로 박사를 아버지로 모시며 살아가는데, 실험과정에서 부작용으로 일부 동물인간들이 다시 동물로 돌아가 반란을 일으키고 모로 박사를 살해한다. 이 과정을 지켜보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더글라스가 '다시 의사와 약을 가져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떠나지만, 동물인간들의 반응은 냉담하며, '더 이상 과학자도 실험실도 실험도 필요 없다. 아버지가 만들려고 했던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긴다.*베일 속의 복제인간 ( X 파일) : 세상을 통제하려는 상부조직은 모든 인간을 코드화하는 사업을 비밀리에 시행해 왔으나 FBI 특수요원 (멀더, 스칼리)의 노력으로 저지된다.*파리인간 (FLY) : 어느 과학자가 시공을 초월하여 이동할 수 있는 최첨단 기계를 설비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자신이 그 기계안에 들어구'에서 보관된 정자와 난자와의 기계적인 결합에 의해 인공수정되어 인공임신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수정란의 질에 따라 신분이 5등급으로 분류되며 해야 할 일이 정해진다. 프리섹스가 허용되며 섹스는 인간의 생식과는 무관하며 단지 오락을 위해 행해진다. 알두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에 의해 1928년에 쓰여진 이 작품은 과학만능주의 시대의 도래와 그로 인한 폐단을 예고하고 있다.*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 아이라 레빈이 1976년에 출간한 소설로서 역사적 사실과 생물학적 지식의 바탕에서 인간복제를 소재로 다룬 추리소설이다.독일 나치 정권하에 아우슈비치 수용소에서 악명을 떨치던 멩겔레 박사는 생체실험을 통해 유기체 복제기술(단핵재생기술)을 익힌다. 그는 복제하고자하는 유기체의 세포핵을 핵이 제거된 난세포에 이식시켜 수정시킨후 일정기간 배양하고 대리모의 자궁에 이식시키는 방법으로 히틀러와 유전자가 똑같은 아이들 94명을 만든다. 그는 이 복제된 인간들이 히틀러와 똑같은 성장과정의 환경을 만들고자 아버지의 직업이 공무원, 아내와의 나이차이가 32살이 되는 가정을 찾아 세계 곳곳의 가정에 입양시킨다. 히틀러가 12살 때 즉 그의 아버지가 65세 때에 죽었으므로 복제인간을 입양한 가정에 나치 잔당들은 찾아가 양바버지들을 살해한다. 1974년 이미 18명이 희생되었을 때 이러한 음모를 파헤틴 나치전범추적자 리베르만은 그들의 음모를 좌절시킨다.아이라 레빈이 소설속에서 묘사한 인간 복제방법이 최근 충격을 주고 있는 복제 양 '돌리'와 거의 유사하다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소설속에서 난세포의 핵을 제거할 때 방사선을 사용했는데, '돌리'의 경우엔 전기 충격을 사용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블레이드 러너 : 1982년 리들리 스코트가 감독한 영화로서 복제인간들의 불행한 운명을 그리고 있다. 2019년 제 3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지구는 환경오염과 자원부족에 시달리고 있을 때, 자본가이며 과학자인 타이렐은 복제인간 레프리컨트를 만들어 우주 식민지 개척에 이용한
영화와 소설 속의?서편제?-영화와 소설의 차이점 :)소설은 독자를 [능동적]으로 참여시킨다. 글로만 표현된 작가 개인의 세계를 읽어가면서 자기 자신만의 새로운 공간을 형성시키게 된다.그에 반해 영화는 수용자에게 능동적인 참여를 배제시킴으로써, 일정한 한사람(각본·각색한 사람이나 감독)의 수용으로 창조된 공간이 보여진다. 영화는 시청자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게끔 한다는 말이다.그리고, 영화는 표현함에 있어서 제한을 받기 때문에, 소설속의 실현 불가능한 것들을 영화 속에 모두 구현할 수 없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각종 특수효과의 발전으로 인해서 시각·청각 효과 부분에서는 제한적인 성격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지만 소설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제한된 시간 때문에 힘들다. 수동적 수용과 제한된 시간으로 인해 소설을 완벽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영화는 공포감, 빠른 전개와 함께 나타나는 긴박감과 긴장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소설에서의 서편제 :)전라도 보성읍 밖의 일명 소릿재라는 곳에 위치한 한적한 길목 주막 안에서, 주막집 여인은 초저녁부터 줄창 소리를 뽑아대고, 사내는 그 여인의 소리에 맞추어 끊임없이 어떤 예감 같은 것을 견디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북장단을 잡고 있다. 사내는 소릿재의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 든 것이었다. 여인이 다시 '수궁가' 한 대목을 뽑아 제끼고 났을 때, 사내는 마침내 참을 수가 없어진 듯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소리의 내력에 관해 묻는다. 여인은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반복되는 사내의 추구에 마지못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1956,7년 무렵의 어느 해 가을. 주막집 여인이 잔심부름꾼 노릇으로 끼니를 벌고 있던 읍내 마을의 한 대갓집 사랑채에 소리꾼 부녀가 찾아들었다. 주인어른은 두 부녀를 사랑채 식객으로 들어 앉혀 놓고 그 가을 한 철 동안 톡톡히 두 사람의 소리를 즐기고 지냈다. 그러나 소리꾼 아비는 병세가 악화되자 계집아이를 데리고, 그 집을 나와 소릿재 근처의 빈집에 기거하면서 밤만 되면 소리를 일삼았다. 그런데도 고개 아랫마을 사람들은 그의 소리를 귀찮아하거나 짜증스러워 하기는커녕 까닭 없는 한숨 소리들을 삼키며 자신들의 세상살이까지 덧없어 할 뿐이었다.그 해 겨울 결국 소리꾼 아비가 숨을 거둔 후에도 계집아이는 혼자 오두막을 지키면서 아비를 대신하여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를 보다 못한 주인 어른은 어린 계집아이를 보살피도록 잔심부름꾼 계집 아이(현재의 주막집 여인)와 술청지기 사내를 오두막집으로 보내 술주막을 차리게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주막 집 여인은 소리꾼 계집아이에게 소리를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다.그리고 어느 겨울인가 밤새도록 소리만 하더니 소리꾼 여자는 혼자 집을 나간 채 영영 종적을 감추었다고 하면서 주막 집 여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그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자 사내는 자신도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사내가 어렸을 적 어머니는 사내를 무덤 가 잔디밭에 매어 두고 밭일을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숲 속에서 날만 밝으면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그 소리 임자의 얼굴조차 확인할 수 없는 탓에 소리의 주인이 자신의 머리 위에서 언제나 이글이글 불타 오르는 뜨거운 햇덩이라고 여기었다. 소년은 어머니가 작은 계집 아이를 낳고 세상을 떠나던 날, 비로소 그 소리의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분명히 확인하게 되었다.이윽고 깊은 상념에서 깨어난 사내는 주막집 여인에게 소리꾼 여자의 행방을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은 그 여인의 행방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며 단지 그 여인이 장님이었다는 사실만을 말해 준다. 또한 그 여인이 장님이 된 것은 기실 아비의 탓이라고 말해 준다. 여자의 아비가 잠든 계집의 눈 속에다 청강수(염산)를 몰래 찍어 넣었다는 것이다.소리꾼 여인이 눈을 멀게 된 사연을 듣자 사내는 다시 비정 스런 소리꾼 아비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반추해 낸다. 어미를 잃고 난 소년은 어린 계집아이와 함께 소리꾼 사내를 따라 십여 년을 따라 다녔다. 소리꾼 아비는 소년에게는 북장단을, 계집아이에게는 소리를 가르쳤다. 하지만 소년은 단지 어미를 죽게 만든 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그를 따라 다닐 뿐이었다. 기회만을 노리던 어느 날, 소리꾼 아비가 잠든 사이 소년이 돌멩이 하나를 들고 뒤쪽에서 그를 내리치려 하자, 그는 뒤를 돌아보며 "왜 그러고 있는 거냐?"며 오히려 소년을 나무라는 표정을 지었다. 끝내 소년을 그를 죽이지 못하고 두 사람 곁을 떠나고 말았다.주막 집 여인은 사내가 예전의 그 소년임을 알아채고, 장님이 되어 버린 누이를 다시 찾아 헤매일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사내는 멀리서나마 그 여자 소리라도 한 번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토로한다.-영화에서의 서편제 :)1960년대 초, 어느 산골 주막에 한 30대 남자가 도착한다. 그는 주막 여인의 판소리 한 대목을 들으며 회상에 잠긴다. 어린 시절, 그의 마을에 떠돌이 소리꾼이 찾아든다. 유봉은 동호의 어머니인 과부와 사랑에 빠지고 그들은 함께 마을을 떠난다. 유봉이 데리고 있던 양딸 송화와 함께 네 식구가 살다가 동호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만다. 그 후 유봉은 송화에게는 소리를, 동호에게는 북을 가르치며 유랑생활을 한다. 여러모로 죽이 잘 맞는 소리꾼과 고수로 한 쌍을 이룬 의남매는 유봉과 함께 소리를 팔아먹고 살지만 전쟁으로 궁핍한 세월 속에서 그들의 삶을 점차 어려워진다. 소리를 들어 주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냉대와 멸시 속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던 중 동호는 유봉과 싸우고 떠나버린다. 동호가 떠난 뒤 송화는 소리하기를 거부하고 유봉은 소리의 완성에 집착한 나머지 송화의 눈을 멀게 만든다.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자신에게 그나마 한 가닥 위안은 소리뿐임을 깨달은 송화는 득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피를 토하는 연습에 몰두한다. 세월이 흘러 유봉도 죽고, 눈 먼 송화는 밑바닥 삶을 살아간다. 장성한 동호는 그리움과 자책감으로 송화와 유봉을 찾아다닌다. 천신만고 끝에 남도의 허름한 주막에서 해후한 두 남매는 서로의 신분을 말하지 않고 밤을 지새우며 서로의 그리움과 한을 판소리로 교감한다.-소설과 영화 속에서의 비교·분석 :)소설 '서편제'와 영화 는 다르다. 소설 '서편제'에서 오누이는 만나지 못하지만, 영화에서는 만난다. 전체적으로 소설에서는 여동생 송화가 아버지의 충동적 해악으로 눈이 멀고서 끝까지 처녀의 몸으로 오빠를 기다리다 결국 만나고서 정신적 도피처를 찾아 떠나간다는 이야기였던 것이, 영화속에서는 누나 송화가 아버지의 적극적인 해악으로 눈이 멀고서 술집 주인과 결혼까지 하며 닳아지다가 결국 남동생을 만나고서 정신적 도피처를 찾아 '딸과 함께' 떠나간다는 이야기로 바뀜에 의해, 약간은 비현실적 요소를 띠었던 지순한 송화의 삶에서 현실화되고 실제적인 저변화가 이루어진 송화의 삶으로 굴절되지 않았나 싶다.·신분의 변화 - 소설 속에서 송화는 여동생으로 등장하는 반면 영화 속에서 송화는 누나가 되어 있다.이 청준 작가가 소설에서 묘사했던 그 송화는 밀려드는 운명을 감당해 내지 못하는 여리디 여린 여동생의 모습을 가져서 누군가의 원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지만 임권택 감독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이 송화는 자기를 할퀴는 가혹한 운명의 다가듦 속에서도 꿋꿋하게 서서 심하게 흔들릴지언정 꺾이지를 않는, 오빠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듯 오빠를 만남으로서 그 자신의 존재가 구원을 받았지만 어릴 적 가혹한 아버지에게 자기를 남겨 두고 떠나갔던 이제는 그러한 죄업의 나동생을 구원시키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곱게 기다리는 누나의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이것은 주인공의 신분을 바꿈에 의해 그가 운명에 대해 어떤 태도로 대응하는가를 수정한 것으로 보겠다.·신분의 변화 - 소설의 끝에서 송화는 처녀로 암시되는 반면 영화 속에서 송화는 딸까지 둔 결혼녀이다.소설은 비현실적인 요소를 강하게 내포한다. 그 비현실성을 구축하는 가장 큰 요소가 바로 송화의 처녀성이다. 분명 송화는 근대의 막바지로 접어드는 시대상황 속에서 설 곳을 잃어 술집에서 소리를 하며 술도 따르곤 한다. 가혹하게 말해서 술집작부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데도 상당한 나이를 먹도록 미혼의 처녀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우직한 술집주인의 보호에 의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 '술집주인'의 등장은 오히려 비현실성을 증폭시키는 인자가 된다.이 비현실서은 영화化 과정에서 술집주인과의 부부관계에 의해 제거되었다. ( 물론, 남편은 홀로 남겨진 채 어린 딸까지 길잡이로 세워서 떠나간다는 것이 아직 제대로 된 현실성을 획득하지는 못하였지만.. )이것은 각색 과정에서 송화의 결혼은 'Story속의 인생은 동화 같지 않아야 한다. 주인공의 定意는 현실감을 가져야한다.' 식의 재해석의 삽입인 것 같다. 그리하여 송화는 다소곳이 고통을 곱씹으며 전혀 손상되지 않은 ( 눈에의 커다란 손상은 그 정신의 완벽한 온전성에 대한 기저로서 기능 한다. ) 모습을 간직하던 범접불허의 인물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닮은, 겪을 것은 제대로 다 겪으며 살아가는 관객들 저변의 인물로 변화된다. 이것은 주인공의 신분을 바꿈에 의해 어떤 운명이 그에게 다가드는가를 수정한 것으로 보겠다.·눈이 머는 과정의 변화 - 소설에서 아버지는 잠자고 있는 딸의 곁에 앉았다가 순간적으로 청산가리類를 눈에 찍어 버린 것으로 유도되는 반면 영화 속에서 유봉은 탄약을 다려 먹여 송화의 눈을 멀게 한다.내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코끝을 공격하는 느꺼움에 전율했던 이야기인데, 문제는 송화의 태도이다. 뚜렷이 아픈데도 없는 자신에게 먹이려는 탄약을 좀체로 먹기를 망설이고 몹시 주저하다가 마침내 무언가를 결행하듯 마시게 된다. 점점 눈이 안보이게 되는 속에서도 아버지의 약 다려 먹이기는 계속되고 송화는 약간 체념 띈 얼굴로 약 먹기를 이어간다. 동생의 무책임한 탈출에 이어지는 아버지의 번민과 고통을 대신 지려는, 혹은 동생에의 원망과 소리에의 집념이 그 가슴속에 한을 새기려 하는 여동생 아닌 누나로서의 생각들이 그 약의 이름을 알면서도 먹게 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