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만적입니다.일반부 김정임이슬 머금은 아침이 밝아옵니다.나의 이름은 만적입니다.오랜 시간 세상을 떠나있었지만 나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참으로 기쁘게 이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늦은 밤 내 절친한 죽마고우가 찾아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그대들에게 전해주고픈 말이 없냐며 묻더이다. 그 말을 듣고 참으로 더딘 밤을 보냈습니다. 너무나 해주고픈 말이 많으나 또 무슨 말을 어찌 시작할지 모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귀족도 아닌 내게, 시대에 반기를 든 내게, 그대들에게 이런 말을 해줄 자격이 있을까 한참을 생각했습니다.허나, 나는 내가 한일이 그르다 생각지 않기에 기쁜 마음으로 그대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하기로 했습니다.나는 반란을 일으킨 자였습니다. 하늘과 땅보다 더하게 신분이 나뉘어져 있던 그때 천하디 천하게만 취급받던 나는 노비였습니다.어느 날 나는 궁금했습니다.어찌하여 왜, 우리 노비들만이 근골을 수고롭게 하며 매질 밑에서 곤욕을 당해야만 하는가.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이 세상을 살아가거늘 누구는 왕이 되고 누구는 노비로 태어나 글자 하나 마음대로 배울 수 없는 이 세상에 물음이 생겼습니다. 나는 끊임없이 나에게, 세상에게 물음을 던졌고 그 물음이 허공을 메아리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대답을 얻었습니다.꿈을 꾸겠노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듯 누구나가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하지만 나는 실패하였습니다.반란이라 불리나, 신명나게 한번 놀아보지도 못하고 실패하였습니다.나의 동지들, 나의 가족들의 죽음을 그저 지켜만 보아야했습니다.억울하지 않느냐구요? 밀고한 자를 찢어 죽여도 시원찮지 않냐구요?아니요, 아닙니다. 억울하지도 그자가 밉지도 않습니다.그 또한 역사의 흐름인 것을요, 나의 사명이 거기까지였을 뿐입니다.나는 나의 물음에 대답을 얻었고 그 대답의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렇기에조금 아쉽기는 하나 억울하지 않습니다.나로 인해 세상 사람들은 천한 노비에게도 그들의 생각이, 그들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테죠.또 다시 똑같은 순간이 온다하여도 나는 봉기할 것입니다. 실패가 두렵지 않기 때문입니다.지금 그대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가요?듣자하니 신분이라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왕도, 귀족도, 평민도, 노예도 없다지요? 그럼 참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닙니까.그대들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아니면 혹여 보이지 않는 차별이, 신분제도가 존재합니까?그렇다 생각이 든다면 나처럼 그대들이 또 다른 만적이 되어 주십시오.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지 말고 세상을 향해 물으세요.이 천하디 천한 노비 만적도 해낸 일입니다.내가 그리 하였던 것처럼, 끊임없는 물음을 세상에 던지고 자신에게도 질문하세요. ‘지금이 좋은 세상입니까’라고 말입니다.“왜” 라는 질문에 대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그대들이 할 일입니다.역사는 단 한사람의 영웅이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1. 서론2001년, 2005년에 이어 또 다시 한번 일본 교과서 왜곡 문제가 한일 양국 외교관계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4월 9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일본 내 극우단체인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새역모와 출판사인 '지유샤'가 공동 집필한 왜곡 투성이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심사해 통과시켰다. 내년 신학기부터 일본 내 각 중학교 역사 교과서로 사용하게 될 이 교과서는 한일 양국 간 역사 갈등의 주요 현안이 되어 온 후쇼샤판 교과서와 내용과 시각이 대동소이한 것으로 분석됐다.이에 우리 정부는 즉각 일본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근본적인 시정을 촉구한 상황이다.일본 교과서 왜곡 문제2. 본론 - 교과서 왜곡 사례(1) 지유샤 교과서1) 간토지진, ‘조선인학살’ 軍ㆍ警 참여배제“조선인과 사회주의자 사이에 불온한 계획이 있다’는 소문이 퍼져 주민의 자경단 등이 조선인과 그것으로 오인 받은 중국인, 일본인을 살해하고, 군인이 독단으로 사회주의자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 지유샤판 역사 교과서 내 각주1923년 일본 간토대지진 당시 있었던 ‘조선인 학살 사건’에서 조선인 학살에 자경단만이 참여하고, 군과 경찰이 학살에 대규모로 참여한 사실은 배제했으며, 군이 사회주의자만을 살해한 것으로 사실과 다르게 기술돼 있다. 또한 일본인도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게재해 학살 만행 사실을 희석화한 것으로 해석된다는 의견이 있으며, 당시 학살 사건에 대한 내용을 교과서 본문이 아닌 각주에서 다뤄 사건을 경량화하고 덮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2) 임진왜란, ‘자위권 보호차원’ 전쟁미화“일본이 느낀 위협은 중세가 돼 원구(元寇ㆍ원나라 병사ㆍ13세기 몽고족의 일본 침공 시도를 의미)에 의해 현실화됐다. 이때 공포의 기억은 일본인 사이에서 길게 전해져왔다. 반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반도에 병사를 보낸 적도 있었다.”지유샤판 교과서는 16세기 말 임진왜란을 다룬 ‘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치’라는 단원에서 ‘조선 출병’이라는 표현을 써 침략의 본질을 회피하고, 히데요시각시켰다. 또한, 일본의 조선 침략이 마치 자위를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단순히 조선반도에 병사를 보낸 것으로만 치부하고 있다.3) 독립운동, 근대화에 대한 항거로 격하∞ “일본은 조선 개국 이후, 조선의 근대화를 원조했다”∞“토지조사사업 등 이들 근대화사업에 의해 그때까지의 경작지로부터 쫓겨난 농민도 적지 않았고, 또한 일본어 교육 등 동화 정책이 진행됐기 때문에 조선 사람들의 일본에대한 반감이 더욱 강해졌다”이러한 표현은 조선의 근대화가 일본 덕이라는 내용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그리고 ‘근대화=식민지 지배’라는 사실을 부각함과 동시에 독립운동을 근대화에 대한 저항으로 격하시켜 놓았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사실상 근대화로 격상시켰다는 의혹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4) 그 외 주요 왜곡 내용① 한국사의 주체성 부정 및 격하- 동아시아에서 일본만이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고 주장- 조선을 식민지 시대 용어인 이씨조선으로 표기- 조선통신사를 일본 쇼군 축하 사절단으로 격하시켜 기술② 한국 침략의 정당화와 식민지배 합리화- 강화도 사건의 도발 주체, 목적, 경위를 은폐해 침략 희석- 구미 열강의 무력 위험에 대한 조선의 인식. 대응을 폄하 기술- 한국 강제병합의 강제성 및 침략의도 은폐③ 침략 전쟁 미화- 러일전쟁, 대동아 전쟁을 피압박 민족의 해방으로 미화 기술- 조선에서의 징용, 징병 등의 강제성을 불분명하게 기술- 강제 동원된 군대 위안부 미기술(2) 후쇼샤(扶桑社) 교과서역사왜곡 교과서의 대표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후소샤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많은 부분이 일본에게 불리한 내용은 누락시키고 일본사를 우월하고 발전된 것으로 보는 역사관에 입각하여 서술되어 있다. 특히 근현대 부부에서 일본의 대외침략을 정당화하는 내용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되지만 이점은 전근대 부분에도 그대로 적용 되고 있다.1) 제 1장 원시와 고대일본 - 조선반도 동향과 일본(37쪽)① 고구려는 반도 남부의 신라와 백제를 압박하고 있었다. 백제는 야마토 조정에 구원을 앙청.② 본래 일본 열도 사람들은 철 자원을 구하려고 조선반도 남부와 교류하고 있었다. 이에 4세기 후반 야마토 조정은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출병하였다. 야마토 조정은 반도 남주의 임나라는 지역에 거점을 둔 것으로 여겨진다.① 여기서 유념해야 될 것은 4세기 당시 왜가 한반도 남부에서 활동한 것은 왜가 백제나 가야에 의해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세력이었기 때문이지 결코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설사 4~6세기 당시 왜가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왜의 한반도 출병이 곧 군사정벌을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백제에서 군사를 요청한 사실을 “우러러 청했다” 고 한 것은 지나치게 왜의 세력을 높게 평가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② 본문 내용상 백제 요청으로 왜병이 출병하였다면 그 지역이 백제 지역이여야지 가야 지역이 되는 것 또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광개토왕비에 보면 4세기 이후 한반도에서 활동한 왜는 일정한 거점을 두지 않고 단지 용병으로 활동했음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4세기 이후 왜인들은 야마토 조정의 통제 없이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약탈행위를 일삼고 있음이 등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4세기 후반에 야마토 조정이 통일된 국가를 수립한 것 자체가 학계에서 부정되고 있으며 또한 왜가 군사적 정복에 의해 지배기구로 임나일본부를 형성시킨 것도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일본 측 검토 결과) 일본 학계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지지하지 않고 있으나 한반도 남부 가야제국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왜의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은 폭넓게 인정하고 있음. 본 기술은 임나일본부를 명기하고 있지 않고 또한 “ 거점을 둔 것으로 여겨진다.”고 하여 단정적 표현을 피하고 있으므로 명백한 오류라고 할 수 없다.2) 제 1장 원시와 고대일본 - 조공(38쪽)고구려는 백제 수도 한성을 빼앗고 남부를 석권하였다. 그러나 백제와 임나를 지반으로 한 일본군 저항에 부딪혀 정복은 이루지 못하였다.문장 자체가 일본군이 백제와 임나를 지배하고 있었고 고구려와 대립본인 것처럼 서술 한 것은 명백한 오류다. 백제 땅이나 어떤 정치적 권리가 있는 왜군이 상설적으로 주둔한 사실은 없으며 또 광개토왕 비문에 의하면 왜군은 고구려군이 가는 곳마다 패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 측 검토결과) 일본 학계에서는 4~5세기에 왜가 한반도에서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와 싸웠다는 것이 폭넓게 인정되고 있음. 또한 “지반으로 하였다”는 기술이 “상설적인 주둔”을 의미하지는 않음.3) 러일 전쟁 -검정 신청본 243쪽일? 러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에 따라 중국이나 조선 등 아시아 제국은 근대 국가를 목표로 하는 내셔널리즘에 비로소 눈떴다. 한편 일본은 구미열강의 일원이 되어 힘의 균형이라는 새로운 질서에 편입되었다. 일본은 대국으로서 의무와 협약으로 나아가는 이외의 어떠한 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러한 국제정치에서의 일본의 고통을 당시 중국인이나 조선인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일본인도 중국인이나 조선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마음을 점차 잃어버리기 시작했다.당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중국으로 세력 확대를 꾀한 것은 대국으로서 다른 대국과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고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인데 이를 중국인이나 조선인은 이해해주지 못했다는 식의 서술이다. 물론 일본인이 중국인, 조선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 점도 언급하였으나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침략하고 식민지화하는 것이 상호 이해 부족에 기인한 쌍방과실의 문제인지 그것도 침략의 주체가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 의문이다.4) 독도 관련 서술2005년 검정 통과본 역사교과서의 영토 관련 기술에서 무엇보다도 특징적인 것은 독도 문제뿐만 아니라, 일본이 자신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는 지역에 대해 보다 강경한 표현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후쇼샤의 경우, 2001년 교과서에는 본문에 ‘다케시마는 역사적으로 일본 고유의 영토’였던 표현이 2005년도에는 ‘다케시마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표현으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2001년도에는 없었던 독도 사보에 사진으로 게재하고 그 설명도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바뀌었다.후쇼샤의 독도관련 기술2001년2005년 검정 신청본검정 통과본 독도 관련 사진 없음(사진)중국, 타이완, 우리나라가 각기 영유를 주장하고 있는 센카쿠 제도.한국과 우리나라가 영유권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는 다케시마(사진)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이지만, 중국이 영유를 주장하고 있는 센카쿠 제도 및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다케시마 ‘우리나라도 근린제국과의 사이에 영토문제를 안고 있다. 구나시리, 에토로후. 시코탄, 하보마이의 북방영토, 일본해 해상의 다케시마, 동 지나해 상의 센카쿠 제도에 대해서는 각각 러시아, 한국, 중국이 그 영유를 주장하고 일부를 지배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아서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이다’ 일본 주권 범위 지도 속에 ‘북방영토’, 센카쿠 제도와 함께 독도를 일본 주권 범위에 포함 우리나라도 근린제국과의 사이에 영토문제를 안고 있다. 구나시리, 에토로후. 시코탄, 하보마이의 북방영토, 일본해상의 다케시마, 동지나해상의 센카쿠 쇼토에 대해서는 각각 러시아, 한국, 중국이 그 영유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들 영토는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이다’일본 주권 범위 지도 속에 ‘북방영토’, 센카쿠 제도와 함께 독도를 일본 주권 범위에 포함3. 결론 - 나의 생각일본은 약 20년 전인 1982년에도 한일관계를 왜곡한 교과서를 만들어 배포하려고 시도한 바 있었다. 그때는 한국을 비롯한 이웃나라들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일본 정부는 왜곡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0년대에 들어와 새역모의 주도아래 훨씬 조직적이고 강도 높은 교과서 왜곡이 시작되었다. 바로 후쇼사 교과서였다.새역모는 1997년 1월 ‘일본군 위안부, 남경대학살 등 있지도 않았던 사실을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결성된 단체로, 2001년 후지·산케이 그룹 계열의 후쇼샤를 통해 ‘새역사교과서’를 발행했다. 그러나 중고교에서의 채택률은 0.039조했다.
교사관새로운 세기로 접어든 세계는 지금 산업 사회의 패러다임을 접고 정보와 지식이 고부가가치의 원천이 되는 ‘지식경제’로 문명사적 대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들이 창출되고 있으며 그 만큼 교육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오늘 날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교육의 불안한 현실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교육이 흔들리는 이유는 가정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자주 바뀌는 학교 정책에 아이들이 제대로 된 방향을 잡기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육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의 씨앗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피우듯이 교육에 의해 완성된다.라는 책에 따르면 ‘ 十年樹木百年樹人’ 이라는 말이 있다. 십년을 보고 나무를 심고 백년을 보고 사람을 가르치라는 뜻으로 교육은 나라의 백년을 설계하는 거창한 사업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만큼 철저하게 준비된 계획을 바탕으로 준비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올바른 교육이 서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은 거창한 정책도, 좋은 학교 시설도 아니다. 바로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가 준비된 사람이어야 한다.교사(敎師)라는 단어를 보면 교(敎)는 본받을, 가르칠, 훈계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고, 사(師)는 스승, 선생님, 본받을 어른, 벼슬이름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교사는 본을 보임으로써 가르치는 어른 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국어사전에도 교사의 첫 번째 의미를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정의되고 있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만 가지의 직업 중에서 남을 가르침으로써 돕는 일을 하는 직업이 교사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준비된 사람이어야 한다.교사는 어떠한 사람이어야 할까? 어떤 마음으로 학생을 대하여야 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이미 교육이 시작되면서부터 고민되어온 원초적인 것이다. 교육학 책을 빼곡히 수놓고 있는 수많은 학자들이 저마다 자신의 교사관, 교육관을 내세우며 가장 올바른 교사의 상을 내세우고자 하였다. 올바른 그리고 준비된 교사는 어떤 사람일까?첫째, 본보기가 되는 교사이다. “교사가 하는 말이 학생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 알고 있는가?” 나는 얼마 전 읽은 라는 책에서 이런 글귀를 보게 되었다. 교사와 학생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존재이므로 교사의 말과 행동은 학생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정보를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 학생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교사의 수업방식이나 말투, 행동 등 아직 많은 것을 터득하지 못하고 경험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교사의 신중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학생은 자신감과 의욕을 가질 수도 있고, 좌절과 고뇌를 가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올바른 말과 행동을 가져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한다. 교사는 단지 돈을 벌기위해 아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고 자신이 학생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고 진보하게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사는 학생이 본받아야할 존재이므로 성리학에서는 스승에게서 교육내용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스승을 배우는 것을 교육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또한과거 성균관이나 향교에서 문묘나 사우를 설치하여 공자나 뛰어난 성인들을 모셨던 것도 그들이 비록 죽은 사람이긴 하나 도덕적으로, 학문적으로 본받을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둘째, 교사가 학생들을 대할 때 중요한 것은 머릿속에서 달달 외운 이론이 아니라 기술 속에 배어나는 태도이다. 우리는 이론적으로는 좋은 교육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불행히도 이론만으로는 학생들을 교육할 수가 없다. 학생들을 줄기차게 문제를 일으키고, 사소한 일에 흥분하며, 갑작스럽게 일을 벌이기도 한다. 이처럼 숨 돌릴 사이 없이 일어나는 위기의 상황들을 효과적이고 인격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에게 노련한 기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교사의 반응에 따라 교실의 분위기가 결정되고, 학생의 행동과 성격이 만족이나 불만 쪽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셋째, 미성숙한 학생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교사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여야만 한다. 또한 교사들은 자신을 믿어야 한다. 교직 생활에 대해 끝없는 낭떠러지 위에 서있는 것 같다면 그 해결책을 밖에서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답은 교육 그 자체 안에 있다. ‘교실안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교사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그 답을 찾는 시작이며,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첫 발걸음이다.넷째, 교사는 전문 직업인이기는 하지만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적절한 행동을 보여주어야 하며 그 태도는 긍정적이어야 한다. 학생들에 대해 사려 깊은 반응을 보이며, 결코 충동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 교사가 날마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각가지 상황에서 적절치 못한 말과 행동으로 대응했을 때는 자신이 아닌 학생들이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학생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학생이 대답하는데 늦었다고 해서 교사가 학생을 비꼬는 말을 하는 것은 비교육적이다. 느린 학생에게 비꼬는 말을 한다고 하여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 학생이 대답을 못하는 곤란한 상황일수록 재촉하기 보다는 “ 결정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지? 조금 더 생각해보고 대답해볼까?”라는 식의 말로써 학생의 결정을 유도해 내는 것이 좋다.마지막으로 교사는 자신의 화를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기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가능한 그런 일은 피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으로 하여금 교사야말로 내가 당한 일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여야 된다. 교사는 자신의 페이스를 잃어서도 안 된다. 비록 화가 나더라도, 학생들을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된다. 교사는 외과 의사와 같기 때문에 그의 메스를 함부로 사용한다면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가 남아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성적을 상담하러 간 친구가 있었다. 지원하고자 하는 학교를 적어 상담하는 것이었는데 이 학생은 자신의 성적보다 높은 곳을 지원하고자 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올라가지도 못할 나무는 보지도 않는 게 좋다고 하였다. 노력이나 하고 이런 학교 이름을 가지고 오라는 말과 함께. 두 번째 상담이 되었을 때 이 학생은 지난번의 기억으로 자신의 성적보다 낮은 학교를 지원했다. 이번에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하셨다. 너처럼 평범한 아이들은 꿈을 가지지를 못한다고. 이 경험은 실제 내가 학창시절에 나의 친구가 겪은 일이다. 이 일로 친구는 깊은 상처를 받아 그 뒤로 선생님을 따로 찾아뵙지도 않았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게 되었다. 교사의 말 한마디에 얼마나 가슴 깊숙이 상처가 생겼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학창 시절 내가 가장 싫어하고 멀리했던 선생님들은 권위주의적이고, 학생들을 편애하고, 학생의 인격과 자존심을 서슴없이 건드리는 말을 하는 분들이었다. 물론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다. 그것은 교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교사는 완벽해지기 위하여 항상 노력해야 하는 존재이다. 학생들이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그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배워나가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1. 서론얼마 전 찾은 국립 중앙 박물관의 한켠에 모사본이 있었다. 거대한 위엄을 자랑하는 이 지도를 마주보고 서서 나는 한참 동안을 움직일 수 없었다.지도 한 가운데는 그 위엄을 나타내려는 듯 거대한 중국이, 소중화 의식에 사로잡혀있었던 조선은 중국의 바로 옆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렇다면 일본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지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지만 일본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일본은 너무나 작게, 마치 동남아시아의 한나라인 것처럼 원래 자리를 벗어나 남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관한 최초의 중국 역사서 에 따르면 일본의 명칭은 왜였다. 倭라는 것은 작고, 순하다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명칭은 조선인들에게 하나의 고정관념으로 작용하였다. 왜라는 어휘에 사로잡힌 조선인들의 눈에는 일본과 일본인들은 언제나 한 수 아래로 투영되었고 조선에 비길 수 없는 아주 작은 보잘 것 없는 나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이러한 생각은 비단 조선인 뿐만은 아니었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나 또한 그러했다. 처음 내가 세계 지도를 보았을 때 무척 놀랐던 점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국토면적이 크다는 사실이었다. 언제나 왜로 기억되던 명칭하나에서 시작된 논리적 비약이 나의 머릿속에 일본은 하염없이 작은 나라로 만들었던 것이다.그런데 근대에 들어와 우리나라는 그렇게 얕잡아 보던 일본에 의해 35년간 치욕적인 식민지 통치를 겪게 되었다. 일제강점기하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월감과 열등감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지니게 되었고 지금 현재에도 이러한 의식 속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다.식민지 통치를 직접 겪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한일전에서는 꼭 이겨야만 하고 일본은 왠지 모르게 싫은 감정이 드는 나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우리는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일본은 정말 보잘 것 없는 나라일까?이러한 나의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줄 수 있는 책이 나에게는 필요하였다. 교수님께서 내주신 일본과 관련된 수많은 책들 중 것일까. 책을 펼치기도 전 수많은 질문이 허공을 메아리 쳤다.2. 본론일본은 아시아에 속하는 대표적인 나라이지만 그 역사의 일면은 유럽과 비슷한 과정으로 전개되었다. 역성혁명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은 채 역사가 흘러왔다는 사실은 일본인들에게 그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영국에 여왕이 있다면 일본에는 천황이 있다. 천황은 일본의 역사 속에서 늘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은 채 항상 권력 이면에 존재하여 왔다. 권력자들은 그들의 존재를 신격화하기 위해 일반 서민과 천황의 접촉을 철저히 막았다. 물론 2차 세계 대전 패망 후 맥아더 장군에 의해 히로이토 천황이 직접 자신은 신이 아니라 한 인간임을 선포했지만 오늘날에도 천황의 지위는 신과 같다. 호적도 없고 성도 없이 이름뿐이며 선거권도 없다.천황은 인간이 만들어낸 신으로 여전히 일본인들의 마음속에서 사랑받고 존경받는 존재인 것이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녀인 덕혜 옹주나, 영왕 이은 등 우리나라 왕의 후예들이 아무런 배려도 받지 못한 채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천황의 존재만으로도 일본은 그 개성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것이다.일본은 조선과 마찬가지로 쇄국정책을 펼치고, 서구 열강에 의해 강제로 개항을 맞이하였다. 조선인에게 항상 한 수 아래였던 일본과 조선이 같은 모습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차이의 시작을 1868년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 친정 형태의 통일국가를 형성시킨 메이지 유신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라는 정치·사회적 변혁을 통해 급격히 근대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유럽열강과 같은 근대화를 이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모델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사절단은 1871년부터 22개월에 걸쳐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구미 12개국을 돌아보는 해외순방길에 나섰다. 이들은 각 나라의 정부 기구와 제도는 물론, 군사, 사법, 사회, 교육 구해야 함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질적인 서양문화에 대한 대응방안도 결국 동서양 문화의 접점에 서서 양 문화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서양에 비해 작은 나라에 지나지 않는 일본이 문명대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시아로부터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소위 탈아입구의 길을 가야만 한다는 것도 말이다.탈아입구를 위한 노력의 결과일까. 최근 하버드 대학의 사무엘 헌팅톤 교수는 이라는 논문에서 세계 8대 문명권을 열거하면서 유럽권, 유교권, 그리고 일본권을 들었다. 유교 문명과는 다른 일본 문명의 존재를 인정한 셈이다.일본도 조선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쇄국을 국가 정책으로 삼았지만 그 양상은 조선과는 사뭇 달랐다. 일본은 같은 동양 문화권인 조선, 중국과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다른 문명권에 속해 있는 네덜란드와도 통상관계를 맺었다. 즉, 조선과 일본은 쇄국이라는 같은 간판을 내걸고 있었지만 일본은 절대적 쇄국이 아니라 서양의 신선한 바람이 스며들어 올 수 있는 데지마라는 틈바구니를 마련했고 조선은 일편단심 중화사상에 철저했다.강화도 조약으로 개항을 하게 된 우리 땅에서는 일본에 관한 어떠한 연구 분위기도 조성되지 않았다. 일부 개화지식인들이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하긴 하였지만 대다수 보수적인 유학자들은 과거의 환상 속에 사로 잡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그들은 일본을 배척하기 위한 방안만 강구했을 뿐 일본에 관해 연구하지는 않았다. 반면 미국의 페리 제독에 강압에 의해 개항한 일본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다. 그들은 미국 배척이 아니라 오히려 영어 붐을 일으켰다. 서양과의 대결 끝에 패한 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발달된 문물을 흡수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과 조선은 개항의 그 시작부터 다른 모습을 선택한 것이다.우월감에 젖어있던 조선이 시국의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이 일본은 차근차근 근대화의 길을 걸어갔다. 서양이라는 충격에 대해 한일은 전혀 다른 반응과 대응자세를 보였으며 결국에서만 조선에 대한 문물을 받아들이고 연구가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부산의 초량, 왜관에 근무하였던 일본 외교 실무자들은 대부분 조선어와 조선 사정을 연구하였는데 그 중에서 아메노모리 호슈가 가장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임진왜란 후 조선과의 국교 수복에 힘쓴 외교관으로 조선어와 조선사정에 능통할 정도로 조선을 연구하였다고 한다.일본에는 이처럼 경상도 사투리까지 구사할 수 있는 외교관이 있는데 조선은 중국의 완전 무결한 복사판인 소중화를 내세우면서 여전히 일본을 야만시하고 일본으로부터 배우기를 거부했다. 오로지 중국문명만을 최고의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한학에 뛰어남을 으스대는 조선의 지배 계급이나 유생들이 볼 때 일본은 한낱 미개한 왜국에 불과했을 뿐이다.과연 일본에게서 배울 것이 없었을까? 강항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가 3년간 억류되어 있는 동안 일본의 진정한 모습을 깨닫고 문제의식을 제기하였으나 그 후 그의 뒤를 이어 연구하는 사람이 없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였다. 일본이 조선에 대해 끊임없는 연구가 진행되어 조선을 그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에도 우리는 일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아는 것이 없는데 어찌 일본에 맞서 싸울 수 있었겠는가.19세기 서양 세력 앞에서 가장 절실히 필요했던 지식은 국제법 이론이었다. 군함과 국제법 앞에서 동양 3국의 정점이던 청국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며 어쩔 수 없이 개항을 강요당했던 일본은 서양법의 효용을 몸으로 체험해 그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미국 선교사 윌리엄 마틴이 번역한 이라는 국제법 서적이 지식인들의 필독서가 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수많은 외교 국제법 고문들을 막대한 급료를 주면서까지 초빙함으로써 외교 실무를 익혀나갔다. 필사적인 노력으로 서구 국제법을 익힌 일본은 이를 토대로 과거 속에 사로잡힌 조선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일본은 흥선 대원군의 왜양일체 의식에 의해 조선에서 경계 되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치밀한 작전. 조약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였던 조선이 제대로 된 조약을 체결 하였을 리 만무하다. 교섭 결과 1876년 조선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지만 불평등 조약이었고 이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조선은 강화도 조약 이후 상황을 인지하고 개화파들은 끊임없이 개화를 위해 개혁을 시도하였고, 정부에서도 외교 고문을 초빙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쏟았다. 그러나 이들 외교 고문들은 그 자질마저 의심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조선은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리고 35년이라는 긴 암흑의 시간을 겪은 후에야 광복을 맞을 수 있었다.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악연을 가지고 있는 철천지원수의 나라일까? 아니면 동아시아 국제 질서 속에 함께 편입된 동반자의 나라일까? 일본과 한국은 분명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일본은 우리에게 너무나 먼 나라임은 사실이다. 한일 양국은 숙명적 민족감정과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왜놈과 조센징의 뿌리 깊은 적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일본은 지난 달 후소샤 교과서에 이어 새역모의 주도 아래 새로이 출판된 지유샤 교과서를 통해 또다시 역사 왜곡을 시도함으로써 우리나라 국민들의 감정을 고조시켰다. 이는 분명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역사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우리와 운명을 나눈 나라임은 분명하다. 일본이 강한 힘과 개성을 지닌 나라임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언제까지 반목과 과거적 안목으로 대립만을 거듭할 수 는 없는 일이다.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일본에게 배울 것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 과거 일본이 조선을 배워 성장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진정한 동반자의 길. 이것이 앞으로 한일 양국이 걸어 나가야 할 길이다.3. 결론역사에 ‘만약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만약 우리나라가 조금 더 개항을 빨리 했더라면, 혹은 스스로의 힘으로 개항을 했다면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지난 주 찾은 중앙 박물관에.
1. 서론서점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유학서적 코너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나이가 지긋이 드신 아저씨부터, 젊은 대학생에 어린 꼬마까지 언제나 그곳은 붐빔이다.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유학이라는 단 두글자만 검색하더라도, 수 천 수만개의 유학과 관련된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지금 2009 한국 교육의 현실이다. 수능 점수 하나로 줄서기를 시키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래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수많은 교육개혁을 내세우고 있지만 학부모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교육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아이들의 미래를 위하여 유학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그러나,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나라에 내 아이를 보내고, 교육을 시킨 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하다못해 여행을 가더라도 준비할 것이 한 가득인데 몇 년 동안 유학을 보내는 일이 쉬울 수 있을까?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출판된 [서울대보다 하버드를 겨냥하라 2]은 저자 김성혜씨가 직접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느낀 유학에 관련된 일들을 보다 사람들에게 쉽게 알려주고자 저술되었다. 조기유학에 대한 필요성을 알린 1권과는 달리 2권은 마치 유학 입문서와 같았는데 1권을 낸 후 쏟아지는 유학관련 질문에 대한 현실적인 답을 위주로 이루어져 있었다.강하고도 인상깊은 제목으로 나를 사로잡은 [서울대보다 하버드를 겨냥하라 2] 대학교 졸업을 앞 둔 나이지만, 아직도 아이비리그를 꿈꾸는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줄 지 궁금했다.2. 본론1) 왜 서울대보다 하버드인가? - 글로벌 시대에 뒤로가는 우리 교육조선은 충과 효를 건국 이념으로 해서 세워진 윤리와 논리의 나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가에 충하고 부모에 효하던 동방예의지국이 바로 조선, 지금의 우리나라였다. 그러나 이러한 윤리의 국가는 조선이 망하게 되면서 그 뿌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해방 후에도 6.25전쟁과 군부독재의 기나긴 암흑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그 속에서 더 이상 윤리의 나라는 찾아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물론 그러한 어려움 속 있다. 왜 이렇게 대한민국은 흔들리게 된 것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윤리의 부재에서 찾고 있었다. 윤리를 올바르게 주입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하지만 우리는 올바른 교육을 세우지 못했고 그 결과 나라 전체의 뿌리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저자가 일찍이 전편에서 조기유학을 주장함으로 인해 그를 찬미주의자로 몰아세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찬미주의도 반미주의도 아닌 실속주의일 뿐이다.누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미국이 지금도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그 어떤 면에서든 가장 좋고 훌륭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이럴 때 찬미다 반미다 하며 흑백 논쟁에 빠져서 아까운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무슨 힘이 미국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지 조사한 다음 우리에게 좋고 필요한 것은 받아 들이고 아닌 것은 버리고 하여 변하는 세태에 앞장서는 것이 옳은 자세가 아닐까?21세기는 지식 정보사회이다. 자본과 토지, 자원이 부를 이끌어주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1000대의 자동차보다 해리포터 영화 한편이 더 많은 부를 창출해내는 시대가 온 것이다. 작고 힘이 없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충분히 우리나라는 좋은 위치적 조건 뿐만 아니라 훌륭한 인적 자원도 가지고 있다.그렇기 때문에 21세기는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교육 개혁은 시급하다.지금 우리의 교육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계속해서 붕어빵 찍어내는 데만 모든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하고 다른 것은 이상한 눈으로 보는 지금의 교육 속에서는 빌게이츠가 나올 수 없다. 그가 만약 서울에서 태어났다면 윈도우라는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라는 조선 일보 기사에서는 2020 미래는 규격품을 대량 생산하는 교육 시스템을 파괴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초 중 고교 12년간 암기하는 지식의 양은 500원짜리 메모리칩 한 개면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500원짜리 칩 하나에 넣으면 되는 지식을 12년 동안 귀하디 귀한 인적 자원기러기아빠들이 이제는 눈에 띄게 늘어났고, 대학생들 중 어학 연수를 비롯해 유학을 가지 않은 아이들을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다행이도 이러한 교육 문제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이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뜨뜻미지근한 국민들의 교육열 때문에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이는 불행 중 다행이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높은 교육열을 잘 이끌고 지도해서 파괴적으로 흐르는 이기적인 교육열에서 건설적인 교육열로 바꾸는 일이 필요하다. 내 자식, 내 잇속만 챙기려 드는 이기적인 교육열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위한, 제대로 된 교육열이 요구되는 시점이다.2) 유학준비 이렇게 하라 - 생각도 습관도 바꿔야 한다.로마에 가면 로마법대로 하라는 말이 있다.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를 보다보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 문화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외국에 가서 살아도 그리해야 한다. 우리는 손님으로 간 것인 만큼 말로만 문화 상대주의를 외칠 것이 아니라 그들 문화의 차이점을 존중해주고 이해해줘야 한다. 요즘은 미국이나 호주 ,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으로 어학 연수나 유학을 가는 학생들이 부쩍 늘다 보니 외국인 가정으로 홈스테이를 가는 경우도 많아졌다.개인적인 기숙사가 아닌 한 가정에서 지내는 것이므로 영어를 배우거나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기는 최적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홈스테이를 할 것이라면 더더욱 더 그 나라의 문화나 풍습을 배워가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는 아이들이 가는 나라의 문화에 맞춰 오래전부터 체계적인 준비를 시킬 필요가 있다.우리의 도덕이나 문화의 잣대를 가지고 다른 나라 사람의 도덕이나 문화를 옳다 그르다 하면 안된다. 미국은 다른 서구도 대부분 그렇지만 이혼한 여자나 남편과 사별한 여자가 남자 친구 사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보고 손가락질 한다거나 수군거리는 것은 진정한 문화상대주의가 아니다. 그리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 화장실 문을 평소에는 닫지 말라는 것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여러 나라, 여러 지역에 있는 학교들이 소개가 되었는데 같은 방식으로 운영이 되는 학교가 하나도 없었다.공립, 사립 구분없이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의 학교들은 그 학교의 개성이 뚜렷했다. 군대식으로 이루어진 밀리터리 학교처럼 각자의 모토를 가지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이 인상적이면서도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브랜드 홀이라는 학교였다.경제적으로 도약하고 있는 아틀란타의 브랜드 홀은 학교의 특수성 때문에 미국 내의 사립학교 중에서도 한 해 등록금과 기숙사비가 가장 비싼 학교이다.이 학교의 목표는 머리는 영리하지만 언어 장애, 집중력 장애, 난독 장애등의 이런 저런 장애 때문에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집중하여 가르쳐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내도록 하는데 있다고 한다. 그냥 보통 학교에 갔더라면 대학에 갈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학생들을 동기 유발 시키고 필요한 학습 기술을 습득시켜 성공시키는 것을 모토로 하는 셈이다. 1년에 3만 6천달러가 넘는 학비를 낸다고 해서 부자짓 사람들만 다니는 것은 아니다. 간이식당에서 하루종일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아들의 평생 한번 뿐인 기회를 위해 브랜드 홀에 보낸 어머니도 있었다. 이 학교에서는 모자라는 학생을 자립할 수 있는 학생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토플이나 SSAT도 필요없었다.우리나라에서 머리는 좋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일반 학생들 사이에서 도태되는 것과 달리 그들만을 위한 학교가 따로 있어 그들이 진정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은 외국의 뛰어난 능력이 아닐까 싶다.4) 영어공부 이렇게 시켜라현대가 글로벌 시대라는 것을 우리나라 교육 당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잘 알고 있으면서 반세기 전 교육 방침을 아직도 고수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평준화로는 21세기를 살아갈 수 없다. 친미 성향이어서 영어를 배우고, 미국으로 유학 가야 것인가. 영어공부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 혼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 함께 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상투적인 영어공부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영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취학전, 초등학교1,2학년, 초등학교 3,4학년, 5,6학년, 중고등학생의 영어를 위한 방법을 단계별로 나누어 그 방법과 책까지 자세히 서술하고 있는 점은 이전까지의 유학관련 서적에서 볼 수 없던 것이었다.5) 우리 교육의 미래를 위한 준비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이 12만7000명을 웃돌아 출신 국가별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 유학생은 전체 외국인 유학생 85만9100명 중 14.8%를 차지했는데 미국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 7명 중 1명은 한국인인 셈이다.하루에도 엄청난 수의 학생들이 해외로 유학을 떠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교육의 미래를 위한 준비로 가장 시급한 일은 국제적인 영어학교를 빨리 세우는 것이다. 저자는 유학 중인 다른 나라 학생들을 통해 자연스레 이 문제에 접근하면서 영어로만 공부하는 인터내셔널 스쿨이나 아메리칸 스쿨의 효용성이 얼마나 큰지 말하고 있다. 유학에 따르는 막대한 외화 유출도 막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다른 나라 학생들을 끌어들여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인터내셔널 스쿨이 우리에게 해가 될 것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국제적인 인재를 양성해 국가 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이 되니 1석 3조의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3. 결론에서 저자는 수능 점수 하나로 줄서기를 시키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전인교육과 인성교육을 바탕으로 하는 미국의 교육 정책을 소개하면서, 왜 우리 어린 학생들이 유학을 가야 하는가, 유학을 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얼마 만큼 준비해야 하는가, 가장 필요한 영어공부는 언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등 유학에 필요한 준비를 세세하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현재 미국에 유학 중인 우리 유학생들을 찾아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