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Ⅰ. 서론Ⅱ. 본론1. 애착의 정의2. 애착의 발달과정3. 애착의 유형4. 양육자와의 대화5. 나의 애착유형6. 나의 대인관계, 정서, 사회성 등의 분석Ⅲ. 결론Ⅰ. 서론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애착’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그러나 내가 이번 발달심리학을 들으면서, 배운 ‘애착’이라는 말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해주었다. ‘애착’이라 하면,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애정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내가 생각한 말이 맞기도 하지만, 애착에도 종류가 있고, 그것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애착이 형성되는데도 발달과정이 있다는 것과 애착형성이 대인관계나 정서, 사회성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내가 태어나서 어떻게 지냈는지를 알아보면서, 나의 애착유형과 그로인해 지금의 대인관계나 정서, 사회성 등에 대해서 알아보겠다.Ⅱ. 본론1. 애착의 정의애착(attachment)은 한 개인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 느끼는 강한 감정적 유대관계를 뜻한다(Bowlby, 1958; Ainsworth, 1978).이러한 애착이 발달심리학자들에게 있어 큰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출생 후 1년 이내의 영아와 어머니 또는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간의 이루어지는 애착형성의 결과가 후에 발달하는 정서적 안정성과 대인관계의 중요한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애착형성을 실패하거나 안정되지 못한 애착을 형성한 사람들은 정서적 안정성과 대인관계형성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클 뿐만 아니라 정신 병리적 문제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2. 애착의 발달과정1) 제 1단계 : 전 애착형성 단계(출생~6주)아기는 미소 짓고, 울고, 눈으로 물체를 추적하여 사람을 찾는 등 성인으로부터 신체적인 접촉을 이끌어내는 신호를 보내고, 성인이 보내는 자극에 반응을 보인다. 이 단계에 아기들은 어머니와 특별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않아도 감각적으로 어머니를 인식하기 시작한다.2) 제 2단계 : 애착형성 단계(6주~8개월)영아는 어머니를 보다 뚜렷하게 선호하는 반응을 보인다. 낯선 사람과 어머니를 지각적으로 구분하지만, 격리불안은 보이지 않는다.3) 제 3단계 : 분명한 애착형성 단계(8개월~2세)영아는 어머니와 떨어질 때 매우 당황하고 불안해하는 격리불안을 보임으로써 어머니에 대한 애착을 분명하게 나타낸다.4) 제 4단계 : 상호호혜적 애착관계의 형성단계(2세 이후)2세 말경에 언어와 정신적 표상 능력의 발달이 가속화되면서 유아는 어머니가 언제 다시 돌아올지를 예측하게 되어 격리불안이 급격히 감소한다.3. 애착의 유형Ainworth 등은 그들이 고안한 낯선 상황 절차를 사용하여 질적으로 상이한 세 가지 애착양식을 확인하였다. 보다 최근에 Main과 Solomon(1990)은 세 가지 애착양식 중 어느 것에도 포함되지 않는 애착양식을 발견하고 그것을 불안/혼란된 애착으로 명명하였다. 이 네 가지의 애착유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1) 안정된 애착 (약 65%) - Type B영아들은 부모를 안전기지로 사용하여 능동적으로 환경을 탐색하고 낯선 사람과도 상호작용 한다. 부모의 부재 시에 울기도 하고 울지 않기도 하지만, 부모가 되돌아오면 반가워하고 쉽게 안정을 되찾는다.2) 회피적 애착 (약 20%) - Type A영아들은 부모와 함께 있을 때도 부모에게 무반응적인 것처럼 보이며 부모가 나가도 슬퍼하지 않는다. 부모에게 하는 것처럼 낯선 사람에게도 무반응적으로 행동한다. 짧은 분리 후 재결합하여도 부모를 회피하거나 천천히 부모를 반기며 안아주어도 부모에게 꼭 달라붙지 않는다.3) 양가(저항)적 애착 (약 10 - 15%) - Type C분리되기 전에 이 유형의 애착양식을 갖는 영아들은 부모 가까이에 있으려고 하고 탐색을 하지 못한다. 부모가 돌아오면, 그들은 화를 내고 저항적 행동을 하며 자주 발로 차고 미는 행동을 한다.4) 혼란된 애착 (약 5 - 10%)가장 큰 불안정성을 나타내는 애착유형으로 이 유형의 영아들은 재결합 시에 여러 가지 혼란스럽고 모순된 행동을 보인다. 부모가 안아주면 다른 곳을 바라보거나 대단히 활기 없고 우울한 표정으로 부모에게 접근하기도 하고 때로 부모로부터 도망쳐서 벽에 머리를 기대기도 한다.4. 양육자와의 대화Q. 수유는 어떻게 했나요?- 어머니께서 직접 모유를 주셨다. 내가 동생이랑 연년생이라서 1년 동안은 모유를 주셨지만, 그 다음부터는 이유식을 먹었다고 한다.Q. 언제까지 젓병을 사용했나요?- 커서도 밥보다는 이유식이나 우유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6살 때까지 젓병에 우유를 먹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죽 같을 걸 만들어서 먹으라고 쫓아다녀도 잘 안 먹어서 남들이 먹었다고 한다.Q. 동생이 태어났을 때는 어땠나요?- 동생이 태어나자 그게 머냐고 하면서, 쓰레기통을 가져와서 버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동생이 태어난지 삼일째 되는 날 이모가 쓰레기통을 가져와서 버리라고 했는데, 동생이라고 하면서 버리면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Q. 동생이랑 사이는 좋았나요?- 동생이랑 잘 지내다가도 동생이 말을 안 들으면, 때렸다고 한다.Q. 몇 개월부터 기기/걷기 시작했나요?- 기기는 4개월 정도부터 그랬고, 걷기는 10개월 정도부터 걸어 다녔다.Q. 언제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나요?- 말도 10개월 정도부터 했다.Q. 또래관계는 어떠했나요?- 나랑 나이가 똑같은 아이들하고는 잘 안 놀고, 형들이랑 놀았다고 한다. 또래 애들이랑 놀라고 하면, 밀어버리고 놀지 않았다고 한다.Q. 어머니랑 잘 떨어졌나요?- 어머니랑 잘 떨어지지 않을려고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화장실을 가든 시장을 가든 어디든지 쫓아다녔다고 한다.Q. 아버지랑은 어땠나요?- 아버지랑 있어도 잘 쫓아다니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무엇을 사주신다고 하면 따라갔다고 한다.Q. 낯선 사람들이랑은 잘 있었나요?- 옆집에 가서 잘 놀다가도 어머니가 안보이면, 어디 갔냐고 물어보면서 어머니를 찾으러 갔다고 한다. 어머니가 시장 같은 곳에 가면, 시장이 가까웠기 때문에 혼자서 어머니를 찾으러 시장으로 갔다고 한다. 그러나 세살 때부터는 외삼촌은 잘 따라다녔다.Q. 외삼촌은 왜 잘 따라다녔나요?- 이모들이 어디 가자고 해도 잘 안 따라다녔지만, 외삼촌이 가자고 하면 잘 따라다녔다.Q. 친척집이나 어디를 가서는 어땠나요?- 어디를 가든 오래 못 있고, 빨리 집에 가자고 했다고 한다.Q. 장난감이나 과자 같은 어떻게 했나요?- 텔레비전을 보고서 신발가게나 시장 등과 같은 곳에 가서 나왔다 확인해보고, 안 나왔으면 언제 나오는지 물어보고, 나오면 사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안사주면 막 때를 쓰다가 아버지에게 혼나고 집에 와서 있다가 한참 뒤에 다시 사달라고 했다고 해서 사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가게에 가서 과자를 사먹는다고 하면, 얼마가 됐든 무조건 큰 것을 골라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돌려주기가 그래서 그냥 사주셨다고 한다.※ 양육자와의 대화 정리나는 동생하고 연년생이다. 그러다보니 모유를 1년 이후에는 동생에게 수유를 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이유식을 먹었고, 동생이 태어났을 때는 동생이랑 22개월 정도의 차이가 나지만 아마도 나는 제 3단계 : 분명한 애착형성 단계였을 것 같다. 그래서 동생이 태어나서, 어머니 옆에 동생이라는 존재가 나타났기 때문에 동생을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한거 같고, 그래서 어머니랑 떨어지지 않을려고 한 것 같다. 아버지도 있는데 굳이 어머니에게서 떨어지지 않을려고 했던 점은 아버지께서 지방에서 일을 하셨기 때문에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랑 있는 걸 더 좋아한 것 같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잘 따라다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금도 기억이 남아있는데, 아버지가 어디 가신다고 하면 따라갔다. 그러나 집이 아닌 곳에 가면 오래 못 있어서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데리고 가라고 했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부모님이 아닌 외삼촌도 잘 따라다녔다고 하는데, 외삼촌이 어렸을 때 내가 살던 집이랑 가까워서 매일 오셨다고 한다. 그래서 외삼촌을 잘 따라다닌 것 같다.
목 차1. 타이브레이크 시스템이 생겨난 배경2. 타이브레이크 시스템의 적용과 방식3. 타이브레이크 시스템의 종류1) 9포인트 타이브레이크2) 12포인트 타이브레이크3) 7포인트 타이브레이크4. 참고문헌1. 타이브레이크 시스템이 생겨난 배경1970년 US오픈에서 최초로 채용된 경기 단축 시스템. “상대방을 2게임 이상의 차로 이겨야(deuce) 세트를 따게 된다” 는 종전의 규정 때문에 경기가 무한정 계속되고 그에 따라 선수들의 체력이 저하되고 관중들이 권태감을 느끼며 TV 중계가 지연되던 폐단을 없애기 위해 도입됐다.2. 타이브레이크 시스템의 적용과 방식a. 상대방에게 2게임 이상의 차이로 이겨야 하며, 이러한 게임차가 이루어질 때까지 한세트가 계속될 필요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6게임을 먼저 따낸 선수(또는 복식조)가세트를 얻게 된다.b. 동 규칙 (a)항의 어드밴티지세트방식에 대한 대안으로 타이브레이크스코어방식을 채용할 수 있으며,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그러한 결정이 발표되어야 한다. 이 경우, 다음과같은 규칙이 적용된다. 결정이 되고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발표된 경우가 아니라면 정규 어드밴티지세트로 경기되는 3세트매치의 3번째 세트 또는 5세트매치의 5번째 세트를 제외하고는 타이브레이크방식은 어는 세트에서든 게임스코어가 6:6에 이르렀을 때적용되어야 한다.[단식]1) 2포인트 차이로 7포인트를 먼저 따낸 선수가 게임과 세트를 얻게 된다. 스코어가 양쪽모두 6포인트씩이라면 2포인트 차이가 날 때까지 게임이 계속되어야 한다. 타이브레이크게임에서는 스코어를 숫자로 표기한다.2) 서브를 넣었던 선수는 첫 번째 포인트에서 서버가 된다. 상대선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포인트에서 서버가 되며, 그 이후로는 각 선수가 게임과 세트의 승자가 결정 될 때까지 연속 2회의 포인트씩 교대로 서브한다.3) 첫 번째 포인트부터 각 서비스는 오른쪽 코트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에서 왼쪽 코트로교대하며 넣어져야 한다. 잘못된 쪽으로부터의 서비스가 발생되고 발견되지 않았다면그와 같은 잘못된 서비스로 행해진 모든 경기 결과는 유효하나, 잘못이 발견되는 즉시정정해야 한다.4) 선수들은 매 6포인트마다, 그리고 타이브레이크게임이 끝나면 엔드를 교대해야 한다.5) 타이브레이크를 시작할 때 볼을 교환하게 되어 다음 세트의 두 번째 게임까지 교환이연기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볼 교환을 위해 타이브레이크게임은 한 게임으로 계산되어야한다.[복식]복식에서는 단식과 같은 방식이 적용된다. 서브를 넣었던 선수는 첫 번째 포인트에서 서버가 된다. 그 이후로는 각 선수가 게임과 세트의 승자가 결정될 때까지 해당 세트에서 그 이전과 동일한 순서에 따라 2포인트씩 교대로 서브한다.[서비스의 교대]타이브레이크게임에서 첫 서비스를 넣은 선수(또는 복식조)는 다음 세트의 첫 번째 게임에서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3. 타이브레이크 시스템의 종류경기 주최 측에 따라 유동적이다.1) 9포인트 타이브레이크a. A가 1, 2포인트까지 서브를 우, 좌 코트에서 한다.b. B가 3, 4포인트까지 서브를 우, 좌 코트에서 한다.c. 체인지 코트(change court)-사이드 교대d. A가 5, 6포인트까지 서브e. B가 7, 8포인트까지 서브f. 4:4가 되면 B가 9포인트를 서브하고 이 때 A의 지시에 따라 우, 좌 코트에서 서브를한다.g. 5포인트가 되면 승자가 된다. 타이브레이크로 경기한 다음 세트는 사이드를 바꾸지 않고 B가 최초의 서브를 한다. 파이널 세트의 시작 전에는 토스로 사이드와 서비스를 선택한다.
이 영화는 대학교에 와서 수업시간에 몇 번 정도 본 영화이다. 영화를 많이 봤지만,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 속에서 나오고,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되어버린 ‘Carpediem', 즉 ’현재를 즐겨라‘이다. 영화 속에서 키팅 선생님 왜 현재를 즐겨야 하는지 나오는데, 내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우리는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보지도 못하고 늙는다면, 후회할 것이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도 나는 어렸을 적부터 이 세상에서 나쁜 거 빼고는 다 하면서 사는 걸 내 인생의 중요한 마인드로 가졌다. 영화에서 말하듯이 ‘삶을 잊혀지지 않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노력할 것이다.이 영화를 보고 우리나라 현실과 한번 비교해 보자. 언제나 문제점으로 난 우리나라 입시교육을 언급한다. 우리나라 입시교육으로 인해서 청소년들은 그저 시키는 데로만 인생을 보내고 있다. 그저 남들과 똑같이 학교에 다니고 심지어는 학원까지 다니고, 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이 과연 있을까? 입시문제로 인해서, 학부모님들의 고학력 풍토로 인해서 청소년들은 더욱 더 공부에만 집중하게 되고, 우선 대학에 들어가라고만 들으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청소년들을 위해서 강조하는 지. 덕. 체 는 사라지고 있는 거 같다. 단지 대학이라는 것이 모든 걸 해결해주는 거 같다. 이렇게 막상 대학교에 들어오면 학생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중. 고등학교에서는 그저 시키는 데로만 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 대학교에 들어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에 와서야 조금씩 내가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다. 고민을 한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누군가가 해주겠지’ 하는 생각이 조금은 남아있다. 그리고 중. 고등학교 때는 아침자율학습에 야간자율학습까지 하다보니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적었다. 그러나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아침자율학습, 야간자율학습은 없다. 그러다보니 이 많은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저 그 남는 시간에 그동안 놀지 못했던 것에 대한 것일까? 놀기만 하였다. 공부는 뒷전이 되었다. 근데 지금에 와서는 그게 너무나 후회되고 있다. 왜 일찍 자기발전을 위해서 노력하지 못했는지, 너무나 아쉽다.영화에서 키팅 선생이 가르치려는 것을 우리는 본받아야 한다. 키팅 선생은 전통적인 학습법을 버리라고 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그러나 예전과 같은 교육방법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세상이 변하면서 직업의 종류도 상당히 많아지고 있다. 이 말은 청소년들이 하고 싶거나,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얘기가 된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게 우리나라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인심이라는 것이 사라지고 있는데, 청소년들에게 경쟁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가르쳐줘야 하겠다.
버지나아주 알렉산드리아 마을에서는 교육청의 지시로 흑인고등학교와 백인고등학교가 통합하라는 지시를 받아서, ‘T.C 윌리암스’ 고등학교로 통합이 된다. 그러면서 T.C 윌리암스 고등학교 미식축구팀인 ‘타이탄스’의 수석코치로 흑인 코치인 ‘허만 분’이 부임하게 된다. 원래 이 고등학교는 백인들이 다니던 곳으로, 미식축구팀도 백인코치와 백인학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흑인 코치인 ‘허만 분’이 수석코치로 되면서 그전에 있던 수석코치인 ‘요스트’가 밀려나게 된다. ‘빌 요스트’는 그래서 다른 학교로 가서 수석코치를 하기로 했는데, ‘허만 분’의 말을 들으면서 갈등을 하게 된다. 이러면서 ‘요스트’가 ‘허만 분’의 밑으로 들어가면서 수비쪽을 담당하는 코치를 맡게 된다.학교가 통합이 되서 문을 열기전에 방학동안 미식축구팀 학생들은 대학교로 캠프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백인과 흑인 선수들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과 ‘허만’의 강한 훈련까지 이어져서 학생들은 고달프기만 하다. 이러는 와중에도 ‘허만’은 ‘내 눈엔 너희의 피부색은 보이지 않는다. 검건 희건 파랗건 빨갛건, 나는 색깔에는 관심 없다. 내 관심은 오로지 승리 뿐이다’ 라는 말을 하면서 더욱더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아직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으로 인해 새벽에 학생들은 데리고 묘지로 향하게 된다. ‘허만’은 ‘이곳에서 너희들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이런 말을 하는데, 학생들은 여기에 조금씩 깨우치는 모습이 보여지게 된다. 그리고 나서 저녁에 연습을 하는데, ‘허만 분’은 역시나 전술을 제대로 할때까지 연습을 계속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선수들이 인종에 대한 차이로 전술은 잘 되지 않는다. 선수들은 싸우지만 주장인 게리 버티어가 나서자 코치들은 그걸 지켜보고 학생들 스스로가 해결을 하게 된다. 여기서 누구의 말보다는 그 문제에 직접 부딪힌 학생들이 마음을 열어서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드디어 훈련도 끝나고 학교가 문을 여는 날이 왔다. 학교가 문을 열려고 하는데,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하였다. 여기서 타이탄스의 선수들은 캠프에서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백인 학생과 흑인 학생의 충돌이 있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게리 버티어와 줄리어스가 그 충돌을 막았다. 게리 버티어와 줄리어스는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 뿐 사람은 다 똑같다는 것을 캠프에서 배웠기 때문이다.타이탄스가 첫 번째 시합을 하게 되었는데, 시합에 앞서 허만은 구토를 하게 된다. 여기서 허만도 약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시합에 나가기전 선수들에게는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타이탄스는 초반에는 상대팀에게 고전을 하지만, 후반에는 멋진 모습으로 경기를 하게 되고, 팀이 승리를 하게 된다.허만과 요스트는 다른 인종이지만 함께 일하는 동안 미식축구에 대한 열정 이상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즉, 두 사람은 성실과 명예는 물론 투철한 직업 의식을 겸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청나게 다른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감독은 분노로 뭉친 선수들을 교화시켜서 완벽한 승리 팀으로 완성시킨다. 타이탄스의 연전연승 행진을 계속하면서, 알렉산드리아 마을 사람들도 흑인과 백인의 갈등이 점점 사라지게 된다. 이러면서 사람들은 중요한 것은 피부색이 아니라 영혼이라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된다.요스트는 명예의 전당의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요스트가 명예의 전당의 올라갈려면 수석코치를 해야했다. 그래서 그 협회 사람들은 심판들에게 타이탄스에가 부정적인 심판을 보게 하도록 한다. 그래서 심판들이 부정적인 심판을 보자, 요스트는 계속 지켜보다가 결국은 심판에게로 가서 자기 선수들이 정정당당하게 플레이를 할 수 있게 하라고 말한다. 요스트는 명예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맡은 직업의식의 투철하다는 모습과 정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타이탄스의 무패행진이 계속되자 마을에서는 축제를 벌이게 된다. 이런 즐거운 날에 게리 버티어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서 하반신 마비가 된다. 타이탄스의 선수들은 모두 병원에 모이게 되고, 제일 마지막으로 줄리어스가 도착하게 되었다. 게리 버티어는 줄리어스만 만난다고 해서 줄리어스가 게리 버티어를 만나러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간호사가 가족이외에는 면회가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자 게리 버티어가 우리는 형제라고 말을 하게 된다. 여기서 줄리어스와 게리 버티어는 인종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주 결승전을 팀의 주장인 게리 버티어 없이 하게 되었다. 경기 시작전에 게리 버티어의 어머니가 경기장에 모습을 나타내자, 흑인이고 백인이고 상관없이 모두 일어서서 박수로 환영을 한다. 이런 모습에서 인종의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친밀해 졌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목 차Ⅰ. 전통놀이의 정의1. 전통놀이가 생성된 배경2. 놀이의 분류Ⅱ. 전통놀이의 문제점Ⅲ. 유아교육 측면에서 전통놀이1. 의의2. 유아가 즐길 수 있는 전통놀이 열가지3. 전통놀이의 인지적 가치Ⅳ. 민속놀이1. 그네2. 씨름3. 가마놀이4. 강강술래5. 공기놀이6. 구슬치기7. 그림자놀이8. 기차놀이9. 깨금발놀이10. 널뛰기11. 농악놀이12. 연날리기13. 윷놀이14. 자치기15. 제기차기16. 줄다리기17. 쥐불놀이18. 지신밟기19. 팽이놀이20. 불꽃놀이21. 사물놀이Ⅴ. 전래놀이1. 돼지씨름2. 장님 말 몰기 술래잡기3. 다방구4. 콘티찐방5. 달팽이 놀이6. 여왕벌 닭싸움7. 말놀이8. 새끼치기 술래잡기9. 네거리10. 끌어내기11. 인간 줄다리기12. 조조 놀이13. 석전 놀이Ⅰ. 전통놀이의 정의우리 민족은 수 천년의 삶을 이어오는 과정에서 놀이 문화를 창조하고 그 전통을 지켜왔다. 전통놀이란 고대로부터 일반적으로 행해지면서 민간에 의하여 전승되어 오는 여러 가지 놀이로서 전통성, 역사성, 고유성, 지속성을 지니는 놀이를 말하며, 전통 사회가 기르고자 했던 신념과 가치를 담고 있는 하나의 문화 프로그램이다. 삶에 대한 한겨레의 전통적인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놀이는 문화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1. 전통놀이가 생성된 배경첫째, 놀이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기르고자 하였다. 이웃과 전통적인 놀이를 함께 즐김으로써 일상적인 생활의 단조로움을 벗어나 정서적으로 위안을 받으며 마을 공동체의 한 성원으로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오락 추구라는 공동 관심사를 반영한 놀이가 마을의 놀이 문화로서 그 자리를 잡고 하나의 전통으로 남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둘째, 전통 사회의 놀이 문화는 다분히 신앙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전통 사회에서는 놀이가 일종의 제사 의식으로 행해졌다. 그러던 거이 세월을 거쳐 거듭되는 과정에서 원래의 의도는 점차 줄어들고 오락성이 강조되는 놀이로 정착?발전 된 것이기기도 하지만 높이뛰기를 겨루는 경기도 하는데 단오날에는 많은 상품을 걸어 흥과 열을 돋운다.2. 씨름씨름은 TV에서도 방송해주는 것으로 아이들도 접해본 적이 있는 전통문화이다. 서로 버티고 힘을 견주는 것을 씨룬다고 하는데서 연유 했다는 씨름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기예이다. 두 사람이 샅바나 띠 또는 바지의 허리춤을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어 상대를 먼저 땅에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한다.씨름은 단오를 중심으로 명절에 기쁨을 나누기 위해 남자들의 놀이로 행해졌다. 봄부터 쉴 사이 없이 농사일에 바쁘다가 농한기를 맞으면 고된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기위해 씨름을 즐겼던 것이다.3. 가마놀이가마싸움은 일명 자메쌈 또는 가마놀이라고도 하며 학동들 놀이이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각 서당의 학동 중 대표를 뽑아 총사로 삼고 각기 가마와 기를 만들며 가마싸움 준비를 한다. 가마와 기 제작이 끝나면 15일 전 까지 가마를 끌고 연습을 한다. 15일이 되면 학동들은 가마를 끌고 마을을 누비고 다니며 기세를 올린다. 마을 주민 모두가 나와 응원을 하고 박수를 치며 격려를 한다. 마을을 누비고 나서 시장 넓은 마당에 모이면 서로 한참 입씨름을 하다가 총사의 지휘에 따라 접전을 하게 된다. 총사의 지휘에 의해 전진하고 후진하고 좌우로 빙빙 돌다가 틈만 있으면 뚫고 들어가 가마와 가마를 부딪게 하거나 발로 가마를 차고 부순다. 또 적군의 기를 많이 빼앗으려고 한다. 한참 정신없이 싸우다 보면 가마는 부서지고 기를 뺏고 빼앗기고 하여 승부가 나게 된다. 승리한 측은 빼앗은 기를 높이 들고 기세도 당당하게 마을을 다시 누비고 다닌다. 이때 마을 사람들도 승리를 축하해 준다. 행진이 서당 마당에 이르면 놀이는 끝이 난다. 가마싸움에 이긴 쪽의 서당에서는 당년에 과거에 많이 합격한다고 하여 학동들뿐 아니라 학부형들도 기뻐하였다고 한다.4. 강강술래남해안 일대에 전승되어 오는 민속놀이로 주로 팔월 한 가위에 여성들이 노는 놀이인데, 여성놀이 중 가장 정서적이며 율는 다투어가며 불의 크기를 크게 하는 풍습이 있다. 그래서 다른 마을 사람들과 경쟁을 하는데 이긴 편의 쥐가 진 편으로 몽땅 쫓겨가게 되어 이긴 편 마을에서는 농작물에 해를 입지 않게 된다고도 한다.18. 지신밟기지신을 위로하며 안택초복을 비는 일종의 가장행렬의 민중놀이이다. 고조선의 제천의식에서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춤추고 노래 부르며 노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지신밟기의 성원은 일반적으로는 부락민만으로 구성하는데 인원의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꾕쇠, 징, 북, 장고, 소고 등의 풍물과 사대부, 팔대부, 하동, 포수, 각시, 촌로, 기수등으로 아루어진다. 주산과 당산의 지신풀이를 마친 다음, 마을에 내려와서 집집마다 지신을 누르는데 풍물에 맞춰서 춤을 추며 놀이도 한다. 대청, 각방, 부엌, 샘, 장독, 곶간, 마굿간, 변소등의 차례로 지신풀이를 한다.19. 팽이놀이겨울에 사내 아이들이 얼음판위에서 많이 하는 놀이로 도래기치기라고도 한다. 팽이에는 아랫쪽은 뾰족하게 깎고 위는 평평하게 깎아만든 보통 팽이 와 위 아래 모두 뾰족하게 깎아 만든 불팽이가 있다. 얼음판이나 땅바닥에 손으로 팽이를 돌린 다음 가는 막대기에 헝겊 또는 삼실을 달아 만든 팽이채로 쳐서 세게 돌린다. 여러 아이들이 저마다 팽이를 힘껏 친 후 일제히 팽이채를 거두고 가장 오래 가는 팽이를 장원으로 뽑는다. 먼 옛날 도토리나 상수리처럼 둥글고 길쭉한 물체를 돌리기 시작한데서 유래된 것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설은 당나라때 놀이가 시작되어 삼국시대때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다시 일본에 건너가서 '고마'라는 이름으로 성행, 발전하여 우리나라에 역으로 전해졌다고 전해지기도 한다.20. 불꽃놀이등놀이와 함께 하던 놀이로 화약이 터질 때 나는 큰 소리와 이를 뒤따라 꽃잎처럼 휘황하게 퍼지는 불꽃울 즐기기 위한 것이다 .이 놀이에는 화산대, 줄불, 딱총놀이, 세가지가 있다. 화산대는 화약을 포통에 재고 그 마구리와 겉을 종이로 겹겹이 싼 다음 속에 꽂은 심지에 불을 달아 잇는다. (인구→ 구두쇠→ 쇠그물 →물건→ 건강……)(2) 두 자 또는 세 자 등의 글자 수를 정해 준다. (국민→ 민주→ 주인→ 인사 →사장→ 장군→ 군인……)두 자에서 세자: 2자 →3자→2자→3자→2자→의 규칙을 가지고 이어간다. (무지개 개미 미역국 국민 ……)(3) 가운데 말잇기 세자로 말잇기를 하는 경우 가운데 글자가 앞에 오는 낱말로 계속 이어 간다. (전화기→ 화장실→ 장도리→ 도깨비→ 깨나리→ 나팔꽃……)(4) 앞 말 이어가기 (사회→ 사장→ 사다리→ 사기→ 사슴→ 사리……)(1) 각 줄의 앞사람에게 한 낱말을 준다. 구 뒷사람은 뒤에 앉은 사람에게 낱말을 듣고 떠오르는 낱말을 귓속말로 이야기한다.(2)줄 끝에 있는 사람이 일어서서 마지막으로 들은 낱말에서 연상되는 낱말을 발표한다. (분필→ 공부→ 선생님→ 학교…… → 귀신)(3)처음 단어부터 차례로 끝까지 확인해보는 고정에서 아하! 하는 탄성이 나오게 된다.8. 새끼치기 술래잡기(1) 개요술래잡기는 술래를 정하고 다른 사람을 치면 곧바로 술래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 이와는 달리 처음 정한 술래가 놀이 한 판이 끝날 때까지 바뀌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새끼치기 술래잡기는 처음 술래가 끝날 때까지 술래가 되나 다른 사람을 치면 함께 술래가 되므로 점점 술래가 늘어나게 되는 특징이 있다. 지역에 따라 물고기를 그물로 감싸서 잡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어부놀이라고도 한다.(2) 방법① 놀이 할 공간(가로, 세로20-30미터)을 정하고, 전체 인원의 1/10 정도를 술래로 한다.(40명인 경우 술래는 4명 정도)② 술래가 아닌 사람은 술래를 피해 다니다가 치이면 같이 술래가 되는데먼저 술래와 손을 잡고 다녀야 한다.③ 이렇게 하면 술래가 된 사람들은 긴 줄이 되는데 뛰어 다니기가 어렵게 된다. 그래서 미리 8-10명 정도가 되면 새로운 줄을 만들 수 있게한다.④ 각 술래 줄은 서로 도와 남은 사람들을 치러 다닌다.⑤ 모두 술래가 되면 한 판을 마치고 다시 시작한다.(3) 효과서로 쫓고 쫓기는 가운가장 오랜 문헌으로는 ≪형초세시기≫와 ≪수서≫의 〈예문지〉 소재인 〈고금예술도〉를 들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추천은 본래 북방 융적이 한식 때에 하던 가볍고 경쾌한 연습놀이였는데, 제의 환공이 북으로 이들을 침공한 뒤부터 중국에 성행하였다고 한다. 이 그네 뛰기는 한대 이래로 궁중의 후정에서 즐겼고, 당대에 와서도 한식의 절속과 더불어 민간에서 여자들의 유희로 발전하여 반선희라 하였으며, 남방의 괴뢰(꼭두각시놀음), 북방의 추천은 유명하다.남자들의 씨름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도 보여서 그 오랜 역사를 분명하게 알 수 있으나, 그네에 관한 분명한 기록은 고려시대에 와서야 찾아볼 수 있다. 중국 ≪송사≫에는 고려 현종 때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곽원의 말을 빌려 『고려에는 단옷날에 추천놀이를 한다.』고 한 기록이 있어서, 고려 중엽에는 이미 단옷날의 그네뛰기가 민간에 널리 행하여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사는 훨씬 더 오랜 것으로 추측된다.그네뛰기 풍속이 우리나라 문헌에 최초로 보이는 ≪고려사≫ 열전 최충헌전에 『단오절에 충헌이 그네뛰기를 백정동궁에 베풀고, 문무 4품 이상을 초청하여 연회를 사흘 동안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같은 책 열전 최이전에는 『5월에 종실과 사공 벼슬 이상의 관원과 행신과 추밀원 관원들을 초청하여 연회할새 채붕을 매어 산같이 만들고, 수를 놓은 장막과 깁휘장을 둘러치고, 그 가운데는 그네를 매어 무늬 놓은 비단과 채색 꽃으로 꾸몄다.』고 하였다. 또, 같은 책 신우전에는 『우왕이 거리를 순행하고 드디어 수창궁으로 가서 임치 등과 같이 그네뛰기를 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그네뛰기가 호화스럽게 성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한림별곡〉 제8장은 그네놀이를 주제로 삼고 있어 주목되거니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도 단옷날과 한식날의 그네뛰기에 대한 시가 한 수씩 있어서, 그네가 조정과 민간에 걸쳐 널리 성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또, 조선시대에도 그네뛰기는 민간에서 더욱 성행하였다. ≪경도잡지≫를 비롯하여 조선에 닿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