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와 위반으로서의 성바타이유는 에로스적 충동을 극단까지 몰고 가면 그것은 죽음과 멀지 않다고 보고 있다. 정상적인 삶을 떠나 에로티즘으로 가는 길목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죽음이 존재하고 있다. 바타이유는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금기가 충동에 의해 무참하게 무너질 때, 진실이 무엇인지를 번뇌와 함께 깨닫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금기를 위반하는 순간 고뇌와 함께 금기가 의식되고, 죄의식도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인간의 의식은 금기의 위반을 즐기며, 한편으론 금기를 지속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금기를 위반하려는 충동과 금기의 심연에 깔려 있는 고뇌를 동시에 느낄 때 비로소 에로티즘의 내적 체험이 가능하다. 그래서 에로티즘은 욕망과 두려움, 강렬한 쾌락과 고뇌가 긴밀히 연결되는 종교적 감정과 유사하다. 바타이유는 금기의 위반의 마지막을 죽음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바타이유는 죽음이 존재의 영속성을 가져다 줄 수 없으며, 존재의 연속성과 죽음은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의 열정 속에서 죽음이 연속성의 표상으로 등장하는 것은 전통 속에 존재하는 종교적 희생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종교적 희생에는 희생자의 죽음이 따르는데, 희생물의 죽음으로써 참관자들은 그 죽음이 계시하는 신적 영역에 들어 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종교적 희생이 에로 행위에 비교될 수 있다고 보았다.인간은 노동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동물과 구분될 수 있지만, ‘금기’라는 이름의 구속을 스스로 부과한 점에서 더더욱 동물과 구분된다. 금기는 주로 ‘죽음에 관계 있는 것’과 ‘성 행위와 관계되는 것’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등은 성경이 가르쳐 준 교훈인 동시에 인간세계를 영속시키기 위한 계율이다. 인간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금기, 신, 그리고 나아가서 타락의 한계를 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이 설정되면 이것들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한다.프로이트는 금기를 만지려는 욕망과 대립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금기가 반드시 욕망을 억제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죽음에 대한 금기는 유혹으로 변하여 폭력을 휘둘러서 살아 있는 사람을 살해하고 싶은 욕망으로 변할 수 있다. 금기가 인간에게 공포감을 느끼게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금기를 준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금기가 우리를 충동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위반도 금기에 종지부를 찍을 수는 없다. 그래서 바타이유는 위반은 금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금기를 초월하고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위반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인간은 본능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욕망 속에 금기를 위반하고 죄의식을 느끼고 하는 과정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금기와 위반을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인터넷 포털은 언론인가??서 론1. 포털 사이트(portal site)란 무엇인가?portal [p:rtel] n.1 (궁전 등의 우람한) 대문, 정문, 입구, 현관.2 교량 입구, 교문(橋門).3 터널 입구, 갱구(坑口).site1 (건축용) 대지, 집터, 용지, 부지2 유적(사건 등의) 현장, 장소3 【컴퓨터】 사이트 《정보를 보관하고 있는 컴퓨터나 네트워크;Web site의 줄임말》최근 들어 포털 사이트라는 단어가 인터넷 상에서 유행하고 있다. 여기서 포털이란 집의 현관이나 정문, 또는 다리 터널의 입구를 가리키는 말로 인터넷 상에서는 웹 블라우저를 클릭해 시작하며 처음 접속하는 사이트로 사람들이 많이 시작하는 사이트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사이트로써 정보검색 서비스나 커뮤니티와 같이 사용자가 정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tm를 제공함으로써 고정 방문객을 확보하여 인터넷 비즈니스로 연결된다.즉, 포털 사이트는 단순히 웹 브라우저가 처음 시작할 때 출력하게 되는 시작 페이지와는 달리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하거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접속하는 초기 사이트의 의미가 더 강하다. 포털 사이트는 인터넷 접속, 이메일, 홈페이지, 채팅, 게시판, 게임, 쇼핑 등을 종합적으로 서비스함으로써 네티즌을 자신의 사이트에 유치하려는 전략이다.가상공간에서 커뮤니티를 형성시켜 더 많은 등록 사용자와 홈페이지 사용량을 확보할 경우 광고 수입과 사용자 정보를 활용한 마케팅 수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한다. 또한 인터넷 포털에 광고를 올릴 때 내는 광고주들의 사용료 또한 만만치 않다. 네이버의 메인 페이지에 광고를 하루 8시간 올릴 때의 광고비는 몇 억을 호가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 세계주요 인터넷 서비스 및 콘텐츠 제공업체들은 자사의 인터넷 사이트를 최대 포털 사이트로 키우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대표적인 포털 사이트로는 정보검색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야후’ 와 ‘라이코스’ 커뮤니티을 어느 방송국의 몇 시 뉴스가 아니고 어떤 신문사의 어떤 뉴스가 아닌 포털사이트로 인하여 뉴스를 공급받게 되었다.시대가 이렇게 되다보니 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단지 언론이 되어 버렸다고 생각한다.2. 포털사이트의 언론화 무엇이 문제일까?- 언론의 여론 조성 권력 갖춘 포털의 뉴스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 사이트는 이미 뉴스를 유통시키는 채널의 역할을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포털사이트들은 언론사에 우월적인 위치에서 얼마든지 선택적으로 언론사의 뉴스를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잡지의 기사 및 각 신문사의 뉴스들은 포털 사이트 뉴스 편집부로 모든 뉴스를 보낸다고 한다. 또한 UCC(사용자생산콘텐츠)를 활용해 콘텐츠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도 있다. 대표 포털 네이버의 뉴스 편집부의 직원은 무려 35명이상이라고 하면 그들은 24시간을 돌아가면서 뉴스를 선택하고 편집한다고 한다.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노출 빈도를 높이고자 하는 언론사의 욕심과 포털의 지배적인 뉴스 콘텐츠 유통 구조로 인해, 포털은 ‘권력’을 갖게 됐다. 이 권력은 여론을 형성하고 조정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되었다.특히 정치적 요소를 빼놓을 수 없는데, ‘대통령과의 인터넷 대화’, ‘선거 유권자 동영상 브리핑’, ‘정치인 개인 홈페이지’ 등 정치적인 요소가 인터넷에 퍼져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과거 조선일보 등이 정치권과 결탁해 오프라인에서 여론 몰이를 시도했듯이, 이제는 인터넷을 활용해 더욱 쉽고 파급효과가 큰 정치적 여론 조성의 힘을 포털이 갖추었다는 것이다.이처럼 포털이 의도적으로 특정 성향의 뉴스를 선별해 보여주거나 할 경우, 포털의 서비스에 길들여진 이용자들은 전면에 노출되거나 강조된 뉴스나 콘텐츠에 현혹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한 이미 잘 알려진 ‘개똥녀 사건’이나 ‘기간제 여교사 성폭행 사건’ 등에서 트래픽을 증가시키기 위해 잘못된 UCC를 방조하는 등 의도적으로 여론을 조성해 마녀사냥의 온상지가 되었다.- 기사를 마음대로 수정, 편집포털 뉴스 섹션은 매일 수백 건의 기생산할 것이 시행령에 따른다면 자체취재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주)다음커뮤니케이션의 경우 인터넷언론으로 인정받아 강제등록을 해야하는 반면, 네이버, 엠파스, 야후, 파란 등은 강제등록의 의무가 없다. 문제는 이 법이 인터넷언론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여, 이들에게 언론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겠다는 취지임에도, 각 포털들이 가급적 언론등록을 기피하고 있다는 점이다.법안 제 4조에는 정기간행물 등의 사회적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3. 정기간행물 및 인터넷신문은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신장하여야 한다.4. 정기간행물 및 인터넷신문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권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5. 정기간행물 및 인터넷신문은 범죄 및 부도덕한 행위나 사행심을 조장하여서는 아니 된다.6. 정기간행물 및 인터넷신문은 건전한 가정생활과 아동 및 청소년의 선도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음란, 퇴폐 또는 폭력을 조장하여서는 아니 된다.이러한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바탕으로 제 21조에서는 “음란한 내용의 정기간행물 등을 발행하여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현저하게 침해한 때” 등록관청은 발행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있다.현재 포털은 법안에 규정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 기존 정기간행물 등이 옴부즈맨 비평 등을 통해 자사의 비판을 수용하고 있는 반면, 포털은 연예인X파일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민의 알 권리를 철저히 침해해왔다. 또한 포털은 이미 국내용으로 심의 받은 성인용 동영상의 모자이크를 지워, 자사의 사이트에서 판매한 혐의로 법원 정식재판에 회부되어있다. 또한 각 포털 사이트는 게임페이지에 고스톱 등 도박게임 서비스를 실시하여, 국민들의 사행심을 조장하는 것은 물론이다.포털은 뉴스서비스보다는 포털의 사업모델의 특성 상, 만약 언론으로 규정되었을 때, 매우 심각한 사업규제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네이크닷컴을 운영하는 SK커뮤니케이션의 유현오 사장은 “네이트닷컴의 뉴스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터넷 특성을 최대한 활용한 뉴스서비스를 준비하고 있고,받고 입장이나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나 내부적으로는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이와 함께 무분별한 댓글을 다는 네티즌들에게도 경종을 울린 판결이어서 사회적인 영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18일 인터넷포털 사이트에 실린 기사에 개인 신상정보가 표시되지 않아도, 네티즌 댓글이나 미니홈피 등으로 신원을 유추할 수 있다면 포털사이트는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최영룡 부장판사)는 자살 여성의 남자친구로 알려진 K씨가 허위 사실이 유포돼 피해를 입었다며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NHN(035420)의 네이버는 500만원, 다음과 야후는 각 400만원, 네이트는 300만원을 원고에게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재판부는 "기사에는 원고 실명이 거론되지 않았지만 일부 기사에는 여자 친구로 알려진 인물의 실명과 미니홈피 주소가 포함돼 K씨의 신상을 쉽게 알 수 있었고, 포털들은 원고에 대한 악의적인 평가가 공개돼 명예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방치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또 "네티즌은 검색 등을 통해 K씨의 신상정보를 교환하고 블로그나 카페 등을 통해서 K씨에 대한 비방 글을 게시했다"며 "포털들이 적극적으로 게재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이 관리하는 영역에서 네티즌들의 불법적인 표현물이 너무 많이 게시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삭제 요청 등을 통해 피해 확산을 방지할 주의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포털업계는 일단 법원 판결문을 받고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체로 법원 판결에 대해 타당하지 않다며 항소할 뜻도 내비치고 있다.포털업계는 `피해자가 관련 기사나 악성 댓글을 단 네티즌은 고소하지 않고 포털에게 책임을 지라고 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 피해자가 삭제요청을 했을 당시 바로 조치를 내려 고의나 과실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포털업계는 `인터넷 댓글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불법물이나 음란물에 대해서는 자체적정신적인 충격을 주는 일명 악플은 분명 범죄이고 처벌받아야 마땅한 행태이지만 포털 사이트의 법적인 책임은 전혀 없다. 단지 일부 악플러에게 책임이 따를 뿐이다.대학생 28.4% "나도 악플 달아본적 있다"2007-06-16 10:30:13[마이데일리 = 이은주 기자] 대학생들은 인터넷 댓글 문화가 '수준 미달'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실제로 악플을 달아본 경험을 가진 대학생도 10명 중 3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아르바이트 전문 구인구직 포털사이트 알바몬이 최근 남녀 대학생 518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댓글 문화’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의 68%는 ‘현재 인터넷 댓글 문화는 수준이 떨어지는 악플러들의 천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다양한 누리꾼의 의견을 교환하는 여론 창구'라는 의견은 20.3%에 불과했으며, 약 8%의 응답자는 ‘그저 즐기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또 하나의 놀이문화일 뿐’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댓글 문화가 수준 미달’이라는 응답이 남학생 61.7%에 비해 여학생에게서 약 12%가량 더 많이 응답돼, 남학생보다는 여학생이 인터넷 댓글 문화에 부정적인 것으로 드러났다.실제로 응답 대학생의 29.2%는 ‘드라군 놀이, 순위 놀이 등으로 대표되는 댓글 놀이를 위해’ 댓글을 달아본 적이 있으며, 28.4%는 ‘연예인, 정치인 등 특정인을 비하하기 위한 악플’을 달아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악플 경험도 많았는데 25세 이상 대학생은 18.3%가 ‘악플을 달아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데 반해 19~20세 대학생은 38.2%가 악플을 달아본 것으로 나타났다.그 외 자신이 작성한 글의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소위 ‘낚시용 댓글’을 달아본 적이 19%, ‘게시물과는 관계 없는 특정 제품이나 행사 등을 알리기 위한 홍보성 댓글’도 11%가 경험했다.한편, 인터넷 댓글 문화가 정화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타인을 향한 배려(남: 37.4%, 여: 45.6%)’라고 입을 모았다. 2위는 ‘인터넷 실명제
묵자의 비유련을 읽고....묵자의 비유하편은 유가를 욕한 문헌으로 후기에서 말기의 것을 알려져 오고 있다.묵자의 사상과 유가의 사상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알면 그것의 이해는 쉬워진다. 그들의 사상의 공통점은 인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묵가의 사상은 "맹목적인 사랑"이며 유가의 사상은 "차별적인 사랑"이다. 유가의 사상은 가족 중심에서 친족중심에서 펴져나가는 사랑이며, 차등적 사랑이다.(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말이 단적인 예이다.)그에 비해 묵가는 차등적 사랑이 아닌, 무차별적인 사랑이다. 묵자의 사상의 근본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원칙을 고수 많은 사상들과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으나 유가와는 달리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사랑해야 한다는 이념이며 유가는 차별적인 사랑 주장, 묵자는 차별 없는 사랑을 주장 하는 것이 특징이다.이 학문은 지나치게 절약과 검소만을 내세우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완전히 실천에 옮기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그러나 생산의 소중함과 생활의 검약함을 강조한 내용은 버릴 수 없다.묵가의 사상은 유가와의 대결의식에서 나온 만큼 유가와 비교하며 살펴보면 이해가 빠르다.1.겸애설 : 유가에서는 효제사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족을 중심으로 한 차등적 사랑을 말하고 있는 반면, 묵가에선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즉 박애주의라 할 수 있다.2.天志 尙同說 : 그러니 겸애설을 주장하려면 조그만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더 큰 범주에서 사랑을 논해야한다. 따라서 하늘의 뜻(天志)에 기준을 둘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대표적 인물로 하나라 우왕을 설정하고 그의 백성을 향한 희생적 사랑을 하나의 모범으로 삼는다. 우왕과 같은 성인이 그들이 닮고 싶어하는 모델이 되므로 그들은 아랫사람이 윗 성인의 뜻과 동일하게 행동할 것을 중시(尙同)하게 마련이다.3. 非功 非儒 非樂說 : 이렇게 타인을 위해 자신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갈아서라도 봉사하고자 하는 열의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은 남을 공격하는 걸 비난했으며(非功) 당시 허례 허식에 젖은 유학자들을 비판했으며(非儒) 백성들은 고통받는데 음악을 즐기며 사치를 일삼는 행위를 비판(非樂)할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다.묵가의 사상은 선진유가가 가지고 있었던 원래의 정수를 계승하면서도 당시 유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현실적 문제들을 개선하고자 했다 할 수 있겠다.참고로 묵가의 비공을 얘기하면서 그들의 뛰어난 무기제작술을 언급할 수 있다. 전쟁을 막기 위해 그들은 말뿐이 아닌 실제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묵가가 빨리 사라지게 된 것은 유가가 가지고 있었던 유연함과 보편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자와 묵자는 다 같이 춘추전국시대의 사회적 상황을 ‘사회적 위기’로 파악했다. 공자와 묵자는 현실 인식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묵자는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인식을 보더라도 묵자가 기층 민중의 고통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자는 서주이래의 예악에 나타난 귀족 중심의 통치 질서를 새로운 지식인의 자기 수양과 덕치의 이념을 통하여 회복하려고 노력했던 반면, 묵자는 종래 귀족 지배 계층의 행동 규범인 예악을 철저히 부정하고 유가의 덕치 이념 대신에 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인민의 협동적 연대와 경제적 상호 이익을 통하여 사회를 새롭게 조직하려고 했다, 유가와는 달리 숙명론을 배격하고 인간의 실천 의지, 즉 힘을 강조한다. 실천 의지를 추동하기 위한 장치로서 귀와 신의 존재를 상정하고, 그리고 천자의 절대적 통치권을 주장한다. 만민 평등의 공리주의와 현자 독재론을 표방한다.
교육비평비평은 그 내용의 질, 상황조건과 선행조건의 인식에 달려있다. “비평의 목적은 예술작품을 지각할 수 있도록 재교육 시키는 것”이라고 존듀이는 말한다. 즉, 교육활동, 특히 교육의 실제와 관련된 개념이다. 교육적 감식안은 교육적 현상의 복잡하고 미묘한 측면들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그러한 접근을 통하여 교육 비평가들은 비평가로서 그가 기능하는데 필요한 내용을 획득한다. 비평가의 과제는 신비한 업적을 잘 수행하는것이다. 그림, 연극, 소설, 시, 교실, 학교, 수업행위의 질을 경험되어진 질을 설명, 해석, 평가하는 공적형태로 전환하는 재구성의 작업을 한다. 비평의 근원은 일상생활의 평범한 속에서 발견된다.교육비평은 기술, 해석, 평가, 주제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기술이란 어떤 장소 또는 과정을 독자들이 생생히 그려볼 수 있도록 해준다. 비평가가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려고 하는 그 교실이나 학교를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교육적 경험이나 사태의 미묘한 질적 측면을 추론적 언어로 드러내기 힘들 때는 비유나 상징 등과 같은 문학적 언어사용도 가능하다. 즉 초점을 제공한다. “보는 것을 학습”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해석은 무엇 무엇에 관해 언술화하는 기술과는 달리, 그것들을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 비평가는 자신들이 경험한 내용들을 서술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 내용들이 가지는 의미들을 밝혀내는 일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교육비평가들은 이론에 대해 일종의 발견적 개념을 가지고 일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비평가들이 이론을 가지고 일할 때, 그들은 이를 설명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사용한다.평가는 규준을 만드는 일을 한다. 그 목표는 단순히 학생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며, 그들의 삶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학교는 그 사명이 교육적인 사회기구 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의 중요성을 평가되는 그 교육적 가치가 허용되는 기준에 따라 좌우된다.주제는 비평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부터 주된 아이디어나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하나의 표본으로부터 학습한 바는 그것이 속한 부류와 관련 점을 가질 수 있다. 교육비평에서는 한 교실과 그 교실 속에서의 교사에 관해 이야기 한다. 교육비평에 등장하는 교실, 학교, 교사, 교과서 또는 건물은 그한 경우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실, 교사, 교과서, 건물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특수한 것은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부류의 하나의 표본이다.
전통 윤리-불교?붓다가 멸한 후 약 100년(혹은 200년)이 지날 때까지의 인도불교를 원시불교 시대라고 합니다. 이때 인도 불교는 전통적인 상좌부(上座部)와 개혁파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후 불교교단은 급속도로 분열하여 18개정도의 부파가 생기고 소멸하는 과정이 계속 됩니다. 이것을 으른바 부파불교시대라고 합니다. 이 시대의 사상적 특징으로부터 아미달마불교라고 불리는데요, 아미다라는 붓다가 설한 법을 고찰 연구하는 번쇄한 철학을 말합니다. 이를 소승불교라고 일컫기도 하고, 엄격하게 따지면 소숭이란 명칭은 객관적 정당성을 지니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후에 소위 대승불교 운동을 일으킨 사람들이 부파불교의 제학파의 전통에 대해서 자신들의 깨달음만을 추구하는 열등한 교설이라고 비판한 폄칭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불교운동을 담당한 부류들이 대승을 표방했다고 해서 부파불교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부파불교는 대승불교운동이 흥기한 이후에도 700년 이상 대승불교와 함께 존속하고 있었습니다.대승불교가 흥기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우선 교단 내적인 요소로서 기존 교단의 종교성이 희박해진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인도 전역에서 발전한 부파불교 교단의 승원 중심 생활이 지속되고 학문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실천이 형식화되면서 생생한 종교적 자각과 구제의 의욕이 저하되었던 것입니다.크게 내외의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종교적 자각을 통해 대승불교는 붓다의 본래 의도로 돌아갈 것을 표방하며 실천의 방법으로서 이타행을 강조하였습니다. 이타행은 단순히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대승불교의 공(公)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대승불교의 공사상은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실체가 없다는 사상에 다름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에 근거한 지혜로 집착없이 이타행을 하는 중에 자기의 해탈은 물론 타자의 해탈을 목표로 하는 실천적 사상을 내포하고 있습니다.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는 육바라밀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육바라밀의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대승불교의 실천방향은 사회적인 의미, 종교적인 의미로 채워져 있습니다. 세속을 떠나 따로 성스러움이 존재하지 않음을 드러내었는데, 이와 같은 세속과 성스러움의 일치사상은 대승불교 종교사상의 저변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그밖에 대승불교의 특징으로서 경전에 대한 신앙의 강조를 들 수 있습니다.?중관(中觀)사상대승 이전의 사상인 아비달마불교는 사상적으로 실재론적 세계관을 기조로 형성되었다. 중관(中觀)사상은 이러한 이론에 반대하며 등장한다. 공(公)을 기조로 중도의 진리를 관찰하는 중관사상은 용수에 의해 확립되었습니다. 용수는 모든 경전을 섭렵하고 대승불교의 사상을 확립하게 됩니다. 그의 대표적은 저술이 공의 철학을 완성한 「중론(中論)」입니다. 중론에서의 붓다의 근본사상은 연기설을 공의 입장에서 해명하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사물의 본성은 공이기 때문에 현상세계가 성립합니다. 이처럼 그의 공사상은 무자성(자립적인 존재가 아님)을 기초로 전개됩니다.용수가 이렇게 인연을 통해 공 혹은 개념적 세계를 드러낸 것은 「중론」의 목표가 당시 아비달마 불교의 실재적 세계관을 깨는데 있었기 때문입니다.이처럼「중론(中論)」은 만물이 인연에 의해서 생기함을 존재론적으로 해명하면서, 그러한 존재를 공으로 이해했습니다. 여기서 공은 존재론적인 공(空)의 실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은 비실재를 의미할 뿐입니다. 공이 실체화되지 않는 개념이라고 해서 허무주의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됩니다. 붓다의 연기설은 기본적으로 ‘일체가 있다’ 또는 ‘일체가 없다’라는 두 극단에 대한 중도를 제시됩니다.용수는 이와 같은 중도의 논리를 세간의 상식과 최고의 진실이라는 이제설을 바탕으로 설명합니다. 용수에 따르면 세간의 상식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최고의 진실은 설명되지 않으며, 최고의 진실을 따르지 않으면 열반을 깨우칠 수 없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공관(空觀)이라고 해서 세간의 상식을 부정하는 허무주의는 아닙니다.공을 실체화시키거나 또는 모든 존재를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양극단을 떠나 중도의 실천을 통해 깨달음을 완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중관사상입니다.?유식(唯識)사상유식사상은 요가(명상)체험의 결과로 만들어진 사상 체계입니다. 유식에서는 우리의 경험은 모두가 의식이며, 외계를 직접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외계를 있는 것은 빛의 파동인데 우리가 그것을 색(色)으로 지각하거나, 또는 외계에 있는 것은 공기의 파동인데 우리가 그것을 음(音)으로써 지각하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지각하는 것은 눈 혹은 귀입니다. 이것을 각각 안식(眼識), 이식(耳識)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대상화된 것은 눈과 귀에 갖추어진 인식 능력 또는 청각 능력이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외계의 대상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동일한 존재가 주객으로 분리된 것 외에 다름이 아니라는 것이 유식사상의 근본주장입니다.의식(허망분별)에 의해 외부에 추상화되어 존재하는 것, 언어로 파악된 것이 ‘변계소집성’입니다. 실재는 순간순간 내용을 달리하는 지각현상인 현세적인 식뿐이며, 인식기능조차 의식에 의해서 가립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의식에 의해 개념화된 것은 모두 가립된 존재형태로서 실재로는 없습니다. 여기서 인식의 허망성을 볼 수 있으며 가립된 존재형태는 연기의 2차적인 부산물일 뿐 실체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연기의 법칙에 의해 성립한 경험세계가 ‘의타기성’입니다. 총체적으로는 식(識)의 변화에 의해 연출되는 존재형태입니다. 즉 잠재의식속에 영향을 끼쳐서 서로의 힘에 의해 순간마다 내용을 달리하는 식이 생김을 의미합니다. 즉 인식의 허망성을 깨달으면 그것으로 중도의 진리는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어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정체험에 의해서 완성됩니다. 유식설은 바로 요가실천에 의해 직접 체험된 중도의 진리를 독자적인 술어를 사용하여 해명하고자 하면서 전개된 불교철학이론입니다.이와같이 중관, 유식사상은 대승불교의 기본사상인 공의 올바른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는 중도사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조는 불교가 중국에 전해지고 이해될 때에 그대로 계승되고 전개되고 되었습니다.▣ 인도 불교가 중국에 소개될 때 뱃길을 통하여 인도에서 직접 수입되거나, 중앙아시아를 통하여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국이 낯선 인도불교 교리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우선, 인도에서 쓰는 개념과 똑같은 개념이 중국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고유의 도가사상의 용어를 통해서 인도불교의 내용을 이해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공(空)개념을 무(無)로 대체하는 등의 격의 불교가 형성되기에 이르렀습니다.중국적 불교의 자기화는 교판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중국에는 내용을 달리하는 경전이 순서가 일정하지 않게 번역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리이해가 심화됨에 따라 교리해석도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여러 경전의 수준과 역할을 결정하는 교판은 붓다의 교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되었습니다. 경전은 나름대로의 취지가 있기 때문에 모두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동등하다고 평가됩니다. 그러나 이후 경전에 대한 이해는 각 경전의 수준의 차를 인정하며 그 수준과 역할을 그룹화 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교리 해석원리를 통하여 형성된 중요한 사상체계는 천태지의로부터 시작되는 천태사상과 지엄으로부터 시작되는 화엄사상을 들 수 있습니다.?화엄종화엄사상은 「화엄경」을 최고 경전으로 삼고 그 교리해석을 통하여 발전해 온 사상유형을 일컬으며 주로 화엄학파에 의해 연구되었습니다. 따라서 화엄의 근본경전이며, 화엄학파의 주장의 근거가 되는 화엄경 사상에 대해서 설명을 하겠습니다.「화엄경」의 의도는 부처의 깨달음의 세계와 거기에 이른 길을 설시(說示)하는 것입니다. 그럼 만큼 「화엄경」에는 우리들의 상식과 분별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사유방식이 나타납니다.첫째로 “존재하는 것은 모두 마음이 드러난 것이다”라는 사상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상식에 도전하여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세계 전체가 마음의 드러남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부처와 우리들 중생이 일체임을 논하고 있습니다. 결국 다른 모든 사람들과 모든 사물, 그리고 사물의 형상도 부처도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묘사해 낸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둘째로 “작은 것은 큰 것이며, 하나가 일체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적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엄경」에 따르면 하나의 미립자 속에 일체의 미립자와 같은 수의 작은 국토가 모두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긴 시간이 짧은 시간이고, 짧은 시간이 긴 시간입니다. 나아가 시작이 곧 완성입니다. 즉 구체적인 사물과 사물의 형상이나 시간 등의 하나하나를 결코 독립적 실체로 파악하지 않고, 모든 존재는 그 밖에 모든 존재 내지는 전체와 끝없이 관련되고 서로 통하며, 서로 작용하고 서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화엄경이 불교의 최고 진리를 교시한 것이라고 믿는 화엄종은 유심연기와 법계연기를 교의로 내세웁니다. 유심연기는 서로 의존하고 관계되는 연기의 세계에 있어서 그 통일적 중심을 관찰하고 터득하여, 그것을 진심 또는 견실심이라 부르고, 이에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연기라고 하지만, 논리적인 의존 관계를 중시합니다.이렇게 화엄사상은 교리해석원리를 통하여 모든 교설을 「화엄경」내에 포섭시키는 원리를 구성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화엄의 세계를 논합니다.?천태종법화사상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천태종은 천태 교판인 오시와 팔교에서 그 주장을 뚜렷이 세우고 있습니다, 오시란 석가의 설법을 차례에 따라 다섯 단계로 배열한 것이고, 팔교는 경전에 대해 가치 비판을 한 것입니다. 초기에는 5교·9산의 신라 불교가 그대로 계속되어 교종과 선종의 대립이 있었는데, 집권적인 지배 체제의 확립과 함께 교종 불교가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교종은 신라 때도 통일과 화합의 사상으로 왕권을 옹호해준 불교였지만, 신라 말기 호족 세력의 기반 위에 선종이 유행하면서 한때 쇠약해졌으나, 왕권의 강화와 더불어 다시 세력의 신장을 보게 된 것이다. 고려는 교종과 선종을 동등하게 병립시키면서도 교종 우위의 정책을 썼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