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1 章 총력전의 시대세계대전 없이는 단기 20세기를 이해할 수 없다. 20세기는 총소리가 나지 않고 폭탄이 터지지 않았을 때조차 세계전쟁의 견지에서 살았고, 사고했다. 그 세기의 역사, 특히 붕괴와 재난의 초기역사 이야기는 31년간의 세계전쟁의 역사 이야기로 시작해야 한다.Ⅰ1914년을 기점으로 시작된 총력전의 시대는 모든 주요 열강과 대부분의 유럽 국가를 끌어들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이 유럽에 파병함으로써 20세기사의 양상을 결정지었다는 사실이다. 1차 대전은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삼국동맹과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이른바 ‘중구열강’ 사이의 유럽적인 전쟁으로 시작되었으나 직후 세르비아와 벨기에, 투르크와 불가리아, 이탈리아, 그리스, 루마니아, 포르투갈 등을 포함하는 큰 전쟁으로 발전했다.1차 대전의 대표적인 전쟁터였던 서부전선에서 프랑스는 징병연령 남성의 20%를 잃었고 500만 명 내외의 영국 군인들이 전쟁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확률도 거의 비슷했으며 독일의 경우 사망률은 낮지만 징병연령집단이 훨씬 큰 규모였기 때문에 사망자 수는 비슷했다. 이러한 사태는 전쟁과 정치를 잔인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1차 세계대전 때에 복무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 확고한 전쟁 혐오자가 되어 있었다. 반감이 적었던 사람들조차도 목숨을 건 용기로 살아남았던 체험으로 인하여 여성 및 싸우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해 야수적인 우월감을 느꼈고, 이러한 우월감이 전후 극우파의 초기대열을 지배했다. 히틀러는, 일선의 군인이었던 것이 인격 형성기의 체험이었던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정반대의 반작용도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전후에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가들에게는 1914~18년과 같은 피바다가 더 이상 유권자들에 의해 용인되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이는 단기적으로 독일인들이 1940년에 서구에서 벌인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와 영국에 대해 승리를 거두는 데 일조했으며 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보면 민주주의 정부들은 자국 시민들의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먼저, 미국의 발전과 나머지 세계의 발전 사이의 불균형에 기인한, 국제경제의 불균형 심화가 그 첫 번째이다. 1914년 이전 세계 통화의 중심이었던 영국은 화폐가치의 안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으나 미국은 영국과 달리 세계가 필요하지도 않았고, 화폐가치 안정에의 노력이 아닌 자국의 이익 증대에 신경을 썼다. 두 번째는 세계경제가 지속적인 팽창에 대해 충분한 수요를 낳지 못했다는 점이다. 급증하는 생산성에 비해 대중의 수요가 이를 따라가지 못함으로써 과잉생산과 투기를 야기시켰고 이는 다시 폭락을 촉발시켰으며 수천 개의 은행이 파산하도록 만들었다.불황이 짧게 끝날 것으로 예상되지 않았거나 실제로 짧게 끝나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미래에 대한 미국의 자신감이 손상되었다면 그러한 위기의 효과는 극적일 수 있었지만 최악의 주기적인 불황이 조만간 끝날 것으로 보였고, 1932년 이후에는 최악의 불황이 끝났다는 신호가 갈수록 분명해졌다. 실제로 몇몇 나라의 경제는 크게 활기를 띠며 전진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예상된 경기고조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세계는 여전히 불황기였다. 이는 최대의 경제국인 미국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뉴딜 정책’은 자신의 경제적 전망을 실제로 따라가지 못했으며 37-38년에는 다시 불황이 발생했다.이 모든 일은 1930년대가 공업에서의 상당한 기술혁신의 시대였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벌어졌다. 실제로 한 분야에서 적어도 앵글로-색슨 세계의 전간기는, 사진이 들어간 현대적인 윤전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대중 라디오와 헐리우드 영화산업이 성공을 거둔, 두드러진 약진의 시기였다.Ⅲ1933년에는 이를테면 불황기에 소비자의 수요와 소비가 감소하는 경우, 이자율이 투자를 자극하는 데에 필요한 만큼 정확히 떨어짐으로써 소비자수요의 감소로 벌어진 격차를 증가한 투자수요가 메워줄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았다. 단순히 경제의 방임을 권고할 뿐인 경제학자들과, 디플레이션 정책으로 금본위제를 보호하는 것 외에는 정통적인 재정정책인 균형예산과며 움직이는 구조물로의 탈선인 구성주의는 곧 주로 비우하우스를 통해서 건축 및 산업디자인의 주류에 바르게 흡수되었다. 그러나 참신하기는 했지만 모더니즘 건축의 레퍼토리를 늘리는 역할 이상은 거의 하지 않았다. 다다이즘은 1916년에 취리히의 혼성 망명자집단 속에서 세계대전과 그것을 부화한 사회에 대한, 고뇌에 찼지만 빈정대는 허무주의적 항의로 구체화되었다.그러나 이 모두를 종합해서 본다면 이것들은 세계가 실제로 산산조각 나기 전에 고급예술에서 이미 일어났던 전위예술혁명이 확대된 것이었다. 격변의 시대에 일어난 이 혁명에 관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사실을 언급할 수 있다. 전위예술은 말하자면 기성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또한 전위예술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일상생활의 구조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전위예술은 아마도 혁명의 시대이래 어느 시기의 고급예술보다도 더 극적으로 정치화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 내내 전위예술은 서구에서조차 일반 대중의 취미와 관심으로부터 여전히 동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새로운 전위예술이 기성예술에서 중심적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 예술이 고전예술과 최신유행을 대체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 모두를 보충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문화문제에 대한 진지한 관심의 증거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당시 예술상의 새로움을 주창하는 모든 기수들이 찬미할 것은 실제로 영화와 재즈뿐이었다. 영화예술과 특히 그것의 가장 위대한 인물인 찰리 채플린을 찬미하는 것이 기본적인 일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위예술가들 자신이 특히 바이마르 독일과 소련에서 직접 영화제작에 뛰어들었다. 재즈는 미국 흑인들과 리드미컬한 당김음의 댄스 뮤직과, 전통적인 기준에서 볼 때 비인습적인 기악편성법의 일종의 결합물로서 전위 예술가들로부터 전반적으로 인정받은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 자체의 가치라기보다는 아직은 과거와의 단절, 근대성, 기계시대의 또 다른 상징으로서 인정받은 것이었다.상업영화에 대한 전위예술의 영향은 모더니즘이 일생생활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음제의 중심은 이제 미국에서 유럽과 일본의 경제로 옮아갔다. 냉전이 끝났을 때 미국의 경제적 헤게모니 중에서 남은 것은 너무도 적어서 군사적 헤게모니조차 더 이상 그 나라 자체의 자원으로 유지될 수 없을 정도였다.Ⅳ상호위협 및 극단정책 국면의 최종결과는 비교적 안정된 국제체제와, 양대 초강대국이 서로와 세계를 놀라지 않게 하기로 한 암묵적 합의였다. 1963년에 백악관과 크렘린을 연결하게 된 핫라인의 개설이 그러한 합의를 상징했다. 1960년대가 70년대로 바뀜에 따라 미국과 소련의 무역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전망은 밝아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밝지 않았다. 1970년대 중반에 세계는 제2차 냉전이라고 불리는 시대에 들어갔다. 제2차 냉전은 세계경제의 큰 변화, 즉 1973년부터 20년간을 특징지었고 1980년대 초에 절정에 달했던 장기적 위기의 시기와 일치했다.그러나 경제상태를 차치한다면, 상호관련된 두 가지 사태전개가 초강대국간의 균형상태를 변화시킨 것으로 보였다. 베트남과 중동은 미국을 약화시켰다. 비록 그 자체가 초강대국간의 세계적 균형상태나 지역적인 여러 냉전무대에서의 대결의 성격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유럽 상황이 그리도 명백히 안정되었고 경계선이 그어졌으므로 사실상 두 초강대국 모두 자신들의 경쟁무대를 제3세계로 옮겼다.1980년에 선출된 레이건 대통령의 정부가 정력을 바쳤던, 악의제국에 대항한 십자군은 세계적인 세력균형을 재확립하려는 실제적 시도로보다는 미국을 위한 상처 치료로 계획된 것이었다. 소련은 레이건 체제가 끝난 직후에 무너졌으므로 미국의 정치평론가들은 자연스럽게, 그 나라가 전복된 것은 소련을 쳐부수고 파괴하자는 호전적인 운동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었다. 미국은 냉전을 이끌어서 승리했고 자신의 적을 완전히 패배시켰다. 우리는 1980년대 이러한 견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미국 정부가 소련의 붕괴를 기대했다거나 상상했다는 흔적은 없으며, 그러한 붕괴가 일어날 것에 어떤 식으로든 대비했다는 흔적도 없다. 냉전은 두 초운 사실은 현대화하는 지구 전체에서 작건 크건 동일한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변화는 대중문화, 보다 특정하게는 청년문화라는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졌다.Ⅱ이혼, 사생아 출산, 편부 및 편모 가정의 증가가 성간의 관계의 위기를 나타낸다면 뚜렷하고 유별나게 강력한 청년문화의 부상은 세대간의 관계의 깊은 변화를 나타낸다. 중국을 제외하고는 급진적 청년들을 지도한 것은 동년배집단의 성원들이었다. 세계규모로 일어난 학생운동의 경우가 그랬을 뿐만 아니라 1968~69년의 프랑스와 이탈리아처럼 이 운동이 노동자의 대대적인 반란을 촉발시킨 경우 그 반란을 주도한 자들 역시 청년 노동자들이었다.새로운 청년문화의 참신성은 세 가지 점에 있었다. 첫째, 청년기는 성년기의 준비단계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한 인간이 발전하는 과정의 최종단계로 인식되었다. 두 번째는 첫 번째에서 나온 것으로, 즉 청년문화가 선진시장경제국들에서 지배적이었거나 지배적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렇게 된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청년문화가 이제 구매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고, 또한 각각의 새로운 성인세대들이 자의식적인 청년문화에 속한 채 사회화되었고 그러한 경험의 흔적을 지녔기 때문이며 특히 놀라운 속도의 기술변화 덕분에 실제로 청년층이 보다 보수적인 또는 적어도 보다 적응력이 떨어지는 나이의 사람들에 비해서 상당한 이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시사회의 새로운 청년문화가 가지는 세 번째 독특성은 그 문화의 놀랄 만한 국제주의였다. 청바지와 록 음악은 그것이 공식적으로 용인된 모든 나라와 1960년대부터의 소련처럼 용인되지 않은 일부나라에서 현대적 청년의 상징, 즉 다수파가 될 운명의 소수파의 상징이 되었다. 이제 대중들을 움직이게 된 유행의 힘은 동년배집단 내에서의 압력에 의해서 증대되었다. 전지구적인 청년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시장에서의 독립적인 힘 덕분에 젊은이들은 정체성의 물질적, 문화적 상징들을 더욱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Ⅲ청년문화는 풍속과 관습, 여가를 보내는 방식 그리.
풀무원 건강식품의중국시장 마케팅 전략- 목 차 -□ 서 론1○ 프로젝트 개관1○ 건강기능성식품 시장현황2○ 기업 및 제품 소개3○ 분석 및 평가6□ 중국시장 환경분석7○ 일반사항7○ 관련사항14○ 경쟁업체 분석19□ 마케팅 전략 수립20○ S.W.O.T 분석 및 목표 도출20○ S.T.E.P21○ 마케팅 믹스(4P)24□ 결 론30붙임#. 관계법령서 론□ 서 론○ 프로젝트 개관건강기능성식품이란 인체에 유용한 기능성을 가진 원료나 성분을 사용하여 정제, 캅셀, 분말, 과립, 액상, 환 등의 형태로 제조, 가공한 식품을 말한다. 국내에서 건강식품의 개념은 건강보조식품, 특수영양제품, 인삼제품 등으로 구분되었으나 2002년 건강기능성 식품 법률이 통과되면서 이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일원화되었다.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경제성장, 평균수명의 연장 등의 요인으로 인해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고, 이에 따라 건강기능성식품의 시장규모도 꾸준히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비약적인 경제의 성장과 함께 일부 대도시에서는 건강식품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본 보고서는 국내 식품업계의 선두주자 중 하나인 (주)풀무원의 건강기능성식품을 중국으로 진출시키기 위해 먼저 국내?외 시장의 동향과 해당 기업 및 제품군의 특성을 살펴보고, 중국 시장에서의 각종 환경요인들을 분석한 후 성공적인 진출을 위한 마케팅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건강기능성 식품의 종류 >구 분중분류품목군건 강기능성식 품건 강보 조식 품)정제어류(뱀장어 EPA/DHA)로얄제리효모화분스쿠알렌효소유산균배아포도씨유조류(클로렐라/스피루리나)옥타코사놀식물추출물 발효식품버섯매실추출물키토산감마리놀렌산베타카로틴뮤코라당,단백식품알로에대두레시틴염록소자라알콕시글리세롤프로폴리스특수영양식품)영양보충식품식사대용식품인 삼제품류농축인삼류인삼차류당침인삼농축홍삼류인삼통?병조림류인삼캅셀(정)류인삼분말류인삼과자류기타인삼식품인삼음료홍삼분말류홍삼차류홍삼캅셀(정)류홍삼음료기타 홍삼제품다 류침출차(녹차 등)추출차 3.22%를 점유하고, 이는 북부연해지역의 1/6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도시민 거주민의 구매력은, 남부연해지역에서 가장 높고, 동부연해와 북부 연해지역이 그 다음이며, 황하중류지역이 가장 낮다. 2001년, 남부연해지역 도시 인구의 1인당 평균 수입은 9,510元이고, 1인당 평균 소비지출액은 7,255元이다. 가장 저소득 지역인 황하중류지역의 도시민 1인당 평균 수입은 5,364元이고 1인당 평균 소비지출은 4,225元으로, 남부연해지역의 56%와 58% 수준에 머물렀다.8개 지역의 농촌 주민의 구매력은 도시민 구매력간의 차이보다 크다. 2001년, 8개 지역의 도시민 1인당 평균 수입의 표준편차는 0.6158로, 농촌 주민 1인당 평균 순수입 표준편차 0.9592보다 낮다.? 정치?법률적 환경? 정치형태구 분내 용정치체제및정부형태? 인민 민주주의 국가 : 노농(勞農)연맹에 기초한 인민민주주의 정부? - 정치지도체제는 크게 "당(黨)"과 "정(政)"으로 나누어지는데? - 당은 "중국 공산당"이, 정은 "국무원(國務院)"이 대표하고 있음국가원수(실권자)? 호금도(주석)? 온가보(총리)입법부? 전국인민대표대회? - 우리나라의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입법기구로 헌법상 국가최고 의결기관임.? - 실질적인 권력은 당에 종속되어있는 상징적인 존재로 각 성, 직할시, 자치구,인민해방군 대표로 구성되며 임기는 5년, 매년 1회 대표 전원이 북경에서? - 전체회의 개최정 당? 공산당 이외 표면적으로는 수 개의 정당이 병존하나 실제 유명무실한 존재? - 국민당혁명위원회, 민주건국회, 민주촉진회, 농공민주당, 치공당 등※ 자료원 : 주중대한민국 대사관? 외국인 투자정책 및 제도? 외국인투자 산업정책중국의 외국인 투자산업 지도목록- 중국은 '외국인투자 방향지도 규정('02.04.01 시행)'에 근거, '외국인투자 산업지도 목록'을 개정?공포하고 '02.04.01일부터 시행 중- 외국인투자영역을 장려, 허용, 제한, 금지로 분류하여 총 371개 항목을 열거하고, 장려항목의 시설육능력3. 한류열풍4. 두터운 아동시장?노인시장위협(T)1. 마케팅 노하우 부족2. 높은 원가비중3. 유통경로 개척경험 미흡4. 불법 제조업체 난립강점(S)1. 추출?정제 기술의 우위2. 다양한 제품구색3. 건강기능성 식품 전문업체조속한 시일 내 중국시장 진출하이엔드 & 터치 마케팅 가능적극적인 현지 홍보활동현지 수급/생산을 통한 원가절감제휴업체를 통한 마케팅약점(W)1. 후발업체로서의 불리함2. 브랜드 인지도 전무3. 경영자원 열세(침투가격 불가)브랜드 이미지 형성일관된 가격전력(중?고가)콩 제품 중국진출 후 시너지효과기업 이미지 제고 필요마케팅 역량 갖춘 파트너 모색중국의 건강기능성 식품시장은 중국 경제의 성장과 함께 ‘생약의 과학화’라는 정부정책과 맞물려 지속적으로 그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이미 다수의 해외 거대 기업들이 중국시장에 진출하여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지만 점유율 1위인 암웨이의 시장지분도 20%가 채 되지 않는 등 산업의 지배구조는 아직 정확히 굳혀지지 않은 상황이다.풀무원의 경우, 2~3개의 주력상품과 소수의 주변상품만을 판매하는 기존의 기업들과는 달리 제품의 종류가 매우 많아서 고객의 다양한 니즈에 접근하는 것이 용이하며, 폐지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네트워크 판매에 대한 규제가 지난 11월 중국 정부의 발표에 따라 지속됨으로써, 선두기업인 암웨이의 날개는 아직 묶여있다고 볼 수 있다.이러한 상황에서는 유망한 파트너를 모색하여 현지시장에 진출, 부족한 제품 인지도를 형성함으로써 가능한 한 조속히 시장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회사인 풀무원 식품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전에 중국 시장으로의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만큼, 차후 기업 이미지 광고나 브랜드 이미지 제고 등에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경쟁사들의 경우처럼 유통업체나 제약회사 등이 아닌 순수 건강기능성 식품업체라는 측면에서도 현지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모든 고객층을 타겟으로 하는 일반적인 식품이 아니라 잠재성이 큰 노인시장과 아동제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순서에 따라 세가지만 간단히 짚어봄으로써 프로젝트를 정리하고자 한다.첫 번째 문제는 중국 진출과 관련된 현지 정부당국의 법적 진입장벽 통과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식품산업 전반, 특히 건강기능성 식품업과 관련하여 현지 생산?판매를 위한 까다로운 인증절차를 요구하고 있다. 붙임으로 첨부한 여러 관련법규들을 충분히 숙지하고 진출전략 시행 이전에 가능성 여부를 타진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두 번째는 효과적인 파트너의 탐색 및 계약 수립이다. 동종산업체, 유통업체 등 제휴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기업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본 보고서에서는 풀무원에게 가장 부족한 능력이 마케팅 및 유통관리 능력이라 판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실버헤어社나 와하하社를 제안했지만 실제의 상황에서는 경영방침이나 지분구조 등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풀무원건강생활(주)는 2000년부터 TPM)을 시행해왔으며, 2002년에는 TPM 세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생산시스템의 우수성을 인정 받았다. 중국 시장에서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술력은 입증된 셈이므로 파트너 선정을 위한 교섭에서 이러한 기술력을 강점으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세 번째는 전무하거나 미미한 기업?제품 브랜드 인지도의 제고이다. 진출 초기부터 생산시설을 현지화하고 수많은 제품을 현지생산?판매하는 것은 ‘다양한 상품구색’이라는 기업 이미지 형성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따라서 현재 중국 시장에서 수요의 초과현상을 보이고 있는 비타민, 미네랄 제품군을 선점업체인 암웨이의 제품군과 유사한 수준으로 포지셔닝하여 진출시키고 아동용 종합비타민과 노인용 EPA 제품군을 수출 형태로 판매하다가, 적정 수준 이상의 시장지분과 브랜드 인지도가 확보되면 생산시설을 현지화하고 순차적으로 현지생산 품목수를 늘려가는 것이 합리적이다.Appendix건강기능성 식품중국진출 관계법령- 목 차 -붙임#1. 식품수리제품 목록에 기록해야 한다. 목록에는 수리일자, 수리일련번호, 제품명칭, 신고기관 및 생산기업 등의 내용이 들어간다. 수리된 순서에 따라 목록을 나열한다.제35조 심의, 평가기관은 매월 말 위생부에 수리한 각 종류의 제품목록을 보고하고, 심의, 평가회의에서 토론한 관련 의제를 제출한다. 위생부의 승인을 거치지 않은 경우, 어떤 개인도 심의, 평가회의가 평가한 제품과 토론의제를 수정할 수 없다.제36조 심의, 평가회의가 제출하는 심의 평가한 제품에 대해 관련규정에 따라 심의, 평가위원회는 자료 수정 또는 보충 후 재심의가 필요하다고 여길 시, 서면으로 된 의견을 제출한 후, 심의 평가기관에 돌려보낸다.제37조 심의, 평가기관은 본 심의, 평가회의가 종료된 날로부터 5일(근무일수 기준)안에 심의가 철회된 제품의 자료 심의를 끝낸다. 심의 의견은 위생부 “인체건강관련제품평가,심의의견통지서”의 방식으로 신고기관에 통지해야 한다.제38조 심의, 평가기관은 신고기관이 제출하는 수정 또는 보충된 자료를 접수할 때, 위생부 “인체건강관련제품수정및보충자료접수표”를 발급한다. 접수표에는 신고단위의 자료 송부 인원과 심의, 평가기관의 접수인원의 서명이 있어야 하고, 그 위에 심의 평가기관의 인장을 날인한다.제39조 심의, 평가기관은 신고기관이 제출한 수정 또는 보충된 자료를 접수한 날로부터 5일(근무일수 기준) 안에 관련규정에 따라 자료 심의를 끝내야 한다. 심의를 거쳐 요구사항에 적합한 제품은 다음 심의, 평가회의에서 심의 평가를 한다. 요구사항에 적합하지 않은 제품은 심의, 평가기관이 심의 의견을 “위생부 인체건강 관련제품 수정 및 보충된 자료 심의 의견통지서”의 방식으로 신고기관에 통지한다.제5장 심의, 평가회의 관련업무제40조 매 분기 세 번째 달 마지막 2주 안에 각 종류 인체건강 관련제품 심의, 평가회의를 소집하고, 매 분기 두 번째 달 전에 수리한 제품은 본 분기 심의, 평가회의에서 심의 평가하는 범위에 포함된다.제41조 위생부는 인체건강 관련제품 심의, 평가 전다.
1. 역사 음운론언어 과학도 다른 모든 과학과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철학사조의 영향 밑에서 성장했다. 19세기의 언어학은 그러한 이유에서 실증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시기의 언어학은 ‘작은 사실’의 고증이 주목표였다. 항상 언어를 원자론적으로 보는 경향이 다분했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 있어서 전체는 단지 부분의 합에 지나지 않았다.현대 언어학에서 음운 체계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음적 단위의 단순한 목록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 목록의 각 요소들은 그들의 전체적 구조나 기능과는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취급되었다. 이런 언어관에 의하면, 언어의 역사란 목록의 각 부분의 특수한 역사들의 총화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이 19세기에 융성했던 역사비교언어학의 기조이다.20세기에 들어서는 새로운 관점이 태동하였다. 이 시대 과학 정신의 특징인 구조주의가 19세기의 원자주의를 극복하게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언어란 그 구성 부분들이 집체가 아니라 하나의 체계로 이루어졌다.’(F. de Saussure)라고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프라그 학파는 이러한 영향을 받아 언어 체계의 구성단위들의 기능이 중요시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음소는 그들의 생리적, 물리적 성질에 의해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그 체계 내에 있어서의 위치와 그 체계의 다른 구성원들과의 대립 관계를 중점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이 새로운 관점은 역사적 연구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제는 언어사를 그 언어 목록의 한 부분들의 특수한 역사에 단순한 병치로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만약, 공시상에 있어서 전체를 떠나서 부분을 생각할 수 없고, 체계를 떠나서 음소를 생각할 수 없다면, 통시상에 있어서도 이것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어떤 부분적 변화는 필연적으로 그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체계 전체는 스스로의 균형을 재수립하기 위하여 특수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언어사 또는 음운사에 있어서 이러한 구조주의적 방법을 도입한 것은 프라그 학파에서 시작되었다. Saussur고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음운 체계의 균형 및 구조적 법칙에 관한 기술은 공시적 연구뿐 아니라, 역사적 연구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소장문법학파 이래 음운 변화는 크게 두 가지로, 즉 조건 변화 또는 결합적 변화와 무조건 변화 또는 자생적 변화의 두 범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세기의 음성학의 발달은 어떤 음의 변화의 직접적 조건이 그 음이 나타나는 음성적 환경에 있음을 쉽게 깨닫게 했었다. 즉, 어떤 음의 변화가 인접음의 영향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을 때 그것을 조건 변화라고 불렀던 것이다. 예를 들어, 국어의 움라우트(umlaut)도 모음 i의 존재에 말미암은 것이므로 역시 조건 변화이다.이에 대하여, 인접음에 있어서의 이런 횡적인 조건 없이 일어나는 변화는 일반적으로 무조건 변화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왜 그런지 그 조건을 밝힐 수 없는 변화는 무조건 변화인 것이다. 이리하여 음변화의 이유는 불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통시음운론의 본질적 공헌은 바로 이 종래의 연구가 손대지 못한 무조건 변화의 원인을 해명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통시 음운론은 무조건 변화의 원인을 기능적?구조적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현대 통시 음운론의 기초는 음운체계는 반드시 불안정의 요인의 개입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불안정의 요인이 없다면 음운 체계는 영원한 안정성을 가진 항구불변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불안정의 요인, 즉 음운 체계의 균형을 불균형으로 이끄는 요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의견이 다르지만, 어쨌든 이런 요인이 언어에 작용하여 음운 변화를 결과한다. 음운 변화가 일어나면 체계 자체에 기능적?구조적 요인이 발동하여 스스로의 안정과 균형을 되찾는 것이다. 결국, 음운 변화의 역사란 이런 불안정과 안정, 균형과 불균형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모든 음운 변화는 이런 인간의 표현상의 요청과 그것을 위협하는 작용과의 부단한 이율배반에 의해서 규정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2. 음운과정의 유라 한다. 음운 변화는 / /속에, 음성 변화는 [ ]속에 표시하는 것이 관례이다.국어에는 여러 가지의 음운과정이 있는데, 그것들은 대게 ‘교체, 탈락, 삽입, 축약, 도치’라는 다섯 개의 범주 중 어느 하나에 포함된다. 이러한 음운과정 중에 동화와 이화와 같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일어나서 음체계 일부에 개별적으로 나타나는 변화를 조건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변화가 특정한 음성적 환경을 전제로 하는 반면에 그런 환경에 구애되지 않고 어떤 음이 모든 위치에서 다 바뀔 때의 음운과정은 무조건 변화라고 한다. 즉, 음운 체계 전체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변화인 경우이다. 음운 체계 전체가 영향을 입는 무조건 변화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는 두 갈래로 나누어져 두 음이 한 음으로 될 때를 합류 또는 통합, 한 음이 두음으로 발달될 때는 分岐 또는 분화라 한다.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음운과정은 공시적이든 통시적이든, 형태음운적이든 異音적이든 소리 자체에 변화의 동기가 있는 한 단계의 변화를 말한다. 따라서 음운과정은 음운변동이나 음운변화로 실제로 타나났거나 나타날 수 있는 한 단계의 변화이며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조건 변화조건 변화에 반대되는 음변화로, 앞뒤에 오는 음들의 음성적 환경에 의하지 않고 무조건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적 현상이며, 자생적 변화 또는 자립변화, 고립변화, 산발변화라고도 한다. 가령 중세 국어의 전기와 후기 사이, 즉 14세기경에 일대 모음 추이가 일어났다고 믿어지는 무조건 변화가 있었다. 한 음소가 분화하여 두 음소가 되든가, 두 음소가 합류하여 한 음소가 되든가, 음소들의 대립 관계가 새로 세워지든가 해서 음운 체계에 변천이 일어나는 것이다. 무조건 변화의 원인에 대해서는 기능적?구조적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최근의 생성 음운론에서도 다루어졌다.□ 조건 변화위에서 설명한 무조건 변화와 대립된다. 어떤 음의 변화가 그 인접음의 영향에 의해서, 즉 앞 뒤 다른 음과의 음성적 환경에 의해서 설명될 위한 탈락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십일(十日) : 시방정토(十方淨土), 시왕(十王), 시월(十月)? ㅅ 탈락‘ㅅ’ 말음을 가진 용언 어간 중에는 활용 어미 ‘아, 어’와 결합할 때 ‘ㅅ’음이 탈락하는 것들도 있다. 이 현상은 음운 변천의 결과로 일어난 것이다. 중세어에서 ‘짓다’ 등은 활용할 때 종성 ‘ㅅ’이 ‘?’으로 변동하여, ‘지?’와 같은 형태를 취하였었는데, ‘?’이 음운 변천을 하여 그 음가가 ‘영’으로 바뀌게 됨으로써 위와 같은 변동 형태를 이루게 된 것이다.⇒ 짓+어→지어, 짓+으니→지으니, 짓+었다→지엇다.? ㄹ 탈락어간 말 자음 ‘ㄹ’은 ‘ㄴ, ㅂ, ㅅ, -(으)오, -(으)ㄹ’음으로 시작하는 어미와 결합하면 탈락한다. ‘ㄹ’ 음은 간극도가 3도가 되어 간극도로 보면 자음 중에서 모음에 가장 가까운 소리이다. 이 음을 어간 말음으로 가진 형태소와 혀끝소리를 어두음으로 가진 형태소와 결합할 때는 용언의 활용에서는 ‘ㄹ’이 반드시 탈락하고 그 밖의 경우는 불규칙하게 탈락한다. 이는 발음의 편의를 위해 일어난 음운 변천의 결과로 생긴 것이다.⇒ 불다: 부니 분 붑니다 부시다 부오 (불)둥글다: 둥그니 둥근 둥급니다 둥그시다 둥그오 (둥글)? ㅎ 탈락어간 말 자음 ‘ㅎ’은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나 접미사와 결합되면 탈락한다. ‘ㅎ’음은 어두 초성에서 후행하는 모음에 따라 [h], [?], [c], [x] 등의 다양한 변이음으로 실현되고, 어중 위치에서는 성대 진동까지 수반하여 [?]와 같은 변이음으로 실현된다. 음향음성학에서는 ‘ㅎ’음의 이러한 특징을 고려하여 성문마찰음을 아예 무성의 공명음 또는 무성의 모음이라고 보기도 한다. ‘ㅎ’음이 탈락하는 것은 ‘ㅎ’음의 이러한 조음적 특징에 기인한다.⇒ 낳은[나은], 놓아[노아], 쌓이다[싸이다], 많아[마:나], 않는[안는], 닳아[다라]? 중복자음 탈락(겹침닿소리 없앰)예사소리 ‘ㅂ, ㄷ, ㄱ’ 다음에 같은 계열의 된소리, 거센소리가 이어질 때는 예사소리는 수의적으로 탈락한다. 빠른 발음으로 말할 때는극이 거의 같은 두 모음이 결합할 때에도 성절 강세를 피하기 위해 두 모음 중 하나를 생략하여 발음하는 것이나 그러나 예외도 있어서 ‘ㅅ’ 불규칙 용언의 어간에서 ‘ㅅ’이 줄어진 경우에는 ‘ㅏ/ㅓ’가 탈락하지 않는다.⇒ 가아→가, 가았다→갔다, 서어→서, 타아→타, 타았다→탔다, 서어→서, 서었다→섰다? ㅜ 탈락‘푸다’ 동사의 어간 모음 ‘ㅜ’는 어미 ‘-어’와 결합하면 탈락한다. 어간 모음 ‘ㅜ’와 어미 모음 ‘ㅓ’가 결합되면 성절 강세를 피하기 위해, 간극이 작은 어간 모음 ‘ㅜ’가 탈락하는 것이다.⇒ 푸어→퍼, 퍼었다→펐다? 반모음 탈락‘ㅈ, ㅊ’ 음을 발음할 때는 이미 혀의 위치가 경구개 쪽에 접근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 자음들 뒤에 경구개에서 출발하여 다른 모음으로 가는 과도에서 발음되는 반모음 ‘ㅣ’가 오게 되면 이 반모음 ‘ㅣ’ 소리는 있으나마나 하게 된다. 왜냐하면 ‘ㅈ, ㅊ’를 발음하면서 조음 위치가 이미 반모음 ‘ㅣ’음을 발음하는 위치로 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자음 뒤에서 반모음 ‘ㅣ’가 오는 경우는 모음 다음에 자음이 두 개가 발음되는 것과 같아 발음이 힘들어 반모음 ‘ㅣ’가 수의적으로 탈락한다.⇒ 가지어→가져[가저], 찌어→쪄[쩌], 다치어→다쳐[다처], 계수[계수/게수], 사례[사례/사레]? ㅣ탈락 : ‘이다’의 ‘이’ 탈락서술격 조사 ‘이다’의 어간 ‘이’는 모음으로 끝나는 낱말과 결합할 때 수의적으로 탈락된다. 성절 강세를 피하기 위하여 모음 다음의 ‘ㅣ’음을 탈락시키기도 한다.⇒ 친구다, 친구냐, 친구지, 친구며, 친구고 사과다, 사과냐, 사과지, 사과며, 사과고? ㅡ 탈락어간 끝 모음 ‘ㅡ’나 ‘르’와 어미 모음 ‘ㅏ/ㅓ’가 결합되면 어간 모음 ‘ㅡ’는 탈락한다. 모음 ‘ㅡ’와 다른 모음이 결합되면, 성절 강세를 피하기 위해 간극이 작은 ‘ㅡ’모음이 탈락하게 되는 것이다. 어간 끝 음절 ‘르’ 뒤에 피동사화, 사동사화 접미사 ‘-이’가 결합하는 경우에도 역시 어간 모음‘ㅡ’가 줄면서 ‘ㄹ’이 앞 음절의 종성으로 올라붙고 ‘이다.
?좌우는 있어도위아래는 없다?를 읽고이 책을 접하게 된 계기는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결심에서 시작되었다. 대학에 들어온 후 무엇인가 굉장한 지적인 성장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학과 공부와 과제에 틈이 나지 않는다는 핑계로 몇 년이 지나도록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과목에 대한 지식은 어느 정도 많이 늘었지만 대학교에서 꼭 배워야 할 ‘세상을 보는 눈’을 아직 틔우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때쯤 무심코 신문에서 논술을 잘 써서 희망하던 대학에 들어간 한 고등학생이 책 100권을 읽고 세상을 보는 눈과 글 쓰는 능력이 달라졌다고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다. 그 일화를 접하고 나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대학공부 외에도 스스로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그때부터 신문이나 인터넷에 나와 있는 ‘대학생이 꼭 읽어야할 책 100권’에 선정되어 있는 책을 모두 읽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학기 중에는 책 한권 마음 놓고 읽을 만한 여유로운 시간이 나지 않았지만 짬짬이 공강 시간을 활용하여서라도 꼭 책을 읽어야겠다는 결심으로 이번 학기 처음 읽게 된 책이 바로 ‘좌우는 없어도 위아래는 없다.’라는 책이다.저자인 박노자는 원래는 러시아인이었지만 2001년 한국에 귀화하였다. 그는 지금 북유럽 선진국가인 노르웨이의 오슬로 국립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 책에서 박노자는 세계사와 한국사를 두루 꾀고 있는 해박한 지식과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노르웨이와 한국을 비교하고 있다. 서론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그의 주된 의도는 객관적 상황이 판이하게 다른 두 나라를 단순히 비교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의 뜻있는 이에게 ‘참고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그의 책은 사회민주주의가 튼튼하게 뿌리 내린 북유럽의 여러 바람직한 사례를 제시하고 그들의 한계 또한 지적함으로써 한국이 성숙한 민주주의의 국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유럽사회의 이면과 제3세계에 대한 이중 잣대이 책의 주 모델이 되고 있는 노르웨이의 대학에서는 학생과 교사를 구별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교사와 학생은 옷차림, 나이, 태도 등 눈에 띄는 특징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사회에서는 위아래를 구분하기 보다는 ‘만민평등’을 기치로 삼고 있는 세계인적 심성이 이미 뿌리를 내렸다. 이는 노르웨이를 비롯한 스웨덴,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의 튼튼한 사회민주적인 심성을 바탕으로 하여 이러한 평등주의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적 제도 또한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그러나 평등지향적인 노르웨이도 유럽의 일부이다. 많은 유럽인이 알고 싶어하지도, 인정하고 싶어하지도 않는 ‘이민족의 과학적 섬멸’의 전통을 근?현대의 서방 열강은 공유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사실 근대 서방 문명의 중심부라기보다는 주변부에 속해있는 나라였다. 지금은 상당한 부국이 되어 북유럽의 대표적 선진국가가 되었지만 노르웨이의 ‘주변부’적 과거는 ‘중심부’ 문물에 대한 열등의식과 흠모를 생겨나게 하였다. 이러한 과거의 ‘중심부 지향주의’를 근저로 하여 대다수의 노르웨이인들은 비서구 지역을 ‘위험한’장소로 보는 전통적인 서구 중심의 문화의식을 가지고 있다. 제국주의의 압박과 강요로 인한 현대의 서구중심 질서의 재편에 사회민주주의를 가장 성공적으로 실현한 노르웨이 역시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실례로 제3세계와 노르웨이 기업들 간의 거래가 공정한지 여부를 감시하는 ‘노르워치’ 라는 민간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노르웨이 다국적 기업들은 제3세계에 진출하여 현지인 여성과 노무계약을 체결할 때 서류로 된 계약서조차 제대로 작성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노르웨이 기업들의 제3세계의 착취 실태가 이미 인터넷에 공개되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노르웨이 ‘제도권’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법과 정의대로 민주주의를 지키지만,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민주적 법과 전통의 형성이 미흡한 제3세계에서는 마음대로 또는 현지의 부정적 전례대로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서구 지역의 비민주성을 그토록 비웃는 많은 서구 사람들에게도 민주주의가 신념이기보다는 단지 사회의 관습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제3세계 사람들은 그들의 이중적 잣대에 따른 폭압적인 ‘질서 세우기’아래 고통받고 있다.저자는 이러한 서구의 제국주의에 따른 비서구권에 대한 폭력과 억압에 이어서 근대화를 겪은 나라라면 거의 어느 나라나 이러한 폭력적 단체주의를 이용하여 인간을 훈육하고 그러한 폭력적 심성을 체화하도록 하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학교나 사회 심지어 가정에서도 이루어진다. 사회 곳곳에서 인간에게 원래 내제되어 있던 폭력성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폭력적 지배와 억압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지배층의 ‘배려’에 익숙해지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피지배층 역시 폭압적 그물망에서 빠져나올 생각도, 노력도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이렇게 체화된 ‘폭력성’은 민중의 심성에 자리 잡아 지배를 받는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자기가 누군가보다 좀더 유리한 입장에 놓여있을 때 어김없이 진가를 발휘한다. 예를 들어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비서구권 계열의 외국 산업노동자들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것은 위, 아래 계층의 구별이 없다. 폭력적으로 차별받고 자라난 인간은 그 자신이 그 세계를 깨어버리고 다시 태어나려는 고통, ‘아프락시스’를 겪지 않는 한 그 굴레 안에서 또 다른 누군가를 차별하고 억압한다.이러한 폭력과 억압의 역사에서 벗어나 진정한 탈근대, 탈현대의 역사를 쓰려면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겠다. 이 시점에서 폭력과 유혈로 점철된 ‘살육의 역사’를 거부하기 위하여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지배층의 폭력에서 해방되기 위한 비폭력적인 저항의 역사에 대하여 고찰의 시간을 갖는 교육을 받은 학생이라면 자신의 양심과 존엄성에 위배되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한 폭력과 살육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또한 이러한 ‘폭력 거부’의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단단히 뿌리내리기에 부적합한 한국의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풍토의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은 제국주의의 침략과 지배에 의해서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편입되었다. 이러한 굴종의 역사는 해방과 함께 청산되지 못하고 식민지엘리트의 군력과 폐습을 그대로 대물림한 채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의 진입을 방해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한국의 지배층이 한 나라를 병영화 하여 군 지휘부의 이미지로 군림하여 왔던 것은 이러한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거시적으로 보아도 한국은 지금도 서구인들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봉건적 자본주의 아래에서 고통받고 있지만 그러한 은밀한 억압을 의식하고 있는 일부 깨어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에 관하여 일상생활에서 느끼고, 거부하려는 의식을 가진 일반인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것은 물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그러한 문제를 이슈화시키고 ‘폭력 거부’의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문제의식 함양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사상과 문화에 대한 개방성사상이나 문화의 다양성이 개방되어 있는 노르웨이에는 총인구가 우리나라 부산 인구와 비슷한 430만 명에 불과하지만 무려 84개의 일간지가 있다. 그리고 타블로이드를 제외한 종합 일간지의 이념과 사상은 놀라울 만큼 다양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발행부수가 5,000~2만 부에 불과한 대다수 일간지의 생존 비결이다. 인기 없는 소형 신문일 수 록 국가가 반대로 좀 더 많은 발행경비를 지원해 주는 보조금 제도를 가지고 있는 이 나라에서는, 심지어 정부를 ‘자본가 계급의 시녀’라고 부르는 노동자 공산당 기관지에도 꽤 많은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 같은 자유가 지켜지는 이유는 정부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이곳의 ‘법’이자 ‘관습’ 때문이다.우리나라에서도 노르웨이와 같이 국가가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지켜주는 현실적 ‘법’과 ‘제도’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와 민중이 서로 협력하여 과거와 현재의 식민주의적 오점을 청산하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에 굴종하는 노예 심성을 없애지 못할 것이다.물론 저자가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의 긍정적 모델로 제시하는 노르웨이 역시 완벽한 이상형은 아니다. 또 환경도 역사도 너무 다른 한 나라가 현재 바람직한 모습을 띠고 있다고 무조건 따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외세의 침략과 분단의 상황이라는 핑계를 대며 민족주의를 표방하여 개인의 양심과 존엄성을 짓밟는 과거는 청산되어야 함이 분명하다. 또한 세계화 시대에 알맞은 민족주의를 넘어선 보편적 인류애를 가진 세계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민족과 국가의 진정한 번영의 길이기도 하다.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한 선진국가의 장점과 단점을 비교적 세세하게 다룸으로써 타산지석의 예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저자의 의도가 ‘자료제공’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어 국가의 역할이 사회 전체로 확대되어 대형 ‘복지사무소’의 역할을 하고 있는 노르웨이라는 나라를 눈여겨보았으면 한다. 지금까지도 봉건적 자본주의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는 많은 한국의 민중이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을 기르고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돋움하기 위하여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하지만 사실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람직한 사회민주주의가 우리나라에서 실현되기까지는 멀고도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해방과 분단의 역사를 겪으면서 이데올로기의 ‘사회’라는 단어에 무의식적 혐오감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의견은 물론 장점이나 단점을 토론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기까지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사회주의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실제로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와 비슷한 이데올로기이지만 사회민주주의는 평등이나 사회적 책임을 보다 중시하는 민주주의의 한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배척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는 없을 것이다.
第 1 章근세 일본유교의 발전에 있어서 소라이가쿠(?徠學)의 특질 및 국학(國學)과의 관련성1. 머리말 - 근세 일본 유교의 성립중국의 사회를 역사적으로 고찰해보면 가부장의 절대적 권위 하에 통솔되는 폐쇄적인 가족사회가 모든 사회관계의 기본 단위가 되고, 국가질서도 그 기반 위에 계층적으로 구성되며 그 정점에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가진 전제군주가 위치하는 형태를 나타낸다. 왕조가 빈번하게 교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역사가 특이한 변화 없이 늘 같은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그들의 사상에 깊이 뿌리내린 유교적 단합에 기인한다. 유교는 전국(戰國)시대의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논쟁 속에서 점차 그 체계를 갖추면서 전한(前漢)에 이르러 통일적인 국가질서가 확립됨과 동시에 관학으로서의 배타적인 지위를 차지했는데, 삼강오륜으로 대표되는 제반적인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하존비(上下尊卑)의 엄격한 구분을 주장함으로써 전제적 정치구조에 가장 적합한 사상체계였다. 즉, 그러한 이유로 국가의 흥망(興亡)에 관계없이 언제나 새 왕조에 의해 국교(國敎)적인 권위를 보증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일본에 유교가 전래된 것은 4세기, 백제의 왕인이 논어(論語)와 천자문(千字文)을 가지고 왔을 때부터라고 한다. 유교의 특성은 중국의 특성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지만 진정한 사상이며 피상적인 행동지침 수준의 논의가 아니기에 다른 나라인 일본에 수용될 수 있었다. 사상을 낳은 사회의 특수한 조건이 깊이 반영된 사상의 경우, 다른 사회에 적용될 때 현저한 추상화가 발생되는데 이 추상화 수준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일본에 끼친 유교의 영향력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 존재하지만, 그들조차도 유교의 전성기였던 도쿠가와(德川) 시대에 대해서만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전국(戰國) 시대에 형성된 근세 봉건사회에서 사무라이(武士)는 철포(鐵砲)의 전래로 인해 토지와의 직접적인 관련을 잃게 되자 가신단(家臣團)을 형성하여 영주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이 때의 세분화된 신분체계는 중국에서의 유교 형성시기와 유형적으로 비슷했기 대성자인 야마자키 안사이의 경우는 주자학에 대해 종교적인 존경을 품고 있었으며 개인수양에 관련된 부분을 특히 발췌하고 굳게 지키면서 문하생들에게 엄준하기 짝이 없는 훈련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주자학이, 보다 적절하게는 주자학적 사유방식이 가장 보편성을 자랑하던 시대는 17세기 초반부터 중반을 약간 넘을 때까지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는 막부 권력이 확립됨에 따라 전국(戰國)의 소요사태가 고정화되어가는 시기와 유사하다.관문(?文 / 칸분)으로부터의 향보(享保 / 교오호오)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일본의 사회와 사상은 큰 변용(變容)을 겪게 된다. 1666년 야마가 소코오가 주자학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유배된 것과는 달리 향보 년간에 주자학에 대한 비판을 감행한 소라이는 야마가보다 더 과격하고 투철한 내용으로 유교 자체에 대한 부정까지도 내비쳤으나 오히려 그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널리 인정받게 된다. 소라이가쿠에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적인 그것으로서의 야마가 소코오, 이토오 진사이의 학설을 살펴보고 그들이 마침내 주자학에 대한 회의에 이르게 되는 카이바라 엣켄을 검토해봄으로써, 반세기 걸친 주자적인 사유양식의 분해과정을 더듬어보기로 하자야마가 소코오는 처음에 전래된 송학에서 궁리(窮理)나 지경(持經)과 같은 실천도덕의 방법론에 대한 회의를 품고 새로운 유학의 흐름인 코가쿠(古學)을 제창하게 되었다. 궁리는 이의 초월적?형이상학적 측면이 부정되고, 곧바로 사물 그 자체에 가까이 갈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지경은 고요함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오로지 조용히 앉아있기만 하면 말없이 무겁게 가라앉아 눌리고 막힐 뿐만 아니라 좁고 얕게 되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소코오가 실천도덕에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힘주어 주장하는 것은 격물주의이며 이 때문에 주자학의 격물에 얽혀있는 적적, 관조적인 성격을 씻어내고 그 즉물성을 밀고 나가려고 한다. 이로써 송학의 낙관주의가 빠지기 쉬운 안이함에 대해 경계하게 되고 지속적인 노력의 동적인 실천과 힘써 행함을 강조하고 있다.소코오의배제과정과 밀접한 상응관계에 놓여 있다.우선 소라이에게서 길(道)이란 오로지 인간의 규범이었지 자연법칙은 결코 아니었다. 앞에서 우리는 진사이에 있어서 하늘의 길과 사람의 길의 연속성이 분해되어 우주론과 윤리학이 독자적인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바야흐로 하늘의 길은 사람의 길을 단순하게 유추한 것이라 함으로써 본래적 의미의 하늘에 길에 관한 논의는 그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신에 하늘은 알 수 없으며 신비한 것이라는 측면이 전면에 분명하게 떠오르게 되었다. 즉, 하늘은 앎의 대상이 아니라 공경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소라이에게 하늘이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에서 논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으며 그에게 있어서 하늘의 인격성은 실로 종교적인 신앙으로까지 높여져 있었다. 따라서 이기이원론, 기일원론 등은 지혜를 남용하여 인간의 질서로써 하늘의 질서를 헤아리는 불손함을 저지르는 일로 생각되었다. 바로 여기서, 즉 유교의 내부에서 그 정반대인 비합리주의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이다.그리하여 소라이에게 길(道)이란 오로지 성인의 길만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가 말한 성인의 길의 본질이란 나라와 천하를 다스리는 길이었으며 하늘의 명을 공경하고 천하를 평온하게 한다는 정치성에 있었다. 그의 개념에 따르면 인(仁)이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나 지극한 정성 따위가 아닌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설령 군주는 도리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만한 일이라 하더라도 백성들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기꺼이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이것은 분명 유교도덕의 가치 전환이다. 소라이가쿠에 있어서 정치적 사유의 도학적 제약이 이 정도로까지 배제된 것을 살펴보면 근세 유럽에 있어서의 과학으로서의 정치학을 수립한 영예를 군주론과 마키아벨리가 안고 있는 것처럼, 일본의 도쿠가와 봉건제 하에 있어서 정치의 발견을 소라이가쿠에 돌린다 하더라도 부당한 것은 아닐 것이다.소라이가쿠에게 길은 진사이에 있어서처럼 단순한 예술 그 자체를 위한 예술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학문이 아니며 학문의 공적인 영역은 오로지 육경에 나타난 좁은 의미의 성인의 길에 독점되고 있다. 그러나 주자학, 양명학, 진사이가쿠, 노장, 불교 등 모든 것들은 학문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되 사적인 영역에서 모두 그 존립을 허용하고 있다.이런 공?사의 구분은 학문적 대상에 머물지 않고 학문 그 자체의 성격에까지 스며들어간다. 성인의 학문은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편안하게 하는 학문인 이상, 정치적 지배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길을 만들고 제시하는 것은 지배자가 할 일이다. 따라서 학자의 일이란 제시된 길을 인식하고 서술하는 것에 한정된다. 주자학의 주장과는 정 반대의 입장이다. 당위(當爲)보다는 먼저 존재(存在)라는 소라이가쿠의 방법론은 실로 이런 입장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그의 성인 개념이 오로지 정치적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는 성인을 정치적 가치에 있어서 절대화하고 학자의 입장을 비정치화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지위를 비정치화 시켜버린 것이었다.이제 마지막으로 이런 사회적 상황을 눈 앞에 둔 소라이가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편안하게 하는 그런 학문을 구체적으로 적용시킨 정치 사회조직의 개조론을 살펴볼 차례가 되었다. 당시 사무라이들의 곤궁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문제가 되었던 바, 그는 단순한 통화 팽창책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보고 모든 사무라이들에게 농촌에 봉토를 주어 경제적인 문제의 해결은 물론 사회적인 문제까지 해결하려 했다. 이러한 제도의 확립은 바로 예, 악에서 길을 찾은 소라이의 기초철학을 구체화한 것이며 결코 제도만을 중시하는 법가적인 사상이 아닌 인간의 마음을 중시한 그 고유의 사유방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또한 그가 주장한 인재등용책은 그의 정치론 중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으로 기질이 바뀌지 않는다는 주장을 거기서 유감없이 활용하여 모든 사람의 개성을 충분히 발휘하게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는 봉로써 인격이 하늘과 이어져 피안성을 띠게 되어 인격적인 천에 대한 비인격적인 리의 구축이 완성되었다. 여기에 소라이가쿠와 노리나가가쿠의 사유방법이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 소라이가쿠는 단순히 신도 부정을 통해서 외면적으로 노리나가가쿠와 이어질 뿐만 아니라 근세 신도가 의거했던 유교사상의 범신론적 구성을 파괴함으로써 노리나가가쿠에 의한 구(舊)신도의 혁신을 내면적으로 원조해주었던 것이다. 조상신이 창시한 길이라는 사유구성으로 인해 노리나가가쿠는 하늘을 오로지 공간으로만 이해하였다. 하늘에 절대적 인격이 있다고 한 소라이가쿠의 사상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듯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라이가쿠를 노리나가처럼 초월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내재적으로 이해할 때 성인은 하늘에 이어짐으로써 일반인과 구별되는 피안성을 띠게 되고, 또 거꾸로 하늘은 성인과 이어져서 길을 근거지워주는 인격적 존재로 되어있는 이상, 소라이가쿠에 있어서의 성인, 내지 하늘의 체계적인 지위와 노리나가가쿠에 있어서 신의 그것과의 공통성은 부정할 수 없다.이처럼 소라이가쿠와 노리나가가쿠가 피안적인 인격에 궁극적인 근거를 두고 비인격적인 리의 가치규준성을 부정하는데 있어서 공통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보다 중요한 관련성이 생겨나게 되었다. 즉 소라이가쿠와 노리나가가쿠는 사유구조의 본질적 유사성이라는 기반 위에서 그런 성과를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특징적인 연관성을 갖는 것이다. 일본유교사에 있어서 주자학적 합리주의의 해체과정을 통해 점차 육성되고 소라이가쿠에서 최고도로 개화한 모든 성과들은 노리나가가쿠에 있어서 소라이가쿠의 마지막 제약이 제거됨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을 보게 되었다.이제 앞절까지 설명한 내용을 돌이켜보면서 간단하게 그런 성과를 검토해보기로 하자. 무엇보다 먼저 문헌학적, 실증적 방법의 발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소라이의 코분지가쿠(古文釋學)는 소라이가쿠 및 노리나가가쿠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인격적 실재에 대한 절대적 존신의 태도와 서로 안과 밖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길의 선험(先驗)성을 부정하고 그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