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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상문] 마리 앙투아네트
    화려함 속의 고독함, 비운의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베르사유 궁과 그에 반해 빈곤한 프랑스 시민들, 루이 16세가 집권했던 프랑스 절대왕정 시기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루이 16세의 아내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빠뜨릴 수 없다. 그녀에 대한 것이라면 어렸을 적 보았던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만화에서 사치스러운 왕비, 루이 16세를 놔두고 다른 남자와 바람피운 왕비라는 것이 전부이다. 물론 어렸을 적 기억이기 때문에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일반 대중에겐 착한 쪽 보단 악한 쪽으로 인식이 되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악녀로 인식되어 있던 그 왕비가 실은 다른 면도 많았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고, 이제부터 그녀의 알려지지 않은 다른 면들을 재조명 해보고자 한다.마리 앙투아네트는 모두가 알다시피 사치의 여왕이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치스런 생활을 한 데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략결혼에 의해 프랑스로 오게 된 마리 앙투아네트(이하 마리)는 자유분방한 오스트리아에서의 생활과 다른, 루이 14세가 정해놓은 엄격한 에티켓을 지켜야하는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힘들어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여러 명의 손을 거쳐 옷을 입어야 하고, 개방된 곳에서 식사를 해야 했다. 이런 거추장스러운 예법들과 베르사유 궁의 인공정원은 마리가 정말 싫어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마리에게 기댈 곳이라곤 없었다. 그의 남편인 루이 16세는 자물쇠와 사냥을 즐겨하며 마리에게는 도통 관심을 주지 않았고 신혼 초에는 부부관계도 갖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녀는 궁 생활이 계속될수록 외로움이 쌓여만 갔고, 그런 외로움과, 아이를 낳으라는 어머니의 재촉은 마리에게 압박으로 작용하여 사치와 향락으로 발전하게 되고, 그리하여 현재의 이미지가 굳혀진 것으로 생각된다.결국 나중엔 베르사유 궁을 떠나 아이를 낳은 기념으로 받은 프리아농 궁에 가서 생활하게 된다. 이곳에서의 마리의 생활을 보면 현재 그녀의 이미지인 ‘사치’가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영화는 베르사유 궁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궁에 두 아이와 함께 지내는 그야말로 어머니로서의 마리의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궁정에서 입고 지내던 화려한 드레스를 집어던지고, 편한 드레스를 입은 마리는 그 곳에서 양도 키우고 닭도 키우며 아이들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현대에 와서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그 동안의 이미지와는 다른 시각의 글들이 많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 중 하나의 시각이 바로 프리아농 궁에서의 마리가 아닐까 한다.영화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에 조명이 되어 있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중간 중간 루이 16세가 미국의 독립혁명에 원조를 결정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루이는 프랑스의 재정이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을 하긴 하지만, 영국과의 뿌리 깊은 관계 때문에, 프랑스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미국의 독립에 헌신적인 지원을 한다. 그러한 지원은 프랑스 재정의 파탄을 불러왔고, 결국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작 프랑스 자국민은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리고 있는데 미국의 독립을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썼던 것이다. 이렇게 재정파탄에 이르게 된 프랑스 궁정은 세금을 더 많이 걷게 되는데 1, 2계급인 성직자나 귀족신분은 세금면제라는 혜택을 부여받고 있었기 때문에 제 3계급인 평민이 막대한 세금부담을 껴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18세기 여러 계몽 사상가들에 의해 의식수준이 높아졌던 시민계급들은 자연히 제 3계급만 세금을 부담하는 구체제에 불만을 품고, 사회개혁을 요구하게 되며 혁명은 시작된다. 굶주렸던 시민들은 높아진 세금이 프랑스 재정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그것이 마리의 사치스러운 삶도 한 몫 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말을 실제로 마리가 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런 소문들은 프랑스 시민들의 미움을 사기에 충분했고, 바스티유 감옥을 쳐들어간 시민들은 베르사유 궁으로 눈을 돌려 돌격한다. 궁에서 불안에 떨며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있던 마리는 시민들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지만, 이미 혁명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있었다.
    독후감/창작| 2007.12.19| 2페이지| 1,500원| 조회(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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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시대 조선인의 생활상
    일제시대 조선인의 생활상처음 리포트의 주제로 우리 가족의 근현대사, 일제강점기에 생활하셨던 모습 등을 인터뷰하고, 자세히 듣고, 그 시대를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대에 사셨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모두 돌아가시고 일제 강점기를 경험했던 가족들이 부재하여 아쉽게도 인터뷰는 하지 못하였고, 그 대신 일제 강점기의 조선 생활상에 대해 조사하기로 하였다.이 자료를 준비하면서 우리 민족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한편으로는 거론하기 싫어하는 일제 강점기의 역사에 대해 조사하게 된 동기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태조 이성계가 즉위한 것이 1397년, 조선이 처음 건국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이다. 한일합방을 계기로 조선이 멸망했다고 한다면 조선은 약 100년 전까지 지속되었던 나라이다. 100년 전부터 600년 전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과거의 역사이지만 나는 조선시대에 대해 나름대로는 많은 부분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국사시간에 배웠던 조선의 건국과 멸망, 그리고 그 속에 수많은 왕과 사건들, 임진왜란·병자호란과 같은 잦은 전란과 그 속에서 이름을 떨쳤던 위인들을 통해 조선을 이해하고 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던 조선은 내 나라, 내 조상이라는 생각보다는 단지 신라, 고려와 같이 단지 과거에 존재했던 나라들의 하나로서의 나라일 뿐이었다. 실제로 그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떠한 사회를 이루며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심지어 알아야 할 필요성도 미처 느끼지 못하며 살아왔었다.전체적으로 이번 자료를 준비하면서 가장 관심을 갖게 된 분야는 조선의 서민생활과 경제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이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서민생활과 경제생활은 실제 그 시대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이전 교육과정에서 깊이 다루어지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생활의 경우, 국가정책을 중심으로 배웠기 때문에 이 책에서처럼 관찬기록이 아닌 고문서로관계에서 점차 수평적인 관계로 이동되어 갔다. 더구나 일본인이 대량 이입되는 1910년 이후부터는 종래의 전통적인 생활상과 개화의 물결을 타고 들어온 서구양식과 일본식이 혼합되어 나름대로의 특이한 양태가 1945년까지 지속하게 되었던 것이다. 서구 여러 나라들과 수교가 시작되면서부터 변화되기 시작한 생활상은 양복의 착용, 외래음식의 도입, 양식 혹은 일본식 주택의 건립 등에서 찾아볼 수가 있고 이러한 결과 우리의 기본적 생활습성도 보다 실용적이고 활동적인 것으로 변모하는 현상을 나타내게 되었다.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사회의식은 유교를 지도이념으로 하여 성립되었던 까닭에 농경과는 불가분한 관계가 성립되었고 따라서 이러한 의식의 흐름 아래에서는 경제의 유통과정도 자연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구 자본주의의 등장은 상공업 발달을 급속도로 진전시켜 종래의 경제구조에 커다란 변질을 일으키게 되었다. 즉,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던 경제가 조선시대에는 서울의 6의전, 대구의 약령시(藥令市) 등과 같은 정기시(定期市)나 좌상(坐商) · 행상(行商) 등에 의해 성립되었던 유통구조가 점차 시장의 형태를 갖춘 것으로 변하여 갔다. 더욱이 개항이후 면직물, 석유 등 외국상품이 유입되면서 부터 시장의 교환경제는 더욱 활발하여 이들 외국상품이 한국의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권력을 배경으로 하는 일본인의 대폭적인 유입으로 말미암아 한국시장을 거의 독점적으로 장악하게 되었고 교통 통신시설의 확충은 이들에게 보다 좋은 조건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1910년 이후 일제는 항일집회를 단속할 목적으로 각종 보안법, 집회취체령, 경찰범취체규칙 등 일련의 법령으로써 규제한 결과 지방의 중소도시에 재래시장인 1,458개소의 5일장만을 정책적으로 두어 교환을 행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서울 등지의 대도시에는 정치적 개입으로 인한 상가와 백화점이 형성되고 공설시장이 마련되어 일본인 상업자본가는 물론 이들과 결탁을 맺은 친일적 상인들의 거래가 활발해졌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 본적인 물품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생활의 변천에 따른 다소의 차이는 있겠으나 인간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1차적인 요소로서의 음식물 피복류 등과 문화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2차적 요소로서의 의료약품 및 기타 가정용품이 이들 범주에 든다. 1차적으로 인간의 본능적인 생활에 직결되는 음식물은 미곡 · 대맥 · 소맥 · 라맥 등의 곡류 중심의 주 식품과 육류 · 어류 · 채소를 중심으로 하는 부식품으로 나눌 수가 있다. 2차적인 것은 의약품 · 다류 · 청량음료 · 주류의 기호품과 그 외 연료 등의 가정용품이 속한다. 이러한 품목의 구분은 전통적인 의식주 가정생활에서 그 선을 그을 수도 있지만 1910년에서 1945년까지 일본으로 이출되는 수출품이나 한국으로 들어오는 수입품의 종목에서 확인해 볼 수 있겠다.이들 생활필수품은 일제가 만주를 점령하고 식민지화한 1932년 이후부터 식량 및 원료를 수출하고 반제품 또는 완제품을 수입하던 후진적이고 예속적인 경제구조에서 공업품 위주의 경제구조로 탈바꿈하면서부터 수요에 따른 공급의 차질을 빚게 되었다.즉 각종 섬유제품 · 식료품 · 일용품 등의 소비재를 수출통제대상에 포함시켜 이를 모두 군수물자로 돌림으로써 한국 내의 물자 사정은 극도의 궁핍에 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조선식량관리특별회계법(朝鮮食糧管理特別會計法) 조선석탄배급통제규칙(朝鮮石炭配給統制規則)(조선총독부령 제283호)등 법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점차 강화된 물자의 통제와 배급제를 실시하게 되었다.1912년 3월말 현재 서울에서 상설시장으로 매일 개시(開市)되는 시장의 수효는 11개소이며 1개소당 월 평균거래액은 44,004원이다. 이들을 다시 세분해 보면 주 식품(농산물) 328,821원, 부식품(수산물 및 축류(畜類)) 42,350원, 피복비 7,535원, 기타 가정용품 105,344원 계 484,050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경제계는 불황에 빠졌으며 1919년의 물가고는 최고조에 달하게 되었다. 따라서 일반서민생활이역적으로 비교해 볼 때 남대문 · 동대문 · 서대문 일대에서는 이른 새벽에 시장을 개설하는 조시(朝市)가 있어 과물(果物) · 각종 야채류 및 특용작물이 거래되었다. 마포를 통해 들어오는 생선류와 소금은 해안 부식품으로서의 일 항목을 차지하였고 서울 근교에서 재배되는 각종 야채류는 일상생활 부식품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취사연료 난방연료 등의 개발이 미비한 시대였으니만큼 시탄(柴炭)의 매매거래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이러한 시탄의 취급 거래는 광희문 밖 혹은 뚝섬 장작시장 등지에서 성립되었다.시대적인 조류에 의한 물가의 등귀는 해마다 급격히 증가하여 미곡가의 앙등은 현저하였으며 일반민중 생활상에 많은 위협을 주게 되었다. 1920년 6월의 평균 물가지수는 297이고 1921년 6월은 214, 1926년은 무려 700으로 급등하였다. 물가의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서 1914년 9월에는 시장규칙이 제정되었고, 1923년 9월에는 생활필수품에 대한 규정(칙령(勅令) 제40호)이 공포되었다. 공설시장은 이러한 물가 앙등을 조절해주는 완충지대로서의 의미로 이해될 수가 있겠다. 즉, 공설시장의 설치는 물가의 안정과 함께 생활필수품의 수요에 대한 공급의 책임을 전가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취급되는 물품은 곡물류 · 건어물류 · 청과류 및 채소류 · 조수류 · 장유 및 지물류, 기타 일용품으로 나누어 각 조합을 중심으로 판매되었다.한편으로 채소와 연료는 공설시탄시장 혹은 공설시탄채소시장에서 판매되거나, 가을의 김장철에는 일시적으로 개시되는 김장채소시장에서 거래되었다.? 의료 교육기관① 의학강습소, 경성의학전문학교의학강습소는 대한의원이 조선총독부의원으로 개편되면서 대한의원의 부설 관립의학교를 의학강습소로 그 이름을 바꾸었으며, 관립의학교의 학생 및 부속 시설들은 전부 그대로 인수하고 그와 함께 평양 동인의원 부속 의학강습소 학생들도 이 의학강습소에 전부 그대로 전학시켰다.그런데 1916년 4월 전문학교령에 의한 경성의학전문학교관제가 발주로 우리나라 의학자 또는 기독교 각 파로부터 파견된 외국인 의학자들로 충당되었다. 의학 교과서들도 미국 의학의 역술서들을 많이 채용하였다.③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이 의학부는 1926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수업연한은 예과(豫科) 2년 본과(本科) 4년 합 6년으로 되어 있었다.우리나라에서 6년제의 의과대학 교육을 실시하기는 이 의학부가 처음이다. 그러나 의학부의 제1학년 정원 60명 중에 우리나라 학생 수는 겨우 15, 6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 학생 수에 있어 다소 증가되기는 하였으나 일본인 학생 본위로 설치되었던 것이다.④ 경성여자의학강습소,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이 여자의학강습소는 처음에는 미국 여의사 홀박사(Dr. R. Sherwood, Dr. W. T. Hall M. D.의 부인)가 조선여자의학강습소로 경영해 오다가 다시 경성여자의학강습소로 고쳤다.그 후 홀박사가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의사 김택원이 그 사업을 인계하여 역시 같은 사인 부인 길정희(吉貞姬)와 함께 경영해 오다가 김종익(金鍾翊)의 기부재단(寄附財團)으로서 1933년에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로 승격되었다.이 학교는 우리나라 여의사들을 양성하였는데 교수진은 기초의학으로부터 임상(臨床) 각과(各科)에 이르기까지 거의 우리나라 의학자(醫學者)로 충당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의 재단(財團)으로 경영해 온 유일한 의학 교육기관이었다.⑤ 경성치과의학교,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1922년에 치과의학교로 시작되었다가 1929년에 치과의학전문학교로 승격되었다. 이 학교는 우리나라 치과의의 유일한 양성기관인데 전문학교로 승격되면서 일본인 학생들과 공학제도를 실시하였다.⑥ 지방의 의학교육기관가) 대구의학강습소, 대구의학전문학교이 의학강습소는 처음 대구철도병원인 동인의원에서 부설되었는데 졸업생을 보지 못하고 일본 강점을 당한 뒤에 그 학생들을 대구도립 자혜의원(慈惠醫院)에 그대로 인계하였다. 1928년에 이 강습소가 4년제의 전문학교로 승격되면서 일본인 학생들과 공학제도를 실시하였다.나) 평양의학강습소, 평양의학전하였다.
    인문/어학| 2007.11.03| 9페이지| 2,000원| 조회(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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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노조 정책의 기업경영 성과 - 삼성그룹을 중심으로 평가A좋아요
    Ⅰ. 서론우리나라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는 외국 경영자들은 우리나라를 “파업공화국”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이나 말레이시아보다 고급 기술인력 등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노조로 인한 비용이 만만치 않아 우리나라로의 추가 진출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비즈니스 시대에서 이러한 오명을 얻은 것은 경제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이러한 파업 대란시대에도 흔들리지 않는 조용한 기업이 있다. 바로 노조가 없는 기업 삼성이다. 하지만 무노조 왕국 삼성에도 노조 설립 움직임이 보이는 등 이에 관한 문제가 심심치 않게 제기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노동조합과 삼성의 “무노조 정책”에 대해 알아보고 문제점, 앞으로의 전망, 성공사례 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Ⅱ. 노동조합과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현황1. 노동조합이란.(1) 노동조합의 정의다섯 손가락은 하나하나로서는 그다지 센 힘이 못된다. 그러나 주먹을 불끈 쥐면 똑같은 다섯 개의 손가락이라도 센 힘을 갖게 된다. 이러한 단결의 위력이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노동자가 단결한다는 것만으로는 노동조합이 되지 못한다.그렇다면 노동조합이란 과연 무엇인가. 노동조합의 정의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영국의 ‘웹’부처의 정의가 통설로 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노동조합이란 임금노동자가 자기네의 노동조건 개선과 생활향상을 위한 목적을 갖고 자주적으로 조직한 항구적인 단체]이다. 우리나라 노동조합법 제 2조 4호에도 이와 비슷하게 [노동조합이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기타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한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2) 노동조합의 결성 절차▶ 초동주체의 형성 : 노조결성추진(준비)위원회의 구성노조결성을 위한 인원의 법적 제한은 없다. 다만, 노조의 유지를 위해 최소한 2∼5인 정도의 조합원이 필요하다. 노조결성을 준비할 중심인물들이 규합해야하며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최소한 3~5인으로 존재하거나 조직하는데 비해 기업별노조는 해당 기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기업별노조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주-일본의 기업별노조는 종신고용, 연공서열과 함께 일본의 3대신화로 종종 얘기되어왔다.)에 특징적으로 존재하고 태국, 말레이시아, 대만 등 일부 아시아 국가들에 기업별노조가 있다. 유럽의 경우 기업별노조는 회사노조(company union)로 취급되어 노조로 인정하지 않는다. 기업별노조는 노동자들이 기업 내 이익에 매몰되기 쉬우므로 기업의 틀을 넘은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한계가 있다.(4) 노동조합의 기능노동조합의 기능은 경제?사회의 변동에 따라 점차 다양화되어 가고 있는데, 그 기능은 크게 보아 다음과 같이 경제적 기능, 정치적 기능, 공제?복지기능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경제적 기능)노동조합의 경제적 기능이란 조합원의 경제적 권리와 이익을 신장하고 유지하는 기능을 말한다. 경제적 기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임금의 인상, 근로시간의 단축, 작업현장에서의 부당한 권리침해에 대한 방지와 그에 대한 해결, 작업 환경의 개선, 고용안정, 퇴직금 등의 수준향상과 지급보장, 보건?안전, 기숙사 시설의 정비, 노동조합 그 자체의 법적 보호나 권리의 주장, 사회보장에 관한 사항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경제적 기능 중 대표적인 것은 단체교섭과 경영참가를 중심으로 한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분산된 한 사람 한 사람의 근로자는 자기의 노동력을 불리한 조건으로 사용자에게 제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같은 기능, 같은 직종, 같은 기업 내지 같은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여 노동력의 제공을 통제한다면, 수준 이하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노동력의 제공을 집단적으로 거부함으로서 노동조건을 유지 개선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노동조합의 경제적 기능은 노동력의 판매조건을 유리하게 하는 일체를 그 대상으로 하며 단결력을 배경으로 하여 집단적으로 임금 및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경제적 기능이며 가장 근본적인 기 다음과 같다.첫째,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노동조합은 이직을 낮추는 데 기여하고, 그것은 고용과 훈련의 비용을 적게 하며 작업집단의 기능이 중단되지 않도록 하여 효율성을 제고시킨다. 이직의 저하는 근로자의 장기적인 고용을 의미하므로 근로자로 하여금 기업 특유의 기술을 익히도록 동기부여를 한다. 그러므로 비공식적인 교육훈련이나 근로자들 간의 협조와 지원으로 사기를 올리며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다. 노동조합은 사용자측에 압력(5) 노동조합의 역할▶ 순기능적 역할- 경제적 효율성 제고 : 노조는 이직을 낮추는데 기여하고, 이직률의 저하는 고용과 훈련의 비용을 적게 하며 작업집단의 기능이 중단되지 않도록 하여 효율성을 제고시킨다.- 소득분배의 공정성 제고 : 노조의 표준임금정책은 기업이나 산업 내에서 노조가입 근로자들 사이의 불공정성을 감소시킨다.- 사회적으로 순기능적 역할 : 노조는 조합원들의 의지를 대표하는 정치조직일 뿐만 아니라, 저 소득자와 불이익을 받는 자들의 정치적 이익을 대표한다.▶ 역기능적 역할- 국민생산과 경제적 효율성 저하 : 노동조합이 조직되어있는 기업은 경쟁수준 이상으로 임금을 지불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고용이 저하된다. 즉, 노조는 고용을 희생하면서 고임금을 추구한다.- 노동조합이 소득분배를 왜곡 : 노동조합은 숙련근로자의 임금을 인상하여 소득의 불공정성을 증대시킨다. 노동조합은 비교 가능한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를 형성시켜 수평적 불공정성을 유도한다.- 사회적으로 역기능적 역할 : 노조는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정치적 분야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한다. 노동조합의 독점력은 부패하고 비민주적 요인을 낳는다.2.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실태와 현황(1) 노동조합 조직률 변화 추이노동부가 발표한 2005년 말 기준 한국의 노동조합 수는 5,971개이고 노동조합원수는 150만 6천여 명이다. 이를 해당시기 전체 임금근로자수로 나눈 2005년 말 기준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9.9%이다. 이는 유사 이래 가장 낮은 수치일 뿐 아니라, 두 자릿수 조 사회에 공헌한다. 로 바꾸었다. 이것은 기업이념의 틀을 바꾼 것이 아니라 삼성이 세계를 향해 한 걸음 앞서나가기 위한 노력이다.(2) 삼성의 무노조 경영철학“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는 절대 안 된다.”는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유훈은 아직도 살아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용불안이 심화되면서 삼성 내부에서도 노조설립 시도가 많아졌지만 삼성의 철저한 노무관리로 인해 모두 깨지고 말았다.▶ 상생상화의 철학상생상화의 철학은 노사 간 화합을 강조하며 선의의 경쟁을 통해 어느 이해집단과도 상반되지 않는 공약을 우선해야 하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참다운 인화와 단결이 가능하다는 이병철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노조에 대한 편견노조가 생겨 상호 불신하고 투쟁하면 경영이 잘될 리가 없으며 노조가 극성부린 나라치고 발전하는 나라가 없다라고 하는 말을 보면 삼성이 노조에 대해 얼마나 깊은 불신과 편견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정책(비조합주의)삼성의 노조경영정책은 노조회피라고 할 수 있다. 가능한 노조의 설립을 막고 설립된 노조에 대해서는 확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경쟁기업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유지하는 등 높은 인적자원관리를 통해 피용자들로 하여금 노동조합의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2. 삼성의 노사관리삼성이 한창 사업을 일으키고 확대해 나가려던 시기에 공장 근로자들을 중심으로 노조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 때 노조를 설립하려는 생산직 근로자 측과 노조 설립을 저지하려는 관리직 사원들 사이에 마찰을 일으키면서 사태가 확대되자 이병철 선대 회장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이병철 선대 회장의 경영철학을 살펴보면 종업원과 회사의 관계는 서로 협조하고 공존 공영하는 관계이다. 회사는 종업원의 생활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충분히 대우하고 편안한 직장이 되도록 해야 하며 또한 전 직원은 스스로의 삶의 터전을 더욱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서로 화합해야 한다. 노조가 생겨 상성 없이 대표성을 확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2) 삼성의 노조 설립 운동 저지삼성에서 노조 없는 경영을 계속 해 오고 있지만 여러 개의 계열사에서 노조 설립운동은 많이 있었다. 그때마다 삼성은 여러 가지 정책으로 노조 설립 운동을 막았다.▶ 삼성 반도체삼성 반도체는 1988년부터 인사고과에 따른 상여금 지급 방식에서A, B, C, D, E의 5등급 중에서 D, E 등급 자에 대해 상여금을 삭감하던 제도를 철폐하였다. 하지만 노조가 조직된 다른 재벌 회사에서 상여금 차등지급제 자체가 철폐 된데 반해 삼성에서는 A, B 등급 자에 대한 ‘가급’은 온전 시키고 있다. 그리고 1993년도부터는 A+등급이 신설되어 고과의 차별화가 심화되었다. 노동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감급’이라는 형식은 없애면서 실질적으로는 그와 유사한 효과를 갖는 차등지급의 다단계화를 통해 노동자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한편 1993년부터 삼성 반도체에서는 4조 3교대를 실시하여 라인부서의 잔업을 없앴으며, 1994년부터는 월급제도 시행하였다. 임금도 계속 상승하여 동종업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 퇴직 여성노동자의 재입사도 가능하게 되었으며, 승격시험의 제한요건도 완화되었다.▶ 삼성 전관삼성 전관의 경우 상여금 차등 지급이 삼성 반도체와 마찬 가지로 변화 되었으며 개인별로 불량률, 잔업, 근태 율을 기록하여 점수화하고 매월 고과에 반영함으로 근로자를 압박하던 개인별 사업부제도 철폐되었다. 고충처리 상담원도 배치되었다. 그리고 인격적 통제도 완화되었다. 모자의 강제 착용을 철폐하고 두발을 자유화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또 1991년 파업 이후 조장은 라인 작업도 수행하던 처지에서 작업관리자로 격상되었다. 이 파업 후에는 노동자의 승진의욕을 상승시키기 위해 기능직의 상위직급이 설치되었다. 또 삼성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상대적 고임금이 제동되었고 노동자들이 요구한 임금인상률보다 더 높은 인상률을 경영자 이 제시한 적도 있다.(3) 삼성 노사 관리의 실제 사례▶ 삼성전자의 사원 면담 제도이 이 크다
    경영/경제| 2007.05.22| 21페이지| 3,500원| 조회(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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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철학]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통해 본 불교사상 평가A좋아요
    명절 때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방송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라기에 솔깃했었지만, 스님이 나오기에 그냥 돌려버렸었다. 불교하면 왠지 따분한 느낌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이 영화를 본다는 얘기에 아무 생각 없이 수업의 일부로, 그리고 나중에 시험에 출제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의 깊게 보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김기덕 감독의 영화라면 좀 난해한 부분이 있지만, 세계적인 평을 받고 있는 감독의 작품이었고 얼마 전에 친절한 금자씨 를 괜찮게 본 터라 약간의 기대도 있었던 것 같다.1. 제목에서 나타나는 불교사상영화에서는 불교적, 동양적인 의미를 전달하려는 감독의 뜻이 많이 내재되어 전해지는 듯 했다. 우선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이 영화는 주인공의 삶을 사계절에 비유하여 단계적으로 보여준다.윤회 : 이것은 불교의 연기법중 윤회를 말하고 있다. 윤회는 바퀴가 돈다는 그 뜻처럼 인간의 인생도 돌고 돈다는 것을 말한다. 윤회하는 세계에는 육도가 있어 중생은 이 6차원을 오르내리면서 끊임없이 태어났다가 죽어간다. 불교에서는 이 윤회의 괴로운 삶의 순환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행복을 얻는다고 본다.2. 사찰에서 나타나는 불교사상영화는 노스님과 동자승이 같이 살고 있는 저수지 한 가운데의 절에서 시작된다. 이 절은 주왕선 국립공원의 주산지라는 연못에 지었다고 하는데 일명 물 위를 부유하는 사찰 이라고 한다. 물살과 바람을 타고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이 흐르는 사찰은 주위의 환경과 맞물려 마치 신선세계에 들어선 듯 한 신비함을 자아냈다.위에서 설명한 사찰의 이미지는 고요함 속에서 서두르는 법이 없이 모든 걸 자연의 이치대로 맡기는 불교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속세와의 단절 : 앞서 말했듯이 사찰은 물 한가운데에 떠있다.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이 모습은 단순한 제시가 아니라 아마도 속세와의 단절을 상징한 듯 보인다. 그리고 물을 지나면 속세와 연결되는 문이 하나가 나온다. 굳이 문을 통과하지 않고 옆으로 돌아가도 밖으로 나갈 수 있음에도 스님이나 사람들 모두는 그 문을 통해 나가고 들어온다. 여기에서 이 문 은 문까지의 연결고리인 물 과 함께 속세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이 문을 통해 속세의 여자가 들어오고 주인공인 청년은 이 문을 통해 속세로 나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3. 동자승의 행동에서 나타난 불교사상(1) 봄무명 : 어리석음, 원인을 알 수 없는 근본무지. 실재 아닌 것, 실재성이 없는 것을 자기의 실제로 착각한 망상. 주어진 존재의 일시적 형체를 나로 집착한 것. 진리에 대한 무지.행 : 무명 때문에 생겨난 생의 의지이며 생의 본능이다. 근본적인 어리석음을 뜻한다. 행동이 쌓이면 업이 된다.침묵과 절제로 채워진 이 작은 절에는 어린 동자승과 늙은 노승만이 살고 있다. 이들의 일상은 무지 단조롭기 짝이 없다. 동자승의 유일한 놀이는 산에 가서 약초를 캐는 것이었다. 그러던 봄의 어느 날, 어린 동자승이 산속에서 물고기와 개구리, 뱀에게 돌을 매달아 괴롭히는 장면이 나왔다.아이는 아직 어려서 어리석은 상태에 불과하다. 즉, 진리에 대해 무지한 것이다. 이러한 어리석음 때문에 위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행동이 쌓이면 업이 되고,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무지함과 업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장면에선 돌을 매달았던 물고기와 뱀이 죽음으로써 이 아이는 업을 쌓게 되고, 그것은 곧 이 아이에게 그만큼의 대가가 있게 됨을 암시해 주는 장면이다.(2) 여름애 : 충동, 욕정, 탐냄 등의 욕망. 외물을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는 호오와 욕망이 생겨진 것. 끝없는 갈애를 뜻함.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맹목적인 욕심.시간이 흘러 이 암자에도 여름이 왔다. 어린 동자승은 이제 사춘기 소년으로 성장했다. 여름과 사춘기라는 이 두 단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뜨거움이다. 이 뜨거움은 바로 욕망을 나타낸다. 그리고 소년이 목격한 뱀의 교미장면은 암자로 요양하러 온 소녀와 함께 일어날 일들을 암시해 준다. 소녀에게 반한 소년은 소녀가 옷을 갈아입는 순간부터 뜨겁게 타오르는 욕정에 마음이 흔들린다. 밤에 잠을 자면서도 소녀를 보는 눈빛이 갈등을 말해주고 있었다. 감독은 소년이 노를 심하게 젓거나 수영을 하는 모습으로 소년의 이러한 마음을 보여준다. 결국엔 소년은 소녀의 몸을 통해 욕정을 해소한다.취 : 소중하게 생각하여 놓지 않고 집착함. 욕망이 더욱 고착되어 집착하는 본능으로 굳어진 상태.스님이 둘의 관계를 알고 소녀를 되돌려 보내지만 소년은 사랑의 집착을 떨치지 못하고 절을 떠나게 된다.욕망은 집착을 낳게 된다. 욕망을 알게 된 소년은 소녀에게 집착을 느끼게 되고 결국은 절을 떠나기에 이른다.(3) 가을다시 시간이 흘러 10년 정도가 지난 뒤의 가을이 왔다. 소녀를 따라 절을 떠났던 소년이 성인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아내를 살해한 살인범으로 수배 중이었다. 살인에 대해 괴로워하고 자살까지 하려는 제자에게 스님은 타오르는 그의 분노와 번뇌를 위해 바닥에 반야심경 을 적어주곤 그 칼로 글자 하나하나를 파거라, 파면서 분노를 가라 앉히거라.. 라고 말한다. 제자는 반야심경 을 조각하면서 점차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분노를 가라앉히고 자신을 체포하러 온 경찰과 함께 절을 떠난다. 그 후 노스님은 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뱀으로 환생한다.(4) 겨울이제는 아무도 없는 절에 겨울이 왔다. 그 동안 형기를 마치고 돌아온 제자는 스승의 사리를 수습하고 무술에 몰입한다. 불상을 안고 돌을 메고 산으로 오르는 고행을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어린 시절 물고기와 개구리 뱀에게 장난으로 고통을 주었던 것과, 살인을 저지른 자신의 업보를 풀려는 노력이 보인다. 그렇게 자신의 업보를 풀기 위해 수행하는 제자에게 얼굴에 복면을 두른 여인이 한 아기를 품에 안고 나타난다. 복면의 여인은 아기를 이 제자에게 맡기고 절을 나오던 중에 제자가 깨놓은 구멍에 빠져 익사하게 된다. 그보다도 이 여인이 하고 온 복면에서 여인은 번뇌의 근원인 감각을 닫았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즉, 그 복면은 제자가 자살을 시도하고, 스승이 분신을 하면서 붙였던 閉 라는 글자와 같은 맥락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5) 그리고 다시 봄윤회제목에서 보았던 윤회사상을 마지막에 봄이 다시 돌아왔을 때 다시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스님처럼 늙어버린 제자와 성장한 아이가 적적한 일상을 보낼 뿐이다. 어느 날 아이는 뭍으로 나와 물고기와 개구리, 뱀에게 장난삼아 입에 돌을 넣으면서 즐거워한다. 바로 제자가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또 다시 지난 날이 되풀이 된다. 노스님께서 이승에서 돌아가시고 다시 태어났을 때 뱀으로 환생한 이유가 바로 육도를 윤회하기 때문인 것 같다.4. 노스님의 대사 속에서 나온 불교사상하나라도 죽으면 너는 평생 마음속에서 돌을 짊어지고 살 것이다. -이 말은 한 번의 어리석은 행동은 평생토록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아직은 인생의 시작에 서있는 이 아이에게 그가 평생을 업고 갈 업 을 예견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업 때문에 먼 훗날 업을 풀려고 고행을 하게 된다.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니라. 욕망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살인을 품게 한다. - 욕정이라는 욕망은 어떻게 해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며, 영화에서도 실제로 욕정이라는 욕망을 품게 된 소년은 소녀에게 집착(取)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집착으로 인해 아내를 죽이게 된다.가진 것을 놓아야 할 때도 있다. 내가 좋은 건 다른 사람도 좋은 것을 왜 모르냐 - 이 대답에서는 가진 것을 놓아야 할 때, 그것을 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욕망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후감/창작| 2005.11.30| 4페이지| 1,500원| 조회(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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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무역]F. List 의 유치산업보호론 평가A+최고예요
    1. F. List의 유치산업보호론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argument)이란 한 산업이 현재는 미발달로 외국과 경쟁을 할 수가 없는 비교열위의 산업이라 할지라도 일정기간 적절한 보호정책으로 충분한 경쟁력을 길러 비교우위의 산업으로 전환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산업이라면 이것을 보호,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예를 들어, 어떤 개발도상국가가 철강수출국이 될 수 있는 모든 자연적 우위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세계 철강시장에서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기존의 철강수출국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치산업 보호론은 이러한 예의 철강 산업을 관세나 수입할당 등을 통하여 그 산업이 초기의 육성단계(유치단계)를 벗어날 때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유치산업이 국제시장에서 경쟁이 가능해질 때까지 외국의 수입개방 압력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면 국내시장의 성장기반을 토대로 하여 국제시장에의 진출기반을 점진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리스트의 유치산업보호론은 19세기 전반의 독일에서 국내 여러 주의 정치적 및 경제적 고립상태, 선진국의 국제 분업에 의한 압박 등 국내외로 모순의 격화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고, 정치적, 경제적 통일을 통하여 이와 같은 사태를 해결하여 독일의 산업자본 발달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그의 이론 전개는 역사적인 교훈을 찾고, 거기서 자신의 기본적인 여러 가지 원리를 도출하여 이를 발전시킨 후에, 앞선 여러 가지 이론체계, 특히 스미스 이론을 비판하며, 그리고 자신의 의도는 어디까지나 실천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당시의 무역정책 사정을 설명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리스트는 자신의 이론에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다음과 같은 주요단계를 상정하고 있다. 그것은 미개상태, 목축상태, 농업상태, 농?공업상태, 농?공?상업 상태이다.국가가 미개상태에서 목축상태로, 목축상태에서 농업 상태로 이행하고, 농업에서 최초의 진보를 이룩하는 데는 문명국, 즉 공?상업국가와 자유무역경우에 한한다.그러나 한 나라가 특별한 혜택을 받아 다른 나라보다도 공업, 무역, 해운의 면에서 우위를 정한 경우나 또는 일찍이 이 부문을 발달시켜 다른 나라에 대한 정치적 우위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데 가장 유효할 수단일 경우에는 공업과 무역의 독점을 획득하여 후진국의 진보를 억제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여러 가지 제도를 예나 지금이나 실시하여 왔다.국제무역을 하는 나라의 국민경제적 발전, 즉 외국무역의 준칙에는 다음 네 가지의 상이한 시기가 있다. 제 1기에는, 국내공업이 외국 공산품의 수입과 국내의 농산품 및 원료의 수출에 의하여 발달하며, 제2기에는 국내공업이 외국공산품의 수입과 병행하면서 발달하고, 제3기에는, 국내공업이 국내시장의 대부분의 수요에 충당되며, 제4기에는 대량의 국내공산품이 수출되고 외국산의 원료 및 농산물이 대량으로 수입된다.국가의 경제적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보호무역의 정책수단인 관세제도는 항상 국민의 공업육성이라는 원리를 방침으로서 고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내공업을 보호관세로 발달시키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국내공업은 국내공업에 의해서만 적은 비용으로 발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이 원료와 농산물을 배제하면 그 나라의 국내공업은 억압될 수밖에 없다.그러나 이러한 나라의 경우에도 무역제한이 인정되는 것은, 공업력이 충분히 강화되어 외국의 경쟁이 두렵지 않게 될 때까지의 기간에 한하며, 그 이후에는 국내 공업력의 기반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범위에 한한다. 그래서 “보호는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자유야말로 목표”라고 하여 ‘일시적 보호무역’을 리스트는 주장하였다.다시 말하자면 농업단계와 농?공?상업의 최종단계에 도달한 나라는 자유무역이 유리하지만, 농?공단계에 들어 지금부터 공업생산을 발전시켜 갈 나라가, 영국과 같은 농?공?상업단계에 있는 나라와 자유무역을 한다는 것은 후진국의 공업발전을 저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후진국에서 장래 성장할 전망이 있는 산업은 선진국의 압박으로부터 저지하여 국민적 적으로 관세제도에 한정하여 이것을 어떻게 실시해야 하는가를 문제로 한다. 그가 말하는 관세제도는 수입금지, 수입관세, 항해제한, 수출장려금 등을 포함하고 있지만 정책수단으로 수입관세만을 들고 있다. 결국 리스트는 해밀턴의 영향을 받아 자유무역주의의 이론과 그 정책의 타당성을 배척하고 경제정책에 대한 ‘국가의 영향’을 중시하면서 국민경제의 여건에 입각하여 실천적 이론을 수립하였다. 이 이론에서 리스트는 개도국의 공업보호를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로, 유치산업보호론을 최대로 활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리스트의 주장은, 첫째, 당시 영국의 산업이 지배한 세계시장의 독점에 대하여 대항력을 가져야 하고, 둘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농업과 공업의 균형적 발전이 반드시 필요하며, 셋째, 농업에만 의존하면 외국으로부터의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되고, 넷째, 국민소득은 국내산업의 보호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감소하지만, 그 산업이 장래 성장되면 국민소득은 증가된다는 것이다.2. 유치산업의 조건유치산업이란 말 그대로 어린 산업을 의미한다. 하지만 유치산업보호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요건이 갖추어진 산업을 보호할 만한 유치산업으로 보고 있다.첫째, 일정기간 보호 후에는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즉, 동태적인 비교우위를 갖는 산업이라면 일정기간만 보호하고 더 이상 보호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비교우위를 갖는 산업이어야 할 것이다. 계속적인 보호가 필요한 산업이라면 이는 동태적인 비교우위를 갖는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보호기간에 들인 비용이 보호를 끝낸 후에 얻게 되는 효용보다 작아야 한다. 사실 자유무역이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면 보호무역은 그만큼 무역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보호기간 동안에는 경제에 상당한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보호를 끝내고 비교우위가 생겨서 외국에 수출하게 되어 경제가 얻는 이익이 있을 때, 그 크기가 보호기간 동안의 손실보다 클 때에만 보호의 정당성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셋째, 시장의 실패가 있어야 한다. 시장의 실패라는 것라고 판단된다고 하자. 이 경우 위의 조건에 의하면 보호할 만한 유치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정부가 보호하지 않아도 기업이 스스로 투자할 것이며 산업이 발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보호해야 하는 유치산업의 범주에 넣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어떤 경우, 외부효과가 있어서 투자로부터의 이익을 자기 기업이 다 가져가지 못하고 사회로 빠져나가거나 다른 기업들에게로 돌아가는 경우라면 투자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예를 들어, 노동훈련의 창출과 관련된 외부효과를 생각 할 수 있다. 한 기업이 교육에 상당한 투자를 하여 기술을 개발하고 노동자를 훈련시켰을 때, 인력스카웃 경쟁을 통하여 인력이 외부로 유출된다고 해보자. 이 경우 훈련비용 등이 사회적으로는 기술개발이라는 가치를 창출하였지만, 이 기업에는 개발비용만큼의 효과를 주지 못한다. 타 기업들은 개발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그 기술을 이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는 정부의 보호가 없이는 투자나 기술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며, 그 분야에서 동태적 비교우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 비교우위가 나타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보호가 필요한 것이다. 혹은 어떤 산업의 발전이 사회적으로는 많은 편익을 가져다주지만 그 기업들에는 보상이 되지 않는 경우 등은 정부의 보호대상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외부효과가 있을 때에는 정부의 보호가 필요한 예가 된다.또 다른 예로서, 금융시장의 불완전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분명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산업이지만 당장은 투자할 자본을 조달할 수 없는 경우는 어떠한가. 이때 관세나 보조금 등으로 보호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즉, 장기적으로 분명히 이윤이 날 산업인데도 투자할 이가 없다는 것은 자본시장이 효율적이지 못하여 장기적인 최적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자본시장의 활성화 등을 통하여 기업이 스스로 투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면 된다.3. 유치산업보호의 효과그림을 통하여 유치산유무역을 하지 않고 보호무역을 함에 따라 상당히 효용이 감소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보호기간 동안의 비용이다.일정기간 보호한 후 수입재 산업이 성장하여 보호를 그만두고 자유무역을 한다고 해보자. 유치산업을 잘 선정하여 보호하여 그림에서와 같이 생산가능곡선이 확장되면 이제는 전과 똑같은 교역조건에서 자유무역을 할 때 P'에서 생산하고 C'에서 소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보호 전보다 효용이 커지는 상황이다.4. 유치산업보호의 문제점유치산업보호의 주장이 개도국의 입장에서는 그럴듯하고 설득력이 있으나 그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문제점이 존재한다.첫째, 관세보호기간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관세보호는 일시적인 것이어야 한다. 즉, 유치산업이 초기의 발육단계를 지나 자기 스스로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어 장기적 비교우위가 성취되었을 때 관세보호는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번 보호를 받게 되면 계속 보호를 받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유치산업으로서 계속 보호를 받기 위하여 정치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유치단계를 지나도 더욱 강력한 정치적 지지기반을 갖게 되어 유치산업은 결코 성인 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항상 보호에 의지해야만 하는 나약한 체질의 산업에 머무는 경우가 있게 된다.둘째, 보호대상산업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선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모든 산업을 다 보호대상에 포함시킬 수는 없으므로 대상산업의 선정기준의 설정문제가 제기된다. 특히, 대상산업의 선정과정에서 특정이익집단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함으로써 경제 전체의 효율성 기준과 상반되는 경우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정부다 어떤 산업을 보호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략적 무역정책의 관점에서 신중히 검토되어야 한다.예를 들어 인도나 파키스탄과 같은 나라들은 수십 년 동안 중공업부문을 외국의 수입경쟁으로부터 보호하였다. 그러나 그들 나라의 수출상품의 대부분은 보호 장벽을 쌓은 중공업제품이 아니라 보호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섬유제품과 같다.
    경영/경제| 2005.10.07| 5페이지| 2,500원| 조회(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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