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성*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5
검색어 입력폼
  • [참관교육실습]참관 교육 실습 소감문 평가A좋아요
    {{학과학번성명김성민배정학급6-2첫날 학교에 등교하기 전, 나는 기대감과 흥분, 설렘 등으로 심경이 복잡한 상태였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에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과연 3일동안 이나마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가시질 않았다. 하지만 이런 걱정들은 아이들과 대면하고 나서부터 말끔히 사라지고 말았다. 어느 새 성인이 된 나에게, 6학년 2반 아이들은 최고학년이지만 한명한명이 너무나도 귀여웠던 것이다.첫 수업을 참관하면서 어떤 시각으로 수업진행을 관찰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적잖게 당황했지만, 몇 시간 더 수업을 지켜보면서 그 관찰 기준을 나름대로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수업진행을 아우르면서 나는 특히, 아이들의 행동파악에 주의를 기울여서 관찰하고자 했다. 아이들은 그 시간 교과와 선생님의 특성을 고려해서 소란을 피우거나 집중하는 정도를 달리 하는 듯 했으며, 특히 모둠별로 앉아 수업을 할 때에는 너무나도 활기찬 수업 분위기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또한, 소속 학급인 6-2 홍은자 담임선생님도 참 좋은 분이셔서, 편한 마음가짐으로 교육실습에 임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의 행운이었던 것 같다. 첫 교육실습이라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친절하게 알려주시고, 따로 차도 준비해주셔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겉으로 많이 내색하지는 않으시지만, 아이들 한명 한명을 세세히 대하는 정성에서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나도 장래에 교사가 되면 애정으로 아이들을 대하고자 다짐했다.이번 참관실습기간 동안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학급의 모든 아이들과 친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짧은 기간도 기간이거니와, 대부분 정해진 모둠별로 진행되는 수업으로 인해 소속 모둠 아이들하고만 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교육실습이 끝난 지금부터라도 아이들과 연락을 나누면서 모두와 친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비록 직접 수업을 진행하지 못한 참관실습기간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참여하고 아이들과 어우러지면서 더 많은 것을 얻고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6학년일 때 보다 아이들이 참 어리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네들이 불쑥불쑥 내미는 생각이나 의견이 너무 참신하고 창의적이어서 내가 배울 점도 참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수업이외의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뒤섞여 놀면서 나도 모르게 동심으로 돌아가 버린 것 같아 매우 즐거웠었다.
    교육학| 2005.11.06| 1페이지| 1,000원| 조회(669)
    미리보기
  • 국악 공연 감상문
    한국음악의 이해 수강생으로서 난생 처음 국악공연을 보러 갔다. 원래는 윤중강 교수님이 연출하신 ‘종횡무진 우리음악’을 보려고 했는데 친구들과 시간이 맞지 않아 부득이하게 다른 국악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국립국악원이었다. 매주 ‘토요상설 국악공연’이라는 뜻 깊은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는 걸 알고 그곳으로 정한 것이었다.처음 시작은 ‘대취타’ 공연이었다. 대취타란 조선시대 왕의 행차나 예식 때 연주하는 음악으로 알고 있었는데, 과연 악사들이 징, 나발, 태평소 등의 악기를 경쾌하게 연주하는 것이었다. 악사들의 복장도 격식을 갖춘 듯 했다. 전체적으로는 웅장한 가운데, 태평소의 삐리리~ 소리가 매우 두드러져, 약각은 구슬픈 느낌을 주기도 하였다. 심벌즈와오후 5시 공연인데, 4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대기하고 있어서 매우 놀랐다. 물론 나와 친구들처럼 숙제를 목적으로 온 학생들이 대부분인 것 같았지만, 순수히 우리 음악을 즐기러 온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 흐뭇하기도 했다.다음 공연은 ‘가야금 독주- 밤의 소리’ 라는 공연이었다. 이 곡은 황병기가 성재수간도에서 악상을 얻어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연주는 그 리듬에 따라 크게 몇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었다. 먼저 고요하게 시작된 선율에서 갑자기 급속한 템포로 이어지다가 마지막에는 애절하게 끝나고 만다. 전체적으로 가야금의 선율이 매우 아름다운 가운데 남자 연주자의 북장단이매우 비슷한 악기가 있어서 공연이 끝난 후 알아보니, 그것은 자바라라는 악기로서 대취타나 불교의 의식에 사용된다고 하였다. 관악기 연주하는 악사들의 움직임은 정지된 가운데, 자바라와 북 등 타악기 연주하는 악사들은 양 옆에 서서 약간의 몸짓을 가미해 시각적 조화를 고려한 것 같기도 했다. 연주되는 시기만 알고 있던 대취타 공연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니 재미있고 참 의미 있는 것 같았다.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어 내고 있다. 이 가야금 독주 공연을 보고 가야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손가락 두개만을 움직이면서도 정말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감탄하게 되었다. 전부터 헷갈리던 가야금과 거문고를 이제는 잘 구별해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그 다음은 ‘대풍류’ 공연이었다. 대풍류 공연은 여러 악기들을 연주하는 악사들이 무대에서 함께 연주하는 기악 합주곡이었다. 처음에는 아쟁의 구슬프고 끼이끼이~하는 소리와 피리의 소리가 어우러져 슬픈 가락을 연주하지만, 장구와 북의 영향으로 약간 신나는(?)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듣다 보니, 처음의 가락과는 달리 매우 흥겨움을 표현하고 있는 듯했고, 갈수록 북과 장구의 연주 횟수가 많아지면서 리듬이 경쾌하게 변하게 된다. 성질이 다른 여러 악기를 함께 연주하는데도, 듣기에 거리낌이 없는 것은 우리 음악이‘대풍류’ 공연이 끝난 후, ‘향발무’ 공연이 시작되었다. 배경음악이 흥겹게 연주되는 가운데 색동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무대에 등장한다. 뒤에서 악사들이 연주를 하는 가운데 무용수들이 흥겹게 춤을 추는데, 소매 속에 감추어진 손을 움직일 때마다 챙챙~ 쇳소리가 나는게 매우 신기하였다. 공연이 끝나고 찾아보니, 무용수들이 낸 그 소리는 ‘향발’이라는 악기를지닌 하나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다음은 ‘경기민요(정선아리랑, 한오백년, 뱃노래, 자진뱃노래)’ 노래 공연이었다. 먼저 정선아리랑은 강원도 정선지방의 생활을 노래한 강원도 민요인데, 목소리를 많이 늘여서 불러서 실제 아리랑보다 몇 수십배는 느리게 느껴졌다. 특히 음을 높이고 낮추는 기술과, 음을 꺾는 창법이 매우 뛰어났으며, 애수와 한이 섞여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오백년은 정선아리연주함으로써 나는 소리로, 그 향발이라는 무구를 손가락에 끼고 연주하는 것이라고 한다. 더욱 신기했던 건, 무용수들이 끊임없이 팔을 움직이는 데도, 특정한 때에만 향발 소리가 났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건 무용수들의 스킬인 것 같다. 배경음악은 대풍류 연주와 (악기구성이 비슷해서 그런지 몰라도) 매우 흡사했고, 화려한 옷을 입은 무용수들의 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랑과 같은 창법을 사용하면서, 리듬은 매우 흥겨웠으나 그 내면적으로는 강원도의 애수가 느껴지는 노래였다. 뱃노래는 물고기를 잡을 때 부르던 노래답게, 몸짓을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며 역시 목소리를 떨며 부르는 것이 인상깊었다. 마지막 자진 뱃노래는 자진모리 장단을 사용함으로써, 뱃노래보다도 훨씬 더 흥겨웠으며 메기고 받는 부분이 매우 경쾌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런 민요들을 들어보니 그 흥과 애수가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아 인상깊었다.네 민요를 다 들은 후에는 ‘현악영산회상 中 와 ’ 공연을 시작하였다. 영산회상은 이미 불교음악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오늘날에도 자주 연주된다는 점에서 매우 놀라웠다. 원래의 9개 모음곡가운데 오늘은 염불도드리와 타령 연주만을 들었는데, 염불도드리 중간에 점점 빨라지면서, 흥겨운 타령의 장단으로 이어졌다. 단순한 멜로디만이 반복되는 가운데, 특별히 어떤 정조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맨 오른쪽 거문고 연주하는 악사가 오른손에 막대기 비슷한 걸로 소리를 내는 것이 매우 신기했다. 나중에조금은 지루했던 ‘영산회상’ 후에는 우리한테 잘 알려진 ‘판소리- 춘향가’ 공연을 시작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판소리지만, 실제로 처음 판소리를 접해보니 창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배웠던 대로, 창자는 소리, 아니리, 발림 등을 하고, 고수는 흥이 나면 얼씨구~ 허~ 같은 추임새를 했던 것만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독후감/창작| 2004.12.13| 4페이지| 1,000원| 조회(2,423)
    미리보기
  • 한국음악의 이해
    1. [용어]국악이란 무엇일까? 국악의 개념과 범주에 관해서 논하시오. (국악이란 용어를 비슷하게 사용하는 용어와 함께 비교하면서 설명해도 좋습니다.(국악, 민족음악, 전통음악, 창작음악, 한민족음악, 남한음악, 북한음악, 국어, 국사, 국문학)- 국악이란 먼저, 우리 민족의 역사가 한국사요 우리 겨레의 말이 한국어이듯이 한국의 민족음악을 말하며,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속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진 고유의 장단과 가락으로서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겨 있으며 긴 역사 속에서 변화하고 다듬어진 민족의 얼과 멋이 담긴 음악이다. 여기에서 우리 역사 속의 음악이란, 뜻이 짙고 옛날 음악이면서도 오늘날까지 그 음악이 살아있는 지속적인 음악을 말한다.한편 일제의 침략으로 우리음악은 정체기를 맞았지만, 한국음악은 민족음악으로 역사와 함께 엄연히 살아 움직여 향악, 조선음악, 국악, 한국음악의 모습으로 재창출되어왔다. 즉, 전통의 명맥은 끊이지 않고 현재로 왔으며, 또 미래로 가고 있는 것이다. 고로 한국음악의 범위는 옛날 음악이면서 오늘날까지 지속되며 그 고유의 전통이 변형되지 않은 범위내에서 우리 음악의 특성을 잃지 않는 기법으로 창조된 음악까지를 말한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한국 음악이란 국악, 즉 전통 음악은 물론이고, 우리 악기로 연주한 창작 음악과 더 나아가 서양 악기로 만든 한국 음악을 포괄하는 범위 모두 우리의 음악이라고 생각한다.즉, 국악이란 개념과 범주는 전통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바이다.2. [생활]국악의 대중화, 국악의 현대화, 국악의 생활화란 용어가 있다. 국악이 진정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의미를 갖을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 등이 필요로 할까? (음악 자체가 아닌, 음악과 삶과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전개해도 ㅈ호음)- 나는 고등학생 때 우리 가락은 그 시초가 바로 논, 밭 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배웠다. 모내기 협동과정에서 서로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흥겨운 가락은 우리 농민들에게 힘든 노동을인 것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서 국악의 존재는, 즐기고 향유하는 음악이 아닌, 따분하고 지루한 이른바 박물관에 소장되어야 할 문화재 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우리 음악을 우리가 낯설어 하고, 외면하려 한다면 누가 국악을 돌보아 줄 것인가? 국악과 좀 더 친해지기 위해서 국악의 대중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여러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제일 먼저, 어린 아이들에게 친근해질 수 있는 국악의 창조라는 방법을 들 수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많이 보았던 만화의 주제곡을 커서도 즐겨부르는 것을 보면 어린 시절의 교육이나 흥미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딱딱한 국악수업보다는 직접 체험을 통한 국악교육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렇듯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과 교육을 통해 그들이 성인이 될지라도 국악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나 생소함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아니 오히려 두터운 국악 매니아층을 형성할지도 모를 일이다.또한 여러 대중매체를 통해 국악과의 접근을 시도하는 방법도 괜찮을 듯 싶다. 윤중강 교수님이 진행하시던 '2030국악 방송'과 같은, 영향력 있는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주된 시청자 층은 연령이 높고 여가가 비교적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겠지만, 다양한 이벤트와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가 있다면 신세대의 눈길을 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캐논변주곡을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것과 같은, 다채로운 편곡을 통한 접근도 중요하다. 국악에 생소할지 모르는 젊은 세대들의 호감을 잡는 매력적인 편곡은 국악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아울러 3,40대를 위해서는 추억의 팝송이나 트로트를 국악기로 연주해보는 것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문화산업과의 접목이라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취화선이나 서편제와 같이 전통을 다룬 영화가 흥행을 거둔 것처럼, 현대의 다양한 문화산업- 영화나 게임-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대중에게 친근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3. [ 것은 무조건 싫고 우리것만 제일이라는 그러한 국수주의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 지적도 옳다.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 것에 대한 세계화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무엇으로부터 가능한 것인가. 재즈를 통해서? 클래식을 통해서? 아니면 서태지를 통해서?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은 무엇인가. 그것은 서구의 그 어느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단지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을 뿐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주로 들여왔던 것은 서양의 그것들이니까. '익숙한 것'이 결코 '좋은 것'과 같은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우리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우리 소리 문화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섹스폰 연주자인 이정식보다도 뉴올리언스의 거리의 섹스폰 연주자가 재즈에 대해 태생적으로 더 깊은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국악의 세계화에 앞서서 우리가 먼저 해야할 일은 현재 우리에게 남겨진 우리의 것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새로운 창조로 이어가야 할 것이고 더 나아가 세계의 여러 음악들과 다양한 교류를 가지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계승하여 우리의 전통으로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세계화가 아닐까 싶다. 세계화의 시작은 문화 사대주의도 아니고 국수주의도 아닌 전통의 시작과 그 길을 함께 해야할 것이다. 국악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음악도 아니고 그렇다고 싸구려 질 낮은 하위 음악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앞으로도 한국인의 음악일 뿐이다. 즉 우리 것을 세계화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거추장스러운 수식어가 아니라 우리 것에 대한 옹골찬 자신감이다. 이것은 우리가 세계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마음가짐이다. 우리 것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은 우리가 우리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 그것을 세계화시켜나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초석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음악의 세계화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철저한 사전 전략을 동반한 해외 공연의 집중적 육성을 들 수 있으며, 한국적인 것을 찾는 외국인들을 위한 전통음악감상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좋은는 처음 듣게 된 판소리의 매력에 나는 조금씩 눈을 뜨게 되었다. 처음 판소리를 들을 때는 창자가 하는 소리를 잘 알아듣지도 못했었는데, 여러번 접하다 보니 차츰 그것만의 독특함에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버렸다.판소리의 가장 큰 특징은 청중과 함께 호흡하는 현장감과 역동성, 그리고 오랜 세월 전승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덧붙여지고 수정된 적층성에 의한 폭넓은 공감대, 모든 형태의 노래를 수용하는 개방성에 의한 다양한 더늠(각 명창이 특색있게 만들어낸 가락 등을 일컫는 말) 첨가 가능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판소리는 어떤 방향에서 보아도 훌륭한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산과 같이 문학, 연극, 음악(또 춤)의 어느 관점에서나 귀중한문화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나아가서 판소리는 우리만의 문화유산이 아니라 한 사람이 노래하는 연주 형태의 세계 문화 유산 가운데도 음악적으로 아주 잘 다듬어진 것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남아있으면서도 시대를 초월해서 감동의 여운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른 나라에서 한 사람이 부르던 연주 형태의 노래들 (예를 들면 중세유럽 "음유 시인"들의 노래나 중국의 "강창")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소리의 사설이 우선 관중의 구미에 맞아야 한다. 곡조도 너름새도 또 이런 것은 재치있는 풍자와 해학의 멋을 곁드려야만 한다.판소리의 특성은 사실성이다. 현장성이다. 창작성이다 라고 하나 대표적인 특성 앞에서 말한바 관중과 광대가 공연한다는 것이 더욱 더 큰 대표적 특성으로 다른 분야의 예술과의 차이점이며 정치적 압제와 사회의 온갖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와 생존권을 얻고자 하는 민중들의 희원이 깊게 반영되는 예술 형태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판소리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낯선 면도 지니고 있다. 내가 들어보았던 판소리는 춘향가처럼 약간은 이해하기 쉬운 판소리여서 크게 어렵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적벽가나 다른 판소리를 접한 사람들은 그 이해도에 있어서 매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5. [정서]사랑 젊음 희망 이란 단어와 국악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가? (특정 악기, 특정 악곡, 특정 뮤지션, 특정 음반, 특정 공연 등과 연결지어서 전개해도 좋음.)6. [존재성]음악(국악)은 내게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고 있는가? 음악(국악)은 한국인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음악(국악)이 다른 인접 예술에 비해 강점은 무엇이고, 한계는 무엇일까? (일반적인 음악 을 중심으로 전개하면서, 국악 에 관한 얘기를 언급해도 좋음.)-7. [아리랑]아리랑은 한국인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아리랑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은 어떠하며, 아리랑은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갖게 될 수 있을까? (아리랑이 역사적 의미, 사회-문화적인 의미을 포함해서, 지역성과 세계성의 조화 등과 관련해서 서술해도 좋음)- 아리랑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전민요로서 세마치장단으로 되어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아리랑을 어떤 형식의 틀에 묶어 두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일정한 음에 가사를 붙여 불러왔고, 그러는 동안 그들의 삶 속에서 배어 나오는 슬픔과 기쁨, 갈등과 대립 등 가슴 속에 품은 정한을 풀어나갔다. 아리랑은 일제 침략에 대한 항쟁가로 불리기도 했고, 소박한 삶을 담은 전원의 노래가 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절박한 심정을 표출하는 서정 가요가 되기도 했고, 심지어는 색정을 유발하는 선정 가요로 불려지기도 했다. 아리랑 가사 속에는 이처럼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삶과 사랑의 긴 긴 그림자가 각인되어 있어 단순한 민요의 틀에서 벗어나 문학과 역사까지도 담아내고 있다. 아리랑을 부르는 사람들은 슬픔과 기쁨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가슴 속 깊은 '한'을 풀어냈다. 삶을 짓누르는 현실을 박차고 일어나 아리랑과 함께 사랑과 기쁨을 마음껏 표출했던 것이다. 결국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를 넘어 민족 저변에 깔린 정서의 가락이며 민족 동질성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이렇듯 과거의 아리랑은 우리민족의 정서를 대변하면서, 남녀노소 할것없이 널리 불다.
    예체능| 2004.12.15| 6페이지| 1,000원| 조회(635)
    미리보기
  • 안락사에 관한 생각
    1. 안락사의 개념 정의 문제(1) 자살과 안락사의 차이는 무엇인가?엘리자베스 부비아의 경우 안락사로 인정할 수 있는가? 자살이라면, 허용될 수 있는가? 병원은 급식을 중단해야 하는가, 계속해야 하는가?- 엘리자베스 부비아가 내린 결정은, 안락사로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녀의 이러한 선택은 그녀 자신의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이며, 스스로 결정을 내린 자발적 행위이므로 안락사의 조건 중 일부분을 충족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안락사의 정의 자체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안락사'란, 치유가능성이 없는 질병이나 상황 등으로 고통이나 괴로움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클 때 타인의 힘을 빌어 생을 마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사례에서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였음에도 불구하고 25년 동안 자신이 느끼기에 행복했을지도 모르는 삶을 영위해왔고, 비록 남편이 떠났다 할지라도, 다시 새로운 삶을 살 가능성이 얼마든지 존재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그녀의 선택은 자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이 사례에서 법원은 부비아의 선택이 허용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나 역시 이같은 법원의 판결에 동의한다. 부비아가 뇌성마비라도, 자신의 의사를 확고히 드러내는 데는 문제가 없으므로,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주어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윤리학자 '칸트'의 논리처럼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동물'이기에 개개인의 의사는 존중되어야만 하며, 그것이 개인의 힘으로 불가할 때는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병원측에서는 그것이 설마 죽음으로 이어진다 할지라도 부비아의 요구대로 급식을 중단해야 한다.사기(死期) 임박하면 안락사, 그렇지 않으면 자살인가? 이 두 경우는 윤리적으로 중대한 차이를 보이는가? 얼마나 임박하면 안락사인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자살인가? 그러면 사형 집행이 임박한 죄수의 자살은 안락사인가?- 사기가 임박했을 때,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환자의 고통이나 괴로움의 상태가 견딜 수자기 상태로,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 많을 텐데, 이렇게 선택한 죽음은 안락사로 인정된다고 생각한다. 이 때, 생명의 유예시간이 얼마나 남았느냐는 안락사이나 아니냐 따지는 데에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임박'했다는 말 자체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으며 곧 진행될 예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있어서 결정을 내리는 데 '임박'한 죽음은 남은 시간과 거의 무관할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에는 앞 문제의 부비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고통이 약한 상황에서의 죽음 결정은 자살행위라고 생각한다.사기가 임박하지 않았을 때에도 고통이나 괴로움의 정도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눠보면, 사기가 임박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전자는 안락사, 후자는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안락사이냐, 자살이냐를 따질 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게 주어진 고통의 상황여부라고 생각한다. 고통이 없는 상태에서 죽음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 그 사람 개인의 의지이긴 하지만, '구데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 라는 옛속담과 같이(조금 비유가 적절하진 않지만) 삶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며, 자살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사기의 임박 여부는 안락사, 자살을 가리는 데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지금까지 나의 생각으로 보면, 사형집행을 앞둔 죄수의 죽음 선택도 자살이라는 결론이 나온다.죽음이 임박하지 않았으나 사는 것이 너무나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고통스럽다면, 안락사가 허용될 수 있을까? 그때, 자살과는 어떤 윤리적 차이가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서는 이미 윗 물음에서 답을 했으므로 생략하도록 하겠다. 결론은 안락사가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경우에 자살을 하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안락사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으며, 이에 대한 윤리적 논의 또한 끊이지 않고 있으므로 자살하는 편이 속편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살의 경우에는 윤리적인 면에서 안락사와 차이를 보인다. 자살은안락사를 행해준 전문가는 '죄인' '살인자'라는 의식을 벗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자신 뿐 아니라 안락사 시행자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살과는 달리 안락사는 약간의 윤리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2) 살인과 적극적 안락사의 차이는? (살해를 요청 받고 살해한 경우와 살인의 비교) 물리학자의 동생의 경우, 형의 요청대로 행하였다면, 물리학자의 동생은 살인으로서 유죄인가? 안락사 시행자가 의사면허 소지자인가 아닌가는 왜 중요한가?- 적극적 안락사란 수행하는 사람이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킬 것을 처음부터 의도하여 구체적인 행위를 능동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적극적 안락사도 살인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행위를 하게 된 계기에 있어서는 적극적 안락사가 좋은 의도의 행위(조력자)인데 반하여, 살인은 불순한 의도의 행위(가해자)라고 구분할 수 있다.사례의 물리학자 동생의 경우에, 만일 형의 요청대로 행하였다면, 그것은 적극적 안락사가 아닌 살인이라고 생각한다. 동생은 일단 환자인 형의 가족으로서, 형의 죽음 후 가정내의 재산 분배나, 소유권 문제 등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또한 의사면허 없이 안락사를 시행하는 것은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안락사라는 말 자체가 환자가 안락하게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만일 동생이 함부로 안락사를 시행하다가 형이 더욱 고통을 받거나 하면 안락사를 올바르게 성립시키지 못하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와 같은 동생의 안락사 행위는 살인의 범주에 속한다 할지라도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다면 유죄로 보기는 어렵다.결국 이런 점을 고려해 볼때, 의사면허 소지자만이 안락사를 시행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2. 돈 때문에 안락사를 선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명제는 자명한가? 그 이유는?돈 때문에 죽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돈 있으면 살고, 돈 없으면 죽는 사회는 비윤리적이기 때문이다. - 게 되는 것인가? 인간은 누구나 불평등하게 태어난다. 그런데 평등하게 살도록 사회가 유도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예)공리주의적 견해, 의무론적 견해-돈이란 물질은 우리 삶에 있어서 편리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 어떤 제약을 나타내고, 때로는 극단적으로 불평등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돈이 없어서 자살을 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뉴스나 신문을 통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돈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생활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므로 모든 인간 활동의 최종 목적인 생명과는 비교할 수 없을뿐더러, 돈 생명이라는 부등식 자체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치료받고 있는 환자가 돈이 없어서 치료비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병원측에서는 그가 병원을 벗어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치료를 계속해 주어야 한다. 설령 환자가 자신의 빈곤함에 절망하여 남은 가족을 위해 안락사를 택하려 한다고 해도 병원측에서는 그가 병원을 벗어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라도) 치료를 계속해주어야 한다.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병원측도 하나의 이익단체라고 보면 볼 수 있는데, 돈도 안받고 치료를 해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의사가 자선사업가인줄 아는가."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모든 직업은 이익추구 뿐만이 아니라, 그 직업에게 요구되는 직업윤리가 존재한다. 다 죽어가는 환자를 눈앞에 두고 돈 때문에 이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의사로서 완벽한 실격이다."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이와 같은 심각한 부조리 속에 빠져있다. 황금만능주의의 영향으로 돈은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앙받고 있다. 앞에서 말한 환자의 경우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돈을 받고 사람을 죽여주는 청부살인 등 비윤리적인 일들이 무수히 많이 일어난다. 나는 이런 현재 사회를 비윤리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돈 있으면 살고, 돈 없으면 죽는다는 것은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떤 경우에도 무시되지 않고 항상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돈이라은 많이 벌고, 적게 노력한 사람은 적게 버는 것이 당연한 순리이므로 이것을 가지고 평등의 권리에 위배된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 같다. 부자들이 좋은 집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고 우리가 그들에게 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다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돈과 생명이 서로 연관되어 있을 경우에는 생명을 우선시 하자는 것이다.여기서 또다시 거론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역차별이라는 개념이다. 돈 없어서 죽게 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우선시 하자는 것은 돈 있는 사람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역차별이 아니라, 윤리적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양보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돈 때문에 사람이 죽고 사는 비윤리적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협조해야 할 부분인 것이다.인간은 누구나 여러면에서 타인에 비해 불평등하게 태어난다. 이것을 평등하게 조정하기 위해 사회가 나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사유재산은 차별이 아니라 개개인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사유재산 뿐만이 아니라 외모, 능력, 건강 등에 있어서도 불평등한것은 당연한데, 이것을 사회가 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흔히 말하는 복지사회는 누구나 평등하게 살라는 것과 의미가 다르다. 복지사회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비슷한 위치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으로 부족한 구성원에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빈곤층이 많아지면 사회통폐합이 저해된다는 공리주의자들의 의견 또한 불평등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빈곤층의 인간적인 생활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에 의한 차별자체가 무조건 나쁘다는 의무론적 견해는 옳지 않은 것 같다.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이 죽게 되는 것이 나쁜 것이지, 그 자체로써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것이 차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결국 모든 성원들이 평등하게 살도록 사회가 유도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3. 종합문제 : 자신의 몸볼 것.
    의/약학| 2004.12.13| 5페이지| 1,000원| 조회(472)
    미리보기
  • 용인대 국악 공연 감상문
    중간고사가 끝나고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서 친한 친구들과 국악공연을 보러가기로 하던 차에, 성균관대학교에서 창작 국악 경연대회 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여 그곳으로 공연을 보러 가게 되었다. 하지만 공연을 쉽게 볼 수는 없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갔는데, 그만 지갑을 놓고 내리는 바람에 공연도 못보고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지갑은 다음날 찾았지만, 기대했던 공연이라 못본 것이 너무 아쉬웠다.결국, 국립국악원에서 주최하는 용인대학교 국악과 정기연주회 를 관람하게 되었다. 지난번 국악상설공연 이후 두 번째 국악공연관람이라 별로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대학생들의 국악연주라 매우 기대되었다. 국립국악원에 도착해서 입장권에 적힌 좌석번호로 가보니 다른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 공공질서조차 무시해버리는 그네들의 의식에 환멸감을 느꼈지만 참고, 자리에 앉아 국악공연을 감상하기 시작했다.첫 번째 순서는 정악합주곡 중에서 '보허자 라는 합주곡 공연이었다. 보허자 는 궁중에서 왕족이 궁을 나갈 때나 궁중의 잔치에 연주되는, 무용과 함께 어우러지는 규모가 큰 합주음악이라고 한다. 시작부터 수많은 연주자들이 무대를 가득 메우고 노래와 함께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배웠던 편경과 편종 악기 연주를 직접 보니 매우 신기했고, 특히 편경, 편종은 마치 실로폰과 같은 음을 내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입장에서 편종, 편경은 다른 국악악기들과 그 소리 면에서 잘 어울리지는 않아 보였다. 한편, 전체 연주의 진행을 총괄하는 집박이 박을 치는 모습에서 지휘자와 비슷한 면모를 볼 수도 있었다. 규모가 큰 합주음악인 만큼 전체적으로 사운드가 웅장했고, 관객을 압도시키는 장중함을 엿볼 수 있었다.정악합주 다음 순서는 경기민요-유산가 공연이었다. 뒤에서 언급할 남도민요나 경기민요 모두 오늘 수업시간에 배운 것이라, 그 감상 포인트를 조금은 잡아낼 수 있었다. 유산가는 장구연주와 어울려 매우 경쾌하고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해냈으며, 특히 창자들이 떠는 음을 잘 소화해 내는 것 같았고, 떠는 음으로도 구슬픈 분위기가 아닌 흥겨운 분위기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배웠던 경기민요의 순차 진행적 성격은 잘 파악할 수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한편으로는 이렇게 젊은 대학생들의 목에서도 전문인들과 같은 구성진 국악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놀라웠다. 오늘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전문인이나 나이 지긋하신 분들만이 이런 소리가 가능한 줄 알았는데 공연을 보고 나서, 예술은 나이를 초월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다음에는 가야금제주-뱃노래 주제에 의한 가야금 제주 공연을 감상하였다. 저번 국악공연에서도 가야금의 아름다운 선율에 감탄했는데, 오늘도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또한 그 선율 뿐만 아니라, 손맵시 조차 부드럽고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겨 낸다는 것을 느꼈다. 연주의 처음부분은 매우 아득하고 조용했으나, 점차 리듬이 빨라지면서 흥겨워지는데, 장구 연주자가 세고 여린 부분을 이끌어줘서 더욱 더 흥이 나는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는 조용함->강함의 반복 연주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점점 연주가 세지는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치 어렸을 적 바다에 대한 동경과 상상을 가야금 선율에 담아놓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궁금했던 점은, 가야금 연주자들이 오른손으로 가야금의 한 부분을 두드릴 때 주판 튕기는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하나의 악기가 하나의 연주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부분도 필요에 따라 연주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부분은 나중에 더욱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다음 공연은 남도민요-화초사거리 였다. 남도민요는 앞서 본 경기민요와는 달리 창자들이 서서 노래를 불렀으며, 노래와 함께 소고춤을 흥겹게 추어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신이 나게 하였다. 노래의 내용은 산천경개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것이었다. 예향이라는 호칭에 걸맞는 전라도 지방의 민요라 그런지 경기민요 유산가보다 구성지고 멋스러운 가락을 자랑하는 듯 하였다. 하지만, 부분 부분을 나눠서 부를 때에는 개개인의 음색이 드러나 색다른 면을 느낄 수 있었다.신나는 남도 민요 공연 후에는 타악합주 중에서 양금을 위한 사물놀이 라는 곡을 감상하였다. 이 합주곡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양금과 사물놀이의 어울림을 표현하고자 한 곡이었다. 이 공연에서 나는 양금이란 악기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연주자가 선 상태로 실로폰처럼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악기였다. 소리는 맑고 투명했으며, 사물놀이의 흥겨움과 어우러져 색다른 맛을 냈다. 양금도 가야금처럼 다른 부분을 두드려 연주하기도 했는데, 서구적인 느낌을 물씬 풍겨서, 양금과 사물놀이와의 조화는 동서양악기의 조화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연주는 전체적으로 양금의 영향때문인지 신비하고도 매우 아름다웠다. 중간중간에 연주가 일시적으로 정지한 부분에서는 적막의 신비함조차 느낄 수 있었다. 연주를 듣다보니, 양금의 두가지 연주방법 중에서 두 번째 방법은 주로 흥겨운 분위기를 연주할 때 사용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박자가 빨라지고 분위기도 흥겨워지게 되고, 공연은 끝이 난다. 양금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으로 사물놀이의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것 같다.1부 순서의 마지막 공연은 가야금 병창 중에서 호남가 와 유색황금눈 연주였다. 가야금 병창은 가야금을 타면서 동시에 노래하는 음악인데, 이번 연주에서는 열명이 넘는 창자가 판소리를 하니,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가야금과 노래를 동시에 훌륭히 소화해내는 창자를 보며 그 실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남가 의 내용은 호남지방의 모습과 그 예찬을 노래한 것이었으며, 유색황금눈 의 내용은 흥부전 중 제비가 박씨를 물어오기까지의 대목을 노래한 것이었다. 판소리를 실제로 들어보는 건 두 번째라서 아직도 그 소리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하다. 앞으로 더 많은 국악공연으로 제대로 된 감상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음악연주를 듣고나니 전체적으로 가야금병창이 판소리에 비해 고수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독후감/창작| 2004.12.13| 4페이지| 1,000원| 조회(628)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
1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8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2:54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