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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국영이 죽었다고? -풀롯을 중심으로-
    장국영이 죽었다고?-플롯을 중심으로-들어가며1. 소통과 단절1)형식-서론과 결론2)과거와 현재3)아내와 이혼녀2. 농담과 진실나오며들어가며플롯이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단순한 하나의 서술상의 기술로 보기도 하고, 글의 전반의 요소들을 종합하는 힘으로 보기도 한다. 만약 단순한 수단으로 본다면 결과적으로 그것은 나무는 보되 숲은 못 보게 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소설의 플롯은 그것 하나로서 존재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물, 시점 등과 같은 다른 소설의 요소들과 연관을 맺으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플롯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여러 요소들이 녹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플롯의 개념이나 범위가 확실하게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석방법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도 있다. 소설 ‘장국영이 죽었다고?’를 분석하는데 있어서도 여러 가지 분석방법이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분석을 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대립항을 설정하여 분석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특히 이 작품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소통의 문제와 진실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한 주제를 부각시켜 주는 방법으로는 후자가 적당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대립항 설정을 통해 소설을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1. 소통과 단절현대사회는 고도로 분업화된 사회이다. 여기서 분업화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작업의 분산뿐만 아니라 의식의 분업화까지를 포함한다. 우리는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는 눈을 돌릴 겨를도 없고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점점 개인화되어가고 그에 따라 많은 문제들이 야기되었다. 현대문제들로 제일 대표되는 것이 ‘인간소외’ 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서 사회와 떨어져서 살아갈 수 없다는 인간이 소외된다는 말은 뭔가가 아이러니 하다. 하지만 사회와 떨어져서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 소외되었단 말은 반대로 그만큼 인간이 심각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말로도 설명할 수 있을하지만 결국은 진실이 없기 때문에 소외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진정으로 현대사회에서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까? 사실 옆 집 사람의 얼굴을 모르고, 이웃의 할머니가 죽은 채 보름이 지나 발견이 되는 등 사회가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대사회에서 소통이 단절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 ‘나’와 ‘너’가 정신적 교류를 통해 진정으로 소통하는 사회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의 이야기를 ‘너’가 들어주기를 바라며 소통하고자 한다. 이러한 소통 노력을 무시하고 현대사회는 삭막하고 소통이 단절되었다고만 한다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과연 이 사회를 살아나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현실을 어떠한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듯이 이 상황자체를 극단적으로만 보고 진정한 소통이 없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고립화되고 파편화되어 있다고만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사회 곳곳의 소통 노력에 주목하고 현대사회에서도 진정한 소통까지 가능하다고 봐야한다. 실제로 지난 몇 해 동안 우리시대의 문화로 대표되는 인터넷에서는 블로그나 미니홈피 만들기가 유행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진과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그것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사람들은 끊임없이 소통하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 뜻밖에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통해 서로에 대해서 알아보고 대화하다가 결국은 결혼에 골인하는 커플이 탄생하기도 했으며 잊고 살았던 친구들을 다시 되찾기도 했다. 이러한 예들이 단편적이긴 하지만 진정한 소통이 쌍방향의 정신적 교류라고 할 때, 현대사회에서도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은 항상 소외되는 것만은 아니다.이러한 맥락에서 ‘장국영이 죽었다고?’란 작품도 해석될 수 있다. 어떤 시각으로 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철저히 소외되었을지도 모르나 사실 이 소설자체의 구조를 통해서 우리는 ‘나’가 끊임없이 소통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실에 주목해서 소통의 방향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날짜와 시간까지면 일기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조회수와 추천수를 통해서 우리는 순간 ‘게시판’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중간에 이혼녀와의 대화내용이나 회상내용이 많아 독자들은 처음의 형식을 잊어버릴 수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게시판 형식은 마지막에 또 한 번 등장하기 때문에 잊고 있던 독자들을 다시 일깨운다. 마지막에는 처음의 시작 형식이 게시판 형식임을 말하기라고 하듯이 네 개의 답 글이 올려져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소설 전체가 알고 보면 누군가가 인터넷에 올린 글인 것이다.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러한 형식을 써서 소설을 만든 것인가? 사실 인터넷의 게시판과 같은 곳은 자기 자신을 위한 글을 쓰는 곳이기 보다는 누군가가 봐주길 바라고 글을 쓰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일기라면 그냥 워드로 써서 저장해둬도 될 것인데 굳이 어딘가에 올렸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자 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가 작가이든, 아니든 어떤 누군가는 결국 인터넷 속에서 자신의 글을 통해 다른 누군가와 소통하고자 했다. 그리고 답 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소통은 어느 정도 통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조조할인’ 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은 ‘나’가 쓴 글을 읽어야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데스페라도나 재개봉관의 경우도 장국영과 아비정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으므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나아가 자신의 생각까지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글을 올림으로써 소통하고자 했고, 거기에는 응답이 있었다. 즉, 현대 사회는 소통이 잠재되어 있을 뿐, 진정한 소통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1. 2)과거와 현재소설을 보면 맨 처음에 ‘나’는 자신이 피씨방 아르바이트를 하혼을 했고, 대화로 돌아와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고 끝이 난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피씨방 아르바이트 생 ‘나’는 경품을 장물로 의심한 경찰관과의 대화를 통해서 경품에 얽힌 사연을 회상한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현실로 돌아온 ‘나’는 메일을 확인하고 플래시 몹에 참여하게 된다.이러한 흐름을 도식화 시켜보면 현실→대화→과거→대화→과거→대화→현실→대화→과거→현실과 같이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흐름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특징은 ‘나’가 대부분 대화를 통해서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혼녀와의 대화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다가 마지막에는 경찰관과의 대화를 통해서 과거를 회상한다. 즉, 대화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과거와 현재를 잇고자 하는 것일까? 이것은 과거와 현재의 차이점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아내와 처음 영화관에 가고, 손을 잡는 등의 따뜻한 기억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파산하고 아내와 이혼하는 등의 불행한 기억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든 과거의 ‘나’는 소통하고 있는 존재이다. 반대로 현재의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피씨방에서 모자나 푹 눌러 쓴 채 사람들과 접촉하기를 꺼려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세상과는 단절된 존재처럼 보인다. 실제로 ‘나’는 소설의 첫 부분에서 자신은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존재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나’는 자신도 알게 모르게 이미 관계 속에 있는 인물이다. 게시판에 자신의 이야기를 올렸다는 자체가 이미 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는 관계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은 스스로가 관계를 맺고 싶어했던 것이다. 즉, 그는 현재 소통하고 싶어 하지만 세상과는 단절된 상황에 처해있다. 그런데 과거는 세상과 소통하던 때이다. 그러므로 ‘나’는 대화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함으로써 소통에 대한 바람을 계속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1.3) 아내와 이혼녀소설에서 ‘아비정전’ 이란 영화를 두고 ‘나’와 이혼녀는 과거 13년 게 된 경위를 떠올린다. 또 이혼녀의 편지를 보기위해 메일함을 열었다가 아내의 편지를 발견하고는 아내를 떠올린다.이렇게 아내와 이혼녀는 ‘나’의 머릿속에 연관 지어 존재한다. 아내 또한 자신으로 인해 ‘이혼녀’가 되었으니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거기다가 이혼녀는 ‘나’와 13년전 같은 영화관에서 같은 시간대에 영화를 보았고, 결혼도 같은 날 했고, 신혼여행도 같은 곳으로 갔으며 같은 호텔에서 묵었다. 흔히 일어나는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일치하는 점이 많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이혼녀가 바로 ‘나’의 아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된다. 하지만 둘은 다른 결혼식장에서 결혼을 했고, 공통점도 없었다. ‘나’는 한번만 더 우연이 일어난다면 이혼녀를 만나보리라고 결심했지만 더 이상의 우연은 없었다. 작가는 이렇게 이혼녀를 등장시킴으로써 ‘나’의 아내의 삶 또한 비슷할 것이라는 유추를 가능하게 한다. 이혼녀가 소통의 수단으로 인터넷 채팅을 택했듯이, ‘나’의 아내 또한 채팅을 통해 어떤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이혼녀와 ‘나’의 아내뿐만 아니라 같은 날 결혼을 하고 같은 곳으로 신혼여행을 갔다온 다른 수많은 이들의 삶인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의 보통 사람의 삶인 것이다. 이혼녀와 ‘나’ 사이의 우연적인 일련의 사건들은 그것을 뒷받침 해주기 위한 수단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대학을 나와서 20대 중반쯤에 직장을 가지고 20대 후반쯤에 결혼을 하며 그 후에는 아이를 키우며 세월을 보낸다. 그리고는 뜻하지 않게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등 인생의 고비를 맞는다. 대부분 그것을 잘 극복하기도 하지만, 극복하지 못하고 이혼을 하기도 하고 이민을 가기도 한다. 이러한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은 비슷하기 때문에 같은 영화관에서 영화 한편쯤 같이 보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나’와 아내 그리고 이혼녀는 현대 소시민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누군가와 소
    인문/어학| 2007.12.09| 5페이지| 1,500원| 조회(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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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ygotsky의 ZPD이론과 교육적 시사점
    Vygotsky의 ZPD이론과 교육적 시사점-목차-들어가며1. ZPD 이론의 개념2. ZPD 이론의 교육적 시사점① 교사의 발판화 혹은 비계설정의 중요성② 수준별 학습의 중요성③다양한 잠재능력 개발의 중요성나오며들어가며Vygotsky는 보통 Piaget와 비교하며 더 자주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아동은 스스로의 세계를 구조화하고 이해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Piaget와 달리 Vygotsky는 아동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는 사회적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Vygotsky는 사회화의 과정이 한 아동을 성장시킨다고 생각했으므로 그의 이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아동 그 자체보다 아동과 사회, 아동과 보다 성숙한 타인과의 상호관계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또 그의 이론에서 아동-사회 또는 성숙한 타인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ZPD 개념을 빼놓을 수가 없다. ZPD는 아동이 스스로 잠재적인 능력을 독립적인 능력으로 개발하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도움 즉, 사회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ZPD가 무엇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 이론이 주는 교육적 시사점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1. ZPD이론의 개념ZPD란 근접발달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의 약자로서 Vygotsky가 연구한 개념이다. 근접발달영역이란 ‘독립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제적 발달수준과 성인의 안내 혹은 유능한 동료와의 공동노력을 통한 문제 해결에 의해 결정되는 잠재적 발달수준간의 거리’ 이다. 독립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실제적 발달수준은 이미 발달이 완성된 것이며, 성인의 안내를 통한 잠재적 발달수준은 현재 발달이 진행 중이며 곧 내면화의 과정을 거쳐 독립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는 능력이다. ) 즉, 근접발달영역이란 아동이 어떠한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이전의 상태이다. 보통의 교수-학습이 이 근접발달영역 내에서 이뤄지는데, 이때 교수-학습을 담당하는아동이 보다 더 잠재적인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데 도움을 주는 조력자일 뿐인 것이다. Vigotsky도 Piaget와 마찬가지로 아동을 능동적인 존재로 보되 Piaget가 아동의 발달이 학습을 주도하고 개인적인 것을 중시한 반면에 Vigotsky는 아동과 사회와의 관계 또는 학습이 발달을 주도한다는 뜻을 견지할 뿐인 것이다.또한, ‘근접발달영역’이론에서 중요한 개념은 개인별 발달차이이다. 이 개인별 발달차이는 ‘근접발달영역’이론을 고려하여 가르치는 활동을 할 때,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문제이다. 똑같은 것을 가르쳐도 어떤 학생들은 어려운 문제를 잘 풀어내는 가하면, 또 어떤 학생들은 쉬운 문제조차 잘 풀지 못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같은 반에 있는 학생이라도 학생들 저마다의 근접발달영역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적용하여 교수-학습 활동을 할 때 같은 반에 있는 학생이더라도 똑같은 힌트, 유도등의 비계설정을 한다고 해서 똑같이 독립적인 발달영역의 수준에 다다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교사는 비계설정을 하기 이전에 먼저 개인별 발달차이를 고려해야한다. 교사는 학생의 능력을 평가한 후, 학생들에게 문제해결 능력이 없다면 그들을 근접발달 영역 내에 존재하도록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동의 능력평가와 관련하여, Vygotsky는 아동의 지적 발달수준을 알아내도록 고안된 대부분의 검사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지능검사는 표준화 검사 문항을 풀게 하여 아동의 지적 발달수준을 측정하는데, 이런 종류의 검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아동의 지적 발달과정 중에서 어느 특정한 단계의 수준일 뿐이다. 이러한 방법으로는 아동의 지적 능력의 전체적인 모습을 알 수 없으며 아동발달에 대해서 완전하게 설명할 수도 없다. 따라서 학생이 혼자서도 풀 수 있는 문제와 도움을 받아 풀 수 있는 문제수준을 모두 평가하여 양자를 비교해야만 지적 발달의 전체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물론, 아직까지 Vygotsky의 근접발달영역을 측정해줄 만한 이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아동이 자신의 잠재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는 성인이나 교사가 주입식 교육이 아닌 끊임없는 비계설정을 통해 조력자 역할에 그치도록 해야 한다. 이 비계설정에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진리를 낳게 하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고, 재미있는 퀴즈나 힌트를 통하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 단순히 말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비계설정이라면 보다 시각적인 방법이나 직접 만져 본다든 지의 촉각을 이용해서도 비계설정이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Vygotsky의 이론에서 중요시되는 비계설정으로는 언어가 있을 수 있다. Vygotsky는 ‘사고와 언어’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언어발달은 복잡한 생각을 ‘내면화’시킬 수 있는 열쇠로서 고등정신기능은 사회문화와 함께 발전되고 진화된 도구와 기호에 의하여 매개되며, 언어는 그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교사나 성인은 아동에게 일차적으로 언어를 통하여 비계설정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물론, 우리의 교육환경에서 다양하고 많은 비계설정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요즘에 점점 한 반의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30명은 되는 상황에서 개개인의 근접발달영역을 측정하는 것도 힘들고 그러다 보니 그에 맞는 비계설정을 하는 것이 힘든 것이다. 또한 입시체제에서 진도에 맞추는데 급급해서 비계설정을 하는데 시간을 할애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희미한 윤곽이나마 계속 시도하려고 애쓴다면 그 시도만이라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② 수준별 학습의 중요성Vygostky의 근접발달영역을 이해하는데 있어 전제되어야 할 것이 개인의 발달차이이다. 같은 문제를 내더라도 어떤 학생은 문제를 이해하고 푸는 반면에 어떤 학생은 아예 풀지 못한다. 이렇게 능력차이가 나는 이유로 첫째, 학생들의 배우는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마다 배우는 것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더 기꺼이 하려고 하기도 하고 좀 꺼려하기도 한다. 이먼저 수준을 가르는 척도로 초등교육에서는 IQ테스트가 있다. 하지만 이 IQ테스트는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학습자체가 불가능한 장애 아동을 구별해 줄 수 있는지는 몰라도, 이 테스트 하나만으로 발달차이를 구별해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낮은 IQ로도 큰일을 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높은 IQ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높은 학업 성취를 해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IQ란 것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할 수 있다고 한다. 부모나 교육자가 어떻게 교육시키느냐에 따라서 IQ는 20에서 25정도까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IQ테스트가 무조건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평가방법이 없다면 정말 학습자체가 불가능한 학생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이러한 방법에 의존하여 잠재되어 있는 다양한 능력을 IQ 하나로 치부해버리는 오류를 범할까봐 염려될 뿐이다.다음으로 중고등교육에서 학교의 중간·기말평가나 모의평가를 통해서 학생들의 수준을 나누고 수준별 수업을 하는 지금의 현 체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한국의 입시체제에서 이러한 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수준을 나누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평가를 통해 학생들은 경쟁심을 키우고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너무 단순한 평가 몇 번을 통해 그러한 능력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수행평가라는 것이 생겨서 단순한 이론에 대한 결과 위주의 평가 뿐 아니라 좀 더 실질적이고 과정중심적인 평가가 이뤄지긴 하지만 아직도 형식적인 데 머물고 있다. 그러므로 학생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과정중심의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고, 또 주요과목 중심의 수준별 반편성이 아닌 기타 과목 또한 수준별 반 편성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보다 더 학생의 잠재능력을 개발하는 데 맞춤식의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③다양한 잠재능력 개발의 중요성Vygostky는 근접발달의 영역에서 학생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문제로 두 아이 모두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문제이다. 다만 이러한 수평적 흐름 안에서 수직적인 발달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수학을 잘하는 갑과 을이 있다면 이 둘은 같은 범주 안에서 발달 수준이 구분될 수 있는 것이다.하지만 우리나라 교육환경에서는 이러한 수평적인 발달차이에 대한 고려는 정말 부족한듯하다. 2002년도에 특기적성이라는 개념으로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을 개발하도록 추진했었지만 실패했었다. 대학들과 국민들과의 충분한 대화를 거치지 않고 교육부가 추진한 특기적성교육은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대책이었던 것 같다. 입시위주의 체제는 유지한 채 내건 ‘하나만 잘 하면 대학을 갈 수 있다’ 의 논리는 오히려 공교육을 불신하고 사교육을 부추기는 데 일조를 했던 것 같다.어쨌든, 이러한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의 능력을 다양하게 개발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개발시키는 것에 앞서서 학생들은 자신이 어느 분야에 능력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개발에 앞서 발굴자체가 시급한 것이다. 여기에서 1980년대 이후 Gardner의 ‘다중지능이론(Multiple Intelligence theory: MI이론)’은 어느 정도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Gardner는 지금까지 지능을 너무 좁게 해석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단일한 능력이 아니라 다수의 능력이 인간의 지능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러한 능력들은 해당분야의 정보를 처리하는 독립된 체계를 가진다고 가정하였다. 그는 삶의 맥락에서 지능을 관찰해야 하며 IQ 점수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보다 넓은 시각에서 인간의 잠재적 능력을 탐구하였다. 지능을 논리 수학적, 언어적, 음악적, 공간적, 신체 운동적, 개인 간, 개인내적 지능의 일곱 가지로 나누고 )사람들은 이 모든 지능을 가지고 있는 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실제로 우리는 중등이나 고등학교 시절에 ‘직업적성검사’ 또는 ‘적성검사’ 란 것을 한다. 이것은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을 발굴하기 위한 평
    교육학| 2007.12.09| 6페이지| 1,000원| 조회(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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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경제 Ⅰ』을 읽고
    『인간의 경제 Ⅰ』을 읽고목 차들어가며1. 경제주의의 오류2. 경제의 두 가지 의미3. 통합형태- 호혜성, 교환과 재분배4. 사회속에 매몰된 경제와 등가나오며Ⅰ. 들어가며칼 폴라니의 〈인간의 경제〉는 후에 〈사람의 살림살이〉로 재 발행되었는데, 이 두 제목의 번역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경제란 것은 꼭 큰 시장이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는 모든 인간이 다 하는 활동으로 비(非)시장사회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책이 발간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사회에도 적용해도 될 만큼 폴라니는 현대사회에 만연해 있는 ‘물질중심주의, 시장중심주의’를 ‘경제’와 동일시시키는 경향을 오류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비(非)시장사회를 중심으로 그들의 ‘경제생활’을 소개함으로 해서 나름대로 선진국이라 자부하고 경제가 발전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형식적인 의미의 경제뿐만 아니라 실체적인 의미의 경제도 있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마치 아리스토텔레스가경제생활에 있어서 수단과 목적이 전치된 현상을 비판하면서 경제생활은 수단일 뿐이고 진정한 목적은 ‘행복하게 잘사는 것’ 이라고 말한 것과 일맥 상통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면에서 그런지 폴라니의 이론을 살펴보고 결론을 맺도록 해보자.Ⅱ. 경제주의의 오류칼 폴라니는 제1장 ‘경제주의의 오류’에서 시장지향의 정신이 유포시켜 온 오류를 예비적으로 지적하고 왜 이러한 오류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이렇게 널리 영향을 미쳐 왔는가 하는 이유들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경제를 시장과 관련시키고 〈경제현상〉과 〈시장현상〉을 동일시하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이것은 순전히 이론적 시각에서 생긴 잘못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실제적인 제목적을 위해서 경제는 이제 시장으로 성립된 것이며 시장이 사회를 포섭한 것이라고 한다.두 번째로 경제주의로의 전환과 관련하여 오류를 지적하였는데, 19세기 노동과 토지가 상품화 되면서 굶주림을 면하고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경제생활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것은심리란 시장유형을 인간의 보편적인 경제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경제를 시장현상으로 제한함으로써 시장 이외의 경제제도를 도외시하거나 나아가 모든 경제현상에 대해 인위적으로 시장적 특징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인류의 모든 사회에 대해서 시장경제에서와 같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유사한 상황, 즉 수단의 희소성이 상정된다. 즉, 비 시장사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모든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시장심리가 확장?적용되었다. 그러나 실상은 시장지향과는 아주 동떨어져 있는 것이므로 간단한 말로 묘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장 편향적 사고에는 정치적인 측면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 있다. 수요-공급에 의한 가격형성 메커니즘과 같은 순수 이론적인 기제만이 주목될 뿐, 경제의 다른 제도적인 배경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 또한 물질적 동기만 현실적으로 간주되고 이상주의적 동기는 비효율적인 것으로 평가절하 된다.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 입장이 취해지고, 역사기술에 있어서 비시장사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내려진다. 이러한 사회에는 정의, 법 그리고 자유 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지만 역사상의 많은 사회들은 나름대로 정의의 구현, 법의 고수, 관료적 억압이 없는 중앙집중적 경제 등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경제영역에서 제도화된 가치로서 정의, 법, 자유 등은 국가의 의식적인 행위의 결과로 가능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본래 국가의 초기의 역할에 관한 인식이 경제제일주의에 의해서 배제되면서 어떠한 분야도 경제주의적 사고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의 결과가 초래된 것이라는 게 폴라니의 의견이다.Ⅲ. 경제의 두 가지 의미-형식적 정의와 실체적 정의칼 폴라니는 우리가 말하는 경제학상의 오류란 인간의 경제를 그 시장형태와 동일시하는 경향에서 초래된다고 보고 따라서 이 편향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경제’ 라는 말의 의미를 철저하게 분류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분류해보면, ‘경제'라는 말에는 두가지 의미가하는 것을 경제라 한다. 이러한 경제라는 말의 이중성에 대한 인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신고전파의 경제이론이 처음 형성될 당시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칼 멩거는 경제의 저 발전상태를 후진, 미개, 저개발 등으로 분류하고 경제의 발전방향에는 두 개의 방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수단이 불충분한데서 생기는 경제화의 방향이며 또 하나는 그가 ‘기술경제’라고 부른 방향으로 수단의 충분?불충분과는 무관하게 생산의 물리적 필요성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고전파의 경제학으로 정식화된 이론은 어느 것도 ‘두 가지 방향’을 취급하지 않고 새로운 ‘경제화’에의 방향 즉 경제적의 형식적 의미가 경제적 의미로 정착하고, 반드시 희소성에 의한 제약을 받지 않는 의미의 부여 즉, 보다 전통적이면서 일견 평범한 ‘실체적이라는 것’의 의미는 학문상의 지위를 상실하고 결국은 잊혀져 버린 것이다.경제적인 것을 취급하던 다른 분야들도 ‘경제’라는 말의 두 가지 의미에서 서로 공통되지 않는 특이성이 발견되자 실체적 의미는 사상되고 형식적 의미만이 받아들여졌다. 그렇다면 ‘경제’라는 말의 유일한 의미가 희소성의 정의라고 주장에 대해서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은 수단은 희소한 수단이며 나아가 희소한 수단은 경제적인 수단이라고까지 말한다. 즉, 이 주장에 의하면 경제란 그것이 어떤 식으로 제도화되건, 부족한 수단의 여러 용도 가운데 어떤 하나를 선택하는 행동을 야기한다는, 그러한 조건하에 있는 희소한 수단으로 이루어지게 되며, 따라서 희소성의 정의에 의한 형식적 용어를 사용한 서술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하지만 실제로 도덕적 기로나 조작적인 기로에 대해서도 수단의 부족은 가정되어 있지 않다. 선택은 반드시 수단의 부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희소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에서 뿐만 아니라 사소한 일상에서조차 희소의 상태는 존재하고 또 과잉의 상태 또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라는 말의 형식적 의미와 실체적 의미 사이의 관계는 우연적인 것에 불과한 것의 획득 가능성이라든지 다정한 어머니의 아이에 대한 사랑 같은 것은 대개 그다지 한정되어 있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즉,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잘 사는 것’에 대한 이론과도 상통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그릇되게 물적인 것으로 해석하면서 욕망은 무한하고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 희소의 개념을 낳은 것이다. 원래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이론은 ‘경제’적이라는 말의 실체적 의미와 상통한다.지금까지 〈경제〉라는 말의 희소성의 정의의 오류를 검토해보았고 경제의 실체적 의미의 중요성도 보았다. 경제는 물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상호작용의 제도적 과정으로서 모든 인간적 공동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의 경제 없이는 어떤 사회도 잠시도 존속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실체로서의 경제는 인간과 그 환경과의 상호작용, 과정의 제도화로 이뤄진다. 상호작용이라는 차원에서의 경제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불가항력적으로 이뤄지는 것이고 이것이 제도화된 과정으로서의 인간경제의 개념에 대해서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Ⅳ. 통합형태-호혜성, 재분배와 교환호혜관계는 통합의 한 형태로, 재화와 용역의 운동(또는 이들의 배치)이 대칭적으로 배열된 서로 마주보는 점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재분배는 대상물이 물리적으로 이동하거나 배치만 변화하거나 간에, 중앙을 향한 움직임과 중앙에서 다시 밖으로 향하는 움직임을 나타낸다. 교환도 이와 유사한 의미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체제 system 내에 분산된 또는 임의의 두 점간의 운동을 나타낸다. 이러한 통합관계의 효과적인 기능은 명확한 제도적 구조의 존재와 관련이 된다. 이처럼 지지하는 구조, 그 기초적인 편제 그리고 그 타당성은 사회적 영역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재분배의 경우에는, 그곳으로부터 재분배가 이루어지는 중앙의 확립이 없이는 운동이 진행될 수 없다. 호혜관계와 교환의 경우도 그 양태는 본질적으로 같다. 호혜관계의 경우는 둘 또는 그 이상의 대칭적으로 배치된 집단의 존재를 내포하고 있다. 또 교환은 통합형태로서는 시장체브리안드 제도에 관한 말리노브스키의 기술 속에서 볼 수 있다. 트로브리안드에서 남자는 그의 누이의 가족에 대한 일정한 책무를 가지지만 그 자신이 그 댓가로 누이의 남편에게 원조를 바라는 일은 없다. 그가 결혼을 했을 경우에는 그의 처남들이 그를 원조해 준다. 즉, 유사하게 배치된 제 3의 가족의 성원에게서 원조를 받는다. 트로브리안드제도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농작물의 생산이 호혜적 관계를 기초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닷가 마을과 내륙 마을 사이에 설정된 ‘생선과 얌의 관계도 역시 호혜관계의 기초에서 이루어진다. 생선과 얌이 생산되는 시기는 각기 다르다. 그리고 이때 교환의 당사자들은 친족집단이 아니라 마을사람 전체이다. 트로브리안드제도에는 이러한 제도의 전형으로 쿨라교역이 있다. 교환이 이루어질 때의 공동성은 이 경우에도 존재하지만 교환행위는 접합되어 있지 않다. 선사와 답례는 때를 달리하여 이루어진다. 그것은 모두 등가의 개념을 무시하도록 의례화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실용품의 교역은 쿨라의 교역과 따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쿨라 거래는 다른거래와 특이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또 이 호혜관계는 타당성을 필요로 한다. 타당성은 이 경우 무엇보다도 정당한 인간이 정당한 기회에 정당한 종류의 물건을 돌려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의미한다.2) 재분배와 교환재분배는 한 집단 내에서 재화의 분배가 이루어질 때, 이들이 일단 한 곳에 모여져서 관습, 법 또는 중앙의 임시적 결정에 의해서 분배하는 경우에 성립한다. 이 방법에 의해서 분할된 노동의 재통합이 이루어진다. 때로는 체제가 단지 재분배를 수반하는 저장일 경우도 있고 또 때로는 ‘징발’이 단순히 관리처분적인 경우도 있다. 즉 재화의 장소변화는 없이 점유권리의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재분배는 또 가족이나 장원과 같이 사회보다 작은 집단에도 적용할 수 있다. ‘가정’의 가장 잘 알려진 예로는 중앙아프리카의 크라알, 북서아프리카의 카스바, 히브리인의 가장제가족,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그리스 대영지, 로마의 파밀
    독후감/창작| 2007.12.09| 6페이지| 1,500원| 조회(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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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를 읽고-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철학이 현대사회에 주는 시사점-
    를 읽고-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철학이 현대사회에 주는 시사점-들어가며요즘 대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에 관한 것이다. 이 고민은 단순히 내가 취업을 어디에 할까? 라는 취업 방향에 관한 고민이라기보다 취업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처럼 취업가능의 유무에 대한 고민이다. 물론 취업에 대한 고민은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것이지만, 요즘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하는 고민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얼마 전에 있었던 국가직 공무원 시험에 15만명이 몰렸다는 기사는 새삼 우리의 실정을 깨닫게 해준다. 대학생들이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보수는 적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기보다는 돈을 매달 안정적으로 받고 또 노년까지도 보장되는 공무원이 되려는 현상은 ‘돈=행복’ 이라는 공식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현상과 관련해서 주목할 것은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재테크 열풍에 휩쓸리고 있다는 것이다. 안정된 직장생활로는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지만 부자가 되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그렇다 보니 소수의 부자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펀드, 주식등 이른바 재테크를 하는 것이다.이쯤 되면 누구나 한번 ‘돈=행복’이란 공식이 맞는 걸까? 부자는 행복할까? 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물음에 대해 어느 정도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 철학이 아닌가 싶다.1. 현대사회에서 경제의 정의우리는 현대사회에서 경제라 하면 흔히 돈벌이를 생각한다. 그래서 경제관념이 있다는 말은 돈 버는 방법을 안다 라는 말과 상통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돈은 하나의 경제생활을 영위하기위한 수단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경제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화폐만능주의에 빠져서 돈을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닌 그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물론 의 저자가 말하다시피 이러한 화폐만능주의는 경제의 정의로서는 부적합한 것이다. 금이나 돈 자체에 걸신이 들린 사람들만이 그런 관점이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평범한 일반서민으로서 내가 느끼는 경제는 돈벌이와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굳이 돈이 아니라도 현대는 눈에 보이는 물질이 중요시 되는 사회이다. 실제로 모 결혼 정보업체의 프리미엄 회원 조건을 보면 부모의 재산, 연봉 등이 아주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물질적인 조건이 우선시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신적인 세계나 깊이는 초고속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측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신적인 것이 경시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물질적인 조건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정신적인 조건도 비슷하게 맞춰질 것이라는 주객전도된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생각은 더 나아가 사람들이 더 많고 큰 물질들을 가지도록 더 부추기고, 그러다 보니 인간 사회는 마치 더 좋은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동물들의 세계와 다름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왜 이렇게 끊임없이 허울이 좋은 것들만 추구하는 것일까? 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이 ‘희소성’ 이란 개념이다. 자원은 희소하고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경쟁을 하고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선택을 할 때는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윤을 내야 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데 그러한 활동이 경제라는 것이다. ‘경제’란 말을 사전 찾아보면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모든 활동. 또는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 라는 뜻 외에도 ‘돈이나 시간, 노력을 적게 들이는 일’이란 뜻이 있다. 즉, 손해를 보는 행동, 이윤을 내지 못하는 행동은 경제라는 말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가 이러한 경제의 정의들이 문제가 있다가 뒤에서 지적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보통 사람들이 쓰는 경제의 정의는 이러한 것들이다. 돈과 물질이 중요하고, 손해를 보고 이윤을 내지 못하는 것은 경제가 아니고 오히려 반대의 경제이고 경제적이란 개념이란 생각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이러한 현상들이 왜 생기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 철학을 통해 방법을 모색해 보자.2.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철학먼저, 아리스토텔레스 하면 흔히 철학자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경제를 말했다고 하는 책제목은 무엇인가 낯설다. 이것은 경제와 철학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이질감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경제는 실제적인 것이고, 철학은 이론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경제도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철학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상반된 것도 아니다.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철학은 시대가 정말 많이 지난 지금에도 큰 시사점을 안겨줄 만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에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는 경제활동들이 존재했음을 반증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당시에 경제라 하면 집안경제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지금의 국가를 초월해서까지 존재하는 세계화시대의 경제와는 그 규모는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그 기본적인 원리는 다르지 않다.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사기 위해 교환하고 사용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 당시도 경제를 돈벌이 정도로 생각하는 고리대금업자나 영리적 상업인들이 있었고 지금은 그러한 이윤추구를 경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아예 일반화 되었다.어떠한 사회이든 시대나 장소를 불문하고 살아가는 모습은 다 비슷할 것이다. 말이 많지만 역사가 순환된다라는 논의가 나왔다는 것 자체도 그러한 유사성과 보편성에서 나왔다는 점에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옛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비슷한 상황을 겪으면서 옛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무엇인지 들어보아야 한다. 이 경우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그에 해당이 될 것이다. 당시에도 고리대금업자나 영리적 상업인들은 위에서 살펴봤다시피 돈 버는 기술에 매우 치중을 하면서 그것이 경제활동을 하는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돈 버는 것은 하위단계의 가치일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상위단계의 가치로 바로 ‘행복’을 두고 있다. 사실 이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해서 사람들은 가끔 이것을 잊고 살아간다. 현대사회에서는 이미 목적전치 현상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TV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 먼저지 돈이 먼저냐?” 라는 대사는 목적전치 현상을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각종 프로그램에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앞 다투어 소개하며 그것이 희귀한 일인 양 시청자들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처럼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구분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경제에 가장 큰 업적을 남겼다고 했다. 이것이 마르크스의 독창적인 화폐이론에 기초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언급을 한 것이겠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본다. 그것이 돈벌이 기술로서의 경제에 경종을 울린 ‘행복’을 가장 상위에 둔 이론인 것이다. 단순히 경제가 아닌 경제 철학이라고 부를만한 근거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경제는 인간적인 생존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자급자족 상태의 가정경제 뿐만 아니라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을 확인 시켜 줄 수 있는 국가경제 즉, 당시의 폴리스 경제 또한 포함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위에 ‘행복’이라는 철학적인 개념이 있다. 이것은 경제를 아우르기 때문에 경제철학이라고 하면 적당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사람들은 그것을 잊고 살고 있기 때문에 목적전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돈벌이 기술에 현혹되는 두 번째 이유로 당장의 생계가 보장이 안 되기 때문에 돈벌이 기술에 현혹된다고 하였다. 행복이란 것도 일단 생계가 보장이 된 다음에 생각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물론, 밥 먹고 살기조차 바쁜데 어떻게 돈벌이 기술에 현혹되지 않느냐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난한 이라고 다 돈벌이 기술에만 현혹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달동네에 살아도 행복한 이들도 있다. 배가 고파도 행복한 이들도 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이상적인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런 이들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이렇게 보면 행복이 최상위의 가치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누구나에게나 적용가능하다고 보인다.3.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철학이 주는 시사점
    경영/경제| 2007.12.09| 4페이지| 1,000원| 조회(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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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갈리아전기
    『갈리아 戰記』 서평들어가며시저라고도 불리는 카이사르는 서양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남긴 사람 중의 한명이다. 그가 남긴 『갈리아 전기(戰記)』, 『내란기』는 역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그 중『갈리아 전기』는 총 8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에서 7권까지는 카이사르가 직접 썼고 마지막 8권은 카이사르의 비서 히르티우스가 썼다. 집필의 목적은, 후대의 사람들에게 자료를 제공할 겸 자기에 대한 여러 가지 비난에 대하여 변명하고, 동시에 정계 진출에 대비한 자기선전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번역본이라서 카이사르 특유의 문체가 완벽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이순신의 『난중일기』만큼 당시의 역사적 사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그럼 먼저 이 『갈리아 전기』를 지필한 카이사르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 다음으로 책의 내용과 가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1.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 100-B.C. 44)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장군으로 “카이사르라는 비범한 인물이 뛰어난 소질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결점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악덕과 무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그는 어떤 군대를 이끌어도 승리자가 되었을 것이고 어떤 나라에 태어났더라도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다.” 라는 몽테스키외의 말처럼 『갈리아전기』나 역사적 기록을 보면 카이사르는 매우 인간적이었고 웅변술도 훌륭했으며 전략적인 면에서도 탁월했다고 한다. 그러나 또한 위의 말처럼 악덕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돈 빌리는 천재’ 라는 악명을 얻었고, 여성과의 관계도 복잡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B.C. 69년부터 재무관, 안찰관(按察官), 법무관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면서 대정치가로서의 기반을 구축하고 B.C. 60년에는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3두정치를 하게 된다. B.C. 58년부터는 속주 갈리아의 지방장관이 되어 B.C. 50년까지 재임 중 이른바 갈리아전쟁을 수행하였다. 졌다”라는 말을 남기고 갈리아와 이탈리아의 국경인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를 향하여 진격하였다. 폼페이우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암살을 당한 후, 그는 그곳에서 왕위전쟁을 하여 승리를 거두고 클레오파트라를 왕위에 오르게 하였고 이어서 그는 내란을 잠재우고, 오랫동안 공화정의 실권을 쥐고 있던 원로원 지배를 완전히 타도하였다.이로써 1인 지배자가 된 그는 각종 사회정책(식민 ·간척 ·항만 ·도로건설 ·구제사업 등), 역서의 개정(율리우스력) 등의 개혁사업을 추진하였다. 종신 독재관을 비롯한 각종 특권과 특전이 그에게 부여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권력이 한 몸에 집중된 결과, 왕위를 탐내는 자로 의심을 받게 되어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롱기누스를 주모자로 하는 원로원의 공화정 옹호파에게 원로원 회의장에서 B.C. 44년, 칼에 찔려 죽었다.이렇게 여러 관직을 차례차례 역임하면서 결국 지배자로서 군림한 그의 생애를 살펴 볼 때, 그가 매우 야심찬 인물이었으며, 생애 자체가 전략적이었던 것 같다. 원로원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한 사건을 봤을 때도 그가 자신의 영향력에 대해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만큼 능력이 뛰어났다는 것, 매우 추진력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이러한 그의 능력이 『갈리아 전기』에는 어떻게 드러나 있는지 살펴보자.2. 『갈리아 전기』내용과 특징우선, 구성을 보면 제 1권(B.C. 58년)은 헬베티족과 게르마니 인과의 전쟁에 대해 서술하고 있고, 제 2권(B.C. 57년)은 벨가이 인과의 전쟁, 해변에 살던 여러 부족의 복속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제 3권(B.C. 57~56년)은 알페스 산지에 살던 여러 부족의 토벌, 해변에 살던 여러 부족과의 전쟁, 아퀴타니인과의 전쟁, 북방에 위치한 여러 부족의 토벌을 다루고 있다. 다음 제 4권(B.C. 55년)은 게르마니 인과의 전쟁, 브리타니 인과의 전쟁, 북방에 위치한 여러 부족의 토벌을, 제 5권(B.C. 54년)은 브리타니 인과의 전쟁, 북방에 위치한 여러 부족의 모반을 설명하 알 수 있다.이 책은 서두가 없이 바로 본문으로 넘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제 1권의 처음 부분에서는 갈리아 지방의 지역 구분과 민족 구성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데 그 중에 먼저 헬베티족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전쟁과정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카이사르가 헬베티족이 프로빈키아를 지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영지를 나서는 길은 두 개 밖에 없는데, 하나는 험한 길이고 하나는 로마의 프로빈키아를 지나는 길로 전자보다 훨씬 간단하고 편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즉, 그는 지형에 대해서도 해박할 뿐만 아니라 적이 편한 길을 택할 것이라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과정에 있어서도 그는 헬베티 족이 다른 부족으로부터 식량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인근 부족에게 미리 명령하였는데 이를 통해서도 그가 얼마나 전략적이고 통찰력이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연합한 하이두이족이 곡물지원을 미루자 그 원인이 로마에 매우 협조적인 디비키아쿠스의 동생 둠노릭스짓임을 알고는, 다른 사람을 나가게 하고 디비키아쿠스만을 불러 마음 상하지 않게 조용히 이야기하는 섬세함과 인간미까지 보여준다.게르마니인과의 전쟁 부분에서는 게르마니인들이 매우 용맹하다는 소식을 들은 아군의 두려워하는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에 카이사르는 로마군의 우수함과 무용을 들어 변론하였는데 이에 “모든 사람의 사기와 희망이 용솟음쳐 올랐다”고 감정을 마치 서정시의 한 부분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문학의 재능을 가진 카이사르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하늘이 도운 것인지 미신에 의존해 전쟁을 늦추던 게르마니인들은 결국 퇴각하고 카이사르는 순회재판을 위해 갈리아로 향하게 된다.다음 2권에서는 주로 벨가인과의 전쟁에 대해 서술하고 해변 부족의 복속에 대해서는 약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벨가인은 매우 용감한 민족으로 이들이 내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카이사르는 군대를 외갈리아로 향하게 하고 그 곳에서 곡물공급을 마치고 벨가이 로 오게 한 능력인 것이다. 잇다른 갈리아에서의 승리는 그 당시 카이사르에 대한 반감이 뿌리 깊은 원로원조차도 전례에 없는 15일 감사제를 신들에게 올리게 하였다. 또한 승전보는 로마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불태워, 카이사르 밑에서 싸우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상류층 자제들 중에서도 계속 늘어났다고 한다.그 후 그는 해변에 살고 잇는 베네티족과 전쟁을 해야 했는데 카이사르는 로마군이 바다에서 싸워야 한다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전쟁에 대해 회의하였으나 결국 승리했으며 사비아누스족과는 연합해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적을 속여 항복하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로마는 한 척의 배도 지니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렇듯 해상전쟁에 익숙하지 않았음에도 출정하여 승리한 것은 진정으로 ‘무용(武勇)’중 ‘용(勇)’의 덕택이 아닌가 싶다. 이 시기에 크라수스도 아퀴타니인과 전쟁해서 승리하였다.다음 4권의 수에비족이라는 게르마니인들과의 전투에서 카이사르는 그들의 말 다루는 기술에 고전을 면치 못하였는데, 전투가 끝나고 그들이 사절을 보내자 카이사르는 사절을 잡아두고 바로 급습하였는데, 왠지 이 부분에서 카이사르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 좋게 말하면 아군을 승리로 이끌었으므로 전략적이라 볼 수도 있지만 약속을 중요시 여긴다는 로마인이 그런 방법을 썼다는 것이 ‘표리부동(表裏不同)’ 이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카이사르가 전쟁을 즐겼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찌되었든 카이사르는 곧 브리타니인과 전쟁을 하게 되는데 적의 항복을 받아내고 오는 도중 배가 폭풍우를 만나 난파하게 된다. 적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또 모반을 꾀하는데 이를 눈치 챈 카이사르는 결국 적진을 먼저 진격하게 된다. 승리 후 돌아왔지만 다음해 B.C.54년 카이사르는 다시 브리타니로 가 전쟁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도 로마군이 도처에서 우세를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계속된 폭풍으로 이기는 과정이 매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브리타니 지방에 대해서는 카이사르가 기후나 풍습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것으로것도 반드시 부적당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 한다”는 구절로 시작하고 있다. 적을 알아야 백전백승한다는 그런 이치를 이미 알고 그들의 풍속을 서술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갈리아인은 종교에 심취해 산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풍속이 있었고, 게르마니아는 수렵과 무예에 힘을 기울였으며 유력자에 의해 토지가 분배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제 7권은 카이사르가 쓴 마지막 부분으로 『갈리아 전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52년의 전쟁은 역사상 갈리아 민족의 처음으로 대동단결하여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치밀한 준비 끝에 모든 부족이 총궐기하여 카이사르에게 저항한 것은 아니었다. 여러 부족으로 분열되어 있어 체계적으로 단결했다기 보다 우연적으로 여러 사건이 맞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내란의 전모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웠으나 카이사르는 오히려 이를 이용해 전쟁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었다. 계기를 만든 것은 지난해 족장 아코가 극형에 처해진 일로 원한에 사무쳐 있던 카르누테스족이었다. 그 때는 우연치 않게 로마의 정세가 불안정하여 카이사르가 갈리아로 올수 없는 입장이이었고, 게르마니인들도 카이사르 덕분에 잠잠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때마침 갈리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지도력을 가진 베르킨게토릭스가 등장하여 로마에 맞서 귈기할 것을 전 갈리아에 호소하게 된다. 이에 중부 갈리아 부족들이 호응하자 카이사르는 남프랑스의 속주로 부터 갈리아 중부로 이동하여 모든 부대를 통합하고 반란의 제압에 나선다. 그러나 게르고비아전에서 46명의 백부장을 잃는 등의 손실을 입고 퇴각한다. 그 후 갈리아 원군 26만과 대치하여 알레시아 공방전을 벌이고 결국 승리하여 베르킨게토릭스는 포로가 되고 만다. 그리고 특징적인 것은 포로 신세가 된 것은 베르킨게토릭스 한 사람뿐이라는 것이다. 카이사르가 자신을 희생하여 동포를 구하려 한 베르킨게토릭스의 충정을 존중한 것이라고도 하지만 여기에도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 그 자리에서는 갈리아인을 회유하고 로마로
    독후감/창작| 2006.09.23| 5페이지| 1,000원| 조회(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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