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여행기?걸리버 여행기? 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제 4부인 '말들의 나라'였다. 인간과 말의 위치를 뒤바꿔놓은 스위프트의 상상력이 놀라웠다.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 절정부분인 4부에서 동물우화의 형식으로 인간을 매도하여 동물 이하의 존재로 전락시키고 있다. 우선 말의 형상을 가진 '휴이넘'과 이들의 노예로 천하게 살아가는 인간 '야후' 에 대한 특징을 비교해 보았다.말과 같은‘휴이넘’은 이성이 있어 행동에 질서가 있고 분별력이 있다. 또 태어날 때부터 언어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예의바르고 친절하며 항상 깨끗하여 청결하다. 마지막 특징으로‘휴이넘’은 그 나라 안에서 사회의 주인으로 사회를 통치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에 인간의 형상을 띄고 있는‘야후’는 이성이 없고, 이상한 괴성만을 낼 수 있다. 서로를 적대시하며 예의를 모르고 야만스럽다. 또한‘야후’는 불결한 생활을 하여 냄새가 나며 더럽고‘휴이넘’에게 있어 짐승에 불과 하며 단지 그들의 노예일 뿐이다. 이 책에서 말은 이성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고 ‘야후’는 야만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옛 말에 “동물만도 못한 사람”이란 말이 있듯이 스위프트는 인간의 타락상을 도덕적으로 풍자 하고 있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능력을 오용했을 때 인간은 동물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만다. 스위프트는 말이라는 동물을 통해 당대의 인간, 사회, 정치상을 잘 풍자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향을 제시한 것 같다. 그러나 단순한 비판을 넘어서 인간자체를 혐오하고 인간 사회와 본성에 대해 풍자와 조롱을 반복하였기 때문에 당대인들의 비판을 낳았고 작품에 초 이상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달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이 글을 읽으면서 자칫 인간 혐오라는 거부감을 느낄 수 있으나, 이와는 다르게 인간 사랑의 반어적 표현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특히 스위프트는 사람을 좋아하고 폭 넓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으로서 그 당시 유럽 현실을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변화되기를 희망하였는지 느낄 수가 있었다. 또한 사랑과 이성과 절제가 조화된 인간형을 추구 하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두 세계의 경계『모래남자』는 주인공 나타나엘이 친구 로타에게 어린 시절을 얘기 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타니엘은 어릴 적 어머니로와 유모에게서 모래 사나이의 얘기를 들은 후 눈을 잃을까봐 하는 무서움에 모래남자를 무서워했다. 어릴 적부터 계속된 모래남자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감에 결국 그 실체를 알아냈다. 나타나엘은 모래남자가 바로 이웃집 변호사 코펠리우스라는 것을 알게 된다. 후에 우연찮은 사고로 아버지가 죽게 되고 코펠리우스 때문이라고 믿은 나타나엘은 모래남자를 더욱 두려워하게 된다. 이와 같이 나타나엘은 어렸을 때 잘못 심어진 인식으로 인하여 평생을 모래 남자에 대한 두려움과 눈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게 된다. 또한 현실과 망상을 오가며 정신 분열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인다.나타나엘 주변에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클라라와 올림피아라는 두 명의 여자가 있다. 두 사람 모두 나타나엘로 에게 사랑을 받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 둘에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차이점을 있다. 우선 그의 약혼녀 클라라는 온화하고 명랑하고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맑다. 그녀는 밝은 세계, 즉 계몽주의적이고 이성적인 세계를 믿는다. 클라라는 나타나엘이 로타에게 보낸 모래남자와 변호사 코펠리우스에 대한 악몽을 진지하게 이야긴 한 편지를 읽게 된다. 이를 읽은 클라라는 그의 어릴 적 아이들을 미워한 코펠리우스와 옛날 이야기에 나온 무서운 모래남자가 결합된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섬뜩하고 어두운 힘을 나타나엘이 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 뿐이라고 말한다. 또,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에서 나타나엘이 코펠리우스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때, 클라라는 악마와 같은 그 존재는 나타나엘이 그것을 믿는 한 존재하고 힘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클라라는 나타나엘의 환상적인 세계에 대해 부정하고 현실 세계로 이끌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을 통해 클라라는 매우 현실적인 사고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었다. 반면에, 나타나엘은 운명과 어두운 환상, 신비주의를 믿는 인물이다. 이렇게 나타나엘과 클라라는 서로 자신이 믿는 세계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조금도 양보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갈등 극도로 나타난다. 클라라는 나타나엘에게 '제 정신이 아닌 이야기를 불 속에 던져 버려요'라며 그의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에 나타나엘은 클라라를 '생명 없는 한심한 자동 인형'이라며 단적으로 그녀를 비난한다. 나타나엘은 클라라로부터 느끼지 못했던 것을 자동인형인 올림피아로부터 얻으면서 결국 그녀를 통해 자기 존재를 찾는 것이다. 즉, 나타나엘은 누군가가 자기 자신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이해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클라라는 그런 나타나엘의 심적인 변화나 불안을 부정하고, 그저 그가 현실로 돌아오기만을 강요하고 있다.반면, 올림피아의 눈은 처음에는 고정된 시선으로 딱딱하고 생기가 없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 눈에는 계속 초점 없는 시선이었지만, 나타나엘에게는 달랐다. 코펠라에게서 산 망원경을 통해 본 올림피아의 눈은 마치 촉촉한 달빛이 서린 것 같이 생기 있게 빛나 보였다. 나타나엘의 허상으로 올림피아의 눈은 변해 갔던 것이다. 처음에는 망원경을 통해서 변화가 일어났지만 나중에는 망원경 없이도 변화는 일어났다. 자동인형인 올림피아는 나타나엘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열심히 경청했다. 나타나엘은 이런 올림피아의 행동에서 사람보다도 더 강한 사람의 생기를 느끼며 사랑을 느끼게 된다. 또 그녀의 내면 세계는 정신적인 삶을 깨닫게 해주며 인식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나타나엘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며‘아아’감탄사를 연발하는 자동인형 올림피아는 나타나엘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먹이 사슬 관계『서민귀족』은 신분 상승에 눈이 멀어 속고 이용당하는 주르댕은 무조건 귀족만 쫒아 하려고 하는 어리석고 한심한 인물이다. 또한 그의 재물에 눈이 멀어 주르댕에게 아첨하는 주변 인물들은 주르댕의 그러한 점을 이용한다. 여기서 주르댕이 맺는 관계를 분류하여 살펴보았다.첫째, 주르댕과 가족간의 관계를 분석해보면, 그의 아내와의 관계이다. 주르댕 부인은 역시 부르주아이지만 신분상승의 욕망을 가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녀는 주르댕의 생각과 태도 등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충고하며, 고쳐 주려한다. 그러나 주르댕은 그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뿐더러, 도리멘느 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상태이므로 부인의 존재를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주르댕에게 있어서 가족은 단지 형식에 불과 했던 거 같다. 주르댕은 귀족적인 것을 추구하고 또한 귀족을 사모했으며, 귀족적인 것을 추구 하지 않는 그의 부인에게는 무식하다느니, 하찮다는 말을 자주한다. 주르댕의 아내는 솔직하게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말할 줄알고, 명예나 허례허식에 대한 비판도 할 줄 아는 똑똑한 인물이다. 또한 그의 딸 뤼실의 결혼 상대가 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르댕은 반대를 한다. 하지만, 뤼실은 아버지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따르지 않은며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현실에 만족하며 직시하며 살고 있다. 또 신분은 아무 상관없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다.둘째, 주르댕과 선생들 간의 관계이다. 주르댕이 귀족이 되기 위해 불러 모은 음악, 무용, 검도, 철학 선생과의 관계이다. 이 선생들은 서로들 자신의 학문이 최고라고 주장하며, 또한 첫 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르댕을 진심으로 가르치고 도우려는 것 보다는 오히려 무식하다고 험담을 한다. 그러면서도 주르댕의 돈을 받기위해서 주르댕에게 아부를 한다. 또한 주르댕과 선생의 대화에서 보면 주르댕은 모든지 귀족이 하는 것인지 묻고 귀족들이 하면 모든 따라 하려 한다. 역시 이런 주르댕을 파악하고 선생들도 무엇을 가르칠 때 마다 귀족들이 하는 것이라며 주르댕에게 만족감을 심어준다. 이들의 관계는 진정한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가 아니라, 어쩌면 서로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 무엇을 교환하는 것뿐인 소비자, 생산자와 같은 관계를 이루고 있다. 즉, 주르댕이 수업료를 지불하면 선생들은 이에 대해 귀족이 영위하는 삶의 부분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선생들도 배움의 밑 걸음이 되기보다는 역시 귀족과 마찬가지로 돈 때문에 주르댕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셋째, 귀족들과 주르댕 사이의 관계이다. 이는 도랑트와의 관계를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도랑트는 교묘하게 주르댕을 이용한다. 주르댕은 귀족신분인 도랑트와 친구가 된 사실에 기뻐하며, 그의 도움을 빌려 후작부인인 도리멘느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그러나 도랑트는 겉으로는 주르댕을 친한 친구로 생각 한다며 주르댕을 귀족 취급 해주지만, 속으로는 주르댕의 돈을 이용해서 도리멘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것 이였다. 도랑트는 주르댕의 마음을 도리멘느에게 전해준다고 해 놓고서는 그의 재물을 이용하여 도리멘느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아내로 만든다. 결국 도랑트는 어리석은 주르댕을 자신의 돈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했다는 것이 된다. 또한 도리멘느는 흔히 귀족들이 그렇듯이 매너 있고 돈 많고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사로잡히는 평범한 인물인거 같다. 도리멘느는 주르댕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모르고 그가 해준 모든 일들이 도랑트가 한 일인 줄 안다.주르댕은 귀족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이 귀족과 같이 되는 줄 착각하고 있지만, 선생들과 마찬가지로 귀족들도 주르댕을 뒤에서는 무시하고 있으면서 돈을 얻어내기 위해 주르댕의 비위를 적당히 맞추고 앞에서는 주르댕을 귀족 취급 한 것 같다.
분별없는 호기심『 분별없는 호기심 』편에 나오는 안셀모는 나무랄데 없는 아내의 정조에 대해 어느 날부터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안셀모의 호기심은 아내의 정조에 대한 호기심이었는데, 아내가 정말 자신을 유혹하는 남자가 있어도 남편을 배신하지 않고 정조를 지킬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안셀모는 호기심을 호기심으로 끝내지 않고 실제로 시험해 봄으로써 사랑과 우정을 모두 잃게 되는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된다.물론 누구든지에게나 호기심은 있기 마련이고 나도 내 남자친구가 나를 얼마큼 믿고 좋아하는지, 친구들의 우정은 얼마큼인지에 대해 알고 싶고, 또 알면서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본능인 것 같다. 이와 같이 안셀모도 호기심이 강한 나머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 같다. 그러나 안셀모의 호기심은 정도가 지나친 것으로 아내를 믿지 못하여 의심하는 것 같다. 믿고 있긴 하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을 정말 믿음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 볼 수는 있지만 인간은 이성적 사고를 가짐으로써,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자제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안셀모의 호기심은 충분히 공감되지만, 부인을 사랑으로 덮지 않고 시험해 본 행동은 비난받을 행동이라고 생각된다.죽기전 남편의 고백 『 어리석게도 도리에 어긋난 소망이 나의 목숨을 빼앗았노라』부분에서는 안셀모가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또 자신의 분별없는 호기심으로 인해 일어난 일에 대해 한탄하는 듯 하다.또 『내 죽음의 소식이 까밀라의 귀에 들어가는 일 있으면, 기적을 행할 의무가 없고, 나 또한 기적을 행하게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수치는 나 스스로가 초래한 것이니 이제 새삼 무엇을 찾으리요... 』의 부분이 갖는 의미는 안셀모는 본능적으로 부부간의 도리와 친구에 대한 도리를 잊고 시험해 보고자 한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한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있으며, 아내를 용서했으며 로따리오와 까밀라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엄마의 말뚝『엄마의 말뚝1』이 소설은 오로지 엄마의 입장, 여자의 입장에서만 쓰여 졌다. 소설이 시작하고 끝나는 순간까지 엄마에게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전부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중심 소재로 하여 엄마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거나 포기함으로써 자식에 대한 사랑과 온정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이 소설에서는 아버지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아버지의 부재는‘엄마’로 하여금 더더욱 자식에 대한 사랑을 더했을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엄마’는 아들과 딸의 교육을 위해 시아버지의 허락의 유무에 상관없이 무작정 서울로 떠나게 된다. 엄마는 자식들의 성공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의지하나만으로 온갖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한다. ‘엄마’딸도 아들과 같이 많이 배워서‘신여성’이 되기를 바란다. ‘엄마’의 이 같은 교육열은 남다르게 높아서 아이를 사대문 안에 있는 학교로 보내기 위해 애쓰며 딸의 합격에 감격한 엄마의 모습은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엄마의 말뚝2』는 엄마가 된 딸과 병원에 입원한 엄마, 그리고 과거 오빠의 죽음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1편의 화자가 5남매의 엄마로써, 몸과 마음이 집을 떠났을 때 어떤 섬뜩한 느낌, 까닭 모를 불안함과 부정적인 예감을 갖고 산다. 그녀가 벗어날 수 없는 가정안의 울타리 안에서 까닭 모를 불안에 떠는데 구체적인 사건이 어머니의 사고이다. 엄마는 자신이 죽을 때 묘를 쓰지 말고 화장을 하여 바람에 날려달라는 부탁을 한다. 오빠가 죽었을 때에 자유롭게 날아가게 하기 위해 그랬듯이 말이다. 엄마도 죽어서라도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는 듯 했다. 이 소설은 한전쟁의 비극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부모됨의 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소설에서는 엄마 쪽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여성의 모성애의 강인함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엄마의 말뚝』를 읽는 내내 우리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회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엄마에게는 언니, 나, 남동생이 있는데 우리 셋 모두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면 엄마의 의지대로 포기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나에게 있어 제일 가까운 친구이자 항상 든든한 빽이 되어 주시지만, 한편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엄격하게 키우셔서 나는 엄마에게 혼나는 것을 제일 무서워한다. 정말이지 엄마의 무서운 꾸짖음과 강한 의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사실을 나 본인 스스로도 알면서도 가끔씩 엄마와 다툴 때마다 “엄마는 언니한테는 첫째여서 신경 많이 써주고 동생은 아들이니깐 더 많이 신경썼잖아~!!! 나한테 더 잘 신경써줬으면 더 성공했을텐데... ”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예전부터 엄마가 하신 말씀인데, 내가 뭔가 잘못했을 때마다 엄마에게 큰소리치며 이용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내가 뭔가를 잘못했을 때 언니와 동생을 혼내실 때와는 다르게 오히려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나는 혼나는게 무서워서 그렣게 말해서 엄마의 말문을 막고 엄마를 속상하게 했었다. 나 자신은 누구보다도 엄마의 노력과 우리를 위해 노력하신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엄마의 말뚝』을 읽고 엄마의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또 아직 엄마가 되지 않았지만 간접적이나마 ‘어머니됨’ 에 대해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또 여성은 수동적이고 나약한 이미지로 그려지지만, 우리 엄마 뿐 아니라, 자식을 가진 엄마로써의 여성은 강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